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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雪國 #금강에서 설악을 굽어보다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雪國 #금강에서 설악을 굽어보다

    【신선대 오르니 금강의 산자락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발 아래엔 수바위·화암사·푸른 동해가 한눈에 펼쳐지네】 오랫동안 겨눠 왔던 숲길이 있다. 설악의 끝자락과 금강의 첫 봉우리를 한눈에 담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강원 고성의 화암사 숲길이 그 주인공. 한데 그간 도시의 직장인들이 이 숲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걸핏하면 통제됐기 때문이다. 산행 적기인 봄, 가을엔 ‘산불조심 기간 입산통제구역’으로, 겨울철 눈이라도 내리면 위험 구간으로 지정돼 사람들의 발길을 막았다. 그러다 지난해 말부터 상시 개방 구간으로 지정됐다. 기막힌 설경을 언제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설악의 북쪽, 그러니까 울산바위 오른쪽으로 봉우리 하나가 불끈 솟았다. 당당한 산세의 신선봉이다. 설악산의 북쪽 끝이면서 금강산 1만 2000봉의 남쪽 제1봉이기도 하다. 신선봉은 출입통제 구간이지만 그 아래 능선의 신선대(성인대)까지는 호젓한 숲길을 밟아 오를 수 있다. 그 코스가 바로 화암사 숲길이다. 길이는 4.1㎞ 정도.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산행 코스는 두 개다. 화암사에서 오르거나 화암사 못미처 휴게소에서 오른다. 원점 회귀를 해도 되고, 반대편으로 내려설 수도 있다. 휴게소를 들머리 삼아 오른다. 초반부터 된비알의 연속이다. 제법 힘에 부쳐 겨울인데도 콧잔등에 땀이 맺힌다. 장딴지가 뻐근해질 즈음 거대한 바위가 막아선다. 인근 주민들에게 쌀을 내줬다는 전설을 품은 수(穗)바위다. 모양새가 볏가리를 닮아 오래전엔 화암(禾岩)이라고 불렸다. ‘금강산 화암사’(剛山 禾岩寺)란 절집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수바위 위 웅덩이엔 항상 물이 고여 있다. 가뭄에 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온다.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늘이 툭 터진다. 여기가 신선대다. 제법 굵은 바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해발고도는 불과 645m. 설악의 이름난 봉우리들엔 견주기 어렵고, 미시령보다도 낮다. 하지만 전망만큼은 탁월하다. 북설악 일대의 전경과 신선봉 등 금강의 산자락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발 아래로 수바위와 화암사, 고성 쪽 동해바다가 한눈에 잡힌다. 신선대에서 낙타바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풍경은 더욱 깊어진다. 거대한 너럭바위를 딛고 서면 코앞으로 설악산 울산바위가 웅장하게 펼쳐진다. 그 너머로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거대한 봉우리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설악의 웅장한 자태를 한 발짝 물러서 완상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지 싶다. 울산바위 왼쪽으로는 흰 눈에 파묻힌 속초와 푸른 동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동해의 만경창파를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시름들로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울산바위 오른쪽은 미시령이다. 능선을 따라 미시령 옛길이 구절양장처럼 구불구불 내려오고, 미시령터널 속으로 드나드는 자동차들은 개미처럼 작다. 산행 끝자락은 화암사다. 설악산 코앞에 있으면서도 열에 아홉은 모르고 지나친다는 숨은 명소다. 절집의 개창 시기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가지만 가람 내 대부분의 전각들이 중창 등의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고색창연한 맛은 덜하다. 절집에서 100여m 뒤쪽의 산자락에 미륵대불이 서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금강의 봉우리들은 물론 멀리 속초 시내까지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절집 마당으로 내려서면 찻집 란야원이 객을 반긴다. 날아갈 듯한 기와집의 규모가 커 얼핏 승방처럼 보이는 집이다. 찻집 안으로 들어서면 빼어난 풍경이 기다린다. 문설주를 액자 삼아 바라보는 수바위 자태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번 여정에서 명태와 만난 건 행운이었다. 명태는 ‘1어4색4미’라는 표현만큼이나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 한때 ‘국민생선’이라 불릴 만큼 우리와 친숙한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남획과 수온 변화 등으로 우리 연안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급기야 2014년 ‘현상금’까지 내걸고 어미 명태를 찾았다. 이른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산 건 50만원, 죽은 개체에도 5만원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듬해 살아 있는 암컷 한 마리가 고성군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에 신고됐다. 길이 70㎝에 달하는 싱싱한 명태였다. 이 암컷의 등장은 여러 모로 ‘기적적’이었다. 씨가 마른 상황에서 잡힌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암컷인 데다 상처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암컷은 단박에 양식을 통한 ‘2세’ 확산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명태는 보통 자망으로 잡는다. 작은 그물코에 물고기가 꽂히게 해 잡는 방식이다. 당연히 그물에 걸린 명태가 온전한 경우는 드물다. 한데 이 암컷은 정치망에 잡혔다. 수심 200~300m 아래에 서식하는 명태가 매우 드물게 수심 40~50m를 회유할 때가 있는데, 바로 이 암컷이 얕은 수심을 회유하다 정치망에 걸려든 것이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진 셈. 암컷은 곧바로 수컷 몇 마리와 합사됐고, 자연 부화에도 성공했다. 최근 이 암컷의 후손들이 동해안에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 공식 확인됐다. 2015년 말 20㎝ 정도의 어린 명태 1만 5000마리를 동해 연안에 방류했는데, 지난해 고성 앞바다에서 채집된 명태 가운데 2마리가 이때 방류했던 명태로 확인된 것이다. 이제 토종 명태가 우리 바다로 돌아올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화암사 아래, 그러니까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와 속초 노학동 학사평 일대에 볼거리가 많다. 속초시립박물관, 발해역사관, 국립산악박물관, 테디베어뮤지엄 등과 고성 쪽의 조각미술관 ‘바우지움’ 등 공공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전시·체험시설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새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실내형 테마파크 ‘얼라이브 하트’(www.aliveheart.co.kr)와 ‘다이나믹 메이즈’도 관심을 끌고 있다. 착시 미술과 미로가 결합된 이색 체험 공간이다. 산행의 피로는 온천에서 푼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눈 덮인 설악산 자락을 완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시령 아래 있는 설악 워터피아는 물놀이와 스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온천 테마파크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보양온천’으로 지정됐다. 10여개의 노천 테마탕이 일품. 일반 사우나 시설도 갖췄다. 글·사진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3)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가 44번 국도로 갈아탄 뒤 속초까지 곧장 간다. 경기 양평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강원 홍천, 인제 등을 지나 미시령 터널을 넘는 방법도 있다. 화암사(633-0090)는 미시령 터널을 나가 미시령 옛길 쪽으로 좌회전해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국립산악박물관(682-2084)은 화요일에 휴관한다. →잘 곳 : 미시령 아래 한화리조트 설악 쏘라노(1588-2299), 델피노 골프 & 리조트(1588-4888) 등 유명 리조트들이 많다. 설악동의 켄싱턴 스타 호텔(635-4001)은 영국 왕실을 콘셉트 삼은 테마 호텔이다. 객실 발코니에서 설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맛집 : 도치알탕이 제철 음식이다. 말랑말랑한 살과 오도독 씹히는 알을 묵은 김치와 함께 끓여 내 시원하다. 속초 영랑호 인근의 포장마차촌에서 맛볼 수 있다. 십여개 업소가 늘어서 있는데 당근마차(632-3139)가 그중 알려졌다. 골뱅이무침, 도루묵구이, 간장새우장 등을 곁들여 낸다. 고성 거진항 초입의 성진회관(682-1040)도 권할 만하다. 입 안에 톡톡 터지는 도치알찜도 별미다. 도치알탕은 3월 말까지 먹을 수 있다. 거진시장 뒤편의 장미경양식(682-2084)은 옛날식 돈가스를 내는 집이다. ‘최북단 돈가스’라고 하면 주민 누구나 알 정도로 제법 유명한 집이다. 달달한 소스와 고소한 튀김옷을 입은 고기, 가니시로 나오는 시금치가 독특하게 어우러진다. 곁들여 나오는 강원도식 김치도 별미다.
  • [씨줄날줄] 서해 불법 고래 포획/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서해 불법 고래 포획/이동구 논설위원

    울산, 포항 등지의 동해안 바닷가에서는 고래 고기를 맛볼 수 있다. 울산의 장생포항 주변에서는 고래 고기 전문판매점들이 성업 중이다. 고래 고기의 12가지 특별한 맛을 잊지 못하는 미식가들이 여전히 이곳을 즐겨 찾는다. 고래 고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고래의 실수(?)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다른 어류를 잡기 위해 쳐 놓은 그물망에 갇혀 숨진 고래들만 유통할 수 있다. 어부는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었을 때만 일반 생선처럼 거래할 수 있다. 물론 어부의 고의에 의한 포획이 아니라는 것을 검찰이 인증해 준 후에야 판매할 수 있다. 동해안에서 자주 잡히는 몸집이 비교적 작은(200㎏ 미만) 돌고래도 마리당 평균 1000만원 안팎으로 거래된다. 간혹 덩치가 훨씬 큰 밍크고래(6~7t)가 걸려들면 어부는 1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거머쥘 수도 있다. 동해안 일대에서만 연간 500마리 가까운 고래가 그물에 잡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뱃사람들은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 부르며, 자신의 그물에 고래가 갇히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고래를 잡고 싶은 욕망은 동서고금이 비슷하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는 선사시대인들의 고래 잡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암각화가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비는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주민들이 고래가 잡히길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요즘은 축제(울산고래축제)나 고래 떼를 직접 찾는 관광 프로그램 등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미국의 매사추세츠주는 19세기 포경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국립생태원 자료에 따르면 향유고래는 값비싼 향료를 얻을 수 있어 포경산업이 육지의 골드러시와 비교되기도 했다. 고래기름은 윤활유로, 등잔불을 밝히는 기름으로도 사용돼 엄청난 부를 안겨 줬다. 우리에게 백경이란 영화로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이 19세기 위대한 미국 소설로 불리는 배경에는 고래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잘 보여 줬기 때문이다. 국제협약에 따라 1986년 이후 고래 포획이 금지됐지만 일본은 연구 목적이란 핑계로 여전히 남극 등지에서 한 해 수백 마리를 잡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호주의 고래보호구역에서 고래를 불법 포획하다 적발돼 국제적인 망신을 사기도 했다. 고래 불법 포획은 우리 해역에서도 은밀히 발생하고 있다. 고래 불법 포획에는 벌금(3000만원 이하)과 무거운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인간의 욕심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엔 불법 포획 어선이 동해에서 서해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하니 단속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를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낸 온 국민의 마음을 다시 기억해 줬으면 한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단독] [현장 블로그] 발작하며 쓰러진 얼룩이…누가 길고양이를 죽였나

    지난 11일 충북 제천 대학가에서 길고양이가 돌에 맞아 사망한 사건에 이어 서울에서도 길고양이 학살이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뭇가지로 몸을 쑤시거나 발로 차는 등의 학대뿐 아니라 돌로 내려 찍거나 부동액, 쥐약 등 독극물을 사용한 살해까지 이어지면서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 주택가서 또 독살 의심 사체 지난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주택가 골목에서 주변 상인과 주민들에게 예쁨을 받던 새끼고양이 ’얼룩이’가 숨졌다. 주민들은 고양이가 피를 토한 뒤 펄쩍펄쩍 뛰다 사망한 점을 근거로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곳은 2015년 6월과 7월에도 길고양이와 개 10여마리가 호흡곤란 증세로 잇따라 죽는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 중 한 곳이다. 죽은 얼룩이를 처음 발견한 주민은 “골목에 자주 나타나던 고양이 4마리 가운데 가장 어린 고양이”라며 “나머지 3마리도 계속 토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였지만 지금은 건강을 되찾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 고양이 4마리는 골목 가게 등에 들어가 쉬거나 주민에게 재롱을 부려 길고양이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왔다. 한 상인은 “새끼고양이를 잃은 어미 고양이는 골목을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며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새끼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대 징역 1년… 검거는 어려워 길고양이 학대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징역 1년 이하, 벌금 1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폐쇄회로(CC)TV나 목격자가 없고 부검도 이뤄지지 않아 범인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구철민 동물자유연대 간사는 “사망 당시 정황으로만 보면 독극물로 인한 사망이 의심된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길고양이 학대 사건은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도 밝혀내지 못하고, 증거도 부족해 범인을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길고양이를 혐오해 발생하는 학대·학살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5년 대구 북구·달서구·동구에서는 길고양이 20여마리가 독극물로 추정되는 음식물을 먹고 죽은 채 발견됐고, 같은 해 경기 동두천에서도 12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부동액이나 특정약품 등을 언급하면서 ‘동네에 고양이들 보기 싫으면 이 약품을 발라서 먹이를 주면 됩니다’와 같은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밖에 마당으로 들어온 고양이를 PVC파이프로 때려 죽이거나 길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골목에 그물을 쳐서 잡은 뒤 죽이는 사건들도 있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종의 기원’ 다윈도 놀란 월리스의 위대한 탐사

    ‘종의 기원’ 다윈도 놀란 월리스의 위대한 탐사

    말레이 제도/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지음/노승영 옮김/지오북/848쪽 “땅에 발을 내딛기만 하면, 내가 다시는 배를 타나 봐라.” 1848년 밑창이 뚫린 배에서 그는 50번도 더 다짐했다. 당시까지 그만큼 아마존 깊숙한 곳까지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채집했다. 영국에 내리기만 하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다. 아뿔싸, 귀국선엔 화재가 발생했고 구조선은 구멍이 났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렇게 끝났다면 우리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1823~1913)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로 갈까?” 1852년 월리스는 서른이 되었다. 전형적인 영국 흙수저인 월리스는 다시 돈이 될 만한 것을 채집해야 했다. 일단 아마존은 제외했다. 거기는 이제 옛 동료 헨리 월터 베이츠의 영역이었다. 말레이 제도가 떠올랐다. 동서로 6400㎞, 남북으로 2900㎞ 너비에 흩어진 2만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다. 모두 합하면 남아메리카 대륙 면적과 비슷한 넓이로 대부분 열대우림으로 덮인 화산지대다. 각 섬의 차이를 연구하면 명성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854년 4월 말레이제도에 도착한 월리스는 곧장 탐험을 시작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하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커다란 수집 상자를 어깨에 메고 그물망과 집게, 코르크 마개를 달아 목에 걸 수 있게 만든 두 가지 크기의 표본병을 항상 챙겼다. 때로는 장총을 들기도 했다. 채집에서 돌아오면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소독하고 말리는 작업을 했다. 1862년 1월 말레이제도를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96차례의 탐사여행을 하면서 이 섬에서 저 섬으로 2만여㎞를 돌아다녔다. 항상 그의 목적은 채집. 수만 점의 곤충을 비롯해 포유류, 파충류, 조류, 패류 등 12만 5000점이 넘는 표본을 모았다. 이 가운데 1000여 종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신종이다. 월리스날개구리처럼 월리스 이름이 붙은 종만 해도 100종이 넘는다. 1855년 보르네오에서 우기를 보내면서 어떤 통찰을 얻었다. 쉽게 말하면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잔가지가 나오듯이 오래된 종에서 새로운 종이 나온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한 그대로라고 믿던 시절에 이런 깨달음을 얻고 또 발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리스가 처음 깨달은 사실이 아니다. 찰스 다윈이 이미 20년 전에 품은 생각이다. 하지만 다윈은 감히 발표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금수저 출신으로 부와 명성을 누리던 다윈에게는 평판이 중요했다. 하지만 월리스에게는 걱정이 없었다. 그는 평판은 고사하고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월리스는 지구 환경과 생명을 연관지어 관찰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유산이다. 그는 지구와 생명 둘 다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주장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론을 세울 시간이 있으면 채집이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을 들었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발견은 우연히 일어난다. 경로를 벗어난 월리스는 발리에서 30㎞ 떨어진 롬복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석 달간 머무는 동안 발리에서 보던 새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폭이 불과 30㎞에 불과한 해협 건너로 새들이 퍼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월리스는 발리와 롬복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선의 동쪽과 서쪽에 다른 새가 산다. 서부에는 원숭이, 호랑이, 코뿔소가 있지만 동부에는 그 어떤 영장류나 육식동물도 살지 않고 캥거루 같은 유대류뿐이다. 이 선을 우리는 월리스 선이라고 부른다. 이 선으로 말미암아 월리스는 생물지리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찰스 다윈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월리스의 고민은 종이 어떻게 진화하느냐는 것이었다. 다윈은 오래전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상태였다. 1858년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리며 다 쓰러져가는 집에 누워 있던 월리스에게 ‘인구론’의 주장이 떠올랐다. 월리스는 깨달았다. 그는 열이 내리자마자 며칠 만에 논문을 완성했다.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 그는 논문을 저널에 보내기 전에 찰스 다윈에게 먼저 보냈다. 그후에 일어나는 일은 너무나 유명하다. 결국 다윈이 커밍아웃한다. 월리스가 다시 배를 타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다윈도 없었을 것이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되고 10년 후인 1869년 월리스는 ‘말레이 제도’를 발표하면서 다윈에게 바친다. “개인적인 호감과 우정의 징표로서, 또한 당신의 천재성과 업적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하고자 이 책을 헌정합니다.” 이제 2년만 있으면 ‘말레이 제도’ 출간 150주년이다. 훔볼트에서 다윈을 거쳐 다이아몬드로 이어지는 생물지리학 전통의 빈칸이 비로소 채워졌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서가에 꽂아놔야 하는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동식물, 지명, 인명 색인에 많은 노고가 녹아 있다. 노승영의 번역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예쁜 돌고래가 왜…英 ‘돌고래 연쇄 살해(?) 사건’

    예쁜 돌고래가 왜…英 ‘돌고래 연쇄 살해(?) 사건’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주에서 해양 포유류가 잇따라 죽은 채 해변으로 밀려오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해 전문가들이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데일리메일 등 현지 언론의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불과 며칠 사이에 콘월주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돌고래는 10마리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해양 오염, 어획용 그물망, 이상 기후, 제트스키와의 충돌 등 다양한 이유를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목격자들은 해변을 산책하다가 혹은 제트 스키를 타다가 죽은 돌고래를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콘월야생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3월 콘월 해안가에서 발견된 돌고래와 고래의 수는 61마리에 달하며 이러한 사례는 급증하는 추세다. 돌고래 10마리의 사체 발견 역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콘월주 해변을 지나는 길이 14m 이상의 보트와 저인망 어선 등을 대상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들 어선에서 내뿜는 소음이 돌고래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콘월야생재단의 애비 크로스비는 이 지역 주민 및 관광객들에게 죽은 고래나 돌고래를 발견할 경우 바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유사 사례를 목격한 사람들의 신속한 신고다. 또한 이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고래와 돌고래가 죽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1308년부터 원인 불명으로 해변에 떠밀려오는 해양포유류 사건 5500건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료는 야생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돌고래 살육’ 日다이지 마을서 돌고래 탈출 소동

    ‘돌고래 살육’ 日다이지 마을서 돌고래 탈출 소동

    매년 돌고래 사냥으로 악명 높은 일본 다이지 마을에 위치한 한 돌고래 체험관에서 한 무리의 돌고래가 탈출하는 소동이 있었다. 영국 BBC뉴스와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이 마을에 있는 돌고래 체험관 ‘돌핀베이스’ 측은 4일 체험관 시설의 가두리 그물이 ‘누군가’에 의해 세로로 1m 정도 찢겨져 4마리의 돌고래가 빠져나간 것을 발견했다. 돌핀베이스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빠져나간 돌고래들은 가두리 주변에서 헤엄치고 있었으며 그중 3마리의 돌고래는 스스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또 남은 한 마리는 근처에 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가두리 입구가 무서워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앞으로 훈련을 통해 이 돌고래를 불러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설을 탈출했던 돌고래들은 병코돌고래로 나이는 3~5세 사이. 6개월 이상 해안 옆에 있는 이 시설에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돌고래가 야생에서 포획한 것인지 인공적으로 번식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돌핀베이스 측은 “아무런 전문지식 없이 돌고래들을 위험에 노출시킨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일반인은 돌고래들이 그물에서 빠져나오면 멀리 헤엄쳐 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들 돌고래는 무리를 떠나지 않으므로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돌고래 보호단체 ‘릭 오배리스 돌핀 프로젝트’(Ric O‘Barry’s Dolphin Project) 역시 성명을 통해 용의자들의 행동이 합법적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릭 오배리 대표는 “우리는 돌고래들이 갇혀 지내는 것을 반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인 행동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다이지 초에서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 단체는 또 “현재 다이지에서 끔찍한 방법으로 돌고래들을 포획하고 학살하는 행위를 합법적으로 감시하며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지 마을에서는 매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돌고래 사냥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은 2009년 오스카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을 통해 공개됐고 다이지는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매년 수백 마리의 돌고래와 파일럿 고래가 현지 어부들의 ‘몰아잡기’로 죽거나 수족관에 팔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환경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의 수많은 유명인사도 반대하고 비판하는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는 2015년 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JAZA)의 회원 자격을 정지했다. 몰아잡기로 포획한 돌고래를 사들이는 것은 WAZA의 윤리 기준을 어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JAZA는 WAZA에서 제명되지 않기 위해 가맹 수족관과 동물원들이 몰아잡기로 잡은 돌고래를 구매하거나 수출, 판매하는데 관여하지 못 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다이지 마을은 JAZA를 탈퇴하는 등 꼼수를 부리며 지난해 9월부터 또다시 돌고래 사냥을 강행하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돌고래 살육’ 日다이지 마을서 돌고래 탈출 소동

    ‘돌고래 살육’ 日다이지 마을서 돌고래 탈출 소동

    매년 돌고래 사냥으로 악명 높은 일본 다이지 마을에 위치한 한 돌고래 체험관에서 한 무리의 돌고래가 탈출하는 소동이 있었다. 영국 BBC뉴스와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이 마을에 있는 돌고래 체험관 ‘돌핀베이스’ 측은 4일 체험관 시설의 가두리 그물이 ‘누군가’에 의해 세로로 1m 정도 찢겨져 4마리의 돌고래가 빠져나간 것을 발견했다. 돌핀베이스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빠져나간 돌고래들은 가두리 주변에서 헤엄치고 있었으며 그중 3마리의 돌고래는 스스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또 남은 한 마리는 근처에 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가두리 입구가 무서워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앞으로 훈련을 통해 이 돌고래를 불러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설을 탈출했던 돌고래들은 병코돌고래로 나이는 3~5세 사이. 6개월 이상 해안 옆에 있는 이 시설에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돌고래가 야생에서 포획한 것인지 인공적으로 번식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돌핀베이스 측은 “아무런 전문지식 없이 돌고래들을 위험에 노출시킨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일반인은 돌고래들이 그물에서 빠져나오면 멀리 헤엄쳐 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들 돌고래는 무리를 떠나지 않으므로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돌고래 보호단체 ‘릭 오배리스 돌핀 프로젝트’(Ric O‘Barry’s Dolphin Project) 역시 성명을 통해 용의자들의 행동이 합법적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릭 오배리 대표는 “우리는 돌고래들이 갇혀 지내는 것을 반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인 행동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다이지 초에서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 단체는 또 “현재 다이지에서 끔찍한 방법으로 돌고래들을 포획하고 학살하는 행위를 합법적으로 감시하며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지 마을에서는 매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돌고래 사냥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은 2009년 오스카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을 통해 공개됐고 다이지는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매년 수백 마리의 돌고래와 파일럿 고래가 현지 어부들의 ‘몰아잡기’로 죽거나 수족관에 팔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환경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의 수많은 유명인사도 반대하고 비판하는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는 2015년 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JAZA)의 회원 자격을 정지했다. 몰아잡기로 포획한 돌고래를 사들이는 것은 WAZA의 윤리 기준을 어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JAZA는 WAZA에서 제명되지 않기 위해 가맹 수족관과 동물원들이 몰아잡기로 잡은 돌고래를 구매하거나 수출, 판매하는데 관여하지 못 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다이지 마을은 JAZA를 탈퇴하는 등 꼼수를 부리며 지난해 9월부터 또다시 돌고래 사냥을 강행하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고진하의 시골살이] 땔나무를 쪼개다가

    [고진하의 시골살이] 땔나무를 쪼개다가

    아침마다 장작을 패는 건 요즘 내 주요 일과야. 찬 구들방을 덥혀야 하니까. 정월 초하루 날도 나는 어김없이 장작을 패고 있었어. 이따금 개 짖는 소리 말고는 동굴 속처럼 고요한 마을, 장작 패는 소리가 온 동네를 뒤흔들어 놓았나 보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땀을 닦느라 쪽마루에 앉아 있는데, 누가 삐그덕∼ 대문을 밀치고 들어왔어. “아니, 좀 쉬시지 않고 새해 첫날부터 이 고된 일을…?” 오, 사람 좋은 뒷집 장 선생. 은퇴를 앞두고 작년에 우리 마을로 양옥집을 짓고 들어와 이웃이 된 분이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가 정초부터 장작을 패는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사실 나는 평소 몸 쓰는 노동을 즐기는 터. 이런 일로 힘들다고 엄살떤 적이 없지. 장작을 쪼개는 일은 적당히 땀 흘릴 수 있어 몸에도 좋고, 정신 집중에도 으뜸이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어서 와요. 고되긴 뭐, 쉬엄쉬엄하는 걸요. 사실 이런 일은 힘들지 않은데, 어쩌다 인터넷 뉴스를 열면,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은 놈들 보는 게 힘들죠. 더욱이 세월호 사태에 대해 새로운 의혹이 뻥뻥 터지고 있는데,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짠해요.” 그랬어. 사태의 진상을 알 법한 이들이 아령칙한 답변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불쑥불쑥 일어나는 분노를 누르고 지내는 게 정말 힘들었어. 끝 간데없는 저 탐욕의 무리를 보며 한없이 울가망해지던 마음.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다른 생명의 살 권리는 희생돼도 좋다는 거 아닌가. 물론 어떤 존재든 다른 생명의 희생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아. 생명이 다른 생명을 먹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이 불가피한 현상을 누군가는 창조주의 비애라고 했지. 하지만 이런 얘기가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생명의 살 권리를 빼앗아도 된다는 건 아니잖아. 다만, 지구에 주소를 둔 생명은 모두 다른 생명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는 걸 깊이 자각하라는 거지. 그래서 잡초를 먹고사는 우리 가족은 흔한 잡초를 뜯을 때도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을 건네곤 하지. 내가 먹는 존재들이 곧 내 몸이 되는 것인데, 어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내가 먹는 존재들은 나와 둘이 아니잖아. 이런 분명한 자각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자기 곁의 생명이 겪는 아픔에 무관심할 수 없지. 동물 희생이 보편적 관행이었던 원시 시대에도 자기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동물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잖아. 이런 경의를 표할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공감과 자비의 영성으로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쁨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누가 과연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보살의 마음을 지닌 자라야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더덜뭇한 나는 보살의 지극한 마음과는 거리가 멀어. 그러니 타인의 슬픔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가 없어. 그냥 타인의 슬픔에 슬픔으로 참여할 수 있을 뿐. 하지만 나이 들수록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점점 커져. 젊을 땐 드물던 그놈의 눈물도 점차 많아지고. 하여간 모든 생명의 뿌리는 하나라는 생각에 사무칠 때가 많아. 국정 농단을 저지른 이들조차 내 존재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곤 하지. 내 안에 박근혜가 있고, 내 안에 최순실이 있고, 내 안에 또 누구누구가 있다는 생각….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안의 박근혜, 내 안의 최순실이 저지른 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그 죗값을 치르면 좋겠어.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늘 그물이 성긴 것 같아도 빠트림이 없다는 저 천상의 법대로 대가를 받으면 좋겠어. 누군가 아프면 나도 아프겠지만, 그것이 우주의 성스런 질서를 구축해 가는 일이므로. 에구, 정초부터 땔나무를 쪼개다가 문득 찾아온 뒷집 장 선생 때문에 주저리주저리 온갖 수다를 다 떨었네. 장 선생을 보내고 나서 쪼갠 나무를 수레로 실어다 바깥채 처마 끝에 쌓았어. 며칠 더 나무를 패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을 것 같아. 가지런히 쌓아 놓고 보니 아낌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나무에게 절로 고마운 마음이 새록새록 하네.
  • [세종로의 아침] 이 세상의 주인공/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이 세상의 주인공/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오가는 행인도, 내닫는 차량도 드물게 한산한 어둠의 거리. 편집국에서 내려다보는 정유년 정초(正初) 새벽의 세종로는 평온하기만 하다. 의혹과 증거가 난무하는데도 ‘모르쇠’만 무성한 새해 초. 초행자라면 주말마다 만들어지는 성난 촛불의 군집이 믿기지 않을 듯한 그 분노의 거리는 이 정유년에 어떤 변신을 거듭할까. 세종로를 포함해 전국 밤거리를 달군 분노의 천만 촛불은 농단(斷)과 그 농단에 휘둘린 대통령을 겨냥한다. 맹자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속 농단이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 권력을 독차지한다는 뜻을 갖는다. 맹자가 제나라 객경의 자리를 사퇴하려 하자 제나라 선왕이 사람을 보내 잘 대접하겠다는 심경을 전하려 했다는 과정에서 유래한 교훈의 경구. “한 못난 사나이가 있어 농단(높이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로 올라가 좌우를 살핀 다음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했다. 사람들이 이를 밉게 보아서 그에게 세금을 물리게 됐는데 장사꾼에게 세금을 받는 일이 이 못난 사나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을 회유하려는 선왕에게 전해 경종을 울렸다는, ‘처신을 잘하라’는 경계의 일침일 터. 하지만 그 교훈은 이 땅에선 거꾸로 온 나라를 뒤흔든 비극으로 바뀌었다. 즉각 퇴진과 하야, 심지어 구속, 체포의 극단적 구호마저 외면과 무시로 되돌려지는 농단의 비극은 자괴감의 충돌로 더 슬프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라는 푸념은 ‘이러려고 대통령을 뽑았나’라는 민심으로 환치됐다. ‘바람 불면 꺼진다’는 촛불이 ‘바람 불어 더 강해지는’ 촛불로 번지는 모순의 연속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따져 보면 그 농단의 바탕은 주인공의 실종이다. ‘어땠길래 이 지경인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토록 휘둘렸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상식에 맞선 민심 이반과 상실감은 모두 주인 없는 국정의 심장을 향하지 않는가. 대학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도 그 민심 이반의 딱부러진 대변이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그 전복의 교훈은 누가 주인이고 그 주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겨눈다.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국정 농단의 끝은 특검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치닫고 있다. 그 끝에 곧 닥칠 수 있는 대통령 선거를 향한 정국의 요동이 심상치 않다. 그 와중에 많은 정치인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이지 않아 주체적이고 자유자재한다’는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입에 올린다. 그래서일까. 정유년 아침 종교계 지도자들이 낸 신년사도 주인공으로서의 올바른 처신을 당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에 초청받아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고 했던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신년사에 이런 주문을 담았다. “우리가 내 삶과 세상의 주인공으로서 지혜로운 판단과 선택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한다면 역사는 정유년을 희망과 행복의 해로 기록할 것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암울한 세상을 허물 주인공은 바로 나 아닐까. 눈 똑바로 뜨고 뒤집어지지 않을 튼튼한 배를 띄워 보자. kimus@seoul.co.kr
  • 민관 함께 복지사각 발굴… 중랑의 촘촘한 ‘그물 복지’

    민관 함께 복지사각 발굴… 중랑의 촘촘한 ‘그물 복지’

    살림이 퍽퍽한 가정일수록 더 추울 수밖에 없는 겨울, 서울 중랑구가 저소득 취약계층 챙기기에 나선다. 중랑구는 다음달 28일까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정을 집중 발굴해 지원한다고 2일 밝혔다. 동장, 지역사정에 밝은 민간인 등으로 구성된 16개 동의 행복나누리협의체와 복지통장 등이 위기 가정을 직접 찾을 계획이다. 생활밀착형 방문 서비스 업무를 하는 가스검침회사와 한국전력공사, 우체국, 경찰서, 한국야쿠르트와도 공조해 사각지대 취약계층을 발굴한다. 또 보건복지부의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단전·단수되거나 사회보험료를 밀린 취약계층을 찾아내고 집을 방문하거나 전화 상담해 도와줄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제도를 몰라 기초생활보호대상 등 지원을 신청하지 않은 가정이 제법 있다”면서 “촘촘한 발굴 작업을 통해 이들을 찾아내면 지원 제도를 잘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지원 대상은 되지 않지만 당장 생계비나 주거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는 구 차원에서 긴급 지원을 해 준다. 생계비 지원은 4인 가구 기준으로 115만 7000원, 주거지원은 63만 5900원으로 최대 3개월까지 받을 수 있다. 신태화 중랑구 복지정책과장은 “구 직원들과 저소득계층이 1대1 결연해 직접 도와주는 등 적극적인 복지 행정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해부된 육체:부분이 발설하는 단서들 - 김효숙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해부된 육체:부분이 발설하는 단서들 - 김효숙

    인간의 몸이 고깃덩어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에 대한 전일적 관점을 위반하는 데서 시작한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도발적 상상력을 끌어와 보면 이러한 점은 더 명백해진다. 인간을 꿈틀거리는 생명덩어리, 즉 고기로 표현한 그의 이미지에 기대면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새로이 증명할 방법을 탐구한다. 이때 우리는, 완벽한 몸이라는 정형을 벗어나 감각과 존재를 해방하고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본능의 심연까지 가 닿으려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인간의 살과 고기의 살점을 저울에 달 때와 정용준의 관점은 다음 같은 문장에서 겹친다. “모든 고기는 저울 위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개들’,105쪽). 함량과 수치만을 기준으로 따지면 인간은 고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무게가 고기와 동급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하다. 베이컨의 고기-인간들은 2) 육체라는 전체성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정형과 규격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뇨·혈액·타액·정액 같은 체액들,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하거나 홀쭉해진 형체들을 그의 그림은 보여 준다. 여기에 정용준의 소설은 해부하고 해체한 육체의 일부분들과 조각들, 먹다 버린 음식물 찌꺼기처럼 넘치는 비만한 살들, 지문, 주민등록번호, 냄새 같은 기호들을 추가한다. 육체라는 전체로부터 일부분이 끊임없이 탈주하는 그곳에서 인간은 재정의된다. 흘러나온 육체의 일부분들이 스스로 의미를 발설하면서 전체성으로서 육체의 허위가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자가 이 지구 상에 있는 한 완결할 수 없는 질문, 그래서 우리는 반복하여 묻는다. 그 물음이 단지 존재의 물질성을 해명하려는 것이 아닌 한 실존 그 자체로서 무수한 질문을 품는다. 해부된 육체의 일그러지고 녹아내린 듯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누군가가 주문한다면 공포를 주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갈가리 찢어지거나 분해된 육체 3)의 성분들, 일부분이 지나치게 비대한 육체는 미학적이지 않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물질과 물질이 부딪쳐 상처 나고 찢어진 것을 원상태로 되돌리려 애쓴다. 완결된 육체, 곧 육체의 전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을 죽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형태를 갖춘 몸이 와해될 때 인간은 이른바 고기가 되고 말 테니까. 살점 일부와 한 컵의 피, 한 바가지의 오줌으로 존재가 정의된다면 그것은 과연 한 점 얼룩일 뿐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서 정용준의 소설로 들어가보면 우리는 거기서 육체의 질곡과 해방을 동시에 경험한다. 정용준의 소설은 세계를 이루는 존재자들을 되도록 부분적으로 보여 준다. 완전체로서 육체가 아니라 그것을 쪼갬으로써 개별성과 존재다움을 드러낸다. 쪼개진 그 조각에 장식이란 없으며 당연히 아름답지도 않다. 자연 상태 그대로 인간들은 거칠고 낯설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몸의 조직에 정신을 심으면서 정용준의 소설은 국부로 전체를 드러낸다. 그것은 전체성으로서보다 피 한 방울, 지문, 살점 일부분들에 압착되어 있다. 몸은 해체되면서 전체를 말하고, 부분은 전체로 나아간다. 정용준의 소설은 가족공동체로부터 발화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동시대 작가들과 구별된다. 그는 존재를 말하기 위해 우리 삶의 작은 조직들에 주목하고, 몸을 해체하듯 관계를 해체한다. 롤랑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러한 조직들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정용준은 ‘말한다’. 사진만이 인간의 육체를 죽임으로써 전체를 보여 준다는 바르트의 사유방식으로 말하면 정용준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 몸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일부분으로 접근한다. 미소한 부분으로부터 존재의미를 캐면서 가장 생생한 육감을 재현해 내려 한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까지도 정용준의 육감은 벋는다. 존재가 어느 한 부분의 신체조각으로 증명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존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이해방식을 얻게 된다. 보이지만 ‘없는’ 쁘리즈락 우리 몸은 ‘근대’라는 개념이 만들어 낸 하나의 물질이다. 시간은 몸의 물기를 쥐어짜면서 흐르고, 우리의 몸은 점점 건조해지고 단단해져 간다. 시간에 휩쓸려 가는 물질로서의 육체는 점점 추악해지고, 위선 속에서만 순결성을 띤다. 이 세계는 온통 ‘금지’ 구역이자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육체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육체를 무너뜨리고 분해하고서야 위선의 고리는 끊어진다. 개인을 넘어선 인류 전체의 육체에 대한 이야기가 그때 탄생한다. 그것은 어느 개인의 몸에 관한 담론이 아니며, 불멸하는 육체를 이미지화한 비개인적인 것이다. 금지에 결박된 덩어리로서 몸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을 그 몸의 일부로 자유롭게 구가하는 생명성이다. 사회의 습속을 배반하고서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몸, 자연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듯 거칠고 기이한 몸들은 그때 허위에서 해방된다. 자연의 법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때 우리 몸은 사회라는 인위적이고 완강한 간섭보다 자연이라는 거칠고 전체적인 범주 안에서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이란 바로 그러한 지점에 구겨 박힌 육체를 불러내는 장르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세계가 우리에게 존재란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온다면 위와 같은 단언만으로는 그 답이 불충분하다. 여기에 정용준 소설의 고민이 자리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필요 없는 사회적 기호를 우리는 두 개 갖고 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다. 전자가 개별 신체의 주소지라면 후자는 개인의 번지수다. 두 개 코드는 인간 개체에게 한편의 안정과 다른 편의 위험을 동시에 안겨 준다. 존재를 나타낸다는 것은 안전을 보호받는다는 의미와 그것이 위협당하는 현상을 동시에 내포한다. 인간의 나타남이 사회의 가시적 존재임을 증명해 준다면, 존재의 숨김에 대한 탐문은 비가시적 공간의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닐까. 가시적이라는 분명한 현상 가운데서도 모든 타자는 불가사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비가시적 존재와 가시적 존재 간 차별성은 없다. 가시적인 존재자에 대한 탐문도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474번’에서 우리는 이런 존재를 만난다. “그의 지문은 등록되어 있지 않았고 실제로 그에게는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없었다.” 가시적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존재를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 ‘그’라는 3인칭만이, 열다섯 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오명만이 그를 말해 준다. 살인을 한 이유도 ‘그냥’이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무존재자가 그것이 있는 존재자를 살해했으므로 사건은 실종된다. 법이 작동하는 곳은 물리적 공간인데 그것을 적용할 존재가 없다. 죄를 물어야 하지만 죄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다며 종결지으면 될 일이 아닌가. 정용준은 여기서 ‘사건 있음’과 실존재의 부재라는 현상을 넘어 하나의 알레고리를 던져 준다. ‘가해자 없음’과, 분명히 누군가가 죽어 없어진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여기에 이 소설의 발화의지가 있다. 가해자 없음으로부터 정용준은 오히려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지문’ 부재현상으로부터 소설로 접근해 가자. 지문은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인간의 개별성을 나타내는 유일한 기호이므로. 정용준은 이 소설에서 지문 없는 존재 곧 몸이 없는 존재와, 살인자의 ‘의도’를 추적하기보다 살인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존재의 ‘없음’에 대해 말한다. 살인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무심코” “거리낌 없이” 몹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러한 살인자에게 우리는 정신병력이 있는지,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금품이 필요했는지 등을 물을 수가 없다. 작가가 살인동기부터 이렇게 밝혀 놓고 있어서이다. 그렇다면 살인동기의 자연스러움을 그 존재의 어떤 특성과 연계해야 하는가. 살인이란 타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절멸하는 것이기에 범죄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해자 없음’과 ‘무심코’라는 두 가지 단서를 얻었다. 이에 대한 단정은 잠시 유보하고 또 다른 단서를 위해 조금 더 앞으로 나가 보자. 그 살인현상에 대해 정용준은 이렇게 해명한다. “사자가 사슴의 숨통을 끊고서 자신을 만든 창조자에게 용서를 빌지 않”고 “자신의 용맹함을 자랑하며 포효하”듯 그가 살인을 했다고. 그는 “잔인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스스로도 정신이상에 대해 부정”한다고. 그는 죄책감이 없으며 살인을 해놓고도 용맹을 자랑하는 존재다. 이쯤에서 우리의 사고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 무성無性, 이렇게 존재를 확정하고서 정용준이 보여 준 살인자의 특성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손에 잡혀 오는 것이 있다. 그의 본성의 그러함과,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부터 확보한 ‘그’라는 존재. 존재를 감추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는 탁월한 킬러다. 존재가 은닉하는 문제를 감추는 식으로 존재하는 자를 신으로 명명한 하이데거 방식대로라면 그는 최상의 존재자 4)다. 자연 이후 문명 이전의 존재자, 인간의 죄를 물으며 공격적으로 성장한 종교현상을 빗대는 존재다. 그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없으므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성’이다. 이렇게 단정하고 보면 생각의 가지는 다시 갈라진다. 정용준은 ‘그’로부터 신의 존재를 환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원적 사고를 넘어서려 한다는 것을, 그의 소설은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는 열린 지층이라는 것을. 단정은 그의 소설의 지층을 단면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의 지층을 거기에 더 얹어 놓자. 그는 아버지와 누나 사이에 태어났지만 이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근친이다. 그래서 현실공간으로 부상할 수 없는 존재, 정용준의 표현대로 ‘쁘리즈락’이다. 가시적이므로 분명한 존재자이지만 사회의 법망에 등록할 수 없으므로 ‘없는 사람’이다. 법의 그물망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들과 달리, 정화할 수 없는 원죄의 피가 흐르는 몸, 주소지도 번지수도 없으므로 무성의 캐릭터다. 이 ‘없음’ 현상에 ‘신’이라는 비가시적 존재가 자꾸만 얹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가 자꾸 겹쳐지는데도 명징하지 않은 그 존재가. 도스토옙스키가 ‘백치’에서 미쉬낀 공작에게 신의 속성을 심어놓았듯 정용준은 ‘474번’의 그에게 신의 속성을 이식하지 않았을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으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소재지에 신도 ‘그’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작가의 질문은 이어진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살해에 과연 의도가 있는가? 의도된 살해가 증오나 이해관계의 결과물이라면, 의도 없는 살해는 자연현상처럼 일상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살해 후의 정서와 애도 행위가 죽음과 나를 관계 맺게 하지만 이때 살해에는 아무런 정감도 없으므로 죽음에 대해 내가 떠안을 책무란 없다. 살해는 일상처럼 이뤄진다. 충동·쾌락·분노 같은 격동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괴로움도 없다. ‘도깨비감투’를 쓰면 자신이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동화에서처럼, 존재의 사라짐과 비밀의 완전 봉인은 동시에 진행된다. 그런 점을 알게 된 아이가 악행에 빠지듯 그는 ‘순수’하게 살인을 한다. 지능 높은 어린이들을 훈련시켜 체제에 반대하는 양민을 죽이게 한 폴포트 정권도 이러한 순진무구함이 더 악랄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순수함과 죄책감 없음은 동류의 정서임을, 그러므로 순수하다는 것은 오히려 나쁜 것이며, ‘순수한 죄인’은 더 극악함을 일깨운다. 도깨비감투를 쓴 아이, 지능 높은 순수한 아이, ‘474번’의 그는 이때 최상의 존재자가 된다. 정용준의 소설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 세계에 널린 ‘현상’들을 증명한다. 그의 소설의 두께는 그렇게 형성된다. 그러니 앞서 우리가 본 ‘그’가 ‘지문’ 곧 육체가 없는 존재임을 확인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설의 또 다른 문면으로 접근하기 위해 ‘그’의 주민등록번호 부재 현상을 보자. 번호가 부여되면서 존재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번호 부재는 곧 존재 부재를 일컫는다. 정용준은 이 존재를 쁘리즈락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이를 요즘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유령현상과는 구별하고 싶다. 번호가 존재를 증명하지만 그 번호가 사실은 존재를 희미하게 지워 나가는 기호임을 우리는 ‘벽’의 염전 일꾼들에서 본 바 있다. 가혹한 구타, 죽음 같은 침묵의 공간, 감정은 일체 거세된 채 오직 복종하고, 죽음에 이르러 물질이 되어 가는 그들의 몸을 보면서 우리는 21, 23, 9 같은 숫자일 뿐인 그들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어진다. 존재를 지워 존재를 드러내는 이러한 화법으로부터 우리의 생각은 다시 갈라진다. 그러면서, 번호는 우리의 육체를 알기 위해 매겨진 하나의 기호이며, 육체를 아는 것으로부터 모든 지식은 출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육체, 거울로서의 육체, 이 육체로부터 우리의 모든 ‘앎’은 출발한다. ‘그’의 몸이 없으므로 우리가 그를 알 수 없는 것은 그러므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건 수사관들이 ‘유령’이라며 고개를 젓고, 지문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어서 존재증명이 불가능한 그. 상대는 나를 볼 수 없으나 나는 상대를 꿰뚫어보는 일방향의 시선이 목적성을 가질 때 악의든 호의든 가장 완벽한 존재자가 되는 지점을 이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상처 충돌의 흔적-체액들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일에서부터 사유가 탄생한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로의 회귀를 꿈꾼 셰익스피어가 ‘리어왕’(1막 4장)에서 물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맥락 안에서 인류가 존재를 증명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정의는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수렴되는 존재증명, 그것은 결국 인간의 ‘몸’이 ‘운동’할 때부터 물질로 전락하는 때까지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존재에 대한 탐색은 그 무엇보다 꾸준히 정치하게 진행되어 왔고, 정용준의 소설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이른바 ‘겹치는’ 존재자들로부터 인식의 깊이를 수립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타자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하에 우리는 언제나 바라보는 ‘시선’이었으며 동시에 ‘응시’당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이는 하이데거가 타자를 ‘함께 있음’ 즉 서로 관계하는 방식으로 본 것으로, 정용준 소설의 타자들 중에는 냉혈한의 정서로 관계망을 형성한 인물들이 제법 있다. 이를테면, 한 점 살이나 오줌 얼룩으로 존재를 말하고, 각기 다른 피들이 혼종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음습하게 그리면서 존재를 증명하는 ‘개들’, 혈액 투석으로 빠져나가는 단백질을 채워 넣는 일에 골몰하며 계란을 먹어치우는 아버지를 보여 주면서, 새 피를 보충하고 허약해진 ‘근육’을 회복하려는 남성의 고투를 그린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가 그러하다. 한 점 살과 피·눈물·오줌 같은 체액들로 그가 누군지를 말하기 위해 정용준은 미소한 부분을 응시한다. 피는 수치數値라는 정확성으로 우리를 근원의 비밀로 이끌지만 정용준의 소설은 이러한 과학적 접근을 위해 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수치’를 따지려드는 우리를 긴장시킨다. 이 소설에서 피는 부패의 습격을 막으려는 살에 대한 메타포가 아닐까. 살과 몸은 제 안에서 피를 단속할 때는 부패하지 않지만 피가 쏟아져 살만 남을 때 몸은 썩는 것. 그러므로 살아 있는 살과 몸에는 피가 방부제다. 존재는 보여 준다, 인간의 체액 중 피가 가장 원초적인 진실이라는 것을. 존재의 근원을 은폐하는 것과,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가장 깊은 속성에 관계된 것임을 작가는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기, ‘피’라는 물질만이 개별자와 가족을 묶는 준거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 있다. 타자의 피와 내 피의 원소가 겹쳐 하나의 혈맥을 이루는 양태를 생물학적으로는 가족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도 정용준의 소설에는 등장한다. ‘개들’에서 ‘곰’은 동물세계의 지배자와 동격이다. ‘모란’은 그의 하인이자 아내·종업원·딸이다. 모란이 곰의 하인이자 종업원이라는 데에는 의미 부여가 달리 필요 없다. 그러나 아내이자 딸이라는 자격은 보편을 위반하는 강한 금지를 동반한다. 성생활과 혼인관계의 교차로가 가족이라면, 아내이자 딸이라는 모란의 자격은 근친상간이라는 강한 장치를 내포한다. 성생활의 특권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근친상간이 꽃피는 두려운 비밀의 세계, “불가결의 접합부로서 끊임없이 환기되고 거부” 5) 되면서 관계의 틀 안으로 수렴되는 욕망이 곰의 아내이자 딸인 모란에게서 발산된다. 그러나 모란이 손님들로부터 ‘연변아가씨’라고 불리는 데에 이르면 또 다른 소격현상에 우리의 의식이 밀린다. 모란이 곰과 혈연관계가 아니며, 원시공간 속 여성 대명사로서 문명 이전 세계에서 가족이 형성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아직 자연으로부터 미분화한 존재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가 앞서 본 ‘474번’의 그가 실정법에 매이지 않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과 같은 정서를 몰아온다. 곰과 모란을 이해하기 위해, 이 부부와 동거하는 고아인 ‘나’를 보자. ‘나’에게서 풍기는 다소 불쾌한 징후들, 이를테면 ‘나’는 곰의 아들이라는 자격으로 한 집에 살지만 곰의 아내인 모란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 지금이야. 비가 오면 여자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거든. 모란의 방에 찾아가. 마음을 고백하고 결혼하자고 말해. 모란도 원하고 있을 거야. 병구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 “정말.”(‘개들’, 120쪽) ‘나’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발현에 충실하다. 노련한 ‘나’가 병구를 꼬드기지만 그것은 불가능을 주문하는 것이고, ‘나’도 그 점을 잘 알기에 모란을 두고 병구와 경쟁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경쟁 상대가 아니기에 사실은 어떤 주문도 가능할지 모른다. 지능이 모자란 병구가 사랑을 위해 고투하는 어수룩한 형태의 결말은 빤하고, 모란을 향한 병구 마음의 경사도와 실패 가능성 또한 비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니까 모란에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근육’을 단련하는 냉혈한이다. 이렇게, “이두박근, 승모근, 상박근, 하박근 등 근육”을 키우며 “내 근력은 곰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를 은밀하게 확인해 나간다. ‘곰’은 원시자연의 지배자이므로 나는 곰이라는 법을 뛰어넘기 위해, 즉 모란을 얻기 위해 근육을 단련한다. 곰의 근력에 근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화해 가야 할 욕망의 저장고, 그곳은 근육을 단련함으로써만 채워질 것이다. 어머니이자 누나인 모란의 육체와의 연속성과 경계 없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곰처럼 완력을 갖춰야 한다. 어머니-누나의 경계가 없는, 있다 할지라도 나와 비혈연인 모란과는 피차 내재적 질서가 없는 관계이므로, 우연과 외면성으로 정해진 관계이므로 ‘곰’과 ‘나’에게 모란은 혈연이라는 필연에 묶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의 욕망을 대변하는 두 인물은 이 세계에 유일한 하와, 곧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모란에게 똑같이 집중하는 것이다. ‘개들’의 인물 중 우리는 ‘병구’를 지나칠 수 없다. 곰과 ‘나’가 근육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명한다면, 병구는 근육들의 세계로부터 일찍이 소외된 자로서 또 다른 신체의 일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것도 죽음으로써. 모란의 방문이 열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곰”을 보았고, 그 뜻을 알았고, 아는 순간 세계가 열리는 그 지점으로부터 병구를 들여다 보자. 그리고 그 순간 침묵하는 병구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모호함이 순간적으로 벗겨지면서 충격을 가하는 인식세계, 병구는 곰의 건장한 몸을 보고 있었고, 성을 인식했고, 그 순간의 눈뜸은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는 입사식과 같다. 새로운 세계의 도래는 ‘앎’이라는 충격파가 이전세계의 인식을 부수는 것이다. 곰과 모란이 아프로디지아(aphrodisia, 어떤 형태의 쾌락을 제공해 주는 행위·몸짓·접촉 ; 푸코, 같은 책, 55쪽)를 누리고 있는 그때 수다쟁이인 그가 말이 없어지고, 울보가 울지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멍하니 어둠의 한 지점을 응시”하면서 “무엇인가 깨닫”는 그곳이 ‘앎’의 정곡이다. 그의 시각을 충격하는 것은 미학적인 감정이기보다 본능에 대한 자극이며, 지식에 대한 충동이 그 대상과 맞닥뜨린 순간이다. 병구가 본 곰은 나체였고, 곰의 몸 중 일부분이었으며, 그 조각만으로도 세계의 비밀은 누설되었을 터, 곰의 벗은 몸으로부터 흘러나온 비밀이 그를 충격한다. 일부분이 세계 전체의 환유일 때 그 조각은 본래 체적을 초과하여 팽창하는 게 아닐까. 좁은 문틈으로 바라볼 때도 바깥세계의 면적은 팽창하는 이치대로. 벌거벗은 ‘곰’처럼 ‘개들’은 고깃덩어리 같은 육질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어떤 덩어리가 툭, 이 세계를 흔드는 것을 감지한다. 병구가 곰의 나체를 응시하는 한 몸에 대한 의미생산은 이어진다. 남녀 상호 간 본능적으로 생산되는 몸의 기호들이 상대의 감각을 지배할 때 거기서 비밀이 탄생하고, 그것에 휘어잡히고, 사로잡힌 자는 몸이 부단하게 발설하는 비밀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비밀은 ‘복종’하지 않는다. 주인인 몸을 언제나 벗어난다. 탈주를 노릴 때만 비밀은 자신의 신분을 확정한다. 그러니 절대성을 갖는 비밀은 없다. 모란의 몸이 생산하는 기호들이 병구에게 와 닿자 세계의 비밀은 열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누설된 비밀 때문에 병구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죄인으로서 스스로 그 비밀이 선고한 사형수가 된 셈이다. 성에 대해 발설하는 순간 언어는 세속화라는 폭발력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은 수습 불가능한 자기 증식력을 동반한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한 노골적 담론화는 죽음으로 가는 직행통로다. 나타나는 순간 폭발하는 속성 때문에 성은 자신을 숨기는 대가로서만 유지된다. 병구의 죽음은 이렇게 그것의 나타남을 몸소 덮어버린 철저한 제의다. 성을 버리는 것, 그것은 죽음처럼 깊고 캄캄하지만 가장 분명한 가시성이다. “이십 년을 살다 죽은 병구의 사체는 십 개월을 산 도사견보다 작아 보였다”는 지점에는 세계의 비밀을 보게 된 자신을 폐기해 버린 왜소한 몸과, 삶의 마지막 기표인 “오줌으로 변색된 면바지가 까”맣게 남는다. 경련이 일고, 감각이 빠져나가고, 몸은 굳어간다. 이때 흘러나온 오줌은 산 자를 해체하는 마지막 운동의 징표다. 죽음 직전 감각이 마지막으로 운동한 흔적이며, 인간이 물질화되는 바로 직전 현상이다. 병구는 오줌 얼룩을 남기며 이 세계의 비밀로부터 도망쳤고, 그 얼룩은 성이라는 불경스럽고 속된 것으로부터 병구 자신의 욕망을 확인한 육체의 기호일 것이다. 욕망하면서도 수치스럽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안타깝게도, 병구가 스무 살 성년의 문턱을 막 넘어서다 직면한 세계는 그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인식의 빛은 병구가 눈을 뜨는 순간 번쩍임과 사그라짐이 동시에 진행되고 만다. 병구는 발설되어서는 안 될 것을 싸안고 캄캄한 죽음 속으로 투신한다. 억압되었으므로 알 수 없었으나 억압을 통해서만 검토되는 성에 대해 허용된 그 시각, 병구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동시에 죽었다. “나를 죽여 주세요”라고 자신의 서투른 삶 같은 글씨를 써놓고서. 베이컨의 그림 한 컷처럼, 그의 가장 강렬한 경험과 인식, ‘지식애’(피터 브룩스)의 흔적은 오줌 얼룩으로 남는다. 그의 몸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액체인 오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어난 격렬한 경련의 징표다. 그가 죽음으로써 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염려도 무화되었다. 부재하고 비표명되도록 숨겨야만 성은 생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의 본성은 오래도록 은밀하게 유지되어 왔을까. 죽음처럼 절대적인 침묵은 없으므로 차라리 죽음으로써 입을 다물어 버린 병구, 자신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저 세계의 문을 죽음으로써 영원히 닫아 버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말해져서는 안 될 세계는 폐기되고, 병구의 목숨도 그 비밀처럼 폐기된다. 변하는 살 냄새에 존재 묻기 정용준 소설의 인물들에게서는 눅눅한 냄새가 난다. 이 또한 ‘존재’에 접근하기 위한 후각의 발현으로 보인다. 죽은 것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시각에 의존하는 문명인과 달리 정용준의 캐릭터들은 원시 인간처럼 퇴화하지 않은 후각으로 존재의 진실에 접근한다. 원시공간에서 막 생성된 존재가 바닷물로부터 비릿함을 감아올릴 때처럼 개 냄새, ‘모란’ 냄새, 곰팡이 냄새, 비린내, 게 냄새 등으로. 하층계급과 중간계급의 관심사에서 보이는 중요한 차이가 냄새에 대한 태도에 있다는 지적 6)대로라면, 정용준 소설에서는 소외계층의 냄새가 불유쾌한 조짐들을 몰고 온다. 하층민일수록 그들의 습관은 냄새에 더 잘 실려 있다. 이웃은 그들의 습속을 냄새로 타자에게 실어 나르고, 냄새는 이웃에게 번지면서 생명에서 비생명으로 진행한다. 이때 ‘썩음’이라는 현상을 동반하는데, 냄새를 맡는 일은 사멸할 것에 대한 불쾌한 감각의 마지막 쏠림이다. 부패 현상의 끝과 죽음은 같은 지점에 있으며, 죽음이 가까울수록 냄새도 강렬하다. ‘개들’에서의 냄새는 어디에서 오는가. 비와 오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된 곳은 개가 도륙당하는 도축장이다. 죽음 냄새가 음습하게 번지면서 불쾌함이 주조를 이룬다. 오래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기분을 바꾸려고 다른 데로 신경을 써도 여전히 붙들리는 냄새. 악취도 오래 맡다 보면 휘발되기 마련이나, 그렇지 않다면 어디선가 지속적으로 살이 썩고 있다는 증거다. 오래 씻지 않은 하층민의 삶처럼 눌어붙은 냄새, 고질화된 고통, 그것은 썩어가는 살의 증표다. 생명체는 예외 없이 부패하고, 부패선상에서의 피 흘림과 절규는 살이 단단해지고 건조해질 때까지 진행된다. 그때까지만 우리의 몸은 냄새를 풍긴다. 살 냄새, 즉 우리가 살아 있다는 냄새를. 비가 싫다. 마당은 오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되고 냄새는 진해진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개 냄새. 주변을 장악하고 오염시키는 우울한 기운들. 마르지 않은 오줌 위에 누워 철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노랗고 빨간 눈들. 플라스틱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 팔이 끊어지도록 들었다 놨다를 반복해도 불쾌한 기분은 가시지 않는다.(‘개들’, 100쪽) 우울하고 물기 마를 날 없고 갈망으로 충혈된 “노랗고 빨간 (개의) 눈들”. 개들처럼 인물들도 습도 높은 공간의 음습함에 지배당한다. 찌든 ‘개 냄새’가 어두운 기운에 섞인 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이질감, 그것은 곧 도축될 짐승의 살 냄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우울한 정서가 깔린 공간에 떠 있는 개들의 처절한 눈빛에서 예정된 죽음을 본다. 질척한 죽음의 세계를 눈에 핏발이 서도록 바라보는 개들. 전망 없이 하강하는 비, 그 빗금들을. 소설 읽기는 해석학의 유혹 7)을 동반한다. 표층 의미가 견인해 내는 숨은 의미를 찾아 들어갈 때 느끼는 쾌락이 없다면 독서행위를 지속하기란 어렵다. 비평은 독서행위의 연장인 만큼, 소설 읽는 즐거움의 다른 표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정용준 소설의 존재들은 눅진한 그림자처럼 천천히 몸집을 불렸다가 작아지며 이렇게 소설 공간으로 편입된다. 어둠의 한쪽을 잠시 떼어낸 듯한 그 그림자들은 인간의 살이 흘러나온 것처럼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아래 예문의 ‘비린내’는 핍진한 생명의 냄새를 풍긴다. 나는 수도꼭지를 꽉 잠그고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있는 삶은 계란 두 개를 꺼내들었다. 열려 있는 창문에서 습한 바람이 들어왔고 어디에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린내가 났다. 나는 창문을 닫고 탁자에 걸터앉아 계란껍데기를 깠다.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고 현기증이 났다. 하얗고 부드러운 계란을 반으로 나누고 한쪽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65쪽)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린내”. 그것은 생명의 발원지로부터 확산하는 냄새다. 투석 환자인 아버지가 과도하게 식탐을 부려 다른 환자들보다 계란과 치즈를 더 많이 먹고, 다시 혈액에 독이 쌓여 삶과 죽음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생명의지는 죽음을 거부한다. 예문에서 보듯 이러한 생명의지가 ‘나’ 또한 존속게 한다. 인류가 출현하던 그때,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이 비린내를 몸에 내장하고 나온 후 우리들 세포에 그대로 삼투된 냄새, 체액을 품은 살이 비린내를 풍기고, 땀을 많이 쏟을수록 생명체는 냄새를 더 짙게 풍긴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의 살은 냄새의 진원지가 되는 것,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썩어가면서 살고 있고, 냄새를 풍기고 살면서 동시에 죽어간다. 살이 내장한 액체들이 다 마르기 전까지만 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정용준의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살 냄새와 피 냄새를 그리워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 또는 ‘사이’의 문학이다. 다시 ‘474번’으로 돌아가 누나가 사갖고 들어온 꽃게에서 풍기는 ‘진짜’ 냄새를 맡아 보자. 그 냄새는 이제까지 먹어 온 가짜 게맛살과 달리 생경하다. 지금까지 ‘나’는 게맛살이 가공식품이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고, 누나는 누나로서 존재했으므로. 그러나 누나가 꽃게를 사들고 와 ‘진짜’ 모성을 풍김으로써 비극이 불거진다. 몰라도 상관없을 세계를 ‘나’가 알아버린 것이다. “누나가 어머니라는 사실”처럼 가짜 냄새와 진짜 냄새가 겹치고, 이제 진짜가 출현함으로써 자아 탐문이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 ‘나’가 누구인지는 ‘가짜’가 규정해 왔지만 진짜를 아는 순간 나를 충격하는 세계, 끝까지 누나여야 할 존재가 ‘진짜’ 어머니가 된 이때부터 게는 썩은 냄새를 풍긴다. ‘나’가 누나의 존재를 아는 순간부터 진행되는 게의 부패현상, 이는 정용준이 ‘개들’에서 병구를 통해 보여 준 인식의 자국을 따라간다. 앎으로써 세계는 열리지만, 앎이 죽음을 몰고 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어머니/누나, 진짜 냄새/가짜 냄새로 나뉘는 세계, ‘나’의 존재는 진짜 꽃게 냄새와 게맛살 냄새처럼 섞인다. 어느 쪽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모를 겹침 현상이다. 꽃게는 점점 썩어가고, 냄새는 확산되고, 존재는 죽어간다. 죽음 뒤에는 냄새를 풍기지 않을 존재,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살아 있는 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를. 존재를 규정하는 데 완벽한 준거가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정용준은, 육체의 일부분들을 열어놓고 그 조각들을 비개인적 욕망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풀어나간다. 피와 눈물과 오줌의 물기가 번들거리는 살은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으로도 존재는 증명되고 해방된다. 정용준 소설에서의 ‘부분’들은 비천함의 육체적 표지이기보다 욕망의 현실적 드러남이다. 근대의 합리와 원칙과 정형을 따르지 않고 결합·분해·해체하여 인류의 근원적 욕망을 그 조각에 실어낸 표식이며 현상이며 증상이다. 그곳에 근접해 보면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이 작은 조직들에 박힌 ‘존재’가 보인다. “정육점에 들어가서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살피” 8)는 화가의 역설적 심미안에 정용준의 소설은 다시 중첩된다. ‘나’가 ‘곰’을 죽인 후 “손목을 타고 피와 내장이 그리고 그의 생명이 바닥으로 쏟아지”(‘개들’, 128쪽)는 여기, ‘나’는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모란을 포함하여 모든 부권을 계승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몸에서 빠져나온 몸의 일부분이 ‘개의 간식’으로 먹히는 현장에서 벌이는 아들의 저항과 투쟁이 보이는가. 과연 지금, 모든 고기는 저울 위에서 평등하다. 그것은 ‘중량’의 문제가 아니며, 존재가 거부되거나 수용되는 경계에서 육체의 일부분들이 뭉치거나 녹아내리거나 해체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장에 다다른 생명체들에서 오히려 인류의 영속적인 생명의지를 반어법으로 만나면서 ‘존재’를 재확인한다. 소설이 반드시 미의식을 표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정용준 소설 속 원시의 육체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의도 없는 듯 냉담한 그곳으로부터 낮게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남성들조차도 중성 코드를 띠는 곱다란 사회에서 정용준의 소설은 다소 거칠게 인간 육체의 일부를 들어낸다. 전체성에 대한 해체와 저항, 부분으로 해석되는 육체들은 그때도 욕망한다. 전체로부터 흘러나온 조각과 살 냄새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한다. 그래서 그 물질들의 전일적 주체인 인간은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재증명된다. 나.는.누.구.인.가. ■각주 1)정용준 창작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문학동네, 2015), ‘가나’(문학과지성사, 2012)를 참조하였다. 이 글은 이 작품집에 실린 ‘개들’, ‘474번’, ‘벽’,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대한 고찰이다. 2)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 내는 고독·공포·절규가 가득하며, 흘러넘치는 비가시적인 힘들이 잔뜩 뒤틀린 채 표현된다. 프랑크 모베르, 박선주 옮김, ‘인간의 피 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그린비, 2015, 117쪽. 3)노태훈은 “인간 근원의 존재론적 탐색을 지속하는 여러 작가들과 (정용준이) 변별되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몸’이라는 실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용준 소설의 지향을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태훈, ‘문학성을 회복하는 방법-정용준,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문학의 오늘’, 2015, 겨울호, 216쪽. 4)엠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외 옮김, ‘신, 죽음, 그리고 시간’, 그린비, 2013, 9쪽. 5)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 나남, 2015, 126쪽. 6)슬라보이 지제크, 이현우 외 옮김, ‘폭력이란 무엇인가’, 난장이, 2014, 232쪽. 지제크는 이웃을 “냄새 풍기는 자”로 정의한다 7)위의 책, 118쪽. 지제크는 이를 보다 깊은 의미나 숨겨진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8)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디자인하우스, 2016, 161쪽. 저자와 베이컨의 대담 부분.
  • 백령도·연평도가 수도권?… ‘규제’묶여 기업유치 장애

    “백령도와 연평도가 수도권이라니 말이 됩니까.” 조윤길 인천 옹진군수의 지속적인 비판이다. 인천항에서 178㎞나 떨어진 서해 최북단으로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백령도와 북한으로부터 피격된 연평도 등이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적용을 받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항변이다. 옹진군 관계자도 29일 “지도만 펼쳐 놓고 봐도 백령도가 수도권으로 묶여 있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기업 유치에 장애가 많다”고 했다. 강화군도 행정구역상 인천시에 속한다는 이유로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를 받는다. 여기에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 촘촘한 법 그물이 추가된다. 1982년 수도권정비법 제정 이후 1980년 9만명을 넘었던 강화군 인구는 6만 8000명으로 줄었고, 옹진군은 3만 8000명에서 2만 1000명으로 감소했다. 지역 경제가 침체하고 마을이 낙후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자체 244곳의 낙후도를 조사한 결과 강화군은 116위, 옹진군은 76위였다. 두 군은 수도권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줄 것을 수차례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는 대체로 이런 지적에 공감하지만, 두 군을 수도권에서 제외하면 경기 동북부 지역 해제 요구도 거세질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이민호, 전생 비밀 풀렸다 ‘잔혹한 동반 죽음’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이민호, 전생 비밀 풀렸다 ‘잔혹한 동반 죽음’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이민호의 전생에서의 최후가 공개됐다. 28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극본 박지은, 연출 진혁) 13회에서는 과거 담령(이민호 분)이 인어 세화(전지현 분)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자신의 몸을 던져 그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세화 역시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우선 현생에서의 허준재(이민호 분)는 운명으로 다가온 인어 심청(전지현 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심청의 속마음을 듣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은 준재로 인해 심쿵한 에피소드들이 만발했다. 준재는 전생과 관련된 악몽을 꿨고 “안 돼 세화야”라며 잠에서 깼다. 자신이 전생의 세화인지 모르는 청은 그녀를 질투했고, 청의 질투에 준재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인터넷으로 말을 공부한 청은 “개 좋아”라며 귀엽게 대꾸해 웃음을 자아냈다. 갑작스러운 준재의 키스에 청은 침대에 누워 “아까 그거…”라며 그에게 말을 건넸고, 준재는 그녀에게 또 한 번 뽀뽀로 응대해 청을 기쁘게 했다. 그런 중 조남두(이희준 분)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꺼냈고, 사기꾼이 싫다던 청의 눈치를 보던 준재는 “이젠 같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남두는 그런 준재를 다그치며 청과 자신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하겠냐고 물었고, 청이 인어임을 아는 준재는 “형”이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행복한 이들에게 위협을 가했던 마대영(성동일 분)의 실체를 파악해 가는 준재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두와 얘기를 하던 중 홍형사의 전화를 받은 준재, 사건 현장으로 급히 달려며 청을 납치했던 대영이 물을 받았던 사실을 자각했다. 준재는 청을 만나 대영이 물을 받은 건에 대해 물었다. 청은 마음속으로 “내가 인어라는 걸 알아. 그런데 난 말 못 해”라고 했고, 마음 속 말을 들은 준재는 청을 안아주며 “아무 말도 하지 마”라며 그녀를 안심시키곤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준재는 다시 한 번 진교수를 찾아 꿈 속 이야기를 하며 최면 속으로 들어갔다. 꿈 속에서의 준재, 담령은 죽음 앞에서 간신히 깨어난 친구 약선을 앞에 두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얘기했다. 담령은 죄인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어딘가로 유배를 가게 됐고, 대영의 과거인 양씨(성동일 분)가 인어를 뒤쫓아 불길한 예감을 들게 했다. 현실에서 또한 대영이 최면에 걸린 준재와 가까워져 보는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준재가 마주한 전생에서 현생으로 이어진 인어와 인간의 사랑은 운명이었다. 등불이 밤하늘을 밝히던 시간, 인어 세화가 양씨의 그물에 붙잡혔고 담령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칼을 빼 들고 배를 돌렸다. 때마침 화살을 쏘며 세화를 죽이려던 양씨 앞에 나타난 담령, 팔에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던 세화를 보게 된 담령은 칼을 빼 들고 양씨 일행과 맞서 싸웠다. 담령이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 양씨는 세화를 향해 마지막 작살을 날렸다. 그의 작살을 보고 정신이 깬 담령은 그녀를 막아 서며 바다로 뛰어들었고 작살을 대신 맞으며 그녀 대신 죽음을 택했다. 세화 또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담령에게 꽂혀 있던 작살을 자신에게도 함께 꽂아 죽음을 택해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담령과 세화는 서로에게 “너는 너고, 나는 나였으면 좋겠다”며 “다시 태어나도 너를 찾고 은애하고 지켜줄게”라고 영원의 약속을 한 얘기가 공개돼 가슴에 큰 파도를 일으켰다. ‘푸른 바다의 전설’은 연말 시상식 여파로 29일 14회분 결방을 결정했다. 대신 스페셜 ‘푸른 바다의 전설-전설은 계속된다’로 밤 10시 시청자들을 만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원근, 소년의 미소 남자의 향기

    이원근, 소년의 미소 남자의 향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소년미와 퇴폐미를 둘 다 갖고 있는 데인 드한이에요. 저도 배우로서 그런 양면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요즘 충무로 샛별은 단연 이원근(25)이다. 해맑은 눈웃음과 미소로만 이 배우를 기억하고 있다면 양파의 가장 바깥 껍질만 벗겨 본 경우다. 새해 벽두부터 또 한 겹이 크게 벗겨진다. 1월 4일 개봉하는 ‘여교사’를 통해서다. ‘거인’의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다. 고등학교 여교사와 제자라는 소재부터 파격적이다. 그러나 파격으로만 끌고 가는 작품은 아니다. 단순한 치정극이 아니란 이야기다. 여성에게 폭력적인 사회의 민낯이 가감 없이 담기고, 그 속에서 계급적 갈등과 욕망이 뒤엉킨다. 이원근은 두 여교사, 김하늘과 유인영 사이를 오가는 무용 특기생 재하를 연기했다. ●내년 영화 ‘환절기’·‘괴물들’ 등 잇단 개봉 지난 10월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그물’에 이어 두 번째 개봉작이지만, 촬영 순서로 따지면 첫 출연작이다. 찍은 지 1년도 훨씬 지났지만 이원근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된 ‘여교사’ 이후 여러 작품에 꾸준히 출연할 수 있었어요. 제 인생에 큰 변환점이 된 고마운 작품이에요.” 범상치 않은 출연작이 내년에 줄줄이 개봉할 예정이다. 금지된 사랑(‘여교사’)을 시작으로 동성애(‘환절기’), 학교 폭력(‘괴물들’), 중년 로맨스를 다룬 ‘그대 이름은 장미’ 등이다. “‘그대 이름은 장미’와 ‘환절기’는 감사하게도 먼저 제의가 들어왔지만 나머지 영화나 드라마는 모두 오디션을 거쳤어요. 오디션은 믿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절실함을 담아 최선을 다할 뿐이죠.” 이원근이라는 배우에게서 어떤 에너지가 감지됐던 것일까. 김 감독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표정 등 오묘한 구석이 있다며 청춘스타로만 쓰여지기에는 아까운 배우라고 이원근을 평하기도 했다. “사실 학창 시절을 순탄하게 보내지 못했어요. 학교 폭력 피해자였죠. 그런 사춘기 경험들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기억이 많아요. 좋은 기억보다는 슬프거나 우울한 기억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죠.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들과 공감을 이루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여교사’ 캐스팅은 양말이 큰 공헌을 했어요. 오디션 당시 평상시 모습 그대로 갔는데 감독님이 양말이 누구 것이냐고 묻더라고요. 꾸미지 않은 모습이 캐릭터와 맞아떨어진다고 여겼나 봐요. 하하하.” 지난달 촬영을 마무리한 ‘괴물들’ 출연이 유난히 도드라진다. 트라우마가 있어 출연이 꺼려지지는 않았을까. “제가 하고 싶다고 강하게 말한 작품이에요. 학창 시절의 저는 저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반항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영화 속 캐릭터는 저와는 다르게 결과를 뒤집으려고 하죠. 그 점이 너무나 와 닿았어요. 학교 폭력으로 인해 변해 버린 게 너무 많아요.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된다면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싶어” TV나 영화에는 멋있고 대단한 사람만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에 연기는 꿈도 꾸지 않았다. 기술을 배우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조용한 삶을 반복했다. 졸업 즈음 쳇바퀴 같은 삶에 물음표를 갖고 자신을 세상에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고 그때 현재 소속사 대표를 만나 진로를 틀게 됐다. 2012년 ‘해를 품은 달’로 데뷔했던 이원근은 이제 연기 5년 차를 맞는다. “연기를 하며 괴롭거나 속상할 때도 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죠. 늘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요. 작품마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한다고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주춤할 수도 있겠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면 정말 축복일 것 같아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전북, 북중미에 또 발목

    전북, 북중미에 또 발목

    10년전 설욕 실패 5·6위전으로 레알마드리드와 대결도 무산 ‘아시아 챔피언’ 전북이 클럽 아메리카(멕시코)에 또 발목을 잡혔다. 전북은 11일 일본 오사카 스이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6강전에서 김보경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후반 연속골을 내줘 클럽 아메리카에 1-2로 졌다. 처음 출전한 10년 전에도 클럽 아메리카에 0-1로 패했던 전북은 설욕에 실패한 건 물론 레알 마드리드와의 ‘꿈의 4강전’ 기회도 놓쳤다. 김신욱과 에두가 투톱으로 나서고 수비에 무게를 둔 스리백 포메이션으로 나선 전북은 중원의 압박과 개인기를 앞세워 주도권을 잡은 클럽 아메리카에 밀리다 전반 23분 박원재의 왼쪽 크로스를 받은 김보경의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다. 전북은 전반 43분 김신욱이 순간적으로 상대 최종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등 아시아 챔피언다운 모습으로 전반 우세한 경기를 했다. 그러나 전북은 이후 더욱 거세진 상대의 공세 앞에 무너졌다. 멕시코 리그 득점 2위의 실비오 로메로가 후반 13분 헤딩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뒤 후반 29분 코너킥 상황에서 역전골까지 뽑아냈다. 최강희 감독은 후반 21분 레오나르도에 이어 후반 31분 이동국까지 투입했지만 승부수는 통하지 않았다. 전북은 후반 44분 김보경의 강력한 왼발 슈팅이 옆그물을 때린 장면이 뼈아팠다. 최 감독은 경기 후 “경기에서 이기고 있을 때 영리하게 운영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면서 “좋은 경험이었다. 큰 대회에서 빅클럽을 만날 수 있었는데 놓쳐서 아쉽다”고 말했다. 전북은 오는 14일 아프리카 챔피언인 마멜로디 선다운스(남아공)와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의 6강전 패자와 5·6위전을 치른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토마스 뮐러 볼프스부르크전 시즌 첫 득점, 무려 999분 만의 일

    토마스 뮐러 볼프스부르크전 시즌 첫 득점, 무려 999분 만의 일

    독일 프로축구 바이에른 뮌헨의 골잡이 토마스 뮐러(27)가 시즌 11경기 출전 만에 시즌 첫 골을 터뜨렸다. 무려 999분의 골 침묵을 깼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뮐러는 10일(이하 현지시간) 홈 구장으로 불러 들인 볼프스부르크와의 분데스리가 14라운드에서 시즌 첫 골을 터뜨려 5-0 완승을 거들었다. 아르옌 로번이 전반 18분 선제골을,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가 4분 뒤 추가골에 이어 후반 13분 자신의 이날 두 번째 골을 뽑자 후반 31분 중거리슛으로 팀의 네 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더글러스 코스타가 후반 41분 승리를 매조졌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물론 토마스의 득점이 기쁘지만 그는 득점하지 못할 때에도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자기 할 일은 한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에는 12월 10일까지 13골을 터뜨렸던 뮐러가 올 시즌 같은 기간에는 한 골이란 초라한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시즌 말미인 4월 30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전이 마지막 골맛을 봤던 경기였다으니 지난 시즌까지 따져 리그 15경기, 16시간 만에 그물을 갈랐으니 정말 간만이다. 그는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아마추어 수준’라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던 산마리노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예선에서 독일이 8-0으로 이겼지만 선발 출전한 그는 빈손으로 경기를 마쳤다.  이에 따라 그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적 제의를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디. 스토이버 뮌헨 구단 이사는 최근 독일 일간 빌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뮐러처럼 훌륭한 선수가 맨유에서 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우리 팬들은 슈바인슈타이거가 맨유에 합류하자 많이 화를 냈지만 그가 새로운 도전을 원해 떠나 보냈다. 팬들은 뮐러를 판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뮐러 역시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뮐러는 우리 DNA의 일부다. 뮐러는 바이에른의 혼을 대변하는 선수”라고까지 말했다. 5연속 분데스리가 제패를 꿈꾸는 뮌헨은 지난 주 초 강등권의 잉골슈타트에 0-1로 분패하며 라이프치히에 내줬던 깜짝 선두를 찾아왔다. 승점 33으로 똑같았지만 골 득실 25로 17에 현격히 앞섰다. 특히 이날 전반은 볼프스부르크 선수들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와 공을 점유한 것이 단 한 차례도 없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였다고 방송은 전했다.  한편 이날 두 골을 터뜨린 레반도프스키는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을 132골로 늘려 독일 출신이 아닌 선수로 클라우디오 피사로(190골)과 지오바니 엘베르(133골)에 이어 세 번째 많은 분데스리가 득점을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제주 해상서 국내 어선 외국 상선과 충돌·전복…선원 1명 사망·3명 실종(종합2보)

    제주 해상서 국내 어선 외국 상선과 충돌·전복…선원 1명 사망·3명 실종(종합2보)

    제주 해상에서 갈치를 잡던 국내 유자망 어선이 외국 상선과 충돌·전복돼 선원 1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날인 지난 8일 오후 7시 55분쯤 제주 한림읍 비양도 북서쪽 26㎞ 해상에서 제주 한림 선적 어선 화룡호(19t·승선원 9명)와 라이베리아 선적 상선 C호(9만 6628t)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화룡호가 뒤집혀 선원 9명이 물에 빠졌다. C호는 물에 빠진 화룡호 선원 중 이모(37·제주시 아라동)씨와 트랜 모(나이 미상)씨 등 베트남 선원 4명 등 모두 5명을 구조했다. 선원 강모(56·경남 사천시)씨는 사고 신고 3시간여 만인 밤 11시 24분께 뒤집힌 어선 내 취사장에서 수중 수색하던 해경 잠수요원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해경은 강씨의 시신을 수습해 함정으로 옮겼다. 선장 김모(59·제주시 한림읍)씨와 선원 이모(41·경기 용인시), 장모(53·인천 남동구)씨 등 3명은 이날 새벽 1시 기준으로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해경은 경비함정 10척과 헬기 1대 등을 사고 해역에 보내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해군 한문식함(PKG) 1척과 어선 1척도 수색을 돕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 해상에는 파도가 1m 내외로 잔잔한 편이지만 야간이라 시야에 제한을 받고 있어 자체 보유 조명탄과 해군 초계기로부터 조명탄 지원을 받아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C호는 부산항을 출항해 중국 칭다오로 가는 중이었다. 사고 유자망 어선은 해상에 정박해 그물을 내려 조업 중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해경은 구조 선원들을 300t급 경비함정에 태워 9일 새벽 제주항으로 입항하는 한편 C호 선장 등을 대상으로 충돌사고 원인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한림수협에 사고수습대책본부를 마련해 선원 가족들에게 사고 상황을 알리는 등 사고 수습에 나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 해상서 국내 어선 외국 상선과 충돌·전복…선원 4명 실종(종합)

    제주 해상서 국내 어선 외국 상선과 충돌·전복…선원 4명 실종(종합)

    제주 해상에서 갈치를 잡던 유자망 어선이 외국 상선과 충돌한 후 전복돼 어선 4명이 실종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8일 오후 7시 55분께 제주 한림읍 비양도 북서쪽 26㎞ 해상에서 제주 한림 선적 어선 화룡호(19t·승선원 9명)와 라이베리아 선적 상선 C호(9만 6628t)가 충돌했다. 외국 상선 C호는 충돌 직후 제주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 센터를 경유해 제주해경에 신고했다. 그러나 이 사고로 화룡호가 뒤집혀 선원 9명이 물에 빠졌다. C호는 물에 빠진 화룡호 선원 중 이모(37·제주시 아라동)씨와 트랜 모(나이 미상)씨 등 베트남 선원 4명 등 모두 5명을 구조했다. 하지만 선장 김모(59·제주 한림읍)씨와 선원 강모(56·경남 사천시)·이모(41·경기 용인시)·장모(53·인천 남동구)씨 등 4명은 실종 상태다. 해경은 구조 선원들을 300t급 해경 경비함정에 태워 주변 해역을 수색하고 있다. 또 경비함정 10척과 헬기 1대 등을 사고 해역에 보내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해군 한문식함(PKG) 1척과 어선 1척도 수색을 돕고 있다. 해경은 잠수요원 2명을 전복 선박에 투입해 실종자를 찾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 해상에는 파도가 1m 내외로 잔잔한 편이지만 야간이라 시야에 제한을 받고 있어 해군 초계기로부터 조명탄 지원을 받을 예정으로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C호는 부산항을 출항해 중국 칭다오로 가는 중이었다. 전복된 유자망 어선은 해상에 정박해 그물을 내려 조업 중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해경은 C호 선장 등을 대상으로 충돌 사고 원인과 피해 사항을 조사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中 당국 롯데 계열사 전방위 세무·소방 조사… 中조사팀 “윗선서 지시 있었다”

    연합뉴스중국 당국이 최근 중국에 진출한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해 세무·소방·위생 조사 등을 전방위적으로 실시한 것은 중국 정부의 계획적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가능성이 확실해지고 있다. 5일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롯데 조사와 관련해 “소방 부문의 경우 사전 통지를 하지 않거나 불과 몇 시간 전에 통지한 뒤 들이닥쳤고, (롯데 측이) 갑자기 왜 왔느냐고 물었더니 ‘위에서 지시가 있었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조사 요원들이 정부의 지시에 따라 조사를 나왔다고 밝힌 셈이다. 이 소식통은 또 “시청 소속 조사반원이 투입된 사업장은 앞으로 성(省) 정부 차원의 단속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언질도 들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특히 “향후 어떤 기업이 피해를 볼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업체별, 업종별로 다른 형식의 보복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그동안 외자 기업에 느슨하게 적용했던 규제나 각종 기준의 고삐를 조이면 어떤 업종이나 업체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 중국은 친환경차 육성 정책에 따라 자동차 회사에 전기차 생산 비율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요구가 강해질수록 전기차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현대차가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산업정책의 흐름은 법치, 환경, 안전, 표준, 통관 강화인데 이 기조와 사드 보복 의도가 겹쳐지면 모든 한국 기업이 심각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중국 당국의 그물망 조사로 롯데는 향후 선양 롯데타운 등 중국 내 대형 프로젝트 인가 지연 등의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롯데는 이미 중국 내 광고 중단에 이어 홈쇼핑 처분 작업에도 나섰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2일 중국 당국이 현지에 진출한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해 전방위 조사에 나선 것과 관련해 “주중 공관 및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이번 주에 우려 서한을 중국 측에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오페라하우스는 머리·건물은 몸통… 두 개층 낮은 상가, 주거를 배려하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오페라하우스는 머리·건물은 몸통… 두 개층 낮은 상가, 주거를 배려하다

    # 양지바른 북향, 시드니 시드니에 가기 전 시드니의 대표적인 무지개떡 건축이 무엇이냐고 현지의 지인에게 물었다. 흥미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가면 그 근처가 죄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한 번 걸음에 보고 싶은 곳 두 군데를 한꺼번에 찾아갈 수 있다니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호주는 대표적인 남반구 국가다. 그중에서도 시드니는 남위 33도 정도에 있는 도시로 북위 37도에 위치한 서울에 비해서는 적도에 조금 더 가깝다. 서울에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을 무렵이라 시드니에는 봄이 한창이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고 했다. 반바지 반팔 차림의 사람들도 눈에 많이 보였으나 저녁이 되면 아직 상당히 쌀쌀했다. 적도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태양이 북쪽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공간 지각의 혼동은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양지 바른 북향’이라니. 그런데 예상치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무지개떡 건축을 만났다. 아니, 한두 채가 아니라 한 지역 전체가 그랬다. 다름 아닌 숙소 근처 지역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숙소를 시드니 중심 지역에서 벗어난 쿠지라는 해변에 잡았는데 이 일대가 무지개떡 건축으로 가득했다. 쿠지는 태즈먼해에 면한 시드니 동쪽 해안의 한 지역으로 아름다운 백사장과 깎아 지른 절벽 등으로 유명하다. 리조트 지역이라기보다는 주거지로서의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상가와 유흥가가 형성돼 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밀도가 높지 않아서 대부분의 건물은 3, 4층 내외다. 대부분의 상업 시설이 저층에만 있고 그 위는 주거 기능이 있기 때문에 밤이 돼도 사람들이 별로 시끄럽게 굴지도 않고 비교적 정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와 상업이 공존하면 소음 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거의 비중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사실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상업 시설 고객의 대부분이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쿠지 해안도 그런 편이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밤에 나다니고 있었지만 다들 적당한 선에서 조심성 있게 행동하고 있었다. # 원주민이 조개껍질 버리던 섬, 베넬롱포인트 시내로 나가 본다. 시드니에는 우리의 교통카드에 해당하는 오팔카드라는 것이 있다. 편의점 등 여기저기에서 구할 수 있으며 잔액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미리 알려 준다. 현금만 있어도 걱정할 것은 없다. 세상에 급할 것 없다는 태도의 버스 기사가 직접 받아서 거스름돈을 챙겨 준다. 당연히 시간이 좀 걸리지만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있다. 삶의 템포가,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여유 있다. 가는 길, 버스 도착 시간 이런 것들은 구글 앱으로 다 해결이 된다. 편리하기는 한데 반대로 여행의 고전적인 요소인 길 물어보는 재미가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쿠지 해안에서 오페라하우스 근처의 페리 터미널인 서큘러키까지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시드니의 인구는 350만명.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고 부산 정도다.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베넬롱포인트는 시드니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원래 이곳은 오랫동안 원주민들이 조개를 잡아 그 껍질을 버리던 섬이었다. 1788년 호주 최초의 총독 아서 필립이 함대를 이끌고 신대륙을 찾아왔다. 그 배에는 1000명 이상의 범죄자들뿐 아니라 말을 포함한 일부 가축도 타고 있었다. 동물들은 이 섬에 방목됐고, 이송된 범죄자들 중 여자들이 조개껍질을 모아 시멘트 모르타르와 섞을 석회를 구웠다. 그 재료를 이용해 정부가 사용하기 위한 2층 건물을 지었다. 1790년대 초 호주의 초기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인 원주민 베넬롱이 필립 총독을 설득해 집을 하나 지었고 이에 따라 이 섬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됐다. 그는 영국인과 원주민 간의 가교 역할을 하던 인물이었다. 19세기 초 섬과 반도 사이의 바다를 메우고 땅을 평평하게 고른 후 매커리라는 이름의 요새가 들어섰다. 시드니에 전차가 들어온 이후에는 전차 차고가 됐다. 이후 1957년 세계 건축사에서 가장 떠들썩한 사건 중 하나였던 대대적인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 덴마크의 무명 건축가였던 예른 웃손이 이 신생 국가의 상징이 될 오페라하우스의 설계자로 선정됐다. 그 부지가 바로 베넬롱포인트였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973년 개관할 때까지 공기는 10년이 연장됐고 비용은 14배가 초과됐다. 건물 하나를 짓는 일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정부가 몇 번 바뀌었고 설계자와의 관계는 지극히 악화됐다. 정부 측은 설계도 끝나기 전에 공사를 진행하고자 했고, 수많은 변경을 요구했으며, 심지어 임금도 체불했다. 결국 웃손은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부으며 중도에 덴마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분노한 그는 평생 호주 땅을 다시 밟지 않았다. 오페라하우스의 공사 과정에서 이 땅이 밟아 온 이런저런 역사적 흔적이 발굴된 것은 기대치 않았던 수확이었다. 여기까지는 마치 소설 같은 사실로, 신생 국가 호주로서는 실로 영욕이 교차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다음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일단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자 그들은 장기간에 걸친 계획을 통해 이 일대를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 만한 도시적 장소로 바꿔 나갔다. 지금의 베넬롱포인트는 해안가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필두로 하여 수많은 건물과 옥외 공간, 도시 인프라가 결합돼 있는 매우 특별한 지역이다. 게다가 그 배경은 세계 최대의 자연 항구인 시드니만이다. 그 변화의 한 축에 복합건축, 즉 무지개떡 건축이 있다. 바다를 향해 돛을 펼친 범선과도 같은 오페라하우스가 머리라면 그 뒤를 길게 따르고 있는 건물들은 몸통에 해당한다. 이 건물들은 모두 주상복합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주변은 일종의 주거지역인 것이다. 동시에 시민들과 관광객이 엄청난 숫자로 몰려드는 도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 오페라하우스를 품은 중심지, 이스트서큘러키 지도를 놓고 이 일대를 들여다보면 그 도시적 상황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일단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큘러키가 있다. 필립 총독이 배를 이끌고 내렸던 바로 그곳이면서 현재는 시드니만 일대의 다양한 장소를 그물처럼 연결해 주는 페리 선착장이다. 그 동쪽 지역, 즉 이스트서큘러키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쪽이고 반대쪽에는 시드니의 구시가가 가장 잘 남아 있는 ‘더 록스’ 지역, 시드니 현대미술관, 그리고 국제 여객선 터미널 등이 있다. 서큘러키의 바로 남쪽, 즉 내륙 쪽으로는 고가도로와 지하철이 지나가며 그보다 더 남쪽은 고층 빌딩이 솟아 있는 시드니의 중심업무 지역이다. 한마디로 자연과 역사, 교통, 그리고 현대 도시의 활력이 모두 집중된 보기 드문 장소인 것이다. 이스트서큘러키 지역은 고저차가 심하다. 이곳의 주상복합 건물들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지어진 탓에 바닷가 쪽과 반대쪽 입구는 두 개 층의 차이를 갖는다. 즉 언덕에 바로 붙어서 건물이 마치 옹벽처럼 서 있는 상황이다. 앞쪽은 더할 나위 없이 붐비는 도시의 광장이지만 뒤쪽은 널찍하고 조용한 공원이다. 주거와 상업 시설이 공존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건물 사이로 역시 상당히 역사가 있어 보이는 계단이 있어서 이 두 장소를 연결해 준다. 모든 건물의 저층부는 상가와 카페, 음식점 등이며 그 위는 건물에 따라 호텔, 사무실, 그리고 고급 주거 등이 들어가 있다. 물론 이 거대한 계획이 아무 탈 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이스트서큘러키 지역이 본격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 초기 계획안이 발표되자 시민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결국 총리까지 동원되는 우여곡절 끝에 - 몇십 년 전 오페라 하우스 때도 그랬듯이 - 건물의 높이가 낮아지고 건축가가 바뀌면서 현재의 안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1993년 3월 시드니가 2000년 올림픽 개회 도시로 선정되면서 이 계획의 중요성은 급격히 커졌다. 저층부의 상가를 구성하는 육중한 콜로네이드 때문에 시민들에게 빵 굽는 ‘토스터’라는 별명을 얻는 등 논란이 끊임없이 계속됐으나, 이제는 시드니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 상태다. 오페라하우스는 웃손이라는 한 명의 천재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시를 이렇게 만들어 온 것은 어느 개인이 아니다. 온갖 우여곡절을 포함한 인간의 집단지성이 필요한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도시다. # 잘나가는 오페라하우스, 주민을 배려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바로 옆, 서쪽 해안은 두 개 층으로 된 테라스 구조다. 바다에 바로 면한 아래층은 여러 개의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항상 엄청난 수의 사람들로 붐빈다. 당연히 소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바로 위층, 즉 지상의 데크는 비록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기는 하지만 소음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곳은 완전히 보행자 지역으로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곳이다. 이 두 층의 차이는 불과 3미터 내외로, 완만한 계단 몇 단을 오르내리면 쉽게 오갈 수 있는 구조다. 이렇게 복층으로 구성한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일반 보행자와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레스토랑의 고객들을 분리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서로 성격이 다른 두 그룹의 사람들이 서로 방해받지 않고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생각은 간단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동시에 이 지역 일대를 정온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부수적인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래층에서 나오는 소음은 바닷바람에 묻혀, 그리고 데크의 처마에 가려 상당히 완화된다. 물론 물리적인 장치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사람들의 조심성 있는 태도가 아울러 필요하다. 아래층 계단 입구에 붙어 있는 간단한 안내문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배려심, 그리고 이 지역의 복합적인 성격을 잘 보여 준다. 방문객 귀하 이웃을 위해 오페라하우스를 떠날 때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거지역으로 가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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