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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경, 건축에 자연을 담다[노은주·임형남의 K건축 이야기]

    차경, 건축에 자연을 담다[노은주·임형남의 K건축 이야기]

    청소년들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10대의 대부분을 입시에 대한 중압감 속에서 보낸다. 나 또한 중압감을 느끼면서 열심히 공부하지도 잘 놀지도 못하며 어중간하게 그저 책상에 앉아만 있었다. 그냥 놀기는 눈치 보이고 교재를 들여다보기는 지겨울 때 국어 교과서를 아늑한 피난처 삼았다. 따지고 보면 국어 교과서는 우리말로 지어진 좋은 글들을 총망라한 한국말의 보고였다고 생각한다. 김영랑의 시, 안톤 슈나크의 수필, 정철의 가사 등 모두 문자 그대로 구슬 같고 옥과 같은 좋은 글들이다. 특히 조선 황진이의 시조는 내용도 훌륭하지만 글이 입으로 들어와 혀끝에 닿을 때의 느낌이 너무나 좋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버혀내어// 춘풍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한겨울 긴 밤을 한허리 베어 내 서리서리 넣어 놨다가 보고 싶은 이 오면 굽이굽이 펴겠다는 이 짧은 시조는 화려하면서 애절하게 피어 있는 꽃 같기도, 맛있게 조리된 음식 같기도 하다 결국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지금도 가끔 시렁 위에 올려놓은 곶감처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이 글을 외운다. 한국어는 다양한 양념으로 만든 깊고 풍부한 우리 음식처럼 무척 다양한 어휘가 있다. 또한 입에 닿는 느낌이 형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생생하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독특한 구조와 역사, 정서가 깃들어 있고 그 언어가 가진 속성을 잘 살려 독특한 미감과 정서를 듬뿍 담은 글이 있다. 한글도 아름다운 글들로 생명을 얻고 한국만의 독특한 정서로 살아남아 있다. 몇백 년 전 어떤 이가 지은 글이 시간을 뛰어넘어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건축도 그렇다. 절대적으로 좋은 건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 혹은 그 나라의 특별한 환경에 적합하고 독특한 정서와 미감을 잘 담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멋진 그림이 되기도 한다. 물론 잘 지었을 때만 그렇긴 하지만. 멋진 비례 혹은 훌륭한 재료만큼 중요한 것이 공간 간의 관계이고 또한 자연과의 관계이다. 자연을 건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인간과 건축의 관계만큼 중요한 건축의 요소이다. 자연에 살고 싶어 하면서도 자연을 두려워하는, 이런 복합적이고 양립하는 감정들이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건축은 자연을 바라보는 창이다. 땅 위에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창을 달아 풍경을 담는다. 문으로는 사람이 드나들고 창을 내어 자연이 드나들게 만든다. 그리고 각 영역의 성격에 맞도록 경치를 담는다. 말하자면 그림을 액자에 담아 거는 것처럼 건축은 풍경을 방으로 끌어들이는 행위가 된다. 자연을 보는 시각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인 ‘차경’(借景)은 동양의 공통적인 조경법이다. 한중일에서 특히 많이 사용하는데 한국은 그중에서도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이 각별하다. 중국 정원은 매우 화려하고 이야기가 명확하며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뚜렷하다. 정교하게 꾸민 일본 정원은 아름다움에 거리를 두고 정중하게 줄을 지어 감상한다. 우리는 인공 구조물을 만들되 자연스럽고 은근하게 자연에 끼어든다. 마치 솜씨 좋은 바느질로 감침질하듯 경계가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충남 아산에 염치(鹽峙)라는 동네가 있다. 소금고개라는 뜻일 것이다. 그 한가운데 1950년에 물길을 막아 만든 호수가 있다. 아주 넓은 호수는 아니지만 주변에 낮은 산들이 멀찍이 둘러치고 남쪽 한 귀퉁이는 너른 논으로 툭 터져 있어 제법 호방하고 넉넉한 느낌이다. 이곳에 호수와 바로 붙어 있고 동서로 길어 남쪽을 넓게 마주본 땅에 집을 지었다. 한 부부의 의뢰로 부모님과 손님을 고려해 세 채로 구성된 집을 설계했다. 예전에 3대 혹은 그 이상의 대가족이 한집에 살던 때에는 다양한 세대 간의 갈등을 완충하기 위한 공간적 장치가 필요했다. 각 채를 분리하고 그 사이 마당이 완충 공간이 돼 세대 간, 성별 간 거리를 벌려 놨다. 이 집도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조금 거리를 둘 수 있는 마당의 적절한 배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집을 지을 때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땅의 형상과 주변과의 관계다. 동서로 길고 전면이 트인 형상을 고려해 세 단위의 집이 나란히 붙은, 즉 병렬로 세 개의 사각형을 놓은 듯한 구성을 택했다. 강을 향해 나란한 세 사각형 중 왼쪽은 부부가 쓰는 안채, 가운데는 부모님채, 오른쪽에는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과 거실이 있는 공용채를 놓고 중간중간 마당으로 사이를 벌렸다. 그리고 각 채의 창에서 보이는 호수는 조금씩 다른 풍경이 되도록 만들었다. 호수를 한허리 베어 내 각 창문에 담았고 각자의 마당에 담았다. 안채의 마당은 관리가 쉬운 정적이고 담담한 마당이고, 부모님 채의 마당은 간단한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쪽마루까지 달린 푸른 마당이다. 집은 호수와 평행하며 이어진다. 길에서도 호수가 보이도록 중간에 열리는 부분을 만들었다. 1층에서는 각 채가 분리되지만 2층의 복도를 통해서는 모두 연결된다. 그렇게 자연을 끌어들이고, 호수를 담은 집이 완성됐다. 노은주·임형남 부부 건축가
  • 강서 마곡에 ‘하늘 품은 야외도서관’… 초가을 정취 속 책과 문화 즐겨 봐요[현장 행정]

    강서 마곡에 ‘하늘 품은 야외도서관’… 초가을 정취 속 책과 문화 즐겨 봐요[현장 행정]

    새달 19일까지… 이달엔 금토일이동하면서 1500권 오감 만끽강연·체험행사·음악회 등 다양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 이동하는 시대에 맞게 실내 도서관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하늘품은 야외도서관’을 꾸몄습니다.” 진교훈 서울 강서구청장이 지난 6일 발산역 1번 출구 마곡 문화의 거리에 들어선 하늘품은 야외도서관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품은 야외도서관은 ‘이동하는 인간’(호모 모벤스)을 주제로 ▲공간의 이동(여행) ▲시간의 이동(인생) ▲기술의 이동(인공지능) 등 3가지 이동에 대한 강연이나 각종 체험행사, 책 등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다음달 19일까지 두달간 진행되며 이번달은 금·토·일, 다음달에는 주말에 운영된다. 이날 개막식에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성호 강서구의회 의장 등 구의원, 8개 구립도서관 관장, 교보문고 원그로브점과 예스24 강서NC점 관계자, 지역 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모래로 그림을 그려 이야기로 전달하는 샌드아트 공연이 시작되자, 청중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을 돛으로 단 배를 순식간에 모래로 표현되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어 무대에 오른 진 구청장은 어린이 참여자와 함께 그림 하단에 모래로 ‘하늘 품은 야외도서관’이라고 쓰며 개관을 알렸다. 이곳은 야외도서관의 주제처럼 이동하며 책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발산역에서 출발하는 ‘스탬프투어’를 시작하면 자동차나 비행기 등 모양의 이동형 서가 등에 배치된 1500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 교보문고는 헌책 교환이나 굿즈 할인 판매를, 예스24는 컬러 전자책 체험이나 손글씨 필사 행사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날 진 구청장은 빈백 의자 앞에 있는 ‘중심서가’ 컨테이너, 책갈피 등을 만드는 체험부스, 하늘이 비치는 거울 포토존 등을 둘러보며 직접 인증 도장을 찍었다. 의자나 서가가 야외에 있는 만큼 소나기가 그친 직후에도 시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등 시설도 수시로 점검했다. 스탬프를 완성하고 3등을 뽑은 진 구청장은 행복이라는 꽃말을 지닌 세잎클로버 책갈피를 받았다.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선 주민들은 곳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들었다. 초6 김지우(12)군은 “평소 과학이나 생물책을 좋아하는데 마침 좋아하는 물리 만화책이 있었다”면서 “엄마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으니 운동도 된다. 다음에 친구와 또 올 생각”이라며 웃었다. 강서구는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해 오는 20일 꽃차시음, 27일 클래식 음악회, 28일 입체 낭독극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진 구청장은 “주민들이 하늘을 벗 삼아 야외도서관에서 문화를 즐기며 가을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더피’가 리움의 수장고도 열었네… 1592년 작품 ‘호작도’ 첫 공개

    ‘더피’가 리움의 수장고도 열었네… 1592년 작품 ‘호작도’ 첫 공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에 미술관, 박물관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은 케데헌에 등장하는 호랑이, 까치 캐릭터 ‘더피’와 ‘수지’를 찾아 조선 시대로 떠나는 특별한 미술 여행을 마련했다. 상설 기획전 ‘까치호랑이 호작(虎鵲)’ 전시를 통해서다. 이 전시는 애초 리움의 연간 일정에 잡혀 있지 않았지만, 최근 케데헌의 인기에 새로 기획됐다. 전시는 호랑이와 까치라는 친근한 소재를 통해 한국인의 미의식과 해학, 그리고 시대적 풍자를 드러내는 전통 미술의 정수를 선보인다. ‘호작도’의 기원을 보여 주는 16세기 말 작품에서부터 민중 문화 속 해학과 풍자로 자리잡은 19세기 민화, 그리고 조선 후기 화단의 거장 단원 김홍도의 정통 회화에 이르기까지 호작도의 폭넓은 스펙트럼과 다층적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까치호랑이와 관련된 7점이 전시되며, 특히 리움이 소장한 1592년 작 ‘호작도’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까치호랑이 그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중국 원나라에서 정립된 ‘호작도’의 형식이 한국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리움 측은 설명했다. 추상적 표현법이 파블로 피카소의 화풍을 연상시킨다 해서 ‘피카소 호랑이’라 불리는 19세기 작 ‘호작도’도 만날 수 있다. 노란 호피와 검은 먹선의 강렬한 대비, 단순하면서도 해학적인 호랑이 표정이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아울러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도 전시됐다. 전시는 오는 11월 30일까지. 케데헌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오는 26~28일 전통 문화를 새롭게 즐기는 축제 ‘2025 국중박 분장놀이’를 연다. 축제 기간 박물관 열린마당에서는 호랑이, 신라 금관, 광복을 주제로 한 포토존을 운영한다. ‘호랑이존’에서는 ‘호작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관람객 누구나 포토존을 이용할 수 있다. 전통 복장은 무료 대여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경주 개최를 기념한 ‘신라 금관존’은 금관 모형을 곁들인 찬란한 황금 방을 연출한다. 광복 80주년을 기리는 ‘광복존’은 독립과 자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뿐 아니라 케데헌의 걸그룹 헌트릭스와 맞서는 보이그룹 사자보이스로 분장한 남성 댄스 인플루언서가 공연을 선보이며 인증샷 이벤트 ‘사자를 찾아라’도 함께 진행된다.
  • 트럼프는 안 그렸다 주장하지만… 美의회 ‘엡스타인 외설 편지’ 공개

    트럼프는 안 그렸다 주장하지만… 美의회 ‘엡스타인 외설 편지’ 공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03년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외설스러운 생일 축하 편지가 언론에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편지의 존재를 부정했던 만큼 진위 논란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연방 하원 감독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엡스타인 유산 공동집행인 변호사들이 제공했다며 엡스타인의 ‘생일책’에 담긴 트럼프 대통령 편지 추정본을 공개했다. 편지는 검은 잉크로 여성 나체 상반신의 윤곽선을 그리고, 아래에 트럼프의 독특한 필체로 ‘도널드’(Donald)라는 서명이 달렸다. 나체 위에 ‘제프리’와 ‘도널드’의 짧은 대화 문장을 적은 뒤 “생일 축하해, 그리고 하루하루가 또 다른 멋진 비밀이 되길”이라고 끝맺었다. 서명은 여성의 음모를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고 편지의 존재를 처음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정황상 생일 축하 메시지를 인쇄한 뒤,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 편지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부인해 왔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허위 보도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WSJ 등을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 소송을 낸 상태다. 관련 보도에 대해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특히 여성 그림은 안 그린다”고 반박한 바 있다. 다만 이번 편지 공개가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수 차례 거론됐다는 보도나, 엡스타인의 ‘고객 명단’에 트럼프 대통령이 포함됐다는 의혹을 직접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소셜미디어에 “줄곧 말해왔듯, 트럼프 대통령이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서명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부인했다. 감독위는 추가 자료들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유산 집행인 측은 해당 문서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성추행 명예훼손 소송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뉴욕 관할 연방고등법원 재판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성추행 피해자인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명예훼손 위자료 8330만 달러(약 1155억원)을 지급하라’며 원심 유지 판결을 내렸다.
  • 이번 주말엔 강서 마곡 ‘하늘품은 야외도서관’ 가볼까

    이번 주말엔 강서 마곡 ‘하늘품은 야외도서관’ 가볼까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 이동하는 시대에 맞게 실내 도서관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하늘품은 야외도서관’을 꾸몄습니다.” 진교훈 서울 강서구청장이 지난 6일 발산역 1번 출구 마곡 문화의 거리에 들어선 하늘품은 야외도서관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품은 야외도서관은 ‘이동하는 인간’(호모 모벤스)을 주제로 ▲공간의 이동(여행) ▲시간의 이동(인생) ▲기술의 이동(인공지능) 등 3가지 이동에 대한 강연이나 각종 체험행사, 책 등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다음달 19일까지 두달간 진행되며 이번달은 금·토·일, 다음달에는 주말에 운영된다. 이날 개막식에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성호 강서구의회 의장 등 구의원, 8개 구립도서관 관장, 교보문고 원그로브점과 예스24 강서NC점 관계자, 지역 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모래로 그림을 그려 이야기로 전달하는 샌드아트 공연이 시작되자, 청중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을 돛으로 단 배를 순식간에 모래로 표현되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어 무대에 오른 진 구청장은 어린이 참여자와 함께 그림 하단에 모래로 ‘하늘 품은 야외도서관’이라고 쓰며 개관을 알렸다. 이곳은 야외도서관의 주제처럼 이동하며 책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발산역에서 출발하는 ‘스탬프투어’를 시작하면 자동차나 비행기 등 모양의 이동형 서가 등에 배치된 1500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 교보문고는 헌책 교환이나 굿즈 할인 판매를, 예스24는 컬러 전자책 체험이나 손글씨 필사 행사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날 진 구청장은 빈백 의자 앞에 있는 ‘중심서가’ 컨테이너, 책갈피 등을 만드는 체험부스, 하늘이 비치는 거울 포토존 등을 둘러보며 직접 인증 도장을 찍었다. 의자나 서가가 야외에 있는 만큼 소나기가 그친 직후에도 시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등 시설도 수시로 점검했다. 스탬프를 완성하고 3등을 뽑은 진 구청장은 행복이라는 꽃말을 지닌 세잎클로버 책갈피를 받았다.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선 주민들은 곳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들었다. 초6 김지우(12)군은 “평소 과학이나 생물책을 좋아하는데 마침 좋아하는 물리 만화책이 있었다”면서 “엄마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으니 운동도 된다. 다음에 친구와 또 올 생각”이라며 웃었다. 강서구는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해 오는 20일 꽃차시음, 27일 클래식 음악회, 28일 입체 낭독극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진 구청장은 “주민들이 하늘을 벗 삼아 야외도서관에서 문화를 즐기며 가을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백지상태’ 지식재산처, 국가 지식재산 컨트롤타워 역할 ‘산 넘어 산’

    ‘백지상태’ 지식재산처, 국가 지식재산 컨트롤타워 역할 ‘산 넘어 산’

    지식재산처가 지식재산 ‘컨트롤타워’로 역할을 하려면 각 부처로 흩어져 있는 지식재산(IP) 업무 이관과 조직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당정이 7일 발표한 정부 조직 개편안을 보면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외청인 특허청이 국무총리 소속인 지식재산처로 승격된다. 정부 조직법 개정안이 공포되는 시점부터 시행 예정인 가운데 사전 조정절차가 없어 안정화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게 됐다. 9일 특허청과 IP 업계 등에 따르면 지식재산처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의 기본인 ‘지식재산’의 총괄·조정 관리 및 정책 수립, 창출·활용 촉진, 보호 강화 등 국가 IP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 지식재산은 산업재산권은 특허청, 저작권은 문체부, 식물 신품종은 농림식품부 등으로 제각각 관리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IP 정책 수립과 통합관리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지재위)는 과기부에서 총리실로 이관된다. 지재위가 가동되는 만큼 타 부처 업무까지 이관하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무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특허청 관계자는 “정부 조직개편안은 부처 간 업무 조정이 포함돼 있지 않은, 백지상태로 9월 말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 조직과 기능 등은 하위 법령에서 정하게 된다”며 “핵심은 지식재산 총괄조정 기능을 갖는 정부 조직이 가동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식재산 총괄조정 관리와 함께 지식재산처 직제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IP 업계를 중심으로 심사 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특허심판원과 같은 특허심사원 설치 필요성이 나온다. 정책과 심사, 심판 체계를 갖춰 신속한 업무 추진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승격하면서 정부 부처 중 유일한 책임운영기관이 사라지게 됐다. 이에 따라 책임운영기관 특별회계가 적용됐던 지식재산처의 회계 문제도 관심이다. 처급 기관은 특별회계가 아닌 일반회계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예산 변화가 불가피하다. 변리사업계는 지식재산처 출범을 앞두고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흩어져 있는 지식재산 관련 업무를 통합하고 범국가적 총괄 체계를 갖춰 비효율성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지식재산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변리사의 공동소송 대리 등 역할 확대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트럼프가 그린 ‘음란한 그림’”…미성년자 성착취범 엡스타인에게 쓴 편지 공개

    “트럼프가 그린 ‘음란한 그림’”…미성년자 성착취범 엡스타인에게 쓴 편지 공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제프리 엡스타인의 생일을 축하하며 보낸 ‘외설적 그림’을 담은 편지가 공개됐다. 백악관은 문제의 그림이 ‘가짜’라고 반박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이날 미 하원 감독위원회가 엡스타인 유산 공동집행인 변호사들이 제공한 2003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축하 편지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편지를 보면 여성 나체의 윤곽선을 따라 ‘제프리’와 ‘도널드’가 대화하는 형식의 문장이 적혀 있다. 그림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생일을 축하한다, 하루하루 또 다른 멋진 비밀이 되길”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편지의 하단에는 ‘도널드 J.트럼프’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도널드’라는 서명이 있는데, 월스트리트저널 등 일부 현지 언론은 이 서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서명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7월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엡스타인의 ‘끈끈한 관계’를 암시하는 해당 편지의 존재를 보도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다. 특히 여성 그림은 안 그린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 등 일부 언론이 허위 보도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더불어 현지에서는 엡스타인 수사 기록이 담긴 검찰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이번에 미 하원 감독위원회가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 편지의 ‘외설적 그림’과 관련해 백악관은 발끈하며 강하게 부인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엑스에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한 ‘생일 축하 편지’ 관련 보도 전체가 모두 거짓임을 증명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해당 보도를 한 매체에 대한 법적 소송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서 “거짓 내용에 대한 보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 [포착] “트럼프가 그린 ‘음란한 그림’ 공개”…미성년자 성착취범에게 쓴 편지 내용은?

    [포착] “트럼프가 그린 ‘음란한 그림’ 공개”…미성년자 성착취범에게 쓴 편지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제프리 엡스타인의 생일을 축하하며 보낸 ‘외설적 그림’을 담은 편지가 공개됐다. 백악관은 문제의 그림이 ‘가짜’라고 반박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이날 미 하원 감독위원회가 엡스타인 유산 공동집행인 변호사들이 제공한 2003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축하 편지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편지를 보면 여성 나체의 윤곽선을 따라 ‘제프리’와 ‘도널드’가 대화하는 형식의 문장이 적혀 있다. 그림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생일을 축하한다, 하루하루 또 다른 멋진 비밀이 되길”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편지의 하단에는 ‘도널드 J.트럼프’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도널드’라는 서명이 있는데, 월스트리트저널 등 일부 현지 언론은 이 서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서명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7월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엡스타인의 ‘끈끈한 관계’를 암시하는 해당 편지의 존재를 보도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다. 특히 여성 그림은 안 그린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 등 일부 언론이 허위 보도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더불어 현지에서는 엡스타인 수사 기록이 담긴 검찰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이번에 미 하원 감독위원회가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 편지의 ‘외설적 그림’과 관련해 백악관은 발끈하며 강하게 부인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엑스에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한 ‘생일 축하 편지’ 관련 보도 전체가 모두 거짓임을 증명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해당 보도를 한 매체에 대한 법적 소송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서 “거짓 내용에 대한 보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 뭐가 부끄러웠을까? 지구 그림자에 숨은 ‘붉은 달’

    뭐가 부끄러웠을까? 지구 그림자에 숨은 ‘붉은 달’

    8일 오전 경북 영천시 보현산천문과학관에서 올려다본 하늘에서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개기월식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26분 48초에 부분월식이 시작돼 오전 3시 11분 48초에 최대가 된 뒤 오전 5시 56분 36초에 월식의 전 과정이 끝났다. 개기월식 때 달이 붉게 보이는 ‘블러드문’ 현상도 관측됐다. 사진은 달을 촬영한 사진 7장을 레이어 합성해서 만들었다. 영천 연합뉴스
  • “세계질서 재편기, 韓엔 기회… AI 혁신경제·재정 개혁·평화… 李정부 담대하게 미래 걷자” [문소영의 브라운백 미팅]

    “세계질서 재편기, 韓엔 기회… AI 혁신경제·재정 개혁·평화… 李정부 담대하게 미래 걷자” [문소영의 브라운백 미팅]

    첨단 기술이 외교·안보인 시대AI·기후 테크·바이오 분야 핵심다국적 기업 아시아본부 유치와세계적 기업 M&A 적극 나서야정부가 주택·보육·의료 해결해야720조 예산 제로베이스서 ‘새 판’ 국민연금 토지임대부 주택 투자출생 1억원 펀드 ‘연금제’ 고려를李대통령 임기 트럼프 3.5년 겹쳐한미가 함께 한반도 평화 열 기회북극항로 남북 관계 개선 가능성확실한 ‘내란 설거지’ 박수 받을 것당면한 내란 세력 척결이나 관세 전쟁, 정상 외교 등에 대응하느라 한국의 미래를 조망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안은 현안대로 해결하고 미래는 미래대로 조망해 가야 이 혼란한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FTA의 강자’ 한국을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이자 전략가인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을 지난달 27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한국의 미래를 탐색해 봤다. 개항기 이후 150년 만에 찾아온 세계 질서의 재편기에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현시대를 세계사적으로 규정한다면. “인공지능(AI) 등 핵심적인 기술 전쟁에 기초한 세계 질서 재편기라고 볼 수 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기에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국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19세기 영국과 중국의 아편 전쟁이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이번 재편기에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기술 경쟁의 핵심은 AI이며 기후 위기를 극복할 기후 테크(에너지) 활성화,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바이오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 첨단 기술 자체가 외교이자 안보인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이 시기를 한국은 어떻게 돌파해 나가야 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법을 차용해 볼 수 있겠다. 외환위기에서 탈출하고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를 청와대에서 면담한 뒤 벤처 육성에 올인하면서 정보기술(IT) 시대를 열었다. DJ 정부 때 기술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도 신설했다. 닷컴 버블 논란이 있었지만 IT 강국으로 불렸다. 이재명 정부도 AI와 바이오, 기후 테크 육성을 선언했다. 첨단 혁신기술 투자에 힘을 모으고 자금과 사람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한다면 ‘코스피 5000 시대’ 개막이 가능하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등도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더 높여 신기술 발전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혁신경제 성장에서 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나라들이 있나. “싱가포르 전략이 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헤드쿼터(HQ)가 싱가포르로 다수 이전했다. 그 결과 HQ는 싱가포르 4000개, 홍콩 2000개, 중국 상하이 1000개, 일본 500개, 한국 82개 순이다. 1990년대와 달리 21세기의 한국에는 HQ 유치에 좋은 조건들이 형성됐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급등했다. 전략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HQ를 서울로 유치할 기회다. 두 번째로는 에마뉘엘 마크롱의 전략인데, 빅테크 기업 대표들을 한국에 초청해 이들의 비전을 전 부처 장관들은 물론 국민에게까지 공유·확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들의 비전이 미래의 비전이다.” -산업화·민주화 시대 이후 한국 사회의 방향성은. “세계적인 기술 격변기에 한국이 성장할 수 있느냐, 성장한다면 과연 국민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느냐, 국민행복으로 중산층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느냐 등과 연결돼 있다. 첨단 기술 경쟁에서 압도적인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국민의 일자리와 소득을 지킬 수 있다. ‘국민행복 5형제’로 주택, 보육, 의료, 노후연금, 문화생활 등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이 중 정부가 주택·보육·의료를 해결해 줘야 한다.” -주택·보육·의료를 정부가 어떻게 해결하나. “재정에서 제로베이스 예산을 짜야 한다. 예산 구조조정이다. 전두환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딱 두 번 해 봤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안 될 때와 1만 5000달러일 때, 3만 5000달러일 때 각각 돈 쓰는 구조가 달라야 한다. 내년 국가 예산 편성이 720조원을 넘는데 주택 정책과 보육·교육, 의료에 집중해야 한다. 매년 8조원이 들어가는 도로는 이제 그만 닦자. 집 문제는 싱가포르처럼 토지주택공사(LH) 등이 주체가 돼 토지임대부 주택을 운영해 보자. 국민연금이 해외 부동산에 50조원을 투자하는 대신 토지임대부 주택에 투자해 보자 등등이다. 또 공교육(70조원)과 사교육(40조원)에 110조원이 쓰이는데, 입시 교육으로 교사나 학생 모두가 괴로워한다. 효율적인 미래 교육이 필요하다. 부처를 따지지 말고 국가 소유의 땅을 잘 활용해서 국립 어린이집을 다수 확보해 육아를 돕는 방안도 있다. AI 시대에는 노후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더 잘 설계돼야 한다. 신생아가 탄생하자마자 1억원의 펀드를 조성하는 ‘평생국가연금제’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8만 농가가 130조원을 수출하는 반면 한국은 100만 농가가 13조원을 수출하는 구조다. 약 20조원인 농업 예산을 좀더 합리적으로 써야 한다.” -각국에서 이른바 극우가 득세하고 있다. “유럽식 복지 모델로는 중산층의 붕괴, 일자리 감소로 인한 정치적 양극화 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유럽은 인구 6억 5000명인데 국내총생산(GDP)이 25조 달러이고, 미국은 3억여명인데 GDP가 30조 달러다. 생산성 차이가 3배이다. 유럽이 혁신경제 경쟁에서 실패했다는 의미다. 미국인들은 미국 우선주의에 열광한다. 유럽도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정당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각국이 혁신경제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면, 이런 추세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국 젊은이들의 우경화에 대한 평가는. “한국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원하고 있다. 집값은 올라가고 주식도 돈이 있어야 하니 세금이 없는 코인 거래에 쏠린다. 코인 거래량이 코스닥 거래량을 압도하지만, 정치권은 이 생태계를 방기했다. 20대 남성에게는 군대 문제도 심각하다. 혁신경제 시대에 걸맞은 일자리, 정치권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우경화 현상도 점차 해소된다.” -한국 혁신경제가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 “미국의 테크 기반 서비스 기업들이 한국에 와서 좌절했다. 대표적인 게 ‘우버의 좌절’이다.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서 사업하면 교도소 간다’는 말이 있다. 규제 샌드박스로 규제 완화를 시도했는데, 해결하지 못했다. 자율주행차도 원격의료도 막혔다. 특히 원격진료는 코로나 때 일부 진행하다가 추가적 실험이 안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경우 메타, 구글, 엔비디아, 아마존, 테슬라 등이 MS와 애플의 뒤를 이어 신경제를 이끌어가지만 한국에서는 네이버나 카카오 이후 걸출한 ‘2세대 기술 기업’이 나오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규제를 확 풀어 신경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강남언니’(미용의료 플랫폼), ‘로톡’(법률상담 플랫폼)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성공해야 한다.” -한국은 AI 혁신경제에서 얼마나 뒤처졌나. “2016년을 기점으로 할 때 박근혜 정부 1년+문재인 정부 5년+윤석열 정부 3년을 통틀어 9년이 늦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AI인 알파고와 바둑을 둬 4대1로 패배하면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과 중국은 총력전을 펼쳤다. 한국도 그때 AI 개발에 뛰어들었어야 하는데, 낡은 리더십 탓에 못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왜 못 했나. “적폐 청산에 너무 힘을 많이 뺐다. 2020년 총선이 끝난 뒤 ‘뉴딜 전략’을 제기했지만, 임기 중반 이후라 정책이 힘을 받지 못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9년 방한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며 AI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강조했는데 정책 구현이 잘 안됐다. 게다가 2008년 이후로 미국과 중국 등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강조됐는데, 한국 정치권은 경제성장을 여전히 시장 몫이라고 판단했다. 국가 ‘기획’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놓친 것이다. 사실 코인과 블록체인도 한국이 가장 빨랐지만, 여의도나 정부가 그 생태계를 외면했다.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대에 한국은 크립토 경제에 벤처 지정도 안 해 주는 나라다.” -한국의 혁신경제 전략으로 추가할 만한 것은. “한국은 혁신경제에 필요한 원천 기술이 거의 없다. 세계적인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도 미국의 크라이슬러나 웨스팅하우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아시아본부에 대한 M&A를 검토했었다.” -국가 연구개발(R&D) 개혁이 필요한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며, 국가적 R&D 분배 때 세계적 석학을 모셔서 자문받을 필요가 있다. 한국은 연구 과제 중 98%가 성공한다. 잘못됐다. 성공률 20~30%인 도전적 과제에 뛰어들어야 ‘유의미한 실패’를 거둘 수 있다. 삼성 등 대기업이 내부에서 연구하기보다 대학들과 협력하는 산학 합동 연구를 하기를 권장한다. 대학의 연구 자금이 1조원대로 올라간다면, 결과 자체가 달라진다.” -이재명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이재명 대통령과 한국 국민에게 기회의 시간이 왔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은 ‘정치적 IMF’였다. 그 여파로 서민 경제가 치명타를 입었다. 그래서 반전의 기회도 왔다. 첫째는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3.5년의 임기를 함께한다. 한반도 평화를 한미가 함께 열어 갈 기회가 있다. 특히 북극항로 개막과 관련해 미국·러시아와 함께 남북 관계 개선의 시나리오가 나올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둘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 시기에 대기업 구조조정 틈에서 벤처 육성의 기회를 얻었듯이 이 대통령도 AI 혁신경제 생태계 형성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셋째 경제 위기를 극복할 제로베이스 예산과 같은 재정 개혁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넷째 특검의 ‘내란 설거지’는 야당의 자업자득인 만큼 각종 개혁에서 정치 보복 프레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래로 담대하게 발걸음을 옮기기만 한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중도를 확실하게 안고 가야 한다.” ■이광재 전 사무총장은 강원도 출신으로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23세 때 국회의원 노무현의 보좌관을 시작으로 30대 후반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40대에 국회의원(17·18대), 45세에 최연소 도지사(2010년)로 일했다. 그 후 칭화대,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를 거쳐 제21대 총선에서 당선됐고 2022년 국회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민주당 내 비전 제시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노무현이 옳았다’, ‘세계의 미래를 가장 먼저 만나는 대한민국’ 등이 있다. 문소영 대기자
  • 산과 강이 빚어낸 한 폭의 그림, 홍천 팔봉산

    산과 강이 빚어낸 한 폭의 그림, 홍천 팔봉산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에 자리한 팔봉산은 해발 327.4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경관과 톱날처럼 이어진 여덟 개의 암봉이 빚어내는 독특한 능선미로 한국의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홍천 9경’ 중 제1경에 속할 만큼 홍천을 대표하는 명소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팔봉산의 봉우리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비경과 기암괴석을 품고 있으며, 산허리를 감싸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홍천강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팔봉산의 이름은 여덟 개의 봉우리를 뜻하며, 봉우리 하나하나에 전설이 깃들어 예부터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어왔다. 각 봉우리에 수석처럼 자란 소나무들은 마치 병풍 한 폭이 펼쳐진 듯 동양화 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팔봉산의 산세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날카롭고 가파른 것이 특징이다. 초반 등산로를 벗어나면 거의 수직에 가까운 봉우리들 사이로 소나무들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어느 봉우리에 서든 굽이치는 홍천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높이에 비해 다채로운 풍경과 스릴 넘치는 코스로 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산이다. 여덟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제2봉에는 삼부인당이라는 제단이 있다. 이곳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열리는 곳으로, 600년간 이어져 온 유서 깊은 민속 문화다. 매년 봄과 가을에 지내는 이 제사는 주민들의 풍요와 번영, 그리고 팔봉산을 찾는 모든 방문객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건강과 행복을 소망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3봉은 여러 봉우리 중 가장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정상인 제2봉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시원하고 경쾌한 풍경을 선사한다. 제4봉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장수굴’ 또는 **‘해산굴’**이라 불리는 작은 굴을 통과하는 것인데, 굴을 통과하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굴을 지나는 어려움이 산모의 고통과 같다 하여 해산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봉우리마다 특별한 바위와 의미를 지니고 있어, 등산 내내 심심할 틈 없이 비경을 만날 수 있다. 팔봉산의 등산 코스는 대부분 주차장을 시작으로 제1봉을 거쳐 여덟 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오르는 일방통행 코스다. 총 길이는 약 2.6km이며 3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독특한 코스는 스릴을 선사하지만, 급경사와 로프, 사다리 구간 등 위험 요소가 많아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현재 안전상의 이유로 제2봉 하산로는 통제되고 있으며, 제2봉과 제7봉에 중간 하산로가 있으나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어 권장하지 않는다. 또한 겨울철에는 안전을 위해 전체 구간이 통제된다. 팔봉산 인근 유원지에서는 홍천강을 따라 야영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풋살장과 식당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펜션단지와 래프팅, 사륜 오토바이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높지는 않지만 도전적인 등산코스, 맑고 깨끗한 홍천강, 그리고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팔봉산은 자연 체험과 문화 향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복합 관광지로서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산과 강이 빚어낸 한 폭의 그림, 홍천 팔봉산 [두시기행문]

    산과 강이 빚어낸 한 폭의 그림, 홍천 팔봉산 [두시기행문]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에 자리한 팔봉산은 해발 327.4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경관과 톱날처럼 이어진 여덟 개의 암봉이 빚어내는 독특한 능선미로 한국의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홍천 9경’ 중 제1경에 속할 만큼 홍천을 대표하는 명소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팔봉산의 봉우리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비경과 기암괴석을 품고 있으며, 산허리를 감싸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홍천강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팔봉산의 이름은 여덟 개의 봉우리를 뜻하며, 봉우리 하나하나에 전설이 깃들어 예부터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어왔다. 각 봉우리에 수석처럼 자란 소나무들은 마치 병풍 한 폭이 펼쳐진 듯 동양화 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팔봉산의 산세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날카롭고 가파른 것이 특징이다. 초반 등산로를 벗어나면 거의 수직에 가까운 봉우리들 사이로 소나무들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어느 봉우리에 서든 굽이치는 홍천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높이에 비해 다채로운 풍경과 스릴 넘치는 코스로 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산이다. 여덟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제2봉에는 삼부인당이라는 제단이 있다. 이곳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열리는 곳으로, 600년간 이어져 온 유서 깊은 민속 문화다. 매년 봄과 가을에 지내는 이 제사는 주민들의 풍요와 번영, 그리고 팔봉산을 찾는 모든 방문객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건강과 행복을 소망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3봉은 여러 봉우리 중 가장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정상인 제2봉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시원하고 경쾌한 풍경을 선사한다. 제4봉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장수굴’ 또는 **‘해산굴’**이라 불리는 작은 굴을 통과하는 것인데, 굴을 통과하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굴을 지나는 어려움이 산모의 고통과 같다 하여 해산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봉우리마다 특별한 바위와 의미를 지니고 있어, 등산 내내 심심할 틈 없이 비경을 만날 수 있다. 팔봉산의 등산 코스는 대부분 주차장을 시작으로 제1봉을 거쳐 여덟 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오르는 일방통행 코스다. 총 길이는 약 2.6km이며 3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독특한 코스는 스릴을 선사하지만, 급경사와 로프, 사다리 구간 등 위험 요소가 많아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현재 안전상의 이유로 제2봉 하산로는 통제되고 있으며, 제2봉과 제7봉에 중간 하산로가 있으나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어 권장하지 않는다. 또한 겨울철에는 안전을 위해 전체 구간이 통제된다. 팔봉산 인근 유원지에서는 홍천강을 따라 야영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풋살장과 식당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펜션단지와 래프팅, 사륜 오토바이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높지는 않지만 도전적인 등산코스, 맑고 깨끗한 홍천강, 그리고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팔봉산은 자연 체험과 문화 향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복합 관광지로서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 [포토] 월요일 새벽의 ‘블러드문’

    [포토] 월요일 새벽의 ‘블러드문’

    8일 오전 1시께 경북 영천시 보현산천문과학관 개기월식 관측 행사장에는 3년 만의 개기월식을 관측하기 위해 시민 7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날 오후까지 내린 비에 영천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넓게 깔렸지만, 백색 보름달이 환하게 빛났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26분 48초에 달의 일부분이 가려지는 부분월식이 시작됐다. 개기월식은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해 지구의 그림자에 의해 달이 가려지는 현상이다. 달이 지구 본그림자에 완전히 들어가는 개기월식은 오전 2시 30분 24초에 시작돼 오전 3시 11분 48초에 최대가 된 뒤 3시 53분 12초에 끝났다. 이후 다시 달의 밝은 부분이 보이기 시작해 오전 5시 56분 36초에 월식의 전 과정이 끝났다. 다음 개기월식은 6개월 뒤인 2026년 3월 3일이며 이때 한국에서는 월식 후반부에 달이 뜬다. 한국에서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다음 개기월식은 약 3년 뒤인 2029년 1월1일 새벽이다.
  • 텅 빈 거리·정적…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을 그린 작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텅 빈 거리·정적…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을 그린 작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인간 내면세계 언어로 설명 못 해설명 불가능한 지점서 회화 시작그림은 언어 한계 넘어서는 소통세 차례 파리 유학 유럽 미술 공부문화 식민지적 사고 단호히 거부식당·주유소 등 미국의 풍경 그려추상표현주의 흐름에 동조 안 해실제로 존재하는 사물·풍경 묘사정서적 사실주의 화풍 철저히 고수 미국의 거장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 거의 설명하지 않았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극도로 꺼렸다. 호퍼의 아내 조지핀은 과묵한 남편을 이렇게 표현했다. “에드워드와 이야기하는 건 마치 우물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돌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죠.” 텅 빈 거리, 창가에 홀로 앉은 사람, 늦은 밤 식당 안의 정적. 그의 성격처럼 호퍼의 그림 속에도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대중을 멀리했던 그는 어떻게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을까. 그가 남긴 짧은 말, 편지, 드문 인터뷰,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본 이들의 증언은 호퍼의 작품 세계로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돼 준다. 첫 번째 명언 “만일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굳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 호퍼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언어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봤다. 말이 닿지 않는, 설명이 불가능한 지점에서 비로소 회화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에게 그림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작품①’은 호퍼의 이 같은 생각을 가장 잘 보여 준다. 한밤중 도시의 어느 식당 안, 한 젊은 여인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홀로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방금 식사를 마친 듯 작은 빈 접시가 놓여 있다. 그녀는 옷을 잘 차려입었고 화장도 했지만 멍하니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가 기다리는 중일까. 아니면 지친 하루의 끝자락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화면을 조금 더 자세히 살피면 여인은 한쪽 손에만 장갑을 끼고 있고 다른 손은 맨손이다. 그녀는 겨울밤 추운 거리에서 급히 안으로 들어와 장갑을 다 벗을 틈도 없이 커피잔을 집어 들었던 걸까. 아니면 한 손만 벗어 커피잔의 따뜻한 온기를 직접 느끼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이곳은 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자동판매기 식당이다. 동전을 넣으면 기계에서 음식이 나오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드나들던 번잡한 곳이었다. 그런데 호퍼는 시끌벅적한 식당 안에서 일부러 침묵과 고요를 선택했다. 여인은 출입문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 주변은 깊은 정적과 어둠으로 감싸져 있다. 커다란 유리창은 바깥 풍경을 보여 주지 않고 오직 실내의 인공조명을 차갑게 반사할 뿐이다. 그녀는 고요하고 밀폐된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외딴섬처럼 존재한다. 호퍼는 빛과 어둠의 대비, 침묵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대인의 정서적 고립과 심리적 소외를 표현했다. 여인이 누구이며, 무슨 사연이 있는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침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고독을 발견한다. 두 번째 명언 “한 국가의 예술은 그 국민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할 때 가장 위대하다.” 이 문장은 1953년 호퍼가 미술 전문지 ‘리얼리티’에 기고한 선언문에 담긴 내용이다. 그에게 진정한 예술이란 그 나라 사람들의 기질, 감정, 정서, 일상 속 풍경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퍼의 그림에는 주유소, 식당, 오래된 빅토리아풍 주택, 도시 외곽의 낡은 극장 같은 미국의 평범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그런 장소 안에 미국인의 내면과 시대적 정서를 담아내려 했다. 바로 호퍼의 그림이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여겨지는 이유다. 흥미로운 사실은 호퍼가 젊은 시절 세 차례에 걸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며 유럽 미술을 공부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지구상에 파리만큼 아름다운 도시는 없으며 프랑스인만큼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쓸 정도로 프랑스를 흠모했다. 그러나 유럽 미술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았다. 그는 프랑스어를 배우려 하지 않았고 카페 구석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가 유럽 양식을 흉내내지 않은 이유는 다음 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프랑스인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되려는 모든 시도는 우리 고유의 유산을 부정하는 것이며, 표면만을 덧씌운 겉치레일 뿐이다.” 호퍼는 문화 식민지적 사고방식에 단호히 선을 그은 것이다. 그는 미국의 풍경 속에서 미국다운 정서와 시대적 분위기를 포착하고자 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그의 대표작인 ‘작품②’다. 그림 속에는 늦은 밤까지 문을 연 식당 안을 포착한 미국적인 일상 풍경이 담겨 있다. 이 장면은 호퍼가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애비뉴 근처에 실제로 존재했던 한 심야식당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퍼는 식당을 정확히 그림에 재현하지 않았다. 그는 기억과 감정을 더듬어 머릿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된 장면으로 만들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깊은 밤 거리는 텅 비어 있고 불이 환하게 켜진 식당 안에는 남녀 손님 셋과 점원 한 명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공간 안에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말도 나누지 않고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 함께 있으면서도 철저히 혼자인 사람들이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의 식당은 언뜻 열린 공간처럼 보이지만 세상과 단절된 투명한 감옥과도 같다. 호퍼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아마 대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호퍼는 뉴욕 출신으로 대도시의 활기와 역동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동시에 그는 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고립되고 소외되는지도 꿰뚫고 있었다. 이 그림이 미국인들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 직후 미국이 충격과 불안에 휩싸인 시기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국제 중심 도시였던 뉴욕조차 정서적 공황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호퍼의 아내 조지핀은 당시 상황을 자세한 일기로 남겼다. 우리는 그녀의 기록을 통해 이 작품이 대공황의 여운, 전쟁의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담아낸 20세기 미국인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세 번째 명언 “내 회화의 목표는 언제나 자연에 대한 가장 내밀한 인상들을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하게 전사(轉寫)하는 것이다.” 이 말을 언뜻 들으면 호퍼가 단지 눈에 보이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열쇠는 “가장 내밀한 인상”이라는 표현에 숨어 있다. 호퍼는 20세기 중반 미국 미술계를 뒤흔든 추상표현주의 흐름에 쉽게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 “순전히 장식적인 회화 개념이며 지적인 발명이다.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호퍼는 추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세계를 작품에 표현하려 했다. 자신 곁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과 사물, 풍경을 마주하고 묘사하는 것이 진정한 사실주의이며 미국 미술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다. 호퍼는 철저히 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했지만 그가 말한 사실주의는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여러 장소에서 관찰한 요소들을 기억 속에 담아 뒀다가 하나의 장면으로 재구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호퍼의 사실주의는 정서적 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호퍼는 지독할 만큼 느리고 신중한 화가였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보통 몇 주,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렸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장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감정적으로 완전히 맞아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작품 ③’은 한쪽 벽이 통째로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독특한 실내 풍경을 담고 있다. 강렬한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바닥과 벽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다. 그림 속에는 인물도, 이야기도 없다. 단지 방, 바다, 빛, 이 세 가지 요소만이 침묵 속에 존재할 뿐이다. 언뜻 보면 실제 풍경을 충실하게 옮겨 놓은 듯 보이지만 방 안에서 바다로 바로 연결되는 건축 구조는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호퍼의 독창적인 사실주의 화풍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이 그림은 실제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호퍼는 눈에 보이는 세 요소인 광활한 바다, 밀폐된 방, 실내를 가득 채운 햇빛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적과 고독, 깊은 사색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가장 사실적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가장 비가시적인 내면 풍경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호퍼의 사실주의 화풍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호퍼는 생전에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대중의 시선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을 자주 거절했고, 자신의 그림이 잡지 표지에 실렸을 때도 “민망하다”는 말을 남겼다. 특히 그는 관람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너무 쉽게 “이건 이런 의미야”라고 단정 짓는 태도에 대해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내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건 좋지만 그들이 그것을 이해했다고 믿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에게 유일한 진정한 영향력은 나 자신이었다.” 호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지만 우리는 침묵과 정적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말 대신 빛과 정적을 선택했고, 세상의 소음보다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응시했다. 그는 스스로에게만 영향을 받았기에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거장이 될 수 있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수어·음성 해설 2% 불편?…‘같이의 가치’ 그린 ‘동행극장’!

    수어·음성 해설 2% 불편?…‘같이의 가치’ 그린 ‘동행극장’!

    한윤섭 작가 동명 동화 각색시청각 장애인 관람 장벽 낮춰9월 12~13일 강동아트센터 “해리엇 덕분이에요. 해리엇이 다 가르쳐 줬잖아요.” 아기 원숭이 찰리(홍준기)가 대사를 할 때마다 옆에 있는 정은혜 배우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그냥 죽기 전에 내 고향에 가고 싶을 뿐이야. 그 고향이 어디든.” 175살 갈라파고스 거북 해리엇(문상희)이 말할 때면 바로 뒤 김설희 배우의 손이 분주해진다. 강동문화재단이 제작한 연극 ‘해리엇’에 등장하는 배우 9명은 공연 시간 80분 내내 무대 위에서 쉴 틈 없이 연기한다. 이 중 5명은 ‘그림자 소리’ 역할로 해리엇이나 찰리, 너구리 올드의 수어 통역을 하거나 코알라와 오소리 같은 각자의 배역도 있다. 장애인의 관람 장벽을 낮춘 이 공연은 커튼콜에서도 “1인 다역의 이영섭 수어 통역 권재은, 1인 다역의 권재은 수어 통역 이영섭, 인사”라는 소개가 나오면 배우들이 수어로 자신을 설명한다. 김지원 연출은 이 작품을 “모두에게 2% 부족하더라도 모두가 접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간 ‘각자의 감각에 적합한 접근성’을 내세운 무장벽(배리어 프리) 공연이나 영화가 여러 방식으로 확산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음성 해설을 제공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무대 옆 스크린에 자막을 띄우거나 수어 통역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공연장에 따라서는 휠체어석을 객석 뒤편에 별도로 지정해 놓기도 한다. 연극 ‘해리엇’은 수어와 음성 해설을 모두 제공하고 휠체어석을 가장 앞 열로 배정해 접근성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2004년 처음 장애인단체의 연극을 연출하면서 접근성 높은 공연 경력을 쌓아 온 김 연출에게도 무장벽 공연은 늘 어렵다. 시각장애도 스펙트럼이 넓어 음성 해설을 너무 자세히 담으면 정보 과잉이라는 말을 듣는다. 수어 통역이 무대 밖에 있으면 시선이 분산되고 배우마다 수어 통역을 하는 ‘그림자 배우’를 붙이면 산만할 수 있다. 장애인에게든 비장애인에게든 100%를 채우기 위해 어느 부분에서는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 김 연출이 “2%는 불편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강동문화재단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의 공모에 선정돼 예산 일부를 지원받고 자체 예산을 투입해 올리는 ‘해리엇’은 “폭넓은 경험”에 방점을 뒀다. 신예진 공연전시팀장은 “말이든 수어든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언어이며 소통 방법이라는 것, 아이들도 무대 공연으로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고 했다. 원작으로 한윤섭 작가의 동명 장편 동화를 선택한 이유도 ‘모두가 행복한 결말’과 맞닿아 있다. 고향 갈라파고스를 떠나 동물원에서 살아온 거북 해리엇은 그곳 동물들에게 위로를 주고 그들의 도움으로 생의 마지막에 그토록 원하던 바다를 향해 간다. 동화이지만 따뜻한 이야기는 어른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김 연출은 “해리엇이 누구보다도 행복했으면, 이 공연을 보는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해리엇이 바다를 헤엄치는 장면에서는 무대 전체를 비눗방울로 채워 황홀감을 준다. 접근성 높은 공연 ‘해리엇’이 더욱 촘촘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김 연출이 장애인단체와 공연한 20여년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연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지만, 그들이 훈련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괜찮은 일을 한 것 같은”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장애인극단 다빈나오와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왔으며 장애 인식 개선이나 장애인 재능 계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23년에는 국립극장 무대에 뮤지컬 ‘합★체’를 올렸고 2018년 내놓은 소리극 ‘옥이’는 해외 쇼케이스도 예정돼 있다. “우리가 춤을 예술 언어로 보듯 수어와 음성 해설도 무대를 채우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김 연출은 “다양한 접근성 요소들이 예술로서 재탄생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나하나 도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12~13일 고덕동 강동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 “3년 만에 돌아온 개기월식, 우리 지역에서 구경 하세요”

    “3년 만에 돌아온 개기월식, 우리 지역에서 구경 하세요”

    지방자치단체들이 3년 만에 돌아온 개기월식 ‘블러드문’의 관측행사를 잇따라 진행한다. 한국천문연구원은 8일 오전 1시 26분 48초에 달의 일부분이 가려지는 부분월식이 시작된다고 7일 밝혔다. 국내에서 개기월식을 볼 수 있는 것은 지난 2022년 11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월식은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해 지구의 그림자에 의해 달이 가려지는 현상이다. 달이 지구 본그림자에 완전히 들어가는 개기월식은 오전 2시 30분 24초에 시작돼 오전 3시 11분 48초에 최대가 된 뒤 3시 53분 12초에 끝난다. 이후 다시 달의 밝은 부분이 보이기 시작해 오전 5시 56분 36초에 월식의 전 과정이 끝난다. 국내에서 개기월식을 볼 수 있는 것은 지난 2022년 11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이에 따라 경북 영천시는 8일 새벽 시간대 보현산천문과학관에서 ‘블러드문’ 관측 행사를 연다. 먼저 본영식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1시부터 개기월식 의미와 관측 방법에 대한 강연을 진행한다. 이후 야외에 설치된 여러 대의 천체망원경을 통해 달과 토성, 성운, 성단 등 다양한 천체를 관측하며 보현산별빛축제 유튜브 계정을 통해 개기월식 모습을 실시간 생중계한다. 행사는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으며 개인 관측장비를 지참할 수도 있다. 날씨가 흐려져 개기월식 관측이 어려우면 행사가 취소될 수 있다. 행사 진행 여부는 사전 보현산천문과학관 홈페이지를 통해 최종 공지한다. 시 관계자는 “3년 만에 돌아온 개기월식 블러드문을 관측하며 소원도 빌고 신비로운 우주의 현상을 직접 체험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원 양구군도 이날 오전 1시부터 5시까지 국토정중앙천문대에서 개기월식 공개 관측회를 진행한다. 참가 제한은 없다. 행사장에서는 주 망원경을 활용한 보름달 관측 프로그램을 진행해 개기월식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보름달 풍선을 활용한 포토존을 마련돼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이밖에 국립과천과학관 및 국립광주과학관, 대전시민천문대등 각 지역 과학관 및 천문대 등이 이번 개기월식 관련 관측 행사를 진행한다.
  • 김정은 두손 맞잡고 ‘특급’ 예우한 시진핑…북중관계 회복 속내는[외안대전]

    김정은 두손 맞잡고 ‘특급’ 예우한 시진핑…북중관계 회복 속내는[외안대전]

    지난 3일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을 계기로 모인 북중러 3국 정상의 모습은 오래도록 남을 기록적인 장면이었습니다.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1959년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반미·반서방 결속의 강화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진 한 장의 최대 수혜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여정은 6년 8개월 만의 방중이자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여러 정상들이 모이는 다자 무대에 등판한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최고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북한의 특성과 경호나 의전 문제 등으로 양자 회담만 갖던 김 위원장이 열병식 참석을 결단한 데엔 그만큼 얻어낼 것이 충분하기 때문이었을 텐데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혈맹’으로 밀착한 북러관계에 이어 다소 소원했던 북중관계를 복원하며 든든한 ‘뒷배’를 얻었음을 한껏 과시했습니다. 이렇게 키운 몸값을 더욱 불리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전망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의 협력으로는 부족한 경제적 지원과 교류 확대를 중국으로부터 받는 실익을 얻어내려는 것도 큰 목적으로 해석됩니다. 열병식 참석을 초청한 시 주석 역시 김 위원장의 이틀간 방중 일정을 ‘특급 예우’로 챙기며 북중관계가 완전히 회복됐음을 보여줬습니다. 열병식 전 레드카펫으로 들어서는 정상들을 맞이할 때부터 다른 정상들과는 가볍게 한 손으로 악수를 하던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을 만나자 한 걸음 나아가 두 손을 맞잡으며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또 의전, 경호 등 김 위원장이 머무는 동안 푸틴 대통령과 동급으로 대우했고, 무엇보다 4일 오후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단독 만찬까지 준비했습니다. 열병식에 참석한 26개 정상 가운데 시 주석과 단 둘이 저녁 식사를 한 정상은 김 위원장이 유일하고, 만찬 시간도 4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푸틴 대통령과는 단단한 오찬을 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최고의 예우를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회담 모두발언에서 시 주석은 “북중은 운명을 같이한다”고 했고 김 위원장도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북중 우호는 변할 수 없다”며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북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가 거론된 것과 달리 이날 회담 결과에선 ‘비핵화’ 표현이 사라져 그동안 ‘한반도의 비핵화’ 입장을 고수하던 중국이 이제는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해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으로 북러 관계가 혈맹으로 ‘퀀텀 점프’했고, 이를 기반으로 북중러가 결속하며 3국 안보 협력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열병식에 3국 정상을 나란히 선 장면은 곧 핵보유국들의 연대를 상징한 것이며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에 대응하기 위한 이들의 연대는 더욱 세를 키우고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더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북중관계의 단순한 복원을 넘어 재도약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북한은 국제 제재와 고립 속에서 중국의 지지를 재확인했고 중국은 북한을 통해 한반도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전략적 자산으로서 북한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특히 북한이 중국의 ‘핵심 이익(대만 지지한다고 명시한 점은 북한이 중국의 지정학적 입장을 지지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기대한다는 함의를 준다”며 “반대로 중국은 북한의 ’자주적 발전의 길‘을 지지하며 북한 체제의 안정을 지원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한 협력 강화와 고위급 교류 및 전략적 소통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기 전 북중 간 긴밀한 협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 양 교수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정치적 후견 역할을 재구축하겠다는 것이고, 북한은 북미 회담이 조만간 개최될 가능성은 없으며 유엔 및 다자 회의를 통해 중국을 뒷배로 핵보유국 인정 국가들의 지지기반을 마련한 뒤 협상력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다만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모든 입장을 일치한 것은 아니며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회담 내용에 대해 중국 측은 시 주석은 고위급 교류와 전략적 소통 강화를 비롯해 각급 간 교류를 강화하자고 했고 김 위원장은 당 건설 및 경제 발전 등의 경험 공유, 경제 및 무역 협력 심화 등을 언급했다고 밝혔는데 북한은 ‘고위급 래왕(왕래)와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하여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보도했는데요. 북한에 대한 경제 협력이나 지원과 관련한 양국 정상의 의견 일치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측은 시 주석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은 객관적이고 정당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며 “앞으로도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지만, 북한은 “(양 지도자들은) 대외 관계 분야에서 두 나라 당과 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자주적인 정책적 입장들에 대해 호상(상호) 통보”하였다며 “국제 및 지역 문제들에서 전략적 협조를 강화하고 공동의 이익을 수호할 데 대하여 언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7월 김 위원장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한 것과 관련, 조선중앙통신이 ‘일련의 중요 문제와 국제 및 지역 정세에 관한 양국 지도부의 완전 일치한 입장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두고 “중국 측 발표에서 시진핑과 김정은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해 상당한 논의가 있었지만 양국 정상 사이에 이견이 있어 일치된 견해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미중 경쟁이 심화하고 한미일 협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중관계의 회복을 정부도 긴장하며 주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는데,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 및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역할을 당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외교부는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관련 언급이 없는 것과 관련 “중국은 최근 대통령 특사단 방중 시 등 여러 계기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이 북핵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보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표”라며 “정부는 한미 간 긴밀한 공조 하에 단계적·실용적 접근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한중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지속해 나가는 가운데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올 수 있도록 중국 측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SBS 8뉴스에 출연해 열병식을 계기로 북중러 3국 정상이 모인 데 대해 “북중러 정상이 같은 자리에 모습을 보인 그림은 있지만 3국이 회담을 하진 않았다”며 “3국성(3국 협력의 이미지)이 부각되긴 했으나 3자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 영유아 인형극, 관객참여형…아르코가 선보이는 9월 공연

    영유아 인형극, 관객참여형…아르코가 선보이는 9월 공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어린이청소년을위한예술지원사업’으로 선정한 다양한 작품들이 9월 한 달간 서울 곳곳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공연장과 객석의 경계, 공연과 전시의 장르를 넘나들며 영유아와 어린이의 무의식을 탐험하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동그라미 공방은 영유아 인형극 ‘램’을 19~21일 종로 아이들극장 무대에 올린다. 영유아의 렘(REM)수면 시간이 성인보다 긴 점에 착안한 공연으로 영유아의 꿈을 시각, 촉각, 청각 등 감각을 동원해 살펴본다. 베개, 이불, 의자 등 익숙한 사물이 낯설게 뒤섞이는 무대 속에서 아이들이 꿈을 마주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같은 기간 포밍부스는 관객참여형 공연 ‘안녕, 잠!’을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공연한다. 감정 인식, 수면 문제, 자기표현이라는 주제를 어린이 관객 눈높이에 맞춰 기술적으로 해석했다. 특수 팔찌를 착용한 관객들은 무대를 누비며 인터랙션 장치들을 통해 잠과 꿈의 세계를 몸으로 체험한다. 전시, 그림연극, 그림책 등으로도 관객과 독자를 맞이한다. 넘나들이 아트랩은 10~20일 중랑아트센터에서 ‘0과 F사이 그라데이션’ 전시를 열어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사이’의 공간에 주목한다. 나만의 속도와 감각으로 미로를 탐색하며 밝음과 어둠, 열림과 닫힘, 가벼움과 무거움 등 극단의 사이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시간을 준다. 극단 즐거운사람들은 그림연극 ‘나무가 있는 풍경’을 오는 14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공연한다. 장욱진 화백의 그림 속 나무, 새, 집 등 익숙한 이미지 속에서 배우의 움직임, 영상, 음악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과 자연 속 따스함을 전한다. 공연 전 로비에서는 그림 그리기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아르코는 어린이청소년을위한예술지원사업으로 어린이·청소년 대상 우수 예술 작품의 창작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며 작품이 다양하게 확산할 수 있도록 돕고 예술 경험의 폭을 부모와 함께 교류하는 장을 펼치고 있다.
  • 물방울 화백 김창열… 20대 경찰관 시절, 제주의 예술여정 더듬다

    물방울 화백 김창열… 20대 경찰관 시절, 제주의 예술여정 더듬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이 경찰관으로 제주에서 머물던 시기의 예술 창작여정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오는 9일부터 2026년 3월 2일까지 제2·3전시실에서 특별기획전 ‘우연에서 영원으로: 김창열과 제주’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김창열 화백이 6·25전쟁을 계기로 머물게 된 제주에서의 문학·미술 활동과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킨 창작 여정을 집중 조명한다. 특히 1950년대 제주 시기를 기점으로 전쟁의 상처와 물의 기억을 토대로 문학과 미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 독창적 미학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작가의 평생 화업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1929년 평북 신의주 명필가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검정고시로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지만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1951년 9월 3일 경찰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첫 근무지로 제주에 부임했으며, 1953년 서울로 전보될 때까지 제주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이 인연은 2016년 제주도에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20대 초반 제주에 경찰로 파견된 김창열은 그림에 몰두하며 ‘사이비 경찰관’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문인 계용묵, 화가 장리석·홍종명 등 피난 온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1953년에는 계용묵이 엮은 문학지 ‘흑산호’에 시 3편(종언, 설계도, 동백꽃)과 표지화를 발표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김창열의 가장 이른 시기의 미술작품으로 예술 여정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김창열이 제주를 기억하며 제작한 ‘물방울(제주도, 2003)’을 출발점으로 파리·뉴욕·서울·제주로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간다. 작가의 창작 토대가 된 ‘물의 기억’이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로 수렴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어린 시절 맹산 강변과 제주 바다에서의 수영 경험이 훗날 물방울 회화로 이어진 예술적 원천임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선 인공지능(AI) 영상을 통해 김창열의 제주 시기를 체험할 수 있다. 김은자 여사가 2024년에 기증한 뉴욕 시기 작품 3점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김창열 화백의 젊은 날 제주 시기를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예술적 뿌리를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문학과 미술을 넘나든 그의 실험과 사유를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19일에는 김동윤 제주대학교 교수를 초청해 ‘김창열 작가의 제주 시기와 예술활동’을 주제로 특별강연도 개최한다.
  • 3년간 국립심포니 이끈 지휘자의 마지막 인사

    3년간 국립심포니 이끈 지휘자의 마지막 인사

    열정이 깃든 침묵. 3년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국심)를 이끌었던 지휘자 다비드 라일란트(46)가 5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한국을 떠난다. 국심의 예술감독으로서 라일란트는 한국 클래식 팬들의 열정과 침묵에 감동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라일란트는 “한국 관객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끊임없이 공연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지지하고 소통한다”며 “이런 열정은 유럽의 관객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통 방식”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 관객의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침묵이었다”면서 “한 악장이 끝나고 박수도, 아무것도 필요 없는 침묵만이 다가올 때 가장 강력한 영감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6일 출국하는 라일란트는 2018년부터 맡고 있는 프랑스 메스 국립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스위스 로잔 신포니에타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음악인 생활을 이어간다. 라일란트는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다. “클래식 음악의 과거는 유럽에 있었지만, 미래는 여러분에게 있어요.” 유럽이 클래식 음악의 본산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미래를 이끌어갈 힘은 한국에 있다고, 그는 내다봤다. 그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자기의 음악적 재능과 문화에 대한 존중, 호기심을 합쳐 ‘문화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면 영원히 기억되는 음악적 성취를 세상에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음악가들에 대한 칭찬도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음악가들은 프랑스 등 유럽과 달리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항상 돼 있다”며 “유럽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공연 시작과 끝의 집중력이 현저히 다른데, 한국 단원들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한다”고 했다. 이어 “‘어떻게 해야 내가 더 빛날까’를 고민하는 개인적인 유럽의 단원들과는 달리 한국의 단원들은 ‘내 재능을 어떻게 전체 오케스트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연습한다”고도 덧댔다. 5일 공연에서 라일란트와 국심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전람회의 그림’은 프랑스적이면서도 독일적인, 이중적인 감수성을 지닌 라일란트와 어울리는 곡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 모두 음악가이고,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전체를 이뤄내는 협력자입니다. 그래서 모든 음악가는 평등하죠. 겸허히 살아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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