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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계 ‘대안공간’으로 활로

    국내의 대표적인 메이저 화랑들이 대관화랑으로 이전하거나 레스토랑 등으로 ‘용도변경’을 하는 등 불황을 겪고 있는 미술가에 대안적 성격의 미술공간이 잇따라 생겨 관심을 모으고 있다.대안공간(alternative space)은 1960년대 말 미국 뉴욕의 작가들이 운영했던 비영리 공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초기에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집결지 역할을 했으며 70년대 들어 더욱 활성화됐다.대안공간은 지금도 비주류 미술이나 실험미술의 후원자이자 신진 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내의 대안공간으로는 지난 2월 초 홍익대 입구 극동방송국 옆에 ‘루프’가 처음 등장했고 3월 말 종로구 관훈동 화랑중심가에 60여평 규모의 ‘풀’이 문을 열었다.또 올 가을에는 관훈동 사루비아 다방 자리에 ‘제3의 대안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루프’는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출신의 젊은 작가 박완철·서진석·송원선·신용식 등 4명이 뜻을 모아 세운 공간.대관료 없이 작가와 작품을 미리 선별해 ‘좋은 작품만 전시한다’는 방침이다.좋은작품이란 젊은 작가의 새롭고 신선한 작품을 말한다.갤러리 안에 카페 공간과 세미나실,영상시설 등이 있어 한 장소에서 작품과 작가와 관객이 서로 교감할 수 있다.최근에는 재독 작가 이대일의 설치미술전 ‘빛 잔치’가 열려 화제가 되기도했다.(02)3141-1377 ‘풀’은 디자이너 권혁수 등 9명의 운영위원회와 멀티미디어 프로그래머길예경 등 7명의 프로그램위원회,그리고 실무팀으로 구성돼있다.대안적인 미술문화 형성을 위한 전시와 진취적인 미술인들의 모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풀’은 현재 기획대관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이와 관련,‘풀’의 실장을 맡고 있는 황세준씨는 “공간 운영이 궤도에 오르는대로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기획대관을 그만둘 방침”이라며 “앞으로 순수 비영리 화랑으로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풀’에서는 13일까지 개관기념전‘스며들다-정서영·최정화 2인전’이 열린다.(02)735-4805 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윤동구·설원기 교수와 김성희 카이스 갤러리 학예실장이 준비하고 있는 ‘제3의 대안공간’은 오는 15일 장소를 확보하고 가을에 개관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미술계의 흐름을 앞서가는 작품 등 기존 화랑이 소화하지 못하는 작품 전시를 지원한다는 방침.공간 사용료를 받지 않을뿐 아니라 보조금도 지원할 계획이어서 관심을 끈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대안공간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세제지원 등 정부의 협조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미국에서는 갤러리 등에 기부금을 낼 경우 세금공제 혜택을 받는다.
  • 인터뷰-姜大仁 방송개혁위 부위원장·계명대교수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위원장 姜元龍)의 ‘야전사령관’ 姜大仁부위원장(5 7·계명대교수)은 너무 바쁘다.姜元龍위원장과 상의하여 큰 틀을 만드는 한 편으로 실행위원장으로서 방송개혁의 터를 다지고,이해관계가 얽힌 다양한 목소리를 거르느라 정신없다. 최근 방송사가 앞다퉈 내세운 공익성 강화에 대한 언급으로 첫 말문을 열었 다. “공영프로를 늘리거나 MBC의 지방계열사 광역화에 대한 자체입장 정리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다만 이런 움직임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차원에서 나 온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씁쓸합니다.그만큼 우리 방송이 정치권에서 자 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거죠.이런 맥락에서 방송의 독립·자율성 확보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방송이 정치·자본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그의 열망은 누구 못지않다.‘신의 길’(감리교 신학대)대신 ‘인간의 길’을 찾아 69년 극동방송에 공채 1기 PD로 들어간 뒤 10여년 동안 방송의 ‘일그러진 얼굴’을 가까이서 보았던 것이다. 81년 강단으로 자리를 옮겨 실무와 이론을 갖췄다는 姜부위원장에게 가장 곤혹스런 부문이 ‘방송사 구조조정’이다.방개위 공식 의제로 내걸진 않았 지만 관련 대목이 실행위원회 분과별 세부의제로 포함됐다.방송노조연합과 마찰음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한칼’에 인원을 줄이거나 규모를 축소한다는 게 아닙니다.다만 방송의 장기적 발전을 논의하다 ‘편성·제작·지원주체’의 역할분담이 거론돼 규 모축소 등 자기 단체에 불리한 의제가 나오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조합원의 ‘밥그릇’보다 언론 민주화에 무게 중심을 두 었던,지난 87년 언론사 노조 출범 당시의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물론 인위적인 개입보다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를 먼저 찾고 있 다.독립 프로덕션을 활성화하여 단계적인 외주제작 비율을 높이면 방만한 몸 피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는 입장이다.방송노조가 언론 민주화에 이바지한 것과 조합원의 일터를 보호해야하는 노조의 임무를 인정하기에 곤 혹스런 입장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어 ‘시청률 지상주의와의 싸움’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않느냐는 물음에 “구조적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면서 “쉽게 말해 우리 방송이 덜 재미있으 면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시청률 전쟁은 방송이 여가활동에서 차지하 는 비중이 높은 데서 비롯한 기현상이다.여가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TV 의 존도가 낮아지면 방송도 시청률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영매체는 그렇다 하더라도 광고에 더 기댈 수밖에 없는 민영방송의 위상 은 어떨까. “소유구조가 민영이든 공영이든 기본적으로 시청자에 ‘보편적 서비스’의 의무가 있습니다.영향력이 큰 지상파 편성은 국민정서나 민족정체성,예술· 문화발전을 당연히 고려해야죠.다만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는 유료채널이란 점을 고려,다양한 욕구를 담아 차별화하려고 합니다” 姜부위원장은 방개위의 도덕성에 방송개혁의 운명이 걸렸다며 ‘이권단체의 로비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말을 맺었다.정치권의 ‘방송통제 음모 ’ 불씨가 잠재된 상태에서 방개위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姜부위원장의 발걸음에 눈길이 쏠린다. [李鍾壽 vielee@]
  • 韓紙화가 咸燮(이세기의 인물탐구:171)

    ◎한지­천연물감 현란한 ‘한국의 美’/작품마다 한바탕 춤춘듯 신명과 신비의 여운/투박함 속에 치솟는 역동성 자연순응성 함께 홍익대와 극동방송국 앞을 지나 상수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한지작가인 咸燮의 작업실이 있다.어질러진 주변풍경 때문인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빌딩이지만 작업실에 들어서면 강한 유화냄새가 아닌,밀밭같기도 하고 들판에난 잡초같기도 한 기묘한 풀냄새가 온통 싱그럽다. 전업작가인 그는 직장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것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7시나 8시, 그림이 되는 날은 밤 10시까지 화실에 머무르면서 전날 그린 그림을 다듬잇돌로 눌러놓거나 말리는 갖가지 작업에 몰두한다.종이를 물에 불리고 개고 찢고 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색깔을 내기위해 풀로 버무리고 붙이기도 한다. 종이는 바로 그의 매재이자 마티에르이며 톤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림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질긴 생명감으로 인해 평론가 이일씨가 생전에 ‘알록달록한 색조가 엮어 내는 자유로운 리듬은 한바탕 굿판에서 굿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난듯한 신명을 준다’는 말을 실감시킨다. ‘시나위를 방불케하는 종횡무진의 선묘와 열정적인 육필의 파문(波紋),파격효과에 어울리는 원색의 난무는 그림전체에 스며있는 신비성과 함께 굿의 의식행사를 그대로 화면에 펼친 듯한 착각마저 던져준다. 이로인해 그의 한지작업은 곧잘 ‘앵포르멜 미술’로 논란되기도 하지만 루오나 드랑에서 보이는 대담하고 단순한 굵은 선, 뒤뷔페의 가공하지 않은 ‘원생미술(原生美術)’처럼 ‘성숙된 미완’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또 한지라는 재질을 최대한으로 살려 한지만의 가냘프면서도 순후한 성질, 소박하면서도 풋풋한 숨결과 온화 강인한 기질을 두루 석권하는 것도 그의 그림만의 한 특징일 수가 있다. 전에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는 이를 ‘허세를 모르는 초월의 세계’이며 ‘우리다운 그림’으로 크게 평가한바 있다. 그는 다른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수많은 파란과 곡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부와 명예와 허욕이 범람하는 혼돈속에서 그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기 위해 한때는 앵포르멜운동에 심취한 적이 있고 60년대 중반에는 탈앵포르멜적 입장에서 기하학주의로 전환하는가 하면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의 대립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색감의 정감이 채가시지 않은 단순명쾌한 평면을 보임으로써 ‘유토피아적인 가공적 공간’을공략해 내었고 유동적인 문양과 직선적인 구획의 이중적 모티브를 한 작품속에서 균형있게 다루게 되었다. 그는 국화지에서 설화지 닥지 석회지 닥피지 장판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작업을 통해서만 가장 좋은 작품을 기대할수 있다’는 정신으로 한지의 성질을 다방면으로 끌어내는데 개척자적인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른바 한지가 온전한 형체를 갖추기까지 중노동을 방불케하는 힘겨운 과정을 단 한번도 거부한 적이 없다. 한지가 물속에 잠기는 과정에서 온 육체를 던져 담조미(淡調美)를 얻어내는가하면 세심의 극치로서 인위적인 완미(完美)를 성취해내기도 한다.색채는 옻물 치자물 엽초 진달래꽃물을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여 그만의 가공법으로 유화와 수채화물감을 능가하는 풍부하고도 은은한 원초적 생명감을 되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두껍게 배접된 한지의 한부분을 뜯어내고 겹치고 붙이고 밀면서 비바람에 간신히 견디고 살아남은 노송의 헐벗은 표피를 형성해낸다.그것이 그림의 완성이다. 그의 그림은 수많은 감상자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공관(空觀)과 가관(假觀)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절대적인 세계에 체달(體達)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경지’이다. 물이 넘치거나 달이 차면 흐르거나 기울듯이 어느때는 비틀리고 어느때는 역행하면서 확실한 동세(動勢)를 지켜나간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심경이 외계의 환경과 공존한다는 확대된 리얼리즘이며 앙드레부르통에 의한 초현실주의와 전후 추상주의로 특징지어 진다. 평론가 서성록의 ‘투박하지만 힘이 치솟고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도량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토탈미술관의 큐레이터 정준모도 ‘그의 작품에는 우리민족만의 자연스러움이 부드럽게 넘치고 있다’고 조언한다. 가족은 李惠京씨와의 사이에 남매. 그는 산천이 수려한 호반도시 춘천에서 한학자인 咸成南씨의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단 한번도 화가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홍익대 진학후 강원도가 공모한 미전에서 유화인 ‘연못’으로 최고상인 특선, 다음해 국전에서 ‘실내좌상’ 입선후 각종 미술전에서 수상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본명은 함종섭. 가운데 글자를 스스로 빼버렸다. 그가 한지에 눈뜨게 된것은 지난 70년초 초가지붕같은 푸근한 볏짚문화에 대한 향수 때문이며 78년에 볏짚을 붙인 것 같은 느낌의 마티에르로 서양화단의 원로이던 남관씨가 격려하면서부터다. ‘모든것이 비슷한 상황에서 함섭의 그림은 그 방법에서 이미 자신만의 특성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이 남관씨의 평이었다. 여기에서 발전하여 캔버스에 볏짚을 붙여 볼륨을 살리고 창호와 문장지, 천연물감과의 결합과 혼합을 다각도로 시도하게 된 것이다. 그의 그림은 현재로선 가장 특이한 캐릭터를 가진 ‘한국적 화가’로서 국제화단에서 ‘경쟁력’있게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초대전에서의 그의 인기는 그와 절친한 박동욱씨(한국타악기회 회장)의 의하면 지난해 유럽전시에서 그의 그림앞에 관람객들이 ‘꿀단지에 붙은 벌떼처럼 모였다’고 할 정도다. 참을성과 성실성이 그의 성정이며 한번 사귄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것도 그만의 미점이다. 정이 많고 무엇보다 일 욕심이 대단하다. 그는 한국화단이 아닌 세계무대를 겨냥하여 지금부터 ‘가장 이긴 자’가 되기위해 욕망과 야심의 불길이 그 끝을 모를만큼 하늘에 치닫는 시기다.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강원도 춘천출생 ▲1962년 춘천고 졸업, 서울비엔날레초대전(서울 현대미술관) ▲1966년 홍대미대 회화과 졸업 ▲1975­78년 아시아현대미술초대전(도쿄 우에노미술관) ▲1978년 서울미술회관 개인전 ▲1981년 한일 현대미술전(일본 후쿠오카미술관및 서울미술관) ▲1982년 동국대 교육대학원 졸업 ▲1983·85·86·87년 개인전 ▲1985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참가 ▲1988년 88서울올림픽기념 닥종이작업전(백송화랑) ▲1989년 동숭아트센터개관기념 한국현대미술 80년대의 전황 ▲1990­92년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91·92·93년 개인전(서울 인데코,단갤러리,강남화랑,토탈미술관,현대아트 갤러리) ▲1994년 독일 쾰른,서울 예맥화랑, 종로갤러리초대 개인전 및 뉴욕 아트인터내셔날 출품등 해외전 다수 ▲1996년 서울종로갤러리초대전 ▲1997년 독일쾰른개인전 ▲1998년 네덜란드 레이덴초대전 한국미협서양화분과위원장·한국한지작가협회장·오리진 회화협회회원 영국대영박물관 홍대현대미술관 서울미술관 독일 뮬러브로네트갤러리 부산방송국 토탈미술관 외
  • 본사 사장에 車一錫씨/어제 정기주총서 선임

    서울신문사는 30일 상오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 사장에 車一錫 전 국민일보 상임고문을 선임했다. 신임 車사장은 31년 전남 목포 출신으로 미국 아델피대,뉴욕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뒤 연세대 교수를 지냈다. 63년 건설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관계에 들어가 중앙공무원교육원 고문교수,66년부터 70년까지 서울시 제2부시장을 역임했다. 71년 재계로진출해 조선호텔 사장,관광협회 회장을 지냈고 신동아건설 사장,삼호풍산 회장,우흥산업 회장으로 재직했다. 車사장은 월간 신앙계 발행인을 시작으로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극동방송국 이사,국민일보 사장,국민일보 상임고문을 역임했고현재 주한 과테말라 서울명예총영사,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이사,아시아신문재단 한국위원회 이사,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를 맡고 있다.
  • 여행떠나기·신발끈/배낭여행 필수품“원스톱 쇼핑”(전문매장 순례)

    □여행떠나기 ­180개 품목 시중보다 10% 저렴 ­캠커더·기내가방 등 대여도 □신발끈 ­여행사·서점 겸해 자료 풍부 ­소비자 취향별 주문제작 특징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두고 배낭여행 전문점이 등장,인기를 끌고 있다.「여행떠나기」와 「신발끈」 등 2곳이 그곳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여행떠나기」는 계절별로 신혼여행 관련 제품과 배낭여행 용품,휴가용품 등을 팔고 있다.지금은 배낭여행이 본격화되는 시점인 점을 감안,배낭용품을 집중적으로 취급하고 있다.기간은 7월 말까지다. 여행떠나기가 취급하는 여행용품은 180여가지다.낱개 구입은 물론 배낭과 관련 용품을 함께 묶은 패키지 구입도 가능하다.패키지로 살 경우 할인도 된다.패키지 용품은 A,B,C형이 있다.A형(12가지 용품)과 C형(6가지 용품)을 6만6천원에 팔고 있고 B형은 8가지 용품을 4만원에 판매한다.시중보다 최소 10%이상은 싸다는 평이다. 낱개로 많이 나가는 배낭은 주로 38∼45들이가 많이 나간다.45짜리가 최고 8만4천원이다.호신용 호루루기겸용 볼펜이 500원,사파리 점퍼가 1만5천∼2만원,우의가 1만2천원이다.안전체인,자물쇠,시차용 시계는 각각 2천원,3천원,2만∼3만원에 나가고 있다. 여행떠나기는 또 일부 제품을 빌려주기도 한다.캠코더는 일주일에 6만원,기내가방은 10일에 2만원을 받고 대여한다.하오 7시30분까지 영업한다.서울 충정로 서서울 케이블TV 빌딩 지하 아케이드에 있다.392­6760 여행사와 카페,서점을 겸하고 있는 「신발끈」은 홍익대 앞의 새로운 여행용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지난 89년 「신발끈여행사」로 출발,지난 1월 서점과 카페를 동시에 열었다.여행과 여가를 연결했다는 설명이다.취급품목은 여행안내책자(가이드북)와 각종 배낭영행용품이 주종이다.가이드북은 총판계약을 맺고 있는 호주 론리 플래닛과 미국 레츠고 등 두종류를 취급한다. 신발끈이 취급하는 여행용품은 주문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이 돋보인다.배낭의 경우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를 주문하면 배낭제조 전문업체에 의뢰해서 공급한다.가격은 4만6천∼7만6천원이다.종류별로 가격차가 난다.용량은 20∼60가 있는데 배낭여행객은 대용량을 요구한다고 밝힌다. 코닥제 필름(27장짜리)이 10통이 1만4천700원이고,여행용 다이어리 6천원,스노클링 4만원,오리발 1만5천원,침낭 2만5천원 그리고 배낭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전대(전대)가 3천500원 등이다.회원은 여행용품과 서점(5%),카페(10%) 등에 대해 요금할인의 혜택을 준다.홍대앞 극동방송국쪽에 있다.333­4232.
  • 「내각제 소동」 끝내기/신 정무 여 시국논의 모임 주선 배경

    ◎중진들 「임기내 개헌불가」 내부정리/“권력구조 논의때 아니다” 입모을듯/정국변화따라 재부상 가능성 잠재 이회창 대표체제 출범이후 권력구조개편논쟁 등으로 흔들리던 신한국당의 중진들이 29일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신경식 정무1장관이 제안한 이 모임은 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15명의 당 중진들이 계파를 초월해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이홍구·이한동 고문의 권력구조개편논의에 이은 내각제 문서파동과 신경식 정무장관의 「내각제 밀사설」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김대통령이 26일 거듭 천명한 「임기내 내각제개헌불가」방침을 중진들 스스로 다짐하는 자리의 성격이 짙다.그래서 이대표를 비롯,경선 예비후보들은 초청대상에서 빠졌다. 권력구조개편론은 지난 26일 이회창 대표의 청와대 주례보고 자리에서 김대통령이 「개헌불가」를 재천명함으로써 가까스로 진화되는가 싶더니 정무장관실의 실무진이 참고용으로 작성한 내각제문서로 불씨를 살리는 듯 보였다. 또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신장관을 통해 여권에 내각제를 타진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도 잇따랐다.신장관은 28일 『지난해 연말 노동법이 통과된 뒤 인사차 청구동을 찾아갔을때 김총재는 「6월까지 법을 고치면 내각제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내각제 의사를 타진하는 여권의 밀사는 말도 안된다는 해명이다. 이 모두 당 총재의 의중과는 상관없는 해프닝으로 확인됐지만 경제난으로 나라가 흔들리는 마당에 정권을 책임지는 신한국당이 한가하게 권력구조개편론에 시달릴 수 없다는 당 안팎의 절박감이 모임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만은 틀림없다.따라서 29일의 모임은 불필요한 권력구조 논의에 쐐기를 박고 당내 초·재선 의원들의 동요를 다독거려 이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뭉쳐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을 더해주자는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내각제를 포함한 권력구조개편논의는 여전히 여운이 남는다.이런 관점에서 조용기 순복음교회 당회장과 김장환 수원침례교회 담임목사(극동방송 사장)가 26일 김대통령을 면담한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조당회장 등은 이 자리에서 국정운영에 관련한 고언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면담 이틀전 조당회장,김목사와 김종필 총재가 골프회동을 가진것으로 알려져 김대통령에 전달한 고언 가운데 내각제도 포함돼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김총재 측근에 따르면 골프회동에서 『현재의 혼란한 시국은 대통령중심제의 폐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의견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일련의 흐름에 대해 신한국당의 대체적인 반응은 시큰둥하다.한 대선 예비주자의 측근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제는 의미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김영삼 총재의 개헌불가 방침을 확고하게 천명한 만큼 「해프닝」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권력구조개편논의는 우여곡절끝에 일단 잠수했음에도 불구,국민회의,자민련 등 야당의 전당대회의 향배와 맞물려 5,6월안에 정치권 전면에 다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내각제 관련 일지 ▲2월1일=신경식 정무장관 자민련 김종필 총재(JP) 자택 방문(JP 『6·29때도 했으니 6월까지만 결심하면 된다』고 내각제 개헌 요구) ▲2월24일=JP·김수한 국회의장·정석모 자민련부총재 오찬(JP 내각제개헌론 제기) ▲3월초=김의장·정부총재 2차례 회동(내각제 관련 협의) ▲3월18일=이동복 JP비서실장·박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접촉(JP측 김영삼 대통령 근황 타진) ▲3월23일=김의장·이정무 자민련총무 골프회동(내각제 문제,한보특위 등 논의) ▲3월24일=김의장 청와대서 YS독대(내각제 건의).신한국당 이한동고문 『내각제 장기적 추진과제』,이홍구 고문 『현 헙법의 내각제적 요소 최대한 활용한 권력분산론』 제기.JP·조용기·김장환 목사와 골프회동(JP 내각제 필요성 언급) ▲3월25일=이한동 고문 『내각제 심각하게 고려해야』 발언에 이회창대표 반박 ▲3월26일=조용기·김장환 목사 청와대서 대통령과 오찬회동(내각제와 JP입장 전달).이회창 대표 자민련 당사 신임인사차 방문(JP 내각제 필요성 언급) ▲3월27일=신경식 정무장관실에서 작성한 내각제 문건 유출 파문 ▲3월28일=강인섭 정무수석 자민련 당사 방문(JP 강수석에게 『잘 생각해(내각제 개헌에) 기여해달라』고 발언)
  • 올 부활절 예배/“나라·민족 위한 회개와 기도”

    ◎30일 서울·부산 등 74개 시·도서 교파초월 찬양 오는 30일은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최대 명절인 부활절. 이날 새벽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춘천등 전국 74개 시 도 군 120개 지역에서는 개신교도들이 교파를 초월해 지역별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다. 한보사태와 황장엽의 망명,북한의 식량난 등 극심한 혼란속에서 열리는 올해 부활절 예배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회개와 기도·찬양의 순서로 진행된다.올해 연합예배의 기도주제는 ▲혼란스러운 정치적 현실과 경제문제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의 죄악 ▲남북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회개등이다.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대회장 김준규 목사)는 『한국교회의 1천200만 신도들이 24일부터 30일까지 한끼금식운동을 펴고 금식으로 모은 돈은 굶주리는 북한동포와 국내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여진다』며 『특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인 28일에는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십자가를 메고 걷는 예수의 고난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고 말했다. 또 예수가 운명한 시각인 28일 하오3시에는 피가 없어죽어가는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신도들의 헌혈행사가 이어진다. 한편 서울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장충체육관에 1만2천명이 참석,상오 4시30분부터 1시간동안 기도회를 가진뒤 예배를 드린다. 김준규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 연합예배에는 김홍도 목사의 설교와 백형기 목사의 남북한 공동기도문의 기도,박종순 목사의 축도,신신묵·이원재·김태윤·김해철 목사의 기도,경원대 임정근 교수의 찬송등으로 진행된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예배장면은 기독교TV,기독교방송,극동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며 전국 120개지역에서 열리는 연합예배에는 연인원 50만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 김 대통령 충현교회서 성탄예배

    ◎손 여사·현철씨 내외 등 가족과 함께/예배후 목회자·신도들에 간단히 인사/최근 방송인터뷰서 매주 가족예배 밝혀/기상직후·취침전엔 손 여사와 함께 기도 김영삼 대통령은 성탄절인 25일 상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아들딸 내외,손주 등과 함께 취임전 다니던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열린 성탄축하예배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상오 11시부터 1시간여동안 6천여 신도들과 같이 예배를 마친뒤 김창인 목사의 안내로 설교대로 올라가 교회 목회자및 신도들에게 간단하게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대단히 어렵고 중요하다』면서 『특히 우리같이 어려운 여건에서는 해결해야 될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강조했다.김대통령은 『군최고통수권자로서 남북 및 외교문제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어려움을 절감한다』며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국내적으로 경제가 대단히 어렵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세계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아시아 42개국중 2번째로 가입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나간다면 세계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의 이날 예배 참석에는 김광일 비서실장과 김광석 경호실장,이해순 의전수석 등이 수행했으며 기독교신자인 심우영 행정·최양부 농수산·유도재 총무수석 등도 모습을 보였다. 한편 김대통령은 최근 극동방송과의 특별회견에서 청와대에서의 신앙생활을 공개,눈길을 끌었다. 충현교회 장로인 김대통령은 매 주일 가족예배를 갖는 것은 물론 기상직후와 취침직전 손여사와 함께 반드시 기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외국방문때에도 한인교회 목회자를 초청해 예배를 드린다는 것. 김대통령은 『매일 아침 고향의 아버님께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말씀드리고 기도를 부탁한다』고 소개했다.김대통령은 또 찬송가는 43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즐겨부른다고 말했다.국정전반에 어려움이 닥칠때는 이사야서 41장10절 『두려워말라.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를묵상하면서 용기를 얻고 있다.
  • 「현대성경산책」 완간 김요한씨(인터뷰)

    ◎“고어적 표현 성경 쉽게 풀어” 『2년동안 성경을 7번 가까이 통독했으나 말씀 자체가 고어적인 표현으로 가득차 있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성경의 어려운 내용을 현대인이 알기쉬운 예화를 통해 수필이나 소설처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서술했습니다』 성경을 쉽게 풀어 쓴 「현대성경산책」(6권)을 최근 완간한 김요한씨(39)는 21세기 선교를 위해서는 어려운 성경을 다시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은 애초에 아주 쉬운 언어로 돼있었는데 1천6백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고 다시 1천9백년이 흐르는 동안 시간적·문화적·자연적 괴리현상이 일어나 난해한 내용이 되었습니다』 「현대성경산책」은 극동방송에서 연속 낭독중이며 순복음신문에 연재되고 있다.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뒤 기독교방송과 학원에서 생활영어와 토플을 강의하다 성경 전문작가로 전업한 김씨는 앞으로 중·고등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예화를 출판할 계획이다. 『현대 성경산책은 올해안에 미국의 프린스턴대학의 피터 김교수가 영역해서 미국과 영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김원홍 기자〉
  • 공산권에 기독교 선교 40년/극동방송 40돌… 다양한 축하행사

    ◎중·러·일·영 등 5개 국어로 방송/세미나·신앙수기 공모·합창제 개최 라디오로 공산권에 기독교 선교방송을 하고 있는 극동방송(사장 김장환 목사)이 올해 창사 40주년을 맞는다. 지난 1956년 12월23일 인천시 동구 학익동에서 「한국복음주의 방송국」으로 첫방송을 시작한 극동방송은 61년 「국제복음방송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67년부터 오늘의 「극동방송」국으로 다시 변경,서울 마포구 상수동으로 사옥을 옮겨 공산권 선교방송을 하고 있다. 극동방송은 그동안 종교가 엄격히 통제된 공산권에 선교사와 목사의 파송은 물론 성경과 찬송가도 보낼 수 없었던 60년대와 70년대 중국어·러시아어·일어·영어·한국어등 5개국어로 설교와 찬양등을 방송함으로써 다민족 복음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극동방송은 공산권 선교로 중국에 7천만 기독교 신자들을 결신시키고 중국의 개방화와 한·중 수교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중국에서는 1년에 2만통에 가까운 청취자들의 편지가 오고있으며 많은 북한 탈북자들이 극동방송을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밝힐만큼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극동방송은 국내 복음화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지난 89년 12월 대전극동방송국을 개국한 이후 오는 3월16일에는 영남지방의 선교를 위해 창원극동방송국을 개국,국내에 2개 지방 방송국을 운영함으로써 본격적인 전파 설교시대를 연다. 극동방송은 올해 창사 4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KBS 창원홀에서 전야제를 갖는데 이어 목회자 초청 교회성장 세미나(4월22일),복음성사 경연대회(7월20일),방송가족 신앙수기공모(9월),성가 대합창제와 교회음악 세미나(10월)등 축하 행사를 한다. 극동방송사장 김장환 목사는 『극동방송의 40년 역사는 한국 교회의 성장사와 선교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회고하고 『극동방송이 순수복음방송으로 자존심을 지켜온 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헌금과 기도때문이었다』고 말했다.
  • 대전 극동방송국 불 2명 사망·7명 입원

    【대전=이천열 기자】 13일 상오 9시50분쯤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 233의 15 대전 극동방송국 지하 2층 공개홀에서 불이 나 방수공사를 하던 중흥건설(주)의 인부 안홍열(20)·유창호씨(36)가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한기성씨(35) 등 7명이 질식해 치료를 받고 있다. 불은 공개홀 1백70여㎡를 모두 태워 4천8백만원(경찰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뒤 상오 10시50분쯤 꺼졌다.방송도 한때 중단됐었다.
  • 하룻새 주치의 3번 불러 건강체크/노씨 귀가이후 연희동 표정

    ◎한때 와병설… 건강에 큰 이상 없는듯/금진호씨 등 6공 측근들 위문 줄이어 ○…2일 새벽까지 16시간 동안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연희동 집으로 돌아간 노태우 전대통령은 주치의를 하루 세번이나 불러 진찰을 받기도 해 한때 과로에 따른 와병설이 나돌기도 했다. 노전대통령은 그러나 장시간 조사에 따른 피로가 겹쳐 2일 아침과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채 링거 주사를 맞고 있을 뿐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의 주치의인 서울의대 최규완(내과)교수는 이날 상오 3시와 10시,낮 12시20분쯤 세번이나 노씨집을 찾아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갔으나 그뒤에는 다시 방문하지 않아 노씨의 건강이 크게 나쁜 상태는 아님을 암시했다. 측근들은 『노전대통령의 건강에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피로가 심해 혈압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나 주치의를 불렀으며 절대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전대통령이 귀가한 이날 노전대통령의 친인척과 6공 측근들의 위로 방문이 줄을 이었다. 상오 9시25분쯤에는 노씨의 동서 금진호 민자당의원 부부가 비자금 파문 이후 처음으로 노씨집을 방문했다. 검은색 포텐샤 승용차를 타고 도착한 금의원 부부는 취재진들의 질문에는 일체 답변을 회피한 채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가 1시간쯤 머물다 돌아갔다. 측근들은 『금의원이 최근 퇴원한 뒤 위로차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오에는 부인과 함께 상오 11시45분쯤 어디론가 나갔던 아들 재헌씨가 혼자 돌아왔으며 노씨의 육사 동기인 안교덕 전민정수석,서동권 전안기부장,정구영 전검찰총장,한영석 전민정수석 등 노씨의 측근들과 극동방송 사장 김장환 목사 등 위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노씨가 검찰의 「혹독한」 조사를 받고 돌아와 과로로 몸져 누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연희동의 일부 주민들은 연민의 정을 표시하는가 하면 대다수는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 5개 종교방송에 지역국 신설허가/공보처

    정부는 19일 올해 안에 기독교방송의 음악방송(FM),불교방송의 대구와 청주 등 2개 지역국,평화방송의 광주지역국,극동방송의 창원지역국 등 모두 5개 종교방송 라디오 FM지역국의 신설을 허가하기로 했다.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지역국 추가 허용은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것으로 이번에는 기존의 종교방송에 국한했다』고 밝히고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기타 종교방송허가도 앞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문충일씨,“여기가 그리던 조국”/북출신 일가4명 어제 입국

    ◎41년 만주이주후 미얀마·태국 전전/“아버지 찾아라” 모친유언에 한국행 북한출신으로 태국의 마약왕국 쿤사지역을 탈출,최근 한국정착을 희망한 무국적 난민 문충일씨(56) 일가족 4명이 12일 상오 8시55분 대한항공편으로 입국했다. 문씨는 이날 부인 이순선씨(45)와 아들 철군(19),딸 미령양(13)과 함께 환한 모습이었다. 문씨 일가족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태극기를 꺼내들고 오랜 숙원이던 한국정착의 기쁨에 감격해했다. 문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조국의 품에 안기니 대륙보다 더 광할하고 편안하다』며 『또한 한국정착이 소원이던 어머니의 유언을 마침내 이루게 기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평북 용천이 고향인 문씨는 3살때인 41년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해 중국국적을 취득,평범한 생활을 해 왔다.그러나 부친이 43년 남한으로 떠나는 바람에 홀로 남은 모친을 모시면서 남편이 그리워 한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평소 어머니의 유언이 계기가 돼 한국정착에 꿈을 키워왔다. ­어머니의 유언으로 한국행을 결심했다던데. ▲아버지가 해방전 몽골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뒤부터 어머니는 물론 온 가족이 한국행을 소원해 왔다.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말을 남기셨다. ­지금까지 겪었던 역정을 간단히 말해달라. ▲중국은 내가 반백년을 산 곳이다.처와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그곳에서 고향삼아 살려 했으나 중국 공산당이 우리 가족들을 오해했다.60년 친구와함께 한국으로 도주하려다 10여년 감옥생활을 하고 나왔다.그뒤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살기가 나아졌으나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외국인과 관계있는 기독교인에 대해 대대적 탄압선풍이 불어 더 중국에 있을 수 없었다.그래서 미얀마를 거쳐 태국의 마약왕 쿤사지역으로 들어가게 됐다. ­신앙은 어떻게 갖게 됐나. ▲개혁개방정책이 시행된뒤 아시아 극동방송 유모목사와 연락이 돼 기독교에귀의했다. ­쿤사에서 탈출하게 된 경위는. ▲쿤사에 관해 한국인에 정보를 흘린다는 오해를 받았다.그래서 방콕으로 탈출,주방콕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7평짜리 방에 온 가족 반년간 은신해 살았다.
  • 종합유선방속국/공보처,2단계 심사 거쳐 연말 선정발표

    ◎53개 구역에 151개 법인 신청/평균 3대1 경쟁… 서울강남 10대1 “최고”/제조업 45개 “최다”… 건설·서비스업 뒤이어 지난 30일 마감된 1차 종합유선방송국 허가신청접수 결과 전국 53개구역에 1백51개 법인이 신청해 평균 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허가대상구역 가운데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서울 강남구로 10개 업체가 참여,10대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서초구가 9대1,종로·중구와 송파구가 각각 6대1을 기록했다.반면 부산 금정구와 대구 동구·서구등 3개구역은 신청업체가 없으며 서울 용산구와 양천구,대구 북구,인천 중·동구,전남 목포·신안·무안군,경남 창원·진해구역등 6개구역은 1개 법인만이 신청했다. ○금정구 등 3곳 전무 지역별로는 충북이 4대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 서울 3·9대1,대전 3·5대1,광주·전북·경북·제주 3대1,인천 2·2대1,부산·경기·강원·충남 2대1,대구 1·3대1,전남·경남 1대1을 기록했다. 신청업체 가운데는 제조업분야가 45개로 가장 많았으며 건설업 33개,서비스업 15개 등의 순이다. ○기존 유선법인 51개 기존 중계유선방송사업자 가운데 이번 허가신청에 참여한 법인은 51개로 이중 9개법인은 최다출자자로 집계돼 중계유선방송업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정부투자기관 가운데는 현재 목동지역에 대해 시험방송을 하고 있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서울 양천구와 노원구에 최대출자자로,국민체육진흥공단이 서울 송파구에 제2주주로 참여했다. 한편 국산기기 시범방송구역인 수원 권선구는 권선종합유선방송국의 도중하차로 수원종합유선방송국(대표 이석봉)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최종사업자는 각 시·도별로 서류심사와 공보처 허가심사위원회 등의 2차심사등을 거쳐 금년말 공보처가 선정,발표한다. ○막판까지 눈치작전 지난 10월1일부터 시작된 허가신청접수에는 참여업체들의 심한 눈치작전으로 접수창구인 각 시·도 공보실에는 신청현황과 내역을 문의하는 전화가 쇄도하기도 했다. 시청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강남구등 몇몇 구역은 방송 1년안에 흑자를 보일 전망이나 기타 지역은 5년 정도가 지나야 수지를 맞출 수 있으리라는 것이 공보처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프로그램제작업체들의 분야별 프로그램을 공급받아 각 회원들에게 중계하는 한편 자체 취재진을 두어 각종 생활정보와 지역인사동정등을 소개하게 된다. ◎종합유선방송국 구역별 허가신청 법인 ▷서울◁ ◇종로·중구(6개)▲중앙방송(삼영산업)▲남산방송국(서병직)▲서울중앙방송(대현실업) ▲종로·중구케이블네트워크(코스모스백화점)▲삼화케이블비젼(삼화제지)▲서울방송국((주)거평) ◇서대문구(3개)▲독립문방송(종근당)▲서서울방송(심상기)▲서울방송국(진우통신) ◇용산구(1개)▲용산케이블티비(배승남) ◇성동구(5개)▲성동케이블(성동백화점)▲아남방송(아남전자)▲성동방송((주)수국)▲〃(한국연도산업)▲코리아케이블네트워크(한도흥업) ◇동대문구(2개)▲동대문방송국(우일전자통신)▲동대문연합방송국(세우프로덕션) ◇중랑구(4개)▲중랑방송(지영사)▲동부방송국(태우주택)▲중랑케이블비젼(염광건설)▲중랑용마방송(박준상) ◇성북구(2개)▲북부방송(최영수)▲성북방송국(경진염직) ◇도봉구(2개)▲미래방송(경원세기)▲도봉방송(동성제약) ◇노원구(3개)▲한국전기통신공사(정부)▲노원방송(미도파백화점)▲노원방송국(이명진) ◇은평구(3개)▲은평방송(나병권)▲〃(신동아종합건설)▲〃(효자종합건설) ◇마포구(4개)▲마포방송(국제밸브공업)▲〃(근영전자통신)▲〃(한국컴퓨터)▲〃((주)브렌따노) ◇양천구(1개)▲한국전기통신공사(정부) ◇강서구(5개)▲강서방송(김의철)▲강서제일방송(백광소재)▲강서방송국(함인화)▲〃(이두근)▲〃(김포교통) ◇구로구(4개)▲구로방송국(주창길)▲구로방송((주)남성)▲〃(대륭정밀)▲〃(강민구) ◇영등포구(4개)▲한강방송((주)경방)▲영등포방송((주)백양)▲영등포CATV(미주실업·신호제지)▲영등포방송국(위차린) ◇동작구(2개)▲동작방송국((주)신안)▲동작방송(대일화학공업) ◇관악구(3개)▲관악방송(건인시스템)▲〃(서울농산상사)▲〃(세일철강) ◇서초구(9개)▲서초방송국(대덕산업)▲서초유선방송서비스(대승실업)▲한국케이블(태일정밀)▲서초케이블스테이션((주)우성)▲서초방송(풀무원식품)▲〃((주)전홍)▲〃((주)클리포드)▲서초방송국((주)삼애실업)▲〃(대호건설) ◇강남구(10개)▲도화방송(도화종합기술공사)▲강남방송국((주)월드북센터)▲〃(나산실업)▲〃(삼익건설)▲〃(강영채)▲〃((주)한농)▲〃(박창원)▲유경방송국(유경산업)▲강남케이블네트워크(삼화프로덕션)▲강남방송((주)큰길) ◇송파구(6개)▲우리방송(대한제당)▲송파방송(조선무역)▲〃((주)용마)▲〃((주)미디아트)▲송파CATV(김인종)▲송파CATV(신락교역) ◇강동구(3개)▲강동TV방송(김종순)▲강동방송국((주)인풍)▲강동방송(광명전기) ▷부산◁ ◇서·사하구(3개)▲서부산방송((주)청산)▲서·사하방송(남성조선)▲서부산방송국(박동호) ◇중·동·영도구(2개)▲한성방송(한성기업)▲새부산방송(보은산업) ◇강서·북구(2개)▲북부산종합유선(동서학원)▲낙동방송(백봉도) ◇해운대구(2개)▲해운대방송(허인구)▲〃(김진희) ◇금정구(미신청) ◇부산진구(2개)▲범진케이블네트워크(건설화학공업)▲부산진방송(김광호) ◇동래구(3개)▲부산방송(조영수)▲동래방송(사회복지법인양덕)▲보림방송(부산협동연료) ◇남구(2개)▲제일케이블텔레비젼(최정환)▲동남방송(고려산업) ▷대구◁ ◇중·남구(2개)▲대구케이블TV(일신토건)▲중앙방송(정태영) ◇북구(1개)▲금호방송(신화주택) ◇달서구(3개)▲달서방송(김영학)▲달서케이블(뉴영남관광호텔)▲홍진방송국(조강래) ◇서구(미신청) ◇동구(미신청) ◇수성구(2개)▲수성방송(에덴주택)▲〃(삼진건설) ▷인천◁ ◇중·동구(1개)▲중동방송국(정순현) ◇서구(2개)▲서인천방송(서영철)▲서부방송국(이영호) ◇남구(2개)▲미주홀방송(가천문화재단)▲주안방송(김인태) ◇남동구(2개)▲남동방송(태화주택)▲남동방송국(홍성필) ◇북구(4개)▲하나방송(장재춘)▲부평방송(김운봉)▲북인천방송국(백창기)▲북부방송(최만립) ▷광주◁ ◇서·광산구(2개)▲남도종합유선국(계림건설)▲광주CATV네트워크(삼능건설) ◇동·북구(4개)▲광주방송국(남화토건)▲남광주방송국(공간주택)▲서석케이블네트워크(동광건설)▲극동방송국(광주대승기업) 대전 ◇중·서·유성구(5개)▲서대전방송(김영대)▲한밭방송(이태희)▲대전케이블TV방송(풍산건설)▲대전방송(금성건설)▲대전중부유선방송((주)남성기공) ◇동구·대덕구(2개)▲동양방송국(오종랍)▲동대전방송(써니상사) ▷경기◁ ◇장안·팔달구(2개)▲수원방송(홍석곤)▲수원방송국((주)서영) 강원 ◇춘천(2개)▲강원케이블TV(춘천향토기업)▲강원방송((주)대양) ▷충북◁ ◇청주·청원(4개)▲청주텔레비젼유선방송국(사화전자)▲청주방송국(신흥기업사)▲청주케이블TV방송(새한건설·새한미디어)▲청주방송(청주방직) ▷충남◁ ◇천안시·군(2개)▲천안방송(강이호)▲〃((대)정일영) 전북 ◇전주시·완주군(3개)▲전주방송국(호남식품)▲모악방송국((주)비사벌)▲전주케이블TV(송창진) ▷전남◁ ◇목포·신안·무안(1개)▲고려방송국(보해양조) ▷경북◁ ◇포항·영일·울릉(3개)▲포항방송(김상도)▲〃(이동출)▲〃(동진건설) ▷경남◁ ◇창원·진해(1개)▲창원방송(고권수) ▷제주◁ ◇제주·북제주(3개)▲탐라방송국(이근실)▲제주방송국(동남종합건설)▲〃(삼호종합건설)
  • 개신교계의 집안싸움(건널목)

    ○…개신교계가 너무 시끄럽다.1백50여개에 달하는 교단의 수만 보아도 이미 시끄러움을 예견할 수 있는 바이지만 최근 각종 신문지상이나 출판물등을 통한 성직자들간의 상호비방,이단시비등은 과연 그들이 진정한 성직자인가,무엇을 위한 성직자인가 의문을 갖게 한다. ○…지난주 공보처가 발표한 종합유선방송(CATV) 프로그램공급업자 선정에서 개신교계가 보류된 것은 바로 개신교계의 집안싸움에서 초래됐다.결국 채널 1개를 놓고 기독교방송·개신교종합유선방송사업단(횃불선교회·한국기독교선교원·극동방송연합)·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등 3개 단체가 끝까지 맞서다 어느쪽도 선정되지 않은 것이다.상대적으로 조계종·천태종·진각종등 각종파가 연합하여 신청한 불교계와 평화방송이 단독으로 신청한 가톨릭은 무난히 선정되어 본격적인 프로그램준비에 들어갔다. ○…선정과정에서 공보처는 교단단위의 허가는 배제한다는 방침하에 이들 신청단체간의 연합참여를 권유했다.그러나 기독교언론의 적자임을 내세우고 있는 기독교방송은 이를 거부했고,횃불선교회(이사장 최순영장로)측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등에 업고 기독교방송에 맞섰다.이무렵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최순영장로의 통일교관련설 유포로 이단시비가 새로 제기되는등 양측의 반목대립은 협의는커녕 이전투구양상을 방불케 했던 것. ○…결과가 발표된 뒤 개신교계는 입을 모아 정부가 개신교에만 허가를 보류한 것은 개신교의 방송선교기회를 빼앗는 부당한 처사라고 공보처를 비난했다.그러나 이같은 비난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자기탓」에 앞서 「남의 탓」을 내세우는 것은 성직자의 바른 자세로 볼 수 없다.
  • 방송생활도 청산 결심/고은아씨,종교영화 「무거운 새」 곧 제작

    ◎추억의 명화 주간 「모던타임즈」 재개봉 70년대 스타 고은아씨가가 「은아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영화사를 설립,창립작품으로 「무거운 새」의 제작준비에 나섰다. 지난 13년동안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에서 방송활동을 해온 고은아씨는 곧 방송생활을 청산하고 종교영화제작에만 전념할 것으로 전해졌다. 1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될 「무거운 새」는 이국생활의 애환을 통해 신앙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재미교포의 자전적 작품으로,고씨의 남편인 합동영화사대표겸 서울극장사장 곽정환씨가 연출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씨네하우스는 오는 14일부터 이달 말까지를 「추억의 명화 감상주간」으로 정해 그 첫작품으로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를 재개봉한다.88년 개봉당시 1백만명이라는 흥행기록을 세운 「모던 타임즈」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삶을 통해 산업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담고있는 수작이다.
  • 유병언사장 구속영장 요지

    피의자 유병언은 1982년 4월경 자본금 8억원에 주택건설업 등을 주요업종으로 하여 설립된 인천시 북구 십정동 558의10 주식회사 세모의 대표이사인 자로서 장인인 권신찬목사 등과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소위 평신도복음선교회(구원파)를 이끌며 「구원받은 성도들간의 교제」를 중시하여 「교제가 바로 기도이며 예배」라는 교리를 중심으로 신자를 포섭했다.72년 서울 성동구 약수동 소재 성동교회에서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윈첼·밥 디그난·리처드 한 등으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아 목사가 된 뒤 72년 극동방송의 방송목사로 활동하던 권신찬의 주선으로 극동방송의 부국장으로 들어가 74년 7월경까지 설교및 전국 각 교회순회강연 등의 활동을 통하여 교세확장에 노력했다.76년경 신자들의 헌금 등으로 조성한 자금으로 당시 부도직전에 있던 삼우상사를 인수하여 78년 3월27일 삼우트레이딩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설교를 통하여 「일과 사업」을 강조했다. 자신의 주도로 소위 구원파 교도들의 헌금·노력·봉사 등으로 경영되는 삼우트레이딩 등 사업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라는 논리를 펴 『돈을 내서 회사를 살려야 천국에 간다』는 등으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재물의 무조건적인 헌납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취지로 신도들을 미혹시키는 설교를 했다.이같은 자신의 가르침에 맹종하는 신도들의 종교적 열광분위기를 이용,전국적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액의 자금을 모집하여 이를 편취할 것을 마음먹고,구원파 교회의 골수분자로서 피의자 자신을 지도자로 믿고 따르던 사채모집 창구인 개발실과장 김기형,회사 경리과장 안효삼,사채모집책 오수형,송재화및 강석을,김숙희 등을 위와 같은 설교내용으로 감복시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채를 모아 이를 편취할 것을 기도했다. 그 수법으로 80년경부터 「노른자 쇼핑」「반딧불서점」「나의 고향」식당등을 경영하며 구원파 교도들이 성실히 생활하고 있고 삼우트레이딩주식회사등 동 교단에서 경영하는 각종 사업이 크게 번창하여 이자 및 원금지급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가장하거나 혹은 위 피의자의 교리에 심취한 신도들에게는 교단에서 경영하는 위 회사의 어려운 자금사정을 호소하며 돈을 빌렸다.초기에는 빌린 돈으로 먼저 빌린 돈의 이자를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착실히 이자·원금등을 결재하여 채권자들을 안심시켜 점차 더 많은 사채를 끌어모으는 한편,피해자들로부터 차용금 명목으로 자금을 끌어 들일때는 삼우트레이딩등 피의자 경영 회사명의로 된 차용증·어음등 문서로 된 증거는 가능한 한 남기지 않았다.뒷날 회사에로의 자금 유입사실에 대한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동원된 사채를 현금화 한후,이를 마대자루에 담아 서울 강남구 역삼동 608의7 소재 삼우트레이딩 개발실 등에 운반된 것을 전달받는 방법으로 타인의 금원을 편취할 것을 순차적으로 공모했다. 82년8월 초순 서울 강남구 청담동 34의5 소재 구원파 교회의 전도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태양열주택에서 송재화가 침례회 광주교회 엄마모임 소속 교인인 피해자 성애자등 수십명의 교인들에게 『회사를 살리는 것이 교회를 살리는 것이고 유병언을 살리는 것이니 그래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으로 3백80만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 11명의 피해자로부터 합계 금 3억6천7백75만원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했다. 또 82년부터 86년사이 서울·수원 등지에서 23명으로부터 7억9천7백70만원을 같은 수법으로 편취하는등 모두 11억6천5백45만원상당을 편취한 자로서 증거인멸및 도주우려가 있다.
  • 세모/79년 창업,베일속에 급성장

    ◎한강유람선 운항등 해운서 두각/16개사업부 운영… 유사장이 총괄 「오대양사건」의 배후에 주식회사 세모가 개입됐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날로 의혹이 증폭됨에 따라 이 회사에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모는 그동안 독특한 경영방식 때문에 급성장한 기업의 하나임에도 「베일에 싸인 기업」으로 인식돼왔던게 사실이다. 세모는 지난 79년 3월22일 태양개발주식회사라는 상호로 출발,82년 10월 현재의 명칭으로 상호를 바꿨으나 그 모태가 된 것은 삼우트레이딩이라 할수 있다. 세모는 지난 76년2월 유병언사장(51)이 부친의 친구가 운영하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오늘의 모습으로 급성장시켰다. 삼우트레이딩은 종이비누 섬유 페인트 전자모니터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업계에 발판을 넓혀갔다. 삼우트레이딩은 이밖에도 지난 84년 세계에서 3번째로 고해상도 컬러TV모니터를 개발,정부로부터 훈장과 함께 대통령의 방문격려까지 받았다. 이처럼 발명·실용특허가 기반이 된 삼우트레이딩으로 사업을 확장해가던 세모는 지난 85년 9월 유사장이직접 도안·제작한 한강유람선모형이 서울시에서 채택됨에따라 86년 9월 코리아타코마등 유수업체를 물리치고 한강유람선 운항권을 따내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한강유람선사업자선정문제를 둘러싸고 「특혜시비」에 휘말려 86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동안 집중적인 세무사찰을 받아 31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세모는 「오대양사건」이 발생한 87년을 전후한 86년부터 88년사이 30여억원의 자본금을 집중적으로 투자,사업규모도 식품제조업(세모스쿠알렌) 유람선제작 종합개발 컴퓨터주변기기 제약(피부미용제) 보일러제작등 16개 사업부로 급속히 성장했다. 이들 각 사업부는 독립적인 영업·생산활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수입을 맞추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유사장이 사업부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인천시 북구 십정동 558의10에 본사를 둔 세모는 인천·부천·경산·김포·칠곡등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미국 뉴욕과 독일 뒤셀도르프에 해외지사를 갖고있다. 2천6백여명의 직원을 둔 세모의 지난해 매출규모는8백30억원에 이르며 올해는 1천2백억원을 매출목표로 정해놓고 있다. 한강유람선으로 출범한 해운사업부는 지난 89년1월 부산∼여수간 쾌속정인 엔젤1·2·3호등 쾌속정 4척을 인수,불과 2년남짓만에 국내 최대의 연안여객사로 부상했다. 지난 41년 일본에서 태어난 유사장은 대구 성광고교를 졸업한뒤 네덜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씨에게 「복음」을 깨닫고 대구공설운동장 맞은쪽의 「칠성예배당」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에 나섰다.겸손한 태도로 열성적인 활동을 해오던 유씨는 지난66년 대구 YMCA에 드나들면서 알게된 「구원파」지도자 권신찬목사의 큰 딸과 결혼했으며 지난 72년 권목사의 소개로 한때 극동방송국의 부국장직을 맡기도했다. 독실한 장로회 신자였던 유씨는 70년대 권목사가 벌였던 초교파운동에 동참했으나 80년대초 한국기독교침례회라는 교파로 자리잡게되자 이때부터 이 교파는 물론 다른 교회와도 발을 끊고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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