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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분규 고비 주무장관 수사 충격/검찰의 이 전노동 조사 안팎

    ◎「수뢰의혹」끊이잖아 연초부터 극비내사/“비리엔 장관도 예외없다”칼날사정 확인 검찰이 23일 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의 수뢰혐의를 잡고 금명간 소환,수사하기로 한 것은 현정부의 사정의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으로 풀이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 「제6공화국」 뿐 아니라 서슬이 퍼렇던 「제5공화국」에서도 현직 각료에 대해 「사정의 칼」을 빼든 예는 없었다.그만큼 정부로서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 전장관은 특히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노사분규 등을 다루는 주무장관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아무리 「사정의 강도」가 높아도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주무장관을 사법처리할 수 있느냐 하는 얘기인 것이다. 검찰은 이 전장관에 대해 연초부터 내사를 벌여 최근 일부 혐의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전장관은 지난해 12월 입각한 뒤 바로 검찰의 「법망」에 걸려든 셈이다.이에 대해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취임 초기부터 이전장관에 대한 시중의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산업은행에서 거액의 시설자금이 장기저리로 대출된 점에 착안,그동안 은밀하게 내사를 벌여왔다』고 설명했다. 이 전장관에 대한 수뢰의혹은 90년9월부터 4년동안 산업은행 총재로 있을 때는 물론 장관에 올라서도 끊임 없이 제기돼 왔다.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조성사건 때도 같은 이유로 「수사대상」에 올랐으나 간신히 비켜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때문에 검찰의 이번 수사에 대해 일부에서는 「표적수사」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고 일축한다.상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받은 적도 없으며 검찰의 독자적이고 순수한 인지수사라고 강조하고 있다.검찰은 「범죄혐의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내사 또는 수사할 수 있다」는 원론을 폈다. 대검의 이원성 중앙수사부장은 이날 『현직 장관이라 내사에 따른 위험부담이 컸다』고 밝히고 『그동안 내사 결과 상당수 물증을 확보한 만큼 이 전장관을 사법처리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는 후문이다.이 전장관의 사무실이나 집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면 혐의사실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일일이 대출업체의 실무자들을 불러 사실확인을 해야 했다.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난달 말쯤 일부 업체로부터 이 전장관에게 수천만원씩 뇌물을 줬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그러나 보다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보강수사를 벌여왔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구속된 박성섭 회장의 덕산그룹이 관련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이 전장관과 대출업체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산업은행 전 임원 2∼3명의 수뢰사실도 이때 속속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한건에 수십억∼수천억원의 시설자금이 나가는데 떡고물이 없겠느냐』면서 『시설자금 대출에 따른 커미션 수수는 공공연한 관행 아니냐』고 되물었다. 한편 금융계는 이번 수사의 파장이 전체 금융계로 확산되는 것이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이다. 노동부 안에서는 이 전장관이 이날 아침 출근을 못하고 국무회의에도 최승부 차관을대신 내보내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는 모습들이었다. ◎산은의 장기 설비자금/5년이상 장기저리대출… “엄청난 특혜”/거액자금 따내기에 기업 사활걸기도 이형구 노동부장관이 산업은행총재 때 대출커미션을 수수한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산업은행 대출이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산은은 창립 이래 현직 간부가 한번도 비리에 연루되지 않을 정도로 상하의 관계가 끈끈한 것으로 유명하다.이 때문에 금융계 관계자들은 『산은은 총재부터 대리까지 모두 한가족』이라는 말로 혹평하기도 한다.그런가 하면 대기업의 자금관계자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정의 칼날이 번뜩이는 가운데서도 산은 직원만은 변한 게 없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산은의 위세가 그만큼 막강하다는 뜻이다. 산은이 이처럼 상하가 똘똘 뭉친 가운데 기업 위에 군림하는 것은 거액의 장기설비자금배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적게는 몇백억원,많게는 조단위의 자금을 연 8∼12.5%수준에 5년이상의 장기로 빌려주기 때문에 장기설비자금을 따내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이자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정치참여 이후 현대에 대한 제재조치중 산은의 장기설비자금 대출중단이 가장 위협적인 수단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산은 자금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산은 자금배분에는 이처럼 정치적인 판단이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현 김시형 총재까지 역대 21명의 총재중 12명이 각료로 입각했다.또 그중 2명은 부총리로 승진했다. 일제의 식산은행 후신으로 지난 54년 산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뒤 50∼60년대에는 국내 장기설비금융의 70∼80%,90년대 들어서도 30%이상을 담당하는 등 경제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총자산 35조원에 올해 장기설비자금 공급규모는 8조2천억원이다.
  • 「문화식민」부르는 외식산업/김종면 문화부 기자(오늘의 눈)

    『한국 어린이들은 입맛을 내주었고 어른들은 시장을 내주었다』 최근 영국 로이터통신은 한국진출 미국 외식업체의 이상호황을 비꼬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1월 강남에 미국식 가족식당 「시즐러」가 문을 연데 이어 불과 4개월만에 할리우드 상업주의를 내세운 레스토랑 「플래닛 할리우드」(서울 논현동소재)가 22일 개점 축하쇼와 함께 본격 영업에 나섬으로써 국내 패스트푸드업계에 태풍을 몰고올 조짐이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젊은 층의 기호가 빠른 속도로 서구화되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외식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우리 고유식단을 개발하기보다는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면서까지 너도나도 외국브랜드를 들여오고 있어 한국은 외국 외식업계의 「행복한 사냥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샌드위치 한조각 값이 1만2천원이 넘는 등 청소년층에 과소비풍조를 조장할 수 있는 측면과는 별개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문화적 파급효과이다.「플래닛…」측은 벌써부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한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사이보그모델을 비롯해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가 입은 청바지,마릴린 몬로의 드레스 등을 공수해와 진열하는 등 「할리우드문화 이식」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플래닛…」은 또한 한국인과 외국인입구를 따로 설치,외국인의 경우 「VIP출구」를 드나드는 것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반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고객은 줄을 서 입장할 수밖에 없는 등 식당구조에서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한편 공동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삼호필름(대표 박효성)은 이날 「스타와의 밤」행사를 위해 한국에 온 브루스 윌리스,신디 크로포드 등에 대해 인터뷰는 고사하고 도착일정과 숙소 등도 일체 극비에 부치는 등 「칙사대접」을 자진,상업적 목적을 위해 국민적 자존심을 헌납하는듯한 인상을 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미국의 5개 직배영화사는 지난해 2백50억원을 거뜬히 벌여들여 본국에 보냈다.이같은 현실을 어렴풋이라도 짐작하는 고객이라면 영화에 이어 한국인의 입맛까지 할리우드식으로 길들이겠다고 나선 「플래닛…」에 앉아 미국배우들의 손자국이 새겨진 벽을 바라보며 유쾌한 대화를 나눌순 없을 것이다.
  • 새벽 전격작전… 충돌없이 20분만에“끝”/현대자 공권력투입 되던날

    ◎현총련 3백명 항의시위… 출근길 큰 불편/사측 양봉수씨 가족방문 “원만 해결” 다짐 ○…경찰이 회사 안에서 농성하던 2백20명의 근로자를 연행하자 현대중공업 노조원 30여명 등 현총련 소속 노조원 3백여명은 회사 밖 도로에서 격렬한 시위.이들은 상오 6시 쯤부터 현대문화센터 앞 등 현대자동차 인근 도로에서 보도블록을 깨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 인근 도로의 차량 통행이 상오 6시부터 10시까지 전면 통제돼 출근길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출근길의 시민 정모씨(38)는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시위는 안 된다』며 근로자들의 자제를 당부. ○…회사측은 『회사 내부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공권력까지 투입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며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조측은 『기습적으로 경찰력을 투입한 것은 단편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라며 『사태를 빨리 해결하려면 경찰병력을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 ○…현대자동차 전현찬 상무 등 회사대표 3명은 19일 이번 사태의 불씨를 제공한 양봉수씨가 입원 중인 대구 동산병원을 방문,가족에게 『양씨의 쾌유를 빈다.가족이 지정하는 변호사와 협의,원만히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회사와 노조의 뜻을 전달.그러나 회사 대표와 함께 2차례나 가족과의 면담을 시도한 노조측은 분대위측 근로자 20여명의 저지로 끝내 면담에 실패. ○…현대자동차 곳곳에는 20여대의 경찰차와 5백여명의 경찰이 출입문과 주요 시설물에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자를 통제. ○…현대자동차에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연대 투쟁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온 현총련은 『당초 계획대로 20일 하오 3시 일산해수욕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그러나 경찰은 이를 원천봉쇄할 방침이다. ○…울산만 작전으로 이름 붙여진 이 날의 공권력 투입은 극비리에 전개돼 전광석화처럼 끝났다.경찰은 보안유지를 위해 심야 대책회의 장소를 상황실이 있는 울산 동부경찰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갖는 바람에 하오 늦게 창원을 출발,울산에 도착한 정해수 경남경찰청장도 한동안 회의장소를 찾지 못했다고. ○…철야하던 근로자 3백여명은 별다른 저항 없이 연행에 응함으로써 다행히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울산 시민들은 공권력 투입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불씨가 현대 계열사로 옮겨가지 않을까 걱정.시민 변재호씨(36)는 『노사가 화합해 생산실적이 늘어나는 시점에 반노조 세력이 파업을 선동한 것은 누구로부터도 동정받지 못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노동운동도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거는 등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휴업 3일째로 접어든 19일 협력업체들의 손실액은 8백24억원을 넘어섰고 현대자동차도 1천4백51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 남침야욕 노골화(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2)

    ◎김일성,“개막 두달내 남한점령” 장담/49년9월 소 공사에 남침구상 처음 표명/“전쟁 허락해 달라” 집요하게 스탈린 설득/“국지전·전면전” 선택권은 크렘린에 맡겨/평양,빨치산 지휘자 8백명 남파… 게릴라전 지도 김일성의 구체적인 남침구상이 최초로 문서로 드러난 것은 1949년 9월3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의 툰킨공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극비보고전문이다.전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대통령문서보관소) ○스탈린 관심 표명 김일성이 밝힌 이 최초의 구체적 남침 계획에 대해 스탈린은 일단 관심을 표명했다.그리고는 9월 11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앞으로 한반도정세에 관해 다음의 항목으로 상세한 보고서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⑴남조선군의 전력에 대한 평가.규모·무기·전투능력등. ⑵남조선내 빨치산운동상황.개전시 그들로부터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지. ⑶)북조선이 전쟁을 시작할 경우 남조선 인민들이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⑷남침시 미군이 취할 입장 ⑸북조선의 군사력·무기·전투능력.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툰킨공사는 곧바로 12∼13일 양일간 김일성·박헌영을 면담했다.재미있는 것은 툰킨공사와의 면담에서김일성의 태도는 이전의 남조선의 군사적 위협에서 대남 무력침공이 성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급변했다는 것이다.다음은 9월14일 툰킨공사가 스탈린에게 보고한 김과의 면담내용. 『⑴남조선군은 장교들의 훈련수준이 아주 낮다고 함.김일성은 38도선에서 벌어진 몇차례 교전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평가했음.김은 현재 남조선군 거의 모든 부대에 북한첩자들이 침투해있다고 했음.그러나 내전이 벌어졌을 때 실제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여부는 말하기 어렵다고 했음. ⑵김일성·박헌영은 현재 남조선에 1천5백∼2천명의 빨치산이 활동중이라고 했음.김은 그러나 이들로부터 큰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했음.남한출신인 박헌영은 김과 다소 다른 견해를 밝혔음.그는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음. ⑶북한이 선제공격을 시작할 경우 남한국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말했음.김은 금년 봄 모택동이 북조선대표 김일에게 말한 내용을 인용,지금 전쟁을 시작하기보다는 중국내전이 고비를 넘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음』 그러나 바로 이튿날 김일성은 슈티코프에게 전날과 달리 북조선이 군사작전을 시작할 경우 남조선 국민들도 이를 환영할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불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슈티코프대사는 이를 통역으로 나온 허가이(편집자주:재소한인으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비서)의 영향탓이라고 분석했다.그러나 대화가 진행되면서 김일성은 다시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따라서 전면전 대신 옹진반도와 반도동쪽의 개성까지 남한영토 일부를 점령하는 작전이 좋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김일성은 북조선군이 남조선군과 비교해 강점으로는 탱크·박격포·비행기등 기술적인 면과 훈련·사기등에서 앞서고 약점으로는 조종사의 숫자 및 훈련부족·군함부족·탄약부족·대구경총의 전투태세 미흡등을 들었다.김일성은 먼저 옹진반도를 공격,그곳에 주둔중인 남한군 2개연대를 궤멸시키고 반도를 점령한 뒤 동쪽의 남조선영토 일부를 점령하면 일단 공격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피겠다고 했다.남한군의 사기가 떨어졌다 싶으면 계속 남진하되 그렇지 않으면 옹진반도를 확고히 해 방어선을 3분의1 정도 줄이겠다는 계산이었다. 한마디로 김일성은 남침의사를 밝히면서도 스탈린의 의중을 알기 위해 끝까지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았다.물론 남침의사를 내비친 것은 스탈린이 원칙적으로 이에 동의할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그러면서도 남한 군사력에 대한 평가,국지전을 할지 전면전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입장이 오락가락한 것은 결국 스탈린이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다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툰킨공사는 이 보고전문 말미에 김일성·박헌영과는 다른 견해를 덧붙이며 전쟁개시에 강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무력통일밖에 없다 『김일성이 제의하는 국지전은 필히 남북한간 내전으로 발전될 것임.현재 남북한 지도부내 내전 지지자는 극소수임.현단계에서 북조선이 내전을 시작하는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 생각해야 함.본인은 현명치 못한 판단으로 생각함.북조선군은 남쪽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신속한 작전을 수행할 만큼 강하지 못함.빨치산과 남조선인민들의 도움을 가정하더라도 신속한 성공을 기대하기 힘듦.내전으로 확대되면 정치·군사 양면에서 북조선에 불리함.첫째로 전쟁확대는 미국에 이승만정부를 지원할 명분을 줌.미국은 중국에서 패했기 때문에 매우 적극적으로 남조선문제에 개입하려 함.또한 전쟁피해가 커지면서 남조선국민들 사이에 전쟁을 시작한 측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 것임』 그는 이 전문과 함께 남북한의 정치경제·군사 관련장문의 보고서를 스탈린앞으로 보냈다.이 보고서는 그동안 알려진 당시상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용치 않기로 한다.다만 한가지 툰킨공사가 이 별도보고서에서 김일성이 남침의사를 갖고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그는 김일성·박헌영 두사람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 가능성은 없어졌고 무력에 의한 통일의 길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여기서도 툰킨공사는 남침시 미군개입과 반소선전에 악용될 가능성등을 들어 전쟁개시에 강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그는 전쟁보다 남조선내 빨치산부대의 활동을 지원하는게 보다 현명하다는 견해를덧붙였다. 이같은 보고를 접한 크렘린은 9월24일 당중앙위 정치국 이름으로 북조선의 남침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북한지도부에 전달케했다(소련공산당중앙위 정치국결정.회의록 N191).이 결정에서 크렘린은 군사적으로 인민군이 장기적인 작전을 벌일 준비가 안돼 있어 지금 작전을 시작하면 적을 패배시킬 수도 없을 뿐아니라 북조선에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고 못박았다.이 결정은 「조선인민들이 통일을 고대하고 있다는 동지의 견해에는 동의한다.그러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무엇보다 남조선내 빨치산운동을 강화하고 대규모 반정부 기운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라」고 충고했다.옹진반도 점령작전에 대해서도 소련지도부는 『이는 남조선과의 전면전 초기단계로서 시작돼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빨치산운동 강화를 1차 면담에 이어 두번째로 김일성의 개전허가요구를 거절한 것이지만 스탈린의 이 결정은 좀더 확실한 승리를 위한 작전지시문 같은 느낌을 준다.아울러 김일성과 스탈린 두사람간 전쟁개시에대한 공감대는 이 무렵을 전후해 확고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10월4일 슈티코프대사는 이 전문을 들고 김일성·박헌영을 다시 만났다.그리고는 바로 그날 저녁 스탈린앞으로 다음과같이 이 면담결과를 보고했다.『김일성과 박헌영은 우리의 통보를 냉담하게 받아들였음.김일성은 「좋다」는 한마디만 했고 박헌영은 모스크바의 논리가 옳다고 수긍한 뒤 남조선에서 빨치산운동이 확산되기를 기다리는게 좋다고 동의했음.현재 남조선에서는 북조선에서 파견한 8백명이 빨치산운동을 지도하고 있다고 했음』 소련의 이같은 설득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남침의사를 굽히지 않았다.이듬해인 50년 1월17일 평양에서는 박헌영외상이 주최한 한 만찬이 열렸다.1월10일 애치슨 미국무장관이 미국의 태평양안전보장선에서 한반도를 제외시킨다고 선언한지 꼭 1주일째 되는 날이었다.이 만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취한 김일성은 소련·중국 대표들을 붙들고 자신의 남침의지를 다시한번 강하게 나타냈다.이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다.
  • 옴교,「2인자」청부살해/폭력조직·범인 서유행씨 매수

    ◎체포 신도 사린테러 자백 【도쿄=강석진 특파원】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사린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일본경찰은 이미 검거한 40대 옴 진리교(교주 마원창황·40) 신도로부터 사건당일 사린을 지하철 차량안에 살포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4일 보도했다. 또 옴진리교 과학기술성 장관 무라이 살해사건은 교단측 사주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됴쿄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일본신문들에 따르면 검거된 40대 신도가 테러사건당일인 3월20일 새벽에 도쿄도 시부야구에 있는 옴교 아지트에 신도들이 집합해 차량으로 지하철역에 도착했으며 비닐주머니를 지시에 따라 지하철 차량안에 놓아두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한 옴 진리교 「첩보성 대신」인 이노우에 요시히로(25·특별수배중)용의자의 수첩에서 사건당시 지하철 시간표를 자세히 적은 메모를 발견했으며 사린살포에 나선 신도들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와 함께 옴 진리교 관계자가 『무라이는 입이 가벼워 극비사향이 누설되지 않도록 입을 막아야한다』며 무라이를 청부살해할 목적으로 한 부동산회사 사장에게 수억엔을 건네줬으며 부동산회사사장은 다시 폭력단 야마구치구미 계열조직 간부인 가미미네에게 2억엔을 주며 살해를 의뢰했다고 한 폭력단 간부가 증언했다.가미미네는 이어 재일교포 서유행씨에게 채무 5천만엔을 면제해준다는 조건으로 무라이 살해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 스탈린­김일성/「남침 대화록」 최초 발굴

    ◎스탈린 「6·25승인」뒤 전쟁 전권행사/서울신문,소 「극비문서」 9백50건 입수/전황불리하자 평양정권 중망명 계획 【모스크바=이기동 특파원】 한국전쟁과 관련,러시아측에 보관돼 있는 방대한 양의 미공개 비밀문서가 최근 서울신문에 의해 입수돼 그동안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6·25내막을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총9백50건,3천여쪽에 달하는 이들 문서는 38도선에서 남북한간 잦은 충돌이 벌어진 47년초부터 전쟁을 거쳐 휴전협정체결에 이르기까지 평양·북경주재 옛소련대사관과 본국 사이에 오간 전문과 크렘린에서 이루어진 전쟁관련 회합의 기록문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그중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김일성이 49년3월5일 모스크바를 극비방문했을 때 당시 스탈린수상과 나눈 대화록도 포함돼 있다. 이들 문서는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정부의 주요국가문서보관소인 대통령문서소·외무부문서소·옛소련공산당 중앙위문서소·국방부산하 군사문서소 등지에 보관돼 있는 미공개 6·25 관련문서들이 모두 망라된 것이다. 새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6·25를 일으키기 2년여 전부터 남침개시를 스탈린·모택동에게 계속 요구했으며 반면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과 준비미비등을 이유로 막판까지 남침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일단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한 뒤에는 전쟁준비·작전수립등 전쟁의 전과정에 스탈린이 거의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탈린은 특히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북한군에 불리하게 바뀐 뒤 김일성·모택동이 요청한 휴전제의를 거듭 묵살,전쟁의 피해를 배가시킨 장본인으로 드러났다.스탈린은 6·25를 미국의 국력을 소진시킬 절호의 기회로 보고 무리하게 전쟁을 계속 끈 것으로 관련문서는 밝히고 있다. 스탈린은 또 52년8월 주은래와의 회담에서 주가 『북한지도부가 인명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전쟁계속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으나 『이 전쟁은 명분이 큰 전쟁이니 인내심을 갖고 계속하자』고 고집,최소한 1년이상 전쟁을 더 끌기로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소련의 입장은 53년3월3일 스탈린의 사망과 함께 휴전지지쪽으로 급선회했다. 김일성은 당초 황해의 옹진반도에서 국지전을 시작해 동남쪽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다가 작전개시 불과 나흘 전인 21일 작전계획이 남한에 누출됐다는 정보보고에 따라 이를 전면전으로 급전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공군의 참전도 스탈린이 모택동을 수차례 설득해 동의를 얻어낸 것으로 드러났다.모는 당초 수차례 무력지원약속을 김일성에게 했으나 막상 병력지원요청을 받고서는 이를 거부하다 스탈린의 끈질긴 요청을 받고서야 파병결정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새 자료에 따르면 스탈린은 모택동이 중공군파병을 계속 주저하던 50년10월13일 김일성에게 『저항을 계속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병력과 장비를 모두 가지고 소련·중국영토로 북한정권자체를 철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김일성·박헌영도 이 지시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나 스탈린동지의 뜻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철수준비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 정권철수계획은 바로 이튿날인 10월14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중공군 파병결정을 통보해옴에 따라 긴급히 취소된 것으로 새 문서는 밝히고 있다. 한편 김일성이 50년5월 북경회담에서 모택동에게 처음 보고해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오던 3단계 작전계획은 이보다 앞선 4월 모스크바회담에서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직접 지시한 것임이 이번 자료에 의해 밝혀졌다.
  • 김일성의 남침 책략(모스크바 새 정언:1)

    ◎6·25내막/서울신문 발굴 소문서속 비사/김일성,“해안방어 취약… 소서 지원해달라”/스탈린/“북 해군 창설·전투기 제공 약속”/김일성/“남한군 6만명… 우리가 더 강해”/49년3월5일 대화록/김일성/“전국토 해방 절호의 기회왔다”/스탈린/“미군 남아있어 때를 기다려야”/49년3월7일 대화록/러 국립문서보관소 미공개자료 9백50건으로 엮는 시리즈 서울신문사는 6·25 반발 45주년,해방 50주년의 해를 맞아 현대사 재조명작업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보관중인 미공개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 9백50여건 3천여페이지를 독점 입수했다.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이 그동안의 노력끝에 러시아의 외무부 문서국을 비롯,대통령 문서국·옛소련공산당 중앙위 문서국·국방부 문서국 등에서 입수한 이들 문서들을 앞으로 20여회에 걸친 시리즈로 독자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한국전쟁의 준비로부터 전개과정,휴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모든 의혹과 논쟁들이 말끔히 정리되길 기대한다.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인이 6·25를 공동기획하고 이끌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밝혀진 문서들을 통해 이제는 뒤집을 수 없는 사실로 굳어져 있다.그러면 이 3인중 전쟁에 가장 먼저 뜻을 둔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그리고 그 시기는 언제쯤인가.러시아측 문서에 따르면 1945년 해방을 맞은 뒤 48년 북한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그리고 49년말까지 적어도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의사를 갖지 않았다.스탈린은 오히려 미국과 남한의 전쟁도발을 크게 우려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마치 2차 세계대전 전 독일에 대해 품었던 것같이 스탈린은 미국과 남한의 전쟁도발을 피하기 위해 급급했고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에 매우 집착했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다음은 이 당시 크렘린의 분위기를 엿보게 하는 문서.(소련군 총참모부 제8국 전문번호 N121973.편집자주=제8국은 소련군 총참모부에서 해외공관과의 비밀통신을 취급하는 부서)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중인 이 비밀전문은 47년 5월 12일 당시 평양주재 소련대표부에 파견된 메레슈코프프장군과 슈티코프장군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긴급요청서였다. 『스탈린동지께.46년 7월 26일 전문번호 N15327로 보낸 우리정부의 결정에 의거,46년 12월 16일 우리는 82명의 소련전문가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음.이 전문가 파견은 북한에서 산업시설복구와 철도건설작업을 돕기 위한 것임.그러나 지금까지 단 1명의 전문가도 북한에 도착하지 않았음.…중략… 소련을 비롯한 기타 외국전문가들의 도움없이 북한의 산업,철도체계는 가동되지 못함.북한의 붕괴를 막고 또한 남한에서 향후 우리의 입지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소련 엔지니어,기술자의 파견이 절대 필요함. ○소전문가 보내라 만약 남북한이 통일돼 임시정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소련전문가들이 도착하지 않을 경우 필히 미국 기술자들이 일하러 올 것임.그러면 우리보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임』 이 전문을 보고받은 스탈린은 보고서 위에다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휘갈겨썼다.『소련전문가 5∼8명을 보내줄 것.그들로 하여금 조선인들을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케 하라.우리가 조선에 너무 깊이 개입해서는 안됨』 북한과 소련관계가 이같은 식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김일성은 48년 2월 인민군 창건,그리고 그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이듬해인 49년 1월 17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슈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만났다.슈티코프는 이날의 면담내용을 즉각 본부에 보고했다.(러시아대통령문서소 보관)『김일성은 이전에 언급한 바 있는 소련과의 우호협력협정 체결을 다시 희망했음.이에 대해 본인은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하에서 그런 조약체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음.남한의 반동세력들이 한반도 분단고착화의 기회로 이용하고 미소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수도 있음.이 문제로 김일성과 박헌영은 다소 당혹해 했음.김일성은 강경치는 않지만 조약체결을 고집했고 만약 조약체결이 안되면 소련의 비밀원조협정이라도 맺자고 요구했음.본인의 추가설득을 듣고서 김일성은 일단 지금 우호협력조약체결은 적절치 않다는데 동의했음』 그러나 이 전문보고가 있은 불과 1주일 뒤인 1월27일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 같은 긴급전문을 다시 보냈다.『북조선경찰의 정보보고에 따르면 남한 군부대들이 38선 가까이 이동하고 있고 주 작전방향을 따라 병력이 집중배치되고 있음.남한에 파견됐던 첩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남한에서는 북침설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고 함.남한장교들은 남한이 먼저 공격을 시작해 이니셔티브를 잡자고 말한다고 함.이에 따라 북조선당국은 38선의 수비를 강화하고 경계를 강화하기 위한 필요한 방안을 취하고 있음. 결론=본인은 현단계에서 남한이 공격해올 가능성은 낮다고 봄.국내외 여건이 이같은 공격을 불허함.이들이 병력을 38선을 따라 이동해 주방향에 집결시켰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음.남한은 북쪽의 서울공격을 항상 예상했기 때문에 서울방어를 위해 이같은 병력이동을 했을 수 있음.최근 남한은 북한에 테러부대 파견을 증대시키고 있음.총 80명의 테러범들이 체포됐음.개성에서는 14명이 체포됐는데 이들은 폭약 5통,액체폭발물 6병,휘발유 1통을 소지하고 있었음.이들은 창고,학교를 불태우고 지방지도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왔음』 ○북침 가능성 낮다 2월에 접어들면서 평양의 소련대사관이 보내는 남측의 도발보고 건수는 점차 그 횟수가 잦아졌다.2월3일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본부의 몰로토프 외상 앞으로 보냈다. 『38도선 상황이 매우 소란함.남한 군경이 매일 38도선을 넘어 북한의 경찰경비초소를 공격함.현재 북한은 경찰 2개 여단으로 38도선을 경비하고 있음.이 여단의 무장은 일본군의 소총뿐임.소총 1정당 탄알은 3∼10발씩뿐임.자동소총은 없음.북한경찰은 남한경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후퇴하거나 탄약이 떨어져 포로로 잡히기도 함. 소련정부의 결정으로 이들 2개여단 병력에게 소련제 무기가 지급되기로 돼있음.소련국방부 명령에 따라 이들 무기들은 해안군사지구에 공급되기로 돼있음.그러나 본인의 수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무기공급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있음.…중략… 그러나 소련정부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북조선은 소총사단 1개,여단 1개를 창설했는데 무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긴급히 이 사태에 손을 써줄 것을 요청함』 ○무기지원 등 요구 슈티코프대사는 하루 뒤인 2월 4일에도 본부에 전문을보내 남한의 대규모 도발을 보고했다.그는 이 공격을 통해 남한군은 38도선 북쪽 2백∼3백m에 위치한 고지 한곳을 점령했고 그옆 38도선 바로 남쪽에 남한군 1개 대대가 배치됐다고 보고했다. 49년 3월 5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모스크바를 극비 방문했다.그는 스탈린과의 면담에서도 38도선의 긴장문제를 제기했다.이날 북조선대표단이 스탈린과 나눈 대화내용은 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돼 있다. 『김=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북조선에 대한 반동세력의 도발이 점점 더 격해지고 있습니다.우리도 육군은 있지만 해안방어가 거의 전무합니다.이 점에 소련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스탈린=미군은 남조선에 몇명이 주둔하고 있습니까. 김=최고 2만명쯤 됩니다. 스탈린=남조선은 군대가 있습니까. 김=있습니다.약 6만명입니다. 스탈린=이 숫자는 경찰을 포함한 것입니까. 김=아닙니다.정규군 숫자입니다. 스탈린=그들이 두렵습니까. 김=그렇지 않습니다.하지만 해군을 갖고 싶습니다. 스탈린=누구 군대가 더 강합니까.당신군인가 아니면 그들인가요. 박헌영=우리 군대가 더 강합니다. 스탈린=해군창설을 지원하겠습니다.군용기도 주겠습니다.남조선군 내부에 당신 사람들이 침투해 있습니까. 박=있습니다.하지만 모두 하위계급들이라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스탈린=잘한 일입니다.지금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됩니다.남조선도 북에 첩자를 보냈을 것입니다.그러니 정신차려야 합니다.요즘 38도선 사정은 어떤가요.남조선군이 침범해 많은 초소들을 뺏겼다가 다시 찾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김=강원도지역 38선에서 충돌이 있었습니다.우리 경찰은 무장이 부실해서 나중에 정규군을 투입해 남조선군을 격퇴했습니다. 스탈린=쫓아냈나요,그들 스스로 물러났나요. 김=우리가 그들을 패배시켰고 그런 다음 그들이 물러났습니다. 스탈린=38도선은 평화로워야 합니다.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기간은 김일성이 인민군창건 뒤 내부적으로 군비증강에 가장 힘을 쏟을 시점이었다.그는 어떻게 하든 남한의 도발위험이 높다는 점을 강조해 소련으로부터 무기지원을 하나라도더 받아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주목할 것은 이날 대화에서 김일성,스탈린 두사람 모두 남침문제는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월 7일 두번째 크렘린회담에서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정식으로 남침승인을 요청했다.모스크바 방문의 진짜 목적을 털어놓은 것이다. ○남침 허가해 달라 힘들게 꺼낸 김일성의 남침허가 요청에 대해 스탈린은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밝혔다.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된 49년 3월 7일 스탈린과 북한대표단간의 대화록은 그러나 스탈린 역시 당장의 남침은 불가하지만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완곡한 시사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일성=스탈린동지.이제 상황이 무르익어 전국토를 무력으로 해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남조선의 반동세력들은 절대로 평화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들은 자신들이 북침을 하기에 충분한 힘을 확보할 때까지 분단을 고착화하려고 합니다.이제 우리가 공세를 취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우리의 군대는 강하고 남조선에는 강력한 빨치산부대의 지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탈린=남침은 불가합니다.첫째 북조선인민군은 남조선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치 못하고 있습니다.수적으로도 열세이고,둘째 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전쟁이 나면 그들이 개입할 것입니다.셋째 소련과 미국사이에 아직도 38도선 분할협정이 유효함을 기억해야 합니다.이를 우리가 먼저 위반하면 미국의 개입을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김=그렇다면 가까운 장래에 조선통일의 기회는 없다는 말인가요.남조선 인민들은 하루빨리 통일을 해 반동정부와 미제국주의자들의 속박을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스탈린=적들이 만약 침략의도가 있다면 조만간 먼저 공격을 해올 것이오.그러면 절호의 반격기회가 생깁니다.그때는 모든 사람이 동지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원할 것이오』 이렇게 최초의 남침 의도 표명은 결실이 없었다.49년 4월에 접어들면서 크렘린은 남한의 정세변화에 점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 했다.4월 17일 스탈린은 슈티코프대사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군사고문단 요청 『본인이 얻은 정보에따르면 5월중 남조선주둔 미군이 일본내 가장 가까운 섬으로 철수할 계획임.철수목적은 남조선군에게 행동의 자유를 더 많이 주기 위해서임.미군철수에 맞춰 유엔감시위원단도 남조선을 떠날 것임. 4·5월중 남조선은 38도선 부근에 병력을 집중시킬 것이 틀림 없음.6월 불시에 북침공격을 감행하고 8월까지 북조선군을 완전 궤멸시킬 목적임.이 정보의 사실여부를 긴급히 확인해 보고하기 바람』(대통령문서보관소) 사흘 뒤인 4월 20일 슈티코프대사는 이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다음과 같은 전문을 스탈린앞으로 보냈다. 『북조선인민군의 전투태세는 매우 미흡함. 1,훈련받은 비행사는 8명 뿐임.훈련기인 U­2기 부족과 항공연료 부족으로 추가훈련을 하지 못하는 실정임. 2,소련군사고문단이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음.고문단장 스미르노프는 군사지식이 매우 부족하고 또한 태도가 거칠어 북조선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함. 3,무기·탄약생산을 지원한다는 소련정부의 결정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음. 4,지금까지 해안방위군이 창설되지 않았음』 이어서 5월 2일 슈티코프대사는 미군철수 동향,남한군의 전투태세 등을 보고하라는 4월 17일자 스탈린의 지시에 대해 상세한 답변전문을 보냈다. 『…우리의 첩자가 보내온 정보와 서울의 라디오방송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남조선 주둔 미군의 철수에 관해 협상하고 있음.…중략…남조선의 북침계획과 관련,남조선당국은 국방군 규모를 계속 증강시키고 있음.국방군은 1949년 1월1일 5만3천6백명에서 3월말 현재 7만명으로 늘었음.특히 기술,특수병력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 이들은 2∼4배까지 늘었음.군내부의 불순사병,장교를 숙청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미국은 남조선에 많은 양의 각종 무기와 탄약을 보급하고 있음.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의 이런 북침관련 보고는 상당기간 계속 됐다.흥미있는 것은 같은 시기 남한측 군책임자들이 우리정부에 올린 보고서들은 북한측의 우려 할만한 동향에 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8월 13일 스탈린은 남북한간 전쟁이 시작될 경우에 대비한 소련군의 행동지침을 슈티코프대사 앞으로 내려보냈다.소련은 절대 이 전쟁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대전제로 한 하달문이었다. 『전쟁이 시작될 경우에 대비해 북조선에 있는 소련 해군기지와 공군부대를 폐쇄할 것.우리가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또한 적을 심리적으로 무장해제시키며 전쟁이 시작될 경우 우리의 개입을 방지하기 위함임』 모스크바와 평양 사이에 북침가능성을 놓고 이렇게 숨막히는 전문이 오가는 가운데 49년 9월에 접어들며 김일성은 또 다시 남침의사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수개월에 걸친 내부 준비기간을 거친 다음이었다.
  • 대만·싱가포르 첫합훈/홍콩지/한달간/“중잠함 격퇴”…해상 극비작전

    【홍콩 연합】 대만과 싱가포르는 남중국해 일원에 출몰이 잦아지고있는 중국 해군의 잠수함들을 격퇴하기 위해 사상 첫 합동 군사훈련을 12일까지 대만해협에서 「극비리에」 실시했다고 홍콩의 중국어 신문 명보가 대만군 관리의 말을 인용,13일 대북발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이 관리는 「해엽(바다사냥) 5호」로 명명된 이 군사훈련이 4월18일부터 이달12일까지 대만해협 남부 소유구,난서 등 외곽도서들과 북부 기륭항 앞바다,동화외해등 중국 잠수함들이 그간 자주 출현했던 곳에서 실시됐다고 밝혔다. 그는 해저,해상,공중에 걸쳐 「상세한 대잠수함 작전활동」이 이번에 실시됐다고 밝히고 싱가포르가 무려 30척의 함정을 대만해협에 파견했다고 말했다.
  • “북한 인권문제 본격 거론하라”/헨리 홍 재미목사·미평화목자회장

    ◎정치범 수용 실상 알려 세계문제화 해야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는 듯하다.미국은 나름대로 북한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북한의 속셈을 너무 모른다.미국이 북한과의 핵문제 협상과정에서 질질 끌려다녔다는 인상을 씻어버릴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증거이다.남한과 북한은 반 세기가 다 되도록 여러번 만나 대화를 나누었지만 무슨 결실을 얻었던가? 실제로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혼선을 거듭하여 의회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북한에 관한한 미국의 전문가가 없는 셈이다.국무부 한국과의 북한문제 담당관이나 백악관·의회 그리고 협상실무자의 의견이 서로 달라 왔다. 미국은 실제로 북한의 감추어진 속셈을 파악하지 못하여 북한의 표면적 요구사항만을 놓고 씨름해왔다.북한은 미국의 이런 약점을 간파하여 벼랑외교의 곡예를 부리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의 시간벌기에 휘말려 들었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따라서 명분없는 협상에 휘말려들었다 하여 공화계 의원들의 질타를 받는 고뇌를 겪기도 했다.미국이 대북한 협상에서 말려들어간 느낌을 지울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그 협상의 근본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핵카드 뒤에 숨겨진 궁극적 목표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는 것이었다.이것이 그들의 1단계 목표이다.그렇게 하여 동북아의 평화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이를 발판으로 미국의 한반도 내정간섭문제를 들고나와 대남정책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수년간 핵 불투명성을 유지하면서 특별사찰 시기를 최소 5년후로 미루도록 이끌어나간 것도 대미 평화협정의 가능성을 높이고,이 평화협정을 발판으로 대남 정치·군사전략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바로 북한의 내면적 전략이다. 미국은 전 인류의 가장 뚜렷한 대의명분인 북한의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여 북한을 궁지로 몰아붙여야 했다.미국이 이 점을 깊이있게 이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북한의 인권유린의 심도와 실상을 깊이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귀순자 중에서도 안명철씨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지난 3월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초청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강연회를 가졌는데 2백여명의 미국인 북한 전문가및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석했었다.이 자리에서 필자가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의 실태를 보고했을 때 그들은 글자 그대로 경악을 금치못하여 그 대학에서 필자에게 감사장을 주고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초청할 수 있도록 소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특히 회령수용소의 경비원이었던 귀순자 안명철씨가 폭로한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필자가 소개했을 때 미국인 교수·학생들은 물론 북한 전문가들까지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인권유린은 북한의 가장 큰 약점이다.김정일 교시에 따르면 수용소 인권문제는 『수령님의 권위와 위신에 관련되는 사항이니 완전 극비사항으로 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미국은 왜 이 약점을 이용하지 못하는가?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한국의 대북한 정책도 이점을 감안하여 가장 큰 인권문제의 하나인 이산가족 문제와 더불어 인권외교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이혼한 사람도 자기 자녀를 만나 볼 권리가 있는 법인데 반세기가 되도록 친족의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도록 방해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권침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근대사법 백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대로 이제 우리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북한인권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어 세계문제화해야 할 것이다.가능하면,북한 인권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만들어 인권 외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시급하다 하겠다.
  • 연출가의 연극비평 비판(건널목)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연극전문지 「한국연극」5월호에서 비평가들의 연극비평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연극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연극협회가 펴내는 「한국연극」4월호에 실렸던 「연극방담­공연된 연극에 관한 자유로운 이야기」라는 제목의 연극비평에 대해 이씨는 현장연극인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그는 「비평의 비평이 필요하다」라는 글을 통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회장 구희서)가 기고했던 연극월평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 글에서 이씨는 『의례적 극찬과 작품성이하의 혹평 사이에서 제멋대로 들쭉날쭉하는 것이 오늘의 비평계의 실상』이라고 전제,『가치기준의 혼돈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평기준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비평의 비평」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그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지난3,4월 공연된 작품을 놓고 『「키리에」는 작가의 역사관이 혼돈됐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TV드라마의 축약본같았으며,「춘풍의 처」는 배우를 통제하지 못한 연출의 부재로 싸구려 개그로 떨어졌다』는 비평을 차례로 인용하며 『이런 상식밖의 비평언어를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익명의 방담은 한 시즌의 연극을 정리하는 공적 지면의 비평방법으로 동원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공적 언어로서의 비평이 어떤 품위와 윤리의식을 지켜야하는지에 대한 인식없이 함부로 냉소적인 야유와 감정적 폭언을 일삼는 비평가는 비평가의 태도와 자질문제에 있어서도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로 극문학을 전공한 문학이론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우리 연극계의 비평가들은 극해석을 중심으로 연극의 평가기준을 삼는다』고 밝힌 이씨는 『비평가들이 희곡뿐 아니라 연기자,연출가,스태프,극장,관객등 제반 연극적 요소와 그 역할에 대한 보다 심도깊은 이해와 분석력을 보여줄때 우리의 연극비평은 비평장르적 독자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또 『전제된 극이론이나 고정관념으로 동시대 연극을 재단하려는 것도 우리 비평계의 문제점』이라며 『연극현장은모든 전제된 개념과 경험을 용해하고 부수면서 새롭게 생성되는 성격을 지닌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극평론가협회는 「한국연극」의 제작 편의상 익명의 방담형식으로 진행한 연극비평의 책임성 문제를 감안,이번 5월호부터는 비평가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키로 했다.
  • “한국 지소권 보호실태 조사”/미 의원 4명 극비 내한

    미 하원 법사위 소속 지적소유권보호 실태조사소위원장인 무어 헤드의원(공화당)등 미 하원의원 4명이 우리나라의 지적소유권보호 실태조사를 위해 21일 극비내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22일『미 하원의원 4명이 한국의 지적소유권보호 실태조사와 제도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은 우리나라 특허청등 관계부처를 돌며 조사활동을 벌인 뒤 23일 중국으로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지적소유권소위 소속 의원 4명은 21일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비난을 의식,오산의 한 미군비행장을 통해 입국했으며 22일 상오 안광구 특허청장을 만나 각종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옴주교 임의동행 지시/일경

    【도쿄 연합】 일본 경찰청은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를 저지른 혐의로 집중수사를 받고 있는 옴진리교 간부들을 속속 구속한데 이어 아사하라 쇼코(40) 교주를 임의동행하라고 전국 경찰에 극비 지시한 것으로 21일 밝혀졌다. 경찰청은 극비 지시를 통해 ▲옴교 교단관계자 1천명 이상의 소재를 확인하고 ▲교단관계자가 소유하고 있는 차량 약1천8백대를 수배하는 한편 ▲행방을 감추고 있는 아사하라 교주를 임의동행하라고 강력히 하달했다. 경찰은 아사하라 교주의 신병이 확보되는대로 살인예비 및 신자감금 혐의로 구속해 본격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경찰은 아사하라 교주가 발견되면 「추적」에 그칠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검문을 벌여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임의동행하라고 지시했다.
  • 이,스파이위성 발사성공/자체 제작… 아랍국 정보수집 목적

    【텔아비브 AP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은 4일 처음으로 자국이 생산한 로켓을 이용,스파이위성을 발사,지구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이스라엘관리가 밝혔다. 명칭이 오페크­3인 이 위성은 이날 하오2시30분쯤(한국시간 하오8시30분) 텔아비브 남쪽 팔마킴해변에서 발사돼 궤도진입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988년과 1990년 오페크­1과 오페크­2호를 각각 발사한 바 있는데,이번에 발사된 오페크­3호는 이스라엘이 자체로 개발한 것으로 이스라엘주변의 아랍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스파이위성이다. 이 위성에 대한 개발계획은 그동안 극비에 부쳐져 있었으며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측이 스파이위성 사진을 공유하자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절한 데 자극받아 자체개발을 계획해왔다. 한편 지난주에도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로켓에 위성을 실어 발사했으나 폭발하면서 실패한 바 있다.
  • 이달 문화인물/최무선 장군/화약·화통 발명… 왜구 격퇴

    문화체육부는 고려말 화약·화통등 각종 화기를 발명해 왜구를 물리치는데 지대한 전공을 세운 발명가인 최무선 장군(1326∼1395년)을 「4월의 인물」로 선정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최무선은 왜구 섬멸에 화포를 사용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송 원나라에서 화약제조법을 극비에 부치고 있던 때인 1376년 원나라 사람인 이원에게 간청해 염초제조법을 배웠다.1377년 조정에 건의해 「화통도감」을 설치케해 화약과 석포·화통·철령전 등 18종의 각종 화기를 제조했으며 우왕 6년(1380년) 이 화기를 사용해 왜구 선박 5백여척을 전멸시켰다.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과 국립중앙과학관,영천문화예술단체협의회 등 관련단체는 4월 한달동안 각종 학술행사와 강연회,과학경연대회 등을 열며 최무선 기념사업회는 영천시 교촌동에 기념비도 건립할 예정이다.
  • 「조소해운주식회사」 관련문서 발굴 의미

    ◎북 3개항 조차/소의 트루먼독트린 대응조치/북 47년 6월이전 단정체제 확립 입증/“미소공위 결렬로 분단” 종전인식 뒤집어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립함에 필요한 각종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및 발간 등을 통해 국사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에 기여해 왔다.「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자료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국외사료조사위원 방선주박사가 최근 기밀해제시켜 보내준 비할 데 없이 가치가 높은 사료다. 이들 사료를 포함한 「북한필사문서」들은 국사편찬위원회가 계속 간행중인 「북한관계사료집」에 넣어 연구자들이 이용하도록 배려할 것이다.본격적인 정리 분석에 앞서 「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 극비문서의 발굴을 통해 검증할 수 있게 된 몇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새사실 검증 단초로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서」에 의하면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소련의 무역부와 1947년3월25일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그 주된 내용은 청진·나진·웅기의 세 항구를 30년간 양도한다는 것이다.이미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1948년9월9일 북한정권의 공식 수립 이전부터 「단독정부」로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행정체계 확립 확인 「북조선위 지시 제74호」를 통해서는 1947년6월28일 이전에 북조선인민위원회와 지방 인민위원회간에 실질적인 행정체계와 계통이 확립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또 소련군정과의 관계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1946년 초까지도 북한사회를 좌지우지하던 소련군정의 직접 개입의 흔적이 이들 문서에서는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소련점령군은 이 시기에 벌써 북한지역에 「단독정부」를 이식시키고 이들을 앞세워 전체 한반도의 소비에트화를 위해 배후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검증할 수 있다. 둘째 미국과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이 크게 변화하는 1947년의 시점에서 소련의 한반도정책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무엇이었나를 확인시켜 준다.지금까지 연구자들은 1945년 말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이 나온 이래 1947년 제2차 미소공위가 진행되던 시기까지를 냉전 분위기가형성되고 있었지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문제에 대해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던 것으로 인식하였다.1947년10월18일 공위 제62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정책을 바꾸었고,그것이 한반도의 분열상태를 영구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고 보았던 것이다. ○자유체제 유지 역점 그러나 「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 극비문서의 발굴을 통해 드러났듯이,소련은 1947년3월25일 청진·나진·웅기등 세 항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차」하고 있다.이것은 1947년3월12일에 발표된 미국의 「트루만독트린」에 대한 소련측의 직접 대응이었던 것이다. 미국 외교사에서 『혁명적인 사건』으로 불린 「트루만독트린」의 주요 내용은 공산화될 위험에 처해 있는 지역에 경제군사지원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또 세계 각국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나라들에게 경제군사지원을 하여 소련의 팽창주의를 봉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부동항획득 서둘러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의 연합동맹국이었던 소련에 대해서 정면대결을 명백히 선언하자,소련은 제정러시아 때부터 추구해 온 한반도에서의 부동항 획득을 서둘렀다.김일성은 극동지역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세 항구의 양도를 1947년10월7일에 최종 비준하였다. 이날 소련공산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공산당 대표들은 바르샤바에서 모임을 갖고 「코민포름」을 결성하고 있었다.이때부터 대립적인 동서 양블록이 체제화 되었다. 그 결과 자주적인 힘만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우리민족의 처지에서는 미·소 양국의 극단적 대치의 영향을 그대로 받을 수 밖에 없었고,한반도는 양 진영의 이데올로기 각축장이 되었다.
  • 북­미기업/합자회사 설립합의/일지 「조선설비」­스탠튼그룹」문서조인

    ◎화전·정유시설·특구 건설 협력/경수로 계약 이행관련 주목 【도쿄 연합】 미 기업이 지난해 가을 북한 기업과 처음으로 합자기업 설립문서에 조인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25일 뉴욕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북한간의 합자회사 설립 합의문서에는 북한의 화력 발전소 재가동 등 에너지난 해소를 위한 프로젝트들이 포함돼 있다고 밝히고 이같은 미·북한 기업의 에너지 협력은 북한의 경수로 공여계약 이행과 관련,주목할만한 것이라고 밝혔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북한 기업과 합자회사를 설립키로 한 미국 기업은 전문가 약 8백명을 거느리고 화력 발전용 에너지 기술개발과 인재양성 사업을 하고 있는 「스탠튼 그룹」(본사 보스턴)으로 이 기업은 각종 공장 설비의 수입 등을 취급하고 있는 「조선 설비」와 합의문서를 교환했다. 스탠튼 그룹의 한 간부는 『회사는 김정우 북한 대외경제협력 촉진위원회 위원장과 극비리에 실무 협의를 갖고 작년 11월 「설비·스탠튼 개발 회사 기구」(SSDC)의 설립에 합의했다』고 말했다.미·북한 합자 회사는 북한의 경제 특구인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개발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화력 발전소의 재가동·확충 ▲수출 전용 정유 능력의 개발 ▲특구개발과 투자·수출촉진 등 3분야의 공동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 북­일 수교협상 논의/지난달 비공식 접촉

    【도쿄 연합】 북한과 일본은 중단상태인 양국 국교정상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극비로 비공식 협의를 시작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9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양국관계 소식통을 인용,일본외무성 아시아국 간부와 북한 김용순 노동당비서의 측근이 지난달 중순 접촉을 가진데 이어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키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접촉은 지금까지 있었던 비공식 접촉 가운데 가장 고위인사간에 이루어졌으며 몇시간에 걸친 회담을 통해 양측이 수교협상 재개를 향한 전향적 입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 투명사회(임춘웅 칼럼)

    영국에 「비밀의 불도 연기가 난다」는 속담이 있다.불은 언제나 연기를 뿜게 마련이어서 은밀하게 숨어 있어야할 비밀까지도 결국엔 연기를 내보이게 돼있다는 말일 것이다. 만해는 「비밀 입니까.비밀이라니요.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고 읊었다.물론 만해의 시「비밀」은 사랑의 비밀인 것이지만 비밀은 참으로 지켜지기 어려운 속성을 지녔다.어쩌면 비밀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안기부가 지난해 11월 전국지부장들에게 「자치단체장 선거연기 검토」라는 대외비 서한을 보낸 사실이 폭로돼 당시의 안기부장이었던 김덕부총리가 전격 해임되는 일이 있었다.또 그보다 앞서는 경기도에서 각종 지방선거에 나올 예상후보들을 은밀히 알아보다가 이 사실이 밝혀져 도지사가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안기부사태는 안기부가 어떻게해서 해묵은 그런 일을 지금도 되풀이할 수 있느냐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됐었다.그런데 이때 어떤 논객은 도대체 비밀을생명으로 하는 안기부의 대외비 문서가 어떻게해서 대외 공개될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스파이 업무가 주업인 안기부 기밀문서가 밖으로 새어나간대서야 스파이부가 아니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같은 무렵 미국에선 CIA가 내부 컴퓨터망을 통해「모든 요원들은 의회내 친구나 안면이 있는 관계자들의 명단을 작성해 보고하고 그들에 대한 공작활동을 강화하라」는 극비 지시문을 보냈다가 이 사실이 신문에 폭로돼 의회가 발칵 뒤집혔다.문제의 이 지시는 의원감시가 목적이 아니라 CIA가 실추된 자체 이미지개선을 위해 대의회 로비차원이었던 것으로 해명은 됐지만. 그뿐이랴.프랑스에서는 정부기관이 현직 내무부장관 측근들의 전화를 도청해온 사실이 밝혀져 대통령선거전의 쟁점이 되고있다.프랑스 정부기관들이 정보수집이나 수사목적으로 도청을 해온 것은 알려진 비밀인데 이번에는 도청에 사용되는 전화회선이 모두 몇회선이나 되는지,지난해의 경우 총 몇건의 도청을 했는지조차 폭로되고 있다. 비밀이 없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나라가 운영되려면 비밀도 있어야 하는 법인데 어찌돼서 모두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마는 세상이 되어버렸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않다. 국가의 기밀이 하나하나 폭로되고 마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진짜 기밀의 누출을 막는 연구가 있어야 할것이다.그러나 세상은 날로 개방되고 있다.전화다,컴퓨터다,팩시밀리다,기술적으로 보안이 어렵게 돼가고 있는 것이다.구성원들의 의식구조도 점점 개방되어가고 있고 더욱 자유로워지고 있다. 최선의 방책은 밝혀져서 부끄러운 일은 하지않는 것이다.
  • 북,대중 경협 요청/김복신 부총리 방중

    【홍콩 연합】 북한 정무원의 김복신 부총리(여)가 2월7일부터 11일사이 극비리에 북경을 방문,이붕 총리에게 중국이 앞으로 3년간 1천만t이 넘는 원유와 석탄,쌀 등 각종 생필품을 유리한 조건으로 북한에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북경주재 서방 정보소식통들이 1일 말했다.
  • 일제 「소요일람지도」 공개/3·1운동 진압자료

    ◎170곳서 무차별 발표/일인이 지난해 독립기념관 기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1919년 3·1운동당시 일본군이 시위진압자료로 작성해 극비문서로 관리해오던 「소요일람지도」를 와세다대학 문학부 미야타 세츠코교수가 입수,지난해 8월20일 독립기념관에 기증해왔다고 23일 밝혔다. 가로 38.5㎝ 세로 49㎝크기의 이 지도는 왼쪽 아래에 「조선총독부 대정팔년 사월삼십일 현재」라고 씌어있어 1919년4월30일쯤 작성됐음을 보여주며 독립운동 발발지역은 둥근 반점,일본군이 무차별적으로 발포한 지역은 붉은 점으로 나타나 있다.지도에 따르면 대략 만세운동지역이 3백10여곳에 이른다.러시아접경지역에서 제주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발포지역은 대략 1백70여곳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혈진압한 것으로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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