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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美회담 결렬 이후 바빠진 북·러 ‘밀월 과시’ 접촉 잦아져

    北-美회담 결렬 이후 바빠진 북·러 ‘밀월 과시’ 접촉 잦아져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북한과 러시아와의 밀월이 깊어지고 있다.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4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데 이어 16일에는 러시아 상원 대표단이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17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키슬랴크 러시아 상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날 평양 순안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측과 북핵 문제 해결책 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키슬랴크 부위원장은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키슬랴크 부위원장은 “이번 방북의 목표는 러시아의 우방국이자 대내외적으로 가장 힘든 정책을 다루고 있는 나라와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과 논의할 것이 있고 북한이 원하는 것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 상원 대표단 단장을 맡고 있는 올레그 멜리첸코 의원은 “문화 분야 뿐만 아니라 상당히 무거운 주제도 들고 왔다”고 말했다. 러시아 상원 대표단은 오는 21일까지 북측과 경제 협력 등 양국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14일에는 임천일 부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세르게이 베르쉬닌 외무부 차관을 연달아 만났다. 러시아 외무부는 회동 후 “북한측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활용해 한반도 해법을 강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영재 북한 대외경제상은 지난 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과 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제9차 회의를 열었다. 한만혁 북한 노동당 부부장도 지난 5일 모스크바를 찾아 김일성 주석의 첫 소련 공식 방문 및 북·러 경제·문화 협정 체결 7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하고 러시아 인사들과 만났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하노이 결렬 이후 첫 김정은 메시지는… ‘대미 압박’ 거세질 듯

    하노이 결렬 이후 첫 김정은 메시지는… ‘대미 압박’ 거세질 듯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곧 발표될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관심이 쏠린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처음 발표될 김 위원장의 대외 메시지가 향후 북미 대화의 ‘가늠자’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반응을 살피며 내부적으로 대미 전략을 고심했던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에서 주장했던 비핵화 카드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며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과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강조할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미국이 계속 이런 식으로 신뢰관계가 충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비핵화 신고 및 검증, 폐기를 얘기하면 수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이는 북미 협상이 미국의 높은 비핵화 요구수준으로 인해 틀어졌다는 ‘책임론’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앞서 주장해왔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일부 해제를 맞바꾸는 데 대한 정당성을 되풀이할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충분히 미국의 반응을 살피며 분석한 결과 더는 미국의 입장 변화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현재는 배제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김 위원장이 ‘자력자강’을 내새우면서 계속 언급해왔던 경제 노선 강조를 통해 내부 결속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위원장이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을 다시 한 번 언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일각에서는 동창리 미사일발사장과 산음동 미사일 생산기지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새로운 길’에 대한 가능성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당장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도 여전히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정당성을 강조하며 불씨를 살리고 있고, 최 부상도 “양 최고지도자 간 관계는 여전히 좋다”며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만큼 당장은 이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론 북미가 협상의 판을 완전히 뒤엎지 않는 이상 북한이 과거 노선으로의 회귀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 부상이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고 강조한 만큼 양측 주장의 대치가 장기화되며 판 자체가 깨져버릴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발표는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나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보다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최선희 “미국과 비핵화 협상 중단 고려”…평양에서 기자회견

    최선희 “미국과 비핵화 협상 중단 고려”…평양에서 기자회견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타스통신과 AP통신은 이날 최 부상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최 부상은 미국이 지난달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면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그리고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중단을 유지할지 등을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상은 “미국이 15개월간의 변화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정치적 계산’을 바꾸지 않는 한 회담을 계속하거나 타협할 생각이 없다”며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위원장이 ‘무슨 이유로 이 기차 여행을 다시 해야 하나’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하노이 회담의 결렬에 대해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너무 바빴고 성과를 낼 진정한 의도가 없었다”라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적대감과 불신감을 조성해 북미 최고지도자 간 협상을 위한 건설적인 노력을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최 부상은 2차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모든 제재를 해제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민간 경제에 적용된 제재만을 해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최 부상은 설명했다. 최 부상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것은 회담 결렬 이후 대미 압박을 위한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지금으로서는 회담을 중단하겠다는 사인을 보내면서 미국의 요구 수준을 낮춰 보겠다는 의도”라며 “미국에서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제재완화를 못 하겠다는 메시지를 쏟아내는 만큼 북한으로서는 회담 중단을 경고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 부상이 “두 최고 지도자 간의 관계는 여전히 좋고, 합도 잘 맞다”고 부연한 만큼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최 부상의 발언에 대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DMZ,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문체부 14일 포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1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비무장지대(DMZ) 평화관광 정책 포럼을 연다. 포럼 주제는 비무장지대 평화관광 발전과 지역 특화 방안이다. 포럼은 지난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에 이른 것으로,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자 마련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동북아 관광의 중심, 비무장지대 평화관광’을 주제로 기조 강연 한다. 김영봉 한반도발전연구원 김영봉 원장이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활용과 국제적 브랜딩 방안’을, 이동원 한국관광개발연구원 소장이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비무장지대 평화관광 활성화 사업 방안’을 발표한다. 이어 비무장지대 접경 3개 광역지자체의 지역 연구원인 경기연구원과 강원연구원, 인천연구원에서 지자체별 특화 관광 콘텐츠와 올해 주요 사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포럼에 참가하려면 포럼 사무국에 사전 등록 하면 된다. 전화 혹은 홈페이지(dmzpeaceforum.com)에서 하면 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1920년대 전반, 드디어 조선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의 막을 올렸다. 연쇄극 ‘의리적 구토’로 조선 영화의 첫발을 뗀 1919년부터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 ‘아리랑’이 개봉한 1926년 이전의 시기, 조선 영화계는 어떤 영화들을 만들면서 무성영화 시대를 개척해 갔을까. 주목할 부분은 식민지와 제국 구도에서 조선인들만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 아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국의 정책뿐 아니라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끊임없이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조선의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인 감독의 연출과 조선 사람을 연기하는 조선인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 지점이 조선의 무성영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던 셈이다.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1923), 일본인 흥행사가 제작한 최초의 상업영화 ‘춘향전’(1923),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제작된 ‘장화홍련전’(1924)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무성영화 제작 현장을 살펴보도록 한다.●조선인이 감독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 1923년에 공개된 ‘월하의 맹서’는 온전한 극영화의 형식을 갖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야외의 활극 장면만 영화로 표현했던 이전의 연쇄극과 달리,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모두 필름 촬영으로 소화한 극영화라는 점 그리고 각본, 감독, 출연 모두 조선인의 손으로 이뤄낸 점이다. 당시 언론인이자 연극인으로 활동했던 윤백남(1888~1954)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그가 이끌어 온 민중극단의 단원 이월화, 권일청, 문수일, 송해천 등이 출연했다. 신파극 무대에서 활약하던 이월화(1904~1933)는 이 영화를 통해 조선 영화 최초의 스타 여배우로 등극한다. 한편 영화 매체를 성립시키는 기술 파트까지 조선인이 해결하기는 힘들었는데, 촬영과 편집은 일본인 오타 히토시가 맡았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한 극영화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제작한 계몽영화였다. 다시 말해 영화관용 상업영화가 아니라 당국의 선전영화였다. 1923년 4월 9일 경성호텔에서 처음 상영했고, 이후 순회영사로 각 지역에서 공개되었다. 당시 매일신보 기사는 ‘월하의 맹서’의 분량을 ‘전 2권’, ‘2천척의 긴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이를 상영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33분 정도에 해당한다. 중편 길이의 영화였던 것이다. ‘월하의 맹서’ 제작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의 무성영화는 자본과 기술의 제공, 연출과 배우의 역할이 분리되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제작은 무엇보다 큰 자본이 필요한 작업이고 촬영, 현상 등의 근본적인 기술이 해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인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본, 연출 그리고 출연 영역에서 조선 영화인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렇게 조선 무성영화는 첫발을 뗐다.‘월하의 맹서’ 공개 이전에도, 일본인 영화제작사가 만든 ‘국경’(1923)이 상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리키요 다케마쓰 등 재조선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극동영화구락부가 제작한 영화로, 촬영은 일본에서 온 나리키요 에이가 담당했다. 물론 출연은 박순일 등 조선인 배우들이 맡았다. 이 영화는 중국 국경 지대의 마적을 토벌하는 일본국경수비대의 활약을 묘사한 내용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1923년 1월 13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첫날, 조선인 학생들의 야유로 영화 상영이 중단되었고, 이후 다시 상영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조선공론’의 문예담당 기자 마쓰모토 데루카가 “아무리 영화가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직접적인 야유를 보내 중지시키는 것은 심히 좋지 않은 일이다”고 기록한 것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과격한 반응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학생들 야유로 하루 만에 상영 중단된 ‘국경’ 이 영화의 상영이 하루 만에 중단된 사정을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진다. 조심스러운 추정이지만, 조선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적들이 만주에서 활약하던 무장독립군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관객과 만나지 못한 ‘국경’은 상업영화로서 실패했지만, 조선인 관객들이 영화를 거부한 사건으로 영화사 기록에 남게 되었다. 조선 영화계가 본격적인 상업영화의 시대를 연 것은 일본인 흥행사 하야카와 마스타로가 설립한 동아문화협회의 ‘춘향전’(1923) 그리고 조선인 영화관 단성사가 영화제작을 위해 설립한 촬영부의 ‘장화홍련전’(1924)이 등장하면서이다. 하야카와는 1913년 경성의 일본인 거리에 고가네칸을 설립하며 조선 흥행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조선부업공진회 개최에 맞춰 고전 소설 ‘춘향전’의 영화화를 추진하며, 하야카와 고슈라는 이름으로 직접 연출까지 나섰다. 영화는 전북 남원 현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해 당대 최고의 인기 변사 김조성이 이몽룡으로, 기생 한명옥이 춘향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동아문화협회의 간부였던 김조성이 배우의 역할로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 자본주가 감독에 나선 작품이지만, 조선 고전의 각색과 연출 과정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던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춘향전’은 조선부업공진회가 개최된 1923년 10월 5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해 조선인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18일부터 전북 군산의 군산좌에서, 21일부터 공진회 내의 활동사진관에서 연이어 상영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의 영화관에서 상영된 최초의 상업영화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하야카와는 ‘춘향전’의 성공을 기반으로 1924년 7월 인사동의 조선인 상설관 조선극장을 인수해 단성사의 라이벌로 나섰다.●‘장화홍련전’ 흥행에 日 ‘춘향전’ 재개봉 응수 당시 ‘춘향전’은 “이건 한 개의 슬라이드지, 영화에 대한 몽타주가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선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흥행에 성공하자, 조선 영화계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는 조선 흥행계의 유일한 조선인 경영자였던 박승필 역시 단성사에 촬영부를 만들고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으로 응수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극장 자본이 주도한 영화제작을 넘어 본격적인 영화사 설립이 추동된 점이다. 바로 부산에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였다. 조선인 주도의 영화 제작은 바로 이듬해에 이어졌다. 하야카와의 행보에 자극 받은 단성사의 박승필이 1924년 7월 단성사 내에 촬영부를 설치하고, 역시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을 극영화로 제작했다. 배우는 장화와 홍련 역에 기생 김옥희와 김운자, 원님 역에 인기 변사 우정식을 출연시켰다. 앞선 ‘춘향전’의 성공 요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연출 인력이 보강되었다. 각색은 단성사의 변사로 유명한 김영환이, 감독은 우미관 출신의 영사기사로 단성사의 전체 운영을 맡고 있었던 박정현이 나섰다. 훗날 감독이 되는 이구영도 당시 단성사 직원으로 각본과 연출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무성영화 현장은 지금의 프로듀서와 감독처럼 그 역할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촬영 역시 조선인이 맡았다는 점이다. 조선 최초의 촬영기사로 기록되는 이필우(1897~1978)가 이 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장화홍련전’의 영화사적 의미는 제작, 연출, 출연 그리고 초창기 영화매체의 가장 중요한 성립 조건인 기술에서도 전부 조선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경성 천지의 키네마 팬이 한결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장화홍련전’이 1924년 9월 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자 조선에 영화상설관이 생긴 이후로 처음 맞는 대성황을 이뤘고, 이에 하야카와의 조선극장은 ‘춘향전’의 재개봉으로 응수한다. 이후 동아문화협회는 하야카와가 다시 감독으로 나선 ‘비련의 곡’(1924), 김조성이 감독으로 나선 ‘흥부놀부전’(1925)을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후, 경영난으로 해산했다. ●무성영화 개척해 간 조선영화인들 초창기 조선 영화계에서 극장의 산하가 아닌, 영화제작사로 처음 등장한 조직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다. 1924년 7월 11일 일본인 사업가들에 의해 부산에서 설립됐다. 촬영소는 복병산에 있던 러시아 영사관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했고, 회사의 중심인물은 부산 묘각사 주지였던 승려 다카사 간초였다. 그는 왕필렬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회사 창립작 ‘해의 비곡’(1924)과 원제가 ‘암광’이었던 ‘신의 장’(1925), ‘동네의 호걸’(1925)을 직접 연출했다. 촬영기사는 작품마다 일본에서 불러왔다. 동아문화협회에서 김조성의 역할처럼,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도 조선 영화인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무성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경손, 안종화 등 당시 무대예술연구회 단원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해의 비곡’의 경우 안종화, 이월화, 이채전 등 조선인 배우들이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이경손이 조감독을 맡았다. 실질적인 감독 역할이었다. 규모를 키운 2회작 ‘운영전’에서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윤백남이 감독으로 초빙되었다. 조선키네마 역시 조선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가담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한편 무성영화의 스타 나운규가 조선키네마의 연구생이던 당시 ‘운영전’에서 처음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1923년부터 1925년까지의 무성영화 전기에 모두 12편의 조선 영화가 제작되었다. 1923년 2편, 1924년 3편, 1925년 7편이다. 이 작품들 중 다수는 일본인 제작자가 만들고 연출도 겸했다. 그리고 그 제작 현장에서 조선인 감독과 기술 스태프들이 성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단성사가 제작한 ‘장화홍련전’처럼 연출과 출연은 물론이고, 조선인 촬영기사가 전면에 나선 작품도 있었다. 이처럼 무성영화 시기, 제작, 연출 그리고 촬영 등의 기술 파트에서 일본인과 조선 영화인이 만들어내는 도제, 경합, 협업 등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10명 중 7명 “北미사일 안 쏠 것”… “북미협상 곧 재개 vs 지연” 갈려

    10명 중 7명 “北미사일 안 쏠 것”… “북미협상 곧 재개 vs 지연” 갈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안갯속을 헤매는 형국이다. 특히 북한 동창리 장거리미사일 발사장의 복구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10일 북핵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 10명에게 긴급 설문조사를 통해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과 북미 관계 파국 가능성, 재협상 및 3차 북미 정상회담 예상 시점, 비핵화 빅딜 예상 내용 등 4가지를 물었다. 그 결과 10명 중 7명이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밝혔다. 10명 중 5명이 이르면 한두 달 안에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낙관했으며 올 하반기 재개 등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은 2명이었다. 다른 2명은 협상이 장기간 교착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3차 북미 정상회담 시점은 이르면 다음달 개최를 예상한 시각도 1명 있었으나 다수는 올 하반기나 내년 봄 등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상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은 2명이었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북미 양측은 포괄적 로드맵에 합의한 뒤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는 예상이 다수였다.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 가능성은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북한이 회담 결렬 책임을 다 져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강화에 동참하고, 미국에서 군사 옵션이 나오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시위는 할 수 있어도 미사일 도발을 재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대화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지 않는 이상 북한이 지금 미사일·로켓 시험 발사로 협상의 판을 깰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반면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협상의 판을 깨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 대한 압박 수준을 최대로 높인 뒤 협상을 재개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수단으로 미사일·로켓 시험 발사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북미 관계, 파국으로 가나 재협상 복귀하나 전문가 대부분은 북미가 2차 회담 결렬 이후에도 대화 기조는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협상 재개 시점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수주 안에 협상하기를 희망한다고 한 것은 대화의 동력이 상실될까 우려한 것”이라면서 “북한도 다음달 경제건설 집중노선으로의 전환과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성과를 내야 하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는 만큼 대화의 동력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미가 3월 말에는 대화 재개의 시점을 찾고 4월에는 어떤 형태로든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협상을 바로 하기엔 준비가 안 돼 있기에 북중 관계를 진전시키며 중장기 대책을 수립하려 할 것”이라며 “시진핑 국가주석이 다음달 조기에 방북을 한다면 5~6월쯤 북미 협상이 재개될 수 있지만, 시 주석의 방북이 늦어진다면 북미 협상도 뒤로 밀릴 것”이라고 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미 협상이나 정상회담 재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보다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달렸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에 대해 진정성을 더 보여 주지 않는 한 협상으로 가는 길은 멀다”고 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예상 시점은 2차 회담에서 최고지도자 간 담판에 의한 톱다운 방식의 한계가 노출됐기에 시간이 걸릴 거라는 예상이 다수였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2차 회담에서 초조함을 노출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밀린 인상을 준 만큼 북한도 톱다운 방식의 기조를 유지할지 검토할 것”이라며 “북미 모두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충실한 실무 협상을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북한은 북미 회담 결렬 언급은 자제하면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복구하는 상반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북미 협상을 재개할지 새로운 길을 택할지를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결정할 것”이라며 “3차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고, 김 위원장을 만나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임을출 교수는 “김 위원장이 베트남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을 보이는 등 조속한 협상 재개를 미국에 압박하는 모습”이라며 “북한은 4월 안에 협상을 재개하고 최대한 조속히 3차 정상회담을 하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 ●3차 회담 북미 비핵화 빅딜 내용 예상 홍민 실장은 “북미가 비핵화 조치의 첫 단계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서 전체 핵물질 시설의 폐기에 합의하되, 폐기 이행은 영변 핵시설부터 해서 단계적으로 하려 할 수 있다”며 “북미가 서로의 체면을 세워 주는 방식으로 합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국이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만큼 3차 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 외에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등이 논의될 것”이라며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 추가 우라늄농축시설 폐기를 받는 대신 2차 회담에서 해제를 요구한 5개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중 의류 수출 금지 등 민생경제와 밀접한 두세 개만 해제해 달라고 하거나, 정유제품 수입 90% 차단 조치를 50% 차단으로 완화해 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김열수 실장도 “북한은 영변 외 추가 핵시설을 폐기, 미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품목별로 해제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며 “결의 전체를 해제하기보다는 북한의 수출이 금지된 석탄, 철광석, 수산물을 품목별로 차례대로 해제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만하다”고 했다. 반면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야당인 민주당 등 조야 전체가 한목소리로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기에 입장을 바꾸기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재선을 앞두고 큰 배팅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북한이 미국과 합의를 하려면 미국이 요구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 외 플러스 알파 조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황제의 옥새2]충신 다 쫒겨난 조선...정해진 망국의 운명

    [황제의 옥새2]충신 다 쫒겨난 조선...정해진 망국의 운명

    올해는 3·1운동 발발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서울신문은 100주년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인을 위해 기꺼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앞서 나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직전 단행한 첫 번째 모험 때 조선 황제(고종)와 함께 한강에서 요트로 한반도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황제가 탈출 직전 마음을 바꿨다. 도착 예정지인 중국 상하이의 러시아 피난처(당시 러시아 비밀정보기관인 ‘상하이 서비스’로 추정)에는 나와 소녀(이 소설의 전편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 등장한 러시아 스파이)만 가게 됐다. 러시아의 거물급 정치인(당시 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이 그녀에게 내린 비밀 임무는 수포로 돌아갔다. (번역자주: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서 주인공인 빌리와 베델, 소녀는 러시아 정보당국의 도움을 받아 고종을 중국으로 망명시키려고 합니다.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는 러시아 기밀 문서가 공개돼 최근에야 세상에 알려진 극비 사안입니다. 100여년 전 작가는 조선에 직접 와서 베델을 취재해 소설을 썼습니다. 아마도 베델은 러시아가 추진하던 고종 망명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하이에 머물던 나는 마음 속에서 타오르던 무모한 충동에 이끌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일제가 나를 어떻게 대할 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일본은 나에게 아무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일본 총독은 조선 황제의 대담한 탈출 작전에 내가 관여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이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 조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공식적으로 나를 잡아 가두기보다는 어느 날 어둠 속에서 내 등에 칼을 꽂아 조용히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추론이 더 정확한 판단이겠지...나는 일본인들의 감시 속에서도 서울에서 나름 즐겁고 활기차게 지냈다. 밤에도 혼자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 강철로 된 셔츠가 내 몸 전체를 휘감고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 내 모습이 옛날 그리스의 독립운동가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1792~1828) 같다고 여겼다. (번역자주: 입실란티스는 그리스의 혁명 지도자로 러시아의 장군이었지만 고국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1821년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8년 뒤인 1829년 그리스는 오스만 투르크에게서 해방됐습니다.) 조선 황제를 은밀히 도피시키려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지 2년쯤 지난 1907년 여름이었다. 먼지로 뒤덮힌 서울의 최고 지도자는 이토 히로부미(1841~1909) 후작이었다. 일본은 만여명의 총검으로 조선을 손쉽게 점령했다. 불쌍한 황제는 왕궁(덕수궁)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는 하기와라(당시 일본 공사관원으로 훗날 외무성 통상국장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1868~1911)의 허락 없이는 재채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세였다. 왕자(순종·1874~1926)는 한 나라를 감당하기에 너무 나약했다. 그는 내전(內殿·왕비가 거쳐하던 곳)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바둑으로 시간을 보냈다. 나라를 위해 고민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조선을 구하려던 충신들은 모두 쫓겨났다. 남은 신하들은 녹봉만 잘 챙겨주면 됐다. 이들에게 조선의 흥망은 관심이 아니었다. 신하들은 일본인들의 명령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서울을 지키던 대한제국의 군대는 탄약이 들어가지 않는 소총과 약실이 없는 포를 부여잡고 힘겹게 버텼다. 일본인들은 이런 군대를 대놓고 비웃곤 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커튼을 걷어내고 새로운 무대를 올릴 준비가 돼 있었다. 아...안타깝지만 대한제국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본은 자신이 원할 때 언제라도 황제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일제의 음모는 마치 또아리를 튼 독사처럼 500년 역사의 암물한 왕좌를 휘감고 있었다. ‘황제의 옥새’는 3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열린세상] “기회를 놓쳤는가?”/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기회를 놓쳤는가?”/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1997년 여름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는 베트남전쟁 당시 책임자들이 종전 20년 후 전쟁 회피나 조기 종전 등의 기회가 있었나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이 대화 이름은 ‘기회를 놓쳤는가?’(Missed Opportunities)였다. ‘하노이 대화’ 참가자들은 ‘놓쳐 버린 기회’를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무지와 오해 탓이었다고 동의했다. ‘하노이 대화’가 열렸던 그 호텔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지난 2월 말 개최됐다. 또 20년 만이다.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여 긴 터널을 빠져나와 북미 정상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것이란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아무런 합의도 못 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회동 끝에 웃었다는 사진에 대화의 틀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라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좋지 않다. 하노이 정상회담 전 북한의 김혁철과 미국의 비건 간 실무회담이 워싱턴과 평양에서 각각 진행됐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북한과 미국 모두 ‘플러스 알파’를 원했다. 북한은 영변 폐기의 상응 조치로 제재 해제를 원했다. 반면 미국은 영변 이상을 요구했다. 영변과 제재에 대한 상호 가치평가에 극명한 차이가 존재해 교집합을 만들기 어려웠다. 북한이 영변 전체의 완전한 폐기를 약속했다면 미국은 자신이 줄 수 있는 상응 조치를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을 넘어선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강요만하면서 ‘북한의 완전한 제재 해제 요구 때문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북한에 책임을 전가하는 대국답지 못한 옹졸함을 보였다. 실무회담에서 사전 논의와 조율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문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시점이 궁금하다. 그저 코언 청문회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노이 이후를 걱정한 미국 국내 정치적 변수가 트럼프의 결정에 너무 일찍 작동해 버린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가 싱가포르 합의부터 무언가 잘못됐고, 북미 협상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다면 상황을 리셋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접근 방식을 무력화하면서 과거 선 핵폐기 후 보상과는 차별화된 포괄적 동시병행적 접근 의도를 드러냈고 있다. 거기에 북한이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 조급함과 제재에 굴복해 핵을 포기하는 모순된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북한의 약점을 간파하고 ‘협상 테이블 박차고 일어나기’를 통해 북미 협상의 판을 뒤집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노딜’은 예정된 결과였다. 북한이 발가벗기 전에는 하노이에서 기회조차 없었다. 미국은 싱가포르 이전인 5월 말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와 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한 다음날로 시계를 되돌리려는 것일까. 트럼프는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더이상 하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또 하노이 합의 불발에도 한미 연합훈련 변경 및 축소를 한 것은 2016년과 2017년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던 위기 상황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대화의 틀은 유지하면서 판 깨기 위협으로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의 기술이라면 그 효과가 사라지기 전 미국은 북미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선언에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폐기를 명문화한 만큼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려고 할 것이다. 남북도 지난해 5월로 시간표가 되돌려져서는 안 된다. 우리 곁에 찾아온 평화는 저절로 찾아온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에 대해 현실적이고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3자가 아닌 당자자로, 또 일방이 아니 쌍방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미국에서 폐기도 안 한 동창리를 복구·재건한다느니 미사일 생산 시설인 산음동에서 움직임이 보인다는 등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로 북한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을 우리 정보 당국까지 나서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중재자의 모습인지 묻고 싶다. 하노이에서 북한과 미국에 ‘기회를 놓쳤는가?’라고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중재의 기회를 혹시 놓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 팀스피릿 재개·1차 북핵위기 때와 달라…한미 ‘대북 협상’ 의지

    팀스피릿 재개·1차 북핵위기 때와 달라…한미 ‘대북 협상’ 의지

    92년 첫 비핵화 공동선언 서명했지만 北 플루토늄 축소 의혹으로 정세 불안정 하노이 노딜로 北강경론 회귀 우려 커 훈련 다시 진행해 압박 하던 방식 탈피 발빠른 유화 조치로 상황 관리 나서한미 국방 당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소득 없이 마무리됐음에도 연례 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 연습과 독수리 훈련(FE)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과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틀어졌을 때 한미가 중단했던 연합훈련을 재개하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했던 것과 상반된 조치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강력히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실례로 사실상 첫 북한 비핵화 협상이 한창이던 1992년 한미는 대규모 연합훈련인 ‘팀스피릿’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고, 외무성 성명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 사찰을 수용했다. 하지만 IAEA의 핵사찰에서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량을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북한이 반발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자 한미는 1993년 3월 팀스피릿을 재개했다. 이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IAEA 안전조치협정 파기로 ‘1차 북핵 위기’를 불러 일으키며 동북아 정세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일각에서는 만약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가 없을 경우 미측이 연합훈련 정상 실시를 카드로 꺼내며 북한을 더욱 압박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다. 하지만 한미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결렬됐음에도 이틀 만에 연합훈련 종료를 ‘통 크게’ 결정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에 좌절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군사적 강경론으로 돌아서는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미국이 신속하게 연합훈련 폐기라는 유화조치를 선제적으로 내민 것 같다”면서 “북한의 강경론 회귀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실패로 규정되는 만큼 미국은 하노이선언 결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적대구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셈”이라고 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미가 여전히 미사일·핵 실험의 유예와 연합훈련의 유예는 상호 유효하며 서로 현재의 판을 완전히 깨려고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북미 ‘노딜’에도 한미 연합훈련 종료…미, 협상 불씨 살리기

    북미 ‘노딜’에도 한미 연합훈련 종료…미, 협상 불씨 살리기

    한미 국방 당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소득 없이 마무리됐음에도 연례 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 연습과 독수리 훈련(FE)을 폐기하기로 3일 결정했다. 이는 과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틀어졌을 때 한미가 중단했던 연합훈련을 재개하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했던 것과 상반된 조치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강력히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실례로 사실상 첫 북한 비핵화 협상이 한창이던 1992년 한미는 대규모 연합훈련인 ‘팀스피릿’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고, 외무성 성명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 사찰을 수용했다. 하지만 IAEA의 핵사찰에서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량을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북한이 반발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자 한미는 1993년 3월 팀스피릿을 재개했다. 이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IAEA 안전조치협정 파기로 ‘1차 북핵 위기’를 불러 일으키며 동북아 정세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일각에서는 만약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가 없을 경우 미측이 연합훈련 정상실시를 카드로 꺼내며 북한을 더욱 압박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다. 하지만 한미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결렬됐음에도 이틀 만에 연합훈련 종료를 ‘통크게’ 결정한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 결렬에 좌절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군사적 강경론으로 돌아서는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미국이 신속하게 연합훈련 폐기라는 유화조치를 선제적으로 내민 것 같다”면서 “북한의 강경론 회귀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실패로 규정되는 만큼 미국은 하노이 선언 결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적대구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셈”이라고 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과의 관계가 여전히 좋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김 위원장이 핵실험이나 미사일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한 바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 결렬에도 완전히 처음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 여전히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북미가 여전히 미사일·핵 실험의 유예와 연합훈련의 유예는 상호 유효하며 서로 현재의 판을 완전히 깨려고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현대글로비스, 전세계 64개 거점 운영… 글로벌 물류 영토 확대

    현대글로비스, 전세계 64개 거점 운영… 글로벌 물류 영토 확대

    현대글로비스가 적극적인 글로벌 물류 영토 확대에 나서고 있다. 신흥시장에 지속해서 신규 거점을 설립하며 현지 신흥 물류시장에 진출, 미래 성장을 담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해외법인, 지사, 사무소 등 유기적으로 연결된 64개의 해외 거점을 운영하며 촘촘한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7월에 싱가포르 지사를, 올해 1월에는 중국 선전(深) 지사를 신규 거점으로 설립했다. 잠재력이 높은 아시아 국가에 주요 거점을 설립해 점차적으로 글로벌 물류 영토를 늘려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먼저 싱가포르 지사는 해운 벌크선 사업을 비롯해 육상 및 해상 물류와 연계한 트레이딩 사업을 수행한다. 현대글로비스는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 460억 달러(약 52조 원)에 이르는 아시아·태평양 이머징마켓 3자 물류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다. 중국 광둥성의 무역 중심지인 선전시에 설립된 현대글로비스 선전 지사 또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러시아에도 신규 거점을 마련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무소를 설립하고 극동 교두보를 확보했다. TSR을 활용하는 기존 화물의 운송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동아시아 지역 영업을 강화해 새로운 화주를 발굴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북미, 北지역 유해 공동발굴 합의 가능성

    북한과 미국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 지역에 묻힌 6·25전쟁 미군 전사자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군 유해송환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미가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하면 2005년 이후 14년 만에 유해발굴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주요 격전지였던 함경남도 장진읍과 신흥리, 평안북도 운산군과 구장읍, 계천시 등지에서 공동 유해발굴을 진행하며 모두 229구의 미군 유해를 수습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군 유해송환에 합의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제재 완화와 맞물려 유해송환 문제를 더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해송환 문제는 제재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은 1990~2007년 미군 유해발굴 비용으로 북한에 유해 1구당 5만 691달러 등 총 2200만 달러를 지불한 바 있다. 북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하면 미국 장비의 대북 반입과 미 정부의 발굴비용 지불 등을 위한 대북 제재 예외 인정도 무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영변外 핵동결 vs 남북경협용 제재 완화…담판 테이블 오른다

    영변外 핵동결 vs 남북경협용 제재 완화…담판 테이블 오른다

    北 비핵화 조치로 영변시설 동결·폐기 美 상응조치로 연락소·종전선언 담아 ICBM 동결·금강산 재개 포함 여부 촉각 영변 불능화· 제재 완화 수준 결정 안 돼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약식 단독회담을 시작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돌입한 가운데 28일 발표될 하노이 공동선언의 초안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안에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에서 합의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등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호 이행해야 할 조치들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비핵화 조치 중엔 영변 핵시설 동결·폐기가, 미국의 상응조치 중엔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와 종전선언이 초안에 확실히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북한의 플러스알파 비핵화 조치로 영변 외 우라늄 및 플루토늄 생산 시설의 동결·폐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의 동결·폐기가 포함됐는지 관심이다. 이 중에서도 미국은 ICBM 동결·폐기를 최종 선언문에 담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핵물질 생산의 중단을 의미하는 영변 핵시설 동결이 중요하지만, 미국 국민은 용어부터 생소한 우라늄·플루토늄 생산 시설의 동결보다는 당장 자신의 집 앞에 미사일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에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서는 ICBM 동결이 더 유용하다”고 했다. 북한은 미국의 플러스알파 조치 요구를 받는 대신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협 사업에 대한 대북 제재 완화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자 대북 제재 일부 면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한미연합군사훈련 축소·중단,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가 북한 비핵화 조치의 초기 단계로 영변 핵시설 동결·폐기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더라도, 구체적인 동결·폐기의 시기와 수준 나아가 초기 단계에 영변 외 시설의 동결도 포함할지 여부는 정상 간 담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미가 이미 실무협상에서 초기 단계에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로 무엇을 할지는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초기 단계에 영변 핵시설 동결까지만 포함할지, 동결을 넘어 불능화까지 포함할지, 동결 또는 불능화의 시점은 언제로 할지, 그리고 동결 또는 불능화 시점에 맞춰 대북 제재 완화는 어느 정도까지 추진할지는 두 정상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했다.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66시간 이동·정상국가 과시한 김정은… 北복귀는 열차? 항공?

    ‘참매1호’ 이용 땐 4시간 만에 평양 복귀 1차 회담처럼 시간 두고 북중 만날 수도 전용열차 편으로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복귀 방식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면 똑같은 방식으로 열차를 이용할지 또는 항공편을 이용해 복귀할지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아직 확실한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우선 김 위원장의 복귀는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용열차를 선택함으로써 김 위원장이 당초 의도했던 목표는 모두 이뤘다는 이유에서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북한은 열차행을 선택함으로써 정상회담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체제 안정에 대한 자신감 등 대외적으로 보여 주고 싶은 효과를 모두 누렸을 것”이라며 “따라서 열차 이용에 대한 메리트가 없어진 상황에서 굳이 장시간이 걸리는 열차행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장장 4500㎞의 거리를 66시간을 열차로 이동하며 ‘정상국가’의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때문에 ‘참매1호’를 이용하면 4시간 만에 평양으로 복귀할 수 있어 항공편 이용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매1호의 비행 범위에 있는 장소에서의 회담 개최를 요구해 온 것으로도 알려졌다. 반면 김 위원장이 다시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중이 지난 1월 ‘전략적 소통강화’를 약속한 만큼 회담 결과가 좋으면 당연히 만나 결과를 설명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에 열차를 이용하며 중국이 제공한 편의에 대해 감사 인사를 표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한이 오가는 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것은 주권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인 만큼 열차로 귀환하더라도 베이징을 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에도 평양으로 복귀한 뒤 같은 달 19일에 북중 정상회담을 했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장갑차·소형 헬기 탑재설까지… 없는 것 없다는 ‘1호 열차’

    장갑차·소형 헬기 탑재설까지… 없는 것 없다는 ‘1호 열차’

    “하노이 회담용 방탄차·탈출용 차량 구비첨단 기기 많아지고 집무실엔 세계지도 노래방 기기부터 의료 시설까지 다양”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까지 항공기 대신 특별전용열차로 ‘60시간 대장정’을 택하면서 소위 ‘1호 열차’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통상 열차보다 천천히 움직이지만 의료·회의·오락시설을 다양하게 갖춰 김 위원장이 2박 3일의 여정에서 지루할 틈이 없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소식통은 25일 “북한 주민은 1호 열차에 박격포나 장갑차뿐 아니라 소형 헬기까지 실렸을 거란 얘기를 한다”며 “내부의 기본 모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첨단 기기가 많아졌다고 들었고, 집무실에 세계지도가 걸린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사정상 열차에 실을 정도의 소형 헬기 탑재는 힘들지만 장갑차는 탑재됐다는 시각이 많다. 또 하노이 회담에서 이용할 전용 방탄차와 긴급 상황 시 이용할 탈출용 차량(벤츠)도 구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탄 기능을 위해 바닥에도 철판이 깔렸고, 경호는 호위사령부가 맡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국무위원장이 사용하는 회의실에는 위성항법시스템과 벽걸이 텔레비전, 위성전화 등 첨단 장비가 설치돼 있고 집무실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평양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최고속력은 시속 180㎞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하노이행에서는 장거리인 데다 안락한 탑승감을 유지하려는 듯 시속 60~7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스위스 등 각국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식당과 연회실도 있다. 김 위원장이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최고급 샴페인, 코냑, 스위스 치즈 등도 구비한 것으로 보인다. 응급 수술이 가능한 의료 시설도 탑재돼 있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24일간 동행한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전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2001년에 영화 감상이 가능한 대형 텔레비전, 노래방 기기, 위성항법시스템 등을 갖췄다고 전한 바 있다. 북한은 전용열차를 위한 객차만 90대가량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에서는 지뢰 탐지 등을 위해 3대의 기차가 동시에 움직이지만 해외 순방 때는 1대만 움직인다. 객실은 종업원만 4000명이 넘는 평양시 김종태전기기관차종합기업소에서 자체 제작하며 수시로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김 위원장의 방중 때 공개된 집무 객차는 분홍색 소파로 바뀌었다. 책상 뒤에는 LED 화면이 장착돼 있었다. 당시 이 화면에 아시아 지도를 노출시킨 게 포착되기도 했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金, 조기 집권·경쟁자 제거로 체제 안정 자신감

    金, 조기 집권·경쟁자 제거로 체제 안정 자신감

    유학 경험… ‘정상국가 지도자’ 욕구 커 평양 공백은 최룡해·김영남 등 메울 듯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거침없는 행보를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전 주석과 아버지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우선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4500㎞를 열차로 간 것은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과거 김일성은 1958년과 1964년 두 차례 베트남을 방문할 때 중국까지 열차를 타고 간 뒤 비행기로 환승해 베트남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이 해외 방문 일정을 평양 출발 직후 버젓이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북한은 김 위원장 출발 직후 일정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번엔 열차 여행으로 1차 회담 때보다 2배 이상 더 긴 시간 평양을 비우는 점을 감안하면 평양 부재 시 권력 공백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확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김정일이 중국 등 외국을 방문한 뒤 평양에 돌아오고 나서야 순방 사실을 공개한 점과 비교하면 훨씬 대담한 행보인 셈이다. 김 위원장의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젊은 데다 조기에 북한 내 경쟁자를 두루 제거한 데서 오는 자신감의 발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김정일은 젊은 시절 내내 김일성의 그늘에 가려 있다가 김일성이 사망한 50대가 돼서야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다. 또 김 위원장이 김정일과 달리 청소년기를 유럽(스위스)에서 지낸 것도 정상국가 지도자처럼 보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자리를 오랫동안 비운다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인적, 조직적 정비를 통해 체제 안정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평양을 비우는 동안 권력 공백은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메울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도 평양에 남았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도 김 위원장을 따라가지 않았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장갑차·소형 헬기 탑재설까지… 없는 것 없다는 ‘1호 열차’

    장갑차·소형 헬기 탑재설까지… 없는 것 없다는 ‘1호 열차’

    “하노이 회담용 방탄차·탈출용 차량 구비 첨단 기기 많아지고 집무실엔 세계지도 노래방 기기부터 의료 시설까지 다양”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까지 항공기 대신 특별전용열차로 ‘60시간 대장정’을 택하면서 소위 ‘1호 열차’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통상 열차보다 천천히 움직이지만 의료·회의·오락시설을 다양하게 갖춰 김 위원장이 2박 3일의 여정에서 지루할 틈이 없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소식통은 25일 “북한 주민은 1호 열차에 박격포나 장갑차뿐 아니라 소형 헬기까지 실렸을 거란 얘기를 한다”며 “내부의 기본 모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첨단 기기가 많아졌다고 들었고, 집무실에 세계지도가 걸린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사정상 열차에 실을 정도의 소형 헬기 탑재는 힘들지만 장갑차는 탑재됐다는 시각이 많다. 또 하노이 회담에서 이용할 전용 방탄차와 긴급 상황 시 이용할 탈출용 차량(벤츠)도 구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탄 기능을 위해 바닥에도 철판이 깔렸고, 경호는 호위사령부가 맡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국무위원장이 사용하는 회의실에는 위성항법시스템과 벽걸이 텔레비전, 위성전화 등 첨단 장비가 설치돼 있고 집무실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평양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최고속력은 시속 180㎞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하노이행에서는 장거리인 데다 안락한 탑승감을 유지하려는 듯 시속 60~7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스위스 등 각국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식당과 연회실도 있다. 김 위원장이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최고급 샴페인, 코냑, 스위스 치즈 등도 구비한 것으로 보인다. 응급 수술이 가능한 의료 시설도 탑재돼 있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24일간 동행한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전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2001년에 영화 감상이 가능한 대형 텔레비전, 노래방 기기, 위성항법시스템 등을 갖췄다고 전한 바 있다. 북한은 전용열차를 위한 객차만 90대가량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에서는 지뢰 탐지 등을 위해 3대의 기차가 동시에 움직이지만 해외 순방 때는 1대만 움직인다. 객실은 종업원만 4000명이 넘는 평양시 김종태전기기관차종합기업소에서 자체 제작하며 수시로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김 위원장의 방중 때 공개된 집무 객차는 분홍색 소파로 바뀌었다. 책상 뒤에는 LED 화면이 장착돼 있었다. 당시 이 화면에 아시아 지도를 노출시킨 게 포착되기도 했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정은 열흘 이상 부재, 평양은 집단운영체제 실험중?

    김정은 열흘 이상 부재, 평양은 집단운영체제 실험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부재 기간이 최대 열흘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취임 이후 최장 기간 집을 비우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그만큼 집권체제를 안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내치에도 자신이 붙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따라서 현재 평양은 소위 ‘2인자 통치’보다 ‘권력 분산형 집단 통치 시스템’이 작동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23일 4시 30분쯤 평양을 출발해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丹東)을 지났고, 25일 오후 1시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를 통과하며 중국 대륙을 종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26일 오전에 베트남 북부 랑선성 동당역에서 모습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편도만 3박 4일간 약 60시간에 걸친 대장정이다. 김 위원장은 26일 동당역에서 전용방탄차로 갈아 타고 하노이에 도착할 전망이다. 중국, 북한, 베트남 등의 열차 궤도는 같지만 베트남 철로는 상대적으로 노후화가 진행된 상태다. 차량을 이용하면 삼성전자가 있는 박닌성의 첨단공업단지인 옌퐁 공단도 둘러볼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오는 27~28일에 열린다. 이후 항공기 편으로 귀국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해 3월에 열차편으로 7년만에 베이징을 왕복했던 선례를 감안하면 역시 열차편 귀국이 유력하다. 특히 김 위원장에게 열차 이용은 상대국에 대해 우호관계를 재확인하는 수단이다. 회담 이후 바로 출발해도 3박 4일간 돌아가면 3월 3일에야 평양에 도착하기 때문에 9일간의 공백이 발생한다. 만일 귀국편에 경제시찰을 겸한다면 열흘 이상 평양을 비울 수도 있다. 하노이 현지에서도 3월 2일까지 김 위원장이 머무르며 110㎞쯤 떨어진 베트남 북부 최대 항구 도시인 하이퐁에서 산업단지를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이 대거 몰려 있고, 베트남의 첫 완성차 업체 ‘빈 패스트’(Vinfast) 공장이 있다. 중국 광저우도 유력한 후보지다. 첨단공업 전문가 출신으로 북한의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오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의 이번 수행단에 새로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표면적으로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리더십 공백을 메우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이 분산돼 있을 것으로 봤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외형상으로는 2인자격인 최 부위원장이 나설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통치 그룹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공식적으로 내각 총리는 박봉주, 국가원수는 김영남 최고인민위 부위원장이지만 공식 직함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최 부위원장이 중심이지만 단독 통치보다는 집단 통치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김 위원장이 본인의 부재시 권력을 분산할 수 있을 정도로 체제를 안정시켰기 때문에 장기간 외유를 택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당에 있는 조직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검열이나 감시를 맡는 부서들이 포진돼 있으며, 국무위원회 쪽에도 무게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서울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100년 전 美대통령에 독립선언서 보낸 재미교포들

    100년 전 美대통령에 독립선언서 보낸 재미교포들

    미 특파원 출신 한미클럽 자료 4건 공개 샌프란시스코 대한인국민회, 서한 발송 日 조약 위반, 3·1운동 상황 생생히 전달 1919년 3·1운동 직후 재미 교포들이 우드로 윌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영문 독립선언서를 보냈고, 미 국무부가 이를 공식 회람한 사실을 보여 주는 미 외교문서가 100년 만에 발견됐다. 주미 특파원 출신 언론인 모임인 한미클럽은 24일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제임스 퍼슨 교수의 도움을 받아 3·1운동 관련 외교문서 4건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외교문서는 재미 교포들이 윌슨 전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과 독립선언문, 당시 상황을 기록한 국무부 외교문서, 조선총독부 공식보고서를 다룬 미 신문 기사 등이다. 특히 당시 샌프란시스코 대한인국민회가 윌슨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과 여기에 첨부된 독립선언문 영문본이 눈길을 끈다. 1919년 3월 27일에 작성된 이 서한은 같은 해 6월 3일 국무부 극동과에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독립선언문 영문본이 윌슨 전 대통령에게 발송됐으며, 미 정부가 이를 공식 접수해 회람한 사실이 100년 만에 처음 밝혀진 것이다. 서한은 당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을 맡았던 이대위(영문명 데이비드 리·1879∼1928) 선생의 이름으로 작성됐다. 대한인국민회는 서한에서 “회원 150만명과 한국인 2000만을 대표하는 단체”라면서 “일본의 엄중한 조약 위반으로 한국은 독립국 지위를 잃었다. 이는 한국인들의 기대와 열망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한은 이어 “일본은 경제·정치·종교적으로 무자비한 탄압 정책을 이어 가고 있다”면서 “한국 민족을 말살하고 일본과 동화시키려고 한다”고 폭로했다. 서한은 특히 일제의 한국어 사용 금지 정책과 토지 몰수, 한국인의 공직 금지, 일황 숭배 강요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같이 발굴된 국무부 외교문서는 3·1운동 상황과 일제의 무차별적 진압, 3월 5일 평양 내 움직임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문서에는 “수천명의 성인 남녀와 남녀 학생들이 낡은 종이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면서 “진압에 나선 일본 경찰과 군인들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때렸다”고 3·1운동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또 일본 도쿄 주재 미 특파원이 보도한 3월 8일자 미 신문 기사는 조선총독부의 공식 발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3·1운동에서 여학생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미클럽 관계자는 “앞으로도 퍼슨 교수의 지원을 받아 3·1운동 관련 외교문서를 추가로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미국 내 북한 전문가가 전망한 북미 정상회담 결과물은

    미국 내 북한 전문가가 전망한 북미 정상회담 결과물은

    미국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를 운영하는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물로 미국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해 한국이 추진하는 경제프로그램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위트 수석연구원은 22일 서울 종로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 전망’ 주제 초청 세미나에서 “상당한 비핵화 조치가 합의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진전 시 대북제재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위트 수석연구원은 이른바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질문에 “나는 (김정은이) 비핵화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 협상이 미국의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북미 대화가 개시된 뒤에도 북한이 핵 개발 등을 지속하고 있다는 일부 미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핵 군축 협상을 언급하며 “미국과 소련도 군축을 논의하는 동안 무기 개발을 지속했다”며 “어떤 나라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인 기대치’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하며 “우리가 많은 걸 이루지 못해도 그래도 전보다는 많은 걸 이뤘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이른바 ‘스몰딜’과 관련해서도 “(이번 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합의 정도만 도출해도 한국과 일본의 국익에도 부합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만으로 (비핵화 협상이) 끝났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십년간 이어진 북미 간 적대관계 등을 고려하면 ‘하룻밤 사이’ 모든 걸 해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러면서도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프로세스 이행 과정에서 핵시설 해체의 세부 방안 등 ‘디테일’을 조율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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