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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인 과반수 “일본은 대국” 인식/요미우리신문 조사

    ◎국제사회 영향력·역할증대에 긍정적/외국노동자 거부 37%… 배척의식 강해 일본인의 과반수가 「대국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전유권자 가운데 무작위로 3천명을 뽑아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7%가 일본이 대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에 반해 「대국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38%였다. 대국의식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서도 국제공헌의 필요성까지 부정한 경우는 6%에 불과해 일본인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또는 역할증대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공헌의 형태에 대해 「군사면을 포함한 공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11%에 불과했으나 「인적 공헌을 한다」는 52.2%로 가장 많아 「경제면에 한한다」는 의견 23.5%를 배이상 앞질렀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에 대해 캄보디아·모잠비크 등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자위대가 참가한 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대국의식의 그늘속에 외국인노동자 배척의식도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은 8.4%,「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49.3%로 여전히 수용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나기는 했다.하지만 「가능한 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가 28.9%,「절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가 8.5% 등 거부파가 37%나 돼 똑같은 질문이 던져진 5년전 조사결과에 비해 거부파가 15%나 늘어났다.특히 절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5년전 2%에 불과했다. 또 일본외교가 중점을 두어야 할 지역에 대한 질문과 관련,아시아와 구미지역을 동시에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47.1%로 가장 많았으나 아시아중시를 택한 사람이 30.9%인 반면 구미중시는 6.4%에 불과해 아시아중시의견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 메달과 무메달(외언내언)

    올림픽은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지만 그것은 올림픽정신을 고양하기위한 구호일뿐 「사실 이기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스포츠는 어차피 승부를 가리기 위한 것.때문에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특히 메달경쟁이 치열한 올림픽무대에서 메달을 따낸 선수와 그렇지못한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금메달을 따낸 선수와 은·동메달에 머문 선수의 영예도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금·은·동메달의 실력수준은 종이 한장차이.자칫 방심하거나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르면 메달의 색깔은 순식간에 변해 버린다.금메달리스트가 되면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영웅으로 떠오르지만 은·동은 금의 그늘에 가려버린다.그래서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소리가 없지 않다.당연한 항변이나 그렇게 생각할 수만도 없는 것이 스포츠의 속성.부정한 방법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세계정상에 오른 것과 정상 바로밑에 머문 것은 그가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한국은 22일 레슬링의 심권호가 첫금메달을 따낸데 이어 23일에는 남자유도의 전기영과 여자유도의 조민선이 나란히 우승,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밤잠을 설쳐가면서 이 자랑스런 모습을 지켜본 온국민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고 신문·TV등 각종 매스컴은 이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이들은 그만한 찬사를 받을만한 일을 해냈으므로 당연한 보상이다. 그러나 메달경쟁에서 탈락한 선수의 심경도 헤아려야 한다.특히 금메달후보로 꼽혔던 선수가 초반에 탈락했을 때의 그 처절한 심경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의 절망,바로 그것이라고 한다.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이어 「올림픽 첫 개인종목 2연패」를 노렸던 역도의 전병관이 실격을 당한뒤 흘린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주변의 지나친 기대가 그에게 중압감을 안겨 메달을 놓치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금메달의 스타를 치켜세우고 찬사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훨씬 많은 선수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마음도 가졌으면 한다.〈황석현 논설위원〉
  • 김대중 총재·김상현 의원/갈등 “위험수위”

    ◎DJ측­정면도전 판단… 물밑 고사작전 돌입/김 의원­제3인물론 제기… 「대권도전」 분명히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후광)와 김상현 지도위의 의장(후농)간의 갈등이 「위험수위」에 육박한 듯하다. 총선직후 야권분열에 대한 김총재의 책임론과 「대권후보 경선」 등을 주장하면서 공격강도를 높여왔던 김의장이 드디어 대권도전 의사까지 표명했다.동교동측은 후농의 정면도전에 맞서 「고사작전」에 돌입,양측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의장은 9일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양김씨의 그늘에 가려 정치적 빛을 보지 못했다.나의 철학과 경륜을 국민들에게 검증받고 싶다』고 밝혀 대권도전의사를 분명히 했다.후농은 이어 『지금 양김씨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은 큰 잘못』이라며 『오히려 여론에서 제3의 인물이 나서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제3인물론」을 제기했다. 김의장의 발언이 전해진 뒤 10일 열린 국민회의 지도위회의에서 김총재는 김의장과 대화는 물론 의례적인 목례도 나누지 않았다.시종굳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김의장에 대한 공격성 발언은 일체 없었다.김총재가 측근들에게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대응 하지말라』며 「철저한 무시」 지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김총재도 『김의장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쓸데없는 것을 묻는다』며 일축했다. 그러나 김총재측은 이미 물밑에서 후농압박작전을 펼치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원외지구당 평가작업도 같은 맥락이며 동교동계의 좌장격인 권노갑 의원이 경북도지부장과 안동지구당위원장을 맡겠다고 밝혔다.대선에 앞서 취약지구 공략과 함께 후농의 「영남 세확산 방지」를 위한 보호막이란 시각이 강하다.〈오일만 기자〉
  • 노사협상 법 테두리 안에서(사설)

    금년 노사분규의 확산양상은 심상치 않은 경제상황과 직결돼 국민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1일 현재 41건의 분규가 발생,그중 22건이 해결되고 19건이 진행중에 있으며 쟁의발생신고업체만 4백44개에 이르는 실정이다. 이 수치로만 보면 전년동기에 비해 약간 늘어난 수준이지만 분규참가자가 4만6천명,이로 인한 근로손실일이 37만8천일이나 되는 등 분규피해는 지난해의 두배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미루더라도 국제경쟁력이 약화됨에 따른 급격한 수출위축과 국제수지악화에서 보듯 매우 심각한 국면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이런 어려운 여건속에 소모적인 밥그룻싸움이 가당한 것이냐는 소박한 우려가 국민 뇌리에 가득한 실정이다. 또한 중요한 대목은 문민정부가 지금 과거의 성장위주 경제정책에 가려 그늘진 부분은 없었는지 노사관계 전반을 점검,신노사관계를 정립하는 개혁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는 점이다.이러한 노사관계의 과도적 분위기를 이용,노조의 정치세력화를 서두르려는 조직이 곳곳에서 연대투쟁과 필요이상의 강경투쟁을 부추기고 있음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순수성이 결여된 투쟁이 오히려 노사관계개혁을 뒷걸음치게 만들고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일부에서 해직자복직,노조의 작업중지권인정 등을 전제로 분규가 타결되고 무노동무임금원칙에 벗어난 생산장려금을 지급키로 하는등 노사간 균형을 유지시켜온 원칙이 깨지는 조짐을 보여 유감이다.어려운 여건을 감안,대화로 분규를 풀려는 고육지책으로 이해되나 이것이 역으로 노조의 강성투쟁을 유인하게 될 소지가 없지 않다. 진념 노동부 장관은 앞으로 특정세력에 의해 국가경제와 국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되는 일이 없도록 실정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공권력 개입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노사는 「법테두리안의 협상」을 원칙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 자민련 TK 움직임 활발해졌다

    ◎박준규 고문 총선후 첫 지역의원 초청 만찬/김복동·박철언씨도 개별적 활동 강화나서 자민련내 TK(대구·경북) 인사들의 모임이 잦다. 개원투쟁의 그늘에 가려 「묵상」을 하던 TK 인사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점차 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움직임의 중심에는 박준규 최고고문과 김부동 수석부총재,박철언 부총재의 「TK 트리오」가 자리잡고 있지만 이정무 총무 등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 최고고문은 1일 전경련 회관에서 TK출신 의원들을 초청,만찬을 베푼다.총선이후 박최고고문이 TK의원들을 초청한 자리는 처음이다.김종필 총재가 지난 5월초 대구에서 TK의원들을 초청했을 때도 9명중 5명만 참석했었던 TK였다.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친목모임인데도 전원 참석할 예정이다. 김부동 수석부총재는 지난 27일 지방의원 간담회가 끝난뒤 TK지역 국회의원 및 시의원들과 따로 「티타임」을 가지며 단합을 강조했다.이에 앞서 25일에는 육군 5사단을 방문했으며 21일에는 퇴역장성 모임인 「송백회」 회원들과 국립묘지를 참배하는등 개별적인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야권단일후보론」으로 당내 파문을 일으켰던 박철언 부총재는 당내에서 소수의견을 대변하고 있다.지난 26일 당무회의에서 당비를 대폭 올리기로 하자 박부총재는 당비인상에는 찬성하면서도 지구당에 단 한푼도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 중앙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지구당 관계자들과 일부 당직자들은 오랜만에 박부총재가 바른 소리를 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이에 앞서 박부총재는 여야협상 과정에서 자민련이 국민회의에 끌려다닌다는 의견을 지적하기도 했다.다소 「튀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당내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그러면서 박부총재는 김총재와 초선의원들을 초청,골프를 치기도 하는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8일 문희갑 대구시장이 위천공단 지정문제와 관련,대구출신 여야의원을 초청한 모임에는 자민련 의원 8명 전원이 참석해 단합된 「세」를 과시했다.또 이정무 총무와 이의익 부총무,박종근 대구·경북시도지부장 등은 수시로 모임을 가지며 당내에서 TK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특히 이총무는 여야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충청계 의원들의 『여당에 너무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총무로서 할 일은 다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맞서,호락호락한 총무가 아님을 과시했다.〈백문일 기자〉
  • 옐친 건강 악화설/선거운동 일정 모두 취소… 소재 불투명

    ◎주가노프와 TV토론 거부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28일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가 제의한 TV토론을 거부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날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와 토론할 것이없다.이 토론에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살찐 당선동가들」과 얘기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일축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어 공산당에 대해 『지난 5년간 그늘에 앉아 비판만 해왔으며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구호만 주장해온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옐친 대통령은 지난 주말을 벨라루시와 발틱해 연안에서 보낸 뒤 26일 상오까지 공식일정을 수행한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의 건강 악화설이 나돌고 있다. 옐친은 지난 26일 아침 사관학교 졸업생들을 접견한 이후 선거운동 일정을 모두 취소,정확한 소재가 불확실한 상태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28일로 예정됐던 옐친의 농부대표단 접견에 대신 나와 『대통령이 선거운동의 스트레스로 인해 목이 쉬었다』고 말했다.
  • 태,불법취업자 신변처리 고심/전체노동자 3%인 1백만명 초과추정

    ◎재계­값싼 노동력 유지위해 합법화 요구/정부­“자국인력 양성정책 약행” 수용꺼려 미얀마와 가까운 태국 북서부의 마예 소트는 가난을 견디지 못한 젊은 미얀마인들이 몰려드는 불법취업자들의 천국이다.셔츠공장에서 일하는 니니 민트씨(21)도 그중 한사람.그녀가 매일 11시간 이상 일해 받는 월급은 고작 75달러에 불과하다.그래도 그녀는 『미얀마에는 돈을 벌 만한 일이 거의 없다』며 『모든 친구들이 이곳에서 취업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태국이 매년 8%를 넘는 고속성장으로 아시아의 후발 신흥공업국으로 급부상한 뒤안길에는 니니 민트양 같은 불법취업자들의 어두운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변변한 기술력을 제대로 보유하지 못한 태국이 이같은 고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이들 불법취업자들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태국 성장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불법취업자들의 신변처리 문제를 놓고 지금 태국정부가 고심하고 있다.재계에서는 보다 값싼 노동력 이용을 위해 이들을 합법화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지만 막상 합법화시키자니 태국내 기술인력을 양성,산업경쟁력을 높이려는 정부계획에 상충되고 또 불법취업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도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태국정부 통계에 따르면 태국 내 외국인 불법취업자 수는 50만여명.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태국 노동력의 3%인 1백만명을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대부분이 미얀마 출신인 불법취업자들은 태국인들이 꺼리는 3D 업종에 취업,「산업역군」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받는 임금은 매우 낮다.하루 10시간 이상 혹사당해도 태국근로자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60달러 정도를 받고 있다.중소 제조업이 주류를 이루는 노동집약적 형태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태국으로서는 자연히 저임금의 불법취업자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태국기업들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더많은 불법취업자 고용을 원하고 이에 따라 불법취업자 수는 급증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태국기업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불법취업자들을 합법화하도록 치열한 「전방위」 로비를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태국정부의 고민은 이들을 합법화하면 자국기업들이 불법취업자에 더욱더 의존하게 됨으로써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기술력을 갖춘 첨단산업 쪽으로 개편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또 지금의 고도성장 추세가 꺾이면 불법취업자들의 처리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등록을 받아 신분보장을 해줘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우선 이들에게 대대적 건강검진도 실시해야 한다.태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말라리아나 상피병(상피병,풍토병의 하나인 성병의 일종)같은 전염병이 이들 사이에 창궐하고 있는 탓에 이들을 치료해주거나,그렇지 않으면 고국으로 되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태국정부로서는 불법 취업자들을 방치할 수도,그렇다고 합법화시켜주기도 곤란한 「안팎 곱사등이」 형국인 셈이다.〈김규환 기자〉
  • 스승의 사랑을 반추하며/이명수 충남도청 정책실장(공직자의 소리)

    ◎교직을 천직으로 지키신 그 모습 영원히 못잊어 선생님. 얼마전 전화로 들려주셨던 선생님의 인자하신 목소리는 아직 귓가에 남아있지만 뵙지못한 빈 마음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색바랜 앨범속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가끔씩 확인하지먀ㄴ 그래도 두터운 사랑의 손길을 직접 느끼고 싶습니다.더욱이 마음마저 푸르게 물드는 신록의 계절을 맞아 왠지 모를 그리움이 자꾸 돋아나면서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게 스며듭니다.인생은 생명으로 시작하여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습니다만 저의 그리움은 이미 만남과 이별의 순간으로 가득한 시간의 역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 곳에서 과거로 가는 열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차창가에 어떤 풍경들이 몰려올까요.이 세상 어느 하늘 밑에 살아도 그리우면 언제든 한 걸음에 달려가는 것,우선 고향과 모교의 모습이 선연히 비쳐집니다.선생님의 가이없는 사랑속에 올망졸망한 친구들의 동심과 천진함이 배어나고 철따라 꽃들이 차례로 피어나던 학교길과 운동장….그것들은 과연 어떤영상으로 차창가를 스치고 지나갈까요.분명한 것은 어린날 기억의 저편에서 돋아나는 향수와 정겨움들이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퇴색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욱 선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 그 숱한 직업중에서 선생님께선 아무런 망설임과 주저없이 처음부터 교직을 「천직」으로 택했다고 하셨지요.껑충한 키로 교단에 서계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근엄과 경의로움 바로 그것이었지요.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대해 주셨지만,선생님으로서의 곧은 몸가짐은 늘 지키려 하셨지요.시골학교라서 학업성적이 떨어진다고 사택옆의 방을 얻어서 밤늦게까지 저희들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은 그 때 밤하늘에 뿌려졌던 별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감사함 그자체입니다. 선생님. 이제 푸르른 여름의 문턱에서 선생님께서 뿌리신 배움의 씨앗이 중년이 되어 시원한 포플러 그늘아래서 잠시 머물게 된 역,그 시간의 역에서 선생님의 가이없는 사랑을 반추해봅니다.새로운 출발의 기적소리가 울리면,저희는 다시 새로운 시간의 열차를 타야겠지요.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방향과 목표를 향해서요. 끝없이 불러보고 싶은 선생님. 아름다운 여생,진정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시길 마음다해 비옵니다. 제자 드림
  • 명산마다 열린다는 철쭉잔치에(박갑천 칼럼)

    일산정발산 치맛자락께로 이사와서 첫봄을 맞았다.이동네는 정발마을이라기보다 철쭉마을이라 불렀으면 싶을만큼 철쭉이 늦봄을 오달지게 수놓았다.빨강·분홍보다 하양이 더많아 동네를 청초한 인상으로.이울어감이 아쉽다. 사람사는 낮은 곳과는 달리 전국 산등성이의 철쭉은 이제부터 흠치르르 따가운 햇볕과 어우러진다.지리산·태백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자생종 철쭉들은 등산객에게 향기뿜어 손짓할 것이다.때맞추어 전국 철쭉명산에서는 이달 하순께부터 새달 초순께까지 철쭉잔치들을 갖는다.이 산위에서의 꽃잔치소식은 설창수시인의 「철쭉꽃애상」을 웅얼거려 보게도 한다. 『뼈에 저려 모진 아픔이 안갯속을 스며/슬픈 피릿가락으로 산야에 흐른다/너 젊은 영혼의 그 그늘에 숨져갔음도/한갓 산상고원의 꽃잔치를 둘러리 세웠음인가/아,그 원혼의 슬픔,끝낸 모두 슬픔임의/감감한 대풍류에 화음하였음인지』(1∼3련전문).아름답게 핀 철쭉을 보면서 먼저 가버린 누군가를 떠올리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진달래와 철쭉은 어금지금한듯 많이 다르다.진달래를 참꽃,철쭉을 개꽃이라함은 먹을수 있고 없고를 두고 붙인 이름 아닌가 한다.「개」는 「참」에 비겨 변변치 못함을 이르면서 쓰는 앞가지(접두사)이니 개나리·개살구·개꿈…의 그 「개」다.철쭉은 한자로「척촉」이라 적는데 그뜻은 「발로 땅을 침,발을 구름」.양이 먹으면 훌쩍훌쩍 뛴다는데서 온 이름이라지만 그래서 비슷한 진달래와 견주면서 개꽃이라 했는지도 또 모른다.철쭉은 그「척촉」에서 온듯하다. 철쭉의 학명은 로도덴드론 슐리펜바히(Rhododendron Schlippenbachii).종명 슐리펜바히는 강원도 바닷가에 자생하는 철쭉을 유럽에 소개한 제정러시아해군 슐리펜바흐의 이름을 땄다한다.이 강원도철쭉은 향가 「헌화가」의 멋을 낳게도 한다.신라 성덕왕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을 따라가던 수로부인.높은 벼랑의 철쭉꽃을 시종들에게 따달라했으나 망설일때 마침 소를 몰고가던 노인이 꺾어 바쳤다지 않던가.미인은 예나 이제나 위대하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일본철쭉꽃」얘기가 있다.그 아름다움을 비기면서 우리철쭉이 막모(막모:황제의 네째왕비.추녀였음)라면 그건 서시(서시:월나라 미녀)라고 찬양한다.글투로 보아 개량재배종이었던 듯하다.그때보다 더 아름다워진 오늘의 철쭉은 앞으로도 더욱 아름다워져 가겠지.〈칼럼니스트〉
  • 시인 황동규(작가를 찾아:7)

    ◎“바람탈 일 없는 일상이 예술가엔 악조건”/고교때 「두시언해」통해 알게된 두보에 흡뻑빠져/부친인 작가 황순원과 달라지려고 무진 애/극서정시란 시적 자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인생은 그렇지 않던데… 어떤 시들은 선·악 너무 분명 황동규는 가볍다.누구보다 그는 기체에 가깝다.그의 말들은 간지러운 바람처럼 사물 사이를 떠다닌다.울기 잘하는 한국 시세계에서 그 세계는 독특하다.더 나아가 한국문학판에서 특이하다.엄숙한 포즈,목청높은 열망,금방 까라질듯한 탄식….우리 문학에 잔뜩 방울진 얼룩들을 톡톡 건드리며 그는 날아다닌다. 그의 시속에선 계속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극서정시(극서정시)」라 했던가? 잔뜩 움츠린 두꺼비의 뜀박질.바로 그처럼 정신이 팔짝 내닫는 눈깜짝할 순간을 그는 찍어낸다.그 카메라 렌즈는 가볍게 풀려있다.하지만 단단한 조임과 묶임을 오랫동안 통과한 뒤의 풀림이라 퍼진 칼국수같은 것은 아니다.차라리 부서지는 오미자술에 가깝다. ○기체처럼 가벼운 시어 〈오미자 한줌에 보해소주 30도를 빈 델몬트 병에 붓고/익기를 기다린다./아,차츰차츰 더 바알간 색./예쁘다./…/내가 술 분자 하나가 되어/그냥 남을까 말까 주저하다가/부서지기로 마음 먹는다./가볍게 떫고 맑은 맛!〉(「오미자술」에서) 『서정시라면 보통 정경을 그리며 감상을 털어놓는게 일이지만 나는 시적 자아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내 마음이 연극처럼 흔들리는 짧은 순간을 담는 것이 「극서정시」지요.그 움직임의 궤적을 따라 읽다보면 독자의 마음에도 변화의 파문이 일지 않겠어요』 ○중학교때 시에 눈떠 58년 등단,황씨는 38년째 시를 쓰고 있다.초기엔 그의 시에도 애상과 황량의 감성이 짙었다.「시월」「겨울 노래」「어떤 개인 날」「비가」연작 등.하지만 일찍부터 강단에 서온 그는 조금만 반복되면 단조로움으로 추락하는 일상의 리듬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지루한 추상적 감상이 숨통을 죄어든 어느순간 스스로 「극서정시」라 부르는 역동의 세계로 훌쩍 날아가 버린것을 보면. 아는 이는 다 알지만 그는 작가 황순원의 아들이다.또 68년 전임강사가 된뒤 줄곧 최고지성의 산실인 서울대에서 문학을 가르쳐왔다.아무 바람탈일없이 마음껏 시를 쓸 좋은 운을 타고난 셈이다.하지만 그는 그게 『예술가에겐 얼마나 악조건인줄 아느냐』고 되묻는다.예술혼을 꺼버릴지도 모를 단조로운 일상이 그는 늘 조심스러웠다. 『작가인 아버지와 달라지려고 나는 늘 애썼지요.문학이란 모름지기 뭔가 다른 새로운 세계여야 할텐데 부자지간이 얼마나 체험이 닮는 관계입니까.내 시가 좋은 문학이라면 그것은 아버지와 닮은점이 아니라 다른점 때문일거예요』 아버지에 얽힌 일화 한토막.『해방전 아버지는 내게 가갸거겨를 가르쳤어요.한데 동네에선 다들 일본말을 하더군요.나도 히라가나를 배워달라 했지요.그랬더니 아버지가 막 우시는 거예요.그렇게 제대로 우시는 것을 처음 뵈었요』이 그늘 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니 그는 그야말로 고투해야 했다. 『시에 눈뜬 것은 중학교때지요.하지만 고등학교 들어와 교과서의 두시언해로 알게된 두보를 본격적으로 좋아했어요.「만리의 봄에서 꽃잎하나 덜어진다」는 표현이 기억나는데 얼마나섬세한 눈입니까.그의 아류로 그치지 않으려 바짝 긴장한 적도 있었지요』 이처럼 가깝고 먼 대가들과 밀고 당기면서 그는 독자적이며 탄탄히 긴장된 시세계를 얻게 된 것이다. 황씨는 여행을 좋아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순탄한 일상이 거저 주어졌던 그에게 여행은 예술가임을 확인하는 작은 일탈이었을까.그 여행담은 많은 시편들에 흩어져 있다.대학때 남해안을 떠돌다 본 풍장에서 받은 인상은 「풍장」연작시집을 낳기도 했다.시집은 얼마전 번역이 끝나 독일 서점에 내다걸릴 날을 손꼽고 있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섭섭하지 않게/…/바람을 이불처럼 덮고/화장도 해탈도 없이/…/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다오〉(「풍장1」에서) 대학 4학년때 4·19를 겪고 유신시절 「계엄령 속의 눈」을 썼던 그의 비판적인 정신은 80년대를 통과하며 생채기투성이가 됐다.이 시절을 「견뎌내기」위해 「풍장」을 쓰며 그는 『아무리 그래봐야 삶이란 이리 허탈하다』고 곱씹었는지 모른다.노동시인 백무산에게 고급문학의 메카문학과지성사에서 주는 이산문학상이 돌아가도록 「산파」도 했던 황씨.하지만 그는 노동시 읽기를 좋아했을뿐 쓰지는 않았다. 『인간의 본성중 기본은 사랑이에요.증오는 쉽지만 사랑은 힘드니까요.하지만 어떤 시들은 너무 선·악이 분명하더군요.이해는 하지만 나는 인생을 들여다볼수록 그렇지 않던데….거짓말할 수는 없잖아요』 육순을 눈앞에 둔 그는 자신이 보아버린 인생을 움켜쥐고 대가연하려는 것일까.그런 말은 아닌것 같다. ○노동시도 즐겨 읽어 『요즘 나이든 문인들은 젊은 작가들이 문학을 말살시킬 것처럼 걱정하더군요.하지만 유토피아를 지향할 수는 있어도 가닿을 수 없음을 안다는 점에서 이들은 훨씬 영리한 세대 같아요.아무튼 누가 생을 더 정확하게 봤느냐는 지나가봐야 아는 일이니까요』 만사를 다 이해한다는듯 지그시 미소짓다가 불쑥 송곳처럼 현상의 이면을 파고드는 시인의 시선.그 눈으로 들여다본 인생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한갈피를 같이 엿보고 싶어졌다.그는 자신이 쓰지 않는 또 다른 시로 「행사시」가 있다면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행사시 썼던 일화를 들려준다. 『오래전 성탄절 기념으로 어느 신문사에서 부탁이 왔어요.하도 권유를 하기에 별 수 없이 쓰긴 썼는데 그쪽에서 시를 보곤 곤혹스러운 표정이더니 결국 싣지 않더군요.내가 이렇게 썼거든요.예수님은 뭇 여자들의 애정을 독차지하더니 그도 모자라 남자들한테까지 사랑받는다,얼마나 좋겠느냐고.그 원고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혼자만이라도 가끔씩 들춰볼텐데…』〈손정숙 기자〉 □연보 ▲38년 평남 숙천생 ▲46년 서울 덕수국민학교 입학.51년 서울중 입학.당시 미당편 「작고시인선」을 통해 윤동주와 소월에 빠져듦 ▲서울고 재학중 「학원」지 등에 글 발표,음악에 심취해 작곡가를 꿈꿈 ▲서울대 영문과 2학년때(58) 미당이 「현대문학」에 시「시월」을 추천해줘 등단 ▲영국 에든버러대학원 수료(67) ▲68년 서울대 전임강사가 된뒤 현재까지 교수로 재직 ▲「국제창작계획」으로 아이오와대학(70)교환교수로 뉴욕대학(87)등 장기미국체험 ▲시집 및 시선집 「어떤 개인 날」(61)「비가」(65)「태평가」(68)「열하일기」(72)「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78)「악어를 조심하라고?」(86)「몰운대행」(91)「미시령 큰바람」(93)「풍장」(95)과 많은 시론집 및 변역서 ▲현대문학상(68)한국문학상(80)연암문학상(88)김종삼문학상·이산문학상(91)대산문학상(95)수상
  • 대암산 향로봉/희귀식물 보고 대암산 용늪 인간발길에 훼손

    ◎국내유일 고층습원지대에 배수로 생겨나/토양 건조해지며 산사초등 1백종 삶터 잃어/94년 8월부터 출입금지 구역 지정,보호나서 강원도 인제와 양구 지역의 생태계는 4월말에야 봄 기지개를 켠다. 산세가 험하다보니 겨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야생 동물의 움직임도 그리 활발하지 않다.해빙기가 갓 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골짜기를 누비다보면 생명의 기운을 흡뻑 느낀다. 나무마다 새순이 움트기 시작했고 텃새와 일찍 찾아온 여름 철새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두타연을 거쳐 대암산으로 가는길의 계곡에는 녹지 않은 얼음과 눈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5월에도 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안내장교는 전했다. 해발 1,304m인 대암산 등정로는 50도를 넘는 급경사 비포장 도로다.산꼭대기는 눈으로 덮여 있다. 1천m 높이의 고지대에 이르자 신갈나무 숲이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동행한 김준호 서울대 명예교수(생물학)는 『이제야 숲다운 숲을 보게 됐다』고 즐거워했다. 신갈나무는 대암산에 가장 많은 수종이다.키가커 가지들이 우산살을 펼친듯 다른 나무 위로 뻗어있다.학술용어로는 「상층 식생」이라고 한다. 키 작은 당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은 일품이다.한반도 중부 활엽수림의 전형적인 군집 형태다. 속살을 드러낸듯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과의 거제수 나무를 비롯,층층나무·물푸레나무도 줄줄이 서 있다. ○산기슭 해안마을 한눈에 정상에 오르자 북쪽으로 펼쳐진 넓은 분지에 안온하게 자리잡은 해안마을이 눈에 들어왔다.감탄사가 절로 나왔다.도솔산.가칠봉.대우산 등을 사방에 세우고 운무에 뒤덮인 광경이 더없이 신비로웠다.엄청난 크기의 운석이떨어져 만들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운석분지라는 미확인 학설도 흥미를 돋운다. 감자와 당근이 많이 나는 이 마을에는 2천여가구가 산다. 민통선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대암산 정상에는 벼과 식물들이 서식한다. 김교수는 『정상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토양이 척박하고 건조해 큰 식물은 살 수 없다』고 말했다.「산정현상」이라고 일러주었다. 북동쪽으로 10여분 정도 걸어가면 국내 유일의 고층습원지대인 「용늪」이 나온다. 작은 운동장만한 크기로 겉보기에는 잡풀만 우거진 황무지처럼 초라하다.하지만 식물학자들이 「보물단지」로 여긴다. 4천∼4천5백년동안 한해에 1mm씩 쌓여 형성된 원시지다. 움푹 파인 지형에 물이 차면 산소가 부족해진다.식물들은 불완전한 상태로 썩고 토양도 다른 곳과 달라진다.고산지대이므로 기온은 차다.희귀한 습지식물들이 집단 서식하는 배경이다. 조도순 가톨릭대교수(생물학)는 『이 곳에는 산사초. 가는 오이풀이 가장 흔하며 물이끼와 골풀 등 1백여종의 식물이 산다』고 전했다. 끈끈이 주걱처럼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성 식물들도 자란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누군가 배수로를 만드는 바람에 물이 빠지면서 토양이 건조해진 탓이다.전나무가 침입해 곳곳에서 자라는 것도 환경변화의 증거다. 환경부가 지난 94년 8월부터 3년동안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용늪 주변에는 여섯장의 보라색 꽃잎이 활처럼 휜얼레지, 코스모스와 비슷하게 생긴 흰빛깔의 꿩의 바람꽃,홀아비 바람꽃 등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북방계 침엽수 빽빽히 환경부 자연정책과 전승훈 박사(식물분류학)는 『원산지가 시베리아 등지인 북방계 식물들로 빙하기를 맞아 지구의 기온이 내려갔을 때 따뜻한 곳을 찾아 남진했다가 다시 기온이 올라가자 일부는 북상하고 일부는 고산지대로 서식지를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부령 입구에 위치한 군부대를 거쳐 답사 마지막 코스인 향로봉으로 향했다. 행정구역상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위치한 향로봉은 해발 1, 296m로 대암산과 비슷한 생태계를 이룬다.전나무.분비나무. 잣나무 등 북방계 침엽수들이 빽빽하다. 해발 1, 000m쯤에 이르렀을 때 나무 위에 앉은 검독수리 한쌍이 눈에 들어왔다. 흥분한 상태로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낌새를 알아채고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여름철새 후투티 목격 경희대부설 한국 조류연구소장 유정칠 교수는 『검독수리는 수리류 가운데 유일한 텃새로 태백산맥 준령에 주로 서식하며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여 큰까마귀를 연상케 한다』며 『날개 밑부분이 톱니처럼 생긴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수리류가 죽은 동물의 시체를 먹는 것과는 달리 산 동물을 잡아먹는 포악한 맹금이다. 여름 철새 가운데 북상이 빠른 후투티와 검은 딱새 등도 이곳 저곳에서 목격됐다. 하산 길 칠절봉으로 접어드는 해발 1,100m 지점에 이르자 한쪽 언덕이 노란색 융단처럼 다가왔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천송이의 한계령풀꽃과 박새군락지다. 한계령풀은 10여년전 한계령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희귀식물이다.북방계 식물로 남한에서는 여기에서만 볼 수 있다. 박새는 백합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두툼한 넓은 잎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었다.7월에는 흰색과 연록색의 꽃을 피운다. 이달말쯤이면 이곳 민통선에도 산야가 완전히 푸른 옷으로 바꿔입고 야생동식물들도 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두타연/멸종위기 열목어 집단서식/눈에서 열나는 희귀종… 맑은 물에만 살아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민통선 검문 초소를 지나 30분 가량 차를 몰고 자갈길을 달리면 두타연을 만난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수입천의 중간 지점이다.직경이 20m,최고 수심 7m다.2m 높이에서 물이 떨어져 내린다. 지난 72년 천연기념물 열목어의 최대 서식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이제는 거의 사라진 열목어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생태계의 명소이다.원래 이름은 「드례소」였지만 조선 중엽 부근에 있던 두타사 때문에 이름이 바뀌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열목어 무리가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황갈색으로 옆구리에 9∼10개의 흑갈색 가로 무늬가 있다. 연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이다. 수온이 20℃ 이하인 맑은 물에서만 산다.이름 그대로 눈에서 열이 난다.성질도 까다로워 물 밖으로 꺼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 두타연에는 열목어 말고도 둑중개와 갈겨니 등 모두 11종의 민물고기가 살고 있다. 주변의 큰 바위와 돌에는 잎이 단풍잎과 닮은 돌단풍이 자란다. 다년생 풀로 단풍잎보다 훨씬 크다. 무당 개구리도 집단으로 서식한다. 녹색 등에 검은 반점무늬가 있고 배는짙은 주황색이다. 폭포 오른쪽에는 직경 3m 가량의 큰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이 지역에서식하는 천연기념물 243호 검독수리가 비바람을 피해 자주 찾는 곳이다. 두타연 주변에는 나무도 무성하다. 붉나무,참느릅나무,조팝나무,병꽃나무,신갈나무 등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서울대 전경수 교수(생태인류학)는 『통일무드가 조성되면서 서울∼금강산∼원산을 잇는 길목인 이 지역 개발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하고 『자연생태계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탐사팀 김준호 서울대 명예교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조도순 가톨릭대 교수 유정칠 경희대 한국조류연 소장 전승훈 환경부 연구원 노주석 사회부 기자 김환용 사회부 기자 오정식 사진부 기자
  • 24일 부처님 오신 날… 한달간 다양한 봉축행사

    ◎부처님의 자비 그늘진 곳 향하게/범시민적 축제로… 위문·자선사업 중점/19일 연등축제땐 전통놀이 공연도 함께 오는 24일은 불기 2540년 부처님 오신 날.불교계는 19일 하오 서울 동대문에서 조계사까지 연등축제를 벌이는 것을 비롯,5월 한달간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올해 불탄일 주제는 「마음을 청정하게,세상을 맑고 아름답게」로 범시민적 축제의 성격과 함께 「깨달음의 사회화」를 실천하기 위한 위문 활동 등 각종 자선사업에 치중할 계획이다. 봉축위원장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은 『이번 봉축행사는 전국의 사찰에서 온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탄일 행사의 정점은 연등축제. 서울운동장에서 조계사까지 3㎞에서 펼치는 연등축제는 종묘와 파고다 공원 등 행진 중간중간에 강강술래,놋다리 밟기 등 각종 전통놀이를 선보이며,연등 만들기도 시연된다.종각에서의 법회는 승무공연과 대고연주,축하공연,2002 월드컵 유치기원 등으로 구성된다. 이에 앞서 14일에는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높이 7m,폭 18m의대형연꽃을 설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는 점등식을 갖는다.8일에는 KBS홀에서 봉은사 봉축 음악제,13일에는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청소년 문화대축제가 열린다. 24일에는 상오 10시 조계사 대웅전과 전국 각 사찰에서 일제히 봉축 법요식을 거행한다.각 법요식에는 월하종정과 월주원장이 법어와 봉축사를 발표한다. 23일부터 6월 1일까지 여의도에서 개최되는 불교문화대제전에는 역사 및 유품관,현대미술관,공예품관 및 세계불교상품관,사찰음식관 등 1천2백평의 문화관과 생활관이 설치된다. 자선행사로는 7∼8일 청송감호소에서 노인재소자 위문잔치,12일 조계사의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하는 부처님 오신 날 행사,14일 탑골공원 공양,15일 안양교도소 재소자 위문 및 수계식,16일 롯데 호텔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 후원의 밤,18일 목동 청소년회관에서 모범청소년장학금전달,일선 군법당 위문품보내기 등이 있으며 북한 수재민을 돕기위한 자비의 쌀 모금운동도 5월 한달간 펼쳐진다. 이밖에 소년·소녀합창단 연주회,전국어린이 부처님 그림 그리기대회,아동극 선덕여왕,윤이상불교음악회,봉축 꽃꽂이전,불교문화세미나,원각사지 탑돌이 등도 펼쳐진다.〈김원홍 기자〉
  • 이남희씨 작품집「사십세」출간/중년여인 눈에 비친 전망없는 삶담아

    86년 여성동아 장편공모로 등단한 이남희씨(38)가 세번째 작품집 「사십세」를 창작과 비평사에서 냈다.작품을 통해 환경·노동·교육 문제등을 폭넓게 제기해온 작가가 이번 책엔 「중년여성」의 꺽꺽대는 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중년여성」은 이 책에서 단순히 등장인물에 그치지 않는다.책의 문체와 스타일까지 「중년여인」의 그늘에 푹 젖어있다.가정이라는 허울아래 묻어둬야 한다고 치부돼온 「푹퍼진 아줌마」들의 마모된 속내가 섬뜩하게 드러난다.마흔을 목전에 둔 중년여성작가가 아니면 누구도 그릴수 없었을 사실적 세밀화다. 책속의 중년여성은 위험하다.교수남편은 공부벌레인데다 아이들은 유학떠난뒤 남편의 제자와 마지막 열정을 꿈꾸던 그녀는 욕망에 눈먼 딸같은 10대에게 납치된다.(「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비인간적 경쟁사회에 몸서리치던 남편은 그녀를 남겨둔채 훌쩍 인도로 도피하고(「찬성과 반대 사이」)외아들밖에 모르던 노모와 그 부담감에 자살하는 남동생 틈에 선 그녀는 남편과 살닿는것 조차 귀찮다.(「어머니가 되는 절차」) 중년여인의 눈에 비친 삶은 이처럼 전망없지만 이를 솔직히 까발려 보이는 것만으로도 책속의 여덟 단편은 나름의 전망모색으로 읽힌다.〈손정숙 기자〉
  • 필업 35년 중간정리/「김윤식 선집」 6권 발간

    ◎회갑 기념… 평론·예술기행·산문 등 갈래별 체계화/염상섭·이상서 신세대까지 섭렵/척박한 한국근대문학사의 토대 마련 「발바닥으로 글쓰는」 평론가 김윤식씨(60·서울대국문과 교수)는 자신의 작업을 그렇게 자평한다.『나는 명민하지도 천재를 타고나지도 않았다.남들이 한시간 일할때 나는 두세시간 씨름했다.나는 발바닥으로 살아왔다』 우리시대의 성실한 대학자이자 탁월한 평론가인 김씨의 이 말은 뜻밖이다.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사람의 유한한 조건을 뚫고 전무후무한 글무더기의 산을 쌓아올린 이의 자부심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평론쟁이」 35년간 70여권의 저서를 펴낸 김씨가 회갑을 맞아 그간의 필업을 중간정리한 「김윤식 선집」6권을 솔출판사에서 펴냈다.쓰기와 읽기로 이어져온 삶에 모처럼의 막간을 맞아 그는 남보기엔 조용히 살아온듯한 자신도 알고보면 「풍운아」였노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평론가 김씨는 넓고 깊고 고르다.우리 평단에서 그보다 더 반짝이거나 엄정하고 격조높은 글,더 폭발적인 한때의 작업은 있었을지모르지만 아무도 그처럼 지속적으로 모든 것을 시도하지 못했다.김윤식이라는 이름은 우리 문학의 거의 모든 부면에 그늘을 드리웠다.인문학의 전분야를 뒤져도 그처럼 왕성한 필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학자로서의 그는 척박한 한국 근대문학사를 개간,거의 얼개를 짰다.염상섭,이상,김동리,이광수,임화,조연현,박영희 등 거대한 근대작가들이 계파를 넘어 그의 손을 탔다.또한 현장비평가로서는 말그대로 블랙홀에 가까운 흡수력과 소화력을 보였다.4.19세대에서 더 나아가 30년 터울을 둔 신세대작가까지 스스로를 6.25세대로 규정하는 그의 촉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근대작가의 내면풍경을 들여다보려는 욕망으로 그는 사실과 주관을 오갈 수 있는 「전기」라는 양식을 연구에 도입했다.어느누구보다 실증적 자료광이었지만 객관적 글쓰기를 조롱하듯 불투명한 「것」「아닌가」체를 평문에 끌어들이기도 했다.자신말고는 아무도 자기 질문에 답할자가 없다는듯 주·객의 문답체 평론을 시도한 것도 그였다. 이번 선집은 「문학사상사」「소설사」「비평사」「작가론」「시인­작가론」「예술기행­에세이­연보」로 구성돼있다.앞의 세권은 학자,다음 두권은 평론가,마지막권은 독특한 산문가로서의 김씨를 각각 보여준다.방대한 글더미가 갈래별로 체계화돼 김씨의 세계에 접근하기가 어느때보다 쉬워졌다.편집위원은 문학평론가 이동하(서울시립대) 정호웅(홍익대) 한기(안성산업대) 서경석(대구대) 권성우교수(동덕여대).모두 김씨가 키워낸 제자들이다. 지난 4월 29일 하오 신촌의 한 음식점에선 이 편집위원들과 출판사관계자,김씨의 제자들이 꾸린 전집출간기념잔치가 열렸다.김씨는 『나는 아무 좌우명없이 「갈팡질팡」 살아왔다.하지만 삶에 누가 똑바른 답을 알겠는가』라며 소감을 대신했다.김씨의 옆자리를 차지한 작가 박완서씨는 『그는 누구보다 넓은 그물망으로 모든 작가들을 걸러낸다.곁에 앉기도 두려운 분』이라 해 웃음을 자아냈고 이문구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열쇠처럼 사람들이 앓고 있는 모든 문제에 그는 답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솔출판사 대표 임우기씨는 『선생은 가장 논리적이면서도 회의를 그치지 않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녔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자연인』이라고 김씨의 글 세계를 기렸다.〈손정숙 기자〉
  • 소설가 박완서(이세기의 인물탐구:95)

    ◎결혼 20년만에 작가의 꿈 실현한 “독종”/신랄한 비판의식으로 사회각층의 모순 파혜쳐/인간심리 선·악의 양면성 자연스런 문체로 추적/「한말씀만…」은 통곡없이 읽을수 없는 「발작적 설움」의 기록 박완서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미화의 욕구」를 극복하면서 「뼛속의 진까지 다 빼주다시피」하는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 증언」 때문일 것이다.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병의 물을 거꾸로 쏟아붓듯이」 생동감 넘치게 흘러내리는 문체는 오늘의 세태풍속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말 뒤에 숨겨진 섬광 같은 비판」으로 「인간심리의 악마적인 양면성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일에 능란하다. 평론가 정호웅은 이를 「천의무봉의 문체」로 표현하고 『방법론이나 지적인 장난 없이 글을 글답게 써내려가는 자연스러움이 일품』이라고 말한다.내용도 마찬가지다.그의 가차없는 비판정신은 「현모양처로서 충분히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여성에게 일상의 안일을 뒤흔들어놓는 위협적인 존재」이며 그 자신은 「삶의 진실을 희생시킴으로써 소설의 진실을 건져올리고 있다」는 결론이다. 더구나 지난 8년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참담과 파란을 겪은 뒤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발표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슬픔이 발효되고 아픔이 승화된 체관의 경지에서 「언어의 사제,진실의 사제」다운 여유를 치렁치렁하게 펼치는 것이 눈에 띈다.『도대체 소설이 이렇게 진실해도 좋은가』라는 평론가 김윤식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자기미화의 욕구 극복 이 두 소설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기록된 「한 개인의 삶의 역사」이자 「20세기 한국의 생활풍속사」이며 식민지지배와 태평양전쟁,해방과 6·25로 이어지는 수난과 격동의 세월을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작가의 유년의 기억을 쓴 1부작 「그 많던 싱아…」는 「고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세상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고통에는 어떤 종류의 삶이 생성되는가를 생생하게 되살린 반면 성장의 나날을 그린 2부작 「그 산이 정말…」은 참혹한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속에서 「고귀한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 인간이 어떻게 몸부림쳐왔는가」에 대한 눈물겨운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박완서는 지금은 휴전선 이북인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그늘진 평평한 골짜기에 초롱초롱한 은방울꽃이 눈부시게 쫙 깔린」 평화로운 시골에서 태어났다.세살때 부친을 잃었으나 조부모를 비롯,숙부·숙모·사촌들이 한솥밥을 먹는 대가족 사이에서 아버지가 그리워 청승을 떤 적도 없고 각박함도 모른 채 「태평스럽고 구김살 없는」 유년기를 보냈고 여덟살되던 해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서울에 정착했다.그러나 서대문밖 현저동꼭대기 「공동수도언저리에 물통행렬이 끝도 없이 줄서 있는」 빈민촌에 살면서 문안의 학군인 매동국민학교에 입학했고 「진짜 주소와 학교에서 선생님이 물을 때 대답해야 할 사직동의 가짜주소를 반복연습」하는 「조마조마하고 헷갈리고 주눅들린」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던 해 6·25를 만나 「미래의 희망」이던 오빠마저 죽자 학업을 중단한 채 미8군 PX에 취직,그 자신이 법이 되고 질서가 되어 세상의 힘과 부딪쳐야 하는 황막한 「한발의 시기」에도 그는 「걸신들린 듯」 세계명작에 탐닉하면서 그때 이미 「소설가가 되리라는 찬란한 예감」과 함께 20년후의 데뷔소설인 「나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바로 성장기에서 53년, 「직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호영진과 결혼」한 내용이다. 그가 변치 않는 것은 언제나 조용한 목소리,조용한 몸짓.일상적인 레가토와 모데라토를 지키면서 어디서나 도무지 불규칙과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 점이다.그러나 그의 목소리속에 깃든 격렬한 웅변과 감연한 비판정신은 입가의 미소로도 결코 감추어지지 않는다.오히려 일찍이 범상치 않아 어떤 상례에 얽매어 자신의 가치관을 팽개쳐버릴 만큼 안이한 일면은 그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기에나 남들 보기에 팔자좋다고 일컬어질 만큼 평탄하게」 사는 중에도 간혹 「인간 같지 않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이하의 수모를 받을 때는 『너를 내 작품속에 넣어 네가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리라』라고 앙칼진 독기를 품고 있었고 막상 소설가가 되자 「역사의 한줄기가 내 개인사를 어떻게 할퀴고 지나갔는가」를 꿰뚫어가면서 「사람은 결국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사람은 존엄하다는 것」과 사회각층의 모순을 작품 곳곳에 비정하리만큼 냉정하게 파헤쳐놓고 있다. ○빈민촌 불루한 어린시절 백낙청도 「휘청거리는 오후」등 박완서의 일련의 작품에 대해 「명백하고 신랄한 사회비판의 문학」으로 평가하고 있다.이남호·이동하는 「정확하고 세세한 기록은 그 자체로 진실의 힘을 갖는다」고 전제한 데 비해 간혹의 평자는 「무서운 집념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이기주의자」 「결혼한 스무해동안 작가가 될 야심을 은근히 불태운,매섭고 냉혹하게 삶을 움켜쥐려」한 「말못할 독종」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렇다.그가 뭇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작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두배 세배로 슬픔과 아픔을 겪으면서 머언 기억속에서 곱씹고 있던 그의 과거를 「탁월한 기억력과 용기 있는 솔직함」으로 기록한 것만 봐도 그의 작가의식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운명」은 그가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던 지난 88년,폐암을 앓던 남편을 잃었고 다시 몇달만에 「딸을 넷씩이나 낳고 마지막으로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청동기처럼 단단하고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 의사아들」마저 잃게 했으며 그는 절망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왜 하필 나인가」,「지옥」을 안겨준 신에게 「한말씀만 해보시라」고 애걸복걸 매달린 「참척의 일기」는 통곡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발작적인 설움」의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당시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저의 개인적 불행을 매스컴에서 너무 강조할 때는 인간의 고통도 상품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는 그는 엄청난 타격을 딛고 일어선 지금도 문득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원한대로 『외롭다』고 대답을 해주긴 하지만 속으로는 「너는 외롭지 않은가,외롭지 않다면 바보」라고 끝내 얄팍하고 야비한 인심에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10여년전부터 살고 있는 방이동 대림아파트에서 그는 탤런트 김혜자를 풍기는 상큼하고 상냥한 미소를 되찾아 아침에 눈뜨면 『내게 글쓰는 일이 없었으면 어땠을까』,글쓰고 싶은 감동이 시들지 않는 것이 행복하며 「내안에서 생기와 기쁨이 무수한 입자처럼 들고나는 걸」 실감하고 재확인하고 있다. ○창작욕 시들지 않아 다행하게도 네딸이 모두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고 손주들이 그의 「낙」이 되어 「가족」의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는 잡념없이 요즘은 결혼후의 이야기와 작가생활에서 체험한 제3작 집필을 앞두고 있다. 젊은 날의 초상은 「먼산」처럼 흘러가버렸으나 유년의 골짜기에 피어 있던 「싱아」와 「그 산」을 되살려낸 그는 이제로부터는 「죽을 때까지의 현역」의 자리에 우뚝 선 채 더 멀리 더 높이,그리고 작열하는 창작욕과 기억의 힘을 창천의 끝까지 날리고 싶어한다. 「그 산이 정말…」의 마지막 부분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성장도 하고 싶었다」고.바로 그는 이를 실천한 선택된 작가의 한 사람인 것이다. □연보 ▲1931년 경기도 개풍출생 ▲1950년 숙명여고졸업및 서울대 국문과입학,6·25로 학업중단 ▲1970년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나목」 당선 ▲1975년 「문학사상」에 「도시의 흉년」 연재시작 ▲1976년 첫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일지사) 출간 작품집 「휘청거리는 오후(전2권)」 중편집 「창밖은 봄」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혼자부르는 합창」(77년),창작집 「배반의 여름」 장편 「목마른 계절(원제 한발기)」 수필집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78년),「도시의 흉년(전2권)」 장편 「욕망의 응달」 창작동화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79년),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80년),단편집 「엄마의 말뚝」 장편 「오만과 몽상」 수필집 「살아 있는 날의 소망」(82년),장편 「그해 겨울은 따뜻했내」(83년),장편 「서 있는 여자」(85년),수필집 「서 있는 여자의 갈등」 창작집 「꽃을 찾아서」(86년),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89년),장편 「미망(전3권)」 수필집 「나는 왜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90년),창작집 「저문날의 삽화」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91년),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92년),「La piquet de ma me're(엄마의 말뚝)」불역(93년),「한말씀만 하소서」(94년),「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95년)등 장단편 30여권 수상 한국문학작가상(80년) 이상문학상(81년) 대한민국문학상(90년) 이산문학상(91년) 중앙문화대상 및 현대문학상(93년) 동인문학상(94년) 한무숙문학상(95년)
  • 민심 「지속적 개혁」 택했다/신한국 수도권 대약진 의미

    ◎여 사실상 승리로 21세기 새정치 주도/유권자 「서울반란」 기성정치 거부 표현 신한국당은 이번 4·11총선에서 비록 과반수 의석확보에는 실패했지만 사실상의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특히 지난 11대 때 소선거구제 도입 이래 16년만에 「수도권 제1당」으로 복귀했다.적어도 나라의 심장부에서 만은 지역할거주의의 벽을 뛰어 넘고,전반적으로는 정국 안정운영의 토대를 재구축하게 됐다. 「4·11」표심은 개혁실종이나 과거로의 회귀를 원치않음을 보여주었다.개혁 방법론에는 불만도 있었지만 개혁 원칙론은 동의한 반증이다. 신한국당은 서울에서 신진인사들이 대약진을 거듭했다.호남·충청등 양김씨의 입김이 거센 속에서 당선자를 냈다.나머지 지역에서도 비교적 고른 득표에 성공했다.반면 국민회의 이종찬·정대철·조세형·한광옥·김덕규·박 실의원과 민주당 이철의원 등 야당 명망가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초선의원으로 등록하게 된 당선자는 전체 2백53개 선거구 가운데 1백1명으로 집계됐다.역대 선거에서 초선이 80여명 안팎에 머문것에 비하면 많은 규모다. 이처럼 국민이 정치권에 던진 메시지는 「새정치」로 요약된다.정치권 전반의 세대교체,즉 신진대사에 대한 국민적 추인이다.정치권의 소모적인 정쟁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만큼 이제 21세기 정치는 새 사람들에게 맡기고 싶다는 국민적 동의가 폭넓게 형성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변화희구 요인은 진작부터 잉태되어 왔다.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정계복귀,자민련 김종필총재의 자민련 창당으로 「과거정치」가 되살아난 데 대한 국민적 불만은 오직 자신들의 텃밭에서만 예외가 됐다.이회창·박찬종·이홍구씨등 신한국당 「빅3」영입은 국민에게 이런 반작용을 배가시켰다. 국민은 「개혁정권」에 「안정」이라는 전제를 달고 개혁에의 기회를 다시 부여했다.안정속의 개혁을 외치며 보수성향의 부동층을 집중공격했고,그 부동층은 신한국당에 표를 안겨다 주었다.당선자 가운데 68%가 보수형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신한국당은 변수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심상치 않은 북한동향도 부분적으로는 한몫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신한국당은 안정과반수 의석에 육박함으로써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됐다.따라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정계개편론은 물밑으로 숨어들 전망이다.대권후보군들의 움직임은 대세에 순종하는 쪽으로 조용히 전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한국당은 정국 주도권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과반수 의석 확보노력을 본격화할 것이 분명하다.무소속과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 당선자들이 대상이다.그 형태는 신한국당이 정국 중심에 버틴채 산재한 세력을 흡입하는 형태로 전개될 것으로 여겨진다.이른바 「개혁대연합론」등 명분이 뒤따를 가능성도 함께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할거주의의 두터운 벽은 허물지 못했다.그러나 큰 줄기는 「3김」영향력의 퇴조를 예고했다.어차피 1년반이면 물러나는 김영삼 대통령보다는 국민회의 김대중,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더 아픈 대목이다. 야권은 향후 내부로부터의 개편론에 심각하게 직면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국민회의는 「영원한 한계」를 뛰어넘지 못함으로써 본질적인 변화론에 부딪칠 수 밖에없게 됐다.특히 DJ는 선거전 내내 외쳤던 개헌저지선,즉 1백석 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대권4수전선에 궤도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자민련 JP는 나름대로의 지분을 확보,견제세력으로서의 위치는 나름대로 지켰다고 평가된다.그는 내각제 개헌의 기치아래 규합자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여겨진다.반면 민주당은 공중와해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렇듯 한동안은 신한국당의 주도아래 정국이 운영될 것으로 여겨진다.그러나 당 내부적으로는 당총재의 「그늘」아래서 대권후보군의 조용하지만 발빠른 움직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적어도 연내는 이같은 움직임이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이번 총선으로 당총재의 정국주도권과 당장악력이 한층 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박대출 기자〉
  • 미 “종군위안부 보상 필요”/”첫 견해 표명

    ◎“유엔서 지지 요청” 일 요구 거부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정부가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인권위원회 토의에서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미국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일본정부는 지난달 이케다 유키히코 외상이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앞으로 서한을 보내 유엔 인권위원회가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토의과정에서 일본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정부는 그러나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지금까지의 일본의 조치를 평가하면서도 「법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견해를 강조,우선시키는데 대해서는 이론을 제기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 처리와 관련,견해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인권위원회에서 결의가 행해질 경우 미국은 결의에 찬동하고 일본이 고립될 가능성이 있어 미·일관계에 미묘한 그늘을 드리울지 모른다고 이 신문은 내다봤다. 미국은 회답에서 「법률론만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지적,개인보상을 회피하는 일본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 전남 무안 달산리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8)

    ◎“원숭이 닮은꼴”… 인간적 친근감/“아들 낳는다” 부녀자들 등쌀에 코 망가져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돌장승 한쌍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했다.법천사와 목우암으로 가는 갈림길에 한쌍이 마주섰다.오른쪽이 수장승이고 왼쪽이 암장승이다.새김솜씨가 무척 단순하나 다른 지역 돌장승에 비해 보다 분명히 사람모습으로 다가온 장승이기도 하다. 이 장승을 세우면서 법천사와 목우암,어느 절이 화주 노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다만 분명한 것은 절을 위해 세운 절장승이라는 점이다.이들 달산리 돌장승을 돌아보고 온 어떤 민속학자는 장승을 구경도 하지 않고 만든 무명의 시골석수 작품일 것이라고 했다.절의 주지는 마을석공을 불러 귀신을 닮은 사람모습의 장승을 본대로 일러주었다.그러면서 한쌍의 돌장승을 주문했다. 석수는 귀신을 본 적이 없다.귀신과 사람중에 아는 것은 사람뿐이었다.평생 구경도 못한 귀신을 애써 상상해보았지만 허사였다.막상 정을 들고 나서도 귀신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을사람들의 얼굴만이 머리속에 자꾸 맴돌았다.결국은 사람얼굴을 만들어냈다.그것도 무섭기는커녕 양순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연민의 정이 가득한 얼굴로 절에 오는 사람을 맞고 보내고 있는 돌장승은 대웅전부처 못지않게 자비로웠다. 한쌍이 다 그렇지만 오른쪽 수장승은 더욱 선량한 눈매를 했다.석수는 눈을 크게 만들 심산으로 눈자위를 넓게 잡았다.그리고는 오목새김 선각으로 원형의 눈을 돌렸다.그런데 볕이 들면 눈 아래 오목새김 선각에 그늘이 져 눈을 슬쩍 내리깐 것처럼 보인다.또 둥근 눈자위는 눈두덩이 되어버렸고,눈 위쪽 오목새김 선각은 눈썹으로 변했다.그저 둥글게 오목새김한 눈망울이 명암에 따라 조화를 부렸다. 수장승 코는 길어 장비형이다.그러나 아들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의 속신은 장승의 코를 내버려두지 않았다.코가 많이 망가져 콧날이 없어졌지만 입가에 약간 머금은 웃음은 여전했다.그 입가 인중언저리가 많이 튀어나왔다.얼핏 원숭이입이 연상되었다.돌장승이 풍기는 전체적인 인상에서 원숭이 얼굴,후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도 바로 입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장승을 맡은 석수는 주지스님이 요청한 귀신의 얼굴을 깡그리 저버릴 수가 없었다.그래서 궁리 끝에 떠올린 것이 사람을 닮은 짐승,원숭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열두개의 띠를 가리는 십이지의 하나,원숭이얼굴 정도면 귀신과 흡사할 것이라고….원숭이는 비록 남방동물이었지만 십간과 십이지를 망라한 간지가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들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생김새는 어렴풋 짐작했을 터였다.그리고 15세기 조선시대에 실제 원숭이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17세기 화가 변상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군후도」에도 실물원숭이가 묘사되었다. 어떻든 달산리 돌장승은 원숭이가 연상되는 사람얼굴,보다 인간화한 장승이라 할 수 있다.〈황규호 기자〉
  • 경남 창녕 관용사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7)

    ◎둥글납작 큰 코… 장난기 물씬/삐죽 드러낸 송곳니에 천진함이… 돌장승이나 나무장승을 통틀어 장승의 얼굴에서 정형의 틀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얼굴이 제각각이다. 굳이 공통요소를 뽑아 내라면 형태가 다를지라도 눈이 왕방울만하고 송곳니를 드러내보인 정도다.무서워보이라고 부러 한짓이다.사람얼굴을 닮은 석룸에 신격을 불어넣자니 별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장승의 눈은 클뿐더러 대체로 둥글었다.그런데 눈이 크고 둥근 것까지는 좋았으나 코도 거의 둥글어 보이는 장승이 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의 관용사 돌장승 한쌍 가운데 수장승의 그러했다.그냥 둥그렇게만 보이는 코는 실상 콧방울과 콧날을 구분했다.그러나 둥그란 이파리 네 개를 끝끝이 포갠듯 한 모양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은 둥글다.코허리도 작은 동그라미를 돋을 새김한 원을 이루었다. 그러니까 얼굴에서 미우 중요한 눈과 코가 한복판으로 동글동글 몰렸다.마치 도안화한 어떤 문양을 연상시켰다.그럿은 풀과 꽃을 주제로 디자인한 초화문 마스크였다.또 코허리를 몸통으로삼아 세깨의 방울을 단 삼두령이 붙여놓은 얼굴같기도 했다.눈썹은 눈자위를 깊이 파고 관자놀이 쪽으로 삐쳐 만들었다.관자놀이 쪽으로 눈썹을 휘어붙인 까닭은 좀 무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입은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하고 입위로 송곳니를 빼냈다.위아래 입술을 통틀어 한쪽밖에 없는 입술위에 송곳니를 삐죽 드러냈다고 해서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턱마저도 둥글어 귀신으로 보이기에는 역부족이다.오히려 돌장승 얼굴은 장난기가 흠씬 밴동자상 정도로 다가왔다.이 관용사 절장승은 표현방법이 전혀 다르기는 했지만 경북선 산군 산동면 도중리 돈자석 돌장승에 보이는 천진난만한 그늘이 어렸다. 그래도 벙거지처럼 생긴 관모를 갖추었다. 관모와 이마를 구분하기 위해 오목새김으로 선을 두그로 관모에 주름한 줄을 잡아 멋을 부렸다. 풍화가 막심한 것으로 미루어 오랜세월을 버티어 온 돌장승인 듯 싶다. 동쪽의 암장승을 바라다 보기만 하면서 자신을 후세에 알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새김글씨 명문이 없는 것이다. 이 돌장승을 지나 절로 가다 보면 돌무지가 나온다.그 옆에는 당간을 받쳐주었던 버팀돌기둥 지주가 서있다.다만 그 당간지주에는 건융38년 게사 10월이라고 쓴 글씨가 나온다.건융 38년은 1773년이다. 돌장승과 당간지주가 다절이 소유한 것이고 풍화정도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돌장승도 같은 시기에 세웠을 가능성은 있다. 지난 1938년에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 받았다. 이 절장승이 있는 관용사에는 석조여래좌상등 2점의 보물급 문화재가 소장되었다.훌륭한 북상을 모셔두고도 돌장승을 세운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그것은 민중들의 기층신앙과영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 상황이 아닌가 한다.
  • 가두유세 나선 김덕 전 부총리(오늘의 인물)

    김덕 전 안기부장이 길거리에 나선다.신한국당 전국구 후보로서 득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안기부의 모토가 『음지에서 활동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이지만 어쩐지 「그늘」만 부각되는 탓에 그의 거리유세는 다소 파격이다. 통일원부총리를 지내기도 한 김 전안기부장은 요즘 대구 그랜드호텔에 묵고 있다.경북 선산출신으로 김윤환 대표위원,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TK대표」들과 보조를 맞춰 후보들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이달 말까지 머물 생각이다. 그런 뒤에는 다음달 1일부터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긴다. 신한국당측은 이를 『문민시대의 새 선거기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체면도 과감히 벗어던지고 유권자들과 몸으로 부딪치겠다는 뜻이다. 그는 그전 같으면 전직안기부장,통일원부총리의 「무게」에 걸맞게 안겨주는 「금배지」만 받고 점잖게 있을 법도 하다.하지만 문민 첫 안기부장으로서 음지에서만 머물지 않고 양지로 나서고 있다.〈박대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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