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극비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짝사랑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혈액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부양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공지천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49
  • 북입장 최대 배려… 사실상 무상 제공/대북 쌀지원 방식과 과제

    ◎장기저리… 무연탄·철광석으로 상환/「민족내부거래」 국제 인정여부 관심 남북 당국간 북경 쌀회담 타결이 임박함에 따라 대북 쌀지원 제공의 방식과 이에 따른 문제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 양측은 북한에 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단 외형적인 「유상 제공」에 잠정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그 상환방식은 장기저리로,그것도 무연탄이나 철광석등과 바꿔받는 구상무역 형식에 합의했다. 형식은 「유상」이지만 이는 내용면에서 사실상의 무상제공을 뜻한다.결국 우리측이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의 체면을 최대한 감안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측은 지난 91년 북한에 쌀 5천t을 제공할 때 이미 유사한 선례를 남겼다.당시 우리측 민간기업인 천지무역이 북한으로부터 시멘트와 무연탄을 받기로 했으나 북측이 이를 아직까지 보내지 않음으로써 쌀값 12억7천2백만원을 정부측이 남북협력기금으로 천지무역측에 보전해준 전례가 있는 것이다. 국가간 식량의 대량거래는 무상으로 원조하거나 특혜조건으로 양도할 경우에는 잉여농산물 처리에관한 국제적 규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다만 유상으로 제공할 경우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물론 유상으로 수출할 경우는 일반적인 재화나 용역의 거래와 동일하게 세계무역기구(WTO)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즉 국제시장가격보다 현저하게 낮거나 수출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에는 부당한 거래로 제소당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91년 우리측이 북한에 쌀 5천t을 보낼 때도 미국의 도정협회가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측은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는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체내의 내부거래로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나아가 향후 남북간 직교역의 확대에 대비해 이번 쌀공여문제를 남북간 민족내부교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한 명분축적용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수송방식에선 우리측은 「주해로 종육로」를 희망하지만 북측이 원하는 대로 전량 해로수송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체제우월성을 일관되게 선전해온 북한으로선 남한쌀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북한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자세이고,우리측은 장기적인 남북관계 개선 차원에서 대국적으로 이를 양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문점을 통한 육로수송은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상징적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전면 양보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우리측이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데도 북측이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굳이 부인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북 대남정책 어찌될까/경수로 이은 변화… 한국위상 안정기미/“미·일과 관계 개선용” 일부선 신중론 북한의 대남정책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북한 대외정책의 기본전략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미국을 발판으로 국제사회 무대에 「책임있는 일원」으로 등장,일본의 자본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보자는 것이다.그 과정에서 남한 정부와의 관계는 배제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3일 콸라룸푸르에서 끝난 미북 준고위급회담에서 한국형경수로를 수용했으며,『남한 기술자의 방북에 대해 관여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곧이어 북경에서도 우리정부 당국자와의 「쌀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자,정부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경수로 사업을 담당해온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서울을 거치지 않고는 워싱턴이나 도쿄로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아무리 남한을 배제하려 애써도,남한의 승인이 없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경수로 사업도,일본과의 국교정상화도,일본 쌀의 반입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굴복한 것이라고 그는 평가했다.이 당국자는 따라서 『앞으로도 북한이 남한정부의 실체를 인정하고,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은 그에 따른 갖가지 실리적 반대급부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술적인 변화』라고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분석했다.이 당국자는 『당초 북한이 당국자간의 쌀대화에 나왔을 때,일본쌀을 받기위한 명분축적용이라는 회의가 들었으나,예상외로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면서 『쌀 지원이 이뤄지면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할만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좀더 신중한 입장을 가진 당국자들도 있다.『북한이 남한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정책에 약간의 변화가 왔지만,이는 어디까지나 미·일과의 관계개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형식적 변화일 뿐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당국자의 주장이다.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에 대한 또다른 시각은 전력이나 식량 사정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일관된 전략이나 전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좀더 냉혹한 분석이다.한 당국자는 『일본에서 30만t의 쌀을 가져간다고 해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남한에서 주는 쌀이라고 마다할 형편이 못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의 경제력 비교/GNP 기준 남한이 17.8배 앞서/북 식량난 극심… 수요량 38% 부족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94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7%로,한국은행이 지난 90년부터 북한의 국민총생산(GNP)추정통계를 작성한 이래 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했다. 한국은행은 19일 지난 해 북한의 경상GNP는 2백12억달러,1인당 GNP는 9백23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남한의 경상GNP는 3천7백69억달러로 북한의 17.8배,1인당 GNP는 8천4백83달러로 북한의 9.2배이다. 북한은 지난 90∼93년에도 각각 3.7%,5.2%,7.6%,4.3%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90∼94년의 경상GNP는 연도별로 2백31억달러,2백29억달러,2백11억달러,2백5억달러,2백12억달러이다. 90∼94년 사이에 남·북한의 경제력은 경상GNP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한이 북한의 10.9배에서 17.8배로,1인당 GNP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5.5배에서 9.2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북한의 지난 해 무역규모는 수출 8억4천만달러,수입 12억7천만달러,합계 21억1천만달러이다.남한은 수출 9백60억1천만달러,수입 1천23억5천만달러,합계 1천9백83억6천만달러로 각각 북한의 1백14.3배와 80.6배,94배에 이르렀다. 지난해 북한의 쌀 등 곡물 생산은 전년보다 다소 증가하긴 했으나 전체 수요에는 크게 미달해 우리와 일본에 대한 쌀지원을 요청하게 됐다. 작년 북한의 쌀생산량은 93년보다 18.5% 늘어난 1벡50만ⓣ에 이르고 쌀을 포함한 전체 곡물생산량은 전년보다 6.2% 증가한 4백12만5천t을 기록했다.그러나 전체 수요량 6백70만t에는 38.4%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따라 북한은 현재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북경회담­이모저모/남북 대표단 숙소 오가며 극비리 진행/북,25만t이상 요구… 막바지 진통 겪어/농림수산부 북에 보낼 쌀 도정준비 분주 ○…남북한 대표단의 북경 쌀회담은 19일 양측 대표단이 묵고 있는 샹그릴라호텔과 북경호텔을 오가면서 극비리에 진행. 전날 양측 대표단은 이틀동안의 회의결과를 종합하고 각기 서울과 평양의 훈령을 기다리는등 19일 회담을 위해 밤늦도록 대비하는 모습이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이석채 재정경재원 차관과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등 수석대표등의 주도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도 양측 대표단은 구체적인 인도방법과 절차를 논의하느라고 마라톤회의를 벌였다고 회담주위 관계자가 전언. 특히 북한측은 쌀의 인도물량에 대해계속 불만을 표시했으며 『북한은 우리가 부담할수 있는 최대규모인 25만t을 훨씬 능가한 엄청난 규모의 쌀을 요구,협상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담장 주변인사가 지적. ○…황병태 주중대사도 지난18일 하오,북경특파원들에게 결과를 설명해 주겠다고 했던 것은 이날 중으로 결과가 나올수 있을것이라는 예상때문이었다며 변명하면서 막판 협상이 적잖은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암시.주중대사관측은 지난18일 상오 북경특파원들에게 이날 하오 결과를 설명해줄테니 참석하라고 통지했으나 7시간가량 기다리게 한뒤 『아직 회의가 진행중이어서 해줄 말이 없다』며 결과설명을 유보하기도. ○…농림수산부는 19일 북경에서의 남북한 차관급 쌀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5만t(34만7천섬)의 쌀을 우선 제공하기로 함에 따라 북한에 보낼 쌀의 도정·포장·국내 수송 등의 준비작업으로 분주한 모습. 농림수산부는 이날 상오 이상길 식량관리과장의 주재로 포장재를 발주하는 조달청 관계자,포장재 생산업체들로 구성된 폴리프로필렌(PP)공업협동조합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쌀 공급에 따른 우선 해결 과제인 포장재의 제조능력·표시방법·가격 등 포장재의 조달 문제를 집중 논의.
  • “민주,국가문서 원문 변조/「지방선거 연기」 왜곡 유포”

    ◎박 민자대변인 민자당의 박범진 대변인은 19일 성명을 발표,민주당이 변조된 국가문서를 언론에 제공,정부가 계속 극비리에 지방선거 연기를 검토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난했다. 박대변인은 모 월간지 7월호에 실린 「변조된 지자제관련 정부비밀문서가 나돌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와 관련, 『민주당이 언론에 제공한 변조된 국가문서는 외무부가 지난 3월23일 18개 대사관과 총영사관에 지자제 운영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보고하라고 보낸 공문을 마치 선거연기를 위해 자료수집을 지시한듯 원문에 없는 표현이 삽입,변조됐다』고 주장했다. 박대변인은 변조의혹이 제기된 이 비밀문건을 월간지 기사의 자료로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 민주당의 권노갑 부총재가 입수경위와 변조여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6·25 45돌/진상 규명 서적출간 활발/주목받는 국내외 3개역저

    ◎일 공산주의자가 본 북침설의 허구­한국전쟁/미 육군 작전상황 기록한 공식전사­밀물과…/미 정책결전과정 분석한 「한국전쟁과 미국」도 나와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룬 서적들이 많이 나와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이런 흐름의 하나로 6월 들어 「6·25」를 분석한 국내외 역저 몇권이 선보였다.이 가운데 대표적인 책들이 국내 학자가 쓴 「한국전쟁과 미국」,미 육군성에서 낸 「밀물과 썰물」,그리고 일본 저널리스트의 저서 「한국전쟁」등이다. 「한국전쟁」(한국논단 펴냄)은 「6·25가 미군과 한국군이 일으킨 북침」이라는 김일성과 조선노동당의 주장이 허구로 가득 찬 것임을 그들의 문서를 통해 입증했다.지은이 하기와라 료(추원료)는 이를 위해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공문서보관서에 소장된 「북한문서」1백60만쪽을 2년 반에 걸쳐 열람했다.이와 함께 「6·25」 당시 조선인민군 중장이었던 유성철,옛소련 공산당 간부 허진등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뒷받침했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49년 초 중국공산당에게 조선계 군인 3만여명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받아들인다.50년 6월23∼24일에는 인민군 전체 7개 사단중 5개 사단이 38선에서 수㎞이내에 집결한다. 지은이는 인민군 2사단,3사단,6사단등에서 낸 작전명령,병력배치도,작전일지등 각종 자료를 이용해 남침 상황을 생생히 그려냈다.예컨대 6사단 문화부(정치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보낸 극비문서 「전시 정치 문화사업」에는 38선 인근에 집결해서부터 남진명령의 접수,진공,점령지 활동에 이르기까지의 행동지침이 5단계로 분류돼 자세히 지시돼 있다.지은이는 이밖에도 「김일성이 가짜」라는 사실과 북한 주둔 소련군의 쌀 수탈등 만행도 공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의 지은이는 공산주의자.하기와라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평양특파원을 지낸 기자 출신으로 지금도 일본 공산당에 몸담고 있다.그는 책을 쓴 이유를 『한국전쟁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진로에도 중대한 연관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과 미국」(평민사 펴냄)은 국방대학원 교수이자 한국전쟁연구회 회장인 김철범박사가 저술했다.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19 45년부터 53년 「6·25」종전까지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서이다.지은이는 당시 미국의 정책은 장기적인 점령아래 적극적인 경제원조를 하자는 국무부측과,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해 조속한 철군을 주장한 군부가 대립했던 것으로 보았다.새롭게 「관료정치적 모델」을 분석틀로 삼은 점이 돋보인다. 이에 견줘 「밀물과 썰물」(대륙연구소 출판부 펴냄,모스맨 지음)은 「6·25」과정 중에서 50년11월∼51년7월 부분을 다루었다.미군의 대규모 작전은 물론 대대 단위의 부분적 전투도 상세하게 소개·분석했다.미 육군의 공식 전사로서 객관적인 사실 기록에 치중했다.재무부장관을 지낸 백선진 예비역 육군소장이 우리말로 옮겼다.
  • 절차·방법(대북 쌀 지원)

    ◎15만t 수송 수개월 걸린다/89∼94년산 일반미로… 통일미 제외/국내여분 감안 7만여t 추가 수입 남북한간 차관급 쌀회담이 매듭됨에 따라 정부는 구체적인 쌀전달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아직 회담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북한이 요구한 쌀 15만t의 정확한 제공절차 등은 더 지켜봐야 한다.그러나 규모로 볼 때 한꺼번에 모두 전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정부와 계약을 한 3백93개의 도정공장중 가동할 수 있는 곳은 2백33개이고,보관중인 정부미의 생산연도는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에 북한에 제공할 쌀을 가공할 수 있는 도정공장은 이보다 적어지게 된다. 하루 8시간을 가동할 때 한개의 도정공장에서 가공할 수 있는 쌀의 양은 15t,12∼13시간을 가동하면 20∼25t가량이다.전체적으로는 5천t을 가공,포장하는데 10일쯤 걸린다는 것이 농림수산부의 계산이다.여기에 항만노무자 등의 인력을 감안한 하루 선적가능물량은 8백t정도이므로 15만t을 북한에 모두 전달하려면 최소한 몇달이 걸리게 된다.우리나라가 지난 91년7월 민간차원의 물물교환형식으로 북한에 5천t의 쌀을 제공할 때도 양곡창고 출고에서부터 목포항∼나진항의 수송과정을 거쳐 북한에 전달되는데 22일이나 걸렸다. 북한에 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림수산부가 시·도에 출고지시를 내려야 한다.전국에는 9천여개의 정부미 양곡창고가 있으며,시·도에서 보관 및 관리를 대행하고 있다.북한에 보낼 쌀의 종류가 정해지고 출고지시가 내려지면 쌀의 생산연도 및 보관창고를 감안,지역별로 쌀을 수집해 도정공장에서 가공하게 된다.포장규격은 우리의 경우 40㎏이나,북한의 요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포장지에 어떤 표식을 할 것인지의 여부도 북한과의 협상에서 결정되어야 하나 지난 91년의 경우처럼 북한의 요구를 수용,아무 표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우리나라의 정부미에는 「정부양곡」이라는 표시를 한다. 정부미는 89∼94년산 일반미와 90∼91년산 통일미가 있다.통일미는 쌀과자나 술 등의 가공용이므로 일반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확실하다.올 양곡연도가 끝나는 오는 10월말 기준 정부미의 재고량은 올해 수입할 35만6천섬(5만1천t)을 포함,7백1만1천섬(1백1만t)이다.비상시의 국민 2개월 소비량인 식량안보용은 6백만섬이므로 수치적으로 북한에 줄 수 있는 쌀의 여력은 1백만섬(15만t)가량인 셈이다.정부는 올 의무수입물량인 5만1천t은 북한에 제공할 물량에 포함시키지 않을 방침이다.민족간 내부거래이기는 하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때 수입물량의 산정기준인 국내 소비량을 남한만의 소비량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대신 의무할당량 외에 추가로 7만여t을 수입할 방침이다.이는 안보비축분을 제외하고 모든 여분을 없애는 것도 불안하지만 외국산 쌀을 포함시키는 것이 정부부담이 적어지는 이유에서다.15만t을 모두 국내산으로 채울 경우 2천억원정도의 정부부담이 생긴다.그러나 그 절반인 7만여t을 수입미로 할 경우 정부부담은 1천3백억원정도로 줄어들게 된다.국내외 쌀값은 4∼5배정도 차이가 나는 탓이다. 운송수단은 선박수송으로 이뤄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정부 관계자는 『1차로 5만t을 전달할 경우 10t짜리 트럭 5천대분이나 되므로 육상수송은 어렵지 않겠느냐』며 『해상수송을 할 경우 5천t짜리 선박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회담 이모저모/보도진 닥치자 장소옮겨 극비진행/물량·인도방법 중점일사천리 절충 북한에 대한 쌀제공과 관련한 남북한 대표단의 북경회담은 17일 하오 북경호텔에서 개막된 뒤 이날밤 샹그릴라호텔로 장소를 옮겨 18일 밤늦게까지 이곳에서 비공개회의로 진행. 이석채 재정경제원 차관과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수석대표로 남북한 관계부처 관리들로 이루어진 둘째날 회담에서 양측은 쌀제공의 양과 인도방법등에 관해 집중 논의.이날 상오까지도 회의속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고 밝히던 회담장 주변 소식통들은 하오가 되자 『세부항목에서 약간의 의견차가 있어 길어지고 있다』면서도 19일중으로는 양측이 북경에서 서명한 뒤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으로 발표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언. 이에 앞서 17일 회담때는 회담장소를 숨기려는 대표단과 이를 추적하는 기자들간에 숨막히는 숨바꼭질이 계속됐다.첫회담장인 북경호텔을 찾아내지 못했던기자들이 2차회담장인 샹그릴라호텔을 알아낸 뒤 현장에 도착한게 하오 7시40분.일본기자들이 제일먼저 밀어닥치자 북한측관계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곧이어 한국기자들이 닥치자 그때까지 남아있던 한국대표단은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양복으로 얼굴을 가린채 제지를 뿌리치며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는 모습.현장에서 통일원 관계자는 이날 하오 어떤 이야기가 오갔냐는 질문에 『나는 회담장엔 들어가지 않아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모른다』며 시침.또 이곳에서 쌀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대표단의 수는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대규모인 것으로 확인.17일 저녁 예약만 해놓고 기자들에게 들켜 결국 무산됐던 샹그릴라호텔 2층 로터스룸의 원탁식탁에는 16개의 의자가 준비돼 있었으며 호텔관계자도 모두 16명분의 식사를 준비했었으나 이날10시쯤 취소를 알려왔다고 귀띔. 한편 남북사이의 쌀 제공협상과 관련,막후 중간역할을 했던 한 조선족 거물실업가는 18일 『북한은 이미 일본·미국등과 1백40만t규모의 쌀을 원조·도입등의 방식으로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고 주장. 이 조선족실업가는 북한은 현재 3백만t규모의 쌀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북한은 『남한이 제공할 것으로 보이는 5∼30만t 규모는 너무 양이 적으며 생색내는데 그치는 양』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면서 남북사이의 논의는 쌀의 제공 양과 관련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
  • 북­일/2월부터 성항서 극비 「쌀접촉」

    ◎쌀제공 둘러싼 북­일 비밀접촉 내막/정식루트 대신 사조직 가동… 일제외교 흡사/이성록비자 이례적 조기 발급… 고위관리 개입 다음은 일본시사주간지 아에라(아사히신문 발행)가 보도한 북한과 일본간의 쌀제공을 둘러싼 비밀접촉내막. 북한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위원장은 5월26일 연립여당 정책책임자들과 조찬회를 가졌다.이 자리에는 자민당의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가토 고이치 정조회장,구보 와타루 사회당서기장,하토야마 유키오 신당 사키가케 대표간사 등이 참석했다. 북한은 이 자리에서 김용순 노동당중앙위원 겸 서기의 친서 4통을 전달했다.김은 노동당 중앙위원 직함 외에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그리고 실체가 불분명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그리고 통일전선부와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의 부책임자는 이종혁이라는 인물이 맡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싱가포르에서는 북·일 회담이 극비리에 열렸다.북한에서는 이종혁이,일본에서는 호리 고스케 자민당 정조회부회장과 다케우치 유키오 외무성 아시아국심의관이 참석했다.이 회담은 김용순­이종혁 라인과 가토 고이치 사무소와의 특수관계가 배경이 돼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당사자들은 북한 관계자들을 만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지난 3월말 일본 연립여당 대표단이 북한을 공식방문했을 때 요시다 다케시 신일본산업사장이 「중의원 의원 가토 고이치 사무소 요시다 다케시」라는 명함을 갖고 북한을 방문했었다.그는 가토 사무소와는 아무 관계없는 사람으로 가토 사무소 책임자인 사토 사부로씨의 동행 부탁을 받고 평양에 갔으며 사토 자신도 자민당 대표단 일원에 끼였다. 사토씨는 지난 26일의 연립여당 당국자들과 북한 이성록 일행과의 조찬회에도 참석했으며 일조우호학술문화페스티벌 협의를 이유로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이성록 일행을 영접한 사람은 요시다 사장이었다. 이성록 일행의 입국 비자는 단 며칠만에 나왔다.북한인사에 대해서는 통상 수주,경우에 따라서는 한달 이상이 걸렸던 것에 비해서는 이례적이다. 가토 사무소의 이같은 행동과 도쿄 전일공호텔 조찬회에 이르기까지의불투명한 움직임에는 문제가 있다.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의 정체는 알려진 게 없다.가토사무소라는 사적 조직의 움직임은 뭔가 국민을 속이고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과거 중·일 전쟁 당시 정식 외교루트를 배제하고 일본육군이 중국의 유력자,각종 조직과 모략적 접촉을 했던 것과 유사하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같은 움직임에 외무성 심의관이라는 정부 외교당국자마저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외교당국자가 정체불명의 북한 공작담당자와 마주친 것은 만일의 경우 발뺌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히는 것이다. ◎대북 쌀지원 관련 「경고 메시지」 왜 나왔나/북·일 물밑대화 제동… 북한에 직접대화 촉구/인도적 차원·남북한 관계개선 의지 분명히 8일 정부가 대북 쌀제공과 관련해 남북 당사자원칙을 강력히 천명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밝힌 대북 곡물제공문제에 대한 정부의 기본윈칙은 한마디로 「선 한국곡물 제공방침」으로 요약된다.이는 『일본이 곡물을 먼저 지원할 경우 한일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는 그의 강도높은 대일 경고 메시지에서 감지된다. 이같은 정부의 원칙 천명에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 곡물제공이 남북 당국간 관계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리측의 희망이 담겨 있다.반면 이례적인 대일 경고메시지는 일본등 제3자가 개입함으로써 그같은 우리의 전략이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쐐기를 박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우리측은 지난 26일 대북 곡물제공 제의를 하면서 남북 당사자간 절차협의 이외에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은 우리의 선의에 아무런 직접적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북한지도부로선 남한쌀을 받을 경우 체면이 구겨진다는 차원을 넘어서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면 자칫 체제동요가 가속화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김일성 사후 남북 당국간 대화기피 자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일단 한국쌀보다는 일본쌀을 얻어내는데 주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쌀을 겨냥,일본등 제3국이나 국제민간단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손을 벌리는 이중적 자세를 보여 왔다.이를 테면 북한이 쌀문제 회담을 북경에서 갖되 정부간 협상이 아닌 「공사나 공단차원」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이를 말해준다.또 북한이 조건없는 곡물 공여의사를 표명한 한국측과 직접 교섭할 의사가 있다고 연막을 치면서도 쌀원조는 일본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는 서한을 일본 정부측에 보내왔다는 외신 보도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 북한의 이같은 자세는 쌀제공등은 민족복리 차원에서 민족내부 문제로 다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제사회에서의 대북지원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는 우리의 기본방침과는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측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김태지 주일대사를 통해 「선한국쌀 후일본쌀」원칙을 전달했음에도 일본측이 북한과 물밑대화를 중단하지 않고 있는 대목이다.바로 이 점이 이날 강력한 대일 메시지를 표명케 한 직접적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형분규 고비 주무장관 수사 충격/검찰의 이 전노동 조사 안팎

    ◎「수뢰의혹」끊이잖아 연초부터 극비내사/“비리엔 장관도 예외없다”칼날사정 확인 검찰이 23일 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의 수뢰혐의를 잡고 금명간 소환,수사하기로 한 것은 현정부의 사정의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으로 풀이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 「제6공화국」 뿐 아니라 서슬이 퍼렇던 「제5공화국」에서도 현직 각료에 대해 「사정의 칼」을 빼든 예는 없었다.그만큼 정부로서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 전장관은 특히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노사분규 등을 다루는 주무장관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아무리 「사정의 강도」가 높아도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주무장관을 사법처리할 수 있느냐 하는 얘기인 것이다. 검찰은 이 전장관에 대해 연초부터 내사를 벌여 최근 일부 혐의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전장관은 지난해 12월 입각한 뒤 바로 검찰의 「법망」에 걸려든 셈이다.이에 대해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취임 초기부터 이전장관에 대한 시중의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산업은행에서 거액의 시설자금이 장기저리로 대출된 점에 착안,그동안 은밀하게 내사를 벌여왔다』고 설명했다. 이 전장관에 대한 수뢰의혹은 90년9월부터 4년동안 산업은행 총재로 있을 때는 물론 장관에 올라서도 끊임 없이 제기돼 왔다.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조성사건 때도 같은 이유로 「수사대상」에 올랐으나 간신히 비켜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때문에 검찰의 이번 수사에 대해 일부에서는 「표적수사」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고 일축한다.상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받은 적도 없으며 검찰의 독자적이고 순수한 인지수사라고 강조하고 있다.검찰은 「범죄혐의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내사 또는 수사할 수 있다」는 원론을 폈다. 대검의 이원성 중앙수사부장은 이날 『현직 장관이라 내사에 따른 위험부담이 컸다』고 밝히고 『그동안 내사 결과 상당수 물증을 확보한 만큼 이 전장관을 사법처리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는 후문이다.이 전장관의 사무실이나 집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면 혐의사실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일일이 대출업체의 실무자들을 불러 사실확인을 해야 했다.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난달 말쯤 일부 업체로부터 이 전장관에게 수천만원씩 뇌물을 줬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그러나 보다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보강수사를 벌여왔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구속된 박성섭 회장의 덕산그룹이 관련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이 전장관과 대출업체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산업은행 전 임원 2∼3명의 수뢰사실도 이때 속속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한건에 수십억∼수천억원의 시설자금이 나가는데 떡고물이 없겠느냐』면서 『시설자금 대출에 따른 커미션 수수는 공공연한 관행 아니냐』고 되물었다. 한편 금융계는 이번 수사의 파장이 전체 금융계로 확산되는 것이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이다. 노동부 안에서는 이 전장관이 이날 아침 출근을 못하고 국무회의에도 최승부 차관을대신 내보내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는 모습들이었다. ◎산은의 장기 설비자금/5년이상 장기저리대출… “엄청난 특혜”/거액자금 따내기에 기업 사활걸기도 이형구 노동부장관이 산업은행총재 때 대출커미션을 수수한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산업은행 대출이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산은은 창립 이래 현직 간부가 한번도 비리에 연루되지 않을 정도로 상하의 관계가 끈끈한 것으로 유명하다.이 때문에 금융계 관계자들은 『산은은 총재부터 대리까지 모두 한가족』이라는 말로 혹평하기도 한다.그런가 하면 대기업의 자금관계자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정의 칼날이 번뜩이는 가운데서도 산은 직원만은 변한 게 없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산은의 위세가 그만큼 막강하다는 뜻이다. 산은이 이처럼 상하가 똘똘 뭉친 가운데 기업 위에 군림하는 것은 거액의 장기설비자금배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적게는 몇백억원,많게는 조단위의 자금을 연 8∼12.5%수준에 5년이상의 장기로 빌려주기 때문에 장기설비자금을 따내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이자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정치참여 이후 현대에 대한 제재조치중 산은의 장기설비자금 대출중단이 가장 위협적인 수단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산은 자금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산은 자금배분에는 이처럼 정치적인 판단이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현 김시형 총재까지 역대 21명의 총재중 12명이 각료로 입각했다.또 그중 2명은 부총리로 승진했다. 일제의 식산은행 후신으로 지난 54년 산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뒤 50∼60년대에는 국내 장기설비금융의 70∼80%,90년대 들어서도 30%이상을 담당하는 등 경제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총자산 35조원에 올해 장기설비자금 공급규모는 8조2천억원이다.
  • 「문화식민」부르는 외식산업/김종면 문화부 기자(오늘의 눈)

    『한국 어린이들은 입맛을 내주었고 어른들은 시장을 내주었다』 최근 영국 로이터통신은 한국진출 미국 외식업체의 이상호황을 비꼬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1월 강남에 미국식 가족식당 「시즐러」가 문을 연데 이어 불과 4개월만에 할리우드 상업주의를 내세운 레스토랑 「플래닛 할리우드」(서울 논현동소재)가 22일 개점 축하쇼와 함께 본격 영업에 나섬으로써 국내 패스트푸드업계에 태풍을 몰고올 조짐이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젊은 층의 기호가 빠른 속도로 서구화되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외식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우리 고유식단을 개발하기보다는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면서까지 너도나도 외국브랜드를 들여오고 있어 한국은 외국 외식업계의 「행복한 사냥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샌드위치 한조각 값이 1만2천원이 넘는 등 청소년층에 과소비풍조를 조장할 수 있는 측면과는 별개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문화적 파급효과이다.「플래닛…」측은 벌써부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한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사이보그모델을 비롯해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가 입은 청바지,마릴린 몬로의 드레스 등을 공수해와 진열하는 등 「할리우드문화 이식」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플래닛…」은 또한 한국인과 외국인입구를 따로 설치,외국인의 경우 「VIP출구」를 드나드는 것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반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고객은 줄을 서 입장할 수밖에 없는 등 식당구조에서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한편 공동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삼호필름(대표 박효성)은 이날 「스타와의 밤」행사를 위해 한국에 온 브루스 윌리스,신디 크로포드 등에 대해 인터뷰는 고사하고 도착일정과 숙소 등도 일체 극비에 부치는 등 「칙사대접」을 자진,상업적 목적을 위해 국민적 자존심을 헌납하는듯한 인상을 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미국의 5개 직배영화사는 지난해 2백50억원을 거뜬히 벌여들여 본국에 보냈다.이같은 현실을 어렴풋이라도 짐작하는 고객이라면 영화에 이어 한국인의 입맛까지 할리우드식으로 길들이겠다고 나선 「플래닛…」에 앉아 미국배우들의 손자국이 새겨진 벽을 바라보며 유쾌한 대화를 나눌순 없을 것이다.
  • 새벽 전격작전… 충돌없이 20분만에“끝”/현대자 공권력투입 되던날

    ◎현총련 3백명 항의시위… 출근길 큰 불편/사측 양봉수씨 가족방문 “원만 해결” 다짐 ○…경찰이 회사 안에서 농성하던 2백20명의 근로자를 연행하자 현대중공업 노조원 30여명 등 현총련 소속 노조원 3백여명은 회사 밖 도로에서 격렬한 시위.이들은 상오 6시 쯤부터 현대문화센터 앞 등 현대자동차 인근 도로에서 보도블록을 깨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 인근 도로의 차량 통행이 상오 6시부터 10시까지 전면 통제돼 출근길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출근길의 시민 정모씨(38)는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시위는 안 된다』며 근로자들의 자제를 당부. ○…회사측은 『회사 내부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공권력까지 투입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며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조측은 『기습적으로 경찰력을 투입한 것은 단편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라며 『사태를 빨리 해결하려면 경찰병력을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 ○…현대자동차 전현찬 상무 등 회사대표 3명은 19일 이번 사태의 불씨를 제공한 양봉수씨가 입원 중인 대구 동산병원을 방문,가족에게 『양씨의 쾌유를 빈다.가족이 지정하는 변호사와 협의,원만히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회사와 노조의 뜻을 전달.그러나 회사 대표와 함께 2차례나 가족과의 면담을 시도한 노조측은 분대위측 근로자 20여명의 저지로 끝내 면담에 실패. ○…현대자동차 곳곳에는 20여대의 경찰차와 5백여명의 경찰이 출입문과 주요 시설물에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자를 통제. ○…현대자동차에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연대 투쟁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온 현총련은 『당초 계획대로 20일 하오 3시 일산해수욕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그러나 경찰은 이를 원천봉쇄할 방침이다. ○…울산만 작전으로 이름 붙여진 이 날의 공권력 투입은 극비리에 전개돼 전광석화처럼 끝났다.경찰은 보안유지를 위해 심야 대책회의 장소를 상황실이 있는 울산 동부경찰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갖는 바람에 하오 늦게 창원을 출발,울산에 도착한 정해수 경남경찰청장도 한동안 회의장소를 찾지 못했다고. ○…철야하던 근로자 3백여명은 별다른 저항 없이 연행에 응함으로써 다행히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울산 시민들은 공권력 투입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불씨가 현대 계열사로 옮겨가지 않을까 걱정.시민 변재호씨(36)는 『노사가 화합해 생산실적이 늘어나는 시점에 반노조 세력이 파업을 선동한 것은 누구로부터도 동정받지 못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노동운동도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거는 등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휴업 3일째로 접어든 19일 협력업체들의 손실액은 8백24억원을 넘어섰고 현대자동차도 1천4백51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 남침야욕 노골화(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2)

    ◎김일성,“개막 두달내 남한점령” 장담/49년9월 소 공사에 남침구상 처음 표명/“전쟁 허락해 달라” 집요하게 스탈린 설득/“국지전·전면전” 선택권은 크렘린에 맡겨/평양,빨치산 지휘자 8백명 남파… 게릴라전 지도 김일성의 구체적인 남침구상이 최초로 문서로 드러난 것은 1949년 9월3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의 툰킨공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극비보고전문이다.전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대통령문서보관소) ○스탈린 관심 표명 김일성이 밝힌 이 최초의 구체적 남침 계획에 대해 스탈린은 일단 관심을 표명했다.그리고는 9월 11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앞으로 한반도정세에 관해 다음의 항목으로 상세한 보고서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⑴남조선군의 전력에 대한 평가.규모·무기·전투능력등. ⑵남조선내 빨치산운동상황.개전시 그들로부터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지. ⑶)북조선이 전쟁을 시작할 경우 남조선 인민들이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⑷남침시 미군이 취할 입장 ⑸북조선의 군사력·무기·전투능력.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툰킨공사는 곧바로 12∼13일 양일간 김일성·박헌영을 면담했다.재미있는 것은 툰킨공사와의 면담에서김일성의 태도는 이전의 남조선의 군사적 위협에서 대남 무력침공이 성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급변했다는 것이다.다음은 9월14일 툰킨공사가 스탈린에게 보고한 김과의 면담내용. 『⑴남조선군은 장교들의 훈련수준이 아주 낮다고 함.김일성은 38도선에서 벌어진 몇차례 교전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평가했음.김은 현재 남조선군 거의 모든 부대에 북한첩자들이 침투해있다고 했음.그러나 내전이 벌어졌을 때 실제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여부는 말하기 어렵다고 했음. ⑵김일성·박헌영은 현재 남조선에 1천5백∼2천명의 빨치산이 활동중이라고 했음.김은 그러나 이들로부터 큰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했음.남한출신인 박헌영은 김과 다소 다른 견해를 밝혔음.그는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음. ⑶북한이 선제공격을 시작할 경우 남한국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말했음.김은 금년 봄 모택동이 북조선대표 김일에게 말한 내용을 인용,지금 전쟁을 시작하기보다는 중국내전이 고비를 넘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음』 그러나 바로 이튿날 김일성은 슈티코프에게 전날과 달리 북조선이 군사작전을 시작할 경우 남조선 국민들도 이를 환영할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불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슈티코프대사는 이를 통역으로 나온 허가이(편집자주:재소한인으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비서)의 영향탓이라고 분석했다.그러나 대화가 진행되면서 김일성은 다시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따라서 전면전 대신 옹진반도와 반도동쪽의 개성까지 남한영토 일부를 점령하는 작전이 좋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김일성은 북조선군이 남조선군과 비교해 강점으로는 탱크·박격포·비행기등 기술적인 면과 훈련·사기등에서 앞서고 약점으로는 조종사의 숫자 및 훈련부족·군함부족·탄약부족·대구경총의 전투태세 미흡등을 들었다.김일성은 먼저 옹진반도를 공격,그곳에 주둔중인 남한군 2개연대를 궤멸시키고 반도를 점령한 뒤 동쪽의 남조선영토 일부를 점령하면 일단 공격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피겠다고 했다.남한군의 사기가 떨어졌다 싶으면 계속 남진하되 그렇지 않으면 옹진반도를 확고히 해 방어선을 3분의1 정도 줄이겠다는 계산이었다. 한마디로 김일성은 남침의사를 밝히면서도 스탈린의 의중을 알기 위해 끝까지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았다.물론 남침의사를 내비친 것은 스탈린이 원칙적으로 이에 동의할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그러면서도 남한 군사력에 대한 평가,국지전을 할지 전면전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입장이 오락가락한 것은 결국 스탈린이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다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툰킨공사는 이 보고전문 말미에 김일성·박헌영과는 다른 견해를 덧붙이며 전쟁개시에 강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무력통일밖에 없다 『김일성이 제의하는 국지전은 필히 남북한간 내전으로 발전될 것임.현재 남북한 지도부내 내전 지지자는 극소수임.현단계에서 북조선이 내전을 시작하는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 생각해야 함.본인은 현명치 못한 판단으로 생각함.북조선군은 남쪽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신속한 작전을 수행할 만큼 강하지 못함.빨치산과 남조선인민들의 도움을 가정하더라도 신속한 성공을 기대하기 힘듦.내전으로 확대되면 정치·군사 양면에서 북조선에 불리함.첫째로 전쟁확대는 미국에 이승만정부를 지원할 명분을 줌.미국은 중국에서 패했기 때문에 매우 적극적으로 남조선문제에 개입하려 함.또한 전쟁피해가 커지면서 남조선국민들 사이에 전쟁을 시작한 측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 것임』 그는 이 전문과 함께 남북한의 정치경제·군사 관련장문의 보고서를 스탈린앞으로 보냈다.이 보고서는 그동안 알려진 당시상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용치 않기로 한다.다만 한가지 툰킨공사가 이 별도보고서에서 김일성이 남침의사를 갖고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그는 김일성·박헌영 두사람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 가능성은 없어졌고 무력에 의한 통일의 길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여기서도 툰킨공사는 남침시 미군개입과 반소선전에 악용될 가능성등을 들어 전쟁개시에 강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그는 전쟁보다 남조선내 빨치산부대의 활동을 지원하는게 보다 현명하다는 견해를덧붙였다. 이같은 보고를 접한 크렘린은 9월24일 당중앙위 정치국 이름으로 북조선의 남침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북한지도부에 전달케했다(소련공산당중앙위 정치국결정.회의록 N191).이 결정에서 크렘린은 군사적으로 인민군이 장기적인 작전을 벌일 준비가 안돼 있어 지금 작전을 시작하면 적을 패배시킬 수도 없을 뿐아니라 북조선에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고 못박았다.이 결정은 「조선인민들이 통일을 고대하고 있다는 동지의 견해에는 동의한다.그러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무엇보다 남조선내 빨치산운동을 강화하고 대규모 반정부 기운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라」고 충고했다.옹진반도 점령작전에 대해서도 소련지도부는 『이는 남조선과의 전면전 초기단계로서 시작돼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빨치산운동 강화를 1차 면담에 이어 두번째로 김일성의 개전허가요구를 거절한 것이지만 스탈린의 이 결정은 좀더 확실한 승리를 위한 작전지시문 같은 느낌을 준다.아울러 김일성과 스탈린 두사람간 전쟁개시에대한 공감대는 이 무렵을 전후해 확고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10월4일 슈티코프대사는 이 전문을 들고 김일성·박헌영을 다시 만났다.그리고는 바로 그날 저녁 스탈린앞으로 다음과같이 이 면담결과를 보고했다.『김일성과 박헌영은 우리의 통보를 냉담하게 받아들였음.김일성은 「좋다」는 한마디만 했고 박헌영은 모스크바의 논리가 옳다고 수긍한 뒤 남조선에서 빨치산운동이 확산되기를 기다리는게 좋다고 동의했음.현재 남조선에서는 북조선에서 파견한 8백명이 빨치산운동을 지도하고 있다고 했음』 소련의 이같은 설득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남침의사를 굽히지 않았다.이듬해인 50년 1월17일 평양에서는 박헌영외상이 주최한 한 만찬이 열렸다.1월10일 애치슨 미국무장관이 미국의 태평양안전보장선에서 한반도를 제외시킨다고 선언한지 꼭 1주일째 되는 날이었다.이 만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취한 김일성은 소련·중국 대표들을 붙들고 자신의 남침의지를 다시한번 강하게 나타냈다.이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다.
  • 옴교,「2인자」청부살해/폭력조직·범인 서유행씨 매수

    ◎체포 신도 사린테러 자백 【도쿄=강석진 특파원】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사린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일본경찰은 이미 검거한 40대 옴 진리교(교주 마원창황·40) 신도로부터 사건당일 사린을 지하철 차량안에 살포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4일 보도했다. 또 옴진리교 과학기술성 장관 무라이 살해사건은 교단측 사주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됴쿄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일본신문들에 따르면 검거된 40대 신도가 테러사건당일인 3월20일 새벽에 도쿄도 시부야구에 있는 옴교 아지트에 신도들이 집합해 차량으로 지하철역에 도착했으며 비닐주머니를 지시에 따라 지하철 차량안에 놓아두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한 옴 진리교 「첩보성 대신」인 이노우에 요시히로(25·특별수배중)용의자의 수첩에서 사건당시 지하철 시간표를 자세히 적은 메모를 발견했으며 사린살포에 나선 신도들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와 함께 옴 진리교 관계자가 『무라이는 입이 가벼워 극비사향이 누설되지 않도록 입을 막아야한다』며 무라이를 청부살해할 목적으로 한 부동산회사 사장에게 수억엔을 건네줬으며 부동산회사사장은 다시 폭력단 야마구치구미 계열조직 간부인 가미미네에게 2억엔을 주며 살해를 의뢰했다고 한 폭력단 간부가 증언했다.가미미네는 이어 재일교포 서유행씨에게 채무 5천만엔을 면제해준다는 조건으로 무라이 살해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 스탈린­김일성/「남침 대화록」 최초 발굴

    ◎스탈린 「6·25승인」뒤 전쟁 전권행사/서울신문,소 「극비문서」 9백50건 입수/전황불리하자 평양정권 중망명 계획 【모스크바=이기동 특파원】 한국전쟁과 관련,러시아측에 보관돼 있는 방대한 양의 미공개 비밀문서가 최근 서울신문에 의해 입수돼 그동안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6·25내막을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총9백50건,3천여쪽에 달하는 이들 문서는 38도선에서 남북한간 잦은 충돌이 벌어진 47년초부터 전쟁을 거쳐 휴전협정체결에 이르기까지 평양·북경주재 옛소련대사관과 본국 사이에 오간 전문과 크렘린에서 이루어진 전쟁관련 회합의 기록문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그중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김일성이 49년3월5일 모스크바를 극비방문했을 때 당시 스탈린수상과 나눈 대화록도 포함돼 있다. 이들 문서는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정부의 주요국가문서보관소인 대통령문서소·외무부문서소·옛소련공산당 중앙위문서소·국방부산하 군사문서소 등지에 보관돼 있는 미공개 6·25 관련문서들이 모두 망라된 것이다. 새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6·25를 일으키기 2년여 전부터 남침개시를 스탈린·모택동에게 계속 요구했으며 반면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과 준비미비등을 이유로 막판까지 남침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일단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한 뒤에는 전쟁준비·작전수립등 전쟁의 전과정에 스탈린이 거의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탈린은 특히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북한군에 불리하게 바뀐 뒤 김일성·모택동이 요청한 휴전제의를 거듭 묵살,전쟁의 피해를 배가시킨 장본인으로 드러났다.스탈린은 6·25를 미국의 국력을 소진시킬 절호의 기회로 보고 무리하게 전쟁을 계속 끈 것으로 관련문서는 밝히고 있다. 스탈린은 또 52년8월 주은래와의 회담에서 주가 『북한지도부가 인명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전쟁계속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으나 『이 전쟁은 명분이 큰 전쟁이니 인내심을 갖고 계속하자』고 고집,최소한 1년이상 전쟁을 더 끌기로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소련의 입장은 53년3월3일 스탈린의 사망과 함께 휴전지지쪽으로 급선회했다. 김일성은 당초 황해의 옹진반도에서 국지전을 시작해 동남쪽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다가 작전개시 불과 나흘 전인 21일 작전계획이 남한에 누출됐다는 정보보고에 따라 이를 전면전으로 급전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공군의 참전도 스탈린이 모택동을 수차례 설득해 동의를 얻어낸 것으로 드러났다.모는 당초 수차례 무력지원약속을 김일성에게 했으나 막상 병력지원요청을 받고서는 이를 거부하다 스탈린의 끈질긴 요청을 받고서야 파병결정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새 자료에 따르면 스탈린은 모택동이 중공군파병을 계속 주저하던 50년10월13일 김일성에게 『저항을 계속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병력과 장비를 모두 가지고 소련·중국영토로 북한정권자체를 철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김일성·박헌영도 이 지시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나 스탈린동지의 뜻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철수준비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 정권철수계획은 바로 이튿날인 10월14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중공군 파병결정을 통보해옴에 따라 긴급히 취소된 것으로 새 문서는 밝히고 있다. 한편 김일성이 50년5월 북경회담에서 모택동에게 처음 보고해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오던 3단계 작전계획은 이보다 앞선 4월 모스크바회담에서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직접 지시한 것임이 이번 자료에 의해 밝혀졌다.
  • 김일성의 남침 책략(모스크바 새 정언:1)

    ◎6·25내막/서울신문 발굴 소문서속 비사/김일성,“해안방어 취약… 소서 지원해달라”/스탈린/“북 해군 창설·전투기 제공 약속”/김일성/“남한군 6만명… 우리가 더 강해”/49년3월5일 대화록/김일성/“전국토 해방 절호의 기회왔다”/스탈린/“미군 남아있어 때를 기다려야”/49년3월7일 대화록/러 국립문서보관소 미공개자료 9백50건으로 엮는 시리즈 서울신문사는 6·25 반발 45주년,해방 50주년의 해를 맞아 현대사 재조명작업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보관중인 미공개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 9백50여건 3천여페이지를 독점 입수했다.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이 그동안의 노력끝에 러시아의 외무부 문서국을 비롯,대통령 문서국·옛소련공산당 중앙위 문서국·국방부 문서국 등에서 입수한 이들 문서들을 앞으로 20여회에 걸친 시리즈로 독자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한국전쟁의 준비로부터 전개과정,휴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모든 의혹과 논쟁들이 말끔히 정리되길 기대한다.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인이 6·25를 공동기획하고 이끌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밝혀진 문서들을 통해 이제는 뒤집을 수 없는 사실로 굳어져 있다.그러면 이 3인중 전쟁에 가장 먼저 뜻을 둔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그리고 그 시기는 언제쯤인가.러시아측 문서에 따르면 1945년 해방을 맞은 뒤 48년 북한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그리고 49년말까지 적어도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의사를 갖지 않았다.스탈린은 오히려 미국과 남한의 전쟁도발을 크게 우려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마치 2차 세계대전 전 독일에 대해 품었던 것같이 스탈린은 미국과 남한의 전쟁도발을 피하기 위해 급급했고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에 매우 집착했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다음은 이 당시 크렘린의 분위기를 엿보게 하는 문서.(소련군 총참모부 제8국 전문번호 N121973.편집자주=제8국은 소련군 총참모부에서 해외공관과의 비밀통신을 취급하는 부서)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중인 이 비밀전문은 47년 5월 12일 당시 평양주재 소련대표부에 파견된 메레슈코프프장군과 슈티코프장군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긴급요청서였다. 『스탈린동지께.46년 7월 26일 전문번호 N15327로 보낸 우리정부의 결정에 의거,46년 12월 16일 우리는 82명의 소련전문가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음.이 전문가 파견은 북한에서 산업시설복구와 철도건설작업을 돕기 위한 것임.그러나 지금까지 단 1명의 전문가도 북한에 도착하지 않았음.…중략… 소련을 비롯한 기타 외국전문가들의 도움없이 북한의 산업,철도체계는 가동되지 못함.북한의 붕괴를 막고 또한 남한에서 향후 우리의 입지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소련 엔지니어,기술자의 파견이 절대 필요함. ○소전문가 보내라 만약 남북한이 통일돼 임시정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소련전문가들이 도착하지 않을 경우 필히 미국 기술자들이 일하러 올 것임.그러면 우리보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임』 이 전문을 보고받은 스탈린은 보고서 위에다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휘갈겨썼다.『소련전문가 5∼8명을 보내줄 것.그들로 하여금 조선인들을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케 하라.우리가 조선에 너무 깊이 개입해서는 안됨』 북한과 소련관계가 이같은 식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김일성은 48년 2월 인민군 창건,그리고 그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이듬해인 49년 1월 17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슈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만났다.슈티코프는 이날의 면담내용을 즉각 본부에 보고했다.(러시아대통령문서소 보관)『김일성은 이전에 언급한 바 있는 소련과의 우호협력협정 체결을 다시 희망했음.이에 대해 본인은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하에서 그런 조약체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음.남한의 반동세력들이 한반도 분단고착화의 기회로 이용하고 미소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수도 있음.이 문제로 김일성과 박헌영은 다소 당혹해 했음.김일성은 강경치는 않지만 조약체결을 고집했고 만약 조약체결이 안되면 소련의 비밀원조협정이라도 맺자고 요구했음.본인의 추가설득을 듣고서 김일성은 일단 지금 우호협력조약체결은 적절치 않다는데 동의했음』 그러나 이 전문보고가 있은 불과 1주일 뒤인 1월27일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 같은 긴급전문을 다시 보냈다.『북조선경찰의 정보보고에 따르면 남한 군부대들이 38선 가까이 이동하고 있고 주 작전방향을 따라 병력이 집중배치되고 있음.남한에 파견됐던 첩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남한에서는 북침설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고 함.남한장교들은 남한이 먼저 공격을 시작해 이니셔티브를 잡자고 말한다고 함.이에 따라 북조선당국은 38선의 수비를 강화하고 경계를 강화하기 위한 필요한 방안을 취하고 있음. 결론=본인은 현단계에서 남한이 공격해올 가능성은 낮다고 봄.국내외 여건이 이같은 공격을 불허함.이들이 병력을 38선을 따라 이동해 주방향에 집결시켰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음.남한은 북쪽의 서울공격을 항상 예상했기 때문에 서울방어를 위해 이같은 병력이동을 했을 수 있음.최근 남한은 북한에 테러부대 파견을 증대시키고 있음.총 80명의 테러범들이 체포됐음.개성에서는 14명이 체포됐는데 이들은 폭약 5통,액체폭발물 6병,휘발유 1통을 소지하고 있었음.이들은 창고,학교를 불태우고 지방지도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왔음』 ○북침 가능성 낮다 2월에 접어들면서 평양의 소련대사관이 보내는 남측의 도발보고 건수는 점차 그 횟수가 잦아졌다.2월3일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본부의 몰로토프 외상 앞으로 보냈다. 『38도선 상황이 매우 소란함.남한 군경이 매일 38도선을 넘어 북한의 경찰경비초소를 공격함.현재 북한은 경찰 2개 여단으로 38도선을 경비하고 있음.이 여단의 무장은 일본군의 소총뿐임.소총 1정당 탄알은 3∼10발씩뿐임.자동소총은 없음.북한경찰은 남한경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후퇴하거나 탄약이 떨어져 포로로 잡히기도 함. 소련정부의 결정으로 이들 2개여단 병력에게 소련제 무기가 지급되기로 돼있음.소련국방부 명령에 따라 이들 무기들은 해안군사지구에 공급되기로 돼있음.그러나 본인의 수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무기공급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있음.…중략… 그러나 소련정부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북조선은 소총사단 1개,여단 1개를 창설했는데 무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긴급히 이 사태에 손을 써줄 것을 요청함』 ○무기지원 등 요구 슈티코프대사는 하루 뒤인 2월 4일에도 본부에 전문을보내 남한의 대규모 도발을 보고했다.그는 이 공격을 통해 남한군은 38도선 북쪽 2백∼3백m에 위치한 고지 한곳을 점령했고 그옆 38도선 바로 남쪽에 남한군 1개 대대가 배치됐다고 보고했다. 49년 3월 5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모스크바를 극비 방문했다.그는 스탈린과의 면담에서도 38도선의 긴장문제를 제기했다.이날 북조선대표단이 스탈린과 나눈 대화내용은 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돼 있다. 『김=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북조선에 대한 반동세력의 도발이 점점 더 격해지고 있습니다.우리도 육군은 있지만 해안방어가 거의 전무합니다.이 점에 소련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스탈린=미군은 남조선에 몇명이 주둔하고 있습니까. 김=최고 2만명쯤 됩니다. 스탈린=남조선은 군대가 있습니까. 김=있습니다.약 6만명입니다. 스탈린=이 숫자는 경찰을 포함한 것입니까. 김=아닙니다.정규군 숫자입니다. 스탈린=그들이 두렵습니까. 김=그렇지 않습니다.하지만 해군을 갖고 싶습니다. 스탈린=누구 군대가 더 강합니까.당신군인가 아니면 그들인가요. 박헌영=우리 군대가 더 강합니다. 스탈린=해군창설을 지원하겠습니다.군용기도 주겠습니다.남조선군 내부에 당신 사람들이 침투해 있습니까. 박=있습니다.하지만 모두 하위계급들이라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스탈린=잘한 일입니다.지금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됩니다.남조선도 북에 첩자를 보냈을 것입니다.그러니 정신차려야 합니다.요즘 38도선 사정은 어떤가요.남조선군이 침범해 많은 초소들을 뺏겼다가 다시 찾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김=강원도지역 38선에서 충돌이 있었습니다.우리 경찰은 무장이 부실해서 나중에 정규군을 투입해 남조선군을 격퇴했습니다. 스탈린=쫓아냈나요,그들 스스로 물러났나요. 김=우리가 그들을 패배시켰고 그런 다음 그들이 물러났습니다. 스탈린=38도선은 평화로워야 합니다.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기간은 김일성이 인민군창건 뒤 내부적으로 군비증강에 가장 힘을 쏟을 시점이었다.그는 어떻게 하든 남한의 도발위험이 높다는 점을 강조해 소련으로부터 무기지원을 하나라도더 받아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주목할 것은 이날 대화에서 김일성,스탈린 두사람 모두 남침문제는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월 7일 두번째 크렘린회담에서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정식으로 남침승인을 요청했다.모스크바 방문의 진짜 목적을 털어놓은 것이다. ○남침 허가해 달라 힘들게 꺼낸 김일성의 남침허가 요청에 대해 스탈린은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밝혔다.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된 49년 3월 7일 스탈린과 북한대표단간의 대화록은 그러나 스탈린 역시 당장의 남침은 불가하지만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완곡한 시사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일성=스탈린동지.이제 상황이 무르익어 전국토를 무력으로 해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남조선의 반동세력들은 절대로 평화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들은 자신들이 북침을 하기에 충분한 힘을 확보할 때까지 분단을 고착화하려고 합니다.이제 우리가 공세를 취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우리의 군대는 강하고 남조선에는 강력한 빨치산부대의 지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탈린=남침은 불가합니다.첫째 북조선인민군은 남조선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치 못하고 있습니다.수적으로도 열세이고,둘째 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전쟁이 나면 그들이 개입할 것입니다.셋째 소련과 미국사이에 아직도 38도선 분할협정이 유효함을 기억해야 합니다.이를 우리가 먼저 위반하면 미국의 개입을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김=그렇다면 가까운 장래에 조선통일의 기회는 없다는 말인가요.남조선 인민들은 하루빨리 통일을 해 반동정부와 미제국주의자들의 속박을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스탈린=적들이 만약 침략의도가 있다면 조만간 먼저 공격을 해올 것이오.그러면 절호의 반격기회가 생깁니다.그때는 모든 사람이 동지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원할 것이오』 이렇게 최초의 남침 의도 표명은 결실이 없었다.49년 4월에 접어들면서 크렘린은 남한의 정세변화에 점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 했다.4월 17일 스탈린은 슈티코프대사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군사고문단 요청 『본인이 얻은 정보에따르면 5월중 남조선주둔 미군이 일본내 가장 가까운 섬으로 철수할 계획임.철수목적은 남조선군에게 행동의 자유를 더 많이 주기 위해서임.미군철수에 맞춰 유엔감시위원단도 남조선을 떠날 것임. 4·5월중 남조선은 38도선 부근에 병력을 집중시킬 것이 틀림 없음.6월 불시에 북침공격을 감행하고 8월까지 북조선군을 완전 궤멸시킬 목적임.이 정보의 사실여부를 긴급히 확인해 보고하기 바람』(대통령문서보관소) 사흘 뒤인 4월 20일 슈티코프대사는 이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다음과 같은 전문을 스탈린앞으로 보냈다. 『북조선인민군의 전투태세는 매우 미흡함. 1,훈련받은 비행사는 8명 뿐임.훈련기인 U­2기 부족과 항공연료 부족으로 추가훈련을 하지 못하는 실정임. 2,소련군사고문단이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음.고문단장 스미르노프는 군사지식이 매우 부족하고 또한 태도가 거칠어 북조선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함. 3,무기·탄약생산을 지원한다는 소련정부의 결정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음. 4,지금까지 해안방위군이 창설되지 않았음』 이어서 5월 2일 슈티코프대사는 미군철수 동향,남한군의 전투태세 등을 보고하라는 4월 17일자 스탈린의 지시에 대해 상세한 답변전문을 보냈다. 『…우리의 첩자가 보내온 정보와 서울의 라디오방송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남조선 주둔 미군의 철수에 관해 협상하고 있음.…중략…남조선의 북침계획과 관련,남조선당국은 국방군 규모를 계속 증강시키고 있음.국방군은 1949년 1월1일 5만3천6백명에서 3월말 현재 7만명으로 늘었음.특히 기술,특수병력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 이들은 2∼4배까지 늘었음.군내부의 불순사병,장교를 숙청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미국은 남조선에 많은 양의 각종 무기와 탄약을 보급하고 있음.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의 이런 북침관련 보고는 상당기간 계속 됐다.흥미있는 것은 같은 시기 남한측 군책임자들이 우리정부에 올린 보고서들은 북한측의 우려 할만한 동향에 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8월 13일 스탈린은 남북한간 전쟁이 시작될 경우에 대비한 소련군의 행동지침을 슈티코프대사 앞으로 내려보냈다.소련은 절대 이 전쟁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대전제로 한 하달문이었다. 『전쟁이 시작될 경우에 대비해 북조선에 있는 소련 해군기지와 공군부대를 폐쇄할 것.우리가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또한 적을 심리적으로 무장해제시키며 전쟁이 시작될 경우 우리의 개입을 방지하기 위함임』 모스크바와 평양 사이에 북침가능성을 놓고 이렇게 숨막히는 전문이 오가는 가운데 49년 9월에 접어들며 김일성은 또 다시 남침의사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수개월에 걸친 내부 준비기간을 거친 다음이었다.
  • 대만·싱가포르 첫합훈/홍콩지/한달간/“중잠함 격퇴”…해상 극비작전

    【홍콩 연합】 대만과 싱가포르는 남중국해 일원에 출몰이 잦아지고있는 중국 해군의 잠수함들을 격퇴하기 위해 사상 첫 합동 군사훈련을 12일까지 대만해협에서 「극비리에」 실시했다고 홍콩의 중국어 신문 명보가 대만군 관리의 말을 인용,13일 대북발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이 관리는 「해엽(바다사냥) 5호」로 명명된 이 군사훈련이 4월18일부터 이달12일까지 대만해협 남부 소유구,난서 등 외곽도서들과 북부 기륭항 앞바다,동화외해등 중국 잠수함들이 그간 자주 출현했던 곳에서 실시됐다고 밝혔다. 그는 해저,해상,공중에 걸쳐 「상세한 대잠수함 작전활동」이 이번에 실시됐다고 밝히고 싱가포르가 무려 30척의 함정을 대만해협에 파견했다고 말했다.
  • “북한 인권문제 본격 거론하라”/헨리 홍 재미목사·미평화목자회장

    ◎정치범 수용 실상 알려 세계문제화 해야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는 듯하다.미국은 나름대로 북한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북한의 속셈을 너무 모른다.미국이 북한과의 핵문제 협상과정에서 질질 끌려다녔다는 인상을 씻어버릴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증거이다.남한과 북한은 반 세기가 다 되도록 여러번 만나 대화를 나누었지만 무슨 결실을 얻었던가? 실제로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혼선을 거듭하여 의회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북한에 관한한 미국의 전문가가 없는 셈이다.국무부 한국과의 북한문제 담당관이나 백악관·의회 그리고 협상실무자의 의견이 서로 달라 왔다. 미국은 실제로 북한의 감추어진 속셈을 파악하지 못하여 북한의 표면적 요구사항만을 놓고 씨름해왔다.북한은 미국의 이런 약점을 간파하여 벼랑외교의 곡예를 부리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의 시간벌기에 휘말려 들었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따라서 명분없는 협상에 휘말려들었다 하여 공화계 의원들의 질타를 받는 고뇌를 겪기도 했다.미국이 대북한 협상에서 말려들어간 느낌을 지울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그 협상의 근본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핵카드 뒤에 숨겨진 궁극적 목표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는 것이었다.이것이 그들의 1단계 목표이다.그렇게 하여 동북아의 평화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이를 발판으로 미국의 한반도 내정간섭문제를 들고나와 대남정책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수년간 핵 불투명성을 유지하면서 특별사찰 시기를 최소 5년후로 미루도록 이끌어나간 것도 대미 평화협정의 가능성을 높이고,이 평화협정을 발판으로 대남 정치·군사전략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바로 북한의 내면적 전략이다. 미국은 전 인류의 가장 뚜렷한 대의명분인 북한의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여 북한을 궁지로 몰아붙여야 했다.미국이 이 점을 깊이있게 이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북한의 인권유린의 심도와 실상을 깊이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귀순자 중에서도 안명철씨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지난 3월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초청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강연회를 가졌는데 2백여명의 미국인 북한 전문가및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석했었다.이 자리에서 필자가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의 실태를 보고했을 때 그들은 글자 그대로 경악을 금치못하여 그 대학에서 필자에게 감사장을 주고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초청할 수 있도록 소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특히 회령수용소의 경비원이었던 귀순자 안명철씨가 폭로한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필자가 소개했을 때 미국인 교수·학생들은 물론 북한 전문가들까지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인권유린은 북한의 가장 큰 약점이다.김정일 교시에 따르면 수용소 인권문제는 『수령님의 권위와 위신에 관련되는 사항이니 완전 극비사항으로 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미국은 왜 이 약점을 이용하지 못하는가?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한국의 대북한 정책도 이점을 감안하여 가장 큰 인권문제의 하나인 이산가족 문제와 더불어 인권외교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이혼한 사람도 자기 자녀를 만나 볼 권리가 있는 법인데 반세기가 되도록 친족의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도록 방해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권침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근대사법 백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대로 이제 우리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북한인권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어 세계문제화해야 할 것이다.가능하면,북한 인권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만들어 인권 외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시급하다 하겠다.
  • 연출가의 연극비평 비판(건널목)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연극전문지 「한국연극」5월호에서 비평가들의 연극비평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연극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연극협회가 펴내는 「한국연극」4월호에 실렸던 「연극방담­공연된 연극에 관한 자유로운 이야기」라는 제목의 연극비평에 대해 이씨는 현장연극인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그는 「비평의 비평이 필요하다」라는 글을 통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회장 구희서)가 기고했던 연극월평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 글에서 이씨는 『의례적 극찬과 작품성이하의 혹평 사이에서 제멋대로 들쭉날쭉하는 것이 오늘의 비평계의 실상』이라고 전제,『가치기준의 혼돈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평기준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비평의 비평」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그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지난3,4월 공연된 작품을 놓고 『「키리에」는 작가의 역사관이 혼돈됐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TV드라마의 축약본같았으며,「춘풍의 처」는 배우를 통제하지 못한 연출의 부재로 싸구려 개그로 떨어졌다』는 비평을 차례로 인용하며 『이런 상식밖의 비평언어를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익명의 방담은 한 시즌의 연극을 정리하는 공적 지면의 비평방법으로 동원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공적 언어로서의 비평이 어떤 품위와 윤리의식을 지켜야하는지에 대한 인식없이 함부로 냉소적인 야유와 감정적 폭언을 일삼는 비평가는 비평가의 태도와 자질문제에 있어서도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로 극문학을 전공한 문학이론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우리 연극계의 비평가들은 극해석을 중심으로 연극의 평가기준을 삼는다』고 밝힌 이씨는 『비평가들이 희곡뿐 아니라 연기자,연출가,스태프,극장,관객등 제반 연극적 요소와 그 역할에 대한 보다 심도깊은 이해와 분석력을 보여줄때 우리의 연극비평은 비평장르적 독자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또 『전제된 극이론이나 고정관념으로 동시대 연극을 재단하려는 것도 우리 비평계의 문제점』이라며 『연극현장은모든 전제된 개념과 경험을 용해하고 부수면서 새롭게 생성되는 성격을 지닌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극평론가협회는 「한국연극」의 제작 편의상 익명의 방담형식으로 진행한 연극비평의 책임성 문제를 감안,이번 5월호부터는 비평가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키로 했다.
  • “한국 지소권 보호실태 조사”/미 의원 4명 극비 내한

    미 하원 법사위 소속 지적소유권보호 실태조사소위원장인 무어 헤드의원(공화당)등 미 하원의원 4명이 우리나라의 지적소유권보호 실태조사를 위해 21일 극비내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22일『미 하원의원 4명이 한국의 지적소유권보호 실태조사와 제도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은 우리나라 특허청등 관계부처를 돌며 조사활동을 벌인 뒤 23일 중국으로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지적소유권소위 소속 의원 4명은 21일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비난을 의식,오산의 한 미군비행장을 통해 입국했으며 22일 상오 안광구 특허청장을 만나 각종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옴주교 임의동행 지시/일경

    【도쿄 연합】 일본 경찰청은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를 저지른 혐의로 집중수사를 받고 있는 옴진리교 간부들을 속속 구속한데 이어 아사하라 쇼코(40) 교주를 임의동행하라고 전국 경찰에 극비 지시한 것으로 21일 밝혀졌다. 경찰청은 극비 지시를 통해 ▲옴교 교단관계자 1천명 이상의 소재를 확인하고 ▲교단관계자가 소유하고 있는 차량 약1천8백대를 수배하는 한편 ▲행방을 감추고 있는 아사하라 교주를 임의동행하라고 강력히 하달했다. 경찰은 아사하라 교주의 신병이 확보되는대로 살인예비 및 신자감금 혐의로 구속해 본격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경찰은 아사하라 교주가 발견되면 「추적」에 그칠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검문을 벌여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임의동행하라고 지시했다.
  • 이,스파이위성 발사성공/자체 제작… 아랍국 정보수집 목적

    【텔아비브 AP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은 4일 처음으로 자국이 생산한 로켓을 이용,스파이위성을 발사,지구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이스라엘관리가 밝혔다. 명칭이 오페크­3인 이 위성은 이날 하오2시30분쯤(한국시간 하오8시30분) 텔아비브 남쪽 팔마킴해변에서 발사돼 궤도진입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988년과 1990년 오페크­1과 오페크­2호를 각각 발사한 바 있는데,이번에 발사된 오페크­3호는 이스라엘이 자체로 개발한 것으로 이스라엘주변의 아랍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스파이위성이다. 이 위성에 대한 개발계획은 그동안 극비에 부쳐져 있었으며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측이 스파이위성 사진을 공유하자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절한 데 자극받아 자체개발을 계획해왔다. 한편 지난주에도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로켓에 위성을 실어 발사했으나 폭발하면서 실패한 바 있다.
  • 이달 문화인물/최무선 장군/화약·화통 발명… 왜구 격퇴

    문화체육부는 고려말 화약·화통등 각종 화기를 발명해 왜구를 물리치는데 지대한 전공을 세운 발명가인 최무선 장군(1326∼1395년)을 「4월의 인물」로 선정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최무선은 왜구 섬멸에 화포를 사용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송 원나라에서 화약제조법을 극비에 부치고 있던 때인 1376년 원나라 사람인 이원에게 간청해 염초제조법을 배웠다.1377년 조정에 건의해 「화통도감」을 설치케해 화약과 석포·화통·철령전 등 18종의 각종 화기를 제조했으며 우왕 6년(1380년) 이 화기를 사용해 왜구 선박 5백여척을 전멸시켰다.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과 국립중앙과학관,영천문화예술단체협의회 등 관련단체는 4월 한달동안 각종 학술행사와 강연회,과학경연대회 등을 열며 최무선 기념사업회는 영천시 교촌동에 기념비도 건립할 예정이다.
  • 「조소해운주식회사」 관련문서 발굴 의미

    ◎북 3개항 조차/소의 트루먼독트린 대응조치/북 47년 6월이전 단정체제 확립 입증/“미소공위 결렬로 분단” 종전인식 뒤집어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립함에 필요한 각종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및 발간 등을 통해 국사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에 기여해 왔다.「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자료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국외사료조사위원 방선주박사가 최근 기밀해제시켜 보내준 비할 데 없이 가치가 높은 사료다. 이들 사료를 포함한 「북한필사문서」들은 국사편찬위원회가 계속 간행중인 「북한관계사료집」에 넣어 연구자들이 이용하도록 배려할 것이다.본격적인 정리 분석에 앞서 「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 극비문서의 발굴을 통해 검증할 수 있게 된 몇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새사실 검증 단초로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서」에 의하면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소련의 무역부와 1947년3월25일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그 주된 내용은 청진·나진·웅기의 세 항구를 30년간 양도한다는 것이다.이미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1948년9월9일 북한정권의 공식 수립 이전부터 「단독정부」로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행정체계 확립 확인 「북조선위 지시 제74호」를 통해서는 1947년6월28일 이전에 북조선인민위원회와 지방 인민위원회간에 실질적인 행정체계와 계통이 확립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또 소련군정과의 관계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1946년 초까지도 북한사회를 좌지우지하던 소련군정의 직접 개입의 흔적이 이들 문서에서는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소련점령군은 이 시기에 벌써 북한지역에 「단독정부」를 이식시키고 이들을 앞세워 전체 한반도의 소비에트화를 위해 배후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검증할 수 있다. 둘째 미국과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이 크게 변화하는 1947년의 시점에서 소련의 한반도정책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무엇이었나를 확인시켜 준다.지금까지 연구자들은 1945년 말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이 나온 이래 1947년 제2차 미소공위가 진행되던 시기까지를 냉전 분위기가형성되고 있었지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문제에 대해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던 것으로 인식하였다.1947년10월18일 공위 제62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정책을 바꾸었고,그것이 한반도의 분열상태를 영구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고 보았던 것이다. ○자유체제 유지 역점 그러나 「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 극비문서의 발굴을 통해 드러났듯이,소련은 1947년3월25일 청진·나진·웅기등 세 항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차」하고 있다.이것은 1947년3월12일에 발표된 미국의 「트루만독트린」에 대한 소련측의 직접 대응이었던 것이다. 미국 외교사에서 『혁명적인 사건』으로 불린 「트루만독트린」의 주요 내용은 공산화될 위험에 처해 있는 지역에 경제군사지원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또 세계 각국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나라들에게 경제군사지원을 하여 소련의 팽창주의를 봉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부동항획득 서둘러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의 연합동맹국이었던 소련에 대해서 정면대결을 명백히 선언하자,소련은 제정러시아 때부터 추구해 온 한반도에서의 부동항 획득을 서둘렀다.김일성은 극동지역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세 항구의 양도를 1947년10월7일에 최종 비준하였다. 이날 소련공산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공산당 대표들은 바르샤바에서 모임을 갖고 「코민포름」을 결성하고 있었다.이때부터 대립적인 동서 양블록이 체제화 되었다. 그 결과 자주적인 힘만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우리민족의 처지에서는 미·소 양국의 극단적 대치의 영향을 그대로 받을 수 밖에 없었고,한반도는 양 진영의 이데올로기 각축장이 되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