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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시하라 “中과 영토분쟁땐 국지전 불사”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1일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과 중국이 영토 분쟁 도서를 점령하려 할 경우 포클랜드식 ‘국지전’을 벌일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이날 이시하라 지사가 단독 인터뷰에서 일본은 중국에 강경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내가 보이콧을 얘기하는 것은 최근 축구경기들과 거기서 발생한 말썽 때문”이라며 “베이징 올림픽은 국제정치에서 1936년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과 같은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그는 센카쿠 열도 등 분쟁 도서지역에 대해서는 “만약 그곳에서 충돌상황이 벌어지면 영국이 포클랜드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국지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어는 국제언어로는 실격”이라고 말했다 제소당할 처지에 놓였다.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시하라 지사는 지난해 10월 “프랑스어는 수(數)를 계산할 수 없어 국제어로는 실격”이라고 주장했다. 도쿄도내 프랑스어학교 교장 10여명은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이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시민들의 의욕을 꺾은 것으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이달 중 도쿄지방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키로 했다. taein@seoul.co.kr
  • [사설] 한·일 역사공동위 그래도 계속돼야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3년 활동을 끝내고 어제 최종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공통된 인식을 담은 것이 아니라 양쪽 학자들의 주장을 각각 담은 논문을 나열하는 데 그쳤고, 여기 포함된 일본학자들의 역사인식은 우리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일본학자들은 일제의 대한제국 강점이 합법 절차에 의한 ‘병합’이며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기존의 주장에서 한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숱한 희생자를 낸 항일 의병·독립 항쟁을 무시한 채 당시 한국인의 국가·국민의식이 희박했다고 폄훼하기까지 했다. 성과라면 고대사 부문에서 일본의 일부 극우학자들이 주장해 온 ‘임나일본부설’이 허구라는 데 합의를 본 정도이다. 이러니 일본학자들의 역사인식이 후소샤판의 역사왜곡 교과서와 다를 바 없다는 둥 더이상 한·일 공동의 역사연구가 필요하냐는 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접국가 사이의 과거사란 얽히고설키기 마련인데, 이를 3년동안 공동연구한 것만으로 동일한 역사의식이 형성되기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이다. 독일과 프랑스·폴란드가 역사 공동교재를 만드는 데 30년 걸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번 1차 위원회의 의미는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역사연구를 시작했다는 점과, 양쪽이 쟁점사항별 인식차를 확인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할 일은 공동연구의 틀을 유지·발전시키면서 인식차를 어떻게 메워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학자들이 연구성과를 더욱 쌓아 일본측 주장을 논리적으로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 [클릭이슈] 대학가 日극우단체 자금 유입 공방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1899년 오사카생.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22살 때 물려받은 유산으로 우익단체 ‘국방사’ 결성.1931년 국수대중당 총재에 선출된 뒤에는 당원들에게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제복을 입혔을 정도로 파시즘을 추종. 만주 항일유격대 소탕과 가미카제 특공대 창설에 깊숙이 관여. 패전 뒤에는 도쿄재판에 회부돼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지만 투옥 3년 만인 1948년, 감옥에서 나와 사업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 1951년부터 경정사업을 시작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사카와는 ‘도박재벌’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선사업과 함께 사사카와 재단(95년 사망후 일본재단으로 개명)을 설립한다. 그는 1970년 150t짜리 병원선 1척을 한국에 기증한 데 이어 1975년에는 한국나병연구원 건립자금으로 1억 2000만엔(당시 2억원)을 전달한다. ●일본재단의 돈을 둘러싼 해석 두고 치열한 공방 이런 사연을 갖고 있는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와 고려대에 흘러들었다는 사실이 최근 부각되면서 해당 대학의 구성원들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공익법인이긴 해도 전범과 관련된 재단의 돈을 학문 연구에 사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과 사사카와 개인이 아닌 공익법인으로부터 받은 돈이기 때문에 투명하게 쓴다면 문제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5년. 연세대는 당시 재단의 기금을 출연받아 학교법인 아래에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뒀다. 같은해 12월4일 알렌관에서는 ‘한·일협력 연구기금 전달 조인식’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었다. 당시 일본재단의 기금을 끌어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송자 연세대 전 총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양국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사카와의 셋째아들로 일본재단의 이사장인 사사카와 요오헤이는 이날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며 “일제의 박해에 쓰러진 그의 학문과 정신을 이 기금을 통해 이어가겠다.”고 밝혔다.‘한·일협력 연구기금’ 10억엔(당시 환율기준 75억원)이 일본재단의 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연세대는 심각한 학내 갈등을 겪는다. 교수평의회와 총학생회는 전범의 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힌 연세대는 결국 1996년 6월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독립적인 재단법인 ‘아시아 연구기금’으로 탈바꿈시킨다. 일본재단의 돈과 외부 지원을 합해 총 1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아시아 연구기금은 여기서 나오는 이자 수입 등으로 해마다 3억∼8억원 정도를 교수들에게 연구비로 지급해 왔다. ●일본재단, 연구비 지원 제안 잇따라 연세대에 일본재단의 자금이 유입되기 훨씬 전인 1988년 고려대에도 이 재단의 자금으로 장학금이 조성됐다. 사사카와 생전에 장학금을 유치한 고려대는 그의 이름을 따 ‘사사카와 영-리더(Young-Leader)’라는 장학금을 설치하고 1억 2950만엔을 받았다. 이 기금의 이자는 2003년까지도 고려대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됐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 “1980년대 말부터 일본재단이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에게 전화를 일일이 걸어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실제 일부 교수가 그 돈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시아연구기금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재단의 기금은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 한 사람의 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 교수는 “일본재단은 경정사업을 하는 하나의 공익법인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로또나 마사회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아시아연구기금은 동아시아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연구를 하는 데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연세대 교수협의회 대표 최종철 교수(영문과)는 모든 기금에는 돈을 주는 단체의 의도가 있다고 반박한다. 일본재단의 핵심 운영진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구성원들로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해 왔기 때문에 이들의 돈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재단의 자금을 받은 단체와 대학들은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기금을 모두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효연 김준석기자 belle@seoul.co.kr
  • 고대 日전범 이름딴 장학금 운영

    연세대가 일본 극우 단체인 ‘일본재단’의 자금을 지원받아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고려대도 이 재단의 돈을 받아 장학재단을 조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31일 고려대에 따르면 이 학교는 1987년 일본재단에서 1억 2950만엔(10억원 상당)을 받아 일본재단의 설립자인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의 이름을 딴 ‘사사카와 영-리더(Young-Leader) 장학금’을 조성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20년 전 일본재단의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이 장학금이 폐지됐다.”고 밝혔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프랑스의 실패, 유럽의 실패”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의 유럽헌법 비준 거부가 확정되자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 녹색당 등 지지진영은 프랑스와 유럽 미래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극우파와 사회당 일부 및 공산당 등 반대 진영은 승리를 자축하며 시라크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실패를 인정하고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유럽에서 프랑스의 이익을 지키기가 더 힘들어졌지만 유럽연합(EU) 건설의 주축국으로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 중도우파 정당인 UMP(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 총재는 “이번 투표는 정치적으로 중대한 사건”이라면서 “유럽은 프랑스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미셸 알리오 마리 국방장관은 유럽헌법 부결에 대해 “프랑스의 실패, 유럽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독일·이탈리아 등 이미 유럽헌법을 비준한 국가들은 유럽통합 과정의 큰 타격을 우려했다. 영국에선 국민투표 실시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동유럽 국가들은 이번 사태로 지난해부터 EU 신규 회원국들이 누려온 ‘밀월’이 끝났다고 평가했다. 마티아스 비스만 독일 하원 유럽위원회 위원장은 “프랑스가 없다면 EU의 추진 동력이 덜컹거리게 될 것”이라면서 “당분간 EU의 추가 확대가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루펠 슬로베니아 외무장관은 “프랑스 등 다른 지역에서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지배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이는 EU의 문을 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 이시하라 지사 측근전횡으로 궁지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와 차기 총리후보 1,2위를 다투는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 도쿄도지사가 ‘오른팔’격인 부지사의 직권남용 문제로 궁지에 빠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30일 전했다. 언론들에 따르면 극우적 발언도 서슴지 않던 이시하라 지사는 이날 자신의 30년 측근인 하마우즈 다케오 부지사가 도청 인사나 정책을 독점하고 있다는 도의회의 비판을 수용, 하마우즈 부지사를 포함해 6명의 특별직을 퇴진시키는 것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기로 했다. 하마우즈는 이시하라 지사가 국회의원 시절부터 비서를 맡아 지난 2000년 부지사로 취임했다. 지사 핵심측근으로서 정책이나 인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그가 승낙하지 않을 경우 담당자가 지사에게 사업 설명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에 사직하는 인사는 하마우즈 부지사 외에 다케하나 유타카, 오쓰카 보시로, 후쿠나가 마사미치 등 다른 부지사 3명과 요코야마 교육장, 사쿠라이 출납장 등이다. 지난 3월 도의회에서 도의 관련단체가 운영하는 복지 전문학교를 둘러싸고 하마우즈 부지사가 민주당 간부에게 ‘사전에 짠 질문’을 의뢰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도의회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 조사 중이었다. 그러나 하마우즈 부지사는 증인 신문에서 이를 부정한 탓에 지난 12일 특별조사위가 ‘위증’으로 인정, 궁지에 빠지게 됐고 도쿄 도정은 이 문제로 사실상 마비상태였다. taein@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교과가 독립해야 할 이유/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2003년 여름, 우리는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한 충격적인 사태에 접했다. 역사학계를 비롯해 정부·정치권·시민단체, 그리고 전 국민의 뜨거운 비판 열기에 놀라, 현재 중국은 주춤한 상태다. 우리는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해 고구려 역사를 비롯한 북방사의 학술적 체계화에 주력하고 있다. 일찍이 1982년부터 시작된 일본 역사교과서의 식민지배 미화는 급기야 올 봄 극우적 ‘새로운 역사교과서’(후쇼사 판)를 탄생시키고, 이에 더하여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 제정으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부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을 상설기구로 설치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1세기 탈민족주의적 동아시아 평화를 추구하는 ‘동아시아 담론’을 다듬던 학계는 된통 벼락을 맞은 셈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동북아 공동체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동아시아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중·일 삼국의 학계와 시민단체가 수년의 공동작업 끝에 공동역사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간행하게 된 것은 아주 소중하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역사분쟁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들끓는 여론에 대한 응급처방으로 지난해 가을, 학계와 시민단체를 모아 ‘국사발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물론 학계의 전반적인 중론은 ‘국사’ 교육의 강화가 아니라 동아시아사·세계사를 포함하는 ‘역사’ 교육의 재구성이 시급하다는 데 모아졌다. 이를 위해서는 국사와 세계사가 ‘사회 교과’에 편입돼 있는 현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 미군정 때 수입된 미국식 사회과는 민주시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데, 민주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미국의 역사를 사회과의 일환으로 교육하는 것은 그 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타율적 근대화의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전통 내지 전근대와, 근·현대의 연속성은 두드러지지 못하다. 사회교과에서 우리의 역사적 연원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경제 중심의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고구려 역사에까지 소급하는 역사교육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국사와 세계사가 사회교과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역사를 전공하지 아니한 사회과 교사가 중학교 국사의 40% 이상, 세계사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은 교육의 전문성을 유린하는 처사다. 남아도는 교사의 수급조절을 위해 교련·실업·제2외국어 담당 교사가 2회에 걸친 방학 중 연수만으로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칠 수 있게 한 조치는 더욱 충격적이다. 또한 현재처럼 ‘국사’ 교과서만이 ‘사회’ 교과서와 별도로 제작되는 방식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발주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사로 규정하려는 시도나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역사교육이 나만을 자랑하는 국수적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지난 5월6일 교육부가 ‘역사’를 사회 ‘교과’의 한 ‘과목’으로 독립시킨다고 하여 마치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교육과정과 교사 양성은 사회과 체제로 그대로 둔 채, 현재 사회 교과 안에 독립교과서로 돼 있는 ‘국사’ 교과서에 세계사를 포함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과로부터 역사교과는 ‘교과’로서 분리 독립돼야 한다.‘한국을 중심에 둔 동아시아’‘세계사와 비교된 한국사’ 교육을 위해 하루속히 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 통합체제로서의 ‘역사’ 교육이 독립적으로 실시돼야 한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옹호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교육이 변해야 한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한·중·일 공동저술 새 역사교재 ‘미래를‘ 출간

    한국·중국·일본의 양심세력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필한 3국 통합 근현대사가 26일 출간됐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동기가 돼 사상 첫 3국 공동 역사서가 탄생한 것이다. 세 나라 역사학자와 시민사회 인사 등 54명이 참여해 3년여 동안 만든 새 역사책의 이름은 ‘미래를 여는 역사’.‘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출간기념회를 열고 ‘한·중·일 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 명의의 공동취지문을 발표했다. 편찬위원회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고 합리화 하는 것은 이웃나라는 물론 일본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라면서 “불행한 과거를 넘어 3국이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미래가 펼쳐지기 바란다.”고 밝혔다. ●일제의 침략과 강압정책 공식 인정 ‘미래를 여는 역사’는 16세기 중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3국 역사를 ▲개항 이전의 3국 ▲개항과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한·중 양국의 저항 ▲침략 전쟁과 민중의 피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등 6개 장으로 구성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를 다룬 2장과 3장.‘미래를 여는 역사’는 1904년 러·일 전쟁 당시 대한제국이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일본이 통감부를 설치해 내정간섭, 군대해산, 언론탄압, 사법권 강탈 등에 나선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는 일본 극우파들이 만든 후소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에서 축소되거나 왜곡됐던 대목이다. 후소샤는 대한제국 병합 과정을 ‘근대화’라고 미화했다. ‘미래를 위한 역사’는 또 “(일본이 주장한)대동아공영권은 식민지 지배를 치장하는 논리일 뿐이며 전쟁수행을 위한 자원, 자재, 노동력 조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후소샤 교과서에서 각국의 자주독립과 상호제휴에 의한 경제발전, 인종차별 철폐 등에 공헌했다고 미화했던 부분이다.‘미래를 위한 역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위안부로 끌려간 한국여성은 대부분 미혼의 10대 소녀들이었다. 한국, 중국,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로 동원된 각국 여성의 수는 최소 8만에서 15만명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공동 근현대사 탄생의 배경 한·중·일 3국 시민단체와 역사학자들은 2000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소샤 교과서가 극우파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반영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연대에 나섰다.2002년 3월 중국 난징국제학술대회에서 각국 중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현대사 교재를 개발하기로 합의했으며 한국 23명, 일본 14명, 중국 17명이 공동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씌어진 언어와 책의 판형은 다르지만 내용은 모두 같다. 한·중·일을 오가며 11차례의 회의가 진행됐다. 공동교재 총괄 편집위원회에는 한국측에서 교과서운동본부 대표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와 김성보 충북대 교수가 참여했다. 중국측에서 부핑(步平)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장, 우광이(吳廣義)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연구원, 일본측 오비나타 스미오(大日方純夫) 와세다대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워크21 사무국장 등이 포함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독도분쟁 시발점은 미국인 시볼드”

    “독도분쟁 시발점은 미국인 시볼드”

    독도문제는 한·일간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음 주 발간될 계간지 ‘역사비평’ 여름호에 실릴 ‘독도분쟁의 시발과 윌리엄 시볼드’를 기고한 목포대 정병준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1952년 미·일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배후에 있는 미국의 외교관 ‘윌리엄 시볼드’를 조명했다. 알려졌다시피 이 조약은 일본의 패전처리 문제를 다룬 조약. 당연히 일본이 강점한 영토의 반환문제가 포함되어 있고 독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회담 초기에 한국령이었던 독도는 회담이 진전되면서 일본령으로 바뀐다. 여기에는 독도를 레이더기지로 쓰자는 시볼드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시볼드는 맥아더의 극우 반공주의 노선 덕분에 벼락 출세한 외교관이다. 전후 일본 처리를 두고 미국내에선 두가지 목소리가 있었다. 일본을 철저히 개혁하자는 ‘중국통’ 인사들과 그러면 빨갱이들만 이롭게 한다는 ‘일본통’ 인사들간 대립이었다. 맥아더는 ‘일본통’쪽을 채택했다. 그랬기에 ‘대위’에 불과했던 시볼드를 외교관으로 발탁했다. 미 국무부조차 적절치 않은 인사라고 지적했지만 맥아더는 굽히지 않았다. 정 교수는 ‘맥아더 장학생’ 시볼드가 큰 영향력은 없었다고 봤다. 그러나 미국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한국 문제에는 시볼드가 개입할 여지가 많았다. 그는 일본계 여자와 결혼하고 일본에서 법률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을 만큼 지일파 인사였다. 그는 일본의 이익을 적극 옹호했다. 전범추방·재벌해체에 반대하고 공산주의자 석방을 비판하는 등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소련에 억류된 일본군 포로의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여기에는 냉전과 매카시즘 영향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정 교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생각과 달리 독도문제는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일본이 독도문제만 나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독도문제에 중립을 표시하는 것도 “독도문제가 한일관계뿐 아니라 한·미, 미·일관계를 폭발시킬 뇌관”임을 알게 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 극우파 아베 열풍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인들은 차기 총리로 바람직하거나 유력한 인물로 대북 강경파이자 극우파인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를 압도적 1위로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지지통신은 지난 12∼15일 전국 성인 남녀 2000명을 상대로 면접 방식의 여론조사를 실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21일 전했다. 먼저 차기 총리로 ‘바람직한 인물’을 물은 항목에서는 아베 간사장 대리가 32.8%로 1위였다.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가 4.9%,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부대표가 4.2%, 간 나오토 전 민주당 대표가 3.5%,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2.0% 등이었다. 또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인물’에서도 아베 간사장 대리는 33.5%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며 2위는 아소 다로 총무상으로 5%에도 미치지 못했다. taein@seoul.co.kr
  • 정복자의 시선/에드위 플레넬 지음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인식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양 극단을 달릴 수 있다. 한쪽에선 국경을 넘어 전 지구인의 호혜평등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다른 한쪽에선 가진 나라와 기업이 못가진 나라와 기업을 정복, 지배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진보적 좌파 지식인 에드위 플레넬의 저작 ‘정복자의 시선’(김병욱 옮김, 마음산책 펴냄)은 이 중 후자의 입장에서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의 궤적을 좇아가며 오늘의 세계를 바라본 책이다. ●콜럼버스 정복궤적 쫓아 18개국 심층취재 지은이는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에서 탐사 저널리즘으로 두각을 나타낸 뒤 1996년 편집국장에 취임해 2004년까지 데스크를 지킨 유명 저널리스트다.‘르몽드’(Le Monde)는 ‘세계’라는 뜻의 제호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왔으며 ‘세계를 보는 눈’을 제공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삼아 왔다. 외신보다는 직접 특파원을 파견, 생생한 르포 기사를 제공하는 차별화된 강점을 갖고 있다.‘정복자의 시선’은 이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탄생한 야심찬 르포르타주다. 1,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0년 간격으로 나온 두 책을 시간의 역순으로 묶은 것이다.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1991년 ‘아버지 부시’의 ‘사막의 폭풍작전’이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굴복시켰을 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여정을 따라 두 달간 18개 나라를 직접 발로 뛰며 각국의 역사와 현 정세를 심층 취재한 결과물이다. 이 글들은 당시 르몽드에 연재되었다가 그 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10년 후,2001년 온 세계가 9·11테러의 충격에 휩싸였을 때 10년 전의 여정을 떠올리며 사유의 자취들을 쫓고자 한 것이 이 책의 1부인 ‘혼합인’이다. 시간적 현실감을 주기 위해 나중에 나온 ‘혼합인’을 앞으로 돌린 듯 하지만, 실은 2부‘콜럼버스와의 여행’을 먼저 읽고 나서 1부를 읽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저자의 표현대로 ‘과거의 빛에 현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은 여행이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이탈리아 제노바를 출발해 멕시코에서 끝나는 18개국 순방의 이 도정은 망각과 추억을 가로지르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전쟁은 서방세계 편견의 반복 여정의 단계마다 옛 인물에 대한 회고와 현재 인물과의 인터뷰를 교차시키면서 과거와 오늘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울림과 메아리들을 펼친다. 미지의 땅,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이 ‘나’혹은 ‘우리’와 다른 ‘타자’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진 무자비한 만행의 흔적과 상처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더듬어 나간다. 1부 ‘혼합인’에서 지은이는 5세기 전의 정복과 충돌의 시간을 현재로 돌려 놓는다. 미국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국, 반유대주의, 테러, 전쟁 등의 소재는 500여년 전의 정복과 지배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정점은 이 책의 모티프인 ‘사막의 폭풍’, 그리고 ‘충격과 공포’다. 이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극명하게 표면화된 문화충격과 문명 충돌의 시대에 지은이는 동·서양이라는 이항대립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 ‘동양의 서양인’이 되고,‘서양의 동양인’이 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부시 부자의 두 전쟁을 두고 지은이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관행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 부른다.’는 몽테뉴의 금언을 끌어온다. 저자가 보기에 ‘진보’와 ‘자유’를 빙자한 두 차례의 전쟁은 동양(야만), 서양(문명)이라는 오래된 서방세계의 편견을 반복, 재생산하는 폭력이자 비이성이다. 이같은 자가당착적 위기는 물론 미국뿐만 아니라 저자의 나라인 프랑스도 마찬가지. 극우파 르펜이 급격히 부상했던 ‘르펜현상’ 등을 예로 들며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는 ‘양식’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국민 우선주의가 세계에 대한 사유 자체를 가로막고 있으며,‘타자’에 대한 경제적·문화적 울타리들은 정치를 실종시키고 있다고 꼬집는다. 아울러 문화 및 인종적 우월감이 내포하고 있는 대재앙의 싹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세계주의적 휴머니즘 개념인 ‘혼혈’ 지향 긴 여정과 치열한 사유를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이 바로 1부 타이틀인 ‘혼합인’이다. 서방세계에 만연된, 인종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하는 한편 ‘타자에 대한 이해’, 나아가 적극적인 섞임을 추구하는 ‘혼혈’을 지향한다.‘세계주의적 휴머니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개념은 동서나 흑백 같은 단순대립을 넘어 ‘타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적극적, 포괄적인 문제를 제시한다.“혼혈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전략이다. 승자 앞에서 살아남고 약자를 구제하는 생존과 구제의 한 방식이다.”란 저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 한나 아렌트, 롤랑 바르트 등 ‘타자’의 문제에 고민했던 선배와 동료들을 불러낸다.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군도(群島)의 사상’을 쫓고자 한 저자의 의지는 그의 문체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체계적 분석과 단언보다는 암시와 역설을 위주로 한 그의 파편적 글쓰기는,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수많은 ‘타자’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 같아 오히려 미덕으로 읽혀진다.2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설] ‘보수’ 정형근 의원 옳은 소리했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당장 대북 비료지원을 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그는 “비료와 당국대화를 연결한 것은 옹졸한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대표적 극우파로 분류된다. 과거 정권에서 안기부(국정원)차장을 지냈고, 용공조작·고문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 인물이 북핵위기 상황에서 무조건적 비료지원을 주장한 것은 신선해 보이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정 의원은 “지금까지 인도적 지원은 정치·군사 협상과 별개로 구분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었고,2002년 2차 핵위기 발발 때도 비료·식량 등 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왔다.”면서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느닷없는 조건부 비료지원 방침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강조해야 할 논리를 야당의 보수성향 의원이 대신한 셈이다. 여권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반성해야 한다. 지난해 중반 이후 북한은 당국간 공식대좌를 기피하고 있다.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남측의 ‘어정쩡한 상호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북핵이 해결되지 않으면 경협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강경정책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주장이 그런 유다. 그러나 미국내 매파를 따라 남한까지 초강경정책을 편다면 전쟁위기가 높아질 게 우려된다. 정부의 판단도 온건론 쪽으로 알고 있는데, 비료지원 문제를 못 풀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특히 비료지원은 봄철 파종기인 이달내에는 해야 한다. 적기에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올해 북한의 식량부족량은 2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핵 때문에 궁지에 몰린 북한에서 대량 아사자까지 발생한다면 극단적 선택이 나올 수 있다. 북한은 올해초 남측에 50만t의 비료지원을 요청했다가 여의치 않자 중국쪽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그만큼 절박하다고 보여진다. 지금이라도 당국회담에 응하면 좋겠지만, 그를 기다리지 말고 예년 수준인 20만t을 우선 지원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 [사설] 반성 촛불로 기념한 종전 60주년

    유럽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2차대전 종전 60주년 기념행사는 역사의 교훈과 패권경쟁의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한 러시아승전 기념식은 표면상 승전국과 패전국의 화해를 내걸었지만 보이지 않는 국가간의 신경전도 있었다.‘강한 러시아’의 야심에 대한 미국의 ‘민주주의 확산’공세가 외교적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 베를린에 켜진 반성의 촛불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전범국이었던 독일 시민들이 보여준 침략 반성과 평화의 기원 정신이야말로 2차대전 종전이 세계역사에 주는 교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쟁범죄의 과오에 대한 사과와 참회 발언을 했다. 발언뿐만 아니라 마지막 피해자가 배상받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물질적 피해배상과 추모기념관 건설도 해 왔다. 반성의 촛불은 브란덴부르크 관문을 중심으로 시민 3만여명이 인간띠를 만들면서 켜졌다. 이 자리에는 오늘 종전 60주년 기념행사의 절정이자 과거 반성의 결정판이라 할 ‘유럽학살유대인추모비’공원이 개막되리라 한다. 일부 극우파 잔재가 있긴 하지만 이런 독일의 압도적인 노력이 유럽통합과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인정을 끌어냈다고 본다. 러시아 승전기념식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참석했다. 전범국가로서 종전의 의미와 현재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독일과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거나, 역사교과서 왜곡을 해놓고 거꾸로 상대국의 교과서를 공격하는 적반하장식 태도로는 세계평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 파동과 한승조·지만원·조갑제 같은 인사들의 극우 발언 퍼레이드 등 뒤에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착취·수탈당했다는 것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외려 그 기간 동안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이론이다. 우리로서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론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기본적으로 ‘근대’에 경도된 물량주의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이 비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량주의와 수치화·계량화는 기본적으로 ‘과학’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과학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수치화·계량화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했지만 온전한 반박이라 하기에는 이르다. 근대화란 단순히 경제개발뿐 아니라 법·제도·문화 등 상부구조적 요소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유의, 서구 미시사의 영향을 받아 최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1930년대 식민지조선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화가 먹물처럼 한반도를 물들여나가고 있었음을 찬찬히 보여준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만만치 않은 것은 또 하나의 버팀목이 있어서다. 바로 ‘자본주의체제 이행논쟁’이다. 이 주제는 1930년대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의 역사적 대논쟁에서 보듯 좌파 경제학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알려졌다시피 모리스 돕은 ‘경영형 부농의 등장’을, 폴 스위지는 ‘시장관계로의 편입’을 중세봉건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체제 이행의 원인으로 꼽았다. 흔히 전자는 내부동력을 원인으로 본다는 점에서 내인론, 후자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외인론으로 불린다. 아주 단순화하자면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 근대화=모리스 돕 논리’로,‘한국·중국 근대화=폴 스위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론적 배경이 이렇기에 한국 식민지근대화론자의 대부로 꼽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원래 학문적 출발점은 종속이론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친일파의 논리’로만 치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내용 립서비스’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 학자들이 해외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부딪히는 벽도 여기에 있다. 한국식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펼치면 외국학자들은 ‘학술논리’로 받아들이기보다 ‘제3세계 정치운동’쯤으로 이해하면서 “아직도 저런 철 지난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서양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국제학술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그런 의미에서 찬반을 떠나 식민지근대화론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때마침 적합한 책이 나왔다. 일본의 경제사학자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가 쓰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가 번역한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혜안 펴냄)이다. 안병직 명예교수가 식민지근대화론자로 변신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사토루 명예교수라는 점도 또 하나의 주목거리다. 일단 1992년에서 2000년 사이 발표한 논문을 모아놓은 이 책의 기획은 야심차다.‘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사’에 맞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사’를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출발점은 경영형 부농이 서양에서 가장 뚜렷했고 일본이 그 다음이었고 그 외 동아시아지역이 뒤를 잇는다는 데 있다. 이 차이점이 향후 동아시아 근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일본은 서구의 충격과 내부의 동력이 동시에 작용한, 이를테면 외인론(폴 스위지)에 내인론(모리스 돕)을 더한 복선적 발전모델을 걷는 반면, 그외 동아시아 국가는 서구의 충격이라는 외인론적 모델에 더 가깝다. 전체적인 그림이 이렇게 그려지면 일본제국주의가 무조건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외려 급격한 봉건잔재 청산으로 근대화가 더 빨리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고 본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본원적 축적’에 가깝다. 이제 민족의 문제로 파악했던 식민통치의 폭력성은 자본주의 근대화의 일반적 폭력성으로 대치된다. 본원적 축적이라는 점에서 ‘개발독재시대’ 역시 도덕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설정된다. 식민시대와 박정희시대에 대한 한국과 일본 우익의 시각이 비슷한 까닭이다.‘그 때는 먹고 사는 게 급했다.’,‘그래도 그 덕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됐다.’는 화법을 떠올리면 된다. 사토루 명예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일본 경제성장을 연구했을 때 경영형 부농층에 이어 형성된 100인 미만의 중소규모 기업이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도 마찬가지였다. 또 서양 자본주의 발달사에도 일부 이런 대목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예 중소규모기업보다 대규모 공장제 생산을 강조했던 서양경제사의 통설을 실증적으로 재검토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역공’이 시작된 셈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논의는 경제발전과 근대화에 관한 일반이론이지만 일본에는 근대화의 내재적인 싹이 있었다는 일본 중심적인 관점이 전제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려대 아세아硏 정안기교수 “우리는 미시적인 경제사회학 연구를 얼마나 축적했나.”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는 사토루 교수의 논의를 ‘친일 대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정 교수는 “사토루가 기본적으로 일본 중심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좁은 틀로만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원래 남미와 아프리카는 동아시아보다 높은 수준의 발전단계를 보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면서 “그렇다면 후발 주자들의 성공적인 근대화에 기여한, 뛰어난 흡수능력은 무엇이냐라는 게 바로 사토루의 주된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사토루의 연구는 “세계사적 전망 속에서 동아시아의 성장을 서구의 경제발전론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경제발전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라는 평가다.‘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제시대 경제성장은 신기루라고 주장한 충남대 허수열 교수의 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정 교수는 “경제사적 연구에서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개입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이해는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전망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주장이 학술적으로 얼마나 유효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안병직·이영훈 교수로 대표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평가는 한다.”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고 말했다. 전부가 아닌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경제사학계만의 논점을 제공하기보다 기존 역사학계와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경제사에 대한 기본 연구성과도 없이 한 연구자가 조선후기·식민지·근대 모두 연구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학문적 결론에 대한 찬반 논쟁 자체보다, 제대로 된 논쟁에 이를 만한 경제사적 연구 기반조차 없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친일발언’ 조영남, 방송퇴출위기

    잇따라 수위 높은 ‘친일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수 조영남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방송계 퇴출 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방송사에서는 진행자 교체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문제의 결정적인 발단은 대표적 극우 신문인 ‘산케이(産經) 신문’ 24일자에 게재된 조영남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면서부터. 자신이 쓴 책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의 일본어 발간에 맞춰 일본을 찾은 조영남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도 영유권과 교과서 문제에 대해)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조영남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KBS 1TV ‘체험 삶의 현장’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MC 퇴출을 요구하는 항의성 글을 속속 올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역사인식이 결여된 친일발언을 일삼는 등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격이 없는 조영남씨가 어떻게 공영방송인 KBS의 진행자로 국민 앞에 설 수 있는가?”라며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진행자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각종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조영남 방송계 퇴출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앞서 조영남은 지난 4일 EBS ‘토론 카페’에 출연해 “산케이신문 서울 특파원인 구로다 기자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발언을 해 안티카페까지 생기기도 했다. KBS 외주제작팀 길환영 팀장은 “시청자들의 분노가 워낙 엄청나 진행자인 조영남씨의 교체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새달 2일 봄개편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결정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조영남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앞에 했던 말은 쏙 빼고 뒷 문장만 게재되는 등 내 말뜻이 왜곡됐다.”면서 “일본에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발언한 게 오히려 반대로 전해졌다.”고 해명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사생활 벗기기 어디까지…

    YTN이 정형근 의원 ‘묵주사건’을 보도한 데 이어 SBS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이야기를 방송했다. 두 사건을 두고 공인의 사생활이 어디까지 보도돼야 하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생활 보호라는 차원에서는 정 의원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평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두 사건 보도에는 일정 부분 차이가 있다. 정 의원 사건 보도는 ‘여성과 장시간 호텔에 함께 있었다.’는 정도지만 김 전 대통령의 경우는 숨겨진 딸의 존재뿐 아니라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는 점이 부각됐다. 당사자들이 법적 대응을 했거나 검토 중인 상황에서 쟁점은 역시 취재·보도한 언론이 ‘사실로 믿을 만큼’ 사전에 충분한 확인취재를 했었느냐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리적 논쟁과 별도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사생활면에서 히틀러는 금욕주의적이었고 루스벨트는 쾌락적이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극우파시스트로,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극복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가까운 예로는 클린턴의 섹스스캔들 때 전통가치 수호를 내건 공화당이 특검수사 결과라는 이름으로 한 편의 포르노물을 버젓이 내놓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섹스스캔들 보도를 비웃어왔던 프랑스는 한 주간지가 미테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을 공개하자 “한건주의 폭로를 중시하는 저질 앵글로색슨형 저널리즘이 침투했다.”는 비판이 일어났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야스쿠니 신사/이용원 논설위원

    ‘국민 가수’로 불리는 조영남 씨가 며칠전 일본 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연초 발간한 저서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의 일본어판 출간을 계기로 우익 성향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가운데 몇 대목은 평소 ‘튀는’ 그의 언행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 일본 전범들의 집합소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두고 “가 보았더니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신사와 다르지 않았다. 한국·중국에서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 세뇌됐다.”라고 한 부분은 그의 낮은 역사의식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의 정체를 알아본 뒤 조씨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도쿄 지요다구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은 초혼사(招魂社)이다. 메이지 유신을 이루는 과정에서 희생된 3500여명을 제사 지내고자 1869년 설립했으나,10년만에 야스쿠니 신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제사 대상을 확대했다. 이 신사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자리잡은 시기는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일본은 비록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러시아에게서 배상금을 받아내지 못한 채 서둘러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는 일본 국민의 큰 반발을 불러와 도쿄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일 정부는 청·일전쟁 때와는 달리 전쟁 희생자 전원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이어 이곳에서 개선 관병식(觀兵式)을 열고 참전 부대에 신사 참배를 시켰다.‘영광된 죽음’을 조작한 것이다. 이후 야스쿠니 신사는 육군성·해군성의 관할에 속하면서 전쟁 희생자의 영혼을 제사 지내는 신사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제국주의로 치달으면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천황’을 내세웠다.‘천황’이 갖는 지위는 신의 자손으로서 제사를 주관하는 종교지도자인 천자(天子), 군을 친히 통솔하는 대원수, 그리고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천황’이었다. 이 가운데 종교지도자와 대원수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창출해낸 수단이 야스쿠니 신사였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군국주의의 부활로 보는 주변국의 우려는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조영남씨는 그를 ‘속이고’‘세뇌시킨’ 세력이 한국·중국 국민인지, 아니면 일본 극우 세력인지 대답해야 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한승조, 지만원 등의 일제관련 망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함께 반박 글을 쏟아냈다. 그러나 “백범 김구는 빈라덴, 일본경찰을 이유없이 죽인 살인범” “일본 대사관에서 집회를 하는 할머니 가운데 80%는 가짜” “전쟁 중에 여성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며, 그것도 일시적이고 예외적 현상이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반박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증스러운 일이다. 정말 이런 망언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방안을 내놓았다.‘일제찬양 행위자 처벌 특별법’을 제정하여 망언을 처벌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원희룡의원도 ‘일제침략행위 왜곡 및 옹호방지법안’제정 구상을 밝혔다. 친일진상규명법에 따라 진상규명위가 친일범죄, 또는 친일 반민족 행위로 규정한 행위를 옹호·찬양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별도 법률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반응을 보인 곳은 오히려 반대의사를 표명한 쪽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되고 폐기돼야 할 국가보안법의 찬양죄 조항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런 법을 제정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전쟁범죄 청산에 철저했다고 알려져 있는 프랑스조차 게소법(Gayssot Law)을 제정해 전범 부인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친일청산이 되지 못한 우리의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망언이 되풀이된다면, 미래세대 역사의 눈은 흐려지고 말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게소법은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재판이 정의한 반인도범죄를 부인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독일과 동맹국이 자행한 잔혹행위와 잔혹행위 혐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공개적 발언, 출판, 방송, 인터넷 유포, 판매자까지 처벌 대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극우 정치인 르펜은 1987년 “가스실은 2차대전 역사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가 120만프랑(2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르펜은 10년후 독일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사소한’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1000여 페이지의 2차대전에 관한 책에서 가스실은 15줄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가 투옥과 함께 법원 판결문의 12개 신문 게재비용 20만프랑(5만달러)을 부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르펜은 이후 스스로 ‘망언’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밖에 수정주의 홀로코스트 사학자 포리송, 철학자 가로디, 국제법 교수 골니시 등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은 거대한 정치적 사기” “독일군은 보호자”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진짜인가”등의 발언을 했다가 처벌되었다. 게소법은 언론의 자유와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대자들은 이 법을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유엔인권위원회는 인권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등도 게소법과 유사한 ‘홀로코스트 부인법’을 제정했다. 언론·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적 자유지만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다. 우리 헌법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고,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했을 경우 피해자는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망언 제한법은 일제 피해자나 순국선열의 명예와 권리 구제를 현행법보다 좀더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처럼 국내에도 일제 식민지를 미화하는 ‘수정주의 사관’이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즈음이다. 민족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이까지 생겼다. 식민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미래세대에 진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깊이 생각할 때라고 본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수학여행와야 먼나라가 이웃나라되죠”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우리 교육자들의 몫입니다.” 일본 나라현 와카야마고교와 나라고교 학생 700여명을 데리고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 지벤학원 후지타 데루키요(藤田照淸·73) 이사장은 20일 일본의 극우세력이 지원하는 후소샤 역사교과서와 관련,“지벤 학원은 (이 교과서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후지타 이사장은 지난 75년부터 30여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1만 5000여명의 고등학생을 한국으로 수학여행보내, 한·일 청소년 교류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독도문제로 불거진 양국 정부의 갈등에 대해 “정부와 정부간의 문제로 민간교류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하면서 “한·일 상호 민간교류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간의 방문이 많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수학여행지로 한국을 선택하게 된 동기에 대해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역사시간에 일본 아스카 문화 등 일본 문화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전해졌다고 배운 뒤 한국에 대해 ‘로망(동경)’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수학여행을 오기 전에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지만 수학여행을 다녀간 후 한국을 진정한 이웃나라로 인식하게 된다.”면서 “30년 전에는 학생들이 한국의 매운 김치가 입에 맞지 않아 모두 일본에서 가져온 컵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했지만 지금은 모두 매운 맛에 익숙해져 있으며,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음악도 아무런 선입관이나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수학여행단은 지난 19일 부산항으로 입국해 경주와 부여, 용인민속촌, 제3땅굴 견학을 하게 되며,21일 오후에는 서울 한양공고와 미림여고를 방문해 양국 청소년간의 우정도 쌓게 된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野 “친미·반미 이분법적 사고”

    동북아균형자론과 노무현 대통령의 ’국내 친미주의자’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와 국방위는 1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NSC(국가안정보장회의) 사무차장을 각각 출석시켜 동북아균형자론 등 현 정부 외교정책의 허점을 따졌다. 특히 야당은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친미·반미의 이분법적인 사고”라며 강력 비난했다. 여야는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도 시각차를 보였다. ●균형자론 및 친미주의자 발언 야당 의원들은 능력과 효과에 대해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인기영합적 외교를 경계하면서 “차리리 ‘탈미친중(脫美親中)’이 더 솔직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송영선 의원도 갈등조정 능력을 강조했고, 통외통위 박계동 의원은 “자기 힘의 과대 평가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국방위 소속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균형자론은 누구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한 것”이라면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균형자론의 근본 취지”라고 정부를 거들었다. 통외통위 김원웅 의원은 “야당도 큰 차원에서 뜻을 모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방위에선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놓고 한나라당은 건전한 비판을 친미주의라고 했다면서 발끈했고, 열린우리당은 굳건한 외교정책 수립을 당부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국가 미래를 위해 건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을 친미주의라고 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면서 “친미·반미의 단세포적인 이분법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한·미 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극우파나 지나치게 친미적인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굳건하게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해달라.”고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방위에선 NSC의 위상과 관련해서 야당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NSC가 자문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대일 독트린’을 공표하는 등 국가 외교·안보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권경석 의원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대일 독트린’을 발표한 것과 관련,“자문기관의 상임위원장이 어떻게 대외정책을 발표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안영근 임종인 의원 등은 “(작계 5029는) NSC가 대처를 잘했다.” 등의 발언으로 NSC를 옹호했다. ●북한 처형 동영상 공개 통외통위에서는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지난달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서 진행된 공개처형 장면을 ‘몰래카메라’ 형태로 찍은 동영상을 10여분간 상영했다. 그는 “판사가 사형을 선고하면 항소권한 없이 즉시 형이 집행된다.”고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폭로했다. 상영 전 열린우리당이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이유로 비공개를 요구해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공개 처형과 관련,“야만적 행동에 통일부가 그냥 넘어간 것은 유감”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박준석 김준석기자 pj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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