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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국제영화제 25일 개막

    세계영화제에서 작품성을 검증받은 영화들을 보고 싶다면 25일 개막하는 ‘2002 광주국제영화제’(www.giff.or.kr)에 주목하자. 31일까지 광주 시내 충장로 극장가 등지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상영작은 모두 205편.개막작은 임창제 감독의 공포영화 ‘하얀 방’이,폐막작은 조지 클루니가 은행털이범으로 나온 앤서니 루소 감독의 ‘웰컴 투 콜린우드’가 선정됐다. 이번 영화제는 지난해 관객 참여가 낮았던 것을 의식,탤런트 장나라를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영화 수도 대폭 늘린 것이 특징.하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완성도를 이미 인정받은 작품이 주로 초청된데다 흥행만을 고려해 개·폐막작을 골라 영화제 색깔을 흐렸다. 임재철 프로그래머가 분야별로 나눈 추천작 가운데 9편을 소개한다. 口영시네마 ‘뜨는’신예감독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섹션.우선 사랑의 선택 문제를 그린 일본 만나 구니토시 감독의 ‘언러브드’가 주목을 끈다.지난해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작.미국 10대 탈선아들의 황폐한 삶을 다뤄 미국 비평가협회 신인 감독상을 받은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조지 워싱턴’도 독창적이며 실험적인 비주얼을 선사한다. 아르헨티나 출신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늪’은,살인적인 더위에 지친 두 가족이 수영장을 둘러싸고 벌이는 이야기.부패하는 부르주아 가족을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지난해 베를린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 口월드 시네마 베스트 명감독들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다.이집트의 국민감독 유세프 샤인의 ‘조용…촬영중’은 빠른 편집과 수다스러운 대사로 스크루볼 코미디를 연상시킨다.그러면서도 영화 만들기에 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마약 중독으로 사망한,실존했던 유명 모델의 이야기를 그린 ‘야성적 순수’는 프랑스 출신 필립 가렐 감독의 자전적 작품. 口영화사 다시보기 ‘슬픔이여 안녕’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여배우 진 세버그의 가상 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에 담은 미국 마크 라파포트 감독의 ‘진 세버그의 일기’는 정치와 스타의 관계를 탐색한다.장 뤽 고다르가 20세기 영화의 역사를 4부에 걸쳐 정리한 ‘영화사’는 미디어와 작가의관계를 탐색하는 고다르식 스타일이 빛나는 기념비적 프로젝트다. 口프랑스 범죄영화 장 가뱅,잔 모로 주연의 갱스터영화 ‘현금에 손대지 마라’는 금괴를 놓고 벌이는 암투를 어두운 톤으로 그린 영화.줄스 닷신 감독의 ‘리피피’는 인간의 약한 본성이 어떻게 계획을 좌절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실존적인 작품으로 범죄영화 가운데 최고작의 하나로 꼽힌다. 관람료는 1편 4000원,1일 자유이용권 1만원.예매는 1588-1555. 김소연기자
  • 영화단신/ ‘오아시스’ 아카데미상 출품 外

    口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가 내년 3월에 열리는 제75회 아카데미상의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하는 한국영화로 선정됐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21일 심사위원회를 열고 ‘오아시스’를 출품작으로 결정했다.‘취화선’(임권택 감독)‘집으로’(이정향)‘YMCA 야구단’(김현석)등이 후보에 올라 경합을 벌였다.영진위가 직접 심사해 아카데미에 작품을 내보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口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이 22일 공개한 올해 극장가 시장점유율에 따르면 9월까지 서울에서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43.98%였다.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3%포인트 높아진 것이다.개봉편수는 67편으로,작년 35편의 2배 가까이 늘었다. 한편 한국 미국 일본을 제외한 국가의 영화 점유율은 지난해 6.20%의 절반수준인 3.25%로 나타나 영화의 제작국별 편식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 영화 박스오피스/ 한국영화 1~6위중 5편

    한국영화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대박의 꿈을 이룰 조짐이다.주말 관객 수 1∼6위에 5편이 포진한 것.연휴 극장가를 독식한 ‘가문의 영광’은 3주째 1위를 고수했다. 지난 30일에 전국 관객수 300만을 돌파했다.3주째 2위를 지킨 ‘연애소설’도 만만치 않다.개봉과 동시에 3위에 오른 ‘도둑 맞곤 못살아’는 좌석점유율이 그다지 높지 않아 대박을 장담하기는 빠르다. ‘오아시스’의 뒤늦은 선전도 눈에 띈다.스크린 수는 줄었지만 좌석점유율은 61%로,지난주보다도 높아졌다.‘보스상륙작전’도 전국 관객 100만을 넘어섰다.이번 주말에 ‘YMCA야구단’이 가세하면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한국영화계,모처럼 축포를 터뜨려도 좋을 듯 싶다. 김소연기자 purple@
  • [씨줄날줄] 개구리의 침묵

    한때 극장가에는 공포영화가 판을 쳤다.대표적인 게 미국 할리우드의 ‘양들의 침묵’이었다.이 영화는 1991년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5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30여년 경력의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와,1981년 레이건 미 대통령을 총으로 쏜 존 힝클리의 우상인 조디 포스터가 주연했다.여자의 피부를 벗겨 죽이는 살인마의 광기어린 피의 잔치를 추적하는 스릴러물로 국내에서도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이 영화는 공포물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만큼 유명세를 얻었다. 영화를 보면 희생자의 입 속에 나방이 알을 슬어 애벌레가 자라는 장면이 나온다.보기에는 끔찍했지만 이 나방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단서를 제공했다.우리나라에서 ‘박각시’라고 불리는 나방의 사촌쯤 되는 이 나방이 자라는 장소가 확인되면서 범행장소가 좁혀진 것이다.‘양’,즉 희생자는 침묵했지만 나방이 범인을 지목한 셈이다. 나방이 사체의 목구멍에 알을 깐다는 설정은 법의 곤충학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무리가 없다.법의곤충학이란 1992년 세계곤충학회에서 인정된 별도의 분과학문.파리 나방 개미 말벌 등 각 곤충마다 생장 양태,산란 장소 등이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해,곤충과 알 등의 상태를 보고 사체의 사망 장소 및 시간 등을 알아내는 학문이다. 실제로 범죄수사에 곤충을 활용해 좋은 결과를 얻은 사례는 적지 않다.멀리 13세기 중국에서는 낫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파리가 달라붙는 낫의 임자를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몇년전 미 FBI는 미국 시카고의 한 덤불 숲에서 숨진 채 발견된 15세 소녀의 사체에 슬어있는 애벌레를 분석해 범인을 잡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최근 11년만에 유골로 발견된 개구리 소년의 사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이는 윗옷과 바지의 끝부분이 매듭지어져 있는 데다,한 명의 두개골 좌우에 구멍이 나있는 점 등 동사로 보기 어려운 의문점이 속출한 탓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곤충을 통한 조사에 나설 것을 밝혔다.개구리 소년들은 침묵하지만 곤충들은 말을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모쪼록 말하지 못하는 개구리 소년을 대신해곤충들이 사인을 웅변해주기를 기대한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추석연휴 볼만한 영화7편 “가족 손잡고 극장 나들이 어때요”

    추석연휴 볼만한 영화7편 “가족 손잡고 극장 나들이 어때요”

    추석연휴는 극장가의 변함없는 ‘황금 대목’이다.그러나 올해는,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기선을 제압하던 예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일찌감치 한가위 특수를 노리고 야심차게 제작한 한국영화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와 맞대결을 벌인다.‘크기’로 승부수를 띄운 할리우드산,코미디·멜로·SF 등 다양한 장르로 관객몰이에 나선 한국영화 등 연휴 극장가를 후끈 달굴 화제작 7편을 골랐다. ◆ 가문의 영광 ▲감독,배우,장르=정흥순,정준호 김정은 유동근,액션 코미디 ▲어떤 영화=무식한 조폭 집안의 3형제가 여동생(김정은)만큼은 ‘가방끈 긴’남자한테 시집보내고 말리라,팔소매를 걷었다. 벤처기업 사장 박대서(정준호)가 이들의 타깃이 된 건 순전히 서울대를 수석 졸업했기 때문.‘서울대 출신 사위 만들기’를 모토로 한,엎치락뒤치락 배꼽잡는 상황극. ▲감상포인트=내숭과 사투리 연기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김정은.‘빤짝이’양복에 호남사투리를 ‘겁나게’구사하는 조폭 집안의 맏아들 유동근. ◆ 연애소설 ▲감독,배우,장르=이한,차태현 이은주손예진,멜로 ▲어떤 영화=스무살 즈음에 있음직한 세 청춘남녀의 ‘우정과 사랑 사이’.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지환(차태현)은 손님으로 온 수인(손예진)경희(이은주)와 좋은 친구가 되기로 한다.그런데 선머슴같은 경희와의 사이에 조금씩 분홍빛 감정이 싹튼다. ▲감상포인트=차태현의 어른스러워진 유머감각,모처럼 생기발랄해진 이은주의 표정연기. ◆ 오아시스 ▲감독,배우,장르=이창동,설경구 문소리,멜로 ▲어떤 영화=전과3범인 남자와 중증 뇌성마비를 앓는 여자의 유쾌하고도 절절한 사랑이야기.▲감상포인트=한순간도 리얼리즘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창동식’판타지.혀가 내둘릴 만큼 실감나는 문소리의 장애인 연기.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감독,배우,장르=장선우,임은경 김현성,SF액션 ▲어떤 영화=‘매트릭스’를 동양식 버전으로 리바이벌 했다고나 할까.중국집배달부 주(김현성)가 게임에 접속한다. 성냥팔이 소녀(임은경)를 ‘원작대로’얼어죽게 만드는 게 게임의 법칙.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액션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감상포인트=SF영화 속에서 선문답을 주고받는 낯선 체험을 하고 싶다면.한국산이 의심스러울 만큼 업그레이드된 컴퓨터그래픽. ◆ 레인 오브 파이어 ▲감독,배우,장르=롭 바우먼,매튜 매커너히·크리스찬베일,SF액션 ▲어떤 영화=서기 2084년을 배경으로 불뿜는 용과 인간의 사투를 만화처럼 그렸다. 고대 생명체인 익룡이 공격해 오자 지구는 핵으로 맞서다 폐허가 된다.어린시절 익룡에게 어머니를 잃은 퀸(크리스찬 베일)은 생존자를 모아 복수를 노린다. ▲감상포인트=뻔한 줄거리를 빛나게 포장해 낸 회화적 화면장치,선과 악을 가르는 생생한 캐릭터 묘사. ◆ 로드 투 퍼디션 ▲감독,배우,장르=샘 멘데스,톰 행크스,누아르 ▲어떤 영화=마피아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두 아들에게는 따뜻하고 든든한 아버지이고 싶은 중년남자 마이클(톰 행크스).어린 아들이 마피아 두목 아들의 살인 장면을 목격하는 바람에 가족이 몰살당하자 복수의 칼날을 세운다. ▲감상포인트=갱스터물의 폭력성이 아름다울 정도로 미술적 가치가 돋보이는 화면구도.부정(父情)에 목숨건 톰 행크스의비장한 액션. ◆ 파워퍼프 걸 ▲감독,장르=크레이그 맥크라켄,애니메이션 ▲어떤 영화=한과학자의 넘치는 실험정신 덕에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세 꼬마 소녀가 주인공.광속으로 하늘을 날고 눈에서 레이저빔을 발사하며 악당 원숭이에 맞선다. ▲감상포인트=천진하고 화려한 ‘아동용’액션,어른들이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수준높은 위트. 황수정기자 sjh@
  • 영화 박스오피스/ ‘성소’ 관객 7만명… 흥행 참패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지난 13일 개봉한 정준호·김정은 주연의 코미디 ‘가문의 영광’이 ‘극장가의 영광’을 잡았다.영화인회의 배급개선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가문의 영광’은 개봉 사흘동안 전국 관객 59만 2389명(서울 18만8502명)을 불러모았다.지난해 최고 흥행작인 ‘조폭 마누라’(전국 56만 4000명)의 초기 기록을 따돌린 인기다.따라서 지금까지 올해 최고 흥행성적을 올린 ‘집으로…’(전국416만명)를 제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13일 일제히 화제작을 개봉한 국내 3대 배급사의 경쟁에선 시네마서비스가 일단 압승한 셈.코리아픽처스가 배급을 맡은 ‘연애소설’은 전국 31만여 관객으로 선전했으나,CJ엔터테인먼트가 야심차게 배급한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7만 2900명의 ‘참담한’성적에 그쳤다. 20세기 폭스가 직배사의 자존심을 걸고 서울 42개 스크린에 건 톰 행크스 주연의 누아르 ‘로드 투 퍼디션’도 한국영화의 위세에 기가 눌려 개봉 사흘동안 전국 관객 15만명을 넘기지 못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신인배우상을 받은 ‘오아시스’는 스크린이 23개에서 16개로 줄었으나 관객 수는 크게 떨어지지 않아 2만 6400명을 기록했다. 황수정기자
  • [충무로 산책]추석 극장가 배급사 힘겨루기

    ‘배급 지존을 가려보자.’ 추석 연휴를 한주일 앞둔 오는 13일,극장가는 국내 배급사들의 힘겨루기로 불꽃을 튀길 전망이다.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코리아픽쳐스 등 이른바 ‘3대 메이저’들이 각각 한편씩의 한국영화를 개봉작으로 내세우고 목하 스크린 확보전에 한창이다. 이날 첫선을 보일 한국영화는 김정은·정준호 주연의 코미디 ‘가문의 영광’(시네마서비스),임은경 주연의 SF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CJ엔터테인먼트),이은주·차태현 주연의 ‘연애소설’(코리아픽쳐스)등 3편이다. 시사회 전부터 시네마서비스는 ‘가문의 영광’의 개봉관 스크린을 전국에 150여개나 잠정 확보해뒀다.9일 첫 시사를 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CJ엔터테인먼트의 하반기 최고 야심작.당초 예고편 프린트 200벌을 만들기로 했다가 급히 350벌로 늘리는 등 기선잡기에 나섰다.배급력이 열세인 코리아픽쳐스는 ‘연애소설’의 승부처를 단순히 스크린 늘리기에 걸지 않을 전략이다.“안정적 수준의 좌석을 확보해 점유율을 높이는 작전을 구사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귀띔. 막강 배급사들의 움직임에 영화가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극장가에서 연중 최고의 황금시장으로 꼽히는 추석연휴를 노려 한국영화가 3편이나 한꺼번에 정면대결한 사례는 없었다. ‘가문의 영광’을 제작한 태원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어지연 실장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연휴시즌에 한국영화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피하기에 급급했던데다 국산끼리는 개봉일을 겹치지 않는 게 암묵적 관행이었다.”면서“그러나 이젠 한국영화들이 당당히 전면에 나서 진검승부를 가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 추석연휴를 겨냥해 개봉하는 할리우드 직배영화는 폭스코리아의‘로드 투 퍼디션’뿐.와중에 기선제압을 노리고 이번 주말 개봉하는 국산코미디 ‘보스상륙작전’(배급 A라인)은 국내 영화사상 최다 스크린(전국 220개)을 잡았다고 자랑이다. 배급사들의 전면전이 한국영화의 자신감을 상징한다면 흐뭇한 일일 수도 있다.문제는 관객이다. 영화계 일각에서 “힘있는 배급사들의 몇몇 영화들이 개봉관을 장악하면 다양한 볼권리는 어디서 찾겠느냐?”는 자성이 터져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황수정기자 sjh@
  • [9·11테러 1주년] (상)현장르포: 아물지 않는 상처

    전대미문의 9·11테러가 일어난 뒤 지난 1년 미국사회는 물론 전세계가 다방면에서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겪었다.충격에서 조금씩 회복해 가는 뉴욕시민들의 모습과 증오와 비탄속에서 상처의 치유를 모색하는 미국사회,그리고 대 테러전의 와중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국제사회의 재편 움직임을 시리즈로 점검한다. ***참사 폐허에 관광객 물결 [뉴욕 백문일특파원] 비행기 자살 공격으로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세계무역센터(WTC) 자리는 이제 현대판 ‘성지 순례지’가 됐다.하루 평균 방문객은 2만 5000명,연간 900만명 이상이 다녀간 셈이다.공식 확인된 사망자와 실종자는 2819명.그러나 정확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맨해튼 월가 전철역에서 내려 북서쪽으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앞서가는 행렬만 따르면 될 만큼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거리 이름이 여운을 남기는 ‘처치(Church)가’와 ‘리버티(Liberty)가’가 만나는 교차로에 이르자 마천루 사이로 횅하게 뚫린 참사 현장이 드러났다.지반을 다지는 듯한 굉음소리가 요란하다. 얼핏 보면 일반 공사장과 다를 게 없다.둘러쳐진 철조망과 어지럽게 널려있는 철골더미.그러나 그 가운데에 우뚝 솟은 녹슨 철 십자가와 철조망에 걸린 꽃다발,군데군데 세워진 성조기 등은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피폭의 중심지)’임을 말해준다.남쪽의 도이체방크 건물은 붕괴 위험이 있어 아직도 문을 닫고 있다. 방문객들은 남쪽 철조망 너머의 폐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가족 단위로 온 경우가 많다.시카고에서 온 제임스 킹은 “아이들에게 역사적인 현장을 보여주러 왔다.”고 했다. 다른 한 켠에선 희생자 가족들이 1주년 특집을 준비하는 현지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소방대원인 20대 초반의 아들이 구조작업을 벌이던 도중 숨졌다는 남미 출신의 한 부인은 끝내 오열했다.방문객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구조작업에 나섰다 오른쪽 팔을 못쓰게 된 뉴욕소방국(FDNY) 미드맨해튼의 전 부서장 클레언시 싱글턴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잔해에 깔린 동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WTC 맞은편에 있는 트리니티 성당에 딸린 묘지는 순례의 두번째 코스다.그 울타리에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신문기사가 걸려있다. 이들을 기리는 글을 써놓은 깃발과 모자도 있다.자원봉사자들은 펜을 들고 추모의 글을 남길 사람을 기다린다.방문객들은 인근 상점에 들러 WTC가 새겨진 모자나 티셔츠를 산다.뉴욕소방국(FDNY)과 뉴욕경찰국(PDNY) 이니셜은 기념품의 로고가 됐다. WTC 터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원웨이’선물점을 운영하는 한인 교포는 “아침 일찍 피자나 꽃 등을 배달하거나 청소를 하다가 테러를 당한 불법 체류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첼시 진’이라는 옷 가게는 당시 잿더미로 덮인 옷과 WTC에서 날라온 서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테러 직후 ‘유령의 도시’같던 맨해튼은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됐다.50∼60%까지 뚝 떨어졌던 주변 사무실의 입주율은 80∼90%대로 올라섰다.건물 뒤쪽에 사무실을 임대한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지만 적어도 ‘고층빌딩 기피증’은 사라지고 있다.주변 26개 아파트 7000가구에도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키로 하자 주민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관객이 급감,위기에 몰렸던 브로드웨이의 극장가 역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밤 10시40분,뮤지컬과 연극공연이 끝난 46번가 일대에는 갑자기 쏟아진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뮤지컬 ‘미녀와 야수(Beauty and Beast)’가 공연되고 있는 런트 폰테인 극장의 스태프 조제트 소토는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을 보러 온다.지난해보다 훨씬 나아져 주말 표는 거의 매진된다.”고 말했다. 영화 스파이더 맨의 무대가 된 타임스퀘어 맞은 편 음식점 ‘록시’의 점원은 “9·11을 잊을 수는 없지만 추가 테러 경고에 겁먹지 않는다.”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맨해튼 중심가 호텔에 방을 구하려면 적어도 10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70%까지 요금을 깎아준다던 얘기는 옛말이 됐다. 그러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5월 말 잔해 제거 작업이 끝났음에도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 가족들은 1주기가 되도록 영결식조차 못 치르고 있다.정부가 1인당 평균 150만달러의 보상금을책정했지만 보상을 신청한 가족은 620명,이 가운데 보상금을 받은 경우는 일부다. 유골을 찾기 전까지 보상이나 WTC 재건은 있을 수 없다는 절규의 목소리도 나온다.시 보건당국에는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가 2만점이나 있다. 비행기 여행을 꺼리거나 정신병원을 찾는 환자도 줄지 않고 있다.초등학교에서는 9·11 테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고층빌딩마다 보안요원이 배치돼 있고 공공기관과 공항 출입에는 까다로운 보안검색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뉴욕뿐 아니라 미국이 겉으로는 충격에서 벗어난 듯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충격과 잠재적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mip@ ■WTC 재건축 계획은/ 70층 이상 금융빌딩 세울듯 [뉴욕 백문일특파원] 9·11 테러 1주기가 다가오지만 붕괴된 세계무역센터(WTC)의 재건계획은 아직도 진행형이다.지난 7월 1단계로 6개안이 제시됐으나 밋밋하다는 부정적인 반응만 얻었다.그러나 공청회와 1차 설계공모 등을 거치면서 기본적인 개념은 정해졌다.무엇보다도 남부맨해튼의 포괄적인 개발과 실추된 ‘미국의 자존심’을 되살리려는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건계획을 전담하기 위해 주정부와 뉴욕시가 설립한 남부맨해튼개발공사(LMDC)는 지난달 19일 전세계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및 조경설계사 등을 대상으로 공모조건을 밝혔다.16일까지 신청을 받아 이달 말 5개팀을 선정한다.이가운데 연말까지 1팀을 정해 최종적인 마스터 플랜을 만들 예정이다. 논란을 거듭한 WTC의 재건축 여부는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 역할을 할 수 있는 오피스 빌딩을 짓는 것으로 정리됐다. 꼭 같은 층수의 쌍둥이 빌딩을 세울 필요는 없다.역사의 현장을 되새길 기념비를 세우고 쌍둥이 빌딩이 섰던 터를 하나만이라도 보존하는 것으로 대신키로 했다.다만 맨해튼의 스카이 라인을 복원시킨다는 취지 아래 적어도 70층 이상의 건물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개발공사와 WTC의 소유주인 뉴욕 및 뉴저지 항만청은 민간투자 촉진의 일환으로 통근자와 관광객들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도로,지하철,항만시설,도보 등과 종합 연계된 교통센터의 건립을 필수요건으로 꼽았다. 지금까지 5000건에 이르는 재건 계획안이 접수됐으며 개발공사 웹 사이트에는 각종 단체와 시민 등으로부터 하루에도 수백건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9·11테러 이후 주요일지 2001년 ◆9월12일 부시 미 대통령,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유엔 안전보장이사회,테러 비난 결의문 만장일치로 채택 ◆9월13일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 배후로 지목 ◆9월21일 탈레반,미의 빈 라덴 인도 요구 거부 ◆10월2일 나토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방위권(제5조) 발동 ◆10월7일 미·영 연합군 아프간 공습 개시 ◆11월3일 북부동맹,카불 입성 ◆12월11일 알 카에다 항복 선언 ◆12월22일 카르자이 아프간 과도정부 수반 취임 2002년 ◆1월30일 부시 대통령 이란·이라크·북한 ‘악의 축’으로 규정 ◆1월31일 미군,필리핀서 아부 사야프 공격작전 개시 ◆5월23일 부시 대통령,사담 후세인 축출 천명 ◆5월24일 부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대테러 협력’조약 체결 ◆8월1일 미국,아세안과 대테러 협약 체결
  • 영화시장 할리우드 독식, 비주류 홀대

    최근 극장가에는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굳이 예술영화가 아니더라도 유럽·일본영화는 상영관을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할리우드의 독점을 막기 위해 도입된 스크린쿼터제의 성과로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현상.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그 토양을 딛고 진정한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 한국·미국영화 독식=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2상반기 국적별 관객수 및 점유율’에 따르면 한국 47%,미국 50%로 두 국가 영화의 관객점유율이 97%를 차지했다.지난해 90%보다 훨씬 높은 수치.기타 국가 영화 31편 가운데 12편은 그나마도 프랑스영화제 때 상영된 영화들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바람이 거센 7·8월은 편식이 더 심하다.현재 상영중인 비(非)한국·할리우드 영화는 전체 20여편 가운데 3편.미국 독립영화 ‘헤드윅’은 서울 3개관,일본영화‘워터 보이즈’는 서울 4개관에서 상영중이다.21개관에 걸린 홍콩 공포물 ‘디 아이’는 여름 특수를 누린 이례적인경우. 개봉을 앞둔 영화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멕시코 영화 ‘이투마마’는 ‘위대한 유산’을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지명도에도 불구하고,개봉이 세차례나 늦춰졌다.원래 7월초 개봉이 예정됐던 이 영화는 이달 28일에서 다시 9월6일로 미뤘다.수입사 무비랩 관계자는 “극장주들이 7·8월에는 할리우드 영화 때문에 스크린을 내주기 힘들다고 해 비수기를 택했다.”고 말했다. ◆ 볼 권리 외면=문제는 이 영화들이 상업·작품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극장에서 외면받는 ‘헤드윅’과 ‘워터 보이즈’는 시사회 후평단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고,“재미있다.”는 반응도 많았다.‘헤드윅’의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연일 개봉관을 묻는 질문이 올라온다.영화를 수입한 ㈜씨네월드 관계자는 “평일에도 점유율이 70%가 넘지만 극장 수가 적어 입소문만으로 개봉관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워터 보이즈’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불만이 쏟아진다.한 네티즌은 “주위에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개봉관을 찾기가 힘들다.”면서 “차라리 영화를 들여오지 말지 이렇게 무성의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 대안은 없나=비주류 영화에 대한 극장의 홀대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하지만 기업형 극장의 등장과 광역 개봉에 따른 극장 간 경쟁으로 최근 그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워터 보이즈’의 홍보 관계자는 “직배영화들은 자사 라인업만으로 극장을 많이 확보한다.”면서 “영화가 쏟아지는 시기에 작은 영화들은 재미와 상관없이 개봉관을 잡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원칙에 맞긴다면 해결책은 없다고 말한다.일반 극장뿐만 아니라 방송,예술영화전용관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영진위 김혜준 정책실장은 “비주류 영화는 상업영화에 새 피를 수혈하는 문화적 가치를 지녔다.”면서 “이에 공감하는 영화인들이 연대해 목소리를 내고,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연기자 purple@
  • [충무로 산책] ‘박스오피스 1위’ 虛와 實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처럼 재미있는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박스오피스 1위’에 속아서는 안된다.재미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 때문.특히 최근 한달 반동안 1위를 차지한 영화는 대부분 결국 큰 재미를 못본 채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4월은 ‘집으로’,5월은 ‘스파이더맨’이 극장가를 평정한 뒤 6월부터 박스오피스 1위는 ‘1주 천하’였다.‘묻지마 패밀리’‘해적 디스코왕 되다’‘레지던트 이블’‘패닉룸’‘챔피언’‘스타워즈2’까지 모두 개봉 첫주 1 위를 차지했지만 다음주 바로 자리를 내줬다. ‘챔피언’이 1위에 오르자 일부 성급한 언론에서는 ‘친구’에 이은 ‘대박’이라고 보도했지만 그로부터 2주 뒤 흥행 참패가 기정사실화됐다.역시 ‘스타워즈 이번엔 떴다’라는 보도도 1주만에 오보가 됐다. 그렇다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도록 한 결정적인 요인은 뭘까.단연 스크린 수다.그리고 이를 좌우하는 것은 자본이다.물론 극장주와 배급사는 ‘뜰 것 같은’영화를 많이 걸겠지만,그보다는 규모와 출연진이 가장 중요한판단기준이다.게다가 재미가 없어도 자본력만으로 스크린을 확보하는 일도 많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영화가 별로 좋지 않아도 관계 유지를 위해서 극장측에서 스크린을 내준다.”고 말했다. 예외도 있다.한번도 1위를 못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7월 둘째주 ‘챔피언’보다 스크린이 3개가 적었지만 서울관객 수는 7만 2453명으로 3만여명을 앞질렀다.지난 주말에는 30개 스크린으로 40곳의 ‘스타워즈2’를 누르고 3위를 고수했다.이런 영화가 진짜 재미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런 예외도 극장 수가 웬만큼 확보됐을 때 가능하다.대부분 제작·배급·수입에 소자본이 들어간 유럽영화·독립영화 등은 재미가 있어도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해 조용히 걸렸다가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지난 주말에는 ‘맨 인 블랙2’가 모처럼 2주 연속 1위를 기록,‘재미’를 어느정도 입증했다.하지만 스크린 수는 58개로 2위 ‘라이터를 켜라’보다 15개가 많았다.박스오피스 순위만으로 어느 영화가 더 재미있는지 알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 재미있는영화를 찾고 싶다면 스크린 수도 함께 비교해 보자.아니 그보다는 흥행 숫자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만의 감식안을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김소연기자
  • [월드컵 다시보기] (5)기자 방담

    2002한·일월드컵은 브라질이 우승의 감격을 누린 가운데 막을 내렸다.당초첫 승과 16강 진출을 목표로 삼은 한국은 연일 파란과 돌풍을 일으키며 아시아 첫 4강 신화를 이루었다.31일 동안에 걸친 월드컵을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눈 월드컵 뒷얘기를 들어본다. ■안하무인 伊 ‘매너 후진국' 눈총 그야말로 ‘월드컵 외교’란 말이 실감나는 한달이었습니다.10여명의 전·현직 각국 정상들과 200여명의 VIP가 한국을 찾았습니다.외교통상부 직원들은 자녀들까지 동원,의전에 신경쓰느라 진땀을 흘렸다는군요.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네덜란드와는 마치 형제국처럼 돈독한 관계가 됐습니다.반면 오판시비와 음모설을 주장한 이탈리아와 스페인·포르투갈 등지에서는 한때 반한 감정이 증폭되어 교민 보호 주의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지요. ◆공연·전시·영화계는 월드컵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어요.미술·음악·연극·퍼포먼스·무용 등 많은 문화행사가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며 열렸으나 성공한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2002 서울공연예술제’는 일부러 행사기간을 월드컵에 맞추어 6월초로 앞당겼지만,한국팀이 경기를 하는 날은 대학로가 인파로 가득차는 바람에 아예 공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입장권을 반값에 팔아도 객석은 10%도 차지 않았답니다.이런 현상은 극장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TV화면에 이희호 여사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잡힌 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대통령 부인이 ‘경기 관람 도중 깜빡 졸았다.’는 얘기가 퍼졌다면서요. ‘기도하는 모습’이 와전된 것이었다고 합니다.오히려 함께 경기를 본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이 여사가 경기 도중 간절히 기도를 올려 주위가 숙연해졌다.”며 어이없어 했습니다. ◆개막식에 초대된 한 부처 차관은 장관과 함께 줄을 서 들어가려다 “초대인 명부에 없다.”는 진행요원의 저지에 얼굴이 홍당무가 됐습니다.장관 전용 출입문이었다는 것이었지요.“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본지가 월드컵의 열기를 살리기 위하여 사용한 ‘대∼한매일’제호는 단연 압권이었습니다.금융감독원 로비에 근무하는수위는 출근하는 본지 기자를 보고는 갑자기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대∼한매일”을 외쳤습니다.출근하던 금감원 직원들이 모두 웃어댔죠.‘대∼한매일’의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월드컵 4강 진출을 예언한 ‘족집게’점쟁이들이 뜬 반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울상을 지었습니다.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월드컵 기간 주가 상승을 예언했는데 상승은커녕 대폭락해 증시는 만신창이가 됐지요. ◆한 이동통신회사는 ‘응원 따라하기’CF로 전국민을 ‘붉은악마’로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자연스럽게 수천억원대의 광고효과도 얻었답니다.이 회사는 내심 놀라면서도 상업성 배제를 대박의 원인으로 분석하더군요.만약 ‘붉은악마’를 이용,노골적으로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 했다면 국민들의 호응은 없었을 것입니다. ◆홈쇼핑과 편의점 등은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린 반면 할인점과 호텔업계,인터넷 쇼핑몰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다만 월드컵 응원도구인 태극문양 상품과 ‘비더 레즈’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그나마 매출이 소폭 하락에 그쳐 위안이 됐답니다. ◆제4회 광주비엔날레는 월드컵 탓에 뒷전으로 밀려 ‘개점 휴업’이 됐습니다.기대했던 외국인 관람객도 거의 없어 울상을 지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이색적인 ‘선물’도 많이 받았습니다.제주도는 서귀포시 예래동 휴양형 주거단지에 전원주택을 히딩크 감독에게 무상으로 주어 ‘히딩크 하우스’나 ‘히딩크 타운’으로 명명키로 했습니다.남제주군도 350년전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한 안덕면 용머리 하멜기념비 주변에 히딩크 감독의 골 세리머니 동작을 형상화한 동상이나 선수들과 함께 있는 히딩크 동판을 제작,고마움을 표할 예정입니다. 네덜란드인 하멜이 지은 ‘표류기’의 무대가 된 전남 강진군은 명예국민증에 히딩크의 본적지를 ‘강진’으로 해줄 것을 법무부에 건의했습니다. ■한국팀 투지·열정 외신 찬사 월드컵 기간 동안 세계적인 스타들이 보여준 행동은 가지각색이었지요. 한국과의 첫 경기를 앞두고 폴란드의 선수들과 기자들이 대판 싸움을 벌였습니다.평소에도 다혈질로 알려진 토마시하이토는 기자회견장에서 대표팀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는 폴란드 기자와 20분이 넘게 설전을 벌였습니다. 보니에크 축구협회 부회장이 겨우 뜯어 말리긴 했지만 남의 나라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거죠.꼭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폴란드는 결국 한국과 첫 경기에서 0대2로 완패를 했지요. ◆스페인은 월드컵 8강에 진출하자 체육부 차관을 한국에 급파하는 등 정부차원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총파업이 한창 진행되는 상황에서 파업의 기세를 꺾고자한 ‘정국타개용’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팀이 이탈리아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심판 매수설’과 페루자구단의 안정환 파문 등이 일자 두 나라 국민사이에 감정적 대립까지 치달았습니다. 이탈리아팀의 오만함은 지나쳤지요.이탈리아는 한국과 16강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장 출입이 가능한 믹스트존 카드 40장과 경기장 입장이 가능한 별도의 특별카드를 요구하는 등 규정에도 없는 요구로 한국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조직위에서 거절하자 “일본은 요구를 들어줬다.일본을 배우라.”는 등 무례한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꾸 이탈리아만 거론하는 것 같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다혈질인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이탈리아 선수들은 지난달 18일 16강전에서 한국팀에 패하자 다음날 새벽 숙소인 국민은행 천안연수원으로 돌아가 문짝을 부수었어요. 패배의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디리비오 선수의 방문이 파손된 것이지요.이탈리아 선수단은 연수원측에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답니다. ◆한국팀은 외신기자들에게도 인기 절정이었습니다.한국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데다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기술이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한 목소리로 칭찬하며 한국팀이 움직일 때마다 구름처럼 몰려 다녔어요. 처음 경주에 훈련 캠프를 차렸을 때만해도 국내 기자 20여명에 불과하던 취재진 규모가 스페인전이 끝난 다음날 미사리연습장에서 가진 회복훈련때는 100명을 훌쩍 넘겼지요.CNN,BBC,TF1 등 미국과 유럽의 주요 방송사가 총출동했습니다.한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브라질 방송사까지 결승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듯 기웃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외신 기자들은 한국기자들에게 따뜻한 지지와 연대를 표시해 주더군요.한국과의 4강전을 앞두고 독일 새시쇄(Saeshishae)신문의 스벤 가이슬러 기자는 이탈리아가 8강전에서 탈락한 뒤 연신 심판 판정을 문제삼자 “이탈리아는 경기에 지면 항상 그런다.”면서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해줬습니다. ◆한국민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벌인 응원 열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반응이 많았지요.특히 젊은층들은 삼삼오오 모인 자리마다 ‘다음 경기 카드섹션 문구는 무엇인지’를 놓고 내기를 벌이는 경우까지 많았다고 하더군요. ◆붉은악마는 여름철 패션 유행을 아예 ‘레드’로 바꿔버리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습니다.패션업계는 앞다투어 레드를 이용한 상품을 쏟아내고 있지요. ◆상암동 ‘평화의 공원’에서 펼쳐진 응원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특징이었습니다.돗자리와 간식을 준비하는 등 가족 또는 친구,연인끼리 오붓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시청처럼 전광판에 한발짝이라도 가까이 가려는 집착을 상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국경기때마다 붉은악마들이 내건 대형 카드 섹션은 경기직전까지 베일에 싸였다가 ‘깜짝 공개’하는 방식을 택해 궁금증을 극대화했습니다.외신 기자들도 찬사를 많이 보냈지요. 한 중국 여기자는 ‘AGAIN 1966’,‘Pride of Asia’등은 쉽게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독일과의 4강전때 한글로 쓰여진 ‘꿈★은 이루어진다’가 등장하자 “무슨 뜻이냐.”고 묻더군요.‘Dreams come true.’라고 말했더니 알듯말듯 묘한 표정을 짓던 게 기억나네요. ■일부 미디어 담당관 추태 눈살 경기장 기자석은 본부석 좌우에 마련됐는데 객관적인 자세를 지켜야하는 만큼 아무리 뜨거운 승부도 ‘냉정히’지켜보는 것이 보통입니다.하지만 14일 포르투갈전에서만은 기자들도 ‘한국민의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지성이 결승골을 넣은 뒤 ‘붉은 파도’가 경기장을 휘감자 기자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동참해 경기장을 온통 ‘파도의 물결’에 휩싸이게만들었습니다.그동안에는 몰려왔던 파도가 기자석에 이르면 잠잠해지다가 다시 일반관람석으로 이어지면 출렁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거든요. ◆각 팀의 미디어연락관 등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옥에 티’였습니다. 물론 대다수 자원봉사자들은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하지만 일부는 엉뚱한데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 민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한국조직위원회가 각국에 파견한 미디어담당관의 일부가 보여준 안하무인격인 행동도 지적됐어요.이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인포뉴스에 각국 팀의 훈련 일정 및 기자회견 일자와 시간을 조정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팀의 미디어담당관은 선수들이 묵고 있는 호텔의 바에서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거나 애인을 호텔 숙소로 불러들이는 것이 기자들에게 목격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어요.또다른 미디어담당관은 일정을 문의하기 위해 전화한 기자에게 욕설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지구촌을 한 달 동안 뜨겁게 달군 월드컵이 큰 탈없이 성공적으로 치러졌습니다.하지만 문제점 또는 보완,반성해야 할 대목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9월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등 굵직한 대규모 국제행사를 잇따라 개최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더욱 더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우선 교통 숙박 등 관람객들을 위한 기반시설에 문제가 많았다고 봅니다. 특히 각 지자체가 지정한 ‘월드인’은 가격은 턱없이 높은 반면 시설은 대부분 형편없이 뒤떨어져 국내외 이용객으로부터 큰 불만을 샀습니다. ◆한·일 조직위원회를 가장 속앓이시켰던 곳이 FIFA와 숙박 및 입장권 판매대행 계약을 맺은 바이롬(Byrome)사였습니다. 바이롬은 개막식을 4∼5일 앞두고도 입장권 10여만장을 조직위로 보내지 않아 관계자들을 애태웠음은 물론이고 입장권을 구입한 축구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덕분에 조직위와 축구협회 게시판은 입장권 구입과 관련된 불만이 폭주했습니다.FIFA의 입장 무표명에 따라 정확한 원인과 배경이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기술적 역량도 없고 회사규모도 적은 바이롬의 경험 부족에 따른 업무혼선으로 정리됐습니다.조직위가 나중에는 입장권 파문과 관련된 정확한 원인과 배경 등을 조사해 FIFA 및 바이롬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입니다.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조직위가 보인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요.쏟아지는 축구팬들의 불만과 비판을 모두 바이롬사에만 전가한 것도 좋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정리 박홍기 박록삼기자 hkpark@ ▲월드컵 취재팀 박해옥 곽영완 서동철 임창용 임병선 최병규 이기철 이동구 이종락 송한수 김성수 박준석 조현석 김재천 류길상 박록삼 안동환 ▲국제팀 황성기 도쿄특파원 김규환북경특파원 백문일 워싱턴특파원 유세진 김균미 박상숙 ▲사회교육팀 이창구 구혜영 이영표 윤창수 ▲전국팀 김영주(제주)최치봉(광주) 이천열(충남) 강원식(울산) ▲정치팀 김수정 ▲경제팀 주병철박정현 ▲산업팀 류찬희 강충식 김경두 ▲문화팀 김소연 이송하 ▲사진팀 이종원 김명국 손원천 이언탁 안주영 도준석
  • 월드컵/ 방송 ‘웃고’ 극장·전시장 ‘울고’

    한국 축구대표팀의 선전과 이를 응원하는 온 국민의 열기가 합쳐져 월드컵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그러나 빛이 찬란하면 그늘도 그만큼 짙기 마련.각 공연·전시장은 관객이 거의 없다시피해 관계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고 극장가는 월드컵 열기를 영화관람과 연결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반면 방송계는 높은 시청률과 이에 따른 광고 수입 증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공연·전시장= 세종문화회관,예술의 전당,한전아츠풀센터,국립국악원 등 공연장의 예약률은 20%대까지 떨어졌다.국립현대미술관 등 미술관과 전시장도 마찬가지.특히 월드컵에 맞춰 기획한 이벤트성 공연,전통 공연이 더욱 심각한 상태다. ‘김덕수 다이나믹 코리아 2002’공연이 열리는 한전아츠풀센터는 1000석 중 100∼200석을 간신히 채우는 정도고 그 중에서도 외국인은 30∼60명 정도에 그친다.월드컵 기념 기획공연으로 지난 7∼11일 ‘왕조의 꿈,태평성대’전을 연 국립국악원은 더욱 심각한 상태로 기간 내내 공연장이 텅텅 비다시피 했다.지난해 이 공연에서는 800석이모두 매진된 바 있다.국립국악원 직원들이 국립민속박물관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서 전단을 뿌리는 ‘관객 찾기’에 나섰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월드컵을 기념해 ‘바벨2002’등 야심찬 전시회를 열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서울 사간동 등지의 개별 미술관도 썰렁하다.외국인 관객이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 관람객도 눈에 띄지 않는다.학생 단체관람만 간혹 있을 뿐이다. ●서점가= 8∼12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인원은 예년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한·미전이 있은 지난 10일에는 관객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은 월드컵 기간에도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교보문고 홍보실 홍석용씨는 “한국전이 열린 날은 판매량이 50% 줄었지만,전체적으로 보면 지난해보다 5% 정도 판매량이 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네 주민을 상대로 하는 작은 책방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고, 출판사들도 “올들어 책을 보는 분위기가 다소 살아나는 듯하다가 월드컵 기간에 다시 출고량이 크게 떨어졌다.”면서 월드컵 이후 독서 분위기가 되살아날지를 걱정했다. ●극장가= 극장가에도 발길이 많이 줄었다.개막에 앞서 평가전이 이어진 지난달 말부터 월드컵 태풍이 몰아쳤다.서울에서 주말 관객이 20만명을 겨우 넘기는 형편인데, 이는 영화계가 비수기로 꼽는 3∼4월의 평균 관객 25만명 수준보다도 많이 떨어지는 것.특히 한국영화건,할리우드영화건 블록버스터가 잇따라 개봉된 점을 감안하면 정도가 심각하다.한국전이 열리는 날에는 관객 수가 50∼70% 줄어 지방에서는 아예 문을 닫은 영화관도 있었다. 이에 따라 월드컵 열기를 영화관으로 끌어오려는 아이디어가 속출했는데, ‘묻지마 패밀리’개봉관은 한국전이 있을 때마다 영화도 보고 축구경기도 관람하는 이벤트를 열어 계속 매진을 기록했다.제작사는 이를 위해 축구중계료로 회당 5000만원을 FIFA에 주었다. ●방송계=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는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3사는 월드컵 광고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방송 3사는 한 경기에 15분 정도의 광고를 할 수 있는데,광고 단가가 가장 높은한국전의 경우 KBS와 MBC는 15초짜리 광고당 3000만원정도를 받는다.SBS가 받는 금액은 2900만원 정도. 이에 따라 한국의 폴란드전과 미국전 경기에서 KBS와 MBC는 18억원,SBS는 17억 2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평소 프라임타임의 광고수익이 6억원 가량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호황이다. 그러나 중계를 따내느라 경쟁하면서 비용이 많이 든데다 그래픽 기술 등을 개발하느라 들인 투자금,유명인을 해설자로 기용한 비용 등 지출이 많아 실제로 방송 3사가 큰 수익을 남기지 못했으리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문소영 김소연 이송하기자 symun@
  • 월드컵 극장가 SF 블록버스터 韓·할리우드 ‘충돌’

    월드컵과 함께 올 여름을 달굴 SF 두 편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한국 영화 최초로 본격 SF 블록버스터에 도전장을 내민 ‘예스터데이’.폐쇄된 지하 비밀 실험실의 탈출기를 그린 할리우드 영화 ‘레지던트 이블’.두 영화 모두 무모한 유전자 실험이 낳은 미래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그렸다.하지만 영화의 질감은 사뭇 다르다. ■13일 개봉 ‘예스터데이' 미래도시를 그린 영화의 제목이 ‘예스터데이’(13일 개봉)라는 것부터 의미심장하다.어제 잘못 뿌린 씨앗으로 얽혀버린 미래를 풀 수 있는 열쇠는 과거뿐.‘예스터데이’의 진정한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시간’이다. 2020년 통일 한반도.은퇴 과학자들만 노린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특수수사대(SI)가 파견되지만 범인 골리앗(최민수)은 이를 조롱하듯 현장에 자신의 펜던트를 남기고 사라진다.한편 인터시티 한복판에서 경찰청장이 납치되고 청장의 딸인 범죄심리분석관 희수(김윤진)가 수사팀에 합류한다.비밀 파일을 열던 중 30년전 아이 몇명이 실종됐고 희생된 과학자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비밀 실험에 연루된 사실을 알아내는데… 영화는 시종일관 청색 톤의 배경에 다양한 국적의 문화를 혼합시킨 소품들을 활용해 독특한 색감으로 미래도시를 창조해 낸다.특히 인터시티 외곽지역 게토에 자리잡은 클럽 말라카베이는 비닐옷,가죽옷,기모노,힙합패션이 한데 섞인 ‘퓨전’의총체.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낯익다. 리들리 스콧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역시 공간의 혼성모방으로 정체성의 혼돈을 겪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징후를 보여준 작품.수사관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는 설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의 계보를 잇는 SF의 걸작에 이름을 올리지못하는 것은 순전히 제작진의 욕심 때문이다.우선 과도한 액션장면이 주제의 심오함이나 차가운 배경과 겉돈다.귀를 찢는 총성과 쫓고 쫓는 추격전이 나와도 동기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면 하품이 나오는 법. 배우들의 연기도 인간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의도에 멀찍이 떨어져 있다.SI 수석팀장 석(김승우)과 희수 모두 유전자 조작에 의해 자기도모르는 사이에 현재의 위치에 선 인물.잃어버린 기억의 통로로 들어서면서 느낄 상실감과 충격을 관객이 함께 느끼기에는 연기나 반응이 평면적이다.액션 위주의 볼거리와 인간·시간의 심오한 문제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지만,단순한 소재로서의 SF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값지다.총 제작비만 80억원이 들었다니 화려한 액션 신으로 주제의 모험을 만회하려는 제작진만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정윤수 감독의 데뷔작. ■내일 개봉 ‘레지던트 이블' 영화 ‘예스터데이’가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에 머물러 있을 때,‘블레이드러너’의 시각효과팀은 서늘하면서도 음산한 금속성의 폐쇄공간을 창조했다.인기게임을 영화로 만든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6일 개봉)은 이 공간을 치밀하게 이용하면서 공포영화의 문법을 따른다. 지하의 거대한 비밀 유전자연구소 ‘하이브’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출된다.슈퍼 컴퓨터 레드퀸은 연구소를 봉쇄하고 모든 직원을 죽인다.레드퀸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파견된 특공대에 주어진 시간은 3시간.특공대는 임무를 수행하기는 커녕 빠져나오기도 힘든 상황에 처하는데…. 밀라 요보비치를 정면에 내세운 이 영화를 미모의 여전사가 활약하는 영웅적 탈출기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영화 초반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현란한 액션연기가 아니라,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립된 느낌의 ‘공간’이다.어디서 어떻게 공격할지 모르는 슈퍼컴퓨터에 맞서 총을 들고 미로를 통과하는 특공대의 모습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파란 레이저광선에 몸이 산산조각나기 직전 한 특공대원의 표정은 공포와 무력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중반부터 등장하는 좀비들은 좀 엉뚱하다.공간으로만 승부하기에는 영화의 스케일이 너무 큰 탓일까.유전자 실험에 의해 잘못된 바이러스가 영혼 없는 시체들을 활보하게 하고,갑자기 잠재능력을 알게 된 특수요원 앨리스가 벽을 타며 이들을 무찌르는 설정도 이음새가 엉성하다. 하지만 매무새를 가다듬고 영화는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특히 동지였던 요원이 기억을 되찾으며 적으로 돌변하는 모습은 인간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게한다.또 암울한 미래를 그대로 남겨두는 결말도 신선하다.기억을 복원하면서 폐허가 된 공간에서 과거를 보는 것은 ‘예스터데이’와 흡사해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정육면체 공간에 갇혀 하나하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두뇌게임 ‘큐브’,폐쇄된 실험실에서 투명인간의 공격으로 공포에 몸을 떠는 ‘할로우 맨’,탈출에 성공한 줄 알았는데 적들의 소굴 한복판에 서게 된 황당한 반전이 뒤통수를 치는 ‘혹성탈출’.이 세가지 영화의 맛을 버무린 ‘레지던트 이블’은 올 여름 최고의 화제작이 될 만하다.폴 앤더슨 감독. 김소연기자 purple@
  • 새 비디오/ 피도 눈물도 없이 등

    ◆피도 눈물도 없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일약 영화계의 기린아가 된 류승범 감독의 신작.돈가방을 둘러싼뒷골목 인생들의 아귀다툼을 그렸다.눈밑 상처를 가리려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수진(전도연)과 왕년에 뒷골목을주름잡던 택시운전사 경선(이혜영).차사고를 계기로 만난두 여자는 투견장의 판돈을 훔쳐내려 모의하지만 제2,제3의 계략이 얽히면서 돈가방 쟁탈전이 펼쳐진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특급 베스트셀러인 원작을 가져다 스크린에 녹여내,지난 겨울방학기간 국내 극장가를휩쓴 작품.고아 소년 해리 포터가 마법학교에 들어가 마법세계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모험과 환상이 기둥 줄거리다.‘나홀로 집에’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감독 작품. ◆오!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할리우드의 아웃사이더,재기발랄한 코언형제가 뮤지컬에 도전했다.호머의 ‘오디세이’를 가져다 ‘현대적’으로 주물러낸 영화.특유의 튀는개성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코언감독 필모그라피에서 윗자리를 차지하진 못하지만 조지 클루니와 존 터투로 콤비의 코믹 연기변신을 이끌어냈다.아내의 재혼소식에 기겁한 죄수 율리시스(조지 클루니)는 감방동료 피트(존 터투로) 등을 꾀어내 탈옥을 감행하는데….
  • 새영화/ ‘소림축구’ & ‘그들만의 월드컵’

    무릇 진짜배기 휴먼스토리는 찬바람 도는 마이너리그 쪽에서 피어오르기 마련. 월드컵 특수를 그냥 보내기 서운할세라 극장가에도 축구영화 두 편이 일주일 간격으로 간판을 건다.‘그들만의 월드컵’(Mean machine·10일 개봉)은 유럽축구의 본산 영국에서물건너왔고,‘소림축구’(17일 개봉)는 쿵후에 줄댄 홍콩 액션물.공통분모는 축구 말고 또 있다.이름없는 마이너리거들의 와신상담 성공스토리란 점. ‘소림축구’는 홍콩 코믹액션물의 대부 주성치의 2001년작.쏟아내는 작품마다 감독,각본,주연까지 도맡아온 영화 욕심은 이번에 잔디 그라운드에서 제대로 물을 만났다.그가 맡은 씽씽은 괴력을 뿜어내는 ‘황금다리’의 소유자.어릴 때부터 연마한 쿵후 내공을 하릴없이 넝마주이 하는 데나 흘려쓰던 차에,왕년의 축구스타 명봉과의 만남을 계기로 무공의 불꽃을 점화한다.감상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축구를 ‘빙자’한 화려무쌍한 액션 신.전국대회에 나선 씽씽의 팀이 가위돌려차기,육탄배밀이 등 기발한 테크닉들로 녹색 스크린을 누빌 때 관객허리는 일분 간격으로 분질러진다.기름기 쪽 뺀,부담없이 웃어제끼기에 그만인 코미디. ‘그들만의 월드컵’은 보다 컬러가 ‘진지’하다.후반부엔 박진감 넘치는 축구시합 장면이 한참이나 화면을 적신다.잘 나가던 영국대표팀 주장 대니 미헌은 승부조작으로 쫓겨난뒤,음주폭행범으로 교도소에까지 얽혀들어온 신세.그의 ‘영입’을 계기로 재소자팀 대 교도관팀의 한판 대결이 꾸려지고,미헌은 이번엔 교도소장의 유혹에 맞닥뜨리는데….축구팬이라면 시종 눈이 즐거울 터.하지만 10분앞이 빤히 보이는스토리 전개가 수시로 긴장감을 무장해제한다.미헌 역의 비니 존스는 실제 축구선수 출신.베리 스콜닉 감독.
  • 5월 한국영화 각양각색 ‘만물상’

    66세 vs 26세. 어느 기획사의 ‘섹시한’ 홍보문구가 아니더라도 5월 극장가는 비수기라는 속설을 깨고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한국영화들로 붐빈다.감독의 연령 스펙트럼만 한 세대를 넘어서는게 아니다.정통 예술화에서 코믹액션물,찐득찐득한 멜로부터 ‘양아치’영화까지 식성대로 골라보기 부족함 없는 식단이 펼쳐진다. ‘5월 붐’은 가깝게는 월드컵이란 외생변수 때문.세계적 축제와 ‘맞장뜨지’ 않으려 너도나도 개봉을 서두르다보니 온갖 외화 블록버스터까지 가세,일단 물량면에서 홍수다.조리개를 좀더 조이고 보면 어느새 훌쩍 웃자란 한국영화 자체가 이런 다양성의 젖줄임을 읽어내기 어렵잖다. 먼저 10일 막올리는 ‘취화선’과 ‘일단뛰어’.66세 거장임권택 감독과 26세 생짜 신인 조의석 감독의 한판 격돌인셈이다. 이 1라운드가 지나고 나면 영어 제목의 ‘오버 더 레인보우’(17일)와 ‘후아유’(24일)가 로맨스물의 왕좌를 놓고 한주차로 맞붙는다.기억을 잃어버린 한 청년의 옛사랑 찾아가기를 아련한 빗소리에 엮어 짠 ‘…레인보우’가 30대 취향이라면,현란한 온라인 화면이 오프라인과의 경계를 무시로넘나드는 ‘후아유’의 감각은 10년쯤 더 젊다.재밌는 점은둘 다 연애스토리 안에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속심으로 끼워넣는다는 점.이정재와 장진영(…레인보우),이나영과 조승우(후아유) 등 각 세대별 아이콘이 된 배우들이 관객 흡인력 지수를 한결 끌어올린다. 이 무지갯빛 연애담 사이엔 한국판 조폭영화의 적자를 자처하는 ‘4발가락’(17일)도 끼어들어 메뉴판을 키울 예정.시사회 반응을 전폭 수용,보다 스피디하게 손질하느라 예정 개봉일을 한 주 늦췄다.코믹과 액션을 적당히 버무린 부담없는 스크린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타깃이다.이미 개봉한 블루스풍 고급멜로 ‘결혼은,미친 짓이다’,온가족 감동영화 ‘집으로…’까지 가세,극장가는 가히 무한 경쟁체제다. 흥행 스타트라인에 도열한 한국영화들 표정이 유난히 상기된 데는 이처럼 조밀한 극장가 풍경도 한몫한다.닷새 전에 개봉했던 ‘스파이더맨’이 지난 주말 이틀간 전국 60만 관객을 훑어내며 내려친 흥행 거미줄을 누가 뚫느냐가 당장의 관건이다. 이후에도 ‘쇼타임’‘하트의 전쟁’(이상 17일),‘쉬핑 뉴스’(24일) 등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급들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다. 흥행이 전부는 아니다.하지만 어느 장르보다 예술과 상업의경계선에서 줄을 타는 영화가 흥행성적표를 도외시하진 못할 터.개봉관에 일단 걸리고 나면 연공서열도,거대 자본력도특권이 되지 못한다.5월 한 달은 관객 입맛이 어디로 튀고있는지 가늠해볼 바로미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성싶다. 손정숙기자 jssohn@
  • 임권택 감독 ‘취화선’ 새달 10일 개봉

    임권택 감독이 오원 장승업이란 물감을 풀어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다들 그게 인물화가 되겠거니 여겼다.그러나 최근 시사회장에서 두루마리를 푼 스크린은 차라리 풍속화,시대화에 가까웠다. 개인을 형성하는 시대의 요철을 밋밋하게 뭉개면서 한 천재화가의 개인적 드라마를 돋을새김하는 인물화하곤 거리가 있었다.오원의 예술혼은 구한말이란 베틀 속에 먹여지는 여러 실 가운데 가장 아기자기한 올이었다.예술과 시대,예술과 일상이 극도로 일기불순한 하늘처럼 간단없이 스파크를 일으키는 영화,‘취화선’이 다음 달 10일 극장가에 걸린다. 화면 가득 확 풀린 먹물이 일순 개이더니 선경인 양 돌아앉아 산을 치고 있는 사내가 오원(최민식).이윽고 카메라는 그의 어린 시절로 줄달음쳐 예술의 뿌리부터 냅다 훑어내린다. 비렁뱅이 고아 승업에겐 핏속을 철철 흐르는 환쟁이의 끼가 축복이고 또 천형이다.일찌감치 그를 알아본 개화파 선비 김병문(안성기)이 거두려하나,방랑의 역마살을 타고난천재를 사대부가 담벼락이 가둘 수는 없는 일.김병문과의인연은,승업이 삶의 매듭들을 하나씩 지을 때마다 번번이되돌아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로만 그치지 않는다.기둥 줄거리를 삼킬 듯 쏟아지는 인물들의 홍수속에서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는 둘의 조우는 카메라의 중심을 잡아주는삼발이이기도 하다. 외세가 조선을 한 뼘이라도 더 집어삼키려 으르렁대던 19세기 말.출신을 넘나드는 천재 화가라서 시대의 파란도 쉽게 넘나들까.명성을 박차고 “(세인의 평에) 발목 잡히면영원히 놀아나는 거야.”라며 괴나리 봇짐을 꾸리는 화가.허나 그를 편한 방에서 등떼미는 손길 하나가 갑신정변,동학혁명 등 불순한 날씨처럼 요동치는 시대라는 걸 감독은말하고 싶어 한다. 개인을 뛰어넘는 시대와 시대를 초월하는 개인의 예술혼이 전기의 음과 양처럼 맞부딪히는 영화는 거대한 기획을 요구한다.이 거대 스케일의 시대화,풍속화에는 우리 시대의내로라는 일가들이 힘을 보탰다. 한국화가 김선두가 오원 화폭 80여점을 재현,묵향을 피울때 정일성 촬영감독은 우리 국토 깊숙이 렌즈를 들이대 단아한 사계를 찍어올렸다.도올 김용옥의 박식이 난무하는대본은 국립국악원의 호젓한 정악연주에 버무려진다. ‘롱테이크(오래 찍기)’를 즐겨써온 감독이 이번엔 유난히 끊어찍기로 선회한 것은 관객의 스피드 식성을 의식한것만은 아니다. 개인사의 잔잔한 여울이 아닌 역사의 폭포를 파노라마로담기 위한 선택이었으리라.그런 화면에서 여러 부문의 쟁쟁한 일가들이 내공을 겨루다 보니 관객들은 숨이 가빠지기 쉽다.지긋이 걸터앉아 완상할 여백이라도 한 자리 있었으면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화선’은 신선하다.죽끓듯 변해가는 영화계 프레임 안에서 예술과 역사를 얽어짜는 굵은 목소리를 들은 게 얼마만인가.칸 영화제도 그걸 알아보고 일찌감치 본선무대로 불러올리지 않았던가.쉽사리 감정선을내비치지 않는 ‘취화선’을 온전히 즐기려면,값비싼 보약을 먹을 때처럼 느긋해지는 법을 알아야 하리라. 손정숙기자 jssohn@
  • 블록버스터들 잰걸음 ‘상륙’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유난히 잰걸음으로 국내 극장가를 찾아오고 있다.월드컵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전에서둘러 간판을 걸겠다는 전략에서이다.당장 오는 5월3일에만도 흥행 우열을 점치기 힘든 2편,‘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와 ‘스파이더 맨’(Spider Man)이 격돌한다. ◆ 위 워 솔저스 ‘죽은 자(者)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고 플라톤은 말했다.이야기를 만들고 기억하는 건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어서일까.할리우드의 전쟁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멜 깁슨이 주연한 ‘위 워 솔저스’는 30여년전 베트남전으로 새삼 시선을 옮겼다.1965년 베트남과의 전면전에 앞서 미국은 헬기 공습 시험전에 공수부대를 파견한다.395명의 풋내기 병사들을 이끌고 무어 중령(멜 깁슨)이 ‘죽음의 계곡’으로 알려진 아이드랑 협곡으로 뛰어든다. 영화는 생사를 넘나드는 72시간의 전투 과정을 담담히 순차적으로 그려내는 데 주력했다.‘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처럼 기록화인 듯 실감나는 전장(戰場)의 정밀묘사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이름없이 죽어간 젊은 미군들의 모습을 후일담처럼 복원한 영화는,생사게임을 벌이는 개개인 ‘전사’(戰士)들의 살떨림보다는 가족을 떠나오고 떠나보내는 ‘인간’의 밑바닥 정서에 초점을 맞췄다.본격 전쟁액션을 표방하면서도 총성을 들려주기까지 근 1시간을 군인가족들의 심리 및 상황 묘사에 머문 건 그래서인 듯하다. 멜 깁슨 말고는 이렇다하게 도드라진 등장인물은 없다.할리우드 전쟁영화들이 두고두고 받아온 비난,즉 과도한 1인 영웅주의에 대한 시비를 의식해서일까.극을 주도하는 멜깁슨은 끝까지 살아남지만 영웅으로 홀로 우뚝 서지는 않는다.그러고 보면 미국 중심 이데올로기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는 의도적 설정도 눈에 띈다. 그러나 과잉 감상주의가 전쟁액션의 기본 미덕인 박진감을 주저앉히기 일쑤다.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느린 화면의 육탄전 묘사가 너무 잦아 비장감을 오히려 반으로 꺾어놓는다.전사 통지서를 받아들고는 너나없이 하나같은 반응을 보이는 아내들의 모습을 일일이 복습시키듯 스크린에 풀어놓은 것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브레이브하트’,‘진주만’의 각본을 쓴 랜달 월레스 감독. ◆ 스파이더 맨 누가 자꾸만 까닭없이 지분거릴 때 어디서 엄청난 초능력이라도 전수받아 한방 먹여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누구나한번쯤 해봤을 거다.‘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이런 탐스러운 사냥감을 그냥 둘 리 만무할 터.미국 본토와 동시개봉하는 ‘스파이더 맨’은 할리우드가 잊을 만하면 쏟아내놓는 슈퍼맨류 블록버스터의 계보를 잇고 있다. 하늘을 가르는 거미가 ‘해결사’로 나선다.가난한 삼촌네에 얹혀사는 피터(토비 맥과이어).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보통 고교생이다.옆집 사는 메리제인(크리스턴 던스트)을 10년 넘게 흠모했지만 뿔테 안경 너머 어리버리 웃는 게장기인 그에게 로맨스는 어림도 없다. 그런 피터가 하루,실험실 거미에 꽉 물리고부터 이상하게변모해 간다.안경을 벗어던지고,자기를 밥 취급해온 친구들을 혼쭐내고….제목 그대로 인간거미가 된 피터가 영웅적 무공으로 악당과 한판 사투의 수순을 밟으리란 걸 예견하긴 어렵잖다. 뭐니뭐니해도 눈길을 뺏는 건 현란한 와이어 액션.하얀 거미줄을 내뿜으며 뉴욕 마천루들 사이를 번지점프하듯 헤집는 거미인간은 중력에 묶인 관객들의 오랜 향수를 달래주기에 손색없다. 스토리 자체는 색다를 게 없다.우연히 초능력을 하사받은한 사내가 정체를 감춘 채 여자를 헷갈리게 하고,악당과의 대격돌로 도시는 쑥대밭되고,언론은 이 초인이 흑이냐 백이냐를 놓고 옥신각신대고….슈퍼맨,배트맨 등 선배들의궤적을 스파이더맨은 복제하다시피 되밟고 있다.만화가 나온 지 40년만에 영화화는 처음인데도 자꾸만 리메이크로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얘기들은 두고두고 먹힌다.고층빌딩 숲에서더욱 창백해진 사람들에겐 여전히 대리만족이 필요한 걸까.유례없는 한국영화 강세 틈에서 스파이더맨이 또다시 흥행기류를 탈지 두고볼 일이다.샘 레이미 감독. 황수정기자 손정숙기자
  • 새영화/ ‘스콜피온 킹’

    모래 돌풍,사막의 벌레떼,고대 이집트의 화려한 의상과액션으로 해마다 여름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영화 ‘미이라’시리즈가 올해에도 예외없이 한국을 찾는다. 스콜피온 킹(The Scorpion King·19일 개봉)은 백성들의복수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어둠에 갇혔던 불운한고대 이집트 왕의 전성시대를 그린 작품.지난해 흥행작 ‘미이라2’의 외전 격이다. 사막을 떠도는 용병 마테우스는 유목민으로부터 사악한왕 멤논의 마법사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는다.뛰어난 예지력을 지닌 마법사 카산드라는 소수민족을 말살하고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멤논 왕의 오른팔이자 군대의 정신적 지주. 그러나 적진에 뛰어든 마테우스는 마법사가 아름다운 미녀라는 사실에 흔들려 임무에 실패한다.와신상담하고 다시멤논성으로 향한 마테우스는 결국 스콜피온 킹의 자리에오른다. ‘스콜피온 킹’은 전작인 ‘미이라’ 시리즈에 비해 화려한 볼거리는 다소 떨어진다.그 대신 ‘더 록’이라는 액션배우를 비장의 카드로 내놓았다.WWF(세계레슬링연맹)에서 정식프로레슬러로 활동중인 그는 난이도 높은 격투신을 대역없이 선보이며 몽환적인 고대 이집트에 생동감을불러일으켰다.또 더욱 화려해진 의상과 소품은 관객들을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감독 척 러셀. 이송하기자 songha@
  • 영화제목이 흥행성패 좌우?

    다음은 최근 개봉했거나 개봉할 외국영화의 제목들이다. 정확히 뜻을 꿰뚫을 수 있는 제목은 다음중 몇개나 되는가. ‘세션 나인’‘웨이트 오브 워터’‘라이딩 위드 보이즈’‘건블라스트 보드카’‘키스 오브 드래곤’‘세렌디피티’…. ‘키스 오브 드래곤’(Kiss of Dragon)을 ‘용의 입맞춤’쯤으로 해석했다면? 그 수준으로는 장르를 감잡는 것부터 어림없다.‘키스 오브 드래곤’은 ‘신체의 급소에 비수를 꽂아 절명시키는 비장의 침술’을 뜻하는 숙어다. 주말마다 대여섯편씩 새로 극장가에 간판을 거는 외화의제목들이 갈수록 어려워진다.어디선가 한번은 들어봄직한영어 단어들이지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고,그렇다고 마냥 생경한 것도 아닌 어중간함.제목의 의미를 음미하고 싶은 꼼꼼한 관객들에게는 사전이 필수다. 외화 제목이 난해해지는 배경은 간단하다.대부분이 영어인 원제를 발음 그대로 옮겨쓰는 추세이기 때문이다.수입사 ‘감자’의 한 관계자는 “5∼6년 전만 해도 뜻풀이가어려운 제목은 한글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나 요즘 관객들은 한글 번역 자체를 촌스러워 한다.”고 사정을 전했다.확실하나 촌스러운 한글 번역보다는 애매해도 원제 냄새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제목이 좋다는 것. 영화가 사람들에게 좋은 제목은 ‘흥행성공 복표’로 통한다.좋은 제목의 필요충분 조건은 따로 있다.너무 길지않되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쉽고 인상적이어야 한다는 것.심지어 포스터에 박힐 글자의디자인까지 미리 고려한다. 제목을 정하는 건 수입사나 홍보사의 몫이다.국내 상영을 위한 첫 관문인 수입추천심의를 넣을 때 영상물 등급위측에 확정된 제목을 제시해야 한다.이때 직배사의 제목 정하기는 좀더 까다롭다.본사의 ‘지침’을 되도록이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지난해 개봉한 멜로 ‘뉴욕의 가을’의 경우.“원제(Autumn in Newyork)를 손상하지 말라.”는 본사의 지침을 그대로 따랐다.물론 국내 상황에 맞게 손봐서성공한 사례도 있긴 하다. 지난 2월 흥행한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원제 ‘Shallow Hal’이 영화의 분위기를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폭스코리아가 고심끝에 ‘한글 작문’의 모험을 했다. 홍보사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제목이 흥행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되는 만큼 영화가에는 웃지 못할 루머가 자주 돈다.”면서 “글자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놓고 흥행 징크스를 만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도를 넘는 문법파괴다.이러저러한 요건들에 맞춘결과 영어원제의 관사나 전치사가 빠지는 건 예사.한글 발음으로 옮길 때의 표기법도 뒤죽박죽이다. 한 외화 수입사의 대표는 “영화의 주제를 전달할 최소한의 단어만 챙기다 보면 국적불명의 조어가 탄생하기 일쑤”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고작 1,2주안에 흥행을 저울질당하는 영화시장의 생리상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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