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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 프로그램 많다는데… 청년 탈북자들은 왜 겉돌고 있는가

    남북하나재단서 취·창업 교육 지원대부분 인턴이나 지방 생산직 위주 사무직 희망 젊은층과 눈높이 차이 청년층 구직난에 코로나 악재 겹쳐 취업 포기하고 유튜버로 나서기도 2009년 탈북한 장모(38)씨는 현재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서 운영하는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약 10개월간 디자인 교육과 실습을 받고 있다. 실습 기간 재단에서 월 80시간당 최저 시급 기준으로 약 60만원 정도 지원받고 있다. 장씨는 29일 “재단의 프로그램이 충실하다”며 만족해했다. 2013년 탈북한 임모(35)씨는 대학 졸업 후 수도권의 한 통신장비 업체에 다닌다. 남북경협관련 포럼에서 만난 기업가의 소개로 취업했다. 직장 3년차인 그의 연봉은 지난해 3300만원이 넘었다. 인맥을 통해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됐다. 최근 경계 철책선을 뚫고 월북한 탈북민 김모(24)씨 사건을 계기로 남한에 정착한 탈북 청년들의 취업, 안정 등의 문제에 관심이 쏠린다. 많은 사람들은 독재와 빈곤으로 살기 어려워 탈북한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월북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제대로 된 직업 없이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월북한다는 것은 정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탈북민 주관 부처는 통일부이지만, 탈북민 정착 지원은 남북하나재단으로 일원화된 상태다. 재단에는 취·창업뿐만 아니라, 장학, 복지, 교육, 영농, 돌봄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장씨처럼 이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임씨처럼 재단을 통하지 않고 주변에서 인맥으로 취업하는 사람도 있다. 월북한 김씨는 이들과 같은 안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문제는 재단과 탈북 청년들의 눈높이가 다른 데 있다. 재단을 찾는 탈북 청년들은 사무직을 원하지만 재단에서는 연결해 주는 직업은 인턴이나 현장직 또는 생산직이 대부분이다. 청년층 취업이 어려워진 데다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마땅한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게 더 어려워졌다. 한 20대 탈북민은 “재단에서 연결해 주는 직업은 대부분 인턴이거나 지방근무가 필요한 자리다”며 “재단의 지원이 창업을 준비하는 탈북민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혼 등을 고민하면 빨리 취업해야 해 주변 사람의 도움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아예 유튜버로 나서는 탈북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유튜브에 ‘북한’, ‘탈북’이라고 치면 수백건의 동영상이 뜬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취업도 안 되는 탈북 청년들이 유튜브에 몰리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단 17일… 제주의 속살을 느끼다

    단 17일… 제주의 속살을 느끼다

    V자로 깎아지른 협곡을 지나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덩굴을 젖히면 거대한 동굴 입구에 다다른다. 떡시루를 얹어 놓은 듯 바위가 층층이 쌓인 상층부와 그 밑으로 시꺼먼 구멍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바닥 전체를 드리운 그늘 밑 바위에는 녹색 이끼가 가득 덮였고, 동굴에서 나오는 찬 공기가 몸을 감싸 한여름인데도 서늘하다. 제주 구좌읍에 있는 웃산전동굴의 두 번째 출입구로, 오는 9월 4~20일 제주에서 진행하는 ‘2020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에서 한시적으로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일반 공개 전인 지난 24일 답사한 웃산전동굴은 1만년 전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유네스코에 등재한 한국의 유산 14건 중 유일한 자연유산이 제주에 있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응회구,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 3곳이다.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는 거문오름과 이곳에서 분출한 용암이 월정리 해변까지 흘러가며 만든 8개 동굴을 포함한다. 현재는 만장굴 일부만 공개하고 있는데, 17일간의 세계유산축전 기간에는 미공개 용암 동굴이 열린다. 12개 세계유산축전 프로그램 중 3개 구간, 전체 길이 21㎞에 이르는 ‘불의 숨길-만년의 시간을 걷다’가 핵심으로 꼽힐 만하다. 1구간은 제주 조천읍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웃산전동굴에 이르는 5㎞ 코스, 2구간은 웃산전동굴에서 만장굴까지 9㎞ 정도다. 기진석 제주 세계자연유산본부센터 학예사는 “만장굴 미공개 구간은 용암이 흐를 때 점성과 방향을 그대로 보여 주는 밧줄구조가 뚜렷하고, 옆면 역시 용암이 여러 차례 흘러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3구간은 만장굴에서 월정리 해안까지 7㎞의 길이다. 만장굴과 이어진 700m 김녕굴은 1993년 이후 낙석 위험에 따라 일반인 출입을 금지했는데, 이번에 전체 구간을 공개한다. 3개 구간에는 국내 유명 작가 20명이 각각 구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자연 미술을 설치한다. 매 주말 만장굴 4개 지점에서 빛과 소리로 표현한 아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프로그램 참여는 무료지만, 예약(8월 4일부터)이 필수다. 프로그램마다 진행 날짜와 제한 인원이 각각이라 홈페이지(worldheritage.kr)에서 우선 확인해야 한다. 강승부 세계유산축전 사무국장은 “자연유산은 훼손하면 복구할 수 없지만, 보존만 하면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도 없다”면서 행사의 의미와 당부를 동시에 전했다. 성산일출봉 우뭇개해안 일대에서는 9월 5일 기념식에 이어 6~7일 종합 퍼포먼스 ‘제주, 자연, 그리고 사람’을 연다. 절벽처럼 깎아지른 우뭇개해안 벽면에 영상을 투사하고, 앞편 수상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김태욱 2020세계유산축전 총감독은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프로그램은 물론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코로나19에 지친 이들을 보듬는 동시에,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야외 축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제주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미공개 용암동굴 17일 동안만…제주 2020세계유산축전

    미공개 용암동굴 17일 동안만…제주 2020세계유산축전

    V자로 깎아지른 협곡을 지나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덩굴을 젖히면 거대한 동굴 입구에 다다른다. 떡시루를 얹어 놓은 듯 바위가 층층이 쌓인 상층부와 그 밑으로 시꺼먼 구멍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바닥 전체를 드리운 그늘 밑 바위에는 녹색 이끼가 가득 덮였고, 동굴에서 나오는 찬 공기가 몸을 감싸 한여름인데도 서늘하다. 제주 구좌읍에 있는 웃산전동굴의 두 번째 출입구로, 오는 9월 4~20일 제주에서 진행하는 ‘2020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에서 한시적으로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일반 공개 전인 지난 24일 답사한 웃산전동굴은 1만년 전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유네스코에 등재한 한국의 유산 14건 중 유일한 자연유산이 제주에 있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응회구,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 3곳이다.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는 거문오름과 이곳에서 분출한 용암이 월정리 해변까지 흘러가며 만든 8개 동굴을 포함한다. 현재는 만장굴 일부만 공개하고 있는데, 17일간의 세계유산축전 기간에는 미공개 용암 동굴이 열린다.12개 세계유산축전 프로그램 중 3개 구간, 전체 길이 21㎞에 이르는 ‘불의 숨길-만년의 시간을 걷다’가 핵심으로 꼽힐 만하다. 용암이 흘렀던 동굴 입구 혹은 내부를 보거나, 동굴 윗길을 함께 따라간다. 1구간은 제주 조천읍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웃산전동굴에 이르는 5㎞ 코스, 2구간은 웃산전동굴에서 만장굴까지 9㎞ 정도다. 특히 일반 공개 전 답사에서는 용암 동굴 가운데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만장굴의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진석 제주 세계자연유산본부센터 학예사는 “만장굴 미공개 구간은 용암이 흐를 때 점성과 방향을 그대로 보여 주는 밧줄구조가 뚜렷하고, 옆면 역시 용암이 여러 차례 흘러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마지막 3구간은 만장굴에서 월정리 해안까지 7㎞의 길이다. 만장굴과 이어진 700m 김녕굴은 1993년 이후 낙석 위험에 따라 일반인 출입을 금지했는데, 이번에 전체 구간을 공개한다. 3개 구간에는 국내 유명 작가 20명이 각각 구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자연 미술을 설치한다. 매 주말 만장굴 4개 지점에서 빛과 소리로 표현한 아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프로그램 참여는 무료지만, 예약(8월 4일부터)이 필수다. 프로그램마다 진행 날짜와 제한 인원이 각각이라 홈페이지(worldheritage.kr)에서 우선 확인해야 한다. 강승부 세계유산축전 사무국장은 “자연유산은 훼손하면 복구할 수 없지만, 보존만 하면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도 없다”면서 행사의 의미와 당부를 동시에 전했다. 강 사무국장은 “이번 축전에서는 엄격하게 인원을 제한하는 식으로 자연유산 훼손을 방지하고, 그러면서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자연유산의 가치를 일부에게나마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성산일출봉 우뭇개해안 일대에서는 9월 5일 기념식에 이어 6~7일 종합 퍼포먼스 ‘제주, 자연, 그리고 사람’을 연다. 절벽처럼 깎아지른 우뭇개해안 벽면에 영상을 투사하고, 앞편 수상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김태욱 2020세계유산축전 총감독은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프로그램은 물론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코로나19에 지친 이들을 보듬는 동시에,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야외 축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제주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반중여론 불똥 튄 ‘디지털 놀이터’ 틱톡

    전 세계 반중여론의 불똥이 동영상 공유 애플리케이션(앱) ‘틱톡’으로 옮겨붙고 있다. 미 경제매체 포천은 최근 보도에서 “중국의 가장 성공적인 ‘인터넷 수출품’인 틱톡이 중국과 다른 국가 간 갈등의 새로운 화약고가 되고 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반(反)틱톡’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을 진단했다. 중국 정보기술(IT) 업체 바이트댄스가 소유한 틱톡은 지난해 전 세계 다운로드 횟수가 15억회를 넘는 등 스마트폰에 설치하지 않은 젊은이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행이 됐다. 하지만 중국과 마찰을 겪은 국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틱톡 금지령으로 엄포를 놓으며 젊은층의 ‘디지털 놀이터’는 국제외교 무대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틱톡이 반중여론의 표적이 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미중 갈등이 꼽힌다. 지난해 초부터 틱톡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미국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나온 뒤 백악관이 대중 무역 보복의 일환으로 틱톡 등 중국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겨냥할 것이라는 관측은 계속돼 왔다. 특히 이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틱톡의 각종 개인정보가 중국 정부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고 직접 언급하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틱톡 금지 가능성은 한층 더 커진 상황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반화웨이 전선을 주도한 데 이어 틱톡으로 다음 타깃을 옮기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날 미 하원은 연방정부와 국영기업이 제공한 기기에 틱톡을 다운로드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키며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2027년까지 화웨이를 자국에서 퇴출하기로 한 영국은 보수당을 중심으로 틱톡이 자국 안보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호주 정부도 틱톡의 국가안보 위협 여부를 조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틱톡을 바라보는 아시아 국가들의 시선도 달갑지 않다. 인도는 지난달 15일 중국과 국경 유혈충돌 사태를 겪은 후 틱톡 등 중국산 SNS 사용을 전격 금지시키며 틱톡에 대한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한 국가가 됐다. 인도는 전 세계 틱톡 다운로드 1위 국가다. 알자지라방송은 파키스탄 정보통신부가 부적절한 콘텐츠를 유통했다는 이유로 틱톡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고 21일 보도했다. 미국 등의 주장처럼 틱톡의 배후에 실제 중국 정부가 있는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인 사용자들의 정보는 미국 내 서버에 저장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없다는 게 틱톡의 주장이지만, 지난해 틱톡이 톈안먼 사태 등 중국 체제에 비판적인 콘텐츠를 검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여전히 중국 정부의 그늘 아래 있다는 시각도 상존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온난화가 만든 재앙 폭염·녹조·오존… 골든타임 놓치는 ‘한프리카’

    온난화가 만든 재앙 폭염·녹조·오존… 골든타임 놓치는 ‘한프리카’

    “2100년 우리나라의 폭염 일수가 연평균 28.5일로 지금(7.3일)보다 4배 이상 증가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의 섬뜩한 중장기 기상 전망이다. 여름철(6~8월) 한 달을 불볕더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저감 없이 현재의 농도가 유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미래의 모습은 암울하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고통은 이미 겪고 있다. 아프리카의 날씨처럼 더운 여름철을 빗댄 ‘한프리카’(한국+아프리카),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가 일상화됐다. 뜨거워진 대지는 물(녹조)과 대기(오존) 등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생명도 위협한다. 정부는 해마다 피해가 급증하자 ‘폭염특보’를 발령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 여름은 예년보다 무덥고 폭염 일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보했다. 2018년 최악의 폭염 경험에 힘겨운 여름나기가 우려되고 있다. 도로변 그늘막 설치와 유동인구가 많은 도로에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는 ‘쿨링 앤 클린 로드’ 조성 등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폭염 비상이 걸렸다. ●역대 최고 홍천 41도…기록 경신 시간문제 폭염(暴炎)은 일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는 무더위다. 지구온난화가 폭염 등 이상기후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더위가 빨라지고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상승하자 폭염특보를 발령해 국민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낮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지속되면 ‘폭염경보’가, 2일 이상 33도가 넘으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다. 21일 환경부와 기상청에 따르면 기상관측망이 전국으로 확대된 1973년부터 2019년까지 47년간 연평균 폭염 일수는 10.9일로 나타났다. 1980년대 8.2일이던 폭염 일수는 2010년대 15.5일로 89%(7.3일) 증가했다. 폭염 시작일도 빨라져 평균(5월 27일)과 비교해 2016년 5월 22일, 2017년 5월 19일, 2018년 4월 21일로 변화가 심하다. 기상청 관계자는 “폭염은 장마 및 기단의 영향이 큰데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 정체되면 무더위가 장기간 이어지고 폭염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은 최악의 폭염이 한반도를 엄습했다. 폭염 일수가 31.4일에 달하면서 국내 폭염 기록을 새로 썼다. 8월 1일 강원 홍천은 최고 기온이 41도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서울도 39.6도로 1907년 관측을 시작한 후 111년 만에 가장 더웠다. 서울에서는 7월 12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후 38일 만인 8월 18일 폭염특보가 해제됐다. 주간 폭염은 최저 기온이 25도가 넘는 ‘열대야’(熱帶夜)로 이어져 평년(5.1일)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7.7일에 달했다.폭염은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쳐 다른 기상재해보다 위험하다. 기온이 29도를 넘으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에서 낮 최고 기온이 29도 이상일 때 기온이 1도 오르면 사망률이 15.9%나 높아진다는 분석도 있다. 2018년은 온열질환 감시체계가 구축된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열사병으로 피로·두통·구역질 등을 수반하는 온열 질환자가 4526명 발생해 48명이 사망했다. 폭염으로 오존주의보 발령이 증가하고 낙동강 등 일부 상수원에서는 녹조 번식이 확대돼 물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2018년 최악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폭염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자연재난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올해 폭염 대책으로 특보 기준을 일 최고 기온에서 일 최고 체감온도로 변경해 국민 체감도를 높이기로 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횡단보도와 교차로에는 그늘막을, 도로살수장치와 벽면 녹화 등도 설치를 확대한다. 도시 열섬현상 완화를 위한 도시숲 확충도 추진할 계획이다. 배연진 환경부 신기후체제대응팀 과장은 “해마다 심해지는 폭염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상대적으로 낮보다 취약한 밤 시간대 지원책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개개인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저탄소 생활 실천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4대강 사업 이후 ‘녹조라떼’ 논란 확대 여름이면 기온이 올라가면서 하천과 호수의 물 빛이 녹색으로 변해 ‘녹조라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녹조는 오염물질 유입에 따른 부영양화로 남조류가 과도하게 성장한 현상이다. 녹조가 심하면 정수처리가 어렵고 악취뿐 아니라 물고기 폐사 등의 원인이 된다. 먹는 물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되면서 취·정수장에 조류 유입 방지시설 설치와 활성탄 교체 주기를 단축한다. 수돗물의 수질 분석 등을 강화한다. 녹조는 영양물질과 일사량, 수온 등 조건이 맞으면 대량 발생하는데 4대강 사업 이후 논란이 확대됐다. 남조류는 유속이 느리고 인과 질소 같은 영양물질이 풍부한 환경에서 수온이 25도 이상 상승하고 일사량이 높아지면 증가하는 특성을 갖는다. 낙동강 창녕함안보에서는 2017년 182일, 2018년 71일, 2019년 99일간 조류경보가 발령됐다. 강정보령보에서도 2017년 114일, 2018년 58일, 2019년 97일이나 된다. 2000년대까지는 7~8월에 조류경보 기준(유해남조류세포수 1000세포/㎖)의 남조류 개체수가 출현했는데 최근에는 6월 이전에도 발생하고, 11월까지 이어지는 등 변화가 심하다. 환경부가 6월 기준 전국 녹조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낙동강 3곳(강정고령·칠서·물금매리)에서 남조류 개체수가 증가했다. 특히 칠서 지점은 ‘경계’ 수준인 5만 9228세포/㎖가 측정됐다. 4대강 16개보 가운데 낙동강 중·하류 7개 보에서도 녹조가 발생했다. 정규석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녹조 발생 원인 중 자연의 영향이 큰 유량이나 일조량과 달리 오염물질이나 유속은 통제가 가능하다”면서 “오염물질은 저감 대책 및 관리 강화로 일정 수준에 도달한 반면 보 개방을 통한 유속 증가는 금강과 영산강에서 실증을 통해 효과가 확인됐음에도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 개방이나 철거로 유속 증가 및 체류시간 단축 효과가 있지만 “녹조 저감 대책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반론도 거세다.●미세먼지 보다 건강에 더 위험한 오존 뜨거워진 대기는 ‘오존’(O3) 생성을 활성화한다. 오존은 햇빛에 의해 자동차가 배출하는 질소산화물(NOx)과 도료·주유 중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의 광화학 반응으로 생기는 2차 오염물질이다. 폭염 시 발생량이 증가한다. 전국 평균 오존 농도는 2011년 0.024, 2015년 0.027, 2019년 0.030으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 기온이 높고 일사량이 많은 여름철 오후에 주로 발생한다. ‘오존주의보’(시간당 0.120)는 5~8월에 집중되는데 지난해는 총 60일(498회) 발령됐다.공기 중 오존은 상쾌하지만 다량 발생하면 강력한 산화력을 갖는다. 하수 살균, 악취 제거 등에 사용된다. 오존은 미세먼지와 달리 ‘무색무취’해 위험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고농도 오존에 노출되면 맥박과 혈압이 감소하고 두통과 숨이 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도가 심하면 폐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어 미세먼지보다 위험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과 연계해 원인물질인 NOx·VOCs 상시 저감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승광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과장은 “겨울철에 집중된 미세먼지 대책의 연중 상시 관리가 필요해졌다”며 “오존 경보 발령 시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특히 낮 시간을 피해 아침·저녁에 주유하는 등 슬기로운 생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가르치지 말고 느끼게 해줘야… 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죠

    가르치지 말고 느끼게 해줘야… 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죠

    실업배구 슈퍼리그가 한창이던 2004년 1월 어느 날.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남자 올스타전을 마친 네 명의 감독이 은밀히 한자리에 모였다. 깜깜한 강남 역삼동의 한 골목 어귀. 일요일 밤인데도 어스름 불 밝힌, 크지도 좁지도 않은 카페에서 넷은 무릎을 맞대고 ‘작당’을 시작했다. 신치용 당시 삼성화재, 김호철 현대캐피탈, 차주현 대한항공과 최삼환(작고) 상무 감독. 군 시절 같은 훈련소 동기이기도 했던 이 네 명의 실업배구단 감독들은 ‘배구도 프로화돼야 한다’는 절대 명제를 두고 새벽 동이 밝도록 침이 마를 때까지 토론을 벌였다. 사실 이전부터 배구인들의 프로화 열망은 몇 년을 두고 넓디넓게 퍼졌던 터였다. 결국 그해 12월 31일 프로배구연맹이 탄생하고 이듬해 2월 20일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첫 대결로 프로배구 V리그가 시작됐다. 이들 네 감독은 실업 딱지를 떼고 프로 간판을 단 각 팀의 사령탑으로 그대로 중용됐다. 그러나 특히 ‘지도자’ 신치용에게 실업배구가 ‘서론’이었다면 프로배구는 ‘본편’이었다. 그는 “그때 바야흐로 내 배구 인생 2막이 시작됐다”고 했다. 1995년 첫발을 내디딘 삼성화재에서 꼭 10년 동안 슈퍼리그를 8차례 제패한 그는 비슷한 기간 V리그에서도 8회 우승을 일궈냈다. 햇수로 11년을 프로 코트에 몸담았다가 제자들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떠난 지 5년째인 지금 그는 ‘신 촌장’으로 불린다.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의 수장이다. 지난해 2월 임기 2년의 촌장 자리에 앉았으니 벌써 1년 6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임기 반년을 남긴 신 촌장을 충북 진천선수촌장실에서 만났다. 반색하며 맞았지만 그의 첫마디는 “이제 배구 이야기는 그만합시다”였다.-그렇긴 하지만 배구 이야기를 뺄 수는 없다. 가장 애착이 가는 배구 기록은 무엇인가. “모든 기록이 다 소중하긴 하다. 그중에서도 슈퍼리그 77연승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쉽지 않은 기록이다. 1995년 삼성화재 초대 감독에 앉았을 때 우리 팀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생각했다. 나를 감독으로 발탁한 이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 팀의 가장 좋은 전략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결론은 ‘경기에서 이기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게 77연승의 원동력이자 전략으로 발전했다. 매 경기를 목숨 걸고 했다. 77연승은 그 결과다.” -줄가자미라는 생선으로 유명한 경남 거제 출신이다. 그 생선을 닮아서 ‘신치용 배구’가 찰지다는 얘기들을 한다. “일본말로 이시가리라고 하는데, 한번 먹자는 약속을 여태 못 지켜 죄송하다. 그게 봄철에만, 그것도 잠깐 동안만 나오는지라 여간해선 맛보기 쉽지 않다(웃음). 찰지다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거제를 떠나기 전부터 시작해 48년 동안 줄곧 배구를 놓지 않았고 그 가운데 32년을 지도자로 보냈다. 한국전력 코치, 감독을 거쳐 삼성화재 감독으로만 21년이었다. 전에는 프로야구 김응룡 감독님이 18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셨는데, 내가 그 기록을 깼다. 일개 선수로 시작해 지도자로 자수성가했다. 야망이 없었다면 못 이룰 일들이다. 이만 하면 몸값 비싼 이시가리에 비유할 만하지 않은가.” -말 나온 김에 지도자 이야기 좀 해 보자. 어떻게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나. “거제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배구를 시작했다. 포지션은 알다시피 세터였다. 1977년 국가대표에 뽑혔지만 늘 후보로 ‘닭장’(대기선수) 신세였다. 밀양에서 배구를 시작한 동갑내기 김호철 감독이 더 잘했기 때문이다. 1980년을 넘기고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소속팀 한국전력에서도 은퇴해 일반 사원으로 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작고한 양인택 당시 감독이 플레잉코치로 호출했다. 이때가 지도자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삼성화재 감독이 될 때까지 12년간 양 감독의 용병술과 전략·전술을 배웠다.” -지금까지 리더십에 관한 강의도 제법 많이 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고 덕목은 무엇인가. “난 선수 생활을 길게 하진 않았지만 지도자로서 할 것은 다했다. 지도자는 선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배구판에서는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한테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많이 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제자’라고 부르거나 일컬은 적이 없다. 잘잘못을 스스로 느끼게 한 적은 있어도 이러쿵저러쿵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팀의 중심은 선수이고 감독이나 코치는 선수들을 도와주는 스태프에 지나지 않는다. 감독이 선수를 이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을 잘 보듬어서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나는 지금까지 하루에 한 시간 반분씩 트레드밀(러닝머신) 타는 걸 빼먹은 적이 없다. 술 먹고 그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고픈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선수들의 눈이 두렵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해지려고 뛰는 것이다.” -지금 프로배구 감독 중에는 삼성화재 출신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신치용 사관학교’라는 말도 있다. “OK저축은행을 맡았던 김세진, 지금 맡고 있는 석진욱을 비롯해 우리카드 전현 감독 김상우·신영철, 지금도 현대캐피탈을 지휘하는 최태웅, 삼성화재 신진식,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등이다. 그러고 보니 남자부 7개팀에서 지금 현역으로 뛰는 감독만 4명이다. 이들 모두 나와 함께 삼성화재 배구의 전성기를 일궈낸 후배 감독들이다. 리베로 출신은 빠졌지만 이들을 한 팀으로 꾸리면 좌진식·우세진, 가운데 김상우, 왼쪽에 석진욱 등 고스란히 슈퍼리그~V리그 초반의 삼성화재 모습 그대로다.” -가장 애착이 가는 후배 감독은 누구인가. 굳이 한 명을 꼽으라면.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열 개 중 있겠나. 굳이 한 명만 뽑으라면 지금 우리카드를 맡고 있는 신영철 감독이다. 내가 코치 생활을 하던 1988년 한국전력에 입단했고 이후로도 오랜 시간 같이했다. 같은 세터 출신이라 더 각별했던 것 같다. ‘바늘과 실’에 비유되기도 했다. 1996년 삼성화재로 팀을 옮긴 3년 뒤 은퇴한 그를 코치로 기용했다. 우리는 감독과 코치로 실업리그 7연패를 이끌었다. 삼성 출신의 많은 후배 감독들이 코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래서 신 감독은 내게 특별하다. 말은 어눌한 것 같아 보이지만 두뇌 회전이 남다르다. 그것까지 날 빙의했다고 하더라.” -감독 시절 가장 기억나는 선수는. “수없이 많다. 지금 전현 감독들과 겹치지만 창단 멤버로 첫 우승을 일궜을 때 김세진, 김상우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 하나 허투루 기억할 선수는 없다. 다만 이들에 가려 제대로 뛰어 보지도 못하고 그늘에서 은퇴를 맞았던 선수들이 이들만큼 많다. 그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감독은 악역이다. 모두를 품고 싶지만 머리 따로, 가슴 따로 돌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선수들을 마주할 때는 더욱 그렇다. 현대캐피탈에 있던 박철우가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면서 데려올 당시, 그쪽에서 최태웅을 보상선수로 찍었다. 보호선수로 손을 못 대게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가장 섭섭했을 것이다. 장병철은 더 하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은퇴한 경우다. 2007년 신진식, 김상우, 방지섭 셋을 한꺼번에 은퇴시켰을 때는 이가 한꺼번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요즘 스포츠계가 고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어수선하다. 스포츠 폭력을 바로잡을 묘책은 무엇인가. “삼성화재 감독을 지낼 당시 경기 분당체육관 입구에 ‘본립도생’이라고 쓴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다. ‘기본이 돼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아갈 길이 보인다’는 뜻이다. 배구 감독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 선수촌장으로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비로 이것이다.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기본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선수 간, 혹은 선수와 지도자 간도 마찬가지다. 기본을 지키면 폭언과 폭력이 난무할 이유가 없다. 선수는 체력과 기술 연마에, 지도자는 그 선수를 돕는 일련의 프로그램에 집중하면 된다. 한국전력 코치를 처음 맡은 1983년 슈퍼리그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그리고 시대가 분명히 다르다. 선수의 개성과 특성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정보 시대다. 컴퓨터만 켜면 운동 방법을 비롯한 온갖 정보가 쏟아진다. 선수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훈육하는 시대는 먼 옛날 일이다. 선수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여건과 길을 만들고 보여 줘야 한다. 그게 이 시대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선수들도 훈련 외에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믿어야 한다. ‘신한불란’(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다)이란 말을 믿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도쿄올림픽이 1년 미뤄졌다. 임기가 반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난해 선수촌장 제의를 받고서 남은 일생의 목표를 올림픽에 걸겠다는 각오로 수락했다. 선수촌장으로 발탁된 건 배구 지도자 시절 팀을 잘 관리하고, 최강의 조직력으로 다듬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선수, 지도자, 경영인 등으로 쌓은 경험을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넉 달째 텅 빈 선수촌을 바라보니 허탈감마저 느낀다. 선수 없는 선수촌은 팥 없는 찐빵이나 다를 바 없다. 연임에 관해선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몫이다. 다만 지금의 내 직분에 맞게 선수촌장으로서의 할 일에 집중할 뿐이다. 그게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지켜야 할 ‘기본’이다.” 글 사진 진천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신발투척’ 50대 “방청 불허에 그만…대통령 아닌 레드카펫 겨눠”(종합)

    ‘신발투척’ 50대 “방청 불허에 그만…대통령 아닌 레드카펫 겨눠”(종합)

    “더워서 쉬고 있는데 문 대통령이 지나갔을 뿐”정창식씨, 기자회견 열어 자신의 행위 해명16일 국회 개원식 때 文 향해 신발 던져경찰, 현장서 붙잡아 구속영장 신청…법원 기각국회 개원식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벗어 던진 혐의로 구속 기로에 섰던 정창옥(57)씨가 문 대통령을 맞추려고 신발을 던진 것은 아니었으며 당시 개원식 방청이 불허돼 허탈감에서 우연히 나온 우발적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20일 저녁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개원식에 갔다가 방청이 불허돼 허탈한 마음으로 국회의사당 주변을 맴돌다가 우연히 기회가 다가왔다”며 행위 배경을 설명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가출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그는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정씨는 “만약 제가 계획을 했다면 문 대통령이 나오는 시간과 나오는 형태를 사전에 체크했을 것이고, 기자들 속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 맞힐 수 있도록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워서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마침 문 대통령이 그곳을 지났을 뿐”이라고 했다.“목표는 대통령 아닌 레드카펫, 그곳에 명중” 北인권단체 ‘남북함께국민연합’ 대표 출신연극배우 활동시 지도 고교생 성폭행 전력 정씨는 “저는 사람을 맞히려는 게 아니라 상식과 원칙과 도덕을 내팽개친 뻔뻔한 좌파를 향해 던진 것”이라면서 “목표는 레드카펫이었고 그곳에 명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책 1권과 휴대전화도 갖고 있었으나 던지기에 마땅치 않아 신발을 선택했다고 했다. 정씨는 지난 16일 오후 3시 19분쯤 국회의사당 본관 2층 현관 앞에서 제21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벗어 던진 혐의(공무집행방해·건조물침입)로 현행범 체포됐다. 당시 정씨가 던진 신발은 문 대통령 몇m 옆에 떨어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사안이 매우 중하다”며 1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19일 구속의 상당성(타당성)과 필요성이 부족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정씨는 북한인권단체 ‘남북함께국민연합’ 공동대표로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1995년 연극배우 일을 할 당시 지도하던 고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저는 강간한 적이 없으나 그 아이의 말 한마디 때문에 구속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제주 만장굴 일대 ‘미기록종’ 이끼류 식물 2종 발견

    제주 만장굴 일대 ‘미기록종’ 이끼류 식물 2종 발견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 일대에서 국내에서 보고되지 않았던 2종의 선태식물(이끼류 식물)이 발견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이 2종의 이끼는 지난해 ‘제주도 천연동굴 보존관리방안 연구 및 조사’의 일환으로 용암동굴 입구 주변 및 동굴 상부 지표의 식생분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형태특성 분석 등을 거쳐 지난 6월 ‘Journal of Asia-Pacific Biodiversity’학회지 온라인에 보고됐다. 털밭둥근이끼는 엽상체 선태식물로 임도 또는 밭 주변의 그늘지고 습한 흙 위에 생육한다. 투명한 복인편이 엽상체 가장자리까지 올라오고, 포자의 크기가 100∼125um로 북아메리카, 유럽, 러시아, 일본 등 북반구에 넓게 분포하며, 국내에서는 제주도 만장굴 주변 임도에서 발견됐다.엽상체 선태식물로 임도 또는 밭 주변의 그늘지고 습한 흙 위에 생육한다. 엽상체는 자주빛 연녹색으로 너비가 0.8∼1.5mm로 좁고, 포자의 크기가 65∼85um로 속내 다른 종보다 작다. 북아메리카, 유럽, 러시아, 호주, 일본 등지에서 넓게 분포한다. 한편 ‘제주도 천연동굴 보존관리방안 연구 및 조사’ 학술용역은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 마련을 위해 문화재청 지원으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개년 간 총 1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토착정서의 핵심 가치, 전경인 정신 아들의 입장에서 신동엽 선생의 가장 중요한 저력이랄까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토착정서랄까 농경정신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신 것이 하나고요. ‘백제’라는 멸망했으나 끊임없이 정신이 호출되는 나라가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토착정서를 통해 동학을 비롯한 민중종교 사상을 소화해냈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도 자기 것으로 거르고 녹여 받아들였다. 이러한 힘으로 선생은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도 정결하고도 견고한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선생을 두고 한 “너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인”이라는 평이 떠올랐다. 1950년대 한국 시단을 유행병처럼 휩쓴 모더니즘 열풍에서 비켜서면서 신동엽 선생은 등단작 제목처럼 ‘이야기하는 쟁기꾼’으로 훤칠하게 등장한 것이다. 1959년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두고 신동엽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케이팝 경연대회에 판소리를 들고 나간 격”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강조한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이러한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가 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께서 생태를 이야기하려면 신동엽 시의 도가적 상상력을 읽으라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아버님은 단순 기능자를 벗어나 온전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정신을 강조하셨죠. 스물두 살에 쓰신 ‘엉뚱한 이론’이라는 산문에서는 두뇌 운동의 탈선과 과잉을 비판하셨는데, 문명의 맹목적 확장을 경계하신 거지요.” 선생의 사유 저변에는 초기부터 노장사상, 원시반본 정신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아버지의 현재적 의미를 이러한 대안적 사유 곧 ‘대지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심층적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민족과 저항을 넘어 ‘시인 신동엽’으로 이렇게 신동엽 선생은 ‘민족시인’이라는 그간의 규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지, 전경인, 흙 같은 원초적 개념을 통해 아버지의 시가 새로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작품은 어떤 시인들보다 내구성과 확장성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 앞에 붙었던 통일, 반독재, 저항이라는 호칭이 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주어졌다”면서 이제 수식어가 달라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산문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을 읽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사유 체계에서만이 아니라 장르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이 선생을 폭넓은 ‘시인 신동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 교수는 “해방 직후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면 시와 음악과 무용 같은 종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떠올렸다. 기타를 끼고 살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아버지는 오페레타 ‘석가탑’,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같은 동시대 누구도 꿈꾸지 못한 양식들을 남겼다. 선생은 서정시, 서사시, 장시, 산문시, 오페레타, 시극, 연극, 방송대본 등에 모두 진력했다. ‘금강’을 술회하는 인터뷰에서는 교향시극 쓰듯이 썼다고 토로했고, 타계 직전에는 서사시 ‘임진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완성됐다면 한국문학은 빼어난 분단 서사시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는 시전집과 산문전집, 그리고 몇 종의 평전으로 완미하게 정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들로서는 미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방대하고 정치한 자료를 망라한 본격 평전이 나와야 합니다. 쓰는 시절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자료의 한계도 있었을 겁니다. 약전(略傳)을 넘어 보완된 자료를 텍스트로 한, 그때는 안 보이던 것을 담은 평전이 나오길 고대합니다.”●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트라이앵글 신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분이었는데 부여로 흘러들어와 극진한 사랑과 전적인 신뢰로 외아들 신동엽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 사랑과 신뢰는 신동엽의 인생 갈피마다 회복과 의지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이 떠난 후 21년을 더 부여를 지키신 것이다. 신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전향을 했고, 해방 후에는 북으로 가셨다. 남쪽에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때부터 힘겨운 생을 사셨다. “어머니를 매개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외할아버지 전집을 읽으면 사라져 가는 농촌문화를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생태학적 견지와 어머니의 짚풀문화가 연결되면서, 세 분이 아스라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신 교수의 어머니 인병선 여사는 ‘짚풀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실물적 자료들에 대한 섭렵과 고증과 수집을 마다하지 않았다.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에 개관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것들은 빨리 삭아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녹화로 다 기록해 세월이 흘러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제 박물관장도 제가 맡았어요. 저희 가계(家系)가 모두 제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오랜 생애의 빛과 빚을 품은 ‘시인 신좌섭’ 신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의사라는 안정된 비전을 던지고 1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군대를 포함해 13년간 바깥에서 내면을 다지고 돌아왔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을까에 최선의 관심을 두고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과, 숙의민주주의에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을 결합하는 일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 교수는 이러한 범주가 부모님의 생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그늘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지고 그것을 완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자 신좌섭’의 모습에 가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경인’ 정신의 현대적 실현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이처럼 오랜 생애의 빛이자 빚으로 우뚝하시다. 신 교수는 생애에서 두 번의 큰 고통을 겪는다. 2014년에 겪은 참척의 슬픔과 최근에 겪은 병고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7년에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아버지 50주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일은 시작(詩作),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겨진 일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활동일 것이다. 신 교수는 몇 번이고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동엽 선생과 자신의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시편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는 아버지의 ‘좋은 언어’와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자신의 ‘좋은 언어를 주소서’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1970년 유고로 발표된 ‘좋은 언어’는 “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라면서 언어 과잉의 세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언어를 주소서’는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으로서 “이승엔 더 이상/아름다움을 담을 그릇이 없나니”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모(敬慕)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은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에 관해 암시를 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아끼고 있다”고 했다. 인병선 여사의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했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전경인’ 정신을, 아들의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새로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용어 클릭]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온전히 토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존재’라는 뜻으로, 서구사상이나 외래문명에 대응해 온 신동엽 시인의 철학 사상을 뜻한다.
  •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트라이앵글 신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분이었는데 부여로 흘러들어와 극진한 사랑과 전적인 신뢰로 외아들 신동엽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 사랑과 신뢰는 신동엽의 인생 갈피마다 회복과 의지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이 떠난 후 21년을 더 부여를 지키신 것이다. 신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전향을 했고, 해방 후에는 북으로 가셨다. 남쪽에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때부터 힘겨운 생을 사셨다. “어머니를 매개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외할아버지 전집을 읽으면 사라져 가는 농촌문화를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생태학적 견지와 어머니의 짚풀문화가 연결되면서, 세 분이 아스라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신 교수의 어머니 인병선 여사는 ‘짚풀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실물적 자료들에 대한 섭렵과 고증과 수집을 마다하지 않았다.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에 개관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것들은 빨리 삭아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녹화로 다 기록해 세월이 흘러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제 박물관장도 제가 맡았어요. 저희 가계(家系)가 모두 제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오랜 생애의 빛과 빚을 품은 ‘시인 신좌섭’ 신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의사라는 안정된 비전을 던지고 1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군대를 포함해 13년간 바깥에서 내면을 다지고 돌아왔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을까에 최선의 관심을 두고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과, 숙의민주주의에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을 결합하는 일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 교수는 이러한 범주가 부모님의 생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그늘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지고 그것을 완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자 신좌섭’의 모습에 가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경인’ 정신의 현대적 실현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이처럼 오랜 생애의 빛이자 빚으로 우뚝하시다. 신 교수는 생애에서 두 번의 큰 고통을 겪는다. 2014년에 겪은 참척의 슬픔과 최근에 겪은 병고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7년에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아버지 50주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일은 시작(詩作),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겨진 일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활동일 것이다. 신 교수는 몇 번이고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동엽 선생과 자신의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시편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는 아버지의 ‘좋은 언어’와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자신의 ‘좋은 언어를 주소서’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1970년 유고로 발표된 ‘좋은 언어’는 “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라면서 언어 과잉의 세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언어를 주소서’는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으로서 “이승엔 더 이상/아름다움을 담을 그릇이 없나니”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모(敬慕)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어버지의 작품은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에 관해 암시를 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아끼고 있다”고 했다. 인병선 여사의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했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전경인’ 정신을, 아들의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새로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 전경인 정신 아들의 입장에서 신동엽 선생의 가장 중요한 저력이랄까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토착정서랄까 농경정신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신 것이 하나고요. ‘백제’라는 멸망했으나 끊임없이 정신이 호출되는 나라가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토착정서를 통해 동학을 비롯한 민중종교 사상을 소화해냈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도 자기 것으로 거르고 녹여 받아들였다. 이러한 힘으로 선생은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도 정결하고도 견고한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선생을 두고 한 “너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인”이라는 평이 떠올랐다. 1950년대 한국 시단을 유행병처럼 휩쓴 모더니즘 열풍에서 비켜서면서 신동엽 선생은 등단작 제목처럼 ‘이야기하는 쟁기꾼’으로 훤칠하게 등장한 것이다. 1959년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두고 신동엽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케이팝 경연대회에 판소리를 들고 나간 격”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강조한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이러한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가 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께서 생태를 이야기하려면 신동엽 시의 도가적 상상력을 읽으라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아버님은 단순 기능자를 벗어나 온전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정신을 강조하셨죠. 스물두 살에 쓰신 ‘엉뚱한 이론’이라는 산문에서는 두뇌 운동의 탈선과 과잉을 비판하셨는데, 문명의 맹목적 확장을 경계하신 거지요.” 선생의 사유 저변에는 초기부터 노장사상, 원시반본 정신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아버지의 현재적 의미를 이러한 대안적 사유 곧 ‘대지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심층적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족과 저항을 넘어 ‘시인 신동엽’으로 이렇게 신동엽 선생은 ‘민족시인’이라는 그간의 규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지, 전경인, 흙 같은 원초적 개념을 통해 아버지의 시가 새로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작품은 어떤 시인들보다 내구성과 확장성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 앞에 붙었던 통일, 반독재, 저항이라는 호칭이 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주어졌다”면서 이제 수식어가 달라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산문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을 읽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사유 체계에서만이 아니라 장르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이 선생을 폭넓은 ‘시인 신동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 교수는 “해방 직후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면 시와 음악과 무용 같은 종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떠올렸다. 기타를 끼고 살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아버지는 오페레타 ‘석가탑’,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같은 동시대 누구도 꿈꾸지 못한 양식들을 남겼다. 선생은 서정시, 서사시, 장시, 산문시, 오페레타, 시극, 연극, 방송대본 등에 모두 진력했다. ‘금강’을 술회하는 인터뷰에서는 교향시극 쓰듯이 썼다고 토로했고, 타계 직전에는 서사시 ‘임진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완성됐다면 한국문학은 빼어난 분단 서사시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는 시전집과 산문전집, 그리고 몇 종의 평전으로 완미하게 정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들로서는 미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방대하고 정치한 자료를 망라한 본격 평전이 나와야 합니다. 쓰는 시절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자료의 한계도 있었을 겁니다. 약전(略傳)을 넘어 보완된 자료를 텍스트로 한, 그때는 안 보이던 것을 담은 평전이 나오길 고대합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 조각가 김선영, ‘궁극적 욕망‘ 전

    조각가 김선영, ‘궁극적 욕망‘ 전

    조각가 김선영의 개인전 ‘Heart Land 2020-궁극적 욕망’이 강원도 고성군 조각미술관 바우지움에서 열리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오염된 환경, 이기적인 욕심, 부패한 권력 등 인간 세상의 그늘진 민낯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로 갇힌 동굴 같은 작업실”에서 욕망의 근원을 찾고자 했던 작가는 물질문명이 있기 전 구석기 시대의 동굴 빌렌도르프에 시선을 멈췄다. 11cm의 작은 빌렌도르프 비너스 조각상은 기원전 2500년 당시의 절실했던 소망을 담고 있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주술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이 조각상은 현대인의 세속적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작가는 빌렌도르프 비너스 형상에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결합하는 시도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성찰한다.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작가는 한국, 미국, 홍콩,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삼성공화국 보면 한국이 보인다

    삼성공화국 보면 한국이 보인다

    삼성 라이징/제프리 케인 지음/윤영호 옮김/저스트북스/520쪽/2만 2000원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한국 재계 1위의 `반도체 제국´ 삼성에는 다양한 성공신화가 전해지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대중들이 줄을 잇는다. 한쪽에선 반(反)삼성의 정서 또한 만만치 않다. 성공의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 이면의 감춰진 그늘은 무시해도 좋을까. 정보기술(IT) 전문 한국 특파원으로 활약한 제프리 케인은 전·현직 삼성 직원과 경영진, 정치인, 언론인, 사회운동가 등 400여명을 인터뷰해 삼성의 모든 것을 담은 ‘삼성 라이징’을 냈다. 애플을 물리치고 기술시장을 장악한 배경이며 애플, 소니와 경쟁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눈에 띈다.“`가방들은 놔두고 당장 비행기에서 내리세요´ 기내 승무원들이 소리쳤다.” 책의 첫 장, 첫 문장도 2016년 10월 5일 아침 미국 루이빌 국제공항의 `갤럭시 노트7 발화 사건´으로 시작한다. 갤럭시 노트7은 출시되자마자 대박 신호탄을 쏴올렸지만 발화 사고가 이어지면서 삼성의 위기를 불렀다. 하지만 6개월 뒤 삼성은 애플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기술 기업으로 우뚝 선다. 저자는 이른바 `삼성 DNA´를 창립자 이병철 회장에서부터 찾는다. 1983년 11월 28세의 애플 창업가 스티브 잡스와의 대면 일화가 흥미롭다. 자신의 꿈인 ‘태블릿 PC’ 부품을 찾기 위해 삼성을 방문한 스티브 잡스는 73세의 이병철 회장에게 ‘미래는 모바일에 있다’고 끈질지게 주장했다. 잡스가 접견실에서 나간 뒤 이병철 회장의 외마디는 이랬다.“스티브 잡스는 IBM에 맞설 인물이 될 걸세.” 저자는 “삼성이 없었다면 애플의 아이폰도 없었을 것이고, 잡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삼성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삼성은 ‘Sam-suck’(삼성에 최악이라는 구어를 붙인 말)이란 별칭대로 조악한 가전회사였지만 잡스는 한국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삼성을 찾았다. 2009년 삼성의 갤럭시S 출시로 양측은 라이벌 관계에 빠진다. 저자는 2010년 취재차 삼성 수원 캠퍼스를 찾았을 때 탈세 혐의에 대해 사면받고 복귀한 이건희 회장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다고 한다. “왕가의 분쟁과 궁정 음모같은 봉건적 전통의 재현이라는 스토리의 또 다른 면을 보았다”는 말대로 저자는 총수 일가의 분쟁과 무노조 등 일부 조직 운영에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다. 1980년대 초 총수일가가 메모리 기술자들에게 쌀쌀한 3월 야간행군과 16시간 노동을 시킨 일, 1995년 이건희 회장이 불량제품에 대한 직원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5000만 달러에 달하는 14만개 제품을 파괴한 사례를 지적한다. 책은 이건희 회장의 탈세 및 배임혐의와 이재용 부회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도 상세히 추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은 오너 일가의 현명한 판단 때문임을 분명히 한다. `마누라 빼곤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을 놓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주요 회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신흥 강국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스토리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시각을 통해 전달하려 했다는 저자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이것은 맨손으로 시작해 날마다 더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며 성을 쌓아왔던 금욕적인 세대의 스토리다. 성실한 노력과 공동의 책임이 어우러지면서 그들은 공동의 목표의식을 다졌다. 내 한국인 친구들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박지원 후보자가 갖는 몇 가지 함의/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지원 후보자가 갖는 몇 가지 함의/이종락 논설위원

    1990년쯤 평민당(평화민주당) 시절 3년 전 평민당에 입당했던 박지원이 당시 김대중(DJ) 총재에게 말했다. “총재님, 만약 예수가 부활한다면 제일성으로 뭐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김 총재가 “뭐여~”라고 답변을 구하자 박지원은 “기자 왔니?”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부활하더라도 기자가 오기 전에 부활 소식을 알려선 안 되죠.” 이 일화는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의 언론관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박 후보자는 당대변인 시절 새벽 4시쯤 일어나 12개 조간신문을 모두 읽은 뒤 6시 30분에 동교동에 가서 DJ에게 보고했다. 이후 현안에 대해 DJ의 견해와 지시를 들은 뒤 기자들에게 DJ의 생각은 물론 숨소리까지 그대로 전달했다. 대표적인 ‘언론 프렌들리’ 정치인 박지원이 국정원장에 내정된 며칠 뒤 전화를 걸었다. DJ의 가신으로, 동교동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문재인 정부하에 국정원장을 지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박 후보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박 후보자는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는 기간에는 일체의 언론과의 전화 소통과 SNS 활동을 안 하겠다는 말씀 들으셨죠. 내가 국정원장이 된 의미는 이 위원이 절 잘 아시니 그대로 써 주세요. 저도 궁금하네요”라며 답변을 피했다. 문재인 정부와 거리를 두고 국민의당과 민주평화당, 민생당에서 활동한 박 후보자로선 소원이 하나 있었다. “남북사업을 다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이뤄질 당시 막후에서 대북 밀사·특사로 활약해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 고위층들과 막연한 사이다. 북한 인사들과 회담 테이블에 앉아 반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어쩌면 남한 내 유일한 사람일 듯싶다. 그런 소망을 이뤘으니 박 후보자가 국정원장 임명 발표 직후 “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겠다”며 흥분할 만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서 노무현 정부보다 김대중 정부를 더 쳐주는 북한 고위층들의 평가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DJ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남북 관계를 돌파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하에 DJ를 다시 호출한 셈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박지원 후보자는 임명 발표 2주 전에 이미 국정원장으로 내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답보 상태에 있는 남북 관계에 대한 해결사로만 박 후보자를 선택했을까. DJ-친노-친문 간 외교·안보 연정과 더불어 좀처럼 허물 수 없는 정치적 연대를 이뤘다는 데 이번 인사의 의미를 찾는 게 옳을 듯싶다. 박 후보자는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수사로 구속됐다. ‘대북송금 특검’을 국민의 정부 관계자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벤트로 받아들였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와의 정치적 단절이 필요했고, DJ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던 문 대통령으로서도 박 후보자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을 테고 이번 임명으로 ‘구원’(舊怨)을 완전히 털어 버린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박 후보자는 석방된 뒤 서울대와 전남대 강연 등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불려가 “김대중 세력과 노무현 세력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 이게 내 뜻이다”라는 얘기를 듣곤 일절 비난을 삼갔다. 이후 노 전 대통령 임기 말기에 청와대에서 화해의 식사 자리도 가졌지만 남아 있던 마음의 앙금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해소한 셈이다. 실제로 박 후보자는 야당 시절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해서 진보개혁 세력이 재집권해야 DJ가 말한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 관계가 살고 또 호남이 살 수 있다. 진보개혁 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갈 겁니다”라고. 올해 78세인 박 후보자가 지난 21대 총선에서 패하자 기자는 그가 소망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가 힘들 것으로 봤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정치 인생 막바지에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고 사라지고 싶다”는 희망을 못 이룬 것처럼. 특히 총선에서 자신을 이긴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 시 행정관으로, 민주당 원내대표로 활동할 때 참모였던 부하라 “박지원 시대도 이젠 저무는구나”라고 판단한 것도 사실이다. ‘불사조’ 박지원은 국정원장 임명 발표 당시 “앞으로 제 입에서는 정치라는 정(政) 자도 올리지도 않겠다”고 했지만, 그의 비중을 감안할 때 진보세력의 가교 역할을 맡을 듯하다. 박지원의 향후 동선이 후반기 문재인 정부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jrlee@seoul.co.kr
  • 인도 부다가야 첫 한국 사찰 분황사 ‘윤곽’

    인도 부다가야 첫 한국 사찰 분황사 ‘윤곽’

    조계종이 인도 부다가야에 건립할 첫 한국 사찰 분황사의 윤곽이 드러났다. 14일 조계종 총무원이 공개한 건축계획과 설계도(조감도)에 따르면 분황사는 부다가야 기후와 부지, 주변시설을 고려해 대웅전과 숙소, 보건소를 갖춘 다목적 한국식 사찰로 조성될 전망이다. 총건축면적 1302.88㎡, 연면적 1741.56㎡ 규모 부지에 한국 전통 건축양식 건물 3동이 들어선다. 대표 건물인 대웅전은 433.84㎡ 대지에 262.26㎡ 규모로 세운다. 태양의 고도가 높아 일사량이 많고 고온다습한 기후를 고려해 그늘이 많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문경 봉암사 태고선원과 같은 회랑식 법당으로 설계했다. 법당 옆에 둘 숙소동은 연면적 964.45㎡인 2층 구조로 만든다. 1인실 15개, 2인실 6개를 갖춰 27명이 한꺼번에 이용 가능하다. 그저 한국인 순례자의 신행과 숙박 차원의 도량에 머물지 않고 보건소를 건립해 지역민과 함께하는 복합 시설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눈길을 끈다. 보건소 건물에는 진료소, 2인실 5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숙소 5개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조계종 측은 인도 현지의 코로나19 확산과 인허가 관련 등 사정을 감안해 건축 공정을 확정하진 않았지만 3개월 이내에 사업허가를 승인받고 늦어도 내년 3월부터는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이와 관련, “부다가야에 한국인 순례객이 많이 찾을 것에 대비해 숙소를 좀더 늘리고 건축물 3개동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용산 원효대교 북단 교통섬 녹지대 재조성 10월 마무리

    서울 용산구가 원효대교 북단 교통섬 녹지대 재조성 사업을 시행한다고 14일 밝혔다. 교통섬 내 훼손된 녹지와 시설물을 정비하는 데 사업비 8억 7000만원을 투입해 10월 중으로 공사를 마무리한다. 구 관계자는 “현재 사업 대상지는 조성된 지 오래돼 주민들이 이용할 만한 시설이 부족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적어 녹지대 재조성 공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사는 4개 구간으로 나눠 진행된다. 1구간에는 건강쉼터를 설치한다. 운동 공간, 산책로, 데크·그늘 쉼터를 설치하고 무궁화를 심어 정원을 조성한다. 2구간은 숲속 커뮤니티공간과 중심문화광장이 들어선다. 주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3구간에는 철쭉 등 꽃이 피는 키 작은 나무와 소나무와 같은 키 큰 나무를 심는다. 사각 정자, 앉음 벽을 설치해 보행자를 위한 휴게공간도 조성한다. 4구간은 나무와 꽃을 심는 공간과 빗물정원으로 조성한다. 빗물정원에는 꽃창포, 흰말채나무, 억새모닝라이트 등 다양한 식물을 심어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조성한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文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대전환 시작…새로운 100년 설계”

    文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대전환 시작…새로운 100년 설계”

    2022년까지 68조 투입…89만개 일자리 창출데이터 댐·인공지능 정부 등 10대 사업 제시문재인 대통령은 14일 “한국판 뉴딜은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며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22년까지 국고 49조원 등 총 68조원을 한국판 뉴딜에 투입해, 89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우리 정부를 넘어 다음 정부로 이어지고, 발전해 나가는 대한민국 대전환의 시작이자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도약하는 출발점”이라며 2025년까지 국고 114조원을 직접 투자하고, 민간·지자체를 포함해 약 160조를 투입하는 등 전례없는 규모의 중장기 투자계획을 밝혔다. 특히 “우리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국고 49조원 등 총 68조 원을 투입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일자리도 2022년까지 89만개, 2025년까지 190만 개가 창출될 것”이라며 “일자리가 필요한 국민들께 새로운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의 10대 대표사업으로 ▲데이터 댐 ▲인공지능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그린 스마트 스쿨 ▲디지털 트윈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산단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인류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한 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으며 거대한 변화에 뒤처지면 영원한 2등 국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방식의 성장은 한계에 다다랐고, 불평등의 어두운 그늘이 짙게 남아 있다”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새로운 100년의 길을 더욱 빠르게 재촉하고 있으며 선도형 경제,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포용사회로의 대전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더는 머뭇거리거나 지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고 했다. 또한 “결코 한국만의 길이 아니며 전세계가 함께 나아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문명은 이미 시작된 인류의 미래이며 그 도도한 흐름 속에서 앞서가기 위한 국가발전 전략이 한국판 뉴딜”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튼튼한 고용·사회안전망을 토대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두 축을 지닌 한국판 뉴딜을 통해 선도국가 도약 비젼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이미 디지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서 “디지털 역량을 전 산업 분야에 결합시킨다면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거듭날 수 있으며, 그것이 디지털 뉴딜의 목표”라고 했다. 이어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뒤 “우리가 전체적으로 뒤처진 분야이지만, 그린 혁명도 우리가 강점을 가진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또 “저탄소 경제도 세계적 추세”라면서 “그린 뉴딜은 미세먼지 해결 등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줄 뿐 아니라, 국제 환경규제 속에서 산업경쟁력을 높여주고 녹색산업의 성장으로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불평등 해소와 포용사회로의 전환은 대한민국 대전환의 전제조건”이라면서 “코로나 위기로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일자리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면서 “위기가 닥쳐도 누구도 낙오되지 않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어야 하며, 코로나 위기를 오히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줄이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권재형 경기도의원, 의정부시 민락지구 대중교통 이용불편 민원 상담

    권재형 경기도의원, 의정부시 민락지구 대중교통 이용불편 민원 상담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권재형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의정부3)은 지난 6월29일 경기도의회 의정부상담소에서 민락지구 아파트 주민대표로부터 대중교통 이용불편에 관한 민원을 접수받고 곧바로 관계기관에 답변을 요구한바 7월8일 회신을 받고 관련부서 담당자들로부터 관련 내용 설명과 대책을 논의했다. 민원 내용은 민락지구 코스트코 주변 아파트 단지 대중교통 이용 불편에 관한 개선으로 ▲1-7번 버스 민락지구 경유 ▲마을버스 206-5번 송양초,삼현초,푸르지오,우미린,민락센트럴17단지 경유 ▲민락센트럴 17단지와 우미린 아파트 사이 크로스 횡단보도 설치 ▲민락센트럴 17단지 앞 버스정류장(쉘터) 및 운행 안내판 설치 ▲민락 지구 주차 공간 확보 ▲송양초 버스 정류장 그늘막 설치 ▲유색 차량 유도선 표시 요청 등이다. 이에 대해 의정부시 관계자는 “기존 버스 노선은 인근 고산지구 입주민에 맞춰 설계되어 당장은 변경이 어려우며 향후 인구 증가로 버스 증차시 검토하여 추진되도록 노력하겠으며 일부 사안은 현재 진행중이거나 대체 완료되었고 나머지 미해결 사안은 추가 예산확보와 관련기관 협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재형 도의원은 “일부 진행중이거나 완료된 민원 사안에 대해 안도를 표시하고 미해결 사안은 주민들의 이용 불편을 최소화하는데 역점을 두고 시설을 우선 보완하며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정책에 반영하여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함이 없게 행정력을 펼쳐 달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천시, 취약계층에 폭염쉼터 39개소 운영

    부천시, 취약계층에 폭염쉼터 39개소 운영

    경기 부천시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자 ‘2020년 폭염 취약계층 보호 대책’을 마련해 노인 등 취약계층 보호에 나섰다. 부천시는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야외 그늘쉼터 29개소와 실내 무더위쉼터 10개소를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 시는 369개 무더위 쉼터 중 10개 거점경로당을 중심으로 실내 무더위쉼터를 축소 운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과 폭염 대응을 병행하기 위해 자연 그늘이 형성돼 폭염을 피할 수 있는 16개의 공원·녹지, 12개의 기관 내 부대시설, 교량 하부 1곳 등 29개소를 야외 그늘쉼터로 추가 지정한다. 오는 13일부터 26일까지 시범운영하고 27일부터 8월 31일까지 관리운영할 계획이다. 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무더위쉼터 운영지침’에 따라 손 소독제와 비접촉식 체온계, 부채, 코로나19 예방 홍보물 등을 쉼터에 비치해 철저히 위생을 관리한다. 또 오는 13일 부천희망재단·부천사회적기업협의회, 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에어컨 지원 업무 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폭염 취약계층을 파악해 상호 긴밀하게 보호 대책을 마련해 폭염 취약계층의 무더위 예방과 안전을 도모한다. 이를 위해 협약 기관에서는 기부금을 지원해 업무 추진을 돕고, 시는 이를 행정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시는 폭염특보 발령 시 취약계층에게 수시로 전화와 문자 등을 활용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등 폭염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건강 피해 최소화를 위해 힘쓸 방침이다. 장덕천 부천시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됨에 따라 시민 모두가 여름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존의 대응체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노력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볕 좋은 날/이재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볕 좋은 날/이재무

    볕 좋은 날/이재무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발톱을 깎아 주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부은 발등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리 갈퀴처럼 거칠어진 발톱을 알뜰, 살뜰하게 깎다가 뜨락에 내리는 햇살에 잠깐 잠시 눈을 주리 발톱을 깎는 동안 말은 아끼리 눈 들어 그대 이마의 그늘을 그윽하게 바라보리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근심을 깎아 주리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계단 위에 서서 몇 번이나 눈을 부빕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말문이 막히는군요. 어제까지 강변에는 여름 꽃들 지천으로 피었지요. 원추리 망초 금계국 분홍 애기달맞이꽃 메꽃 붓꽃…. 꽃들의 빛이 너무 이뻐 산책 동안에는 코로나19의 악령에서 잠시 놓여날 수 있습니다. 강변 야생화들 예초기로 다 베어 버렸군요. 평지의 풀들은 베더라도 경사로의 야생화들 강물 닿는 곳의 갈대는 베지 마세요. 해마다 시청에 편지도 쓰고 전화도 넣었지요. 다 베 버렸군요. 힘없이 걷는데 앞에서 노인네 두 분 손잡고 걸어 오네요. 하얀 마스크를 쓰셨군요. 마스크가 이렇게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다니. 그래요 삶이 험할수록 우리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요. 마스크를 쓸 때면 하늘을 향해 “사랑해요”라고 한마디 말해요. 곽재구 시인
  • 그리움과 두려움의 이름 가족, 그 폭력의 상흔

    그리움과 두려움의 이름 가족, 그 폭력의 상흔

    한국전쟁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냉전 세력이 벌인 갈등이자, 미국과 중국 간의 국제분쟁이기도 했다. 조금 더 시야를 좁혀 보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서로를 부정하는 두 정치세력이 각자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1950~1953년 민간인 학살이 200만명이나 된 배경은, 세력 간 교전이라는 관습적인 전쟁사의 시각으로는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의 ‘전쟁과 가족’은 이를 설명한다. 냉전체제 연구의 권위자로서 지난해 최고의 인류학자에게 수여하는 프랑스 레비스트로스상을 받은 그는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친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폭력이 가해졌는지, 그리고 이후 긴 세월 동안 어떻게 국가적 규율 행위의 핵심이 됐는지를 좇았다.해방 이후 양쪽에 각각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남한 정부는 계엄령으로 자신의 국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남한의 점령지에서 민족 해방의 대의를 내걸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린치를 하기도 했다. 북한군이 밀려난 뒤 일어난 일은 적군에 협조했다고 지목된 자들에 대한 응징이다. 한쪽의 공격에 대한 상대편의 보복이 반복되면서 양민을 향한 폭력은 규모와 정도가 심해지고, 폭력의 악순환으로 지역 공동체가 초토화됐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이념 때문에, 누군가는 그저 살기 위해 고향을 버리고 남으로 혹은 북으로 이동했다.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이후에도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연대책임을 져야 했다. 이들은 헤어진 가족과의 결합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때문에 죄인 취급을 받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저자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족과 친족이 공적인 공간에서 해체되는 현상과 전혀 다른 일이 한국전쟁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사회학·인류학 담론이 ‘시비타스’(civitas·공민사회)와 ‘소시에타스’(societas·민간사회)를 구분하고, 현대의 정치에서는 가족과 친족이라는 환경이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고 가정해 온 관념을 반박한다. 한국전쟁에서 가족과 친족은 공적세계에서 독립해 존재하는 사적 영역도 아니었고, 공적세계에서 물러나 찾을 수 있는 온전한 은신처도 아니었다.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가리느라 급급했다고 역설한다. 연좌제가 폐지된 1980년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가족과 친족은 그리움이자 두려움·혐오의 대상이었다. 저자는 그러나 2003년 초 마을 위령비를 새롭게 완공한 제주 애월의 하귀리 사례를 들어, 공동체를 사회와 분리하는 근현대 세계의 경향을 이겨내고 한국에서 시비타스와 소시에타스가 겹쳐지는 놀라운 일이 이어진다고 봤다. 이곳은 4·3사건 당시 반란 진압작전에 동원돼 전사한 경찰과 반공청년단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서 있던 자리다. 자신의 가족과 마을에 폭력을 자행한 자들을 묻은 묘지와 추모비에 이를 바로잡는 위령비를 세운 이들을 통해 저자는 전쟁의 감춰진 상흔을 용기 있게 대면하는 노력을 유가족의 발언을 따 ‘소리 없는 혁명’으로 지칭한다. 어쩌면 우리는 고속성장이라는 그늘에 가려 억지로, 혹은 의도적으로 한국전쟁의 상처를 잊은 것은 아닐까. 참상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세대가 지나가는 지금, 저자는 우리에게 ‘그들의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였느냐?’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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