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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한하게 생긴 인간?...세계적 미스터리 ‘나스카 라인’ 또 발견 [핵잼 사이언스]

    희한하게 생긴 인간?...세계적 미스터리 ‘나스카 라인’ 또 발견 [핵잼 사이언스]

    세계적인 미스터리 중 하나인 거대 지상그림(geoglyph)이 페루 남부 사막에서 또다시 발견됐다.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4종의 나스카 라인이 새롭게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939년 하늘 위에서 처음 확인된 거대한 지상그림인 나스카 라인은 태평양과 안데스 산맥 사이에 위치한 나스카 평원 곳곳에 그려져 있다. 고대 나스카인들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원숭이, 도마뱀, 고래 등 동물을 비롯 각종 기하학적 도형까지 현재까지 수백여 개가 발견됐다.이번에 발견된 4종의 나스카 라인은 이상하게 생긴 인간형을 비롯 한 쌍의 다리, 물고기, 새 등이다. 이중 한 쌍의 다리는 길이가 무려 77m에 달했으며 새는 가로 19m, 너비 17m였다. 과거 여러차례 발견된 나스카 라인과 크게 차이는 없는 셈. 이번 발견은 특히 본격적으로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이 활용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에는 광대한 지역을 담은 항공사진을 육안으로 보면서 찾아냈으나 최근에는 딥러닝 기술을 통해 인간보다 약 21배 빠르게 지상화를 식별해낼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연구를 이끈 일본 야마가타대학 사카이 마사토 교수는 "인간의 힘 만으로 20년 이상 걸리는 일을 AI가 1년 만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로 인해 지상그림 연구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야마가타대학 연구팀은 지난 2004년 부터 나스카 라인을 연구해오면서 지금까지 총 358개의 지상그림을 찾아냈다. 마사토 교수는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나스카 라인이 침식과 기후 변화로 인해 많은 비가 내리면서 훼손될 위험에 놓여있다"면서 "이 때문에 AI를 활용해 빠르게 지상그림을 찾아내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고대인들이 왜 하늘에서 봐야 제대로 모습이 보이는 나스카 라인을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달력설, 목초지 경계선 심지어 외계인 관련설까지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다만 최근들어 고고학자들은 나스카 라인이 종교적 의식을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돌아와 윌슨!”...아마존 4남매 찾다 실종된 영웅 군견은 어디에?

    “돌아와 윌슨!”...아마존 4남매 찾다 실종된 영웅 군견은 어디에?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비행 중 아마존 정글에 추락한 어린 4남매가 40일 만에 무사히 구조됐지만 가장 큰 공을 세운 수색견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2일 AP 통신 등 외신은 4남매 구조 당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실종된 수색견 윌슨의 소식을 보도했다. 수색견 윌슨은 투입 직후 추락한 기체와 아기 젖병, 발자국을 찾아내는등 행방이 묘연했던 아이들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윌슨은 구조팀에 앞서 홀로 먼저 어린이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콜롬비아 군 관계자에 따르면 윌슨은 지난달 18일 갑자기 종적을 감췄는데, 당시 실종된 아이들과 3~4일을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환경 속에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준 것. 다행히 실종된 어린이 4명은 지난 9일 구아비아레와 카케타에서 발견돼 극적으로 구조됐다. 아마존 정글에서 실종된 지 40일 만으로 믿기힘든 기적이 일어난 셈이지만 윌슨은 현장에 없었다.이후 콜롬비아 당국은 '국민 영웅'이 된 윌슨을 찾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콜롬비아 국방부가 “아무도 뒤에 남기지 않는다는 지상명령을 완수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구조작전명 '에스페란사'(희망)를 종료하지 않았다고 밝힐 정도. 이에 콜롬비아 군은 70명의 군인들을 추락 지점 인근에 남겨두고 수색에 들어갔다. 특히 군은 윌슨이 계속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음식을 두는가 하면 담당 교관의 옷까지 놓아두고 있다. 여기에 지난주에는 윌슨을 수색대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암컷 개 두 마리를 헬리콥터로 추락 지점 주변으로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윌슨이 돌아오지 않자 일부 전문가들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윌슨이 험한 정글 속에서 먹이는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독사의 공격에 이미 죽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 다만 군조련사들은 윌슨이 고도로 훈련된 군견으로 최악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수도 보고타에서 14개월 동안 윌슨을 훈련시킨 수색견 학교 책임자인 루이스 페르난도 세냐는 "윌슨이 아이들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소식에 너무나 기뻤다"면서 "윌슨을 찾을 수 있다면 국민 뿐 아니라 우리 어린이들에도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윌슨의 도움으로 구조된 아이들은 레슬리 무쿠투이(13), 솔레이니 무쿠투이(9), 티엔 노리엘 로노케 무쿠투이(4), 크리스틴 네리만 라노케 무쿠투이(1)로 모두 건강 상의 이상은 없다. 특히 이들은 지난 11일 정글에 낙오된 자신들을 제일 먼저 찾아내 큰 힘이 되어준 윌슨을 구조해달라며 손수 그림까지 그려 문병을 온 콜롬비아 장군인 헬더 기랄도에게 전달했다. 첫째와 둘째 아이가 각각 그린 그림에는 자신들이 머물렀던 정글 속을 묘사했는데 그 안에 수색견 윌슨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초여름 ‘슬로시티’ 충남 예산을 찾는 5가지 이유 [투어노트]

    초여름 ‘슬로시티’ 충남 예산을 찾는 5가지 이유 [투어노트]

    쉼 없이 달려온 한해도 어느덧 절반 넘어서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기 좋은 시기다. 6월의 끝자락엔 봄의 잔잔한 풍경과 여름의 싱그러움을 모두 담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충남 예산은 전통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져 ‘힐링 도시’다. 천년 고찰 수덕사와 600년 역사를 이어온 덕산 온천수로 즐기는 온천 워터파크 스플라스 리솜, 그리고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예산상설시장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국내 유일의 보부상촌인 ‘내포 보부상촌’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호를 걸으며 남은 시간을 설계할 수 있다. 6월에서 7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넉넉한 인심과 역사의 향기 가득한 ‘슬로시티’ 예산에서 삶의 활력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초여름 예산에서 가볼 만한 여행지 5곳을 소개한다. ‘뉴트로’ 먹방 여행의 성지…예산상설시장 예산상설시장은 외식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손길이 더해져 올 초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원래 예산상설시장은 1926년 ‘오일장’이 서던 이 지역 최대 시장이었지만 인구감소로 인한 전통시장의 침체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수백 개에 달하던 점포와 노점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침체기에 접어든 예산시장에 손을 내민 것은 예산이 고향인 백종원 대표였다. 그는 예산의 ‘상설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장 내 공실로 방치됐던 빈 상가를 사들여 옛 모습을 담은 식당으로 개조했다. 지난 1월 개장 이후 한 달 만에 10만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었지만, 위생과 가격 문제 등이 불거졌다. 결국 지난 3월 한 달간 휴장한 뒤 화장실과 퇴식구 등 리모델링을 통해 4월 다시 문을 열었다. 시장에는 1월 문을 연 금오바베큐(닭 바비큐), 신광정육점(돼지 토시살), 선봉국수(파기름 비빔국수), 시장 닭볶음(꽈리고추 닭볶음탕), 불판빌려주는집(상차림) 5개 외에 대흥상회(먹태 구이), 예터칼국수(바지락칼국수), 시장중국집(탕수육), 고려떡집(고기 떡), 어서와U(아메리카노), 또복이네(제육볶음) 등 16곳이 새롭게 들어섰다. 식당마다 목재와 타일을 활용한 레트로 인테리어들이 돋보인다. 하지만 주요 맛집들이 장터 광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어 좁은 시장 내에 많은 관광객이 몰릴 때는 매우 복잡하며, 식당마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다.  - 주소 : 충남 예산군 예산읍 형제고개로 967 - 운영시간 : 오전 11시~오후 9시(점포별로 운영시간 다름)   600년 역사 덕산 온천수로 즐기는 온천 워터파크…스플라스 리솜 스플라스 리솜은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덕산 온천수로 즐기는 건강한 온천 워터파크 리조트다. 덕산 온천수는 워터파크 내 15개의 야외 노천탕, 워터 슬라이드, 바데풀 등 물놀이 시설뿐만 아니라 406개의 전 객실에 공급된다. 워터파크는 MZ세대를 위한 스릴만점 어트렉션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물놀이 시설도 갖추고 있다. 급강하를 반복하는 워터 롤러코스터인 ‘마스터 플라스터’, 튜브를 타고 빙글빙글 돌며 아래로 빠르게 하강하는 ‘튜브 슬라이드’, 레시싱과 같이 아찔한 속도를 자랑하는 ‘스피드 슬라이드’가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최대 2m 파고를 자랑하는 급류 파도 풀로 마치 계곡 래프팅과 같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밤에는 국내 워터파크 최초로 야간 패들 보트를 체험할 수 있는 패들 비치가 있다. 초보자를 위해 패들의 기본자세와 노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전문 강사들의 기초 교육이 무료로 진행된다. 7월 중순부터 물놀이 마니아를 위해 강렬하고 신나는 공연과 이벤트를 더한 ‘워프 페스티벌’을 선보인다. DJ의 EDM 쇼와 댄서들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마치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울러 핀란드 전통 사우나와 핀란드 오크통 사우나를 새롭게 오픈해 물놀이에 지친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MZ세대를 위한 팝업스토어도 운영된다. 서울 성수동과 부산 광안리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송월타올의 타올쿤 팝업스토어가 중부권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타올쿤이 새겨진 감각적인 생활소품과 함께 타올쿤과 협업한 스플라스 한정굿즈도 선보인다.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3로 45-7 운영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한국 근현대 미술사 거장의 흔적이 담긴 천년고찰…수덕사 덕숭산에 있는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597) 때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은 고려 충렬왕 때인 1308년에 건립됐다. 수덕사는 일주문에서 시작해 금강문, 사천왕문, 황하정루, 대웅전으로 이어진다. 대웅전 양옆에는 스님들이 수도하는 백련당과 청련당이 있다. 수덕사는 미술계 인사와도 인연이 많은 사찰이다. 일주문 인근에 있는 수덕여관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8)과 한국 현대 미술사의 거장 이응노(1904~1989),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 화가의 흔적이 남겨진 곳이다. 가장 먼저 수덕사를 찾은 인사는 나혜석이었다. 나혜석은 일본의 도쿄 여자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야수파 화풍을 익혔다. 1931년 남편과 이혼을 한 뒤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나혜석은 이곳에서 수행 중이던 친구 일엽 스님(1896~1971)을 찾아왔다. 이어 이응노는 수덕여관에 머물던 나혜석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응노 화백은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화가 수업을 마친 뒤 귀국해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난 뒤 수덕여관을 매입했다. 장욱진은 1934년 성홍열에 걸려 요양차 수덕사를 찾았다가 나혜석을 만난다. 평소 고모가 극진히 모신 만공 스님이 어린 장욱진을 6개월간 돌보게 된다. 나혜석은 수덕사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며 장욱진을 격려했다.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운영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국내 유일의 보부상 촌 체험 마을… 내포 보부상 촌 내포 보부상 촌은 보부상에 대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보부상의 고유문화와 상업 정신 등 보부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시와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내포보부상촌은 내포 문화권 개발계획 확정 고시에 따라 2020년 보부상 문화의 거점인 예산 덕산지역에 6만 3695.8㎡ 규모로 조성됐다. 보부상을 주제로 보부상 유통문화전시관, 저잣거리 및 난장, 무형문화재 공연장, 체험 공방 등 가족과 아이들이 함께 즐기고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내포 보부상은 사통팔달의 요지였던 내포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보부상으로 1850년 예산, 덕산, 면천, 당진 등 4개 고을이 연합된 보부상 조직인 예덕 상무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보부상 조직이 일제강점기에 해체됐지만, 그 이후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보부상 조직이다. ‘장돌뱅이’ 등으로 불리는 보부상은 패랭이(대나무 줄기로 만든 작은 갓)를 쓰고 봇짐을 진 채 전국 시장을 따라 떠돌던 행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엄격한 규율을 가진 조직이 운영됐고, 엄청난 힘을 갖춘 무력 집단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이 의주로 피난 갈 때 보부상들이 식량을 나르고 국왕을 호위했다는 기록이 있다.  -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1로 55 - 운영시간 : 오전 10시~오후 7시(토·일 오후 8시·매주 월요일 휴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예당호 예당호는 둘레가 40km, 너비가 2k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시원스레 펼쳐진 저수지와 출렁다리, 조각공원, 음악분수 등 일상에서 지친 몸을 잠시 쉬어가기 좋은 휴식공간이다. 인기 명소는 예당호의 펼쳐진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출렁다리다. 길이 402m의 출렁다리는 바닥 아래로 수면이 훤히 내려 보여 마치 수면 위를 걷는 듯한 색다른 감동을 준다. 출렁다리는 성인 3000여 명이 다닐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지어졌다. 출렁다리에서 예당호 생태공원까지 데크길이 이어져 산책하기 좋다. 출렁다리 아래 음악분수는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다채로운 물과 빛의 향연을 제공한다. 지난해 10월 예당호 모노레일이 개통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느린 속도로 1.4km 거리를 20분간 운행하며 예당호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주소 : 충남 예산군 응봉면 예당관광로 158 운영시간 : 오전 9시~오후 8시(매월 첫째 주 월요일 휴무) 
  • 도시의 성장은 농촌 희생 없인 불가능했을 일… ‘연대의 책임감’ 공간을 살린다[마강래의 함께 살아가는 땅]

    도시의 성장은 농촌 희생 없인 불가능했을 일… ‘연대의 책임감’ 공간을 살린다[마강래의 함께 살아가는 땅]

    영국의 농촌 풍경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끝도 없어 펼쳐지는 초원이 부드러운 지평선을 만들고, 그곳에서 양 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린다. 하지만 목장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낭만에 젖어 들진 마시라. 영국의 목장엔 파란만장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민초가 겪었던 고난과 역경이 녹아 있다. 또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투쟁, 농촌의 변화가 촉발한 도시 변화의 역사가 각인돼 있다.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약탈뿐만 아니라 영국 산업혁명이 촉발된 곳으로서의 흔적도 묻어 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시 성장의 이면엔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쌀값을 인위적으로 낮춘 1960~1970년대의 ‘저곡가 정책’은 농촌 붕괴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지만 도시 내 인력 공급을 통해 산업화를 촉진하는 기반이 됐다. 지난 칼럼에서도 강조한 바 있지만 산업이 변화하면 일자리가 변하고 이는 공간에도 영향을 준다. 농업이 뜰 때는 농업에 맞는 공간이, 제조업이 뜰 때는 제조업에 적합한 공간이 번성한다. 공간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바로 일자리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지역은 사람을 밀어내고, 일자리가 생기는 곳은 낯선 이들을 끌어들인다. 산업구조 변화와 일자리의 변화 그리고 공간의 변화에 대한 가장 드라마틱한 서사가 존재하는 곳은 바로 영국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산업혁명을 전후로 영국 농촌의 변화와 도시 성장의 관계를 소개하려 한다. 영국의 예는 풍요로운 우리 사회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반추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양들이 사나워지고 마침내 인간들마저 집어삼킬 정도였다’ 아주 오래전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4세기엔 영국 지주들의 땅이 프랑스에도 걸쳐 있었는데, 여기엔 모직공업의 중심지인 ‘플랑드르’도 포함돼 있었다(현재 플랑드르는 네덜란드에 속해 있다). 플랑드르엔 모직물 제조 기술자가 많았다. 이들은 영국 본토에서 양털을 값싸게 공급받아 모직물을 만들어 다시 영국 본토에 비싼 값에 팔았다. 14세기 중반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100년 넘게 지리멸렬한 전쟁을 벌였다. 백년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플랑드르를 얻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영국이 더이상 플랑드르에 양털을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랑드르의 기술자가 영국으로 대거 넘어왔다. 영국은 해외에 모직물을 내다 팔았다. 품질 좋은 영국 모직물은 금세 소문이 났다. 15세기 말 양털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졌고 영국은 모직물 공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양은 턱없이 부족했고 양털 가격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다. 돈 냄새를 가장 빨리 맡은 사람은 지주들이었다. 이들은 양을 키우면 돈이 된다는 걸 간파했다. 이해타산이 빠른 지주들은 농지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소작으로 농사를 지어 먹고살던 농민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일부 지주는 농민들이 이용하던 공유지에도 울타리를 치고 자기 땅이라고 우겼다. 이게 16세기 초에서 17세기 중반에 걸쳐 일어난 1차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다. 울타리가 쳐진 목장에선 많은 사람이 일할 필요가 없었다. 10명이 일하던 농경지가 목장으로 변하면서 1명의 양치기만 필요해졌다. 지주들은 떼돈을 벌었다. 토머스 모어는 그의 저서 ‘유토피아’(1516)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양들은 온순하고 많이 먹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제가 듣기로 양들이 사나워지고 게걸스러워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인간들마저 집어삼킬 정도라고 합니다. … 욕망에 굶주린 대식가 한 명이 땅 몇천 평을 울타리 하나로 둘러치고 농부들을 몰아낸 형국으로 혹독한 국가적 역병이라 불러야 마땅하겠습니다. 농부들 가운데는 속임수나 혹은 강압에 의해 그들 소유의 토지에서 쫓겨났으며, 일부는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땅을 팔고 떠났습니다.”(토머스 모어(김남우 역) ‘유토피아’ 중) 지주의 횡포에 농민들은 분노했다. 1549년 7월엔 로버트 케트가 이끈 농민군이 봉기했다. 이들은 지주가 둘러친 울타리를 파괴했다. 이 난을 주도했던 케트는 두 달 만에 붙잡혔고 런던탑에서 처형됐다. 몰락한 농민들이 도시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도시엔 집도 일자리도 부족했다. 도둑과 거지가 넘쳐났다. 영국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도시 빈민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1601년 엘리자베스 1세는 ‘구빈법’을 제정했다. 이 법을 통해 빈민의 구제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 만들어졌다. 빈민을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 빈민 아동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노동할 수 있는 이들은 일을 하게끔 도왔고 노인, 장애인 등 일할 수 없는 이들은 ‘구빈원’에 수용했다. 농민의 희생이 커질수록 지주의 부도 커졌다. 다수의 빈민이 발생하자 국가는 이를 수습하기 위한 빈민 정책을 폈다.●극단까지 내몰렸던 노동자의 삶,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바뀌어 독자들도 잘 알고 있듯이 18세기 영국의 도시는 ‘격동’ 그 자체였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증기기관이 가장 먼저 쓰인 곳은 다름 아닌 ‘방적기’다. 당시 모직물은 면직물로 대체되고 있었다. 기계가 면을 뽑아내기 전까지는 집마다 조그만 기계를 놓고 실을 뽑는 ‘가내수공업’이 대세였다. 당시 면을 뽑기 위해서는 손으로 물레를 돌려야 했다. 사람이 물레를 돌리니 상품의 질도 균일하지 않았다. 1764년 ‘하그리브스’가 아내의 이름을 딴 ‘제니 방적기’를 만들었는데, 이 기계는 한 번에 8가닥의 실을 뽑아냈다. 1768년엔 수력을 이용한 방적기가 등장했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권을 냈고, 1779년 제니 방적기와 수력 방적기의 장점을 이용한 뮬 방적기가 개발됐다. 인도에서 쓰이던 전통적인 방적기는 면화 45kg을 가공하는 데 5만 시간이나 소요됐다고 한다. 뮬 방적기는 이걸 2000시간으로 줄였다. 뮬 방적기에 증기기관이 결합될 경우에는 작업 시간이 300시간으로 줄었다. 증기기관을 장착한 기계 덕분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공장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일할 사람도 필요했다. 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공급될 수 있었을까. 산업화와 맞물려 진행된 ‘2차 인클로저 운동’은 도시 내 공장에 인력을 공급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지주들은 이곳저곳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 지주들은 자그마한 땅, 그러니까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땅뙈기’를 강제로 통합하거나 맞교환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 했다. 이 과정에서 농민 대부분은 고용이 승계되지 않았다. 몰락한 농민의 도시 유입이 이어졌다. 도시에 빈민이 넘쳐나니 인클로저 운동에 제재를 가할 법도 했지만 영국은 오히려 그 반대로 나갔다. 인클로저 운동은 의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의회 구성원 대부분이 귀족이나 지주였기 때문이다. 인클로저 운동은 더욱 체계화되고 공식화됐다. 국가가 농민들의 희생을 묵인한 것이다. 도시에 일할 사람이 차고 넘치니 임금이 낮아졌다.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루에 16시간 정도를 일했다. 이제는 방직기계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인식이 커졌다. 노동자들은 밤에 몰래 공장에 들어가 망치로 기계를 때려 부쉈다. 19세기 초 요크셔, 랭커셔 등 양모산업 중심지로부터 시작된 러다이트 운동은 전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다급해진 정부도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1802년 공장법이 도입됐다. 이 공장법은 1833년까지 여러 차례 개정됐다. 노동시간은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됐고,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야간노동이 금지됐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았는가. 지주의 횡포에 일자리를 잃고 떠도는 농민이 사회문제화되자 정부가 나섰다. 이번엔 공장주는 산업의 변화를 이용해 권력 집단으로 부상했고, 노동자들은 사회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로 취급됐다. 국가는 사후 대책으로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공장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진 건 아니다. ‘생의 극단까지 내몰렸던 노동자의 삶’이 딱 죽지 않을 만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830년대 출판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는 당시 런던 빈민의 비참했던 삶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한 집단의 경제적 풍요는 다른 집단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 집단의 경제적 풍요는 다른 집단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허구생 ‘빈곤의 역사, 복지의 역사’ 중). 공간도 마찬가지다. 한 공간의 경제적 풍요는 다른 공간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증기기관은 교통의 발달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도시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829년엔 맨체스터에서 생산된 면을 리버풀까지 옮기기 위해 50㎞에 이르는 철도가 개설됐다. 도시와 도시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철도를 통해 무거운 화물을 먼 곳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증기기관차로 인해 도시는 농촌인구를 더 강하게 빨아들이는 빨판까지 갖추게 됐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물건을 파는 상인이 모여들었다. 음식점과 호텔도 늘었다. 1850년 정도엔 런던에 런던 브리지역, 유스턴역, 패딩턴역, 킹스크로스역, 비숍스게이트역, 세인트판크라스역, 워털루역 등 7개의 종점역이 생겼다. 런던 지하철은 1863년에 개통됐다. 19세기 중반 런던은 가장 큰 인구 흡입력을 가진 대도시로 떠올랐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 영국의 도시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세기 말부터 전기에너지 기반의 대량생산이 대세가 됐고 이는 공장의 자동화를 더욱 촉진했다.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은 화물차의 보급을 확대했다. 생산성이 폭증했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넓은 토지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필요했다. 기업의 생산 활동이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서 도시가 팽창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했다. 이제 영국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맞고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인구의 흐름보다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이동하는 인구의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융복합 산업의 대도시 입지 선호가 강해지면서 ‘농촌 대 도시’의 구도가 ‘중소도시 대 대도시’의 구도로 바뀌고 있다. 영국도 런던권 쏠림으로 인한 지역 격차 확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기만 다를 뿐 영국과 유사한 과정을 밟아 왔다. 영국의 농촌에서 공급된 인력이 영국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동인이 됐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1960년대 산업화 과정 속에서 농촌의 젊은이가 도시로 대규모 유입됐다. 이들은 제조업을 성장시키는 주역이 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산업단지가 도시 외곽에 지어지는 과정에서 도시는 계속 팽창했다. 1990년대 초부터 컴퓨터와 정보화 기반 산업들이 성장했고, 이는 도시 외곽뿐만 아니라 도시 내 정보기술(IT) 기업 일자리를 증가시켰다. 2010년 이후 고부가가치 일자리는 대도시, 대도시 중에서도 광역교통의 결절점에서만 성장하고 있다. 이젠 수도권만 활황이다. 학생도, 의사도, 근로자도, 투자자도 지방을 떠나고 있다. 대학도, 병원도, 회사도, 부동산도 수도권만 살아남을 기세다. ●대도시·중소도시·농촌은 ‘원팀’… 연대하여 지방도시 위기 극복을 도시의 성장은 농촌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그랬다. 농촌의 붕괴가 현실이 된 지금은 큰 도시가 중소도시의 희생으로 인해 성장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가 성장하고 있다면 그건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성장이 혼자만의 힘으론 어려운 것처럼 공간도 그러하다. 어떤 공간이 성장하고 있다면 그건 주변 공간에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농촌에, 대도시는 중소도시에 빚을 지며 성장해 왔다. 그러니 잘나가는 곳은 그렇지 못한 곳에 대해 ‘연대의 책임감’을 져야 한다. 이런 책임을 무시하면 ‘도덕적 의무감’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깊숙이 진행되면서 수도권 쏠림의 흐름은 더 강해질 것이다. 지방의 대도시마저 붕괴한다면 수도권의 성장도 불가능하다. 대도시, 중소도시, 농촌은 원래 한 팀이었다. 지방도시의 위기가 더 깊어지기 전에 대도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익을 중소도시와 농촌에 교차 보전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웃이 있으니깐[어린이 책]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웃이 있으니깐[어린이 책]

    영실이네 점방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영실이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가고, 마을 뒷산에서 즐거운 놀이를 한다. 마을 인근에는 군부대가 있다. 군부대에서 탕탕 들려오는 총소리는 일상이고, 마을 사람들이 탄피를 주워 고물상에 팔며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폭발 사고가 나고야 만다. 비극 앞에서 마을 사람들과 영실이는 슬픔에 빠진다. 동화는 주인공 영실이의 일곱 살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의 성장기를 담았다. 영실이의 눈을 통해 1960~1970년대 강원도 한 마을에서의 삶을 포근하게 묘사했다. 메뚜기를 잡아 볶아 먹거나 꽃이나 풀로 하는 놀이 등이 이색적이다. 정겨운 사투리 역시 시골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지금은 생소한 군부대 위문 공연 등 지금 아이들은 잘 모르는 과거 이야기를 펼친다.동화는 영실이의 시선으로 동네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는다. 겉으로 보기엔 다들 행복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각자 가슴에 슬픔을 묻고 있다. 순덕이는 아빠가 없지만 국숫집을 운영하는 할머니, 엄마와 함께 꿋꿋하게 살아간다. 명애는 부모님을 여의고 큰오빠네 집에서 살림을 도우며 지낸다.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담긴 동화에는 당시의 아름다운 추억과 아픔의 흔적이 담겼다. 특히 행복과 슬픔을 함께하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주택과 마을 풍경, 소품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그때 그 시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따뜻한 삽화가 눈에 띈다. 따스한 이야기와 그림으로 채운 책은 지난해 한국안데르센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그저 행복에만 있지 않음을 일깨운다. 아픔을 딛고 넘어서는 과정은 뜨거운 여름날을 통과해야 비로소 이룰 수 있음을, 그리고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 여성 두주불사 왜 안 돼?… 끈질긴 ‘이중잣대’

    여성 두주불사 왜 안 돼?… 끈질긴 ‘이중잣대’

    요즘은 볼 수 없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정부 부처 장·차관급 인사의 인물평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두주불사’(斗酒不辭). 말술도 사양하지 않을 만큼 주량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친화력이 좋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성 고위직 인사의 인물평에서는 이 단어를 보기 어렵다. 분명 여성 관료 중에서도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이 있을 텐데. 아마도 “나랏일 하는 여자가 술이나 마시고”라는 말이 나올까 우려했을 수도 있다. 역사학자이면서 애주가인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핑크색 칵테일, 단맛 나고 도수 낮은 술은 여자들의 것이고 위스키, 보드카는 남자들이 마시는 진짜 술이라는 편견은 어디서 생긴 것이냐는 의문을 품었다. 여자, 술, 역사라는 키워드를 가진 문헌은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본인이 쓰겠다고 결심하고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책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포복절도할 유머들과 서술돼있다.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술술 읽을 수 있는 이유다. 중세 시대의 물은 세균이 득실거려 그냥 마실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우유는 식탁에 올리는 음료가 아니었고 커피나 차는 아직 전해지기 전이었다. 맥주나 와인은 물을 대신해 남녀노소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마셔야만 하는 유일한 음료였다는 것이다.당시 술을 만들고 파는 것은 ‘에일와이프’라고 불리는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손님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기다란 빗자루를 문 앞에 내다 걸었다. 장터에서는 눈에 잘 띄기 위해 뾰족한 긴 모자를 썼으며 양조를 위해 쌓아둔 곡물 주변에 쥐가 덤벼드는 것을 막기 위해 고양이를 키웠다. 이쯤 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 하나가 있을 것이다. 바로 ‘마녀’이다. 당시 교회는 주일 예배에 오는 신도를 두고 에일하우스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여기에 에일하우스가 돈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남성들까지 가세하면서 에일와이프를 제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설명이다.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발효주 중심의 주류 시장에 위스키로 대표되는 증류주 개념을 만들어 낸 것도 다름 아닌 여성이다. 증류주가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가 넘어서지만 증류주를 가능케 한 기구와 증류 방법을 개발한 것은 100~200년경 활동했던 ‘유대인 마리아’라고 불리는 위대한 여성 연금술사였다는 것이다.또 192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라고 하면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전설적 갱스터 알 카포네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그를 뛰어넘는 ‘밀주의 여왕’ 거트루드 리스고라는 여성이 있었다. 실제로 금주법 시행 당시 여성 밀주업자들이 판매한 술은 남성 업자들의 5배 이상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17세기 에스터 사워넘이란 작가의 문장으로 대신하고 있다. 술에 대해 유독 남녀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는 이유가 뭔지 고민해볼 때다. “사람들은 여성이 술에 취한 모습은 혐오스러워하지만 남성의 만취는 그저 ‘사람 좋음’의 상징으로 본다. 따지고 보면 습관적으로 만취해 사고를 치는 것은 남성이 여성보다 백 배는 많은데 말이다.”
  • 굽이굽이 연둣빛 ‘넓은 벌 동쪽’… 지친 맘 쉬어 가라 하네

    굽이굽이 연둣빛 ‘넓은 벌 동쪽’… 지친 맘 쉬어 가라 하네

    아주 오래전 이른 봄에 충북 옥천의 강변을 본 적이 있다. 강물과 거의 높이가 같았던 강변은 온통 연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지역 출신 시인 정지용의 시 ‘향수’를 떠올린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이제 어린 날의 기억을 되짚어 그 강변을 찾아나선다. 목표는 두 가지다. 올 마지막 시기에 이른 반딧불이 관찰과 시 ‘향수’에 등장하는 ‘넓은 벌 동쪽’을 찾아보는 것. 두 가지 모두 쉽지는 않다. 반딧불이는 밤이 이슥해야 ‘유혹의 춤’을 선보인다. 이는 ‘퇴근 시간’이 그만큼 늦춰진다는 걸 뜻한다. ‘넓은 벌 동쪽’ 역시 대청호가 조성되면서 지형 자체가 현격히 바뀐 탓에 찾기가 만만하지 않다.옥천은 한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시인으로 꼽히는 정지용(1902~1950)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현재의 옥천 중심에 빗대 옥천 구읍(옛도심)이라 불린다. 정지용에게 옥천은 애증의 땅이지 않았을까 싶다. 남북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 불온한 시인으로 몰리면서, 한동안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던 고향이 바로 옥천 구읍이라서다. 그럼에도 그의 시들은 대개 고향과 고향의 정서에 맞닿아 있다. 한때 그를 멀리했던 고향 역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먼 길을 돌아온 그의 시를 기꺼이 보듬어 주고 있다.●정지용의 詩 ‘향수’의 그곳… 오지로 남은 안터일까, 피실일까 옥천(沃川)은 비옥한 물길이 지나는 곳이란 뜻이다. 금강의 푸른 물줄기가 산모퉁이를 돌고, 너른 들녘을 굽이굽이 적신 뒤 대청호로 흘러든다. 시 ‘향수’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안터마을 일대다. 대청호로 유입되는 작은 물줄기의 끝자락에 연초록 공간이 펼쳐져 있다. 실개천이 지줄대며 휘돌아 가고 안터마을 외양간에선 간간이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실개천과 외양간이 있다 해서 시의 무대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는 거 잘 안다. 뭐 그런들 어떤가. 이 풍경 앞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걸. ‘넓은 벌 동쪽’으로 유력한 또 다른 지역은 피실이란 곳이다. 여기는 다소 상상이 필요한 공간이다. 시계추를 정지용의 어린 시절쯤으로 돌려 보자. 대청댐과 대청호는 없었고, 거대한 담수호가 삼킨 땅들도 절반 넘어 뭍이었을 때다. 산자락 사이로 개여울이 흘러가고 주변으로는 평탄한 연둣빛 초지가 광활하다. 딱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뛰놀고, 둑방길엔 소꼴 매러 가는 촌부며 장 보러 가는 아낙 등이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 말이다. 지금의 피실은 사실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위험한 교행을 각오해야 닿을 수 있다. 대청댐이 조성되면서 지형이 완전히 변한 탓이다. 안터와 피실 등이 오지로 남아 좋은 점도 있다. 반딧불이처럼 점점 갈 곳을 잃어 가는 생명들이 인적을 피해 살아갈 수 있어서다. 여름은 은하수 관찰의 적기이기도 하다. 성하의 계절이 될수록 은하수 떠오르는 시간이 더 당겨진다. 요즘은 밤 10시 언저리에 떠오른다. 안터, 피실 등 은하수 관찰이 용이한 곳은 사진 촬영을 위해 늦은 밤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은하수를 찾을 수 있다.●인기척 없이 갔더니… 반딧불이 수십 마리 어우러져 야간 비행 고대하던 반딧불이는 밤 11시 즈음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 정도만 눈에 띌 정도로 애간장을 태우던 녀석들은 밤이 이슥해지고서야 곳곳에서 수십 마리가 어울려 야간 비행을 펼쳤다. 한국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이 있다. 안터마을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대부분 운문산반딧불이다. 여러 반딧불이 가운데 가장 먼저 출현해 6월 중·하순 무렵까지 영롱한 빛을 낸다. 녀석들이 빛을 내는 건 짝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녀석들이 선보이는 연둣빛 유혹의 선은 혼인비행의 결과물인 셈이다. 달빛이 밝은 보름보다는 달빛이 적어지는 상, 하현으로 갈수록 반딧불이가 잘 관찰된다. 차량 불빛이나 손전등 등 밝은 빛이 있으면 녀석들은 자신의 빛을 감춘다. 인기척에도 반응한다. 가급적 어두운 상태를 유지하고, 말소리를 삼가야 반딧불이의 활발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황국신민비’ 즈려밟고서… 정지용 생가·문학관에서 만난 詩 세계 이제 옥천 구읍으로 간다. 정지용 생가가 있는 곳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30여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돼 월북 작가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1988년 해금됐고, 생가는 1996년에야 복원됐다. 정지용 생가 입구의 실개천 위엔 황국신민서사비가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저 돌다리 정도로만 여기지만 사실 사연이 많은 비다. ‘청석교’라 불리는 돌다리엔 원래 1937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황국신민서사’가 새겨져 있었다. ‘일본제국의 신민이며 일왕에게 충의를 다한다’는 따위의 내용이 담긴 일종의 맹세문이다. 일제는 전국에 황국신민서사비를 세웠는데 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는 옥천 지역에 남은 두 개의 비석 중 하나다. 원래 청석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지난 세기말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꼭 ‘사뿐히 즈려밟고’ 생가로 넘어가길 권한다. 생가 옆은 정지용 문학관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정지용 밀랍인형, 그의 삶과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인근 교동저수지와 장계관광지 등에서도 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육영수 여사 생가·옥천전통문화체험관도 필수 코스 정지용 생가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엔 영부인이었던 육영수(1925~1974) 여사의 생가가 있다. 정지용 생가가 건평은 비좁고 주변 터가 넓다면 육영수 생가는 건평 자체가 광활하다. 1894년 축조된 건물을 육 여사의 부친이 1918년 매입한 것으로 당시 사랑채, 안채, 별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육 여사 서거 이후 방치되다 1999년 철거됐고, 2010년에 지금의 건물로 복원됐다. 육 여사의 방은 안채 뒤에서 대숲과 마주보고 있다. 도자기와 재봉틀, 다리미, 좌식 책상 등이 있는 작은 방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생가 앞뜰은 ‘밭 전’(田)자 연못이다. 6월 말부터 연꽃 바다가 된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도 필수 방문 코스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된, 믿고 가는 ‘K컬처 핫플레이스’다. 교동저수지는 밤에 찾을 만하다. 연못 주변으로 경관 조명이 들어오면서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 “17세 춘향이 40~50대 여성으로 보여”… 새 영정 교체 논란

    “17세 춘향이 40~50대 여성으로 보여”… 새 영정 교체 논란

    “기품있는 자태가 안 보인다.” “곧은 지조가 나타나지 않는다.” “청순하지 않고 나이 들어 보인다.” 친일 작가 작품 지적에 휘말려 2020년 9월 철거된 이후 32개월만에 다시 제작된 춘향 영정이 또 논란에 휩싸였다. 22일 남원시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개최된 제93회 춘향제에서 새 영정을 광한루원 춘향사당에 봉안했다. 1939년 이당 김은호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전은 작가의 과거 친일 행적으로 2020년 철거됐다. 이번 영정은 김현철 작가가 제작했다. 1억 7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김 화백이 그린 춘향 영정은 가로 94㎝, 세로 173㎝ 크기다. 새 영정은 남원시의 지원을 받아 남원문화원이 제작을 주도했다. 그러나 새 영정을 본 남원시민과 관광객들은 도무지 춘향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남원 지역 15개 단체로 구성된 남원시민사회연석회의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새 그림 속 춘향은 도저히 10대라고 보기 힘든 나이 든 여성”이라며 “춘향의 덕성이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가 지난달 25~27일 시민·관광객을 대상으로 ‘최초 춘향 영정과 새 영정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최초 춘향 영정은 1313표, 새 영정은 113표를 얻었다. 논란이 거듭되자 남원시의회가 춘향 영정을 다시 제작하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남원시의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인상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춘향’을 그려야 하는데 새로운 춘향 영정은 중성적인 이미지의 40~50대 여성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의원들은 이번 춘향 영정은 대다수 남원시민이 춘향영정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전국적인 논란거리가 됐다고 질책했다. 앞서 새 영정을 그린 김현철 작가는 “새 춘향 영정은 판소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와 경판본 ‘춘향전’의 첫대목에 등장하는 5월 단오를 맞아 몸단장을 한 채 그네를 타기 위해 나오는 17세 안팎의 18세기 여인상을 염두에 두고 그렸다”고 밝혔다.
  • “나이 들어 보인다”…1억 7천만원 들인 춘향 영정 또 논란

    “나이 들어 보인다”…1억 7천만원 들인 춘향 영정 또 논란

    “곱고 기품있는 자태가 안보인다.” “곧은 지조가 나타나지 않는다.” “청순하지 않고 나이 들어 보인다.” 친일 작가 작품 지적에 휘말려 2020년 9월 철거된 이후 32개월만에 다시 제작된 춘향 영정이 또 논란에 휩싸였다. 새로 그려진 춘향 영정에 대한 지적이 빗발치자 급기야 남원시의회가 다시 제작할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22일 남원시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개최된 제93회 춘향제에서 새 영정을 광한루원 춘향사당에 봉안했다. 1939년 이당 김은호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은 그의 과거 친일 행적으로 2020년 철거됐다. 이번 영정은 김현철 작가가 제작했다. 1억 7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김 화백이 그린 춘향 영정은 가로 94㎝, 세로 173㎝ 크기다. 새 영정은 남원시의 지원을 받아 남원문화원이 제작을 주도했다. 그러나 새 영정을 본 남원시민과 관광객들은 도무지 춘향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남원 지역 15개 단체로 구성된 남원시민사회연석회의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새 그림 속 춘향은 도저히 10대라고 보기 힘든 나이 든 여성”이라며 “춘향의 덕성이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가 지난달 25~27일 시민·관광객을 대상으로 ‘최초 춘향 영정과 새 영정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최초 춘향 영정은 1313표, 새 영정은 113표를 얻었다. 논란이 거듭되자 남원시의회가 춘향 영정을 다시 제작하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9일 춘향 영정과 관련 긴급 간담회를 가진 남원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새 영정이 제작 목적을 빗나갔다며 작가와 협의해 춘향 영정을 다시 그릴 것을 남원시에 주문했다. 남원시의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인상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춘향’을 그려야 하는데 새로운 춘향 영정은 중성적인 이미지의 40~50대 여성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의원들은 이번 춘향 영정은 대다수 남원시민이 춘향영정으로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전국적인 논란거리가 됐다고 질책했다. 이에대해 남원시는 “시간을 갖고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시 의회에 전달해 춘향 영정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새 영정을 그린 김현철 작가는 보도자료를 통해 “새 춘향 영정은 판소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와 경판본 ‘춘향전’의 첫대목에 등장하는 5월 단오를 맞아 몸단장을 한 채 그네를 타기 위해 나오는 17세 안팎의 18세기 여인상을 염두에 두고 그렸다”고 밝혔다.
  • 김홍진 유나이티드 갤러리 개인전…붓으로 낚은 마음을 화폭에 담아 나누는 ‘Soul Fishing’

    김홍진 유나이티드 갤러리 개인전…붓으로 낚은 마음을 화폭에 담아 나누는 ‘Soul Fishing’

    김홍진 작가 개인전 ‘Soul Fishing 5 마음터’가 21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김홍진 작가는 마음을 탐구하는 여행자로서의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전시회의 명칭인 ‘Soul Fishing’은 짧은 붓을 낚시대로 삼아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을 비유해 지었다. 작가는 1984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는 1980년대 격변기 속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갈등을 겪고 난 뒤 ‘삶의 지혜’에 관심을 갖고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초기 원시불교의 수행법인 ‘윗사파나’를 접하고 단순한 원을 그리며 마음을 성찰하는 자신만의 작업방법을 개발했다. 작가는 “2019년 봄의 어느 새벽, 작업실이 있던 건물 옥상에서 여명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이 활짝 열리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 뒤 자연과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기운을 접하고 에너지를 받아 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홍진 작가는 ‘Soul Fishing’에 담긴 내면 찾기와 마음 다스리기의 방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 큰 의미를 둔다. 작가는 “하늘 아래 수평선으로부터 무한대로 밀려오는 파도로부터 지혜로 가득 찬 선조들의 사물로부터 배우고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전시 기간 중인 30일 전시장소인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Soul Fishing’ 방법론에 대한 일반인 대상 무료 워크숍도 진행한다.
  • [7장의 사진으로 남은 돌로미티 끝] 여드레 소라피스 호수

    [7장의 사진으로 남은 돌로미티 끝] 여드레 소라피스 호수

    아찔한 벼랑을 돌았다. 몸피가 있는 이라면 혼자 겨우 빠져나갈 만한 벼랑 길이다. 겁에 질린 이들은 오른손으로 밧줄을 붙잡고 조심조심 걷는다. 아찔하지만 짜릿한 절경을 선사한다는 소문이 돌로미티에 매혹된 한국인 산객들에게 제법 퍼지기 시작한 소라피스 호수를 지난 18일(현지시간) 다녀왔다. 사실 이번 돌로미티 여행 중에 가장 새롭고 신비한 여정은 이곳이었다. 일년 전 여행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이탈리아 전문 여행 가이드 이상호 씨의 유튜브 동영상들을 찾아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됐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대중교통 편이 여의치 않아 택시를 타고 갔다고 했다. 미주리나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는 정보만 있을 뿐 어느 방향으로 가야 나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틈나는 대로 검색했지만 도대체 이곳이 어디쯤에 있는지 기초적인 정보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손에 잡히지 않으면 더 궁금해지는 법, 도비아코에서 코르티나행 첫 편인 오전 7시 8분 445번 버스를 타야만 오전 8시 소라피스 산행의 출발점인 파소 트레 크로치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아침을 먹지 않고 그렇게 무리해야 하나 싶었고, 숙소에 체크인 하기 전에 짐을 맡겨야 하는데 그 이른 시간에 그게 가능할지 자신할 수 없었다. 해서 포기했다. 그렇게 오전 10시 8분 445번 버스를 타고 코르티나 정류장에 도착하니 10시 50분이 거의 다 돼 있었다. 숙소에 짐을 맡긴 뒤 터미널로 되돌아와 파소 트레 크로치 가는 버스 30-31번 노선 안내도를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이 버스는 쉽게 설명해 코르티나를 한 가운데 놓고 파소 팔자레고와 미주리나 호수-트레 치메의 출발점인 아우론조 산장을 오가는 노선이었다. 소라피스 호수는 당연히 코르티나와 미주리나 호수의 중간 지점, 코르티나를 감싸는 두 뒷산인 크리스탈로와 팔로리아를 잇는 고개인 파소 트레 크로치에서 출발하게 돼 있었다. 코르티나에 도착한 첫 날 엄청 고민했는데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오후 2시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했다. 왕복 4시간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이 편을 이용해 갔다가는 돌아오는 막차가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해서 이날은 여행의 피로도 쌓여 있고 해서 하루 쉬기로 했던 것이다. 16일 트레 치메와 17일 라가주오이, 친퀘 토리, 토파나 케이블카를 모두 이용해 돌로미티 슈퍼썸머 카드를 다 쓴 다음 18일 새벽 4시 30분 코르티나 숙소를 출발했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첫 차가 오전 8시 38분에 있었다. 평일이라면 오전 8시에 첫 차가 출발한다. 이날 베네치아로 떠나는 ATVO 버스를 오후 1시에 타야 해서 부득이하게 이른 새벽 걸어서 파소 트레 크로치까지 가기로 했다.좋았다. 이제 막 깨어난 새들이 영롱하게 지저귀는 소리들을 들으며 걷는 길이었다. 코르티나 아래쪽에서 보면 크리스탈로와 팔로리아가 거칠게 뒤를 막아서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널찍널찍하다. 코르티나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여성(28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이 그랬다. 숨어 있는 집들이 많다고, 정말로 그랬다. 곳곳에 널찍한 주택과 롯지, 호텔들이 즐비했다. 길어야 한 시간이면 파소 트레 크로치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장난이 아니다. 구불구불, 이 고비 돌고나면 또 고비가 나오고, 무심한 듯 지나치는 승용차, 트럭들이 얄미워지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인들 인정 많다더니 다 헛소리구만, 되뇌곤 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 새벽, 19세기 정신병자처럼 유럽을 헤매던 여행자들이라도 된 듯, 웬 동양인이 거지 같은 꼬락서니로 길을 걷는데 누가 태워주고 싶겠는가. 아무튼 파소 트레 크로치에 다다랐는데 오르막이 모두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기 직전 드넓은 초지에 길 양쪽에 호텔이 하나씩 들어서 있고 승용차들이 다섯 대쯤 늘어서 있었다. 직감적으로 215번 루트가 시작되는 곳이구나, 알 수 있었다. 이탈리아 청년이 먼저 들머리에 들어섰다가 뭘 잊은 뒤 차 쪽으로 돌아온다. 본 조르노, 인사하고 그를 기다리는 친구도 앞질러 내달렸다. 이때가 오전 6시 25분,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어 소라피스 호수로 가는 첫 여정을 이제야 시작했다. 길은 호젓했다. 적어도 오늘 아침은 내가 ‘1번’이구나 싶었다. 정말 마음 푹 놓고 걸을 수 있는 평탄한 오솔길을 걸었다. 저 앞에 누군가 걸어온다. 놀랍다. 이 새벽에, 한국인이다. 기자보다 연배가 조금 위인 듯했다. 어디를 이렇게 부지런히들 가시는가, 그 분이 물었다. 소라피스 호수라는 곳인데, 가는 데만 두 시간 걸린다고 알고 있다. 내가 답했다. 보아하니 이 근처 숙소에 묵거나 캠핑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주의할 점은 이곳에 소라피스 호수로 가는 길임을 확신할만한 어떤 표지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215번 루트 길도 반델리 산장 가는 길이라고만 안내돼 있다. 어느 이탈리아인도 돌아오는 기자에게 이 길로 가면 소라피스 호수가 나오는 거냐고 물을 정도였다. 반델리 산장 가는 길, 호수로 가는 길이 맞다!30분쯤 바삐 걸음을 옮겼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크리스탈로 자락에서 뻗아나와 멀리 트레 치메 쪽까지 바위산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고 멀리 미주리나 호수 쪽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수림이 좍 펼쳐진다. 내설악과 지리산 연봉을 합쳐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소쇄한 물소리가 우렁차면서도 줄기차다. 아, 소라피스 호수는 물빛보다 어쩌면 새들과 계곡 물이 빚어내는 소리의 향연이 더욱 아름다울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약간의 고비가 시작돼 이른 아침 쉼없이 달려온 부담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잠깐 쉬며 옷차림을 가벼이하며 사과, 빵, 초코과자 등으로 아침을 들었다. 아찔한 벼랑 길은 있지만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면 초심자도 무난히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길이었다. 평소 남에게 추월당하지 않는데 네 쌍 정도에게 추월 당했다. 벼랑길을 돌아 20분쯤 오르니 산장이 보인다. 나무에 가려졌다가 보여줬다가 하는데 그 숨바꼭질이 끝날 때쯤 호수가 눈앞에 떡 나타난다. 과연 옥빛 물색이 영롱하다. 하지만 전언대로 수량이 많이 줄어 산그림자 비치는 깊이가 그다지 깊지 않았다. 그보다 호수를 가운데 넣고 멀리 미주리나 쪽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와의 조화가 더욱 싱그럽다. 호수의 물빛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데 이탈리아 아가씨 서너 명이 호수를 들었다놨다 한다. 한 남자애가 추임새를 넣었는데 아가씨들이 깔깔깔 호드득 난리법석이다. 고요해야 할 산정 호수에 무슨 추태인가 싶어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 위쪽으로 올라가 건너편 산그리메를 카메라에 넣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이었다. 10분쯤 뒤 그네들도 떠나고 드론을 띄워 촬영하는 두 청년, 진즉부터 진지하게 물빛을 카메라에 담는 데 여념이 없는 청년 이렇게 넷만 남았다. 멀리 호수 건너편 서너 명의 남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르겠고.아무튼 이제 내려온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정말로 무섭게 사람들이 밀려온다. 초반에는 20초, 30초마다 인파가 몰려와 본 조르노 했는데 나중에는 큰 강아지들과 사람들이 거의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아래 데스 존 지점마냥 한 줄로 나란히 선다. 오전 10시 30분쯤 미주리나 호수 다녀오는 버스를 탈 수 있겠다 싶어 강아지들 사진도 찍고 여유를 부렸는데 나중에 10시 5분인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마구 뛰다시피 했다. 맨처음 들머리로 나오니 10시 1분쯤이었는데 아뿔싸 정류장 표지판이 없다. 바지런히 걸으며 두 젊은이에게 버스 스탑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미안하단다. 자기들도 모르겠다는 것인데 버스란 단어도 모르나 싶었다. 나중에 일행이 그런다. 버스가 아니라 타르메라 해야 알아먹는다고. 그냥 코르티나까지 걸어갈까 생각하고 터덜터덜 걷는데 버스가 내려온다. 정말 간절하게 두 팔 들어 세워달라고 간청했다. 나이 지긋한 기사이신데 나랑 눈이 딱 마주쳤다. 웬 동양인 그지 같은 것이 저 장소에서 버스를 멈추라고 신호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뒷차들이 연거푸 따라오는데도 버스는 멈췄고, 나는 4유로쯤을 지불하고 버스로 새벽에 2시간 걸렸던 거리를 20분 만에 돌아와 오전 10시 30분쯤 코르티나 정류장에 돌아와 일행과 반갑게 만나 무사히 베네치아로 돌아오는 버스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오전 11시 코르티나 골목 길의 바에 들어가 호기롭게 생맥주를 들이켰다. 소라피스여 안녕! 돌로미티여 안녕!
  • ‘분신 사망’ 양회동씨 발인… 건설노조 경찰청으로 행진

    ‘분신 사망’ 양회동씨 발인… 건설노조 경찰청으로 행진

    지난달 1일 분신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씨의 유가족과 건설노조 조합원 등 5500여명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운구차량을 따라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양씨를 그린 대형 걸개그림을 앞세우고 ‘양회동을 살려내라’ 등이 적힌 깃발을 든 채 2∼3개 차로를 이용해 경찰청까지 약 4.5㎞를 행진했다. 이날 양씨는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묻혔다. 지난 17일부터 닷새간 일정으로 진행된 노동시민사회장도 양씨가 숨진 지 50일 만에 마무리됐다. 연합뉴스
  • 홍국표 서울시의원, ‘우이천 그림그리기 대회’ 참석

    홍국표 서울시의원, ‘우이천 그림그리기 대회’ 참석

    서울시의회 홍국표 의원(국민의힘·도봉2)은 지난 17일 도봉구 우이천에서 열린 ‘제6회 우리동네 우이천 그림그리기 대회’에 참석했다. 도봉구 관내 유치원생과 초·중학생 150여명이 참석했으며, 쌍문1동 주민자치회 교육 분과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됐다. 홍 의원은 축사를 통해 “코로나19로 몇 년간 온라인으로 개최돼 안타까웠는데 올해는 우이천 현장에서 진행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오늘 참석한 아이들이 우이천의 기운을 받아 큰 인물로 성장하길 바란다”라고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이어 “아이들이 마을의 생태하천인 우이천을 주제로 그림 실력을 뽐낼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 준 쌍문1동 주민자치회 관계자들께 감사드리며, 그림그리기 대회가 쌍문1동의 대표행사로 지속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회의 수상작들은 백운교 아래 우이천 갤러리에 전시될 예정이다.
  • 전남도, 레이저산업 생태계 조성 용역 착수

    전남도, 레이저산업 생태계 조성 용역 착수

    전라남도는 21일 도청 정철실에서 ‘레이저산업 생태계 조성 종합계획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고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 유치 및 레이저 산업생태계 조성 계획 마련에 들어갔다.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 유치 및 이와 연계한 레이저 산업생태계 조성을 통해 레이저산업 국가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포석이다. 전남도와 나주시가 공동 추진하는 이번 연구용역은 레이저 산업생태계 조성 종합계획 수립과 레이저 부품 국산화 품목 발굴, 산업부 주관 레이저 산업 클러스터 지정에 대비한 사전 기획 수행 등 전남도가 레이저산업의 국가 핵심 거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이번 용역에는 레이저산업을 활용한 전남 권역별 전략산업 고도화 방안도 포함해 추진할 예정이다. 권역별로 나눠 나주에는 레이저종합클러스터, 동부권에는 우주·항공과 신소재, 철강산업, 북부권은 장비·소재·부품 산업, 중부권에는 의료·바이오 산업 고도화를 통해 지역별 차세대 산업과 레이저산업 간 시너지를 얻기 위한 전략을 발굴, 추진할 방침이다. 전남도는 레이저산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선도기업 등 레이저 기업 20개 유치와 고용 5천여 명 창출 등을 통해 약 1조 5천억 원의 총생산 증대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상구 전남도 에너지산업국장은 “대한민국을 이끌 히든카드인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 유치와 함께 연구시설을 핵심으로 한 산업이 형성돼야 지역 발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번 용역을 통해 기업 유치 및 일자리 창출, 인구 유입에 기여하는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대형 레이저 산업 클러스터의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 험상궂은 인상을 지닌 사내의 반전 이력 [으른들의 미술사]

    험상궂은 인상을 지닌 사내의 반전 이력 [으른들의 미술사]

      퇴역 군인, 낡은 담요와 구두의 공통점 이마에서 뺨까지 깊게 패인 흉터 때문에 남성의 인상은 다소 험악해 보인다. 헨리 리 히긴슨(Henry Lee Higginson, 1834~1919)은 남북전쟁 당시 입은 오른쪽 뺨의 흉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40년 전 히긴슨은 남북전쟁 당시 연합군을 이끈 장교였다. 그는 남북전쟁에서 복무한 후 퇴역한 군인으로 낡은 담요를 덮고 낡은 구두를 신고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장교도 군인도 아니다. 70대로 들어선 그가 무릎 담요를 덮은 것으로 보아 그의 무릎 상태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70대의 퇴역 군인, 낡은 구두와 담요의 공통점은 그 쓸모를 다 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망령을 붙잡듯 무심히 앞을 바라보고 있는 이 늙은 사내의 삶은 어땠을까?   퇴역 군인 히긴슨의 이력은 독특하다. 183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에서 공부했으나 다 마치지 못하고 1856년 비엔나에서 1년 동안 음악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3년간 남북전쟁에 복무했으며 1864년 심각한 부상으로 제대했다. 특히 그는 오른편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한 부상을 당했다. 그는 이 부상으로 소령에서 중령으로 명예 진급했다.   전쟁터에서 오케스트라 무대로 그는 퇴역한 후 보스턴으로 돌아와 금융 사업을 했다. 금융업으로 크게 성공한 히긴슨은 1881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립했다. 그는 미국의 문화 수준이 유럽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는 자각에서 유럽 출신의 전문 음악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게오르크 헨셸, 카를 무크와 같은 최고 수준의 지휘자를 고용했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처음 한 두 해를 제외하고 그가 사망할 때까지 매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무모한 활동을 비웃었다. 미국은 아직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척박한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가 오케스트라를 창립하면서 내건 목표 중 하나는 대중들이 부담 없는 금액으로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즐기는 것이었다.     다시 전쟁터에서 희생당한 사람에게로 그의 자선활동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남북전쟁에서 희생당한 어린 병사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제안했다. 히긴슨은 같은 동포끼리 총과 칼을 겨눈 아픈 기억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1890년 히긴슨 소령은 하버드 스타디움(현재 바커 센터) 건립을 하버드에 제안했다. 또한 9년 후 그는 하버드 유니온 건립을 위해 하버드에 15만 달러를 쾌척했다.   훈장같은 상처 하버드 대학은 하버드 병사들의 안식처 건립기금을 기부한 히긴슨을 기리기 위해 사전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이 그림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40여 년이 흘러 그린 그림이다. 전쟁 후 40여 년이 흐르자 남북전쟁의 영웅을 기억하는 이도 드물고 남북전쟁 자체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퇴역한 군인은 자기가 사용했던 40년 전 구두와 담요처럼 비록 자신의 몸이 쇠락했지만 자신의 군인 정신만큼은 아직도 살아있음을 담담히 내보이고 있다. 감추고 싶은 상처를 굳이 드러낸 것은 히긴슨의 의지였다. 히긴슨은 이 상처를 훈장처럼 여겼다. 그는 85세에 수술 집행 도중 허망하게 사망했다. 비록 히긴슨의 육신은 사라졌어도 남을 위하는 그의 정신은 하버드 교정 위에,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무대 위에 남겨져 있다.
  • 50일만에 건설노조 간부 영결식…“좋은 세상 만들고자 했다”

    50일만에 건설노조 간부 영결식…“좋은 세상 만들고자 했다”

    노조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분신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50)씨의 발인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지난달 2일 치료받다가 숨진 지 50일 만이다. 주례를 맡은 천주교 노동사목위원장 김시몬 신부는 “5월 4일 양회동 미카엘 형제의 장례미사를 한 번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이 죽음을 아직 잘 못 받아들이기에 또다시 치르게 됐다”면서 “양회동 열사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우리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다시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인미사에는 유가족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 60여명이 참석했다.오전 8시 55분쯤 운구차량이 노제가 예정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발하자 건설노조 조합원 등 주최 측 추산 5000명이 뒤따랐다. 이들은 양씨를 그린 대형 걸개그림을 앞세우고 ‘양회동을 살려내라’ 등이 적힌 깃발을 든 채 행진했다. 장례위원회는 오전 11시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치른 뒤 오후 1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영결식을 한다. 오후 4시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서 하관식을 끝으로 양씨의 장례 절차는 마무리된다. 양씨는 지난달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이튿날 숨졌다. 양씨는 강원 지역 건설현장에서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는 등 공사를 방해하고 현장 간부의 급여를 요구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았다. 건설노조는 장례 절차를 위임받아 지난달 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의 사과 등을 요구하다가 지난 17일부터 이날까지 5일간 노동시민사회장을 치렀다.
  • “1400만원 드려요” 도난 그림에 포상금 건 스위스 미술관

    “1400만원 드려요” 도난 그림에 포상금 건 스위스 미술관

    스위스의 유명 미술관인 ‘쿤스트하우스 취리히’(Kunsthaus Zürich)가 최근 도난당한 미술품 2점에 1만 스위스프랑(약 1434만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고 20일(현지시간) 스위스인포가 전했다. 이날 현지 경찰과 미술관 등에 따르면 사라진 미술품 2점은 지난해 9월 21일부터 12월 22일 사이에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관은 세계 최대 분실·도난 예술작품 데이터베이스인 ‘아트 로스트 레지스터’(Art Lost Register)에 그림 2점을 등록했으며, 경찰은 도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그림의 행방이나 범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경찰에 연락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에 도난당한 그림 2점은 장기 대여 형식으로 전시 중이던 개인 소유 작품이다. 도난당한 그림은 둘 다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으로 한 점은 로버르트 판 덴 후커가 17세기 중엽에 그린 ‘야영지의 병사들’(18.8×24.7㎝), 다른 한 점은 디릭 드 브레이의 ‘대리석 명판 위의 유리 꽃병에 든 수선화와 다른 꽃들’(30.9×23.5㎝)이다.
  • ‘부산 키링’ 패션 외교·이재용 등 재계 총출동

    ‘부산 키링’ 패션 외교·이재용 등 재계 총출동

    윤석열 대통령은 순방 첫 일정으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동포들과 만나 “우리 국민들께서 염원하는 박람회 유치를 위해 프랑스 동포들께서도 힘을 모아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프랑스 동포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오는 11월 에펠탑이라는 대표적인 박람회 유산을 자랑하는 이곳 파리에서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을 위한 최종 투표가 진행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돼 뛰고 있다”며 “이번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는 인류가 당면한 복합위기에 대응하는 솔루션 플랫폼으로서 세계 시민과 미래세대를 위한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엑스포를) 유치하게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글로벌 외교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라며 “동포 여러분께서도 모국의 발전을 위해 소중한 역할을 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다문화 가정 동포, 입양 동포를 포함해 각계각층에서 활약 중인 동포 1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계인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세드리크 오 전 경제재정부 및 공공활동회계부 디지털담당 국무장관, 피아니스트 백건우, 박지윤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악장 등도 포함됐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패션으로 엑스포 유치를 지원했다. 김 여사는 전날 순방길에 함께 오르면서 부산을 상징하는 파도 그림과 함께 ‘BUSAN IS READY’(부산은 준비됐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가방 열쇠고리를 선보였다. 김 여사는 열쇠고리 제작과 기획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은 준비됐다’는 문구는 지난 4월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의 부산 방문 당시 부산시가 만든 구호로, 윤 대통령이 BIE 청와대 환영 만찬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그룹 총수들도 엑스포 유치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날부터 21일까지 진행되는 BIE 총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12개 그룹의 민간 대표단 19명이 BIE 총회와 리셉션 등에서 엑스포 유치를 지원했다. 부산이 엑스포를 유치하면 60조원의 경제 효과와 50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기업 총수들이 유치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 김건희와 오찬 마크롱 여사 “블랙핑크 공연·팬 인상적”

    김건희와 오찬 마크롱 여사 “블랙핑크 공연·팬 인상적”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친교 오찬을 가졌다. 김 여사와 마크롱 여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의 한류 열풍과 양국 문화·예술 교류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마크롱 여사는 취약계층을 위해 자신이 주도한 ‘노랑 동전 모으기 갈라 콘서트’에 블랙핑크가 참여한 것을 언급하며 “한류 자체도 매력 있지만 질서 있게 공연을 즐기는 한류팬들도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는 “양국이 서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큰 만큼, 이를 바탕으로 더 잘 이해하고 교류를 확대하자”며 “프랑스의 훌륭한 예술 작품들이 한국에 보다 많이 소개될 수 있도록 마크롱 여사가 관심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마크롱 여사는 서울에 개관 예정인 퐁피두센터 분원에 좋은 작품이 전시될 수 있도록 지속 협력하자고 했다. 김 여사와 마크롱 여사는 디자인, 정원 등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 여사는 “한국에 유능한 청년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그 능력이 세계 무대에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디자이너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 무대에 효율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마크롱 여사는 다음 ‘파리디자인위크’에 한국 디자이너들을 초청, 그들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한편, 김건희 여사는 프랑스 현지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한 홍보에도 적극 나섰다. 김 여사는 이날 오후 외신 기자 14명과 함께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의 ‘2023 한국문화제 테이스트 코리아’ 부산 특별전을 둘러봤다. 전시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부산다방’이라고 이름 붙은 1층 공간에는 오래된 레코드판과 전축, 부산엑스포 홍보 캐릭터인 ‘부기’ 인형, 1990년 파리엑스포 당시 한국관 모습을 담은 그림 등이 전시됐다. ‘부산 이즈 레디’(BUSAN IS READY) 문구가 적힌 입간판도 놓였다. 3층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였던 부산에서 예술가들이 아지트로 삼은 광복동 다방 ‘밀다원’으로 꾸며졌다. 파란색 바지 정장 차림을 한 김 여사는 관람에 앞서 “부산다방에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파리가 아주 열정적인 도시이지 않느냐. 부산엑스포(유치)를 앞두고 대한민국은 아주 뜨겁고, 부산은 더욱더 뜨겁다”고 말해 외신의 관심을 요청했다.
  • 스파이더맨이 280명… 우리 곁에 영웅이 산다[영화 리뷰]

    스파이더맨이 280명… 우리 곁에 영웅이 산다[영화 리뷰]

    화려하고 선명한 색의 그림, 독특한 만화적 효과, 역동적인 액션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이 5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21일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편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에게 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는 스파이더우먼 그웬이 다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마일스는 그웬을 비롯한 여러 스파이더맨들과 함께 악당 스팟을 쫓는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2014년 마블 코믹스에서 연재된 ‘얼티미트 코믹스 스파이더맨’의 평행 세계인 ‘스파이더버스’를 기반으로 한다. 시리즈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평행 세계 속 스파이더맨들이 만나는 ‘다중 우주’가 핵심 개념이다. 전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스파이더맨들이 거대 차원 이동기를 통해 불안정하게 다른 우주로 이동했다면, 이번에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가 운영하는 차원 이동 시스템으로 우주를 넘나든다. 다중 우주에 등장하는 무수한 스파이더맨들은 영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애니메이션만의 매력을 한껏 보여 준다. 이번 편엔 무려 280명이 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브루클린 출신 10대 소년 마일스와 그를 돕는 그웬,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 소사이어티의 리더인 미겔 오하라, 인공지능(AI) 스파이더맨 벤 라일리, 인도 대표 스파이더맨 등 독창적인 스파이더맨이 어우러진다. 우주가 달라지면 그림체도 바뀌고, 2D와 3D가 자연스레 뒤섞인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던 전편에 이어 이번 편에서는 그래픽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각 스파이더맨 캐릭터와 그들의 세계에 걸맞은 음악을 곁들여 귀도 즐겁다. 연출을 맡은 저스틴 톰프슨 감독은 “지난 시리즈에서 시도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거나 영화를 다 볼 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가 너무 많았다. 이제껏 배운 기술을 모두 활용해 비주얼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39분.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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