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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침론·남침유도론 논거 상실/러 극비목록 전달 의미와 전망

    ◎49년부터 중공군 개입전까지 기록/구소군 투입·지원무기 등 밝혀질듯 냉전시대의 산물인 한국전쟁은 어떻게 해서 일어났고 누구에 의해 저질러졌는지가 멀지않아 역사적 확인 절차를 거칠 것 같다.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앞으로 우리에게 건네줄 6·25관련 외교문서들의 목록을 전달 받은 것이다. 우선은 목록만을 전달받았으나 옐친러시아대통령은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방문때 문서사본을 모두 건네주겠다고 지난 8일 러시아를 방문한 한승주외무장관에게 약속했다.향후 문서가 공개되면 6·25를 둘러싼 모든 논쟁들이 종지부를 찍게되고 실상이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까지 전해진 바에 의하면 문서목록은 49년 1월부터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인 50년 10월까지의 기록이다.약 40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러시아측의「비밀요청」으로 정부는 받았다는 사실외에는 내용 일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한외무장관도『내용은 너무 앞서가지 않는 것이 양국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무척 조심스런 반응이다.한장관이 옐친대통령에게 목록을 건네받은뒤 직접 챙겨 귀국후 김대통령에게 단독 보고한 것도 이때문이다. 따라서 현상황에선 외교문서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아직 이르다.다만 이 자료 정리 책임자인 볼코고노프대통령보좌관이 그동안 언론등을 통해 밝힌 사실로 미뤄보면 한국전쟁 개전부터 정전협상이 시작된 배경까지의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스탈린을 만난 자리에서 『2년안에 전쟁을 끝낼수 있으니 지원해 달라』는 부분,50년 5월 김과 스탈린이 개전일자를 결정한 부분,김이 북한주재 소련대사에게 남침동의 요청대목등이 들어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문서들은 상투적인 북침론이나 일부 소장학자들의 남침유도론이 더이상 자리할수 없게 만들 것이라는 게 외무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그 기간으로 보면 전쟁직전 소련이 「북침설」을 위한 국제 여론 조성과정,전쟁계획 수립과정,소련군 투입상황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볼코고노프보좌관은 『스탈린은 북한군이 궤멸적타격을 받게되자 2개 항공사단과 2개 고사포사단으로 특별 편성된 소련군을 투입했다』고 밝힌바 있다.이를 감안하면 49년 9월부터 50년 4월까지 소련이 북한에 지원한 무기내용과 군투입상황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파악할수는 없지만 이번 외교문서가 우리에겐 「현대사의 확실한 정립」이라는 측면에서,러시아와의 관계증진 차원에서 커다란 외교적 성과라 할수 있다.그러나 중국으로부터도 관련 서류를 전달받아야 한다는 점이 여전히 외교적 숙제로 남아있다.
  • 구소의 한국전개입 비사:상

    ◎“소 2개비행사단 50년11월 첫 참전”/극비특명… “계급장없이 중공군 위장”/당시 비행단 정보장교 올로프전사특별기고/중국 안동에 본부… 총병력 2만6천명 투입/51년3월 증파… 미기와 북 상공서 공중전/스탈린,해군출전도 계획… 미 자극 우려 포기 ▷남침 초기◁ 러시아가 개방·개혁정책추진으로 철의 장막을 걷고 한국과의 교류를 확대함에 따라 한국전쟁관련 비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6·25발발 43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군 정보장교(대위)로 9개월동안 소련의 제64비행단에 근무했으며 현재 러시아군사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세묘노비치 올로프박사(69)의 증언을 3횡에 걸쳐 게재, 구소련의 한국전 참전비밀을 파헤쳐본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3월 초순 어느 날 모스크바 군사영어학교에 근무하던 나는 새 임지로 전출명령을 받았다.그렇게 해서 그해 10월까지 8개월여동안 한국전에 참전하게 됐다.근무지는 한국전 지원임무를 맡은 소련공군 제64비행단이 주둔하던 중국의 안동. 정보장교로 참모본부에 근무한 덕에 나는 당시 비행단의 병력규모,위치등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었다.우선 참모본부 아래 미그 15기 3개사단이 있었다.제1,2사단은 1950년 11월 최초로 안동에 자리를 잡았고 제3사단은 이듬해 3월 배치됐다.그외 구경 85㎜,37㎜로 무장한 대공포 2개사단이 별도로 있었다. ○미그­15 3개사단 병력수는 참전초기부터 종전을 맞아 철수할 때까지 2만6천명선이 계속 유지됐다.이는 조종사 3백명이 포함된 숫자이다.보유무기로는 주력기종인 미그­15기가 1백80∼2백대,야간전투기인 LA­11(재래기종)25∼30대,대공포구경85㎜가 1백40∼1백60문,37㎜포가 1백30∼1백50문이 있었다. 당시 소련당국은 이 전쟁에 불개입을 선언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다.그래서 여러가지 비상수단이 취해졌다.모든 병력이 기장,계급장이 없는 중국군복을 입었고 조종사들은 비행중 무선교신시 절대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물론 이런 지시들은 애당초 지켜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조종사들이 초기에 조종간옆에다 간단한 교신어를 한국어나 중국어로 음을 적어놓고 발음만 흉내내기도 했으나 작전시 이로 인한 혼란이 커서 대부분 러시아어로 교신을 했던게 사실이다.물론 전투기들도 모두 중국·북한표지를 했다. ○중국·북한기 표지 보다 중요한 점은 혹시 격추돼 참전사실이 탄로날 것에 대비해 작전지역이 철저히 제한됐다는 사실이다. 이 원칙은 종전때까지 지켜졌다.동으로 동해,남으로는 전선에서 1백80㎞ 떨어진 39도선이 우리의 작전한계선이었다.즉 북한영토내에서는 압록강을 끼고 청진과 신안주사이가 우리의 작전지역이었다.미군측은 이 지역을 「미그앨리(소로)」라고 불렀다. 전쟁개시 2개월 전인 1950년 4월 김일성이 당시 외교부장 박헌영과 함께 극비에 모스크바로 스탈린을 찾아가 전쟁지원을 요청한 이래 스탈린은 참전에 끝까지 적극적인 태도롤 보이지 않았다. 미국과의 직접무력대결을 원치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에 스탈린으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리게 만든 것은 모택동의 참전결정이었다.김일성은 전쟁준비를 착실히 진행시켜왔고 특히 중국내전에 참여해 혁명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한 1만4천명의 북한출신 공산주의자들이 50년초 귀국,정규군에 합세한 것을 계기로 북한군의 사기는 상당히 드높았다. 이런 여러 고무적인 정황들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의 참전을 두려워했다.개전 이튿날인 6월26일 대련항을 떠난 소련군함들이 참전의혹을 받지 않도록 즉시 귀항명령을 받았고 이후 전쟁기간 내내 소해군은 한국전에 개입치 않았다. ○중 개입 영향받아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됐을 때도 스탈린은 크게 낙담하면서도 무력개입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당시 정치국원으로서 모스크바 시 당제1서기였던 흐루시초프가 무력개입을 의미하는 「즉각적인 방어정책수립」을 강력히 권유했으나 스탈린은 이도 묵살했다.스탈린의 마음을 돌리게 한 것은 결국 중국군의 개입이었다. 모택동은 중국의용군의 한국파병을 결정하며 스탈린에게 병력이송과 물자보급을 위해 압록강 교량6곳의 안전이 긴요하고 이를 위해 소공군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차강조했다. 1950년 11월 말 소공군 2개 전투비행사단이 실전에 투입되자 미군의 B­29기들이 압록강 철교들에 엄청난 폭격을 가했다.주 목표는 안동과 신의주를 잇는 교량 2곳이었다.하나는 복선철교였고 또 하나는 자동차·철도 겸용 다리였다. 당시 북한은 임시수도를 신의주에 두고 있었고 김일성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중국군·북한군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B­29기 폭격이었다.그래서 그 해 11월 12월 사이 미그­15기의 최대공격목표도 이 B­29였다.안동에서는 40∼50대의 미그­15기가 당시 압록강을 넘어 출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1950년말 소련군지도부는 제공권을 되찾기 위해 64비행단의 보강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그 결과 이듬해 3월 소련공군의 영웅 이반 코제두프 대령이 이끄는 새 비행사단이 안동에 도착했다.이렇게 해서 그해 봄 북한상공에서는 보강된 소군기와 미군기 사이에 전례없이 치열한 공중전이 전개됐다. ▷필자 약력◁ ▲1924년생 ▲러시아군사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역사학박사) ▲소공군 64비행단 정보장교로 한국전참전 예비역대령 ▲저서 「절대무기의 개랍」(1988)「제3제국과 제3의 법칙」(1993)
  • 중,우주선 계획 추진/2천8년 실용 목표

    【도쿄 연합】 중국은 오는 2008년까지 우주왕복선의 실용화를 목표로 「극비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이 중국 정부의 내부문서에 의해 확인됐다고 일본의 산케이(산경) 신문이 11일 홍콩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홍콩에서 발행되는 「당대」를 인용,이같이 전하고 중국 정부는 스페이스 셔틀 계획을 국위선양을 위한 3대 국가프로젝트의 하나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당대는 중국의 이 야심찬 계획의 목적은 승무원 3명,전장 11∼14m,폭 9∼10m,왕복선내의 높이 4.5m,중량 22∼24t의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중국은 오는 98년까지 기술적인 연구를 끝낸 다음 2002년의 무인비행에 이어 2008년까지 이를 실용화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 러 KAL기잔해 매장지 곧 공개

    【네벨스크(사할린섬)=연합】 러시아당국은 지난 83년 구소련 공군기에 의해 격추된 KAL기 잔해 매장지를 이달말 공개할 예정이다. 사할린섬 네벨스크시의 이반 말라코프 시장은 9일 이타르 타스통신과의 회견에서 지난 10년동안 극비사항이었던 KAL기 잔해가 네벨스크에 있는 한 버려진 지하 저장소에 묻혀있었다고 밝혔다. 타타르해협에서 건져진 KAL기 잔해는 지금까지 군부에 의해 러시아 영토 어딘가로 보내졌다고 막연히 추정돼 왔었다. 한편 KAL기 격추 10주기인 오는 9월1일에는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 북,핵관련 입장/내일 공식 표명/주태 북대사

    【방콕 연합】 이도섭 태국 주재 북한대사가 11일 상오 11시(현지시각) 방콕의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힌다. ESCAP 소식통은 9일 주태 북한 대사관이 핵문제 및 이에 관련된 한반도 상황에 관한 북한의 입장을 밝히는 이대사의 기자회견을 이같이 희망해 왔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효력 발생일(12일)을 하루 앞두고 이대사가 유엔 산하기구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데 대해 이곳 외교가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대사는 최근 극비리에 평양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삼성중 조선소 도크 증설“물의”/합리화조치 어기고 「거제」서 공사

    ◎정부 시정지시 받고 중단 삼성중공업이 도크의 신·증설을 일체 금지한 정부의 조선합리화 조치를 위반하고 극비리에 거제조선소에 도크를 증설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삼성은 또 불법증설 사실이 탄로나자 처음 「보수공사」라고 발뺌하다가 뒤늦게 증설을 인정,정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26일 상공자원부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도크 신·증설 금지를 골자로 한 산업정책심의회의 결정(89년 8월 28일)을 무시한채 91년 12월부터 거제조선소 제2도크(길이 3백30m,넓이 65m,깊이 11m)의 증설에 착수,지난해 8월까지 도크 길이를 51m나 늘렸다. 삼성은 도크를 증설하면서 거제군청으로부터 토지형질변경 승인을 얻었는데 당시 거제군청은 조선산업 합리화조치 내용을 몰라 형질변경 승인을 해준 것으로 밝혀졌다.이 도크는 중도에서 공사가 중단됐기ㅒ문에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정부는 지난 89년 조선산업의 불황이 깊어지자 산업정책심의회를 열어 조선산업을 합리화 업종으로 지정하고 93년 말까지 조선업체의 설비 신·증설을 일체 금지하도록 결정했었다. 상공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도크 증설은 지난해 6월까지 몰랐다』며 『실무자가 거제군청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알게 돼 즉시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그는 『합리화 조치로 자금지원이 있었다면 이를 회수하는 제재를 내릴 수 있지만 조선산업의 경우 특별한 지원 없이 신·증설만 억제했기 때문에 공사중지 명령 외에 마땅한 제재수단은 없다』고 덧붙였다.
  • “북한난민”(외언내언)

    탈냉전과 평화공존이 오늘의 시대정신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하면 세계는 당연히 냉전때보다 평화로워야 한다.그렇지 못한것은 왠가.20일 미란민위원회가 발표한 93년도보고서는 지난해의 세계난민수가 1백만명이나 늘어 1천7백50만명에 달했다고 밝혔다.냉전때보다 평화롭지 못하다는 증명서다. 우리에게 낯익은 난민은 보트 피플이며 베트남적화라는 냉전갈등의 산물이었다.탈냉전으로 일부는 돌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유엔의 구호를 받거나 세계를 유랑하는 이들도 많다.우리가 이들은 물론 세계난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냉전과 탈냉전이 혼재하는 불안정국면의 한반도 역시 그러한 대규모 난민발생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난민발생가능성을 우리보다 더 두려워하는것은 지근의 일본이다.냉전시대도 그랬지만 그땐 한반도 적화로 한국난민이 밀려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그것이 탈냉전의 지금은 북한난민 쇄도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변질된 것이다.그리고 일본정부는 실제로 그 가능성에 대비하는 극비대책회의까지 하고있다는 보도 아닌가. 일본에선 북한핵문제 해결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게이오대학의 오코노기교수도 그런 시각의 한사람이다.북한의 NPT(핵확금조약)탈퇴는 일과성이 아니며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이 열려도 철회가 쉽지않을 것으로 보고있다.제재가 결의되면 유엔탈퇴가능성도 배제치 않고있다.김정일의 위신이 걸린 핵문제야말로 북한변화 내지는 붕괴의 화근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시각이다. 예부터 3국통일등 한반도의 격변땐 반도난민·유민이 일본으로 몰려가곤 한 예가 많다.고구려·백제붕괴 등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란법 있는가.일본은 북한난민유입 저지뿐 아니라 한국으로 쏟아질 난민구호도 도와야할 책임까지 걱정하고 있다.난민뿐 아니라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나 이변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응은 일본보다 우리가 더 급할지 모르겠다.
  • 출국 이원조의원 일 장기체류할듯

    지난 18일 극비출국한 이원조의원(민자)이 일본에 장기체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원은 19일 국내의 한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의 모대학병원에 입원했으며이곳에서 당뇨등 지병을 치료하겠다』고 밝혔다고 이측근이 전했다. 이의원의 일본 대학병원 입원은 검찰의 조기귀국종용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장기체류할 계획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일,북한붕괴시 난민대책 수립일 주간문춘 최신호 보도

    ◎정부 치안책임자 지난달 극비회의/무장 북 주민 일 유입땐 자위대 출동 일본정부가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으로 국제적 고립화의 길을 걷고있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및 북한체제붕괴를 상정한 난민유입 등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의 문예춘추사가 발행하는 「주간문춘」 최신호(5월27일자)는 근래 이같은 대책이 논의된 일본정부당국 「극비회의」의 구체적인 논의 내용을 보도했다. 다음은 「북한붕괴로 난민이 일본에」라는 제목의 「주간문춘」보도 내용의 요약이다. 지난 4월19일 국회 가까이 있는 정부청사에서 「극비회의」가 열렸다.치안관계 정부 각 부서의 최고책임자가 모두 참석한 매우 이례적인 회의였다.주제는 「NPT탈퇴선언후의 북한문제」. 극비회의는 4월중순 미·일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이변을 어느정도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양국 정상의 인식을 바탕으로 처음 열린 대책회의였다. 주요 테마는 북한이 NPT를 탈퇴할 경우의 경제제재와 그 이후 현체제붕괴 가능성이었다.경제제재에는 여러단계가 있을수 있지만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라는데 모두 공감했다. 중국이 경제제재에 찬성할지는 미지수이다.그러나 중국이 경제제재조치에 참여,외형적으로 북한과의 무역을 중단하더라도 대규모 「암거래자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현실적 문제가 남는다. 북한은 이란 등 중동국가와의 무기거래를 통해서도 거액의 외화를 벌고 있다.재일조총련도 매년 거액을 송금하며 니가타항등을 통해 방북하는 조총련계 한국인들이 북한에 떨어뜨리고 오는 금액도 막대하다.이같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한으로 흘러가는 외화를 차단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는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조총련으로부터 송금되는 돈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통화규제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홍콩등 제3국을 경유할 경우는 규제가 불가능하다.조총련의 북한방문제한및 재입국제한등의 방법도 있으나 이것은 인도적 문제여서 실천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경제제재가 효과적으로 실현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할지 모르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폭동이 발생,혼란에 빠지거나 쿠데타로 현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김일성이 죽은 후 권력투쟁에 의한 체제 붕괴라 할수 있다. 현체제가 무너질 경우 난민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북한 난민은 우선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한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한국도 한민족으로 이들에게 총을 겨누지는 않을 것이다.한국뿐아니라 일본으로 올 가능성도 있다.일본으로 유입될 경우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의한 초계활동이 필요할지 모른다.북한난민이 무장했을 경우에는 경찰력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 치안을 위한 자위대의 출동도 검토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 도피않고 법앞에 섰어야 했다(사설)

    지나간 한시대 이른바 「실세」의 위치에서 이 나라의 정치 경제를 주름잡던 두사람의 현역 정치인 이원조·박철언 두의원의 행보와 행태가 보는 이의 마음을 참담하게 한다.한사람의 도피성 출국과 또 한사람의 구차한 자기변명 내용은 한마디로 지난날의 위세는 물론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크게 벗어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사람은 안영모 전동화은행장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지난 90년부터 2년간 2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소환수사가 임박한 시점에 극비리 출국했다.여당소속의원으로서 당이나 국회에 알리지 않고 해외로 나간 것은 누가봐도 도피행위라 할수밖에 없다. 또 한사람은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의 비호세력으로 5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역시 소환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통해 혐의사실을 부인했다.자신을 대통령선거의 패자이니 「도마위의 생선」이니 하며 비유한데서 더 나아가 『많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직은 인내로 지켜 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지금으로서는 「폭탄선언」을 참겠지만 앞으로 할수도 있다는 「위협」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무슨 비밀이고 누구한테 약점이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밝힐 일이 있으면 밝히면 될 일이다.보통 피의자도 합법적인 자위권이 있는 점에 비추어 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감추고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해 보겠다는 심정은 짐작이 간다. 5·6공시절 일컬어 「금융계 황제」로서 정치자금 조달에 관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한 사람은 이 사태를 정권만 바뀌면 한번씩 치르는 홍역인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의 기여가 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해외에 나가 시간을 벌자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또 한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가지고 죄값 흥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은 그들이 생각하는바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부정·비리사건이며 그런 차원에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따라서 당사자들은 정치적 처리를 바랄것이 아니라 정당한 절차를 통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구태여 구차한 도피나 변명으로 「생존」을 꾀할 일이 아니라 먼저지나간 한 시기의 실력자로서 죄책감을 갖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스스로 거취를 분명히 하고 말없이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취할 자세일 것이다.이 개혁의 시대에 범법을 눈감아 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검찰 역시 수사상 보안 등의 이유로 사전조치를 취하지 못한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도피를 막지 못한것은 불찰이며 그럴수록 앞으로 소환조사를 통해 이 사건을 더욱 엄정히 처리할 각오를 다져야 하리라고 본다.
  • 러,북경서 무기 전시회/극비리 개최… 소 해체후 최대규모

    ◎대중 군사협력 확대 예고 【북경 UPI 연합】 러시아는 19일 중국 북경에서 극비리에 대규모의 군사장비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서방외교 소식통들이 밝혔다. 극도의 보안조치 속에 북경시 외곽의 한 군사기지에서 열린 이번 전시회는 주말까지 계속되며 21일에는 항공기 시범이 있을 예정이라고 이들 소식통은 전했다. 보병 및 지상배치용 무기와 장비들이 주종을 이룬 이번 전시회를 위해 러시아는 2백여명의 기술진과 무기 중개인들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행사는 러시아가 구소련의 해체이후 국외에서 개최한 군사장비 전시회로는 최대규모로 과거 적대관계에 있던 러시아와 중국간의 군사협력과 무기거래가 앞으로 확대될 추세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대중 무기수출액은 모두 18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 극비개발지 부근/홍성애씨 땅매입/정보 미리 빼낸듯

    【강릉】 「슬롯머신 대부」정덕진씨 형제의 돈 5억여원을 국민당 박철언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홍성애씨(43·여)가 강릉과학산업단지 개발지역으로 선정된 지역 부근 임야를 매입한 사실이 밝혀져 고위층으로부터 개발정보를 미리 빼내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홍씨는 지난 90년 과기처가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즈므마을 일대를 강릉과학산업단지 개발지역으로 극비리에 선정한뒤 대전동 산138의5 자연녹지 3천3백여㎡를 구입했으며 강릉시 토지대장에는 같은해 6월1일자로 매입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 승용차 새 모델 경쟁(업계는 지금…)

    ◎현대 쏘나타Ⅱ/기아 스포티지/대우 레전드/“에어백·신냉매 등 채택” 판촉전/하반기엔 쌍용 지프·기아 프라이드신형 첫선 새모델의 승용차들이 쏟아져 나온다.국내자동차 메이커들이 지난해 뉴그랜저 포텐샤 세피아 등을 내놓아 뜨거운 판매경쟁을 벌인데 이어 올들어서도 새차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현대자동차가 쏘나타 후속모델인 「쏘나타 Ⅱ」를 선보인데 이어 6월에는 기아자동차가 승용차형 지프 「스포티지」를 내놓는다.대우자동차도 9월에 일본 혼다사와 기술제휴로 추진중인 야심작 「레전드」를 출시하며 하반기엔 기아의 프라이드 후속모델 「BT 57」,쌍용자동차의 미래형 지프 「FJ카」 등이 잇따라 나온다. 지난해 10월 뉴그랜저를 선보였던 현대는 지난 14일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쏘나타 Ⅱ」의 신차발표회를 갖고 본격 시판에 들어갔다.기존의 쏘나타보다 크기가 좀 더 크고 에어백과 첨단브레이크 시스템 등을 갖춘 「쏘나타 Ⅱ」는 기존의 쏘나타와 값이 비슷해 대체수요와 함께 중형차 시장의 독주를 노리고 있다.환경보호 차원에서 프레온가스 대신 신냉매도 채용했다. ○쏘나타보다 크기 커 현대는 대우의 프린스와 기아의 콩코드에 잠식당한 일부의 실지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이를위해 그동안 충남 남양만의 자동차 주행시험장에서 극비리에 시험주행을 하는 등 신차발표 전까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왔다. 대우자동차도 GM(제너럴 모터스)과의 결별을 계기로 새 모델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혼다사와 기술제휴로 추진중인 3천2백㏄급 레전드 승용차가 그것 가운데 하나이다. 이 새모델을 위해 1천2백억원을 투자,부평 제2 승용차공장의 생산설비를 보완하고 부품개발을 통해 올 9월부터 연간 1만대씩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올해에는 2천8백대를 생산,내수용으로 쓰고 ▲내년에는 내수용으로 9천대,수출 5백대 ▲95년에는 내수 1만1천5백대,수출 1천대를 생산목표로 잡고 있다. ○일 혼다와 기술제휴 기술도입에 따른 로열티는 선불 1백만달러에 경상기술료로 순판매가의 2%를 지불하는 것으로 돼있다.대우자동차는 이 승용차에 첨단 제어장치와 에어백 등을 장착,포텐샤나 뉴그랜저와의 경쟁차종으로 부각시켜 임페리얼의 약세를 만회한다는 구상이다.대우는 레전드가 미국시장에서 연간 6만5천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차종이어서 그랜저와 포텐샤를 앞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기존의 국민차 티코와 르망의 중간급인 1천3백㏄급 소형승용차의 개발계획도 마련,명실상부한 국민차 생산체제도 갖출 계획이다. 지난해 고유모델 세피아를 내놓은 기아도 다음달부터 승용차형 지프시장에 진출,2천㏄급 스포티지를 시판한다. 지난 1월 「죽음의 경주」로 불리는 파리∼다카르간 경주에 출전,9천㎞를 달림으로써 성능시험을 마쳤다.승용차와 지프의 중간모습으로 승용차의 승차감과 레저·스포츠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켜줄 것으로 보고 있다.현대정공의 갤로퍼와 쌍용자동차의 코란도 패밀리,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와 불꽃경쟁이 예상된다. ○내수·수출 동시 겨냥 기아 관계자는 『대우의 티코생산을 앞두고 프라이드의 판매가 줄지 않을 까 우려한 적이 있었지만 프라이드 판매는 티코가 나온 뒤에도 줄지 않았다』며 『스포티지도 승용차와 지프의 접점을 이루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기아는 연간 2만∼3만대를 생산,내수시장을 공략한뒤 수출도 할 생각이다. 아울러 연말쯤엔 프라이드 후속인 1천3백∼1천5백㏄급 「BT 57」을 미국 수출용으로 생산하고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내수시장에도 뛰어든다. 쌍용자동차도 상반기중 벤츠사의 첨단엔진을 실은 코란도 패밀리를 일반에 판매하고 8월이나 9월께 돌고래형의 미래형 지프 FJ카를 선보인다.이밖에 현대정공이 이달중 갤로퍼 9인승과 디젤 터보 자동변속기용을 선보이며 8월에는 2인승 밴과 출력이 향상된 인터쿨러 터보 등도 내놓을 예정이다.
  • 중국민항 평양취항 중단/북한서 거부… “양국관계 급랭조짐”

    ◎주중 항공요원도 철수시켜 【홍콩 연합】 중국민항기의 평양취항이 전면 중단되고 북한의 북경주재 조선민항 직원의 수가 대폭 감소되는등 중국과 북한관계에 새로운 긴장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홍콩의 권위지 명보가 15일 보도했다. 명보는 북경소식통들을 인용,이같이 보도하고 중국·북한관계의 이같은 긴장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며칠전 부총리급으로만 알려진 한 북한 고위관리가 전용기 편으로 극비리에 북경을 방문한 이후부터라고 말했다. 북경소식통들은 평양에 취항하는 중국항공기가 이미 완전 운항중지됐으며 북경으로 취항하는 조선민항의 편수도 현저히 줄었다고 말하고 중국항공기들이 평양으로 취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북한측이 중국민항기들의 북한인국을 거부하여 평양공항에 착륙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북한의 북경주재 조선민항사무소 직원이 17명에서 3명으로 대폭 줄었으며 북경공항에서 항공기정비 등의 일을 하던 지원 요원들도 모두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 남아공과 북한의 핵 정책/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16년간에 걸쳐 극비리에 추진했던 핵개발의 전모가 워싱턴 포스트지(12일자)에 보도됐다.남아공은 지난 74년부터 90년까지 8억달러의 비용과 1천여명의 인력을 동원,6개의 핵폭탄을 제조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들 핵폭탄은 각기 무게가 1t으로 단 1개만 사용하더라도 10만 인구의 도시를 삽시간에 잿더미를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아공은 변화된 국제상황에 비추어 핵무기를 갖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판단에 따라 91년중반에 자체 핵무기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남아공은 그들의 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적대적인 인접국가들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침공할 것이 두려워 핵폭탄을 만들었으나 소련의 붕괴에 때맞춰 흑인들과의 권력분점을 통해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스스로 핵보유를 포기했던 것이다. 남아공의 핵개발이 보여준 것은 첨단첩보위성도 은밀한 핵무기개발을 추적하는데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남아공 자체의 기술과 자원으로도 핵폭탄의 제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유엔안보리가 NPT탈퇴재고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을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내정의 간섭이며 주권의 침해』라며 이의 수용을 거부했다.그러면서도 미·북한간의 고위회담개최등 그들의 핵문제해결을 위한 협상테이블에 계속 관심을 나타내고있다. 북한은 남아공이 NPT체제에 들어감으로써 국제적 고립을 모면할 수 있었고 스스로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교훈을 곱씹어 보아야할 것이다.설령 북한이 일부 정보분석가들의 관측처럼 이미 1개 이상의 핵폭탄을 제조,보유하고 있더라도 국제사회에 이를 공표하고 폐기처분함으로써 그들의 체제는 물론 북한주민들의 안정된 생활을 담보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일,자위대 「캄」철수 검토/교도통신 보도/작년말부터 극비리 추진

    【도쿄 교도】 일본은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캄보디아에 파견한 자위대를 철수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이미 지난해말 병력철수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7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일 방위청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방위청 고위 관계자들이 지난해말부터 캄보디아에 파견된 평화유지군 병력의 철수 계획에 착수했으며 『일본만의 병력철수가 유엔의 PKO활동 전반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때문에 극비에 부쳐졌다』고 전했다. 이 계획안에는 항공편이나 선박을 이용하는 경우는 물론 군인들이 자체 자동차를 몰고 인근의 태국이나 베트남의 접경으로 철수하는 것 등 다양한 철수방안이 포함돼 있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 중국 외교부부장 이달초 극비방북/핵문제 김 부자와 요담

    ◎한국 등 서방대응책·자국입장 전달 당가선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이달초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김일성및 김정일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과 관련해 요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14일 『당부부장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부자와 최태복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유럽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김용순전노동당 국제담당비서(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등과 회담을 가졌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당가선은 전증패(수석) 유화추(미주및 국제기구담당) 양복창(중동아프리카담당) 강은주(유럽담당)등과 함께 중국 외교부내 5명의 부부장 가운데 한 명으로 아시아지역외교를 총괄하고 있다. 당부부장의 평양행은 한승주 외무부장관이 지난달 25일 뉴욕에서 진건 유엔주재 중국대사대리를 만나 한국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달한 직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당부부장은 김부자및 북한 수뇌부에게 이같은 우리 정부의 방침을 전하는 한편 북한핵문제의 안보리 상정에 있어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부부장은 그러나 이들과의 회담에서 북한이 당분간 태도를 바꿀 만한 징후는 발견해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무부 관계자는 『당부부장의 방북후에도 중국 외교부가 「북한핵문제의 안보리 상정에 반대하며 제재조치 표결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종전의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보아 당부부장의 평양 방문은 김부자에게 서방진영의 대응 방침을 전달하는 선에서 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업무협의차 11일 하오 일시 귀국한 노재원 전주중대사는 12일 한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당부부장의 방북결과를 설명했으며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대책회의석상에서도 이같은 내용이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 재산공개서 파문수습까지/정치부기자 방담

    ◎“절대지지” 여론속 무혈 공직정화/“권력형축재 더이상 불가능” 인식 확산/치부내역 충격… 청와대 강경선회 후문/일부의원의 재산분산술 특위도 감탄/인수위때 이미 「효자개혁안」 성안설도/당정실세모임서 28일 징계분류 결정 정부·여당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파문에 대한 조치는 김영삼대통령이 주창한 「윗물맑기운동」을 가장 설득력있게 보여준 정치사적인 성과였다.지난달 22일 민자당의원재산공개이후 증폭됐던 파문과 수습과정의 뒷얘기를 정치부 기자방담을 통해 다시 조명해본다. ­모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이 공식적으로는 마무리되었습니다.물론 또다른 비리나 부정이 발견될 수도 있고 야당 의원들도 곧 재산을 공개할 예정이어서 완전히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습니다.그러나 정부와 민자당이 특별기구까지 만들어 사안의 경중에 따른 조치를 한만큼 여권에 관한한 재산공개문제는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론 90%… 압도적 지지 ­이번 공직자 재산공개는 자발적 형식을 취했지만 그파문은 가히 「무혈혁명」에 가까웠습니다.5·16혁명직후나 5공초에도 부정축재에 대한 철퇴가 있었으나 이번처럼 반향이 크지는 않았다고 평가됩니다. ­그렇습니다.군부를 바탕으로 집권한 정부가 총·칼을 앞세워 부정 부패작업을 벌였던 것과는 근본 차이가 있지요.과거의 경우 정치보복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여론의 흐름을 탄 개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여론조사 결과 90%내외가 압도적 지지를 보냈습니다. ­평생 박봉의 관리로 일해온 장·차관의 재산이 수십억원대를 넘고 기업을 경영하거나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군·공직자출신 여당 의원이 「산넘고 물건너」엄청난 땅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난데 놀라지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정면돌파로” 의견모아 ­이번 재산공개 파문을 처리해나가면서 새정부의 개혁추진 솜씨도 「매끄러워」지는 느낌입니다.출범직후 일부 각료들의 부정축재파문이 일때만 해도 언론에 밀려 임기응변식 대응을 했지요.그러나 민자당과 차관급 인사처리는 사실상 정부·여당이 주도했습니다. ­정부·여당이 앞장서재산공개 파문을 처리해야한다는 방향이 잡힌 것은 지난달 23일 박관용비서실장·주돈식정무수석등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최병렬의원등 5공청산을 담당했던 6공인사들과의 모임이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이들은 중구난방식 처리보다는 「결자해지」정신에서 당이 특별기구를 만들어 정면 돌파식으로 난국을 타개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지요. ­김대통령은 여권인사들의 재산공개직후 예상을 뛰어넘는 재산내역에 충격을 받고 강력한 조치를 지시했습니다.가슴은 아프지만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서는 신한국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대통령과 참모진의 상황평가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위위원 전격교체도 청와대 핵심의 판단에 발맞춰 민자당은 즉각 당내에 재산공개진상조사특위를 설치하고 밤샘작업에 들어갔습니다.권해옥사무1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위위원들은 서울 시내 호텔을 전전하며 극비작업을 벌였습니다.1주일여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은 위원들이 많았습니다. ­특위는 당초 20여명의 문제의원들을 대상으로 국세청·검찰의 협조를 받아 정밀내사를 진행했습니다.그러나 언론에 연일 새로운 사실이 터지는 바람에 막바지에는 35명선까지 심사대상이 늘었고 급기야는 전 소속의원에 대한 실사가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이런 와중에 실사대상에 오른 듯한 의원들은 해명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나름대로 「연」을 찾아 구명운동을 벌였고 여의도 당사 최형우총장 집무실에는 분위기를 정탐하려는 의원들로 연일 북적거렸습니다. ­실사대상에 오르지 않은 의원들도 대거 소명자료를 냈고 그 수는 70여명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특위에서 이를 분류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하느라 지난 주말 끝내려던 진상조사가 2∼3일 늦어지기도 했습니다. ­특위조사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간에 위원이 바뀌기도 했습니다.특위에 소속됐던 허재홍의원이 재산규모를 축소신고했다는 가벼운 구설수에 오르자 김형오의원으로 즉각 교체되었습니다. ○「깨끗한 사퇴」 평가받아 ­특위에서는 실사대상의원중 20여명을 「죄질」이 나쁜 순서로 20위까지 순위를 매겨 당지도부와 청와대에 전달했습니다.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한 징계분류는 지난 28일밤 모 음식점에서 있은 새정부 실세모임에서 결정났다는 것이 유력한 관측입니다.이 모임에는 당에서 최형우총장·백남치기조실장·강삼재정조실장 등이,정부측에서는 박실용 청와대비서실장·김덕용정무1장관 등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8일 밤 모임에서 「생사」가 갈린 인사는 김재순·이원조의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박준규국회의장의 경우 서민주택 75채를 소유,임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이미 「의장직 사퇴후 의원직 박탈」이라는 수순이 정해졌지요.그러나 김·이의원은 막바지까지 엎치락뒤치락을 계속했습니다. ­이원조의원은 8살짜리 손자에게 수억원의 저택을 넘겨줘 여론의 몰매를 맞았습니다.하지만 재산분산기술이 워낙 뛰어나고 범법사실이 없어 경고로 끝났지요.특위위원들은 『이의원의 재산관리기술이 너무 뛰어나다』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반면 박국회의장과 김재순의원등 원로가 정계에서 사실상 추방된 것은 「대선공로참작」보다는 정치권 정화라는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김재순의원은 「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5공초 안기부장으로 부정축재처리를 담당했던 유학성전의원은 깨끗이 의원직을 던져 당수뇌부로부터 평가를 받았습니다.유전의원에게 「피해」를 당한 당사자인 최총장도 처음에는 유전의원을 욕했으나 가장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자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정동호의원은 끝까지 애를 먹이고 있는 케이스입니다.지난 86년 국방위 회식사건때 국회의원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것으로 유명한 정의원은 지난달 29일 사퇴설득차 찾아온 민태구의원에게도 험한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차관급들의 재산공개도 공직사회의 도덕성불재를 여실히 드러내 국민들을 실망시켰습니다. ­특히 검찰쪽의 재력이 엄청나 「고시합격=돈+권력」이라는 속설을 입증했으며 사정기관의 사정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공감대를 낳기도 했지요. ○민정계중진 언행 자제 ­어쨌든 이번 재산공개 파문은 정치권의 물갈이를 촉진시킬 것이 틀림없습니다.민자당에서 17여명,정부에서 장·차관 10여명이 조치되는 선에서 끝났지만 더이상 공직을 이용한 축재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조치대상에서는 피해갔더라도 구설수에 오른 인사들은 15대 총선공천이나 선거결과를 통해 정계에서 축출될 확률이 높습니다. ­조치대상인사들 대부분이 민정·공화계등 구여권 인사들이었다는 사실은 김대통령을 오래 보좌했던 민주계 핵심인사들의 득세를 예고하고 있습니다.박의장의 2선퇴진은 대구·경북 세력의 약화를 상징한다고 봐야겠지요.김윤환·이한동·이춘구의원등 민정계 중진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알고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습니다. ­민자당 당직자들은 「제재대상자가 민정·공화계에 편중되어 있다」는 일부 지적이 일자 민주계 핵심중 한 사람인 정재문의원이 비공개 경고대상자라고 슬며시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재산공개 파문이 「사전각본」에 의한 것이라는 일부 관측도 있지요.새정부 출범을 준비하기위해 구성됐던 대통령직인수위가 1백일동안 개혁을 완성하겠다는 「효자개혁」을 짰던 것으로 알려집니다.청와대및 인왕산개방 안가철거,대통령재산공개와 광주방문등이 이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확인됩니다. ­하지만 공직자 재산공개에 이은 정치권 물갈이까지 시나리오가 짜져있었느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부정적 관측이 보다 많습니다.재산공개를 하려는 계획은 있었으나 파장이나 대책은 구체적으로 짜지 못했을 것입니다.상황이 발생하면 국민의 편에 서서 엄정한 처리를 해온 김대통령의 「정공법」이 성공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겠지요.하여튼 권력기관의 힘을 남용하지 않고서도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속에서 이같은 엄청난 개혁을 단행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 제3세계국 핵무장 우려 현실로/남아공 핵제조 공표 파문

    ◎80년대 서방기술 지원 의혹… 통제 시급/IAEA 사찰방법·감시체제에 허점 남아공이 지난 89년까지 6개의 핵폭탄을 제조했었다는 24일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대통령의 폭탄 발언은 핵의 공포가 가중되고 있는 국제사회에 새로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지금까지 추정단계에 머물렀던 제3세계 국가들의 핵무기보유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최초의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남아공의 핵폭탄제조 「자수」는 그동안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여러차례 사찰을 실시했음에도 포착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핵 안전관리및 감시체제상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보다 큰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IAEA는 지난해 발표한 핵관련 보고서에서 남아공이 핵탄두 25개를 생산할수 있는 고농축우라늄 4백㎏을 비축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핵무기 완성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었다.IAEA는 올들어서도 이달 19일 남아공이 핵물질을 개발한 사실은 인정하면서 그러나 남아공이 IAEA에 은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클레르크대통령의 시인발언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부분은 제조목적과 시점,그리고 외부의 기술이나 물자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제조해냈음을 애써 강조한 점이다. 그가 제조목적을 「소련의 팽창위협 저지용」이라고 밝힌 것은 그동안 미국과 독일·프랑스가 지난 70년대와 80년대에 남아공의 핵개발을 도왔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이는 또한 서방국가들의 제3세계국가 핵개발지원이 아프리카 뿐아니라 세계도처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90년 인도­파키스탄간 카슈미르분쟁때 핵전위기가 있었으며 이때 미국이 80년대에 파키스탄에 핵무기를 판매한 사실이 들통날 것을 우려,극비 중재에 나섰다고 폭로한 미뉴요커지의 최근 보도는 이같은 맥락에서 묘한 여운을 던져주고 있다.미국등 핵강국들이 냉전시대에 잘못 뿌린 씨앗을 거둬들이기 위해 애를 먹고있는 형국이다. 어쨌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인도의 가입거부 재천명등 최근 국제 핵통제시스템이 위기를 맞고있는 시점에서 나온 남아공의 핵탄제조 시인은 앞으로 제3세계국가들에 대한 서방 강국들의 핵감시및 통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50년대 구소 등서 핵기술 전수”/북한 핵개발 누가 돕고 있나

    ◎서방기업의 원자로 핵심부품 수입/중동국가에 무기판매로 필요자금 조달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과연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거부에 이은 돌연한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으로 북한의 핵무기 제조 및 보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궁금증 역시 커지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에 눈을 돌린 것은 195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북한은 공산주의 클럽을 통해 핵개발기술의 기초부터 실기까지를 획득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북한과 맹방관계를 유지했던 구소련 및 중국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것은 물론이다. 북한은 이후 핵무기제조의 기반조성이 완료되면서 공산주의 클럽에서 서방측으로 방향을 전환,핵무기를 실제로 제조하기 위한 기술·설비의 획득에 박차를 가했다. 이는 중국 및 구소련으로부터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견제 회피는 물론 한단계 높은 핵무기제조 기술습득을 위한 행보였다. 북한은 지난 59년 구소련과 중국의 도움으로 핵에너지 평화협정에 관한 의정서에 조인한데 이어 같은해 구소련과 핵연구기관 설치에 관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본격적인 핵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북한은 구소련의 협력아래 평양 북쪽 약 90㎞지점에 위치한 영변근교의 영돈단지에 핵개발단지를 조성했다.이 시설의 핵심이 되는 원자로는 65년 구소련에서 수입한 것으로 출력 2천∼4천㎾의 소형 장치였다. 70년대 중반이후 영변의 핵개발단지 확장공사를 추진한 북한은 드디어 원자로의 국산화 착수와 함께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239를 생산하게 됐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핵무기제조에 나선 북한은 당시 서방측과의 관계를 중시하던 고르바초프로부터 압력을 받아 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에 조인했다. 이후 중국·구소련으로부터 더 이상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게 되자 북한은 그 수입선을 서방측으로 바꾸었다.북한에게 원자로관계의 기술과 부품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의 원자력 관련 기업들이다. 신포에 새로 설치된 것은 독일제원자로로 알려져 있다. 수출방법으로는 제3국인 브라질을 경유하여 재수출하는 속임수를 쓰고 있다.실제 지난 90년 독일의 데그사 AG사가 핵무기나 원자로에 사용할 수 있는 미국제품을 불법으로 재수출한 죄로 80만달러의 벌금을 무는 사건이 일어났다.데그사 AG사는 86년 9월 15일부터 87년 10월15일까지 미국제 지르코늄을 배편으로 북한 등 수개국에 재수출했던 것이다. 북한은 이에 앞서 중동국가에 다량의 무기를 판매,핵무기제조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같은 사실들을 입증하듯 북한은 최근 베를린의 암시장을 통해 미사일 제조와 관련된 금수품목을 밀수입했으며 이에 대해 독일·미국·러시아의 정보기관이 극비리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포쿠스 최신호가 독일대외정보국의 보고를 인용,보도했다. 또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도 지난 22일자에서 북한과 이란이 핵무기개발에 관한 비밀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이 잡지는 서방 정보소식통들을 인용,이란은 일본에 있는 목표물까지 명중시킬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도록 북한에 5억달러를 제공하고있으며 그 대신 북한은 이란에 대해 수미상의 핵폭탄과 핵무기공장의 설계도를 판매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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