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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을 풀어주자”

    옛 국민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에 얽힌 추억을 한 가지도 갖지 않는 어른이어디 있을까. 방학내내 실컷 뛰놀다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느라 동네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오늘의 날씨’를 열심히 베끼던 일 (선생님들은 날씨로 엉터리일기를족집게처럼 가려내셨다),개학날 아침 친구가 곤충채집 숙제로 제출한 메뚜기가 핀에 꼽힌 채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일… 등등. 그 지겹던 여름방학 숙제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모두 애틋한 향수처럼 그립기만 한데, 2000년 여름,요즘 아이들의 방학풍경은 어떤가. 해야 할 숙제는 많이 줄었다.그러나 도심아이들에게 학교탈출의 해방감은 잠시뿐 피아노,태권도,미술교실 등 끝없이 이어지는 학원순례에 고달프긴 방학전이나 마찬가지다.최근엔 수학여행 버스참사 등 잇단 사고 때문에 부모들이 청소년 여름캠프도 꺼리는 분위기라 아이들은 이래저래 시무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은 어떤 처방을 내릴까.전교조 초등위원회 사무국 김도균 선생님(32·서울 도봉구 화계초등)은 “방학만이라도 제발 아이들을 내버려두라.자유롭게 풀어주라”고 학부모들에게 당부한다.학원에서 배우는 공부보다는 생활주변을 돌아보며 다양한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훨씬 가치로운 투자라는 말이다.기차여행도 함께 떠나고,친한 친구와 함께 목욕도 보내면서 여러사람들과 살을 부비고 공동체의식을키우는 시간으로 활용해 보라고 권한다. 지렁이 직접 만져보기,밤하늘 별똥별 보며 소원빌기 등 자연과 하나가 되는추억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반딧불이는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서울 북한산 산기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김도균 선생님은 귀띔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그렇다면 엄마,아빠가 함께 읽는 것이가장 좋은 비결이다.대형서점에 같이 가 하루종일 실컷 책구경도 하고 맘에드는 동화책을 한 권씩 골라 읽은 뒤 서로 바꿔보고 느낌을 자연스럽게 얘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는 부모들이많다.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교환일기를당장 시작해 보는 것이 좋다.매일 쓰라고 강요하지 말고 1주일에 2∼3번이라도 번갈아 쓰다보면 어느새 가슴속 빗장이 열린다. 전교조 소속 초등교사들이 여름방학을 위해 아주 ‘특별한 숙제’를 마련했다.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뽑은 ‘아이들이 방학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30가지’를 발췌해 소개한다. 허윤주기자 rara@
  • 남북정상회담/ 각계 기대와 희망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다.반세기 넘어 처음이다.때로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저 밑바닥에는 언제나 민족이라는 핏줄 특유의 애틋함이 흐르고 있었다.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들을 대표해서 정상들이 만난다니 그냥 좋다.몇번이나기대에 부풀었다가 실망해버린 적이 있었다.일정이 하루 늦춰지면서 가슴이철렁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무언가 이뤄질것 같은 예감이 든다.남북 정상들의 만남에 앞서 ‘사람들’의 얘기를 모아봤다. ■강동희(프로농구 기아 엔터프라이즈 선수)그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명훈 등 북한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우정을 나눠왔다. 그러면서 분단된 남북한이 하루빨리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을 직접 피부로느꼈다. 특히 지난해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통일농구대회를 치르면서 통일의 물꼬가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런 스포츠 류가 농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으면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의 스포츠 교류가 더 이상 뉴스가 되지않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더 나아가서는 한국프로농구(KBL)에 북한의 벼락팀이나 우뢰팀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또 축구,탁구에서와 같이 농구에서도 남북단일팀이 구성되기를 바란다. ■김은선(실향민·76·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51년 결혼한 아내와 함께 남한에 내려와 2남3녀를 두고 열쇠공 기술을 익혀 힘겹게 고생하며 산 지 50년째다.북에 두고온 아버지와 여동생의 생사 한번 확인하지 못하고 한달에 1∼2차례 임진각에 가서 고향땅을 바라보며 한스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우리같은 실향민의 마음만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단지생전에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땅을 한번 밟아봤으면 좋겠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다른 것보다도 북한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주고 식량이라도 많이 가져가 나눠줬으면 좋겠다. ■박종환(숭민원더스여자축구단 단장)90년 통일축구대회를 위해 대표팀을 이끌고 북한에 갔을 때의 감회가 새롭다.당시 15만명이 입장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쳤는데 운동장 시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현지에서 느꼈던 것은 북한 사람들이 남쪽과 모든 것을 성사시키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또 칭찬해주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그러나 그들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으면서도 1단계,2단계 하는 식으로 과정을 만들어 일을 미루곤한다. 그들과 무엇을 하고자 할 때 주의할 점은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때보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렀으니 북한 사람들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기대가 된다. ■신무성(미 8군사령부 병장·24) 남북한이 화해무드 속에서 성사된 회담이라 국민적인 기대감이 무척 큰 것 같다.회담 성사 사실을 발표하던 날을 생각하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회담 성사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그러나 너무 갑작스런 평화·화해 무드에 도취돼 느슨한 생각으로 북한을 바라봐서는안된다고 생각한다.현역 군인으로서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긴장감을 풀지 않고 국가방위에 충실하고 있다.다른 전우들도 마찬가지다.양측의 적대관계가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회담의 최우선 과제는 어떤 경우에도 서로 전쟁은 피한다는 국제적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측은 경제위기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빗장을 연 것으로 여겨진다. ■신현균(서울 성민교회 목사)지난 부활절,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린 남북 합동연합예배에 남한 개신교를 대표해 참석했다.감회가 새로웠다.당시 북한 기독교계의 달라진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종교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교류가 많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후 보다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교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지금 우리 종교계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목소리와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의 종교계에서도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가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지난 부활절의 남북 합동예배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직접 실감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종교계가 명실상부한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수있도록 회담이 튼실한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유영례(주부·44·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내가 사는 강화는 북한과 밀접해있어서 집안까지 대남방송이 다 들린다.그래서 그런지 이번 회담을 접하는느낌은 되레 담담하다.다만 아들이 최근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북한이 갑자기이번 회담을 핑계삼아 무슨 도발이라도 할까봐 가슴이 뛸 때가 많다.남북한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 만나는데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는 어려울 것으로본다.김대통령께서는 너무 회담 성과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국민은 정부가 소신껏 대북정책을 펴는데 신뢰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남한에서 쌀이나비료도 지원해주는데 왜 자꾸 딴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이산가족도 만나게해주고 아니면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터놓고 상대하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남은(인천 부평구 부광여고 3학년·18) 우리 국민과 북한 동포들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이렇게 해서 서로 방위비를 줄이면 교육비에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불쌍한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사실 북한을 다른 나라처럼 여겨왔는데,정상회담이 잘 돼 교류가 늘면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싹틀 것이다.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으로 곧 통일이 온다고는믿지 않는다.50여년 동안 다른 사상과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데 쉽게 동질감을 느낄수 있겠는가. 우선 평양교예단이나 학생예술단처럼 문화 방문단이 서로를 번갈아 찾으면좋겠다.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 북한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사뭇 궁금하다.많은 일을 하시는 대통령께서는 다음 회담을 위해서라도 몸건강하길 빈다. ■최우영(납북자가족모임 총무·30·여) 납북자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와 설렘은 누구보다 크다.아버지는 지난 87년 1월 부산에서출발한 동진호를 타고 조업을 하다 납북되었다.올해 54세가 되었지만 생사조차 전혀 모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두 정상이 만나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으면 한다.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얘기를 꼭 전해주었으면 좋겠다.이번 회담의 성사는 지속적인 ‘햇볕정책’의 결과이듯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자와 북송을 원하는 미전향 장기수에게도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이번 회담에서는 이산가족과 함께 납북자 문제가주요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태진아(가수)지난해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했던 나로서는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졌다는 데 대해 놀랍고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그때 만나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던 북한 분을 평양교예단 공연장에서 만나뵙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평양 공연때 무릎을 꿇은 채 ‘사모곡’을 부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이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묻길래 “나보다 더 평양을 그리워했을 실향민들을 생각하느라 그랬다”고 대답했었다.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분들의 50년 숙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나아가 정상회담 이후 남북의 문화교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온 배달민족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한필성(목축업·67·경기도 파주시 교하면)남북정상회담으로 꿈에 그리던고향방문길이 꼭열릴 것 같다.90년 2월 일본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 스케이트 코치로 참가한 여동생 필화(59)를 상봉한 뒤에도 기회가있을 때마다 어머니(최원화)와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준비해 왔지만 번번히무산됐다. 71년 일본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북한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선수로 참가한필화와 전화통화만 하고 만나지 못했던 때를 돌이키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생전에 그렇게도 보고 싶던 어머니가 98년 4월19일 94세로 세상을 떠나셨다.고향방문길이 열리면 어머니와 아버지 묘소부터 찾아가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빌겠다.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현정화(한국마사회탁구단 코치·전 국가대표)91년 남북 탁구단일팀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당시엔 당장 통일이 될 것같은 분위기였다.벌써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통일무드가 조성되는 것 같아 너무 기쁘지만 사실 늦은감이 없지 않다.지난 10년간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했으면 탁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은 발전이이루어졌을 것이다. 우승을 확인한 순간 같이 부둥켜안고 울던 북한의 이분희가 무척 그립다.팀동료 김성희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 탁구단일팀 구성은 물론 그리운 사람들도 마음껏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91년에 느꼈던 ‘작은통일’의 감격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황석영(작가)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들 하지만 비전을 갖고 해야 할 것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 4강이 한반도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고 있는 만큼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91년에 합의한 남북합의서에 기본정신은 다 들어 있다고할 수 있다.그걸 실천하겠다는 두 정상의 선언이 공식화돼야 하겠다.한반도긴장 완화를 위해 평화선언이라도 해서 그 가능성을 열어둬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문화교류가 물밀듯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문화인의 한 사람으로서교통정리가 되길 바란다.‘두루미와 여우’의 만남처럼 서로의 이질성만을부각시켜서는 안된다.통일문화를 형성한다는 의도된 목표 아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부터 교류할 수 있도록 문화교류기획위원회 같은 전담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 ‘모스키토 2000’ 답답한 정치·교육현실 풍자

    올초 1,000회를 돌파한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과 더불어 극단 학전의 단골 레퍼토리인 청소년 뮤지컬 ‘모스키토’가 오는 29일부터 학전그린소극장에서 새단장한 모습을 선보인다. ‘모스키토’는 지난 97년 독일 그립스극단의 작품을 번안해 초연한 뒤 지난해 4개월간 서울과 울산 등지를 순회공연하며 청소년들에게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각 당의 담합으로 청소년들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얻게 된 가상상황을 배경삼아 염증나는 정치현실과 답답한 교육현장을 후련하게 풍자한다. 이번 ‘모스키토2000’은 낙천·낙선운동을 새롭게 각색해 넣는 등 현실정치의 변화상을 발빠르게 반영했다.공연기간중 모스키토당의 가상홈페이지(www. moskito.or.kr)에서는 청소년과 관련된 공약을 내건 후보자들간에 사이버 모의선거가 치러진다.유연수 윤서현 이현철 등 3차 오디션을 거쳐 뽑은 참신한얼굴들이 등장한다. 청소년들의 하교시간에 맞춰 화∼목은 오후6시,금요일은오후7시30분,주말은 오후 4시·7시에 공연한다. 일정은 무기한.학전그린소극장(02)763-8233. 이순녀기자 coral@
  • [21세기 과학 대탐험](6)신에너지 기술

    ◆첨단 에너지 개발로 본 미래상. 풍요로운 삶을 이끌기 위한 첨단기술 개발에 열중인 S연구소 김 박사.그는모든 과학자들이 그렇듯이 21세기의 사회적 요구를 분석해 기술확보 전략을마련하고,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김 박사가 몸담고 있는분야는 미래의 에너지원 개발이다.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 분야는 무한 청정에너지 확보와 휴대용 전자기기의 이동전원인 연료전지.무공해 신에너지 개발은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문제이고,연료전지는 정보통신시대를 가능케 하는 기반기술이기 때문에 다른연구 프로젝트보다 관심이 집중돼 있다.수만년간 축적해 온 화석연료를 지난1세기동안 거의 탕진해 버린 지구촌 인간들이 앞으로 20년이면 현실로 닥칠 에너지원의 고갈에 따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또한 이 때문에 더욱 황폐해지고 있는 지구환경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현 수준의 배터리로 만족할 수 없는 개인 이동통신기기를 충전없이 오래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은 없을까?김 박사의 연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를 알아보기 위해 2020년 3월 어느날로 날아가 20년 후 모습을 보았다. 일요일 오후,S연구소 소장 김 박사의 집.꽃샘 추위 때문인지 바깥 날씨는아직 쌀쌀하지만 실내는 태양전지와 연료전지를 복합설계한 가정용 에너지시스템 덕분에 쾌적하다.그의 집 뿐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이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무공해 전기로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충당하고 있다.발전소로부터 변전소를 거쳐 송전되는 전기줄은 지난 여름에 모두 철거됐다. 동네 아파트 주민들은 옥상에 설치한 고효율 태양전지로 자연이 무상으로선사해 주는 태양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사용한다.남은 전기는 지역 전력회사에 팔아 수입을 올리고 있다. 김 박사가 살고 있는 동네의 상가와 여러 건물들은 자체적으로 설치된 중형연료전지(PAFC)를 이용,전기를 생산해 쓴다.이 지역의 산업체에서는 대형 연료전지(MCFC)로 필요한 전원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이들 사업체는 모두 정부의 세제혜택을 받는다.생산단가를 낮춘 것은 물론이고,무공해 공장이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효과도 볼 수 있으니 1석3조인셈이다. 인터넷 TV로 뉴스를 보고 있던 김 박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같은 부서의 이 박사팀이 국립에너지연구소의 개발팀과 공동으로 지난 20년간 열정을 쏟아 완공한 우주 태양광 발전소로부터 마이크로파를 통해 성공적으로 전기가 송전되고 있다는 소식이다.태양을 따라 공전하며 하루 24시간 태양발전을 할 수 있으니,이제 지구상에는 더 이상 발전소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이어지는 뉴스는 지구에 남은 화석에너지 중 석유는 매장량 감소 및 공해유발성 자원이라는 이유로 에너지로서의 사용 의존도가 점차 감소되고 있고,천연가스도 매장량을 걱정해야하는 단계라는 것.반면에 수소에너지를 활용한연료전지, 태양 에너지를 활용한 태양전지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가고있다는 내용이다. 공기가 어린 시절 시골의 그것처럼 상쾌한 것은 무공해 에너지 기술을 확보했다는 기쁨 때문일까,아니면 실제로 우리 지구에 더 이상 환경오염이 진행되지 않아 과거의 상태로 회복되고 있기 때문일까.김 박사는 자문해 본다. 아내는 손주들과 함께 백화점으로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김 박사도 같이 따라 나서기로 했다.요즘에는 전자 상거래만 하다보니 젊은 시절에 백화점 층층마다 다니면서 하던 쇼핑의 즐거움이 그립다.지난주 지방출장을 다녀온 터라 무공해 연료전지 자동차(Fuel Cell Vehicle,FCV)의 연료를 확인했더니,알코올 게이지가 아직도 반 이상 남아있다.김박사의 차는 이동형 연료전지로부터 발생한 전기를 이용해 모터로 구동되는 무공해 자동차다.승차감도 좋지만,김 박사의 아내가 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백화점 주차장 중 가장 좋은 자리가 무공해 자동차 전용 주차장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환경을 보호하는 시민을 위해 차량 등록세를 거의 내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장점이다. 하지만,김 박사의 아내는 옆집이 새로 산 FCV 최신모델을 짐짓 부러워하는눈치다.최근 개발된 수소 저장용 탄소나노튜브와 양자교환막 연료전지(PEMFC)를 장착한 자동차인데,무공해는 물론이고 한번 수소를 주입하면 3∼4개월을연료걱정을 안해도 되니 부러울 수 밖에… 백화점 가는 차안에서 손주들이 부산스럽다.손주들 모두가 자신의 개인이동통신 단말기를 갖고 따라 나섰기 때문이다.외국에 있는 친구들과 인터넷게임을 즐기고 있다.녀석들의 단말기는 지난주에 집 앞 편의점에서 산 메탄올에 물을 타 연료전지에 주입한 터라 아직도 충전없이 며칠을 더 사용할 수있다. 김 박사 아내처럼 그저 휴대폰으로만 사용하면 20일 통화 대기,40시간연속통화가 가능하다.충전이 필요하면 그저 주사기로 알코올용액을 주입하거나,그 옛날 일회용 라이터처럼 교환만 해주면 된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손자는 아예 자기 몸에 컴퓨터를 입고 나왔다.잠시도 컴퓨터를 떠나서는 생활이 안 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입는 컴퓨터 (WearablePC)가 보편화된지 오래다.이를 작동시키는 전원은 마음대로 모양을 변화시킬수도 있고,구부릴 수 도 있는 자유형상의 폴리머 전지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바지 혁대 대신 고용량 폴리머 전지를 차고 다니면서,필요한 전기를 언제어디서나 개인적으로 쓰는 것이 최근 신세대의 유행이다. 차창밖을 보니 지는 저녁노을이 오늘따라 아름답다.푸른 산,맑은 물,풍요로운 세상.김 박사는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며 20년 전 연구소 실험실에서보내던 나날들을 그리며 다시 한번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장혁박사 삼성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 ▲38세 ▲인하대 금속공학과 ▲미국 유타대 금속공학과 공학 석·박사(전기화학복합재료) ▲미 유타엔지니어링스테이션 연구원 ▲미 일리노이대 금속재료학과 박사후 연구원 ▲미국 전기화학학회,한국전기화학회 회원 ▲삼성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hchang@sait.samsung.co.kr). *차세대 에너지원 키워드. ◆태양전지(Solar Cell) 태양광으로부터 광전자를 뽑아내 전기를 발생시키는장치. 태양열을 이용해 온수를 만드는 태양열 발전과 달리 반도체 소자를 이용해 태양광을 직접 전기로 바꾼다.일사량이 많은 호주와 미국 서해안 지역에서 주로 활용하고 있으며,일본정부는 이 시스템을 설치하는 건축물에 비용의 30%를 무상지원한다. ◆연료전지(Fuel Cell)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로 분해된다.반대로수소와 산소를 결합시키면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이를 이용,연속적으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장치가 연료전지다.천연가스,메탄올 등에서 추출된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고효율 발전이 가능한 반면 화석연료에 비해 유해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적다. 사용하는 주원료(전해질)에 따라 인산,용융탄산염,양자 교환막 등으로 분류된다. ◆우주태양광 발전소 인공위성에 대형 태양전지를 탑재,우주 상에서 발전해지구로 송전하는 시스템.대규모의 발전용 태양전지를 우주공간에 설치하기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우주공간에서는 24시간 연속발전이 가능하다.마이크로파를 이용해 메가와트급 이상의 전기 에너지를 지구로 송전한다. ◆메탄올 연료전지(DMFC) 메탄올에 물을 혼합한 용액과 공기와의 반응으로전기를 발생시키는 소형 연료전지.종래의 니켈-카드뮴 배터리보다 20배이상,리튬-이온 배터리보다는 10배 이상 긴 시간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연료를 보태줌으로써 간단하고 신속하게 재충전할 수 있다. ◆수소저장용 탄소나노튜브 초미세 탄소 구조를 가진탄소나노튜브의 빈 공간에 수소를 저장,상온에서 배출해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치.아직실험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만 입증된 상태지만 상품화될 경우 가솔린자동차의 연료통 크기만한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수소저장탱크를 장착한 자동차는 1회 충전으로 8,000㎞ 주행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 [佛’주35시간 근로제’시행 한달] “옛날이 그립다” 희비

    프랑스의 실험,‘주 35시간 노동제’가 지난 1일 시행된지 한달 가까이 지났다.초기단계라 새 제도를 도입한 기업들이 많진 않으나 내년 전면 시행을 앞두고 뿌리내릴 조짐이 엿보인다.‘최소한의 노동,최대한의 휴식’을 추구해온 인류는 21세기 벽두 프랑스의 시도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주 6일근무 등 노동환경이 다른 한국 등에는 아직은 꿈같은 얘기지만 멀지않은 미래상으로서 주목을 끈다. ‘오브리’법으로 불리는 35시간 노동제가 프랑스 국회에서 한창 논의중이던 지난해 9월 이 제도를 도입한 TV 제작사 카날퓨스의 홍보담당자 샤를로트 크송(31).그는 요새 하루하루가 즐겁다.새 제도로 비록 1년간 임금이 동결됐지만 한해 18일의 휴가가 더 생겼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휴가는 한달에 하루씩,나머지 6일은 언제나 쓸 수 있는데 매월초 부원끼리 ‘구수회의’를 열어 휴가날짜를 조정한다.그는 “동결된 임금만큼 1명을 더 고용해 일을 분담할 수 있게 됐다”면서 “부원들이 새로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자유시간이 늘어 스트레스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그러나 새 제도가 모든 노동자에게 만족스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 서부의 르노 자동차 공장.이 공장에선 35시간제 시행으로 11일간의추가휴가가 주어졌다.그러나 노동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날은 나흘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지정한다.그뿐 아니라 기존 추가휴가 2차례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한정해 쓰도록 하고 있으며 근로로 인정해줬던직업훈련도 근로시간에서 빼버렸다.피엘 후크(36·엔지니어)씨는 “옛날(39시간제)이 훨씬 나은 것 같다”면서 “동료들도 모두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브리 법안은 97년 집권한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내놓은 고실업 해소책.노동시간을 4시간 줄이면 10명이 할 일을 11명이 해야 하므로 일자리를 늘릴수 있다는 개념의 고용대책이다.현재 21명 이상 사업장이 대상으로 내년부터는 20명 이하 사업장까지 확대된다.아직은 시행 초기인 만큼 노사간 입장이팽팽한 곳이 많다. 경영자들은 “노동시간은 줄어드는데도 임금은 줄지 않는 오브리는 기업의부담만 늘려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며 규제완화의 물결에도 거스르는 국가의 부당한 개입”이라는 입장.사측의 완강한 입장에 밀려 정부는 노동시간을 1년 단위로 환산,1주 평균 35시간만 달성하면 괜찮다는 타협안을 제시하는 등 사용자측에 폭넓은 재량권을 주었다.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그러나 사용자의 재량권 남용으로 근무체계를 멋대로 바꾸는 등 노동자의 자유가 위협받는다고 걱정한다.임금면에서도 수년간 동결이라든가 초과근무수당삭감으로 손에 쥐는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고 느끼는 노동자도 적잖다.공산당 계열의 노조에선 노동강도만 높아졌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같은 평행선을 달리는 노사의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하루 1,500개 기업의 참가를 낙관하며 새 제도의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다른 국가에선. 노동시간 단축의 선진국은 독일.특히 금속산업노조가 앞장서 왔다.그러나프랑스처럼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업종·지역별로 노사가 노동시간을 결정하고 있다.이탈리아는 97년 노동시간 단축을 검토했으나 법제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견해가 우세해 보류중이다.스페인에선 지방자치단체의 일부 공기업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중앙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 주요국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보면 프랑스는 37.8시간으로 유럽연합(EU)내에서 중간정도.유럽에선 그리스가 43.1시간으로 가장 많고 네덜란드(32.3시간)는 가장 일을 적게 하는 ‘노동자 천국’이다. 미국은 오히려 근로시간이 늘고 있는 추세로 세계 제1의 경제대국답게 41.7시간을 일하고 있다.반면 ‘10년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은 38.1시간.한국은 95년 49.2시간을 기록한 이후 감소추세를 보이며 98년 46.1시간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49.8시간으로 3시간이상 늘었다. 황성기기자. -도입 현황. 프랑스의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다.프랑스 정부는 벌써부터 실업률 저하가‘오브리’ 법(주 35시간 노동제) 덕분이라고 치켜세우고 싶은 눈치다.오브리 법을 제창한 리오넬 조스팽 정권이 출범했던 1997년의 실업률은 12%.그러던 것이 98년 11.7%,99년에는 10.6%로 하락추세다. 프랑스 정부는 “이 제도로 15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35시간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주어지는 보조금과 인센티브는 새 제도의 확산을 유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고용이 늘어나고 실업률이 낮아진 것은 호경기를 반영한 것이지 오브리법 때문은 아니다”는게 그들의 생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주 35시간제는 고용에 결정적 효과를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낸 바 있다.이같은 논란속에 지난 1일부터새 제도를 적용받는 21인 이상 사업장은 8만2,000곳이지만 노사협약에 반영한 곳은 14%에 지나지 않는다.나머지는 노사교섭이 진행중. 내년부턴 20인 이하 사업장에도 적용할 계획이지만 노사 모두 새 제도에 공감해 노사협약에 반영하는 기업이 급속히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같다.프랑스 정부의 구상대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가 가시화되고 실업률에 반영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장이브 브랑 교수(사회학)는 “새 제도 도입으로 기업은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으며 노동자들은 삶의 방식이나 공동체의 역할을 재검토하는 사회변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성기기자
  • 고대 국문과 백경순씨 ‘청바지 할머니’ 42년만에 학사모

    “뒤늦게 공부하도록 도와준 남편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지난 10일 환갑을 지낸 만학 주부 백경순(白慶順·60·서울 성북구 장위동)씨가 42년만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다. 지난 58년 충북 충주여고를 졸업한뒤 고려대에 입학한 백씨는 완고한 집안분위기 탓에 서울로 유학오지 못하고 매일 등하교를 반복했다.결국 견디다못해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학업을 포기했다.지난 64년 결혼해 2남 1녀를 낳았지만 백씨의 마음은 항상 “공부를 마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간절했다. 꿈을 되살린 것은 지난 96년.백씨는 수능을 치르지 않고도 재입학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학년 2학기생으로 재입학했다. 백씨는 청바지 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등교한 뒤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들어 손주·손녀같은 후배들과 교수들 사이에 화제를 일으켰다. 그동안 최우등상과 우등상 등 4차례 상을 받았다.평균평점은 4.5 만점에 3. 72점.한달 전 자신의 졸업을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이 그립다는백씨는 “기회가 된다면 대학원에 진학해 좀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딸과 막내아들도 올해 성신여대 대학원과 포항공대 대학원을 졸업한다. 이랑기자
  • ‘지하철 1호선’ 1000회 공연

    극단 학전의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1,000회 공연이 있던 지난 6일,학전대표 겸 연출가 김민기는 독일의 원작자 볼커 루드비히로부터 뜻밖의 선물을받았다.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 그립스극단의 배우 토마스 아렌스 등과 함께초청받은 그는 공연에 앞서 극단과 관객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 뒤 김씨에게 ‘깜짝선물’을 전달했다. 베를린시 문화부장관의 축하메세지,‘지하철1호선’에 대한 독일 저작권협회의 저작권료 면제, 그리고 내년 가을 그립스극단의 1,000회 공연 초청장이었다. 미리 얘기가 없었던 터라 김민기는 순간 당황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자신들보다 먼저 1천회 공연을 달성한 한국 친구들에 대한 독일측의 정깊은 배려는 객석과 무대를 모두 훈훈하게 했다. ‘지하철1호선’에 대한 이들의 애정도 대단했다.루드비히는 “전세계 20여개국에서 내 작품을 공연하지만 개인적으로 김민기씨의 작품이 제일 마음에든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독일에서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출연 중인아렌스도 “공연을 보면서 한순간도 지루하다는 느낌이들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고,하이만은 “감동 그 자체”라고 놀라워했다. 이날 공연은 방은진 이정헌 권형준 등 역대 출연배우 60여명이 함께 하는 무대여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3시간여 진행됐다.객석에는주한독일대사와 문화원장을 비롯한 독일측 인사, 영화감독 임권택, 촬영감독정일성,배우 유인촌 등 국내 문화계 인사,그리고 일반 관객들이 빽빽히 자리해 ‘지하철1호선’의 1,000회 기록을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봤다.김민기는“좀더 새로운 내용으로 한단계 발전된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말로 화답했다.열악한 공연환경 속에서도 성실한 발걸음으로 이제 막 ‘1천회 역’을 통과한 ‘지하철1호선’의 앞길을 지켜볼 일이다. 이순녀기자
  • [공직탐험] 우체국 집배원(2)

    집배원은 오랫동안 대표적인 ‘공직 3D업종’으로 꼽혀왔다.‘집배원 ×은개도 안 먹는다’는 속된 말까지 있다.그만큼 일이 고되고 힘들다는 얘기다. 대도시의 경우 하루에 1,500∼2,000통을 배달하다 보면 저녁에는 파김치가된다.농어촌지역은 600∼800통으로 우편물은 상대적으로 적으나 하루 이동거리가 평균 56㎞나 돼 쉴 틈이 없다. 예전과는 달리 오토바이로 우편물을 배달한다고는 하나 달동네나 도심상가,고층건물 등은 걸어서 배달하는 수밖에 없다.특히 등기와 소포,특급우편물등은 직접 수취인에게 건네야만 하기 때문에 배달시간이 많이 걸린다.그러나 맞벌이 부부나 독신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곤욕을 치른다.관행적으로 아파트 경비원과 이웃집 등에 대리수령하게 하고는 있지만 책임문제로 수취를 거부하는 일이 많아 2∼3차례 방문해야 하는불편을 겪는다.수취인이 이사를 가거나 주소가 잘못돼 반송되는 것도 전체우편물의 0.86%에 달한다.요즘은 덜하지만 단독주택 지역에서는 배달하다 개에게 물리는 일도 다반사로일어났다. 그러나 집배원들은 이러한 것보다 각박한 세태에 더 서운함을 느낀다.지금은 반가운 편지보다 고지서나 홍보물 등이 많은 탓인지 우편물을 받는 태도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집배원에게 수고한다며 음료수 등을 건네는 장면은먼 기억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사정은 대도시일수록 더하다.등기우편물을 전하기 위해 아파트 벨을누를 때 사람이 있어도 문을 잘 열어주지 않거나 문틈으로 빠끔히 도장만 내미는 경우가 많다.법원 우편물 같은 것은 아예 수령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아파트 우편함에 넣어놓은 우편물을 해당가구에서 가져가지 않아 더이상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쌓이는 것도 집배원들에게는 스트레스.이렇게 장기방치된 것은 다시 수거해 반송해야만 한다.올해 정년인 인천우체국 집배원 서광하(徐光夏·57)씨는 “집배원인 줄 알면서도 문을 잘 열어주지 않을 때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면서 “차라리 개에게 물리면서도 허름한 주택가를 돌던시절이 그립다”고 말했다. 이에 비하면 농어촌 집배원은 행복한 편이다.세태가 각박해졌다고 해도 길가는 집배원을 보면 새참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이 아직까지 시골인심이고,편지를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 우정국 변상기(邊相基·45) 사무관은 “홍보물 등 원하지 않는우편물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우편행정에 커다란 암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hjkim@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1,000회 진기록

    연극계 최악의 불황이라는 요즘도 하루에 수십가지 작품이 오르내리는 대학로.내달 6일 이 거리에 의미 있는 기록이 하나 세워진다.극단 학전(대표 김민기)의 소극장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1,000회 공연을 맞는 것.지난 94년 5월14일 첫 공연이후 6년만에 달성하는 귀한 기록이다. 토요일인 지난 22일 낮 학전블루소극장에는 역대 출연배우 20여명이 모였다. 옛 멤버가 모두 참여하는 ‘1,000회 특별공연’을 위한 준비모임이었다.‘지하철 1호선’은 배우 11명이 역을 바꿔가며 80여 배역을 소화하는데,특별공연에서는 이들이 역을 하나씩 나눠가져 우정출연하게 된다.95∼96년 멤버인오지혜씨는 “연출자와 배우,스탭이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여서 가장 기억에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간 배우는 66명,라이브밴드 연주자는 20명에 달한다.아무리 스타배우라도 반드시 오디션을 보게 하는 연출자 김민기의고집스런 캐스팅과정 덕에 이 작품 출신 연기자들은 누구보다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는다.영화 ‘박하사탕’의 설경구(94,96∼98년)방은진(94·96년)이 그렇고,권형준 이정헌 장현성 이미옥 등 수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이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매년 내용을 다듬어 장기공연하는 동안 극장을 찾은 관객은 15만명.여러번본 고정관객도 상당수라는 ‘지하철 1호선’의 저력은 무엇일까.아무 사전지식없이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김민기의 창작극이 아니라 독일작품의 번안이라는 데 깜짝 놀란다.86년 독일 극단 그립스가 초연한 ‘Line1’을원작으로 한 이 작품 어디에서도 번안극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현실을 꿰뚫는 날카로운 주제의식과 이를 표현하는 양식이 우리정서에 가까이 닿아 있다.95년과 96년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한 독일 원작자와 연출가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라이브연주가 드물 때 5인조 밴드를 무대에 세워 생생한 록음악을 들려준 시도도 새로웠다. 지방 소도시 아가씨의 눈을 통해 본 베를린 풍경을 담은 원작은 ‘지하철 1호선’에서 서울에 온 연변처녀의 시선으로 바뀐다.사이비교주,가출소녀,강남 사모님 등 지하철 1호선 주변온갖 군상의 일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까발리는 한편에서는 윤락녀 혼혈아 외국노동자 등 사회에서 등떠밀린 사람들의어두운 그림자에도 애정어린 시선을 보낸다.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지하철 1호선’이 갖는 틀의 한계도 보인다.김민기씨는 “현재 작품은 90년대 것으로 정리하고 2000년대에는 새로운 내용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10년넘게 공연중인 독일에서도 지금까지 936회만을 기록해 이번 ‘지하철 1호선’1,000회 공연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폴커 루드비히(원작자)비르거 하이만(작곡자)토마스 아렌스(그립스극단 배우)등 공연 관계자와 ‘슈피겔’을 비롯한 독일 언론인이 독일문화원 초청으로 내한한다.학전측은 2월4∼6일 학전그린소극장에서 독일영화 ‘Line1’을 상영하고,2월말까지던 공연을 4월2일까지 연장키로 했다.(02)763-8233이순녀기자 coral@
  • ‘강화도 겨울’ 포구와 진홍빛 낙조의 유혹

    강화도에 가보자. 한겨울을 감싸고도 남을 만한 따뜻한 포구를 찾아서. 혹한속에서도 생명의 기운이 살아 넘치는 갯벌을 찾아서.10여년전 절필을 선언한하종오 시인은 강화도에 틀어박혀 ‘염하를 건너오면/뭐가 있을 것 같아서섬으로 왔다’고 했다지. 한겨울 강화도는 무엇을 ‘건지는’게 아닌 ‘맡기는’여행에 제격이 아닐까.차길 닿는대로,발길 닿는대로 가보자.그러다 도시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저 몸을 맡겨보자.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이 그립다면 먼저 포구에 가볼 일.강화에서 가장 큰항구 외포리를 갔더니 겨울인데도 너무 어수선해 포구 특유의 안온함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선두포구가 조용하고 풍광도 좋지요.”선착장 인근 식당의 아주머니가 귀띔한다.외포리 남쪽에 있는 선두포구로 방향을 틀었다. 20분쯤 가니 선두포구 못비쳐 동막해수욕장이 나온다.썰물 때면 수백만평의광활한 갯벌이 드러나는 곳.날씨가 차 인적이 드물다.그러나 아무것도 없을것 같은 뻘을 몇번 뒤적이자 갯지렁이와 검은 흙을 뒤집어 쓴 칡게가 꼼지락거리며 나온다.그 생명의 강인함이라니!.추워 떨리던 몸이 순간 후끈 달아오른다. 선두포구는 아주머니 말대로 인적이 없어 쓸쓸함이 갯골을 메운다.하지만 이를 덜어주는 것이 있으니,바로 철새다.갯벌과 인접한 논바닥에 앉아 있던 큰기러기 떼가 발소리에 놀라 날아오른다.갯벌 위 먼 상공에도 100여마리 기러기가 삼각편대 대형으로 하늘을 가르고 있다. 내친 김에 뱃길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강화도 서쪽 석모도행 배에 승용차를 탄채 올랐다.외포리에서 석모도 석포선착장까지 10분도 채 안걸리는 짧은뱃길.배를 따라오는 기러기들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노는 재미가 쏠쏠하다. 석모도는 해안 일주도로가 19㎞에 불과해 천천히 드라이브를 즐기기엔 그만이다.선착장을 나와 진득이고개를 넘어 달리면 염전과 미니포구인 어유정포구,민머루해수욕장이 잇달아 나온다. 어유정포구는 작고 아담한 것이 초행이지만 왠지 친숙한 느낌을 준다.서너척의 작은 어선과 갯벌,미니 선착장이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민머루해수욕장도 500m정도의 짧은 백사장과 갯벌이 전부.바위와 잔돌엔 석화가 드문드문 달라붙어 자란다.해수욕장 치고는 제법 운치 있다. 민머루해수욕장에서 조금 더가면 장구너머포구다.가는 길 중간 고갯마루에차를 세웠다.무언가 큰 것을 본 느낌.섬의 서쪽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오고확 끼쳐오는 서풍에 가슴 속까지 서늘하다.요란스럽지 않고 ‘점잖게’굽은해안선이 서해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시간이 촉박해 장구너머포구는 그냥 지나쳐 선착장으로 차를 몰았다.다시 외포리다.외포리선착장 옆에는 젓갈시장이 있다.강화도를 떠나기전 한번 꼭 들러야 할 것같은 느낌을 받은 곳이다.밴댕이젓 조개젓 오징어젓 등 십수가지젓갈이 가득 담긴 큼지막한 통을 앞에 두고 아주머니들이 손님을 부른다.1㎏이 훨씬 넘을 것 같은 밴댕이젓 한병이 5,000원이다. 서울을 향해 출발하려다 서쪽 하늘을 보고 멈칫했다.엷은 구름을 빨갛게 불태우는 낙조.강화의 또 하나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가는길 승용차로 가려면 올림픽대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올림픽대로 끝에서김포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48번 국도로 갈아타면 강화대교까지 이어진다.대중교통은 서울 신촌사거리 서강대교 방면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강화로 출발하는 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있다. ◆먹거리 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밴댕이회.맛과 영양이 뛰어나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특산물이라고 한다.외포리 등 모든 포구의 음식점에서 회와 회무침을 맛볼 수 있다.한접시에 1만5,000원.회무침은 1만원.두사람이 먹기에 적당하다. 순무도 강화의 대표적 특산물. 보라빛이 도는 동글동글한 열매로 톡 쏘면서씁쓰레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우리놀이 100가지 소개한「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바람개비를 돌리려 골목길을 내달리던 시절,손톱에는 예쁘게 봉숭아물을 들였다.시뻘겋게 약이 오른 수숫대 껍질을 벗겨내고 씹으면 입 주위는 온통 핏빛이 됐지만 단물 빨아먹는 재미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속도에 속도를 더한 산업사회 발전은 우리의 배를 불렸지만 대신 간직했어야 할 많은 것들을 앗아 갔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놀이 백가지’(놀잇감 기획·재현 최재용 글 이철수·현암사)는 사라져 가는 우리 놀이,우리 놀잇감 330여가지를 정감어린 글과 함께 실은 책이다. 놀잇감을 기획·재현한 최씨는 “자연을 어루만지고 그 품속에서 추억을 엮어 내야 할 우리 아이들을 위해 유년시절 가슴 속에 묻어 둔 보물상자를 찾아 내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털어놨다. 책에는 딱지치기,구슬치기,자치기,종이로 비행기나 배 만들기 등 우리사회의 성인이라면 어린시절 누구라도 해 보았을 각종 놀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만들기 그림과 함께 들어있다.또 도장놀이와산가지놀이,칠교놀이 등 어렴풋이 기억으로 남아있는 놀이들을 일깨워준다. 그는 놀잇감을 찾고 재료를 구하기 위해 4년여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수수깡이나 보릿대 등 지금은 구하기 힘든 것들을 찾아 휴전선까지 갔다. 아이들이 노는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산골 마을도 찾았다.책에 실린놀잇감들은 모두 손수 만들었다. 글을 쓴 이씨는 “컵라면을 먹어가며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눈빛으로 키보드를 눌러대는 요즘 아이들이 안타깝다”면서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감싸주는 그런 가슴으로,따뜻한 체온을 서로 나눌 줄 아는,진정한사람냄새를 풍기는 인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바램을 말했다.값 2만원. 김명승기자 mskim@
  • [統獨과 한반도 통일] (3)정치·경제·사회 통합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제국의회 건물. 1894년 바이마르 헌법이 태동한 이 건물은 지난해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조한 유리 돔으로 단장한 뒤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새로 문을 열어 통일 독일 정치통합의 상징물처럼 돼있다. 따라서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는 매일 연방의회의 모습을 참관하려는 동독지역 주민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동독지역의 포츠담에서 왔다는 홀거 오펄러(58)씨는 “민주주의 제도를 참관한다는 설레임으로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못잤다”며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통일 독일의 정치제도는 정당과 의회에 의해 이뤄지는 정당 민주주의·의회민주주의인 서독의 정치체제로 통합됐다. 정당간의 통합은 통일을 전후해 여러차례 실시된 선거를 통해 동서독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자연스레통합됐다.특히 동독지역에 뿌리를 둔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주사회당(PDS)도연방의회에 진출했다. 베르너 페니히 베를린 자유대 교수는 “동서독간 빈부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실업률이 급증함에 따라 동독 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Ostalgie)’가 생겨나며 최근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PDS가 약진하고 있는 점은 다소 우려된다”고 전한다. 서독 행정은 업무에 따라 수직적·수평적으로 세분화된 반면,동독은 당과국가의 결정에 따라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한 탓에 행정도 서독식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직업 공무원제도를 확립하는 통합이 이뤄졌다.다만 동독출신 공직자들의 업무처리 능력이 서독 출신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법의 통합도 대체로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연방정부와 서독의 각주정부들이 동독지역의 사법제도 구축을 위해 법조인들을 파견하는 등 인적·물적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페니히 교수는 “통일 직후 동독지역의소송건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가 점차 늘어나며 서독 수준에 육박한 것은사법제도의 발전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아직도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법률제도에 익숙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동독지역의 역동적인 성장 모습을 보면 경제통합도 긍정적이다.동독지역 경제재건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완비되고 국유기업이 모두 사유화됐으며,사회간접시설(SOC)의 확충을 위한 역동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등 매우 희망적이다.동독지역이 통일 이후 95년까지 매년 평균 8%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룩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물론 96년 이후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이는 서독 및 서방 선진국들의 경기가 크게 후퇴했다는 점이 작용했다. 그러나 사회통합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못된다.노동시장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한 데다 심리적 통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경제·사회구조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분야가 바로 노동시장이다.일부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25%를 웃도는 등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서독지역의 2배 가까운 18%를 넘고 있다.동독 경제가 경쟁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고용감축이 이뤄진 탓이다.실업문제의 해결은 민간기업의고용창출 능력에 달려 있는 만큼 동독경제가 지속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심리적 장벽도 여전히 높다.동독주민들은 서독식의 새로운 가치체계에 적응하는 등 정신적 고통과 서독인들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반면,서독주민들은 통일 전보다 더 많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지불하면서도 사회보장혜택은 오히려 줄어들어 불만이 크다.테오 좀머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은 “서독과 동독의 정신·정서적 분열은 경제적 격차만큼이나 깊다”며 “독일인들은 아직도 2개의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베를린 장벽은 주민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 동독지역 주민들 “옛날이 그립다”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가족들의 조그마한 소망을 채워줄 돈이 있었으면좋겠습니다. 애들은 나이키·아디다스 등 비싼 운동화를 보면 사고 싶어 안달합니다.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던 동독시절이 차라리 더 좋았다는생각마저 듭니다” 통일 후 한동안 실직했다가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며 근근히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 마르틴 숄츠(36)씨의 하소연이다.통일 후 서독경제에 편입되면서동독지역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량 감원으로 실업자들이 급증하면서,요즘 동독지역에서는 숄츠씨처럼 동독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오스탈기는 동쪽(Ost)과 향수(Nostalgie)’를 합친 독일식 신조어.동독 시절에는 일자리를 잃을 걱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실업’이라는 단어 자체도아예 없었다. 당시는 일자리가 있으면서도 일할 필요가 없이 그런대로 살 수있었던 세상이어서 동독인들은 그때 그 좋았던 시절에 매달려 연연하고 있는것이다. 오스탈기의 바람은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절정에 달했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민당(SPD)이 ‘오스탈기의 역풍’을 만나 연전연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위르겐 뢰버(47)씨는 “노동자·농민의 나라 동독시절에는 모든 것이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인간과 인간의 대화도 그리 복잡하지않았다”며 “내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동독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서독지역 주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동독지역 경제재건을 위해 서독지역의 돈을 쏟아붓다보니 더많은 세금을 내도 사회복지 혜택을 줄어들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남편 직장을 따라 본에서 동독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오데르로 이주한 40대 중반의 티나 크로네(여)씨는 “나는 처음부터 ‘외국인’이었다.동독에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은 상상이상 이었다”며 “이런 적대감이 극우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 [매체비평] 새 천년에 비는 세가지 소망

    한 해가 저물어간다.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는지라 식상하기는 하지만,새천년을 맞는 해라는 점에서 이번엔 좀 특별하기는 하다.따지고 보면 해가 바뀐다 해서 그리 대단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그냥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는 것 뿐이다.그래도 이리 요란을 떠는 것은 아마 지난 해에 이루지 못한 일을 되새겨보고 반성하자는 좋은 뜻일 게다.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신문이 생긴지 백년이 넘었지만,과거를 돌아보면 좋은 일보다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더 많다.물론 우리사회의 얼룩진 정치·사회사 때문에 불가피했던 일들이 대부분이다.하지만 과거의 어두운 흔적들은 아직도 전통이나 관행의 형태로 남아 우리를 괴롭히고 있고,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첨단 제작시설과 종합 정보산업,뉴밀레니엄 같은 21세기적 어휘와 함께 비리,로비,촌지 같은 18세기의 부패한 토호 이미지의 단어가 공존하는 현실이 슬프다. 새 천년을 맞아 우리 언론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꼽아보았다.뉴밀레니엄을 맞는 시점이니 이왕이면 지난 백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던 좀거창한 꿈들만 골랐다. 첫째,우리도 자랑할 만한 언론사 하나쯤 두었으면 한다.권력이나 유혹과 타협하지 않는 언론의 정신적 자세를 거론할 때마다 뉴욕타임즈나 르 몽드의예만 드는데 신물이 났다.어느 사회건 언론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오랫동안 싸워 지켜온 정신적 전통 때문이다.우리 언론에는 과연 이런 전통이 남아있는지 의문이다.정치적 규제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권언유착이니 무슨 장학생이니 해서 언론은 비틀거리고 있다.개화기와 독재정권 등 어려운 시절에도 꿋꿋이 유지되었던 기개와 패기들이 그립다.부디 새 천년에는 남의 나라 얘기 대신에 우리 언론사 이름을 자랑스럽게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둘째,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골몰한,크고 작은 사이비언론들을 몰아냈으면 한다.아직도 우리 주위엔 신문사를 권력처럼 여기는 언론인이 아직도 남아 있다.군소 지방지들 중에는 신문을 잘 만드는 일보다는 사주가 벌여놓은 일의방패막이 노릇을 하거나 이권사업에 열심인 데도 있다고들 한다.하지만 나는 일부 지방언론사만 사이비언론으로 몰아부치는 데는 반대다.오히려 중앙지가운데는 아예 내놓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데가 많기 때문이다.언론사라면 어딜 가든 으례 특별대우를 받고 법에 좀 어긋나는 일이 있어도 눈감아주는 것이 ‘관행’이라면 차라리 스케일 작은 사이비언론은 애교에 가깝다.정부가 언론사에 세금을 물리고 조사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 뉴스거리가 되는 코미디는 새 천년에는 없어졌으면 한다. 셋째,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싶다는것이다.우리 신문은 초창기부터 계몽주의 성격이 강했는데,이는 자랑스런 전통이라 해도 좋다.당시만 해도 언론계에는 의식있는 지식인들이 모여들었고국민들은 민도가 높지 않았기에,좀 어설픈 아마추어주의도 그런대로 통했다. 그런데 사회 각 부분이 전문화된 지금도 언론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계몽주의는 좋은 전통이지만 21세기에 맞게 새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품고 있던 생각을 막상 풀어놓고 보니 꿈 치고는 좀 시시하다는 느낌까지든다.하지만 이런 소박한 주문을 해마다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리뷰] 한국화가 김병종 ‘화첩기행’전

    한국화가 김병종의 ‘화첩기행’전이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리고 있다.‘화첩기행’은 작가가 지난해 초부터 한해 반 동안 신문에 실은 우리나라 근·현대 예술가들에 대한 기행연재물로 글과 그림이 다함께 호평을 받았다.이번 전시는 신문 연재 그림 중 일부를 선별해 내 놓았다. 기행담·기행화인 만큼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예술가들을 특정 지역과짝지워 내보인다. 서정주와 고창,이효석과 봉평,이미륵과 뮌헨 등 대다수 짝들이 그림 이전부터 어떤 울림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림 또한 요즘 것 답지 않게 먼저 말을 걸어오고 그것도 아주 쉬운 말이라 관람자들은 맘 편하게 끌려 들어간다.그림의 형상들은 내숭떨지 않고 활달하며 색채도 금제(禁制)에서 금방 풀려난 듯 거침이 없다.쉬운 내용을 목소리 좋은 사람에게서 재미있게 전달받는 기분이다. 이 점이 이 기행화의 장점이자 한계다.작가는 결코 간단치 않을 한 예술가의 인생역전과 영혼을 특정 지역의 속전속결식 횡단을 통해 간취하려 한다. 단편적 느낌을 강렬하게 만들기 위해생각을 적극적으로 차단한다.시각적으로 뛰어난 이미지 몇 개를 뽑아 아주 효과적으로 조합시키고 있다.이미지와이미지 사이의 휑한 틈을 숨기기 위해 이미지를 과장한다.색을 너무 쉽게 쓴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이 매력적인 그림은 관람이 길어질수록 결국 기행인상기이며 글의 이해를돕는 삽화임을 분명히 말해준다.그림 옆에 붙어 있는 글들을 삭제하고,예술가와 지명의 제목을 가리고서 작가 몫인 그림만을 보면 예쁘지만 속이 없는여행지 그림엽서가 연상된다. 관람자에게 말을 걸어오지도 않고,말을 한댔자 어려운 말만 혼자 중얼거리기 일쑤고,색깔도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본격 회화를 문득 그립게 만드는 전시회다. 김재영기자
  • 황산피습 사망 태완군 PC통신 애도 줄이어

    ‘태완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황산피습 사건의 피해자인 김태완(6·대구시 동구 효목1동)군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PC통신에는 태완군의 명복을 빌거나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한다’며 경찰을 독려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천리안 ID WON313은 “태완이와 같은 나이의 아들을 둔 부모로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부디 못다한 꿈을 이루길 빈다”고 기원했다. MUD4030은 “태완아,이승세상 아쉽고 한맺힌 마음 훌훌 털어버리고 이승길돌아보지 말고 저승길 마음 편히 가렴.부모님이 보고싶고 사무치게 그립더라도 슬피 울지 말고 마음 편안히 가라”고 빌었다. 범인을 원망하거나 경찰에 범인검거를 촉구하면서 반드시 중형에 처할것을강조하는 글도 쇄도했다. SHIN190은 “이번 사건을 확실히 처리하지 않으면 또 모방범죄가 나올 지도 모른다.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혼자 가는데 누가 갑자기 황산을 뿌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고 반문했다.LINCOSPE는 “어린이를 상대로 한 모든 범죄는 법정최고형에 처하고공소시효도 무기한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우리가 범인을 잡지 못하는 이상 우리도 같은 죄인이다”(CCJ1954) “범인을 꼭 잡아서 똑같이 황산을 덮어씌워야 한다”(JOVIGIRL) “수사권 독립을 외치는 경찰이 이런일 제대로 해결 못하느냐”(막차)등의 의견들도잇따랐다. 또 지난달 태완군의 사연을 PC통신에 올렸던 외삼촌 박재성(38)씨도 다시글을 올려 “다시는 아이들에게 이런 잔인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우리에게주어진 의무를 지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태완군이 치료를 받았던 경북대병원은 9일 태완군 부모가 미리 냈던진료비 630만원 중 300만원을 가족들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했다. 태완군 가족들은 10일 오전 태완군을 화장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모 사찰에 안치할 예정이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8년-“어린이날이면 더 가슴 아파”

    “호연아,오늘은 더욱 네가 그립구나.어린이날에 남들처럼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도 한번 못가본 것이 한스럽구나”대구 성서 개구리소년 5명이 실종된지 벌써 8년째.지난 91년 3월26일‘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행방 불명된 후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어린이날을 맞는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아프기만 하다. 우철원(당시 13세·성서초등 6년),조호연(12·5년),김영규(11·4년),박찬인(10·3년),김종식군(9·3년) 등 실종소년들이 그대로 자랐다면 이미 대학생이거나 고등학교 졸업반이 됐을 나이. 호연군의 어머니 김순례씨(45)는 “하루종일 베갯잇을 만드는 일을 하며 막내아들 호연이를 애써 잊어왔지만 어린이날만 되면 금방이라도 ‘엄마’하고 집으로 돌아올 것 같아 밤에도 문을 잠그질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개구리소년들은 현재 주민등록까지 말소된 채 성서초등학교 유급생으로만남아있다.아이들을 찾기 위해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던 부모들은 아직도 이들이 언젠가는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달서구 이곡동을 떠나지 않고 있다.
  • [김삼웅 칼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80돌

    오늘(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上海)에서 출범하면서 독립전쟁을 선포한지 80주년이다. “백산(白山)에 이는 바람 천지도 시름짓고 푸른파도 구비치는 곳 구룡(龜龍)이 일어나 춤을 추는구나. 어두운 이밤은 언제나 새이려나.모진 비바람만 휘몰아치는 것을….”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내고 임정에 내분이 생기자 25일간 단식끝에 목숨을 끊은 申圭植선생이 망명지에서 쓴 ‘한국혼’의 서두다. ‘모진 비바람만 휘몰아친’절망의 시대에 애국지사들이 이국땅 상하이에모여 임정을 세우고 나라찾기 전쟁을 벌인지 80성상이 흘렀다. 상하이에 임정이 세워졌다는 소식에 고국의 동포들은 노래불렀다. 자유민아 소리쳐서 만세불러라 임시정부 만세불러라 대통령 국무총리 각부처 장관 국제연맹 여러 특사 만세불러라 우리 이미 이민족의 노예 아니오 또한 전제정치하의 백성 아니라 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이니 동포여 소리쳐서 만세불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세. 망국 9년만에 3·1항쟁의 뜻을 담아 임정을 세우니 ‘일제 36년’은 국권상실의 측면에서 임정이전의 9년일 뿐이다. 임정은 물론 국제법상 통치권이 미치는 국토와 국민이 있어야 하는 일반 정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고 대한제국과는 시간적 연속성이 없고 주체세력과 이념이 달라 ‘망명정부’일수는 없다. 임정은 한민족의 정신적 구심체가 되면서 향후 27년 동안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벌였다. 무장·의열·외교등 모든 방법을 동원한 전쟁이었다. 식민지역사상 우리 임정처럼 일체의 타협을 배격하면서 완전독립을 추구한 사례는없다. 자치론이나 위임통치론 따위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완전독립’만을추구했다. 임정의 지도자들이 왕조시대 인물들인데도 복벽(復 )을 거부하고 민주공화체제를 지향한 것은 대단히 선각적이다.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제1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없이 일체평등으로 함”(제3조) 등 ‘헌법’정신과 조항이 민주공화제를 지향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국내외 독립운동단체 460개 중 민주공화제 국가의 건설을추구하는 민주지향형이 244개(53%)인데 비해 계급투쟁형은156개(34%), 왕정복고형은 37개(8%), 군정추구형은 23개(5%)로 나타났다. 한민족의 민주지향성을 살피게 한다. 임정은 욱일승천하는 일제로부터 탄압과 회유, 국제열강의 외면과 냉대, 극심한 생활고와 재정난, 그치지 않는 노선 시비와 사상갈등 속에서도 민주공화제의 정통성을 지키면서 항일투쟁의 구심체 역할을 맡았다.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예컨대 李東輝중심의 좌파계열과 金元鳳중심의 의열단세력까지 포용, 거국적 항일투쟁 전선을 형성한 것은 임정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뒷받침한다. ‘한국독립’의 계기가 된 카이로선언이 가능한 것은 임정의 존재때문이다. 尹奉吉·李奉昌의사의 의열투쟁과 항일전선에 몸을 사른 지사들의 희생이중국을 움직이고 중국정부가 미·영 수뇌를 움직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한 것이다. 임정의 최대 성과라 할 것이다. 해방후 국민사이에 이런 노래가 불려졌다. “따따따 따따따 나팔소리 들린다/쿵 쿵 쿵 북소리 들린다/남대문을 열어라 동대문을 열어라/임시정부 들어온다 광복군이 들어온다.” 그러나 임정은 귀환하지 못했다. 임정의 귀국이 거부되면서 한국현대사는이념대결과 친일파가 득세하는 분단과 왜곡의 시대가 되었다. 임정수립 80주년, 해방 54년이 되는 20세기 마지막 임정 기념일에 독립지사들의 순결한 애국정신이 그립다. 남북이 갈리고 지역을 토막쳐서 이념과 이해로 대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애국지사들의 영령앞에 부끄러워하면서, 임정정신이 국민통합과 환난극복, 남북화해의 바탕이 되었으면 한다.
  • [제2공화국과 張勉](12)少壯派의 도전/新風會 리더 李哲承씨

    張勉정부의 안정을 뒤흔든 내부 요인은 민주당 신·구파의 대립만이 아니었다.당내 젊은 의원들,특히 신파쪽 소장파들의 반발과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張勉내각 명단이 발표된 1960년 8월23일 밤 민주당 신·구파의 소장파 대표 두 사람이 만나 양 세력이 제휴해 내각을 견제한다는 데 합의한다.다음날신파 소장파의 주요 멤버인 金在淳의원은 “신·구파 소장의원들이 새로운서클을 형성해 정계를 정화해야 한다”는 ‘제3서클론’을 제기하고 “앞으로 구파의 朴浚圭·金泳三의원 등과 본격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金의원은 이어 “우선 신파 중진들의 모임인 13인위원회 멤버를 제거해야겠다”고 발언했다.이날자 신문들은 ‘민주당 소장파가 張내각 무너뜨리기(倒閣·도각)에 나섰다’는 식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8월25일 신파쪽 소장파의원들은 정치혁신을 표방하고 ‘소장동지회’(후에‘신풍회’로 개칭)를 구성했다.참여의원은 모두 36명으로 대표 격인 총무는 李哲承,대변인은 金在淳,간사는 趙淵夏가 각각 맡았다.이들은 “당내당(黨內黨)으로서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공언했다. 張勉의 첫 내각에는 소장파의원 누구도 장관으로 끼지 못했다.禹熙昌(외무)金載坤(상공)金學俊(체신)등 세 사람이,내각에서 국회쪽 일을 처리하는 정무차관으로 발탁됐을 뿐이다.따라서 정가에서는 “소장파 리더인 李哲承이 국방장관 직을 요구했으나 무산되자 이에 반발한 것”이라는 해석이 그럴듯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소장동지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그것은 張총리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이라기 보다 그를 둘러싸고 요직을 독점하다시피한 ‘고시파’에의불만이었다.고시파란 일제강점기에 고등문관시험을 통과해 고급관리를 한 사람들을 지칭했다.張勉의 첫 내각에서는 金永善재무 曺在千법무 申鉉燉보사金善太 무임소장관 등이 이에 해당됐다.이 그룹의 지도자는 은행가 출신인吳緯泳 국무원사무처장이었으며 이들을 흔히 ‘원내자유당계’로 불렀다. 실제로 내각이 출범하자 구파의 梁一東은 “張勉내각이 아니라 吳緯泳내각”이라고 깎아내렸고,신문에서도 “혜화동 吳씨 사랑방에 속옷 바람으로 앉아 있던 분들이 전원 입각했다”고 비아냥댔다. 소장동지회는 또 李錫基의원이 원내총무 물망에 오르자 “원내자유당계가내각 요직을 독점한 데 이어 총무까지 차지하려느냐”면서 李哲承을 원내총무로 미는 등 저항을 계속했다. 민주당 신파의 소장파가 하나의 세력을 형성한 것은 ‘7·29총선’직후부터이다.광복이후 우익학생운동을 주도해 온 李哲承은 4·19혁명에서 7·29총선에 이르는 정치적 과도기에 학생운동 동지들을 공천하고 당선시키는 데 앞장섰다.총선이 끝나자 李哲承은 30∼40대 초·재선 의원들을 규합해 리더로 떠올랐다. 하지만 신파 소장파가 이념적인 지향성을 공유(共有)하거나 결속력이 강했던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초선의원으로서 張勉내각에서 내무차관을 지낸 金永求(79)는 내내 소장파모임의 멤버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그는 “젊은 국회의원들이 ‘힘은 없지만 청신(淸新)한 정치를 해보자’고 만든 모임이지 당내 서클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자신도 고려대교수(정치학 전공)시절 李哲承을 가르친 인연으로 이름을 올렸을 뿐이라는 것.金永求는 “李哲承의 인맥이 많아 그에게 정치적 기반이됐던 것은 사실이고 張박사도 골치아파했다”면서 가끔은 張勉총리가 자신에게 소장파를 설득하도록 지시했다고 공개했다. 어쨌든 소장파는 한때 신파 의원의 절반 가까이를 확보할만큼 세력을 키웠고 그에 따라 張勉내각에 사사건건 공격을 가했다.또 張勉정부에서는 개각이 모두 세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집요하게 물갈이를 요구했다.그렇지만 2차내각에 金在淳 외무차관·金永求 내무차관이,3차 내각에 朴珉基상공차관 등몇몇이 들어갔을 뿐 끝내 장관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1961년 1월24일 소장동지회는 ‘신풍회(新風會)’로 이름을 바꾸고 정식으로 정파의 모습을 띤다.이틀뒤에는 신민당(민주당 구파)과 무소속의 소장파가 합세해 “새생활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청조회(淸潮會)’를 만든다. 신파 지도부와 신풍회사이의 갈등은 61년 2월 ‘중석사건’으로 드디어 폭발한다.26일 신풍회의 咸종빈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중석이 일본 동경식품에 중석 400t을 수출키로 하면서 100만달러의 커미션을 받는 이면계약을 맺었다”고 발설한 것이다.咸의원은 아울러 그 배후에는 吳緯泳 당시 무임소장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폭로’는 정가에 태풍을 몰고왔다.신민당을 비롯한 야당과 신풍회는張勉정부 최대의 스캔들이 터진 것이라고 흥분했고 언론도 날마다 의혹을 대서특필했다.급기야 배후로 지목된 吳장관은 咸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야당 요구대로 국회에는 ‘중석사건 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지경에까지이른다. 사건이 확대되자 咸의원은 “소문을 들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발뺌하고 사과하지만 張勉정부의 이미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5·16후 쿠데타군은 이 사건을 대표적인 부패사례로 꼽아 철저히 수사하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張勉내각이 이 사건과 관련없음을 오히려 쿠데타세력이 입증해준 꼴이 된 셈이다. 쿠데타가 발생한 지 두달여 지나 월간 ‘사상계’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당대의 독설가’로 불리던 申相楚는 張勉정부를 무너뜨린 주범으로 ‘3신(新)’을 꼽았다.‘3신’이란 이름에 신(新)자가 들어간 세가지,곧 ‘정부를무조건 두들겨팬 신문 민주당 구파가 떨어져나가 만든 신민당,그리고 신풍회였다. 張勉총리의 공보비서관을 지낸 故 宋元英(5선의원 역임)은 회고록에서 “(신풍회가)시시비비로 나온다고 하지만 항상 ‘비(非)’쪽이라 과연 당내 서클인가 의심케 하는 경우가 많았다.30년전 신풍회같은 존재가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공개정치를 표방하는 풍토였다고는 하나 지나친 것이 아닐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 新風會 리더 李哲承씨 李哲承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77)은 제2공화국 때 만40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국회의원이었다.그런데도 3선의원인 그는,소장파 의원 30여명이 속한 신풍회의 리더로서 ‘실세’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신풍회가 張勉정부를 흔들었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입니다.구체적으로 정부나 당에 해를 끼친 일이 없어요.다만 당의 명령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고 의견이나 정책을 낸 것까지 트집잡는다면 할 말은 없소만은” 李의장은,신풍회가 당내에서세력다툼을 벌이는 ‘파벌적’인 성격을 띤 게 아니고 일종의 정책연구 모임이라고 못박았다.“신파 지도자들이 노장층이어서 정치에 새바람(新風)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제2공화국이 내각책임제를 택했지만 사실 당에서 내각에 보낼 장관이나정무차관 재목이 충분하질 않았어요.지방자치제도 시행 중이니 시·도의원들도 키워야 했고.신풍회가 사람을 키워 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구실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張勉내각이 들어선 뒤 신풍회 멤버들이 정무차관으로 많이 들어간 것도 그때문이라는 설명이다. 李의장은,張내각 출범때 국방장관 자리를 얻지 못해 곧바로 ‘도각 운운’했지 않느냐는 질문에 “뭘 도각까지야….신문들이 과장한 거지”라고 부인했다.그러나 국방장관 자리와 관련해서는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남들도 다 내가 국방장관이 된다고들 믿었어요.민주당 신파에서 군 인사들이나 국방관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또 나는 그때 이미 장관이 될만한 리더였습니다” 하지만 노장의원들이 결사반대했다고 한다.李의장은 그 까닭을 “내가 소장파 40명쯤을 거느리고 있는데 군까지 쥐게 되면 총리 자리를 노릴까 걱정해서”라고 풀이했다.그러면서 “張박사가 총리를 한두차례하고 난 다음에는소장파가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李의장은 “내가 국방장관이 됐다면 쿠데타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면서 “(쿠데타 세력이)할 생각도 못했고 하려 해도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나 제2공화국,그리고 張勉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거부했다.민주당은 비록 파벌과 견해차를 갖고 있었지만 순수한 민주적 정당이었고,張勉정부도 정경유착이 없는 깨끗한 정부였다고 평가했다. “대화와 타협,그리고 법치(法治)가 민주당과 張勉정부의 기본 방침이었다”고 밝힌 李의장은 “통솔력이 부족해 질서를 잡지 못했다고들 하는데 그때는 시위를 단속하는 법이 없어 데모 자체가 불법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李의장은 5·16쿠데타를 일본 도쿄에서 맞았다.미국에서 열린 제16차 UN총회에 참석하고 귀국하던 길이었다.미국으로 돌아가 망명생활을 하다 1964년귀국하지만 정치활동정화법에 묶여 71년에야 8대 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한다. “張박사는 덕망과 인격 면에서는 성직자보다도 깨끗한 분이었습니다.외유내강한 분이기도 하고.부통령 시절 저격당했을 때도 의연했고,형무소나 다름없는 순화동 부통령공관을 끝까지 지켰습니다.그렇지만 난세의 지도자로서는 약했다고 봅니다”李의장은 요즘도 張勉총리가 그립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 [金三雄칼럼]-금강산의 엷은 햇살

    국가보안법상의 ‘적’이면서 남북기본합의서상의 ‘특수관계’인 북한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남북관계의 양면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금강산 자락에도 엷은 햇살이 비치면서 잔설이 녹아흐르고 있었다. 장전항에서 ‘입국’절차를 밟고 들어간 온정리는 남한의 여느 시골마을과별로 다르지 않는 예전 우리 모습이었다. 산이 발가벗고 무표정한 어른들의모습이었지만 철부지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금강산 곳곳에 배치된 안전원들역시 애써 지은 무표정 속에서도 한 핏줄이란 속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분단 이후 출생자가 남한 83%,북한 87%가 되는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돼야 한다. 군사비가 130억달러 대 40억달러의 비율로 우리쪽이 질과 양에서 훨씬 우세한 편이고,남측 우방인 미국이 세계유일 최강인 반면 북측 우방이었던 소련은 붕괴된 처지에서 그쪽의 입장을 이해하는아량도 보여야겠다. 모름지기 협상이나 거래는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6,70년대 북쪽이 경제적으로 앞서고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고,미국이 한국에서 1개사단을 철수하는 등 이른바 ‘닉슨 독트린’정책으로 안보가 위태로울때 박정희대통령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서둘러야했던 그 절박한 상황을 돌이켜보자. 지금 북한이 사면초가와 체제모순과 거듭되는 재해로 인한 굶주림 속에서 극단의 대처방법을 추구해온 ‘처지’를조금은 이해할 만도 하다. 결코 북한의 핵이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양해하고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서 협상하고 접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침략전쟁을 잊지 못한다. 6·25와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국민의 반공주의는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정서와 감정 공포 증오로 자리잡게 되었다. 역대 독재정권과 이에 기생한 언론·지식인들의 안보상업주의도한몫을 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민족문제이면서 국제문제의 이중성을 띠면서 남북문제는 이념대결과 열강들의 이해대립으로 굳어지게 되고 남북문제는 ‘골라디온의 매듭’처럼 되고말았다. 여러해 전 프랑스 몽블랑과 스위스 융프라우를 오르면서 우리 금강산에는언제쯤 가게 될까,기약없이 꿈꾸었는데 이처럼 실현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미 4만명 이상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연말까지 10만명 이상이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된다. 큰 변화다. 1년 전에만 해도 금강산 뱃길이 열리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金大中정부의 햇볕정책이 마침내 동토의 문을 열었다. 분단사 또는 통일운동사의 쾌거라 하겠다. 시인·화백 100여명과 함께 오른 만물상과 구룡폭포는 우리가 느껴온 추상보다 훨씬 우람하고 기묘하고 신비하고 청결한 모습이었다. 북한이 금강산을 이렇게 ‘보존’한데 감사드려도 좋을 것이다. 비닐쪽지하나,빈병쪼각 하나도 널려 있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창조주의손길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금강산 뱃길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아니 묘향산과 백두산의 육로가 뚫리도록 참고 이해하면서 화해와 공존의 길을 넓혀야 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이해가 꼭 일방적인 수혜는 아니다. 남북관계가 안전해야 외국의 투자가 가능하고 수출도 늘어난다. 그런 면에서 IMF체제 극복을위해 우리쪽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한 역시 변화의 흐름을 수용해야 한다. 북한이 기아와 후진성 탈피를 위해서는 남한의 지원과 동포애보다 더 절실한 나라는 달리없다. 또한 지나친군사력 증강이 일본 재무장의 빌미를 주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3박4일의 짧은 금강산행을 마치고 귀로 버스에서 일행은 노래와 시낭송으로 감격과 통일의 꿈을 새겼다. ‘음치’인 탓도 있지만 한편의 즉흥시로 ‘음책(音責)’을 면하고자 했다. 그렇게 어렵던 길이던가 그처럼 사무치던 곳이던가 꿈에도 그립던 길이길래 파도치는 동해뱃길 달려갔거니 당신 의연히 거기 있더이다 만물상 구룡폭포 신비의 모습하며 천고의 나래펴며 거기 있더이다 당신 거기있어 금수강산 이름받고 그대 거기있어 통일조국 소망이네 금강산 당신 품에 안길 때 때묻은 분단의 세월 부끄럽고 속세 티끌 떨친 그대 순수에 인간사 이욕과 갈등 수치였네 당신 보고 가는 서울행 찻길에서 대관령 자락 남은 잔설같은 냉전의 장벽 분단의 빙설 허물며 육로길에 다시 만날날 기약하네./주필
  • [대한광장]화사한 웃음이 그립다

    4월이 온다.정말로 봄이다.춘분이 지났으니 청명에 한식이 아닌가.봄비가축축이 내리더니 화창한 봄볕이 가슴을 설레게 내리쬔다.모진 추위와 설한풍을 이겨낸 인내와 끈기의 힘으로 땅 밑에서 버텨온 초목의 뿌리,그 뿌리의생명력으로 푸른 잎과 붉은 꽃들이 준비되고 있다.그래서 ‘참고 견디는 자에게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으리라. ‘겹겹이 싸인 산(山)이라도 봄바람 오는 길 막지 못한다’(峯未碍春風路,茶山詩)라는 시가 있다.그렇다.아무리 깊은 산속,은자가 숨어사는 산골짜기에도 봄은 오고 마는 것이다. 직장을 잃은 실업자의 아우성이 요란하고 파산한 기업가들의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자연은 말 없이 제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나무 끝이 푸르러지고 화사한 꽃은 피어나고,벌과 나비들은 찾아오고 새가 울고 개울물이 철철대는 봄은 와버렸다. 이런 섭리를 누가 막으랴.이렇게 자연은 헌사롭고 찬란하건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너무도 소란하다.너무도 각박하고 매몰차다.웃음과 여유의틈새도 안 보인다.IMF의 어려움을 누가 느끼지 않으리오마는,돈 때문에 제몸뚱이의 일부를 싹둑 잘라내는가 하면 귀염둥이 남의집 자식을 유괴하여 죽이고,자신의 혈육이나 배우자까지도 서슴없이 죽이며,심지어는 남의 조상 묘소까지 파헤쳐 시체까지 유괴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너무도 살벌하다.어려운 형편에 동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짓을 했겠느냐고 생각은 하면서도 거기까지 가서야 인간이 할 일인가라는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다.너무 무섭다. 봄이 오는 뜨락에 서서 인내와 마음의 여유를 회복해보자.‘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녀보라.그러면 단번에 너의 얼굴은 미인이 될 것이다’라는 어떤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백목련·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진달래와 철쭉개나리까지 꽃사태를 이룰 이 봄만이라도 화사한 웃음을 웃으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면 어떠리.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에 감화라도 받듯이,아름다운 새들의 노랫소리에 흥을 타서라도 얼굴에 웃음을 띠고 여유로워질 수 없을까. 추운 겨울을 견디고 새 생명을 잉태하는 초봄처럼 우리도 참고 견디면서 IMF의 어려운 터널을 뚫고 나갈 수는 없을까.괴롭고 불편하고 짜증나고 서러워도 억지로라도 이웃에게 화사한 웃음을 보내고 따뜻한 인사말을 전할 수는없을까.그래서 이 아름다운 봄에 훈훈한 인간사회가 봄동 자라듯이 복원되기를 기원해본다. 공자께서 정말로 어려움에 처한 때가 있었다.제자가“훌륭한 위인에게도 그렇게 곤란한 경우가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그러자 공자께서“그렇다.그러나 훌륭한 사람은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극복해 가지만어리석은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하면 못 견디고 도(道)에 지나친 길로 일탈해 버리는 것이다”고 답변하였다.원문으로 말하면 ‘군자(君子)는 고수기궁(固守其窮)이요 소인(小人)은 궁사람(窮斯濫)’이다.군자는 진실로 그 궁함을 지키고 소인은 궁하면 거기에서 넘쳐 버린다는 내용이다. 천금 같은 말이다.보험금을 타려고 제몸을 자르고 혈육을 죽이는 것이야 지키지 못하고 넘쳐버림이다.남의 조상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유괴함도 넘쳐버린 일이다.이 어려운 시대에 넘치지 않는것이 쉽지야 않겠지만 인간의 도리로서 참고 견디어야지 어쩔 것인가.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려운 것이다.서로 돕고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궁함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실직자 노숙자 걸식자 궐식자,모두가 우리의 동포요 이웃들이다.함께 하는어려움은 극복하지만 혼자 하는 어려움은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다.이봄,이 화사한 꽃의 계절에 이웃과 손을 잡고 함께 가고 밝은 미소를 서로 간에 나누면서 이 어려운 세상을 이겨내야 한다.살벌함·각박함·넘침 같은 일을 모두 줄이고 새롭게 기지개를 켜면서 함께 가보자. 박석무 한국학술진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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