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극비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고충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미안함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49
  • 12월에 터널침목 첫 확인/「제4땅굴」을 찾기까지

    ◎「3호」 이후 12년간 수백개 공 굴착/자연동굴 많아 작업 애로… 내시경까지 사용 ○…『동부전선에서 제4땅굴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연말부터로 국방부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 『동부전선에서 무슨 소식이 있을것 같다』는 풍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78년 이후 12년동안 한미합동 땅굴탐색반이 10여차례의 탐색시추를 했으나 7∼8개가 자연동굴로 밝혀진 예가있어 이번에도 자연동굴이 발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미국의 지질학자ㆍ탐사전문가ㆍ석유시추전문가 등 20여명을 동원,극비리에 확인 작업을 계속해 왔다. 현장을 조사한 미국의 지질학자들은 『화강암에 자연동굴이 있을 가능성은 1백만분의 1정도 밖에 없으니 남침용 땅굴이 틀림없다』고 우리측을 격려했다. 이에 힘입어 군당국은 미국에서 제작된 최신 굴착기를 도입,굴착을 시작했으나 기계가 미국 지형에는 맞으나 우리지형에는 잘 맞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는 등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확인이 다소 늦어졌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방부는 지난 20일 동부전선 양구지방에 제4땅굴이 발견되었다는 워싱턴 타임스의 보도가 나가자 과거 북한측의 공격으로 장병들이 사상된 점과 자연동굴일 경우 북한측의 역공세에 말릴 위험성 때문에 이를 전면 부인하는 성명을 냈었다. 그러나 제4땅굴이 발견된 을지부대와 백두산부대 장병들 및 2개의 민간 건설업체 종사자들에 대한 보안 대책을 세우기가 어렵게 되자 지난 1일 메네트리 유엔군사령관에게 보고를 하고 역터널을 뚫게 됐다. 더욱이 올해초 김일성의 신년사에서 우리측이 자유로운 통행을 막는 콘크리트 장벽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등 대남 심리전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땅굴 발견 소문이 사실과 다를 때 북한측이 이를 역이용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제3땅굴이 발견된 78년 이후 한ㆍ미 양국은 전문탐색팀을 구성,미국의 석유시추 전문가 20여명을 초청,휴전선 일대의 지형지물에 대해 대대적인 지질조사에 나서는 등 북한의 땅굴을 찾아내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 작업에는 미국의 석유 시추 기계와 독일제 착암기,스웨덴제 굴착기 등이 동원됐다. ○…땅굴 1개의 구멍을 시추하는데 드는 예산은 약 1천만원으로 추산되며 지난 10년동안 뚫은 구멍만도 수백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역갱도 공사에는 약 1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한 제4땅굴은 지난해 12월 땅에 구멍을 뚫고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에 땅굴 천장용 침목이 잡히면서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군당국은 이를 단서로 국내 굴지의 토건회사 전문가들과 군장병들을 동원,본격적인 탐색작업을 벌인끝에 3일 하오 1시28분 굴착에 성공한 것이다. □1ㆍ2ㆍ3ㆍ4땅굴 비교 ●1호 〈1〉발견일시:1974년11월15일 〈2〉위 치:고랑포 동북방 8㎞ 〈3〉크 기:높이 1.2m,폭 90㎝ 〈4〉깊 이:지하 45m 〈5〉총 길이:3.5㎞ 〈6〉침투길이:1000m 〈7〉구 조:콘크리트 구조물 〈8〉전술능력:1개연대 병력침투 〈9〉예상기습:고랑포∼의정부∼서울 〈10〉방 향:(65㎞) 〈11〉특 징:운반차량 사용,전기가설●2호 〈1〉발견일시:1975년3월19일 〈2〉위 치:철원 북방 13㎞ 〈3〉크 기:높이 2m,폭 2.1m 〈4〉깊 이:지하 50∼160m 〈5〉총 길이:3.5㎞ 〈6〉침투길이:1,100m 〈7〉구 조:암석층 굴진 아치형 〈8〉전술능력:시간당 3만 병력과 야포통과 〈9〉예상기습:철원∼포천∼서울 〈10〉방 향:(101㎞) 〈11〉특 징:출구를 여러개 만들어 유사시 병력을 산개 ●3호 〈1〉발견일시:1978년10월17일 〈2〉위 치:판문점 남방 4㎞ 〈3〉크 기:높이 2m,폭 2m 〈4〉깊 이:지하 73m 〈5〉총 길이:1.635㎞ 〈6〉침투길이:435m 〈7〉구 조:암석층굴진 아치형 〈8〉전술능력:시간당 3만 병력과 야포통과 〈9〉예상기습:문산∼서울(44㎞) 〈10〉방 향: 〈11〉특 징: 〃 ●4호 〈1〉발견일시:1990년3월3일 〈2〉위 치:양구 〈3〉크 기:높이 2m,폭 2m 〈4〉깊 이:지하 145m 〈5〉총 길이:2㎞ 〈6〉침투길이:미확인 〈7〉구 조:아치형 〈8〉전술능력:미확인 〈9〉예상기습 :오대산ㆍ태백한일대에서 유격활동,제2전선 형성 〈10〉방 향 : 〈11〉특 징:영동고속도로 장악,병력 이동및 병참선 차단
  • 한ㆍ소 연내수교 가시권에/YS 모스크바행의 “보따리”

    ◎리슈코프 총리등과 경협 구체 논의/체류중 북한 당 고위인사와의 회담여부도 관심 야당총재로서 「초당외교」를 천명하며 지난해 소련을 방문했던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이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오는 3월20일부터 5일간 공식일정으로 소련을 방문한다. 김최고위원의 이번 소련방문은 한소간의 연내수교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와 민자당이 관계장관과 당3역 등 정부ㆍ국회ㆍ민자당을 망라한 국가적 차원에서 방소기획단을 구성하는등 김최고위원의 방소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이번 소련방문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김최고위원이 접촉하게 될 소련측 인사. 김최고위원측은 과거 야당총재 때와는 달리 집권여당의 대표인 만큼 소련 공산당의 유력인사 등 정계지도자는 물론 고르바초프서기장과의 면담도 강력히 추진돼 그 결과가 주목된다. 김최고위원의 방소일정을 협의하고 25일 귀국한 정재문의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김최고위원이 공식접촉할 소련측 인사는 리슈코프총리,프리마코프연방회의의장,야코블레프 소련공산당 국제담당정치국원,브루텐스 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부장 등 정계 고위인사와 김최고위원의 초청 당사자인 소련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마르티노프소장 등 IMEMO측 인사. 김최고위원은 이들과 만나 국교수립 분위기조성 등 한소간의 관계증진 및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협력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 특히 김최고위원측은 고르바초프서기장과의 면담을 성사시킴으로써 민자당의 전향적인 북방외교 노력을 가시화시켜 나간다는 방침으로 있으나 실현여부는 현재까지 불투명한 상태. 정의원은 소련과의 일정협의 과정에서 『김최고위원이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20세기 지도자인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했다』면서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위치로 볼 때 나를 통해서 면담일정을 정하는 것보다 직접 김최고위원에게 전달되거나 방소중 연락해 올 가능성도 있다』고 김최고위원­고르바초프 회동 가능성을 시사. 양국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최고위원의 고르바초프서기장 면담이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리슈코프총리,야코블레프정치국원,프리마코프연방회의의장 등 소련 정부ㆍ의회ㆍ공산당 유력인사와 공식접촉은 과거 IMEMO측과의 교류범위와 비교해서는 획기적인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방소를 앞둔 소련측의 분위기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지가 김최고위원의 소련방문을 이례적으로 보도하는 등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원은 『소련측이 집권여당 대표가 된 김최고위원의 예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초청당사자인 IMEMO뿐 아니라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위원회와 연방최고회의 관계자 등이 공동으로 김최고위원의 영접을 준비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언. 김최고위원이 방소기간중 머물 숙소도 지난해 묵었던 돔퓨류에모브 영빈관보다 격이 높은 복지브라스카야 영빈관으로 결정됐다고 정의원은 전하고 있다. 복지브라스카야 영빈관은 크렘린궁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으며 공산당 중앙위가 외국원수ㆍ수상급의 소련방문시 숙소로 관리하고 있는 영빈관으로 김최고위원은 국가원수급의 예우를 받게 되는 셈. 소련측은 영접절차와 숙소문제 이외에도 총재에서 최고위원으로 바뀐 김최고위원의 공식영문직함을 통보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세부적인 문제까지도 신경을 쓰는 모습. 김최고위원측은 다음주중 16인 내외로 잠정합의 한 공식방문단 명단과 취재기자등 비공식 수행원의 명단을 소련측에 통보할 예정. ○…이번 김최고위원의 소련방문 기간중 북한측 인사와의 접촉 가능성도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김최고위원의 소련방문시 북한측의 요청으로 허담 조통위원장과의 극비회담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감안할 때 북한인사와의 회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입장. 정의원은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북한측 인사는 만나지 않았다』며 『가능하다면 김최고위원이 북한인사들과 만나 한반도 긴장완화 문제등을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소련측에 전했다』고 말해 김최고위원의 대북접촉 가능성도 시사. 김최고위원이 북한인사와 접촉한다면 김최고위원이 집권당 대표로 위상이 변한 만큼 이종옥ㆍ박성철부주석이나 김영남외교부장 등 당서열 10위이내의 중량급 인사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김영삼­허담과의 모스크바회담이 김최고위원이 야당총재였던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문익환목사 방북사건 등의 와중에서 북한측이 적극 요청해왔던 사실로 미루어 이번 방소기간중 북한측의 회담요청 제스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 ○…김최고위원 방소기획단은 27일 첫 회의를 열어 김최고위원의 방소일정을 협의하고 온 정의원으로부터 소련측과의 협의결과를 보고받는 한편 공식방문단 명단 등을 확정할 계획. 방소기획단은 집권당 최고위원의 소련방문이 민자당의 가시적인 북방외교 성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민자당 및 정부ㆍ경제계 인사를 포함한 중량급으로 방소단을 구성할 방침. 방소기획단은 김­고르바초프 면담이 성사될 경우 노태우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것인가 여부와 방소단에 당3역중 1인ㆍ장관급 정부인사ㆍ경제단체 대표 등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전대협 4기 의장 전남대 송갑석군/핵심간부 모두 교체

    【광주】 전대협 제4기 의장에 전남대총학생회장 송갑석군(24ㆍ무역학과4년)이 선출됐다. 전대협은 지난21일 하오8시 전남대총학생회 사무실에서 극비리에 임시중앙위원회를 열고 의장에 송군을 선출하고 정책위원장ㆍ연대사업국장 등 핵심간부 10여명을 전원교체했다고 전대협의 한 관계자는 22일 밝혔다. 이날 임시중앙위원회에는 전대협산하 서총련의장 윤진호(24ㆍ고려대4),부ㆍ울총협의장 박성현군(22ㆍ부산대4) 등 중앙위원회 전원이 참석했으며 만장일치로 송군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전대협은 23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4기 전대협의 활동방향 등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 김영삼씨의 정적들/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지난 12일 밤 관훈토론회에는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이 등장했다. 관훈토론사상 5번씩이나 토론에 초청된 연사는 김씨가 처음이다. 그런데도 이날 저녁의 그는 「등장」했다는 말이 합당했다. 이날의 그는 자신있는 「승자」였다. 성숙하고 여유있고 그리고 당당하게 토론상대를 선도하였고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처음이다. 13일 청와대서 있었던 민자당최고위원 오찬자리에서는 김종필씨의 치통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자리서 불쑥 김영삼씨가 『나는 어른이 애들처럼 볼거리를 앓는다』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애들처럼 볼거리를 앓는 정치지도자. 그것은 김영삼씨의 인상과 부합된다. 정확치 못한 발음과 잘선택되지 못한 어휘ㆍ용어로 실수를 탕탕 하면서도 소년같은 순수함과 열정 때문에 장내는 따근따근하게 달아오르고 사람들은 긴장을 푼채 유쾌한 상태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우군」이 되어주어야 할 것같은 친화력이 생기게하는 정치인이다. 그런 그였지만 12일 저녁의 관훈토론에서는 좀 달랐다. 대개의 질문자들이 그렇듯 불의의 습격으로 던지는 공을 그는 처음부터 늠름한 자세로 받아치웠다. 합당제의가 어느 때,어떤 경로로 누구에게서 왔는가를 물은 첫 질문에 쾌쾌히 대답을 한 것은 물론이고 질문속에 담긴 묵시적인 속질문에까지 미리 대답을 해치웠다. 『…토론에 부치지 않았다고 어떤분들은 말합니다만,솔직히 말해봅시다. 이런 가히 혁명적인 일을 만약에 토론에 부쳤더라면 합당은 실패했을 겝니다. 그래서 극비에 부치기로 노대통령과 둘이서 합의를 본 것입니다…』 이러 어조는 응어리를 쏘아 분쇄시키는 효력이 있었다. 잘 윤색된 현학적 논리보다 사람들은 이런 정직함에 약하다. 여유있는 미소로 「밀약설」을 일축하고 「고뇌로 지새운 나날」을 신념있게 강조했다. 이날 김영삼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한가지 보탰다. 이땅의 정치인도 이제는 「정적의 관리」를 정착시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적이란 승리와 패배를 한몸에 지닌 표리이며 승리의 영광은 패배한 정적이 있음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정적이란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것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날 보여준 김영삼씨의 정적관은 변전을 거듭해온 한국정치의 또다른 축도였다. 우선 김대중씨의 대목에서 그는 여러번 「축복」이라는 말을 썼다. 『…내가 야당으로 남고 김대중씨가 바꿔 되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축복을 보냈을 것이다』고도 했고 『…김대중씨가 정치를 해 나가는데 있어 행운이 있기를 축복한다』고도 했다. 「정통야당」경쟁으로 지새우던 시절의 애증이 칡덩굴처럼 얽힌 라이벌에게서 축복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싶은 심경이 아마도 가장 간절한 감정인듯했다. 불과 몇달전까지도 『확실하게 종식시켜야 할 군정』의 일환이었던 노태우씨도 김영삼씨의 정적이었었다. 그를 동지로 맏아들인 「가히 혁명적인 변화」에 김영삼씨는 스스로 아주 개운한 뒷맛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노대통령은 알고 보니 매우 성실하고 솔직하고 능력있는 분이더라』는 말을 그는 거침없이 했고 노씨가 민정당의 간판을 내린 「영단」을 거듭거듭 칭송했다. 자신의 민주당 간판 내리기보다도 훨씬 강조된 의미를 두는 듯한 그 어투에는 계산속 없는 김영삼씨의 인품이 담겨 있었다. 12일의 관훈토론에서 그가 그의 옛모습을 그대로 기억나게 한 대목은 그의 또하나의 「정적」인 전두환씨 대목이었다. 화려한 승자가 되어 관대하고 사려깊은 정치지도자로 손색이 없던 그가 이 대목에서만은 느닷없이 옛날 목소리를 냈다. 『…아니 뭐,그 사람 연희동 사저로 온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그게 말이나 됩니까. 본인이 국가에 헌납한다 해놓고 어딜 또 온다는 겁니까…』 소년스럽게 상기된 옛모습을 띤 그 모습은 아량있는 승자의 것과는 달랐다. 무장해제된 적장에게 발길질을 하는 것같은 추기가 느껴졌다. 「정통야당」이란 말에 집착했던 과거를 잘못으로 생각하고 세상에 영원히 야당하기 위한 정당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 『세상은 변하는데 죽어도 안변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성숙한 말을 하게된 그가 전씨 대목에 이르러 이렇게 상혈하는 것은 아마도 품은 한이 아직도 삭지 않았음을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부분은 그의 승자적 금도에는 그늘을 만들었다. 옛날,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가르치며 특히 큰 마음이기를 교육했다. 사나이다운 대범함과 큰 기량을 소망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창밖에 눈이 펑펑 쏟아졌다. 어린 아들은 평소에 크게 놀기를 강조하던 아버지 교훈이 생각나서 눈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저 눈이 모두 솜이었으며 좋겠다…』쏟아지는 눈이 모두 솜이라니,그리하면 「큰 것」아닌가. 아버지는 아들의 그 말이 신통했다. 만족스러운 김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그쳤다. 『…그래. 그 솜을 무엇에 쓰려느냐?』하고. 그러자 어린 아들은 대답했다. 『…쥐구멍을 막을까 한다』 전두환씨에게라면 김영삼씨는 이제 노여움의 정력도 소모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김영삼씨와의 「정적시절」도 지나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영삼씨가 큰 정치의 왕도를 걷도록 기대한다. 정적과의 운명적 만남에서도 정치의 왕도는 빛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의 정치적 성과가 아름답게 완성되기를바란다. 정치인의 승리는 「좋은정치」를 전제로 이룩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그것만이 희망을 주는 것이므로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북한 권력서열 큰 변동/개방 건의한 군 실력자등 대거 좌천

    ◎사상사업 명목,숙청작업 계속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의 부수상을 지낸 정치국위원 박성철이 지난해 10월 모스크바를 방문,극비리에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와 면담했으며 『북한도 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르바초프의 충고를 김일성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가 권력서열 상위랭킹에서 급전직하,밀려났다고 도쿄(동경)의 북한문제 전문소식통들이 23일 밝혔다.〈관련기사5면〉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고르바초프­박성철의 면담은 김일성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경제협력요청이 주목적이었는데 박이 귀국후 보고석상에서 『개방과 개혁정책을 취하지 않는 한 석유를 비롯한 필요물자를 공급받을 수 없다』고 주장,북한권력층 내부에 개방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을 비롯,무역담당 책임자였던 계응태등 경제담당자들과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주장했던 최광참모총장등 군부실력자들이 좌천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소위 「사상사업」이라는 명목아래 지난해 10월부터 오는 2월14일까지 북한내의 불평ㆍ불만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적발ㆍ숙청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 북한 “개혁바람 재우기”대숙청 작업/권력서열 대변동의 저변

    ◎참모총장 최광등 군부친소파 몰락/김부자체제 견고히… 무명 김윤혁 6위 부상/페레스트로이카에 호응,박성철도 밀려나 북한 권력서열의 대폭적인 변화는 폐쇄ㆍ고립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내부에서도 개혁과 개방을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치열했었는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현재 개방ㆍ개혁의 주창론자들은 권력서열에서 하위로 밀려났거나 완전히 배제되어 있으나 개방욕구의 확산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북한에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이 되고 있다고 도쿄(동경)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변혁의 불씨」남아 「북한 권력서열 변동표」가 보여주는 바와같이 북한의 권력서열은 상층부 30여명 가운데 김일성ㆍ김정일ㆍ오진우 3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최근 1년 사이 전부 바뀌었다. 전혀 미지의 인물인 김윤혁이 6위로 급부상했는가 하면 11위를 고수하던 전병호는 명단에서 아예 빠져 버렸다. 외교담당 박성철은 88년 12월이래 4∼6위를 지켜왔으나 지난해 11월 18위로 급전직하했다. 박은 지난해 10월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모스크바를 방문,극비리에 고르바초프와 면담한 사실이 있다고 일본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이 밝혔다. 이때 박은 귀국후 보고석상에서 『고르바초프의 개방ㆍ개혁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한 석유공급을 비롯한 경제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에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는 것이다. 박의 보고는 이후 북한 내부에서 개혁을 둘러싼 여러가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됐으나 결과적으로 박은 패배,서열 18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알바니아와 더불어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골수 사회주의체제와 부자세습제를 유지하려는 북한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같은 개혁정책 건의는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다. 지난해 연말 시거 전미국무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때 박은 이미 권력서열 하위로 밀려나 박대신 이종옥이 시거전 차관보를 접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의 패배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경제관계 담당자 거의 전부에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소련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주장해 오던 군부에도 몰락을 가져왔다. ○이근모 강제수용소에 참모총장 최광은 김일성과 빨치산활동을 같이하던 동년배로서 최근 군수뇌로 기용된 인물이다. 14∼15위의 서열에 놓여있던 최도 개혁논쟁의 여파로 27위로 후퇴했다. 다만 서철은 자신의 지병 때문에 7위에서 10위로 밀려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남북적십자회담때 북한측 대표였던 윤기복은 한때 권력서열랭킹에서 밀려나 있었으나 지난해 11월을 기해 20위로 복위했다. 북한에서의 이같은 대폭적인 권력변화는 70년이래 최대의 것이라고 일본의 소식통들은 밝혔다. 조총련이 발행한 1월18일자 「조선시보」에도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김일성주재로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제6기 17차총회」관련 중앙통신기사가 전재됐으나 권력서열의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 보도는 윤기복을 당중앙위원회 서기로 선출했으며 허극성을 당중앙위원후보로부터 위원에,주선성 김성규 이원재 김봉을 최기룡 주영훈 이대세 이학섭 등을 당중앙위원후보로 보선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김일성주석이 90년 새해를 맞아각국의 당ㆍ국가지도자들과 연하장을 교환한 명단을 발표,북한과 소련과의 불편한 관계를 점칠 수 있게 했다. 발표된 명단에 따르면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이름은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을 비롯한 강택민총서기ㆍ양상곤국가주석ㆍ이붕총리ㆍ진운주임ㆍ만리전인대위원장ㆍ교석서기ㆍ요의림부총리ㆍ송평ㆍ이서환서기ㆍ이선염주석ㆍ왕진부주석ㆍ송임궁부주임ㆍ팽진 전 전인대위원장ㆍ등영초전주석 다음으로 16번째 기재되어 있다.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때 현재의 북한은 중국에 완전히 기울어져 있으며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에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불평불만분자 색출 이런 상황속에서의 박성철을 비롯한 경제담당자들의 개방건의,최광등 군부내 친소파의 관계개선주장은 김일성부자의 눈에 「가시같은 존재」로 여겨져 권력서열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도쿄의 소식통들은 분석했다. 이근모전수상 등은 이미 88년 11월이전에 숙청돼 강제수용소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들은 말했다.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불만자들에 대한 대규모 색출작업,소위 「사상사업」도 북한내부에 또하나의 정치적 회오리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도쿄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북한 권력서열 변동표 88년 89년 간부명 12월 4월 5월 9월 11월 비 고 o김일성 1 1 1 1 1 정치국상무위원 o김정일 2 2 2 2 2 〃 오진우 3 3 3 3 3 〃 연형훈 4 4 6 5 5 정치국위원 김윤혁 ­ ­ ­ ­ 6 박성철 5 5 4 6 18 정치국위원 이종옥 6 6 5 4 4 〃 서 철 7 7 7 7 10 〃 김영남 8 8 8 8 7 〃 o계응태 9 9 9 9 28 〃 o허 담 10 10 10 10 8 〃 o전병호 11 11 11 11 ­ 서윤석 12 12 12 12 22 정치국위원 강성산 13 13 13 13 26 〃 홍성남 14 17 17 17 19후 보 최 광 15 14 14 14 27 〃 o한성룡 16 15 15 15 21 〃 현무광 17 16 16 16 14 〃 김복신 18 18 18 18 12 〃 조세웅 19 19 19 19 24 〃 정준기 20 20 20 20 13 〃 강희원 21 21 21 21 16 〃 홍시학 22 22 22 22 25 〃 최태복 23 23 23 23 11 전종 비서 박남기 24 24 24 24 23 〃 서관희 25 25 25 25 25 〃 황장화 26 26 26 26 9 〃 허정숙 27 27 27 27 17 〃 김중린 28 28 28 28 15 〃 윤기복 ­ ­ ­ ­ 20 김 환 ­ ­ ­ ­ 23 (o표시는 당비서)
  • “JP,나카소네와 「중도연합」논의”

    ◎일지,“자민을 모델로… 통합 산파역 맡아”/김 평민총재는 카리스마 강해 배제결정 한국의 3여야당이 전격적인 통합에 이르기까지에는 대연합의 모델이 될 일본 자민당 체제연구를 둘러싸고 주도면밀한 사전준비작업이 극비리에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민당식이란 말할 것도 없이 지난 1955년 보수통합을 일컫는다. 한국의 민정당은 안정다수 확보를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자민당형」의 보수정당을 지향하려는 기미를 보였고 이를 보다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민당을 비롯한 일본정계와 굵은 파이프 라인을 갖고있는 공화당의 김종필총재가 결과적으로 산파역을 맡게 된것이라고 니혼게이(일본경제)신문이 23일 밝혔다. 지난 88년말 일본을 방문한 김종필씨는 비밀리에 나카소네(중증근강홍)전총리를 만나 보수통합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이때 나카소네도 보수합동 추진을 권했다는 것. 김총재는 작년 7월 노태우대통령과 회담한 자리에서 「보수대통합」을 제의했고 의원내각제에 기울어진 김영삼 민주당총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준비공작을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한국의 여야당은 일본처럼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횡적인 관계보다는 권력에의 원근이란 종적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평민당의 경우 반체제 학생들의 지지도 일부 받고 있고 특히 김대중총재는 카리스마적인 성격이 극히 강해 결국 민정ㆍ민주ㆍ공화등 3당만으로 된 보수통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 신당이 일본의 「자유민주당」이름을 뒤바꿔 「민주 자유당」이란 명칭을 갖게된 것만 보더라도 30여년간 장기안정 집권을 계속하고 있는 자민당을 모델로 한 단적인 예라고 니혼게이자이는 밝히고 있다.
  • 「제3세계」진출의 교두보 마련/한­알제리 수교 의미

    ◎북한 편향 국가와 관계 정상화로 결실/전방위 외교의 개가… 「남남협력」 길 열어 우리나라와 알제리간의 대사급 외교관계수립은 우리의 대비동맹ㆍ대제3세계외교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알제리는 62년 독립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제3세계사회주의국가 및 비동맹의 주요지도국으로서 유엔 등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알제리와의 수교는 7ㆍ7선언에 힘입은 별도의 외교적인 성과로서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북방외교의 명실상부한 「전방위입체외교의 서막」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알제리수교가 유엔주재 양국대표부 대사의 서명에 이어 케야르유엔 사무총장에게 곧바로 보고됨으로써 유엔회원국을 상대로 우리의 외교역량을 한껏 과시,우리나라의 유엔가입등 대유엔외교에도 한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알제리와의 수교는 또 북한이 알제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측면에서 북한측으로 하여금 「더이상 국제사회의 고립을 초래하는 폐쇄정책을 고집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개방ㆍ개혁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동인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테면 알제리와의 수교로 인해 그동안 북한과의 단독수교관계를 견지,우리외교의 취약지역으로 평가돼왔던 이집트 시리아등 중동국가와 탄자니아 잠비아 모잠비크 앙골라등 남아공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남부아프리카의 전선국가들도 앞다투어 우리나라와의 수교에 나설 것으로 보여 북한측에 「화해와 개방의 신데탕트」를 따라야한다는 당위성을 심어줄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한ㆍ알제리 수교와 관련,우리나라는 종전 헝가리,폴란드와의 국교수립때와는 달리 상당한 금액의 경제원조를 하지 않았는데 바로 이점은 우리 외교가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정통외교의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음을 뜻한다. 사실 알제리와의 수교는 지난해말 완료키로 양국 외무부간에 합의됐었지만 새해로 넘겨지는 산고를 겪기도 했다. 알제리측이 대북한관계를 의식,수교일자를 차일피일 미뤘고 우리측도 한때 당황했다는 뒷얘기다. 그러나 알제리측이 지난 9일 정부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한국과의 수교필요성을 설득함으로써 한ㆍ알제리양국간의 역사적인 수교는 햇빛을 보게된 것이다. 대알제리수교는 지난해 6월 노영찬외무부본부대사가 극비리에 알제리를 방문,구체적인 협의를 시작한 뒤 9월 유엔총회 참석기간중 최호중외무장관과 고잘리외무장관간에 연내수교에 합의한지 4개월만에 결실을 맺었다. ◎알제리는 어떤나라/한반도 10배크기… 천연자원 풍부 알제리의 공식국명은 알제리민주인민공화국으로 면적은 2백38만㎢(한반도의 10배)이며 인구는 2천3백만명이다. 인종은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으로 구성돼 있고 언어는 아랍어(공용어),불어이며 종교는 회교(90%),가톨릭,기독교 등이다. 수도는 알제이며 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정체는 인민민주주의로 사들리 벤제디드 현대통령이 지난 79년이래 통치해오고 있으며 대통령중심제의 정부형태아래 민족해방전선(FLN)이라는 유일 정당을 갖고 있다. 국민총생산(GNP)은 87년기준 6백40억달러이고 1인당GNP는 2천7백80달러. 주요자원으로는 92억배럴이 매장돼 있는 석유(세계 15위),천연가스(세계 매장량의 12%) 및 철이다. 88년 기준으로 수출은 82억달러,수입은 80억달러이며 원유,가스 및 석유제품이 주요수출상품이고 식품,자동차 등이 주요수입상품이다.
  • 노리에가 마이애미로 압송/미,마약 밀매혐의로 오늘 전격재판

    ◎교황청 대사관서 나와 미군에 투항 【워싱턴 AP AFP UPI 연합】 실각한 파나마 실권자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이 3일밤(현지시간) 미군 당국에 투항,마약밀매혐의에 관한 재판을 받기위해 미국으로 압송됐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TV로 생방송된 연설을 통해 노리에가장군이 파나마정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미당국에 투항했다고 밝히고 노리에가장군의 체포로 미국은 파나마내 미국인 인명 보호와 파나마 민주회복,파나마 협정수호 및 노리에가 체포등 구랍20일 감행한 대규모 군사개입의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노리에가 장군이 교황청 대사관에서 파나마시티내 하워드 공군기지로 이송된뒤 미마약단속국요원에게 체포됐다고 밝히고 그는 지난 88년 자신을 마약거래 혐의로 수배한 마이애미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노리에가 장군에게 공정한 재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미국이 그를 체포,미국에 인도한다는 사실은 마약판매혐의자가 법망을 피할 수 없다는미국의 진지한 결의를 분명히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리에가 장군은 이날 하오8시50분(한국시간 4일 상오 10시50분) 9일간의 피신끝에 흰 옷차림으로 미군의 삼엄한 포위망이 펼쳐진 교황청에서 걸어나와 대기중이던 미군 헬리콥터에 탑승,하워드 공군기지로 향했는데 그의 이같은 투항은 그의 제3국 망명설과 석방에 관한 협상설이 나도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마이애미ㆍ워싱턴 AP AFP UPI 연합】 미군의 침공작전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파나마의 실력자 노리에가장군이 미군에 투항,4일 새벽(현지시간)항공기편으로 미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로 이송됐으며 5일 상오6시(한국시간)에 마이애미의 연방지방법원에 출두해 심문을 받게될 것으로 전해졌다. 노리에가장군은 이날 새벽 2시45분(한국시간 하오 4시45분) 미군C130수송기에 태워진 채 마이애미 남방 40㎞지점에 위치한 홈스테드공군기지에 도착했으며 도착한지 6분후에 모처로 옮겨졌으며 30여분뒤 4대의 리무진이 엄중한 경비망이 쳐진 마이애미 법원구내로 진입하는 것이 목격됐다. ◎제3국 망명 차단ㆍ국민들 시위겹쳐 굴복/미군철수 늦어지면 「주권침해」비난 재발(해설) 파나마주재 바티칸대사관에 피신,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던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 마침내 미국에 투항,미군수송기편으로 미플로리다로 이송됨으로써 미국의 파나마침공작전은 일단락됐다. 노리에가가 제3국으로의 망명을 포기하고 미국에 투항키로 스스로 결정한 것은 지난 12월30일 교황청이 『노리에가는 정치 또는 외교적 망명을 요청한 신분이 아니라 범죄자로 기소된 신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선언,제3국 망명에의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데 따른 때문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리에가에겐 ▲파나마국민들의 분노속에 무한정 바티칸대사관에 머무르는 길 ▲미국 또는 파나마정부에 투항하는 길외엔 달리 선택의 방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황제로 자처해온 노리에가로선 바티칸대사관 인근에서 연일 계속되는 국민들의 시위를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결국 투항의 길밖에 없다면 사형선고를 내릴지도 모르는 파나마 새 정부보다는 사형에는 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미국을 선택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희망하는 대로 노리에가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까지는 먼저 해결돼야 할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남아있고 설사 재판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이번 미군의 파나마무력침공은 부시행정부와 엔다라 파나마정부 모두에 큰 부담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노리에가의 재판을 둘러싼 가장 큰 어려움은 이 재판이 과연 합법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미국은 노리에가가 「미국과 전세계의 청소년들에게 해독을 끼친」중요한 범죄자로서 마땅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마르코스 전필리핀대통령의 경우애서 보듯 외국지도자를 미국내에서 재판에 회부한 선례가 있어 노리에가의 재판에 아무문제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파나마헌법이 범죄자의 외국인도를 금지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미국이 약속하고 있는 것처럼 노리에가에 대한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느냐도 문제다. 한편 부시 미대통령이 CIA국장으로 재임했던70년중반 CIA의 앞잡이로 활약했던 노리에가가 정치ㆍ외교적으로 민감한 극비정보를 재판과정에서 폭로할 우려가 있어 재판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있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노리에가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면 노리에가는 최소1백10만달러의 벌금형에 최고 1백45년의 징역형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노리에가의 재판이 마약퇴치를 위한 미국의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는 것은 되겠지만 마약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은 될 수 없다는데서 미국의 파나마침공은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을 남기고 있다. 먼저 지난 21년간 파나마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파나마군부가 민간정부아래서 정치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생기는 문제도 적지않다. 파나마군부는 그동안 노리에가의 사병처럼 돼와 엔다라정부에 대한 충성도는 여전히 의문시되는 상태다. 때문에 미군이 치안유지등 모든 역할을 담당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파나마주둔 미군의 철수가 늦어지면 새정부의 주권확보문제가 비난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고 중남미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미국의 영향력에 반발하는 상당수의 중남미국들은 엔다라 정부에 대한 승인을 미군철수와 연계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 미군철수는 미국과 파나마 모두에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파나마침공에 대한 세계여론의 비난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길은 파나마에 진정한 민주정부가 뿌리를 내리고 파나마경제가 소생될 수 있도록 성의있는 지원을 아끼지않는 방법뿐일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