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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라운지] 올시즌 프로무대 2승…아마골프 최강 김경태

    [스포츠 라운지] 올시즌 프로무대 2승…아마골프 최강 김경태

    ‘무서운 스무살,12월이면 더 활짝 핀다.’ 올시즌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투어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아마추어의 돌풍이다. 지난주까지 치러진 정규 투어 10개 대회에서 아마추어선수가 가져간 우승컵은 모두 3개. 개막전인 롯데스카이힐오픈에서 강성훈(19)이 ‘깜짝우승’으로 반란을 예고하더니 김경태(20·연세대)가 이후 두 차례나 더 프로무대를 석권,‘큰 형님’들의 자존심을 구겼다. 그의 한 시즌 2승은 내년이면 50회째를 맞는 한국오픈에 처음 아마추어 선수가 출전한 이후 남자프로골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경태는 국내 아마추어 최강이다. 고2 때인 2003년 송암배 우승을 시작으로 이듬해 한국아마선수권 정상을 밟았고, 지난해와 올해에는 일본아마추어선수권을 2년 연속 휩쓸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 ‘무서운 스무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올해 다섯 차례 출전한 프로무대에서 쟁쟁한 선배들의 틈바구니에서 2승을 낚아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건 초등학교 3년 때. 부친 김기창씨가 속초에서 운영하던 실내골프연습장을 놀이터 삼아 드나들다 장난삼아 잡아본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아버지로부터 기초는 배웠지만 그의 골프는 거의 ‘독학’이나 다름없었다. 이듬해 봄. 처음으로 코스에 나설 때를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버지와 친구분들 사이에 끼어 설악산 자락의 한 골프장에서 머리를 얹었다.92타.“신동 났다.”는 칭찬이 이어졌지만 속이 상했다. 열흘 전부터 연습하던 샷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 그날부터 밤새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를 번갈아 휘두른 그는 한 달 만에 다 낡아 떨어진 그립을 바꾸기도 했다. 김경태가 닮고 싶은 선수는 미국무대에서 뛰는 최경주다.“성적은 둘째치고라도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즐비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당당하게 혼자 힘으로 우뚝 서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완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손바닥에 피가 맺히도록 벙커샷을 휘두르던 최경주의 끊임없는 노력과 ‘홀로서기’. 지난 삼성베네스트오픈 3라운드가 끝난 뒤 혼자 비를 철철 맞으며 퍼팅그린에서 수없이 공을 굴리던 김경태의 승부근성. 둘은 어쩌면 이미 많이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김경태는 12월 말, 프로로 전향한 뒤 내년 시즌 ‘루키’로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는다. 올해 두 차례 우승으로 프로 승격의 관문은 문제없이 통과한 셈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꼭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그것. 프로 전향을 12월 말로 미룬 건 한국 남자골프가 20년 만에 벼르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어서다.86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이후 지금까지 남자골프는 ‘금맛’을 보지 못했다. 김경태는 4명의 대표팀 선수 가운데 가장 고참이다.2003년 정식으로 태극마크를 단 4년차.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 개인·단체전을 한꺼번에 치르는 경기에서 개인전은 물론 상위 3명의 성적을 합산하는 단체전까지 2개의 메달 모두 그의 어깨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표팀 한연희 총감독은 “연장 두번째 홀에서 기어코 우승을 일궈낸 지난 포카리에너젠오픈에서 보듯 경태는 워낙 승부근성이 강하다.”면서 “뛰어난 드라이버샷과 아이언샷은 물론, 기복이 심했던 퍼트까지 프로무대 우승을 경험하며 훨씬 향상됐다.”고 흐뭇해했다. 대학 1년 후배 강성훈과 2명의 김도훈(영신고·양정고2·이상17) 등 후배 3명을 이끌고 ‘금빛 사냥’에 나설 대표팀 맏형, 그리고 직후 당당히 프로에 큰 발을 내디딜 ‘슈퍼 루키’. 오는 12월은 김경태의 달이 될 전망이다. 글 사진 목천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김경태는 출생 1986년 9월2일 강원도 속초생 가족 김기창 조복순씨의 1녀1남중 막내 학교 속초 교동초-안양 신성중·고-연세대 2년 재학중 체격 175㎝,70㎏ 취미 음악감상 경력 2001년 국가대표 상비군 03년∼ 국가대표 성적 한국아마추어선수권 우승(2004년), 매경오픈 아마추어 1위(2005년), 일본 아마추어선수권 우승,KPGA 투어 포카리에너젠오픈 우승, 일본아마추어선수권 우승,.KPGA 투어 삼성베네스트 오픈 우승(2006년)
  • [강태규의 연예 in] 라디오스타,그 시절이 그립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라디오의 힘은 대단했다. 시험공부한답시고 밤 새도록 가슴에 끼고 들었던 라디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채널을 고정시킨 채 흘러나오는 음악에 젊은 청춘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라디오는 동시대를 살아왔던 청춘들에게 친구 같은 존재이자 음악적 소통과 패션의 출구였다. 라디오의 인기는 음반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오던 음악은 이내 히트곡 반열에 올랐고 음반 판매량도 크게 치솟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을 녹음해 친구에게 테이프로 선물하던 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가슴 속 추억이다. 그 시절, 속으로만 쌓아뒀던 고민이나 묻어두기 아쉬운 사연들을 정성스레 엽서에 수놓아 우체통에 넣고 라디오에서 자신의 엽서가 선택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일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던 통과의례였다.라디오의 인기는 방송사 라디오국 복도의 풍경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한 방송사 7층 라디오국은 가수 매니저들의 집결지였다. 매일 아침 매니저들이 분주히 복도를 오가며 소속 가수의 음반이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되도록 치열한 홍보전을 펼쳤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 당시 한번도 듣지 않고 자랐다면 소위 ‘왕따’자리는 맡아둔 거나 다름없었건만, 라디오도 격변의 세월에 뒤편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새로운 시대의 옷을 갈아입은 라디오는 인터넷을 통해 ‘다시 듣기’와 ‘보이는 라디오’라는 콘텐츠로 옛 명성을 재건코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떠오를 법하다. 지난주에는 이번 추석에 개봉될 영화 ‘라디오 스타’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는 추억의 록스타가 강원도 영월의 지방 라디오 방송 DJ로 부임하면서 소시민들과의 아날로그적 삶의 교류를 너무나도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하다.이제 라디오 상자는 다른 기기의 옵션으로 자리하지 못하면 집안 어느 곳에도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깊은 밤, 친구의 낯익은 귓속말처럼 정감어린 목소리의 라디오 스타가 영화처럼 탄생하기를 바라는 일이 정녕 요원한 일인가? 오늘따라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추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 [공연리뷰] 이물감 없는 번안극 묘미 ‘자애의 모정’이 더 그립네

    [공연리뷰] 이물감 없는 번안극 묘미 ‘자애의 모정’이 더 그립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서푼짜리 오페라’와 함께 베를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중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국내에선 한번도 원작 그대로 공연된 적이 없다. 배우 박정자가 모노드라마로 재구성해 공연한 것이 고작이다.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은 연희단거리패가 브레히트 서거 50주기에 맞춰 지난 5일부터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중인 ‘억척어멈’은 국내 초연이란 점에서 개막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더욱이 한국적 리얼리즘을 추구해온 연출가 이윤택이 원작의 구조와 주제의식은 고스란히 살리되 배경과 형식을 완전히 토속적으로 변용시켜 만들었다는 사실도 흥미를 부추겼다. ‘30년 전쟁의 한 연대기’라는 원작의 부제를 ‘한국전쟁의 한 연대기’로 바꾼 것에서 알 수 있듯, 이윤택의 ‘억척어멈’은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30년 전쟁의 이야기를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치환시킨다. 시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전쟁터에서 군인들에게 생필품을 팔며 한몫 잡으려던 억척어멈이 난리통에 세 남매를 차례로 잃고도 또다시 군부대를 따라 수레를 끌고갈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을 짚어내는 점은 마찬가지다. 독일 민요와 군가 대신 판소리와 남원 사투리, 오광대 탈춤의 전통 몸짓을 차용한 연극은 외국 원작이 주는 이물감 없이 객석과 매끄럽게 소통하며 번안극의 묘미를 새삼 일깨워준다. 기실 ‘억척어멈’의 어머니상은 우리네 전통 어머니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물건을 팔려는 욕심에 큰아들을 병사로 빼앗기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둘째 아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억척네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한국의 어머니와는 분명 다르다. 전쟁 앞에선 누구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이라 해도 억척스러운 어머니보다는 자애로운 어머니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차이로 다가온다.10월8일까지.(02)763-1268.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5) 17년 무분규 LG 전자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5) 17년 무분규 LG 전자

    #1 지난 3월10일 LG전자 창원공장에서 열린 디오스 냉장고 신제품 발표회는 좀 달랐다. 박준수 LG전자 노조 창원1지부장 등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이 경영진과 함께 발표회 호스트로서 참석했다. 노조 유니폼을 입은 이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생뚱맞게 보였지만 LG전자 그 누구도 이런 분위기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디오스 냉장고에 대한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2올해로 17년째 임단협 무분규 타결 진기록을 세운 LG전자. 이들에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 듯하다. 박준수 지부장의 설명이다.“‘노경(勞經)’이 회사안과 노조안을 교환하고, 실무진에서 협상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서로가 밀고 당기다 보면 어느 선까지 양보할 수 있는 것인지 대략 답이 나옵니다. 그럼 곧바로 ‘D데이’(최종 교섭일)를 잡습니다. 그리고 본사 경영진과 노조 집행부가 모여 그냥 한방에 끝냅니다.” ●간담회서 불만·요구사항 걸러 LG전자가 이렇듯 매년 ‘한방’에 끝낼 수 있는 배경에는 ‘노경’의 지속적인 대화와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LG전자는 사업부별로 노조 간부와 사측 간부가 매달 독자적인 간담회를 갖는다. 여기서 불만과 요구 사항이 대략 걸러지고, 이해의 폭이 깊어진다.“노조 있는 회사가 없는 회사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보여 주겠다.”는 장석춘 노조위원장의 말에서 노경의 신뢰도를 가늠할 수 있다. LG전자도 1980년대 후반에는 여느 기업과 다르지 않았다.89년에는 36일이라는 기록적인 조업 중단이 일어났다. 매출 손실 5000억여원, 해외 신용도 하락, 이미지 타격 등 LG전자(옛 금성사)를 최악의 경영 위기로 몰아 넣었다. 삼성전자에 업계 1위를 내준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 ●89년엔 36일 조업중단 ‘최악 위기´ 89년 노조의 요구는 인격적 대우였다. 생산직은 숙소, 식사, 복장 등 모든 부문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 당시 창원공장 벽면마다 시뻘건 스프레이로 생산직 근로자를 위한 여러 구호들로 가득찼다. 파업 현장에 김쌍수 당시 공장장(현 부회장)이 담을 넘어 노조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격앙된 노조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수 있었지만 김 부회장은 처우개선을 약속하며 노조원들을 설득했다. ●인격적 대우에 생산성 향상 ‘화답´ 경영진의 변화는 점진적이었지만 파격적이었다. 김 부회장을 비롯한 창원공장 임원진은 매일 노조원 출근 시간에 맞춰 출입문에서 “반갑습니다.”라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또 직접 빗자루를 들고 공장 주변을 청소했다. 신뢰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젊은 노조원들은 임원들 손에 들렸던 빗자루를 대신 들었다. 하나된 노사는 결국 생산성 향상으로 되돌아왔다.1989년 -8.6%였던 노동생산성은 1990년 22.0%,91년 23.3%로 크게 뛰었다. 박준수 지부장은 “노조는 최고경영자(CEO)의 거울입니다.CEO가 찡그리면 노조도 찡그립니다.CEO가 웃으면 노조도 웃습니다.”라며 노사관을 피력했다. 창원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하얀 나비’ 가수 김정호와의 마지막 인터뷰(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하얀 나비’ 가수 김정호와의 마지막 인터뷰(2)

    그의 재능은 외탁인 듯하다. 서편제의 큰 줄기이자 창작판소리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던 월북 소리꾼, 박동실 선생이 바로 그의 외할아버지다. 월북으로 인해 그의 존재는 판소리사에서 한때 묻혀져 있었지만 박동실은 명창 김소희와 박송희 등을 키워냈던 인물로 김정호의 어머니인 박숙자 여사와 함께 ‘아성극단’을 만들어 만주나 상하이 등지로 공연을 다니기도 했던 ‘명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박숙자씨는 아들 정호가 6살 때 집안에 있던 국악기를 모두 내다버렸다. 심지어는 가야금 줄까지 모두 끊어버렸다. 그 힘들고 고된 악극단 생활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기억이 잡힐 듯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김정호는 운명처럼 ‘금지된 길’을 걷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생의 전부를 걸어 음악에 몰입했다. 여운이 긴 애상적인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했던 김정호, 노래들이 유독 슬프게 들렸던 것은 그가 노래 속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은 혹 아니었을까. 처음 김정호가 노래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은 대동상고 시절, 밴드부에 합류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졸업 후엔 기타를 둘러멘 채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종로 낙원상가 주변을 배회했으며, 심지어는 잠자리조차 없어 거리에 내놓은 이삿짐 속 캐비닛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다. 이즈음 잠시 미 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돼 또다시 떠돌이가 되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것은 ‘음악’보다 먼저 ‘배고픔’이었다. 당시 한 그릇에 5원하던 노동자 합숙소의 국수, 한 대접에 10원이었다던 남대문 시장의 수제비 등으로 허기를 채우며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한때 가수 백순진씨와 함께 ‘4월과 5월’의 멤버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어니언스가 그의 곡인 ‘작은 새’를 히트시키기에 이르자 음악성을 주목받으면서 작곡자에서 가수로 변신, 무대에 선다. 통기타를 멘 채 눈을 지그시 감고 꿈꾸듯이 노래하는 그의 독특한 모습. 그는 76년 3월, 자신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날, 부인 이영희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하나 이 축복도 잠시였다.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방 공연하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방위 소집에 응하지 못해 결국 탈영병으로 군 영창에 갇히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군복무를 마치게 되지만 가정은 이미 어려워져 매번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는 그의 부인은 자신에게 ‘늘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부인은 그가 건강이 나빠져 공기 좋은 곳으로 가자면 그렇게 했고, 친구 곁으로 가자면 또 그렇게 했다. 경제적으로 정 버틸 수 없어 어머니 곁으로 가야겠다고 말하면 또 그의 뜻에 따랐다. 그러나 80년, 끈질긴 투병과 부인의 보살핌으로 완전히 나았다던 그의 결핵은 다시 재발되고 급기야 각혈이 시작되자 결국 인천요양소에 격리되어 요양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를 ‘공백’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몹시 못마땅해 했다. 비록 그 시기에 대중들 앞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스스로는 늘 음악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그는 많은 곡을 만들었고 악기소리를 연구했으며 음반 또한 취입했다. 그가 타계하기 얼마 전, 담당의사는 그에게 경고했다. 최소한 6개월에서 3년 정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고. 심지어 ‘노래를 다시 부르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까지 경고했다. 결핵환자에게 노래는 호흡기관에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되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는 병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병을 또 그렇게 앓고 있었다. “꽹배기(꽹과리)소리에 미쳐 삽니다.” 인터뷰 당시 그는 자신의 생활을 이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우리만의 것, 우리만의 맛, 우리만의 흥.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무엇인지 이제서야 비로소 찾은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그 무렵 뜻 맞는 친구들과 사물놀이 패를 조직하기도 했고 또 항시 꽹과리를 들고 다녔다. 병이 악화돼 병원에 다시 실려 갈 때도 꽹과리를 병실에 까지 가지고 들어가 담당의사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남은 열정을 모두 국악에 바치겠다.’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의지를 내보이던 김정호, 오늘 그가 새삼 그립다. sachilo@empal.com
  • [데스크시각] 우리 시대의 ‘백석’/김종면 문화부 부장급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 한국 근대문학사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우리는 흔히 김소월과 박목월을 꼽는다. 그러나 이제 소월의 자리에 백석을 올려놔야 할 것 같다.1980년대 후반 해금된 재북(在北)시인 백석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는 가히 최상급이다.“가장 한국적인 시”(유종호)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김현) “우리 문학의 북극성”(김윤식)…. 우리 시인들은 또한 백석의 첫시집 ‘사슴’을 한국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으로 간주한다.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시인이 있었던가. 최근 ‘백석 시 바로 읽기’‘원본 백석 시집’‘백석우화’‘백석 시의 원전비평’ 등 백석 관련 책들이 또 쏟아져 나왔다. 후끈 달아오른 ‘백석 열풍’을 접하며 그의 시편들을 되뇌어 본다. 백석의 시는 읽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관서지방 방언은 그렇다 치고, 그의 시에는 일부러 맞춤법을 어긴 듯한 표현이 예사로 나온다. 생경한 조어들이 어지럽게 춤춘다. 김춘수 시인의 지적대로 백석의 시는 “번역이 불가능한 시”요 “토속을 위한 토속의 시”다. 백석이 물론 ‘소화불량의 시’만 쓴 것은 아니다. 편안하게 읽히는 작품도 없지 않다.“별 많은 밤/하누바람이 불어서/푸른감이 떨어진다 개가 는다” ‘청시(靑枾, 푸른 감)’라는 제목만큼이나 고향의 서정이 흠씬 묻어나는 시다. 사람들이 소월을 좋아하듯 백석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런 풋풋한 시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지만 평론가들은 제목조차 기이한 ‘여우난골족’이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같은 과도한 방언체 시들을 백석의 절창으로 내세운다. 일제의 문화침탈에 맞서 의식적으로 방언을 사용, 민족 언어를 지키려 한 백석의 노력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 혹은 토속 시어의 마력에 무작정 빠져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백석의 시를 위해서도 민족어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어가 아무리 눈부셔도 오문(誤文)과 비문(非文)의 허물까지 덮어주지는 못한다. 엄정한 잣대로 백석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 백석과 동시대 시인인 오장환이 일찍이 백석을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로 규정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백석의 시어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린다. 문제작 ‘여우난골족’에 나오는 홍게닭이 그 한 예다. 홍게닭은 보통 새벽닭으로 풀이되지만 한 편에서는 홍계(紅鷄)라는 한자어에 닭이라는 고유어가 붙은, 붉은 빛의 토종닭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개인의 조어가 아니라 어느 한 지역의 방언이라면 그렇게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기자는 방언과 개인어(idiolec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언어학에서는 개인이 어느 한 시기에 쓰는 말을 총칭해 개인어 혹은 개인 방언이라고 한다. 백석이 남긴 시어 중에는 이런 개인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에서 먼저 지역 방언과 개인어를 가려내야 한다. 소월과 마찬가지로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선배 시인 소월보다 훨씬 더 진한 관서방언으로 마천령 서쪽 평안도의 정서를 담아냈다. 곱새담(풀이나 짚으로 엮어 만든 담), 날기멍석(곡식을 널어 말리는 멍석), 니차떡(인절미)…. 백석이 사용한 평북 방언들은 그 의미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왠지 정겹게 다가온다. 백석의 시가 오랜 단절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이처럼 풍부한 우리 방언을 시어로 적절히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백석 시의 토속어와 방언들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남북의 언어분단을 극복하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적 불명의 말들이 판치는 시대이기에 백석이 구사한 살가운 탯말들이 더욱 그립다. 이제 모국어의 속살을 살려 내야 한다. 당당한 문학언어로서의 자리를 되찾아 줘야 한다. 최근의 ‘백석 붐’은 그런 점에서 퍽 반가운 일이다. 김종면 문화부 부장급 jmkim@seoul.co.kr
  • [브리티시오픈골프] ‘이글’ 거리는 우즈

    ‘황제는 황제일 뿐’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다 직후 US오픈에서의 컷오프까지. 그러나 그의 이름은 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 우승후보군에서 여전히 맨 윗줄에 올라 있었다.‘황제는 황제일 뿐’이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였다.지난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를 14언더파로 농락하는 등 두 차례나 브리티시오픈 정상에 오른 그는 대회 둘째날 자신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대회 2연패와 메이저 통산 11승을 가시권에 뒀다. 타이거 우즈(미국)가 21일 잉글랜드 호이레이크의 로열리버풀링크스코스(파72·7258야드)에서 벌어진 브리티시오픈골프대회(총상금 675만달러) 2라운드에서 보기는 1개에 그치고 이글 1개와 버디 6개를 묶어 7언더파 65타의 괴력타를 뿜어냈다. 한 라운드 7언더파는 로열리버풀링크스의 코스레코드와 타이. 또 우즈의 1라운드 최저타는 지난 1999년 바이런넬슨클래식에서의 61타였다. 첫날 1라운드를 마지막홀 짜릿한 이글로 5언더파 공동2위로 마친 우즈는 이날 세번째 홀에서 보기를 범해 삐끗하는 듯했지만 직후 4∼5번홀 연속 버디를 잡아낸 것을 신호탄으로 14번홀 이글을 포함해 무려 6타를 더 줄이며 맹공세를 펼쳤다. 대회 직전 “19언더파 정도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우즈는 이로써 중간합계 12언더파를 기록, 자신의 전망에 훨씬 앞선 성적으로 지난해에 이어 대회 2연패의 가능성에 잔뜩 무게를 실었다.1970년 이후 브리티시오픈 2년 연속 챔피언은 리 트레비노(1971∼72년)와 톰 왓슨(82∼83년·이상 미국) 단 두 명뿐. 우즈 외에도 강력한 우승 경쟁자들이 ‘이글 잔치’를 벌였다. 레티프 구센(남아공)은 이글 2개와 버디 4개, 보기 2개를 묶어 6타를 더 줄인 합계 8언더파로 상위권으로 도약했고, 유러피언투어(EPGA)의 강호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도 버디와 보기 각 3개와 이글 1개로 합계 7언더파로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집게발 그립’의 신봉자 크리스 디마르코(미국)는 보기 1개를 범했지만 버디만 무려 8개를 쏟아내며 우즈를 3타차로 추격했다. 첫날 한때 단독선두로 올라서며 ‘제2의 돌풍’을 일으킨 허석호(33)는 밤 11시30분(한국시간) 현재 14번홀까지 버디와 보기 각 2개를 맞바꿔 전날의 4언더파를 유지했다. 그러나 1라운드를 이븐파로 무난하게 치른 최경주(36·나이키골프)는 13번홀까지 버디는 1개에 그치며 2타를 까먹어 하위권으로 추락, 컷오프를 걱정하게 됐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어처구니없는 열정에 대해서

    [이현세 만화경] 어처구니없는 열정에 대해서

    일본 만화 중에 ‘내일의 죠’라는 만화가 있다.1960년대 말쯤에 시작된 이 만화는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였고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고아원에서 자란 주인공 죠는 혼혈아이고 타고난 싸움꾼으로서 운명처럼 권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죠가 권투를 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 가장 강한 자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죠에게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필요하지 않다. 죠의 열망은 차가운 링위에서 가장 강한 자를 상대로 자신의 투혼이 하얗게 재가 되도록 활활 불태워 보는 것이다. 그런 죠의 집념은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 결국 세계챔피언 호세와의 타이틀전을 갖게 된다. 이미 펀치드렁크가 와 버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죠는 미련도 후회도 없이 마지막 라운드까지 자신을 불태우고 비로소 의자에 앉은 채 깊은 잠에 빠진다.“그래, 이거야…. 난 정말 활활 타버려서 이젠 재밖에 남지 않았어. 만족해.” 이것이 죠의 마지막 독백이었다. 그리고 승리는 면도날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챔피언 호세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게임이 끝난 직후 호세의 검었던 머리는 거짓말처럼 백발이 되어 있었다. 호세는 죠와는 반대로 자신의 에너지를 완벽하게 소진해 버린 것이었다. 때로는 열정이라는 것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을 때가 있다.“저기 산이 있어서 산을 오른다.”는 등반가의 우답처럼 순수한 열정이란 너무나 황당한 이유뿐이라서 차라리 미친짓이라고 단정해 버릴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열정이란 또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무엇엔가 미쳐서 주변의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완벽한 자기만의 세계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순수한 열정만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만족만큼이나 최고의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작가에게도 이런 열정은 있다. 내게도 당연히 한 때였지만 있었을 것이다. 초기 스포츠 신문에 연재할 때였다. 그때는 신문의 만화지면이 세로로 길게 늘어진 모양이어서 원고지를 두루마리처럼 길게 제작해야 되었고 데생을 할 때면 앞에 그린 것을 위로 밀어올리면서 그려야 했다. 아직은 만화를 천시할 때여서 신문지면 발표는 중요한 데뷔였고 당연히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하루 데생량이 서너시간은 바쳐야 하는 작업이었고 매일매일 하는 작업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몇 시간이나 되었을까, 머리를 쳐박고 데생을 하고 있는데 머리위가 환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림이 그려져 위로 말려 올라간 원고지가 불이 붙어 폭죽처럼 쏟아져 내려 오고 있었다. 하루에 서너갑씩 담배를 태우던 때라 연기를 정화할 양으로 책꽂이 위에 켜 두었던 양초 때문에 말려 올라간 원고지가 머리에 불이 붙어서 비명을 지르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데생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었고 작업은 다음날까지 꼬박 새우고 나서 끝이 났고 새벽에야 겨우 윤전기로 원고가 갈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 어느 날인가 내게서 이 열정도 떠나버렸고 지금도 나는 그 열정이 가장 그립다. 두 종류의 작가들이 있다. 하던 작업이 끝나지 않으면 화장실이 생각나지 않는 작가와 수시로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작가가 있다. 지금의 젊은 작가나 학생들은 확실히 뛰어나다. 정보용량은 넘치고 감성과 테크닉은 그들의 상상력만큼이나 대단하다. 그러나 그들은 집중력과 인내심이 떨어지고 산만하다. 그래서 그들은 조급하고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한다. 영리한 그들은 절대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순수한 열정이 없으면 결국 우리들의 미래도 없다. 미래는 예약된 것이 아니다. 미래는 도착해 봐야 아는 것이고 산다는 건 어차피 어처구니없는 일의 연속인 것이다. 하긴 미래에 대한 보험을 가지고 있는 SF 만화나 환타지 만화는 있다.
  • [2006상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오리엔트골프 ‘2006 야마하 인프레스X’

    `야마하 인프레스X´는 오리엔트골프의 2006년 신제품으로 `X´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비거리´를 뜻한다.반발계수는 0.83을 준수하면서 페이스상 고반발 영역을 4배로 넓혀 페이스면 어디에 맞든지 비거리 편차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비거리를 늘리는 또 하나의 효과는 관절형 샤프트에 있다. 인프레스 샤프트는 그립쪽과 중간부에 관절과 같이 휘는 곳이 있다. 더블스피드 샤프트는 관절운동과 같이 운동에너지를 상승시키고 다시 헤드스피드를 높여 비거리를 증가시킨다.
  • ‘와와쇼’ 찰떡궁합 DJ 배칠수·전영미

    ‘와와쇼’ 찰떡궁합 DJ 배칠수·전영미

    요즘 개그맨은 물론 웬만한 연예인이라면 조금씩 하는 것이 성대모사다. 그래도 성대모사의 지존은 있다.SBS라디오(러브FM·107.7Mhz)의 인기 프로그램 ‘배칠수·전영미의 와와쇼’(매일 낮 12시20분∼2시)를 진행하는 방송인 배칠수와 개그우먼 전영미가 그들이다.2시간 남짓 성대모사로 이뤄진 콩트를 쏟아내는 입담을 들으면, 그들의 성대모사가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느낄 수 있다. 성대모사 커플로 공인된 그들의 라디오 DJ 생활과 재미있는 성대모사 비법을 들어봤다. ●“눈빛만 봐도 알아요” 72년생 동갑내기인 그들의 인연은 2001년쯤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2002년 신설된 와와쇼에서 배칠수는 김학도와 함께 DJ로, 전영미는 게스트로 참여해 성대모사 실력을 뽐내다가 2004년 봄부터 김학도 대신 전영미가 DJ를 맡으면서 성대모사 커플로 자리잡았다. 전영미는 “벌써 6년째 다양한 프로그램을 같이 하다 보니 가족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됐다.”면서 “특히 칠수는 국어에 강하고 발음도 정확해 시어머니처럼 잘 챙겨준다.”고 치켜세웠다. 매일 만나 일하다 보니 서로 호칭이 자연스럽게 ‘칠수야’‘영미야’다. 특히 타이틀을 함께 외치거나 곡을 소개할 때, 콩트 애드리브를 할 때 연습을 하지도 않았는데 손발이 너무 잘 맞아 자신들도 놀라는 적이 많다고 했다. 황금시간인 낮시간에 타 방송사 프로그램과 경쟁하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되지만, 같은 시간대에서 가장 젊은 DJ들인 만큼 비슷한 나이의 청취자들도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고. 성대모사의 달인들답게 시사적인 콩트와 음악을 통해 차별화한 색깔을 만들고 있다. 배칠수는 “나른한 시간인 만큼 귀에 속속 들어오는 재미있는 코너들을 서민적인 시각에서 담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대모사, 끼와 노력 필요 성대모사로 데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칠수는 노무현·김대중·김영삼 등 대통령은 물론 이회창·이명박·손석희·최양락 등 유명인 20여명을 완벽히 성대모사할 수 있다. 백지연·강금실 성대모사로 유명세를 탄 전영미도 박근혜·전도연·이영애 등 10여명의 성대모사를 선보이고 있다. 와와쇼의 간판 코너인 ‘퀴즈 챔피온’과 ‘고독한 사냥꾼’ 등에서 많게는 20여명까지 등장하는 호화 출연진은 다름 아닌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한때는 너무 많은 유명인들이 자리를 빛내 자기들끼리 출석을 부르기도 했다. 전영미는 “성대모사는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꾸준히 들으면서 노력해야 한다.”면서 “해보고 안 되는 것은 과감히 버리는데 최근 엄앵란 선생님 성대모사를 시도하다가 포기한 뒤 칠수가 해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배칠수는 “성대모사는 똑같이 흉내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 90% 이상은 연기력”이라면서 “3∼4년 전에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연습하고 가다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습하면 안 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성대모사가 된다는 것.“손석희씨 성대모사는 안될 줄 알았는테 최양락 선배님이 해보라고 해서 목소리를 CD에 담아 3∼4개월 연습해서 마스터했다.”고 덧붙였다. ●“장수 프로그램 만들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코미디를 안한지 2년쯤 됐는데 정통 콩트가 그립기도 해요. 언젠가 다시 도전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라디오가 좋아요.”(전영미)“앞으로 무슨 일이 들어와도 영미와 함께 하고 싶어요(웃음). 라디오든 TV든 모든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죠.”(배칠수) 그들은 “청취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골 국물 우려내듯 오랫동안 우리 세대 청취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활짝 웃었다.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이동연의 차차차] 광장과 난장

    지난 13일 토고전에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둔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비나리 프로젝트팀은 프랑크푸르트 시청 앞 뢰머광장에서 붉은 악마와 현지 교민들, 각국에서 온 서포터스들과 신명나는 난장을 벌였다. 꽹과리, 북, 장구, 징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수천명의 서포터스들과 길놀이하는 장면은 흡사 우리네 장터에서 놀던 난장 그대로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난장은 쾰른 대성당 앞 광장으로 이어지고 다시 라이프치히 거리에서 재연됐다. 한국의 승리를 자축한 뢰머광장의 난장과는 달리 17일 라이프치히시 중심 니콜라이 교회 옆 광장에서의 난장은 한국의 프랑스전 승리를 기원하는 희망을 담았다. 그래서였을까,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한국은 프랑스와 극적인 무승부를 이뤘다. 거리의 연희는 국경과 인종, 세대와 성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고 즐겁게 만든다. 한국의 전통공연들을 신기하고 경이롭게 지켜보면서 많은 외국 서포터스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길놀이에 동참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관객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무대 공연보다 거리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난장은 연희공연이 제격이다. 광장의 문화가 살아있는 유럽에서 거리 공연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모이게 하고 열린 마당을 자생적으로 형성하게 만든다. 광장의 난장은 주변의 유서 깊은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과 공간이 하나가 되게 한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한·일월드컵에서 자발적으로 응원하던 소중한 거리 응원의 기억들은 사라진 채 광장은 기업에 의해 팔리고, 관변의 통제를 받고 말았다.2002년 수백만명이 거리에 나와 응원을 해도 별다른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시청 앞 광장은 철재 칸막이에 의해 인공 분해됐다. 시민들은 불가피하게 동선에 제약을 받았고, 응원과 경기관람에 큰 불편을 겪으면서 응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청 앞 광장은 서울시가 잔디밭으로 조성한 이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들이 통제를 받아왔다. 잔디밭으로 만들어 주변 경관을 녹색으로 변화시켰지만, 정작 시민들이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제공되지 못했다. 광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작고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게 광장이 아닌가. 뉘른베르크 광장이나 쾰른 대성당 광장 앞에서 자연스럽게 마임공연을 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광장의 자연스러움과 민주주의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초대형 무대를 쌓고 유명 가수들을 초대하여 대형 이벤트 행사들로 일관하는 광장의 인조화는 우리 고유의 자생적인 난장의 유산들을 거세시켜 버렸다. 우리는 2002년을 통해 광장에서 펼친 난장의 활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다. 광장에서의 난장이 서로 차이를 갖고 있긴 하지만 갈등과 폭력이 아닌 상생과 치유의 힘이 있음을 기억하기도 했다. 한국의 연희공연이 어느 공연보다도 광장에서 강한 흡인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공연자와 관객, 무대와 객석의 위계질서가 해체되고 서로 어우러지는 춤과 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심의 광장이나 경기장 앞 광장이나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우리의 공연에 흥과 신명을 몸으로 바로 느끼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어느 다른 고급스러운 극장 공연보다도 거리의 광장에서 펼치는 난장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훨씬 많은 파급 효과를 갖고 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 전이 열리는 하노버에서도 광장에서의 난장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2) 목가적 항구도시 튀니지의 튀니스

    [이슬람 문명과 도시] (12) 목가적 항구도시 튀니지의 튀니스

    지중해에 접하고 있는 튀니지는 프랑스 시인 앙드레 말로가 하늘과 바다, 들이 푸르다 하여 3창(蒼)이라 불렀던,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한국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기업에 근무하던 한 분이 튀니지를 미국의 테네시로 이해하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연 600만명의 외국인들이 찾을 정도로 튀니지는 관광대국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외국인에 대한 친절함, 잘 다져진 관광 인프라까지 갖췄으니 유럽 관광객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금요일 저녁에 와서 일요일 저녁에 돌아가는 패키지 코스는 싸고 질 좋은 관광으로 인기가 높다. ●기원전 3세기 지중해권 문화요지로 번성 수도 튀니스 부근은 기원전 3세기쯤 페니키아인들이 이주해오면서 지중해권 문화의 요지로 번성했다. 로마시대에는 도시국가 카르타고가 형성돼 지중해 상권을 두고 로마와 격돌하기도 했다. 한니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는 결국 로마제국에 편입됐고, 로마는 증오의 표시로 도시 전체를 파괴했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튀니지는 7세기 이슬람 세력의 진출과 함께 이슬람화했다. 이집트의 정복자 아므르 빈 알 아스가 주도한 튀니지 원정에 따라 670년 우크바 빈 나피이가 이 지역을 비잔틴 로마로부터 빼앗았다. 아랍인들은 이 지역에 마그립 원정 기지로서 ‘카이라완’을 세웠고 ‘카이라완’은 그 뒤 30년간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이슬람을 전파하는 전초 기지가 됐다. 이 때, 그러니까 비잔틴 로마인을 축출하고 라데스항에 대한 비잔틴 로마인의 반격을 막기 위해 697년 건설된 것이 바로 튀니스다. 이전 이름은 타르시스. 카르타고의 석재들이 튀니스 건설에 동원됐다. 이후 튀니스는 16세기 오스만튀르크와 합스부르크의 전쟁으로 1574년 오스만 통치하에 들어가면서 1800년대 중반까지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 남았다가 1864년 프랑스 보호령으로 들어갔고,1957년 독립하면서 튀니지의 수도가 되었다. ●유럽풍 정취·넉넉한 인심 80만명 규모의 도시인 튀니스는 라데스항을 끼고 있는 아름답고 목가적인 항구도시다. 전철을 타면 시내 중심에서 지중해 해변을 돌면서 카르타고 유적을 볼 수 있는 40분짜리 여행코스도 있다. 이 때 내려다 보는 지중해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언덕에는 하얀 집과 아랍차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들이 태양에 빛난다. 시내 중심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 들어서면 파리의 샹젤리에 거리 같다. 프랑스의 영향 때문에 거리 풍경은 영락없는 유럽풍이다. 시내에는 튀니스 전통요리인 쿠스쿠시와 케밥을 파는 식당과 시사라는 아랍 전통 물담배를 피울 수 있는 찻집들이 있다. 찻집에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60대 웨이터들이 이방인을 친절하게 맞이한다. 찻집에 앉아 있노라면 오른쪽 귀에 야스민을 꽂은 어린 슈샤인 보이들이 구두를 닦으라고 애교 있게 사정한다. 구두를 건네주면 재스민 한 송이를 주며 잔돈도 깎아 주는 상술도 발휘한다. 사람들의 인심은 넉넉해 이방인들에게 무척 친절하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튀니스의 20년산 ‘마공’(포도주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일조량이 많아 튀니스 포도는 프랑스 포도 못지않은 향과 맛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름의 맛을 자랑하는 튀니스 와인은 상대적으로 비싼 프랑스산에 비해 사랑받고 있다. 모든 관광식당에는 프랑스산과 튀니스산 포도주가 있는데, 포도주의 족보를 잘 확인하고 그 해 일조량과 숙성 연수를 잘 확인해야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저녁에 튀니스 전통 춤을 감상하며 몰(도미)요리와 함께 흰 마공 한잔을 곁들이는 게 바로 튀니스의 정취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디나´ 오밀조밀하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수도 튀니스에서 가볼 곳은 구도시인 메디나(도심을 뜻하는 아랍어)다.1981년 유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문화적 중심지로 전통을 듬뿍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7세기에 세워진 메디나는 프랑스 식민기간 동안 세워진 신시가에 밀려 지금은 중심지가 아니지만 과거의 흔적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곽도시였던 메디나는 성곽길이만 10㎞에 이르렀고, 그 외곽에는 도랑이 있었다고 문헌이 전한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다만 성문 5개는 아직 남아 있다. 미로 같은 길을 헤치고 나가다 보면 각종 민속공예품을 파는 수크(재래시장)에 도달하게 된다. 눈에 띄는 건 동판을 파는 가게들인데, 여기서는 쇠나 도색된 구리를 새겨 넣기 위해 동판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가 멍해진다. 볼거리도 많고 주인들과 흥정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 ‘다르 엘 하다드’도 들러볼 만하다. 파란색 정문에다 정원을 갖춘 전통 가옥들은 단철 난간이나 미늘살 창문을 갖고 있다. 정원은 대개 정방형이고 더러 분수도 있다. 대가족제라서 단층보다 2층이 많다. 7세기에 세워져 8세기에 재건된 자이툰사원은 반드시 들러야 한다. 메디나 중심부에 라데스 항구를 내려다보면서 솟아 있는 자이툰 사원은 가장 화려하고 탁월한 건축물이다. 사원 중앙부에는 카르타고 유적에서 가져온 200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예배할 수 있는 회랑 숫자만도 10곳에 이르는 큼직한 사원이다. 사원 한가운데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주위에는 벽 높이만큼의 나무기둥들이 쇠줄에 연결되어 둘러서 있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철에는 나무기둥에 아마포를 둘러 씌워 둥근 지붕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사원 근처에는 ‘알 아타린’ 향수시장이 있고, 여기서는 손님의 주문에 따라 갖가지 향수를 만들어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카르타고 제국 튀니스를 벗어나 차로 30분을 달리면 카르타고 유적이 나온다. 우리에게는 한니발로 친숙한 카르타고 제국은 방문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큰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크게 마련이다. 로마가 워낙 철저하게 파괴해서 돌기둥과 발굴된 일부 유적만으로는 그 실망감을 보상하기 어렵다.‘비루사’언덕 위에 세워진 카르타고는 지중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화려했던 제국의 영광은 비록 흙 속에 묻혀 있지만 로마장군 스키피오와 마지막 일전을 벌였던 한니발의 포효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언덕 위 카르타고 박물관에는 페니키아인들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어린이용 석관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페니키아인들이 그들의 신인 ‘바알’과 ‘타니트’를 위해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린아이의 제사 풍습은 토페트 구역에서 잘 나타난다.1921년에 발굴되었던 이 구역은 카르타고 귀족이 어린아이를 죽이고 매장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튀니지 문화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함맘(목욕탕) 문화다. 이슬람 초기 시대에 무슬림들의 종교적 세정을 위해 시작된 함맘은 점차 도시의 필수적인 문화시설이 됐고, 모스크의 부속건물 가운데 하나로 변모했다. 그래서 함맘은 대개 모스크 근처에 있다. 자이툰 사원근처에만 15개가 넘는 함맘이 있었고 튀니스 인근에는 온천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함맘이 있다. 튀니스에서 약 20㎞ 떨어진 코르보스 노천온천에서 여행의 피로도 풀고 튀니스 전통의 함맘 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기억이 된다. 카르타고의 옛 영광을 간직한 나라, 지중해의 진주 튀니스. 그곳에서 우리는 이방인을 반기는 주인의 후덕함과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모자이크식 문화를 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은 아프리카에 살면서 이슬람을 믿고 유럽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카르타고의 후예들이다. 최진영 한국외대 교수
  • [World cup] 김남일 ‘그때처럼’ 중원청소 특명

    |쾰른 박준석특파원|한·일월드컵 개막 직전인 지난 2002년 5월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역대 두번째로 치러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한국대표팀은 비록 2-3으로 아쉬운 패배를 당했지만 대등한 전력을 과시하며 ‘4강 신화’의 싹을 틔웠다. 반면 프랑스는 한국 미드필더의 강한 압박에 시달리다 허벅지 부상으로 본선 2차전까지 결장한 ‘중원 사령관’ 지네딘 지단의 공백이 단초가 돼 1무2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일찌감치 짐을 꾸려야 했다. 당시 지단을 꽁꽁 묶었던 김남일(29·수원)은 “지단의 몸값이 얼만데….”라는 주위의 우려에 “그럼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죠 뭐.”라고 서슴없이 말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1년 전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옮긴 지단의 이적료는 630억원. ‘진공청소기’ 김남일이 19일 G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4년만에 지단과 다시 맞붙는다. 승부처는 물론 중원이다. 일단 경험을 중시하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성향대로 ‘베스트11’은 ‘그때 그 멤버’가 중심이 될 것이 뻔하고, 따라서 김남일이 선발로 나설 가능성도 크다. 물론 임무는 4년 전처럼 지단의 발끝을 무디게 하는 것. 둘의 활약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는 전망은 최근 이들의 경기 내용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프랑스가 14일 스위스와의 1차전에서 맥없이 고전하다 득점 없이 무승부에 그친 건 주포 티에리 앙리의 부진도 있었지만 지단을 정점으로 한 프랑스의 미드필드라인이 스위스의 압박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단은 체력과 패싱 능력뿐만 아니라 활동 반경까지 확연히 줄어들어 전성기를 그립게 했다. 반면 앞서 열린 토고와의 1차전에 후반 이을용과 교체 투입된 김남일은 4년 전보다 한층 강해진 흡입력으로 토고의 예봉을 차단하며 중원을 안정감있게 유지, 안정환의 역전골을 보이지 않게 도왔다. 김남일은 16일 대표팀 숙소인 슐로스벤스베르크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4년 전 지단은 산처럼 느껴졌던 선수다. 하지만 경기 후 부담감이 떨어졌다. 지금은 지단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1차전 무승부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프랑스의 총공세를 지휘할 지단. 그리고 ‘비기기 작전’에서 ‘필승’으로 목표를 바꾼 아드보카트호. 승부의 키는 김남일이 쥐고 있다. pjs@seoul.co.kr
  • ‘J-퓨전’의 진수 서울서 본다

    ‘J-퓨전’의 양대산맥 카시오페아(Casi opea)와 티스퀘어(T-Square)가 잇따라 한국을 찾는다. 새 앨범 ‘시그널(Signal)’과 ‘블러드 뮤직(Blood Music)’ 발매에 이어서다. 화려하고도 정교한 연주로 정평이 난 이들의 새 앨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오밀조밀한 기존 J퓨전 스타일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사실. 특히 티스퀘어의 변신은 놀랍다. ●‘드럼배틀의 추억´ 카시오페아 카시오페아와 티스퀘어의 간판 드러머 아키라 짐보와 히로유키 노리타케가 결성한 트윈 드럼 밴드 ‘싱크로나이즈드디엔에이’(SyncDNA). 메탈팬이라면 메탈리카 라이브 때 드러머 라스 울리히와 기타리스트 커크 해머트가 벌인 장난끼 어린 드럼배틀을 기억할 터.J퓨전 팬에게도 2003년 두 밴드의 합동공연 때 시도된 드럼배틀은 추억이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그 이듬해부터 따로 밴드를 만들었고, 앨범 ‘시그널’에 참가했을 뿐 아니라 28∼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내한공연에도 함께한다. 원래 카시오페아는 말이 필요없는 연주를 선보이는 잇세이 노로(기타), 요시히로 나루세(베이스)가 주축. 여기에다 두터운 질감의 드럼이, 그것도 두 세트씩이나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양방향으로 펼쳐 화려한 질감을 선보일까, 아니면 한방향으로 집중해 묵직하게 한박자씩 찍어 나갈까. 큰 축은 화려한 쪽. 그러나 파워풀한 대목도 무시할 수 없다. 정확한 것은 결국 공연에서 직접 확인해볼 수밖에.(02)751-9607∼10. ●‘강력한 비트´ 티스퀘어 카시오페아와 티스퀘어의 차이점은 색소폰의 존재다. 딥퍼플이 ‘키보드’ 덕에 레드 제플린보다 폭넓은 연주를 시도할 수 있었듯, 티스퀘어도 색소폰으로 비슷한 효과를 누렸다. 특히 소프트한 곡에서 그렇다. 카시오페아가 정갈한 소품 같은 느낌에 그친다면, 티스퀘어는 훨씬 더 진한 감성을 자아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이런 이미지를 완전히 깬다. 불온한 느낌이 가득한 커버부터 무슨 하드 록 밴드 앨범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폰을 꽂는 순간 ‘퓨전’이 무색한 강력한 사운드가 나온다. 특히 신참 드러머 사토시 반도는 모든 곡에서 강력한 비트를 선보일 뿐 아니라, 메탈 리프 느낌까지 묻어나는 ‘Cirrus’를 직접 작곡했다. 그 때문에 이젠 팀을 떠난 베이시스트 미쓰루 수토의 공백이 더 커보인다. 이런 헤비한 음반에서는, 특히 리드미컬한 베이스 라인이 뚜렷하게 살아있는 3번 트랙 ‘리벤지(Revenge)’에서는 더더욱 그가 그립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쉬움을 어떻게 달래냐고? 통쾌한 공연으로 씻어내면 된다. 다음달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내한공연 라인업에 미쓰루 수토는 ‘특별한 친구’로 포함됐다. 보너스 하나 더. 카시오페아 내한공연에 이어 또 한번 근사한 드럼배틀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히로유키 노리타케도 ‘특별한 친구’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다. 아키라 짐보에 이어 이번 상대는 사토시 반도다.1544-1555,1588-789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심상덕의 서울야화] (10) 땡땡이 무늬와 물방울 무늬

    [심상덕의 서울야화] (10) 땡땡이 무늬와 물방울 무늬

    벌써 민소매 옷차림이 한창입니다. 예년보다 더위가 더 빨리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고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도 ‘땡땡이 무늬 옷’과 ‘물방울 무늬 옷’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그 차이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땡땡이’ 무늬라는 것은 ‘점점’, 점이 찍힌 무늬를 뜻하는 일본식 발음입니다. 차이점이 있다기보다는 ‘땡땡이 무늬’란 일본식 표현인 거죠. 앞으로는 ‘물방울 무늬’라는 우리말로 바꿔 썼으면 좋겠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패션의 진원지는 아직도 서울의 ‘명동’입니다. 명동은 ‘날 일(일)’자와 ‘달 월(月)’자가 합쳐진,‘밝을 명(明)’자 명동입니다. 해와 달이 함께 떠있는 동네인 겁니다. 그러니 ‘명동’이라는 동네가 낮과 밤 할 것 없이 환하게 밝지 않을 수가 없는 거겠죠. 특히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사이, 그 시절 명동에 나가면 시인인 ‘공초 오상순’을 만나기 위해 문학청년들이 담배연기 자욱한 ‘청동다방’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명동에는 ‘동방싸롱’ 또 ‘은성’이라는 술집,‘르네상스’와 ‘돌체’같은 음악 감상실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지금은 명동 거리에 대형 구두점들이 더 많이 눈에 띄지만 과거 전성기 때의 명동 큰길 양쪽에는 양장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양장점은 ‘송옥 양장점’입니다. 그 시절의 연예인들 중에서도 ‘백치 아다다’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나애심’이 이곳의 단골이었습니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불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나애심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이런 노래도 불렀던 가수 겸 영화배우였습니다. 나애심뿐만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 연예인들이 단골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디자이너 중에도 지난날 이 ‘송옥 양장점’에서 출발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시집가는 신부가 신혼여행 때 입을 옷 한 벌 새로 맞춰 입을 경우에도 그렇고 또 해마다 철이 바뀔 때면 새 옷 한 벌 마련하기 위해 명동의 양장점을 찾아 나서는 게 큰 행사 중에 하나였던 겁니다. 그 시절엔 자기가 입을 옷을 선택할 때 그 양장점 진열장 속에 있는 마네킹이 입고 있는 견본을 보고 그 옷 그대로 맞춰달라고 주문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또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그리고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명동의 모든 양장점들은 일감이 밀려서 밤 12시 통금 직전까지, 아니면 또 밤을 새워 가며 일을 했죠. 그 시절엔 한번 유행을 했다 하면 자기의 개성적인 멋에 맞추지 못하고 ‘저 사람이 입었으니까 나도 저 사람하고 똑같이 한벌 해입자.’ 이런 식이었거든요. 짧은 치마가 유행할 땐 전부다 짧은 치마 또 긴치마가 유행일 땐 전부다 긴치마. 말로는 유행 따라 옷을 해 입는다지만 결과적으로는 획일적인 의상이었어요. 마치 젊은 여성들이 단체로 유니폼을 해 입은 것처럼 말이죠. 그 시절엔 주로 여성들에게 유행하는 옷차림에 대한 패션쇼를 할 때도 지금은 옷에다 꽃을 수놓는다면 이건 뭐 당연히 ‘장미’나 ‘튤립’같은 꽃이 등장하겠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사이 그 무렵엔 패션쇼를 할 때 아래위 예쁜 옷을 걸친 모델들이 장미꽃 대신 연보랏빛 ‘무 장다리꽃’이나 노오란 ‘배추 장다리꽃’을 가슴에 듬뿍 안고 나오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서양식 장미꽃보다 명동의 패션쇼에서도 ‘무장다리꽃’이나 ‘배추 장다리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던 그런 소박함과 순수함이 있었던 겁니다.‘장다리 꽃’, 이름부터 정답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 맛난 밤참 맛난 월드컵

    맛난 밤참 맛난 월드컵

    1드디어 2006년 독일월드컵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4년전 우리를 열광하게 만든 태극전사의 대활약이 기대되십니까. 눈을 부릅뜨고 밤잠을 설칠 각오가 돼 있습니까! 활기차고 신명나게 응원할 준비 됐습니까! 여기에 출출함을 달랠 밤참과 나만의 스타일을 뽐낼 응원복을 곁들여 보세요. 맛있고, 멋있게 태극전사를 응원하세요∼. 한국·토고전은 밤 10시, 스위스와 프랑스전은 새벽 4시.4년전만 해도 우리의 활동시간에 경기가 열려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월드컵은 새벽 밤을 지새워야 한다. 가뜩이나 길고 긴 여름밤. 출출한 속을 달래면서 월드컵을 즐겁게 해 줄 맛있는 야참의 세계로 빠져보자. 물론 속이 부담스럽지 않게, 칼로리도 높지 않은 것으로 준비하자.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밤참으로 고기를 먹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래도 고기의 씹는 맛이 그립다면 고기와 함께 하는 재료를 소화가 잘 되고, 칼로리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면 된다. 우리의 김치는 세계 5대 장수 식품이자,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제 1 반찬. 일본 대표팀도 챙겨가는 반찬이라니 자랑스럽다. 이런 김치는 돼지고기의 소화를 돕는 찰떡궁합 음식으로 꼽힌다. 신선한 키위 소스도 돼지고기를 연하게 만든다. 돼지고기의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표고버섯을 넣어 밤참을 만들어도 좋다.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영빈씨는 “돼지고기는 칼로리, 콜레스테롤이 많아 밤참 재료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양 많은 부위를 선택하고, 궁합이 잘 맞는 재료를 이용하면 씹는 맛과 영양, 건강을 모두 잡는 밤참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진행협조 : 양돈자조금관리위원회 # 쫄깃한 안심찹쌀구이와 찰떡궁합 김치채소무침 재료:돼지고기 안심 400g, 배추김치(줄기로)200g, 오이 1/2개, 배 1/4개, 당근 1/4개, 무순 약간,무침소스(연겨자 1큰술, 식초 2큰술, 설탕 1큰술, 소금 1/2작은술, 물 2큰술, 간장 1/4작은술, 참기름 약간),고기양념(생강즙 1큰술, 청주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 찹쌀가루 1/2컵, 식용유 약간) 만드는 법:(1)오이, 당근, 배, 속을 털어낸 김치를 5㎝길이로 곱게 채 썬다. 무순은 끝만 다듬어 준비한다.(2)돼지고기는 0.2㎝두께로 썰어 양념으로 밑간해 15분 정도 재운 후 앞뒤로 찹쌀가루를 무친다.(3)무침소스를 만들어 김치와 채소에 버무린다.(4)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지진다. (5)접시에 돼지고기를 먹기 좋게 펴 놓고 채소무침을 곁들여 낸다. # 상쾌한 키위소스 안심샤부냉채 재료:샤부샤부용 돼지고기 안심 250g, 맥주 1컵, 물 11/2컵, 양상추 1/4통, 오이 1개, 당근 1/4개, 무순 약간,키위소스(키위 11/2개, 양파 1/4개, 포도씨오일 1/4컵, 설탕 3큰술, 레몬즙 1큰술, 식초 2큰술, 소금 1/2작은 술) 만드는 법:(1)안심을 끓는 물과 맥주에 데쳐낸다.(2)분량의 재료를 믹서에 곱게 갈아 소스를 만든 후 냉장고에 넣어 둔다.(3)양상추는 한 입 크기로 뜯고 오이, 당근은 반 갈라 어슷썬다. 무순은 끝만 다듬어 찬 물에 담가둔다.(4)소스를 조금 덜어 안심에 밑간 한 후 수분을 제거한 채소에 버무려 먹는다. Tip:맥주 섞은 물에 돼지고기를 데치면 돼지고기의 잡내를 제거할 수 있다. 육질은 부드러워지고, 탄력이 생긴다. # 웰빙 밤참, 등심롤커틀릿과 유자향의 양배추 샐러드 재료:돼지고기 등심 400g, 아스파라거스 10∼12대, 표고버섯 3∼4개, 깻잎 10∼12장, 달걀 2개, 밀가루, 빵가루, 식용유 적당량, 소금, 후추 약간씩, 양배추 5∼6장,유자청절임장(식초 3큰술, 물 2큰술, 유자청(유자차) 2큰술, 설탕 1큰술, 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1)아스파라거스의 억센 부분을 제거한 뒤 소금물에 살짝 데쳐 식힌다.(2)표고버섯은 채 썰어 살짝 볶아놓고 깻잎은 한 장씩 잘 씻어 수분을 제거한다.(3)돼지고기는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둔다.(4)잘 씻은 양배추와 깻잎 3∼4장을 채 썬 뒤 절임장에 버무려 양배추 샐러드를 만든다.(5)돼지고기에 밀가루를 뿌리고 깻잎을 올린 뒤 아스파라거스와 표고버섯을 넣고 돌돌 만다.(6)밀가루, 달걀, 빵가루 순으로 옷을 입히고 160℃ 정도의 기름에 노릇하게 튀겨낸 후 한입 크기로 잘라 양배추 샐러드와 곁들여 낸다. # 김영빈씨는요 한식, 일식, 양식, 중식, 동남아요리 등 다양한 과정을 익힌 전문가. 한국전통병과연구원, 경희대 한방약선요리전문가, 궁중음식연구원, 선재스님 사찰음식 과정 등을 수료했다. 문화센터 쿠킹스튜디오 강사, 월간지와 홈쇼핑의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약 중. bini082@naver.com ■ 응원석도 식탁도 4강기원 붉은 물결 붉게 물든 응원전만큼 밤참도 붉게 만들어보자. 서양 고추로 통하는 파프리카는 수분이 많은 단 즙과 아삭거리며 씹히는 맛이 있어 청량감을 느끼기에 좋다. 빨간 토마토와 신선한 모차렐라 치즈에 올리브유를 곁들이면 고소하면서 상큼한 샐러드가 완성된다. 한국인의 힘은 역시 ‘김치’. 한밤에 김치볶음밥의 매운 맛을 느껴봐도 좋다. 밥을 올리브유에 바삭하게 볶으면 느끼함을 확 줄일 수 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한지혜씨는 “밤참은 친근한 재료를 이용해 만들기 쉬운 메뉴가 최고”라며 “지지거나 볶을 때 올리브유를 이용하면 풍미를 높이고, 콜레스테롤 걱정 없이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행협조:유니레버 베르톨리 # 새벽시간에도 부담 없는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 재료:토마토 2개, 모차렐라 치즈 400g,소스(올리브유 4큰술, 발사믹 식초 2큰술, 바질·소금·마늘·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1)토마토는 깨끗이 씻어 꼭지를 뗀 후 5∼10㎜ 두께로 넓고 얇게 자른다.(2)모차렐라 치즈도 비슷한 두께로 자른다.(3)접시에 토마토와 치즈를 겹겹이 놓는다.(4)바질, 마늘, 소금, 후추, 올리브유를 넣고 잘 섞어 소스를 만든다. (5) (3)에 (4)를 올려 내면 완성. # 맥주 한 잔과 파프리카 꼬치구이 재료:붉은 파프리카 2개, 떡볶이용 떡 200g, 베이컨 10줄, 피망 1개, 양파 반개, 단호박 1/4개, 올리브유 2큰술, 소금 약간 만드는 법:(1)야채는 깨끗이 씻어서 한 입 크기로 자르고 떡볶이용 떡은 베이컨과 같은 폭으로 자른다.(2)베이컨은 끓는 물에 넣고 데쳐서 기름기를 제거한 후 떡을 넣어 돌돌 말아준다.(3)꼬치에 소금을 약간 뿌린 야채와 (2)를 번갈아 끼운다.(4)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넣어 10분 정도 굽는다. # 한국인의 힘! 김치볶음밥 재료:밥 1컵 반, 묵은 김치 1컵 반, 고추장 1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김치국물 3큰술, 후추 약간, 마늘 2톨, 올리브유 2큰술 만드는 법:(1)묵은 김치는 국물을 꼭 짠 다음 잘게 썰어 고추장을 넣고 버무려 놓는다.(2)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납작하게 썬 마늘을 넣고 볶다가 향이 나면 마늘을 건져낸 뒤 남은 기름에 (1)을 넣고 다시 볶는다.(3)다른 팬에 역시 올리브유를 약간 두르고 밥을 넣어 볶다가 (2)를 넣어 함께 볶는다.(4)김치국물을 넣고 한번 더 살짝 볶고, 구워 놓은 마늘을 넣으면 더욱 깊은 맛이 난다. # 한지혜씨는요 패션스타일리스트와 패션홍보담당자로 활동하다가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가 핫토리 영양전문학교에서 일식·양식·중식·제빵제과 과정을 마쳤다. 국내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02)549-5470.
  • [열린세상] 경제정책,나침반이 없다/이건영 중부대 총장

    선거바람과 함께 온 나라가 춤추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정책들도 춤추고 있다. 돌아가는 판세가 여당에 불리하니까 표를 잡으려는 달콤한 공약과 정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수도권의 그린벨트가 풀리고, 토지규제가 완화되었다. 국제유가가 턱없이 치솟고 환율이 추락하는 등 국제 경제환경은 좋은 편이 아니다. 게다가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에서 우리나라 경쟁력을 61개 조사대상국 중 작년 29위에서 38위로 9단계나 떨어뜨렸다. 특히 ‘정부행정효율’이 47위로 바닥권으로 평가됐다. 물론 이같은 지표 하나하나에 목을 맬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 불안한 것은 이런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식이다. 일자리를 찾아 서성거리는 젊은이들에게는 눈길도 안주고, 강남의 집값에 대해서는 원한이 서려 있는 것 같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른다지만 환율에 의한 착시현상만 부각되고 있다. 고단했지만 한푼 두푼 저축하며 살던 예전의 생활이 그립다. 부동산시장이 열기를 뿜고 증권시장이 춤추는 동안 소위 자산가치만 부풀려져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되지 않았는가? ‘평등하게 잘살게 되리라’던 달콤한 환상은 거꾸로였다. 뿐인가. 그동안 금융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정치개혁 등등 개혁의 이름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분명치 않은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경제가 작년 하반기부터 기지개를 켰던 것도 특단의 처방 탓이라기보다 중국경제의 호황 바람을 탔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 쏟아놓은 정책은 현기증이 난다. 그린벨트를 풀고, 강남집값에는 시장원리와는 거리가 먼 세금대책을 퍼붓고, 천문학적 규모의 부동자금이 나도는데도 금리는 미국보다 낮게 묶어놓고,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방황하는데 일자리 마련에는 묘수가 없다.‘작은’ 정부가 아니라 할 일을 하는 ‘큰’ 정부도 괜찮다고 한다. 국영기업체들은 민영화의 바람을 피해서 이제는 낙하산인사들이 앉아 다시 몸집 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다. 과밀을 해소한다고 행정기능을 빼어낸 수도권에 왜 다시 규제완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나?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제 길로 가려는 것인가? 지금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논쟁이 뜨겁다.‘세금폭탄’을 주도해 온 건설교통부장관은 부동산거품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의 고통,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거품이 일 때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정책의 흐름이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다. 과거에는 장래 지표적인 중장기의 경제계획이란 그림이 있고, 여러 가지 정책대안들이 계획 입안과정에서 제시되고 조율되었다. 요즘은 이런 경제계획이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위원회에서 만드는 구호와 부서별로 나오는 즉흥적인 대증요법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정책에는 장기적인 비전이 있고 맥이 있고, 여기서 단기적인 처방이 나오는 것이다. 작은 정책이라도 큰 그림의 틀 속에 있어야 한다. 요즘은 정부의 정책방향을 점검하고 연구하는 국책연구소들이 조용하다. 오히려 민간연구소의 역할이 돋보인다. 물론 경제를 정확히 예측하고 진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 가능하도록 이끄는 것이 경제의 리더십이다. 최소한 여러 상황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정교한 시나리오가 있고, 국민들이 스스로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공감해야 미래를 위한 현재의 고통을 함께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일하고 뛰는 것은 국민들이지 정부가 아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나침반이 필요하다. 선거를 맞아 급조된 화려한 비현실적인 공약은 없어도 좋다. 지금은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구호보다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이다. 경제정책이 아마추어리즘에 흘러 방황하면 큰일이다. 이건영 중부대 총장
  • “몰래 구워먹던 밀맛 그립나요”

    “추억의 ‘밀서리’를 아시나요.” 보릿고개를 넘긴 50∼60대 세대들은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조금 덜 익은 밀을 불에 구워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입가에 묻은 검댕을 서로 놀리며 웃었던 추억의 밀서리 행사가 오는 28일 경남 합천군 초계면 택리에서 열린다. 우리밀살리기운동 경남·부산지역본부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밀밭 산책과 밀서리를 비롯한 문화한마당 등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행사의 백미는 밀서리. 우리 밀밭을 거닐며 꺾은 밀을 모닥불에 구워 먹는다. 손바닥으로 비벼 불에 탄 껍질을 벗겨 먹던 구수한 밀맛도 기대되지만 책보따리를 메고 뛰놀았던 어린시절의 기억도 덤으로 떠올릴 수 있다. 주최 측은 참석자 전원에게 우리밀 국수를 점심식사로 제공한다. 또 우리밀로 만든 전과 술빵·뻥튀기·막걸리 등 추억의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우리밀살리기운동 경남·부산지역본부 김석호 본부장은 “우리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미흡하다.”면서 “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재배농가에 대한 맥류안정기금 지원 등 정책적인 뒷받침과 소비자들의 사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5·3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24時] (2) 경기지사-한나라당 김문수

    [5·3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24時] (2) 경기지사-한나라당 김문수

    김 후보 “아니, 전 기자가 수원까지 어쩐 일인가.” 기자 “오늘 김 후보 차 타고 동행하며 좀 괴롭히려고요.” 김 후보 “선거기간엔 차 안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많은데 어쩌지. 선거기간에만 좀 봐주지. 이동하면서 모자라는 잠도 좀 자야 하고, 행사장 다니느라 못 받은 전화도 좀 해야 하니까. 먼 걸음했는데 미안하네.” 지난 8일 오전 9시 경기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에서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와 인사를 나눴다. 하루 종일 김 후보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겠다던 ‘희망사항’은 그의 완곡한 사양, 실제로는 단호한 거부에 막혀 수포로 돌아갔다. 어쩔 수 없이 김 후보의 승용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따라다니는 ‘위험한 레이스’를 펼쳐야 했다. 어버이날인 이날 김 후보는 치매·뇌졸중 등으로 병상에서 누워지내야 하는 노인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총 120병상 규모의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에 110명 정도의 중증 노인들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환자들을 일일이 어루만지며 병세를 묻는 그의 모습은 선거용 제스처만은 아닌 듯했다. 그는 어버이날을 맞아 자신의 홈페이지에 ‘눈물로 쓴 굼벵이 사모곡’이라는 글을 올렸다. 요지는 이렇다.“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군요. 제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수배중이던 때였지요…. 위암 선고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체포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갔지만 못난 자식이 해드릴 수 있었던 건 고작 초가지붕 굼벵이를 잡아 볶아 드린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제 품에서 숨을 거두셨지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뵐 수 없는 당신, 오늘따라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돌아가신 지 32년째 어버이날, 불효 문수 큰절 올립니다.” 김 후보는 “내겐 모시고 싶어도 모실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어버이날이면 열일 제쳐두고 양로원이나 요양원을 찾아다녔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요양원을 돌아본 뒤에는 기자에게 “도지사가 되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이곳처럼 노인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을 대폭 늘릴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어 용인시장 후보 사무소 개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용인 수지로 향했다. 개소식에 앞서 경기지사가 되고자 하는 이유를 물어봤다.“대학 다닐 때부터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었다. 한때는 이념의 틀에 갇힌 적도 있었다. 어느 순간 노동운동의 본질은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과 삶의 질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과제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참된 진보고,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진정한 진보세력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경기지사는 진정한 진보세력이다. 외국기업 100개를 유치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나 역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다. 도와 도민들을 위해 몸을 던져 일하는 머슴이 될 것이다.” 용인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이날 행사장에 참석했던 박희태 국회부의장과 이규택 최고위원, 한선교 의원 등과 함께였다. 김 후보는 ‘폭탄주의 원조’로 불리는 박 부의장에게 빡빡하게 짜인 오후 일정을 들어 “오늘은 폭탄주 없는 날”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초밥을 다 먹기도 전에 매운탕부터 재촉하는 것을 보면 바쁘긴 바쁜 모양이었다. 다음 일정은 광명에 있는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몸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들을 위로하고, 카네이션 달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광명엔 예정보다 15분가량 일찍 도착했다. 행사장에 들어가기 전에 공약과 포부를 물어봤다. 그는 “더 이상 서울의 그늘에 가려진 위성도시연합체로 머물 순 없다.”면서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와 당당히 경쟁할 ‘경기도 시대’를 열어젖히겠다.”고 포부를 털어놨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경기도에 포박해 놓은 수많은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면서 “특히 수도권정비계획법은 경기 개발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난개발과 공장이 많은 경기도는 환경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도지사직을 걸고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인 팔당호 상수원 수질을 높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광명장애인 종합복지관 행사를 마지막으로 김 후보와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열린우리당 진대제 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의 답은 이랬다.“진 전 장관은 중학교·대학교 동창으로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다. 최고경영자(CEO)로서는 최고의 실력자다. 하지만 CEO가 공적인 영역으로 옮겨오면 종종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기업 마인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도지사는 도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땀흘릴 수 있는 내가 나을 것 같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주요 경력 경북 영천(54), 경북중·고, 서울대 경영학과,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기획위원장·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 ●주요 공약 -수도권 규제 혁파 -지속적인 외자 유치와 일자리 확충 -수도권 광역교통망체계 확충 및 환승요금제 폐지 -교내 안전사고 및 학교 폭력 예방 위한 ‘미어캣 프로젝트’ -저소득층 노인 위한 주간보호시설 516곳 신설
  • 어버이날이 더 슬픈 사할린 귀국동포들

    어버이날이 더 슬픈 사할린 귀국동포들

    서울까지 비행기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수십년을 살았다.1990년대 초 타향살이에 지쳤다며 자녀, 손자들을 두고 혼자 혹은 배우자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며 산다. 영주권을 취득해 귀국한 사할린 동포 1세들의 얘기다. “무슨 날인지 모르고 지내는 게 편하지. 말하면 뭐해. 애들이 더 보고 싶기만 하지.” 99년 영주 귀국한 이정희(77) 할머니. 어버이날을 앞두고 사할린에 두고 온 가족들이 더 그립다.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을 위한 요양시설인 대한적십자사 산하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지내고 있는 할머니는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늘 한 구석이 빈 듯하다. “죽어도 고국 땅에 묻히고 싶어서 왔지. 여기 시설도 만족하고. 근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재밌지. 한국에 오니까 이제는 자식들이 눈에 밟혀.” # 몸은 편해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 침대 머리에는 영주 귀국을 기다리다 96년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의 사진이 전부다. 귀국했을 때 많은 사진을 챙겨왔지만 다시 사할린으로 돌려보냈다. 이곳에서 죽고 나면 영영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복지회관 내 최고령자인 정언년(95) 할머니는 경기도 안산에 함께 귀국한 아들이 있지만 사할린에 두고 온 두 딸이 늘 그립다. 귀국 초기에는 그렇게 반기던 친척들도 지금은 발길이 뜸하다. 그럴수록 혈육은 더 그리워진다. 낙이라고는 매월 생활비로 나오는 4만 5000원을 아껴 전화로 딸의 목소리를 듣고 사할린행 비행기표 값을 모으는 것이다. 정 할머니는 “산천초목은 저렇게 젊은데 나는 늙어가기만 한다.”면서 “자식도 못보고 눈을 감게 생겼는데 지금 한국에 와 살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사할린 동포1세들은 대부분 일제 때 강제 징용으로 이주해 종전 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1989년부터 한·일 양국이 사할린 동포 지원 사업 추진에 합의했다.94년 사할린 동포 영주 귀국자를 위한 요양원을 짓기로 해 99년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이 문을 열었다. 10여년 동안 귀국한 동포들은 1000여명에 이른다. 인천 복지회관에서 지내는 동포는 85명. 그들 중 매년 한두 명은 사할린에 다니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렇게 고국 대신 가족을 선택한 사람이 지금까지 11명이다. # 매년 1~2명은 사할린갔다 안돌아와 인천에 사할린 동포를 위한 복지회관이 문을 연지 햇수로 8년. 하지만 지역주민 대부분이 복지회관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그래서 복지회관은 오는 11일 사할린 동포 1세들과 지역 주민들의 화합의 장을 준비 중이다. 이날은 연예인 봉사단의 공연과 함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다. 처음 복지회관 입소 조건이 독신이었기 때문이 4쌍의 부부가 국적을 취득할 때도 호적 정리를 못하고 법적으로 미혼으로 살아왔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김금학(88) 할아버지는 “반세기 넘게 함께 해서 그런지 특별히 떨리지는 않는다.”면서 “사할린과 북한에 있는 자식들도 함께 하면 좋을 텐데….”라며 말을 흐렸다. 김주자 관장은 “아버지·형제들과 한번, 자녀·손자들과 또 한번, 이렇게 두번의 이산을 겪은 이들인 만큼 좀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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