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그리움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보고서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53
  • “옻칠의 무한 매력, 더 알려야죠” 옻칠에 새 숨 불어넣는 전용복 작가

    “옻칠의 무한 매력, 더 알려야죠” 옻칠에 새 숨 불어넣는 전용복 작가

    “심장이 뛸 때까지는 작업을 계속 할 겁니다. ‘옻칠’이 전 세계인에게 각인되도록, 한 점이라도 제대로 된 작품을 남기고 싶거든요.” ‘옻칠 장인’ 전용복(71) 작가는 요즘도 매일 새벽 5시에 눈을 뜨면 작업장 나갈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우리 옻칠의 우수성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전통적 공예 기법인 옻칠, 나전을 현대 회화에 접목해 새 숨을 불어넣는 작업에 정진하는 이유다. 그는 1991년 일본의 국보급 연회장인 도쿄 메구로가조엔(1920년대 일본의 고급 문화를 담은 호텔, 연회장, 예식장으로 쓰인 복합 건물) 내부의 나전·칠보 옷칠 작품 5000여점을 3년만에 완벽히 복원하며 현지에서 더 유명세를 누렸다. 특히 3분의 2가 창작 작품이라는 점, 34개 엘리베이터 내부를 보는 이를 압도하는 화려한 옻칠 작품으로 채워 그 자체로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점 등으로 주목받았다.최근 개인전 ‘바람 색채 그리고 빛’이 열리고 있는 경기 용인 갤러리위에서 만난 작가는 최근작들을 두루 소개했다. “민족이 향유하지 않는 문화는 번창할 수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한다는 신념엔 변함이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옻칠의 무한한 표현력, 다채로운 색으로 생명력 넘치는 작품들은 옛 것이 아닌 현대 작품처럼 친숙하면서도 공력의 깊이가 느껴진다. 고구려 벽화를 모티브로 한 신작인 ‘바람소리’는 황토빛의 서정으로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무판 위에 삼베를 깔고 붉은색, 노랑색, 파란색의 옻칠을 각각 일곱 차례씩 올려 그윽한 빛깔과 무늬가 만들어졌다. 그림 속 갈대는 바람에 휘청이면서도 강인하게 스스로를 다잡는다. 잎새잎새마다 그리움의 정서도 짙게 배어 있다. 앞으로도 갈대 작업을 쭉 이어갈 생각이라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갈대를 주인공으로 들여보낸 ‘바람소리’ 연작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로 6m짜리 대작 ‘귀향’(2021)이 정면에서부터 시야에 가득 들어찬다. 암수컷이 뒤엉켜 생동하는 연어의 귀향이 광대한 화폭에 담겼다. 사방에서 튀어오르며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를 섬세하고 화려한 자개로 수놓은 해와 달이 감싸고 있다. “연어들은 초주검이 되면서까지 고향으로 산란한 뒤 호수 바닥에 쌓여 자연의 순환을 돕는다. 나도 그 회귀의 깊은 뜻을 받들어 육신과 영혼을 바쳐 옷칠 문화 부활에 한 점 빛이라도 되길 바란다.”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고흐가 남긴 ‘별빛의 주문’[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고흐가 남긴 ‘별빛의 주문’[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희망이 좌절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고흐가 그린 밤하늘의 별빛이다. ‘별’을 그린 화가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별빛’을 그런 방식으로 그린 화가는 고흐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고흐는 단지 별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별빛의 아우라를 그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 고흐의 별빛은 불꽃놀이처럼 아스라하게 번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물 위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소용돌이 같기도 하며, 초신성이 폭발하는 것처럼 강렬한 에너지를 품어 안고 있는 듯하다. 고흐는 별빛을 그릴 때조차 마치 자화상을 그리듯 격렬하게 자신의 마음을 투사했다. 그리하여 고흐의 별빛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암호나 신비로운 주문처럼 느껴진다. 제발 이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부디 내 안에 숨어 있는 최고의 빛을 그림을 통해 발현할 수 있기를. 고흐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듯, 은밀히 주문을 외우듯, 별빛을 그렸을 것이다.“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없지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고흐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고흐는 별을 그릴 때만은 행복했다고 한다. 누이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밤하늘의 별을 그릴 때야말로 모든 시름을 잊는 행복한 순간이라고 고백했다. 아마도 그 간절함이 별빛에 그토록 많이 투사되어 있기에 전 세계 사람들은 여전히 고흐가 그린 밤하늘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별빛에 무슨 간절한 사연이 깃든 것처럼, 별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간곡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고흐가 그린 밤하늘은 아름답게 빛난다. 편안하고 지루하게 사느니 차라리 열정적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고흐. 그에게 열정이 없는 삶은 무덤과 같았으며 그 열정은 바로 사랑, 예술, 이상을 향한 멈출 수 없는 동경이었다. 그는 예술이야말로 삶으로 인해 망가지고 부서진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몸짓임을 알고 있었다. ‘밤의 카페 테라스’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별이 빛나는 밤’을 나는 ‘고흐의 별빛 3부작’으로 부르고 싶다. 이 별빛 3부작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스토리가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에는 인간 세상의 환한 빛과 별빛으로 반짝이는 어두운 밤하늘이 대비되면서 밤하늘이 아름다운 조연처럼 그려진다면,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반대로 인간이 아주 작고 소박한 조연처럼 그려지고 강물 위로 쏟아지는 별빛이 비로소 진정한 주연으로 등장하는 느낌이다.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모든 주변의 풍경을 압도하는 별빛의 격동적인 불꽃놀이가 보는 이의 마음을 격하게 사로잡는다. 마치 별들이 장엄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거대한 군무를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흐가 별을 그린 모든 작품이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작품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이 작품은 꼭 아를이나 생레미처럼 머나먼 유럽으로 떠나지 않아도 우리 동네 근처의 강물이나 호수에 비친 밤하늘의 별빛처럼 친밀하게 느껴진다. 내가 오르세 미술관을 여러 번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파리에 가면 또 오르세 미술관을 가야지’라는 결심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그림 때문이다. 고흐, 모네, 세잔, 마네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의 걸작이 모여 있는 너무나도 볼 것 많은 미술관이지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나만의 원픽’은 바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론강의 별빛이 오르세 미술관에서 빛나는 한, 나는 오르세 미술관을 향한 그리움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는 일부러 ‘고흐의 방’을 남겨두고 다른 작품들부터 쭉 먼저 돌아본다. 고흐를 마지막에 봐야 감동의 여운이 더 길게 남을 것 같아서. 언제 봐도 도발적이고 발칙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지베르니에 집을 짓고 자신의 집을 거대한 아틀리에로 만들었던 모네의 ‘수련’, 춤을 추는 댄서들의 동작을 평생 연구했던 드가의 연작들,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걸작 등을 벅찬 감동으로 천천히 관람한 뒤 나는 고흐의 방으로 거의 뛰다시피 걸어간다. 고된 노동을 잠시 멈추고 달콤한 낮잠에 빠진 농부의 ‘시에스타’, 하늘색과 민트색 붓 터치가 고흐를 마치 살아 있는 인물처럼 꿈틀거리게 만드는 ‘자화상’, 그리고 고흐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해 준 벗이자 의사였던 ‘가세 박사의 초상’ 등을 다 둘러본 뒤 나는 마치 ‘피날레 모멘트’를 오래오래 기다린 관객처럼 벅찬 감정으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 선다.고흐는 ‘검은색을 쓰지 않은 밤’을 꿈꾸었다. 그가 보기에 밤하늘은 대낮보다 훨씬 풍요로운 색채의 스펙트럼으로 물결치고 있었기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풍요로운 색채로 일렁이는 것은 바로 흔한 검은색을 쓰지 않고 파란색, 보라색, 녹색, 레몬색으로 밤하늘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밤하늘을 오랫동안 관찰해야만 바라볼 수 있는 다채로운 빛의 스펙트럼을 그는 이해했던 것이다. 그는 실제로 한밤 야외에 이젤을 세워놓고 이 그림을 그렸다. 보통 다른 화가들은 낮에 야외에서 스케치를 하고 밤에 아틀리에에서 보다 안전한 환경을 확보한 채 색칠을 했지만, 고흐는 바로 그 순간 별이 그 모습으로 빛날 때 반드시 현장에서 그려야만 별빛의 감동을 그대로 담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춥거나 바람이 불거나 무섭거나 고통스러울 때조차도 그는 오래오래 별다른 장비 없이 야외에서 버티며 ‘바로 그 순간의 그 빛’을 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나는 고흐의 이런 투지를 사랑한다. 내게 절실한 용기, 내게 부족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편안함에 이끌리고 아늑함에 매혹되는 나를 다그쳐 어서 바깥으로 나가 모험을 시작하라고, 내 안에서 새로운 실험과 떠남을 부추기는 사람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고흐는 어둠 속에서도 어둠만을 보지 않았다. 어둠이야말로 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 새로운 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세상이 힘들고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어둠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빛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흐가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어두운 곳에서는 색조의 특성을 명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녹색을 파란색으로, 분홍색 라일락을 파란색 라일락으로 칠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더 그윽하고 미묘하게 타오르는 색채의 섬세한 일렁임을 그리기 위해서는 밝은 화실의 익숙한 조명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의 밤하늘, 바로 이 순간의 별빛’이 필요했다. 고흐가 보기에는 기존의 화가들이 그린 밤은 대부분 ‘검은색’으로 그려졌고, 어둡고 창백하며 희끄무레하고 흐리멍텅하게 느껴지는 색채의 조합이 밤하늘의 대명사처럼 굳어져 있었던 것이다. 고흐는 보다 찬란한 밤을 꿈꾸었다. 촛불 하나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가장 풍요롭고 싱그럽게 빛나는 노란색과 주황색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밤을 그리고 싶었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은 검고, 단조롭고, 아무런 창조적인 해석이 느껴지지 않는 기존의 단조로운 밤하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흐의 시도가 마침내 성공한 실험이었던 것이다.위대한 예술작품은 우리 마음속에 ‘자기만의 독립적인 방’을 만들어준다. 내 마음속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방은 물론 클로드 모네의 방, 피카소의 방, 조지아 오키프의 방, 마크 로스코의 방 등 수많은 아름다움의 비밀 처소들이 있다. 나의 힐링 스페이스는 단지 지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뿐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곳, 주소조차 없는 곳,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첫사랑의 설렘이 시작되던 장소나 처음으로 그 사람과 손을 잡은 장소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고흐의 방, 모네의 방, 클림트의 방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곳은 내 마음속에서 예술이라는 눈부신 별자리가 그려지기 시작하는 장소이기에. 나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이 세상이 내가 꿈꾸던 것만큼 따스하고 친절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고흐를 생각하며 힘겨운 시간들을 버텼다. 바깥세상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고통과 충격으로 가득할 때조차도 ‘내 마음의 힐링 스페이스’에는 고흐의 별이 빛나고 있어 비로소 내 지친 마음이 쉴 수 있기에. 한낮에도 눈을 감으면 군청색의 밤하늘과 레몬색의 별빛이 반짝이는 고흐의 별밤이 마치 3D 영화처럼 내 마음속에서 입체적으로 떠오른다. 한낮에도 나는 언제든 내 마음속 고흐의 별빛으로 잠겨들 수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에 힐링 스페이스를 지을 수 있다. 사랑하는 존재의 흔적이라는 씨앗을 우리 마음의 토양 속에 영원히 심음으로써. 고흐의 별빛이라는 씨앗, 모네의 수련이라는 씨앗, 클림트의 키스라는 씨앗이 내 마음속에 둥지를 튼 한, 나는 결코 어디서든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감동이 내 마음에 뿌린 감동의 소나기가 언제든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줄 것이므로. 당신에게도 내 마음속에 집을 짓기 시작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의 방들’, ‘힐링 스페이스의 씨앗들’을 고스란히 선물해 주고 싶다. 사랑과 희망이 있는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끝내 이 슬픔과 우울의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을 테니. 문학평론가·작가
  • 여덟번째 시집 낸 전북대 김익두 교수…두메산골의 삶 기록

    여덟번째 시집 낸 전북대 김익두 교수…두메산골의 삶 기록

    김익두 전 전북대 교수가 여덟번째 시집 ‘민하 마을의 사계 : 봄’을 내놓았다. 일곱번째 시집 ‘작은모래내 일기’ 이후 1년 만이다. 이 시집은, 김 시인이 제2의 고향인 정읍의 두메산골 마을 산외면 정량리 민하 마을로 들어가 산 1년 동안 사계절 삶의 기록 중, 봄의 기록에 해당하는 시집이다. 168편 269쪽으로 방대한 분량의 시집이다.김 시인은 서문 ‘시인의 말’에서 “이 시집은 제가 살던 전주의 마지막 옛 전통시장인 ‘모래내시장’을 떠나, 임인년 봄부터 겨울까지 한 해 동안, 혼자 정읍 두메산골 산외면 정량리 민하 마을로 들어가, 매일 몸소 체험하고 살아낸 생생한 산촌 생활의 시적 기록 중 그 일부인 봄 기록이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 있다는 것, 모든 물생들이 함께 더불어 같이 살아 있다는 것만큼,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모든 ‘물생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 있는’ 이상적인 생태적 삶의 지향성을 노래하고 있다. 홍사성 시인은 표사에서, “그의 시에는 평안함, 설레임, 그리움, 아득함, 부끄러움, 안타까움, 놀라움이 깊숙이 박혀 있다. 어디를 읽어도 눈이 감기고 가슴이 울렁거린다.”라고 적었다. 복효근 시인은 “삶이 온통 생명의 푸른 기운으로 가득하다. 모든 게 이쁘고, 설레고, 그립고, 아파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이유는 없다. ‘걍’ 그렇다. 그 ‘걍’ 속에서 온 세상 사람과 물생들이 모다들 함께 더불어 노래하고 춤추며 꿈같이 한 번 살아보길 빌어보는 일로 하루하루를 산다.”고 평했다. 시집의 말미에는 시집 ‘해설’ 대신 시인 자신의 시적 일생에 관한 글인 ‘나의 삶, 나의 시를 잠시 되돌아보며’라는 글을 실었다. 시인은 그동안 햇볕 쬐러 나오다가(1990), 서릿길(1999), 숲에서 사람을 보다( 2015), 녹양방초(2017), 지상에 남은 술잔(2019), 사랑혀유, 걍(2020) 등의 시집을 냈다.
  • 양천구, 추석 앞두고 따뜻한 나눔 릴레이

    양천구, 추석 앞두고 따뜻한 나눔 릴레이

    한가위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가 동 주민센터, 직능단체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나눔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구는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족, 아동복지시설, 저소득 장애인 등 취약계층 1만 2000여 가구에 명절 위문품을 지원한다. 어르신·장애인 복지시설 190여곳에는 쌀과 과일 등 생필품을 전달할 계획이다. 명절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해지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나눔 행사도 마련됐다. 지난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양천구협의회는 햅쌀, 라면, 김 등 가구별 4만원 상당의 생필품 꾸러미를 제작해 저소득 북한이탈주민 100가구에 전달했다. 지역사회 곳곳에서도 추석맞이 이웃사랑 나눔 활동이 예정돼 있다. 목1 · 5동, 신월2 · 3 · 5동, 신정2동 등 6개 동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자원봉사캠프는 경로당 및 취약계층 500가구에 명절음식과 생활용품으로 구성된 나눔 꾸러미를 제작·전달하며 안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추석을 앞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온정 넘치는 나눔의 손길을 내밀어 준 후원단체에 감사드린다”라며 “약자와 동행하는 따뜻한 도시 양천이 될 수 있도록 복지행정을 촘촘히 펼치겠다”라고 말했다.
  • 함께하는 추석 맞이… 노원구, 북한 이탈 주민 위한 합동 차례 진행

    함께하는 추석 맞이… 노원구, 북한 이탈 주민 위한 합동 차례 진행

    서울 노원구가 추석을 맞아 북한 이탈 주민을 위한 합동 차례를 진행한다고 21일 밝혔다. 노원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노원구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 주민은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999명이다. 구 관계자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하고 여가와 문화 향유의 기회를 선사하고자 매년 추석 합동 차례와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22일 구청 대강당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식전 행사로 오후 6시 30분부터 20분간 합동 차례를 진행한다. 본 행사에는 북한 이탈 주민 100여명과 노원구민과 북한 이탈 주민 25명으로 구성된 ‘남북어울림합창단’, 지역협의회 위원 등이 참석한다. 남북어울림합창단을 이끌어온 이상주 지휘자의 독창과 북한 이탈 주민의 편지 낭독으로 행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어 평화민족통일예술단이 북한 전통춤인 ‘물동이춤’과 네 벌의 옷으로 계절을 표현하는 ‘사계절춤’ 공연을 선보인다. 남북어울림합창단도 무대에 올라 ‘즐거운 나의 집’,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아, 내 조국’을 들려줄 예정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앞으로도 북한 이탈 주민들이 노원을 새로운 고향으로 받아들이고 정착할 수 있도록 민·관·경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대국민 국군 소통 서비스 ‘더캠프’ 앱 다운로드 580만 달성

    대국민 국군 소통 서비스 ‘더캠프’ 앱 다운로드 580만 달성

    대국민 국군 소통 서비스 더캠프(대표 장철민)는 군 안팎의 소통창구로서 군대와 사회를 이어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소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더캠프는 앱 론칭 직후 육군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며 육군 공식 소통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국군 대표 앱 답게 론칭 5년 만인 지난 8월 기준, 누적 다운로드 수 580만 건을 넘어섰다. 580만 회원 중 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65만 명으로 이는 전체 가입자 중 11.2%에 달하는 회원이 매월 최소 한 번씩 앱에 접속한다는 의미다.지난 2019년 ‘병사들이 직접 사용하는 앱 2위’에 선정되고 같은 해 ‘국방부 행정제도 개선 최우수상’까지 수상하며 실제 사용자인 장병들의 만족도와 국방부 행정 업무 환경 편의를 높였다는 평을 들었다. 더캠프의 대표 서비스 중 하나인 위문편지는 모든 서비스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현재 게시판에 누적된 위문편지 수량은 약 5,500만 건으로 이를 펼쳐 놓으면 지구 지름과 맞먹게 된다. 더캠프의 온라인 위문편지 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추후 훈련소 사진과 함께 캠프레터북 만들기가 가능해 군대에서 시간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속적으로 군과 사회를 이어주는 더캠프는 사회적 기업으로 소임도 다하고 있다. 위문편지 시스템을 PC와 모바일 기반으로 교체하고 100% 재생에너지로 위문편지를 제공하는 등 편지 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감소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잇따른 스타들의 연예사병 입대와 함께 더캠프의 성장세도 더욱 기대되는 추세다. 실제로 최근 BTS 진과 제이홉 등 연예계 대형 스타들이 입대하며 K-POP 팬덤의 유입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더캠프 관계자는 “딱딱하고 수직적으로 여겨지던 병영 문화를 소통 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려 한다”며 “앞으로도 가족과 연인에게는 그리움을 덜어줄 수 있는 매개체로 그 역할을 견고히 하고 동경하던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을 꾸준히 전할 수 있는 소통 창구로도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국민 국군 소통 앱 더캠프는 수료일, 진급, 전역일, 휴가, 면회 정보, 식단, 훈련 사진 등 등록한 군인의 근황과 군 생활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앱은 구글플레이스토어와 애플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하다.
  • ‘美 거주’ 안영미, 고된 육아 근황 공개

    ‘美 거주’ 안영미, 고된 육아 근황 공개

    개그우먼 안영미가 육아 중인 일상을 공개했다. 안영미는 1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몰래 먹는 밥이 차암 맛있습니다. 소식좌 안녕. 콰이어트 플레이스. 절대 소리를 내지 마라”라는 글과 함께 영상 하나를 올렸다. 공개된 영상에서 안영미는 눈앞에 카메라를 켜두고 조용히 식사하는 모습이다. 급하게 밥을 먹으면서도 행여 아기가 깼을까 아기 쪽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 채 밥을 먹는 모습이 육아로 고된 일상을 보여주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에 많은 지인이 댓글로 안영미를 응원했다. 개그우먼 김미려는 “며늘아가. 아 키울 때 그 속도로 먹다가는 너는 굶어야. 삼키라 삼켜”라고 달았고 김숙은 “영미야”라고 애틋함이 담긴 댓글을 남겼다. 개그우먼 김민경은 “그리웠다요”라고 그리움을 표했고, 개그맨 유세윤은 “엽떡 먹으러와”라고 남기기도 했다. 안영미는 지난 2020년 미국에서 직장 생활 중인 비연예인과 결혼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장거리 결혼 생활을 이어왔으며, 미국에서 출산을 준비한 끝에 올해 부모가 됐다. 지난 7월 6일 소속사 미디어랩 시소 측은 “안영미가 최근 아들을 출산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라며 “당분간 육아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잘 살아있길”…의리남 김보성, 두 아들과 연락 차단된 상태

    “잘 살아있길”…의리남 김보성, 두 아들과 연락 차단된 상태

    배우 김보성이 두 아들과 불화를 고백했다. 김보성은 지난 12일 JTBC 예능물 ‘짠당포’에서 최근 아들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며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아들에게 사나이, 남자만 강조한 것 같다. 일반적인 부자 사이로 지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내 책임이다. 아빠가 처음이라서 완벽하지 않았다”며 “현재 연락이 닿지 않고 차단된 상태라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잘 살아있길 바란다”며 “보고 싶은 건 정도가 이제 지났다”고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를 듣던 덱스는 “나도 그랬다. 20대 초반에 아버지 연락을 안 받고 짜증내기도 했다”며 “마음 깊은 곳에선 잘해야겠단 마음이 있는데 그게 잘 표현이 안 됐다”고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위로했다. 김보성은 “물질적인 게 중요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가족이 행복해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짠당포’는 매주 화요일 밤 10시 10분 방송된다.
  • 없어서 못 팔아… 美 강타한 김밥

    없어서 못 팔아… 美 강타한 김밥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학교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 주셨는데 놀림을 받았어요. 지금 미국에서 김밥이 매진됐다고 하니 미친 변화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인 음식 블로거 세라 안(27)이 어머니와 함께 냉동 김밥을 데워 먹는 동영상을 지난달 16일 틱톡에 올렸는데, 지금까지 조회 수가 1100만회를 넘겼다. 그는 자신의 놀림받던 김밥 도시락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 문화가 다른 사람에게 수용되고 소비되는 데 얼마나 많은 진전이 있었는지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미 NBC방송은 6일(현지시간) ‘트레이더 조스의 김밥이 틱톡 영상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동이 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근 미국에서 한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을 상세히 소개했다. NBC는 냉동 김밥의 블록버스터급 인기에 트레이더 조스 직원들도 놀랐다고 보도했다. 두부가 포함된 비건(채식주의자) 김밥이 3.99달러밖에 안 한다. 일간 USA투데이는 미국 전역에 500여개 매장을 둔 식료품점 체인 트레이더 조스가 지난달 초 출시한 냉동 김밥이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두 팔려 나가 오는 11월에야 추가로 입고된다고 설명했다. 트레이더 조스의 한 매니저는 “K팝과 넷플릭스가 K드라마 붐을 띄웠다. 이런 문화적 노출의 영향은 엄청나다. K드라마에서 떡볶이를 봤는데 맛있어 보여 개인적으로 맛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김밥 품절’ 대란 때문에 매장에서 김밥을 구할 수 없게 된 미국인들이 H마트 등 한인 마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NBC는 전했다. 한국계 미국인 미셸 조너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쓴 2021년작 ‘H마트에서 울다’는 뉴욕타임스 인기 도서에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 식품 유통업체 리 브러더스의 사장 로빈 리는 김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데 따라 냉동 김밥을 미국으로 수입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는 “트레이더 조스가 거둔 김밥의 성공을 모두가 누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 “공연 중 할머니 돌아가셔…” 뷔가 털어놓은 ‘그리움’

    “공연 중 할머니 돌아가셔…” 뷔가 털어놓은 ‘그리움’

    그룹 방탄소년단(BTS) 뷔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뷔가 출연했다. 이날 뷔는 예능 프로그램 ‘서진이네’에서 나훈아의 ‘홍시’를 부르는 게 인상적이었다는 말에 “정국이가 알려준 곡이다. 나훈아 선생님을 좋아한다.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옛날 노래들에 익숙하다. 트로트를 좋아한다”며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최석준의 ‘꽃잎 사랑’을 부른 뒤에는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했다. 뷔는 “맞벌이로 나를 돌보기 힘든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밑에서 15~16년 정도 자랐다. 어렸을 때 할머니를 안고 잤다”면서 “잘 때 펜을 쥐고 잔다. 혼자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잔다. 자고 일어나면 할머니 얼굴이랑 내 얼굴에 낙서가 돼 있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할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돌아가셨을 때 공연하고 있었다. 공연하면서 울 것 같아서 힘들었다”면서 “많은 아미(팬덤) 분 속에서 내가 공연하는 게 할머니 눈에 담겼으면 좋겠고, 이만큼 컸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안 됐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내 마음 예쁜 곳에 담아두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손님이 오면 박카스를 주는데 내가 새벽에 몰래 빼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머니한테 혼났었다”면서 “할머니 묘에 갈 때 박카스를 들고 간다. 절하면서 ‘나 이제 앨범 나오는데 할머니가 들을 수 있을 만한 곳까지 이걸 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 사람 보듬는 ‘바람의 노래’… 오롯이 담아낸 공존의 공간[건축 오디세이]

    사람 보듬는 ‘바람의 노래’… 오롯이 담아낸 공존의 공간[건축 오디세이]

    “온기와 생명을 밑바탕에 두고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건축에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에게 바람은 영감의 원천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대지를 어루만지고, 사람을 보듬는 바람. 1937년 재일교포로 태어나 40여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경계에서 활동했던 그에게 바람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정신적 뿌리인 한국의 역사, 전통, 문화를 탐구하고 고미술품을 수집하며 고유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마침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던 이타미 준의 예술정신을 오롯이 담은 유동룡미술관이 제주시 한림읍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에 들어섰다.#재일교포 이타미 준, 영감 원천은 바람 현무암이 불규칙하게 깔린 암괴 지대에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이 어우러진 곶자왈의 풍광에 익숙해질 때쯤 나지막한 미술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단단해 보인다. 강한 바람과 비를 이겨 낸 제주의 전통 민가, 혹은 오름처럼. 새들이 목청껏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담을 끼고 들어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간다. 로비의 바닥과 벽은 온통 먹색이다. 미술관을 가득 채운 독특한 향기가 후각을 건드리는데 눈길은 자연스럽게 빛을 따라간다. 왼쪽에 있는 타원형의 매스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타원형을 살려 만들어진 통창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창 너머로 보이는 고요한 풍광은 무척 아름답다. 곶자왈의 자연 속에 차분하게 들어선 유동룡미술관을 설계한 이는 유이화 이타미준미술재단 대표다. 유동룡은 고국의 이화여대에 진학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아 맏딸에게 ‘이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아버지 소원대로 이화여대에서 건축을 전공했다.“재일교포로서 경계에 살았던 아버지를 닮아 어둠 속 밝음, 고독함 속의 고요함과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유 대표는 “이타미 준의 주요 주제인 ‘바람’을 의식하고, 제주의 풍토에 순응하며, 주변 곶자왈이 가진 수평적이고 고요한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한다는 것이 설계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건축이란 모름지기 지역과 역사 그리고 풍토에 뿌리를 두고, 관계에 대한 집중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타미 준은 저서 ‘손의 흔적’에서 “제주도의 지형이 타원형에 가깝다는 의식 때문인지 스케치 또한 자연스럽게 타원형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고 했었다. 그래서일까. 유 대표는 문화 용도로 묶인 제주의 도유지를 매입한 뒤 가장 먼저 대지에 타원형을 그리는 것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타원형 공간은 1층과 2층에서 모두 이 미술관의 핵심이 된다. 1층의 타원형 매스는 이타미 준의 라이브러리로 꾸미고 ‘먹의 공간’이라고 이름 지었다.“아버지가 창의력을 발휘하는 공간은 늘 먹색이었어요. 미술관의 분위기를 어떻게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고요함 속에서 창작하던 모습을 떠올리고 공간의 컬러를 먹색으로 잡았습니다.” 같은 먹색이지만 각각 다른 재료를 씀으로써 빛을 받았을 때 소재가 내는 각각의 소리, 존재감이 다른 느낌으로 드러난다. ‘먹의 공간’ 한가운데에는 이타미 준의 첫 작품인 ‘어머니의 집’(1971) 모형이 설치돼 있고 한쪽 면은 라운드 형태의 통창을 설치하고 뒤는 책장으로 꾸몄다. 유 대표는 “아버지의 저서들, 아버지에게 영향을 준 건축가에 관한 책들, 재일교포 화가로 함께 모노하 운동을 했던 곽인식과의 2인전 전시 도록 등을 고미술컬렉션과 함께 배치했다”며 “아버지가 물려준 조선 말기 책가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간에는 건축가 이타미 준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아버지 유동룡에 대한 그리움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타미 준은 본질을 중시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건축, 아날로그 건축, 온기가 살아 있는 건축을 추구했던 건축가다. 문의 손잡이, 용머리 모양의 손잡이 등 미술관을 이루는 하나하나에 그의 정신을 담으려 했다. 사진과 도면을 보고 이타미 준이 디자인했던 의자도 재현했다. 심지어 공간의 냄새와 차의 맛까지도 이타미 준의 기억을 재현해 내고자 했다. 곶자왈 자연 속 차분하게 들어서제주 상징 타원형, 미술관의 핵심이타미준미술재단 유이화 대표 작건축가 부친에 대한 오마주 가득1층 ‘먹의 공간’ 창작 분위기 살려2층 개관전 ‘바람의 건축가’ 만나3전시관 다큐·인터뷰 등 영상실티라운지선 특별 블렌딩 차 한잔 #공간의 냄새·차의 맛으로 기억 재현 유 대표는 “아버지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먹향과 함께 고서적과 오래된 그림에서 나는 냄새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면서 “‘먹의 공간’에 들어온 방문객들도 그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조향사와 함께 특별히 시그니처 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1층에는 라이브러리 외에 교육실과 티라운지 ‘바람의 노래’, 뮤지엄 스토어가 있다. 교육실에서는 아날로그를 추구했던 이타미 준의 철학을 바탕으로 손의 감각을 회복하고 자연 소재의 본질을 경험하게 하는 어린이 정규 교육 프로그램(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 프로그램 ESD 인증)이 열린다.자연광이 흐르는 매스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2층 전시관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개관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나다’가 열리고 있다. 1전시관은 아래층 먹의 공간에서 이어지는 제주의 타원형 공간으로 이타미 준이 남긴 제주의 대표작들을 전시한다. 수·풍·석 미술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등 제주의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건축을 만날 수 있다. 2전시관은 40년에 걸친 그의 건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대로 구성한 전시 공간이다. 물질과 본질 그리고 관계에 집중한 1970년대부터 인간의 온기와 야성미를 가진 건축을 추구했던 1980년대, 건축이 매개하는 관계에 집중했던 1990년대, 그리고 말년의 작품까지 대표작들을 글과 드로잉, 모형, 사진으로 구성해 보여 준다. 그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품으로 구현됐는지를 볼 수 있다. 3전시관은 다큐멘터리와 인터뷰 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영상실이다. 이타미 준이 디자인한 의자에 앉아 그의 육성과 생전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관람 동선은 로비에서 2층의 전시실을 둘러본 뒤 아래층으로 내려와 티하우스 ‘바람의 노래’에서 차를 마시고 독서를 하며 좀더 긴 시간을 차분하게 보낼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특별히 블렌딩한 ‘바람의 노래’라는 차를 맛볼 수 있는 티라운지는 진정한 힐링의 공간이다. 평소 사유의 방식으로써 차를 즐겼던 이타미 준은 귀한 손님들에게 정성스럽게 녹차와 호지차를 내어주곤 했다. 그의 삶을 닮고자 바람의 노래에서 다양한 티서비스를 제공한다. 티세리머니와 더불어 곶자왈과 제주 지형 특유의 빌레(넓고 평평한 바위)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유 대표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타미 준의 창작 공간에 초대받아 환대받는 느낌을 받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꾸몄다”고 설명했다.#“오리지널리티의 힘 회복 돕는 곳으로” 밖으로 나와 한 바퀴 둘러본다. 건물 외벽은 나무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옹이 문양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 콘크리트 자체가 가진 물성을 나무의 패턴으로 상쇄시킨다. 미술관을 둘러싼 낮은 스테인리스 담장은 자연 속에서 가장 현대적인 소재와 대비되면서도 조응한다. 정원은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럽다. 바닥은 울퉁불퉁하다. 공사하면서 나무 덤불과 흙을 조금 걷어 냈더니 빌레가 나타났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그대로 살렸다고 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를 어떻게 건축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행여 누가 될까 걱정도 됐고요. 아버지께서 살아계시면 물어 가면서 하면 되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기억의 하나하나 작은 조각이라도 끄집어내 모든 것을 재현해 내고자 했습니다.”유 대표는 “건축가 유이화가 설계는 했지만 철저하게 건축가 이타미 준을 의식하고, 이타미 준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 주기 위해 디자인한 공간”이라며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요즘 시대에 필요한 본질, 오리지널리티의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술관을 가득 채우는 먹향 속에서 눈과 귀로 전시를 즐기고 바람의 노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며 먹의 공간에서 독서와 사유를 경험한다. 이렇게 유동룡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은 ‘나’의 내면을 향하게 된다. 부드러운 바람이 노래하듯 스친다.함혜리 건축 칼럼니스트
  • “빨갱이는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 예~” 평균 85세 칠곡할매들 래퍼 됐다

    “빨갱이는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 예~” 평균 85세 칠곡할매들 래퍼 됐다

    ‘빨갱이는 눈과 코가 빨간 줄 알았지 예~ 그냥 우리와 같이 불쌍한 사람 예~’ 평균 연령 85세 ‘칠곡 할매들’이 이번엔 래퍼로 변신했다. 이들이 직접 쓴 가사에는 전쟁의 아픔부터 배우지 못한 서러움, 노년의 외로움 등이 담겼다. 31일 경북 칠곡군에 따르면 시 쓰는 할머니로 알려진 칠곡군 지천면 신4리 할머니들은 전날 마을 경로당에서 그룹 ‘수니와 칠공주’ 창단식을 열었다. 그룹 리더인 박점순(85) 할머니의 이름 마지막 글자 ‘순’을 변형한 ‘수니’와 나머지 일곱 명의 멤버를 의미한다. 최고령 정두이(92) 할머니로부터 최연소 장옥금(75) 할머니까지 8명으로 구성됐다. 할머니들은 칠곡군이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워 시를 쓰고 대통령 글꼴로 알려진 칠곡할매글꼴 제작에도 참여했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직접 썼던 일곱 편의 시를 공연을 위해 랩 가사로 바꾸고 여기에 음악을 입혔다. 6·25전쟁 당시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오해했다는 ‘딱꽁 딱꽁’, 북한군을 만난 느낌을 표현한 ‘빨갱이’ 등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노래했다. 이필선(87) 할머니는 “성주 가야산에서 북한군을 만나기 전에는 빨갱이는 온몸이 빨갛다고 생각했었다”며 “랩을 부를 때마다 그날의 아픔이 떠오른다. 랩으로 전쟁의 고통과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환장하지’, ‘황학골에 셋째 딸’, ‘학교 종이 댕댕댕’, ‘나는 지금 학생이다’ 등에서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밖에도 깻잎전을 좋아했던,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들깻잎’ 등도 선보인다. 할머니들의 랩 선생님은 안태기(왜관읍) 주무관이다. 안 주무관은 공무원이 되기 전 한때 연예인을 꿈꿨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한글 선생님인 정우정씨도 밀착 지도를 위해 랩 관련 유튜브 프로그램을 샅샅이 살펴보는 등 두 팔을 걷어붙였다. 수니와 칠공주는 초등학교와 지역 축제 공연을 목표로 맹연습을 펼칠 예정이다.
  • 베트남 사람 다 됐네…논란 후 떠난 함소원 근황

    베트남 사람 다 됐네…논란 후 떠난 함소원 근황

    방송인 함소원이 근황을 공개했다. 함소원은 28일 소셜미디어(SNS)에 “#동남아 #호치민 #베트남 #수영장 #1년살기 #행복 #재밌다 #그리움 #보고싶어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영상 하나를 올렸다. 영상에는 베트남 수영장을 방문한 함소원과 딸 혜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함소원은 현지 전통 모자를 쓴 채로 “지금 혜정이가 수영 수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남아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정취다. 시간이 잠깐 나서 인사를 드린다”며 “현재 동남아 살기 1년 중인데, 이런 느낌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남아는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고, 아파트에 수영장이 하나씩 있다”며 “지금 복장이 조금 야해서 수건으로 가리고 있다. 방송 중에 보여드리기 좀 그렇다”고 했다. 또 “이런 모습이 동남아의 매력이다. 계속 한국에 사는 것보다 이렇게 해외에 살게 되니 나름의 장점들을 하나씩 느끼고 있다. 1년 살기가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갈지 말지를 고민 중이다. 해외 이사라는 게 또 간단하지가 않다. 준비가 6개월 정리까지 1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곳 사람들은 서로 경쟁이 없고 여유롭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딸도 어느새 커서 내 말동무도 돼준다. 아이는 여기 사는 걸 좋아한다. 하고 싶은걸 다할 수 있다. 대충 산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밝혔다. 함소원은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2003년 앨범 ‘소원 넘버1(So Won No.1)’으로 가수 데뷔했다. 2017년 18세 연하의 중국인 남성 진화와 결혼했으며 이듬해 딸을 얻었다. TV조선 ‘아내의 맛’에서 결혼생활을 공개했으나, 2021년 3월 조작 논란이 불거지면서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12월 함소원은 “이삿짐 싸느라 일주일 동안 정말 바빴다”며 방송 하차 후 해외로 떠난다고 밝혔다.
  • 암으로 하늘나라 간 딸 그리며 400인분 식사 암환자에게 나누는 엄마 [여기는 베트남]

    암으로 하늘나라 간 딸 그리며 400인분 식사 암환자에게 나누는 엄마 [여기는 베트남]

    암으로 숨진 딸을 기리며 암환자들에게 밥을 지어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여성의 사연이 알려졌다.  24일 VN익스프레스는 베트남 호치민 투득시의 한 주택가 주방에서 암환자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여성 팜 응웬 린(41)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린씨는 1주일에 3번, 350~400인분의 밥을 지어 호치민 암전문 병원 환자와 가족들에게 나누어 준다. 40평방미터의 주방을 가리켜 사람들은 ‘마더 응우스 키친’라고 부른다. 린씨의 딸 ‘응우’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지난 2014년 린씨의 3개월 된 딸은 암 진단을 받았다. 유치원 교사였던 린씨는 딸의 치료를 위해 직업을 그만두고 4년 동안 딸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한 달에 2000만동(약 110만원)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사는 자원 단체에서 마련하는 무료 식사를 이용했다. 어린 딸은 늘 사탕을 모아서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암 환자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린씨는 “딸은 본인의 생이 짧다는 것을 아는 듯 늘 주변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2018년 초 딸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져 구급차에 실렸다. 구급차 안에서 딸은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엄마 품에 안겨 숨을 거뒀다. 딸의 장례식이 끝난 후 린씨는 선불로 냈던 치료비 4000만동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돌아왔다. 돈을 받아 들자, 문득 딸이 이 돈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180명의 소아암 환자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다. 린씨는 “남은 평생 암환자들을 위해 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하고, 호치민 투득시의 한 아파트 주방에서 ‘마더 응우스 키친’을 운영했다. 환자들을 위한 음식이기 때문에 신선한 식자재를 구하려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시장으로 향했다. 린씨처럼 소아암으로 아이를 잃은 동료가 그녀의 일에 동참했고, 차츰 소문이 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손길을 보탰다. 지금은 매일 5명이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린씨가 병원에서 무료 급식을 제공하던 첫날, 과거 딸이 머물던 병실에 들어가게 됐다. 순간 딸에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 못 하고 병실을 뛰쳐나왔다. 병동에는 아직도 딸의 친구들이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또 한번은 병원에서 소아암 환자의 소녀가 소고기볶음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린씨는 이튿날 아이를 위해 정성껏 요리한 소고기볶음을 들고 병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이가 방금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렇게 아이들의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힘을 냈다.  혈액암 치료 중인 6살 아들의 부친인 탄씨는 “아들 병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데, 이곳에서 무료 급식을 받아 식비를 절약할 수 있다”면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가족들이 린씨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마더 응우스 키친’은 린씨의 남편과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자금으로 운영된다. 후원금이 모이자, 린씨는 지난 7월 초 암환자를 위한 무료 게스트하우스까지 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병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암환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다. 린씨는 “하늘나라에서 딸이 내려다보면서 미소 지을 것”이라면서 웃어 보였다.
  • ‘봅슬레이’ 강한, 생모 사망 뒤늦게 알아…“25년 만에 엄마 만났다”

    ‘봅슬레이’ 강한, 생모 사망 뒤늦게 알아…“25년 만에 엄마 만났다”

    봅슬레이 선수 강한(25)이 생모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전했다. 강한은 지난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5년 만에 엄마를 만나고 왔다”고 알렸다. 강한은 “지난 6월 2일 하늘의 별이 되신 나의 엄마. 오늘에서야 소식을 듣고 급하게 만나고 왔다”면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보는 순간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죄책감으로 미안했다는 강한은 “나의 엄마이기 전에 어린 학생이었을 것이고, 온갖 욕을 들으며 나를 낳았을 것”이라면서 “소식 듣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얘기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말이 안 나오더라”고 했다. 이어 “나 포기하지 않고 낳아줘서 너무 고맙다. 엄마가 있었기에 내가 있었고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다”면서 “우리 먼 훗날 꼭 보기로 했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서 약속도 못 지킨 채 먼저 갔나.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라는 존재를 알고 ‘꼭 언젠가 자랑스러운 아들이 돼야지’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누구보다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며 “먼저 하늘의 별이 됐지만 아들이 그리움에 지쳐 힘들어하는 날에는 한 번씩 꿈속에 들러 안부라도 전해달라. 그래야 내가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강한은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라. 나는 지금처럼 열심히 살고 좋은 소식 있을 때마다 엄마 찾아가서 말해주겠다”면서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고 계시라. 하늘에서는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돼달라. 사랑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강한은 자신의 생모의 가족에게 “엄마가 저로 인해 돌아가신 게 아니다.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돌아가신 지 두 달 넘게 왜 숨겼는지. 너무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강한은 지난 2020년 방송된 채널A ‘아이콘택트’에 출연해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서 자란 보호종료아동 출신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가 어머니의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머니께 눈맞춤을 신청했다”면서 “어머니께서 저를 15세에 낳고 보육원에 맡겼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서 지내다가 3년 전 20세에 보육원을 퇴소했다”며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게 눈맞춤을 신청했다. 그러나 강한의 어머니는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직접 쓴 편지를 통해 “지금 만날 상황이 아니지만 진짜 안정이 되고 나면 어떻게든 만나러 가겠다. 못난 엄마를 용서해라. 널 잊고 싶을 때보다 보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고 전했다.
  • 가난 때문에 프랑스로 입양된 베트남 남성, 30년 만에 생모 찾아 [여기는 베트남] 

    가난 때문에 프랑스로 입양된 베트남 남성, 30년 만에 생모 찾아 [여기는 베트남] 

    태어나자 마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남성이 30년 만에 베트남에서 극적으로 생모를 찾았다. 17일 베트남 현지 언론 탄니엔에 따르면 프랑스 국적의 폴 카오(29)가 생모를 찾기 위해 호치민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기적적으로 생모를 찾았다. 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호치민으로 날아온 폴 카오는 어려서 프랑스 가정에 입양돼 자랐지만 늘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런 폴 가오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은 호치민에 거주하는 산(52)이었다. 외국에 입양된 베트남인들의 가족 찾기를 돕고 있는 산은 1년 전 폴 카오의 소식을 접하고, 여러 방면으로 폴 카오의 생모를 찾기 위해 애썼지만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산은 “그저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폴을 만났다”고 전했다. 유일한 단서는 생모가 남긴 편지 한 장이었다. 편지에는 생모의 이름과 나이(1973년생), 거주지, 폴의 출생일과 병원 이름이 남겨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남편이 집을 나가면서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키워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폴 카오와 산은 편지에 적힌 옛 주소를 찾아갔지만 이미 30년의 세월이 흐른 장소는 모든 것이 바뀐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생모의 친아빠인 탄(80)을 기억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탄은 10년 전 이곳을 떠났는데 빈칸의 부둣가 근처에서 복권을 파는 모습을 봤다고 알려줬다.곧장 부둣가로 향한 폴 카오는 수소문 끝에 극적으로 탄을 만났다. 탄은 산이 전하는 이야기와 딸이 남긴 편지를 보고 마침내 애타게 찾던 손자가 눈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일 밤 탄의 안내로 모자간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생모와 폴 카오는 수십 년간 품어왔던 그리움을 쏟아내듯 눈물을 흘리며 포옹한 뒤 산의 통역을 통해 지난 30년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모는 폴 카오가 프랑스로 입양된 소식을 접한 뒤에도 평생 아들을 그리워했다고 전했다. 이후 현재의 남편(60)과 재혼해 살면서 슬하에 자식 셋을 두었지만, 한시도 폴 카오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을 만나면 할 말이 너무 많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눈앞에 아들이 나타나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고 말했다. 생모의 현재 남편은 어린 시절 고아원에 버려져 온갖 고된 일을 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버려진 아이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는 “친자식 못지않게 폴을 사랑한다”면서 “아내는 폴을 생각하며 숱한 날을 눈물지었는데, 이제 온 가족이 재회했으니 기쁨을 감출 수 없다”고 전했다.
  • “김희선?” 이상민 과거 연인 사진 발견

    “김희선?” 이상민 과거 연인 사진 발견

    이상민의 전 연인 사진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13일 방송되는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일명 ‘정리 왕’이라 불리는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의 등장으로 새롭게 변신한 이상민의 집이 공개된다. 이날 짐 정리 중 우연히 발견한 이상민의 오래된 카메라에서 낯선 여성의 사진이 발견되며 현장이 발칵 뒤집힌다. 사진 속 여성은 누구냐고 추궁하는 김준호에게 아상민은 당황하며 “마지막 연애했던 그분”이라 고백한다. 이상민은 힘들었던 시절 돈을 빌려서까지 대게 코스를 사줬던 전 여자친구가 이제는 곁에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덧붙인다. 소문만 무성했던 ‘그분’의 실체를 확인한 준호가 “김희선 씨 닮았다”라고 말하자 스튜디오가 술렁였다는 후문이다. 이상민 또한 오랜만에 마주한 전 여자친구의 모습에 그리움에 빠져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고 한다. 방송은 이날 밤 9시5분.
  • 감성·지식 충전, 여름방학 ‘북캉스’

    감성·지식 충전, 여름방학 ‘북캉스’

    무더운 여름, 시원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것도 피서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사서들이 여름을 맞아 추천한 어린이·청소년 도서 8권을 눈여겨봐도 좋겠다.●용기를 권하는 ‘문밖에 사자가 있다’ 어린이라면 작은 것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문밖에 사자가 있다’(뜨인돌어린이)는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권하는 책이다. 노랑이는 문밖에 있는 사자가 무서워 안에 머물렀지만, 파랑이는 사자를 분석하고 탈출 방법을 고민해 문밖으로 나간다는 내용이다. 전지혜 사서는 “일러스트의 선명한 색채감이 책의 메시지를 잘 전달한다”고 소개했다.●저마다의 다름을 알려 주는 ‘생일’ ‘생일’(문학과지성사)은 여러 동물을 통해 저마다의 생각과 시각이 있음을 알려 준다. 호랑이 레아는 친구들이 생일날 자신만 바라볼 때 행복하지만, 푸들 투레는 케이크를 먹기보다 왁자지껄 춤추며 노는 게 더 좋다. 따뜻한 색감의 책장을 넘기면서 다양한 감정과 공감하며 다름을 배울 수 있을 듯하다.●아동권리 설명해 준 ‘나에겐 권리가…’ 초등 저학년생을 위해서는 ‘아동 권리’를 쉽게 설명하는 ‘나에겐 권리가 있어요’(책연어린이)를 꼽았다. 손다운 사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을 겪으며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있는데, 어른이 함께 책을 읽으며 어린이의 권리를 돌이켜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당당하게 살아갈 힘을 ‘나는 나예요’ ‘나는 나예요’(위즈덤하우스)는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어린이들을 북돋운다. 당당하게 무대에 올라선 주인공 아이는 주저하는 친구에게 손을 내민다. 히잡을 쓴 아이, 요란한 요정 옷을 입은 아이, 휠체어를 탄 아이, 네 발로 뛰는 개와 두 날개로 나는 새까지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품어 주고 응원한다.●어린이의 힘을 느끼는 ‘리보와 앤’ 초등 고학년 추천 도서 ‘리보와 앤’(문학동네)은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서관에 영문도 모르고 남겨진 두 로봇의 이야기다. 안내 로봇 리보와 이야기 로봇 앤 그리고 이들을 걱정하는 한 소년의 우정과 그리움을 담았다. 변유미 사서는 “코로나19로 학교에도 갈 수 없었던 시기를 나름의 생명력으로 지나온 어린이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생물의 생존 전략 ‘우리가 몰랐던 …’ 우종헌 사서는 생물에 관심이 많은 초등생을 위해 ‘우리가 몰랐던 생물들의 마지막 이야기’(영진닷컴)를 추천했다. 생물들의 신기하고 흥미로우면서도 처절한 생존 전략을 알려 주는 자연과학 도서다. ‘생물은 왜 죽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생물의 마지막과 죽음 이후에 대한 궁금증과 답을 담았다.●청소년 심리처방전 ‘들숨에×긍정…’ ‘들숨에×긍정 날숨에×용기’(자음과모음)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난치병을 앓는 환자로서 자신이 겪은 경험담과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심리 처방전이기도 하다.●본모습 찾아가는 ‘하면 좀 어떤 사이’ 짐작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마음을 5편의 단편소설로 풀이하는 ‘하면 좀 어떤 사이’(낮은산)는 타인의 시선과 관계를 이야기한다. 자신과는 성격이 다른 할머니의 연애사에 당황스러운 아이, 질투라는 낯선 감정에 불편함을 느끼는 아이, 선생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학교에 가기 싫어진 아이 등의 모습을 담았다. 한원민 사서는 “당당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 그리움이 그린 풍경들, 안부를 묻다…4인 4색 ‘기억의 시선’

    그리움이 그린 풍경들, 안부를 묻다…4인 4색 ‘기억의 시선’

    초록이 정겨운 시골 길을 완행버스가 달려간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버스는 산마루의 좁디 좁는 길, 손수레나 경운기가 지나다니는 농로 등 다닐 수 없는 길 위에 있다. 정거장이 아니어도 사람이 보이면 멈춰서는 버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정겹게 웅성이는 버스. 느릿한 속도만큼 차창 풍경을 누리기 좋은 완행버스는 어린 시절 시골집을 그리워하며 달려가는 ‘나’ 자신이다. 고재군 작가가 ‘그리운 날에’ 연작들에서 완행버스를 거듭 불러낸 이유다. 작가는 “수십년이 더 지난 옛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가는 그리움의 간절함 때문일 것”이라며 “언젠가부터 내 그림은 그리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문득 떠올리면 그리움이 되고 정겨움이 되는 순간들을 응결한 전시가 20일까지 경기 분당 아트gg갤러리에서 열린다. 고재군, 심봉민, 류주현, 이동훈 등 4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색으로 소환한 기억을 화폭에 펼쳐낸 ‘기억의 시선’이다.심봉민 작가는 ‘기억의 정원’ 속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소품들과 공간들을 캔버스에 되살린다. 서정적인 풍광과 색채로 구현된 친구들과 놀던 옛 아파트, 비행기, 종이컵, 바람개비, 녹지 않은 눈덩이들이 보는 이들에게도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류주현 작가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조감’의 시선으로 동이 틀 때의 도시 풍경을 다양한 형태의 조각처럼 재구성한다. 작가는 “태양의 따뜻한 온기가 머무는 시각을 알리는 매체로서 내가 매료된 시야의 범위를 풀어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이동훈 작가는 걱정 없이 행복한 동물 캐릭터들을 통해 스트레스, 걱정으로 가득 찬 현대인들에게 긍정적 삶의 태도, 순수한 동심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 [정은귀의 詩와 視線] 나팔꽃과 아버지/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정은귀의 詩와 視線] 나팔꽃과 아버지/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 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정호승 ‘나팔꽃’ 여름은 꽃의 계절이다. 무궁화가 이렇게 예쁜 꽃인지 올여름 처음 알았다. 흰 꽃, 분홍 꽃만 있는 게 아니라 자주, 빨강, 색깔도 다양하다. 무궁무진 피어난다고 무궁화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 한 송이마다 벌이 한 마리씩 들어가 있다. 꿀벌이 귀한 시절이 되고 보니 열렬한 꿀벌을 품은 무궁화가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나팔꽃은 여름 아침에 만나는 꽃이다. 마을버스 종점 근처 풀숲에서 철조망 밖으로 피어나는 보라색 나팔꽃을 만난다. 완강한 철조망을 사뿐히 통과한 나팔꽃은 연약하면서도 강인하다. 사진을 찍으려고 경사진 길에서 애를 쓰는 내게 곁을 지나던 분이 “꽃이 참 예쁘지요?” 하신다. “네 참 예쁘네요” 하니 “언니도 꽃만큼 예뻐” 하신다.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보니 연세가 한참 많은 분이 아침 선물을 툭 던져 주며 씩씩하게 지나신다. 우리는 눈으로 서로 웃음을 바꾸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 ‘나팔꽃’은 슬프고도 기쁜 시다. 시 속의 아버지는 한쪽 시력을 잃으셨다. 그래서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단다. 난처하고 답답하다. 짧은 4행 다음 3행은 아버지가 나팔꽃이 된다. 아침마다 창가에 피어나는 나팔꽃 아버지. 시는 생략과 축약, 침묵의 미학이 도드라지는 언어 예술이다. 생략된 부분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메꿀 수 있다. 그게 시를 읽는 재미다. 앞의 4행과 뒤의 3행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다고 상상해 본다. ‘드셨다’와 ‘웃으시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차가 있다. 나팔꽃 씨를 환약으로 엉뚱하게 착각하시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제 시인은 나팔꽃을 통해 그리운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가 눈앞에 살아 계시면 나팔꽃을 아버지로 보기란 쉽지 않다. 돌아가신 다음의 부재가, 그리움이 이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아버지는 이제 매일 꽃으로 피어나 아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신다. 시인은 언젠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나팔꽃 씨를 환약으로 잘못 알고 드시려는 걸 보고 시상을 떠올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는 한 아버지를 모든 아버지로 바꾼다. 시가 주는 공감의 힘이다. 저마다 다른 기억 속에 있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나팔꽃’에 겹쳐 보인다. 먼 남도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도 한쪽 시력을 잃으셨다. 황반변성이란 병을 너무 늦게야 알았다. 그런 눈으로 아버지는 산책 중에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내 주신다. 해가 뜨는 바다, 해가 지는 바다를, 바닷가 모래사장 위를 걷는 갈매기를, 백사장에 앉아 쉬는 엄마를 아버지는 절묘하게 포착하신다. 한쪽 눈을 잃으셨지만 다른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시는 아버지. 육체에 어쩔 수 없이 드리우는 어둠 너머의 시선이다. 나팔꽃과 아버지, 아버지의 바다를 생각하며 오늘 아침, 나도 새 일렁임으로 시작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