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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爆이냐 협상이냐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발표하기 1년전 북한은 합의문과똑같은 내용의 비문서(Non-Paper)를 미 국무부에 먼저 건네주었다’ 미국의 영변 핵시설 조사단을 이끌고 영변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전 미 국무부 북한데스크인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한반도의 핵 위기가 고조되던 당시의 기록을 엮은 회고록 ‘2평 빵집에서 결정된 한반도 운명’(중앙M&B)을 펴내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각종 비화를 공개했다.이 책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발행됐으며 조만간 일본에서도 나온다. 퀴노네스 박사는 책에서 지난 93년 10월 북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을당시 미하원 동아태소위원장 게리 애커먼 의원 등과 함께 평양을 방문중 김정일의 특명을 받은 외교부 ‘이국장’이 극비문서를 슬쩍 건네줬으며 이후이 문서를 한국측에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국장’은 그 문건을 “협상의 여지가 있는 초안”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원하는 것은 핵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이지 법적 해결이 아님을 상기시켰다”고 퀴노네스 박사는 전했다.북한이건넨 비문서 초안은 ‘핵문제 해결책(고려사항)’이란 제목아래 총괄적인 일괄협상의 범주를 축약해놓고 있다는것이다.책은 퀴노네스 박사가 북한당국의 감시를 피해 직접 찍은 폐연료봉사진 등도 싣고 있다.퀴노네스 박사는 30여년동안 한국문제를 다뤘으며 모두13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었다.값 1만원. 박재범기자 jaebum@
  • 김용옥 EBS특강 대단원 ‘도올 신드롬’ 탄생

    시장 아줌마,동네 꼬마들까지 노장철학을 운운하게 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현학적인 퍼포먼스’라는 폄하 사이를 줄타기하던 도올 김용옥의 ‘알기쉬운동양고전’ EBS강의가 2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도올은 이날 그동안의 강의내용을 총정리하는 뜻으로 강의 제목을 ‘승당(升堂·학문의 단계가 높아졌다는 뜻)과 도올 눌(訥)함’으로 붙였다.첫 강의때부터 마지막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청한 원로 정신과의사 노동두씨를비롯한 방청객들에게 졸업장을 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단군이래 역사를 꿰뚫으며 한국 사회의 철학적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본 그는미리 준비한 ‘우리 국민과 사회에 고하는 글’을 17분동안 낭독했다. 특정인이나 특정 종교·언론·관료집단에 대한 질타가 쏟아질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있었지만 돌출발언은 없었다.강의중 떠오른 생각을 말로 옮긴 것이 아니라 미리 고심끝에 작성한 글을 읽어내려 갔기 때문.방송시작 전까지극비에 부쳐졌다. 도올의 강의는 실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 21일 방송에선 언론이 자신의 강의를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뒤 “대한민국의 기자를 모두 박사출신으로 바꿔야한다”고 칼을 세웠다.그나마 EBS측에서 수정 편집해 내보낸 것이였다.김교수는 새벽 12시30분 전화를 걸어 30분동안 항의했는데 EBS관계자는 진땀을 뺐다고 털어놓았다.이는 ‘재미없는 강좌는 죄악’이라고 갈파했던방송 초기 자신의 발언과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 자신의 저서의 밀도가 떨어진다고 비판한 기자를 겨냥해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러브호텔을 한강변에 신축케하는 행정을 질타하면서 “공무원들을 모두 한강에 빠뜨려야 한다”고 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강의가 “대한민국 문화사에 일대 사건”이라고 자화자찬한 것도 일부로부터 ‘지적 거품’이라는 지적을 받게 했다. 도올의 강의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강의내용에 대해 도올과 논의하고 함께자막을 넣고 편집했던 조윤상PD는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철학강의가 시청자를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데 있다”고 정리했다. EBS는 채널 인지도를 높였다는 점에 무척 고무돼있다.시청률을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5%로 끌어올린 것은 EBS로선 일대 사건이다.광고 주문이 소화할 수 있는 5편을 크게 웃돌았고 28편까지를 묶은 비디오가 날개돋친 듯 팔렸다. 한 지상파TV에선 강의를 재방송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교재인 ‘노자와 21세기’(통나무)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으로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이어 20만부가 팔려 짧은 기간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것도 기록할만 하다.도올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1만부의 인세를 EBS에 기부했다. 도올 신드롬에 취해서인지 “나도 도올만큼은 할 수 있다”며 강의시간을 내달라는 학자들도 많아졌고 아예 “도올이 엉터리로 만든 동양철학을 내가 바로잡겠다”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이에 대해 도올은 “나같은,혹은 나를 뛰어넘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며 당분간 TV강의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조PD는 전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그의 방대한 지적 편력에 동행한다는 자부심이나 착각(?)을 안겼고 삭막한 방송문화에 이런 프로그램 하나쯤 있었다는 사실은 위안으로 남는다. 임병선기자 bsnim@
  • 鄭의원 3차 체포시도 검찰 표정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 대한 3차 체포작전에 돌입한 13일 서울지검은 하루종일 긴박감이 감돌았다.체포작전 실패로 직속 상관들이 인사조치된공안1부 검사들은 정의원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는 결의를 불태웠다. ◈임휘윤(任彙潤) 서울지검장과 지난 12일 1차장과 공안1부장 직무대리로 임명된 정상명(鄭相明) 서울지검 2차장과 박만(朴滿) 대검 감찰과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쯤 지검장실에 모여 1시간 이상 대책을 숙의했다.이들은 한나라당당사에 머무르고 있는 정의원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방법과 체포에 실패할 경우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부장은 이날 오전 10시쯤 사무실로 나와 공안1부 소속 검사들을 모아놓고 정의원 관련 업무를 보고받았다.박부장은 갑작스런 인사로 충격을 받은검사들을 위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박부장은“마음이야 괴롭겠지만 원칙대로 처리하자는 말로 검사들을 다독거렸다”고밝혔다.회의를 마치고 부장 사무실을 나오던 검사들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자 재빨리 자신들의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검찰이 정의원에 대한 긴급체포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12일 아침 서울지검장실과 공안부 검사실에는 정당한 공권력 집행을 방해한 정의원의 행태와 엉성한 체포작전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폭주했다.한 시민은 “법을 만든 국회의원이 앞장서 법을 유린하면 누가 법의 권위를 존중하겠느냐”며 정의원을 성토했다.또다른 시민은 “대한민국 검찰의 최정예 수사요원이라는 서울지검의 수사관들이 정의원 한명을 눈앞에서 놓쳤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담당 수사관들도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이 12일 정의원 체포작전 실패에 대한 지휘책임을물어 임승관(林承寬) 서울지검 1차장과 정병욱(丁炳旭) 서울지검 공안1부장을 서울고검으로 전보조치한 인사는 극비리에 진행됐다는 후문이다.박총장은이날 오전 김정길(金正吉) 법무부장관에게만 지휘부 문책 필요성을 보고한뒤 전격 단행했기 때문에 법무부 간부들조차 몰랐다는 것이다.김장관은 법무부 간부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핫라인’을 통해 인사를 재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락기자 jrlee@
  • SK, 신세기통신 인수 파장

    SK텔레콤(011)이 신세기통신(017)의 경영권을 갖게 됨에 따라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절대 강자’의 독주체제로 재편되게 됐다. [초대형 통신회사 탄생] 올해 SK텔레콤의 예상 매출액은 4조2,000억원,신세기통신은 1조2,000억원.합하면 5조4,000억원으로 9조원 규모인 한국통신에이어 통신업계 부동의 2위가 된다. 앞으로 통신품질 향상이나 차세대이동통신(IMT-2000)사업 등에 들어갈 비용과 마케팅 비용 등도 줄어 4조원 가량의 유·무형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SK텔레콤은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IMT-2000투자 8,000억원,IS-95C(초고속 무선인터넷기술)투자5,600억원 등 당장 절감되는 설비투자액만도 1조3,6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기지국과 교환기 등의 통합으로 통화품질 향상이 기대되고,군부대나 낙도 등 신세기통신이 강한 지역에서 SK텔레콤 가입자들도 혜택을 보게된다는 설명이다. [난감해진 PCS 3사] 한국통신프리텔(016)관계자는 “SK텔레콤이 선도사업자라는 점 때문에 많은 가입자를 모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 이런 추세가 더욱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때문에 눈에 띄는 혜택이 없이는 신규 가입자들을 끌어모으기 힘들어 앞으로 PCS회사들의 출혈경쟁 및 이에 따른 채산성 악화가 예상된다.벌써부터 지난 10월 시작한 단말기보조금 인하 합의가 깨질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오는 2002년 상용화될 IMT-2000만 해도 SK텔레콤에 ‘파이’를 뺏겨버리면 내년 말에 사업권을 따내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업계 구조조정 가속화] 이번 인수는 그동안 잠재해 있던 통신업계 구조조정에 불을 댕기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통신업계 구조조정은 지난해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바람이 불 때에도 업계의 강력한 반발과 정치권 로비등으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번 인수를 계기로 자연스레 힘이 실리게 됐다. 때문에 업계는 인수·합병이든 대규모 전략적 제휴든 어떤 형태로든지 적극적인 ‘짝짓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3개사 중 어디라도 짝짓기에 끼지 못할 경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가입자수와 자금력에서 가장 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한솔PCS가가장 유력한 인수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SK, 신세기통신 인수 막전막후 20일 발표된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는 불과 보름 만에 속전속결로 마무리돼 인수전의 이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인수전은 SK텔레콤의 고위 간부들조차 대부분 모른 상태에서 극비리에 진행됐다. 조정남(趙政男)사장-표문수(表文洙)부사장-조민래(趙珉來)IMT-2000사업전략팀장 라인이 ‘태스크 포스’를 맡았다.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된 인수추진은 지난 17일 하오 SK텔레콤 직원 3명이공정거래위원회를 방문해 독과점 관련 법규를 문의하면서 인수추진 사실이드러났으나 이때는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SK텔레콤-코오롱간의 채널은 미국유학시절부터 안면이 있는 최태원(崔泰源)SK(주)회장과 이웅렬(李雄烈)코오롱 회장간에,포철과는 손길승(孫吉丞)SK회장과 유상부(劉常夫)포철 회장간에 핫라인이 가동됐다.손회장과 유회장은 전경련 회장단 멤버여서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SK텔레콤이 포철과코오롱의 지분매각 문제를 논의하던 이달 초 포철이 갖고 있는 27.4%의 지분을 팔 것을 요청해온 것도 이때.당시 SK 손회장은 포철유회장에게 “5개 통신업체가 난립해 제살 뜯어먹기식 경쟁을 벌이고 있는가운데 차세대이동통신(IMT-2000)사업 등으로 대규모 투자가 소요된다”며국내 통신업계 구조조정 차원에서 협조를 해달라고 먼저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현금 대신 지분을 주고받는 방식은 포철 유회장쪽에서 먼저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의 마무리 단계였던 지난 주말 SK측은 신세기통신의 경영부실과 IMT-2000사업권 획득이 불투명한 사실을 들어 포철이 명예롭게 손을 뗄 것으로 종용했고,포철은 SK텔레콤 주식을 일부 인수해 전략적인 제휴를 하는 선에서접점을 찾았다. 조명환 김태균기자 river@
  • [변혁으로서의문학과역사](46)이산하 장편연작시’한라산’

    1980년대는 필화의 활화산 시대였다.연속적으로 터졌던 각종 필화 중 가장첨예했던 사건이 장편 연작시 제1부 ‘한라산’이었다.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제주도에서,지리산에서,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민족해방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전사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는 헌사를 앞세운 이 시는 ‘사회과학 전문 부정기 간행물’을 표방한 ‘녹두서평’ 제1호(1986.3 발행)에 게재되었다. “독자 대중은 우리의 사회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과정을 통해 구체화된 논의를 담은 출판물을 원하고 있다.독자 대중의 그러한 요구는 우리의 사회현실을 추상적이거나 반역사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명백한 거부이고,자족적이고 현실에 대해 무기력한 아카데미즘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며,나아가 타국의 이론에 대한 일방적인 승인의 강요가 아니라 그것의 우리 사회 현실에의 올바른 적용에 대한 요구이다”는 기치를 내건 ‘녹두서평’은 특집으로‘민주주의 혁명과 제국주의’를 다뤘는데,이것은 당시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 타도를 위한 기본과제로 보았다. 군부독재와 제국주의론을 결부시켰던 이 특집은 특히 8.15 직후 미군정의 성격 규명에 초점을 맞춰 분단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폭로코자 시도했으며,그연장선에서 장시 ‘한라산’도 자리매김하도록 배치되었다.중요 논문보다 우대하여 가장 앞에 ‘한라산’을 실었던 편집 의도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연작시는 곧 미군의 분단 한국 침탈사 고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 제1부 ‘서시’ 1∼4에서는 “이 땅은 아메리카의 한 주”란 구절로 알수 있듯이 미국에 대한 비판정신이 관류하고 있다.제1장 정복자 1∼5에서는8.15 직후 진주한 미군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침략 야욕을 규탄하고 있다.제2부 ‘폭풍 전야’ 1∼5에서는 1945년 9월28일 미군의 제주도 진주와,47년 3.1절 행사 때 희생 당한 한 소년,그리고 총파업과 도민들의 결연한 투지를노래한다. 제3부 ‘포문을 열다’ 1∼4에서는 4.3항쟁 횃불이 오르면서 터진 혼란상을점묘파(點描派)식으로 엮어 나간다.마지막 제4장 ‘불타는 섬’은 “미고문단 초대 단장이자 팬터곤 내에서도 극우파로 이름 높은 윌리엄 L.로버트 준장을 현지에 파견하여,대규모 중원부대를 미군 상륙함정으로 섬의 해안 곳곳에 대놓고,미국식 빨갱이 토벌전을 개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제주 항쟁의 전설적 인물인 김달삼과,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열 중령은 “일본 복지산 예비 육사 동기”였던 사실.둘은 민족 내분을 멈추고자 극비 회동(4.28)을 갖고 전격적인 합의에 이르러 바야흐로 제주항쟁은 평온하게 마감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5월 6일자로 김익열은 해임,6월 18일 여수 제14 연대장으로 전임되므로써 4.28 평화안은 사그라진 채,김익열의 후임으로는 제11연대장 박진경이부임,“모두 불사르고/모두 죽이고/모두 약탈하는” 삼광(三光)정책과,“불태워 없애고/죽여 없애고/굶겨 없애는” 삼진(三盡)정책을 폈다.이 처참한진화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박진경의 암살이 뒤따랐고,그 범인은 모 하사관의 배신으로 잡혀 수색에서 처형 당했다는 데서 연작시는 끝난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많은 소설과 시 중 이산하의‘한라산’처럼 비극 그자체를 미국의 개입으로 못박는 경우는 없었던 터라 이 잡지는 이내 호된 홍역을 치뤘다.즉 강력한 단속과 시인의 구속이 잇따랐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美·中 협상타결 이모저모

    중국의 WTO가입 협상 타결은 미·중 대표단간 6일간의 마라톤 협상끝에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15일 오전 9시부터 중국대외무역대표부로 들어가 4시간30분여간 스광성(石廣生)부장과 마지막 협상을 벌인 샬린 바셰프스키 미무역대표부(USTR)대표는대기중인 기자들에게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퇴장, 협상타결에 실패했음을내비쳤다.베이징 주재 미대사관도 “진전 사항이 없다”며 회담결렬을 시사했다.그러나 이후 양측은 전화 등으로 극비 막후협상을 계속,오후 2시 30분경 극적 합의에 도달했고 30여분 뒤 중국의 반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사(中國新聞社)가 이 사실을 보도했다. 바셰프스키 대표는 일요일인 14일 중국 대외무역부를 3번이나 들락거리며협상을 벌였으나 합의도출에 실패했다.홍콩,베이징 언론들은 이날 정오 중국당국이 WTO협상과 관련해 중대발표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발표는 불발에그쳤다. 협상 쟁점은 중국의 텔레코뮤니케이션,금융서비스 개방,섬유수출 쿼터,반덤핑 규제등을 둘러싼 중국측의 양보 폭.협상과정에서 중국 관리들은 “미국이너무 많은 요구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달말 시애틀 뉴라운드 협상개시 전까지 WTO가입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중국은 수년간 또다시 세계경제무대에서 소외당하게 된다.시간은 중국의 편이 아니었다.중국정부는 최근 수개월 WTO가입을 싸고 분열상을 노출하기도 했다.주룽지(朱鎔基)총리등 개혁파들은 가입하지 않고는 경제개혁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다는입장인 반면 보수파들은 허약한 산업기반 때문에 외국자본,상품과 경쟁이 불가능하다며 가입에 반대했다. 지지부진하던 회담은 13일 바셰프스키대표가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주룽지총리를 만나며 극적인 전기를 맞았다.지난 4월 미국방문때 WTO가입과 관련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보수파의 공격을 받아 협상에서 배제돼온 주총리의재등장은 중국지도부의 최종 의중이 가입쪽으로 기울었음을 짐작케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기동기자 yeekd@
  • [김삼웅 칼럼] 매카시와 정형근과 언론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은 한국 정치를‘회오리바람형 정치’라고 분석한 바 있다.무슨 일이 벌어지면 회오리바람처럼 일시에모든 것을 휩쓸고만다는 것이다. 핸더슨의 지적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 것같다.‘언론문건’을 둘러싸고 정계와 언론계는 한바탕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다.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언론의 저급성이 한목에 드러난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정부가 언론장악을 기도하고 있다는‘언론문건’을폭로하면서 정국은 삽시간에 태풍권으로 진입하고 회오리바람은 여야관계를대치상태로 만들었다.탈선 언론인이 문건을 만들고 또다른 탈선 언론인은 문건을 훔쳐 정치인과 거래했다. 일부 언론은 본질 규명보다 자사에 유리 또는 불리한 내용을 확대 또는 축소하거나 선정적 보도로 정쟁을 부추긴다. 정 의원의 무책임한‘폭로’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공방에 나선 여야의 대결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국회는 밀림의 싸움판이 되었다.‘막가파’식의 대결에서 정치는 자정기능을 상실했다.마치 반세기 전 명예욕과 증오심에 가득찬매카시 상원의원의 폭로로 미국 정계가 광기에 휩쓸렸듯이 그런 양상이다. 정 의원의 언행은 매카시와 비슷한 대목이 적지않은 것 같다.1950년 2월20일매카시 의원은‘볼록하고 흠집이 많이 난 황갈색 손가방’을 들고 의사당에나타났다. 장내가 긴장되었다.며칠 전‘예고편’을 폭로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매카시는 다시 많은 정치인과 관료를 공산주의자 혹은 그 동조자라고 폭로했다. 정 의원은 11월25일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여야 의원과 기자들이 긴장했다.‘폭로’가 예고되었기 때문이다.그는 7쪽짜리 보고서를 공개하고,“이 문건은 이강래 전 청와대정무수석이 극비리에 작성해 현 여권 실세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매카시의 경우와는 달리‘폭로’는 이틀 후 문일현 중앙일보기자가문건을 만든 것으로 밝혀지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그런데도 문건 작성자를이종찬 국민회의부총재와 이강래씨라고 지목하고 입수 경위를 언론사 간부→이 부총재 측근→여권에 가까운 사람→여권 실세→평화방송 이도준 차장으로말을 바꾸면서 폭로전을 계속하고 언론보도의 중심자리에 섰다. 매카시가 그랬듯이. 매카시는 연일 시간과 장소를 바꿔가면서 적대세력과 무고한 관리·지식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했다.그의 선동적 발언을 부채질한 것은 언론이었다. 매카시가 폭로전을 벌이는 동안‘완전히 새로운 기자집단’이 생겨나 그의참모진을 돕고 언론에 대서특필했다. ‘매카시 광풍’의 큰 책임은 그가 속한 공화당 지도부의 방조와 방관이고,다음은 상업주의와 정파의식에 물든 언론이었다.정 의원의 폭로와 말바꾸기행각에 일부 언론이 보인 행태는 반세기 전 매카시 선풍 당시 미국 언론의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더욱이‘문건거래’에서 보인 추악상까지겹치면서 한국판‘정(鄭)카시즘’의 절정을 이루었다. ‘미국의 치욕’으로 자리매김된 매카시 선풍은 얼마 후 매카시가 의회에서제명되고 언론이 이성을 회복하면서 마무리되었다.매카시의 충동적 발언이단지‘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라는 이유 하나로 언론의 본래 책무인진실규명을 외면한 채 무책임하게 대서특필한 신문이 그의 정치적 광기에 후원자 노릇을 한 것이다.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종의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을 음모와 공작으로부풀려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정치 작태는 청산돼 마땅하다.이 사건이 정치와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확인시켜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지금은 금세기 마지막 정기국회 기간이다.민생과 개혁법안이 쌓여 있다.새천년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워도 모자랄 때이다.국민이 IMF체제에서 고통을겪으며 개혁에 땀을 흘릴 때 자체 개혁마저 외면해온 국회가 국력 소모에만땀을 흘린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문제의 문건이 권력의 작용인지 해프닝인지 검찰조사를 통해 밝히도록 하고면책특권의 악용 방지까지를 포함하여 국회의원의 자질, 제도, 기능 등 정치개혁을 서둘러야 한다.정치가 언제까지 스스로의 자정력을 갖지 못한 채 자학과 타학의 질곡에서 메르포스의 새처럼 거꾸로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아닌가.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김삼웅 주필
  • [언론 문건 파문] 드러난 전모 재구성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지난 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폭로한 이른바 ‘언론 문건’의 작성,전달 등의 전모가 사실상 드러났다. 정의원은 “이강래(李康來) 전청와대정무수석이 극비리에 작성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이를 언론 장악의 기초로 활용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문건 작성자와 정의원에게 전달한 사람은 어처구니 없게도 두 언론사의 기자인 것으로 드러났다.문건작성 및 전달과정 등 문건 파장의 전모를 재구성해본다. [문건작성자] 중국 베이징에 유학중인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지난6월 문건을 평소 소신(본인주장)에 따라 작성,같은달 24일 팩시밀리로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 사무실에 보냈다.이는 지난 27일 국민회의가 “문건 작성자는 이강래 전수석이 아니라 문기자”라고 발표하면서 확인됐다. 문기자는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건 작성시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정의원은 같은날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전달자가 ‘이종찬 부총재 측근’이라고 말해 ‘전달자가 누구냐’는 데 관심이 모아졌다. [문건 전달자] 28일 저녁 정의원은 국회에서 문건 전달자가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라고 발표했다.이기자는 이날 저녁 이종찬부총재의 한 측근에게 “지난 7월 이부총재 사무실에서 문제의 문건을 (팩스 전화번호는 가리고)몰래 복사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이기자는 이에앞서 자신의 회사간부에게도 문건을 보여주며 보도문제를 상의했다.그러나 “문건내용의 신빙성이의심된다”는 지적에따라 보도되지는 않았다.이기자는 29일 기자회견에서도이같은 사실을 재확인했다.따라서 국민회의가 처음 제기했던 중앙일보 간부관련설,이부총재 측근으로부터 받았다는 정의원의 주장은 일단 사실이 아닌것으로 드러났다.국민회의는 29일 중앙일보에 공식 사과했다. [확인과정] 국민회의는 정의원이 문건을 폭로한 하루뒤인 25일 문건 작성자가 문일현기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그리고 26일 문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이 때부터 이부총재 사무실에서는 그동안 사무실을 방문한 사람들을 상대로 탐문에 들어갔다.사무실에 자주드나들며 이상한 행동을 보였던 이기자를 지목,“당신이 했느냐”며 추궁해 들어갔다.압박을 이기지 못한이기자는 28일 밤 이부총재 측근에게 전달 과정의 전모를 털어 놓게 됐다. 이기자는 이에 앞서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찾아가 자신이 문건 전달자라고고백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이도준 평화방송기자 문답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는 29일 오전 여의도 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갖고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정무수석의 문건 작성여부는 추정 수준이었다”고 말했다.이어 “지난 25일 대정부질문 이후 정의원에게 항의하자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이렇게 한번해야 정부도 정신 차리고,언론도 각성할 것’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지금 심경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느꼈다.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작성했다는사실을 듣고 당혹하고 허탈했다.‘시대적 특종감’으로 확신했던 기자로서의내 자질과 능력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정 의원이 여권 공작설을 주장했는데 여야 어디로부터도 공작이나 제의를 받지 않았다.매우 불쾌하며 나를 공작정치의 희생물로 만드는 것이다. ◆이종찬(李鍾贊) 국민회의 부총재가 문건을 주면서 어법과 표현을 고쳐달라고 했나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이 부총재가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얘기를 했나 안했다. ◆어제 이회창(李會昌)총재를 만나서 무슨 얘기했나 정 의원이 너무 앞서 나가는데 자제토록 해달라고 부탁했다.또 여야관계와국회를 정상화시켜 달라고 했다.이 총재는 ‘알았다’고만 말했다. ◆정 의원이 추가로 폭로한 3가지 문건도 전달했나 그것은 내가 모르는 대목이다. ◆하고 싶은 말은 여야 정치지도자들에게 소모적 정쟁을 중단해 줄 것을 호소하고 싶다. 최광숙기자 bori@ * 이종찬 부총재 문답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는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문건 작성자가 문일현(文日鉉)기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나와 이강래(李康來)전 정무수석을 지목했다”면서 “이회창(李會昌)총재와정의원이 의도적으로 내용을 조작, 정치공세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다음은일문일답 요지. ●사건의 본질은 일종의 해프닝이다.본인과 친분이 있던 언론인이 언론개혁의 소신을 적어팩스로 보내왔다.또다른 언론인이 이를 절취했다.내가 대통령에게 이 문건을보고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도준(李到俊)기자와는 어떤 관계인가 나의 여의도 개인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고 있는 언론인이다.사적(私的)으로아무런 인척 관계가 아니다. ●서류철에 있던 문건을 봤나 못봤다.(그 서류철에) 어떤 서류가 있었는지 모른다. ●문기자가 문건과 함께 보냈다는 편지는 받았나 본 적 없다. ●28일 국민회의 의총에서 “문건 작성전 문기자가 중앙일보 간부와 상의했다는 내용의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표현이 와전됐다.녹취하지 않았다. ●문제의 문건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이기자에게 말했다는데 문건을 갖고 이기자와 얘기한 적이 없다. ●한나라당 이총재와 정의원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정조사를 하기로 했다.이총재는 이번 사건 뒤에 숨어있는 배경과 의혹을밝히고 정의원도 나라를 혼란시킨 점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 주현진기자 jhj@ *'언론 문건'관련자 4人의 주장 쟁점별 비교 ‘언론 문건’의 유통경로가 거의 드러났다.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적지 않다.관련자들의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문건을 작성한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제보한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폭로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문기자가 팩스로 문건을 보낸 사무실의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 등 4인의 주장을 사안별로 비교해본다. ■이강래 전정무수석이 개입했나 정의원은 “이종찬 전국정원장이 이기자를 불러 ‘이강래(李康來)전 정무수석이 이 문건을 작성해 가져왔는데…’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정의원은 “이기자는 이종찬씨가 국정원장을 그만둔 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여러가지 임무를 주면서 이강래씨와 한팀이 돼 일하라고 했고,국정원과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지원을 받아 각종 보고서를 생산,보고해왔다고 말했다”고주장했다. 이기자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또 “나와 정의원은 누가 문건을 작성했는지는 모르나 이 전 정무수석이 만들수도 있겠다는 추정을 한수준”이라고 정의원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두 사람간 얘기도 ‘이러지 않겠느냐’‘그럴 수 있겠다’‘맞다’‘그렇다’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이기자는 또 “정의원은 ‘이종찬-이강래 라인’이 한 것으로 우리는 믿고있는 것 아니냐’고 내게 유도질문을 했다”고 털어놨다. ■문기자는 문건을 혼자 작성했나 문기자는 “평소의 소신과 생각을 정리해 이부총재측에 보냈다”고 했다.또“문건을 혼자 만들었다”며 중앙일보간부와의 상의여부도 부인했다. 이부총재는 “문기자가 회사 간부와 상의했다는 내용의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표현이 와전됐다”고 밝혔다. ■이기자는 어떻게 문건을 입수했나 정의원은 “이부총재가 이기자에게 문건을 주면서 어법·표현 등을 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달라고 했다고 이기자가 전했다”고 밝혔다. 이기자는 “정의원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단독소행’임을 주장했다.자신은 이종찬부총재 사무실에서 문건을 기사화하려고 복사해 몰래 가져왔을 뿐이라고 했다. ■문건은 재가공됐나 초기에는 정의원의 가필의혹이 제기되다가 해소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정의원쪽에서 재가공 여지를 거론했다. 문기자는 “신문에 나온 것을 보니 첨삭이나 가감은 없었다”고 말했다.이기자도 “이부총재 사무실에서 팩스문건을 복사해 정의원에게 전달했다”고말했다.정의원도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라며 인정한다.그러나 “기자 한사람이 작성했다고 보기에는 문건 내용이 치밀한 것으로 볼 때 이강래(李康來)팀에서 재가공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부총재는 문건을 보았나 이부총재는 “문건을 갖고 이기자와 얘기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정의원은 “이부총재가 이기자를 불러 ‘이전수석이 작성한 것인데 문안을 수정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문건이 청와대에 보고됐나 정의원은 “나중에 이기자로부터 문건이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이부총재는매주 한번씩 대통령과 독대해 보고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기자는 “문건의 내용상 국정원이 작성하고 청와대에 보고되지 않았겠느냐는 심증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이강래 전수석, 鄭의원 고소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정무수석은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언론장악 문건’을 폭로하고 문건 작성자로 자신을 지목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과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제3자 등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이 전 수석은 고소장에서 “고소인은 정부의 대언론정책 관련 업무를 처리하거나 대통령에게 언론관계 보고서 등을 작성해 제출한 사실이 전혀 없음에도 정 의원은 지난 6월께 제3자와 공모,언론탄압을 위한 정치공작적 차원의괴문서를 작성한 뒤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청와대정무수석을 지낸이강래씨가 극비리에 작성해 현여권 실세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라고 폭로,고소인이 문건을 작성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수석은 “정 의원은 국회 발언 다음날인 26일 기자들에게 ‘고소인이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문서를 작성했고 그 사실은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다시 명예를훼손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이강래 前수석 고소장 전문

    피고소인 정형근은 과거 구 안전기획부 수사국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고문,공작정치를 일삼아온 자로서,현재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는 자이고,고소인은 국민의 정부에 대통령 정부 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다가 1999.1.경퇴임한 자인 바,위 직책에 재직 중 또는 퇴임 후 정부의 대 언론 정책에 대한 관련 업무를 처리,관여하거나 대통령에게 언론관계 보고서 등을 작성 또는 제출한 사실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소인은 자신이 직접 또는 피고소인의 주변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괴문서를 이용하여 대정부 질문시 국회의원에게 부여되는 면책특권을 악용해 고소인의 명예,인격,정치적입지 등을 무차별 훼손할 목적으로, 1.1999.10.25.17:10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 의사당 내 본회의장 발언대에 등장하여 고소장 말미에 첨부된 ‘성공적 개혁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 방안’이라는 허위 조작된 괴문서를 국회출입기자단에 미리 배포한 뒤 1부를 손에 들고 “현 정권의 언론장악을 위한 섬뜩한 음모를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얼마전 한 인사가 극비문건 하나를 건네왔다.이 문건은 청와대 정무수석을지낸 이강래씨가 극비리 작성해 현 여권 실세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다”고 발언하면서 마치 고소인이 언론사를 장악하기 위해 1999.5.경 1.위기의 본질 2.국내언론의 태도변화 3.방치시 예상되는 문제점 4.언론개혁의구체적 방안 등의 소제목에 따른 내용과 같이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등을 특별관리 하면서 언론사들이 현 정부에 비협조적일 경우 국세청,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위원회,청와대,안기부,검찰,경찰 등을 동원하여 내사와 탈세수사 등을 통해 언론을 확실하게 장악해야 한다는 등의 언론탄압을위한 정치 공작적 차원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여권 실세의 한사람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양 허위의 사실을 적시,발표하여 위 문건의 내용이 언론에상세하게 보도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위 사건 직후 고소인은 피고소인에게 위 괴문서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하자피고소인은 언론계 고위층이라고 하다가 이를 취소하는 등 국회의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과 품위마저 저버리는 행동으로 일관함으로써 피고소인의전력으로 보아 위 일련의 행동이 치밀한 계획하에 조직된 것임을 알 수 있게하고 있습니다. 2.위 피고소인은 비록 국회의원의 신분을 이용하여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위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경우마저 면책특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입니다. 국내 헌법학자들의 다수설 역시 정규의 절차에 따라서 한 발언일지라도 명예훼손적인 언사는 직무행위 그 자체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면책되지 아니하고,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하고 있으므로 이번 기회에 향후에 다시는 국회의원이 면책특권을 악용하여 직무와 관련없이 특정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피고소인을 철저하게 신속히 조사하여 엄벌에처해주시기 바랍니다. 1999.10.27. 고소인-이강래 고소대리인-변호사 이상수 박찬주 신기남.
  • 北美방공사령부 미사일 종합감시초소로 새단장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콜로라도주 샤이엔 산속 깊숙히 자리한 북미방공사령부(NORAD)가 산뜻하게 새단장을 마치고 미사일방어체계 종합지령실이란 다음 세기 임무를 시작했다. 냉전시대인 1960년 1월1일부터 가동,핵폭발시 진공관 컴퓨터를 보호하고 적에 반격하기 위해 돌덩어리산 한가운데 700명이 한달동안 문을 닫고생활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NORAD가 지난 5년동안 모두 18억달러를 들여 탄도미사일종합감시 초소로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단장을 마친 NORAD는 이제 숫자가 극비인 감시위성을 통해 지구상 어느 곳에서 발사된 물체건 수분안에 분석,대응조치를 취하도록 역할한다. 최근 성공한 미사일 요격 미사일체계의 두뇌역할을 하게 되며 지난해 북한미사일발사를 처음 확인했던 곳도 바로 NORAD. 모든 시스템의 중단없이 이같이 새단장을 마친 이곳은 앞으로 약7,500개나되는 폐위성의 궤도추적은 물론 마약단속을 위한 미확인항공기 추적역할 등도 간단히 할 수 있게 됐다.
  • 田炳旼씨 극비 귀국 첫 공판서 법정구속

    광주민방 사업자 선정비리와 관련,해외 체류 중 불구속 기소된 전병민(田炳旼) 피고인이 최근 귀국해 첫 공판에 출두했다가 법정구속됐다. 서울지법 형사13단독 이상주 판사는 13일 열린 전 피고인에 대한 알선수재사건 첫 공판에서 “장기간 소환에 불응하는 등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있다”며 법정구속했다. 전 피고인은 이날 신문에서 “대신측으로부터 받은 광주민방사업자 선정 관련 청탁은 어렵다는 취지로 거절했고,연구소 운영비 명목으로 2번에 걸쳐 13억원을 받았을 뿐”이라며 “하지만 지난 96년 문제의 13억원이 민방선정 청탁과 관련됐다는 말을 듣고 대호건설 이성호(李晟豪) 사장에게 10억을 빌리고 개인돈 3억원을 합쳐 다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상록기자]
  • [대한광장] 맥아더 음모설

    내년은 6·25 전쟁 발발 50주년이 되는 해이다.그래서 맥아더 기념관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착착 준비되고 있다.맥아더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나름대로 한국인을 좋아했고 또 당연히 한국인이 자신을 좋아할 것으로믿었다. 그런데 필자는 15년전 발표한 논문에서 맥아더의 정보기관이 6·25의 발발을 미리 알고도 방치한 것이 아닌가하는 문제를 제기했으며 나의 글을 건네받은 일본인 기자가 이를 자기 나름대로 계승한 일이 있으며, 요즘에는 맥아더의 중공군 개입 예지·방치설이 심심치 않게 돌고 있다. 나는 다시 이 문제를 재검토하기 위해 맥아더 사령부의 방문자 일일방명록을 보려고 여행을 떠났다.방명록을 통해 정말로 맥아더가 1951년 3월중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대사들을 만났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1982년에 출판된 굴든의 ‘한국전쟁비사’에는 ‘맥아더가 파면된 진정한 이유’라는 것이 나온다.맥아더는 이들 외국대사에게 “지금이 중국이 강대국이 되기 전에 전면전으로 때려 눕힐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워싱턴을 유도해 장개석의 재집권을 돕겠다”는 결심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대사들은 곧암호전문을 본국에 치고 해독전문을 본 트루먼은 면종복배하는 맥아더의 불충함에 격노했다는 것이다. 굴든에게 이 기밀사항을 흘린 장본인은 국무부 거물이던 닛체가 아니면 마셜인 것 같다.우선 닛체가 1989년에 나온 회고록에 약간 흘렸고,이 책을 본마셜이 상세하게 흘렸다.마셜기록의 존재는 정신문화연구원 정용욱교수가 귀띔을 해줬다. 그런데 1996년 나온 ‘정일권회고록’을 보면 맥아더가 웨이크섬으로 트루먼을 만나러 가기 전 이승만대통령은 그에게 편지를 써서 중공군이 개입할것이 확실한데 북진통일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트루먼에게 그 가능성을 긍정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이에 대해 맥아더는 10월 13일자 회신에서 “중공군은 반드시 개입할 것입니다.그러나 이 가능성을 아는체 할 수는 없습니다….나는 이것을 전혀 모르는 사실로 할 것입니다.…지금이야말로 중공의 잠재적인 군사력을 때릴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극비중의 극비문서는 굴든이 발굴한 위의 얘기와 통한다.그런데 이 ‘맥아더서한’의 발송날짜가 맥아더가 트루먼을 만나 중공군의 개입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15일로부터 이틀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같은 달 3일 도쿄주재 영국외교관 개스콘이 맥아더와 면담한 후 본국에 보고한바에 따르면 중공군이 개입만 한다면 만주는 물론 베이징까지 맹폭격할 것이라고 맥아더는 장담했고 영국정부는 이것을 크게 우려했다는 기록도 있으니상황적으론 정일권증언을 나무랄 수 없다. 이 서한의 존재여부에 대해선 몇 갈래로 생각할 수 있다.하나는 정일권씨의 얘기는 굴든 비화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추측이다.이것을 정일권씨가 가공(加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회고록의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다.또 정일권씨의 회고록이 그가 1994년 작고후 가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도 있다.그렇다고 쳐도 만의 하나 서한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세계적인 특종이 될 것이다.이화장이나 정부기록보존소 등에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외교통상부나 정보기관에서 문서를 인수했을 가능성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 국립공문서관에 기밀해제되지 않은 이승만과 미정부간의 왕래 극비문서들이 수두룩한 것을 감안한다면 4·19의 소용돌이중에 미 정보기관이 뽑아가지 않았을까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이 설에 대한 사실규명은 6·25의발발연구에,또 허구의 정설화 문제에 지대하게 공헌할 것이기 때문에 연구자나 기자 및 일반인들의 주의를 환기해본다. 方 善 柱한림대 객원교수 재미사학자
  • 노근리 양민학살 규명 급진전 배경

    미군이 6·25 당시 양민들을 대량학살했다는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 문제가 급진전되는 분위기다.클린턴 미대통령은 30일 AP통신 보도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행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의 필요성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당초 한미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반응’을보였던 정부는 1일 미행정부와 접촉을 갖고 진상조사를 포함한 다각적인 협의에 착수했다는 후문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한미 당국간 두 갈래의 채널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주한 미대사관-외교부,주미 대사관-미 국무부의 양자채널을 통해양국은 향후 대책 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미온적인 대응이 자칫한국민의 반미(反美) 정서에 불을 당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있다.한국내 여론 동향이나 인도주의적 범죄 등에 대한 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법상의 원칙 등을 감안,한미 양국의 ‘조기 종결’ 의지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외교부와 국방부를 포함한 관련부처들은 ‘진상조사단’구성 문제와 ‘노근리 사건’이 사실로 밝혀질 것에 대비한 배상 등의 문제를 놓고 검토작업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이와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진상조사 조사단 문제가 매듭되고나서 한미 공동진상 조사 등을 논의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밝혀 한미공동조사단 구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나 진상규명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노근리 사건’의 발생 동기부터 학살의 범위 등을 놓고 미 극비문서와 AP보도가 일정한 거리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미정부와 행정부가 ‘노근리 미군양민학살 사건대책위’의 수차례 걸친 사과와 배상 요구를 묵살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되더라도 사과 및 보상 수준을 놓고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아직도 울부짖는 소리가…” CNN, 참전미군 고백 방송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언론들은 한국전쟁 초기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전면 또는 국제면 주요 기사로 게재하는 등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고 있다. CNN과 ABC,NBC,CBS등 3대 방송들은 AP통신 보도에 하루늦은 30일 보도에서클린턴 대통령의 조사지시를 앞세워 주요뉴스로 내보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AP통신의 기사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적시한 뒤 이에 따른 미국정부의 반응과 적절한 대응방안이 어떤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보도했다. 특히 뉴욕 타임스의 경우 현장에 참여했던 미군 병사들의 증언을 생생하게인용하는 한편 현장에서 증언하는 전춘자씨의 사진과 1950년 당시 현장에 주둔한 25사단을 맡았던 윌리엄 킨 소장이 야전에서 지휘하는 장면 등 주요사진을 3단크기로 다루어 기사의 비중을 높였다. 특히 “현장의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하며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한다”는 내용이 적힌 50년 7월27일자 미보병 25사단 사령부가 내린 명령서를 사진으로 실어 기사가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강조했다. CNN은 매 15분마다 주요뉴스 소개에서 한국전 민간인 학살이란 제목을 소개하는 한편 현장에 있었던 생존 병사가 “아직도 바람부는 시절이 되면 어린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고백과 함께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 부인의 증언을 함께 소개했다.워싱턴 포스트의 경우 관련기사의 제목을“미육군 학살 주장 부인”이라고 뽑아 정부의 행동전환을 촉구했으며 시카고 선 역시 “전 미군병사 한국에서의 살해를 증언한다”고 제목을 달아 정부의 부인보다는 사실에 더 비중을 두고 보도했다. 미 언론들은 특히 미 정부가 AP보도 첫날 사건내용을 부인한 것을 사건에대한 자세한 사실과 비교해 보도함으로써 미정부의 책임있는 행동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hay@
  • 금강산관광 대금 현물지급 추진

    국회는 30일 법사·재경·통일외교통상 등 14개 상임위별로 소관부처와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이틀째 계속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의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은 “정부는 금강산관광개발 사업비가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되지 않도록 현대가 북측에 주는 대금을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임장관은 이미 현대측이 북측과 현금 대신 곡물,가전제품 등 현물을 제공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앞서 임장관은 “군사비 전용증거는 없으며 이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사업을 이용한 현대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 임장관은 통일부의 사업승인과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방북시점 전후의 현대건설,현대상선,금강개발의 주가 변화를 공개하며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자민련의 이건개(李健介)의원은 “2000년도 평양 8·15축전에 학생 및 친북인사의 방문을 허용할 계획은 없느냐”며 대북포용정책의 확대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임장관은 “정부는 교류협력의폭을 넓혀나가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발전에 따라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의원은 미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전문회사인 서전·런디사가 뉴욕의 유엔 북한대표부에서 북측과 접촉,6억달러 규모의 대북경수로 송배전공사를 극비리에 추진중인데도 정부가 이를 은폐,결과적으로한국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될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국방위의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은 충북 노근리에서6·25 당시 발생한 미군의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국방부 차원에서 사실여부를 확인중에 있으며 필요할 경우 미군의 비밀문건 확보와 현장조사 등을 통한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국민회의 김민석(金民錫)의원은 정무위의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대한 감사에서 “청소년의 인터넷 음란 사이트 접속과 PC통신을 통한 원조교제 등의 실태가 심각하다”며 ‘청소년 통행금지구역(레드 존)’설치 미비 등 청소년보호장치의 문제점을 캐물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한국전산원 국감에서한나라당 이상희(李祥羲)의원은 “4대 사회보험이 내년까지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전산망 확충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각각 독자적으로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 호환성이 없는 등 예산낭비가 우려되고 있다”며 공공정보의 통합활용을 위한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풍연 이석우기자 poongynn@
  • 여권 신당 발기인 인선 뒷얘기

    신당 발기인 인선 작업은 극소수의 핵심인사들에 의해 극도의 보안속에 진행됐으며 발기인 명단 확정단계에서 반전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영입작업에는 당에서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과 한화갑(韓和甲)총장,정균환(鄭均桓)특보단장,정동채(鄭東采)기조위원장과 김민석(金民錫)의원 등이 깊숙이 개입했다.그러나 실무를 총괄한 정단장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맡은분야만 어느정도 파악했을 만큼 보안유지에 신경을 썼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청와대와 당은 물론 여권 외곽의 다양한 채널로부터 추천된 명단을 직접 검토하고,전화 등을 통해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로마에 있던 지휘자 정명훈(鄭明勳)씨에게는 현지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참여를 권유하는 등 외부인사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명단을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김근태(金槿泰) 노무현(盧武鉉)부총재가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자 일부 부총재들이 끼어들어 갈등 양상을 보여 당8역과 함께 고문단과 부총재단을 모두 제외하는 쪽으로 방침을 급선회했다.이같은 반전으로 이대행이 당을 대표해 공동대표로 발기인에 참여하고,‘기득권 포기 선언’으로 불만을 표출한 박범진(朴範珍)의원 등 영입파들이 추가됐다. ?발기인 인선 실무팀은 한달 가량 집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고 서울 모 호텔에서 극비리에 실무 작업을 진행했다는 후문.이에따라 당내외에서 ‘밀실 창당’이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신당 발기인들은 여의도 장은증권빌딩에사무실을 얻어 공개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발기인 명단이 발표되자 국민회의 당내 인사들은 대체로 잘된 인선이라고자평.그러나 당내 인사 가운데 한모 의원과 박모 의원이 포함된 것을 놓고불만이 터져나왔다.한 당직자는 “모 의원은 이런 당내 분위기는 모르고 자신의 경력란에 중요한 게 빠졌다며 항의하고 있다”고 한숨. 강동형기자 yunbin@
  • 권희로씨 출국 앞둔 日 표정

    재일동포 무기수 권희로(權禧老·71)씨 출소와 출국(7일)을 이틀 앞둔 5일일본 당국의 극비 호송작전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권씨를 한국에 데리고갈 박삼중(朴三中) 스님 일행도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권희로씨는 5일 도쿄 후추(府中)형무소에서 다른 형무소로 이감된 것으로알려졌다. 주일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법무 당국자와 권씨의 안전이송에 관한 협의를 과정에서 권씨의 이감 사실을 시사받았다”고 밝혔다. 일본의 교정당국에 정통한 소식통은 권씨의 이감 형무소와 관련,“권씨가이감됐다면 나리타(成田) 공항과 가까운 치바(千葉) 형무소가 됐을 가능성이가장 높다”고 말했다. 나리타 공항과 가까운 형무소로는 도쿄 인근의 이바라키현 미토(水戶)형무소와 치바 형무소 2곳이 있다. 특히 치바형무소는 나리타 공항과 20㎞ 떨어져 있어 권씨를 호송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신병인도 당일인 7일에는 일본 당국이 복수의 차량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나리타에 도착한 뒤에는 특별수속을 거쳐 곧바로 오전 11시25분발 일본항공(JAL)편에 태운다는 계획이다. 삼중스님측은 야쿠자들부터 “우리의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은 자제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본 당국은 권씨가 비행기에타기 직전 그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권씨는 출소를 앞두고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고 삼중 스님측이 5일 밝혔다. 이날 공개된 지난 3일의 최종면회내용에 따르면 권씨는 “흥분한 탓인지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그는 심경에 대해 “착잡하며기내에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고국땅에 내려서겠다”고 스님측에 전달했다. 권씨는 갈색구두에 양복차림으로 출소한다.한복을 입을 경우 협박세력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들어가면 어머니 박득숙(朴得淑·98년 작고)씨가 지어놓은 20벌의 한복중 모시 옷에쪽빛 마고자를 입고 고무신으로 갈아신게 된다.삼중 스님이 가져간 방탄복은한복안에 껴입는다. 김씨는 귀국 직후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습니다”라는 첫마디를 한국말로 할 예정이다.3년전부터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는데 발음도 상당히 정확한 편이라고 삼중 스님은 전했다. 김씨는 또 한국에서 사용하게 될 명함을 요청하는 등 귀국후 생활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일본에서 제작된 이 명함은 한국정부가 발행할 주민등록증상의 ‘권희로’(權禧老)와 일본에서 썼던 ‘김희로’(金嬉老)가 나란히적혀 있다. 삼중 스님 일행은 5일 도쿄 시내에서 권씨의 귀국준비상황을 최종점검했다.권씨는 공항에서 태극기에 싸인 어머니의 유해상자를 가슴에 안고 귀국길에오르게 된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ok@
  • 정부, 보안관리체제 강화

    정부는 외교통상·통일·국방부 등 주요 부처의 보안 부서에 대한 출입통제를 강화하고 전산보안시스템을 대폭 보강키로 했다.지난 3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회의자료가 유출되는 등 보안관리체제에 구멍이 생겼다는 판단에따른 것이다. 정부는 국무조정실,행정자치부,국가정보원 등 관련 부처의 협의를 거쳐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보안관리체제 개선방안’을 마련,김종필(金鍾泌)총리의 훈령으로 각 부처에 시달했다고 5일 밝혔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연말까지 대통령령인 보안업무 규정을 전면적으로 개정,현재 1∼3급 3단계로 돼있는 비밀구분을 ‘극비’ ‘비밀’ 2단계로 단순화하기로 했다.해커 침입 대비책을 마련하는 등 전산보안시스템도 대폭 강화한다.보안업무관리 규정에 보안사고 관련자에 대한 징계규정을 신설하고 ‘비밀취급인가증’ 등 불필요한 서식은 대폭 간소화하거나 폐지하기로 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김희로씨 석방 뒷얘기

    재일교포 장기수 김희로(金嬉老·71)씨가 석방되기까지 남모르게 도운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정몽준(鄭夢準) 현대중공업 고문의 밀명을 받고 김씨의 석방을 극비리에 추진한 금강기획의 임삼(林森·67) 고문과,20년 동안 국내에서 구명운동을 펼친 이재현(李在鉉·53·서울 관악구 봉천3동)씨가 그들이다. 정 고문의 일본관계 자문역을 맡고 있는 임 고문은 일본 법무성 등 관계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임 고문이 정 고문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5일.30년 동안 아들의 석방을 기다려 온 김씨의 노모 박득숙(朴得淑)씨가 숨을 거두었다는 보도가 나간 다음날이다.“자세히 내용을 알아보고 도울 길을 찾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임 고문은 박삼중(朴三中)스님을 찾았고,친분이 있는 일본인 관계자들에게의견을 물었다.자민련 이건개(李健介)의원이 주도하는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협력제도 연구모임’에 도움도 청했다.얼마후 일본인들로부터 “석방을적극 돕겠다”는 대답을 들었고,박스님의 구명 운동도 급진전됐다. 이재현씨가 김씨의 구명운동에 뛰어든 것은 지난 70년.당시 신문을 통해 김씨의 투옥 사연을 보고 ‘또 다른 한국인 차별’이라는 분노를 느꼈다.75년김씨 석방후원회장을 맡은 뒤에는 이발관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거리로 나섰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국회의원 60여명 등 3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옥중에 있는 김씨에게는 200여통의 편지를 보내 위로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실종·사망 北派공작원 7,726명”

    6·25전쟁 이후 북한에 침투했다가 억류되거나 실종·사망한 북파공작원(일명 HID,AIU)의 수가 7,726명에 이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7일 발간된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은 군정보 관계자의 말을 인용,지난50년부터 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까지 북한에 공작원을 침투시켜 대북첩보 수집과 비밀공작을 해왔다고 보도했다.또 이들 공작원 중 7,726명이 북한에서 활동중 체포되거나 실종·사망했으나 민간인 신분이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실종된 북파공작원이 수천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은 있었으나 정확한 숫자가 제시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북한 출신 민간인들을 극비리에 북한에 보내 정보원으로 활용했으나 전체 공작원 및 사망·실종자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는 북한에 침투했다가 체포되거나 실종·사망된 특수부대 요원들의 명예회복과 유족에 대해 보상하는 방안을 최근 국가보훈처에 공식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이에 대해 보훈처는 현행 법률로는 보상이 어렵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철기자 ic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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