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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 “墺 극우연정땐 관계단절”

    [브뤼셀 리스본 AFP AP 연합] 유럽연합(EU)은 31일 오스트리아가 극우 정당인 자유당을 포함시켜 연립정부를 구성할 경우 회원국 모두가 오스트리아와의 정치적 관계를 단절하는 등 각종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EU 순번의장국인 포르투갈은 EU 43년 역사상 회원국에 대한 가장 강경한 조치를 담은 성명을 발표하고 회원국들을 대신해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총리,외무장관 등에게 통보했다. EU는 성명에서 외르크 하이더가 이끄는 자유당의 행태에 대해 언급한 뒤 “14개 회원국은 자유당을 연립정권에 포함시키는 오스트리아 정부와는 어떤정치적 차원의 양자간 공식 접촉도 수용하거나 권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또 각종 국제기구에 오스트리아가 진출하는 것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하이더는 오스트리아 국영 ORF TV와의 회견에서 “오스트리아 국내문제에 외국인들이 영향을 주려는 협박”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자유당은 국익을 위해 연정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EU의 성명은 토마스 클레스텔오스트리아 대통령이 4개월여의 권력공백을끝내기 위해 조만간 자유당과 인민당에 연립정권 구성을 권유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하루만에 발표된 것이다.
  • [대한광장] 기억과 망각

    21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아주 짧지만 흥미있는 기사 하나를싣고 있다. “스웨덴이 전쟁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가 전하는 바는 간단하다.스웨덴 총리인 고란 페르손이 지난 19일 스웨덴 거주 유대인연합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의 잘못을인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60여년 동안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공식입장은 2차대전 동안 스웨덴은중립적 입장을 취했을 뿐이라는 자기변호적인 것이었다.그러나 스웨덴은 전쟁기간 동안 중립을 지킴으로써 전화를 피해갔을 뿐 아니라 나치의 군수공장에 철광석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사실 일부 현대사가들은 다른 나라에는 엄청난 비극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스웨덴에게는 부국으로 발돋움하는계기였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스웨덴 정부는 비단 이뿐만 아니라나치군대가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침공하기 위해 스웨덴 영토를 가로지르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스위스의 엄정중립과는 달리,자의든 타의든나치에호의적인 중립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페르손 총리는 이번 주에 열릴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학술대회를 앞두고 고위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스웨덴의 이런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유럽의 많은 사회민주당들이 국제문제에서는 지극히 자국 중심적인 입장을취하는 데 반해,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비교적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원칙을고수했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당시의 잘못을 시인하는 데는 인색했던 모양이다.따라서 페르손 총리의 발언은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양심정치의 작은 승리라고도 하겠다.그것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승리이기도 하다. 이 작은 기사가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그 직전의 일본 방문에서 받은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일본의 진보적 잡지 편집자들과 역사가들을 몇만났는데,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에서 낸 ‘국민의 역사’라는 책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지하철 전동차에 붙은 광고는 발매 한달 만에 벌써 62만부를 돌파했다고 자랑이다.일본 친구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아사히신문조차 호의적인 서평을 실었고 우익단체의 집회에 가면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가 쓰라린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 미래를 지향하는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국민의 역사’는 일본의 전쟁책임과 침략사실을 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지난 23일 오사카에서는 극우단체의 지지자들과 역사가들이 ‘남경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부정하는집회를 열어 중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부활시킨 지난해의 조치와 호흡을 같이 하는 움직임이다.아시아 민중들에게 그것이 주는 끔찍한 의미를 일본은 이미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사회의 역사의식이 이렇게 기억보다는 망각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억보다는 망각이 편할 때가 많다.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그러나 쓰라린 기억보다는 편한 망각을 택함으로써,일본사회는 스스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있는 셈이다.용서는 망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스웨덴과 일본의 이 차이는 유럽연합과 동아시아 민중연대 사이의 메울 수없는 간격을 드러내준다.지성사적 관점에서 볼 때 유럽연합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민주독일이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의 끈을놓지 않고 집요하게 과거와 미래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데 있다.동방정책 당시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 당시 총리가 바르샤바의 게토 봉기 기념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했을 때 독일과 폴란드 양국 간의 아픈 과거는 미래의연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끈이 된 것이다. 한·중·일 3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주창하는 동아시아 민중연대 역시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딛고 설 때,어렵게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실천적연대에 앞서 공동의 역사적 기억을 드잡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도여기에 있다. 임지현 한양대교수·사학
  • [대한광장] ‘反日’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무성했던 ‘러브레터’는 깔끔한 영화인 모양이다.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뭔가 남보다 특이한 안목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그래서 좋은 얘기 끝에 뭔가 찜찜한 시비 달기를 즐겨하는 영화평론가들의 비평을 훑어봐도 흰소리가 없는 걸 보면 말이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읽은 나를 상념에 잠기게 한 짤막한 에세이도 ‘러브레터’ 이야기다.요약하자면 어느 대학의 교수라는 그 에세이의 필자는 부인의 채근으로 신정연휴에 ‘러브레터’를 본다.영화는 인상적이었지만 그는영화에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 영화가 일본영화이고 바로 그일본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필자는 일본말 대사,일제시대에 우리가 입었던 그대로의 고등학생 교복…등에 대해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낀다.필자는 끝내 “여주인공같이깨끗하고 예쁜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인의 말에 “영화에서 봤으면 됐지 왜 그런 욕심까지 내느냐”고 면박을 줌으로써 모처럼의 외출을 망치고 만다.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과 두려움’은일반적인 것이다.물론 한국인들의 그런 반일감정은 36년간의 식민지 체험을 근거로 한다.그 체험은 그 체험을 전해 듣기만 한 나 같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가슴아픈 것이었으며 그 상처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아물지 않았다.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여전히 일제의 식민통치가 조선인에게 이로운 것이었다고 주장하곤 한다.힘이 주어진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대동아공영권의 기치를 들고 일어 설 그들은 여전히 우리의 분노와 반감의 대상이다. 문제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그런 정당한 반감이 일본 민족 전체 혹은 일본인들 전체에 대한 반감과 혼동되는 일이다.우리의 가슴아픈 식민지 체험은 일본 극우주의자들과 한국 민중간의 문제이지 일본민족 전체와 한국민족 전체의 문제는 아니었다.우리는 일제 식민지 체험을 한 세대가 갖는 일본에 대한 정서적인 거부감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경계를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정서적인거부감을 좀더 정확하고 분명한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독립운동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어 처음 한 일이란 망치를 들고 다니며 경무대 안의 일본제 전기스위치를 모조리 깨뜨리는 것이었다고 한다.그러나 이승만은 바로 그 망치로 반민특위를 깨뜨리고 친일파들을 중용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기본틀을 망가뜨리고 말았다.그후 50여년 동안 한국정부의 반일정책이란 이승만의 그런 코미디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이승만의 뒤를 잇는 박정희,그리고 그의 아들을 자처한 두 군인은 술자리에서 일본군가를 부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에도 그런 허풍선이 반일정책은 유지되었다. 이제 우리는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가 막연하고 부정확하게 지녀온 반일감정이,독도 얘기만 나오면 온 국민이 머리띠를 두르는 그 일사불란한 순진함이 반일을 내세운 친일정권들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에 대해 되새길 필요가있다(이 얘기가 심하다 생각되면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한국정부가 보여온 야비하고 잔인한 태도를 중국이나 북한정부의 그것과 비교해 보라). 그 에세이를 읽은 다음날인가,텔레비전 아홉시 뉴스에는 일본 문화에 휩쓸리는 젊은이들이라는 기획취재가 나왔다.수입제한 조치가 풀리면서 너도나도 일제 캠코더를 찾는다는 얘기와 젊은이들 사이에 ‘러브레터’ 주인공의 독백 대사를 외우는 게 유행이라는 얘기가 기자의 독립운동가풍 멘트에 실리고 있었다.프로그램 개편철이 오면 프로듀서들을 모조리 일본으로 출장보내곤하는 한국 방송사의 아홉시 뉴스에서 말이다. 김규항 아웃사이더 편집주간
  • 日극우 논객들의 한국 嫌惡론 비판서

    20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한일 두 나라는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지난 65년 국교정상화로 외형적인 상처는 치유됐지만 양 민족간 내면적인 민족감정은 여전히 응어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일제말기 국민학교를 다닌 저자는 기본적으로 일본인의 대한자세를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나 몰역사적인 한국 지도층의 대일자세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치 않고 있다.혐한론을 펴는 일본내 극우보수 논객들의 주장과 그 심리적 모태를 상식인의 입장에서 접근한 사회비평서다.도서출판 창암,값 8,000원.
  • 터키, 오잘란 사형 유보

    [앙카라 AFP AP 연합] 터키 정부는 12일 반역 등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쿠르드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에 대한 사형집행을 당분간 유보키로 했다고 뷜렌트 에제비트 총리가 밝혔다. 터키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이에앞서 터키 좌우 연정은 오잘란 사형집행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7시간 동안 회의를 열었다. ECHR은 지난해 11월 말 오잘란이 터키 정부를 제소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나오기 전까지 그의 사형집행을 유보해줄 것을 터키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에제비트 총리는 ECHR가 오잘란의 제소에 대한 검토를 마칠 때까지 그의 형집행을 유보하는데 극우정당인 민족주의행동당(MHP)도 동의했다고 회의 결과를 설명했다.MHP는 그동안 오잘란의 사형집행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 [統獨과 한반도 통일] (3)정치·경제·사회 통합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제국의회 건물. 1894년 바이마르 헌법이 태동한 이 건물은 지난해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조한 유리 돔으로 단장한 뒤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새로 문을 열어 통일 독일 정치통합의 상징물처럼 돼있다. 따라서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는 매일 연방의회의 모습을 참관하려는 동독지역 주민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동독지역의 포츠담에서 왔다는 홀거 오펄러(58)씨는 “민주주의 제도를 참관한다는 설레임으로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못잤다”며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통일 독일의 정치제도는 정당과 의회에 의해 이뤄지는 정당 민주주의·의회민주주의인 서독의 정치체제로 통합됐다. 정당간의 통합은 통일을 전후해 여러차례 실시된 선거를 통해 동서독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자연스레통합됐다.특히 동독지역에 뿌리를 둔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주사회당(PDS)도연방의회에 진출했다. 베르너 페니히 베를린 자유대 교수는 “동서독간 빈부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실업률이 급증함에 따라 동독 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Ostalgie)’가 생겨나며 최근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PDS가 약진하고 있는 점은 다소 우려된다”고 전한다. 서독 행정은 업무에 따라 수직적·수평적으로 세분화된 반면,동독은 당과국가의 결정에 따라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한 탓에 행정도 서독식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직업 공무원제도를 확립하는 통합이 이뤄졌다.다만 동독출신 공직자들의 업무처리 능력이 서독 출신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법의 통합도 대체로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연방정부와 서독의 각주정부들이 동독지역의 사법제도 구축을 위해 법조인들을 파견하는 등 인적·물적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페니히 교수는 “통일 직후 동독지역의소송건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가 점차 늘어나며 서독 수준에 육박한 것은사법제도의 발전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아직도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법률제도에 익숙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동독지역의 역동적인 성장 모습을 보면 경제통합도 긍정적이다.동독지역 경제재건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완비되고 국유기업이 모두 사유화됐으며,사회간접시설(SOC)의 확충을 위한 역동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등 매우 희망적이다.동독지역이 통일 이후 95년까지 매년 평균 8%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룩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물론 96년 이후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이는 서독 및 서방 선진국들의 경기가 크게 후퇴했다는 점이 작용했다. 그러나 사회통합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못된다.노동시장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한 데다 심리적 통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경제·사회구조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분야가 바로 노동시장이다.일부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25%를 웃도는 등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서독지역의 2배 가까운 18%를 넘고 있다.동독 경제가 경쟁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고용감축이 이뤄진 탓이다.실업문제의 해결은 민간기업의고용창출 능력에 달려 있는 만큼 동독경제가 지속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심리적 장벽도 여전히 높다.동독주민들은 서독식의 새로운 가치체계에 적응하는 등 정신적 고통과 서독인들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반면,서독주민들은 통일 전보다 더 많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지불하면서도 사회보장혜택은 오히려 줄어들어 불만이 크다.테오 좀머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은 “서독과 동독의 정신·정서적 분열은 경제적 격차만큼이나 깊다”며 “독일인들은 아직도 2개의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베를린 장벽은 주민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 동독지역 주민들 “옛날이 그립다”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가족들의 조그마한 소망을 채워줄 돈이 있었으면좋겠습니다. 애들은 나이키·아디다스 등 비싼 운동화를 보면 사고 싶어 안달합니다.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던 동독시절이 차라리 더 좋았다는생각마저 듭니다” 통일 후 한동안 실직했다가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며 근근히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 마르틴 숄츠(36)씨의 하소연이다.통일 후 서독경제에 편입되면서동독지역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량 감원으로 실업자들이 급증하면서,요즘 동독지역에서는 숄츠씨처럼 동독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오스탈기는 동쪽(Ost)과 향수(Nostalgie)’를 합친 독일식 신조어.동독 시절에는 일자리를 잃을 걱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실업’이라는 단어 자체도아예 없었다. 당시는 일자리가 있으면서도 일할 필요가 없이 그런대로 살 수있었던 세상이어서 동독인들은 그때 그 좋았던 시절에 매달려 연연하고 있는것이다. 오스탈기의 바람은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절정에 달했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민당(SPD)이 ‘오스탈기의 역풍’을 만나 연전연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위르겐 뢰버(47)씨는 “노동자·농민의 나라 동독시절에는 모든 것이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인간과 인간의 대화도 그리 복잡하지않았다”며 “내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동독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서독지역 주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동독지역 경제재건을 위해 서독지역의 돈을 쏟아붓다보니 더많은 세금을 내도 사회복지 혜택을 줄어들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남편 직장을 따라 본에서 동독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오데르로 이주한 40대 중반의 티나 크로네(여)씨는 “나는 처음부터 ‘외국인’이었다.동독에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은 상상이상 이었다”며 “이런 적대감이 극우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 [외언내언] 아인슈타인과 히틀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에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상대성 이론’을 창안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을 선정,31일자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타임지는‘상대성 이론은 이론 물리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TV와 핵무기,우주여행,반도체 등 중요한 기술 분야 발전의 토대를이뤄 금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선정 경위를 밝혔다. 수긍되는 설명이다.타임은 98년부터‘지도자 및 혁명가’를 비롯,‘예술 및연예인’, ‘건축가와 운동선수’, ‘과학자와 사상가’, ‘영웅과 아이디어맨’등 5개 분야에서 20명씩을 선정하고 최종으로 각 분야를 망라한 20세기인물로 아인슈타인을 뽑았다. 독일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자로서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33년 히틀러가 민주적인 바이마르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치정권을 세우자 미국으로 건너가 나치즘과 핵폭탄 반대운동에 앞장섰다.그가 금세기 인물로 꼽히게 된 것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파시즘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한 그의 생애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탄인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심성과 순진함으로 친근감을 느끼게한다. 후광과도 같이 뒤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자상하면서도 순수함이 깃든몽롱한 표정 등은 사악함과 전체주의가 기승을 부린 20세기 천재의 가능성과어린이의 순진함을 함께 담고 있어 친밀감을 더한다.어려웠던 한 세기 그는인류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갖게 한 구원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최종 선정 과정에서‘지도자와 혁명가’부문의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아인슈타인과 경합을 벌였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해자인 히틀러가 게르만족 지상주의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비(非)아리안민족인 유대인과 슬라브민족 600만명을 인종청소했다면 피해자인 아인슈타인은인류평화를 위해 평생 힘썼다. 이런 두 사람이 한때 경합을 벌였다는 사실이믿어지지 않는다. 타임사가 참고자료 활용을 위해 실시한 100여만 독자들의 E­메일 투표결과히틀러가 한때 1위에 오르자 일부 언론들은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단체들의 발호를 우려했다고 한다.이에 대해 타임은 20세기 인물은 사람의 됨됨이나 공헌도 또는 해악을 끼쳤는지 여부와 관계없이‘누가 큰 뉴스거리를제공했는가’가 기준이라고 설명한다.세기의 인물 후보 중 한국인이 한 사람없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금세기 우리 민족은 엄청난 변화와 좌절, 도전을겪었지만 세기적 관심을 끌지는 못한 것 같다.21세기 인물은‘조용한 아침의나라’에서 나오길 기원한다. [李基伯논설위원 kbl@]
  • 죽산 조봉암 정치역정 고찰서 나와

    우리 사학계에서 미개척지대로 지칭되고 있는 영역이 시대사 연구이다.서양의 역사연구나 기록이 정치사 중심에서 시대사,생활사로 다양화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역사연구는 주로 왕조사·정치사·사건사 등에 치우친 감이 없지않다. 한국 사학계에서 최초로 현대사(해방이후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51) 교수는 최근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를 펴냈다(역사비평사펴냄).이 책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법살(法殺)된 이후 정치학계,역사학계 모두에서 연구가 미진했던 진보정치인 죽산 조봉암(曺奉岩)의 정치역정을 1950년대라는 시대사와 맞물려 연구한 것으로 금년 6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죽산 조봉암전집’과 함께 조봉암 연구의 쌍벽으로 평가할만 한 책이다. 상권은 이승만 정권의 극우 반공체제가 구축되던 시점에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정면으로 맞서 평화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반공’ 일색의 한국땅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인 조봉암’의 정치역정을 통해 당시대를재조명하고 있다. 해방과 남북한의 정권수립에 뒤이은 6·25전쟁으로 시작된 1950년대는 1910년대,일제말기 만큼이나 암울한 시기였다.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는 극에달해 있었으며 사회는 총체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그러나 이 시기에그같은 현상을 거부하면서 혁신·진보세력이 태동하였는데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조봉암이었다. 조봉암이 내건 평화통일론은 겉모습은 미국·유엔의 입장과 같은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북진통일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냉전·극우반공체제에 남북간의 긴장과 적대의식을 해소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이승만 정권하의 반공이데올로기는 체제유지·강화를 위한 것이었는데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조봉암을 두고 ‘역풍(逆風)의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조봉암과 진보당이 공산주의도,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주창했던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의 계획화·국유화를 중심으로 전개하였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진보세력이 이같은 노선을 취한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고 있다. ‘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이란 부제가 붙은 하권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1950년대에 자행된 양민학살문제와 부역자 처리 등 전후 처리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다.특히 부역자 처리문제 등은 박원순 변호사 등 몇 사람의 연구성과가 있을 뿐 거의 공백지대로 남겨진 분야여서 이번 저자의 문제제기는학계의 신선한 자극으로 평가할만 하다. 양민학살문제의 경우 97년 ‘거창양민학살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최근 국회에서 ‘제주4·3사건특별법’이 추가로 제정된데다 지난 9월 ‘노근리사건’이 사회문제로 제기돼 학계의 연구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 전역에서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은 그동안 일부사건을 제외하고는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저자는 “제주4·3학살,거창양민학살 등을 제외하면 그외의 주민집단학살과 부역자 진상파악은 초보적 단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우리의 학살문제에 대해서 당국과 국민들이 침묵하는 것은이해할 수없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광장] 천년기를 보내며 드리는 기원

    천년기를 닫고 새천년기를 맞는 역사적인 시점에서 망외지복(望外之福) 명리(冥利) 상산(上算)등 잡다한 어휘가 요즘 머릿속에서 점멸하고 있다.저물어가는 천년을 보내고 다가오는 새천년을 맞으며 필자는 모국을 향해 하나의 기원을 실어보낸다.기원이란 “모국의 정치계여! 부디 협력할줄 알게 하소서!”라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난지 일년 조금 지난 1943년 4월,미 국무부 관리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적과 우방의 식민지 처리문제로 연쇄회의가 열렸다.회의의 발언을 발췌한다면 동티모르와 콩고는 천년 정도는 지나야 자치정부가 가능할것이고 한국은 25년정도면 된다는 것이었다.무릇 자치정부가 가능하다는 것은 국민끼리,정치가끼리 서로 협력할줄 안다는 이야기다.국무차관 웰스가 천년이 지나야 독립자격을 갖출 것으로 단언한 동티모르도 급변하는 정세하에서 전후 50여년만에 독립할 추세이고 이곳에 한국이 파병하는 등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하지만 과연 한국인이 정치운영을 하는데 있어 서로 협조할줄아는가하는 질문은 작금의 상황을 볼 때국민이나 당사자들에게 따가운 질문일 수 있다. 하지중장은 미국에서 방문객이 올 때마다 한국 정치가들에 대한 똑같은 평을 하곤 했다.“한국인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상대하기도 힘들며 비협조적이다.자기들끼리도 비융합적이다.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10명을 모이게 하면 30분안에 4∼5패로 나뉘어 싸운다.저들은 정말 합의하기 힘든 사람들이다”.미 군정기의 주한 영국 총영사였던 컬 모드는 다음과 같이 본국 정부에보고했다. “한국사람들은 아주 적은 것에라도 천성적으로 협력능력 부족인 것이 큰 핸디캡이다….과거 2년반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창발성,자진성,책임질줄 아는 능력,상부상조,정직성,협력,검약정신,개인의 이익을 초월하는 희생정신,이 모든 성공적인 국가건설을 위해 필요불가결의 자질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않은 듯하다”.또 “상호 협력이 필요할 때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능력이 없다.이것은 한국의 역사를 통해 볼수 있는 한국인들의 특징이며 한국 사회의재난이다”. 하나 더 얄미운 촌평을 인용하자.“한국인들은 타고난 기회주의자들이다.저들은 무슨 일을 꼭 해야 된다고 왁자지껄하다가도 그것이 이루어지자마자 다시 더 큰 소리로 분노하며 그것을 부숴버려야 한다고 떠들어대거나 상호 뜨거운 논쟁속에서 일천 개의 파벌로 갈라져 버린다”. 필자는 몰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윗글을 인용했지만 같은 한국인인 필자로서도 반박할 것이 없지 않다.우선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사회경제가 제로인 상태에서 이러한 비판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연간 개인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자연히 민주주의 사회로 이전할 길이 열린다는 어떤 외국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이러한 노력의 하나의 선택이었다고 보여지는 박정희씨 철권통치하의 ‘민주선거’의 단면을 회상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않다고 느껴진다. 1971년 4월 19일 주한 미대사관은 본국에 ‘다가오는 선거와 협잡’이라는장문의 보고를 발송하였다.이승만정권기의 적나라한 원시적인 부정선거와는거리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저질러질 수 있는 부정과 협잡의기술을 소개하고 있다.즉 관권남용,투표자와 공무원에 대한 음삼한 협박,언론관리,은행융자통제,금전살포,정보기관의 개입 등 상투적인 수단 외에도 올빼미,피아노,릴레이 유령투표,이중투표,군대 표조작 등 갖가지 협잡메뉴를다양히 소개하고 있었다.9,000개 투표소의 4개 투표함에서 10표만 협잡해도36만표를 움직일수 있다는 설도 인용한다. 7,000∼8,000달러의 소득시대로 상당한 정도의 민주화된 사회로 거쳐오는동안 우리들은 민주정치의 미숙과 그 반작용인 인권유린을 동반한 철권정치를 경험했다.그런데 지금도 ‘천성적으로 상호 협조능력이 부족한 민족’이라는 낙인이 찍혀야 할 것인가.지금도 어느 나라의 서울주재 대사관 보고는이런 낙인을 찍어 본국에 보고하고 있진 않은지.저질적 폭로전술이 그렇게필요한가하는 질문과 함께. 우리의 가장 우려하는 적,일본의 극우는 박장대소하고 있을 것이다.새 천년기를 맞이해 정치가들은 건설적 경합을 벌이고 국민은 내년 총선에서 정신을 차려 편견에 영향받지 않는 투표권을 행사할 것을 간절히 기원하며 선진국가 대열에 끼는 모국을 그려본다. [方善柱 한림대객원교수·재미 사학자]
  • [변혁으로서의문학과역사](46)이산하 장편연작시’한라산’

    1980년대는 필화의 활화산 시대였다.연속적으로 터졌던 각종 필화 중 가장첨예했던 사건이 장편 연작시 제1부 ‘한라산’이었다.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제주도에서,지리산에서,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민족해방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전사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는 헌사를 앞세운 이 시는 ‘사회과학 전문 부정기 간행물’을 표방한 ‘녹두서평’ 제1호(1986.3 발행)에 게재되었다. “독자 대중은 우리의 사회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과정을 통해 구체화된 논의를 담은 출판물을 원하고 있다.독자 대중의 그러한 요구는 우리의 사회현실을 추상적이거나 반역사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명백한 거부이고,자족적이고 현실에 대해 무기력한 아카데미즘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며,나아가 타국의 이론에 대한 일방적인 승인의 강요가 아니라 그것의 우리 사회 현실에의 올바른 적용에 대한 요구이다”는 기치를 내건 ‘녹두서평’은 특집으로‘민주주의 혁명과 제국주의’를 다뤘는데,이것은 당시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 타도를 위한 기본과제로 보았다. 군부독재와 제국주의론을 결부시켰던 이 특집은 특히 8.15 직후 미군정의 성격 규명에 초점을 맞춰 분단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폭로코자 시도했으며,그연장선에서 장시 ‘한라산’도 자리매김하도록 배치되었다.중요 논문보다 우대하여 가장 앞에 ‘한라산’을 실었던 편집 의도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연작시는 곧 미군의 분단 한국 침탈사 고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 제1부 ‘서시’ 1∼4에서는 “이 땅은 아메리카의 한 주”란 구절로 알수 있듯이 미국에 대한 비판정신이 관류하고 있다.제1장 정복자 1∼5에서는8.15 직후 진주한 미군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침략 야욕을 규탄하고 있다.제2부 ‘폭풍 전야’ 1∼5에서는 1945년 9월28일 미군의 제주도 진주와,47년 3.1절 행사 때 희생 당한 한 소년,그리고 총파업과 도민들의 결연한 투지를노래한다. 제3부 ‘포문을 열다’ 1∼4에서는 4.3항쟁 횃불이 오르면서 터진 혼란상을점묘파(點描派)식으로 엮어 나간다.마지막 제4장 ‘불타는 섬’은 “미고문단 초대 단장이자 팬터곤 내에서도 극우파로 이름 높은 윌리엄 L.로버트 준장을 현지에 파견하여,대규모 중원부대를 미군 상륙함정으로 섬의 해안 곳곳에 대놓고,미국식 빨갱이 토벌전을 개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제주 항쟁의 전설적 인물인 김달삼과,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열 중령은 “일본 복지산 예비 육사 동기”였던 사실.둘은 민족 내분을 멈추고자 극비 회동(4.28)을 갖고 전격적인 합의에 이르러 바야흐로 제주항쟁은 평온하게 마감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5월 6일자로 김익열은 해임,6월 18일 여수 제14 연대장으로 전임되므로써 4.28 평화안은 사그라진 채,김익열의 후임으로는 제11연대장 박진경이부임,“모두 불사르고/모두 죽이고/모두 약탈하는” 삼광(三光)정책과,“불태워 없애고/죽여 없애고/굶겨 없애는” 삼진(三盡)정책을 폈다.이 처참한진화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박진경의 암살이 뒤따랐고,그 범인은 모 하사관의 배신으로 잡혀 수색에서 처형 당했다는 데서 연작시는 끝난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많은 소설과 시 중 이산하의‘한라산’처럼 비극 그자체를 미국의 개입으로 못박는 경우는 없었던 터라 이 잡지는 이내 호된 홍역을 치뤘다.즉 강력한 단속과 시인의 구속이 잇따랐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네티즌‘反조선일보운동’

    ‘최장집 교수 사상논쟁’과 관련,지난해 12월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가 낸명예훼손 소송에서 최근 패소판결을 받은 월간 ‘말’지와 ‘인물과 사상’을 돕기 위해 모금운동에 나섰던 네티즌들의 활동이 ‘조선일보 반대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이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 22일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www.inmul.co.kr)에 ‘조선일보에게 국민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한 네티즌의 글이 실리면서부터. 이후 40대의 평범한 한 네티즌(ID:anti-chosun)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150여명의 네티즌들이 총 450여만원을 모았다.인터넷상에서 운영되는 10여개의 웹진들도 각각 서명 및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10일간 모금운동을 벌여온 네티즌들은 지난 3일 조선일보 사옥 옆 코리아나호텔에 모여 “이번 소송건은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조선일보가 보여온 이중성의 발로”라고 의견을 모았다.이어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모금 및 서명운동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구축하고,이를 통해본격적인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펼쳐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 운동에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자유기고가 진중권씨는 “그동안 극우이데올로기에 치우치는 등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조선일보에 대해 보이콧운동을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는 지난 11월 29일자 한겨레에서 홍세화씨가‘나를 고소하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 기자의 승소를 비판하자, 홍씨와 한겨레를 고소할 의사를 밝혀 네티즌들과 조선일보 사이의 대립은 더욱 깊어질것으로 보인다. 김미경기자
  • 인터넷 갈수록 ‘위세당당’

    여론환기나 조성에도 인터넷이 최고다.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시위에서도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했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일 이전 반대시위는 11개월전 인터넷의 한 전자메일이 촉매가 됐다고 전했다. 시위주도단체인 ‘시민세계무역워치’(PCGTW)는 WTO 각료회의 개최지가 시애틀로 결정되자 지난 1월26일 수천명의 지지자들에게 “일정을 취소하라.우리는 11월말 시애틀로 간다”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이를 계기로 다른 운동단체들도 비슷한 내용의 전자메일을 회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고 WTO회의를 저지하기 위한 갖가지 방안을 제시하는 전자메일 그룹이 수십개나 생겼다. 지난 가을에는 이런 전자메일 그룹을 통합한 웹사이트(www.seattle99.org)가 등장,자원봉사자 규합과 각 단체 활동사항 홍보는 물론 시위 지침 하달에서 시위자의 숙박지 안내까지 담당하게 됐다. ‘공정한 무역을 위한 시민’이란 단체가 운영하는 이 웹사이트는 노동,환경,인권단체 소속 시위자 수만명에게 시위 관련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지휘본부’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NGO 관계자들은 인터넷 중앙 연락망이 있었기 때문에 시애틀 시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독일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극우파 신나치주의도 인터넷이 그 중심에 있다.독일 헌법수호청은 신나치주의자들이 개설한 인터넷 사이트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상에 320개의 독일 극우파 홈페이지가 개설돼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는약 30개국에 1,400개의 신나치 관련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며 극우파의 사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고 경고 했다. 신나치주의 추종자들도 급증 독일의 경우에만 97년에 4만8,400명이던 추종자들이 98년말에는 5만3,600명으로 늘었다. 김병헌기자 bh123@
  • 오잘란 사형확정 판결이후 터키 에제비트총리 ‘진퇴양난’

    [앙카라 DPA 연합] 쿠르드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에게 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의 25일 판결 이후 터키 정부,특히 뷜렌트 에제비트총리가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졌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의회와 대통령의 승인과정을 남겨 놓고 있어 공은 이제 정치권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제비트 총리의 경우 개인적으로 사형제도에 반대하고 있는데다,정부로서도 국내의 환영 분위기와 국제적 비난여론 사이에서 어떤 결정도 내리기 힘든 딜레마에 빠져 있다.터키 쿠르드노동당(PKK) 지도자인 오잘란은 지난15년여 동안의 독립 투쟁 과정에서 모두 3만2,000명 이상을 희생시킨 ‘학살자’로 터키 언론과 국민들에 의해 낙인찍혀 있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은 터키가 오잘란을 사형시킬 경우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희망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터키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다.한스-요하힘 페르가우 터키 주재 독일대사는지난 23일 “오잘란이 사형되면 터키 정부가 EU 비정규 회원국 참여의사를밝힌 핀란드 헬싱키 정상회담의 효력도 상실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극우정당인 국민운동당(MHP)의 부상도 에제비트 총리의 고민을 가중시키고있다.MHP는 지난 총선에서 PKK에 대한 강경방침을 공약으로 내세워 의석을 크게 늘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 [대한광장] 황야의 女戰士들

    지난주 서울에 있는 정신대연구소에서 부쳐온 책 한 권을 받았다.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3’이 나온 것이다.당시 눈코 뜰 새 없이바빠 대양을 넘는 비행기 속에서 완독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필자가 우선 흥분한 것은 증언이 기록을 이겼다는 점이다.당사자의 반세기후 증언이 50여년 전 제3자의 ‘증언’을 이겼다는 점이다.1984년 필자는 동남아에서 미군 포로가 된 한인 군속과 사병의 심문기록을 채취하는 데 열을올리고 있었다.그 과정에서 두 쌍의 자매를 포함한 5명의 한인 군위안부의포로 심문문서를 발견했는데 이 문건은 그후 널리 유포되었다. 문건에서는 5명이 너무 가난해 자신의 몸을 팔아 대만에 가 일본군을 상대로 일을 하다가 귀국했고 다시 필리핀으로 차출되어 후퇴하는 일본군을 따라 산 속을 방황하다 미군에 항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정작 본인은 대만에 간 적이 없으며 자매 모두 간호보조원으로 취직되는 것으로 속아 필리핀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처음 군위안부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정신대연구소 연구원들이 천신만고 끝에 5명 중의 유일한 생존자를 찾은 이야기도 눈물겨운 노력의 연속이었다.활자화된 문건은 믿을 수 있지만 위안부의 증언은 날조라는 것이 일본 극우논자들의 일반적인 논리였다.공평한 국제법정에서 한번 붙어보면 좋겠다. 증언의 채취라는 것은 공평하고도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모름지기 이들 5명을 심문한 일본계 미군 병사는 선입감이나 편견을 가지고 그들의 ‘증언’을 채취한 게 틀림없다.만약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생존자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끝내 미군의 문건이 ‘진상’으로 둔갑하고 있을 것이다.역사 서술이란 두려운 것이다.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자매가 같이 매춘업자에게몸을 팔고,그 어머니가 부산 부두까지 환송하러 나갈 수가 없지 않은가. 필자가 또 흥분한 것은 진주에서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일본 군수공장에 배치된 30명이 모두 인도네시아의 군위안소에 보내졌다는 증언이다.이것은 생생하고 민간에 펴져 있던 확신과 일치한다.또 우리 한인연구자들이 꾸준히주장한 것이기도 하다.여기에 일본 우익이 어떻게반박하는지 보고 싶다. 셋째로 흥분한 것은 한 증언이 근로 동원이 할당되었고 부잣집을 대신해 빈한한 가정의 자녀들이 할당인원으로 채워져 공장에 동원되었고 다시 군위안부로 차출됐다고 규명돼 있는 점이다. 참으로 엄청난 일을 정신대연구소 연구원들이 해냈다.돈도 없고 사명감 하나로 악전고투하는 여성들이 여기에 있다.일반연구자들이 상아탑에 매몰돼추상적 학문에 정성을 들이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이렇게 묵묵히 큰일을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이들 정신대연구소의 연구원들과 봉사자들은 군위안부 진상 추구의 일환으로 옛 일본군 안의 한인 군속과 사병들의 증언 채취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돼 있는 홍종태씨의 증언도,담담한 서술도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10년 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기의 한인들의 증언 채취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해왔는데 이것을 큰 기관도 아닌 작은 연구소의 봉사자들이 묵묵히 해내고 있는 데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극우파들은 군위안부 조성과정에서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논리 하나에만 집중하여 공세를 취하고 있다.사실상 관헌들이 트럭에 여성들과 노동자들을 마구 잡아 채우고 위안소나 노예노동에 보냈다는 이야기는 중국에서는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드문 현상이기는 했다.그렇지만 강제연행은 분명히 있었고 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필자의 주장에 의심이 가는 분은 이 책을 사보시라.단돈 1만2,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1만2,000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큰 돈이겠지만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계층에는 설렁탕 한 그릇 값이다.힘이 되어 달라고 호소하는 연구소의 특별후원회원 회비는 1년에 10만원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필자도 머리 숙여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줄 것을 호소한다.미국 서부영화 ‘황야의 7인’에 나오는 정의한(正義漢)들은 멕시코의 한 마을주민들을 산적떼로부터 방어하는 데 심신을 바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필자의 인상으론 이들이 바로‘황야의 정의한’들이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재미사학자]
  • ‘우리는 100년동안‘ 완결판 ‘정치와 경제 이야기’나와

    ‘고시출신자들은 당대 최고 엘리트임이 분명하다.우수한 학생이 대체로 법대나 의대로 진학하는 건 일제시기 이래 지속되고 있다.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이런 분야로만 집중되는 것과 수많은 인재들이 고시준비만을 위해 젊음을 소진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할까’ ‘대표적인 반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은 99년초 극우노선의 배격을 선언했다.그리고 이 단체에서 발간하는 잡지는 한 때 빨갱이라는 비판을 받던 리영희 교수의 인터뷰기사를 실었다.반공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적 지향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1909년 합방 직전 경제생활의 기준이 되는 척관법 등 도량형을 일본식으로 바꿨다.이전까지는 쌀 한 가마니가 경상·함경도에서는 4∼5두였으나 경기·충청·전라도 등에서는 8두에 이르는등 크게 차이가 났다.현재 쌀은 일본식 됫박이 기준이 됐지만 다른 잡곡의 경우 상품에 따라 용량에 차이가 있을 정도로 우리의 상거래관습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최근 발간된 ‘우리는 지난 100년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3편,정치와 경제 이야기’의 주요 내용들이다.지난해말 나온 1편 ‘삶과 문화이야기’,2편 ‘사람과 사회이야기’를 잇는 마지막 책.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지난 한세기 동안 진행된 각 분야의 주요 변화상을 망라하고 있다. 지난 3년여동안 소장 역사연구자 10여명이 모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주제 49가지를 추려내,해당 전공 소장학자들에게 집필하게 했다.이같은 시도는 한국출판계에서 이례적인 일.출판사측은 “새천년을 맞아 역사의 저편으로 묻힐 우리의 20세기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따라서 책은 대체로 각 분야의 변화상을 고루 짚었지만 일부에서는 필자의주장이 너무 앞서 듯한 느낌을 준다.예컨대 ‘고시와 출세의 역사’에서 ‘법조인이나 지도자의 자질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의미가 없는 걸까’라고 의미있는 질문을 제기한다.그러나 ‘됫박과 잣대의 역사’에서 과거 우리의 도량형 문란현상과 관련,‘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하는 대목은 다소 이해되지 않는다.아울러 ‘땅,투기의 대상인가 삶의터전인가’에서 현재의 땅과 집문제의 근원으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을 꼽은다음,‘일제가 토지소유권 개념을 우리 사회에 적용했으며 우리는 아직도 이 틀을 청산하지 못한 채 존속시키고 있다’고 설명한 대목 역시 뜻이 아리송하다.현재의 땅투기 등이 토지소유권의 도입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주장인지,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현재 땅투기의 원인이라는 것인지 한눈에 알 수 없게 돼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고교생 눈높이에 맞춰’ 쓰여진 책이라면,필자의주장보다는 객관성을 살려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되는데,이런 ‘배려’가 다소 미흡한 것으로 지적된다. 박재범기자 jaebum@
  • 日 ‘核무장’ 발언 물의,니시무라 차관 경질

    일본 정부는 20일 주간지 대담을 통해 국회에서의 핵 무장 검토 필요성을언급,물의를 빚은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51·자유당) 방위청 정무차관을경질했다.후임에는 같은 자유당의 니시가와 다이치로(西川太一郞) 의원이 내정됐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날 “핵을 갖지 않고 만들지 않고,들여오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에 변화는 없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강조했다. 니시무라 전차관은 93년 중의원에서 첫 당선돼 지난 5일 연립정권 출범 때자유당 몫으로 정무차관에 취임했으며 ‘군대를 창설해야 한다’,‘일본 헌법은 불순하기 짝이 없다’,‘전수(專守)방위는 부도덕하다’는 등의 극우적발언을 거듭해왔다. 한편 정부 당국자는 니시무라 전차관의 발언과 관련,“일본의 비핵 3원칙에어긋나는 것”이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당국자는 “일본은 전후 전수방위,평화헌법,비핵 3원칙의 원칙을 지켜오고있으며,특히 비핵 3원칙을 강조해왔다”며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니시무라차관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지구촌 화약고 카슈미르 평화 깃드나

    인도-파키스탄 대립의 핵이자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인 이 두 곳에서 화해의 첫 단추가 끼워지기 시작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 집권후 팔레스타인측이 최소한의 신뢰의 표시로 요구한 요르단 서안의 유태인 정착촌 철거가 19일부터 시작되고 파키스탄이 18일 인도 접경 지역에 전진 배치한 파키스탄 병력 철수에 들어간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실은 18일 총리 지시에 따라 19일부터 요르단강 서안의 불법 유태인 정착촌 철거작업을 시작,2주안에 12개 불법 정착촌을 모두철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번째 철거지역은 우선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 도시라말라 북부의 라헬 시부트 헤이 정착촌.성서의 ‘사마리아’지방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정착촌 지도자들은 불법 42개 정착촌 가운데 한 곳도 철거할 수 없다며 총리에 맞서왔었다. 파키스탄의 인도 접경지역 병력철수는 베르페즈 무샤라프 군 참모총장의 일방적인 대(對)인도 긴장완화조치 발표에 이은 것.군 대변인은 “지난 2개월간 카슈미르 사태가 격화되면서 전진배치된 병력을 철수,평화시 배치상태로돌아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해의 조짐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파키스탄이 병력을 철수한지역은 700㎞에 이르는 일반 국경지대로 파키스탄 인도 양국이 분할 점령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방의 군사통제선 병력은 해당되지 않았다.파키스탄측은향후 구체적인 철군일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경우엔 유태 극단주의자들의 저항이 가장 큰 변수.지난 17일 바라크의 정착촌 철거계획 발표 이후 극우주의자 수천명이 바라크 총리 관저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조직적 저항태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내달4일은 95년 암살당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서거 4주기.미망인 레아 여사는18일 “정착촌의 극단주의자들이 자살 테러를 시도할 지 모른다”며 우려를표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 오스트리아 대사 예발트 예거

    관광대국 오스트리아의 예발트 예거 주한 대사는 17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시설,깨끗한 환경,그리고 주민들의 친절”이라고 강조했다.예거대사는 또한 오스트리아가유럽연합(EU)을 통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참여와 EU와 북한간 정치대화 주선등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두나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양국은 현재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특히 문화분야에서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다.오스트리아에 1,500여명의 한국교민이 살고 있는데 이중 절반이 오스트리아의 수준높은 음악을 공부하러온 유학생들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우리의 네번째 교역국이다.지난해말 기준 대한(對韓)수출액은 미화로 2억 4,100만 달러,수입액은 1억 8,600만 달러였다.지난해 한국이 IMF위기를 벗어나며 오스트리아에 대한 수출액이 무려 36% 늘었다.우리는 귀금속,철도차량,공예품등을 수출하고 승용차,무선전화기,철강,컴퓨터,의료기기를 한국에서 수입한다.금년 교역규모도 지난해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본다. ■두나라간 주요 현안은 무엇인가. 특별한 현안은 없다.금년 4월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처음으로 무관이 부임해 군사교류가 활성화될 전망이다.무관은 베이징에 주재하며 겸임 무관역을 수행한다. 유감스럽게도 정상회담을 비롯한 정부 고위 대표단의 상호방문은 오랫동안이루어지지 못했다.최근에는 우리정부가 EU와 관련될 일들로 너무 바빴다.오스트리아는 98년 하반기 EU의장국을 맡았고 지난 3일 실시한 총선준비로 한동안 바빴다.토마스 클레스틸 연방대통령이 이미 한국으로부터 공식방문 요청을 두차례나 받았다.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안잡혔지만 조만간 방문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이다.EU를 중심으로한 공동방위체에는 어떻게 임할 계획인가. 우리는 1955년 10월 26일 헌법에 영세중립국임을 명시했다.하지만 현재 우리는 공동방위등 EU의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95년 1월 서유럽동맹에 옵저버로 참가했고 같은해 2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앞으로 우리는 EU가 추구하는 유럽집단안보체에 적극 참여하는등안보확보에 적극 임할 방침이다. ■오스트리아는 KEDO참여등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과 긴장완화에적극 참여해왔는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에 대해 우리는 많은 관심을 갖고있다.ASEM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있다.내년에는 아시아유럽 비지니스포럼도 우리가 주최할 예정이다.우리는 평양에 대사관을 열지는 않았지만 북한과도 74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긴장완화 조치들이 먼저이루어져야한다고 믿는다.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12월 오스트리아가 EU의장국을 맡고있을 때 브뤼셀에서 사상최초로 EU와 북한간 정치대화를 가졌다.이때 참석한 북한 대표단들도 EU와의 대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현재 두번째회담을 위한 실무 교섭이 진행중이다.조만간 두번째 회담을 갖기로 합의가이루어져있다. ■10월초 총선에서 민족주의,외국인 배척등을 내세운 자유당이 2위로 급부상해 주변국을 놀라게했다.우려할 수준인가. 자유당의 요르크하이더당수가 과거 친나치,외국인 배척발언을 한 경력이있는 건 사실이다.오스트리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는 존중돼야한다.자유당에 투표한 유권자들 모두를 극우나 나치주의자로보아서는 안된다.오스트리아 국민 사이에 외국인 배척감정은 없다.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민을 적극 받아들였다.800만 인구중 현재 EU국가들에서 온 이민자가 10만명,EU밖에서 온 이민자가 65만 1,000명에 이른다. ■오스트리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광국이다.비결이 무엇인가. 우선 알프스를 낀 천혜의 관광자원이 있다.여기다 비엔나,잘츠부르그등 훌륭한 문화자원이 잘 보존된 도시들이 있다.관광수입이 국가 전체 GDP의 6%를 차지한다.연간 오스트리아를 찾는 관광객수가 8,200만명에 이른다.따라서관광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국가적인 배려도 많다.호텔과 민박가정을 합쳐 객실수가 120만개에 이른다.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한 환경,편리한 시설,그리고 관광객을 맞는 주민들의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이기동기자 yeekd@
  • [포커스 투데이]하이더 오스트리아 자유당 당수

    3일 실시된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전후 처음으로 원내 제2당으로 약진한 자유당의 외르크 하이더(49) 당수는‘친(親)나치 발언’으로 유명한 극우파 정치인이다. 자유당은 연립정권을 주도하는 사민당(33.39%)엔 뒤졌지만 연정 소수 파트너인 인민당(26.9%)에는 다소 앞선 27.22%를 득표,지난 총선보다 5% 이상 지지율을 끌어올렸다.하이더 당수는 이번 총선을 발판으로 집권까지 기대하고있지만 사민당의 빅토르 클리마 현 총리는 과거 전력때문에 하이더와의 연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오스트리아 정계 최고의 ‘문제 정치인’으로 손꼽혀온 하이더는 그동안 번번히 친 나치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지난 91년 나치의 고용정책을 찬양,고향인 카린티아 주지사 자리에서 쫓겨났는가 하면 95년에도 “나치의 SS친위대는 영예로운 독일군의 일원”,“나치 수용소는 처벌 수용소”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총선 유세에서 그는 오스트리아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외국인 이민을막아야한다는 국수주의적 정책을 표명했다.오스트리아의 EU회원가입을 반대했던그는 또 유럽연합(EU)의 확장과 유로 단일통화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견지해오고 있다.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지난 86년 자유당의 당수직에 올랐다. 이경옥기자 ok@
  • ‘빠리의 택시운전사’ 조선일보에 일갈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사진)씨가 ‘대(對) 조선일보전(戰)의 투사(鬪士)’로 나섰다.현재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홍씨는 ‘인물과 사상’ 10월호에 실린 ‘한국지식인에게-극우 조선일보의 진지전과 한국의 지식인’이라는 글에서 ‘지식인 전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한 홍씨가 조선일보 비판의 첫 접근점으로 삼은 것은 100년전에 발생한 ‘드레퓌스사건’.홍씨는 “당시 프랑스의 극우신문들은 뻔한 진실을 외면한 것은 물론 유언비어까지 퍼뜨리며 드레퓌스가 반역자라고 떠들어댔는데,요즘 조선일보가 그런 셈”이라면서 “결국 프랑스와 한국은 100년의 시차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홍씨는 이어 “그럼에도대다수 한국인들은 ‘시차’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로▲극우 헤게모니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극우언론의 진지전 ▲극우 헤게모니와 싸우지 않고 오히려 ‘조선일보’의 진지(구축)전에 놀아나는 한국의 지식인 등을 들었다. 홍씨는 또 “‘보수’는 간직해야 할 가치를 전제한다”며 “‘사상검증’을 일삼는 조선일보는 보수도,자유민주주의도 아닌 극우”라고 단언한다.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세력의 목적은 극우 헤게모니를 지키는데 있으며 그들이 가진 무기는 반공주의·반북(反北)주의”라면서 “최근 냉전의식의 약화,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등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사냥전략’을 두고 그는 “‘조선일보’는 ‘한국논단’처럼계속 기동전을 펴지는 않으며 오직 극우헤게모니에 영향을 미칠 ‘사건’이나 ‘인물’만을 골라 공격한다”면서 조선일보가 최장집 교수를 사상검증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본격적인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제안하고 있는 홍씨는 “조선일보와의싸움이 쉽지 않겠지만 목표물이 정확히 보인다는 점에서 이미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면서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를 사지 않고 읽지 않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했다.홍씨는 시인 김정란씨,비평가 진중권씨 등과 함께 11월경 격월간으로 비평전문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한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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