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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소 ‘극우본색’

    |도쿄 박홍기특파원|전통적인 극우 성향의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대동아전쟁’을 꺼내 들었다. 취임한 지 7일만이다. 이르면 다음달 초순에 치러질 중의원 선거를 겨냥, 전통적인 보수·우익 세력의 결속을 의식한 계산된 발언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아소 총리는 지금껏 창씨개명, 위안부,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과 관련, 숱한 망언을 쏟아냈지만 대동아전쟁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은 처음이다. 아소 총리는 30일 오후 총리실에서 일본의 과거 전쟁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 질문에 “일·청, 일·러(전쟁)와 이른바 대동아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는 조금 종류가 다르다.”고 말했다. 또 “메이지 헌법 이래 약 120년, 일본의 역사로서 자랑할 만한 역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역사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동아전쟁 자체가 일본이 2차대전 때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건 용어라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아시아가 대동 단결해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한다.’고 주장했다. 2차대전 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총사령부(GHQ) 측은 공문서에서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의 사용을 금지했다. 현재 일본의 교과서에도 ‘태평양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용될 뿐이다. 이종원 릿쿄대 교수는 “아소 총리의 발언이 돌출적이라고 봐 넘길 수만은 없을 것 같다.”면서 “외무상 시절, 역사적 발언에 대해서는 조심해 왔던 그”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동아전쟁을 언급함으로써 우파적 색채를 분명히 드러내려는 속셈 같다.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고도 했다. 아소 총리는 외무상 시절 한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를 의식,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자제하며 실용적 외교를 펴왔던 터다. 일본의 한 외교 소식통도 “정권 유지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으로 국민을 달래는 동시에 극우적 발언으로 보수·우파의 결속을 노리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구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도 야스쿠니신사의 참배를 강행, 보수·우파들의 이탈을 막았던 정치 수단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은 “아소 총리는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인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2차대전을 당시 어른들은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렀다.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고 논란의 확산을 경계했다. 아소 총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어렸을 때부터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 보수정치의 뿌리인 외조부 요시다 전 총리를 꼽고 있다. 아소 총리는 지난 25일 자신을 ‘호전적 국수주의’라고 비판한 미국 뉴욕타임스(NYT)에는 “국수주의자인지 아닌지 간에 내가 애국자라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hkpark@seoul.co.kr ■아소 총리의 주요 망언 ▲2003년 5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일본은 한글 보급에 공헌했다.”(도쿄대 축제) ▲2005년 10월-“우리에게 야스쿠니신사는 미국의 알링턴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영국 옥스퍼드대 강연) ▲2006년 8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중국이 중단을 말하면 말할 수록 가지 않을 수 없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면 더 피우고 싶은 이치다.”(자민당 총재 선거 유세) ▲2007년 3월 “(일본의 요르단계곡 개발과 관련) 일본인은 신용이 있다. 푸른 눈에 금발이었다면 아마 안됐을 것이다.”(나가사키 강연)
  • 오스트리아 총선 ‘극우 강세’ 현 집권좌파 연정향배 촉각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 언론은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오스트리아 총선을 ‘극우파 강세’로 요약했다. 집권 사민당과 인민당이 제1,2정당의 자리를 유지했지만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리아 펙터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이날 “잠정 개표 결과 중도 좌파인 사민당이 유효 투표의 29.7%, 인민당이 25.6%를 얻었다.”고 밝혔다. 최종 개표 결과는 부재자 투표 결과가 나오는 6일 이후에 나온다. 두 정당의 이번 득표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다.2006년 10월 총선에서는 사민당과 인민당이 각각 35.3%와 34.3%를 득표했다. 이는 유권자들이 지난 7월 파열음을 빚은 두 정당의 대연정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음을 뜻한다. 이에 견줘 극우파 정당은 약진했다. 자유당은 18.0%로 지난 총선보다 7%포인트 늘어났고 또 다른 극우 정당인 ‘오스트리아의 미래를 위한 동맹’도 4.1%에서 11.0%로 급상승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부터 투표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추면서 10대 유권자들의 표심이 변수가 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사민당과 인민당이 다시 대연정을 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극우 정당과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지 않는 한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인민당과 극우 정당이 우파 연정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2000년 인민-자유당 연립 정부가 출범할 당시 유럽연합(EU)으로부터 7개월 동안 외교적 제재를 받는 등 국제적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어 쉽지는 않아 보인다.vielee@seoul.co.kr
  • 휘청대는 아소내각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극우파 대표를 자임했던 나카야마 나리야키 국토교통상이 28일 자신의 거침없는 발언 탓에 결국 취임 4일 만에 사퇴했다. 지난 24일 출범한 아소 내각으로서는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11월2일쯤 치러질 중의원 선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더욱이 민주당을 비롯, 야당은 아소 총리의 인사 책임을 추궁할 방침이어서 국회 운영도 순탄찮을 것 같다. 나카야마는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일본은 단일민족이다.”,“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의 아이들은 성적이 나빠도 교사가 된다. 일교조가 강한 곳의 학생 학력이 떨어진다.”,“(나리타공항 지역 주민들을 겨냥) 억지부려 이익을 보는 것은 2차대전 후 교육이 잘못된 탓이다.”라는 등의 ‘극우적’ 소신을 서슴없이 폈다. 나카야마의 발언은 관련 지역과 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야당은 파면을 촉구했었다. 나카야마는 사퇴와 관련,“정부에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역대 각료 가운데 두 번째의 단명 기록이다.1988년 12월 리크루트 사건으로 사임한 하세가와 다카시 법무상은 만 사흘간 재직했다. 아소 총리는 28일 저녁 “(나카야마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임명 책임도 인정했다. 또 후임에 가네코 가즈요시(65) 전 행정담당상을 내정했다. 나카야마 파문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발빠른 조치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은 “(정치적) 타격이 없다면 거짓이다.”고 밝혔다. 나카야마는 문제의 발언 직후 철회, 사과했지만 27일 일교조를 겨냥해 “일교조를 깨부수겠다.”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일교조는 국기와 국가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도덕 교육을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아소 총리의 극우 성향에 맞춰 ‘극우 논객’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게 마이니치신문의 분석이다. hkpark@seoul.co.kr
  • [데스크시각] 위기는 소리없이 다가온다/박현갑 기획탐사부장

    [데스크시각] 위기는 소리없이 다가온다/박현갑 기획탐사부장

    위기는 소리 없이 다가온다. 약자와 강자를 가리지 않는다. 그만큼 파괴력이 크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위기 조짐을 미리 알아차린다. 그리고 대비한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 움직임은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는 얼마전 파산을 선언했다. 또 다른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팔렸다. 최대 보험사인 AIG는 유동성 위기로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무리한 운용과 주택 경기 하락으로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는 예견된 일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는 국내 금융시장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미 증시 폭락에 국내 증시도 동반 추락하고 원·달러환율은 폭등하는 등 불안감은 여전하다. 금융당국의 리스크 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위기 조짐은 기상 이변에서도 읽을 수 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자리잡은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던 수은주도 마찬가지다. 독도 문제도 있다. 일본 극우파의 망언-사과-망언에 국민들의 독도 수호 광고와 비판은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아소 내각 출범 이후 독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국내 과자에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급속도로 퍼지는 먹거리 불안감도 마찬가지다. 중국산 불량·부정식품으로 인한 식품안전 불안감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 만두파동, 납조기, 기생충 김치 등 경고음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정부가 간과했을 뿐이다. 공무원 연금문제는 어떤가. 이미 2002년 말 고갈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24일 정부가 발표한 공무원 연금개혁방안의 골자는 조금 더 내고 덜 가져가는 방안이다. 하지만 재정고갈 시점이 40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급률을 대폭 줄이기로 한 국민연금 개혁조치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공무원 연금은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에 대한 사후보상 성격이 있어 재정안정성만을 고려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공무원은 영리활동 및 겸직이 제한되고 재산등록 및 공개 등 재산형성에도 각종 제한을 받아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공무원 연금수준이 민간보다 높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더 치밀히 준비했어야 한다.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 전망을 토대로 연금보다 일시불을 선택하도록 유인한다든지 국민들의 재정부담을 지우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공시족’(공무원 시험준비족)에서 드러나듯 공무원은 보수를 떠나 대한민국에서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연금발전위원회에 공무원 노조대표, 노조추천자 등 공무원 이익을 옹호할 위원들이 30%나 돼 국민이 원하는 개편안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 되고 말았다. 몇년 뒤 또다시 공무원 연금개편 문제로 여론이 들썩일 게 뻔히 보인다.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는 게 있다.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일을 통해 갖게 된 정보를 토대로 주인과 자신의 이익이 상충할 때 자기 위주로 행동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공무원 연금개편 문제도 이런 문제를 띠고 있다. 국회는 어떤가. 좁은 나라에 300명 가까운 국회의원이 적정한지, 국회의원 보수를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가 옳은 것인지 따져 봐야 하지 않는가. 유명무실한 감사 청구권이나 주민 소환제 등 대리인을 규제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불특정 다수인 주인이 가슴앓이하는 불행을 줄일 수 있다. 박현갑 기획탐사부장 eagleduo@seoul.co.kr
  • 아소, 직접 외교 챙겨… 美와 동맹 중시

    |도쿄 박홍기특파원|24일 취임한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일단 외교를 직접 챙길 태세다. 이른바 ‘톱다운 방식’이다. 중의원 선거 때까지 한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후쿠다 정권의 아시아 중시 외교노선에서 벗어나 미국 쪽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 아소 총리는 고이즈미 정권에 이어 아베 정권까지 두 차례나 외무상을 역임한 ‘외교통’이다. 반면 나카소네 히로후미 외무상은 외교에 첫발을 내디딘 초보자. 아소 총리가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외교에서도 총리 취임사에서 밝힌 ‘밝고 강한 나라’로 일본을 내세울 전망이다. 나카소네 외무상은 오부치 정권 때 문부과학상을, 모리 정권 때 총리보좌관을 역임했다. 보좌관 땐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총괄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을 방문한 첫 문부상인 데다 한·일의원연맹 부간사장을 맡았었다. 북한과의 대화를 촉진하는 의원연맹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나카소네는 25일 “미·일 동맹 강화에 노력하고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와 협력 관계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외교 경험을 의식한 탓인지 “외교는 무엇보다도 정상과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 총리와 하나가 돼 일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카소네의 발탁은 중의원선거를 겨냥한 것이다. 그는 고이즈미 정권의 우정개혁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입각으로 멀어진 우정구성원들을 다독이는 효과와 함께 고이즈미 정권과의 차별화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참의원으로서 외무상 입각은 32년 만이다. 아소 총리는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한다.25일 유엔총회의 출석도 외교노선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 총리로서 3년 만의 참석이다.“일본과 미국, 일본과 중국은 같은 변수에서 생각할 수 없다.”고 밝힐 정도다. 더욱이 외무상 당시 추진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일본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가치관 외교’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아소 총리는 직접 외교를 관장함으로써 한국이나 중국 등과의 마찰을 피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내각에 포진한 ‘극우파들’의 행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나카가와 나리아키 국토교통상은 현재 한·일 관계를 냉각시킨 중학교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명기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이다.2005년 3월 문부상 시절 국회에서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기술하는 방침을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등 역사교육의 전환을 주도했다. hkpark@seoul.co.kr
  •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인터뷰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인터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진화(48) 위원장을 최근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 찾아가서 만났다. 전교조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시작되면서 요즘 심기가 불편할 듯했지만, 의외로 표정은 밝았다. 이슈로 떠오른 ‘수능 원점수’공개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수능 원점수를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요구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하다. 연구용이라고 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자료는 밖으로 새어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안 장관은 만나 봤는지. -안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 저쪽에서 한번 만나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거절했고, 현재로서는 만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최근 역사교과서 수정을 놓고 이념대결 양상이 치열한데. -교과서문제는 정치적인 의도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이미 검증이 끝난 교과서에 ‘좌편향’ 낙인을 찍는 것에 대해 전국의 역사교사들이 분개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서울시 교육청 예산으로 극우인사들이 10월부터 일선 학교에서 역사특강도 한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으로 강연할지 지켜보고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핵심인 국제중과 자율형사립고 설립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뭔가. -상류층 자녀를 위한 계층 분리정책이기 때문이다. 들어간 학생은 물론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도 힘들 수 밖에 없다. 국제중에 어려운 가정의 자녀 20%를 뽑겠다고 했는데,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 해외연수를 가는 층과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하는 층의 위화감을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이번에 만들겠다는 서울의 두 곳이 아니라 다른 지자체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율형사립고 역시 ‘귀족학교’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봐야 한다. ▶교원단체 회원수 공개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반발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에도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싶다’라는 책을 쓴 국회의원은 학교별로 전교조 가입교사 숫자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이를 토대로 전교조 교사가 적은 학교는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는 식으로 선전하는데, 그런 식으로 사실을 왜곡할 거면 ‘차라리 좋다. 다 공개하자.’고 말하고 싶다. ▶전교조 조합원수가 해마다 줄어드는 건 사실 아닌가.7만 3000여명 정도라고 하던데. -회비를 자동으로 공제하는 조합원이 그렇다는 얘기고, 그렇지 않은 조합원까지 다 합하면 8만명에 육박한다. 물론 한때 9만명을 넘었을 때에 비하면 줄어든 건 사실이다. ▶이유는 뭔가. -학부모와 소통이 잘 안 됐기 때문이다.‘공부를 안 시킨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는 학교교육의 실패를 우리 조합원들에게 돌리는 보수세력이 가세한 것이고, 그래서 더 어려워진 것이다. ▶교원평가제와 관련한 소신을 밝힌 현인철 전 대변인이 갑자기 물러났는데. -일개 조합원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대변인은 조직방침과 다른 발언을 하면 안 된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에 대한 비난도 많은데. -차등성과급, 근무평정은 이미 있어 왔고 비공개였지만 그걸로 인사와 승진을 좌우했다. 하지만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종합적인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추행, 성적조작, 금품수수를 하는 부적격 교사를 오히려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오는 12월 임기가 끝나는데. 재출마할 생각은 있는지. -뜻을 같이 하는 후보를 열심히 도울 생각이다. 글 김성수 이언탁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아소 내각, 한일 신시대에 역주행 말아야

    일본 자민당 아소 다로 총재가 어제 신임 총리로 취임했다. 한·일 관계가 극히 경색된 시점에 전임 후쿠다 총리보다 더욱 극우 민족주의적 성향의 그를 정점으로 새 내각이 발족한 것이다. 우리가 아소 체제의 출범을 축하하기에 앞서 우려섞인 눈길로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소 총리의 등장으로 우리에겐 걱정거리가 더 늘어난 꼴이다. 평소 그가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강제징용은 없었다.”는 둥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낸 탓이다. 상대적으로 아시아를 중시했던 전임 후쿠다 총리 시절에도 일본의 독도 도발로 한·일 관계는 크게 꼬였다. 일본이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명기하면서다. 더군다나 현재의 불안한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아소 총리는 취임 초의 대중적 인기를 지렛대 삼아 중의원 해산 후 조기 총선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선거 결과를 떠나 이 과정에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 경향만 더 심화된다면 불행한 일이다. 현해탄이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한·일의 상호 의존관계는 숙명이자 업보다. 그러잖아도 북핵 6자회담 정상화와 미국발 금융위기 공동 대처 등 양국간 긴급 현안이 돌출한 시점이다. 부품·소재 산업의 기술이전, 지구온난화 등 환경 분야 협력, 나아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미래지향적 과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 4월 한·일 신시대를 열자고 했던, 양국 정상간 다짐을 되살려야 할 이유다. 그러려면 아소 내각이 불필요하게 이웃을 자극하는 일부터 삼가야 한다. 일본이 주도해야만 아시아의 번영이 보장된다는 대동아공영권식 망상 대신 주변국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일본에도 이롭다는 점을 인식하란 뜻이다.
  • 사막 총리는 누구인가

    사막 순타라(72) 태국 총리가 9일 태국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끝내 불명예 퇴진했다. 국민의 힘(PPP)을 이끌고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승리한 뒤 총리직에 오른 지 7개월 남짓 만이다. PPP는 탁신 전 총리와 가까운 인사들이 세운 정당으로 사막은 탁신의 대리인을 자처해 왔다. 반(反)탁신 단체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정부청사를 점거하고 사막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막은 2000∼2004년 방콕시장을 역임하면서 소방차 구입과 하수처리 시설 사업을 추진하면서 횡령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현재도 방콕 부시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상황이어서 헌재 결정이 아니더라도 총리직은 위태로운 상태였다. 태국 헌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은 입각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중국계인 사막은 1968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20년 동안 의원직을 유지하며 장·차관을 8차례나 역임했다. 극우파로 알려진 그는 1970년대 중반 학생운동을 비난하는데 앞장섰다. 내무차관 시절에는 “공산주의자는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으며, 내무장관 시절에는 좌익 운동가 수백명을 체포했다. 사막은 서민적인 풍모로 노동자 계급의 인기를 얻었으나 ‘거친 돼지’나 ‘개 주둥이’ 같은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입이 거칠어 정치 전문가와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요리사와 기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막은 TV 요리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총리직에서 낙마하는 불운을 겪게 됐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데스크시각] 올림픽과 경제력/곽태헌 산업부장

    [데스크시각] 올림픽과 경제력/곽태헌 산업부장

    기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말레이시아가 주최하는 메르데카컵이라는 축구대회가 있었다. 태국이 주최하는 킹스컵도 있었다. 한국은 메르데카컵과 킹스컵을 모방해 박 대통령의 성(姓)을 딴 박스컵을 만들었다. 메르데카컵이나 킹스컵, 박스컵에 출전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동남아시아의 버마(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을 포함해 6∼8개국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한 출전 멤버였다. 요즘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경쟁상대가 되지 않지만 당시 한국은 이런 대회에서도 우승하기가 버거웠다. 1970년대까지는 학교에서 혼식(混食)검사를 했다. 쌀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이라 박정희 정부는 쌀밥만 먹지 말고 보리밥을 섞어 먹으라면서 혼식을 장려했다. 담임선생님들은 쌀밥만 싸온 것은 아닌지 점심시간에 형식적인 검사를 했다. 한국은 1948년 영국 런던올림픽에 첫 출전했을 때 동메달만 2개를 따 종합순위로는 32위에 그쳤다.1972년 서독 뮌헨올림픽때까지 종합순위는 30위 안팎이었다. 보통 그때까지는 올림픽에 출전한 나라는 100개국을 넘지 않았다. 북한은 뮌헨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땄지만 한국 국민들은 4년 뒤인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야 애국가를 들을 수 있었다. 레슬링에서 딴 금메달 한개 덕분으로 19위로 껑충 뛰었고, 그 뒤에는 올림픽때마다 대체로 10위 안팎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끝난 중국 베이징올림픽에서는 200개국이 넘는 나라가 참가했으나 한국은 ‘기대´보다도 훨씬 좋은 7위에 올랐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북한은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12년만에 금메달을 따는 등 선전했으나 순위는 33위에 그쳤다. 기자는 한국의 올림픽 메달과 순위를 보면서 경제력을 생각한다. 한국이 경제력에서 북한을 앞선 게 1970년대 초반이었으니 북한보다 첫 금메달을 늦게 딴 게 경제력 측면에서만 보면 당연해 보인다.1960∼70년대 기초를 다진 중화학공업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을 밑바탕으로 우리의 올림픽성적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선배 선수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나 요즘 우리 선수들은 없어서 먹지 못하지는 않는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도와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경제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복싱, 레슬링 등 격투기종목에서 주로 메달을 땄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메달을 따는 종목이 다양해진 것도 경제력의 힘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톱10’에 포함된 국가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호주,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다. 모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15위내에 있는 국가들이다. 전면적인 전쟁이 없는 요즘에는 군사력보다는 경제력이 힘이다. 물론 군사력도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강해질 수 있다. 중국이 큰소리를 치는 것은 군사력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 10년쯤 뒤에는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게 중국의 힘이다. 독도문제가 불거지거나 일본의 극우인사들이 역사왜곡을 할 때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조용히 실력(경제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GDP는 일본의 22%에 불과하다.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허구한날 여야가 민생과는 관계없는 불필요한 싸움이나 할 게 아니다. 관료들은 ‘정권코드’나 맞추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감세(減稅)는 필요없다.’고 했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감세가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는 관료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영혼과 소신 없는 관료는 경제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곽태헌 산업부장 tiger@seoul.co.kr
  • [사설] 日 독도 야욕 단발성 아닌 지속적 대응을

    그제 일본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전격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낮은 지지율 등 국내 사정 때문이라지만, 우리에게도 ‘강건너 불’일 순 없다. 일측의 독도 야욕으로 양국 관계가 급랭한 가운데 한·일 무역역조 심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한 형편인 까닭이다. 더욱이 후임 총리로 국수주의적 성향의 아소 다로 자민당 간사장이 유력하다니, 정부가 일 정국을 예의주시하면서 장단기 대응책을 점검할 때다. 우리는 총리 교체 후 일본이 독도 도발을 멈추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요즘 일측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5일 각료회의에서 의결될 방위백서에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계속 명시한 사실이 그것이다. 그나마 일본 내 극우세력이 거론해 온, 독도주변 수역의 방위력 강화나 한국의 불법 점거 주장 등이 빠진 게 불행 중 다행일 정도다. 후쿠다 총리 이후가 걱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아소 간사장은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희망해 이뤄졌다.”는 등 국주수의적 인식으로 우리의 분노를 사지 않았던가. 우리는 일 보수우익의 간판인 아소 간사장이 총리가 되면 일본내 보수파를 설득해 오히려 유연한 대한 외교를 펼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관측이 사실이길 바란다. 그러나 그런 불확실한 기대에 앞서 누가 총리가 되든 일측이 독도 야욕을 쉽게 접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일측의 간헐적 독도 도발에 냄비처럼 끓다가 말게 아니라 실효적 지배나 국제여론전 강화 등 파상적이고도 지속적인 대응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 [열린세상] 베이징올림픽 이후의 동북아 평화/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열린세상] 베이징올림픽 이후의 동북아 평화/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의 향배가 주목된다. 마침 이달 말에는 중국 주석 후진타오의 방한도 예정되어 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것이 1910년 8월이니,100년이 됐다. 베이징올림픽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따져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중국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지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한·일합병 100년과 중국의 부상, 다음 100년, 아니 가까이 다음 10년 아시아의 질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100년 전 대한제국 말기와 비교해 지금의 동아시아는 어떠하며, 환갑을 넘긴 대한민국은 안녕하고, 안녕할 것인가.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침탈이 가속화되던 1880년대, 당시 청의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주일 외교관 황준헌이 수신사 김홍집에게 ‘조선책략’을 전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황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국제정세에서 조선의 살길로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를 제안한다. 전략적 주적은 러시아였다. 당시 제국주의 최강자인 영국은 논외로 하고,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은 뒤 조·중·일 3국이 연대해서 주적 러시아를 견제하자는 말이다. 1900년을 전후한 동아시아권에서 아시아주의, 아시아연대론, 조·중·일 ‘삼국공영론’ 등은 상당히 인기있는 화두였다. 일본이 내세웠던 ‘동양평화론’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1905년 러일전쟁시 일본은 조선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내걸었고, 고종을 비롯해 조선의 민초들 역시 러시아에 맞서 일본에 각종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청이 ‘아시아의 환자’ 노릇을 하는 동안, 동아시아를 놓고 벌인 일본과 러시아간의 패권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일본이었다. 상당수 조선의 지식인은 이 러일전쟁을 황백인종간의 인종전쟁으로 파악하였고, 일본은 그러기에 황인종의 현실적 대안이 되기에 충분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 등이 내세운 동양평화론이 결국은 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조선의 합병으로 귀결되었을 때 그 동양평화, 아시아연대란 결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이데올로기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안중근은 유명한 미완의 옥중유고 ‘동양평화론’을 통해 이토류 동양평화론의 허구를 맹렬히 성토하고, 결국 이것이 동양평화의 파괴를 불러 왔음을 웅변한다. 물론 지금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안중근의 논설이 다분히 ‘인종론적’이고, 이토와 일왕을 애써 구분하며, 동학운동을 폄훼하는 등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양평화론의 행동플랜으로 당시 일본이 차지한 여순항을 조·중·일 3국이 공동관리하고, 공동의 군대를 창설, 공동의 화폐를 발행하는 일종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창했음은 그 자체로 놀랍게 ‘현대적’이다. 100년 전과 지금이 다름은 자명하다. 우선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이 아니다. 구한 말과는 달리 남북은 분단되어 있다. 러시아가 한·중·일 공동의 주적도 아니며, 미국은 동아시아의 ‘키다리아저씨’도 아니다. 티베트, 위그르 등 ‘아시아의 화약고’를 안고 있지만, 올림픽 이후 중국이 ‘아시아의 환자’는 아니다. 과거 러, 일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퉜다면, 지금은 중, 미가 그렇다. 여기에 남북한, 일, 러를 더하면 ‘동양평화’로 가는 방정식이 훨씬 복잡해진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친미로만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북이 서로 불통이라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자칫 황준헌이 ‘조선책략’에서 경고한 바, 연작처당(燕雀處堂) 곧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처마 밑 참새와 제비가 즐겁게 노는’ 형국일 수도 있다. 올림픽 이후 동아시아는 100년 전 ‘아시아주의’를 훨씬 뛰어넘는 대담한 역사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일본의 극우 군국주의, 한반도의 분단 너머에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소통과 연대를 상상해 본다. 여기에 중국의 시민사회와 새로운 지식인의 출현마저 기대하면 과욕일까.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책꽂이]

    ●자전거의 역사(프란체스코 바로니 지음, 문희경 옮김, 예담 펴냄) 200여년 동안 인간의 삶에 유용한 도구로 자리매김해온 자전거의 역사.1000여장의 사진이 담긴 화보집.8만원.●공부도 경영이다(김영재 등 지음, 푸른솔 펴냄)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자기완성에 다가가는 ‘자기경영’ 원리가 21세기 학습현장에서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자녀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자기경영 습관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귀띔.1만 2000원.●더 뉴스-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셰일라 코로넬 지음, 오귀환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펴냄) 오사마 빈 라덴 단독 인터뷰, 폴 포트 최초 인터뷰 등 주요 사건들을 현장에서 취재한 아시아 기자 9명이 아시아 현대사의 고비고비를 생생한 육성으로 재구성했다.1만 6000원.●철학이 있는 부자(시부사와 켄 지음, 홍찬선 옮김, 다산라이프 펴냄)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메이지(明治)시대의 실업가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1840∼1931)의 어록을 빌려 일본 자본주의 근간에 스민 부(富)의 철학을 엿본다.1만 3000원.●미국-명백한 운명인가, 독선과 착각인가(최승은·김정명 지음, 리수 펴냄) 자유기고가, 대학교수인 저자들이 ‘민간인’의 시각으로 미국의 정체성을 더듬었다. 미국 역사를 조명함은 물론 비만과의 전쟁과 자원봉사에 열중인 오늘날 미국 사회의 다양한 면모까지 두루 살폈다.1만 5000원.●기우뚱한 균형(김진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현재를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가 맞부딪치면서 아우성치는 상황이라 진단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 바람직한 중도의 의미를 모색했다.1만 3000원.
  • 佛 극우정당 FN 르펜 총재 딸 “아버지 이어 총재직 도전”

    佛 극우정당 FN 르펜 총재 딸 “아버지 이어 총재직 도전”

    |파리 이종수특파원|‘극우정당 국민전선(FN) 총재 대잇기.’ 프랑스 FN의 당수인 장마리 르펜의 딸 마린(40)이 20일(현지시간) 차기 총재직 도전 의사를 공식적으로 내비쳐 화제다.2004년부터 FN의 부총재로 활동하고 있는 마린은 이날 일간 르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10년 실시할 FN 총재 선거전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vielee@seoul.co.kr
  • [열린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열린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삭발하고 지리산에 머문 지 석 달째다. 세상 최고의 예술작품도 자연 만큼 아름답지도, 역동적이지도 못하다고 새록새록 느끼는 하루하루다. 새 소리에 잠을 깨면 솔숲 새로 어느덧 동살이 희붐하다. 눈부시게 청초한 산목련과 새뜻한 으아리, 소담스레 꽃들을 단 까치수염 곁으로 여름 햇살이 스며들면, 꽃잎에 연 이슬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발을 옮기면, 솔향기를 함빡 담고 와 볼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은 그지없이 청량(淸凉)하고,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에 나무들이 제 생긴 대로 화답하여 내는 교향곡은 더 없이 청염(淸艶)하다. 몸을 낮추어 가까이 들여다보면 손톱보다 작은 참꽃마리 하늘색 꽃잎이 그지없이 아리땁고, 서서 멀리 바라보면 첩첩이 이어진 지리산의 품이 마냥 너그럽고 웅대하다. 자연은 읽을수록 의미가 샘솟고, 늘 감동해도 다함이 없는 무진장의 텍스트다. 이리 자연을 벗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일은 고운 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IMF 이후 서울은 급속도로 타락했다. 대화의 소재는 돈 버는 것과 감각에 즐거운 것 일색이다. 이 판에서 올바른 삶에 대해 말을 꺼내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 십상이었는데, 여기 오니 그 반대다. 서울에선 타인의 것을 취해 내 것으로 삼는 길에 대해 고민하는데, 여기는 타자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방편에 대해 성찰한다. 세속의 탐욕과 부패가 싫어, 출가한 사람, 귀농한 사람, 활동가로 뛰는 사람, 대안교육을 하러 온 사람들이 실상사, 인드라망공동체, 생명평화결사, 귀농학교, 작은 학교를 매개로 공동체를 이룬 탓이다.‘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한국 버전이다. 여기 사람들은 다른 전원마을이나 생태마을처럼 나 혼자 자연 속에서 잘 살고자 하지 않는다. 스님, 농민, 학생이 한 데 어울려 버스를 빌려 대운하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 순례를 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채의식에 시달리던 필자도 신나서 그들과 함께 하였고 따로 광화문에도 갔다. 그날 강경진압이 예고되었는 데도 수많은 시민들이 태평로에 운집하여 강렬한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촛불이 맺힌 사람들의 눈동자는 야생화보다 아름다웠다. 그를 보며 “자연보다,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좀 더 어여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자들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밉살스러운 것에 대하여 저항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두울 때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이들의 저항이 있었고, 이것이 모여 세상을 바꾸었다. 극우파 사람들도 지금 한국 사회에 부조리와 부패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금이 있어 바다가 썩지 않듯, 이 저항하는 주체가 있었기에 세상은 그나마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게다. 세상 이치가 이럴진대, 군대만 갔다 오면 공손해져서 돌아오는 복학생들, 자유로운 지성의 광장이어야 할 대학에서마저 폭력을 행하거나 이를 수용하는 학생들, 아무 비판도, 질문도 없이 대학생활을 소일하거나 새내기부터 취업공부에만 매달리는 예스맨들이 오늘의 한국 대학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정, 교육, 사회, 국가의 시스템이 모두 억압에 길들여지도록 강요하고 내면화하는 복종의 문화인 탓이다. 이를 깨고,‘발칙한’10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고, 구속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실명으로 인터넷에 댓글을 올리고 있다. 그들에게서 ‘추한 것에 저항하는 주체’의 싹을 본다. 그 싹들을 밟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우는 행위다. 먼저 싹을 틔운 이들은 그 싹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싹들이 오롯이 자라 서로 의지하며 숲을 이루고 꽃들로 흐드러져 세상 곳곳으로 향기를 날릴 때, 사람들은 말하리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숲이 저기 대한민국에 있다고.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 “촛불장난 너무 오래 한다”

    “촛불장난 너무 오래 한다”

    소설가 이문열(60)씨가 17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촛불장난을 너무 오래 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가 하면, 네티즌들이 보수언론 광고주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범죄행위이고 집단난동”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씨는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20일까지 재협상 발표가 없으면 정권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움직임과 관련해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12%대까지 하락한 원인을 묻는 질문에 “성급함, 부주의함, 말과 의욕이 앞서가는 것”을 꼽으면서도 “사실 이상한 형태의 여론조사를 믿지 않으며, 사회적 여론조작이 개입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수입 반대)’ 하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공영방송을 사수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여론조사 개입이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며 “정부 대변인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영방송의 경우, 정부에 인사권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네티즌들이 보수 언론에 대한 광고중단 운동을 하는 것과 관련,“정부가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정책들을 전부 꺼내 가지고 반대하겠다고 하면서 촛불시위로 연결하는 것은 집단난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병이라는 것은 내란에 처했을 때도 일어나는 법”이라며 일종의 의병운동으로서 촛불집회 반대여론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진영의 위기에 대해서도 그는 “지난 선거를 통해 더 이상 물려받지 않아야 할 권위주의 시대 보수의 유산까지 전부 보수의 이름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이것이 분열과 혼란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문열의 ‘말장난’이야말로 도를 넘었다.”면서 격앙된 분위기다. 아이디 ‘oksusu31’은 “촛불장난이라니, 그럼 참여한 100만 시민은 장난친 어린애냐?”면서 최근 출간한 이씨의 소설 ‘초한지’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주장했다.‘할 말을 했지만 지나쳤다.’는 의견도 있었다.‘malchemy’는 “초기 촛불집회와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국민 다수의 의견을 한마디로 묵살해버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도 이날 논평을 내고 “이씨는 더 이상 보수진영의 논객이 아니라, 대중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수구극우주의자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특파원 칼럼] 사르코지·빌팽 그리고 소통/이종수 파리 특파원

    [특파원 칼럼] 사르코지·빌팽 그리고 소통/이종수 파리 특파원

    #장면1. 그는 잘나가는 실세 총리였다.2006년 최초고용계약제(CPE)라는 카드를 꺼내기 전까지는….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인 그랑 제콜의 하나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외교부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내무·외무장관을 거쳐 총리로 발탁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당시 현안이었던 실업률, 특히 20%를 웃돌던 청년실업률을 잡으면 그 여세를 몰아 여당의 엘리제궁 티켓을 거머쥘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심을 잘못 읽었다. 돌아온 것은 두달에 걸친 대규모 파업이었고 법안은 사문화됐다. 결국 대권 가도에서 멀어졌다. #장면2. 그는 잘나가는 대통령이었다. 타고난 정치적 감각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내세워 우파는 물론 극우파와 중도파, 심지어 좌파 일부의 표마저 얻어 지난해 5월 꿈에도 그리던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취임 한달 뒤 지지율을 67%나 확보하는 등 샤를 드 골 대통령 이후 5공화국 최고의 인기 대통령에 올랐다. 이후 자신이 직접 나서 1년 동안 55개의 개혁 법안을 진두지휘하면서 질풍가도를 달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을까? 그의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급기야 취임 1년 즈음 지지율 30%대의 수렁에 빠졌다. 앞의 주인공은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 뒤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다. 새삼 두 사람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은 최근 한국에서 화두로 떠오른 ‘소통의 문제’ 때문이다. 두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서 갑자기 혹은 서서히 추락한 배경을 돌이켜보면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다. 빌팽 전 총리와 사르코지 대통령의 패인은 ‘소통의 부재’라는 지적이 많다. 빌팽 전 총리는 CPE문제를 다루면서 민심을 잘못 읽었다.26세 미만의 청년들에 대해 2년 동안 임시로 고용한 뒤 해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법안이 발표되자 야당은 물론 청년들이 들고 일어섰다. 한번도 선출직 공직을 맡아보지 못해서였던지 빌팽 총리는 민심과 소통하는 대신에 ‘강공’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두번째 악수(惡手)였다. 정부가 발의한 법안은 긴급한 사안의 경우 국회 토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공포할 수 있다는 헌법 49조에 따라 야당과 논의를 거치지 않고 공포했다. ‘앞으로 내게도 닥칠 일’이라고 판단한 고교생마저 시위에 합류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1996년 알랭 쥐페 총리의 연금개혁안에 대한 대규모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빌팽 총리는 홍역을 치렀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소통 부재’라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자신만이 ‘프랑스 병’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에 갇혔다. 그가 꺼낸 ‘과거와의 단절’엔 브레이크가 없었다. 그 때문에 국민들이 바란 수위를 훨씬 넘어섰다. 프랑스에는 국민들이 5공화국 대통령에 대해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세가지 역할 모델이 있다. 대통령의 역할은 ▲정당 입장을 경청한 뒤 결정을 내리는 중재자 ▲정당 위에 존재하는 통합자 ▲핵심적 사안에만 전념하기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의 행보는 세 가지에서 모두 벗어났다. 모든 이슈를 본인이 제기했고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또 여당의 모든 일에 개입했고 공기업 연금 개혁 등을 놓고 사회당과의 조율도 무시했다. 여기에 이혼과 재혼 과정을 통해 지나치게 사생활을 노출하면서 그를 지지한 보수층이 등을 돌렸다. 결국 지난달 대담 형식의 인터뷰에서 ‘소통의 부재’를 인정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말수와 사생활 노출 빈도를 줄이는 대신 역대 대통령이 참석하던 공식 행사을 챙기면서 스타일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빌팽 전 총리와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기’라는 밀실에 갇혀 민심이라는 ‘광장’을 소홀히 한 대가는 냉혹했다. 민심은 천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佛 68혁명 40돌] (5·끝) 현대적 의미는

    [佛 68혁명 40돌] (5·끝) 현대적 의미는

    |파리 이종수특파원|“68혁명의 세계사적 의미는 대학생들의 항거가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을 견인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서구의 다른 변혁운동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프랑스 석학 에드가 모랭(87)은 68혁명의 의미를 ‘대학생이 주축이 된 항거’로 꼽았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오후 6시. 갑자기 쏟아진 폭우 속에 파리3구 생클로드 7번지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다. 그는 “갑자기 비가 많이 오죠?”라며 기자를 맞았다. 최근 부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아서일까.4개월 만에 다시 만난 노학자의 얼굴은 이전처럼 밝지만은 않았다. 이어 68혁명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도 짤막하게 대답했다. 68혁명의 의미를 묻자 그는 “20세 안팎의 청년들이 공동체와 자유에 대한 염원을 갖고 처음으로 독립된 계층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선언한 사건”이라고 정리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68혁명 주축은 자유와 공동체를 갈망한 대학생들이었다. 그 근거로 “대학생들이 중심에 있었기에 당시 5월 한달 정도의 총파업이 가능했다.”며 “그 덕분에 프랑스 68혁명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급진적이고 열기가 뜨거웠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혁명의 주체가 바뀌고 추구하는 이상도 조금씩 달라졌다고 설명했다.“처음 몇주 동안은 다니엘 콘-벤디트 등 142명의 학생이 조직한 ‘3·22 운동’이 혁명을 주도했다. 이때만 해도 자유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자와 마오쩌둥(毛澤東)주의자들이 ‘혁명의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운동을 주도한 뒤로는 급진적으로 변했다. 공동체주의나 개인주의가 자리잡을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한편 68세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약간 냉정했다. 그는 “68혁명 세대들이 점진적으로 당시의 정신을 폐기처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혁명이 남긴 ‘유산’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렸다.“68혁명을 계기로 유럽 좌파운동은 한 단계 비약했다. 또 68혁명이 남긴 큰 유산은 이데올로기 투쟁을 지양하고 다양한 시민운동이 탄생하는 데 ‘젖줄’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어 68혁명이 가져온 구체적인 변화상을 설명했다.“68혁명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의식이 바뀌었다. 또 환경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성적 소수자, 예컨대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능했다.” 68혁명 뒤 실제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큰 줄기는 여성운동, 환경운동과 반핵운동, 탈권위주의 문화 등이었다. 그 줄기에는 다양한 모습의 열매가 맺혔다. 피임과 낙태의 자유, 자유 결혼, 청바지와 미니스커트 등장, 교수에 대한 자유로운 질문, 비트와 록음악 보급, 전투영화 등장, 참여 예술 확산 등이다. 모랭은 68혁명의 와중에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는 “그저 목격자 혹은 관찰자 정도로 혁명의 현장에서 약간 비켜 서 있었다.”면서 “르 몽드에 68혁명 관련 연재기사를 두 차례 쓰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그의 입장은 극좌파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3년 동안의 레지스탕스 참여를 거쳐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으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면서 출당당했다. 화제는 ‘현대’로 넘어왔다.‘68혁명 잔재 청산’을 주장한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만큼 68혁명의 의미가 퇴색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사르코지의 승리는 68혁명과는 다른 문제”라며 “그는 극우파는 물론 중도파, 심지어 좌파 일부까지 끌어들이는 타고난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자신의 저서 ‘문명화 정책’을 사르코지 대통령이 올 신년 연설에서 인용한 배경을 물었더니 “그(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봐야죠?”(웃음)라며 말을 아꼈다. 화제가 된 당시 그는 르 몽드 네티즌 독자와의 대담에서 “내가 그 책에서 강조한 것은 문명화를 상징할 수 있는 정책은 인류애의 정책이어야 하고 그 속에서 각 문명의 장점을 잘 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르코지 대통령이 말한 ‘문명화 정책’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vielee@seoul.co.kr ■에드가 모랭은 프랑스의 현존하는 대표적 석학. 그의 삶은 크게 ‘현실 참여’와 ‘학문적 업적’으로 나뉜다.1921년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대학에서 역사·지리·법학 학위를 땄다. 2차대전 당시인 42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어 전투부대, 프랑스1군 참모부 선전 장교로 활동했다.‘모랭’은 당시에 쓰던 가명으로 유명하다. 50년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다전공 연구’를 주창했다. 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 2년간 거주하면서 그가 창안한 학문적 방법론 ‘복합적 사고’의 토대를 다졌다. 최근까지 평화·비폭력 문화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인간과 죽음’‘유럽을 생각한다’‘지구는 우리의 조국’ 외에 3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면 썩게 되죠”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면 썩게 되죠”

    신자 5만명, 전체 사제 수 230명의 작은 교회 대한성공회. 많은 일반인들에겐 그저 ‘영국 국교’쯤으로 알려진 소수종교이지만 이 땅에서 1890년부터 선교를 시작해 옹골찬 신앙을 이어 개신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유연한 교단 운영과는 달리 구성원들의 ‘줏대있는 소신’으로 인해 작지만 강한 교회로 인상지어지는 대한성공회. 내년 1월 박경조 주교의 뒤를 이어 대한성공회 제5대 서울교구장으로 착좌하는 김근상(56) 신부는 어찌보면 성공회에서 가장 ‘성공회적인 사제’중 한 명이랄 수 있다. 어느 자리에서나 분방하게 속말을 뱉으면서도 남의 말을 잘 듣는, 아주 유연하고 강한 신부이다.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처럼 진짜 신앙의 의미는 뻔히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이기는 데 있습니다.” 서울교구장 착좌에 앞서 22일 주교 서품을 받는 김 신부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공부도 못했고, 품성이 썩 고운 것도 아닌데 교구장으로 뽑힌 것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함께 잘 어울릴 사람이 누구인가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운동권·베이시스트·연극배우…‘괴짜´ 신부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결탁할 때 빠르게 부패한다.”는 김 신부는 그러나 “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키듯 잘나지 못한 이 사람에게 성공회를 지키는 큰 소임이 주어졌다.”면서 뼈있는 말을 이어갔다. “성공회가 500여년간 변함없이 가져온 큰 미덕은 서둘지 않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합의점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맡은 교구장은 바로 이 미덕을 지켜 교회 안팎의 갈등과 대립을 풀고 일치시키는 소임이겠지요.” 법으로 강제하는 공동체가 아닌, 자발적 신앙으로 어우러지는 공동체의 전형이라고 성공회를 설명하는 김 신부. 그는 극우니 극좌니 하는 양단의 분별이 아니라 여러 색깔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빚는 무지개처럼 느슨한 일체감으로 어우러지는 성공회의 신앙 전통을 흐트러뜨리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서강대 화학과를 3학년 1학기에 중퇴하고 가톨릭대 신학부를 나와 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 과정을 마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재학시절 이른바 운동권에도 몸담았고 밴드에 가입해 베이스 기타를 치는가 하면 연극배우와 연출가로도 뛰어다녔다. 그래서인지 툭툭 쏟아내는 말이며 짓는 몸짓이 어디 한군데에 맺히지 않은 채 자유롭다. 별명 그대로 ‘괴짜’스럽다. ●아버지는 성공회 서울성당 주임사제 외할아버지가 성공회 서울성당 주임사제를 지낸 뒤 6·25전쟁 중 평양에서 교회를 홀로 지키다 순교한 이원창 신부. 아버지는 성공회 서울성당 주임사제를 지낸 김태순 신부. 신학대에 진학할 뜻을 비치자 어머니가 “아버지와 남편을 이어 어떤 여자를 또 데려다 더 고생시키려드느냐.”며 다림질하던 다리미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장과 ‘온겨레 손잡기 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통일운동과 북한돕기에도 앞장선 활동가. 그 누구에 못지않게 북한동포를 향한 연민이 크지만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잡고 도와야 할 인간들이기 때문에 돕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은 아주 싫어한단다. ●“후배 사제들 고통의 땅으로 보낼 것” “불교며 기독교 사람들이 지탄받는 데 대해 종교인의 하나인 성공회 사제로서 공동 책임을 느낀다.”는 김 신부. 종교인, 신앙인으로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해 동료 사제와 교우들이 절실하게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00명 중 89명이 끼니마다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오지의 사람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습니까. 성직자들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훈련을 받고 뛰어야 합니다. 후배 사제들을 라오스며 캄보디아 미얀마 등 고통의 땅에 보내 도전의식을 키울 것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세르비아 총선 ‘경제 실리’ 택했다

    세르비아 국민의 선택은 단호했다. 언제까지 민족적 자존심에 발목잡혀 경제를 희생시킬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11일(이하 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이변을 만들어냈다. 세르비아 선거위원회는 12일 유럽연합(EU)가입을 공약으로 내건 친서방 성향의 민주당 주도 연합세력이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친서방 연합세력은 38.8%의 지지율로 제1당에 올라선 반면 코소보 독립을 지지한 EU를 비난하며 친 러시아 전략을 내세운 급진당은 29.2%의 지지율에 그쳤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보도했다. 민주당을 이끄는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세르비아가 유럽으로 가는 길에 분명한 지지를 보냈다.”고 말했다.EU 의장국 슬로베니아와 프랑스 정부는 즉각 환영 성명을 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급진당이 민주당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던 점에 비춰볼 때 예상 밖의 일이다. 지난 2월 대선에서 타디치 대통령에게 패한 극우 민족주의자 토미슬라프 니콜리치의 급진당은 이번 총선에서 세르비아 민족의 성지인 코소보를 지키기 위해선 EU에 절대 가입해서는 안 되며 세르비아를 지지하는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타디치 대통령은 “EU가입이 오히려 코소보 독립을 저지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EU의 일원으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총선 직전 EU 17개 회원국이 세르비아 국민의 비자 면제 혜택을 결정하고, 이탈리아의 피아트 자동차가 세르비아 현지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하는 등 EU국가들도 적극적인 지원 작전을 폈다. 30%의 높은 실업률과 낙후된 경제현실에 시달리는 국민은 결국 급진당의 ‘민족 자존심’보다 민주당의 ‘경제 실리’에 더 큰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EU연합 가입이 순탄하게 이뤄질 것으로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친서방 연합이 의회에서 차지할 의석이 전체 250석 가운데 103석으로 과반수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77석을 확보한 급진당과 치열한 세력 규합 대결을 벌여야 한다. 현재 온건민족주의자인 코스투니차 총리의 세르비아민주당이 30석,2000년 축출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사회당이 20석, 자유민주당이 13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셈법이 쉽지 않다. 애초 타디치 대통령과 연정을 구성했던 코스투니차 총리와는 의견 차이가 커서 재결합이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이념적 성향이 다른 사회당이나 코소보 독립을 유일하게 지지하는 자유민주당과의 협력을 꾀해야 한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법원 ‘인종차별’ 판결 파문

    2006년 11월 비무장 흑인 3명에게 총탄 50발을 난사해 1명을 숨지게 한 미국 경찰이 무죄로 풀려나 인종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26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 주법원의 아서 쿠퍼맨 판사는 25일 마크 쿠퍼(40)와 마이클 올리버(36), 게스카드 이스노라(29) 경찰관에게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쿠퍼맨 판사는 “경찰들로서는 범죄행위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판결했다. 그는 “마약과 매춘사건을 수사하던 중 현장에 있었던 흑인들이 권총을 휴대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증언이 믿을 만하다.”고 덧붙였다. 쿠퍼맨 판사는 “피고인들의 총기발사 행위가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다.”고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흑인들이 총기를 휴대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판결이 내려진 데 대해 흑인 사회가 크게 분노하고 있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1999년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의 흑인 아마도 디알로가 경찰이 쏜 19발의 총탄에 맞아 숨진 사건을 떠올리며 ‘제2의 디알로’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판결이 내려진 이날 법원 앞에는 경찰관 수십명이 배치됐으며, 흑인들은 “살인마”“KKK(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운 극우 비밀결사)”라고 외치기도 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판결 불복을 표명할 수 있으니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제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이 사건으로 숨진 숀 벨(당시 23)은 당시 결혼식을 코앞에 둔 새벽 4시쯤 친구 2명과 함께 스트립클럽에서 나오다 총격을 받고 숨졌다. 벨의 유족들은 연방 차원에서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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