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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성용 “‘욱일승천기’ 보고 눈물”…‘원숭이 세리머니’ 해명?

    기성용 “‘욱일승천기’ 보고 눈물”…‘원숭이 세리머니’ 해명?

    ‘일본 비하 세리머니’로 도마에 오른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기성용(셀틱)이 트위터를 통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기성용은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정말 고맙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들 내 가슴 속에 영웅들입니다. 관중석에 있는 욱일승천기를 보는 내 가슴은 눈물만 났다.”라는 글로 동료애과 일본전 패배의 아쉬움을 표현했다.  기성용은 경기 직전 “우리 가족과 국민 자존심을 위한 것이며 나를 위한 것이다.”라면서 “최고의 조연이 되고 싶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기성용의 ‘욱일승천기’ 언급은 일본전 페널티킥 성공 직후 선보인 ‘원숭이 세리머니’의 속뜻을 애둘려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욱일승천기’는 일본 국기의 빨간 동그라미(태양) 주위에 퍼져나가는 붉은 햇살을 그린 깃발로 일본 제국주의 및 극우 세력의 대표적 상징이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당시 일본 제국의 슬로건인 ‘대동아공영권’에서 이름을 따 ‘대동아기’로도 불렸다. ‘욱일승천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사용이 금지됐지만 자위대를 창설을 계기로 부활해 현재 일본 해상자위대는 16줄기의 욱일기를, 육상자위대는 8줄기의 욱일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날 일본 관중석에 등장한 ‘욱일승천기’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일부 일본 응원단은 ‘피겨퀸’ 김연아의 얼굴에 악마를 연상시키는 붉은 뿔을 붙인 ‘김연아 악마가면’을 써 눈총을 샀다. 자국의 대표적 피겨 선수인 아사다 마오도 있는데 굳이 김연아의 얼굴을 응원도구에 활용한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한국 응원단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담긴 대형 그림을 내걸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전세계 흔든 긴박감 넘치는 장편 스릴러

    세계적으로 5000만부가 팔린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의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시리즈가 국내에서 재출판됐다. 문학에디션 뿔 측은 14일 “2008~09년 국내에 밀레니엄 시리즈를 소개한 출판사의 저작권 기한 만료로 스웨덴 측과 새로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며 “10억원대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선인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밀레니엄의 판권료도 억대 수준”이라고 밝혔다. 뿔은 지난 12일 출간된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전2권)을 시작으로, 2월에는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와 3월에는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까지, 밀레니엄 시리즈 6권을 이어 낼 예정이다. 기자 출신의 무명 작가였던 라르손의 데뷔작이자 유작인 이 장편 스릴러는 2005년 스웨덴에서 1부가 처음 출간된 뒤 지금까지 스웨덴에서만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넘는 35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잡지 ‘엑스포’의 편집장이었던 라르손은 2004년 ‘밀레니엄’ 출간을 6개월 앞두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밀레니엄’은 잡지사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어두운 과거를 지닌 여성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한 소녀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긴박감 넘치게 그렸다. 파시즘과 인종차별, 극우파와 스웨덴의 여러 사회 문제를 고발한 잡지 ‘엑스포’의 편집장으로 반파시즘 투쟁에 앞장선 라르손은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18살에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만난 동갑 여성 에바 가비르엘손과 사랑에 빠져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지만 32년간 법적으로 혼인하지 못했다. 영화보다 극적인 삶을 산 저자의 경험이 녹아난 내용에다 라르손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겹쳐 밀레니엄 시리즈는 그야말로 열풍을 일으켰다. 라르손은 스웨덴 출신 동화작가가 쓴 ‘말괄량이 삐삐’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추리문학과 만화 비평가로 활동했고, ‘스칸디나비아 SF 소설협회’를 이끌기도 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현재 46개국과 저작권 계약을 한 상태로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1400만부가 판매됐다. 아마존의 전자책 서비스 ‘킨들’을 통해서도 100만권 이상이 판매돼 첫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했다. 저자 라르손은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유명인사 사후 소득’ 순위에서 지난해 1800만 달러(약 200억원)의 수입으로 6위에 올랐다. 오는 12월에는 ‘세븐’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하고 ‘007 카지노 로열’의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연을 맡아 할리우드 영화로도 개봉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밀레니엄이 이번에는 한국 독자로부터 어떤 반응을 불러모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경제난·보수화 ‘美독설정치’ 불렀다

    20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 8일 애리조나 투손의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독설정치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 논객들 사이에서 난무하는 독설과 증오의 수사학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미국 사회가 더욱 보수성향을 띠고 게다가 경제까지 어려워지면서 민심이 더 각박해지고 독설도 더 날을 세워가는 양상이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희생양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수 진영, 특히 극우 성향을 띠는 논객들의 거침없는 발언은 대리만족과 함께 확대재생산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동안 여러 전쟁을 치러왔고 지금도 두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독립 당시부터 자위권 차원에서 총기소유가 합법화돼 있는 상황에서 총기나 전쟁과 관련된 용어와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발언들은 나날이 일상화돼 가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쟁점인 건강보험개혁법 처리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때 독설과 증오 섞인 비방이 난무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운동인 티파티의 간판 격인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지난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번에 총격을 받은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현역의원 20명을 낙선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이들을 사격대상으로 삼자고 촉구하듯 미국 지도에 이들의 지역구를 십자과녁으로 표시하고 “후퇴하는 대신 재장전하라.”고 촉구했다. 티파티 후보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해리 리드에 도전장을 냈던 섀론 앵글은 “리드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서는 수정헌법 2조(무기 휴대권리 합법화)가 최선책”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상원의원에 출마했던 한 민주당 후보는 상대후보를 비방하며 “총으로 쏴야 한다.”는 격한 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대통령을 총으로 쏴버려야 한다.’, ‘없애 버려야 한다.’ 등의 말은 유세장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엄청난 인기와 함께 영향력을 갖고 있는 라디오 토크쇼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걸러지지 않은 독설들을 빠르게 확산 시키면서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이 같은 독설 문화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保·革 독설책임공방 오바마 어부지리?

    保·革 독설책임공방 오바마 어부지리?

    애리조나 총격 사건의 책임을 놓고 진보와 보수 진영 간 공방이 뜨겁다. 이번 사건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워싱턴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놓고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보수 우파 인사들의 독설과 선동적인 행동을 거듭 문제 삼고 나섰다. 사건 이후 미국 언론들은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서 남을 비방하거나 분노와 증오를 여과 없이 표출하는 행태가 극심해진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하며 쇄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뉴욕의 온라인 뉴스매체 ‘데일리 비스트’와 MSNBC 방송의 진보 성향 뉴스 진행자들은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와 보수 우파 인사들의 독설이 이번 범행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 8일 사건 직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글렌 벡과 러시 림보 등 보수 논객들이 ‘증오의 풍토’를 조성해 왔다면서 공화당과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세에 몰린 보수 논객들은 10일 일제히 반박에 나섰다. 극우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인 림보는 보수 논객들의 자극적인 언사가 이번 총기 난사를 자극한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일부 진보 성향 인사들에 대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한 민주당이 정치적 활로를 찾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림보는 “총기 난사 범인인 제러드 리 러프너가 페일린의 페이스북을 열어봤다는 증거가 없고, 보수 성향의 폭스TV를 즐겨봤다는 증거도 없다.”면서 “이번 사건은 제정신이 아닌 애송이가 저지른 사건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글렌 벡도 자신과 페일린, 림보 등을 포함한 보수 논객들이 폭력의 위험성을 키웠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되받아쳤다. 그러나 ‘독설 정치’를 둘러싼 두 진영의 책임 공방은 민주당보다 공화당에 정치적 타격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도 이번 사건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증오와 독설정치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면 공화당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정치 공세가 주춤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학자들은 이 같은 관측의 근거로 지난 1995년 168명의 생명을 앗아간 오클라호마 시 연방 건물 폭탄 테러 사건을 들고 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뒤 이 사건으로 정치력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25일로 예정된 의회 국정연설에서 이번 총격 사건을 계기로 워싱턴 대결 정치의 종식을 촉구하며 불리한 정국 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日왕가 이세신궁은 조선신 모셨던 사당”

    “日왕가 이세신궁은 조선신 모셨던 사당”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국학원 산하 광복의병연구소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새로운 한·일 관계의 모색’을 주제로 한·일 공동 학술대회를 연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1867~1932)의 삶을 재조명하는 자리다. 우당은 일제 침탈이 가속화되자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단군을 믿는 대종교 신도로서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살다가 일제의 호된 고문에 숨졌다. 발표 논문 가운데는 홍윤기 한·일천손문화연구소장의 ‘한·일 고대사의 올바른 인식’이 가장 눈길을 끈다. 홍 소장은 일본 왕가의 상징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사실은 조선신을 모셨던 사당이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아메노히보코(한국의 ‘연오랑 세오녀’ 신화)가 일본에 ‘곰신단’(熊の神籍)을 세웠고 여기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을 본뜬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 도쿄대 사학과 교수였던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1839~1931)도 연구 끝에 1891년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물론 구메 교수의 최종 주장은 “그러니까 조선땅을 되찾는 것이 일본 본연의 임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본 극우파들은 이런 주장이 일왕의 신성성을 해친다고 여겨 일본도를 들고 구메 교수의 집을 기습했다. 아울러 끝내 그를 도쿄대 교수 직에서 내쫓았다. 정경희 국학학술원장은 “이렇듯 뿌리가 같은 한국과 일본이 근대에 이르러 적대적으로 만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우당은 1931년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면서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과 일본인까지 참여토록 했다.”면서 “우당의 이런 정신을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론의 기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아메리칸 르네상스’는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배후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미 정부가 용의자로 체포된 제러드 리 러프너(22)가 영향을 받은 매체로 ‘아메리칸 르네상스’를 지목했다. 폭스뉴스는 9일(현지시간) 단독 입수한 국토안보부 메모를 인용, 러프너가 아메리칸 르네상스와 연결돼 있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편집장인 제러드 테일러(60)는 러프너가 구독 신청을 하거나 관련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러프너가 유튜브 등을 통해 올린 동영상은 아메리칸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국토안보부는 보고 있다. 반정부, 반이민, 반유대정부적 시각을 지닌 아메리칸 르네상스는 전직 기자인 테일러가 1991년 만든 월간 발행물이다. 미 예일대 철학과를 나와 프랑스 그랑제콜 시앙스포에서 국제 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폐간된 워싱턴스타와 PC매거진에서 기자생활을 한 그는 1994년 이민과 인종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내건 ‘신세기재단’(new century foundation)을 만들었다. 신세기재단은 미 극우파와 연결돼 있는 신나치단체인 ‘파이오니어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애리조나의 총성 그 앞에 ‘독설’이 있었다

    애리조나의 총성 그 앞에 ‘독설’이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소녀는 3000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미국 현대사 최악의 비극 속에서 태어났다. 비통해하던 사람들은 소녀를 보며 “희망의 증거”라며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9살 되던 해, 소녀는 광기 어린 총구 앞에서 힘없이 스러졌다. 소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그린. 아버지 존 그린은 “비극으로부터 와서 비극으로 인해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최연소 희생자인 그린의 죽음 앞에서 미국 사회는 비통함에 잠겼다. 동시에 편가르기와 인신공격, 독설을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결국 그린을 죽음으로 내몬 ‘진범’이라는 비판과 반성이 나온다. 그린은 미국의 다양한 상징을 오롯이 담은 채 태어났다. 9·11 테러 당일 펜실베이니아 웨스트그로브 지역에서 출생했고 이후 테러일에 태어난 아기를 주마다 1명씩 추려 선정한 ‘희망의 얼굴’ 50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그린의 사진이 인쇄된 책자는 9·11 테러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미국 사회에 뿌려졌다. 그린은 밝고 총명했다. 초등학교 학생회 간부를 맡은 그는 동물을 사랑해 수의사를 꿈꿨지만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린은 지역의 유명 여성 정치인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행사장에 따라나섰다가 총탄에 희생됐다. 무엇이 그린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을까. 미 정가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는 새삼 극단적 정치문화의 자화상을 떠올렸다.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을 겨냥한 가해자가 살육극을 벌인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반정부 메시지를 근거로 정치적 불만이 그 배경일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참사의 이면에 독설과 폭력성이라는 정치문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10일 미 정치계에 상대를 자극하는 말이나 위협, 폭력에 대한 맹목적 선동 등이 상당한 수준으로 번졌으며 이번 사건이 극단적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마 카운티의 클레런스 듀프니크 보안관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공직자들이 꾸준히 위협받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미국이 이제 정신차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당파적 이익을 앞세운 격렬한 논쟁이 일상화되면서 사회에 극단의 문화를 퍼뜨리고 있다는 자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진 정치인들은 정치적 힘겨루기 과정에서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독설을 퍼붓는 것은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정가에서는 참사의 원인과 배경을 둘러싼 논쟁도 일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용의자 제러드 리 러프너의 극우 성향을 부각시키며 공화당을 몰아세웠다. 이에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인격장애를 지닌 ‘사이코패스’의 범행으로 몰며 정치적 파장을 줄이려 하고 있다. 기퍼즈와 대립각을 세웠던 보수적 유권자운동 단체 티파티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 우리를 비난하지 말라.”고 항변했다.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겨냥한 책임론도 나온다. 페일린 전 주지사는 지난해 봄 건강보험개혁법안이 통과된 뒤 법안에 찬성한 기퍼즈 의원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 20명을 낙선 대상 ‘살생부’에 올리고 이들 지역구를 사격을 위한 총기 십자선 과녁 모양으로 표시한 미국 지도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때문에 페일린 전 주지사의 정치 선동이 과격분자를 자극해 불행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매뉴얼 클리버 공화당 의원은 “많은 부분은 워싱턴 정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어떤 논쟁에서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말은 이 나라에 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정파와 정당 간에는 치열한 대립이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영국 의회에서 인신 공격을 자제하기 위해 다른 의원을 부를 때 전통적으로 ‘존경하는’(honorable)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이는 툭하면 막말과 육두문자, 멱살잡이가 되풀이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회도 되새겨 볼 문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60대 할머니 용기가 총기난사 추가 희생 막았다

    60대 할머니 용기가 총기난사 추가 희생 막았다

    주말 미국을 경악시킨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은 용의자 제러드 리 러프너(22)의 사전 계획된 단독 범행쪽으로 기울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당국은 10일 ‘정신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는 러프너가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을 살해대상으로 정하고 사전에 범행을 계획해 왔다는 증거들을 찾아냈다.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물결이 확산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토록 한 가운데, 수사당국은 다른 반정부단체나 극우단체가 개입했을 개연성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러프너가 백인우월주의단체 ‘신세기재단’이 펴내는 잡지 ‘아메리칸 르네상스’ 웹사이트에 여러 차례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돼 연관 가능성을 조사중이다. ●“단독범행 추정”…극우매체 연관성 조사 연방수사당국의 조사기록에 따르면 투산의 러프너 집에 있는 금고에서 그의 서명과 함께 ‘나의 암살’, ‘사전에 계획했다.’, ‘기퍼즈’라고 휘갈겨 쓴 봉투가 발견됐다. 기퍼즈 의원에 대한 사전 암살 계획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금고에서는 2007년 기퍼즈 의원실이 이번 사건이 발생했던 것과 같은 유권자 행사에 참석했던 러프너에게 보낸 감사 편지도 발견됐다. 러프너가 수년째 기퍼즈 의원을 주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추정됐던 50대 남자는 러프너를 사건 당일 세이프웨이까지 태워다준 택시 기사로 확인됐다. 9살짜리 소녀와 존 롤 연방판사 등 6명이 숨지고 기퍼즈 의원등 14명이 다친 이번 사건의 용의자 러프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몇년새 급격하게 성격이 바뀌었다고 미 언론들이 러프너의 고교와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 동료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프너는 2007년부터 피마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면서 교실과 도서관에서 말썽을 피워 5차례나 교내 경찰과 언쟁을 벌인 끝에 지난해 9월 교칙 위반으로 정학 처분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대학 동급생들의 말을 인용해 러프너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징후들을 보였으며, 2008년 육군에 지원했다 약물 문제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상·하원 의원들의 신변 경호에 비상이 걸렸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9일 상·하원 의원과 가족, 의원 보좌관들과 전화회의를 갖고 신변 경호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상·하원의원 경호 비상 한편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 용감한 4명의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용의자 러프너를 제압한 덕택에 총기 난사 사건 피해는 더 커지지 않았다. 10일 ABC방송에 따르면 사건 당일 권총에 장전돼 있던 실탄 31발을 다 쏜 뒤 총알을 다시 장전하려는 러프너를 현장에 있던 61세의 패트리샤 마이시(여)와 74세의 빌 배저 등 남성 3명이 달려들어 쓰러뜨렸다. 3명의 남자들이 러프너를 제압한 사이 61세의 패트리샤는 용의자로부터 새 탄창을 빼앗아 추가 피해를 막았다는 것이다. 패트리샤는 인터뷰에서 “범인이 주머니에서 탄창을 꺼내기에 그 탄창을 붙잡았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광고·콘텐츠 확보 경쟁… ‘승자의 저주’ 현실화되나

    광고·콘텐츠 확보 경쟁… ‘승자의 저주’ 현실화되나

    31일 종합편성채널(종편) 4개와 보도채널 1개가 선정됨에 따라 미디어시장은 격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치열한 ‘생존투쟁의 시대’로 접어들어 ‘승자의 저주’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교차한다. 신생 매체가 5개나 쏟아지는데, 이를 뒷받침해 줄 광고시장은 신통치 않다는 점 때문이다. 때문에 2~3개 정도의 신규매체만 소화할 수 있다는 시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무려 4개의 종편채널이 선정된 데 대해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비해 보도채널은 1개만 선정돼 공정성 논란을 키운다. 당장 ‘짜여진 각본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선정결과 발표 이전부터 종편은 최대한 많이, 보도채널은 아예 선정하지 않거나 1개만 줄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졌다. 연합뉴스는 공교롭게도 예비사업자에 대한 청문심사일인 26일 직전에 전 일간지에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광고를 냈다. 한 탈락 사업자 측은 “보도채널의 경우 애초에 글로벌 경쟁력 항목은 배점에서 6%에 불과했는데, 청문심사 직전 방송통신위원회가 보낸 공문에는 주요 평가지표로 적혀 있었다.”면서 “특정 사업자를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힘 있는 종편은 절대평가, 만만한 보도채널은 상대평가’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여론 쏠림 우려도 크다. 야당 몫 방통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이뤄진 ‘반쪽 의결’에서 알 수 있듯, 심각한 분열 후유증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중립성 훼손과 원칙 부재’를 들어 선정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 신규 사업자들 또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난관은 ‘먹거리’(광고)다. 광고시장이 크게 늘지 않는 한 파이를 더 잘게 잘라 먹을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지상파 방송은 물론 기존 프로그램 공급자(PP)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당장 KBS의 수신료 인상안이 ‘소폭 올리되 광고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잡힌 것도 KBS의 ‘강력한 견제구’라는 말이 나온다. 중간광고 허용 등 ‘무더기 종편’ 안착을 위한 특혜조치들이 이어질 경우 반발 강도는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종편만 방송이고 우리는 방송도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신생 매체들이 좋은 번호대와 의무 재전송까지 요구할 경우 기존 케이블방송사업자(SO)들은 “채널편성권을 침해당한다.”며 반발할 게 뻔하다. 양질의 콘텐츠 확보도 넘어야 할 과제다. 경험이나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콘텐츠를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몇몇 유명인들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양산될 우려가 높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이미 간판 스타급 연예인은 자신의 몸값을 3배 이상 부르고 있다.”며 “종편은 비싼 외주제작 비용 때문에 자사 채널방송분 말고 2차, 3차 판권은 외주제작사에 내주게 돼 초기에는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방송업계에서는 종편 스카우트 대상이 거론되고,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핵심 인력에 대해서는 각서까지 받아두고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렇게 하더라도 자체 생산 콘텐츠로 방송시간을 채울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기존 지상파들조차 24시간 방송을 노리고 방송시간을 야금야금 늘리고 있지만, 대개는 재방송이나 편집방송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처럼 극우 상업방송 폭스뉴스가 등장하고, 일본의 저가 프로그램 수입이 허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동시에 신규 사업자 간 인수·합병(M&A)이나 합종연횡이 이뤄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파다하다. 조태성·안동환기자 cho1904@seoul.co.kr
  • 박근혜, MB와 정책 차별화 가속

    박근혜, MB와 정책 차별화 가속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정책 차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슈에 대립각을 세우는 시끄러운 ‘정치적 반대’가 아니라 조용한 ‘정책 차별화’로 대선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29일 친박계 의원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투명한 연구단체를 통해 좋은 정책을 만들려는 노력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창립을 서둘렀다. 2007년 경선 때 뒤늦게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정책 대결에서 밀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반성과 경선보다는 본선이 중요한 2012년 레이스를 앞두고 우선 현 정권과 정책적으로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배경이었다고 친박 의원들은 설명했다. ‘박근혜 정책’은 기본적으로 보수를 지향하지만 2007년에 비해서는 ‘좌클릭’할 전망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국가미래연구원에 남덕우 전 총리 등 원로 학자들이 빠지고, 40~50대 학자들이 주축을 이룬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극좌와 극우는 배제하지만, 합리적인 진보는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표적인 반(反)신자유주의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와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건전한 국가 역할 등에서 교집합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국가미래연구원장인 김광두 서강대 교수도 “2007년에 내놓은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운다)는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었다.”면서 “양극화, 고령화, 저출산이 심각한 현시대에 맞게 ‘줄·푸·세’도 유기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줄·푸·세’ 공약 입안자다. 복지를 보는 시각도 현 정부와는 차이가 있다. 청와대와 친이계는 “복지 재정은 이미 충분하다.”는 입장인 반면 이한구·이혜훈 등 친박계 ‘경제통’들은 “세금 누수를 막고, 4대강 공사와 같은 토목건설 예산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우선 확보해야 하지만, 복지 예산 확충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민족갈등 때문에…

    15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가 민족 갈등으로 일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러시아인만을 위한 러시아 건설’을 내세우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소수민족을 공격하고 캅카스·중앙아시아 출신 무슬림들이 이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해 30여명이 부상당했다. 칼과 몽둥이, 가스총, 전기충격기까지 동원됐다. 특히 모스크바 시내 서쪽 키예프 역 주변에선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주변에 있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면서 최악의 충돌 사태가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시내 주요 지역에 3000명이 넘는 경찰과 대테러부대 요원들을 배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국영 리아노보스티통신은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내 곳곳에서 연행한 사람이 8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유혈 충돌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4일 한 슬라브계 러시아인 프로축구 팬이 패싸움 도중 캅카스 출신 청년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자 극렬 축구 팬(훌리건)들과 스킨헤드 등의 극우 인종주의자들이 합세해 지하철역 등에서 소수민족을 상대로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 이에 소수민족들도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에는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가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 궁 바로 옆에서 과격 시위가 벌어져 수십명이 다쳤다. 일간 노바야 가제타는 현 상황을 “민족 맥락에서 발생한 내전”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상당한 책임이 러시아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한 러시아 인권단체 관계자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강조하는 이슬람 게릴라 척결과 ‘강한 러시아’ 정책이 러시아 사회에서 반이민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AP통신도 러시아 정부가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타 민족 혐오증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의구심이 폭력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소수민족 대표들은 지난 13일 모스크바에 모여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폭력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은 정부가 이를 방관하기 때문이라면서 정부가 이들을 막지 못한다면 자위권을 발동해 스스로 지키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아영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슬라브계가 암묵적으로 극우주의자들에 동조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들을 공공연하게 후원하면서 갈수록 극우단체들이 조직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진숙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다민족국가인 러시아에서 인종 갈등은 국가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라면서 “러시아 정부 특성상 극우주의자와 소수민족을 모두 통제하는 강압적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리영희 명예교수 타계]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 떨어지다

    [리영희 명예교수 타계]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 떨어지다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양심적 언론인, 언론학자였던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이 떨어졌다. 최근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지병인 간경화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오던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5일 0시 40분 숨을 거뒀다. 그는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병세가 호전되자 2005년 대담집 ‘대화’를 출간하고, 지난해 “한국 사회가 파시즘 시대의 초기로 회귀하고 있다.”고 사자후를 토하는 등 지성인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병세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투병중에도 지성인 역할 게을리 안 해 리 명예교수의 삶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입대해 1957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육군 통역장교로 복무하던 7년 내내 ‘미국이 불하한 외국 군대의 군복을 마다하고 작업복을 고집’했던 것은 그의 타협 없는 원칙을 엿보게 하는 하나의 일화였다. 공적인 자리에서 국가와 민족에 복무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이후 언론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사상을 벼리고,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작업에 한 치의 게으름도 없었다. 1957년 ‘합동통신’에 입사해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언론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4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처음 구속됐고, 1969년 ‘조선일보’에서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 기사를 썼다가 해직됐다. 1971년 군부독재 반대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합동통신에서 또다시 해직됐다. 1972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로 옮겨 언론학자가 된다. 삶의 방법은 바뀔지라도 길이 바뀔 수는 없었다. 해직과 복직이 반복됐다. 1976년 한양대 조교수로 재직 중 해직됐고, 1980년 3월 복직했으나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 조종자로 분류되며 같은 해 다시 해직된 뒤 1984년에야 복직됐다.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차례의 해직,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0여 차례에 걸친 구속·감금 등의 경력은 그의 빛나는 이성과 냉철한 지성이 어떻게 실천됐는지 보여 주는 작은 장치였다. ●살아 있는 고전(古典) 된 숱한 명저들 1980년 리 명예교수가 신군부에 의해 구속됐을 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를 은사 삼은 제자들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시대가 엄혹할수록, 우상과 반이성의 광풍이 휘몰아칠수록 그를 사숙(私淑)하고자 하는 이들은 세대와 지역, 계층을 떠나 그를 ‘몽롱한 의식에 끼얹어진 찬물 한 바가지’로 읽고자 했다. 유신정권이 절정이던 1974년 리 명예교수는 인류사적·사회사적·외교사적인 냉철한 접근을 통해 반공·냉전·극우 논리가 판치는 기존 논리에 대해 새로운 사고를 제시했다. 시대의 고전이 된 ‘전환시대의 논리’는 특히 베트남 전쟁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꿨음은 물론이다. 1977년에는 역시 당시 금기의 국가였던 중국을 다룬 ‘8억인과의 대화’를, 한국 사회의 반이성적인 반공 극우 이데올로기를 혁파한 ‘우상과 이성’을 펴냈다. 이후에도 ‘분단을 넘어서’(1984), ‘역설의 변증’(1987), ‘자유인, 자유인’(1990),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담집 ‘대화’(2005) 등 숱한 저작을 남겼다. 홍세화(63)씨는 “(리영희를 통해) 삶의 중요한 변곡점을 얻었다.”고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했고, 고병권(39) 사회학 박사는 “리영희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각성을 전달하는 교육자였다.”고 높이 평했다. ●“나는 언론인 70, 교수 30이오” 리 명예교수는 경력으로 치면 대학에서 20여년, 언론사에서 14년을 지냈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정체성을 일컬어 ‘언론인 70, 교수 30’이라고 자평했다. ‘리영희 평전’의 출간을 앞두고 최근까지 리 명예교수를 만나곤 했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리 선생이 제일 안타까워한 것은 남북문제와 언론의 타락상이었다.”면서 “그는 최근 신문이 방송으로 나서는 것을 두고 ‘보수 언론과 이명박 권력이 화간하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리 명예교수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자 실천가였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언론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언론자유상과 늦봄통일공로상, 만해실천상, 한국기자협회 제1회 ‘기자의 혼’상, 한겨레통일문화재단상 등은 그를 삶의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언론계 후배들이 바친 헌사이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윤영자씨와 아들 건일·건석씨, 딸 미정씨가 있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 고은 시인으로 결정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미시마 유키오와 천황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미시마 유키오와 천황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 사병대인 ‘방패의 모임’을 이끌고 일본 자위대 옥상을 점거한다. 그곳에서 그는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 회귀에 대한 연설을 한다. 1000명이 넘는 자위대 군인들이 그의 연설에 비웃음으로 보답하자, 그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사무라이식 할복자살로 마흔 다섯 삶을 마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그라졌던 일본 극우파들의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패전 이후, 발을 디밀 틈이 없었던 군국주의자들에게 미시마의 할복 사건은 그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국주의자들은 미시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미시마가 처음 천황을 보았던 것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였다. 졸업식장의 맨 앞에 앉은 천황은 길고 긴 졸업 예식 중에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무력할 만큼 움직임이 없는 천황의 모습이 그 어떤 카리스마 있는 존재보다 훨씬 강하게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당시 미시마에게 천황은 확실히 비인격적이고 신성하며 절대적인 존재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니 패전 이후 스스로가 신이 아니라고 자처했던 천황의 ‘인간선언’은 미시마뿐 아니라 일본국민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절대적 존재로서의 천황과 인간선언을 해버린 천황 사이의 모순 속에서 미시마는 자신이 소망하는 천황의 이미지를 발전시킨다. 미시마가 발전시킨 천황의 이미지는 훗날 전공투(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단체)에 불려나간 도쿄대 강단에서 했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천황관은 소위 우익의 천황관과는 전혀 다릅니다.…내가 말하는 천황이란 통치하는 인간 천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폐하가 ‘만요슈’ 시대의 폐하와 같이 자유롭게 프리섹스를 하는 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인간 천황이라고 할 때에는 통치자로서의 천황, 권력 형태로서의 천황을 의미하고 있는 거죠. 나는 옛날의 신과 같은 천황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재현시키고 싶은 겁니다.” 미시마는 전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데 힘을 쏟는 군국주의적 천황과는 다른 천황을 꿈꾸었다. 미시마의 천황은 정치라는 인간적 상황에 침범당하지 않는 신성한 영역, 즉 삶과 괴리된 예술작품 같은 이미지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의 할복자살이 예술과 삶을 하나로 연결해 보겠다는 시도로 읽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극우파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것은 틀림없다. 미시마는 죽고 없으니 그는 이제 천황제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제대로 피력할 기회조차 없다. ‘금각사’에서 미조구치의 다짐처럼 사람은 역시 살고 봐야 한다.
  • “유대국가 인정해야 시민권 준다”

    “유대국가 인정해야 시민권 준다”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는 서약을 한 사람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이스라엘 내각에서 승인됐다. 사실상 ‘앙숙’인 팔레스타인 이민자를 겨냥한 조치다. ‘충성서약법’ 통과에 대해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지식인들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극력 반발할 태세여서 중동지역 정세가 다시 얼어붙을 조짐이다. 11일 AFP 등 외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내각은 지난 10일 각료회의에서 찬성 22명 대 반대 8명으로 시민권 관련 개정 법안을 통과시켰다. 의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 발효할 이 법안에는 시민권을 취득할 때 ‘나는 유대 민주국가인 이스라엘에 충성하는 시민이 되고 이스라엘의 법을 준수할 것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서약문에 서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이미 시민권을 취득한 이스라엘 내 아랍계 주민이나 이스라엘에 이민 오는 유대인은 서명하지 않아도 된다. 내각을 통과한 개정안은 극우파인 ‘이스라엘 베이테누’ 당이 처음 제출한 발의안 가운데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은 군 복무를 하거나 다른 공익근무 활동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빠지는 등 다소 손질되기는 했으나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결혼해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충성 서약’을 해야만 하는 등 독소 조항을 그대로 담고 있어 인권 침해 논란이 예상된다. 법안이 통과되자 이스라엘의 아랍계 정치인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의회 내 아랍계 의원인 아흐메드 티비도 “특정 이념에 충성을 맹세해야 시민권을 주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지식인들도 법안 내용을 비판하고 나섰다. 예술가와 학자 등 100여명은 지난 10일 텔아비브의 독립기념관 앞에 모여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면서 법안폐기를 주장했다. 교육심리학자인 가브리엘 솔로몬 교수는 “이스라엘이 독일 나치가 1935년 제정한 인종차별법과 같은 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단체들도 이 법안 통과로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주민에 대한 차별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반발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황장엽과 현충원/이춘규 논설위원

    서울 동작동과 대전 국립현충원에는 국가나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다. 군인이나 경찰관으로 전사 또는 순직한 자, 전사한 향토예비군,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자 등이 묻힌다. 민간인은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자, 독립유공 애국지사,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자(외국인 포함)가 안장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을 치렀지만 유지에 따라 고향 사저 근처에 안장됐다. 1955년 7월 조성돼 국립묘지로도 불리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지난 9월 말 현재 5만 4443위가 묘역에 안장됐다. 묘역은 국가원수묘소, 임시정부요인묘소,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 국가유공자묘역, 장병묘역, 경찰묘역 등으로 구분된다. 10만 3740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등 모두 16만 8991위가 모셔져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1986년 이후 안장을 시작, 지난 5월 말 현재로 5만 1642기의 묘소와 4만 1156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그제 숨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국립현충원 안장이 추진되고 있다. 북한 고위 인사 출신으로 1997년 망명해 온 황씨의 국립현충원 안장이 추진되자 사회적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북한 독재의 실상을 알려 적절한 대북 대비 태세를 확립케 하는 등 국가에 공헌한 ‘내부 고발자’로서 자격이 충분하다며 보호론을 편다. 반대론자들은 처자식을 버리고 체제를 배반해 남북·남남 갈등을 조장했다고 비판한다. 현실론도 있다. 황씨 묘소 관리 문제 때문이다. 황씨가 국립현충원이 아닌 일반 묘지에 안장될 경우 사후 테러 가능성이 거론된다. 북한에서 파견한 간첩이 그의 묘를 파헤쳐 ‘부관참시’할 우려가 있어 사후 경호상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극좌·극우세력의 묘소 테러도 마찬가지다. 국립현충원이 경호상 안전하기 때문에 적정한 형식으로 안장하면 된다는 논리다. 북한 땅이 보이고 테러 우려가 없는 전방부대 내, 혹은 경비가 철저한 추모원도 후보지로 얘기됐다. 황씨는 남북화해라는 꿈도, 지아비나 아버지로서의 한도 풀지 못한 채 논란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김영삼정부 시절에는 부총리급 예우를 받았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활동이 제한됐지만, 그는 시대를 떠나 철창 없는 감옥 같은 안가나 자택에서 살았다. 북을 떠나 남에서도 겉돌았던 인간 황장엽의 묘지. 좌도 우도 반발하지 않을 묘수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폭스 공화국, 보고 싶으세요/진경호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폭스 공화국, 보고 싶으세요/진경호 국제부장

    “지난번에 당신이 얘기하지 않았소. 추악한 과정이라고….” “나도 말 좀 합시다. 내 말 좀 끊지 마세요.” 흔히 듣는 대화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심야 TV토론에서 종종 봅니다. 한데 앞의 대화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지난봄 미국 케이블TV 폭스뉴스의 대담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앞말은 대담진행자 브렛 바이어, 뒷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것입니다. 대통령이 ‘나도 말 좀 하자.’라니…?! 바이어, 대단하죠. 오바마를 줄곧 ‘당신(You)’이라고 부르더군요. 말도 막 끊고…. 미국, 대단해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단한 건 따로 있습니다. 폭스뉴스라는, 미디어산업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이 보수상업방송입니다. ‘오바마의 적은 공화당이 아니라 폭스뉴스’라는 말은 미국에서 상식입니다. 미국의 보수를 공화당이 대변하고, 공화당은 폭스뉴스가 이끈다고 합니다. 사사건건 자신과 민주당을 물고 때리는 폭스뉴스에 오바마는 이를 갑니다. 아예 ‘반국가매체’로 봅니다. 사실 폭스의 선정보도, 왜곡보도는 미국 지식인들의 큰 걱정거리입니다. 친 공화당 유권자 모임 ‘티파티’의 득세와 이민규제 강화 움직임, 반이슬람주의 확산 같은 미국 사회의 극우화 흐름 뒤에 이 폭스가 있다고 합니다. 퓰리처상 6회 수상에 빛나는 뉴욕타임스 전 편집장 하월 레인스는 이런 폭스를 두고 ‘언론이 아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시청률 1위 방송입니다. 프라임타임 시청자가 250만명을 넘나듭니다. 같은 케이블TV인 MSNBC(80여만명), CNN(60여만명), HLN(50여만명)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abc, CBS, NBC 등 3대 지상파 방송사들도 폭스를 못 따라갑니다. 시청률뿐이 아닙니다. 신뢰도도 1위(2월 조사)입니다. 왜곡·선정·편파보도를 일삼는 매체라는데 신뢰도 1위라니, 이해가 되십니까. 하지만 현실입니다. 언론학에서는 이를 동조화 현상, 즉 자신이 많이 읽고 보는 매체를 신뢰하려 하는 정보소비자의 행태로 보기도 합니다만 사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이 방송이 자극적이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선정적이고 공격적인 콘텐츠에 시선을 빼앗긴 시청자들이 결국에는 머리와 가슴까지 내어줬다는 얘기가 됩니다. 지금은 다른 방송이 폭스에 먹히고 있습니다만, 신문·방송 융합시대에 머지않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권위지들까지 먹히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미디어 빅뱅의 시대입니다. 블로그, 트위터, UCC 같은 ‘1인 미디어’의 확산과 스마트폰·태블릿PC를 앞세운 디바이스의 혁명 속에서 각 언론매체들은 초비상 체제에 들어섰습니다. 연말에 있을 종합편성채널 선정과 맞물려 앞으로 수년간 한국의 언론 시장은 미답의 혼란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신문·방송·인터넷 매체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지금 들고 계신 이 종이신문을 몇 년 뒤엔 도서관에서나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초년병 시절 130자 원고지에 기사를 쓰고 회사에다 전화로 기사를 불렀던 23년차 선배기자는 어제 오후 방송 리포트를 찍어야 한다며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신문기자가 마이크도 잡아야 먹고사는 세상입니다. 뉴미디어 시대 초입에 선 언론사들의 지상명제는 ‘어떻게든 살아남기’입니다. 문제는 혼란 이후입니다. 언론은 사라지고 언론산업만 남을지도 모릅니다. 자본권력이 언론을 주무르고 정치권력을 휘어잡는 상황이 닥칠지 모릅니다. 오바마가 지금 겪고 있습니다. 언론산업의 대형화를 넘어 자본권력, 정치권력에 흔들림 없이 계층과 이념의 중간추 역할을 할 강소(强小) 언론을 키워내야 합니다. 수익우선주의를 앞세운 폭스가 다문화 융합의 상징인 미국마저 쩍쩍 갈라놓는 현실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중은 제 머리 못 깎습니다. 변혁의 급류에 올라탄 언론을 대신해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가 이를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합니다. 언론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jade@seoul.co.kr
  • [시론] 스웨덴 진보정당의 실패/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학 정치학 교수

    [시론] 스웨덴 진보정당의 실패/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학 정치학 교수

    스웨덴의 총선이 끝났다. 우익 4개 정당의 연합정권이 정권을 유지했음에도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하면서 정치의 불안정 요소는 더욱 커졌고, 좌익계열 3개 정당의 연합전선이 43%밖에 얻지 못하면서 정권탈환에 실패한 틈을 극우정당이 비집고 들어서 균형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익연합정권이 서브프라임사태에서 번진 경제위기를 어느 나라보다도 슬기롭게 잘 대처한 것은 선거 결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프레드릭 라인펠트 정권이 재정위기에 발빠르게 대처하면서 스웨덴 경제는 큰 피해 없이 재정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반면 좌익계열의 대안이었던 모나살린 사민당 당수의 인기는 라인펠트 총리와 비교해 40% 이상의 차이로 나락에 떨어지면서 고대하던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말았다. 좌익계열이 집권에 실패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 사민당의 지지기반 몰락을 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40% 중반의 지지기반을 가졌던 사민당은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다당체제 하의 평범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1932년부터 1976년까지 44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고, 1920년부터 2010년까지 90년 가운데 65년을 집권했던 세계 최우량 정당이 이제는 보수정당에 제1당 자리도 위협 받는 상황이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보통선거제가 처음 실시된 1920년 이후 가장 낮은 30%의 턱걸이를 했다는 점은 이제 사민당 단독의 정권창출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민당의 몰락 원인을 찾다 보면 앞으로 스웨덴 정치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 사민당은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전통적 좌익정당의 정책만 남발하면서 두꺼운 표밭인 중산층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사민당은 부유세와 주택세 부활, 사회적 약자의 보조금 인상, 유류세 인상 등 기존 좌익정책으로 유권자를 공략했지만 스웨덴 전체 유권자의 4분의1이 밀집해 있는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 등 3개 도시에서 큰 차이로 패배했다. 그중 심각한 것은 스톡홀름에서 보수당이 얻은 40%의 절반밖에 얻지 못하였고, 전통적 표밭이었던 예테보리와 말뫼에서도 1당 지위를 보수당에 내주었다. 이같은 결과는 곧 서비스업종과 정보기술(IT)과 연관된 신지식산업이 밀집해 있는 수도권과 2개 대도시에서 사민당이 전통적으로 펴온 사회적 약자 위주 세제정책이 더 이상 인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스톡홀름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변화하면서, 젊은 유권자의 녹색당 지지도 상승이 사민당의 몰락을 부채질한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위기에 대한 사민당의 해법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경제활동에 복귀, 생산에 참여시키면 된다는 안일한 시각에서 출발했고, 분배정책에 있어서도 가진 자가 더 희생해서 복지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로빈후드 방식을 택했다. 반면 중산층은 좌익계열 정당의 세금폭탄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을 선거를 통해 명확히 표현한 셈이다. 이제 스웨덴 정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우익정부의 지배체제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는 사민당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모나살린 당수를 중심으로 개혁을 이끌어 가되, 전통적 지지층을 끌어안으면서 신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 어젠다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도부에 더 많은 젊은 층을 수혈하고 대도시 정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도 주요 관심사다. 수도권에서 민심을 얻지 못하면 사민당의 재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녹색당 및 좌익당과 공조체제를 파기하는 것은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사민당만의 독특한 도시개발 정책, 즉 젊은 유권자들의 일자리 창출, 중산층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분배정책이 아닌 사회 각계층의 자발적 복지기여 모델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4년 후 집권이냐, 아니면 제2당으로의 고착화냐를 가름할 것이다.
  • 中, 미국과 환율·일본과는 영토분쟁

    中, 미국과 환율·일본과는 영토분쟁

    ■ 美, 중국 겨냥 환율제재법 통과 미국 하원이 29일(현지시간) 중국을 비롯, 환율조작 의심을 받는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중국 측은 즉각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나서 표면적으로는 양국 간 ‘환율전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상원 표결 절차가 남아 있는 데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내년 1월 미국을 국빈방문할 예정이어서 양측이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대두된다. ●압도적 표차… 보복관세 채비 미 하원은 이날 중국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 법안’을 찬성 348표, 반대 79표로 가결하고 상원에 송부했다. 표결에는 공화당 의원 99명이 찬성표를 던지는 등 오랜만에 민주·공화 양당이 초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특히 교역상의 이익을 얻기 위한 상대국 정부의 환율조작 행위를 ‘불공정한 정부보조금’으로 간주, 미 상무부가 중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우리는 미·중 관계가 문화·정치·외교·경제·상업 등 모든 면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원칙을 따르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측은 즉각 반박했다. 상무부 야오젠(姚堅) 대변인은 30일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환율을 이유로 보조금 지급 여부를 조사하는 것은 WTO의 관련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오 대변인은 “중국은 미국에 대해서는 무역흑자이지만 적지 않은 아시아 국가나 지역들에 대해서는 큰 폭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면서 “미국의 대(對)중 무역적자가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런 이유로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미 의회의 환율법안 통과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장 대변인은 또 “미 의원들이 양국 경제통상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해 중국에 대한 보호무역주의를 실시하기 위한 핑곗거리를 찾지 말 것을 촉구한다.”며 이틀 전 논평을 반복했다. 양측이 일전을 주고 받았지만 아직 협상 여지는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장 미 상원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유사한 내용의 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하원 법안이 법으로 정착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법안에 대한 지지 여부를 현재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 ●위안화 절상압박… 中, 美자제 촉구 중국 측도 조심스럽게 미국의 자제를 촉구했다. 야오 대변인은 “미국 각계가 객관적, 전반적으로 사실을 평가해 양국 간 경제 및 통상협력의 항구적인 발전과 미국 자신의 이익에 유익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통상 전문가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환율조작국제재법 하원 통과를 중국에 대한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 법안을 앞세워 위안화 절상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베이징의 한 통상전문가는 “중국 측은 내년 1월 후 주석의 미국 방문 때까지 미국 측과 긴장관계를 조성하길 원치 않고 있다.”면서 “환율 문제에 관한 한 당분간 미국이 ‘칼자루’를 쥐고 중국을 압박하겠지만 큰 파열음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中, 억류 日민간인 3명도 석방 중국이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를 해제한 데 이어 30일 일본인 구속자 3명을 석방했다. 확전에 부담을 느낀 양국 정부가 다각도로 물밑 접촉을 펼친 결과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둘러싼 중·일 갈등은 일단 휴전 모드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센카쿠 분쟁 일단 휴전모드로 중국 정부는 허베이성 군사관리구역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체포한 일본 후지타건설 직원 3명을 석방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이들이 군사관리구역에 불법으로 침입한 행위를 인정하고 이를 반성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함에 따라 법률에 의거해 석방했다고 전했다. 일본이 중국인 선장 잔치슝(詹其雄)을 석방한 것에 맞춰 중국도 양국 갈등을 봉합하자는 신호로 해석된다. 하지만 중국 측은 나머지 1명인 다카하시 사다에 대해서는 법에 따른 심리를 하고 있다고 밝혀 정식 사법처리 단계로 넘어갔음을 시사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양국이 외견상으로는 치열한 공방전을 펴면서도 물밑 접촉을 지속해 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다. 센카쿠 갈등이 증폭되던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는 류훙차이(劉洪才)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일본을 찾아 집권 민주당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갔다. 일본도 중국통인 민주당 호소노 고시 전 간사장 대리가 29일부터 베이징을 방문, 중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일본인 구속자들의 석방을 이끌어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센카쿠 문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양국을 넘어 동아시아의 불안 요소로 남을 공산이 크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가 확실한 일본 영토가 아니라 영유권 분쟁 지역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킨 만큼 일단 물러서되 언제든 향후 추이에 따라 다시 문제를 제기할 태세다. 양국 간 갈등의 여진은 이날도 이어졌다.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니와 우이치로 주중 일본 대사는 중국 후정웨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를 만나 “(어업지도선이) 곧바로 현장 해역을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기싸움을 벌였다. ●日 ‘충돌영상’ 공개땐 책임론 거셀 듯 일본 정가의 움직임도 변수다. 1일 시작되는 일본의 임시국회에서는 센카쿠 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 어선의 충돌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임시국회에서 공개되면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임시국회 앞서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센카쿠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져 간 나오토 총리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간 총리는 “국민에게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중국의 어선 선장 석방과 관련해) “검찰이 법률에 기초해 판단한 것으로 적절했다.”며 정치적 판단으로 조기석방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한편 인민일보 인터넷판은 30일 일본 후쿠오카 시내에서 극우단체 회원 160여명이 중국인 관광객들이 탄 관광버스를 막아세우고 차량을 발로 차고 욕설을 퍼붓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극우단체 회원들은 중일 국교정상화 38주년을 맞아 선전차량 60여대를 동원해 반중시위를 벌이다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던 관광버스에 몰려들었다고 현지 경찰이 전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20분가량 차 안에 갇혀 있다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서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중국 외교부 장위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비우호적인 불법 행위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항의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특파원 jrlee@seoul.co.kr
  • 미국판 ‘政-言 전쟁’ 다시 불붙었다

    미국판 ‘政-言 전쟁’ 다시 불붙었다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이 사사건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고 신상문제까지 거론하며 공세를 펴고 있는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를 다시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격주간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폭스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객관적 언론의 황금시기는 역사에서 그리 길지 않았다.”고 말문을 연 뒤 “이전에도 랜돌프 허스트와 같이 자신의 관점을 의도적으로 선전하는 매체들이 있었고 폭스뉴스는 그런 부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나는 (폭스뉴스의 관점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면서 “폭스뉴스는 이 나라의 장기적 성장에 매우 파괴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간선거 다가오자 극우공세 거세져 오바마 행정부와 폭스뉴스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줄곧 폭스뉴스가 의료보험 개혁을 비롯한 행정부의 개혁정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물론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인 양 확대 보도하자 급기야 올해 초 행정부 고위 인사들의 폭스뉴스 인터뷰를 금지했다. 조만간 백악관을 떠나는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을 비롯해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 데이비드 액셀로드 선임고문 등이 번갈아 가며 방송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폭스뉴스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다 지난 3월 오바마 대통령이 폭스뉴스에 출연하면서 갈등이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폭스뉴스의 공세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종교와 혈통, 국적 등 신상문제까지 다시 거론하며 근거 없는 공세를 펴는 등 극우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제로 부근에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는 것을 지지하자 오바마 대통령을 이슬람과 연계짓는가 하면 부인인 미셸 오바마의 스페인 여름 휴가를 초호화판으로 몰아붙이는 등 근거 없는 보도들을 양산해 내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폭스뉴스에 각을 세우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보수성향 티파티 지지 등 눈엣가시 폭스뉴스의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이 공화당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고, 폭스뉴스가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보수성향의 유권자 운동단체인 티파티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거슬렸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와 폭스뉴스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판결·발언으로 본 金총리후보

    판결·발언으로 본 金총리후보

    김황식 총리 후보자는 본인의 이념 성향에 대해 ‘중도저파(低派)’라고 강조한다. 이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등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뜻에서 그가 만들어낸 말이다. 실제로 김 후보자는 2005년과 2008년 대법관·감사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여러 현안에 대해 소신껏 대답하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청문회 발언과 김 후보자가 선고한 판결 등을 통해 김 후보자의 가치관을 살펴봤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본인의 이념 성향에 대해 “제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느 부분은 보수적이고, 어느 부분은 진보적”이라면서 “극우는 기존의 이득에 연연하는 추한 자세이고, 극좌는 이상에 치우쳐 현실을 모르는 아주 답답한 것”이라고 답했다. 김 후보자는 평생을 법원에 몸담아 온 법관답게 엄격한 사법관을 보였다. 사면권에 대해 “사면권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지만, 사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거나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내용으로 행사해선 안 된다. 법보다 권력의 위력이 크다고 하는 국민들의 지적에 상당부분 공감한다.”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존폐 여부에 대해서는 유연한 대답이 돋보였다. 김 후보자는 “남용 또는 오용의 여지가 있는 조항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적용요건을 명백하게 규정해야 하지만, 헌법질서 수호에 필요한 내용은 존치시켜야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입법형식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이적단체 처벌규정에 대해서도 “사회가 변했고 표현의 자유와 연관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찬양 고무 등에 대해서는 처벌 폐지를 신중히 검토해도 괜찮을 단계”라고 답했다. 청문회 당시 1994년 남매간첩단 사건에서 신문기사를 인용한 것도 국가기밀로 인정해 유죄를 선고하고, 1993년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서 반국가단체 혐의를 적용했다가 상급심에서 파기되는 등 김 후보자가 공안사건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판결을 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90년대 초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0대 여성에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사실도 확인됐다. 김 후보자는 “강자와 약자를 떠나 피고인에게 따뜻함을 전하려고 노력했다.”면서 “판례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법원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조금은 뒤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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