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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대만,극비 경협회담/일지 보도

    ◎지난 6월 북 사절단 대북 방문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의 노동당 고위간부를 포함한 경제사절단이 지난 6월 대만을 방문,비밀 경제협력회담을 가졌다고 19일 발매된 일본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주간 아시히(조일)」가 보도했다. 주간아사히(8월28일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북한과 대만은 수면하의 교류를 계속해왔으며 북한은 대만과의 경제협력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을 경우 한국과의 교섭을 유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경제사절단은 지난 6월5일 대북에 도착,8일부터 본격적인 회담을 가졌으며 북한측에서는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금강산국제집단,금강산발전공사 등의 경제인이 참석했고 대만측 참석자도 재계인사가 중심이 되었다고 이 잡지가 전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대만측에서 일상용품·가전제품 등 소비제를 수출하고 북한으로부터는 약용식물과 강철·광석등을 바터 거래하며 ▲대만기업이 북한 경공업부문에 투자한다는 등의 경제협력 문제가 논의되었다고 주간 아사히가 보도했다. 대만은 또 북한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두만강개발계획에 유엔개발계획(UNDP)을 통해 참여할 것을 표명했다고 이 잡지가 전했다.
  • 참다운 광복을 성취하는 길(사설)

    우리에게 있어 8·15해방은 왜 다시찾은 빛이며 되찾은 정신이었는가.마흔일곱돌 광복절을 맞아 다시 생각해보는 일은 참으로 필요하다.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요컨대 8·15해방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보자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다가 당연한 대답일 터이지만 그것이 틀린답은 아니더라도 오늘에 우리가 구하고자하는 정답은 아니다.일본이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남북한이 통일의 예비작업을 다지고 있으며 세계가 탈냉전·긴장완화·새질서를 구가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8·15의 의미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만일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러면 그 정답은 무엇이며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결론컨대 광복은 질곡과 인고 굴종과 타율로부터의 탈출 다시말해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의 계기였을 뿐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니었다.그리하여 이제 우리가 할일은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다시 서는 일이다.강조컨대 그것은 지난47년의 세월동안 되풀이됐던 시련과 좌절 분열과 대결,도전과 실패의 악순환을마감하고 60·70년대 이땅에 충만했던 자신감과 성취욕을 되찾아 다시 한번 굳게서는 「자기확신」과 「자기확립」을 말한다. 노태우대통령이 광복절경축사에서 지적한바 긍지와 자신감을 갖지못한 민족이 위대한 시대를 열수는 없다.「새로운 힘과 용기」로 다시 달려갈때 광복47년,건국44주년의 의미는 더욱 뚜렷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러 이제 8·15는 우리에게 다음의 몇가지 의미를 새롭게 한다.첫째 참된 광복의 정신과 의의를 되찾는 일이요,둘째 한때 전력으로 질주하여 많은 것을 성취했던 자신감을 되찾는 일이며 셋째 민족통일의 당위와 의미를 되찾는 일이다.이것들이 없고는 8·15는 언제까지나 참다운 의미의 광복이 아니며 올바른 의미의 해방일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세계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그들 군대아닌 군대의 해외파병이 이뤄지고 있고 공공연하게도 그들 왕과 각료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가 이행되고 있다.그런가운데 일본군의 정신대 강제집행을 증언하고 참회하는 수많은 「요시다」들이 방한하고 있다.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제수뇌들이 사전에 계획했다는 극비문서자료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한일간에 가로놓인 이 방대한 과거의 퇴적물들이 올바로 분석되고 극복되기전에는 광복의 참된 의미는 유보될 수 밖에 없다.그것이 바로 극일이다. 다시 한번 자신감을 되찾아 민족적 성취욕을 충족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한동안 우리를 신바람나게 했던 「바르셀로나」의 영웅들이 개선했고 젊은 과학도들이 맨손으로 일군 「우리별1호」가 지금 지구궤도를 돌고있다.우리는 말하기좋아하는 외국인들의 비아냥대로 용이 되다만 지렁이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다만 조그마한 성취로해서 빚어졌던 자만과 허세와 착각과 조급성만을 벗어버리면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올림픽과 「우리별1호」를 통해서 믿게됐다. 그러고서 이제 통일이라는 민족 공동의 광장을 일구자는 것이다.그것은 남북한의 유엔시대,남북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시대가 부여하는 엄숙한 과제이다.47년간 미완의 광복을 완성의 광복으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화해와 협력은 필수적이다.그것이 마흔일곱돌 맞는 광복절의 참다운 의미를 살리는 세번째 항목이다.
  • 일제,서울로 수도이전 계획/일지,극비문서 폭로

    ◎43년 전황 악화되자 왕실등 포함/3년 거쳐 플랜 수립… 패전으로 중단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중 전황악화와 본토공습에 대비,왕실을 포함한 수도를 서울등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던 사실이 밝혀졌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13일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극비문서가 국토청 산하단체 국토계획협회(도쿄)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이 극비문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본영 이전계획 이전에 정부에 의해 임전태세를 상정한 수도 이전 계획이 작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일본 군부는 도쿄공습으로부터 일왕을 보호하기 위해 나가노(장야)현의 나가노시로 대본영 이전계획을 추진했었으나 패전으로 중단됐다. 새로 발견된 문서는 제2차 근위내각(1940년7월∼46년7월)에서 결정된 기본국책요강에 따라 대동아공영권 실현을 위해 작성된 것이다. 문서표지 이면에는 「극비」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있으며 기획원외에 육군성·대장성등의 직원을 포함,약30여명이 40년 7월부터 3년에 걸쳐 이 계획을 작성했다. 중앙계획소안은 『대동아공영권건설의 대업을 완수하고 방위체제의 완벽을 도모하는데는 오로지 그 중핵인 황국의 강력한 추진력에 기대하지 않을수 없으며 내지·조선·대만을 포함,일본 전영토를 대상으로 종합계획을 수립한다』고 적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수도이전 작업은 1943년 일본군이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과달가날도에서 철퇴하고 일본북방의 아츠도수비대가 전멸하는등 전황이 악화되면서 검토되었다. 후보지는 지진·풍수해등 천재가 적고 용수·전력·식량등이 풍부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감안,서울등 3개 지역이 선택되었다.수도건설은 방공·화재등에 강한 도시를 목표로 했으며 이전대상은 왕실,각종 통제기관등 중요기관에 한정했다.
  • 유엔,「인종청소」 방지 구조대 급파

    ◎나토·WEU,15일 무력개입 수단 논의 【제네바 AFP 연합】 유엔은 세르비아 세력이 최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북동부 4개 마을에서 벌여온 「인종청소 작전」을 중단시키기 위해 구조대를 보내는 등 다각적인 사태재발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대변인이 12일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인종청소가 전개되고 있는 프리예도르,산스키 모스트,보산스카크루파,보산스키 페트로바치 등 4개 마을에 거주하는 약 2만8천명의 보스니아계 주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살아온 곳을 떠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인종청소」작전은 지난 7월 보산키 노비 마을에서도 자행된 적이 있으며 당시 UNHCR는 이 마을 주민 7천명을 크로아티아 지방으로 소개했었다. 【파리 AP 연합 특약】 나토와 서유럽동맹(WEU)의 군사전문가들이 구유고지역에 대한 구호물자보급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개입수단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15일 브뤼셀에서 회동한다고 소식통이 12일 밝혔다. 유엔안보리의 결의안 채택 후 열릴 이같은 회동은 미국정부의 원칙적인 동의를 받았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번 보급확보 군사개입은 미국이 나토의 일원으로 공군력을 제공하고 WEU는 지상부문을 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엔본부 AFP 로이터 연합】 유엔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구호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데 관한 결의안을 13일 채택될 것으로 보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구호물자의 안전수송을 보장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할 극비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오는 14일 긴급회의를 개최한다.
  • 구 일군,의도적으로 인육 먹었다/일 TV서 충격적 호 자료 보도

    ◎배고픔보다 독전차원서 취식/포로대상,대대적 만행 저질러/남방전선등지 살육범죄 처음 공식확인 2차대전말기 구일본군 장병들이 대대적으로 사람의 고기를 먹었음을 증명해 주는 1백건 이상의 자료들이 최근 호주의 국립문서보관소 등에서 발견됐다고 일본 TBS TV가 보도했다. 호주 멜버른대학의 다나카 도시유키(전중리행)교수(43)가 발견한 이 자료들은 적병이외엔 사람고기를 못먹도록 금지한 일본군 기밀문서의 영역본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방전선에 있던 구일본군이 극단적 기아상태에서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일부 병사의 구두증언은 있었으나 이를 확인해주는 일본측 공식문서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이 문서들은 뉴기니아주둔 일본군사령관이 각 부대 지휘관 앞으로 보낸 극비명령서(44년11월18일자)로 44년12월31일 호주육군이 전쟁터에서 압수한 것이다. 이 명령서는 일본군내에 인육획득을 위한 살인사건이 빈발하는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사람고기를 먹는 것은 인도상 최악의 범죄』라고 강조하는 한편 『인육획득을 목적으로 살인을한 자나 인육(적병제외)인줄 알면서 그것을 계속 먹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쓰고 있다. 자료의 일부사례는 다음과 같다. ◇호주육군이 작성한 자료.(번호 02762.휴고준위 SX8064) 0월0일 상오9시 일본군에 살해된 병사의 시체 회수.양팔이 어깨로부터 잘려 나가고 위,심장,간장등 내장이 모두 도려져 있었다.사람고기가 들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 일본군의 밥통(항고)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호주 카슨 대위의 증언. 0월0일 적진지 공격중 살해된 A,B,C 3명의 시체를 찾던 중 A의 두피로 보이는 시체를 발견했다.내장이 장작위에 조각조각 놓여 있었고 그곁에 불에 탄 살조각이 몇점인가 있었다.탄약주머니 속에는 간장으로 보이는 잘게 썰은 살조각이 들어 있었다.인근의 오두막집에서 뼈가 붙어 있는 불에 탄 발목과 요리된 엉덩이살,뼈를 발견했다.뼈의 크기로 봐 병사 B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파키스탄인 포로의 증언. 44년4월 연합군의 공격이 심해지면서 식량이 바닥난 일본군은 뱀이나 개구리,그외의 벌레까지도 잡아 먹었다.이때부터 일본병은 매일 포로 1명씩을 골라 잡아먹기 시작했다.나 자신이 이같은 일을 분명히 목격했다.뽑혀진 포로는 오두막 안으로 끌려가 산채로 몸의 살이 잘려나갔다.그리고 산 채로 구덩이 속으로 던져져 숨져갔다. ◇TBS TV의 결론. 지금까지 사람고기를 먹은 것은 극단적 기아속에서 극히 일부의 일본병사에 의해 저질러진 특수행위로 알려졌었으나 이번 자료의 발견으로 그렇지 않음이 확인됐다.부대단위로 포로에 대한 인육식이 행해졌고 전쟁터에서는 매우 기민하고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다나카 교수 견해. 일본군은 반드시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밀림 전쟁에서의 정신적 압박감을 발산하고 승리감을 느끼기 위해 사람고기를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 김일성에 숨겨논 애첩·딸 있다/일지보도

    ◎무용수출신 김송죽(30세) 5년전 빈서 극비 출산/모녀 최근 유럽피서여행 장면 잡혀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 주석 김일성에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애첩과 5살난 어린 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독일과 스웨덴 등의 소식통을 인용,9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피서를 위해 스웨덴을 방문했던 이들 모녀의 사진도 공개했다. 산케이신문은 『신격화된 북한의 절대 권력자인 김일성의 사생활에 관해서는 경력을 포함해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와 소문속에 싸여있다』고 전제하고 『김일성에게 새로운 처자가 있다는 사실은 북한 권력층의 최고 비밀에 속하는 것이나 그것이 이번에 외부 세계에 폭로됨으로써 김일성의 이미지에 커다란 손상을 입힌 것은 물론 김일성·정일 부자에 의한 세습 권력의 행방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들 유럽 정보 소식통은 김일성의 애인에 해당하는 여성이 전 무용수 출신인 30세의 「김송죽」이라고 밝히고 김일성의 애를 임신했던 이 여인은 북조선 당국의 각별한배려속에 지난 87년5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있는 한 병원에서 출산했으며 태어난 여아에는 「백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밝혔다. 산케이 신문은 김송죽·백연 모녀가 지난 7월20일쯤「김정수」라는 59세된 조모,3명의 경호원과 함께 스웨덴을 방문,스톡홀름의 쉐라톤호텔에 머물렀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하고 이들 일행은 체재중 예테보리등 관광지를 여행한 후 8월5일 스톡홀름에 돌아왔다가 7일 호텔을 떠나 하오 4시45분발 중국 민항912편으로 북경을 경유하여 귀국했다고 보도했다. 스톡홀름 출발전에 목격된 모녀는 건강하게 보였으며 「백연」은 눈이 크고 둥글둥글한 것이 김일성을 닮았으며 김송죽은 몸이 가는 편으로 약간 딱딱한 느낌을 주는 여성이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김일성의 자식으로서는 지금까지 전부인인 고 김정숙과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자 후계자인 김정일 서기(50),장녀인 김경희중앙위원 이외에 현 부인인 김성애 여성동맹위원장 사이에 출생한 김평일 주불가리아대사(38)가 있으나 더 이상의 상세한 것은 밝혀지지 않고있다.
  • 미,수비크기지서 철군뒤에도 비22개항만 거점이용 계획

    【도쿄=이창순특파원】 미국은 필리핀의 수비크만에서 연내 전면철수한후에도 수비크만,마닐라,세부,산보앙가등 필리핀의 주요거점 22개소의 항만시설등의 이용권을 획득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30일 마닐라발로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필리핀의 반기지,반핵운동을 추진하는 시민단체가 29일 발표한 미해군의 「극비자료」에 이같은 구상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필리핀 항만시설 이용권을 확보한다면 미국은 미군기지철수로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실질적인 군사력을 유지할수 있게 된다고 이신문은 전했다.
  • 대북교역의 새 창구로/관심 끈 김우중회장 행적

    ◎올 두차례 평양방문… “밀사역할” 김달현 북한정무원부총리겸 대외경제위원장의 서울방문 성사 이면에는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밀사역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회장은 오들어 지난 1월과 이번달초 각각 평양과 모스크바를 넘나들며 대북경협의 새로운 창구로 부상했다.그의 잇단 북방행보는 대우그룹 차원의 단순한 대북교역 확대 이상의 비중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쳐져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김회장이 관계당국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모종의 중대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1월10일부터 25일까지 10박11일간에 걸친 평양방문에서 그는 남포에 의류합작공장을 설립하는 문제를 비롯,자동차 수출등 10여건의 남북직교역및 합작투자 사업 등에 관해 북한측 고위실력자들과 접촉을 가졌다.그러나 정작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김일성북한주석과의 면담이었다.김주석과의 면담내용에 대해서는 극비에 붙여지고 있으나 이번에 성사되게된 김달현정무원부총리의 서울방문에 관한 의사타진및 노태우대통령과 김일성주석간의 남북정상회동 문제등 정치성이 짙은 사안들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소문들이 파다했었다. 김회장은 이어 지난 6월말부터 이달 4일까지 모스크바를 방문,옐친 러시아연방대통령과 면담을 가져 더욱 눈길을 모았다. 그의 옐친과의 면담에서는 시베리아가스전지대와 남북한을 연결하는 가스관 건설문제가 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모스크바방문중 같은 기간중에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김달현 북한 정무원 부총리와도 만났다고 대우그룹 관계자들이 밝히고 있다.김부총리와의 면담에서 어떤 내용들이 논의됐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김정무원부총리의 서울방문에 관한 세부사항들이 거론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회장과 김달현의 모스크바 회동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리 계획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모스크바 방문에서 이밖에도 오는 9월 방한할 예정인 옐친러시아연방대통령의 방한에서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베리아가스관 건설문제를 비롯,한·러간의 경협강화 방안들이 깊숙이 오갔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희대의 「땅사기사건」 취재기자 방담

    ◎“고위층 운운” 사기덫에 걸려든 「투기」/두조직 지능적 수법에 「제일」이 당해/정치자금 조달 부로커낀 전례없어/배후 없는데 규모 커 의혹 불러/관련자검거·「정트리오」자수로 쉽게 풀려/행방묘연한 나머지돈 가리는일만 남아 국군정보사령부부지를 둘러싼 거액사기사건이 발생한지 꼭 열흘째에 접어들었다.이번 사건은 피해액이 자그마치 4백72억7천만원이란 엄청난 액수인데다 피해자가 부동산 방면에는 통달해 있다는 보험회사측이었고 사기범들 가운데는 육사18기출신의 전합참간부와 은행대리까지 끼어있어 항간에 온갖 화제를 뿌렸다.뿐만 아니라 문제의 땅이 수의계약이 불가능한 군용지였다는데서 숱한 의혹도 불러일으켰다.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 이같은 추측들과는 달리 매우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토지전문사기범들의 단순한 사기사건으로 귀결되고 있다.그동안 일선에서 사건현장과 수사과정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사건을 다시 조명해본다. ▷참석자◁ △사회1부=최태환·조명환·임태순·손성진·윤두현·송태섭·김재순·박성원기자 △경제부=박선화·곽태헌기자 ­그동안 사건현장에서 수고들 많았습니다.이제 몇몇 범인들이 채 붙잡히지 않고 피해액의 행방도 좀더 추적해야만 하겠습니다만 그런대로 사건이 마무리 돼가는 것 같습니다.이번사건의 진행과 성격,그리고 사건이 몰고온 파장,사건의 교훈등을 한번 살펴봅시다. ­이번 사건이 처음터진 것은 지난 4일,국민은행측에서 압구정서지점 정덕현대리를 예금부정인출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발하면서 였지요.물론 이에앞서 제일생명측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성무건설회장 정건중씨를 서울지검에 고소했었지요.그러나 사건이 표면화된 것은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였어요.처음 드러나기는 정대리가 이복동생이자 부동산업자인 성무건설 정영진씨등과 짜고 제일생명 윤성식상무가 국민은행압구정서지점에 입금시킨 2백30억원을 빼내 가로챈 예금부정인출사건이었습니다. ▷사건전말◁ ­그러나 정대리의 개인적 범죄가 아니라 배후에 정씨등 토지사기단이 개입돼 정보사부지를 매도한다는 구실로 제일생명측을 사기친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갔습니다. ­일요일인 5일 윤상무가 경찰에 나와 은행예금 2백30억원말고도 어음으로 4백30억원을 정건중등 토지브로커들에게 속아 정보사부지매입대금으로 주었으며 이사건에는 홍콩으로 달아난 전 합참군사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씨가 개입돼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경찰의 수사로는 사건 해결이 어렵다고 여겨 서울지검특수1부(이명재부장검사)가 나서 전면수사를 벌이게 됐지요. ­이번 사건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됐던 부분은 아무래도 배후가 있지않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는 사건의 성격을 규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사건과정에 권력층이 개입,비호했거나 최소한 정보사부지에 관한 이전계획정보를 제공하는등 사기단에 협조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배후설이 나온 배경은 우선 사기의 금액이 상상을 뛰어넘는 거액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예비역대령출신인 군무원이 국방부장관의 고무도장까지 찍어가며 그런 엄청난 일을 꾸밀 수 있느냐하는 것이지요. 또 구속된 성무건설 회장 정씨가 유력인사들과 자주 접촉했다는 점도 배후설을 뒷받침 했습니다. ­또 정씨 일당이 제일생명측에 매매대금의 예치를 요구할 때 「정치자금」운운했다는 것도 「배후」의 의혹을 낳게했지요. 정씨등은 제일생명과 약정을 맺으면서 『정보사부지를 상업지구로 지목을 변경해 넘겨줄테니 그에 따른 정치자금을 입금시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수사결과로 볼때 이번 사건은 프로급 사기꾼일당이 저지런 전형적인 단순사기극이라는 것이 검찰의 결론입니다. 배후설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는데다 김씨 일당은 정씨일당을 속이고 정씨 일당은 또 제일생명측을 끌어들여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2개의 사기꾼 조직이 먹이사슬 형태로 먹고 먹힌 2중사기극을 연출한 것이지요. ­금융계와 재계의 시각은 당초부터 이번 사건이 단순 사기사건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자금을 조달할때 브로커들을 통했던 전례가 없었다는 사실과 이런류의 사기단들이 업계에는 항상 있어왔다는 것이지요.이번 사건도 거액의 사기가 성공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었습니다. ­과거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날때마다 온갖 루머가 난무했던 증권시장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너무 루머가 없어 오히려 이상했습니다.증권사의 정보관계자들은 『장영자·이철희사건이나 영동개발사건을 비롯,과거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증시소문들이 한몫을 했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너무 조용했다는 것입니다. ○증시에 루머 안돌아 증권사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의 경우 루머가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언론의 보도가 활발했고 검찰의 수사상황도 상세히 발표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풀리지않는 의문점이 적지않은게 사실아닙니까.우선 제일생명측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기에 걸려들었냐 하는 의문이 있지요.국내5대 보험회사가 전후사정을 그렇게 확인도 안해보고 거금을 지불한데는 어디선가 매입을 해도 좋다는 언질을 받았지 않았겠느냐하는 추측이 가능하겠지요.­검찰의 수사결과 결론은 이렇습니다.제일생명측이 우선 은행예금을 믿었다는 것입니다.『내통장에 내도장을 내가 갖고 있는데 이 돈이 어디로 가겠느냐』하는 믿음이었지요.은행구좌에 계약금을 예치시켜두고 있는한 일이 잘못될때는 도로 찾아오면 될 것 아니야 했다는 것이지요.정대리라는 사기단의 일원이 없었더라면 이 믿음은 충분한 안전장치였을 것은 분명합니다. ▷수사결과◁ ­사기단의 일원이 된 국민은행 정대리가 자리에 앉아서 거액을 이 은행 저 은행으로 옮길수 있었던 것은 금융거래가 모두 온라인화 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온라인이 돼 있지 않았다면 하루에 수십억원의 돈을 한차례 옮기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이 때문에 자금을 추적하는 조사팀도 애를 먹었습니다. ○재계도 사기극 의견 ­제일생명측이 사기단에 손쉽게 넘어간 이유의 또 하나는 윤상무와 수배된 박삼화의 관계로 설명되기도 하지요.윤상무가 부동산 브러커인 박에게 그전에 두차례나 도움을 받아 신뢰가 두터웠다는 것입니다.잘못 살뻔한 땅에 문제가 있음을 미리알려준 어찌 보면 은인이 소개한 사람들이니 만큼 쉽게 믿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상당히 강팀으로 알려져있던 제일생명 부동산팀의 실력이 이번 사건으로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생명보험회사는 가입자들이 맡긴 돈의 안전한 운용을 위해 총자산의 15%를 부동산에 투자할수 있게 돼 있습니다.이 때문에 생보사인데다 10여명의 부동산 전문팀까지 두고 있는 제일생명이 어떻게 사기단에 넘어갈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일반시민들의 가장 강한 의혹이었습니다.그러나 검찰수사결과 사기범 정씨일당의 손에 완전히 놀아나고 있었음이 밝혀짐에 따라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속담이 다시 한번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또 하나의 의혹은 제일생명 윤상무가 「비자금」의 조성을 추진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비자금은 본래 기업체의 고위층만이 아는 은밀한 자금이므로 제일생명 하영기사장이나 모기업인 조양상선 박남규회장이 개입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그 용도가 정치자금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나온 것이지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검찰에서는 윤상무가 회사고위층에 어떤 형태로든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제일생명 측으로서는 『이번 사건에 회사측은 개입된 바 없으며 윤상무 개인의 실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관련사실을 부인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있지요.왜냐하면 앞으로 은행예금을 되찾는 등 회사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같은 자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하사장은 이번 사건의 가장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토지매입사실과 2백30억원의 인출시점에 대해 거짓말을 했지만 기업의 오너와 실무자간에 극비로 거래가 이뤄지는 국내기업 풍토속에 한은총재까지 지낸 사람이 사장으로 앉아 있었던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은총재까지 했으면 그이상 바랄 것이 없어야 할텐데 보험사 사장으로 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들입니다. 금융계에선 『하사장이 차라리 책이라도 쓰며 여생을 조용히보냈더라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텐데…』라고 아까워 했습니다. ◎「땅」에 약한 요즘 세태에 경종/의혹 안남는 완벽수사만이 파장 최소화 ▷파장·교훈◁ ­이번 사건을 총지휘한 서울지검특수1부 이명재부장검사는 「이철희·장영자사건」등 굵직한 경제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한 「경제수사통」으로 일찍부터 명성을 날린 인물이지요.하지만 이번에는 운도 크게 따른 것 같습니다. 어떤 사건이든 용의자나 피의자의 신병확보가 수사해결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검찰수사팀이 구성된 지난 6일 홍콩으로 도주했던 김영호씨가 중국에서 붙잡혀 압송됐고 7일밤과 8일 새벽 이번사건의 주역인 정건중씨등 이른바 「정트리오」가 속속 자수해 왔기 때문이죠. ­연일 30도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일주일이 넘게 프로사기꾼들과 두뇌싸움을 하느라 검찰관계자들은 지칠대로 지친 것 같습니다만 예상외로 빨리 사건을 풀어나가서 그런지 매우 고무된 분위기입니다. 당초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제일생명 윤성식상무도 사기꾼일당과 뒷거래를 한 사실을 밝혀냈고 제일생명측과 국민은행사이에 공방을 벌였던 2백30억원의 인출경위도 국민은행정대리가 동생 영진씨와 짜고 불법인출한 것으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사건을 둘러싼 의혹의 상당부분을 해명하게 된 것이지요. ­어쨌든 「정트리오」와 김영호씨등 이번 사기극의 주역들이 모두 구속되고 사건의 성격도 단순사기극인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만큼 정씨일당이 챙긴 돈가운데 행방이 확실하지 않은 나머지돈의 흐름을 가리는 일만 남은 셈이지요. 검찰로서도 돈의 행방을 끝까지 추적할수 있느냐 여부가 배후설의 규명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고 수사의 초점을 돈의 추적에 두고 있습니다. 또 피해액 4백70여억원의 거의 대부분의 행방에 대한 단서는 이미 확보하고 있지요.범인들의 진술등을 토대로 역추적해나가면 처음 돈이 빠져나간 경로와 연결시킬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건을 둘러싼 비화도 많았습니다.이번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줄 정도로 확대되자 주범으로 지명수배된 범인들의 가족은 잇따라 찾아오는 수사관과 취재기자들을 피해 아예 집을 비워버리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으로보이는 성무건설 직원 박삼화씨(39)가 살던 누나집은 며칠째 출입문 손잡이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채 굳게 잠겨있었으며 세들어 사는 사람들도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더군요. 관할 동사무소에서 박씨의 인적사항을 알아본 결과 그동안 여러차례 주소를 옮겨다녀 행적을 찾기 어려웠으며 마지막 주민등록지인 누나집에도 지난 89년3월부터 동거인으로 기록돼 있을뿐 거의 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보아 깊숙이 잠적해 버린것 같습니다. 또 남산 서울타워에 「명화건설」이라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있던 것으로 확인된 김인수씨(40)의 인천 집에도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워버려 기자들이 발길을 돌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 엄청난 규모와 수법으로 국민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었습니다. 앞으로 사기사건이 대폭 줄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누구나 고위층을 내세우는 토지브로커는 일단 의심하고 확인해 봐야할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 모두에게 심어줬습니다. ­또 한편에서 이번 사건은 기업의 그릇된 윤리의식에다시한번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땅투기라면 어떤 돈을 대서라도 우선 발을 들여놓고 보는 사회풍조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척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6공화국 최대의 사기사건이라는 이번 사건은 정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권 말기에 엄청난 사건을 만난 현정부는 이번 사건의 자초지종을 명백히 밝혀 한점의 의문점이 없도록 해야한다는 짐을 지게 됐고 여야정치권 역시 이번 사건을 둘러싼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성숙된 역량을 보여야 할 때라 봅니다.또 금융계에도 「정보사 부지사건」은 바람을 몰고왔지요. ­금융가가 경색되고 자금의 원활한 유통에 장애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은행감독원과 보험감독원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격으로 특별검사다 뭐다 수고도 많았지만 평소에 단속을 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수사를 맡고 있는 검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혹의 찌꺼기가 남지않는 완벽한 수사만이 사건이 끝난뒤에도 말썽이 계속될 여지를 없애주는 길이라고 봅니다.
  • 일,「정신대」관련 양면작전

    ◎“「기금」 창설검토” 비치며 “강제동원 근거 없다”/일군,종전후 상부지시로 관련문서 폐기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한국정부 발표와 관련,생존하고 있는 고령의 전종군위안부 생활지원을 위한 기금을 창설,한국정부가 요청한 「적절한 조치」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도쿄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일본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의료등의 지원을 위해 설립한 기금과 유사한 형태의 기금창설을 구상하고 있으며 다만 지원대상을 전종군위안부 개인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전체를 대상으로 기념사업적인 성격으로 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검토과제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도쿄 교도 연합】 가토 고이치(가등굉일)일본 관방장관은 3일 자신들의 수치심에도 불구,정신대의 참상을 세상에 공개한 한국인 피해 여성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했다. 가토 장관은 기자들에게 『이들 여성이 스스로 신원을 밝히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그들이 겪은 고통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일본 정부도 6일 방위청 등 6개 부처가 공동 작성한 자체 보고서를 공표할 예정이다.이와 관련,일본 관변 소식통들은 보고서의 토대가 된 1백여종의 각종 문서들이 한국 여성 등이 정신대에 강제 동원됐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 연합】 2차대전후 일본군은 상부의 지령에의해 종군위안부와 관련된 서류를 처분한 사실이 거듭 확인됐다고 교도통신이 3일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은 조총련계 재일동포 금병동씨(64)가 각지에서 72점의 종군위안부 기록을 수집,이날 펴낸 「전장일지에서 본 종군위안부 극비자료집」에서 드러났다. 이 자료집에 의하면 「제48사단 전사 자료 병 종전장황」(46년7월)에는 50명의 한인 종군위안부가 있었던 인도네시아 숨바와도에서의 종전처리 상황을 설명,그 중에 「전사 자료는 정전시 그 대부분을 상사의 지령에 의해 처분했거나 나머지도 호주군에 제출함으로써 정확한 자료가 거의 없다」라는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 제출서류만 2.5t트럭 6대 분량/오늘「제2이동통신」허가신청 접수

    ◎방대한 문건때문에 입장순서 추첨도/새달 1차심사 거쳐 8월 사업자 선정 제2이동전화 사업자신청일인 26일.선경·포철·쌍용·동양·동부·코오롱등 6개사가 4백40여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지난1년6개월여동안 치열한 각축속에서 극비리 작성해온 사업전략및 계획관련서류 일체를 체신부에 제출하는 날이다. 사업의 무게뿐 아니라 서류자체의 규모와 양으로 인해 신청접수를 받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체신부청사에 국내외 기업과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또 정작 서류를 만들어온 관련기업 관계자들사이에선 긴장과 안도의 한숨이 엇갈리고 있다. 평균2.5t이나 되는 관련서류를 별탈없이 접수시켜야 된다는 부담감과 이제부터 하나씩 발표될 경쟁사의 전략에 마음졸여야 될 처지인 동시에 그 치열한 정보전속에서도 자사의 전략과 비밀을 지켜왔다는 안도감이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신청접수는 26일 단 하루.체신부청사 15층 대회의실에 마련된 임시접수처에서 체신부공무원15명이 3개창구로 나뉘어 하오1시30분부터 접수를 받는다.체신부는 25일 교통혼잡을 피하고 접수편의를 위해 6개 컨소시엄관계자들을 불러 접수장 「입장」순서를 추첨으로 정했다.이에따라 동양그룹(동양이동통신)·포철(신세기이동통신)·코오롱(제2이동통신)등 3개사가 순서대로 하오1시부터 청사에 입장·접수하도록 돼 있고 쌍용(미래이동통신)·동부(동부이동통신)·선경(대한테레콤)등은 하오1시30분부터 역시 순서대로 접수하게 된다. 제출서류는 기지국건설도면에서부터 영업계획서·특정지역통신망건설계획서·기업의 재무상태관련서류등 평균10만여장 정도.모두 비밀을 유지하기위해 특수포장된 캐비닛등에 넣어 운반하기 때문에 한 컨소시엄당 평균2.5t트럭 1대분량이상이 된다.코오롱의 경우 제출서류분량은 모두16만장.이 서류를 8개의 캐비닛에 넣어 5t트럭으로 실어나를 계획이며 트럭앞뒤로 청원경찰과 직원들이 탑승한 2대의 회사차량이 경호하게 된다.또 사고를 대비,예비수송차와 소화기등도 뒤따를 예정이다.포철역시 10만여장의 제출서류를 24개의 철제캐비닛에 나누어 2.5t트럭으로 운반할 계획이다. 체신부는 이들 서류를 외부와 격리된 모처로 옮겨 오는 7월말까지 1차심사를 통해 2∼3개 기업을 선정한뒤 오는 8월말까지 최종사업자 1개 컨소시엄을 선정·발표할 예정이다.
  • 6·25를 다시 생각해 본다(사설)

    무기를 들고서는 절대로 평화를 얘기하지 못한다.무기로써는 전쟁만을 얘기할수 있을 뿐이다.42년전 6·25 동족전쟁의 배경이 그러했는데 전쟁책임자는 아직 살아있으면서 여전히 무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6·25」는 명백하게도 김일성이 지령한 「반타격 전투명령」에 의한 기습공격의 남침전쟁이었다.오늘에 와서 그것은 확실하게 검증된 움직일수 없는 과거의 사실이었으며 그 침략전쟁의 비극적 교훈은 오늘도 생생히 살아있다.즉 동족전쟁을 일으켜 수없이 귀중한 인명을 희생시켰고 국토와 겨레의 재산을 파괴한 전쟁책임자와는 그의 사과와 반성과 자성이 전제되지않고는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사실이 교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반타격 전투명령은 어떤 것이었는가.그에 따르면 「해방되지 않은 남반부」를 무력으로 적화통일하려 했으되 남측에서 선제북침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반격하고 타격해서 통일을 성취한다는 것이었다.이제 이 전쟁범죄들을 공개적으로 뒷받침하고 검증하는 공식 비공식의 극비문서들이 지금 러시아로 부터 산더미처럼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스탈린으로부터 남침허가를 받는 김일성의 모습과 적화통일을 목전에 둔듯이 작전명령서를 내리고 작전회의를 주재하는 그와 그 하수인들의 모습이 천하에 공개되고 있다.전쟁수행을 잘못해 동족들을 덜 죽인다고 해서 책임추궁을 받은 하수인들 가운데 대부분이 독재 철권을 피해 러시아로 망명해 살다가 이제 죽기전에 진상을 털어놓고 전쟁범죄자를 고발하고 있다.모택동이 스탈린에 보낸 지원서한이 공개됐고 소련군의 참전·항공지원·대북한군사훈련지원 장황등 당시 동족살상을 전후한 전쟁범죄의 증거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작업을 지원해야 한다.더 나아가 오는 9월께 방한하기로 돼있는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가능하다면 이 북한의 전쟁범죄 증거들을 공식화해야 한다.83년의 KAL기 격추진상과 함께 42년전 한국전쟁의 발발진상을 완전무결하게 밝혀야할 책임을 오늘의 러시아는 지고 있는 것이다. 42년전 동족전쟁의 당사자들이었던 남북한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다.기본합의서로서 평화통일의 길을 다지고 비핵화선언으로서 전쟁을 하지말고 화해하자고 해서 그것을 공식문서로써 약속한바 있다.그런데 지금 그 정신과 내용들이 무엇하나 뭉뚱그려지지 않고 있다.이 모두가 아직도 무기를 버리지 못하고 전쟁을 생각하며 대화하고 교류하자면서 무장침투를 서슴지않는 42년전 전쟁범죄자가 살아있는 탓이다.전쟁을 사과하지않고 그 목숨을 걸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제와서 북쪽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핵포기 압력과 이산가족방문사업을 연계하겠다고 나섰다.또 엉뚱하게도 을사·정미조약의 불법성을 공동대응하자고도 한다.과거 한일관계 조약들의 불법 부당함이야 세상이 다 아는 마당에 북한이 새삼 이를 들고 나서는 저의를 우리는 불을 보듯 드려다 보고 있다.6·25날 아침에 동포들 대하기 낯뜨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듭 지적하고자 한다.6·25에 관한한 이제 해방전쟁이니 북침이니 하는 공허한 논의는 그만 그쳐야 한다.지금 곧 무기를 버리고 핵을 포기하며 전쟁범죄를 자백하고 사과해야한다.그토대와 전제위에서 이제 모든 대화와 교류를 민주지상의 과업으로 전개해 나가자는 것이다.
  • 6·25남침… 새 증언·새 진상

    ◎구소 국방부 군사연구소 코로트코프박사등 증언/대남 「선제타격작전」 소군고문단장이 수립/“북 「강건위」부실”… 스미르노프가 작성/북한군,49년초부터 “공격훈련 위주로”소군사 고문단,한때 직지사에 주둔/스탈린,극동군 50만 국경배치 추진… 주은래와 회담뒤 철수 김일성이 무모한 한반도공산화전략실현을 목적으로 저지른 「반민족·반평화적 침략전쟁」인 6·25동란에 대한 증언과 사료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이 나라 4천만 겨레에게 참담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6·25.그 6·25가 북한에 의한 남침이었음을 밝혀주는 구소련군 고위장성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중심으로 당시 「전쟁주체」였던 김일성의 흉계와 북한선제공격의 진상을 밝힌다. 오는 25일로 6·25동란 발발 42주년을 맞는다.「민족상잔의 비극」 6·25가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목적으로 김일성이 주도한 반민족,반평화적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은 부동의 정설.특히 이같은 시각은 구소련 붕괴후 지금까지 극비문서로 분류되어 대외공개가 금지됐던 관련자료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더욱 분명한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최근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군사보좌관으로 구소련 국방부의 군사연구소장을 역임한 드미트리 볼코고노프대장과 또 같은 군사연구소의 책임연구원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77)는 6·25가 김일성의 적극적인 남침주장과 이에 동조한 스탈린의 지원으로 일어났다면서 그 근거로 국방부의 비밀문서들을 제시했다. 볼코고노프에 따르면 김일성은 50년 2월4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를 통해 스탈린에게 보낸 암호전문에서 『남한해방을 위한 3개사단 증강용 탄약과 무기등 군수물자공급을 요청』했다고 한다.이에 대해 스탈린은 스티코프를 통해 2월9일 『아무런 위험성이 없고 성공이 전면적으로 보장되는 조건에서 귀하의 남침제의에 동의할 수 있다』면서 북한이 요청한 군수물자 공급지시가 이미 내려졌음을 통보했다는 것. ○스탈린,전쟁 승인 볼코고노프는 스탈린의 이같은 회답은 전쟁개시를 사실상 승인한 것이며 이에따라 김일성은 남침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트코프의 증언 역시 볼코고노프와맥을 같이하고 있다.『한국전쟁이 어느 편에 의해 발발됐는가는 분명하다.모스크바와 평양이 「해방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다만 시기에 관해서는 김일성이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 요컨대 이같은 사실과 주장은 6·25동란이 일부의 견해처럼 남한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및 중공의 지원하에 저지른 남침전쟁이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그러면 과거 소련은 얼마나 깊이 한국전에 개입했을까?이와 관련,경희대학교의 나종일교수는 지난 20일 「현 상황에서 한국전쟁의 재조명」이란 주제하에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한국전에서의 소련의 역할 규명에 나서 관심을 끌었다. ○소련,광범위 개입 이 세미나에서 「소련과 한국전쟁」이란 주제논문을 발표한 나종일교수는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측에서 새롭게 공개된 자료들을 인용,한국전에서의 소련의 개입정도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했다고 주장했다. 나교수는 1950년11월부터 1953년 휴전때까지 소련은 연인원 6만∼7만명의 공군을 참전시켰으며 조종사 외에 레이다,통신,방공,방역 등의 병과에서도 파병을 했다고 밝혔다. 개전 초기 1개 항공사단으로 작전에 나섰던 소련의 항공부대는 중공군의 요구로 확충되기 시작,50년 11월부터는 3개 항공사단,1개 고사포사단,1개 독립연대로 편성된 제64독립항공군단으로 증강됐다고 한다.또한 같은 세미나에 참석했던 러시아의 이고르 셀레바노프장군(78)은 자신이 51년 스탈린의 특명으로 북한에 급파돼 유엔군의 세균살포 여부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고 밝혀 상당수의 의무관련 요원들도 한국전에 참가했었음을 분명히 했다. ○세균전 “사실무근” 그러나 지난 50년4월부터 52년말까지 소련군준장으로 북한 인민군의무감실 수석고문으로 근무했던 셀레바노프장군은 전문요원들의 조사결과 유엔군이 세균을 살포했다고 한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증언,한국전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교수(미시카고대)의 세균탄사용 주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편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도 같은 날 경희대 주최 세미나에참석,「한국전쟁에 관한 새로운 시각」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50년9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스탈린의 지시로 소극동군 50만명이 한국전 투입에 대비,북한­소련국경에 배치됐으나 며칠뒤 스탈린이 다시 내린 명령에 따라 철수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코로트코프박사는 『당시 국경으로부터의 소극동군 철수는 휴가중이던 스탈린과 중공의 모택동이 급파한 주은래의 논의결과에 따른 것』이라면서 『스타린은 당시 미국과 전쟁을 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극동군을 한국전에 투입,미국과 전쟁하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코로트코프박사는 『한국전쟁은 스탈린의 주도하에 김일성이 대리전을 치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일성이 대리전” 특히 나교수는 6·25와 관련,「선제타격작전계획」이라는 남침계획이 북한에 와있던 소련군사고문단에 의해 작성됐음이 이 계획의 번역작업에 참여했던 주영복씨(인민군 2군단 공병부부장)등 전인민군 간부들의 증언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들에 의하면 당초「선제타격작전계획」은 김일성과 스탈린간에 남침공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총참모장 강건이 작성했다고 한다.그러나 이를 검토한 소련군고문관들이 그 내용의 부실함을 지적,초대 군사고문단장인 스미르노프소장이 직접 작성했으며 이를 소련출신 인민군 간부들이 번역했다는 것이다. 「선제타격작전계획」이란 38선 전 전선을 따라 탱크를 배치,일거에 집중화력을 퍼붓는다는데서 붙은 이름. 소련군사고문들이 「선제타격작전계획」을 언제 작성했는가 하는 시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 않으나 소련공식문서에 따를 경우 대략 1950년 2∼3월초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1950년5월5일 북한주재 최고군사고문 바실리예프 중장은 그해 6월∼7월 사이에 고문관들이 수행할 세부활동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돼있다.이 계획에는 ▲38선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실시할 군사훈련에 관해 인민군총참모장에게 내릴 훈련지침과 ▲적 해안에 대한 상륙작전준비계획과 적해안 점령계획 등이 들어 있는데 이는 근대적 군부대가 대규모의침략공격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활동지침을 총망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리 키르신도 소련과 북한이 남침계획을 수립한 시점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1950년6월초보다 조금 앞선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호구축에 주력 그는 그 근거로 다음 몇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북한군이 1949년초부터 공격위주의 훈련을 한 점이다.키르신은 1949년1월2일∼16일 사이에 있었던 총참모부 훈련은 주로 참호구축에 관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둘째는 소련군의 대북한 무기원조가 1949년 들어 크게 증가한 것이며 셋째는 공병들의 훈련이 공격 위주로 실시된 사실이다. 소련 국방성 중앙문서부의 자료에 따르면 1948년 인민군 창설 당시 북한에 파견된 소련군사고문은 모두 4백70명이었다고 한다.이 숫자는 1948년 2백17명,1949년에는 1백88명,1950년엔 1백48명으로 다시 축소됐다. ○“남 전쟁능력 미흡” 그러나 나교수는 1950년4월 이후에도 소련군사고문들이 계속 북한으로 파견됐다고 주장했다. 증언들에 따르면 소련군사고문들은 전선에서 전황을보고받았을 뿐 아니라 전선 사령부를 쫓아서 남하,경북 김천소재 직지사에 일시 주둔하기도 했으며 전쟁확대에 따라 후방의 고위사령부로 집결하는 식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들 소련군사고문들은 50년9월28일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자 일절 예하 전선에 출동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이같은 조치는 소련군이 포로가 될 경우 야기될 미·소간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의 키르신이 찾아낸 문서들 가운데는 국군과 미군고문관에 대한 소련정보기관의 평가도 들어있는데 이것은 스탈린이 한국에서 전쟁을 시작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의 하나가 남한의 전쟁수행능력이 매우 미약하다는 정보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1948년 소련정보에 의하면 국군은 훈련부족과 탱크·포병·조종사 등 전문 요원의 부족,전투경험의 부재,저하된 사기로 근대 군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교수는 현직 소련외무성 관리 아닌(혹은 발레노프·둘다 가명)의 말을 인용,스탈린이 오히려 한국전에 더 열광적이었다고 주장했다.아닌에 의하면 스탈린은 중국에서의 내란의 진전과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 국가군 건설, 소련경제의 호전에 따라 한반도로 관심을 돌렸다는 것. ○“스탈린이 더 열성” 이같은 아닌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일반론, 즉 한국전을 시작하는데 있어 김일성이 열성적이었으며 스탈린은 마지못해 미군개입이나 빠른 성공여부에 관헤 여러차례 다짐을 받고 승인했다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1950년초 김일성이 스탈린을 만나고 귀국한 직후 보병 3개사단,1개 항공사단,1개 탱크여단이 즉각 증강될 수 있었던 것은 스탈린이 그 이전에 한반도를 적화통일시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음을 방증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후 42년이 지난 지금까지 6·25와 관련한 소련정부의 공식문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동시에 1백만명에 달하는 병력이 직·간접으로 한국전과 관련을 맺었음에도 불구,소련정부는 지금까지 참전사실 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다만 소련군 기관지 「적성」이 지난 89년 소련공군의 한국전 참전사실을 보도한 바 있지만 공식발표는 아니었다.따라서 김일성의 전쟁계획 승인이유와 한국전 참전동기 역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의의 전쟁」 강변 북한은 아직도 6·25를 「정의의 전쟁」,「민족해방전쟁」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남침전쟁 도발 42년이 지난 오늘에도 북한은 6·25를 대미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호도,이를 통해 김일성독재정권의 영구유지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6·25동란을 일으켰고 그 연장선상에서 무력에 의한 혁명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그 북한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다시 이 강토를 핵공포로 몰아넣고 있음을 볼 때 「남북합의서」의 발효에도 불구,우리의 대북 경계심을 풀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 KAL사건 진상파악 나서야(사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워싱턴방문중 언급한 KAL007기 격추사건 진상규명 약속은 이번 미소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획기적인 핵 추가감축 이상의 큰 의미로 우리에게 와닿는다.지난 83년9월1일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공군기에 의해 자행된 KAL기격추사건은 그 진상이 아직도 베일에 싸인채 우리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다.소련은 왜 비무장 민항기를 격추했으며 탑승객 2백69명 전원을 몰사시킨 이 반문명적인 격추명령은 누가 내린 것인지.KAL기의 블랙박스는 과연 회수된것인지.또한,믿어지지는 않지만 일부의 주장처럼 생존자도 있는 것인지.이런 의문들이 규명되고 진실을 바탕으로 이 사건이 정리되지 않는한 한·러시아 관계의 진정한 진전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옐친대통령은 KAL기 격추사건의 전모를 밝힐 극비문서를 추적중이며 발견될 경우 즉각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각종 사건에 얽힌 소련의 어두운 과거를 반추하는 가운데 『우리는 외국 사람들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서 러시아의 새로운 의지를 거듭천명했다. 2년전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소련비밀경찰이 1940년 카틴 숲에서 약 1만5천명의 폴란드 장교를 학살한 것을 입증하는 KGB 문서 2상자를 폴란드 정부에 넘겨주었다.이전까지 소련은 나치군이 카틴 숲 학살사건의 장본인이었다고 주장했었다.소련이 거짓말을 해온 부도덕한 과거를 자인하면서 이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기란 결코 쉬운게 아니었다.그러나 국가관계란 진실을 통해서만 진정한 쇄신과 이해의 길을 찾을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그렇게 했다. 우리는 올가을 서울을 방문하는 옐친대통령으로부터 KAL기 격추사건의 진상이 담긴 문서상자를 넘겨 받을수 있기를 바란다.그리고 새로 규명된 진실에 기초한 모스크바의 정중한 사과도 기대해본다. 옐친대통령이 이번에 언급한 극비문서란 작년 8월 쿠데타를 좌절시킨후 장악한 KGB와 공산당중앙위 산하 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던 서류들이다.이 문서들은 소련공산당 통치사 74년이 남긴 역사의 많은 의문을 풀어줄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난2월35억프랑의 원조를 제공하고 1837∼1915년까지 80년간의 러시아·프랑스 관계 비밀자료를 러시아로부터 넘겨 받았다.체코도 체코공산화과정및 68년 체코민주화 탄압과 관련한 소련측 비밀자료의 양도를 약속받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각국 공산당들은 이 문서보관소에서 공산당관련 각종 자료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대량 전사해 갔다.일본은 수십명을 동원해 일본관련 문건을 바쁘게 찾고 있다고 한다.우리도 서둘러 모스크바의 문서고로 달려가 한국관련자료의 탐색과 수집작업을 벌여야 한다. 소련은 KAL기사건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의 광복운동,적군과 김일성,스탈린과 6·25등 우리 현대사에 많은 여백을 남겨 놓았다.이 여백을 메우기 위해선 정부와 학계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관민합동자료수집단을 구성,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KAL기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피해당사자인 우리보다도 미·일의 전문가나 민간단체들이 더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던 일을 되돌아볼때 우리의 각성과 주도적인 자세가 요청되는 때라고 생각된다.
  • 미·러,북한에 핵상호사찰 촉구/부시­옐친 공동성명

    ◎“IAEA협정·한반도비핵화 준수돼야”/KAL기피격 진상공개 약속/옐친/“사건전모 밝힐 극비문서 추적중” 【워싱턴=이경형특파원】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17일 정상회담을 끝내고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영변핵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과 함께 남북한이 합의한 상호사찰도 동시에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공개적으로 북한에 남북한상호사찰을 수락하도록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려는 국제적 압력강화로 풀이된다. 그러나 양국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영변에 건설중인 핵재처리 시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핵비확산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협정은 물론 신뢰할 수 있고 효과적인 상호사찰등 핵비확산조약과 남북한 합의상의 의무를 북한이 완전히 준수해야만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해결할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은 핵무기확산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지원하며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남북협정을 환영한다고 말하고 특히 이 협정이 한반도의 화해·안정·안보·지역평화 강화에 근본적으로 기여한다고 지적하면서 협정의 완전한 실행을 촉구했다. 한편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이날 대한항공(KAL)여객기 피격사건의 전모를 밝힐 극비 문서를 추적중이며 발견될 경우 즉각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KAL기 사건진상에 관한 첫 단서가 지난해 8월20일 쿠데타 와중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입수됐다면서 『당시 우연히 관련문서 일부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옐친대통령은 이날 공산주의는 사멸했으며 공산주의가 러시아땅에서 다시 소생하는 것을 허용치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옐친대통령은 이날 미상하양원 합동회의 연설을 통해 『세계는 다툼과 증오,잔학한 행위를 만연시켰던 공산주의의 우상이 무너진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면서 『우리땅에서 공산주의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핵관련 공동성명 러시아와 미국은 핵무기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지지하면서 한반도의 핵확산금지를 강화하는데 있어 긍정적인 변화가 있음을 주목한다.양측은 91년 12월31일의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한 선언을 성원하며 이 지역 평화와 안보,그리고 한반도의 화해와 안정에 필수적으로 기여하게 될 이 합의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한다. 양측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와 맺은 안전협정을 비준한 것을 환영하며 북한이 핵시설의 적절한 안전을 위해 이 기구와 더욱 협력할 것을 요청한다.북한은 믿을수 있고 효과적인 상호사찰과 함께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협정을 포함,핵확산금지조약과 비핵화 공동선언이 요구하는 의무를 완전히 준수함으로써 한반도 핵문제에 관한 국제적 우려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 외언내언

    「북극곰」이라든가 「크렘린」은 구소련을 상징하는 별명이었다.비밀의 장막에 가린 미련하고 음흉한 괴물을 연상시키는 대명사이기도 했다.비밀이 많고 남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욕심쟁이를 두고 크렘린같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무자비한 공산정권의 비밀공포통치가 만들어낸 구소련상이다.◆고르바초프의 민주화개방개혁후 그런별명의 시각에도 큰변화가 있었다.소련붕괴와 민주러시아탄생 그리고 옐친의 부상등은 그런 변화를 가속시키기도 했다.옐친의 이번 방미도 아직 남아있는 러시아의 크렘린이미지를 씻는데 한몫을 하고있는 것같다.미국의 도청을 우려해 고르바초프도 거부했던 미국영빈관에 러시아지도자론 처음으로 투숙하는등 적극적인 개방을 실천하고 있는것.◆특히 주목되는것은 연이은 비밀의 장막제거 발언들.월남전때 잡힌 미군포로들중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된 자들도 있으며 그들중 일부는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는것.구소련의 역대지도자들은 거짓말을 해왔다고 밝히기도.역시 크렘린이었던 모양이다.◆한 수행보좌관은 40년동안이나 억류된 생활의 미군포로가 한명 있다는 정보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니 그는 한국전 당시 북한에 잡힌 포로가 아닌가 궁금해지기도 한다.월남전의 한국군실종자가운데 생존자가있었다면 그들도 소련이나 북한으로 이송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으로도 주목된다.시베리아나 아오지탄광에 있다면 이 무슨 비극인가.◆83년 사할린상공 KAL(대한항공)여객기 격추사건관련 KGB(국가보안위)극비자료도 전부 공개해 모든것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구소련의 회수가 거의 확인된 블랙박스도 공개하겠다는 말로 들린다.오는 9월의 옐친방한이 기다려진다.한국관련 비밀의 장막도 깨끗이 걷어주었으면 한다.우리 외무당국의 성의있는 노력도 있어야 할것이다.
  • 6·25관련 구소 극비문건 공개/러시아 군사연 코로트코프박사

    ◎「남침 D­데이」 김일성이 선택했다/“인민군 서울 진격” 소대사 본국 급전/미군 인천상륙하자 김일성 “나는 실패했다” 당황/스탈린 수습책임 중국에 떠넘기며 김에 등돌려 다음은 러시아 국방부직속 군사연구소 책임연구원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가 비밀문건을 중심으로 밝혀낸 한국전쟁과 북한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집권과정등에 관한 내용의 요약이다. ▷한국전쟁 관련◁ 한국전쟁이 어느 편에 의해 발발됐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모스크바와 평양이 「해방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다만 시기에 관해서는 김일성이 6월25일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당시 평양주재 대사 스티코프가 개전 당일 스탈린에게 보낸 긴급 전문에는『조선인민군이 강을 습격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서울로 진격하고 있다.평양은 아주 조용한 분위기이며 사람들은 누구도 전쟁개시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씌어 있다. ○평양시민도 몰라 또 국방부 문서보관소에 있는 「작전계획 초안」에는 『6월25일,○○탱크연대는 ○○도시로 향한다.○○보병사단은 ○○방향으로 진출한다』는 식으로 연대급 이상 부대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으며 이밖에 「서울점령 초안」도 포함돼 있다. 전쟁이 초기 승세에서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김일성은 크게 당황했다.당시 스티코프가 스탈린에 보낸 전문에는 『김일성이 쇼크를 받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그의 군대지휘와 국가지도는 엉망이 되고 있다.김은 지하사령부에서 본인에게 「나는 실패했다.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나는 또다시 빨치산투쟁을 하는 것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같다.(미군의 진격이 너무 빨라서)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에 스탈린에게 부탁해 나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돼있다. ○“김일성 무능” 불만 스탈린은 10월 전쟁이 실패했음을 느끼자 수습책임을 중국에 떠넘기기 시작함과 동시에 초기에는 매우 빈번히 김과 전문을 주고 받았으나 이때부터는 김에게 아무런 답신도 보내주지 않음으로써 실망감을 표시했다. 당시 스탈린측근으로 총참모부 작전부장이었던 스테멘코 장군은 후일 본인과의 인터뷰에서 스탈린이 『김은 아주 무능한 장군이다.그가 어려운 시기에 처해 의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대체인물이 없으니 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또한 본인이 극동군총사령관 말리노프스키원수 휘하에서 한국전 정보담당 장교로 재직시 그는 김일성을 한번도 이름으로 호칭하는 법이 없이 오직 「모자를 쓴 대위」라는 별칭으로 부르면서 『그는 진짜 군인이 아니다.군대지식도 적고 전쟁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다. ▷한국과 관련된 소련군◁ 45년 8월 소련군의 북한 진주부터 53년 종전까지 한반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은 군인은 모두 약 1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특히 한국전쟁과 관련,훈장을 받았거나 전사자·부상자 및 유가족들은 2차대전 심지어는 최근의 아프간전쟁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아무런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은 소련당국(지금은 러시아정부)이 한국전 개입사실을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본인 역시 한국전쟁과 관련해 적성훈장을 받았다.그러나 훈장증서에는이상하게도 「조선전쟁에서 주어진 과업을 수행했으므로 이 훈장을 수여함」으로만 돼 있고 구체적인 공적사항은 전혀 없다.이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항일빨치산투쟁◁ 김일성이 붉은 군대에 정식 입대한 것은 1942년 7월17일이었다.이같은 사실은 45년 8월30일 그가 적기훈장을 수여받은 훈장증서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다.김이 훈장을 받게 된 공적사항으로는 항일빨치산투쟁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돼 있다.그러나 이에 앞서 김이 소련군 대위로 진급시 승진 상신서에는 「진지첸(김일성)을 만주에서 빨치산대장으로 활동하도록 파견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이는 김일성이 북한당국의 공식 선전에서 처럼 스스로 빨치산부대를 편성,지휘한 것이 아니라 당시 소련극동군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군이 항일 명령 특히 김일성이 45년 9월 중순 북한지도자로 선발되기 위한 면접을 하기 직전 심사위원격인 극동군 전선사령관 푸르가예프상급대장과 동 군사위원 슈킨대장 앞으로 제출된 김의 인물평가서에는 ▲동만주에서 빨치산활동 참가 ▲하바로프스크 군사학교에서 특수과정 수료 ▲수차 걸쳐 사령부로 부터 표창 ▲42년 입대,현재 대대장등 연대순으로 기록돼 있는데 입대 전에 이미 소련군 당국으로 부터 표창을 수차 받은 사실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이지도자로선택된과정◁ 45년 9월 모스크바는 승전의 축제분위기속에서 병력을 대폭 축소키로 함에따라 김일성은 아주 곤란한 입장에 빠졌다. 그가 소속된 88특수저격여단이 해체될 운명에 놓여 있는데다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그로서는 다른 부대로의 전출이나 진급을 바라보지 못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이때 김은 『특별인터뷰를 위해 즉각 하바로프스크로 돌아가라』는 돌연한 명령을 받았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당시 극동군 전선사령관 푸르가예프와 군사위원 슈킨을 면접했다. 두 장군은 몇가지 경력을 물은 후 김에게 『소련정부의 결정에 따라 한국국적을 가진 전문가들이 북한에 보내지고 있다.현재 북한은 새 조국을 건설할 전사들이 필요하다.귀관은 가장 빠른 시일내에 특별임무를 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같은 발언은 김일성이 이미 북한의 지도자로 결정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도자후보 분석 이에앞서 모스크바에서는 북한의 새 지도자감으로 많은 후보들이 심도있게 분석,평가되었다. 주로 장시우,박동홍 등 코민테른그룹과 박헌영,김두봉 등 자생적 공산주의자,김일성등 만주그룹,그리고 조만식선생등 비공산 민족주의자들이 대상이었다.그러나 스탈린은 이들이 군대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부했다. 스탈린은 결국 그의 구미에 딱맞는 인물을 물색한 결과 김일성이 돌연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하여 지도자로 선택을 받은 김은 45년 10월2일 부터 「진지첸」이란 이름을 버렸으며 8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소련함정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에 도착했다. 당시 원산시 소련 군정책임자인 크루지코프 대좌가 영접했는데 그는 후일 본인과의 면담에서 김일성 영접은 평양의 스티코프 대장의 긴급명령으로 행해졌다고 말했다.
  • “미,핵전때 쓸 지하의사당 건설”/의회 반대속 언론공개로 밝혀져

    ◎35년전 애러가니산맥밑에 극비로 시설/회의실·통신시설 갖춰… 수백명 수용 가능 냉전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던 지난 58년 1천4백만달러의 비용으로 핵전이 벌어질 경우의 의회용으로 건설된 지하 시설이 35년간의 비밀유지끝에 29일 신문보도를 계기로 그 존재가 밝혀졌다. 워싱턴에서 자동차편으로 5시간 거리인 웨스트 버지니아주 로어노크 서쪽의 애러가니 산맥에 위치한 그린브리어 호텔밑에 건설된 이 방공시설은 의회가 열릴 수 있는 회의실과 통신장비및 수백명용의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6천5백에이커의 골프장과 테니스 코트·온천장등을 갖춘 이 호화판 호텔의 일부는 일반 손님들이 이용하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조인 이 시설은 직접적인 핵공격을 지탱할 수 있게 건조된 것이 아니어서 그 위치가 아마도 행정부와 의회의 일부 고위 지도자를 제외하고는 비밀에 부쳐져 왔는데 워싱턴 포스트지와 워싱턴 타임스지의 보도에 대한 반응으로 그 존재가 확인됐다. 미 의회의 민주및 공화당 중진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 지하시설에 관한 보도를 비난하고 그들이 편집자들에게 이 시설의 위치를 밝히지 말도록 요청했었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이를 밝히기로 결정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회 성명은 이 시설계획이 35년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요청으로 시작됐으며 국방부가 위치를 선정,건설했다고 밝혔다. 잡지 보도에 따르면 남북전쟁전 양식인 그린브리어 호텔의 한 부분이 거대한 철문과 커다란 방들로 이루어져 핵전쟁때 의회가 열릴 수 있게 돼있으며 비밀 통로를 통해 구릉밑에 건조된 지하 벙커와 연결돼 있다.
  • 장학량 극비 방중/작년 등 주선으로

    【홍콩 연합】 중국현대사의 전환점이 된 1936년12월의 「서안사변」의 주역으로 국민당정부에 의해 대만에서 40년 이상 가택연금을 당했다가 작년 3월풀려났던 장학량장군(92)이 작년 6월 중국최고지도자 등소평과 국가주석 양상곤의 주선으로 극비리에 중국 서안을 방문하고 돌아왔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 월간「구십년대」가 1일 보도했다.
  • 카자흐 핵탄두 2기/이란서 밀수입 추정/유러피언지

    【런던 AFP 연합】 이란은 카자흐공화국이 분실된 것으로 공식 발표된 수개의 핵탄두중 최소한 2개를 확보했다고 유러피언지가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러한 정보가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미중앙정보국(CIA)에 전달한 극비 보고서에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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