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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악의 코로나 ‘크라켄’ 오나…WHO, 오미크론 하위 XBB.1.5에 “가장 전염성 높다”

    최악의 코로나 ‘크라켄’ 오나…WHO, 오미크론 하위 XBB.1.5에 “가장 전염성 높다”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등 29개국에서 검출된 오미크론 하위변이인 XBB.1.5에 대해 전문가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는 4일(현지시간)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전염성이 높은 하위변이”라고 밝혔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WHO의 코로나19 기술 책임자인 마리아 반 케르코브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다만 그는 “다른 유형의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고 밝히면서도 “우리가 현재 확산 중인 하위변이를 추적할 수 있도록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감시를 계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부분 국가가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공존)로 전환하면서 검진과 추적을 소홀히하고 있다는 점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미국선 대규모 유행 관측도미국에선 XBB.1.5가 새로운 대규모 유행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30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신 변이 비중을 발표했는데 애초 4%에 불과했던 XBB.1.5 비중은 12월 한달만에 41%가 됐다. 특히 북동부에선 신규 확진의 75%를 차지했다. 최근 4주간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두배로 늘어나는 무서운 속도를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속도로 증가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유행이 어느 정도로 클지, 중환자들을 얼마나 발생시킬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XBB.1.5는 지난해 10월 뉴욕과 코네티컷에서 처음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 변이가 그간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유행을 주도했던 오미크론 우세종인 BA.5의 먼 친척이며 이와 비슷한 전파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시애틀에 있는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의 트레버 베드퍼드 교수는 이 변이의 감염재생산지수가 1.6으로 앞선 변이보다 40%나 더 높다면서 “앞으로 몇 주 안에 유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가검사하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지 않기에 이 증가세는 공식 확진자 수로 반영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앤드루 페코스 박사는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최악의 변종은 XBB.1.5”라면서 “최근 미국 10개 주 가운데 유독 코로나19 감염자 증가세가 뚜렷한 지역 7개 주에서 이 변이 바이러스가 주요하게 발견됐다. 지난 2주 사이 감염자 중 44.1%가 이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XBB.1.5는 지난해 4월 미국에서 크지 않은 유행을 유발했던 스텔스 오미크론(BA.2)의 하위변이 2가지가 일부 유전자 코드를 교환하면서 탄생한 재조합 변이다. 상위변이인 BA.2와 XBB와 비교해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돌기) 단백질에 14가지의 새로운 변이를 갖고 있어 면역 회피력이 더 높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XBB는 지난가을 싱가포르에서 많은 감염자를 발생시켰지만 미국에서 힘을 얻지 못했다. 영미권에선 이미 ‘크라켄’으로 불러XBB.1.5는 이미 영어권에서 ‘크라켄’이란 별명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크라켄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문어의 모습을 한 괴수다. 캐나다의 생물학자인 T. 라이언 그레고리 궬프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28일 트위터을 통해 “기록적인 감염 증가와 면역 회피력, ACE2와의 더 강한 결합”을 이유로 이 같은 별명을 붙였다. XBB.1.5는 486번 부위에 돌연변이가 있어 바이러스가 우리 세포로 들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수용체인 ACE2에 더 단단히 결합할 수 있다.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의 컴퓨터 바이러스학자 제시 블룸은 “이 돌연변이는 분명히 XBB.1.5가 더 잘 퍼지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XBB.1.5 감염이 반드시 중증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네소타대 감염병 연구·정책센터 마이클 오스터홈 소장은 최신 부스터샷은 XBB.1.5에도 어느 정도 보호효과가 있다며 “최근 데이터는 2가 백신 등이 감염을 막지는 못해도 중증·사망 예방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그 분’ 오신 쿠드롱, 역대급 에버리지 6.429로 카시도코스타스 잡고 4강

    ‘그 분’ 오신 쿠드롱, 역대급 에버리지 6.429로 카시도코스타스 잡고 4강

    ‘3쿠션 황제’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이 프로당구(PBA) 투어 역대 최고 에버리지를 갈아치우며 ‘라이벌’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를 돌려세우고 통산 13번째 4강을 밟았다. 8강전에 걸린 시간은 불과 40분이었다. 쿠드롱은 4일 경기 고양 소노캄고양 호텔에서 열린 PBA 투어 NH농협카드 챔피언십 8강전에서 카시도코스타스를 3-0(15-4 15-3 15-6)으로 일축했다. 이번 대회 비교적 쉬운 대진을 받아들어 128강 1회전부터 직전 16강전까지 4경기 동안 단 두 세트만 허용하고 8강에 오른 쿠드롱은 컴퓨터샷을 자랑하는 ‘왼손 천재’ 카시도코스타스마저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영봉승’을 거두고 정규리그 6번째 정상길을 재촉했다.올 시즌 처음으로 아직 우승을 신고하지 못한 데다 최근에는 경기력 약화를 우려할 만큼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터라 이날 승리의 기쁨은 두 배가 됐다. 쿠드롱은 올 시즌 5개의 투어 대회를 치르면서 4강과 128강을 오락가락하며‘롤러코스터’같은 들쭉날쭉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시즌 개막전 4강으로 출발은 좋았지만 곧바로 2차대회(하나카드 챔피언십)에서 64강에 그쳤고, 이후 두 차례 더 4강에 진입했지만 지난달 강원 정선에서 열린 5차대회(하이원 챔피언십)에서는 ‘무명’의 김욱에게 승부치기 끝에 져 128강 탈락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쿠드롱은 말이 필요없는 황제의 모습, 그대로였다. 1세트 6-4로 앞선 2이닝째 9점을 쓸어담아 기선을 제압한 쿠드롱은 두 번째 세트에서도 1-3으로 처지던 2이닝째 무려 14점을 한꺼번에 몰아치며 카시도코스타스의 넋을 뺐다. 걸린 시간은 단 11분이었다.1~2세트 기록한 에버리지는 나란히 7.500을 찍었다. 3세트 6점을 따라붙어 카시도코스타스에 5-6으로 리드를 빼앗긴 쿠드롱은 그러나 세 번째 이닝에서 또 1개의 뱅크샷을 곁들이며 10득점하는 괴력을 발휘해  40분 만에 가볍게 승수를 챙겼다. 쿠드롱은 새 기록도 쏟아냈다. 지난 시즌 같은 대회 결승에서 다비드 사파타를 상대하면서 기록한 자신의 최고 에버리지이자 PBA 투어 세트제 최고 에버리지인 3.550을 갈아치우고 6.429를 새로 썼다.한 차례 퍼펙트큐(연속 15점)을 기록을 보유한 쿠드롱은 2세트에서 ‘하이런’ 14점까지 곁들였고, 뱅크샷은 10개를 솎아내 22%의 성공률을 자랑했다. 5득점 이상의 장타율은 무려 57.1%로 무시무시했다. 결승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 집계된 이번 대회 평균 장타율은 6.7%에 불과했다.
  • 24년 수녀로 살았는데…신부님에 첫 눈에 반해 결혼

    24년 수녀로 살았는데…신부님에 첫 눈에 반해 결혼

    수녀와 신부가 첫 눈에 반해 결혼한 사연이 알려졌다. 두 사람은 수녀원을 나왔지만 여전히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BBC는 3일(현지시간) 메리 엘리자베스 수녀와 프리아 로버트 수도사 부부의 이야기를 전했다. 두 사람은 2015년 엘리자베스 수녀가 소속돼 있는 카르멜회 수녀원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원장 수녀가 음식 대접을 하라며 수녀원 응접실로 로버트 수사를 데려오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수녀원에서 처음 만나 실수로 옷깃을 스쳤는 데 강력한 불꽃을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엘리자베스 수녀는 “은둔자처럼 살았고, 처음 봤을 때 베일을 써 머리 색깔도, 이름도 몰랐는데 끌렸다는 것이 충격이었다”라고 설명했다.엘리자베스 수녀는 19세에 카르멜회에 입회했다. 24년 차 수녀였던 그는 처음으로 강력한 끌림을 느꼈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로버트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수사는 일주일 후 편지를 보내 “사랑에 빠진 것 같다”며 “나와 결혼하기 위해 수녀원을 나올 수 있냐”고 물었다. 엘리자베스 수녀는 용기를 내 “로버트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고 원장 수녀에게 고백했고,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로버트 수사는 이에 다시 한번 수녀원 근처 술집에서 만날 것을 요청했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했다. 그렇게 결혼해 7년이 지난 오늘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두 사람은 “수도원 생활을 포기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교회는 목회자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폴란드 태생의 로버트는 현재 노스 요크셔의 영국 교회 교구장이며 메리 엘리자베스는 병원 목사로 일하고 있다. 영국교회는 목회자의 결혼을 허용한다. 두 사람은 “우리의 결혼생활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함께 한다”라며 서로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면 수녀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 요즘 이런 ‘매치업’은 없었다, 쿠드롱-카시도코스타스 4강 길목 대충돌

    요즘 이런 ‘매치업’은 없었다, 쿠드롱-카시도코스타스 4강 길목 대충돌

    프로당구(PBA) ‘최강’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과 ‘왼손 천재’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가 준결승 길목에서 충돌한다. 1년 10개월 만의 투어 통산 4번째 대결이다.3일 경기 고양 소노캄고양 호텔에서 열린 PBA 투어 NH농협카드 챔피언십 16강전에서 쿠드롱과 카시도코스타스는 각각 이상용과 김태관을 꺾고 나란히 8강에 진출했다. 대진에 따라 둘은 4일 열리는 8강에 맞붙는다. 쿠드롱은 이상용을 상대로 진땀승을 거뒀다. 첫 세트를 9이닝 만에 8-15로 내줘 불안하게 출발했다. 2세트마저 12-13 끌려갔지만 9이닝째 3득점으로 15-13으로 경기를 뒤집어 가까스로 균형을 맞췄다. 쿠드롱은 이후 3세트에서도 8이닝 공방전 끝에 15-13으로, 4세트 역시 이상용의 맹추격을 뿌리치고 9이닝 만에 15-11로 따내 쉽지 않은 승리를 신고했다. 카시도코스타스는 ‘김행직의 동생’ 김태관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뒀다. 첫 세트 하이런 8점을 앞세워 6이닝 만에 15-2로 낙승을 거둔 카시도코스타스는 두 번재 세트에서 8이닝 만에 15-10으로 달아났고 여세를 몰아 3세트 2이닝째 무려 하이런 13점을 쓸어담아 경기를 마무리했다.이로써 나란히 16강을 통과한 두 선수는 대진표에 따라 8강에서 만나게 됐다. 투어 통산 네 번째 맞대결이다. 상대 전적에서는 필리포스가 2승1패로 앞선다. 가장 최근 맞대결은 지난 2021년 2월 열린 2020~21시즌 5차 투어 대회(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 준결승이었다. 당시 카시도코스타스는 쿠드롱을 꺾고 결승에 올라 통산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나머지 두 차례 대결은 투어 원년인 2019~20시즌 2차투어(신한금융투자 챔피언십) 16강전과 2020~211시즌 2차투어(TS샴푸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성사됐는데, 1승씩을 나눠가졌다. 689일 만에 성사된 둘의 네 번째 맞대결은 4일 저녁 7시부터 펼쳐진다.
  • 호날두, 뉴캐슬 통해 UCL 재입성한다?

    호날두, 뉴캐슬 통해 UCL 재입성한다?

    유럽 빅리그를 떠나 사우디아라비아 알나스르 유니폼을 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포르투갈)가 유럽 챔피언스리그(UCL)에 복귀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관측이 제기됐다.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3일(한국 시간) 호날두와 알나스르가 맺은 계약 내용 가운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UCL 진출 티켓을 따낼 경우 임대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뉴캐슬은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이 2021년 10월 인수한 구단이다. PIF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주도한 국부 펀드이고, 알나스르는 사우디 왕자들이 자주 회장을 맡는 등 왕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PIF와 알나스르 수뇌부가 공동체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호날두가 알나스르에서 뉴캐슬로 임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황의조의 경우, 잉글랜드 노팅엄 포리스트로 이적했다가 구단주가 같은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임대되기도 했다. 지난 시즌 11위에 그쳤던 뉴캐슬은 이번 시즌 9승7무1패(승점 34점)로 3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분위기를 계속 이어간다면 리그 4위까지 주어지는 UCL 티켓 확보가 가능하다. 마르카는 “해당 조항은 호날두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회인 UCL에서 다시 뛸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호날두는 UCL에서의 기록을 지키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호날두는 지금까지 UCL에서 140골을 넣은 역대 최다 득점자다. 라이벌 리오넬 메시는 129골로 호날두를 쫓고 있다. 이날 호날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입성했다. 앞서 호날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비행기 좌석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곧 만나자”는 짧은 인사말을 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2025년 여름까지 알나스르와 계약한 호날두는 대규모 개인 지원팀과 사설 경호업체도 동행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호날두는 리야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 꽃다발을 받았다. 알나스르 구단은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호날두의 입성을 알렸다. 리야드 시내 대형 전광판엔 호날두를 환영하는 메시지가 뜨기도 했다.알나스르 구단은 4일 오전 1시 리야드의 므르술 파크 스타디움에서 호날두의 입단식을 연다고 밝혔다. 2022~23시즌 사우디 프로리그에서 선두를 달리는 알나스르는 6일 알타이와 홈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르면 이 경기가 호날두의 데뷔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알나스르 구단은 “유럽을 정복한 호날두가 아시아 정복이라는 새로운 미션 수행에 나섰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믿음 안에 굳건히…” 수도원에 잠든 베네딕토 16세[포착]

    “믿음 안에 굳건히…” 수도원에 잠든 베네딕토 16세[포착]

    2022년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 였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 사진을 그의 선종 하루 뒤인 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시신은 그가 2013년 교황직에서 사임한 이후 여생을 보낸 바티칸시국의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 수도원에 안치돼 있다. 교황청 공보실이 공개한 사진은 베네딕토 16세가 머리에 모관을 쓰고 전통적인 교황 제의를 입고 관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담았다. 포개진 손에는 묵주가 들렸고, 시신 뒤편에는 십자가와 촛불,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돼 있다. 다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상징인 팔리움을 착용하지 않았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기 위해 두르는 복장이다. 은퇴한 대주교는 팔리움을 입지 않는다. 베네딕토 16세도 2013년 교황직에서 자진 사임했기에 팔리움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쇠약을 이유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이었다.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에서 물러난 후 ‘명예 교황’ 호칭을 받아 교황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쓰고 교황의 전통적인 흰색 수단을 계속 착용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은 오는 2일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돼 이후 사흘간 일반에 공개된다. 장례 미사는 5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명동성당 역시 베네딕토 16세를 기리는 분향소를 마련했고, 주한교황대사관도 2일 공식 분향소를 설치한다. 염수정 추기경과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오는 5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사랑하는 명예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첫 미사에서 전날 선종한 전임자의 천국행을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례한 신년 미사 강론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기도로 시작했다. 교황은 성모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우리의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하느님에게 가는 길에 동행해달라”고 간청했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을 굽어보는 사도궁 집무실 창을 열고 집례한 삼종기도에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묵념을 올렸다. 교황은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과 교회의 충실한 종(베네딕토 16세)을 선물해준 하느님에게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감사하자”고 말했다.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결정에 대해 “용감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수 세기 만에 처음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가톨릭 신자에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유언에서 장례 절차나 시신이 안치될 장소에 대해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의 재산과 소지품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영적 유언은 베네딕토 16세가 즉위 후 1년 뒤인 2006년 8월 29일 독일어로 작성한 것으로, 2페이지 분량이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먼저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79세 때 작성한 이 유언에서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되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고 적었다. 그는 “먼저, 내게 생명을 주시고 혼란의 여러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드린다”며 “하느님은 내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마다 항상 나를 일으켜주고 얼굴을 들어 다시 비춰주신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돌아보면 어둡고 지치는 이 길이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보고 이해한다”고 덧붙였다.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는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해 복구 불능의 타격을 입은 독일에서 성장했다. 그가 겨우 7살일 때 독일 나치 정권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 베네딕토 16세는 부모님을 향해서는 “어려운 시기에 내게 생명을 주셨고,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사랑으로 멋진 집을 준비해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곁에 있던 많은 친구와 선생님,제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또한 자신이 태어난 고국 독일, 제2의 고향이 된 이탈리아와 로마에도 감사한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신자들을 향해서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며 “자신을 혼란 빠뜨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그분의 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영생의 거처로 받아주실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 소설, 시간을 저버리지 않는 -정지돈, 박솔뫼, 윤해서의 작품에 나타나는 시간관을 중심으로-/이근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평론]

    0. ‘그림자 개’와 소설 ‘그림자 개’가 있다. 이 개는 “시간과 마음의 연결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나타나 산책을 가자고 요구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시간과의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림자 개’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일종의 경고 신호인 셈인데,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단지 희한하고 우스운 하나의 에피소드로 여겨 버린다. 따라서 그 경고 신호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림자 개’의 특성을 파악해 두어야 하는데….(박솔뫼,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문학과사회’ 2021년 가을호, 88쪽) 대뜸 이렇게 시작하는 박솔뫼의 소설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는 첫 페이지부터 독자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래, ‘그림자 개’라는 것이 있다고 하자. 언뜻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튼 이것은 허구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시간과 마음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거지? 그 연결이 약해지는 것이 왜 위험한 거지? 어쩌면 이와 같은 질문은 근대 이후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잊힌, 혹은 불필요한 질문이 돼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똑똑한 그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 질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고. 어떤 성과나 효용이 발생하느냐고. 그런 것이 산출되지 않고 어떤 답도 도출해 낼 수 없다면 애초에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그러니 그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라고. 시간이니, 마음이니, 관계니, 믿음이니,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한 시간 더 일하거나 한 시간 더 잠을 자 두라고. 그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더이상 자신들이 지나온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근대인은 ‘시간과 인간의 관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호한 것 대신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이성과 과학’을 손에 쥐고 더 나은 내일,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이는 파멸의 길이기도 해서,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이뤄 낸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도리어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과 야만의 시대를 불러오게 된다. 그럼에도 반성 없는 근대의 열차가 질주의 고삐를 멈추지 않던 20세기 초,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발터 베냐민은 근대의 ‘진보적 시간관’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베냐민에 따르면 근대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삼분법적 시간관으로 작동되는 것으로, 최종 목적지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폐기시킨다. 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폭력으로 스러지고 잊힌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때 과거는 단순한 사실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 의한 ‘기억의 형식’이 되며, 이는 과거가 현재의 기억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때 “균질하고 공허”하게 흘러가기만 하는 연속적·진보적 시간의 흐름을 폭파한 후 그 ‘정지의 상태’에서 스쳐 가는 찰나의 기억을 붙잡는 일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지금 “현재와 더불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정지의 변증법’은 근대의 진보적 시간관이 토대를 두고 있는 계속해서 앞으로만 발전해 가는 변증법이 아니라 오히려 일단 멈춰야만 한다는 것, 그 정지의 순간에만 가능한 무엇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기존의 지배적인 시간의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이상 발터 베냐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최성만 옮김, 길, 2008, 331~345쪽 참조)해 새로운 서사를 (재)구성해 내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자연의 시간은 서사적 방식으로 진술되는 한에서 인간의 시간이 되며, 이야기는 “시간 경험의 특징”을 그리는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 폴 리쾨르의 말(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1’, 김한식·이경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9, 25쪽)은 베냐민의 역사철학적 사고와 근대 이후 서사의 주요 장르가 된 소설을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소설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찰나라도 멈춰 세운 후 그 정지의 시간 속에서 잊힌 한 존재를 기억의 그물로 건져 낼 수만 있다면 이는 인간 삶의 새로운 서사-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인간이 시간과 맺는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그림자 개’와 닮아 보인다. 앞서 미처 살펴보지 못한 ‘그림자 개’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하나. 그림자 개는 그림자로 된 개다. 둘. 그림자 개는 산책을 한다. 셋. 그림자 개는 짖는다.”(‘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88~89쪽) 하나. 소설은 허구로 쓰인 글이다. 둘. 소설은 시간과 마음의 연결을 돕기 위해 이리저리 떠돈다. 셋. 소설은 짖는다. 이 ‘짖음’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알리는 다급한 신호라면 우리는 소설을 그저 상상력으로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로,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진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가벼이 여기고 지나쳐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다루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로서의 시간을 어떻게 구축하며 살아갈 것인지 묻고 따져 보는 실천이 된다. 여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형상화하는 세 편의 ‘그림자 개’가 있다. 이 글은 그들과 함께 산책을 나서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될 것이다. 1. 소진됨으로써 발생하는 이미지 - 정지돈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문학과지성사, 2020.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1927년 하와이,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인 ‘현앨리스’의 아들로 태어난 ‘정웰링턴’은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자신의 신념인 공산주의가 실현된 나라를 보기 위해 1948년 체코로 떠난다. 허나 공산주의 사회의 실상은 그가 그토록 꿈꿨던 이상과 달랐고, 정작 그 사회에서 그는 자신이 “열외자”(54쪽)라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그는 체코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비밀경찰에 협조하지만 공산주의자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정신적 고향으로 여겨 온 북한에서는 현앨리스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이 숙청당한다. 그는 미국과 체코, 북한 그 어느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다. 1963년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는 그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정웰링턴은 꿈을 꿨고 꿈을 기억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고 두 세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 꿈속에서 정웰링턴은 두 번째 삶을 살았다. 또는 세 번째, 네 번째. 인간은 매일 꿈을 꾸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정웰링턴은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다시 잠들지 못했다.(7쪽) 인간은 매일 잠을 자고 꿈을 꾸지만 대부분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허나 이날 그는 자신의 꿈을 기억해 낸다. 이후 다시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준 “오래된 기억”으로서의 꿈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으나 떠올린 순간 “인생 전체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꿈을.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그는 무엇을 망각해 왔던 것일까? 근대는 위기의 시대라 할 수 있다. (…) 위기는 사실상 ‘위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고대 그리스에서 위기는 선택을 의미했다. 옳음과 그름, 구원 또는 심판, 삶 혹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상황, 찬성이냐 반대냐를 요구하는 시대. 그게 바로 ‘위기’라네. (…) 재밌는 건 그럼에도 최근 지나온 10년을 프랑스혁명 이후 유일하게 위기가 없었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네.(97쪽) 근대 이후 빠르게 변모해 가는 세계에서 위기는 ‘일상적’인 것이 된다. 그럼에도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대립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던 지난 10년은 오히려 위기가 없었던 시대였다고 ‘이지’는 말한다. 정웰링턴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죽음의 위기를 수시로 겪어 온 자신과 가족, 동지들의 삶이 위기가 아니었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깨닫는다. 그들은 죽을 상황에 처하거나 심지어 죽었다고 하더라도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애초에 무언가를 택한다는 선택권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들은 선택을 내릴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사람들, 처음부터 “예외적인 존재”(100쪽)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을 이렇게 배제한 것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두 체제 모두가 그렇게 했다는 것, 즉 두 체제 모두가 ‘근대의 쌍생아’로서 그들을 사회에 포섭하는 동시에 배제시켜 온 공모자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공산주의는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다. 자본주의는 반대다. 자본주의는 상이한 욕망과 능력을 먹이로 성장하고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나누고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변했고 그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 정웰링턴은 생각했고 책에 불을 붙였다. 바삭하게 굳은 ‘레탕모데른’은 잘 타올랐다.(8~9쪽) 1963년의 잠에서 깨어난 뒤 그가 깨달은 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실상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 둘 다 최종 목적지를 ‘발전된 미래’에 두고 ‘진보적 시간관’이라는 동일한 연료로 달리는 기차였다는 뼈아픈 진실이었다. 이제 겉무늬만 다를 뿐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근대의 두 기관차 모두에 “비상 브레이크”(“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56쪽))를 걸기 위해 그는 이들이 공유한 시간관 자체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가 ‘레탕모데른’(les temps modernes), 즉 ‘근대의 시간’이라는 잡지를 불태우는 것은 마땅한 수순으로 보인다. 1848년 7월 혁명 발발 당시 파리 곳곳의 여러 사람들이 “시계탑의 시계”를 향해 동시에 총을 쐈던 것처럼(위의 책, 346쪽) 근대 이후 ‘혁명’은 기존 시간관과의 투쟁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거대한 근대의 시간에 맞서 “지연된 순간들”을 좋아하고 “목적지가 없”는 이동과 “결과가 없는”(102쪽) 실험을 추구하는 정웰링턴은 무력하게만 보인다. 차차 그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채 혼자가 돼 간다. 그에게 남은 대화 상대는 과거뿐인 듯하다. 윌리(정웰링턴의 애칭-필자)는 과거가 떠올랐다. 꿈을 기억한 이후 처음 체코에 온 시절이 반복해서 재생됐다. 시간은 기억 속에서 거리를 상실했고 종이를 반으로 접어 펜으로 구멍을 뚫은 것처럼 의식의 지평 위에 14년 전과 14년 후가 겹쳐졌다.(29쪽) 과거를 떠올리는 그에게 처음 체코에 도착했던 14년 전과 14년 후인 지금 현재는 “겹쳐”진다. 시간의 흐름을 건너뛰어 먼 과거의 특정 시기와 현재가 연결된다. 과거의 어떤 선택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다. 체코 비밀경찰의 협조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면?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북한으로 갔다면? 아니, 애초에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꿈을 기억한 1963년의 그날 그가 꿈속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삶을 살았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어떤 꿈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삶이 가능했더라도 그것들이 모두 ‘진보의 꿈’으로 귀결될 뿐이었다면. 공간적으로도(“체코와 북한 모두에 거절당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135쪽)), 시간적으로도(“정웰링턴의 문제는 자신이 어느 시간대에 존재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16쪽))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하나의 장르를 발명해 낸다. “침묵”(16쪽)이 바로 그것. 이는 소설 속의 그가 행하는 유일한 ‘선택’으로, 그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허먼 멜빌, ‘허먼 멜빌’, 김훈 옮김, 현대문학, 2015, 22쪽)라며 ‘하지 않음’을 택하는 허먼 멜빌의 바틀비와 극 중간중간 긴 침묵에 골몰하는 사뮈엘 베케트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들뢰즈는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에 대한 글에서 “피로한 인간은 단지 실현을 소진했을 뿐이다. 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라고 둘을 구분한다. 그러니까 ‘피로한 인간’은 오늘의 할 일을 마친 후 집에 돌아가며 피곤해하지만, 밤새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 다시 일을 하며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소진된 인간’에게는 이 내일의 실현 가능성이 더이상 없다. 그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를 남김없이 불태워 버렸기에 오늘이든 내일이든 먼 훗날이든 더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이정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23~24쪽 참조)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체코로, 끊임없이 어떤 가능성을 따라 살아온 정웰링턴에게 이제 남은 것은 ‘소진된 가능성’뿐이다. 가능성을 탕진해 온 삶. 그의 “시계는 정지”(96쪽)한다. 윌리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세계와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을 것이고 사람들이 이를 자살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어에 불과하고 나의 선택은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숫자, 개념 따위로 수렴되지 않는 것이다.(132쪽) 삶이 정지하는 죽음의 순간 정웰링턴은 가능성 자체의 소진이 무엇인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외치는 진보의 폭력성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자살이라 부를 것임을 알지만, 그것은 “단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한 후 맞는 마지막 순간의 정지 속에서 그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는 중이다. 바로 “더이상 가능한 것은 없다”는 이미지.(위의 책, 44~45쪽 참조) ‘진보적 시간’이 주장하는 모든 허황된 것들을 끝장낸 후에야 비로소 발생할 이미지. “죽음과 혼돈의 순간”이 “생성과 창조의 순간”과 동시에 존재하는 “카오스모스의 시간”(위의 책, 119쪽), 그것은 결코 “언어와 숫자, 개념 따위로 수렴되지 않”을 것이다. 2.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산책 -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 문학동네, 2021.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1982년 3월 18일, 부산 중구 대청동 부산 미국문화원에 방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일으킨 것은 당시 고신대 학생이었던 문부식, 김은숙 등으로, 그들은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자행된 군부의 학살을 비판하고, 또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미국은 즉각 이 땅에서 물러갈 것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21년 박솔뫼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미래 산책 연습’을 발표한다. 그런데 작가는 같은 소재로 ‘매일 산책 연습’이라는 단편소설을 이미 쓴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작가는 한 번 다뤘던 소재를 왜 다시 써야만 했을까. 두 소설에서 소설을 쓰는 ‘나’의 서사는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은 장편인 ‘미래 산책 연습’에는 ‘나’ 외에 ‘수미’의 서사가 추가된다는 점이다. 이때 두 서사가 지닌 시간축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즉, ①‘나’의 서사가 현재의 시점에서 80년대 과거를 돌아보는 회상의 형식이라면, ②수미의 서사는 80년대 과거로부터 현재로 다가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①‘나’는 부산의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최명환’과 친해지면서 그녀가 과거에 김은숙을 알았으며, 방화 사건 당일 우연히 김은숙을 목격했음을 듣게 된다. ②광주에 사는 학생인 수미는 감옥에서 출소한 친척 언니인 ‘조윤미’를 맞이하게 되는데, 서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건 조윤미가 부산 미국문화원에 불을 지른 인물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①과 ②의 서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이 장편소설에서 ①의 김은숙과 ②의 조윤미는 서서히 겹쳐지게 된다. 단편에서는 이름으로만 회상됐던 김은숙이 장편에서는 1980년대 당시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 조윤미로서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총 12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소설의 전체 구조도 주목을 요한다. 서사의 흐름을 따르자면 이 소설의 1장은 소설의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인 12장은 어른이 된 수미가 아픈 윤미 언니를 배웅하며 끝나는데, 이를 이어받기라도 하듯 1장에서의 수미가 좀 전까지 같이 있었던 아픈 윤미 언니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2장 다음에 1장이 오는 것이 인과관계상 자연스럽다. 그러나 1장의 수미가 “그렇다면 어떻게 처음 언니와 만나게 되었는지를 써둬야겠다”(12쪽)고 마음먹은 뒤 써 내려간 것이 바로 다음 장에서부터 전개되는 이 소설의 내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1장은 분명 이 소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소설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과거로부터 다가오는 현재(②)와 현재에서 뒤돌아보는 과거(①)가 서로 물고 물리는 것을 전체적인 구조로 형상화하고 있다.1) 이제 소설의 형식에서 보이는 이러한 시간적 특성이 내용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김은숙-조윤미’는 1982년 당시 88올림픽 준비를 중단하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가 ‘82년도에 생각한 88년도’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88년도는 그 모습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겉으로는 ‘화합과 전진’이라는 올림픽 슬로건이 내세워졌지만, 실상 이면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집을 빼앗기고 사회에서 배제돼야만 했다. 국가는 이를 은폐한 채 “성공적인 88올림픽”(97쪽)을 홍보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제와 폭력은 그 후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강화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에서 쓸어 버려도 좋다”거나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은 흐름에서 탈락되어 죽어 버려도 좋다”는 말, “손이 없는 자가 빵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148~149쪽)와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도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모습 아닌가. 이러한 모습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어쩌면 거듭되는 기득권의 지배와 ‘경쟁에서의 승리’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흐름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고문당하는 소리를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193쪽) 지워 버리는 기차 소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지금-현재에 하나의 “매듭을 지어 버리는 일”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미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미래를 연습하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불을 붙인 이후의 시간을 미래라 생각하였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끝을 내고 매듭을 지어 버리는 일,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91~92쪽)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1980년 광주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자들의 목소리, 그 외에 다른 원천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곳곳에서 수수께끼처럼 제시되는 대목들, “내가 갖고 싶은 미래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로 여겨”(18쪽)진다거나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91쪽)라는 부분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겠다. 즉,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미래는 ‘발전된 미래’라는 진보적 시간관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이 꿈꿨던 미래, 그러나 실현되지 않은 것이기에 “슬픈 과거”(140쪽)인 미래, 그렇기에 지금 여기로 가져와야만 하는 미래-과거가 된다. 이때 우리는 ‘미래 기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았던 사쿠라이 다이조의 연극 중에는 ‘미래 기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연극이 있었다. (…)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 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153쪽) 현재의 내가 과거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꿀 때 미래는 꼭 다음에 오는 일이 아니고 과거 역시 그저 지나간 일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시간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꿈꾼 미래를 지금 여기서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따라서 ‘미래 기억’은 바라는 일이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 실현될 오늘을 살아가는, 일종의 수행적인 행위가 된다. 1980년에 기억하는 2000년처럼. 1980년 겨울, 광주 전남 지역의 미술인들은 ‘2000년을 위한 파티’를 연다. ‘2000년’은 광주의 진실이 알려진 미래로,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아직 오지 않은 “민주적인 미래”(193쪽)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아니라 “과거의 완결되지 않은 사실”에 발을 딛고서 다른 “미래로의 문”(에밀 앙게른, ‘역사철학’, 유헌식 옮김, 민음사, 1997, 242쪽)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문 너머의 세계는 우리에게 예상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153쪽)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흔히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당시 그대로의 완벽한 복원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 그 자체의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함을, 과거를 예상하고 짐작하는 나의 생각이 “착각일 수 있음”(193쪽)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1980년 5월 27일 아침,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는 도청 앞의 “그 냄새와 공기와 광경을 모르고 모르고 모”(192쪽)르기에. 과거에 대한 ‘살아 있는 기억’을 지닌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로부터, 그러한 기억을 지니지 않은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적 기억’으로의 전환(박순석, ‘5,18과 도청’ 토론문, ‘5.18 41주년 기념 학술대회’, 5.18기념재단, 2021, 95~97쪽 참조)은 가능할까? 최명환은 ‘나’에게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14쪽)라고 묻는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묻는, 그래서 ‘미래 기억’적인 이 질문은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유효할까. 과거를 현재로부터 가차 없이 떼어 내 버리는 ‘기억의 위기’인 이 시대에 대응해 예술은 기억을 위한 어떤 “새로운 형식을 창안”(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변학수·채연숙 옮김, 그린비, 2011, 16~26쪽 참조)해 낼 수 있을까? ‘미래 산책 연습’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보인다. 소설에는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이 자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 인물들을 따라 먹고 마시고 걷게 된다. 그 식당과 목욕탕과 빵집과 카페와 골목의 어디쯤에서, 소설 밖의 독자와 소설 안의 인물이 만난다. 그리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①과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아가는 ②가 하루하루 서로 교차될 때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된다. 물론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나 스스로를 사건 당사자의 자리에 놓아 보는 것, 자신을 “한 사람의 시민”이나 “인류의 일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드문 상태”(14~15쪽)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상태가 된다.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이 만났을 때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을까? “그럴 수는 없”(112쪽)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이 바랐던 ‘미래’를, 그들에 대한 ‘생각하기’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래 산책 연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끝날 수 없을 것이다. 3. 눈사람을 만드는 일 - 윤해서의 ‘0인칭의 자리’(윤해서, ‘0인칭의 자리’, 문학과지성사, 2019.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앞의 두 소설에는 각각 ‘1960년대 체코의 정웰링턴’, ‘1980년대 부산의 김은숙’이라는 역사적 시공간의 인물이 제시돼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그 인물을 바라보는 현재 작가로서의 ‘나’가 있었다. 반면 이제 살펴보게 될 윤해서의 ‘0인칭의 자리’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인물, 그리고 작가로서의 ‘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앞의 두 소설에 이어 놓아 보는 이유는 이 소설이 동시대를 역사적으로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두 소설이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동시대를 사유하고자 했다면 이 소설은 동시대를 사유하기 위해 동시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듯 보인다. 특정한 플롯이나 줄거리가 없어 보이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실험적이다. 소설 전체에 걸쳐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여러 인물들(혹은 공간들)은 *을 사이에 두고 매번 달라진다. 행갈이가 되어 마치 시처럼 보이는 이탤릭체의 대목들(대체로 현재형)이 정서체로 쓰인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묘사(대체로 과거형) 사이사이에 흩뿌려져 있다. 예컨대 소설의 첫 문장부터 15쪽까지가 이렇다. * 언제나 사람들은 어딘가에 앉아 있었을 것이고, 어쩌다 일어나 서둘러 걷거나 뛰었을 것이고, (…) * 사는 게 재밌네, 재미있어 사는 게. 그는 혼잣말을 했다. (…) * 화병의 목록은 꽃 이름만큼 많다.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은 아니다. * 그녀는 6번 출구로 나왔다. 출구 앞에는 영종도에 들어설 오피스텔 분양 (…) * 큰눈물버섯이라는 버섯이 있다. 큰눈물버섯은 눈물버섯속이다. (…) * 그가 후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문화재해설사는 궁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 작가는 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일까? 만약 작가가 “어떤 한계”에 의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모든 것은 영원했다’, 150쪽) 이런 기법으로 소설을 쓰도록 만든 그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재,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 그 현재의 수많은 삶들, 바로 이를 포착해 드러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윤해서가 직면한 어떤 한계가 아니었을까. 마치 한글 문서창의 커서가 깜빡이며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사라졌다”(85쪽)를, 어둠 속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며 “반짝, 어둠”(67쪽)을 반복하듯, 매순간 ‘있다-없다’를 반복하는 이 현재를 도대체 어떻게 붙잡아 그려 낼 것인가.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소설은 위와 같은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정서체(과거형)의 대목 사이사이로, 갑자기 나타나 서사-시간의 흐름을 끊어 버리는 이탤릭체(현재형)의 대목을 등장시켜, 끊임없이 교차되는 시간의 움직임을 매순간 형상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내용적으로 ‘미래 산책 연습’에서 얼핏 보였던 동시대 사회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더욱 전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람을 넘어뜨려 죽이고도 태연해하고(18쪽), ‘만남의 광장’이라는 식당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 채 자기 식사에만 골몰하고(157쪽), PC방에 앉아 무기를 고른 후 각자의 전장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죽인다(169쪽).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오직 돈과 휴식만을 원할 뿐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61~63쪽). 이러한 사회의 모습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인 것만 같고,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대의 사회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의 또 다른 몇몇 대목은 그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들이 실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한 공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집단적으로 백혈병 진단을 받았음에도 어떠한 진상 규명이나 보상도 없이 해고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지켜보며 45일째 단식 투쟁을 하다 공장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람이 있다(52~53쪽). 과거에 자신들이 행한 잘못이 명백함에도 죽어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일본대사관 앞에는 지금도 소녀상이 있다(117~118쪽).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가 어디로 가는 중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두려움에 떨면서도 믿고 의지할 것이 없어 서로의 작은 손만을 잡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132~135쪽). 단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읽기 어려운 이 대목들은 결코 자연스러워지지 않는다. * 어떤 시간도 공평하게 간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 시간이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것들을 자라게 하고, 썩게 하고, 기어이 사라지게 하는. 황홀한 삶을.(199~200쪽)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의 한 화자는 “감자에 싹이 나고, 물 밖의 고기가 썩고, 방충망에 뿌옇게 먼지가 낀다”는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에 “비는 내리다 그치고 /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온다”는 자연적 흐름을 더해 가며 섭리 같은 시간을 말한다. 그저 가만히 있는 존재들을 “자라게 하고, 썩게 하고, / 기어이 사라지게 하는” 공평무사한 자연의 시간을. 그런데 화자는 이 시간을 무섭다고 여긴 “적이 있다”고, 마치 지나간 일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화자는 시간의 또 다른 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지만 또한 무언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가능한 것이 사라지게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가능한 것을 창조”(54쪽)할 수도 있는 시간. 이제 200쪽에 이르는 이 소설에서 무심히 세 번 내리는 눈(雪)을 살펴볼 때가 된 것 같다. *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쌓인다. 쉼 없이 쏟아지는 눈송이들. 골목, 골목에. 모든 기억의 눈꺼풀 위에. 잠잠하라. 잠잠하라.(20쪽) * 눈은 내려 쌓이고, 아무도 밟는 사람이 없어서 발자국 하나 없이 끝내 하얗고.(88쪽) * 죽을 때 죽더라도. 어느 때나 눈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눈은 그저 내리고, 어디에나 똑같이 내려 쌓이는데.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드는 건 사람의 일. 눈사람은 누군가의 기억 같아. (…) (174~175쪽) 시간이 공평히 흘러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사라지게 하듯, 눈 역시 “그저 내리고, 어디에나 똑같이 내려 쌓”이면서 땅 위의 존재들을 하얗게 지울 수 있다. 시간은 흐르면서, 눈은 쌓이면서 여기 존재하던 무언가가 더이상 여기 있을 수 없게 한다. 그곳은 새하얀 무(無)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무언가를 사라지게 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태어나게도 하듯, 눈 역시 그럴 수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충족됐을 때. 즉, 우리가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사람의 일”을 수행할 때. 한 사람을 기억하며 만들어 가는 눈사람은, “모든 눈꺼풀의 기억 위에” 쏟아지면서 “잠잠하라”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명령하는 ‘눈-시간’에 저항하는 일이 된다. 어쩌면 이때, “기둥도 뿌리도 없이, 잎도 열매도 없이”(200쪽) 이 지상 위를 떠도는 이들도 저 눈사람 위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계절의 끝에, 아이들의 침대 맡에, 깊은 꿈속”(175쪽) 곳곳에 눈사람이 놓여 있듯, 이 소설의 곳곳에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이 땅에 없는 사람을 향해 “하늘에도 지도가 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118~119쪽), 낚시터에 나란히 앉아 주말마다 이곳에 앉아 있던 한 남자를 기다리는 엄마와 딸(179쪽),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다 문득 바다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는 그녀(20~21쪽) 등. 이들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깊은 고통과 상심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그 한 사람을 끈질기게 기억하고 바라보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소설 앞부분의 한 대목. 화병의 목록은 꽃 이름만큼 많다.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은 아니다.(9쪽) 화병의 목록이 꽃 이름만큼 많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국화꽃, 진달래꽃, 봉숭아꽃, 목련꽃, 벚꽃 등 각각의 꽃에는 저마다 그에 맞춤한 꽃병이 있다는 말일까. 그래서 화병이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더이상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 같은 보편적인 명사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현무암일 뿐인 평범한 돌이 어떤 특정한 꽃을 담아내는 순간 고유한 이름을 가진 화병이 된다. 여기서 ‘화병’을 기억되는 사람으로, ‘꽃’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때 기억되는 사람은 기억하는 사람만큼 생겨나게 된다. 과거 속에서 이름을 잃은 채 무명(無名)의 상태로 떠돌던 이들을 누군가 기억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과거의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동시에 그 자신 또한 상대방에 의해 고유한 존재로, ‘이 화병’에 담긴 ‘이 꽃’이 된다. 이처럼 이 둘은 따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있을 때 자신 역시 존재할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는 관계가 된다. 마치 한국어에서 “자음과 모음”이 합해져야 하나의 글자가 되는 것처럼.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존재케 하는 것처럼(186쪽). ‘0인칭의 자리’는 더이상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어떤 미래도 떠올리지 않는, 단절된 현재만을 살아가는 동시대를 어두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또한 이 소설은 공허하게 흐르는 시간과 무심히 내리는 눈을 거슬러, 그것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금도 어딘가에는 눈사람이 놓여 있지 않느냐고 우리를 조용히 일깨운다. 그러므로 폐허 속 잔해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무언가를 (재)구성하는 것은 ‘역사의 천사’뿐 아니라 “미약한 메시아적 힘”(‘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32쪽)을 지닌 바로 우리, 인간의 몫이기도 할 것이라고. * ‘0인칭의 자리’에는 한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책장을 정리하다 ‘수학’이라는 책을 펼쳐 보는 대목이 있다. “378쪽. 거기에 유일한 밑줄. 존재성 증명은 정의되는 성질을 가진 물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다.”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존재성 증명에는 ‘구성적 증명’과 ‘비구성적 증명’ 두 가지가 있는데, ‘구성적 증명’은 명확한 숫자로 답이 존재한다. 1+1=2처럼. 그런데 방정식의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답이 존재하기는 한다는 것, 바로 그 사실을 밝히는 증명도 있다. 명확한 숫자로서의 답은 제시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무언가 “존재하기는 한다”고, 답으로서의 무언가가 “있기는 하다”(109~110쪽)고 증명하는 것이 바로 ‘비구성적 증명’이다. 아들은 궁금하다. 아버지가 밝히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앞에서 살펴본 세 편의 소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다루는 와중에 이 ‘비구성적 증명’을 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웰링턴을 기억하냐는 ‘나’의 물음에 ‘야넥’은 그의 죽음이 자살인 건지, 그의 목소리나 성격이 어떠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당신이 물으니까 병원 담벼락 안쪽 “그곳에 남자가 있었다”(‘모든 것은 영원했다’, 200쪽)는 것만은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산의 김은숙과 동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고민하던 ‘나’는 그들이 생각한 것은 “그들 자신이 광주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미래 산책 연습’, 92쪽)는 과거의 사실 그 자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어머니의 눈빛, 그때까지 자신이 알던 어머니의 눈빛과는 전혀 다른 그 눈빛은 카메라도 아니고 카메라 너머의 자신도 아닌 어떤 것을 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찍어 왔다는 한 사진가. 그러나 그 어머니의 눈빛은 “그날 그 자리, 거기 없던 어떤 것”(‘0인칭의 자리’, 30쪽)이었음을 이제는 안다는 그의 고백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없는 모든 곳에 당신이 있어.”(위의 책, 150쪽) 그러므로 위 소설들의 끝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하나의 초상(肖像)과 마주하게 된다. 깊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잊힌 존재에 대한 자료를 읽고 그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어떤 사람의 수그러진 뒷모습을. 여기서 우리는 80년대에 태어난 이 젊은 세 작가가 왜 2020년을 전후로 이 작품들을 써야만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글쓰기는 지금 이 시대의 시간관-과거는 하루 빨리 잊을수록 좋고, 미래는 상상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며, 그저 하루하루의 현재만 생존하라고 명하는-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자 경고 신호로서, 지금 여기에 도착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작가 개인의 글쓰기는 그를 뛰어넘어 이 시대의 공동체를 위한 글쓰기가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교차하는 곳에, 희미하게 명멸(明滅)하고 있는 한 존재가 있다. 지금-여기에는 없지만 그때-그곳에는 있었던 누군가를 증명해 내는 일은, 내일-저곳을 이미 기억해 내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과 같다. 그리하여 만약 소설이 지금-여기에 그들을, 그때-그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림자 개’의 특성을 하나 더 추가해 볼 수도 있겠다. 넷. 그림자 개는 그림자 개가 되기 전의 개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개다. ‘그림자 개’의 다른 이름이 ‘믿음의 개’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 비록 그것이 한낱 그림자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그림자 개’-소설은 끝내 시간을, 그 속의 한 존재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므로. ——————————————————————————————————————————— 1) 그리고 이는 ‘모든 것은 영원했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정웰링턴이 자신의 꿈을 기억하는 소설의 첫 페이지는 1963년으로, 서사의 흐름상 그의 유언이 등장하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와 연결된다. 또 작가로 추정되는 ‘나’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의 시간대를 이 책의 출판 연도인 2020년으로 생각해 본다면 1960년대의 과거(정웰링턴)와 2020년의 현재(‘나)가 마주 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새해 인사 전한 정순택 대주교 “온누리에 하느님의 평화가 정착하기를”

    새해 인사 전한 정순택 대주교 “온누리에 하느님의 평화가 정착하기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신년사를 전했다. 정 대주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또 한 해를 선물로 주셨음을 감사드리면서 여러분과 모든 가정과 온 누리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빈다”고 축복하며 “지난 한 해 동안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우리의 부족함에 용서를 청하며, 아울러 새해에도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와 온 세계에 하느님의 축복을 청한다”고 인사를 시작했다. 새해 첫날을 ‘평화의 날’이라 언급한 정 대주교는 “우리가 기원하는 평화는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삶을 닮으려고 노력할 때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참다운 평화는 단순히 분쟁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정의를 바탕으로 이루는 평화”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참된 대화가 필요하다고 정 대주교는 강조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를 언급한 정 대주교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분쟁과 전쟁, 사회의 모든 갈등과 불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는 평화의 필수 조건이요, 상호 존중은 대화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무인기가 서울 상공에 뜨면서 긴장감이 고조된 한반도 역시 상호 존중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 대주교는 “해엔 여러분들이 바라는 모든 소망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한반도와 온 누리에 하느님의 평화가 더욱 정착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면서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까지도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고 번영하는 정의를 추구하면서 참다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마쳤다.천주교 춘천교구 김주영 주교도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 주교는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서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지만 예언자의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하느님을 전과 달리 생생하고 살아있는 분으로 느끼는 신앙 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주교는 “신앙 감각은 하느님께서 늘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고 그분께서 우리 삶을 지탱해주신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면서 “이 믿음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는 갈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과 신앙의 중심에 모시고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 16~18)를 언급한 김 주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느님과 나의 삶을 공유하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한 해에는 서로서로가 희망을 주고 각자의 자리에서 참 행복을 일구는 기쁨이 가득하길 바란다. 평화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빈다”고 축원했다.
  • 새해 인사 전한 개신교… 이영훈 목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함께하시길”

    새해 인사 전한 개신교… 이영훈 목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함께하시길”

    지난달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신임 대표회장을 맡은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신년사를 전했다. 이 목사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23년 대망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 전파와 섬김과 나눔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 오신 한국교회 모든 지도자와 성도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인사를 시작했다. 코로나19와 전쟁, 재난, 경제 침체 등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언급한 이 목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굳건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지나간 모든 문제와 어려움은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부어주실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길 간절히 소원한다”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자리에서 세상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어 다시금 꿈과 희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새해에도 여러분이 계획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 뜻 안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간절히 바라고 여러분의 개인, 가정, 하시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마쳤다.진보 개신교 연합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신년사를 전했다. NCCK 회장 강연홍 목사와 총무 이홍정 목사는 전쟁, 양극화,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 등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언급한 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사 새해를 주셨다”면서 “때때로 범사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고 사회 안전과 평안이 없다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이 흔들리는 역사 속에서 친히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희망하고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며 소망의 밝은 새해 아침을 맞아야 한다”면서 “지금은 어두움이지만 곧 밝은 아침이 오리니 어두움의 일, 어두움에 관계된 것 모두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NCCK는 “새로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바라보며 새해를 출발하는 한국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고 신년사를 마쳤다.
  • 경기도, 새달부터 모든 광역버스 비접촉 요금 결제 서비스

    경기도, 새달부터 모든 광역버스 비접촉 요금 결제 서비스

    경기도는 일부 광역버스에 적용하던 비접촉(태그리스) 버스요금 결제 서비스를 내년 1월 2일부터 전체 광역버스로 확대한다고 28일 밝혔다. ‘비접촉 버스 요금 결제 서비스’는 경기도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코로나19 감염을 최소화하고,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지난 1월 도입했다. 스마트폰에 ‘태그리스 페이’ 앱을 설치한 후 선·후불형 교통카드를 등록하면 버스를 타고 내릴때 자동으로 승·하차 처리와 결제가 된다. 지난 1월부터 김포지역을 시작으로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확대해 광역버스 1789대에서 시행해 왔으며, 이번에 880대에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도내 2669대의 모든 광역버스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기존 근접무선통신(NFC) 결제 불가로 휴대폰을 통한 교통비 결제가 불가능했던 아이폰 사용자 역시 캐시비샵에서 전용 스티커를 구매해 휴대폰에 부착하면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는 앞으로 시내버스·지하철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면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교통약자들을 위한 교통서비스 품질도 크게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는 도민들의 서비스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서비스 시행사와 공조해 아이폰 사용자 선착순 500명에 전용 스티커 무상 제공, 태그리스 이용 시 요금 할인, 커피 쿠폰 지급 등 다양한 할인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들레헴의 별/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들레헴의 별/미술평론가

    성모 마리아가 허물어진 외양간에서 세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고 있다. 늙은 요셉도 마리아 옆에서 동방박사를 맞고 있다. 세 동방박사는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따라 길을 떠났고 별이 멈춘 데서 어머니와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이들은 아기에게 예물을 바치고 경배했다. 중세 이래 동방박사는 인생의 세 시기를 상징하고, 세계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존재로 생각됐다. 성모 앞에 무릎을 꿇은 붉은 옷의 노인은 서구를 상징한다. 돌 위에는 금화가 가득 든 그릇이 놓여 있다. 짙은 수염의 중년 남자는 이슬람 지역을 대표한다. 붉은 벨벳 모자를 쓰고 모피로 가장자리를 댄 코트를 입었다. 시종이 유황이 든 컵을 건네주고 있다. 오른쪽 거무스름한 젊은이는 아프리카 지역을 대표한다. 금실로 짠 문양이 있는 붉은 옷 위에 녹색 외투, 손에는 몰약 단지를 들었다. 이 그림은 교회 제단화였지만 지금은 당대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동방박사가 걸친 호화로운 옷과 소지한 물건은 화가가 살던 플랑드르 지역의 물질적 풍요를 말해 준다. 이 시대의 서구인들은 이슬람, 아프리카 세계와의 교류가 잦았지만, 인종차별 개념은 아직 없었다. 인종차별이 사회적으로 노골화된 것은 17세기 노예무역이 시작된 후부터다. 인간을 가축처럼 매매하고 부리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검은 피부를 지닌 사람들을 열등한 종족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뚫린 벽 너머로 플랑드르식 가옥과 전원이 보인다. 나무에 푸른 잎이 무성하다. 성경에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 얘기는 있지만, 날짜나 날씨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전통적으로 동방정교회는 12월 25일에, 서구 기독교는 1월 6일에 동방박사의 방문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전근대 화가는 소재 선택의 자유가 없었고,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소재는 성서나 그리스 신화에서 가져온 일화, 왕의 행적, 초상화 정도로 한정돼 있었다. 주문자는 자기가 돈을 댄 그림이 경쟁자가 돈을 댄 다른 그림보다 그럴싸하기를 원했으므로 화가는 이미 누차 다루어진 소재를 조금씩 변형해 작품을 제작했다. 그래서 전근대 회화는 얼핏 보면 다 그게 그거 같지만, 뜯어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학계 인기 논문도 실생활로 다변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학계 인기 논문도 실생활로 다변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시대가 도래하면서 올해 인기 논문의 주제도 실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다변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국내 대표 학술 플랫폼 디비피아(DBpia)가 26일 발표한 2022년 학술논문 이용 경향에 따르면, ‘쿠키런 킹덤(게임), 썸 타기(연애), 인터넷 밈(소셜미디어) 등 실생활과 밀접한 주제가 이용 순위 상위 10위에 대거 포진했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시대가 도래하면서 학계의 관심 역시 코로나19에서 일상생활로 회귀했다. 다만 코로나19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실제로 올해 역시 이용 순위 상위 10위 논문 가운데 2편은 모두 코로나19에 관한 논문이었다. 대신 올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후유증’에 대한 논문이 주를 이뤘다. 앞선 2년간 코로나19 관련 논문의 주요 주제는 ‘언택트’였지만, 올해에는 ‘코로나 블루’ 해소에 관한 논문들이 이목을 끌었다. ●“게임은 남성의 전유물? 쿠키런 킹덤 보니 ‘여성 시대’” DBpia에서 올해 가장 많이 읽힌 논문은 ‘모바일 수집형 RPG의 사용자 분석: “쿠키런: 킹덤”을 중심으로(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다. 게임이 남성들의 흥미를 이끌만한 경쟁, 정복, 시각적인 자극, 스포츠, 액션 등이 주를 이루며 성장한 탓에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인식돼 왔지만, 해당 논문에선 ▲성별에 따라 게임 퍼포먼스가 어떻게 나오고 게임에서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갖는지 ▲아바타 등 게임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그 성별에 따라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성별에 따라 어떤 기준으로 게임을 디자인해 해당 성별이 조금 더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해 연구했다. 설문을 통해 분석한 결과, ‘쿠키런: 킹덤’ 사용자층은 주로 10·20대였고, 성별의 비율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저자는 “게임 디자인 요소가 성별 따라 게임을 즐기는 양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논문과 달리, 완성도 높은 게임은 어느 한쪽 성별에 치우치지 않게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그 춤? ‘틱톡’에서 봤어”…‘연애’도 관심 높아 ‘게임’ 뿐 아니라 이른바 ‘인터넷 밈’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인터넷 밈의 언어적 고찰(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논문은 최근 ‘틱톡’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 밈’의 특성을 분석한 것이다. 밈은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어근 ‘mimeme’를 유전자를 뜻하는 ‘gene’과 유사한 발음의 단어로 만든 용어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논문 저자는 “인터넷 밈의 개념은 그 외연을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모호하지만, 일반 언중들에게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사진, 영상 등이 포함된 유행어’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게임, 인터넷 밈뿐 아니라 ‘연애’라는 일상도 논문 상위 이용률을 점유했다. 많이 읽힌 논문 5위에 오른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신조어 ‘썸 탄다’의 정확한 의미와 활동의 정체에 대해 정의한 논문이다.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Harry Frankfurt)의 인간관에 의거하여 의지적 불확정성 개념을 도입, 이를 통해 썸 타기의 본성을 포착했다. 논문 저자는 “상대방에 대한 이성적 호감을 지닌 두 남녀가 새롭게 만남을 시작하며 자신들의 의지적 불확정성에 대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썸 타기의 핵심”이라고 정의했다. 놀랍게도 이 논문은 직장인들이 많이 읽은 논문 3위에 올라 초중고(8위)나 대학생(5위)보다 직장인들의 ‘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 이윤과의 관계는? 하지만 ‘썸’보다 직장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역시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다. 한국경영학회가 발행한 논문 ‘기업의 ESG 활동이 기업 이미지, 지각된 가격 공정성 및 소비자 반응에 미치는 영향(한국경영학회)’은 올 한 해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논문이다. 해당 논문은 기업의 ESG 활동이 소비자 인식에 미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그간 ESG 경영의 역할과 중요성이 강조됐던 것에 비해 실증적 증거가 부족했던 것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논문 저자는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가격이지만,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경쟁우위를 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제품과 서비스의 본래 가치 이외의 다양한 부가적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해 소비자가 구매하게 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크게 지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포스트 코로나··· 학계에선 ‘코로나 블루’ 대처 주목 다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코로나를 주제로 한 논문은 여전히 높은 관심을 끌었다. 실제 ‘COVID-19(코로나) 발생 전후로 나타난 청년의 여가활동 유형과 우울감 관계(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 학회)’는 이용률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청년(19~39세)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전후 여가활동 유형에 따라 우울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한 논문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100만 원 미만 집단보다 두 번째 집단인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의 우울감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감이 높았고, 취업자보다는 미취업자의 우울감이 더 높았다. 학력별로는 전문대 졸 집단의 우울감이 가장 높았다. 또, 스포츠 및 야외활동이 독서, TV 시청, 문화활동보다 상대적으로 우울감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후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골린이’, ‘테린이’ 등 각종 실외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로 풀이된다. 또, 길고 긴 코로나19 기간 의료진들의 ‘번아웃’ 증세가 사회적으로 화두에 오르면서 ‘간호대학생의 MBTI 성격유형에 따른 스트레스 정도, 스트레스 대처 방식 및 학교 적응 (한국간호교육학회)’ 논문도 상위 7위에 오르기도 했다. 해당 논문의 저자는 “신입 간호사는 업무 현장에서 직면하는 슬픔, 죽음, 통증과 갈등 등으로 인해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스트레스 대처 경험의 부족으로 높은 이직 의도와 낮은 직무만족도를 나타낸다”라며 “간호대학에서 학습해야 할 간호의 핵심 역량과 자질에 스트레스 대처와 적응 능력이 포함돼야 함을 알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강정효 DBpia 콘텐츠영업팀 팀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학계에서 많이 이용된 논문 역시 실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다변화되는 경향을 보였다”며 “논문 이용 순위 상위에 쿠키런 킹덤(게임), 썸 타기(연애), 인터넷 밈(소셜미디어) 등이 랭크됐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른바 ‘위드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대표적인 후유증인 ‘코로나 블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어느덧 12월의 마지막 주에 서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을 마주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은 ‘빌리 브란트의 무릎 꿇기’다. 1970년 12월 추운 겨울날 서독 총리로는 처음으로 이웃 나라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는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했다. 겨울비에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속죄하는 그의 모습은 ‘20세기 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獨, 폴란드 서부 100년 이상 점령 독일과 폴란드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인 앙숙지간이었다. 18세기 말부터 독일은 폴란드의 서부 지역을 100년 이상 점령한 채 폴란드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조약(1919)으로 마침내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하면서 독일이 점령했던 영토의 상당 부분이 폴란드로 다시 귀속됐다. 그러자 양국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독일은 신생 국가인 폴란드를 ‘강도 국가’로, 폴란드인을 ‘늑대’나 ‘들쥐’로 묘사했다. 반면에 폴란드는 수복된 땅이 본래 폴란드 영토였다고 주장하면서 약탈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독일 역사를 부각했다.결국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1939년 ‘독일인의 고유한 영토’ 탈환을 구실로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렇게 ‘탈환된’ 지역에서는 재독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인 6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폴란드 전체 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다. 잘 알려졌듯이 독일은 아우슈비츠 등에 집단 학살 수용소를 세우고 폴란드계 유대인 200만명 이상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폴란드군 포로와 민간인들이 고문당하거나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남북으로 472㎞에 달하는 새로운 국경선이 확정됐다. 그 결과 양국의 국경선이 옛 독일 영토 안으로 200㎞ 정도 옮겨지면서 폴란드는 한반도 남한 면적보다 넓은 땅을 패전국 독일로부터 추가로 얻어 냈다. 이곳은 곡창지대이자 공업지대로 철강·석탄의 주요 산지였다. 조상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던 독일인의 추방은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독일인 강제 이주는 포츠담회담에서 연합국이 합의한 일로, 회담에서는 추방을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새롭게 폴란드로 귀속된 국경 지대에서 400만명 이상이 강제 이주되는 동안 독일인들은 폴란드인의 잔혹 행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는 나치 정권이 폴란드인 600만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행위였다.새로운 국경은 양국 모두에서 적개심과 민족주의의 부활을 부추겼다. ‘피추방민협회’를 결성한 독일의 강제 추방민들은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서독으로 이주한 이들은 보수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의 주요 지지 세력이 됐고, 결코 무시 못할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중심이 돼 실지 회복을 정강으로 내세운 ‘피추방민’ 정당은 1953년 선거에서 5.9%를 득표했고, 서독의 초대 총리인 기독민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는 정당의 핵심 지도자들을 각료로 임명했다. 이들이 극우 세력화해 또다시 나치와 같은 집단이 등장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가해자를 움직인 피해자의 용서 이런 가운데 종전 20주년을 맞은 1965년 공산 치하의 폴란드 주교단은 서독 주교단에 서신을 보냈다. 서신은 지난 1000년간 양국 관계사에서 긍정적인 역사적 국면들에 주목했다. 두 나라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정치·경제·학문적으로 얼마나 서로 의존했는지, 이러한 초경계적 상호작용이 유럽의 평화공존 구축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기억해 낸 것이다. 서신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마무리됐다.“(양 국민 간의) 끔찍한 과거 때문에 괴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합시다. 극단을 지양하고 … 이제는 대화를 시작합시다. … 우리는 여러분의 손을 잡고자 합니다. … 우리는 여러분을 용서하며 또한 여러분으로부터 용서를 구합니다.” 나치 독일의 희생자였던 폴란드 가톨릭교회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이다. 훗날 ‘감동적인 화해 문서’, ‘폴란드와 독일의 대화를 이끈 편지’, ‘화해의 아방가르드’로 평가된 이 서신은 폴란드와 서독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이러한 화해 분위기는 서독 정부에도 영향을 주어서 1970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하고 신동방 정책을 추진하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추방민들은 분노했고, 빨갱이들에게 독일의 영혼을 팔아넘긴 매국노라고 브란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 잘못을 반복적으로 사죄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폴란드도 이에 화답했다. 폴란드의 지식인들은 독일인을 추방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반체제 세력들은 폴란드 공산당 지도부가 독일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하고 국경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도구화했다고 비난했다. 양국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성인과 학자들은 서로를 초청해 화해와 공존을 위한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용서라는 선물 폴란드와 독일의 용서와 화해 과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①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정의라며 극단적인 응징이나 보복을 하는 대신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되 미래를 위한 화해와 치유에 무게를 두는 ‘회복적’ 접근이 중시됐다. ②상호 관계를 개선하고자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불신을 극복하고 연대와 상호 신뢰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두 나라의 역사적 동질성과 같은 유럽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다시 소환했다. 두 나라가 국경을 넘나들던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은 ‘함께 살아감’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③가해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대도 언급됐다.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반나치 저항 운동에 경의를 표하고, 많은 독일인 역시 자신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됐음을 지적했다. ④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 수백만 명을 강제 추방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고 고백했다. 서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것이다. ⑤피해자의 용서는 마치 선물과 같아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정치의 장으로 가해자를 초대할 수 있었다. ⑥피해국 폴란드는 자신이 받은 고통과 상처를 잊고 치유하기를 희망하면서 양쪽 모두 불행한 과거를 잊자고 제안했다. 용서는 사건 이전의 관계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고통의 기억에서 해방될 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용서라는 선물을 줄 수 있고, 이렇게 해야 양쪽 모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⑦화해 과정을 주도한 행위 주체다. 독일과 폴란드에서는 종교인·학자·지식인 등 비정치적 분야의 지도자 간 화해가 선행됐다. 역사의 도구화와 정치화를 비판했던 이들의 노력으로 국가 간 화해를 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논의가 진행됐다. ⑧용서는 대화와 화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서독과 폴란드는 ‘용서의 편지’ 이후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선 역사 대화를 진행한 결과 총 네 권으로 된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편찬할 수 있었다.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가까이 지내는 이웃으로 오랜 기간 서로 잘 알던 사람들이다. 너무 가까워서 불편한 이웃이었던 양국은 젊은 세대에게 역사 전쟁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역사교육을 시행 중이다. 용서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아페시스’(aphesis)인데 이는 ‘빚을 면제해 줌’을 뜻한다.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얽매여 과거에만 머문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니다. 따라서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빚에서 해방되게 해주는,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용서는 잘못으로 뒤엉킨 삶의 자리에 낡은 감정을 지워 버리고 더 나은 것으로 채우는 선물이다. 강제할 수 없지만 주어지면 좋은 것이 선물이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 무거운 짐을 놓아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제 나를 위해 용서하자. 용서할 수 없으면 잊기라도 하자. 중앙대 교수·작가
  • 교황 “재물·권력욕에 많은 사람 희생”

    교황 “재물·권력욕에 많은 사람 희생”

    프란치스코 교황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전쟁에 지친 사람들과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자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림의 고통에 빠졌다고 개탄했다.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24일(현지시간) 열린 성탄 전야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구유에서 태어난 것을 언급하며 재물과 권력에 굶주린 이들이 어린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있다면서 전쟁과 빈곤, 탐욕스러운 소비주의를 경고했다.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교황은 거의 모든 공개 석상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론하며 전쟁의 잔혹성과 러시아의 명분 없는 침략을 비난했다. 그는 25일 성탄절 메시지를 통해서도 “매일 엄청난 양의 식량이 낭비되고 무기에 자원이 소비되는 동안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참석 인원이 제한됐던 2020∼2021년과 달리 올해 성탄 전야 미사에는 약 7000명의 신자가 성베드로 대성전을 가득 메웠고 4000여명은 성베드로광장에서 야외 스크린으로 미사에 참여했다. 교황은 생의 첫 몇 시간을 마구간의 구유에서 보낸 예수의 겸허한 생애에 대해 설명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그는 “말과 가축들이 구유에서 먹이를 먹는 동안 이 세상의 남녀들은 부와 권력에 굶주려 이웃의 것, 형제자매의 것까지 빼앗아 소비하려고 든다”고 질타했다. 이어 “우리가 그동안 본 전쟁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까지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경시당하고 능멸당하고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교황은 그럼에도 인류는 힘을 내야 한다면서 “여러분 모두가 공포와 포기, 낙심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가 말구유에 누워 있었던 것은 진정한 생명의 힘이 돈과 권력이 아니라 사람들,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성탄절을 에워싼 지나친 소비주의를 경계하며 “성탄절에 뭔가 좋은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땅에는 평화, 하늘엔 영광’…3년 만에 만난 인원 제한 없는 성탄 미사·예배

    ‘땅에는 평화, 하늘엔 영광’…3년 만에 만난 인원 제한 없는 성탄 미사·예배

    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의 성당과 교회에서 참석 인원 제한 없이 미사와 예배가 열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의미를 기렸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첫 성탄절이었던 2020년에는 주요 성당과 교회는 비대면 미사, 예배로 대신했고 지난해는 대면 의식을 진행했지만 참석자 숫자와 요건을 제한했다. 그러나 올해는 방역 조치 변화로 참석자 숫자 제한 없이 진행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25일 0시 5분쯤 주교좌 성당인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정순택 대주교가 집전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를 열었다. 정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 북녘 동포들과 전쟁의 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포함한 세상 온 누리에 주님 성탄의 은총이 충만히 내리기를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방한 중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24일 오후 충남 아산시 공세리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집전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날 오전 7시 성탄절 축하 예배를 시작으로 6차례 예배를 했다. 사랑의교회도 서울 서초구 본당에서 오전 8시 유아 세례식을 겸한 ‘성탄 축하 온가족 연합예배’를 시작으로 4차례 예배를 했다. 사회 참여를 중시하는 교회, 단체, 신자로 구성된 연합예배 준비위원회는 이날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2022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예배’를 열고 여기서 모인 헌금과 후원금은 행사 비용을 제외하고 쪽방촌 거주자들을 위해 기부한다고 밝혔다. 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3번 출구 인근에서 ‘10·29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대축일 미사’를 열었다.
  • 고전부터 신작까지… 알차게 꽉 채운 국립극단의 2023년

    고전부터 신작까지… 알차게 꽉 채운 국립극단의 2023년

    관객들을 사로잡는 인기 작품부터 젊은 창작자들의 파격적인 신작까지. 국립극단이 2023년 폭넓은 11개의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국립극단의 내년 첫 공연은 3월 16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만선’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모두 받은 작품으로 장엄한 비가 무대에서 휘몰아치는 마지막 장면이 백미로 꼽힌다. 천승제 작가가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산업화의 그늘과 소외된 민중의 삶을 그렸다. 5월에는 세계적인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4대 명작으로 꼽히는 ‘벚꽃 동산’이 무대에 오른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백상예술대상 등 연극계 주요 상을 수상한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아 정통 연극의 정수를 선보인다. 9월 명동에서는 해외 신작 ‘이 불안한 집’을 만날 수 있다. 영국의 극작가 지니 해리스가 그리스 비극인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오레스테이아’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 2016년 영국 초연 당시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연출가 김정의 손을 거쳐 더욱 치밀한 작품으로 탄생할 예정이다.연말 명동예술극장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다. 2015년 초연 당시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각종 연극상을 휩쓴 작품으로 하반기 전국의 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난 후 명동예술극장에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지난 1년간 국립극단의 작품 개발 프로그램 ‘창작공감: 작가’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도 선보인다. 이소연 작가의 ‘몬순’은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전쟁의 시대를 사는 여러 인물을 통해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그린다. 윤미희 작가의 ‘보존과학자’는 소멸하는 것들의 이야기로 복원과 보존의 가치를 담았다. 동시대적 화두를 주제로 동시대적 사유의 확장성을 실험하는 ‘창작공감: 연출’에서 발굴한 작품도 무대에 오른다. 올해 주제는 ‘기후위가와 예술’로 임성현 연출이 코로나19 이후 커다란 화두로 등장한 금융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긴밀한 연관성과 모순에 대해, 한민규 연출이 기후위기에 관한 글(시극)을 쓰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극중극 형식으로 풀어낸다.다양한 청소년극도 준비됐다. 내년 10월 국립극단 청소년극으로는 처음으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탱크; 0-24’는 청소년 배우와 성인 배우가 함께하는 첫 국립극단 공연이다. 2019년 초연 이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청소년극 ‘영지’도 5월 소극장 판에서 다시 관객과 만난다. 4월에는 우수한 중국희곡을 선보이고 공연 가능성을 타진하는 ‘제6회 중국희곡 낭독공연’도 열린다.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2023년은 창작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들로 꾸리기 위해 고심했다. 시대가 변해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웰메이드 고전부터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가장 신선하게 담은 창작극까지 고르게 준비했으니 관객 여러분께서 취향을 찾는 여정을 떠나보시기를 권한다”고 전했다.
  • “피부가 벗겨지고 혀 새까매졌다”…신종변이 공포 中 ‘발칵’

    “피부가 벗겨지고 혀 새까매졌다”…신종변이 공포 中 ‘발칵’

    중국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하위 변이인 BQ.1 사례가 보고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방역 당국은 22일 브리핑에서 “중국 내 9개 성(省)에서 BQ.1과 그 하위 변이(BQ.1.1) 49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BQ.1과 그 하위 변이 BQ.1.1을 ‘지옥개 바이러스’ 또는 ‘케르베로스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케르베로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 ‘지옥의 문’을 지키는 개를 의미하며, 중국 네티즌들은 해당 변이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이라는 의미에서 ‘지옥개’라는 별칭을 붙여 부른다. 이에 방역 당국은 “BQ.1 계열의 변이는 아직 널리 유행하고 있지 않으며, 중국의 지배 변이는 여전히 오미크론 BA.5의 하위 변이인 BA5.2와 BF.7”이라고 설명했다. 또 “BQ.1과 BQ.1.1 변이에 대한 불안감이 과도하다. 유언비어에 동요하지 말라”며 진화에 나섰다. 23일 자유시보 등 타이완 매체에 따르면 중국인 몇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얼굴과 혀가 검게 변하고 두 눈이 심하게 붓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다. 톈진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코로나19에 걸린 뒤 혀와 치아가 모두 검게 변했다. 치아 틈새에서도 검은 자국이 발견됐다.“엄마가 딸 얼굴 못 알아봐”…중국, 코로나 변이 ‘불안감’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에는 안후이성에 사는 한 여성의 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이 여성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후 고열, 구토, 설사 증상을 보였다. 확진 4일째가 되자 살이 쭉 빠졌으며 입술과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이 여성은 “확진 나흘째가 되자 입술과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얼굴은 까맣게 변했다”며 “엄마조차 자신을 못 알아본다”고 털어놨다. 현지 외신은 “이런 증상들이 잇따라 발견되자 ‘오미크론이 중국에서 전파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종이 출현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21일 회의록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서 20일 하루 3700만명에 가까운 코로나19 확진자가 추가됐다. 또, 12월 1일부터 20일까지 누적 확진자는 2억 4800만명에 달했다.
  • [정승민의 막론하고] 눈물을 씻어 주는 크리스마스/‘일당백’ 유튜버

    [정승민의 막론하고] 눈물을 씻어 주는 크리스마스/‘일당백’ 유튜버

    크리스마스가 모레다. ‘하늘엔 영광, 지상엔 평화’를 상징하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변함없이 아수라장이다. 이 땅에 구세주가 내려왔다는 대사건이 판명하기 힘든 믿음의 영역에 속해서일까. 실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만든 주체는 로마 제국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뒤에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념일을 만들었다. 그리스도와 미사를 합쳐서 크리스마스다. 밤이 가장 긴 동지 이후 태양이 부활한다는 풍속을 기독교의 신성을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마침 12월 25일은 로마의 동지였다고 한다.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에다 가축을 도살해서 고기도 많으니 ‘어린양’을 떠받드는 ‘작은 새해’로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말구유에서 난 갓난아기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극적 서사답게 성탄절의 주인공은 어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는 딴판이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신교도에게 크리스마스는 가톨릭의 날이었다. 예수가 아니라 포도주의 신 바쿠스를 추앙하는 폭음과 폭식의 향연이며 악의 축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세기 중엽까지도 과식과 만취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를 위한 날은 없었다. 성탄절을 나눔과 베풂의 축일로 자리잡게 한 일등 공신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개과천선해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패권국가로서의 물적 토대도 내부적 자원 배분에 여유를 갖게 했다. 아무튼 하나의 중편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축제를 만들었다. 하인에게는 상자에 음식이나 돈, 선물을 담아 주고 휴일을 줬다. 빈민들은 교회에서 기부품으로 채워진 박스를 선물받았다. 무엇보다 어른에서 어린이로 권력이동이 이뤄졌다.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카드가 도입되고 흥겨운 캐럴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물과 정찬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 행사로 위상이 승격된 것은 이때부터다. 오랜 관습으로 여겨졌던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소외된 아이와 가난한 이웃을 대접하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전통’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크리스마스는 바쿠스에 가깝다. 종교 행사나 가족 모임이 아니라 환락의 파티로 변용되곤 했다. 광복 직후부터 1982년까지 실시한 야간 통행금지를 예외적으로 풀어 주는 드문 날이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통제와 감시에 억눌렸던 감정들이 해방되다 보니 대규모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광란의 밤을 보냈다. 언론인 민병욱에 따르면 가장 떠들썩했던 성탄절은 1964년이다. 그해 서울 인구는 약 350만명인데 24일 오후부터 명동과 종로에 35만 인파가 흘러넘쳤다. 지금 고희를 훌쩍 넘긴 당시 청소년들은 뿔피리를 불고 기괴한 복장과 가면으로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수백년이 지난 만큼 19세기 영국처럼 성탄절을 새롭게 조명할 때가 아닌가 한다. 예수의 출생은 양극화와 다문화 문제가 대두된 오늘날 하나의 실마리다. 가장 낮은 곳, 마구간에서 독생자는 태어났다. 먼 곳에서 온 동방박사가 탄생을 축하했다. 약자와 이방인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예수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과 평화의 세상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있어야 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속인의 의무일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제7의 봉인’은 어떤 인생도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고달픈 삶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이 씻겨 준다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자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든 이슬을 닦아 주실 구원의 크리스마스에 다시 기대를 건다.
  • 영국 手語 이제야 성경 표준안 동영상으로, 미국은 40년 걸려

    영국 手語 이제야 성경 표준안 동영상으로, 미국은 40년 걸려

    수어(手語)에 대한 관심이 몇년 사이 부쩍 늘어났다. 지난해 청각장애 여배우 로스 에일링엘리스가 ‘스트릭틀리 컴 댄싱’에 출연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고, 청각장애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10대 소녀 얘기를 그린 영화 ‘코다(CODA)’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런 대중의 관심을 발판삼아 영국 수어(BSL)가 야심찬 기획을 시작했다. 바로 성경을 수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리버풀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청각장애 성공회 신부인 한나 루이스는 성경을 잘 이해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는 22일 영국 BBC 라디오4의 선데이 프로그램 인터뷰를 통해 “영어와 BSL 모두를 능통하게 하는” 인물에 자신이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어로) 성경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강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BSL로 성경을 읽으면 결코 영어로 읽는 방법으로 얻을 수 없는 감정적으로나 영적인 감동을 맛보게 된다. 아무리 통역이 훌륭해도 그 맛이 사라진 성경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BSL은 한나가 처음 익힌 언어라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현재로선 성경을 BSL로 옮기는 표준안이 없다. 대신 각자 통역들이 알아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옮긴다. 몇 주 뒤, 다른 통역이 완전히 다른 성경과 그 의미를 청각장애인에게 들려주는 일이 곧잘 일어난다. 해서 BSL 성경 번역 프로젝트는 이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기독교 자원봉사자들이 역사학자, 성서학자들과 힘을 합쳐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텍스트를 BSL로 옮겨 이를 동영상으로 담고 있다. 20명 정도가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으며 하루 1000 파운드씩 드는 비용을 후원받아 운영하고 있다. 학문적인 해석과 사람들이 쉽게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BSL을 소화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마가복음을 옮기는 작업을 마무리했고, 창세기 대목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홈페이지(https://bslbible.org.uk/)를 찾으면 볼 수 있다. BBC 기사는 청각장애를 뜻하는 ‘Deaf’ 단어 첫 글자를 대문자로 계속 표기했다. 청각장애인과 BSL를 쓰는 이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만의 언어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소문자 ‘d’를 쓰는 이들은 듣는 능력에 결함이 있다고 여기거나 영어를 제1 언어로 여기는 이들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흔히 수어는 비장애인의 언어와 달리 “역동적인 설명”이 풍부하며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의미를 연결해 의사를 전달한다. 조사나 전치사, 관사인 ‘for’, ‘of’, ‘the’, ‘with’를 생략하고 감정과 명사를 이어 붙인다.40년 동안 BSL를 해 온 비장애인 캐넌 질 베헨나 성공회 신부는 마가복음 4장(마태복음 13장)의 한 구절이 영어로는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인데 BSL로는 손으로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씨를 뿌리는 동작을 취해 “씨 바구니를 든 사람이 있다”고 옮긴다. 다시 말해 BSL은 그림을 만들어내며, 영어는 단어들로 그림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베헨나는 “성경을 읽을 때 때때로 한 문장이나 한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해서 나는 하느님과 내자신이 통째로 소통한다고 느낀다. 청각장애인도 똑같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청각장애인들은 거의 모두 두 언어를 구사하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단어들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단언했다. 영국의 이 프로젝트는 언제까지 마치겠다는 마감 시한이 없다. 미국 수어의 경우 이 작업을 40년 걸려 마쳤다고 방송은 전했다. 재니스 실로는 기다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청각장애인들은 항상 설명을 구하거나 통역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영어로 옮긴 윌리엄 틴데일은 누구나, 심지어 아둔한 시골청년(lowly plowboy)도 읽을 수 있도록 하길 원했다. 나 역시 청각장애인들이 그렇길 원한다.”
  • 그때 그 순간 그대로… 갈릴리 호수에 남은 예수의 생생한 흔적

    그때 그 순간 그대로… 갈릴리 호수에 남은 예수의 생생한 흔적

    팔복교회·오병이어기념교회 등 ‘역사 속의 장소’ 순례객들 맞아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1917~1945)의 시 ‘팔복’에는 제목과 본문 사이에 ‘마태복음 5장 3~12절’이라고 적혀 있다. 청년 윤동주가 영감을 얻은 이 구절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으로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내용은 4절에 나온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14개월간 절필 끝에 ‘팔복’을 써 내려간 것을 보면 예수의 설교에서 위안과 힘을 얻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윤동주뿐만 아니라 예수는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수가 사람들을 매료시킨 역사적 장소로 갈릴리 호수를 빼놓을 수 없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나아간 곳이 갈릴리였고, 베드로를 제자로 세운 곳도, 물 위를 걸은 곳도, 파도를 잠재운 곳도 모두 갈릴리였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태복음 4장 23절)에서 알 수 있듯 갈릴리는 공생애의 중심지다.동서 12㎞, 남북 21㎞로 바다 같은 갈릴리 호수 주변에는 가버나움, 벳새다, 고라신 등 옛 지명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들은 무너져 있지만 기둥이나 터가 남아 있고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가옥들이 지어진 구조를 통해 초기 가정 교회의 흔적도 볼 수 있다. 가버나움에는 당시의 회당 건물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고고학자들은 예수가 드나들었을 회당으로 추정한다. 회당의 기초는 예수 당시의 것이며 건물은 3세기 이후의 것이다. 현지 안내를 맡은 이강근 박사는 “회당은 보통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왔을 때 이곳에서 많은 이적을 베푸신 장소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한 야이로가 바로 가버나움의 회당장이다. 가버나움 회당은 건물이 잘 보존된 덕에 예수의 기적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다.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치유를 받았다는 미그달(막달라)에는 예수가 갈릴리 호수를 건너 미그달에 처음 도착했다는 지점에 세운 표지판이 있다. 이곳은 대홍수 때 파묻혔다가 2000년이 지나 발견된 곳으로 현재도 발굴작업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미그달을 비롯해 주변 마을들은 갈릴리 호수와 직접 붙어 있어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배를 타고 마을을 오갔을 예수의 발걸음을 상상하게 한다. 갈릴리 호수는 공생애의 핵심 지역인 만큼 예수의 흔적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갈릴리에서는 ‘베드로 고기’(배스)도 요리해 파는데, 예수의 말에 따라 그물을 내린 베드로가 가득 잡은 것이 배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배도 탈 수 있는데 선원들은 전통 방식의 그물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관광상품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배를 탐으로써 순례객들은 20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갈릴리 순례의 하이라이트는 교회들이다. 산상수훈이 이뤄진 자리에 세운 팔복교회는 가는 길에 팔복의 한 구절씩 표지판이 있어 풍요로운 세상 속 영혼의 빈곤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순례에 동행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한 것은 역설의 말씀”이라며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다. 끝없는 사랑과 용서, 양보, 섬김을 보여 주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산상수훈 현장에는 많은 사람이 몰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도 없던 시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의 설교를 들었을까 싶지만 소 목사는 “자연적인 공명 시스템에 의해 소리가 멀리 쭉쭉 뻗어간다”고 설명했다.오병이어(五餠二魚)기념교회 안에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수천명을 먹인 기적을 상징하는 모자이크가 있다. 614년 페르시아군이 파괴해 1300여년간 폐허로 방치됐다가 1932년 비잔틴 시대 때의 유적을 찾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빵이 4개라는 점인데 광주리 아래 나머지 빵이 있다, 빵 1개는 예수가 들고 있다, 생명의 빵인 예수 자신이 빵을 의미한다 등 의견이 갈린다.다른 교회가 예수가 죽기 전 다닌 곳과 연관된 교회라면 베드로수위권교회는 부활 이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베드로수위권교회는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를 만나 복음 전도의 지상 사명을 부여한 것을 기리는 성전이다. 이 지역은 원래 채석장이 있었는데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는 곳으로 전해지면서 채석 작업이 중단되고 조그마한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교회 내부 바위는 요한복음 21장에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그 바위로 ‘멘사 크리스티’(그리스도의 식탁)로 불린다. 신화가 아닌 역사 속 장소로서 존재하는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굽히며 예수 부활의 의미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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