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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시대] 아름다운 지방선거가 보고 싶다

    [지방시대] 아름다운 지방선거가 보고 싶다

    지방선거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자 또다시 씁쓸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편법과 꼼수가 사라진 아름다운 선거는 국민들의 지나친 욕심일까. 요즘 민생안정지원금이 풍년이다. 6·3 지방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현역 단체장들이 현금 지원 정책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충북 영동군은 올해 상반기에 군민 1인당 50만원의 민생지원금을 줄 예정이다. 영동군민이 4만 3000여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15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 돈은 국비와 도비 한 푼 도움 없이 전액 영동군 주머니에서 나온다. 이웃인 보은군은 통이 더 크다. 전 군민에게 1인당 총 60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보은군은 193억원을 뿌려야 한다. 괴산군과 단양군도 민생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이들 지역 군수들은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민생지원금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선거용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침체한 지역경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IMF 금융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말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경제는 해마다 어려운데 하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생지원금 카드를 꺼냈을까. 살아온 삶과 철학이 다른 단체장들이 일심동체가 돼 같은 날 같은 생각을 한 셈인데, 선거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많은 사람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출판기념회도 풍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혐오와 비방이 가득한 정당 현수막을 겨냥해 “온 사회를 수치스럽게 만든다”고 비판했는데 출판기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많은 사람이 행사장으로 몰려가 책값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고, 주인공의 세 과시를 위해 머릿수를 채워주는 게 출판기념회의 실상이다.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무시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래 권력이 될 수 있는 이의 부름을 깡그리 외면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현역 단체장의 출판기념회는 더욱 무시하기 힘들다. 지난달 열린 수도권의 한 기초단체장 출판기념회에는 4000여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그들이 썼다는 책은 어떤가. 그동안 출판기념회를 통해 접한 책들은 언론에 기고했던 글 등을 성의 없이 나열하거나 급조한 냄새가 풀풀 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4년 전 가슴을 파고든 책을 어렵게 만났지만 문화계 인사가 써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얼마나 폐해가 심각하면 국민의힘이 최근 현역 단체장 등 주요 당직자들에게 출판기념회를 자제하라는 공문까지 보냈을까. 출판기념회가 청산의 대상이라는 것을 정치권도 인정한 셈이다. 이런데도 출판기념회는 봇물을 이룬다. 이달 청주에서는 충북지사와 청주시장 선거 출마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잇따라 열린다. 광주에서는 도서관 건설 현장 붕괴 사고로 연기됐던 출판기념회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정치 철새도 활개를 친다. 국민의힘 정권 창출을 위해 몸을 던졌던 사람이 충북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단체장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다. 종적을 감췄다가 선거가 다가오자 문자폭탄을 날리며 또다시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 역시 선거철에만 찾아오는 철새들이다.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만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을 생각한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출마 예상자들의 행태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도 부끄러움은 유권자의 몫이 될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가진 자들의 뻔뻔함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인우 전국부 기자
  • [사설] 통상 갈등 불씨 된 ‘정통망법’,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사설] 통상 갈등 불씨 된 ‘정통망법’,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미국 국무부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해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해 31일(현지시간) 우려를 나타냈다. 세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이 ‘입틀막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 법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려를 표한 다음날 국무부가 대변인 명의의 입장을 낸 것이다. 국무부 대변인은 이 법에 관한 한국 언론의 질의에 “미국은 한국 정부가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네트워크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승인한 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새 법률의 조치가 한국 내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국이 신중히 검토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이 법은 불법이나 허위조작 정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유포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물리도록 한 것이 골자다. 그러나 ‘불법·허위 정보’에 대한 규정이 애매하고 자의적이어서 야당의 비판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신중론이 제기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한국의 새로운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가 새해 한미 간 통상 분야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우려가 깊어진다. 이 법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 허위·불법 정보 삭제 등의 의무를 부과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벤치마킹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3일 DSA 제정을 주도한 EU 인사 5명을 비자 발급 제한 대상으로 지정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하면서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출했다. 친여 단체들마저 언론 자유 위축을 이유로 반대하는 데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까지 제기되는 이 법을 굳이 밀어붙이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반대 의견에 귀를 열어야 한다.
  • [길섶에서] 어머니의 노화

    [길섶에서] 어머니의 노화

    어머니는 세상 깔끔한 여자였다. 집에 먼지 한 톨 허락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몸 이곳저곳이 망가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면서 변모했다. 어머니는 지금도 습관적으로 뭔가를 연신 걸레로 닦지만, 집은 예전만큼 깨끗하지 않다. 당신 자신을 씻고 단장하는 일 역시 어려워졌다. 하늘이 불효자에게 내리는 가장 큰 형벌은 늙어가는 부모를 보는 일이다.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다. 정신연령이 아직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아들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머니가 예전만큼 깔끔하지 않은 집에서 예전만큼 맛있지 않은 김치찌개를 끓여 줘도 아들은 ‘어머니’라는 힘으로 세상에 도전한다. 어머니의 노화는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아들을 효자로 만드는 위력이 있다. 전에는 바빠서 못 받았던 어머니의 전화를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받는다. 그리고 전에는 낯간지러워서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말을 내뱉는 놀라운 기적이 펼쳐진다. “엄마, 사랑해~.”
  • [서울광장] 진보정권마다 반복하는 언론 옥죄기

    [서울광장] 진보정권마다 반복하는 언론 옥죄기

    그해 겨울, 머리는 뜨거웠고 엉덩이는 차가웠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가을부터 한겨울까지 이어진 ‘기자실 폐쇄’라는 초유의 언론 탄압에 맞서 당시 외교통상부 출입 기자들은 청사 로비에 앉아 시위를 벌였다. 차가운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가 매트를 공동구매해 한 달 넘게 버텼다. 언론의 건설적 비판에 ‘죽치고 담합’한다며 기자실 통폐합을 강행한 정부에 맞선 투쟁이었다. 로비에서도 쫓겨난 기자들은 정권이 바뀐 이듬해 초 기자실 문을 열고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잊고 싶었던 투쟁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2021년 문재인 정부가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겠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했을 때다. 노무현 정부가 보수 언론을 타깃으로 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포털 등 온라인에 넘치는 ‘가짜뉴스’를 때려잡겠다더니 결국 언론 전체를 겨냥해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언론계뿐 아니라 정치권,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멈춰 섰다. 4년여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더욱 심각한 언론 탄압에 직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일명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라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한 언론사나 유튜버 등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게 골자다. 민주당은 상임위 개정안에 ‘단순 허위정보 유통 금지’까지 넣어 법사위에서 통과시켰다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거세자 부랴부랴 수정해 본회의에 올리는 촌극을 빚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법률안이 불안정성 논란으로 본회의에서 수정된 나쁜 선례”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국민 여론도, 언론계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공론화 과정도 없이 상임위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단 2주일. 문재인 정부에서 최대 5배의 손해배상 청구 등 비슷한 내용으로 추진됐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상임위 통과 후 여야 간 두 달 넘게 공방을 벌이다가 중단됐던 것에 비하면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이다. 민주당은 뭐가 그리 급했을까. 그동안 진보정권마다 정권 말기 추진했다가 좌초한 ‘언론 옥죄기’가 성공하려면 정권 초기에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한 것일까. 졸속에 땜질로 통과된 법은 무엇이 허위·조작정보인지, 무엇이 의도적이며 부당 이익을 위한 것인지 등 기준이 모호해 소송 남발의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하다. 언론계와 야당, 시민단체가 ‘입틀막법’으로 비판하는 이유다. 손해배상 등 소송에 시달리게 되면 언론 기능은 위축되고 표현의 자유는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유튜버 등의 가짜뉴스를 막으려다 언론의 권력 감시 등 역할을 흔드는 역효과가 우려된다.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차관도 이 법에 대해 “규제당국에 관점에 따른 검열 권한을 주기보다 민사적 구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민주당이 허위조작정보근절법에 이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언론인 출신인 노종면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조작보도 개념을 신설하고 언론사에 사실 입증 책임 부과, 정정보도 청구 기간 확대 등 각종 ‘언론 목조르기’ 기법을 담았다. 특히 반론보도 청구 범위를 ‘의견’까지 확대해 언론의 논평·비판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사설·칼럼 등 논평까지 ‘검열’하겠다는 것은 권력 비판 기능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을 주도한 노 의원과 최민희·김현 의원은 법 통과 후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언론계의 우려에 대해 “엄살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또 “언론이, 시민사회도 생각보다 조용하다”며 파업이나 점거농성을 하지 않으니 “과방위원들이 칭찬받아야 한다”며 후원 계좌를 공개했다. 결국 지지층의 후원을 받기 위한 입틀막법인 것인가. 언론의 준엄한 비판은 ‘엄살’이 아니라 이들 법의 부작용을 없애고 입법을 막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다시 청와대 시대를 연 이재명 정부를 감시하고 건설적 비판을 하기도 바쁘기에 파업할 시간도 없다. 언론의 비판 없는 국가와 민주주의는 죽은 것이다. 위헌적이며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입틀막법은 멈춰야 한다. 김미경 논설위원
  •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희호 여사에 보낸 엽서편지 4장큰 시련 앞에 아내 향한 감사 인사한 자 한 자 깨알같은 글씨에 감동김우진·박화성·차범석·김현을 기리며바다 굽어보는 언덕 위 ‘목포문학관’목포가 사랑한 문학가들과의 만남동료·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전시‘목포는 항구다.’ 이 말에는 ‘개항장 목포’의 근현대와 격동이 담겨 있습니다. 전남 목포시는 그 세월을 여태껏 몸에 지닌 채 살아낸 도시입니다. 시간을 덧대어 쌓은 근대의 골목에서 만난 모든 것이 편지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빼곡히 눌러쓴 옥중서신이, 문학평론가 김현을 떠나보내고 쓴 소설가 이청준의 편지를 읽다가, 그들의 말과 글이 자꾸만 눈에 밟혀 당신에게 전하는 새해 편지에 슬그머니 옮겨 적고 말았습니다. ●빼곡하게 적어나간 마음 목포에 오기 전, 꼭 두 눈으로 보고 싶던 편지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 때문이었는데요. 편지의 실물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내용을 모두 읽기도 전에 발신인의 진심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곧장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향합니다.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정치 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그의 부모는 목포진 인근에서 영신여관을 운영했고요. 지금은 소년 김대중 공부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공부방 창가로는 목포 앞바다와 삼학도가 보입니다. 소년 김대중은 이 풍경을 보며 꿈을 키웠겠습니다. 그러니 삼학도에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과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위치한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삼학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라서 차로 오갈 수 있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1층은 카페테리아가 있고 벽면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전시실은 2층에 해당합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시상이 이뤄진 노르웨이 오슬로 현장을 재현한 공간에서 출발해 노벨평화상과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동아시아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3전시실에 있습니다. 우선 옥중 생활을 재현한 공간을 들여다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76년 3·1민주구국선언과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6년 넘게 감옥에서 보냈지요. ‘인동초’라는 별명은 그때 생겨났고요. 창가에는 그가 옥중에서 읽은 ‘서양철학사’, ‘역사의 연구’, ‘이방인’ 등의 제목이 적혀 있는데요. 수감 중에 무려 6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제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네 장의 엽서 편지는 그 맞은편에 있네요.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쓴 편지에는 읽을 책들을 청하는 내용이 보이고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와~’하는 감탄이 일어요. 숨을 턱 멎게 하는 빼곡한 글씨가 단박에 시선을 끌거든요. 훨씬 큰 지면일 줄 같았는데 고작 A4 한 장 크기에 불과했습니다. 덕분에 실체가 주는 감동은 훨씬 컸고요. ●편지지 빛 바래갈수록… 빛 발하는 감정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옥중에서 써 내려간 편지입니다. 긴 시간 이어진 편지는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할 만큼 방대한 양입니다. 옥중서신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1976년 3·1민주구국 선언으로 복역하던 진주교도소, 1977년 12월 서울대병원 특별감옥, 그리고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서 갇혔던 시기입니다. 서울대병원 특별감옥에서는 펜이 없어 못(철사)으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소장한, 잉크 없는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진주교도소와 청주교도소 시기에 쓴 편지를 전시합니다. 펜으로 쓴 편지 역시 못으로 쓴 편지 못지않습니다. 무엇보다 글씨의 모양이 깨알처럼 작습니다. ‘깨알 같다’는 소소하게 재미있는 사건을 비유적으로 쓰는 단어일 텐데요. 이 편지는 글자 그대로 깨알 같습니다. 낭비 없이 가득 채워 촘촘하지요. 어떤 심정이기에, 어떠한 절박함이기에 이리도 절실한 글들을 담아 건넸을까요. 편지의 글씨는 쉬이 읽을 수 없을 만큼 작았습니다만, 다행히 원본 옆에는 확대 스크린이 있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 ‘사랑하는’ 앞에 ‘존경’을 표하는 사이라니요. 받는 이를 향한 편지의 첫 호칭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합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1980년 11월 21일에 썼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은 두 달 후였지요. 편지 안에는 두 사람의 오롯한 관계 속에서, 편지지의 빛이 바래갈수록 외려 빛을 발하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빈틈없는 편지는 진심의 다름 아닐 테고요. 김대중 대통령은 “일생을 두고 겪은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큰 시련 앞에서 아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느낌이나 지식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씁니다. 편지 속 장래, 행복, 희망 같은 단어가 왜 그리도 낯선지요. 아마도 죽음을 앞둔 이의 언어처럼 보이지 않아 그랬을 겁니다. 전시하는 편지는 아니지만 ‘옥중서신2’(시대의 창)에는 같은 날 밤 이희호 여사가 쓴 답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존경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내일에 대한 희망 꼭 가지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옥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곧고 단단한 사랑이 못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편지 전시를 보고는 어록 푯말의 통로를 지납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용기는 최고의 미덕이다’ 같은 용기에 관한 말들이 유독 많습니다. 인동초라 불린 그 또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겠지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 몹시도 필요한 날이 있었을 겁니다. 그 가운데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깨알처럼 작은 믿음일지라도 모이고 쌓이면 신념이 될 수 있겠지요. 한 해의 초입에서 그 말들을 가슴에 새겨 품어봅니다.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편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삼학도 서쪽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목포문학관이 나옵니다. 목포문화예술회관 맞은편 입안산 자락입니다.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 문학관은 그 자체로 문학입니다. 이곳에서 목포가 사랑한 4인의 문학가를 만납니다. ‘난파’ ‘산돼지’ 등을 쓰고 성악가 윤심덕과 열애한 극작가 김우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편 소설 ‘백화’를 쓴 소설가 박화성, 드라마 ‘전원일기’의 얼개를 만든 사실주의 극작가 차범석,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 주인공입니다. 목포문학관은 이들 네 문인의 주제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희곡 최초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우진의 친필 원고와 차범석이 쓴 ‘전원일기’ 첫 집필본, 후배 소설가 박완서가 선배 소설가 박화성에게 보낸 ‘작은 것이나마 선생님이 아껴주실만한 것’으로 시작하는 짧은 편지를 읽습니다. 그리고 김현관에서 꽤 오래 머뭅니다.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목포로 이사 왔다고 해요. 1977년에는 김병익 등과 함께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했고요. 김현관은 그의 문학전집을 비롯한 노트와 필기 자료, 작가들이 건넨 선물 등을 전시합니다. 저는 김현이 김병익, 이청준 등 동료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꼼꼼하게 읽어 나갑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학 시절이던 1975년 2월에는 이청준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대답없는 편지인 줄” 알고 있지만 “너에게 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는 푸념으로 써나간 편지는 막역한 사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자신이 읽은 책 가운데 감명 깊었던 대목을 옮겨 적는 게 전부이지만, 편지의 마지막에는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라고 당부합니다. 김현이 편지를 쓴 이유는 이청준이 “고통하고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할 줄 아는 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청준의 ‘알리바이 문학’에도 나오지요. 이청준은 김현이 세상을 떠난 2년 후 그의 아들 김상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늘 생각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김현의 글을 읽는 것이 이청준에게는 “절실한 추모”라 전합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자극이 되며 격려가 되는 친구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편지는 단순한 편지로 읽히지 않습니다. 내게 가까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새날의 아름다운 것들에게 목포의 옛 시간이 남은 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는 포도책방에 들릅니다. 일제강점기 미곡창고로 지었고 한동안 지역독립영화관이 있던 곳이라지요. 양쪽 벽면과 책방 가운데 커다란 원형 책장이 눈길을 끕니다. 특이한 건 책방의 ‘주인’입니다. 무려 218명이나 됩니다. 200명이 넘는 책방지기가 각각 책장의 한두 칸을 차지하고 ‘엄마별의 뒤죽박죽 책방’ ‘행복@로컬’ 등의 문패를 내걸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장의 칸칸은 작은 서점이 됩니다.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포도책방이겠습니다. 새 책도 있고 헌책도 있고 소품도 있습니다. 책방지기 가운데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작가도 있고 평범한 우리네 이웃도 있지요. 홍보도 기발합니다. 펜션 주인장인 어느 책방지기는 펜션 할인권을 내걸기도 했네요. 책방을 나와서는 몬도마노에 머물며 새해 첫 여행의 시간을 갈무리합니다. 몬도마노는 이탈리아어로 ‘한없는 세계’를 뜻하는 숙소입니다. 연극인인 호스트는 작은 집과 방과 뜰에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의 염원을 담았지요. 일제강점기 창고를 리모델링한 내부는 층고가 높은 스튜디오 스타일의 복층입니다. 지난해 연말에는 변방연극제가 열리기도 했다 합니다. 숙소였다가 연극의 무대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 셈입니다. 삶과 연극이 따로이지 않다는 전갈이겠습니다. 자그마한 뒤뜰 또한 매력적입니다. 저는 자그마한 창 너머 겨울의 뜰을 품은 방에서, 몇 년 동안 쌓인 글들을 읽습니다. 먼저 머물다 간 이들의 글과 주인장이 답장하듯 써놓은 글은 한 권의 편지 모음이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처럼 앉은뱅이책상에서 당신에게 건네는 새해 첫 편지를 씁니다. 목포는 항구라는 뻔한 말 대신 목포는 희망이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목포문학관에서 읽은 김현의 문장을 옮겨 적습니다.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본 적이 없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들을 희망하다 보면 아름다운 것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해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 오전 9시 ~ 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월요일 휴관, http://www.kdjnpmemorial.or.kr ● 목포문학관 - 오전 9시 ~ 오후 6시, 월요일 휴관, https://biz.mokpo.go.kr/munhak
  •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괴물의 편지’… 그만이 읽을 수 있는 ‘모순의 글쓰기’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괴물의 편지’… 그만이 읽을 수 있는 ‘모순의 글쓰기’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존재베트남전 폭력의 상처·성소수자의 설움에 소금 뿌려결국 외로운 독백이자 커다란 침묵의 내적 이야기우리가 할 일은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괴물’도 눈물을 흘린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의 외로운 눈물은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괴물이 편지를 쓴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게. 하지만 그 편지는 어머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모순의 글쓰기다. 그래서 더 내밀하고 아름답다. 오션 브엉(38)의 첫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가 최근 한국어로 번역됐다. 1988년 베트남 호찌민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2016년부터 시인으로 활동했다. 베트남계 이민자로서 미국에도, 베트남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의 슬픔, 여기에 성소수자로서 느끼는 모순적인 괴로움을 담아낸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2016)로 ‘T.S.엘리엇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하며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은 2019년 발표한 것으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됐다.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문학성도 인정받았다. “제가 정말 얘기하고 싶었던 건 괴물은 그리 끔찍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원래 재앙을 알리는 신의 사자(使者)라는 뜻의 라틴어 어원 ‘몬스트룸’(monstrum)은 옛 프랑스어에서 켄타우로스, 그리핀, 사티로스 등 무수한 기원을 지닌 동물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어요. 괴물이 된다는 것은 혼성의 신호인 하나의 등대가 된다는 뜻이죠. 피난처이자 동시에 경고물인.”(27쪽)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한 서간체 소설이다. 읽다 보면 주인공의 어머니가 영어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한다. 편지는 명확한 수신자가 있는 글쓰기다. 쓰는 자와 읽는 자 사이에 이뤄지는 내밀한 대화이기도 하다. 영어를 읽지 못하는 수신자에게 영어로 편지를 쓴다는 것. 결국 이 편지는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글이라는 의미다. 오로지 쓰는 존재인 ‘나’만이 읽을 수 있는 외로운 독백이자, 커다란 침묵이기도 하다. “가끔 느슨해질 때면, 저는 살아남는다는 게 쉽다는 생각을 해요. 갖고 있는 것이나, 받은 것 중에 남은 걸 가지고 그냥 앞으로 계속 움직이는 거예요. 무언가가 변할 때까지. 아니면 마침내 사라지지 않고도 저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전부는 폭풍이 우리를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우리는, 맞아요. 자기 이름이 아직 살아 있는 것에 붙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되는 거죠.”(190쪽) 베트남전이라는 거대한 폭력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대대로 이어진다. 거기다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가 감내해야 하는 설움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그러나 본디 문학은 거기에 담고 있는 아픔의 크기가 클수록 빛이 난다고 했다. 이 모든 고통을 높은 밀도로 농축하고 있는 시적인 언어는 그렇게 한 개인의 내면을 보편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어쩌면 우리 세상의 윤리라는 게 별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쉬이 ‘괴물’로 치부했던,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존재를 알아채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 전부일지도. 영화 ‘미나리’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 영화사 A24에서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하는 김목인이 책을 번역했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서정적이고 시적인 문체를 한국어로도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좋은 문학이 그렇듯 이 소설도 폐허의 허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걸 딛고 어떻게 우리가 다시 설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지금껏 저는 저 스스로에게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렸었어요, 엄마.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누구도 우리를 폭력의 열매로 오인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 폭력, 그 열매를 관통했던 폭력은 열매를 망치는 데 실패했어요.”(310쪽)
  • “같이 이루어 가는 가정의 가치”… ‘결혼 유턴’하는 청춘[결혼, 다시 봄]

    “같이 이루어 가는 가정의 가치”… ‘결혼 유턴’하는 청춘[결혼, 다시 봄]

    청년들이 다시 ‘결혼’이라는 선택지로 향하고 있다. 혼인 건수를 비롯한 결혼 관련 지표가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반전하고 있다. 이른바 ‘2차 에코 세대’(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의 결혼 적령기가 도래한 인구구조 변화도 한몫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청년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결혼 유턴’ 흐름을 틔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국가데이터처의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혼인 건수는 2022년 19만 1690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찍은 이후 2023년 19만 3657건(1.0%), 2024년 22만 2412건(14.8%)으로 2년 연속 반등했다. 지난해 1~10월 혼인 건수는 19만 576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 증가했다. 혼인 건수 역대급 상승세결혼 적령기 30~34세 인구수 많아20대 여성 “결혼 의향” 7%P 상승2020~2022년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미뤄졌던 결혼식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난 30년간 혼인 건수와 비교해 볼 때 역대급 상승세다. 2024년 혼인 증가율은 전년 대비 14.8%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높았다. 지난해에도 최근까지의 증가세가 유지된다면 1996년(9.1%) 이후 29년 만에 최대치다. 2012년부터 이어지던 장기 하락세를 12년 만에 끊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간 통계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발견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성혼 건수는 2024년 1192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2020년(843건) 최저 수준을 찍은 이후 4년 연속 올랐다. 지난해 성혼 건수도 1159건으로 202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듀오 관계자는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해 가입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자신의 결혼 조건과 방향성을 점검하고 준비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결혼 통계가 다시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이유로 우선 인구구조 변화를 꼽을 수 있다. 1991~1995년 출생한 2차 에코붐 세대가 결혼 적령기(만 30~34세)에 접어들면서 결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1991~1995년생 연평균 출생자 수는 71만 8397명으로, 1986~1990년생 63만 6422명보다 8만명 정도 많다. 하지만 인구수와 혼인 건수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존재하는 건 아니다. 1976~1980년생(연평균 85만 2567명)이 30대 전후의 적령기를 맞은 2009년 혼인 건수(30만 9759건)와 1981~1985년생(연평균 76만 3031명)의 적령기였던 2014년 혼인 건수(30만 5507건)는 인구수 자체가 10만명 가까이 차이 났음에도 엇비슷했다. 근본적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2024년 발표한 격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한국인의 52.5%가 결혼을 필수로 여겼다. 직전 조사보다 2.5% 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서도 결혼 의향이 있다는 미혼 응답자 비율은 2024년 62.2%로 2021년(50.8%) 대비 11.4% 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시각 변화는 눈여겨볼 지점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만 25~29세 미혼 여성 중 결혼 의향을 밝힌 비율은 64.0%로 1년 전(56.6%)에 비해 7.4% 포인트 상승했다. 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절반 이상의 여성 고객이 30대 이상이지만, 20대 여성 비중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늘었다”면서 “비혼 트렌드를 따르던 여성 선배들의 모습이 20대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전했다. ‘욜로’(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나 독신 트렌드가 한풀 꺾이고 정서적·경제적 안정 추구가 새로운 추세로 떠오른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서·경제 공동체 추구주택 등 자산 형성에 시너지 판단팬데믹 이후 ‘안정성’ 가치관 확산올해 8월 결혼 예정인 이모(31)씨는 “미디어 콘텐츠에서도 예전엔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예가 많았다면 요새는 결혼한 부부가 알뜰살뜰 돈을 모아서 살림을 늘려 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면서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이모(31)씨도 “최근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실히 강하다. 90년생들이 각성한 느낌”이라면서 “유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듀오 관계자는 “젊은층들이 조건을 중심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말이 통하는지, 실제로 함께 살았을 때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지 등을 중시하는 것 같다”면서 “누구나 사회적 단절감을 크게 경험했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안정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모두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분위기”라면서 “혼자서 살아가는 삶에 정신건강 문제와 같은 리스크가 있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 노력이나 사회 분위기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면서 “실용주의적인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李대통령 새해 첫끼 식판 공개… “2026년 각오 나눴다”

    李대통령 새해 첫끼 식판 공개… “2026년 각오 나눴다”

    강훈식, 대통령과 올해 첫 식사 사진 공개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1일 “올해 첫 식사는 떡국이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함께한 새해 첫 식사 모습을 공개했다. 강 실장은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대통령님, 그리고 국무위원들과 ‘대도약의 원년’ 2026년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나눴다”며 사진 3장을 올렸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이 대통령은 강 실장과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하고 있다. 또 이날 함께한 식사 사진에는 식판에 떡국과 쌀밥, 김치, 과일 등이 담긴 모습이 담겼다. 강 실장은 “국가가 부강해지는 만큼 내 삶도 나아질 수 있도록, 국력의 원천인 국민께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반드시 더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김민석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 등 국무위원, 청와대 참모진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이후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현충원 참배 참석자들과 함께 조찬을 했다. 반찬과 과일을 직접 식판에 담았고, 덕담을 곁들이며 떡국을 먹었다.
  • “베개 밑에 ‘이것’ 넣고 자니까 잠이 솔솔”…꿀잠 비결은?

    “베개 밑에 ‘이것’ 넣고 자니까 잠이 솔솔”…꿀잠 비결은?

    요리의 풍미를 더 하는 향신료로 잘 알려진 ‘월계수 잎’이 최근 해외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숙면을 돕는 ‘마법의 잎사귀’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잠들기 전 베개 밑에 말린 월계수 잎을 한 장 넣는 이른바 ‘월계수 숙면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방법을 시도한 이들은 “수면의 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잠이 잘 온다” 등 후기를 남겼다. 특히 인도 등 남아시아 지역에서 이 유행은 더욱 뜨겁다. 인도 가정에서 월계수 잎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전통적으로 따뜻함과 보호, 안녕을 상징하는 민간요법 및 종교의식의 재료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월계수 잎은 지혜와 보호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용도로 활용된 기록이 있다. 인도의 한 유명 인플루언서는 “월계수 잎을 베개 밑에 둔 이후로 꿈의 내용이 명확해지고 정신이 더 명료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과학적인 인과관계는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월계수 잎이 직접적으로 수면을 유도하거나 꿈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질적인 과학적 근거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면 의식’(Sleep Ritual)으로서의 효과에는 주목하고 있다. 매일 밤 베개 아래 잎을 넣는 반복적인 행위 자체가 뇌에 ‘이제 잠들 시간’이라는 신호를 보내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강력한 풍미로 요리의 맛을 바꾸는 월계수 잎처럼, 숙면을 위한 작은 시도가 심리적 안정감을 유도해 무의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월계수 잎은 요리에 넣었을 때 첫입에 강렬한 맛을 내지는 않지만, 특유의 은은한 따뜻함과 미묘한 풍미를 더 해 맛의 깊이를 완성한다. 특히 고기나 생선의 잡내를 잡고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월계수 잎은 훌륭한 자원이다. 비타민 A와 C를 비롯해 철분, 망간, 칼슘 등 필수 미네랄이 풍부하며,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하지만 사용 시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월계수 잎은 조리 후에도 질감이 매우 딱딱하고 끝이 날카롭기 때문에 식사 전 반드시 음식에서 제거해야 한다. 만약 실수로 잎을 삼킬 경우 날카로운 부분이 식도나 위 벽을 자극해 상처를 입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월계수 잎은 요리의 풍미를 올리고 건강상 이점을 제공하는 훌륭한 식재료지만, 잎의 거친 질감으로 인한 물리적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섭취 전 제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 뉴욕시장, 쿠란에 손 얹고 폐쇄된 지하철역에서 취임 선서

    뉴욕시장, 쿠란에 손 얹고 폐쇄된 지하철역에서 취임 선서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시를 이끌 조란 맘다니(35) 시장이 1일 지난 80년간 폐쇄됐던 지하철 역사에서 성경 대신 쿠란에 손을 얹고 취임식을 올렸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태어난 맘다니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정치 지도자로 자칭 ‘민주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맘다니 시장은 시청 계단에서 열리는 공식 취임식에 앞서 새해 첫날 자정을 맞아 1904년 문을 열었던 지하철 구시청역 승강장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민사 소송을 걸어 트럼프 재단을 해산시켰던 최대 정적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과 시리아 출신 배우자 라마 두와지가 이를 지켜봤다. 취임 선서 이후 맘다니 시장은 폐쇄된 역사에 대해 “우리 도시의 활력, 건강, 그리고 유산에 있어 대중교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시내버스 무료화 등 자신의 대중교통 공약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1904년 뉴욕의 초기 지하철역 28개 중 하나인 구시청역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 역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킬 위대한 건축물을 건설하고자 했던 도시의 용기를 보여주는 물리적인 기념비였다”고 설명했다. 맘다니 시장은 뉴욕시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교 경전인 쿠란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조부가 사용했던 쿠란과 흑인 작가이자 역사가인 아르투로 숌버그의 쿠란을 취임식에 사용했다. 슘버그의 쿠란은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대여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쿠란 선서에 대해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에 연대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종교부터 사상과 정책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언제든 충돌해도 이상할 것 없는 맘다니 시장은 지난해 11월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과거 서로를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라며 비난했던 두 사람은 뉴욕을 포함한 미국의 물가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
  • 전북 떠난 홍정호…“선수,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전북 떠난 홍정호…“선수,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프로축구 K리그1 ‘우승 명가’ 전북 현대와의 8년 동행을 마친 베테랑 센터백 홍정호(37)가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며 구단을 향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홍정호는 1일 인스타그램에 아무것도 없는 검은 이미지와 함께 8년간 헌신했던 팀을 떠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마음을 크게 다쳤다고 했다. 그는 “(2025시즌) 팀의 주축으로 뛰었고, 더블 우승을 이뤘고, 개인적인 성과(베스트 11)도 남겼다”면서 “시즌이 끝나가면서 여러 팀에서 연락이 왔지만, 저는 전북이 우선이었다. 제 마음속에 선택지는 전북뿐이었기 때문에 전북만을 기다렸다”고 썼다. 이어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구단과 미래를 이야기할 때 저는 아무런 설명도 연락도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고, 그 기다림은 점점 길어졌다”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마주한 미팅에서 재계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이미 정해진 답을 모호하게 둘러대는 질문들만 가득했다.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홍정호는 마이클 김 테크니컬 디렉터가 부임한 뒤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는 취지로 글을 이어갔다. 그는 “테크니컬 디렉터님이 바뀐 뒤, 저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채로 시즌 초 많은 시간 동안 외면을 받았다”면서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이적을 권유하는 말까지 듣게 됐다”고 했다. 아울러 홍정호는 구단 직원 실수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선수 등록이 되지 않아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는 변명을 듣기도 했다고 밝혔다. 2010년 제주SK FC(당시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홍정호는 독일, 중국 무대를 거쳐 2018년 K리그로 복귀한 뒤로는 줄곧 전북에서 뛰었다. 전북에서 통산 206경기를 소화하며 7골 5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통합 우승을 일군 거스 포옛 감독이 외국인 코치진 등 ‘포엣 사단’과 함께 떠난 전북은 김천 상무 사령탑을 맡았던 정정용 감독을 선임한 뒤 선수단도 새롭게 조직하고 있다.
  • 반성문 190여 차례 제출… 내연녀 살해·북한강 유기 ‘유부남 장교’ 무기징역 확정

    반성문 190여 차례 제출… 내연녀 살해·북한강 유기 ‘유부남 장교’ 무기징역 확정

    불륜 관계가 탄로날까 두려워 내연 관계였던 여성을 죽이고 시신을 북한강에 유기한 전직 장교 양광준(39)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190여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대법원은 너무나 잔혹한 범죄라며 중형을 그대로 인정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살인과 시체 훼손, 시체 유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광준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양광준은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재판부는 “나이와 성행,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동기와 수단, 결과 등을 따져봤을 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부남인 양광준은 같은 부대 미혼의 피해자와 교제 중이었고, 이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으려고 범행을 저질렀다. 2024년 10월 25일 오후 3시쯤 부대 주차장에 세워둔 자기 차 안에서 피해자와 다투다가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그리고 시신을 훼손한 뒤 다음날 밤 강원 화천군 북한강에 유기했다. 범행 뒤에도 양광준은 치밀하게 움직였다.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가족과 지인, 직장에 문자를 보내 마치 피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꾸몄다. 양광준 측은 ‘피해자가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아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시신을 훼손하고 숨긴 행위는 그 자체로 우발적일 수 없는 계획적인 범행”이라며 “범행 내용과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광준은 1심에서 반성문 7통, 항소심에서 136통, 상고심에서 51통 등 총 194통의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형량을 낮추지는 못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직업군인이었던 양광준은 사건 발생 후 군에서 파면당했다.
  • “예수 복원? 원숭이인데” 벽화 보고 전 세계 “아악!”…그 화가 94세로 별세

    “예수 복원? 원숭이인데” 벽화 보고 전 세계 “아악!”…그 화가 94세로 별세

    100여년 전 예수 벽화 복원을 시도했으나 엉망으로 덧칠, 이른바 ‘원숭이 예수’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스페인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 처음엔 전 세계의 조롱거리였지만, 덕분에 작은 마을이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다. 30일(현지시간) 가디언, CBS 등 외신에 따르면 아마추어 화가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94세로 숨졌다. 스페인 북동부 보르하시 당국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히메네스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히메네스는 2012년 보르하의 산투아리오 데 미세리코르디아 교회에 걸린 벽화 ‘에케 호모’를 복원하겠다고 나섰다. 이 작품은 1910년대 지역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그린 예수의 초상화였다. 히메네스는 선한 의도로 붓을 들었지만, 예술적 재능이 따라주지 못했다. 결과물은 역사상 최악의 복원 작업으로 평가됐다. 히메네스가 복원한 예수의 얼굴은 만화 같았고,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예수 얼굴에 갈기처럼 보이는 그림이 추가되면서 ‘원숭이 예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터넷에는 마이클 잭슨, 호머 심슨 등 유명 인물을 패러디한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과 합성 사진이 쏟아졌다. 당시 히메네스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부님이 허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신부님도 알고 계셨다. 허락 없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나”며 “교회에 온 사람들이 모두 내가 그림 그리는 걸 봤다. 몰래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논란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보르하가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복원’ 이듬해에는 약 5만 7000명이 ‘원숭이 예수’를 보러 찾아왔다. 논란이 잠잠해진 뒤 히메네스는 지지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그림 28점을 모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 [신년사]김진경 경기의장 “붉은 말의 역동적인 기운으로, 힘차게 도약하는 2026년”

    [신년사]김진경 경기의장 “붉은 말의 역동적인 기운으로, 힘차게 도약하는 2026년”

    존경하는 1,420만 경기도민 여러분, 희망의 기운이 깃든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광야를 거침없이 내달리는 붉은 말의 힘찬 기운과 용기가 올 한 해 도민 여러분 일상에 가득 깃들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2025년 대한민국 사회는 큰 변화를 온몸으로 마주했습니다. 많은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 경제의 불안, 그리고 민생의 무거움까지 도민 여러분의 어깨가 무척이나 무거운 한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도민 여러분께서는 흔들림 없이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경기도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헌신과 인내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6년은 위기와 어려움을 넘어선 ‘반등의 해’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기회를 향해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도록, 경기도의회는 더 큰 책임과 각오로 도민 삶을 지키는 길 위에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존경하는 도민 여러분! 제11대 경기도의회는 지난 4년간 도민 삶에 변화를 만들고, 지방의회 도약의 발판을 놓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조례 제정 이후 실행까지 책임지는 ‘책임 의정’ 구현을 위해 전국 지방의회 최초의 ‘조례시행추진관리단’을 운영해 입법의 책임성을 높였고, 지역별 민생 현안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의정정책추진단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지방의회의 새 지평을 열고자 전국 최초의 의정연수원 설립 기반을 마련해 의원 전문성 강화를 위한 토대를 다졌고,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지방의회법’ 제정을 위해 전국 최대 광역의회의 사명으로 정부와 국회의 문을 거듭 두드려왔습니다. 또한 경기도의회가 경기도, 경기도교육청과 함께 운영한 ‘여야정협치위원회’는 정쟁과 갈등만이 아닌, 민생 중심의 협력을 복원해 새로운 지방정치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묵직한 걸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발걸음은 결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도민에게 더 체감적인 의회가 되기 위한 의회의 실천이었습니다. 올해는 제11대 경기도의회의 4년 임기가 마무리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동안 다져온 기반 위에 제11대 경기도의회는 남은 임기 동안 도민들께 약속드린 과제들을 책임 있게 마무리하고, 다음 의회가 더 단단한 토대를 딛고 출발하도록 의정의 길을 차분히 정돈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언제나처럼 도민 목소리에 더 낮게 귀 기울이며, 도민 여러분이 믿고 기댈 민의의 전당이 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도민 여러분! 새해는 늘 새로운 희망과 다짐을 품게 합니다. 병오년(丙午年)에 담긴 뜨거운 생명력과 추진력을 담아 경기도와 대한민국이 다시 뛰어오르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경기도의회는 도민 한 분 한 분의 일상과 미래가 더 나아지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해 여러분 곁을 지키겠습니다. 새해에는 도민 여러분의 가정마다 건강과 평안, 따뜻한 희망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2026년 1월 1일 경기도의회 의장 김 진 경
  • [2026년 신년사] 김태흠 충남지사 “도민과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2026년 신년사] 김태흠 충남지사 “도민과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김태흠 충남지사가 2026년 병오년(丙午年)을 맞이해 다음과 같이 신년사를 발표했다. 다음은 김태흠 충남지사 신년사 전문 충청남도지사 김태흠입니다. 많은 변화와 성장 속에 한 해를 마무리하고,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았습니다. 새해에는 도민 여러분의 일상에 활력과 희망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제가 취임하면서 도민 여러분께 ‘힘쎈충남을 실현하겠다’, ‘충남의 새 역사를 쓰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왔으며, 힘쎈충남답게 역대급 성장과 변화를 이뤄냈다고 자부합니다. 무엇보다 충남의 근본적인 체질을 역동적이고 파워풀하게 바꿔왔습니다. 국비는 취임 당시 8조 3천억원 수준에 불과했는데, 매년 1조씩 늘려서 12조 3천억원으로 끌어올렸으며, 투자유치 역시 직접 발로 뛰는 세일즈로, 현재까지 43조 7,200억원이라는 도정 역사상 유례없‘도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약속드렸던 45조원 목표는 임기 내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도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념으로 도정을 이끈 결과 전국 시·도 공약평가에서 3년연속 최우수(SA)등급을 받았으며, 공약 이행률도 84%로 타시·도 보다 월등히 높은 전국 1위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충남대 내포캠퍼스, TBN교통방송국 설립,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 1호 지정 등 방치된 현안들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해결했습니다. 이 외에도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금산 양수발전소 등 굵직한 국책사업이나 기관 유치에서도 타 시·도와의 샅바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도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 그리고 공직자 모두가 함께 이뤄낸 충청남도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토대로, 농업·농촌의 구조개혁, 베이밸리 메가시티 조성, 국가 탄소중립경제 선도, 권역별 균형발전, 저출산·저출생 대응 등 다섯가지 핵심과제를 통해 충남을 넘어 대한민국의 50년, 100년 미래를 위한 기반을 확실하게 쌓아 나가겠습니다. ‘뜻을 세우면 반드시 이룬다’는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는 말처럼, 민선8기 충남은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다가오는 새해를 맞아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뜻하시는바 모두 이루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6. 1. 1. 충청남도지사 김태흠
  • 러, 北 김여정에게 초상화 그려 새해 선물

    러, 北 김여정에게 초상화 그려 새해 선물

    러시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에게 새해 선물로 초상화를 전달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을 통해 김여정과 새해 선물을 교환했다고 30일(현지시간) 밝혔다. 그는 신홍철 주러시아 북한대사를 통해 김여정의 새해 선물을 전달받았으며, 답례로 김여정의 초상화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김여정이 선물을 보낸 것을 전날 저녁에야 알았다며 “연말의 바쁜 일정 탓에 답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니카스 사프로노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프로노프가 하룻밤 사이에 김여정의 초상화를 그렸다며 초상화에 담을 사진도 그와 함께 골랐다고 설명했다. 사프로노프는 과거 김 위원장 등 유력 인사들을 그리기도 한 러시아의 유명 초상화가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김여정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이 사진이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 그리고 힘과 결단력이라는 언뜻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초상화와 함께 신 대사가 선물을 전달하는 영상과 김여정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대형 꽃병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 외로울 때 벌써 있는 詩… 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평론 당선 소감]

    외로울 때 벌써 있는 詩… 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평론 당선 소감]

    ‘도망치지 않는 시’는 제 삶의 큰 변곡점을 담은 글입니다. 처음 평론을 쓸 때 저의 자세는 그야말로 투신이었습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목을 매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푹신한 악몽을 덮고 있던 듯합니다. 멀리 무자비한 현실을 예감하면서 무섭다, 슬프다, 쉽게 겸허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번이나 투신해도,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삶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온몸을 찢는 듯한 복통이 와도 장기들은 오로지 숨을 쉬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누군가를 아무리 이해해 본들, 그것이 곧 용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함께하면 즐거운 사람들이었지만, 그들과는 같이 갈 수 없는 곳도 있음을 배워야 했습니다. 어쩌면 도망치지 않는다는 건, 세상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순수’이자, 끝내 세상과 스스로를 ‘순순히’ 따르게 될 자신을 잘 헤아리는 일 아닐까요?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저에게 등단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제 성장통을 곁에서 동행하시며, 꾸준한 격려를 보내 주신 김종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제 사유에 늘 활력을 얻습니다. 부족한 글에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주신 황유원 시인께도 감사드립니다. 문학에는 정답이 아닌 자유가 있다고 처음 알려 주신 손대출 선생님, 현대시로 이끌어 주신 최희진 선생님, ‘좋은 타협’이라는 치열한 고뇌를 일러 주신 이근화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제 곁에 머물러 주시며 큰 힘이 되어 주시는 김명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현실이 조금은 친근하곤 합니다. 묵묵히 사랑을 보내 주시는 부모님과 새 가정을 꾸린 언니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기나긴 행운을 빕니다. ‘순수’와 ‘순순’.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할 때, 거기에는 벌써 시가 있었습니다. 시의 목소리에 세심히 귀 기울이는 평론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98년 서울 출생 ▲한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예정
  • 도망치지 않는 시-황유원론 ①/배민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평론]

    1. 새로움이라는 단절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그걸 아무도 모른다- ‘루마니아 풍습’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소음’이 ‘노래’가 되었을 때, ‘침묵’은 야만이었나.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②이라는 아도르노의 위치에서 다시 묻는다. 아도르노는 독일 나치에 따른 인류 최악의 참극 이후, 예술이 억압적인 현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물론 이러한 질문은 포스트-주의 세례의 여파가 여전한 현시점에서 새삼스러울지 모른다. 한국 현대시는 2000년대부터 “시인(1인칭)의 내면 고백”이라는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③음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2000년대 시가 정치적으로 무력한 ‘나’ 대신 3인칭의 낯선 존재에 집중함에 따라, 2010년대 시가 역사란 ‘끊임없는 쇠락’과 ‘그에 따른 폐허의 잔해’라는 인식에 머물기를 택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령 “절벽은 무너진 다음의 가능태”(백은선, ‘중력의 대화자들’, 가능세계, 문학과지성사, 2018)라는 희망 없는 세계에서, “나를 위해서 날지 않기로 마음먹”(김복희, ‘새 인간’,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민음사, 2018)는 인간-동물의 사유와 같은 것, 혹은 “여기는 사망맵이야”(문보영, ‘배틀그라운드-사막맵’, 배틀그라운드, 현대문학, 2019)라는 식의 농담 속에 공통으로 파국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은 새나라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구구 울지 않습니다”(윤지양, ‘오 혹은 없음’, 기대 없는 토요일, 민음사, 2024)라고 말하는 오늘에까지 발견된다. 세계는 개선될 여지가 없고 세계 바깥의 타자는 끝내 파악할 수 없는 채 멎어 있다면, 시가 향할 곳은 오직 ‘기대 없음’ 상태의 내면 공간뿐인 것이다. 2000~2010년대 전위·실험시는 시적 자아의 영역을 넓힌 하나의 성과였으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과연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혹 기존 관습에 대한 변화라는 이유로 새로움에 막연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화해의 손을 내밀 대상은 세계 바깥의 타자가 아니라, 기대조차 없는 이 현실일지 모른다는 의혹이 황유원의 시에는 담겨 있다. 시인이 “우린 문득 노래란 그런 것임을 절감하고 / 그 노래의 후렴구나 따라 불러야 했네” (‘시베리아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사운드 트랙’, 세상의 모든 최대화)라고 말했을 때, “노래”는 곧 부르는 순간 “후렴구” 같은 그리움만을 남기고 떠나는 특별한 언어일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말’에서 그가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길과 “최대한 잠재워 보는 길”④을 가 보겠다고 밝혔을 때, “소음”은 곧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라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이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황유원의 언어를 빌려 보면, “‘소음’이 ‘노래’가 되었을 때, ‘침묵’은 야만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언어를 시적인 것으로 승화시켜 윤리를 실천하는 최근 시적 경향에 의하여, 정체성의 규율 내에서 ‘침묵’을 지키는 예술 일반은 자연히 비윤리로 규정되고 말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때 황유원 시는 예술과 현실이 지닌 ‘차이’가 아닌, 그 차이를 ‘수용할 방법’에 주목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꿈과 현실의 ‘관계 방식’에 대해 묻는 황유원 시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불가능한 꿈’의 요소들은 꿈꿀 수 없는 현실과 소통할 수 없는 타자를 모두 포용하고자 한다. 몰이해에 빠져 있을 때 ‘꿈’이라는 비약은 늘 이해의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하므로. 2. 첫 번째 되감기: 작은 불행에서 최대 불가능성으로오늘 밤 동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天天來’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이상하게도 파국이 예견된 현실에서 이미 해 본 걱정을 재차 반복할 때, 우리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최근 시가 그러한 순간들로 하나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형성했다면, 황유원 시는 “생각만으로 혼미해지는 / 믿을 수 없이 빛나는 횡설수설의 밤”(‘지네의 밤’,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 도취함으로써 당대적 분위기와 갈라진다. 물론 현실 공허를 토로하는 시와 끝내 사라질 신기루를 그려 내는 시, 둘 중 무엇이 더 적합한지 묻는 일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겠지만, 황유원의 시에 그려진 냉혹하고 왜소한 현실은 동시대 시가 빚어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의 시에서 불가능한 꿈의 형상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질 따름이다. 늘 허무로 귀결되는 환상은 현실과 만날 때라야 비로소 진실성을 얻는다는 것. 냉엄한 현실에도 희망은 피어나듯, 우리의 진심이 꿈을 향한다고 해서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 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현실도피란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세상의 모든 최대화’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 예술이란 결국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예술 작품은 결국 ‘내’가 꾸는 꿈에서 시작해 ‘내’가 그것을 실현했다고 믿는 한에서만 그 의미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무 의식에 사로잡힐 때, “일렉기타”를 가득 싣고 가는 예술가의 마음은 길고 무거워진다. 온전히 꿈만 꾸고 싶은 사람일수록 도리어 그것이 허상이라는 진실에 강력히 얽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기타 연주를, 시인은 시를 쓰면서 자신의 무능을 자각한다. 그들이 음악과 시를 사랑할수록 그들은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는 꿈이라는 허무 의식을 견고히 쌓아 간다. 그럼에도 왜 이들은 구태여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자기기만의 꿈을 꾸기를 포기하지 않는가. 현실을 바꾸는 건 오직 꿈뿐이라고 말하는 예술가적 허기는 기계가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는 오늘의 시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문제적 현실을 한층 더 발전된 현실로 해결하는 시대 속에서, 꿈은 현실 억압과는 무관한 일종의 자유로서 되려 그 존재감과 의의를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발전과 해결이라는 단일의 명분으로 얄팍해져 가는 현실의 두께를 자각할 수 있다면, 꿈은 여전히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현실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현실도피”로서의 꿈이 아니라, 예술은 결코 ‘나’라는 한계를 벗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넘어서려는 “현실의 최대화”라는 꿈인 것이다. “도피”의 결말이 ‘꿈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허망한 결론에 닿는다면, “최대화”의 결론은 ‘꿈’ 혹은 ‘현실’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나’의 진정성에 도달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을 끝까지 잊으려 애쓰는 시는 어떤 실제와도 맞바꾸지 못할 내면을 간직할 수 있다. 꿈의 귀결점이 ‘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황유원이 전통 시론을 계승한다고 굳게 믿게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최대화’가 꿈 안에서 ‘현실 인식’을 통해 비탄과 진정성을 획득한다면, ‘무한대의 밤’은 ‘진정성 있는 꿈’이기를 넘어서 진실한 내면의 순간을 생생히 숨 쉬게 할 장소이길 자처한다. 그곳에서라면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백치의 마음도 그리 우스꽝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이 ‘진짜’ 마음일지도. 물이 든 병에 천천히 꽃다발을 꽂아 주듯병든 꽃다발에 천천히 물을 부어 주듯서로 상처 주고또 용서하고…깨고 나니 꿈이었다깨고 나니 꿈이었다(…)난 사진 찍는 거 싫어하는데 그 꽃을 그 모든 꽃을 모조리 다 찍을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찍어 간직했죠 오직 그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 한 장 한 장을 모두 기억했어요 그대는 내게 말했죠 네가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모든 게 그대 때문이라고 말해요 이상한 봄이 왔어요 그대로 인해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대로이긴 한데 난 그대에게 이게 다 당신 때문에 핀 거라고 당신은 내게 이제 너는 너무 자유로워졌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꾼 적이 없어 나는 눈물이 흘러 전 세계의 모든 계절에 피는 꽃들이 다 피어 있는 언덕, 거기서 난 눈을 떴는데눈을 뜨고도 생생한 꿈이어서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다-‘무한대의 밤’ 부분(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유원 시에서 ‘현실 인식’이 헛된 꿈의 진정성을 획득하는 방식이라면, 지금-여기에서 느껴지는 ‘실감’은 그 진정성을 믿을 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먼저 이 시에 드러난 꿈과 현실 인식의 관계를 살펴보자. 인용 시의 첫 연에는 냉철한 인식이 “상처”가 되고, 병적인 내면이 “용서”가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내가 사는 물속인데도 거기 발을 담그는 일이 “상처”가 되는 것은, “물이 든 병에 천천히 꽃다발을 꽂아” 줄 때까지 내가 허공을 걷는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회복 불능의 병세가 완연한 게 “용서”되는 까닭은, “병든 꽃다발에 천천히 물을 부어” 줄 때와 같이 누구나 타락에 기대어 무의미한 생을 건너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꿈은 분명 현실이 아니지만, 간혹 ‘가능할 것만 같은 기분’으로 현실에 잔류한다. 그때 ‘꿈같다’는 말은 ‘불가능’이 아니라, ‘잠재된 가능성’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시인이란 바로 그 잠재적 가능성의 느낌을 최대한 이어 가고자 생생한 언어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기에 황유원은 “깨고 나니 꿈이었다”라는 허무감을 “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다”라는 애틋함으로 전환하고자 놀랍도록 “생생한 꿈”을 펼쳐 놓는다. ‘무한대의 밤’은 장시의 형식을 취하면서 “깨고 나니 꿈이었다”의 반복과 변주를 보여 주는 한편, 그 사이에 다양한 고백과 경험의 순간들이 파편적으로 기입된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전개는 그의 꿈을 무시간성의 순간으로 붙잡아 두는 동시에 그 순간에만 머물고 싶은 ‘나’의 내면을 형상화한다. 인용문에서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4연에는 횡설수설한 발화가 펼쳐지고 있다. “그대”를 향한 애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우리는 화자의 정서를 내 것인 양 온전히 느껴 볼 수 있다. 믿을 만한 것이 마땅치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도 믿고 싶은 하나의 진실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대한 사건일지 모른다. 3. 두 번째 되감기: 영원을 위한 반복진한 피맛이 날 때까지 하늘을 사랑하는-‘북유럽 환상곡’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꿈꾸는 주체인 ‘나’는 현실 인식이라는 한계에 투신함으로써 단일한 ‘나’의 권능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황유원 시를 읽는 우리는 여전히 헛된 꿈에 몸을 내던질 수 없다. 세상에 ‘있을 법한 환상’이란 남아 있지 않은 시대에, 현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학에서조차 ‘순수’가 부담스러워진 시대에, 꿈은 어디까지나 ‘불안한 위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계속해서 덧없는 꿈을 꾸고, 그 실현을 믿기 위해 시를 쓴다. 그의 시에는 늘 일시적이고 불명확할 따름인 믿음을 재차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기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비관은 끝까지 무언갈 믿고 싶었던 순수의 뼈아픈 흔적이자, 더는 무너질 수 없는 ‘나’의 최후 방어선이라는 것. 이때 황유원 시의 반복은 진실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그의 시에서 “무언어”로 일관한 채 이뤄지는 윤회는 ‘나’의 내면을 널리 초월케 하는 ‘종교적’인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미켈란젤로 프람마르티노 감독의 영화 ‘네 번’ DVD 뒤에는Language 무언어Subtitles 무자막Running time 88분이라고 되어 있었다매일 저녁 노인은염소젖과 바꿔 온 한줌의 성당 먼지를물에 타 마시고그러면 자신의 병이 나을 거라고굳게 믿는다(…)말과 말 사이말 잠깐 쉬는 곳에서먼지를 가루약처럼 물에 타 마셨다멀리멀리 퍼졌다-‘무언어’ 부분(하얀 사슴 연못) 이 시에 등장하는 영화 ‘네 번’은 “무언어”, 즉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기서의 ‘침묵’은 언어 아닌 ‘공백’이면서 삶 아닌 ‘죽음’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노인”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매일 “한줌의 성당 먼지”를 물에 타 마신다. “먼지”가 병을 낫게 한다는 그의 믿음은 허무맹랑하지만, 그렇기에 그 믿음은 더욱 신실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노인”은 먼지를 구하지 못한 단 하루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여기서 노인의 죽음을 색다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지”가 노인의 헛된 꿈이었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라 노인의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화는 ‘노인-염소-전나무-숯’의 삶과 죽음을 통해 총 네 번의 윤회를 보여 준다. 이때 윤회의 과정은 “노인”의 죽음이 염소, 전나무, 숯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영생을 향한 “노인”의 꿈은 그가 죽고 난 후에야 진정 이뤄질 수 있었음을 말해 준다. 사실상 “노인”의 소망을 실현시킨 건 매일 같이 마신 “성당 먼지”가 아니라, ‘죽음’의 침묵이었던 셈이다. 그렇기에 이 시에서 “멀리멀리 퍼졌다”는 구절은 불변의 영적인 순간을 형성한다.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 비로소 평등하기 때문에 황유원 시에서의 종교성은 절대적 신성함이나 우월감으로 고립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바깥의 존재들에게 선뜻 다가섬으로써 인간 삶의 고결함을 증명한다. 이러한 사유를 “말과 말 사이”에서 “먼지”를 물에 타 마시는 화자에게로 옮겨 와 언어적 차원에서 살펴보자. ‘무언어’에서 ‘시’가 갖는 초월적 의미는 두 가지다. 먼저, 시적 언어는 불필요한 언어를 제거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의미만을 남겨 놓는다. 이때 언어의 공백은 언어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영원성으로 초월하게 만드는 기제다. 다른 한편으로, 시는 자신의 내부에서 불가능을 향해 나아가는 고통이기도 하다. 시가 갖는 헛된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에서 간과되어 온 가치가 있음을 밝혀 주는 윤리가 될 수 있다. 아마 황유원 시의 고요함과 맑음 속에 그 나름의 독특한 온기가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지. ‘무언어’가 윤회라는 종교성을 띤 반복을 통해 영원의 온기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존재와 시간’은 실없는 말장난을 통해 영원을 체험한다. 뒤틀린 시간 의식과 현실의 균열을 일으키는 말장난에 의해 이뤄지는 반복은 끝없이 새로워지는 우리들의 속된 삶을 향해 있다. “벌써 올 시가이 지놨는데 저 셰기 고장난 거 아이야?”곧 친구가 올 거라며 큰소리쳐 보지만각 한구석 잿빛 신문지 위에 쌓인 굵고 기다란 순대들시계 밖으로 꺼내져 토막난 시간의 내장처럼고요하기만 해24시간 영업하는 가게에 걸린 시계라고 해서 다른 시계보다 특별히 더바쁠 리는 없고고장이 나서 어쩌다 하루 24시간이42시간이 돼 버리는 일도 일어나진 않을 텐데(…)조금 있다 다시 보면흘러가 버리고 없다테이블에는 때마침 현재진행형으로 펄펄 끓는 순댓국 한 그릇과 찬 소주 한 병이 올려지고 있는데문득, 영감이 그토록 고대하던 친구가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존재와 시간’ 부분(일요일의 예술가) 24시간 순댓국밥집에서 얼큰히 취해 친구를 기다리던 “영감”은 엉뚱하게도 멀쩡한 시계와 시비가 붙었다. ‘ㅣ’와 ‘ㅖ’를 뒤바꿔 “시계”라는 정(正)과 “셰기”라는 반(反)을 오가는 시의 말장난은 합(合)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영감”의 일그러진 음성에 의해서 “영감”과 그의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균열을 드러낸다. 주어진 시간을 그저 충실히 살았을 뿐인데, 이제 보니 내 삶은 어디서부터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런 “영감”의 회한은 그 시작점을 가늠할 수 없는 지난한 과거까지 소급되며, 또한 실상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친구”를 기다리는 허황한 미래에까지 뻗어 나간다. 시에서 “24시간”이라는 후회가 “42시간”이라는 선망으로 뒤바뀌고, 또 그런 “42시간”의 꿈이 부상했다가 다시 “24시간”이라는 지극한 현실로 떨어지길 반복하는 동안, 그런 “영감”의 모습을 관찰하는 화자의 시선은 줄곧 현재 시제를 견지한다. “영감이 그토록 고대하던 친구가 /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화자의 생각이 과거와 미래라는 양단의 불가능성에 갇힌 “영감”의 존재를 “현재진행형”의 시간성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와 “영감”이 있는 곳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시공간’이자,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장소이며, ‘이제’ 식사를 마치면 또 다른 시공간이 펼쳐질 모든 것의 ‘처음’이다. 이 시점에서 “영감”의 “토막난 시간의 내장” 같은 허름한 과거는 “흘러가 버리고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그가 선망하는 미래 또한 소유 불가능성으로 인해 “둘이기에 잠시나마 하나가 될 수 있”(‘백호의 손’, 일요일의 예술가)는 영원의 가능성으로 변모된다. 즉 후회와 선망이 무한히 교차되는 찌든 삶 속에서, “현재”는 화자와 “영감”이 “친구”가 되어 볼 수 있는 무한한 시간성으로 잠재해 있는 것이다. 4. 세 번째 되감기: 타자에게 보내는 안부너처럼 나도 그렇게 항상네 옆에 있을 것-‘새들의 선회 연구’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그리하여 낭만에서부터 출발한 황유원의 시는 최근 시의 화두인 타자 사유에까지 도달한다. ‘낯선 존재의 새로움’이라는 하나의 흐름과 ‘타자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인식 사이에서 그의 시는 의문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시가 타자를 더 많이 비춘다고 해서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약화될 수 있는가? 본래 인간의 뇌는 ‘나’와 무관한 일에 특별한 정서를 느끼기 어려워한다. ‘나’가 사라진 시에서 애초에 내가 왜 벌레나 먼지만큼 작아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윤리적 구호는 ‘나’의 비대함만 부각시킬 뿐, 어떠한 실천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란 쉽지만, 그것이 곧 주체 중심 사고와의 결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문학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대중의 목소리는 아마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낄 수 없는 윤리적 목소리는 가짜 화해, 가짜 자유, 가짜 욕망에 불과하다.⑤그런데 왜 우리는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장할 뿐, 이 난점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는가. 그렇기에 황유원은 현재 이곳이 편협한 지대라는 사실부터 깨닫고자 한다. 시는 명백한 고발에 의해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꿈처럼 억압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가상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⑥불화를 불화답게, 결핍을 결핍답게 그려 낸 황유원의 시에서 우리는 윤리를 본다. 그곳만이 더 나은 삶을 위한 태도를 고민할 장소로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을 켜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이 있습니다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이 담겨 있던 어둠은얼마나 아늑하고 그윽한 것이었겠습니까?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사과도할 수 없다는 사실에망연자실해 하며 자, 한번 곰곰이생각해 봅시다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은얼마나 천천히얼마나 우아하게 이 욕실 바닥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겠습니까?(…)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깊이 공감해 봅시다당신에게는 깊은 공감 능력이결여되어 있습니다(…)그 속에 들어앉아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떨림 속에서아까 듣던 그 음악을계속이어서 들어 봅시다-‘밤의 벌레들’ 부분(초자연적 3D 프린팅) 이 시각, 벌레들은 인간 없는 곳에서 “아늑하고 그윽”하다. 인간을 피해 자기 터전에서조차 몸을 숨겨야 하는 벌레에게서 “아늑하고 그윽”함을 보는 것은 최근 시의 경향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황유원은 여타 시들과 같이 이 땅이 벌레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터전이라 말하지 않는다. 인간 혹은 벌레, 둘 중 하나는 만났다 하면 “혼비백산”, 한쪽은 박살이 나는 것이 진실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는 다분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벌레’의 심정을 대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에는, 벌레의 존재성을 긍정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인간의 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미 불이 켜진, 낭만적 환상이 끝나 버린 이곳에서 “우아”했을 벌레의 매력을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최근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해체적 사유의 틀 없이도, 인간과 벌레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사유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간다. 이 시에서 벌레를 향한 인간의 “공감”은 역설적이게도, 화자가 인간과 벌레 사이의 해소 불가한 단절을 인정한 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화자가 ‘우아함’이라는 욕망을 충족하고자 “벌레”를 등장시켰을 때, 이 시의 목적은 ‘인간 욕망의 실현’이라 보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화자의 관심은 애초에 우상이나 소유욕과 같은 질서 세우기가 아니라, 인간과 벌레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낭만이 욕망을 원리로 삼는 것에 반해, 황유원 시의 낭만은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깊은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인간이 벌레를 “공감”하게 된 원리가 인간이 벌레만큼 작아졌기 때문인 것 또한 아니다. 이 시의 인간은 그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벌레”에게 느낀 그 “떨림 속에서 / 아까 듣던 음악을 계속” 듣고 싶을 뿐이다.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꿈을 꿀 때, 인간은 벌레를 감각을 선사하는 대상으로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에서 벌레와 인간은 각자가 ‘있는 그대로’ 충분히 평온하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인간”과 “벌레”의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아닐 것이다. 꿈 없이는 차이를 발견하려는 여유도, 발견 후 그것을 깊이 고민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은 이 협소한 세계. 바로 여기에 우리 삶이 놓였다는 사실이 가장 위급한 문제다. 그렇기에 황유원은 평등이 도래한 장소에서도 계속해서 ‘너’와 ‘나’의 차이를 견지하고자 한다. 고통을 경험한 ‘나’의 내면으로부터 사회적 관계에 따른 ‘너’를 향한 존중과 배려를 가능하게 한다. 충분한 추위가 없으면일부러라도 눈을 내려설산에 오른다여러 고난을 겪을수록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고나는 여러 사람이 되고갑자기 하늘 어두워지면지그시 눈을 감아 그 어둠두 배로 어둡게 만든다어느덧 두세 배로 불어난 어둠속에서하지만 두 배든 세 배든실은 그냥 같은 어둠일 뿐인어둠 속에서하산을 시작한다함께 내려가는 여러 사람들다 돌아간 카세트테이프의 나머지 한쪽이마저 돌아가기 시작한다-‘오토리버스’ 전문(하얀 사슴 연못) 한 사람이 “여러 고난을 겪”었음을 고백할 때, 우리는 비단 그 사람의 고난의 깊이만을 가늠하지 않는다. 흔히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더욱 슬프다’는 위로는 한 사람의 고난이 얼마나 넓은 아량을 갖게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말인 것이다. 한 사람의 고난이 ‘나’라는 단수를 넘어 “여러 사람”으로 향하고자 마음먹을 때, ‘나’의 고난의 깊이는 “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이 시의 “고난” 역시 “설산에 오른다”고 마음먹는 순간,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로 확장된다. 그런데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구태여 헛된 꿈을 꾸면서 현실에 관해 남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 시인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시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연에서 화자는 “두세 배로 불어난 어둠”이라는 다수의 두려움을 “실은 그냥 같은 어둠일 뿐인 어둠”이라는 ‘나’의 두려움으로 응축시키기도 한다. 이때 두려움은 “하산을 시작”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며, 이윽고 “함께 내려가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그 기세를 잃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꿈이 그것의 덧없음을 알게 된 뒤에 진정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시인이 일부러라도 시에 고통과 상실의 감각을 새겨 넣는 이유는, 그리하여 기껏 올라간 정상에서 “하산”할 운명을 하릴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공연한 움직임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시에서 공연한 움직임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설산에 오른다”와 “하산을 시작한다”라는 상하(上下)의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카세트테이프” 한쪽이 다 돌아갔을 때 자동으로 재생되는 “나머지 한쪽”과 같은 끝에서 끝으로의 움직임이다. “설산”이라는 한쪽에서 아름다움 혹은 꿈처럼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하산”해 돌아가는 다른 쪽에서는 무력감과 현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 발생한 고통은 더 나은 현실을 살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꿈은 부질없는 것일 때부터 이미 희망을 내포한 것이 된다. 황유원의 시가 자꾸만 예술이라는 끝과 현실 인식이라는 끝을 되감는 까닭은, 환상이 현실에 대한 불편감을 표할 때마다 현실은 변화의 가능성을 갖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는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고통이 됨으로써 익숙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이때 꿈을 꾸는 시는 우리의 삶과 태도를 진정 변화시키는 윤리가 될 수 있다. 5. 희망은 어떻게 이어지는가나는 걷는다내가 널 버려도너는 버려지지 않는다-‘사랑하는 천사들’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영원할 것만 같았던 모험도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다. 열 장 남짓한 페이지 안에서 황유원의 시는 어디든 오갈 수 있었다. 메마른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꿈’으로, ‘성스러운’ 영원에서 ‘속된’ 영원으로, 타인 같은 ‘나’로부터 ‘나’ 같은 타인으로. 이런 모험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황유원의 시가 ‘나’라는 주체를 잃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그의 시의 ‘나’는 극에서 극을 오가면서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한층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역설적이게도 더 큰 아픔과 대적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가령 야심찬 꿈과 다짐들은 사실상 냉혹한 현실 논리에 강력히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혹은 성스러운 약속들은 때로 세속적인 삶의 회한보다도 생명력이 희미하다는 사실을, 혹은 타인은 ‘나’ 같지 않고 ‘나’ 역시 타인과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남김없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어떠한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또 다른 극점을 만나리라는 여지를 항상 남겨 둘 줄 아는 넉넉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나’는 간절히 바라던 끝이 허무하게 사라진 장소에서도 ‘과정’으로서 자신의 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하여 황유원의 시는 “마지막 페이지는 이미 정해져 있음”을 “완벽하게 체감”시키는 이 결론에 다다라 “원래 없던 눈을 / 누구보다도 검게 꼭”(‘12월’, 일요일의 예술가) 감는다. 그의 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잊지 말라고. 이곳이 어디든, 꿈이든, 현실이든, 모험이 끝나 버린 직후이든, 우리가 잠시 시를 잊을지라도 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지금 이곳에서 다시 출발하는 그의 시는 보다 깊어진 걸음으로 또 한발 나아간다.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다음을 향해. ① 황유원은 2013년 등단 이후 다섯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세상의 모든 최대화(민음사, 2015),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현대문학, 2019), 초자연적 3D 프린팅(문학동네, 2022), 하얀 사슴 연못(창비, 2023), 일요일의 예술가(난다, 2025). ② T W 아도르노, 홍승용 역, ‘문화비평과 사회’, 프리즘, 2004. 29면. ③ 신형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 창작과비평41, 2013,3. 165면. ④ 하얀 사슴 연못 중 시인의 말. ⑤ 김현, ‘문학은 무엇에 대하여 고통하는가’, 김현문학전집 1, 문학과지성사, 1991. 57면. ⑥ 같은 곳.
  • 동화 통해 제 마음 깊은 곳 어린아이 달래고 싶어[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동화 당선 소감]

    동화 통해 제 마음 깊은 곳 어린아이 달래고 싶어[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동화 당선 소감]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낼 때 쯤입니다. 아이가 두 시간 정도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동안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이 앞에 다시 앉기까지 6년 정도 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전원을 켜자 검은 모니터 속 지쳐 보이던 제 얼굴에 환하게 불이 켜졌습니다. 잠시 후 저와 비슷한 표정을 한 얼굴 여럿이 화면을 통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처음으로 화상 수업을 진행하게 된 동화 수업 모임에서였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왜 동화를 쓰고 싶은지 어떤 동화를 쓰고 싶은지 말했습니다. 그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사실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아마도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고 싶다는 말 뒤에 숨어 저는 아직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동화를 통해 오로지 나를 달래고 싶다는 말을 그때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동화를 썼습니다. 그동안 제가 썼던 동화 속에 등장한 지우, 재희, 호서, 이수, 호준, 준희, 지운, 동희, 지호, 예지, 주아, 아진은 저를 한없이 따뜻하게 달래 주던 친구들입니다. 저와 함께 울고 웃어 주던 이 친구들이 앞으로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글을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양가 부모님과 언제나 든든한 제 편인 남편, 저에게 무한한 힘을 주는 우진과 유나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뚜벅뚜벅 외로운 길을 동행해 준 다정한 저의 문우들인 김경은, 박윤영, 박은정, 이지은, 김현주, 임수빈, 임혜진님 그리고 한겨레 아동문학작가 교실 선생님들과 ‘동화주민’ 동기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글을 뽑아 주신 황선미, 송미경 작가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1988년 경기 안양 출생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엄마가 돌아오게 하는 방법/현정아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동화]

    엄마가 돌아오게 하는 방법/현정아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동화]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택배 기사가 수레를 끌고 내렸다. 지우는 설레는 마음으로 10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현관 앞에는 택배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평소에는 택배를 발로 밀어 신발장까지 옮겼지만 오늘은 하나하나 손으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때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지우야. 학교 잘 다녀왔어? 얼른 손부터 씻고 와. 물로만 대충 씻지 말고 비누칠해서 꼼꼼히! 그리고 냉장고에 과일 깎아 놓은 거 있어. 꺼내 먹고 영어 학원 숙제하고 있어.” “알겠어 알겠어. 잠깐만. 나 택배 좀 뜯어 보고. 내 잠옷 왔어?” 금요일인 내일은 같은 반 친구 승희의 아홉 번째 생일이다. 생일 기념으로 승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지우는 입고 갈 만한 잠옷이 없었다. 온통 소매가 짧아진 것뿐이었다. 지우의 물음에도 엄마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지우는 급한 마음에 가위도 없이 택배 상자와 비닐을 있는 힘껏 찢었다. “없어! 없다고! 왜 내 것만 안 온 거야! 내일 그 잠옷 꼭 입어야 한단 말이야!” 지우는 엄마가 들으라는 듯 짜증을 냈다. “지우야. 엄마 좀 이따 회의 들어가야 해. 손 씻고 과일 꼭 챙겨 먹고 가. 알겠지?” 거실 TV 아래에 놓인 작은 CCTV에서 더이상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칫, 맨날 자기 할 말만 하고….” 두 달 전 엄마 아빠는 거실에 처음 CCTV를 설치했다. 교대 근무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뒤죽박죽인 아빠와 다시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 때문에 지우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섯 살 동생 정우는 눈사람처럼 생긴 CCTV를 장난감인 줄 알고 좋아했다. 사람 움직임에 따라 머리도 움직일 수 있고 엄마 아빠 목소리도 나오니 비싼 로봇 장난감이라도 생긴 줄 알았나 보다. 지우도 정우처럼 처음엔 CCTV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마다 CCTV로 엄마 아빠가 지켜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냉장고에는 아침에 깎아 놔서 갈색이 되어 버린 사과 다섯 조각과 귤 두 개가 반찬통에 담겨 있었다. 지우는 냉장고 문을 열고 선 채로 엄마가 껍질까지 까 놓은 귤 하나를 집어서 입에 통째로 넣었다. 그때 CCTV에서 또다시 엄마 목소리가 들려 왔다. “김지우!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서서 먹으면 어떡해! 문 닫고 식탁에 제대로 앉아서 먹어!” “으윽. 잔소리. 엄마 회의 간다며! 안 가?” 지우 말에 이번에도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지우는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고 냉장고 문을 쾅 닫았다. 엄마는 바빠 죽겠다면서 꼭 이런 순간에만 귀신같이 나타났다 사라져 버렸다. 지우에게 CCTV는 이제 더이상 자신을 지켜 주는 친구가 아니라 지우를 감시하고 귀찮게 하는 기계일 뿐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정우와 놀이터에 나가 있던 아빠가 집에 돌아왔다. “오! 내 택배인가?” 지우는 아빠가 가지고 들어온 택배부터 허겁지겁 뜯었다. 비닐을 뜯자마자 지우가 가장 좋아하는 강아지 캐릭터가 그려진 보드라운 수면 잠옷이 나타났다. 입자마자 잠이 들 것 같은 부드럽고 포근한 잠옷이었다. “아빠! 내일 내 잠옷이 제일 귀엽겠지? 응?” “내 꺼는! 내 것도 사 줘! 나도 누나처럼 저런 잠옷 사 달라고! 으아아앙.” 아빠는 정우를 달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곧 출근해야 되는데 언제 와?” 엄마는 오늘도 야근이었다. 할 수 없이 아빠는 오늘도 지우에게 이 한마디를 남기고 출근을 했다. “지우 너만 믿는다! CCTV로 보고 있을 테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엄마 올 때까지 정우랑 잘 있어. 알겠지?” 벌써 며칠째 반복되는 일이었다. 정우는 오늘도 엄마 아빠 없이 울다 지쳐 잠들고 말았다. 이런 날은 지우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걱정 없었다. 입자마자 스르르 잠이 올 것 같은 포근한 새 잠옷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새 잠옷도 소용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으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일이 더 느리게 오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우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오늘은 무조건 아빠 출근하기 전에 와야 해! 나 오늘 학교 끝나고 바로 승희네 집 가는 거 알지?” 엄마는 아침 식사와 출근 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알겠어, 알겠어.” 지우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생일 주인공인 승희는 레이스가 잔뜩 달린 공주 드레스 잠옷을 꺼냈다. “예쁘지? 우리 아빠가 유럽 출장 갔다가 사 온 거다? 엄청 비싼 거래.” 모두 승희의 잠옷을 부러운 듯 쳐다봤다. 하지만 지우의 취향은 아니었다. 지우는 예쁜 것보다 귀여운 게 더 좋았다. 지우는 자기 잠옷보다 더 귀여운 잠옷을 가지고 온 친구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드디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방 속에 있는 잠옷을 집는 순간, 방문을 열고 승희 엄마가 들어왔다. “지우야 어쩌지? 오늘 엄마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지우가 집에 와야 할 거 같다는데? 안 그럼 동생이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면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지우는 CCTV 위에 잠옷을 세게 집어 던졌다. “지우야….” 두꺼운 잠옷에 가려진 CCTV에서 엄마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아무 말도 하지 마! 듣기 싫어!” “지우야. 알겠어. 일단 잠옷 좀 치워 봐. 하나도 안 보여.” “보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나도 엄마 못 보잖아. 내 말도 안 들어 주잖아! 약속도 지키지도 않고! 계속 그 안에서 혼자 보고 혼자만 말할 거면 평생 거기서 살아!” 지우는 홧김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지우가 울자 정우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잠옷에 덮여 엄마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작아졌다. “지우야…. 지우야….” 지우는 이 모든 게 저 CCTV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CCTV가 없을 때는 이렇게 지우와 정우만 집에 두고 엄마 아빠가 사라지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우야! 우리 저 CCTV를 부숴 버리자! 그럼 엄마도 예전처럼 빨리 올 거야!” 정우는 지우 말을 듣자마자 방에서 커다란 카봇 로봇을 가지고 왔다. “얘가 내 장난감 중에 제일 힘 센 애야! 얘는 뭐든지 다 무찌를 수 있어!” 정우는 CCTV를 덮고 있던 잠옷 위로 로봇 다리를 내리찍었다. “이야아아아아압!!! 퍽! 푹! 퍽! 퍼억!”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지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빠가 정우에게 선물한 장난감 자동차를 발견했다. 정우 옆에 지우까지 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자동차였다. “정우야! 얼른 타!” 운전대를 잡은 지우 옆에 정우가 앉았다. 이제 바닥에 내려놓은 CCTV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만 하면 됐다. “자! 간다! 출바아아알!” 그때였다. “잠깐! 잠깐만!” CCTV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였다.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고 어릴 적 엄마가 읽어 주던 동화책 속 호랑이 목소리 같기도 했다. “지금 날 밟고 지나가면!” 3초 정도 시간이 지나고 CCTV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너희 엄마는 영원히 이 안에 갇히게 될 거다! 혹시라도 내가 부서지면 너희 엄마도 같이 부서지는 거야! 알겠니?” 지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장난감 자동차의 액셀에서 발을 뗐다. “뭐, 뭐라고? 역시 네가 범인이었구나? 우리 엄마를 뺏어간 게. 당장 우리 엄마 돌려줘! 돌려주란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난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 잠도 못 자고 일해 왔다고! 그리고 이건 네가 바라던 거 아니었어? 아까 전에 분명히 그랬잖아. 엄마보고 평생 이 안에서 살라고.” “그, 그건, 화가 나서 했던 말이고! 우리 엄마 어딨어! 당장 우리 엄마를 돌려줘! 당장!” 지우는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진짜 CCTV에 갇힌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통화 연결음만 계속 나올 뿐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진짜 저기 갇힌 거야?” 지우가 울먹거리자 정우가 CCTV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아!” 그때 지우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CCTV에서 다시 엄마 목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 말이다. “김정우! 너는 화장실 불이랑 안방 불이랑 작은 방 불 다 켜고 와! 얼른!” “응? 그럼 엄마한테 혼나는데….” “바보야. 엄마가 다시 나타나려면 이 방법밖엔 없다고! 얼른!” 정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신나게 불을 켜고 다녔다. 지우는 냉장고 앞에 서서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후 숨을 깊게 내쉬고 비장한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만큼은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지우는 냉동실 문까지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정우와 지우가 이런 행동을 할 때면 엄마는 셋을 세기도 전에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하나, 둘….” 지우는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숫자를 셌다. 이렇게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진 적은 처음이었다. “셋!” 그 순간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엄마가 들어왔다. “김지우! 김정우! 지금 방마다 불 다 켜놓고 뭐 하는 거야! 지우 너는 냉장고 냉동실 문까지 열어젖히고 거기서 뭐 해! 빨리 안 닫아?” “엄마!” 지우와 정우는 단숨에 엄마 품으로 뛰어가 안겼다. “내가 빨리 오라고 했지! 이제 오면 어떡해!”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지우는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 저 CCTV 그냥 없애면 안 돼? 나 쟤 너무 무서워.” 방금 전까지 지우와 정우를 협박하던 CCTV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실 바닥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이렇게 놓여 있어? 아니, 그리고 밖에서 타는 정우 자동차를 거실로 가져오면 어떡해! 바닥에 바퀴 자국 좀 봐! 어휴. 정말 엄마 없으니 집 꼴이 말이 아니네.” 엄마는 CCTV의 전원 코드를 빼며 말했다. “당분간 엄마 휴가 냈으니까 이건 어차피 필요 없어.” 엄마가 CCTV를 상자에 넣었다. “정말? 그럼 이제 정우랑 나만 두고 사라지는 거 아니지?” “사라지긴 누가 사라져. 이번 달만 지나면 아빠 새벽 근무도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엄마가 휴가 내기로 한 거야. 이제 오늘 같은 일 절대 없을 거야.” 며칠 뒤 지우는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잠옷을 입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지우 옆에는 호랑이 무늬가 그려진 잠옷을 입은 정우도 서 있었다. “어서 와!” 지우 집에서 열리는 첫 파자마 파티였다. 엄마는 지우 방으로 과일과 간식들을 건네 주었다. 그때 호랑이 내복을 입은 정우가 호랑이 흉내를 내며 지우 방으로 들어왔다. “젤리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정우가 귀엽게 얘기하자 승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야! 무슨 호랑이가 그러냐? 하나도 안 무섭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정우야! 호랑이는 이렇게 말해야지!” 하며 시범을 보였다. “어! 이 목소리!” 지우와 정우의 눈이 마주쳤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였다. 지우와 정우는 엄마를 바라보며 동시에 소리쳤다. “뭐야! 엄마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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