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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사일관련 금수품/북한,베를린서 밀수

    【베를린 연합】 북한이 최근 베를린의 암시장을 통해 미사일 제조와 관련된 금수품목을 밀수입했으며 이에 대해 독일·미국및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극비리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포쿠스 최신호가 독일대외정보국(BND)의 보고를 인용해 보도했다. 포쿠스는 이밖에 BND의 정보에 따르면 북한이 베를린에 설치해두고 있는 「이익대표부」의 활동은 특히 북한 정보기관에 의해 조정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러 쿠데타범 재판자료 1백45권/공판준비상황 드러나 관심

    ◎재판장 베일속인물 우팜로프 소장/피고인 12명,“정치문제화” 전략 구상/변호인은 모두 국선… 배심원 4명도 배정 그동안 갖은 억측을 불러일으켰던 91년 소련 쿠데타 주모자들에 대한 제판준비 상황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러시아 당국은 그동안 재판날짜가 오는 4월14일이라는 것 말고는 재판절차나 변호사 선임,기소내용등 일체를 극비에 부쳐왔다.그러나 최근 러시아언론들은 재판 관련사실들을 단편적으로나마 그때그때 입수해 보도하고 있다.그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재판준비◁ 재판은 군사재판으로 열린다.재판장은 아나톨리 우팜로프소장으로 철저한 보안 속에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1백45권에 이르는 재판관련 자료파일이 그의 속에 넘어가 있다.현재 그와 면담이 허용되는 사람은 러시아최고재판소 군사법정의 자문위원들과 피고인들의 국선변호사들 뿐이다. 그는 최근 변호사들을 만나 재판절차와 관련된 기술적 문제들을 토의하고 피고인별로 5권분량의 기소장을 미리 넘겨주어 변론을 준비시켰다.언론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어 그의 신상에 관해서도 아직 분명히 밝혀진 것이 없다. ▷피고인 근황◁ 91년 8월 쿠데타 실패직후 체포돼 구금돼있던 소위 국가비상위원회 8인을 비롯한 12명의 쿠데타주모자들은 지난 1월말 모스크바시내로 주거가 제한되기는 했으나 일단 「마트로시카야 티시나」(선원의 침묵)형무소에서는 석방됐다.이들은 요즈음 자기들끼리 수시로 연락을 하며 법정전략을 짜는게 주 일과이다.일부는 각종 집회시위에 참석,연설도 하고 신문·잡지와 인터뷰를 통해 자기주장을 펴고있다.크류치코프 전KGB의장과 루캬노프 전최고회의의장은 최근TV에까지 출연했다. 이들의 법정전략은 재판을 정치화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소련을 구하기 위해서』『쿠데타가 성공했으면 이 지경은 안됐을 것』『소련방이 사라졌기 때문에 재판은 성립할 수 없다』는등 갖가지 논리를 개발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변호◁ 변호인들은 모두 국선이다.피고인들의 정치적 동기를 부각시켜 무죄를 관철시키겠다는 기본전략을 세워놓고 있다.아울러 이들은 스테판코프 검찰총장과 리조프차장이 최근 「재판을 앞둔 그렘린의 음모」라는 책을 출판,재판관련자료를 일부 공개한 것을 문제삼아 검사의 교체와 재수사까지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배심원◁ 이례적으로 2명씩의 정·부배심원을 두고있다.이들의 신상도 비밀에 부쳐져 있으나 모두 장성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자료파일과 비디오테이프등을 보며 법률적인 제반문제를 검토하고 있다.증인들은 대다수가 출두의사를 밝혔고 고르바초프전대통령도 최근 증인으로 출두할 의사를 서면으로 전달했다. ▷재판방향◁ 기소내용에 따르면 피고들은 최고 총살형까지 받게돼 있다.재판과정에선 피고들이 조직적으로 법정투쟁을 벌일 것에 대비,철저히 기소내용에 따라 법적 문제만 따질 방침이다.정치적 문제는 비상위원회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경우에 국한시키고 외국·공공조직등의 당시 책임소재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이번 재판은 쿠데타의 실패로 집권한 옐친대통령의 권한이 급속히 약화되고 반면 보수세력의 입지가 눈에 띄게 커지는 시점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그 귀추가 비상한 주목거리가 되고있다.
  • 「독립정신」(화제의 책)

    ◎1904에 쓰인 이승만박사 옥중기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우남 이승만박사의 옥중기.당시 무기수로 7년째 한성감옥에서 복역중이던 이박사가 19 04년 2월19일부터 같은해 6월29일까지 4개월10일동안 쓴 우국충정어린 글이다. 건국이후 이박사에 대한 상반된 역사평가는 접어두고 이 책에는 당시 러·일전쟁 개전소식을 옥중에서 전해들은 우남이 극비리에 들여온 지필로 기록한 원고를 종이말이 새끼로 꼬아 밖으로 내보냈다는 눈물겨운 사연이 간직돼 있다. 1909년 발간시 금서조치되었다가 여러차례 중간되었지만 고어·사어가 많고 난해한 한자어가 많아 이번에 현대 맞춤법과 띄어쓰기로 바로 잡아 새로 펴냈다. 이승만지음 정동출판사 6천원.
  • 독일문단에 슈타지첩자 충격(특파원코너)

    ◎비밀경찰 극비문서에 “동독문인 협조” 기록/최고의 작가 볼프 “동료동태 보고” 시인/“대부분 연루” 밝혀지자 독자들 등돌려 최근의 독일 특히 구독일지역의 문학계는 구동독 비밀경찰(스타지)의 극비문서 공개로 많은 문인들이 과거에 어떤 형태로든 스타지와 관계를 맺었음이 밝혀짐에 따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여기에다 독일통일의 여파가 가져온 구동독 문단의 침체가 겹쳐 구동독지역의 문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문단에 특히 큰 충격을 준 것은 이른바 「볼프충격」이다.「볼프충격」이란 구동독 최고의 문인으로 동서 양진영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크리스타 볼프(63·여)가 지난달 24일 한 TV 쇼프로에서 자신이 지난 59년부터 62년 사이에 마가레트란 암호명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스타지에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시인한 것을 말한다.이 프로가 방영되자 이제까지 볼프에게 찬사를 보냈던 많은 사람들이 『위선자이자 기회주의적인 첩자』라고 그녀를 맹비난하며 볼프에게 등을 돌렸다. 이같은 「볼프충격」과 함께 스타지의 비밀문서가공개돼 볼프뿐 아니라 구동독의 이름있는 문인 상당수가 볼프처럼 스타지와 관계를 맺어왔음이 밝혀지자 구동독 문단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았다.스타지의 비밀문서는 볼프외에도 극작가 하이너 뭘러,시인 자샤 안데르손과 라이너 셰드린스키 등 구동독 최고의 문인들을 빠짐없이 「비공식 협력자」로 기록해 놓고 있다. 통일되기 전까지만 해도 구동독의 문인들은 국민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았었다.TV에 제대로 된 토크쇼나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고 신문에도 읽을만한 칼럼이 없는 등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독국민들은 정보에 대한 욕구를 독서를 통해 해소했었다.이 때문에 인구 1천6백만의 동독에서 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작가들이 상당수에 달했다. 더욱이 소련과 중국이 지배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동독은 자국의 독특한 문화영역을 유지하고자 문학에 대해 상당한 특혜를 베풀기도 했다.호화저택과 해외여행 등 고위직의 정치엘리트가 아니면 누리기 어려운 특혜를 많은 유명 문인들이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특혜가 아무 대가없이 주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대다수의 문인들이 스타지 요원과의 비정기적인 만남에서 동료문인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정보를 건네주어야 했다. 「볼프충격」이 아니더라도 통일이후 구동독 문단은 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과거에는 통제됐던 서방의 문명이 밀려들어오자 구동독 국민들의 관심이 책에서 다른데로 옮겨가 대다수의 서점들이 판매부진에 허덕여야 했다. 볼프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에 대해 동정적인 사람들도 당상수에 이른다.이들의 주장은 구동독의 상황에선 어느 누구라도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며 문인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구동독의 문인들은 반체제와 체제의 사이에서 매우 어려운 줄타기를 해왔다.한편으론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강도높은 비난을 작품속에 담아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정보기관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 예상넘는 대규모… 관련고교만 27곳/“확산일로” 광운대 입시부정

    ◎교무처 주도­전산소서 성적조작 합작/재단서 목표설정후 교사들 접촉한듯 광운대입시부정은 예상했던 대로 규모도 훨씬 크고 재단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이 5일 밤부터 6일 새벽까지 실시한 압수수색결과에 따르면 93학년도 전기 10명,후기 32명등 모두 42명으로 지난해 1명까지 포함하면 당초 알려진 3명보다 훨씬 많은 43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후기 부정입시생 32명은 입시사정 결과를 담은 마그네틱 테이프에서 직접 확인한 것이지만 전기 10명은 원본(원본)이 없고 성적등을 조작한 복사본 마그네틱 테이프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단지 전자계산소장 김순협교수의 진술에 근거를 둔 것으로 실제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또 입시관계서류는 4년간 보관하게 돼 있으나 90학년도부터 92학년도까지 모두 폐기처분된 것으로 미루어 이 학교가 오랫동안 입시부정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이번 입시부정을 지시한 조하희교무처장이 잠적중이라 입시부정이 재단차원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있지만 여러가지 정황증거로 미루어 볼때 신병치료차 도미중인 조무성총장이 조처장등 대리인을 내세워 재단관계자들과 극비리에 추진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시점은 대학에 입시사정등 입시업무가 주어진 87학년도 이후 것으로 추정된다. 연행된 전자계산소 직원들의 진술과 압수한 입시관계서류에 따르면 부정입학지시는 교무처에서,성적조작은 전자계산소에서 이루어졌다. 즉 수험생의 객관식성적을 산출한뒤 조교무처장에게 보고하고 조교무처장이 특정수험생을 합격권으로 끌어올릴 것을 지시하면 조작된 점수가 수정된 마그네틱테이프에 담겨졌다. 점수를 조작하고 수정된 석차자료를 산출하는 것은 이석윤전산부장,최재청운영계장이 맡았다. 학교측이 ▲수험생의 성적과 석차등 진본(진본)마그네틱 테이프를 폐기하고 수정된 마그네틱테이프만 보관하고 있는 점 ▲후기대입시 직전인 지난달 21일 문화관과 연구관을 짓고있는 중앙산업측에 21억원이 입금된 점 ▲부정입시생 학부모 김월순씨가 장창용관리처장에게 건네준 1억원이 수표추적결과 재단운영자금으로 들어간 점등은 모두 이번 사건이 조총장을 포함한 재단측에 의해 저질러졌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 컴퓨터성적조작으로 부정입학시킨 규모는 훨씬 방대한 것으로 보인다. 93학년도 후기의 경우만 해도 23개학과중 경영학과 9명 신문방송학과 6명등 10개학과에 이르고 있으며 부정입학생 32명의 출신고교만 해도 남자 18개교,여자 9개교등 27개교나돼 학교측이 해마다 일정액의 목표치를 산정,폭넓게 일선고교측과 접촉해 왔음을 말해준다. 부정입학생 모집을 어떤식으로 했는지는 아직 관련 학부모들의 조사가 끝나지 않아 정확히 알수없지만 입시브로커 또는 지면이 있거나 부정입시를 알선한 적이 있는 일선교사들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속된 이두산교사가 자신의 학교 제자들을 꾸준히 수급해온 점으로 미루어볼때 학교측은 알선책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수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함께 조사를 통해 알선책들이 현직교사들로 밝혀질 경우 일선 교육계에 주는 충격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 연해주 한인자치 레닌사망으로 무산/소련의 중앙아 강제이주 배경

    ◎스탈린 집권 혼란기에 토지분할 백지화/「소수민족 말살」정책 따라 무자비한 탄압 소련정부는 1924년 5월 연해주 거주 한인들에게 사실상 자치를 허용키로 결정했으나 레닌 사망과 스탈린집권의 정치적 와중에서 이 결정이 취소되고 오히려 그 해 말부터 스탈린의 소수민족말살정책에 따라 한인에 대해 강제추방을 시작,1937년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로 절정을 이룬 것이라고 러시아의 한 소수민족전문학자가 4일 밝혔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역사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러시아정부의 한인정책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니콜라이 부가이 박사는 『24년 당시의 코민테른(국제공산당)과 소련극동혁명위원회가 1924년 5월9일자로 「한인 자치문제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했었다』고 밝혔다. 이 의정서는 제3항에서 『원동지방의 공산혁명 수출기지화를 위해 연해주에서 한인공동체사회(자치주 아래수준)창설이 필요하며 이는 아주 중요하다』고 결의하고 『가까운 장래에 이 문제를 급진적으로 해결하도록 자치구역을 지정해야 하며 이에는 포시에트,수찬,비킨 등의 도시가 포함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정서는 이를 위한 예비사업으로 약 10만명의 한인중 러시아국적 취득자 1만5천명은 물론 난민으로 간주된 나머지 8만여명에게도 모두 토지를 분배하도록 조치할 것을 규정했다. 그러나 레닌 사망과 함께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한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소련 외무부 극동지역국장인 두호프스코이는 24년 6월 한인동맹집행위에 보낸 서한에서 『한인이 다른 어떤 소수민족보다 자치지역을 조성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나 현재로는 그럴 여건이 아니니 한인들 스스로 문화적 자치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고 통고함으로써 한인의 숙원인 자치구 문제가 백지화됐다. 특히 집단농업이 본격화된 1930년부터 1935년까지 약 6천명의 한인 부농들이 지속적으로 카자흐,아랄해지역,시베리아 북부지역으로 강제 추방당해 엄격한 거주제한을 받았다. 스탈린정부는 마침내 1937년 8월21일자로 내린 극비결정에 따라 연해주 등 극동지방에 살고 있던 17만2천5백명에 이르는 한인 전체를 「일본첩자침입방지」라는 구실로 카자흐 및 우즈베크 등으로 강제이주시켰다.
  • 「김정일건강 전담연」 극비 운영

    ◎1,500명 동원… 식료품·질병문제 등 다뤄/나이·체질 비슷한 사람골라 생체실험도 북한이 김정일의 건강만을 전담·연구하는 「만수무강연구소」를 신설,운영해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입수된 북한자료에 의하면 김정일 건강전담연구소는 당중앙위원회 재정경리부(부장 신상균)산하에 「기초과학원」이라는 명칭으로 신설되어 극비리에 운영되고 있다. 기초과학원은 연구원·연구원조수·실험공 등 총인원 1천5백명이 8개전문분야로 나뉘어 식료품,천연식물,육류,채소 및 과일,물고기,담배,질병연구,종합분석 등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김정일과 나이·체질이 비슷한 사람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각종 생체실험을 해오고 있다.즉 실험대상자에게 김정일이 좋아하고 건강에 좋다는 각종 음식물과 기호품을 김정일이 취식하는 횟수와 양만큼 먹게 하여 매일 매일의 건강상태를 점검한 후 연구 결과를 김정일에게 그대로 적용해오고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기초과학원은 당조직지도부가 『지도자 동지의 건강문제는 40대 이후 50대가 가장 중요하다』며 김정일의 건강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할 것을 발의함에 따라 신설됐으며 김일성의 「장수연구소」(사용명칭:기초과학연구소)와는 별도로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동 소재 중앙당 3호청사 맞은편 산속에 설립됐다.이 연구소는 연구에 필요한 자료와 원료는 모두 북한 전역의 「8호작업반」을 통해 제공받고 있다.
  • 북한 핵시설 12곳 군사이용 가능/러 정보처,파괴무기 실태 보고

    ◎영변은 플루토늄 제조능력도 보유/탄저병균 등 연구·독가스 극비 개발 러시아 해외정보처가 28일 발표한 대량파괴무기 실태보고서는 대량파괴무기의 잠재적인 개발국가들 가운데 북한이 개발에 가장 의욕적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본다. 북한지도부는 세종류의 대량파괴무기 즉 핵·화학·생물학 무기의 제조능력을 동시 개발하기 위해 다년간 노력해오고 있다.이와 병행하여 이들 무기의 운반수단도 개발해왔다.그러나 이들가운데 각 부문의 집중적 개발과 그 효율이 같지 못했고 현재도 그런 상태에서 개발실적 및 완성정도가 일치하지 않은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다. ▷핵무기◁ 현재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꽤 장시간 핵개발에 군사적 응용방안을 추진해 이 분야의 연구 실적이 돋보이고 있으나 과학기술 수준은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다. 핵무기 개발에는 북한 인민군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핵 동력공업을 발전시키기에 충분한 원료를 갖고 있다. 우라늄원광 매장량이 2천6백만t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핵개발을 실현하기 위해 근 30년간 원자공업시설을 건설했는데 그 가운데 군사적 응용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평양 김일성대학 핵물리전문연구실 ▲핵연료 제조공장과 녕변원자연구센터내 핵연료 저장소 ▲5MW급 녕변연구용 원자로 ▲50MW급 녕변원자로(현재완성단계로 이 원자로는 발전용 외에 핵플루토늄제조에도 이용될 수 있다) ▲영변 방사화학연구소와 방사화학실험실 ▲대천에 건설중인 2백MW급 가스원자로 ▲박천 및 평산 우라늄 매장지 ▲2개의 우라늄제련시설 ▲각각 6백35MW급의 3개 동력반응장치를 건설하기 위해 지정된 지역 등 북한은 70년대초부터 「핵연료생산기지→과학실험연구소건설→핵물질제조→폭발장치 개발및 실험→운반수단완성→마지막으로 핵무기개발」이라는 기술적 단계로 핵개발을 추진해왔는데 중요한 한 고리가 무너졌다. 플루토늄제조 단계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이 지난해 북한의 핵시설을 사찰하긴 했지만 북한지도부가 그 핵시설을 군사적인 핵개발 목적에이용할 계획을 완전 포기했다고는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생물학무기◁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일련의 대학교,의대 및 전문연구소에서 군사적 목적의 생물학 수단에 대한 개발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들 과학센터에서는 탄저병,콜레라,페스트,천연두 등의 병원체를 대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생물학 무기에 대한 실험은 일부 섬들에서 진행되고 있다.이 무기개발의 공격적 성격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다. ▷화학무기◁ 국제전문가들의 자료에 의하면 화학무기분야에서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개발계획이 실재하며 이에 필요한 공업시설도 존재하고 있다.개발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어 이 분야의 실태를 세부까지 파악,분석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독가스 물질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북한외교부는 올해초 어떠한 화학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나 북한은 지난 1월 파리에서 조인된 화학무기금지조약 조인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운반수단◁ 소련제 스커드­B와 북한제 신형미사일 스커드­C가북한운반수단의 주요 기반으로 돼 있다.북한은 이집트에서 구입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소련제와 같은 스커드형 미사일을 제조,중근동에 수출하고 있다.북한은 사정거리 약 1천㎞의 자체개발 중거리 미사일 「노동­1」을 세계시장에 판매하려하며 현재 이 미사일을 시험중이다.모든 자료를 종합해볼 때 화학무기운반,나아가 핵무기운반에도 이용될 수 있는 미사일을 제작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공업이 엄연히 실재하고 있음을 근거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사일 개발의 기술적 수준을 높이는데 필요한 숙련기술자와 과학자들이 부족해 미사일 개발은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다. 미사일 제조공업을 경쟁력있는 수출부문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북한은 이때문에 필요한 기술자를 외국에서 초빙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김일성부자,거액 해외도피”/러 합작사 간부 폭로

    ◎러 취업자 임금·노동당 비자금/「유사시」 대비 오·스위스은 예치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이 유사시에 대비,막대한 외화를 서구은행에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러시아간 합작회사의 러시아측 고위간부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의 합작회사를 통해 막대한 외화를 반출,스위스·오스트리아등 제3국 은행에 극비리에 예치하고 있으며 이 자금은 러시아 산업시설에 종사하는 북한인의 임금과 노동당의 자금등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측 간부에 의하면 현재 러시아 캄차카주에는 구소련이 2차세계대전 이후 캄차카주의 어업시설부문 노동력 부족 해소를 위해 고용했던 수만명의 북한인들중 1만명이 잔류해 있다는 것이다. 이들 북한인들은 캄차카주에서 일제 중고차 및 해산물 판매등에 종사하고 있으며 캄차카주 최대의 북·러시아간 합작회사인 「쿠임긴상」은 이들 북한인들의 임금과 92년 이후 회사의 수입금 그리고 북한 노동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외화를 서구은행에 예치하고 있다. 서구은행에 예치된 이 비자금들은 김부자가 정권몰락에대비,해외 망명생활 및 소위 「조국해방투쟁자금」등으로 사용할 것으로 추측되며 북한이 해외 합작회사들을 통해 제3국으로 외화반출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체제에 불안을 느낀 세계 각국의 독재정권이 정권말기에 외화를 국외로 빼돌렸던 것과 같은 현상으로 주목할만한 일이라고 이 간부는 밝혔다.
  • 「산업스파이」 피해 보상 방법은/「삼미기업」 계기로 관심 집중

    ◎스파이·고용사 상대 손배소청구 가능/미국법따른 소송땐 우선 증거 확보를 국내기업의 영업정보를 외국 경쟁회사에 빼돌린 호주인 「산업스파이」사건이 기업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주고 있는 가운데 피해기업이 취할수 있는 대응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로 지난해 12월 발효된 「부정경쟁방지법」에 영업비밀보호 관련 규정만 있을뿐 별다른 법적 보호장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과거 몇차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때도 대부분 단순절도사건으로만 처리됐을뿐 기업정보유출에 따른 피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을 정도로 국내 인식수준은 낮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빼돌려진 컴퓨터 디스켓속에 제품개발 모델과 가격·해외거래선 등 극비정보가 수록돼 있어 경쟁회사에 넘어갈 경우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는 삼미기업측으로서도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특허청등 관계기관과 국제분쟁 전문가들에 따르면 삼미기업측의 대응책은 대충 3가지 정도로 나눌수 있다. 첫째 삼미기업이 디스켓을 훔친 보튼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그러나 이 방법은 가장 간단하기는 하나 보튼씨의 개인적인 재산능력이 부족할 경우 실질적으로 보상받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빼돌린 디스켓을 넘겨받은 미오우라사의 재산이 국내에 있을 경우 이에 대한 가압류 또는 가처분신청을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오우라사가 아직 국내에 진출해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세번째 방법은 삼미기업이 오우라사를 상대로 미국법에 따른 손배청구소송을 내는 것이다. 기업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과 법률적 장치가 상당히 발전돼 있는 미국의 현실을 볼때 그런대로 보상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다. 그러나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뿐만아니라 오우라사와 보튼씨가 서로 입을 맞춰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할 경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구속된 보튼씨가 디스켓을 훔치기는 했지만 오우라사에 넘기는 스파이짓은 하지 않았다며부인하고 있는 것이나 오우라사가 이 사건이후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우려를 뒷받침해 주고있다. 이처럼 삼미로서는 몇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나 어떤 방법이든 명백한 증거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영업비밀보호법에 대한 인식조차 거의 없는 우리 기업의 현실을 볼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 첫 각료회의 주재… 공식업무 돌입/클린턴 대통령취임 이모저모

    ◎핵암호 가방 브리핑받고 최우선 인수/입장료 1백불 넘는 무도회 6만명 참가 ○“새로운 출발” 들떠 ○…빌 클린턴이 제42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한 20일 미국민들은 수도 워싱턴거리를 가득 메우거나 TV를 시청하며 40대 젊은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봤다. 다소 쌀쌀하지만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갠 날씨속에 진행된 이날 취임식과 가두행진을 지켜본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언급하면서 클린턴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겨울속에서 봄을 불러내는 기분을 가졌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말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이라크 사태가 사담 후세인의 「선심」으로 당분간 일단락된 탓인지 푸른 넥타이를 맨 클린턴 대통령은 어느 때 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었고 취임사를 마친후 우렁찬 박수를 치는 시민들을 향해 미국의 재건을 향해 달릴 장거리 선수처럼 손을 높이 흔들었다. ○카터,“불안한 시대” ○…클린턴 대통령에 앞서 민주당 출신으로서는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20일 클린턴이 2차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정세가 불안한 시대에 대통령직에 취임한다고 논평. 카터 전대통령은 이날 「CBS 디스 모닝」프로그램에 출연,『클린턴은 불안한 국제정세를 가능한 한 빨리 안정시킨뒤 미국 국민들이 몸소 느끼고 있는 국내문제의 해결에 그의 노력을 집중시키고 싶어 할 것』이라고 언급. ○군사보좌관도 배석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식에 앞서 이날 아침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으로부터 미국 대통령이 핵전쟁시 핵무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극비암호가 들어 있는 핵암호가방 「풋볼」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이 브리핑석상에는 새행정부의 안보담당보좌관인 앤터니 레이크도 배석했는데 「풋볼」로 알려진 이 핵암호가방은 대통령이 어디를 가든지 항상 군사보좌관이 뒤따라 들고 다니게 돼 있다. ○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날 열린 11개의 무도회는 참가희망자를 가까스로 수용,아이젠하워대통령 취임기념 무도회가 당초 1개에서 황급히 2개로 늘려졌던 30년전의 기록과 규모면에서 큰 대조를 보였다. 입장전 외투를 맡기기 위해 3시간 줄을 서서기다렸다거나 파티복에 음료를 쏟는 불상사가 발생했다거나 발을 짓밟히며 들고 있던 레몬주스를 엎질렀다는 등등의 역대 취임기념 무도회의 「끔찍했던」경험담에도 불구하고 1백25달러짜리 입장권을 구입한 6만3천여 참여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 ○…클린턴이 이날 왼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 성경은 그의 할머니가 그에게 물려준 흠정영역 성서. ○조모가 물려준 성경 그는 신약전서중 갈라디아서 6장 8절을 펼쳐놓고 선서를 했는데 이 구절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는 내용. 클린턴은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이 성경을 받았는데 그는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면서 리틀록의 교회에 갈때마다 이 낡은 성경을 들고 다녔었다. ○의회,새 각료들 인준 ○…레스 애스핀 국방,워런 크리스토퍼 국무,로이드 벤슨 재무등 3개 주요부처 장관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일인 20일 미의회로부터 재빨리 임명 인준을 받음으로써 곧바로 소관 업무에 들어갈 수 있게됐다. 다른 장관들도 21일중으로 상원의 인준을 받게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클린턴은 이날 첫 각료회의를 시험적으로 소집,정식 대통령 업무에 들어간다. 의회 인준과정과 전임자들과의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새 행정부 팀의 실제 출범은 항상 늦어지게 마련인데 디 디 마이어스 대통령 공보담당 비서는 『백악관 내부 구조에 익숙지 못한 새 정부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기 일쑤라면서 자신도 백악관 집무실을 모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아칸소주 최대사건 ○…클린턴의 고향 아칸소주 호프시에서는 이날 데니스 램시시장을 비롯한 1백여명의 주민들이 페어파크 체육관에 모여 두대의 대형 TV화면으로 중계된 클린턴의 취임식 광경을 지켜보았다. 램시시장은 『그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될 때까지만해도』이 호프시출신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줄은 몰랐다면서 이 고장에서 일어난 그 어떤 사건도 클린턴의 대통령취임과는 비교도 될 수 없다고 소감을 피력.
  • 중국,대북군사원조 강화 거부/작년 11월 김일성 극비방중때

    ◎경원확대엔 긍정적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지난해 11월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군사및 경제원조강화를 요청했으나 중국측은 군사원조강화를 명확히 거부했다고 일본의 NHK방송이 20일 저녁 중국의 믿을만한 소식통을 인용 북경발로 보도했다. 김주석은 지난해 11월20일쯤 정부·군지도자들과 함께 특별열차편으로 북경을 방문,2일간 머물면서 양상곤 국가주석등 중국지도자들및 대표들과 회담했다고 NHK방송이 보도했다. 이 방송은 김주석이 당초 후계자인 김정일서기를 동행시킬 계획이었으나 중국측과의 협의과정에서 김서기의 방문이 보류되고 김주석의 방중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김주석은 중국지도자들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의 경제계획등을 설명하며 경제원조및 무기제공등 군사지원 강화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중국측은 경제지원 증액요구에는 어느정도 응할수 있다고 밝혔으나 군사지원 강화요구는 분명하게 거부했다고 중국소식통이 밝혔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9)

    ◎소년시절:10/화성의숙 전학 전후/“당시 만주에 공산주의 팸플릿” 필자 「평가」에/“소학교때 「레닌일생기」 읽었다” 92년판 날조/학업 비정상적… 면학문제 언급없어 김일성의 유소년 시절에 대한 우상화의 하나는 그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총명하고 공부를 잘했는가를 과장하는데 있었다.그런데 무송소학교 시절부터는 이 방향을 계급적 관점으로 더 강화한다.예를 들어 회고록에서 전기작가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나는 무송에 있을 적에도 「레닌의 일생기」나 「사회주의 대의」와 같은 책을 몇권 읽었다』라고 말하게 하고 있다. ○계급적관점 강화 그런데 우리는 이와같은 주장은 1992년에 출판된 「세기와 더불어」이전에는 그 어떤 김일성 전기에도 실린 적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기작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런 조작을 했을 것이겠는가. 필자는 85년에 일본에서 「김일성평전」을 출판하고 87년에 이것을 한국에서 번역출판하였다.이 책에서 필자는 김일성이 소년시절에 마르크스 레닌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엉터리 주장을 철저히 비판한 일이 있었다.일례로 여기에 그 문장의 일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공산주의문헌은 많지 않았다.1924년에 일본 경찰이 동남만에서 입수한 「불온문서」에는 공산주의 자체를 정면으로 해설한 책은 거의 없었다.1925년에는 이 간도에서 대량으로 공산주의 관계문헌이 압수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선전팸플릿이나 신문이었다.…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얄팍한 팸플릿으로는 레닌의 이름을 붙인 전기·역사·공산청년회역사·공산역사 등이 있었고 그 외에 「공산독본」「노서아 노동역사」「사회주의대의」「공산당의 선언」등이 있었다.이 팸플릿류는 모두가 소련에서 발행되었고 간도지방에서조차 1∼2점씩밖에 압수되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에서 필자가 「외무성경찰사」란 극비문서를 찾아내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여기에는 「레닌의 이름을 붙인 전기」「사회주의 대의」란 어구가 보인다.북한의 전기작가들은 필자가 낸 평전의 이 일절을 표절하여 김일성이 무송에서 「레닌의 일생기」「사회주의 대의」를 「읽었다」는 새로운 날조를 하게 된 것이다. ○얄팍한 선전신문 김일성은 이 시기 학교생활이 비정상적이었다.그 때문인지 종래의 전기에서는 면학문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좌익서적 읽기」신화의 날조에는 엉뚱하게도 필자가 자료를 제공해 준 것으로 되었다. 다음부터는 무송소학교를 중퇴한 후의 일로 넘어가겠다. 1926년 2월14일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이 달에 정의부 중앙의회에서 금년 4월1일부터 군인을 모집하기 위하여 정의부 군인이 될만한 청년을 모집할 위원을 선정하여 만주 각 현에 파견하리라는데 일본과 중국경찰의 주목을 피하기 위하여 중학생을 모집하는 형식으로 할 것이라 하였다」 이 기사는 화성의숙이 창설되는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여기에는 이때 정의부에서 각 현에 파견될 위원의 명단도 실려 있다. 따라서 그 위원중 누군가가 김형직의 가정에 와서 3∼4월에 김일성을 화성의숙에 입학시킬 것을 상의한 것도 추측이 가능하다.그러나 박만포선생의 의견에 의하면 김일성은 3월이나 4월에는 입학하지 않았었다.필자는 4월 입학설이었으나 이러한 6월 전학설도 앞으로는 고려해 나갈 것이다. 일본 영사관에 계출된 기록에 의하면 화성의숙은 화어연구학교로 수업연한이 1년6개월이며 교원이 2명,생도가 30명으로 26년 3월에 설립 인가가 난 것으로 되어있다. 26년도는 1학년생만이 입학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의부의 진짜 목적은 이 학교를 교포 자제에게 중국말이나 가르쳐주는 정착준비 학교가 아니라 항일군인을 양성하는 군관학교로 경영하는 것이었다.숙장이 최동오,재무가 강제하로 정의부는 유하현 삼원포에 교과서를 찍는 인쇄소까지 마련하여 학업을 보장하였다. 이번 회고록에서는 화성의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화성의숙은 독립군의 간부를 키워낼 목적으로 1925년 초에 세운 정의부 소속의 2년제 군사정치학교였다.화성의숙의 입학대상은 정의부산하 중대들에서 선발된 현역군인들이었다.우에서 입학생수를 쪼개어 내려보내면 중대별로 우수한 청년들을 뽑아 보내는데 2년동안의 학습과정을 마치면 성적에 따라 새 직급을 주어 출신 중대에 되돌려 보내었다.독립군 밖에서도 개별인사들의 소개로 입학하는 청년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설립연도 등 조작 여기서는 화성의숙이 26년에 설립된 것을 25년으로,1년 반인 수업기한을 2년으로 바가지씌운 일이 눈에 띈다.화성의숙은 25년에 설립될 계획이었지만 26년으로 지연되었다.그리고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그 명칭도 26년 8월 경에는 화림학교로,28년 6월경에는 화흥학교로 바뀌어졌다. 그러나 여기서는 김일성이 자기 스스로 화성의숙 전학은 특수한 케이스였다고 인정하고 있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의 전학은 역시 비정상적이었다. ①「세기와 더불어 1」156면 ②평전127∼128면 ③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8)72∼73면 ④평전 73면 ⑤「세기와 더불어1」136면 ⑥평전 74면
  • 작년말 평양행 적발된 러 핵전문가들/북 핵운반장치 제작 목적

    ◎러시아지 보도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지난해 10월부터 11월 사이 북한으로 가려다 러시아보안당국에 적발됐던 러시아 핵과학자들은 북한당국으로부터 핵무기 운반장치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됐다고 러시아의 시사주간지 베크 최근호가 보도했다. 베크지는 빅토르 바라니코프 보안위원회 장관의 말을 인용,이들은 모스크바 교외 포들리파크의 비밀 우주기지에 근무했던 과학자들로서 북한측으로부터 한달에 4천∼5천달러의 급료와 주택을 제공받기로 약속돼 있었다고 전했다. 베크지는 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이들 과학자들이 북한이 개발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핵무기의 운반체를 제조하기 위해 선발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출국은 극비리에 추진돼 그들의 가족들조차 행선지를 출발 몇시간 전에야 통보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베크지는 핵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북한의 이같은 전략은 고위층에서 결정했으며 실제로 북한 안전부소속 요원들이 작전에 참여했었다고 밝혔다.
  • 공개협의로 바뀐 재무부의 금융정책(국정탐방)

    ◎금리낮춰 개방경제 활력 부축/규제에서 자율화로/12%선까지 내려 기업경쟁력 제고/2단계 자유화 빠르면 3월께 실시 금리인하문제가 우리경제 최대의 현안과제가 되고 있다. 하반기 성장률과 설비투자증가율이 예상밖으로 둔화되는등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급격한 임금상승·기술개발 부진·금융기관 차입증가에 있으며 특히 과도한 금융비용부담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1월 1단계 금리자유화가 시행된 이후 시장실세금리는 정부의 꾸준한 노력에 따라 올초 연19% 수준에서 현재 13%대로 떨어졌다. ○연 19%서 13%대로 그러나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실세금리를 12%이하로 낮춘뒤 2단계 금리자유화를 조속히 실시할 계획이다. 요즘 이같은 금리낮추기는 거의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다. 관계자들은 금리인하 절차가 비밀작업에서 공개적 협의로 바뀐 분수령을 80년대 후반으로 보고 있다. ○밀실작업이 대부분 그 전까지 금리문제는 재무부·한국은행의 일부직원이 장관들의 밀명을 받고 대개 공휴일 하오에 호텔방을 빌려 실무작업을 펼쳤고 다음날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극비사항이었다. 80년 후반까지 모두 30여차례에 걸친 금리조정이 대부분 그랬다. 지난 81년 11월9일 금리를 1%포인트 인하할 때에도 현 재무부차관인 이수휴 당시 이재국장이 혼자서 과장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호텔방에서 비밀작업을 끝마치고 장관의 결재를 받았다.또 현 이재국 정건용금융정책과장은 지난 89년 11월14일 대출금리를 1%포인트 내릴때 금리와 관계없는 산업금융과장으로 있으면서도 장관의 지시로 몰래 실무작업을 펼쳤다.정과장은 『재무부에 들어온 이후 서너차례 밀실작업을 했다』면서 『보통 하오5시쯤 위의 지시를 받아 밤샘작업을 하고 다음날 임시 금통위를 열어 처리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같이 비밀작업을 하게된 것은 모든 금리가 철저히 규제돼 미리 소문이 날 경우 몇몇 사람만 금리차·증시차액 등을 거둬 큰 이익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밀실작업 시대는 90년대 들어 끝나고 요즘은 거의 공개화됐다. 다만 실세금리와 1단계로 자유화된 1년미만 단기공금리에 대해 관련 금융기관과의 업무협의,간접적인 행정지도를 통해 금리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간접적인 행정지도 실제로 올해 꾸준히 내린 실세금리는 단자사등 2금융권이 담당임원회의를 열어 인하폭을 결정했다. 최근 재무부와 한은의 대립양상으로 비쳐졌던 공금리인하 논쟁은 재할인등 현재까지 규제되고 있는 금리를 대상으로 일어난 것으로 이런 논쟁도 2·3단계 자유화가 시행되면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정부는 2단계 금리자유화를 올 3월이전에 시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재국과 역대국장/한은감독 등 「돈줄관리」파워 막강/재무장관 7명 배출… 거물 수두룩 재무부 이재국.조직상으로는 재무부의 7개국 2개실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한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60년대까지 재무부에는 국고·이재·세제등 3개부서만 있었고 이재국은 은행·증권·보험·국제금융업무를 모두 맡고 있었다.그러나 70년대 들어 경제가 발전하면서 증권·보험·국제금융업무가 독립하고 금융의 자율성이 부각됨에 따라 권한이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아직도 이재국은 우리나라 돈줄을 맡고 있어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다. 얼마나 힘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이재국 소속 5개과의 업무내용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주무과인 금융정책과는 정부의 통화신용정책을 책임지는 부서로 재정·금융자금 및 국외금융의 운용 조정기능과 통화관리·금리정책·여신관리등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특히 한국은행과 은행감독원의 업무지도 감독권한을 갖고 있다. 업무가 중요한 만큼 금융정책과의 현안은 우리 경제의 과제나 다름없다. 재정융자과는 재정융자계획을 세우고 정부의 각종 기금을 관리하며 농축수산금융을 총괄한다. 산업금융과는 산업·주택은행과 각종 특별지원자금을 맡고 있다. 은행과는 시중은행의 경영지도와 은행제도·대출관련제도의 조사·연구를 수행한다. 끝으로 중소금융과는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지원 업무를 맡고 있으며 국민은행 금고협동조합등을 지도 감독한다.요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이 과의 소관이다. 이같이 방대한 업무를 취급하는 이재국의 국장 자리는 모든 경제관료들이 한번쯤 앉고 싶어하는 「꿈의 자리」이다. 따라서 이 자리를 거쳐간 사람들중에는 거물이 많다. 역대 이재국장 출신중 재무장관이 7명이나 나왔으며 다른 부처장관도 상당수다. 현재의 이정재국장까지 32대인 이재국장 중 재무장관이 된 람은 김유택(작고)송인상 김정렴 김원기 김용환 정영의씨와 현재 이용만장관 등 7명에 이른다. 재무부 고참직원들이 기억하는 이재국장중 대표적인 사람은 장덕진씨와 김용환씨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장국장은 은행장들을 마음대로 주무른 파워와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아직까지 고참직원의 뇌리에 생생하다.그가 축구를 좋아하자 은행들이 다투어 축구부를 창설했을 정도였다. 김용환씨는 쓸만한 직원들을 자기 사람으로 키운 「재무부사단」의 창설자로 전해진다. 현 이용만장관도 이재국장 시절 이치에 맞지않는 상부의 지시를 끝내 따르지 않는등 대단한 뚝심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장관은 80년 당시 세도가인 이규광씨의 면회요청을 거절했다가 옷을 벗었으나 끝내 장관으로 되돌아왔다. 앞으로 이재국은 금융자율화가 진행됨에 따라 차차 역할과 권한이 많이 변화할 수밖에 없따.한 관계자는 『이재국은 금융제도와 금융산업개편에 치중하고 통화신용정책의 추진은 한국은행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통화량 신축적 하향조정”/“중기엔 신용대출 적극 확대”/이용만 재무부장관(인터뷰) 『최근 우리 경제는 많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재무부의 책임이 무거워지고 있습니다.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재무부는 앞으로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기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 1년7개월 동안 우리나라 돈줄관리를 맡아온 이용만재무부장관은 『한국경제라는 거대한 선박의 엔진』이라며 재무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 경제가 받고 있는 도전은. ▲우리경제는 안팎으로 변화를 맞고 있다.대외적으로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체결,미 클린턴의 신경제정책,미·EC간 무역마찰등으로 경제전쟁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국내적으로도 거품경제가 해소되는 가운데 성장률,설비투자증가율등이 둔화되고 금융시장개방,금리자유화의 시행일정이 잡혀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추진할 금융정책방향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안정기조를 계속 다지되 경제에 다소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접근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내년 통화증가율을 올해보다 하향조정하되 통화증가율 목표범위를 넓게 설정,통화를 신축적으로 운용하겠다.또 설비투자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최근 13%대인 시장실세금리를 12%대로 낮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각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하도록 유도해 2단계 금리자유화 시행여건을 조속히 조성하겠다.금리자유화 여건은 실세금리가 12%대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본다.개인적으로는 10%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소기업 부도가 늘고 있는데 그 대책은. ▲중소기업은 산업의 저변이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육성이 필수적이다.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내년에 담보대출 대신 신용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보증기관의 신용보증 규모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기업 외에 근로자와 서민을 위한 지원책은 무엇인가. ▲소득의 계층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에 국민은행을 통해 가계대출자금을 2조5천억원 공급하되 저소득층에 중점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또 무주택서민의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해 주택은행의 주택자금도 2조3천5백억원을 공급하고 세제를 개편해 근로소득자의 세금이 자산등 비근로소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겁지 않도록 하겠다. ­어려운 경제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기업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업들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기술개발에 힘써야 한다.우리 기업의 자금차입의존도는 대만의 24%,일본의 33%에 비해 훨씬 높은 46%에 이르고 있다.따라서 금리가 같더라도 금융비용부담이 크게 된다.특히 국가경쟁력의 75%가 기술능력에 달려있다는 분석 처럼 기술개발애 노력해야 한다.또 은행들도 규모축소등경영합리화를 통해 예대마진을 줄여 금리를 낮추어야 한다. ­최근 새로운 경제여건에 맞춰 경제부처 기능조정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이에 대한 견해는. ▲지난 30여년간 정부 주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해왔으나 이제는 개방화,민주화,다원화 추세로 종전의 정부조직을 바꾸는 것도 의미가 크다.즉 정부조직의 비효율·저생산성을 제거해 경제전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 이종찬후보 사퇴/정주영후보 지원 선언/국민­새한국당 “당대당통합”

    ◎“14대임기중 내각제 개헌·중­대선거구제 추진” 새한국당의 이종찬후보는 12일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하고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민당과 새한국당은 정치적인 당대당통합을 하기로 했으며 양당은 당내 절차를 거쳐 오는 14일 이를 공식발표한다. 이와 관련,국민당의 정후보와 새한국당의 이후보는 지난 11일밤 극비회동,▲통합당의 당명은 국민당으로 정해 대선후 통합전당대회를 가지며 ▲대통령후보는 정후보가 맡고 ▲새한국당의 이후보는 후보직을 사퇴하고 정후보와 함께 통합신당의 법적 공동대표를 맡는다는데 합의했다. 또 최고위원·당무위원은 두 공동대표가 협의해 결정하며 지구당위원장 지분은 대선후 논의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두사람은 이어 정후보가 집권하면 14대 국회의원임기내 내각제개헌및 중·대선거구제도의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새한국당 이후보가 국민당의 공동대표를 맡게됨에따라 채문식 현 국민당공동대표는 당고문으로 추대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민당과 새한국당은 이날 각각 긴급당무회의를 열고 반양금세력결집이라는 목표를 이루기위해 합당하기로 결정했다.
  • 배(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22)

    ◎조선 침략에 앞장선 일 운양함/돛·함포·증기추진기관 갖춘 개량 군함/강화도서 살육·약탈… 불평등조약 빌미 일본이 1863년 명치유신을 조선에 통고한 이후,일관된 대한정책은 정한론이었다.정한론은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구미열강과 맺고 있는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수단으로 삼고,명치유신 이후 배출된 불평 사주을 외지로 보내어 정치적 안정을 꾀하며,조선에서 분쟁을 일으켜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쏠리게 한 후 개혁의 박차를 가하려 하였다.그 첫 작업이 군함을 이용한 조선에서의 무력행사였다.극비리에 일본 조정은 군함 운양함·춘일함·제이정묘함을 조선 연해에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일본 군함 운양함은 단대의 기함으로서 근대 과학병기인 함포를 싣고 증기 추진기관을 가진 개량 범선이었다.운양함이 휘하 군함을 인솔하고 부산에 도착하였을 때 부산시민들은 처음 보는 거대한 군함들을 경이와 경계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일본 군함의 불법체류를 항의하기 위해 조선 관헌이 탑승하자 일본 군함들은 훈련이라는 구실로 시위 함포사격을 가했다.선체마저 전율했던 함포 소리에 부산시민은 물론 탑승한 관헌들도 혼비 백산하였다.무력시위에 성공한 일본 군함들은 동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무력시위를 하였고 급기야는 조선 수도 방위의 관문인 강화 해협에 이르러 정박하였다.그리고 포함을 강화도 초지진 포대로 접근시켰다.이는 인접국의 국방요새에 대한 의식적인 도발 행위였다.일본함정의 도발행위에 대한 자위적 수단으로 조선 포대에서 포격을 가하자 일본군함은 일장기를 게양한후 초지진과 영종진을 향해 맹렬한 포격을 가한 뒤 육전대를 상륙시켜 방화,살륙,약탈을 감행하였다.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일장기를 게양한 일본 군함에 조선이 먼저 포격을 가한 것은 주권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유사한 사건의 방지라는 미명하에 군대를 파견하였고,조선의 입장에서는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규를 맺음으로써 한반도가 일본의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변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그것은 장기간의 세도정치와 쇄국정치가 가져온 비극의 불씨가 점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12월2일,페르미 「원자의 불 점화」 50돌(과학상식)

    ◎흑연감속원자로 우라늄 등 이용 성공 2일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인공 핵분열연쇄반응을 일으킨지 50년이 되는 날이다.1942년 12월2일 시카고대학에서 일단의 과학자들은 엔리코 페르미(이탈리아출신 미국망명)가 조립한 원자로에서 약 1◎의 출력으로 임계상태와 연쇄반응을 지속시키는데 성공했다.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원자의 불을 점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페르미가 조립한 원자로는 흑연감속원자로로 6t의 금속과 51t의 산화물로 된 천연우라늄연료와 4백t의 흑연감속재로 구성돼 있었다. 페르미의 성공은 18 95년 독일 렌트겐의 X선 발견등 선배과학자들의 업적에 힘입은 것이다.X선의 발견을 계기로 프랑스와 영국의 과학자들은 우라늄의 방사능과 라듐,원자핵 파괴,중성자,인공방사능현상 등을 차례로 발견했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8년 독일의 화학자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은 우라늄의 핵분열 현상을 발견했다.이 소식은 공동연구자였던 스웨덴망명 여성물리학자 마이트너에게 알려졌으며 미국에도 극비리에 정보가 전해졌다.페르미는 이 정보를 안 즉시 우라늄의 핵분열과정에서 방출한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그결과 지속적인 핵분열의 연쇄반응에 의해 우라늄은 군사적 목적이나 산업등 평화적인데 모두 쓰일 수 있다는 것이 판명됐으며 당시 정세는 독일보다 앞선 원자폭탄 제조쪽으로 기울어 41년12월 원자폭탄제조계획(맨해턴계획)이 루스벨트대통령에 의해 확정되었다.
  • 출제본부 사령탑 유성종 평가원장(인터뷰)

    ◎“대입시험문제 예년수준 유지”/선택과목간 난이도 균형이루게 노력/문제지 두벌씩 만들어 도난사고 대비 『올 대입시 시험문제는 지난해와 대동소이합니다.내년에는 새 대학입시가 출제되는만큼 구태여 난이도나 출제유형을 새롭게 시도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전기대 입시원서접수마감과 함께 본격 가동된 입시문제출제본부의 총사령탑인 유성종 국립평가원장(61)은 올 입시출제는 예년 출제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말했다.그는 지난해 시험문제가 예년에 비해 쉽게 출제됐고 올 출제범위는 제5차 교육과정 개정으로 지난 90학년도부터 채택된 새 교과서에서 처음 출제된다는 점에서 원서 접수를 마친 예비 수험생들의 시험문제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지적,수험생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큰변화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원장은 출제방향에 대해 교과서 교체에 따라 다만 출제하는 내용이 조금 달라졌을 뿐 예년처럼 이해력·적용력·분석종합력등 고도의 정신능력을 측정하는 문항중심으로 문제출제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예비수험생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의 난이도에 대해서는 지난해처럼 예상 정답률이 20%이하이거나 80%이상인 문항은 가급적 배제하고 과목당 평균점수가 60점(1백점 만점)정도되도록 유지하고 선택과목간에 난이도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올 시험문제를 출제할 출제위원은 모두 해당과목 대학교수들로 과목당 2∼6명씩 구성했습니다.출제위원들이 1주일에 걸쳐 모든 문제의 출제를 마칠때쯤이면 고3 교과를 다년간 지도한 현직 고교교사들로 구성된 검토위원들이 출제본부에 합류하게 됩니다』 유원장은 『검토요원들은 문제들이 고교과정의 내용인지,정답에 오류는 없는지등을 검토해 문서로 출제위원장단에 제출해 출제위원,평가위원들의 종합평가를 거쳐 최종 시험문제로 확정된다』고 출제 과정을 소개했다. 『모든 과목이 난이도나 어렵고 쉬운문제의 순서배열,함정성 문제여부,정답의 오류등을 놓고 12회이상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완벽한 문제를 풀고 있다는 자세로 수험에 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원장은 출제된 문제는 극비리 인쇄소로 인계돼 입시일인 12월22일전까지는 인쇄 및 포장등 제작과정을 모두 모두 마치고 각 대학에 배포되는 절차를 밟게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대학입시문제는 지난해 후기대 입시문제도난사고를 교훈삼아 어떠한 사태에도 대처,즉각 인쇄해 제작·배포할 수 있도록 두벌을 출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북핵 등 동북아변화 공동대처/노 대통령 실무방일서 뭘 논의하나

    ◎클린턴당선 따른 안보정세영향 협의/남북대화·통일여건조성 협조도 요청 노태우대통령이 8일 하루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내용면에서는 우리가 북방외교에 치중하는 과정에서 소원해진 듯한 한일관계를 양국정상의 직접대좌를 통해 이전 수준으로 복원시킨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이는 양국관계의 악화가 어느쪽에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며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비추어 과거 어느때보다도 이해와 협조가 절실하다는 공동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또 형식면에서는 절차와 격식을 차리지 않는 최초의 정상회동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노대통령이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와 갖게될 이번 정상회담은 노대통령의 취임이후 6번째 한일정상회담이다.또 지난 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11번째 정상회담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간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는 만큼 양국간 현안타결보다는 국제정세에 대응한 미래지향적 양국관계가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양국 정부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따라서 양국정상은 사전에 실무선에서 합의된 의제에 대해 논의하는 종전의 방식을 탈피,자유대화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우선적으로 급변하는 동북아정세에 대해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양국은 동북아지역이 다른 어느 지역에 비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지역이며 세계질서 개편의 초점이 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최근 들어서만도 한중수교,노대통령의 중국방문,중국지도부 개편,일왕의 중국방문이 이어졌고 지난 미국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클린턴후보가 당선되는 등 한일간의 시각조정과 공동대응을 필요로 하는 대사들이 잇따라 계속됐다. 또 일본으로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옐친러시아대통령의 방한이 오는 18일로 예정돼 있다.일본방문계획을 취소했던 옐친대통령은 오는 12월 중순에는 중국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일련의 사안들 가운데서도 한일 양국이 이해를 같이하는 대목은 미국의 정권교체라고 할 수 있다.클린턴대통령당선자는 기본적으로 대외정책을 바꿀의사는 없다고 밝혔지만 통상압력의 강화와 더불어 주한미군의 감축등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우리로서는 미국과의 통상문제에 있어서 일본과는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그러나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계속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여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일양국이 협조해 나가야 한다는데 양국정상은 의견을 같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러시아관계 악화는 일본으로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일본은 러시아가 「한국카드」를 이용,일본을 견제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옐친대통령의 방일이 연기된 배경을 노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는 북방영토문제해결을 위한 측면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정상은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일·북한관계개선을 위해 공동보조를 맞춘다는 입장을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노대통령은 최근의 남북관계 등에 설명하고 남북대화와 통일여건의 조성을 위한 일본의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관계자는 『우리의 정권교체를 앞두고 이번 정상회담을통해 북한의 핵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확실히 다져놓는다는 의미도 크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대중국관계와 관련,한중수교과정에서 북한의 핵문제,개방문제등이 거론됐음을 설명하고 일본도 우리와 입장을 같이해주길 요청하는 한편 한중관계발전이 동북아정세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뜻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간 현안으로 남아있는 무역역조,정신대문제 등에 있어서는 일본측의 보다 성의있는 태도를 촉구하는 원칙적인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고 정부관계자는 전하고 있다.이들 현안에 대해서는 이미 실무차원에서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어느정도 진전도 이루어졌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배경과 취지설명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의 전격적인 이번 방일에는 별도의 주요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정치권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이와관련,지난달 23일 이병기의전수석비서관의 일본극비방문,일본통으로 알려진 박태준의원의 최근 방일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그 형식에서도 나타나듯이 한일관계의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아태지역외교무대에서 우리가 미·일·중·러시아와 대등하게 핵심주역의 자리를 굳히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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