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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피플+] 아내가 죽기 전 남긴 메모 덕에…8자녀 홀로 키운 남편

    [월드피플+] 아내가 죽기 전 남긴 메모 덕에…8자녀 홀로 키운 남편

    아내와 사별하고 여덟명의 아이들을 홀로 키운 남성이 양육의 성공비결을 밝혔다. 17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미러 등 외신은 남부 요크셔 출신의 이안 밀소프(56)가 아내 앤지를 떠나보내고 혼자서 자녀를 키우게 된 사연을 전했다. 사연에 따르면, 14살때 처음 만난 이안과 엔지는 1985년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앤지가 29살의 나이로 처음 암에 걸리기 전까지 아들 셋을 낳았고, 5년 후 암을 이겨내고 나서도 다섯 명의 아이를 더 가졌다. 그러나 2008년 앤지가 다시 말기 폐암 선고를 받으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2년 동안 암과의 사투를 벌이던 앤지는 자신이 죽고나서 혼자가 될 남편이 걱정됐다. 이에 그녀는 사망하기 바로 며칠전 남편을 위한 양육 필수 지침을 쓴 후, 2010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남기고 간 메모에는 '하루에 한시간만 컴퓨터 사용하게 하기', '단 음식 너무 많이 주지 않기', '더운 날 자외선 차단제 발라주기', '손톱 물어뜯게 두지 않기', '엄격해지기' 등의 규칙이 적혀있었다. 남편 이안은 “아내를 잃고 난 후 혼자 여덟 아이들을 키워야하는 어려움에 놓였다. 그러나 앤지가 15가지 조언을 남겨준 덕분에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절대 아내를 대신 할 수도, 그러길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아내는 이를 더 쉽게 만들어주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내가 남긴 메모로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고, 이제 손자들에게도 아내의 규칙들은 대물림되고 있다. 이안은 “아내가 매일 그립다. 손자가 태어날 때마다 아내의 부재를 느낀다”고 전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나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발육..남학생들이 놀려 창피했다”[화보]

    나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발육..남학생들이 놀려 창피했다”[화보]

    최근 웹 예능 ‘네버 슬립(Never Sleep)’에서 케미를 드러내고 있는 래퍼 나다와 안무가 미나명이 bnt화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남양주 펜션121에서 진행된 나다X미나명의 특별한 콜라보 화보는 구카, FRJ jeans, 스타일난다, 네이버 해외직구 해외편집샵 프랑코 푸지(Franco Pugi) 등으로 구성된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됐다. 두 사람은 보헤미안 무드의 드레스를 착용한 채 이국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는가 하면 데님 걸크러시 매력, 바캉스를 연상시키는 청량한 의상과 함께한 수영장 콘셉트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촬영을 마친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네버 슬립’ 프로그램에 대해 “신선한 케미를 보여드릴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며 운을 땠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콜라보 음원 ‘도져(Dozer)’를 발표하게 된 두 사람은 “마치 한 팀인 것처럼 잘 맞았다”며 남다른 호흡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음원 공약이 있는지 묻는 질문엔 “정말 순수하게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기만 한다면 영광스러울 것 같다. 욕을 하셔도 달게 받겠다”며 솔직하게 답했다. 이어 미나명은 “사실 어릴 적 꿈이 가수였다. 이번 음원을 통해 내 노래를 처음으로 들려드리게 됐다”며 수줍게 소감을 덧붙였다. 나다 역시 음원에서 보여줄 퍼포먼스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는데, 데뷔 전 2년의 백업댄서 경력이 있다고 밝힌 그는 “손호영, 김건모, 현아, B1A4 등의 무대에 섰었다”라며 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센 언니들의 표본답게 털털하고 다소 직설적인 스타일의 나다와 미나명은 비슷한 성격 탓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이번 콜라보 음원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미나명은 나다에 대해 “음악에 관해서 만큼은 프로패셔널하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다 역시 미나명의 노래 실력에 대해 “목소리가 너무 예쁘고 청아해서 놀랐다. 이번 음원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음반 작업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래퍼 제시와도 작업한 적이 있는 미나명에게 나다와 제시 중 더욱 케미가 잘 맞았던 사람을 묻자 1초의 고민도 없이 “당연히 나다와의 케미가 훨씬 좋다”라고 밝혀 나다를 감동케 했다. 국내 최대 댄스 스튜디오인 원밀리언 소속 안무가 미나명의 활약은 상당하다. 원밀리언 공식 채널 안무 영상 누적 조회 수만 23억 뷰 이상. 그에게 소감을 묻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안무 제작 경험만 셀 수 없이 많았던 그는 대표적으로 박재범, 제시, 수지의 음원 안무에 참여한 바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지션을 묻자 박재범을 꼽은 미나명은 “춤에 그루브를 보면 정말 감탄만 나온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래퍼 나다는 1인 기획사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심적으로 괴로움이 컸다는 그는 “이 직업을 그만두려고 했었다”며 힘든 시간들을 회상했다. 임원으로서 1인 기획사를 직접 설립한 나다. 그는 투명한 회사 운영에 만족스러움을 표하며 새 출발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그룹 활동 당시가 그립진 않은지 묻는 질문에 나다는 “당시의 생각이 많이 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며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 Mnet ‘언프리티 랩스타3’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은 바 있는 나다. 그에게 또 한 번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의향이 있는지 묻자 그는 “‘언프리티 랩스타’ 왕중왕전을 한다면 나갈 의향이 있다. 그 외엔 나가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해외 투어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를 묻자 “브라질에서 인기가 정말 좋다. 당당한 걸크러시 모습을 해외 팬분들께서 좋아해주신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혹 악플 대처법이 있는지 묻는 질문엔 “댓글을 보면서 육성으로 같이 욕해준다”며 그의 성격답게 시원한 답변을 전했다. 탄력 넘치는 구릿빛 몸매의 소유자 나다와 미나명. 어릴 적부터 발육이 남달랐다는 나다는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면 남학생들이 놀리기도 많이 놀려서 창피 했었다”는 남모를 사연을 공개했다. 또한 자신의 몸매를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미나명은 “그래도 허리는 얇은 편이라 봐줄 만한 것 같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한편 나다는 선화 예술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자퇴한 이유를 묻자 “자퇴를 했던 이유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 노력이 아까워서 음악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며 솔직한 사연을 밝혔다. 나다와 미나명에게 출연하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에 있는지 묻자 두 사람은 SBS ‘런닝맨’을 꼽으며 “둘 다 활동적인 편이라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미나명은 “나 자신이다.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단 나 자신에 집중하고 싶다”고 전했다. 끝으로 두 사람의 목표를 묻자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콜라보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정정아 유산 고백 “처음 느껴본 아픔..10주간의 행복 그리워”

    정정아 유산 고백 “처음 느껴본 아픔..10주간의 행복 그리워”

    배우 정정아가 유산 심경을 고백했다. 정정아는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동치미’를 보시고 많은분들이 기도해주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감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정아는 “제 삶이 참 순탄치는 않았지만 처음 느껴보는 아픔과 좌절, 모든 게 제 탓이란 자책에 힘들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참 다사다난하다. 신랑은 허리 시술하고 이틀 후 결혼하고 일주일 후 또 힘들다가 좋아질 만하니 이젠 제가 유산이란 아픔을 안았다”며 유산의 슬픔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정정아는 “서로가 너무 부족해서 많이도 울었다. 그렇지만 단단해져 가고 있다. 10주간의 행복이 그립지만, 잘 이겨내고 있다”며 “여러 핑계를 대며 못 만나서 죄송했다. 임신과 유산에 몸조리와 시간이 필요했다. 이해해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정정아는 “이제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현재 많이 추스르고 정상 생활을 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여행도 가려고 계획 중이다. 다 털어버리고 다음엔 좋은 소식, 힘든 소식도 함께 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정정아는 지난 16일 방송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임신 10주 만에 유산했다고 전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멀어진 소리/황수정 논설위원

    나무 책상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글자를 적자면 따각따각 연필심 부딪는 소리가 좋다. 우르르 말발굽 소리를 날리고 마는 컴퓨터 자판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나무와 종이와 연필의 합주는 밤 깊어 주옥같아진다. 이십년 전쯤 살았던 길갓집이 자주 그립다. 산책로 초입이어서 발소리에 새벽잠을 깨고는 했다. 담벼락 아래 쉬어 가던 노부부가 있었다. 달팽이처럼 걷는 할아버지는 더 느린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두런두런 담을 넘던 말소리를 전부 불러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쉬지 않고 귀를 열어도 마음에 붙들리는 소리 한 가닥이 없다. 한밤중 무뚝뚝한 연필심 소리에나 고작 나는 내 마음을 듣다 만다. 오래전 노부부의 발소리를 떠올려야 진심을 다하는 마음을 겨우겨우 짐작만 한다. 잠귀를 열어 주던 청청한 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전속력으로 부서지는 소음 말고, 깊이 머물고 오래 감돌아 맺힌 데 없이 순한 말과 소리들. 무당벌레 두 마리가 형광등을 밤새 뱅뱅거릴 눈치다. 길 잃은 녀석들이 반갑다. 왱왱대는 저 소리, 깜깜한 봄밤을 감돌아 오늘은 귀 맑혀 주는 소리.
  •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중국에 발령 나면 배우자가 두 번 운다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중국에 발령 나면 배우자가 두 번 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만날 때, 헤어질 때. 떠날 때, 돌아올 때. 신록이 싱그러운 6월은 귀환의 계절. 방학 혹은 졸업으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다. 객지 생활 내내 그리워했던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은 어떤 길일까.중국 유학생 베로니카. 캐나다에 있는 동안 중국을 그리워하다가 몇 년 전 중국을 찾았을 때 충격을 받는다. 현금 결제 문화. 캐나다에 있을 때는 카드 결제. 현금 없이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됐는데 그 습관 때문에 낭패를 본다. 최근 방문 시 다시 한번 충격을 받는다. 그사이에 현금 대신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바뀐다. 현지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캐나다가 그립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유학 온 지 5년 만에 한국에 돌아가는 기회. 이국 생활에 지칠 때마다 한국만 가면 모든 것이 다 좋기만 할 것이라 상상한다. 그런데 막상 가서 지내는 동안 이방인 된 듯한 느낌이랄까,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더니 다시 미국에 돌아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 든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느낌에 스스로 놀라고 의아했었다. 우리나라 한 대기업의 해외 파견자들 사이에 회자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중국으로 발령 나면 배우자가 두 번 운다’고. 설명은 이렇다. 중국으로 발령을 받고 집에 돌아가 소식을 전하면 배우자가 ‘왜 하필이면 중국이냐’며 가기 싫다고 울고, 가서 몇 년 살다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면 오히려 그때는 ‘돌아가기 싫다’며 운다는 것이다. 떠나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모두 만만치 않은 글로벌 여정의 복잡함, 그리고 오묘함.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객지의 삶은 힘들다. 물 바뀐 물고기, 옮겨 심은 나무, 외국 생활하는 사람. 다 비슷하다. 처음에는 시들시들하다가 조금씩 나아진다.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원동력이 적응력이지만, 우리의 적응력은 무한하지 않다. 오히려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문화 환경에 들어가면 제한된 적응력 때문에 고생을 한다. 극복을 못 하는 사람들은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익숙한 환경인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스트레스? 얼핏 이해가 어렵지만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일컬어 ‘역문화 충격’(reverse culture shock). 흥미로운 것은 역문화 충격이 문화 충격보다 더 힘들다는 점. 왜 그럴까? 예상치 못했던 충격이라 그렇다. 외국에 갈 때는 힘든 걸 예상하지만 고국에 돌아올 때는 자신도 고국도 그사이 바뀐 것을 모르고 익숙환 환경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편안함을 예상했다가 어려움을 당하니 당황하게 된다. 회사가 귀환자들의 역문화 충격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가중시키기도 한다. 한 대형 은행에서 글로벌 선진 금융 기법을 배워 오라고 해 뉴욕으로 파견을 나간 K. 일년 동안 열심히 배운 뒤 한국에 돌아오니 그사이에 잊혀진 존재가 돼 있다. 국제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지방의 한 부서로 발령을 받고 크게 실망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귀환 발령을 받으면 아예 현지에서 사표를 내고 그곳에 눌러앉는 사례도 많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시대에 개인을 넘어서 회사, 크게는 국가적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돈의 관점에서만 볼 일은 아니다. 리암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캐나다로 돌아온다. 수도 시설이 없어 우물 하나 파는 데 드는 비용이 400만원. 가난한 주민들은 꿈도 못 꾼다. 리암은 강물을 끌어다가 식수 및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와중에 말라리아에도 걸린다. 그리고 캐나다로 돌아오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물을 펑펑 허비하는 사람들. 충격을 받는다. 자신에 대한 충격. 리암은 바뀐다. 물통에 물을 받아 샤워를 한다. 시인 프루스트는 말한다. 진정한 여정의 목적은 새로운 경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글로벌 여정의 궁극적 목적도 내 나라 및 나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얻는 일이다. 역문화 충격이란 그 눈이 내 안에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겪는 탄생의 고통이다.
  • 그룹 NRG 故 김환성 오늘(15일) 18주기, 뜨거운 애도 물결

    그룹 NRG 故 김환성 오늘(15일) 18주기, 뜨거운 애도 물결

    그룹 NRG 멤버 故 김환성이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5일 故 김환성이 이날 사망 18주기를 맞았다. 故 김환성은 지난 2000년 6월 15일 바이러스성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20세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비보에 많은 팬과 NRG 멤버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향한 애도는 뜨겁다. 앞서 14일 NRG 멤버 노유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故 김환성 추모 글을 올렸다. 노유민은 “매년 6월 15일이 되면 중국, 일본에서 찾아와주시는 모든 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라며 “김환성 군을 하늘로 보낸 지 18주기가 됐다. 우리를 보며 항상 응원하고 기뻐하고 있을 거다. 천재일우 여러분 미안하고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팬들 역시 “환성이 형, 보고 싶네요”, “그립습니다”, “우리 곁에 와줘서 고마워요.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환성 오빠 영원히 사랑해요”, “보고 싶은 환성오빠.. 항상 그리워하고 있어요. 그곳에선 행복하길 바랄게요”라며 故 김환성을 그리워했다. 사진=MBC에브리원 연예팀 seoulen@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비핵화 서약한 북·미…힘 받는 文대통령 ‘한반도 운전자론’

    [6·12 북미 정상회담]비핵화 서약한 북·미…힘 받는 文대통령 ‘한반도 운전자론’

    공동합의문 ‘판문점 선언’ 재확인 평화체제 구축 협상 좌초 않도록 ‘중재자’ 역할 더욱 견고해질 듯북·미가 12일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에서 각각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 약속을 맞교환하고 새로운 관계 수립을 선언한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탄력을 받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북·미 간 무력시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폭탄’까지 맞물려 일촉즉발로 치달았던 상황에서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견인해 온 ‘운전자’다. 또 북·미 회담이 전격 취소된 뒤 한·미 정상회담(5월 22일)과 2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불씨를 되살린 ‘중재자’다. 북·미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중·일·러 등과의 관계에서 문 대통령의 ‘그립’이 견고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의 위상은 에어포스원으로 귀국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회담 성과를 공유하는 한편 북·미 합의의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을 위한 긴밀한 협의 및 공조를 다짐한 데서 확인된다. 회담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두 정상이 통화한 것도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진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훌륭한 대화 상대였고, 돈독한 유대 관계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또한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기하기로 약속한 것은 김 위원장이 뭔가 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도 회담의 성공적 결실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 북·미가 미군 유해발굴 사업에 합의한 것과 관련, “남·북·미가 함께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을 북한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이 역사적인 공동합의문에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서약한다’고 명문화한 대목도 ‘운전자론’의 위상 강화와 맞닿아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후속 회담을 예고한 만큼 향후 ‘대화 테이블’이 엎어지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문 대통령의 역할에도 비중이 실릴 전망이다. 미국은 북한 체제 안전을 약속했지만,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란 비핵화 대화의 ‘최종 출구’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문 대통령이 회담 뒤 발표한 메시지에서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도 숱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이 담대한 여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것이며 전쟁과 갈등의 어두운 시간을 뒤로하고, 평화와 협력의 새 역사를 써 갈 것”이라며 “그 길에 북한과 동행할 것”이라고 했다. 향후 남·북·미 3자 종전선언에 이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논의가 북·미 수교 협상과 함께 본격화돼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가진 신뢰는 협상이 좌초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평형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최종 협상에서 큰 역할을 했고, 아주 훌륭한 신사이자 저의 친구”라며 신뢰를 강조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과 함께 북·미 정상의 첫 악수를 TV 생중계로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18분 동안 중계를 본 뒤에야 비로소 회의를 시작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트렉스타, 여름철 산행을 위한 쿨한 트레킹화 ‘엔터’ 출시

    트렉스타, 여름철 산행을 위한 쿨한 트레킹화 ‘엔터’ 출시

    글로벌 아웃도어 회사인 트렉스타는 여름철용 트레킹화 ‘엔터’를 출시했다고 5일 밝혔다. 엔터는 매쉬 소재로 가벼우면서도 쾌적한 여름철 등산용 트레킹화다. 트렉스타 자체 신발창 브랜드인‘ 하이퍼그립’ 아웃솔을 사용해 접지력과 안정성을 높였다. 하이퍼그립은 전세계 20여개국 30여개 브랜드가 사용하며 세계 2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또 트렉스타의 핵심 기술인 발목 보호 시스템을 적용해 안정적이고 편안한 산행이 될 수 있도록 했다.여름에 맞춰 나온 트레킹화인 만큼 내구성이 뛰어난 신세탁 소재와 통풍이 우수한 메쉬 소재를 갑피로 사용해 안정되면서도 시원한 착용감을 제공한다. 발등이 비틀어지지 않는 안정감과 쿠션감, 지지력, 접지력을 강화해 트레킹 등 다양한 야외 활동에 적합하다. 남성용은 네이비와 브라운 두 색상이며, 여성용은 버건디 한 색상이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굳이어타이어, 최상의 승차감과 정숙성 갖춘 신모델 한국 판매 개시

    굳이어타이어, 최상의 승차감과 정숙성 갖춘 신모델 한국 판매 개시

    굳이어타이어의 한국법인 굳이어코리아 주식회사가 이전 모델보다 모든 면에서 개선된 이피션트그립 컴포트(EfficientGrip Comfort)를 오는 6월 1일부터 한국시장에도 판매를 시작한다. 출시를 앞두고 국내에서 전문 드라이버의 로드 테스트를 한 결과, 정숙하면서도 뛰어난 핸들링성능과 함께 우수한 그립력을 체감했다고 밝혔다. 특히 노면의 요철에 반응하여 충격을 흡수하고 소음이 뚜렷하게 적은 것으로 확인되어 일상주행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드라이빙 타이어로 성능을 발휘하였다. 국내 도로여건에서 노면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굳이어의 이피션트그립 컴포트는 지금까지의 컴포트 타이어와 차별화된 우아한 승차감을 제공할 것이라고 굳이어코리아 관계자는 전했다. 샤프한 핸들링을 추구하면서 승차감과 정숙성까지 요구하는 국내의 고성능차 UHP타이어 시장에서도 이피션트그립 컴포트는 까다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피션트그립 컴포트는 지난 4월 일본에서 51개 사이즈 라인업을 먼저 출시하였고 오는 6월부터 한국에는 그중 30개 사이즈만 우선 수입되어 판매된다고 굳이어코리아는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박미경의 사진 산문] 풍경의 품에 건 사진

    [박미경의 사진 산문] 풍경의 품에 건 사진

    “사진이 바뀌었어요.”청운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교문에서 달려 나온 남자아이가 말을 건다. 건너편 갤러리 외벽에 걸린 사진을 말하는 거다.류가헌이 통의동 한옥 골목에서 청운동 청운초등학교 앞으로 이전한 지 일 년이 넘었다. 바로 교문 앞 갤러리를 바빠서 못 왔다는 건 서운하지만, 이 어린이에게 사진 전시장으로서의 정체는 알린 모양이다. 사진 한 장의 힘으로 일상의 속도와 거리의 정서를 흔들어 보겠노라 건물 외벽에 설치한 것이 이름하여 ‘풍경의 품에 건 사진’이다. 전체 6층 건물 외벽에서 가로 5미터의 커다란 사진이 일정 기간마다 바뀐다. 새삼 학교로 들어가 보니 사진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풍경의 품에 걸려 있다. 운동장에서도 보이고, 철봉에 매달려서도 보이고, 교문을 나설 때도 제일 먼저 보인다. 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바라보며 자란 ‘큰 바위 얼굴’처럼 아이들의 유년에 상(象)으로 맺힐 걸 생각하자 외벽의 사진을 다시금 올려다보게 된다. 사진의 내력은 이와 같다. 비스듬히 중절모를 쓴 초로의 농부와 멀찍이 소 한 마리. 1982년 10월 경북 안동에서 권태균 작가가 찍었고, 제목은 ‘소 주인’이다. 저 멀리에 하늘과 산의 능선, 강변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안개가 자욱하다. 강변의 나무 한 그루는 안개 속에서도 형상을 잃지 않고 또렷이 서 있고, 점층적으로 가까워지며 소도, 볏단도, 그리고 사내도 서 있다. 1980년대를 저리 주름진 초로의 얼굴로 서 있으니, 사내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을 것이고, 6·25전쟁을 지나왔을 것이고, 자신이 경작한 논의 고랑 수보다 더 숱한 삶의 고랑들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다다른 1982년 봄여름 내내 등 뒤의 순한 짐승과 말없이 일을 하고 이제 볏가리 쌓아 올린 가을의 시간을 맞았다. 점퍼에 중절모를 쓴 말쑥한 차림은 그가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음을 드러낸다. 냇가에 내려선 소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표상과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한 구도 속에 지나온 시절 잃어버린 서정이 가득하다. 이 흑백사진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이유다. 사진의 장소가 경상도니 의령이 고향인 권태균 선생은 자신의 사진 속 인물과 같은 질감의 사투리를 썼다. 즐겨 쓰던 중절모가 역시나 잘 어울렸다.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에 관한 작업을 줄곧 해온 선생은 ‘노마드-변화하는 1980년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작은 기록’ 전시와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 등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한국인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의 정서를 사진적으로 구현했다’는 평을 들었으나, 2015년 1월 갑작스런 타계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올해는 3주기가 되는 해로, 그를 기리기 위해 대표작인 ‘노마드’ 시리즈 중 한 점인 ‘소 주인’을 갤러리 외벽에 내걸었다. 당시에는 찍는 이를 바라봤을 사진 속 인물의 시선이 이제는 사진을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를 향해 있다. 교문을 튀어나온 아이와도 눈을 맞추고 거리를 지나는 행인도 내려다본다. 세월이 지우고 우리가 잊은 것들을 사진은 기어코 기억해 언제고 그 버내큘러(vernacularㆍ토속)의 언어로 제 기억을 들려준다. 사진을 찍는 순간 사진가도 그 사진 속에 찍힌다. 이 사진은 1982년에 경북 안동에서 사진가 권태균이 찍었으나, 동시에 권태균도 찍혔다. 그래서 어느 때고 이 ‘소 주인’ 사진을 볼 때마다 울컥 그가 그립다.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시즌2’ 장민 “아버지가 한국인, 충격이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시즌2’ 장민 “아버지가 한국인, 충격이었다”

    스페인 출신 장민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털어놨다.24일 방송된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시즌2’에서는 어머니의 영상 편지를 보고 눈물을 참지 못하는 장민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장민은 “아버지는 2009년 돌아가셨다. 어릴 때엔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게 좀 충격이었다. 친구들 아버지는 다 스페인 인이었다. 그래서 어떤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라며 남들과는 다르게 조금 엄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어 장민은 “하지만 아버지를 잃고 많은 후회를 했다. 아버지의 언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몰랐다. 나한테는 모든 게 도전 같았다”라며 “그 도전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아버지에 이해하기 위해 왔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아버지의 인간적인 부분들을 더 볼 수 있게 됐고 아버지의 약한 부분을 볼 수 있게 해줬다”라며 “그리고 아버지를 더욱 그립게 하고 아버지를 더 닮고 싶게 만들어 준다. 결국엔 아버지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그리움을 드러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눈먼 봄/황수정 논설위원

    ‘딸기 체험’ 간판이 걸린 비닐하우스 길목이 북적댄다. 저런 시시한 일이 있는가 싶다. 돈으로 사는 체험이 별 게 아니다. 수경재배로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려 익은 딸기를 겨우 따 보는 거다. 오뉴월 땡볕에 정수리를 지져 본 적 없는 딸기는 딸기가 아니다. 농담보다 싱거운 맛이다. 뒤란의 딸기, 담벼락의 앵두로 어릴 적 이즈막은 날마다 애틋했다. 봄볕 아래 애태우는 일이 세상의 일이었다. 햇볕에 잘 구슬리면 내일은 익고야 말겠지, 밥숟갈 놓으면 뒤란으로 담벼락으로. 숨은 열매들을 볕바라기로 꺼내 놓고 또 꺼내 놓고. 구름이 길게 덮치면 발을 동동 굴렀던 것도 같다. 그때 궁금했던 태양의 이력이 아직도 궁금하다. 햇볕이 하는 일은 만분의 일도 짐작 못 하지만, 푸른 딸기가 붉어 가던 감격은 자다가도 그립다. 해 지는 정류장에 학원 버스가 아이들을 풀어놓는다. 심심한 얼굴들에 봄날 저녁이 무너진다. 등 뒤의 노을보다 제 이마가 더 붉은 줄 아무도 모르고 있다. 고드름을 먹어 본 적 없는 적도처럼, 미풍에 졸아 본 적 없는 히말라야처럼. 어쩌면 좋은가, 저 눈먼 봄. sjh@seoul.co.kr
  • “추사랑 품은” 야노 시호, 만삭 누드 화보 공개

    “추사랑 품은” 야노 시호, 만삭 누드 화보 공개

    일본 모델이자 격투기 추성훈 선수의 아내 야노 시호가 만삭 화보를 공개했다.야노 시호는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임신 때 찍은 누드 사진. 그립네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한 장 게재했다. 사진에는 만삭의 야노 시호가 옷을 다 벗고 식물로 신체 일부를 가린 채 당당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추사랑 임신 당시 촬영한 것. 이어 “시간이 정말 빠르게 간다”며 신생아인 추사랑을 품에 안고 있는 화보도 공개했다. 추성훈과 야노 시호는 2009년 결혼해 2011년 딸 사랑을 얻은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슬퍼지기 일보 직전’ 등 나의 공직 생활 에세이 공모 우수작 6편 선정

    서울신문이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실시한 ‘나의 공직 생활’ 에세이 공모 결과 수많은 작품 가운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6편이 우수 작품으로 선정됐습니다. 1등에는 노진숙(부산 부진진구 개금3동 주민센터)씨의 ‘슬퍼지기 일보 직전’이 선정됐습니다. 부상으로 상금 100만원이 지급됩니다. 2등에는 김혜림(경북 영주시 보건소 방문관리팀)씨의 ‘보건소 관리팀 에세이’와 김영(경기 양평군 보건행정과)씨의 ‘산음골에는 시인들이 산다’가 뽑혔습니다. 부상으로 두 분에게 각각 50만원의 상금을 드립니다. 3등에는 김귀옥(부산시 좋은기업유치과)씨의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와 손병순(부산 서구보건소)씨의 ‘사람이 그립다’, 박태향(울산 학성고, 명예 퇴임)씨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선정됐습니다. 이들 세 분에게는 각각 30만원이 부상으로 지급됩니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았지만 작품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선정 작품들은 서울신문 정책뉴스 홈페이지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 [길섶에서] 가는 5월/박건승 논설위원

    5월의 밤은 소동파에게 ‘훈풍이 산들산들 불어와 달빛마저 몽롱해지는 밤, 꽃향기에 마음이 들떠 그냥 잠을 청하기가 차마 아까운 밤’이었다. 그런데 올 이 시절 초 우리 날씨는 왜 그리 변덕이 죽 끓듯 했던가. 맑은 하늘에선 뜬금없이 우박이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만만불측(萬萬不測)했다. ‘꾼’들의 ‘입’ 또한 고약했다. 남북 정상회담 앞뒤로는 “세상이 미쳐 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창원 빨갱이’란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허구가 나돌았다. 세상이 미쳐 가고 있다고? 5월의 말본새치고는 참으로 막되고 괴이하고 섬뜩하다. 피천득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라고 했다. 노천명은 ‘머루순이 벋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활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라고 했다. 그 맑고 순결한 5월이 정점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어찌하랴. 더러운 입들이 자꾸 분탕질하는 이 5월을. 눈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하다. 속절없는 세월이다. ‘계절의 여왕’은 예를 갖추지 못한 그 누구도 탓함이 없이 지나가고 있으니.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사람이 그립다

    살아오면서 이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 온 적은 없었다. 공무원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25년째다 그동안 즐거웠던 일, 어려웠던 일, 뿌듯했던 일,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몇가지 일도 있었다. 예전에 사회복지과에 있을때 사회공동모금회업무를 본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빨간열매를 생각하면 쉽다. 겨울이 다가오면 구청마다 각 동에 성금모금을 한다. 십시일반으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지금은 맞춤형 복지라고 그런대로 분야 분야마다 선정을 해서 주택이면 주택, 의료면 의료 , 생활이면 생활 등으로 나눠서 어려운 분들을 선정해서 도와준다. 그런데 그때는 한 가지 기준으로 선정을 하다보니 정말 딱한분들이 많았다. 동에서 어려운분들을 선정해서 올라오면 그것을 모아서 공동모금회에 보낸다. 담당자 의견도 붙이고 서류도 붙여서 보내면 공동모금회에서 심사해서 등급별로 도와줬다. 그러나 그런 도움이 어떤 분에게는 전혀 혜택이 되지 않은 사각지대에 계신분들도 있었다. 자기동생이라면서 다른구에 사는데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도와주는데 의료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좀 도와줄수 없느냐 고 담당자가 한 번 더 공동모금회에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딱해서 그럼 우리가 행정을 하는데 법을 벗어날수도 없지만 그러나 또 정말 어려운 분들이 있다면 도움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내가 공동모금회 담당자에게 한번 도와달라고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분은 너무 고맙다면서 설령 안되더라도 괜찮다고 오히려 나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그분을 위해서 담당자가 본 그분의 입장과 처지 그리고 형제들이 힘을 합해 동생을 도우려는 우애(友愛)를 나름 담담하게 글을 써서 담당자의 의견으로 글을 하나 썼다. 그 서류를 보고 공동모금회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서류만 보고 가부(可否)를 정할 수 없다. 윗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여기에 적힌 담당자의 의견도 같이 첨부해서 도와 줄 수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고마운 말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고맙다고 되는 방향으로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 분야에서 규정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결과가 내려왔는데 그분이 선정이 되어서 의료비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게 아닌가? 나도 너무 기뻐서 담당자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그 형제분에게도 정말 축하한다고 진심의 말을 전했다. 그분은 나중에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이나 했고 내가 다른과에 갔는데도 그분이 와서 인사를 했다.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일을 함에 있어 작은일이라도 한 번 더 챙겨보는, 민원인들이나 주민들 입장에서 무엇이든 잘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색다른 이야기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공무원생활을 그 정도 했으면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회생활은 초년병이다. 이제 갓 개인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아니면 장사를 시작했으면 수습사원이다. 일찍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을 한것이 아니라 수습사원 보조다. 왜냐하면 돈은 내가 융통을 하였으니 총괄책임 사원이나 마찬가지다. 남편과 나의 수습사원 이야기이다. 남편은 회사를 조기퇴직하고 조그만 가게를 차렸다. 쉽게 말해서 통닭가게, 피자가게, 분식가게 사장이지만 남편은 소주와 맥주 그리고 간단한 안주를 파는 술집사장이다. 말이 사장이지 주방을 겸해서 일인다역이다. 가게는 다행히 우리집이었다. 그것만 믿고 하다가 지금은 계속 고전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글도 월급쟁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부족한 글이라도 한번 써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이고 그래도 연금이 있어서 나중에 아껴서 놀자주의이지만 남자들은 또 그렇지 않다. 60세에 정년퇴직을 하지만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더 할 수 있으면 간부직에 있었던 분들은 나름대로 욕심이 있을것이고 하위직에 있더라도 경비원으로 용돈이라도 벌고, 연금이 있지만 또 돈은 벌수록 좋지 않는가? 능력껏, 그냥 놀고 있다는것이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월급쟁이들도 실제로 많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내가 알기로 지금도 공인중개사나 주택관리사 등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신분들도 많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가게를 하고 계신 실장도 있다. 잘하시는지는 모르겠다. 전에 한번 오셨길래 “잘 되십니까 ?” 하고 물으니 “ 가게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다”면서 웃기만 하셨다. 그래도 기본은 하실것이다. 그분은 직장에 계실때도 아주 일을 잘하셨다. 그만큼만 하신다면 노후는 든든하게 챙길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을 모셨고 그때 그분이 공인중개사 공부를 할 때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흐뭇했다. 지금 술집가게를 9월에 시작했으니 4월에 접어들고 12월이다. 찬바람이 쌩쌩부는 엄동설한 , 장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우리과에 직원들이 모두 와서 기뻐해줬다. 나름 술도 많이 팔아주고 내가 그동안 알았던 직원들, 아이들 아빠도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았던 분들이 와서 술을 좀 팔아주었다. 축하한다면서 처음은 정말 잘되었다. 고맙다면서 이정도만 되면 내가 본업을 때려치워도 안되겠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 시간이 2주가 채 가질 않았다. 그렇게 인사차 오신분들도 그 다음부터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장사를 시작할 때 절대로 아는 사람을 상대로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새사람을 잡아야된다고 새로운 단골을 만들어야 된다고 그럴려면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3년, 5년 그렇게 지나야 단골이 생기고 그 단골에서 씨앗이 나서 꽃이 피고 열매맺고 그래야 그 장사가 번창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먼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나의 일로 다가오니 정말 힘이 들었다. 나는 낮에 직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걱정이 되어서 가게에 들리면 사실은 1인 3역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대충한다고 해도 직장일도 만만찮고 집안일도 힘들고 그래서 가게일은 그냥 가서 옆에만 있는다. 저녁 9시까지만 옆에 있는데도 힘이 들었다. 그것도 나한테는 벅찼다. 사실은 5월쯤 몸이 하도 피곤해서 종합병원에 진단을 하니 “갑상선항진증”이라고 내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42kg 꿈의 몸무게인데 그게 두려웠다.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3주 동안 쉬었다. 그동안 마당쇠같이 일만하다보니 쉬는것도 부담스러웠다.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더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3주라도 쉬었으니 다행이다. 옆에 직원이 내일을 대신 한다고 고생을 많이 해서 맛있는것 사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못 사줬다. 덕분에 잘 쉬었는데 하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직장일은 아주 중요하다 어쩌면 집안일보다 더 중요하다는게 기본생각이다. 일을 하면 끝장을 보는것도 내 성격인데 하나하나 챙기자니 내게는 너무 벅찼다. 그런데다가 장사까지 시작해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저절로 신경이 쓰이는게 사람이 아닌가! 내 몸이 자꾸 처지고 힘이 들어서 몇일을 쉬면서 병원에 갔다. 그런데 의사선생이 몸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이런식으로 가면 월급쟁이생활 끝까지 못한다면서 선택을 하라고 하는게 아닌가? 아이들도 아직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이면 학비도 많이 들어갈텐데 정년까지는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자꾸 쉬기를 채근 하는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채근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나 자신과 미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일을 끝까지 하고 노후도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쉴려면 지금이 적기다. 몸을 챙기는데 이 순간이 지나면 몸은 회복 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며칠동안 그 말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는 행정 6급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 사무장이 되어서 동에 내려가서 중간관리자로서 이일저일, 하긴 요즘 동에 사무장도 일이 만만찮다고 이야기는 해도 잡일은 안하니까 조금은 낫지만 나는 아직도 막일을 2년 넘게 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동에 내려가서 조금 그런일에서 벗어나고 싶은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좀 더 버티고 싶었는데 또 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몸을 만들어야 한다. 아픈 몸을 가지고 동에 내려가면 동단체원들 , 주민들, 직원들에게 민폐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리고 한번 아픈 몸은 때를 놓치면 다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들이 나를 휴직을 생각하게 했다. 과장과 잘 아는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니 조금만 더 참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면서 나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몸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서 어쨌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서 다시보자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미안하다면서 그 말도 했다. 내가 없음으로 누군가는 더 힘들어할것이다. 물론 충원은 되겠지만 또 시간은 그만큼 걸릴것이다. 이 색다른 경험은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일단 직장을 쉬니까 낮에는 쉬고 밤에는 잠깐이라도 가게에 나가서 옆에라도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저씨 입장은 더 낳겠지 있어주니까 월급은 좀 적어도 덕분에 가게가 잘되면 더 좋지 않겠는가? 나름 나도 거창한 ? 생각을 가지고 저녁에는 가게 할 때 옆에 있어주었다. 가게가 변두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게 큰 흠이었다. 그것을 우리가게라는 메리트라로 대체를 했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처음에 이 가게를 할 때 술집은 부업이고 본업은 기타였다. 남편은 기타를 참 좋아한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게 다르지 않는가? 옆에서 보면 기타를 치면 밥먹는것도 잊어버리고 칠때도 있다. 동아리모임이 여러개 있어 그 사람들과 만날때는 화색이 돈다. 그것을 볼때 작은 사무실이라도 하나 마련해줘야 되겠다고 늘 생각을 했었다. 나이 들어서 자기가 좋아하는것 하는게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roman)이 아닌가? 남편은 좋아하는 기타를 치고 나는 글쓰는것을 좋아하니 잘된셈이다 그 꿈을 이루기위해서 밤잠을 설치면서 설레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사이에 괴리가 얼마나 큰 지 가게를 열어 한달 가까이 오면서 절실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나를 알아서 뒤늦게 소식을 듣고 와주신분들도 있었다. 고마웠다. 사람이 그립다는게 이처럼 뼛속같이 다가 온 적은 없었다. 단골이 생기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가게를 꾸리는것이 정말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다. 요즘은 사람도 별로 오지 않는다. 손님이 한명도 오지 않을때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럴때는 정말 힘이 쭉 빠진다. 남편은 좋아하는 기타도 치기 싫고 가게도 하기 싫다고 말하곤 했다. 한번은 손님이 없어서 그럼 내가 마수걸이를 할까 하면서 오뎅탕을 시켰다. 제일 잘하는 음식이고 싸다. 만원을 내고 오늘 마수다 나에게 맛있는 오뎅탕을 해줘요. 오뎅탕을 했는데 맛이 일품이다 이 맛있는 오뎅탕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정말 손해라고 먹으면서 나중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먼훗날 이것도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문득 고등학교책에 나오는 김소운의 글『가난한 날의 행복』이 생각났다. “왕후(王候)의 밥, 걸인(乞人)의 찬···.” 쌀이 떨어져서 아침을 굶고 출근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마련한 점심 밥상에 놓인 글. 간신히 쌀은 구했지만 반찬까지는 마련하지 못해 따뜻한 밥에 간장 한 종지만 곁들인 밥상을 과장하여 표현했다. 자칫 슬프거나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배우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재치 있는 웃음으로 이겨나가는 부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우리는 그만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번듯한 가게이고 지금은 단지 처음이라 손님이 없을뿐이다. 내일이라도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장사를 해보니까 사람이 그립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내가 가게를 직접은 아니지만 이렇게 근거리에서 해보니 가게에 와서 싼 것 하나라도 팔아 주는것도 참 고마웠다. 내가 아는 직원들도 많지만 그 직원들이 물론 다 오지도 않았다. 10분의 1도 오지 않았다. 그 많은 기간 동안에 웃고 웃어도 정작 내가 가게를 하니 와주는 사람은 너무 적었다. 나도 나름대로 직원들에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겠지 바쁘거나 아니면 더 중요한 일도 있겠지만 내가 밥을 안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물론 술을 안 먹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은 핑계일뿐이다. 『생각이 없으면 행동이 없고, 생각이 있다해도 그만큼 행동이 어렵다』. 사실은 남 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입장이 나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경조사나 아니면 개업을 했다고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도 않고 그랬으니까 누굴 탓할 필요는 없다. 그분들이 참 섭섭했겠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이제는 좀 더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새롭게 가게를 하는 사람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려운 살림에 이리저리 돈을 융통을 했을것이고 장사를 해서 아이들 공부라도 제대로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들 할것이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새로 생긴 가게가 주변에 있으면 먹을 일이 있으면 일부로 한 번 더 가본다. 처음이라 얼마나 긴장 되겠는가 또 얼마나 잘할려고 하겠는가? 새로 생긴 분식가게에 가서 아니면 체인점이라도 “잘 먹었다고”, “열심히 하시라고 ” 속담에 말한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 한디에 얼마나 힘을 받을까 내가 그래도 이렇게나마 해보니 뒤늦게 철이 든다고 할까 나는 어떻게 보면 우리 직원들 보다 좀 일찍 시작한것이다. 사업선배다. 이 분야의 선배다. 내가 잘되어야 우리후배들이 잘 따라온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가 잘 아는 선배계장이 얼마 전에 가게에 놀러왔다. 놀러와줘서 고맙다면서.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내가 잘되어야 후배님이 잘 따라오지요..맞지 않습니까 후배님” 하고 웃으니 맞다면서 “우리 선배님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 따라가지요”...하고 크게 박장대소를 하였다. 혹시나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선배공무원이나 월급쟁이들이 있다면 또 이런 가게를 생각한다면 이 글이 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후배님들도 좀 봤으면 좋겠다. 서로가 도와주는것 그것이 같이 사는길이라고 “도와주는것이 무엇이냐 한번 찾아주는것, 자주 찾아주면 더좋고 ”...꼭 그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도 장사가 돈을 제일 잘 번다. 자영업자가 월급쟁이의 무덤, 사업하지 말라는 열사람 중에 대부분의 사람이 실패한다는 인터넷뉴스가 도배를 하지만 그래도 돈은 장사를 해서 버는것이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매일 매상을 걱정하지만 오늘도 희망을 건다. 새로 장사를 할려고 생각하는 월급쟁이와 모든 정년퇴직 준비중인 공무원들에게 내일은 더 많은 손님들이 올 것이다. 파이팅^^
  • ‘보건소 관리팀 에세이’

    매일 아이를 서둘러 등교시키고 이른 아침공기를 선물삼아 보건소로 향한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동안, 허전했던 방문관리실은 하나 둘 팀원들의 인사로 채워지고 어느새 방문약속 전화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어머님, 저 순영이가 아니고 보건소 간호사에요!” 큰소리로 말해도 수화기너머에선 일방통행이다. “뭐라고? 순영이가 아니면 그럼 순자라고?” “아뇨, 어르신, 간호사요, 방문간호사!”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갑자기 전화를 뚝 끊으신다. “저, 어머님... 어머님?” 귀가 어두우신 어른들과 매일 오가는 일상이지만, 사무실은 다시 웃음바다다. 오늘은 밥솥을 고치는 날이라 오지 말라는 분, 이른 아침이나 저녁 늦게 방문해달라는 분, 개인전화번호를 달라고 떼쓰시는 분 등등 다소 당황스러운 일들이 있지만 방문관리실의 아침은 늘 씩씩하게 시작한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댁에 들른 적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팔순 노부부는 부부싸움을 크게 하시고 각각 다른 방에 몸져누우셨다. 평소 정상혈압인 할아버지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우셨고 응급상황에 가깝게 혈압이 올라가셨다. 할아버지를 욕하시던 할머니도 그제야 옆방에서 건너오셨고, 근처에 사는 아들에게 상황을 알려서 즉시 병원에 가도록 권유하였다. 팔순이 넘으면 부부싸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도 싸울 일은 시들지 않고, 새록새록 생기나 보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계신 분들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는 말이 있듯이 홀로 노년을 보내는 노인들의 일상은 더욱 힘겹다. 방문건강관리 대상자는 독거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성질환과 암, 그리고 장애를 가지신 분들도 많다. 무엇보다 노년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돌아서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경로당을 방문하여 고혈압, 당뇨 및 영양과 관절 관련 건강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낯익은 어르신들이 반갑다고 손을 흔들고 안아주시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단 10분도 교육에 집중하기 힘들어 곧장 졸음을 영접하시는 어르신들을 깨워 주시기도 하고, 분위기를 띄우는데도 일조하셔서 교육효과를 극대화 시켜 주신다. 이런 역할을 하는 어르신들은 방문간호사에겐 정말 중요한 ‘건강요원’인 동시에 연락이 두절된 분들의 근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건강정보원’이 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방문간호에서도 ‘라포 형성’이 가장 우선시 되는 것 같다. 어느덧 보건소 방문관리팀에서 1년 4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병원을 포기하고 보건소로 향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금연관리실을 희망했는데, 방문관리팀으로 오게 되어 운전과 가정방문이 부담스러웠지만,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신 어머님, 아버님들은 곧 미래의 나의 모습임을 알기에 만나는 한 분 한 분 모두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여름엔 덥다고 얼음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시고, 겨울엔 춥다고 미리 보일러를 틀고 기다리며 아랫목을 양보하시는 고마운 손길들. 너무나 감사하다. 많은 대상자를 만나다보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한발 늦게 듣게 된다. 반겨주시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데 가고 그래.” 라며 잡아주시던 그 손길이 따스했었다. 짜게 드시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과 식사, 투약을 해야 한다고 잔소리 하는 나에게 늘 복 있고 재수있으라며 안아주시던 어르신의 토닥임이 그립다. 방문간호사로 일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남은 시간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님, 전화국이 아니에요. 보건소, 보건소 간호사요!” 전화기 너머엔 오늘도 귀가 어두운 어르신의 추측이 난무한다. “전화국 아니고, 동사무소라고?” 어김없이 방문약속 전화가 시작되었고 방문관리팀은 소중한 만남을 준비한다.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기간 즐겁게 보람으로 일할 수 있기를... 어르신들이 노년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 1941년생 최고령 BJ 할아버지 “젊은 친구들 고맙습니다”

    1941년생 최고령 BJ 할아버지 “젊은 친구들 고맙습니다”

    “노인을 찾아주어 고맙다”는 할아버지 소소하지만 따뜻한 일상 방송에 입소문“할아버지! 아침은 드셨나요?” “잠은 잘 주무셨나요?” 하루의 안부와 일과를 묻는 소소한 대화들로 가득한 채팅방이 있다. 개인방송 진행자 중 최고령이라는 아프리카 TV 진영수(78)씨가 ‘오작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채널이다. 비속어나 알아듣기 힘든 줄임말, 은어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눈살이 찌푸려지는 말투를 쓰는 시청자에겐 다른 시청자가 “할아버지께 말투가 그게 뭐냐. 개념 좀 갖춰라”라며 혼을 낸다.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2006년부터 매일 낮이나 새벽 시간대에 방송을 켜는 할아버지는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인터넷을 배웠고, 개인방송을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꼼꼼히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을 읽고 답하고, 댓글로 소통도 한다.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고, 밥을 먹으러 갈 땐 카메라를 켜놓고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천천한 일상은 지켜본 시청자수는 지금까지 380만명에 달한다. 누적방송시간은 총 5만2598시간. 2014년에는 BJ 페스티벌 특별상까지 수상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17세부터 23세까지 농사일을 배우며 일했고 돈이 없어 해외에는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지만 현재 살고있는 천안의 거리를 걷는 것이 행복하다”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 어르신들의 삶에서 나한테 연결된 고리가 여러분들에게도 연결되어있다”라며 세월의 지혜가 느껴지는 말을 댓글로 남긴다. 나름의 규칙도 있다. 할아버지는 공지를 통해 “학생은 수업시간에는 방송을 시청할 수 없다. 학생을 애쓰시는 선생님 노고에 감사하며, 학생은 방송창을 닫고 좋은 성적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에게 보내는 인사말은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는 “의지와 상관없이 세월의 흐름 속에 머물러 있을 곳이 없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은 사람이 있는 곳이 그립다. 노인과 마주하기를 머뭇거리는 젊은이들이 많은 가운데 방송 자판 앞에 젊은 친구들이 있어 즐거웁고 다행한 일”이라면서 “노인을 찾아주시는 젊은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詩요일에 만난 이별과 아버지

    詩요일에 만난 이별과 아버지

    시인 55명 이별詩 모은 시선집 ‘아버지’ 주제 엮은 산문집 출간출판사 창비가 운영하는 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 ‘시요일’이 1주년을 맞아 시요일 운영진들이 시선집과 시 산문집을 선보였다. 지난해 4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이용자가 21만명을 넘어선 시요일은 최근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강다니엘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추천하는 글을 올리면서 이틀간 1만 5000여회 다운로드되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시요일 기획팀은 성원에 힘입어 그간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인 ‘사랑’과 ‘가족’을 테마로 한 시들을 엮었다.시선집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는 백석, 최승자, 기형도, 이제니, 박준, 자크 프레베르 등 시인 55인의 이별 시를 한데 모았다. 사랑의 시작이 아닌 사랑이 끝난 자리를 더듬어 보는 시들만 모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별 직후 마주하는 쓸쓸한 감정의 흐름을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벽 뒤에 살았습니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리운 차마 그리운’이라는 제목을 달아 4부로 구성했다. 기획위원으로 참여하는 박준 시인은 “우리들의 사랑이 모두 다른 모양이었던 것처럼 사랑의 끝자리도 모두 다르다”면서 “지나가거나 혹은 머물러도 좋을 사랑의 끝자리에 함께하면 좋을 시들”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목·안희연 시인이 엮고 쓴 시 산문집 ‘당신은 우는 것 같다’는 한번쯤 아버지를 미워했거나 아버지와 서먹한 관계를 경험한 이들에게 건네는 시와 산문이 실렸다. 특히 가정의 달인 5월, 곁에 있지만 늘 잊고 마는 부모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이다. 두 시인은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스물일곱과 만났다’는 제목 아래 각각 20편의 시를 엮고 각 시 뒤편에 시인의 아버지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산문을 덧붙였다. 박신규 시요일 기획위원장은 “사랑과 가족이라는 큰 주제 아래 이별과 아버지라는 뜻밖의 소재에 집중한 것은 보통의 시집과는 다른 다양한 시도”라면서 “이별 후 처음에 자포자기했다가 나중에 서서히 깨닫게 되는 감정들이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카니예 웨스트 “떼로 몰려와도 트럼프 사랑 막지 못할 걸”

    카니예 웨스트 “떼로 몰려와도 트럼프 사랑 막지 못할 걸”

    래퍼 카니예 웨스트(41)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뮤지션으로는 드물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사랑의 뜻을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웨스트는 최근 트위터 세상에 돌아오면서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혀 음악계에서의 따돌림을 자처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뒤인 2016년 12월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콘서트 도중 대선 투표를 다시 하더라도 트럼프 당선인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밝혀 관중들의 야유를 들었다. 그 뒤 뉴욕의 트럼프 타워를 찾아 트럼프 당선인과 손을 맞잡았다. 웨스트가 이번에 일련의 글들을 올리게 된 계기는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웨스트로부터 “트럼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것이 화제가 되면서다. 그는 2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여러분 모두 트럼프를 지지할 필요는 없지만 떼로 몰려와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 둘 다 용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는 내 형제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누군가 하는 모든 일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우리가 개인인 이유이며 우리는 각자 독립적인 생각을 할 권리가 있다”고 못박았다.한 시간쯤 뒤 그는 다시 트위터에 “아내(킴 카다시안)가 방금 전화해 모든 사람에게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해줬으면 한다고 조언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모든 것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 자신 말고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글을 다시 올렸다. 그는 2016년 새너제이에서 열린 콘서트 도중 지금 대선 투표를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관중의 야유를 받은 적이 있다. 몇주 뒤 그는 트럼프 타워를 방문,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그가 올린 일련의 게시물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댓글을 달아 “고마워 카니예, 아주 멋져요!”라고 하자 웨스트는 나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n Great Again)”가 적힌 붉은색 모자를 촬영한 사진을 올리고 “대통령 사인도 있다”고 자랑했다.이에 대해 한 흑인 여성은 “옛날의 카니예가 그립다. 컴퓨터에 접근하지도 못했던 카니예 말이다”라고 적었다. 코미디언 아킬라 휴즈는 “카니예는 흑인 따위 신경도 안 쓴다”고 지적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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