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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피·가죽·모직/겨울옷 손질·보관 이렇게

    ◎모피­중간중간 털며 그늘서 건조/가죽­눈·비 젖은옷 직사광선 금물/모직­옷걸이에 방충제 넣어 보관 봄바람이 분다.겨울내내 입었던 옷은 장롱속에 넣고 봄옷을 꺼낼때다.부피가 크고 손질도 까다로운 모피나 가죽,순모 등 겨울옷은 잘못 보관하면 망가지기 십상이다.알아두면 유용한 겨울옷 손질·보관법을 소개한다. ▷모피◁ 더러운 물이나 비에 젖었을 때는 물에 적셨다가 꼭 짠 수건으로 닦아낸뒤 옷걸이에 걸어 그늘에서 중간중간 털어가며 말린다.좀이 슬었을 때는 촘촘한 빗으로 빗기거나 가는 막대로 가볍게 턴뒤 스팀타올로 몇차례 반복해 문질러 그늘에 말리고 다시 빗으로 빗어준다.털이 눌렸거나 주저앉았을때는 분무기로 물을 뿌려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약 30분간 말려 2­3회 흔들어 털어주면 털이 살아난다.상태가 심하면 미지근한 물에 가제수건을 적셔 결방향으로 문질러 털을 눕힌 뒤 그늘에서 말리는 방법이 있다.기름이 묻었을 때는 벤젠을 묻힌 가제수건으로 닦아보고 상태가 심하면 모피전문세탁소에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일단손질한 모피는 섭씨 15도의 온도에 습도는 50% 상태로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가정에서 옷장에 보관할때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비닐봉투에 넣는 것은 절대 금물.반드시 통기성이 좋은 모피전용 부직포덮개를 이용해야 한다.그늘진 옷장에 보관하되 옆의 옷과 공간을 넉넉히 두고 커버안에는 방충제 주머니를 넣어두는 것이 좋다.방충제로는 파라디클로로 벤젠이나 장뇌,나프탈렌 등이 좋다. ▷가죽◁ 눈이나 비에 젖었을 때 직사광선이나 난롯불에 말리는 것이 금물이다.반드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낸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다.때를 뺄려면 가죽 전용 클리너로 닦아내던가,중성세제액을 헝겊에 묻혀 사용한다.그런 다음 물을 짠 천으로 남아있는 세제용액을 닦아낸다.반드시 옷걸이에 걸어 그늘에서 말린다.클리너나 중성세제가 없으면 콜드크림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가죽제품은 곰팡이가 생기기 쉬워 반드시 커버를 씌우고 습기가 적은 곳에 보관해야 한다.방충제를 함께 넣는다.가끔씩 곰팡이가 났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곰팡이가 슬었으면즉시 마른 천으로 닦아 그늘에서 통풍시킨다. ▷모직물◁ 양복은 먼저 바짓단이나 주머니의 먼지를 턴다.뒤집어서 햇볕에 1시간정도 말린 다음 다시 뒤집어 30분가량 더 말린다.상의 역시 먼저 먼지를 털어낸뒤 옷깃,앞여밈 부분,주머니 입구,소맷부리 등의 기름때를 벤젠으로 닦아낸다.옷걸이에 걸어 방충제를 넣어 보관한다. 코트의 경우 대부분 드라이크리닝을 맡기지만 세탁후 겨울까지 옷장에 보관할 때는 비닐커버보다 입지않는 헌 와이셔츠로 덮어 보관하는 것이 좋다.겨울에도 한달에 한번정도 드라이를 맡기는 것이 10년 된 옷을 막 사입은 것처럼 보관하는 방법이다.스웨터는 보풀이 일었을 경우 테이프로 솟게한 뒤 가위로 잘라낸다.세탁할 때는 접은 다음 눌러 빨고 눌러 짠다.서랍이나 상자에 보관할 때는 잘 접어서 등굴게 말아넣는다.
  • 연극연출가 강유정(이세기의 인물탐구:123)

    ◎무대연출 금녀의 벽 허문 철의 여인/여성에 대한 모든문제 무대서 해답구해/파격적 전위성보다 연극의 정통성 고수 「연극의 모든 문제는 저 침묵을 뒤흔들어 놓는 일이다.저 침묵의 얼음덩어리를 녹여 도도히 흐르는 강줄기로 역행시켜야만 한다」.강유정은 「침묵의 객석」을 향한 장 루이바로의 열변으로 일찍이 연극의 철리를 깨친 연출가다. 아무도 그를 번뜩이는 천재라고 말하진 않는다.불꽃튀기는 재치와 새타이어의 현란성을 지녔다고도 생각지 않는다.다만 「오래 달군 쇠처럼 쉽게 식지않는 정열」이란 말이,그를 두고 적절하다.오랜 교분을 트고 있는 희곡작가 차범석씨는 『그의,연극에 대한 집념은 누구에게도 비교할수 없을만큼 깊고 강하다』고 전한다.「성격 자체도 크고 넓어서 웬만한 남자는 따라잡기 힘든 반면」「자상하고 다정다감한 여성적인 일면이 그의 매력」이라고 했다. ○「여인극장」 30년 이끌어 그의 겉모습만으로는 고집스럽고 뚝심이 세고 남성적일 거라고 사람들은 짐작한다.그러나 만사에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 강유정의 면모다.대범한 듯하지만 섬세하고,감상적인 것 같지만 자기주장이 강하다.초창기엔 연극연습 과정에서 단원들과 잡다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상대방을 「부드럽게 감싸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지난 30여년간 극단 여인극장을 「대과 없이」 이끌어왔다. 그의 연극에의 길은 결코 평탄한 직선을 긋고 있진 않다. 고교시절엔 세계명작을 무질서하게 읽으면서 「희곡작가」를 지망했으나 희곡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대경험」이 필요하다는 이해랑씨의 충고를 받아들여 18살 되던 해 극단 「신협」에 입단했다.프롬프터에서 「살아있는 이중생각하」에 이르는 단역 대역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희곡이나 연기보다 무대전체를 관장하는 연출자가 되고자 꿈꿨다.그러나 연극계의 철옹성같은 보수성은 그에게 연출의 기회를 주지않았고 다시 영화계로 눈을 돌려 홍성기·이강천 감독 밑에서 어려운 조감독생활을 거쳤지만 영화쪽에서도 그에게 감독의 기회를 내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는 극단과 영화계주변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극단 창단을 기획하고 자신이 읽었던 수많은 주옥편들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그렇게 탄생한 것이 극단 여인극장이다. 평소 친분이 두텁던 성곡 김성곤씨의 부인 김미희씨의 도움을 받아 66년 10월 서울 신문로에 있던 성곡댁에서 화려한 창단파티를 가졌을때 모든 것이 가난하기만 했던 연극계는 「여성연출가 탄생」과 함께 그에 대한 기대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나의 연극을 시작하기 위해 2,3년전부터 작품을 고르고 끈질긴 탐구성과 선별의 명철함,마음속까지 꿰뚫는 예민성으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엄밀하게 가리는 것이 그의 연출포인트다.극중 인물의 사상과 성격을 도식적으로 또는 소묘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내부에 도사린 모순에 파고들어 피가 뛰는 인간상을 창조해 나간다.극적인 기교나 파격적인 전위성 대신 정통연극을 진솔하게 지키면서 「누가 뭐라고 하든 나의 시각과 나만의 해석으로 연극이 품고있는 내면의 정서를 전달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그의 연극관은 「연극이 사회를 맑게 하는 샘물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여인극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과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여성의 편에서가 아닌,인간의 문제」로 파악하고 「오늘의 생존을 위해 고통당하는 인물」들이 「지나간 과거에 대한 용서와 화해,그리고 여인들의 억눌린 욕망의 문제를 시적 정서로 밀도있게 그려낸다」는 평이 그것이다.평론가 김방옥은 85년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한 「풍금소리」를 보고 「각 인물의 성공적인 성격창조라는 면에서 이번 연극제에서 가장 큰 감동을 준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한때 영화계 눈돌려 그가 여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고싶어한 것은 경상도 특유의 집안의 보수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5대독자인 부친 강동수씨는 북경과 상해로 나돌며 풍운아처럼 군림하는데 비해 딸만 둘을 낳은 어머니는 그늘진 곳에 숨어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그는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 위해」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고집이 센 성격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가 연극에 미치는 이유는 「항상 남다른 삶과 만나는 즐거움」과 「배우의 발성과 무대의 열기와 극이 진행되는 동안의 긴장감」때문이며 그때마다 「자신이 싱싱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연극은 나의 생, 나의 생활」이라는 신조로 그가 좋아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지난 여름 갑자기」등 테네시 윌리엄스에 집착하고 지난해 창단30주년 기념공연과 내년 상반기공연을 위해 뉴욕에 있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와 올비의 「키 큰 세여자」,맥넬리의 「마스터 클래스」를 정식 계약하기도 했다. 그가 연극을 하기까지 부군 임영수씨의 외조와 인내심을 그는 잊지 못한다.서울대 상대출신에다 육사교관이던 부군은,걸핏하면 집을 비우고 통금시간을 밖에서 넘기는 그의 연극활동을 이해하여 처음엔 연극제작에 관련된 은행대출 등에 도움을 주기도 했으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연극에 질려 언제부턴가 극장주변에는 얼씬거리지 않더니 88년 타계했다.자녀는 1남2녀. 동숭동 극장가에 가면 그를 만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커다란 숄더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알기 위해 그는후배들의 공연을 들여다보고 연극인들과의 토론·담론을 즐긴다.애연가에다 애주가지만 아무리 전날 술을 마셔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작품분석에 전념하고 양직한 성품탓에 친구의 폭이 넓고 다양한 편이다. ○연극인들과 토론즐겨 『누가 가장 영광있게 산 사람인가.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인생의 모욕일 수 있다』.그대신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그리고 힘차게 일어나는 것이 참된 인간의 영광이며,바로 그런 자세로 나는 한평생 나만의 연극인생을 만들어냈다』고 그는 감연히 말한다. 「여성연출가 1호」를 기록하고 「갈매기처럼,불꽃처럼 자유롭고 뜨겁게」 여성에 대한 모든 해답을 무대에서 구하게 했다는 자체만으로 그는 우리 연극사에서 「비중있는 배역」으로 또렷한 족적을 남긴 존재다. □연보 ▲1932년 경남 진양출생 ▲49년 극예술협회 입단 ▲50년 극단 신협입단 ▲55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57년 수도영화사 연출부 입사,이강천 감독 「생명」조연출 ▲64년 영화 「순교자」제작 ▲66∼현재 극단 여인극장 창단 대표 ▲68년 가르시아 로르카작 「베르나르드 알바의 집」첫연출 ▲73년 한국연극협회 이사 ▲75년 한국연극협회 감사 ▲76년 창단 10주년기념 테네시 윌리엄스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연출,「창단10주년기념희곡집」발간 ▲79년 황석영 「산국」 미주 순회 ▲82년 한·미 수교 100주년기념 차범석작 「학이여 사랑일레라」 미주 순회 ▲86년 창단20주년 기념 노영식작 「강건너 너부 실로(넓은 들로)」연출 ▲91년 극단 여인극장 100회기념 셰익스피어작 「맥베스」연출 ▲92년 서울연극제심사위원·한국연극협회감사·아시아여성연극인대회 한국대표 ▲94년 한국여성연극인회 회장,세계여성희곡작가협의회 이사 ▲95년 한국연극협회 이사 ▲96년 창단30주년기념 에드워드 올비작 「키 큰 세여자」연출 〈연출대표작〉 「이구아나의 밤」「지난여름 갑자기」「올페」「하녀들」「부부」「다(아빠)」「아,아빠 가엾은 우리아빠!」「아내란 직업을 가진 여인」「모닥불 아침이슬」「풍금소리」「키리에」「맥베스」「세자매」등 100여편 〈수상〉 대한민국연극제작품상·희곡상·연기상(78년) 한국연극영화 텔레비전예술상 대상(85년) 서울시문화예술상(8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연출상(92년) 한국예총예술문화대상(93년)
  • 한국인의 두얼굴(송화강 5천리:20)

    ◎유흥업소 VIP… “조선족 돕기” 숨은 선행도/투자붐 타고 기업인·유학생 급속 증가/일부 현지처에 “흥청망청” 빗나간 행동 눈살/한편엔 심장병 조선족처녀 수술비 모금/맹인학교 운영·신기술 보급 앞장서기도 중국의 한국인들은 새로운 사회계층의 하나라 할 수 있다.중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한국인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다.그들의 신분은 기업인과 기업 종사자,유학생,교수 등으로 중국속의 조선족들과는 분명히 구별되었다.모두들 주머니가 두툼하다는 공통점을 지닌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통이 크게 노는 부류는 유학생들이라는 이야기다.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이 몰린 지역은 흑룡강성 하얼빈시나 길림성 장춘과 같은 대도시다.이들 대도시에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술집과 노래방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다.주로 남녀가 한 쌍을 이루어 유흥업소를 찾았다.한국에서 온 유학생 남녀라기 보다는 현지 아가씨들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얼빈 거리를 지나노라면 노래방이 여기저기 깔려있다.간판이 휘황찬란하거니와 내부시설도 제법 잘 꾸며놓았다.그러나 내부시설도 중요하지만,무엇보다 아가씨들이 많아야 장사를 우지좌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길시 한 술집에서 한국유학생과 우연히 동석을 하게 되었다.피차가 술이 얼근했던 터라 수인사를 했는데도,박군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내가 술값을 치르겠다고 했더니 막무가내인 만큼 허세를 부렸다.결국 술값은 내가 냈지만,2차는 박군이 사겠다고 우겨 자리를 옮겼다.그 자리에서 박군은 연변생활을 혀 꼬부라진 소리로 실토했다. 『연변대 예비반에 들어와서 중국어 공부를 하는 한국학생은 40명 정도가 있어요.그런데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4∼5명이 고작이에요.그 시간에 잠자야지 공부는 왜 합니까….오전 10시에 일어나서 11시쯤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고,오후에 다방에 가서 노닥거리다 밤이 되면 노래방을 가는 재미로 살아요.아파트 독채 얻어놓고 조선족 아가씨와 살림차린 선배보다는 건실하게 사는 거지요.유학생 회장 선배한테 혼나기도 했지만,이 생활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겁니다』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기업인들은 더러 아파트를 세얻어 식모를 두고 있다.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얼굴이 반반한 과부나 처녀를 식모로 두는 이들이 흔하다는 것이다.그리고 중국말을 배운답시고 한족여인을 불러들이는 경우도 보였다.한국여인은 여느 식모의 월급 500원에 비해 10배나 되는 5천원씩을 준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나 중국말도 배우고 현지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실은 싼값인지 모른다. ○한족과 연애하며 어학공부 그래도 기업인들은 성인이라서 보아넘길수 있다.그러나 현지처를 둔 유학생들은 꼴불견이다.장춘 어느 대학으로 먼저 유학을 온 한국유학생이 후배들에게 내뱉었다는 희떠운 큰 소리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누가 한국유학생들의 방종한 생활을 빗대어 꾸며낸 말이기를 기대하는 가운데 소개하면 이렇다. 『내가 장춘에 온지는 일년이 되었지.학교에 나가 청강한 날을 계산하면 아마 열 손가락을 다 못 꼽을거야.그래도 한어수평고시에 합격을 했지.비결이 뭐냐구? 바람을 열심히 피라는 거야.그것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한족처녀가 좋지.처음에는 육체적인 언어만 통하지만,차츰 주둥아리가 트인다 이말이야.머리통 거머쥐고 외는 것보다 한결 수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그런 작태는 한국인들의 저질적 사고와 조선족들의 물욕이 어울린 민족의 수치일 것이다.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한국인중에 그늘진 중국사회를 위해 빛을 던져주는 사람들도 있다.지난해 「흑룡강성신문」에 「대가족 속에 피어난 사랑」이라는 제목의 미담기사가 실렸다.그 기사에는 병을 앓는 조선족 처녀와 한국기업의 간부가 등장했다. 기사내용은 하얼빈쌍태전자유한회사 여종업원인 조선족 처녀 오봉화양(21)이 심장병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웠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그러나 수술비 2만원이 없어서 죽음을 맞아야 했는데,쌍태전자 한국인 과장 주정호씨(40)가 오양 돕기운동에 나섰다.주과장 자신이 500원의 성금을 먼저 내고 회람을 돌렸다.오양의 딱한 소식은 주종영총경리까지도 알게되었다.그래서 마침내 지난해 성탄절날 수술을 받은 오양은 다시 삶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미담기사 주인공으로 등장 한국가톨릭의 하상복지회는 길림성 연길시 애단로 175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선복지단체다.가톨릭의 성인 정하상의 이름을 빌려 설립한 하상복지회는 1994년8월 연변에 진출했다.이 복지회는 연변하상시력장애인강복센터를 설립하고 맹인학교를 꾸렸다.지난해 7월15일 이미 9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한 바 있다.한국에서 온 홍영희(42) 손인숙(42) 이명선(42) 등 세 분의 여선생들이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일했다.한달에 한국돈 10만원에 불과한 봉급을 받지만,보람에 산다고 했다.홍영희 선생 말에서도 기쁨으로 사는 마음이 엿보였다. 『소외받은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은 누군가가 해야할 일입니다.그런 일을 우리가 맡은 것이지요.저희는 그동안 하느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살았으니까,그 사랑을 나누어야지요.지금 하는 일은 하느님으로부터 이제까지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우리와 함께 한 맹인들이 학교를 떠나 사회에 복귀하더라도 아무쪼록 자립하는 삶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라면 바램이지요.그래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허옥(72) 선생은 흑룡강성을 위해 중국을 찾은 분이다.미국국적을 가진 그는 흑룡강성 화천현 횡두산진에 화미이탄회사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지난 83년부터 기초조사를 하고 87년에 회사를 세워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이탄과립복합비료를 생산하고 있다.그는 돈을 벌기위해 무턱대고 중국을 찾은 사람이 아니다.처음부터 애정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94년 하상복지회 진출 봉사 『저는 20살 나이를 먹을 때까지 흑룡강성에 살았습니다.부친과 함께 고용살이를 했지만,흑룡강성은 고향이나 다름 없지요.그래서 다른 여느 회사들처럼 사람을 싼값에 불러쓰고 돈이나 챙긴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버렸습니다.중국공민의 입장에서 함께 살자는 뜻을 갖고 사업에 달라붙었습니다』 가목사시 녹주효소유한회사 김상석 사장(59)역시 조선족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인이다.이 기업에서 생산하는 효소계열제품은 국무원경제개발센터가 공인한 중국 최초의 개발품이다.효소계열제품 개발소식이 전국에 퍼져 방방곡곡에서 기술강좌를 해달라는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그래서 김사장은 조선족사회 위주로 전국을 돌며 효소제품 생산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다.그렇게 해서 생산한 효소제품은 녹주효소유한회사가 전량을 사들여 수출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 “3·1정신을 21세기 민족의 동력으로”

    ◎김 대통령 3·1절 기념 치사서 강조 김영삼 대통령은 1일 『세계사적인 변화는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제,『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국내적으로는 노사갈등과 경제침체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대해 대통령으로서 안타깝고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8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기념사를 통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당면한 과제중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라며 『이제는 노사간 문제나 부정부패사건의 그늘에서 우리 경제가 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우리가 신념과 의지를 갖고 화합하고 단결한다면 우리 경제는 멀지않아 다시 일어날 것』이라며 『기업인과 근로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이 이같은 노력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간곡하게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대통령은 『우리는 또하나의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그것은 나라의 안보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북한은 이제 대결의 자세를 버리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와야 한다』며 『북한은 대동단결의 3·1 정신으로 돌아와 민족의 공동번영과 평화통일의 큰 길에 합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멕시코 유카탄주 치첸이차(세계 문화유산 순례:24)

    ◎천문학에 눈뜬 마야인의 신도시 유카탄 반도의 주도 메리다의 아침은 그리 상쾌하지는 않았다.멕시코만과 카리브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 탓에 다소 끈적한 느낌마저 들었다.과거 문명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즐거움이 아니었다면 쉬 짜증이 날만한 기후였다. ○성채닮은 캐슬피라미드 꼭대기까지 365계단 태양력 1년 날수와 같아 마야인들은 욱스말이 점차 도시기능을 잃어가자 그 중심지를 동쪽으로 옮겼다.양과 질에서 점차 커져가는 자신들의 문명을 담아낼 새 그릇이 필요했던 것이다.오늘날로 말하면 신도시를 건설했다고나 할까.그곳이 바로 메리다에서 동쪽으로 120㎞쯤 떨어져 위치한 치첸이차(Chichen Itza)다.그래서 이 도시는 후기 마야문명(AD 900년경∼AD 1521년)의 중심지가 됐다.선대의 정신적·물질적 가치들이 보다 정제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관광객들 틈에 섞여 입구를 지나 숲이 드리운 서늘한 그늘 길을 100m쯤 걸어 갔을까.너른 잔디밭위에 떡하니 버티고 앉은 건축물 하나가 길을 가로막았다.이름 그대로 웅장한 성채를 닮은 「캐슬 피라미드」였다.길이 55.3m의 정사각형으로,전체 높이가 23m나 되는 「캐슬 피라미드」는 모두 9개 층을 이루었다.그리고 사방 벽면에 4개의 계단 구조를 갖추었다. 피라미드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각각 91칸인 계단수를 합치면 모두 364단이다.여기다 꼭대기의 제단을 더하면 꼭 태양력의 1년 날수와 같은 365단이 됐다.또 9개 층 계단을 의도적으로 양분해 놓아 당시의 달수(월수)인 18이라는 숫자를 나타냈다.그러고 보면 「캐슬 피라미드」는 마야인들의 예술적 건축기술과 천문학 지식수준이 한데 맞물린 문명의 집적체 그것이었다. 피라미드 북쪽 계단은 또다른 신비를 간직했다.피라미드 밑에서 꼭대기에 이르는 돌 난간이 해마다 춘분과 추분날 하오 4시만 되면 환영을 연출한다는 것이다.태양의 빛과 그림자가 오묘한 조화를 이뤄 마치 커다란 뱀이 꿈틀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정확히 3시간22분동안 계속된다는 그 환영을 목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뱀을 숭배했던 마야인들은 해마다 춘분이 돌아오면 엄청난 영적환희에 휩싸였을 것이다. ○인신제물의 마야인의 풍습/「착몰」신께 바친 제물은 공놀이서 이긴 자의 심장 「캐슬 피라미드」를 뒤로 한채 동쪽으로 걸어갔다.멀리서부터 촘촘히 서있는 흰색 돌기둥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그 수가 족히 1천개가 넘는다고 한다.언뜻 보기에 지붕을 떠받치던 기둥이 아닐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간격이 너무 좁았다.그렇다면 이 돌기둥들은 과연 무엇에 쓰였을까? 궁금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전사의 피라미드」에 오르는 통로였다. 계단은 36단을 이루었다.서둘러 오르자 먼저 「착몰」(Chac Mool)신의 형상이 시야에 들어왔다.앉아있는 것도,누워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의 신은 엉덩이를 땅에 댄채 상체를 45° 각도로 들었다.그리고 발목을 엉덩이에 붙인채 두 무릎을 바로 세웠다.얼굴은 왼쪽으로 향한채 끝이 안보이는 어딘가를 직시하면서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 배위의 접시를 받치고 있다. 「착몰」신상의 쓰임새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스페인 정복 이전 마야인들이 산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곧바로 연상됐다.방금 꺼낸 사람의 심장을 신상이 두손으로 받친 접시 위에 올려 놓았을 것이다. 마야인들은 신에게 심장을 바칠 인신제물을 「후에고 데 펠로타」,즉 공놀이장에서 구했다.신성한 공놀이에서 승리한 사람은 곧 자신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다.승자가 죽음을 영광처럼 받아들였던 마야인의 심성은 참으로 불가사의했다.「캐슬 피라미드」서쪽에 위치한 「후에고 데 펠로타」는 길이 146m,폭 36m로 중앙 아메리카 최대 규모로 밝혀졌다.그 형태가 비교적 깨끗하게 남아있는 양쪽 벽면에는 전형적인 마야의 깃털장식과 동물가면을 쓴 군인들의 모습이 선명했다.용맹스런 군인을 상징하는 「재규어의 신전」이 벽 위에 우뚝한채 공놀이장을 내려다 보고있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치첸이차 유적지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이 북쪽에 있는 「세노테」(Cenote)다.지름이 50∼60m는 족히 넘고 깊이가 40여m에 이르는 대규모 연못이다.1924년 미국인 고고학자 에릭 톰슨이 발굴작업을 실시한 결과,각종 도자기·흑요석 등과 함께 인간의 뼈가 나왔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했다.가뭄이나 흉년이 들었을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세노테」는 농사지을 물을 대는 저수지 기능을 했을 뿐아니라 제소로도 활용했던 성지였음이 틀림없다. ○천체 관측한 「돔」탑/창문에 비친 태양각으로 춘하추분 정확히 알아 치첸이차는 마야인들이 천문학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다른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캐슬 피라미드」남쪽 300m 지점에 천문대로 사용했을 「소라의 피라미드」가 바로 그것이다.오늘날의 우주관측소에서 볼수 있는 돔(Dome)형 지붕이 뚜렷하고,내부에는 천체관측에 사용된 이중 구조물이 남아있다.마야인들은 돔탑을 둘러가며 나있는 창문에 비친 태양의 각도를 재어 춘하추분을 정확히 알아맞추었다.현대과학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그들의 문명수준이 놀라웠다. 1988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치첸이차에는 이들 유적 말고도 전쟁포로의 목을 길게 꿰어 벽면에 걸어놓았던 「솜팡틀리」와 「금성의피라미드」 등 여러 건축물이 남아있다.제사를 앞둔 제사장이나 사냥에 나설 사냥꾼들이 몸을 씻거나 출산전후의 임산부가 목욕을 하던 증기목욕탕 시설까지 갖춘 완벽한 도시 치첸이차.떠나면서 다시 돌아본 고대도시에는 마야인들은 오간데가 없고,석양을 뒤로한 문명의 그림자만이 깔려있을 뿐이었다. ▷여행가이드◁ 메리다 시내에 숙소를 정하고 관광버스나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다.그러나 치첸이차가 메리다와 세계적인 휴양지인 칸쿤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어 유적지를 둘러본뒤 칸쿤으로 숙소를 옮기는 것이 낫다.입장료는 18페소(일요일은 10페소). 또 매일 하오 7시와 9시에는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피라미드의 야경을 버여주는 「빛과 소리의 쇼」가 열린다.7시는 스페인어로,9시는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치첸이차로 가는 도중 우리나라의 초기 중남미 이민사를 대표하는 「에네껭 농장」
  • 등소평의 유언(외언내언)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지배한 이후 중국인민이 가장 사랑했던 정치지도자로는 주은래가 첫손에 꼽힌다.세계최대국가의 총리로서 30년간 가난한 나라살림을 꾸려왔던 주은래에겐 자신의 유체를 남긴 무덤이 없다.그의 유언에 따라 사후에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가루는 비행기에 실어 그가 평생 혁명의 정열을 바쳤던 중국의 하늘에 뿌렸기 때문이다. 1976년 1월8일 주은래가 78세를 일기로 파란만장의 생애를 마친뒤 서방에 전해진 그의 유언장은 추도식을 크게 벌이지 말 것과 미망인 등영초는 아내로서 보다 전우로서 추도식에 참석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책과 문서들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당에 기증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은래와 함께 중국혁명에 젊음을 바쳤고 평생을 검소한 생활로 일관해 존경을 받은 등영초는 「그늘진 곳」에 있던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을 남몰래 도운 것으로도 유명하다.지난 92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등영초는 문서로 당중앙에 남긴 유언에서 화장을 당부하며 『유골도 보관하지 말고 뿌려주십시오.이것은 먼저 간 주은래 동지와의 약속입니다.고별식 추도식 같은 것도 삼가주십시오』라고 부연하고 있다. 등영초는 또 자신의 친인척에게 특혜를 주지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치국원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지낸 등영초는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 93세를 일기로 19일 타계한 「작은 거인」 등소평은 자신의 각막을 기증하고 시신은 의학연구를 위한 해부용으로 제공했다.상사도 그의 유언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진다.6일간의 애도기간중 과거처럼 유해를 당기로 덮고 각계의 조문을 받는 공식적인 고별의식은 거행하지 않으며 유체는 화장해 유골가루를 바다에 뿌린다.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조국과 인민에게 남김없이 주고 가는 이런 덕목이 중국지도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중국이 있는 것이다.
  • 「등」이후 중국… 나카지마 미네오 기고(해외논단)

    ◎중 사회주의 모순 분출… 체제유지 회의적/강택민 군사력 증강·민족주의 강화 가능성 등소평이후의 중국에는 사회적 모순이 분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본의 중국전문가 나카지마 미네오 도쿄외국어대학 학장이 21일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등소평의 죽음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온 등은 모택동 모델의 중국사회를 변혁시킨 지도자다. 등은 3번씩이나 실각하면서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으며 모택동이 죽은후 78년에는 마침내 화국봉을 밀어내고 중국공산당내 주도권을 확보했다.등은 그후 최고 실력자로 황제와 같이 군림해왔다.하지만 그러한 등의 인치를 비판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으며 민주화 움직임은 1989년 6월4일 천안문사태로 발전했다.등은 천안문사건을 철저히 진압하지않은 조자양 당시 총서기를 실각시키고 강택민을 총서기에 임명했다. 등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때문에 중국은 등의 사망이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사회적 혼란을 피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그러한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큰 불안을 안고 있다.무엇보다도 지금의 개혁·개방정책이 중국민중들에게도 혜택을 주며 등사망이후에도 중국의 경제·사회가 순조롭게 발전해 나가면 그러한 불안은 크게 완화되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은 현재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많은 사회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압력솥」과 같은 상황이다.천안문사건후에도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싸고 당내 논쟁이 끊이질 않았으며 민주화운동의 불씨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이때문에 포스트 등시대에 거대한 역사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한 변동은 민주화운동을 다시 고양시키고 농민반란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폭발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으며 옛소련과 같이 등이후에 정치적 실권을 쥔 지도자에 의한 위로부터의 「반혁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그러한 두가지현상이 연계되어 일어나며 큰 혼란없이 공산당독재체제가 조용히 붕괴될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대만과 홍콩으로부터 불어온 「남풍」의 사회적 침투력도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최근의 중국 권력중심부에서는 등이후의 혼란에 대비,견고한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하기위해 등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비등소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94년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택민 총서기의 측근인 황국 당시 상해시장 등 이른바 상해인맥이 당중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도 그러한 흐름의 반영이었다. 강택민 주석은 지금 당(총서기),정(국가주석),군(국가군사위원회주석)의 3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등에 의해 현재의 지위에 올랐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 강택민은 등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에 비해 등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그러한 강의 기반강화 움직임에 보수파 원로들과 군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거리다.앞으로 수주에서 수개월사이에 교석 등 최고 지도자들의 권력투쟁이 격화되면 군의 움직임도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역사적 흐름인 탈사회주의 조류에 의해 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등사망후의 중국은 장기적으로 사회주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21세기에는 「일국다정부」 형태의 중국으로 재편될지도 모른다.오는 7월에 반환되는 홍콩의 운명,대만인들의 정체성 성숙,소수민족의 반란움직임 등이 그러한 전망의 가부를 결정할 중대한 문제다. 중국이 그러한 불확실성의 과정에 들어서면 중국은 군사력을 증강하며 대외적으로 대중화 민족주의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그렇게 될경우 미국과 중국,일본과 중국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일 도쿄외국어대 학장/정리=강석진 도쿄특파원〉
  • 파키스탄 탁티바이(세계 문화유산 순례:23)

    ◎가파른 바위산 벼랑끝 성채같은 가람이… 간다라(Gandhara)는 아주 일찍 역사에 등장했다.아키메네스왕조때(BC559∼330년) 페르시아의 속주로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다.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페샤와르현에 해당하는 지역이 옛 간다라 땅이다.역사속에 명멸한 정복자들의 말발굽 소리가 그칠날 없이 이어진 지역이기도 했다.그래도 간다라에서는 불교와 불교미술이 오랫동안 꽃피었다. ○대평원 한복판 우뚝/망망대해 등대인듯 그 간다라에는 불교유적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대표적 유적의 하나가 탁티바이(Takht-i-Bahi)다.가람유적인 탁티바이는 페샤와르현 마르단에 있다.페샤와르시에서 탁티바이까지는 꽤 멀었다.난마처럼 얽힌 카불강과 스와트강줄기를 몇차례 건너서 간다라 첫 수도 차르사다를 지나쳤다.논스톱으로 두시간을 좀 넘게 달렸을까,대평원 한복판에 우뚝한 산자락 하나가 불쑥 시야로 들어왔다. 탁티바이산이다.산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 같았다.오랜 세월을 두고 탁발로 유랑한 당시 구도승들에게 산은 실제 등대 노릇을 했을것이다.풀 한포기도 눈에 띄지않는 바위너설의 악산인데,가람은 매달린듯 벼랑에 붙어있다.아래서 저만큼 올려다 본 가람 탁티바이는 성채 그것이었다.그많은 정복자들의 난리를 피해서 부러 가파른 바위산을 택했으리라.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가람 입구에 다다랐을때 기다리던 경비원이 거수경례로 맞아주었다.긴 치마자락처럼 정강이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고유의상 카미즈 차림의 경비원은 허리에 넓은 가죽벨트를 맸다.벨트에 권총을 매달지 않았을 뿐,어떤 제복같은 느낌이 와닿았다.유적 경비원을 따라 여러개의 수투파(불탑)가 있는 뜰을 지나서,경내에 단 한그루 밖에 없는 보리수나무 그늘에서 우선 한숨을 돌렸다. 탁티바이 가람유적은 기원전(BC)100년쯤부터 터를 잡아나갔다.그리고 나서 기원후(AD)6세기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가람을 조성하는 동안도 파괴와 건설이 거듭되었다.탁티바이산은 산자체가 돌산이다.그래서 가람의 모든 건조물은 산에 널린 운모편암을 자재로 축조했다.가람은 층서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블럭을 가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간다라 불교유적지 성한불상 하나없어 유적의 단면은 대체로 요꼴을 이루었다.그런 단면을 기반으로 불교의 기본 건축물인 수투파와 불당,승원을 지었다.수투파는 네모꼴 기단위에 탑 몸체를 쌓아올리는 형식이었는데,애석하게도 기단만 남아있다.승원의 경우에는 가운데 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둘레에 승방을 가지런히 배치했다.이같은 승원축조양식은 간다라지방에서 처음 나타나 인도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가람 입구를 들어서면 수투파 기단들이 늘어선 좁은 뜰이 나왔다.요꼴 단면에서 보이는 오목한 부분이 바로 뜰이다.그 뜰이 시작되는 오른쪽(북쪽)으로 불상을 봉안했던 닫집(감실)들이 바싹 다가왔다.모두 12개나 되는 닫집을 지나쳤지만,불상 한 두어 구가 겨우 눈에 띄었다.그나마 머리가 아니면 팔이 떨어져 나간 불상 뿐이다.가람 어디에서도 몸이 성한 불상을 만나지 못했다. 간다라 불교유적은 일찍 파괴되었다.당나라 승려 현장의 구도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보면 7세기 전반의 건태국,즉 간다라 이야기가 나온다.현장은 이책에다 「승가람은 1천여군데에 있으나,모두 부서진채 방치되었다」고 적었다.동서 1천리,남북 800리의 간다라를 여행하면서 적었다는 현장의 기록에서 탁티바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식민제국 박트리아의 왕 맨안더(재위 BC155∼130년)의 후광을 업고,또 쿠산왕조의 카니쉬칸(재위 AD78∼128년)을 후원자로 전성기를 맞았던 탁티바이.겨우 600여년을 가람답게 지켰다.지금 탁티바이는 적막했다.탁티바이는 「바위속의 샘」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유적 경비원에게 청해서 얻어마신 양재기 물맛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정복자 말발굽에 파괴­건설 600년 이 가람의 대탑 메인 수투파는 입구에서 곧바로 만난 뜰 왼쪽(남쪽)에 있었다.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 가장자리에다 여러 칸의 닫집을 ㄷ자꼴로 앉혔다.닫집의 지붕은 독특했다.네모꼴 지붕을 돌로 올리면서 모서리를 차츰 죄어가는 방식으로 둥글게 쌓았다.그리고 지붕 한가운데에 원심의 구조물을 도드라지게 덧쌓았다.역시 이들 닫집안에서도 불상이 보이지 않았다. 승려들이 머물렀던 승원은 이 가람 북쪽 블럭에 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을 내려와 입구 뜰을 건너서 계단을 올랐다.마당 중간을 비워두고 ㅁ자형으로 빙 둘러지은 승방들이 촘촘히 박혀있다.경전을 외는 소리가 두런두런 했을 승방은 지붕조차 없다.지난 먼 옛날 불교를 그토록 보호했던 왕조 모두가 역사속에 묻혔으니,누가 중창을 하랴.지금 유네스코(UNESCO)가 나서 더 허물어지지 않게 보살피고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불교가 존재않는 불교의 유적지 구도승들의 고행현장은 정오가 가까운 한낮에 찾았다.가람 입구에서 시작한 뜰을 거쳐 서쪽 마당끝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을때 어두컴컴한 터널이 나왔다.돌을 맞조려 쌓은 천정이 아치꼴을 이룬 터널은 꽤 길었다.터널 오른쪽으로 작은 방들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다.인공의 토굴이었던 것이다. 토굴의 환경은 감방보다 열악했다.승려들이 고행과 명상으로 은둔했을 토굴에는 박쥐떼만 득시글거렸다.세월이 무상했다.생겨나고 없어지는 생멸에 집착하지 않은 탓일까,파키스탄에서 불교가 사라진지는 오래다.제대로 된 불상 하나를 만나지 못하고 탁티바이를 돌아서야 했던 까닭도 불교가 존재하지 않는 불교유적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숙박은 페샤와르서/국내선 하루 2∼4편 운항 탁티바이는 페샤와르에서 80㎞ 거리다.페샤와르에서 택시를 타면 90∼100달러가 든다.페샤와르를 거점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숙박은 페샤와르에서 하는 것이 좋다.숙박시설은 딘스호텔,펄콘티넨털호텔 등이 있다. 교통편은 라왈핀디나 라호르에서 오는 파키스탄 국내항공이 하루 2∼4편 정도 운항한다.그리고 이슬라마바드에서 육로를 택할 경우 4시간이 걸린다.페샤와르는 실크로드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라서 아랍풍의 문물관광도 즐길수 있다.인더스 가이드(92­42­872975)같은 여행사 안내도 고려할만한 일이다.
  • 시집에도 없는 1945∼55년 작품/잊혀진 미당의 시 15편

    ◎국문학자 최현식씨,「밤」·「눈」·「통곡」 등 논문서 소개 「민족 방언의 요술사」「어떤 말이나 붙잡아 놀리면 그대로 시」라는 한국시의 최고봉 미당 서정주씨(82)의 시가운데 시집을 통해 접할수 없었던 시들이 새롭게 발굴됐다.국문학자 최현식씨(연대 박사과정)가 2월 창간될 계간 「한국문학평론」에 기고한 논문 「전통의 변용과 현실의 굴절」을 통해 지난 1945∼55년 발표된 미당의 시가운데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채 잊혀진 15편을 소개한 것. 이 시들은 「개벽」「현대문학」 등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수록됐으나 스크랩 등 자료로 남지 않아 그의 시집이나 전집 등에 실리지 못했던 것. 새로 발굴된 작품은 「밤」「눈」「통곡」「피」「저녁노을처럼」「선덕여왕찬」「춘향옥중가(3)」「백옥누부」「곰」「그날」「깐듸송가」「팔월십오일에」「영도일지(대)」「일선행차중」「산중문답」 등.이 작품들은 41년 발표된 첫시집 「화사집」의 원죄의식에서 60년대 「신라초」「동천」 등의 동양적 윤회와 영원성으로 이행한 미당 시세계를 이해하는데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 있을것을…… 서 있을것을……//구부러져 내리는 나무 그늘에/맨발 벗고 서 있을것을//푸른 지식의 잎사귀들이/하늘에서 처럼 소근거리는/나무 그늘에 서 있을것을/오르 내리는 맥박을 세며/높았다 낮아지는 숨결을 세며/물이랑 위에 떠서 있듯이/호수운 사람으로 서 있을것을 //금줄의 근네위에 서 있을것을//누었을 것을…… 누었을것을……/어둡고 무거운 밤하늘 아래/누른 소같이 누어 있을것을/입에다 너을 여물도 풀도 없이/아귀 삭이고 누었을것을/이리도 쉽게 헤어져야할/우리들의 사랑이었더라면/만나서 반가워 소리쳐 우던 날의/통곡을 통곡을 그치지말것을!〉(통곡전문.46년 12월 「해동공론」 수록)
  • 「톰슨」사건 불 국제신용에 장애/파트릭 메세를링(해외논단)

    프랑스의 유력 일간신문 르 몽드는 11일자 경제면에 「톰슨멀티미디어­대우 사건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파트릭 메세를링 파리국립정치학교 교수의 칼럼을 실었다.이 글에서 메세를링 교수는 『프랑스정부가 톰슨멀티미디어를 대우에 팔기로 한 약속을 번복한 처사에는 프랑스인들의 오해가 작용했으며 앞으로 거시경제차원에서 프랑스가 국제적 신용을 확보해 나가는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메세를링 교수의 칼럼을 요약,게재한다.〈편집자주〉 10년전부터 정부는 프랑스가 통화와 거시경제에서 「신용」을 얻는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거시경제에서의 신용을 얻기 위한 이같은 노력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아직도 오랜 시간 계속되어야 한다.그런데 프랑스 대외무역 정책,외국투자 관련정책이라는 또다른 중요한 측면에서는 이같은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다.1995년 해외투자가 전세계에서 3천1백50억달러에 달했는데(이는 2년전보다 4배 증가한 수치),두달 전 정부는 톰슨멀티미디어를 한국 회사인 대우에 팔겠다는 약속을 번복했다. 이 일을 프랑스의 외국투자 개방정책에서의 유감스런 예외로 생각할 수도 있다.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외국인투자가 세계 제3위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우­톰슨멀티미디어와 관련되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일어난 항의의 외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너무나도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대우를 톰슨멀티미디어라는 거대한 회사를 흡수하고자 하는 조그만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다.사실은 그 정반대이다.대우같은 큰 회사가 겪은 일은 프랑스에 투자계획을 갖고 있는 모든 다국적 기업을 불안하게 만들었다.이 회사들의 대부분이 톰슨멀티미디어처럼 국가와 관련되어 있는 프랑스 회사들이 장악하는 분야에서 그 투자 가능성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에 대한 오해서 비롯 이러한 불안감은 프랑스에서 외국투자가 어렵기로 유명한 만큼 더욱 빨리 대두되었다.프랑스인들은 외국투자를 자신들의 급여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WTO의 96년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투자와 급여 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다고 한다.지난 85년에서 95년사이 스웨덴은 프랑스보다 두배 더 많은 수의 외국투자가들을 받아들였고 독일의 경우는 프랑스보다 8배나 적었는데 이 두 나라의 봉급수준은 프랑스보다 높다.반대로 영국은 프랑스보다 1.5배 많은 투자를 받아들였고 이탈리아의 경우는 프랑스보다 네배나 적었는데 이 두 나라는 프랑스보다 급여수준이 낮다. 또한 다국적기업이 프랑스에서 낮은 급여수준과 고용의 가변성을 찾는게 아니다.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찾는 것은 특별한 능력과 강력한 생산성이며 정말 양질의 것이라면 높은 봉급을 주고서라도 꼭 사고자 하는 것이다.또한 이들은 가전분야처럼 경쟁력이 세지 않고 강한 보호를 받고 있는 프랑스나 유럽시장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것이다.이 경우 이들은 유동성없는 경제내에서 생기는 특권들을 없앰으로써 프랑스 소비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프랑스내 외국투자가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의심은 또다른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다.프랑스가 해외에서 행한 투자가 고용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것이다.이러한 걱정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이는 국제투자가 특히 OECD 회원국들 사이에서 빈번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95년 프랑스는 이 회원국들에 4백10억프랑을 투자하였으며 이들은 프랑스에 6백40억프랑을 투자하였다.프랑스가 OECD에 속하지 않는 나라에 투자한 것은 프랑스내 투자에 비해 아주 조금밖에 안되는데 3%도 채 안된다. ○“고용파괴” 우려는 잘못 외국인들이 프랑스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지난 몇십년 동안 프랑스 내에서의 외국인투자가 대부분의 산업분야에서 프랑스가 외국에서 행한 투자와 같은 규모라는 사실이다.섬유나 의류 등 수입때문에 매우 경쟁력이 심한 분야에서도 큰 불균형이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프랑스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가장 아이러니컬한 것은 대우­톰슨멀티미디어 결합이 이러한 균형의 살아있는 예라는 사실이다.대우가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한다면 이는 톰슨멀티미디어 공장의 숱한 아시아 진출을 보완하는 것이다.톰슨멀티미디어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용주라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모든 논리는또한 프랑스가 외국투자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잘못을 범해서는 안되는 이유들이기도 하다.다른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거대한 하나의 유럽시장이 설치된다면 이는 몇년동안 또한 외국회사들을 유혹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그러나 이 기간이 지나면 거대한 아시아 공동시장이 출현하여 우리를 유혹할 것이며 우리가 행동해야만 균형을 이룰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무역과 외국투자 등 미시경제에서의 우리의 빈약한 신용은 거시경제에서의 신용에 시작부터 위험한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다.한 정부가 산업과 무역에 관련하여 그렇듯 쉽게 약속을 저버린다면 환율과 관련하여 그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는가?
  • 사진기자·프리랜서 작가가 만든 온라인 잡지 「다큐네트」

    ◎나명석씨 등 7명 「다큐네트 포토스」 모임 결성/인쇄매체서 못보여준 「그때 그장면들」 국내 시사전문지 사진기자들과 프리랜서 사진작가들이 웹매거진 「다큐네트」를 만든다.웹 매거진이란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을 통해 읽히도록 만든 온라인 잡지다. 시사저널 사진기자 나명석씨 등 사진기자와 사진작가 7명은 지난해 12월 다큐네트 포토스라는 모임을 결성,다큐네트 발행과 함께 다큐멘터리 사진 전시회,사진작품집 발행 등 다큐멘터리 사진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큐네트(http://www.docunet.org)는 매월 1일 월간지 형태로 발행되며 ▲인쇄매체에서 다루지 못한 사진 ▲인간사회의 역동적 진실을 담은 사진 ▲우리의 전통문화 ▲소외되고 그늘진 현장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고 있으며 기사도 함께 실린다. 지난 1일 발행된 창간호에는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의 그늘/부랑아 박자유씨의 25시 ▲손기와 만들기 50년,제와장 인간문화재 한형준씨 ▲전후 보스니아 앵글 리포트/죽음도 삶의 일부 ▲중국 노동자 명절 귀성동행기/고향가는데 5박6일,명절휴가 20∼25일 등 3편의 기사와 관련사진이 실려있다. 다큐네트 포토스 관계자는 『웹매거진 다큐네트는 사진위주의 기사가 실리는 「보는」잡지로 제작돼 한글과 영어로 게재,전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제공되며 일어·중국어·독어·불어 버전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 파리의 한국문인/고국서 잇따라 작품 발표

    ◎고종석씨 신작모은 단편집·문예지 발표 준비/신이현·박철화씨도 계간·월간지에 연재 시작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는 한국문인들이 올봄 약속이나 한듯 속속 국내문단 공략에 나선다.90년대 들어 파리는 어느 곳보다 국내문인들이 삶의 새 활력을 찾아 모여드는 재충전의 공간이 돼버렸는데 해동과 함께 그들의 신작이 잇달아 건너오는 것. 프리랜서 기자로도 활약중인 작가 고종석씨가 여러 문예지에 신작을 발표하는 것을 비롯,작가 신이현씨가 두번째 장편연재를 시작하고 문학평론가 박철화씨가 지면을 통해 소설가로 변신을 꾀한다. 진격의 첨병은 단연 고종석씨.국내 매체에 기고한 산문을 모은 「책읽기 책일기」를 문학동네에서 펴낸 고씨는 「문학과사회」「세계의문학」「문학동네」 등 계간지 봄호 및 월간「문학사상」 3월호에 일제히 신작단편을 들이밀면서 이들을 묶은 첫 단편집을 문학동네에서 준비하는 등 엄청난 화력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다.새로 발표될 단편들은 서구 지성사부터 여성문제,근작 우리소설에까지 만화경같은 작가의 관심범위를보여주면서도 따져묻듯 논리에 집착하고 염결성 강한 작가의 내면을 읽어내게 한다.「서유기」(문학동네)는 기자출신 화자와 79년 좌익사건에 연루돼 망명한 정태하라는 인물간의 대화를 축으로 한국현대사를 그늘지게 바라보는 파리 한인들의 심정을 그렸다.「전녀총의 이여성 회장님께 드리는 공개 서한」(문학사상)은 여성문제에 대한 한마디,「사십세」(세계의문학)는 불혹에 이르러 엉클어진 가족사를 돌아보는 화자의 회한을 각각 담았다.「찬 기파랑」(문학동네)은 기파랑이라는 가상의 프랑스 비교역사언어학자의 죽음을 전제로 그 행적을 더듬어 20세기 서구지성들을 정리,촌평하는 재미있는 작품. 지난 93년 첫장편 「숨어있기 좋은 방」을 내고 파리로 공부하러 가 좀처럼 소식이 없던 신이현씨도 「상상」97년 봄호에 신작장편 「갈매기 호텔」의 첫회분을 실으며 기지개를 켠다.신정이라는 한국유학생의 눈으로 파리 세느강변에 모인 이방인들의 자아찾기를 보여주는 작품.또 지난 91년부터 파리대학에서 공부해온 박철화씨가 「문학동네」 봄호부터 장편소설 「하얀언덕」을 분재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시국과 관련돼 파리로 유학온 불문과 학생의 자의식과 지식인의 자기성찰이 섬세한 감수성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하나같이 모태에서 동떨어져 방황하는 「파리의 이방인」들의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이들의 작품은 독특한 이국취향으로 봄문단에 새로운 기류를 보탤것 같다.
  • 한보 불똥에 괴로운 보선후보/중앙당 적극지원 기대 어려워

    3월5일 동시실시될 인천 서구와 수원 장안구 보궐선거가 한보사태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중앙당이 온통 한보사태의 추이에 촉각이 곤두서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특히 해당지구당에서는 노동법파동에 이어 한보사태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무래도 고민은 신한국당 후보가 더하다.인천서구 조영장 후보측은 한보사태를 『엄청난 악재』라고 인정하고 『중앙당에서 신경을 못쓸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특히 영수회담과 파업사태진정으로 노동법파동은 한풀 꺾였으나 한보사태가 터진 뒤 지역내 신한국당 이미지가 다시 「추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정은 수원 장안구에 나선 이호정 후보측도 비슷하다.때문에 신한국당후보는 이번 보선을 중앙당차원의 대선 전초전성격에서 최대한 분리시켜 순수한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로 몰아간다는 복안이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당후보는 훨씬 낙관적인 표정이다.거당적 지원을 바라기는 어렵지만 『문민정부와 집권여당의 도덕성에 흠결이 생긴 점을 집중공략하면 공세의 우위를 점할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두 야당은 선거공조차원에서 인천 서구에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출신인 국민회의 조한천 후보를,수원 장안구에 자민련 부총재인 이태섭후보를 각각 단독출마시켜 파상공세를 펼칠 태세다.다만 이후보측은 한보사태가 터지면서 지난 91년 수서비리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받은 전력때문에 고심하고 있다.이에 따라 『문민정부 들어 사면·복권을 받았고 수서사건의 희생양이었다는 점을 적극 알릴 예정』이다.
  • 「독불장군은 일찍 죽는다」는 말에(박갑천 칼럼)

    며칠전 신문에서 눈길을 끈 제목­『독불장군은 일찍 죽는다』.여기서의 독불장군이란 언거번거하게 말을 가로채어 들떼리는 등 독선적이며 지배욕 강한 사람을 이른다.그들은 성격이 여낙낙한 사람보다 일찍 죽을수 있다는것.이 문제를 22년동안 연구한 듀크대학 메디컬센터 마이클 베이비악 박사는 그들이 스트레스 호르몬 파괴수준 높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다. 이건 물론 의학적인 견해이다.그러나 사회생활에서도 독불장군이 그리 달갑게 받아들여지는건 아니다.친구사이에서나 직장생활에서나 부부관계에서나.미국 여성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유형」에는 아메리컨 인디언 수니족(뉴멕시코주에 삶)이 그리는 「이상적 인간형」이 쓰여있다.그들은 남보다 잘되는 것을 피한다.그들의 이상적 인간형은 『위엄있되 부드럽고 남을 꼭뒤누르지 않으며 이웃으로부터 비난받지 않는 사람』.그런 사회에서의 독불장군은 인숭무레기로 몰릴듯하다.「미개사회」라니.굼슬거운 군자사회를 생각게 하잖은가. 독불장군을 장미에 비겨보면 어떨까.그말의 씨가 먹히는 동안은 화려하다.하지만 시들때는 귀중중해진다.가령 진효공의 절대적 신임아래 법치제도를 서릿발같이 세웠던 상앙을 보자.법이 까다롭고 형량도 무거웠으며 태자도 다스릴 정도로 서슬이 퍼랬다.그렇게 10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고 도둑이 없어졌으며…나라위한 싸움에도 용감하게 되었다』.「양심적 독불장군」의 훌륭한 업적이었다.한데 다음이 문제.효공이 죽고 태자가 임금이 되자 그는 수레에 몸이 찢기는 형벌로 죽는다. 한고조(유방)가 자기와 항우를 비기면서 한말이 있다(「사기」고조본기).『나는 책략에서 장양에 못미치고 내정은 소하에게 기대야 했으며 백만대군을 지휘하는데는 한신을 못당해냈다.다만 나는 그들을 부릴줄 알았다.하건만 항우는 뛰어난 전략가 범증 한사람을 다루지 못했다.승패는 거기서 갈라졌다』.자기는 참고 들을 줄을 알았고 항우는 독불장군이었다는 뜻이다. 독불장군은 재주의 가세로 남다른 열매를 거두기도 한다.그러나 자기과신으로 함정을 헛딛는 수도 있다.앞에서굽실대는 자가 그늘의 적일수 있음은 왜 모르는고.「일찍죽기」에 앞서 사회생활에서 따돌림도 당하던데.〈칼럼니스트〉
  • 경제계/불황·한보 후유증 탈출 “안간힘”/총체적 경제위기감 확산

    ◎자금경색·연쇄부도·집값 들썩… 악순환 우려/휴가반납·연장근무 등 노·사 「비상경영」 합심 총파업의 후유증과 한보 충격파로 재계에 불황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한보철강 부도에 따른 자금경색과 연쇄부도 위기,무역적자의 가속화,대외신용도 추락,고용불안,집값 급등 등으로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휩싸였다.총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어 우리경제가 남미와 같은 위기적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다. ○1월 적자 40억불 육박 위기정도를 가늠할 틈도 없이 엄습한 한보사태와 불황의 그늘은 파업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경제계를 강타했다.가뜩이나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로 관련업체들의 자금난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한보악재가 설상가상으로 덮친 것이다.1월 무역적자마저 이미 40억달러에 육박했다. 위기상황의 여파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국가신용도를 떨어뜨려 해외자금조달에도 적지않은 차질을 줄게 분명하다.국내 금융기관의 외화조달때 적용되는 가산금리는 최근 0.1%포인트 상승했다.해외자금의 국내유입이 주춤하고 유입자금의 유출조짐마저 보인다.금융기관의 신용불안은 가계로 하여금 꿈틀거리는 부동산시장에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불황과 기업도산우려는 노동법 개정으로 촉발된 노사분규를 장기화시킬 우려를 높이고 있다. 때문에 재계는 위기적 경영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내실위주 경영강화와 한계사업정리,휴일반납 및 근무시간연장,경영진의 현장지도강화,사치성소비재 수입자제,생산성 제고,비용절감책 등을 동원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체불 사태 현대자동차는 15년만에 처음 임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했다.박병재현대자동차사장은 28일 현대빌딩 지하2층 대강당에서 『과거 장기간 노사분규때에는 예측하고 대비했기 때문에 급여를 제때 지급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돌발적이어서 불가피했다』며 임직원들에게 이해를 구했다.현대자동차는 과장급이상 전 임직원들이 토요격주휴무를 경영정상화때까지 중단키로 했다.현대뿐아니다.기아자동차도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모든 임원들이 휴일에도 정상근무에 들어갔다.쌍용자동차 역시 전 임직원이 격주토요휴무제를 중단키로 했고 근무시간도 연장,「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하기로 했다.아사아자동차도 토요격주휴무를 없앴고 생산·판매부서의 전임직원들이 휴가반납체제에 들어갔다. 경제상황을 보는 재계의 시각은 이처럼 엄살이 아니다.대그룹들은 산하 경제연구소를 풀가동,한보사태의 파장을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는 29일 한보부도로 심화되는 「우리경제 어려움의 10대 과제」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이 연구소는 『노사분규가 진정기미를 보이는 가운데 한보부도라는 대형 경제사고가 발발함으로써 불황이 더 장기화되고 잘못하면 경제전체가 심각한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하고 종합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다른 대그룹들도 위기의식에 동감하고 있으며 시각과 대응방식도 비슷하다. ○그룹별 대책찾기 골몰 삼성·대우·선경 등 대그룹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사치성 소비재수입 억제나 중단,무역흑자 확대운동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전경련이 최종현회장을 재추대키로 한 것도 최근의위기적 경제상황과 직결돼있다.경기불황과 노사갈등으로 어려움이 에상되는 때에 경제계가 화합과 단합된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재계원로들이 최회장을 만장일치로 재추대한 것이다. ○개정 노동법 유보론도 재계 일각에서는 개정노동법의 재개정 논의는 물론 시행자체도 유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언급」까지 나오고 있다.이는 나라경제를 살려보자고 한 노동법 개정이 오히려 위기경제의 골을 심화시켜 회복불능의 상황으로 몰고가는 상황에서 개정노동법의 경제효과가 없다는 판단에서다.더구나 복수노조문제가 3년 유예에서 허용쪽으로 정치권이 움직이자 『그럴 바에야 차라리 노동법 개정이전의 상태가 더 나을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아직은 소수의견으로 수면 아래에 있지만 노동법 재개정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경제의 해법이 모색되지 않을 경우 전면 부상할 가능성도 크다. 물론 최근의 위기상황이 지혜롭게 극복된다면 경제계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이 기회에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들의 체질강화를 꾀할 수 있고 금융기관의 인수합병 등 「빅뱅의 조기실현」을 통해 금융산업의 효율화과제도 달성할 수 있다.어쨌든 절제와 제자리찾기가 절실한 과제라는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 국악인 정재국(이세기의 인물탐구:117)

    ◎흥을 부르는 한을 삭이는 피리명인/타고난 음감으로 태평소·정악피리 법통이어/대쟁·삼현삼죽 등 옛악기 발굴 재현에 심혈 「…겸내취 거동 보소/초립위에 작우꽂고 누런 천익 남전대에/명금삼성한 연후에,고동이 세번 울며 군악이 일어나니,엄위한 나발이며/애원한 호적이라/정기는 표표하고 금고는 당당하다/한가운데 취고수는,흰 한삼 두 북채를 일시에 수십명이,행고를 같이 치니/듣기도 좋거니와 보기에도 엄위하다」 ○14세때 국비장학생 입소 이는 조선왕조 24대 헌종때 한산거사가 지은 「한양가」중 대취타 행차를 그린 대목이다.아명은 「무령지곡」.대취타는 궁궐에 속한 일종의 군악대로,나팔 나각 태평소(속칭 날라리)와 자바라 용고 장구 징을 신나게 두드리며 행진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임금의 능행이나 외국사신이 왔을때 악대와 임금이 탄 어가를 앞세우고 수백필의 말을 탄 호위병들이 일렬횡대로 출궁하면 이 행렬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구경나온 이들이 다시 대열을 만들면서 장안은 온통 잔치분위기에 휩싸인다.정재국은 태평소와 함께 바로 장엄한 구군악을 이어주는 유일한 대취타 예능보유자이다. 그가 대취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조선말기 궁중취타수 출신이던 최인서가 61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이를 재현하면서 취타수로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된다.본래는 피리를 전공하고 있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임금의 위엄과 천하를 지키는 군악의 당당함」에 감동하여 대취타를 부전공으로 삼게 되었고 스승이 작고하기 이전인 77년에 전공인 피리보다 먼저 대취타 이수자가 되었다. 「국악」이란 말도 제대로 몰랐던 14살 되던 해 그는 「국비장학생」이란 포스터만을 보고 국립국악원 국악사 양성소에 들어갔다.시험감독이 실기로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자 그는 거침없이 「산타루치아」를 불렀다.국악사 양성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으나 1년이 지난 후 스승인 김준현이 연주하는 피리소리를 듣고 「모창사비곡)」에 나오는 「뼈색이는 피리소리」와 「벽지에 서린 각혈의 피무늬」를 실감하면서 그때로부터 그의 입에서는 피리가 떠날 날이 없었다.이어지는듯 끊어지는듯 굵고 가늘게 흘러나오는 소리는 달밤에 불면 「달빛이 피리소린지 피리소리가 달빛인지」 분간할수 없을만큼 단장의 애원성으로 사람의 폐부를 찔렀다.남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로서는 피리소리 자체가 그의 회포이자 긴 회한일 수밖에 없었다. ○7개의 태평소곡목 완주 곧잘 「황계 수탉의 울음소리」에 비유되는 정악피리는 당당하고 전아한 맛을 내면서도 떨림과 잔음,꺾임의 기교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온몸으로 불어야만 제맛이 나게 마련이다.초기에는 너무 거세게 호흡을 넣어 「다리에 앓던 종기가 툭 터져버릴 정도」였으나 10년이 지나도 결코 성음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피리를 배운지 15년만인 72년에 그는 피리주자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명동 예술극장에서 피리독주회를 열었다.이 연주를 본 국악작곡가이자 가야금의 명인인 황병기 교수(이대)는 『그날 선보인 향피리독주의 「자진한잎(염양춘)」중 「우조두거)」와 「계면두거」에서 정재국 특유의 꿋꿋하고 시원한 음색과 무르익은 농음의 멋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호평했다.『특히 피리의 기교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계면두거」에서 그의 연주는 단연 일품이었다』는 단정은 스승들이 작고한 이후여서 그를 당장에 피리주자의 선두에 서게 했다.「두거」란 「처음에 소리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81년 두번째 독주회에서는 스승인 최인서로부터 전수받은 7개의 태평소 곡목을 완주해 보였다.느리고 장중한 소리인 태평소는 「종묘제례악」 「구군악」 「농악」에서 연주되며 무대에서는 흔히 연주되지 않으나 그는 느린 「구군악」과 「긴 염불」로부터 흥겨운 「굿거리」를 거쳐 몹시 빠른 「능게휘몰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곡목을 능숙하게 연주하여』 태평소음악의 진수를 펼쳤다.일찍이 옛음악과 악기에 관심이 많던 언론인 예용해씨는 단정하게 연주에 몰두하여 천언만어를 뇌는 그의 「장엄」과 「비율」을 향해 「태평소와 정악피리의 법통을 잇고있는 천하명인 정재국」이란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으나 6·25가 나기 전에 부모를 여의고 남동생과 손위 누나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큰집에 얹혀살았다.혜화국민학교 졸업후 2년동안 집에서 놀면서 갖은 슬픔을 겪었으나 『지난날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이루 말할수 없는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말로 그늘진 지난날을 덮어버린다. ○아들도 아쟁연주자 활동 그런중에도 62년 첫 미국연주길에 나섰을 때는 종족음악과를 시설한 UCLA에서 강의를 맡아줄 것을 권유하여 하마터면 「미국대학교수」가 될뻔한 적이 있고 70년 결혼할 당시 「피리부는 사람」에게 딸을 줄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대하던 장인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부인 남궁효근씨와의 사이엔 남매.단국대를 졸업한 아들(계종)이 국악원 아쟁연주자로 있다. 그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유순하며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반듯한 학자」풍이다.타고난 음감과 정열적인 노력으로 독주에서는 별로 빛나지 않는 피리와 태평소·생황을 연주하면서도 돈이 되는 것을 연주하거나 시속단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예술감독이 된 지금도 박을 잡고 지휘하기보다는 일반단원들 틈에 끼어앉아 피리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에도 대쟁·비파·중금등 이미 사장된 악기를 발굴하여 재현 초연했으며 앞으로는 신라시대의 「삼현삼죽」 등 옛악기를 하나하나 되살린다는 각오가 대단하다.그러나 정도만을 고집하면서도 낡은 것을 고집하지 않고 국악의 활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민속악과 정악을 고루 수용한다는 자세다. 향피리가 산들바람이라면 태평소는 태풍같은 소리다.그의 가락은 흥을 부르고 한을 다스리면서 우리에게 여백과 평정을 나누어주고 민족적 자존심으로 남아 앞으로도 유장하게 아름다운 선율을 이어갈 것이다. □연보 ▲1942년 충북 진천 출생 ▲56년 국립국악원부설 국악사양성소 국비장학생으로 입학 ▲62년 국악사양성소 졸업(정악피리 김준현·대취타 최인서·생황 김태섭·민속악 이충선·무용 김보남·국악이론 성경린 김기수·정가 이주환 사사),미주지역 6개월간 순회연주 ▲66∼78년 국립국악원 국악사 ▲72년 국내최초의 피리독주회(명동예술극장) ▲74년 베를린예술제 참가 연주(베를린필하모닉홀) ▲74년부터 이대 및추계예대 출강 ▲76∼현재 「종묘제례악」 집박 ▲77년 궁중취타수 최인서 이수생 ▲79년 공산권 유고공연 ▲81년 피리·태평소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8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대취타 준문화재 지정 ▲83∼92년 국립국악원연주단 악장(수잡이)역임 ▲86년 아시안게임행사 대취타 지도 ▲88년 서울올림픽 대취타 지도 ▲89년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수료 ▲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대취타예능보유자) 지정,「일요명인명창전」 피리독주회,미국 현대음악협회초청 뉴욕·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3개도시등 해외연주 40여회 ▲95∼현재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96년 정악연주단 「전통음악연주회」 및 국악대향연 등 연간 150여회 〈음반〉 「정재국피리독주(정악 민속악 창작곡)」출반(성음 및 서울음반) 〈저서〉 「피리구음정악보」(83년) 「피리산조」(94년) 「대취타」(96년·은하출판사) 〈수상〉 KBS국악대상(83년) 문화포장(89년)
  • 「63세대」 작가 김인숙(’97 젊은 문화주역:2)

    ◎“진짜 리얼리즘 소설이 명작 아닐까요”/신작장편 「그늘,깊은곳」엔 날카로운 펜촉 여전」 어느덧 90년대도 저물어가는 97년.작가 김인숙씨의 위치는 묘하다.63년생.아직 절정의 싱싱함을 누릴 나이.하지만 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으니 경력으로는 어느새 14년차 중견이다. 80년대 학번들의 기억속에 김씨는 63세대 작가라는 명칭으로 남아있다.80년대 사회모순을 파고든 리얼리즘 소설을 썼던 몇명의 여성작가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63년생이었다.어느새 후일담소설마저 시들해지며 「63세대」도 빛이 바랬건만 김씨의 펜촉은 아직도 날카롭기만 하다.지난해 호주 이민 체험을 녹인 「먼길」로 한국일보문학상을 타더니 정초에는 총알같이 「그늘,깊은곳」이란 신작장편을 내놓고 한해의 건필을 다짐했다. 『연애얘기를 한번 마음껏 써봤어요.서른을 훌쩍 넘고보니 열정이며 사랑따위가 날로 일상에 밀려 낡아가고 타협이 앞서 안타깝더라구요.오래 따라다닌 리얼리즘작가라는 꼬리표에서 폭을 넓힐 필요도 느꼈구요』 남태평양 휴양지를 배경으로 두쌍의 사연을 교직해간 「그늘‥」은 줄거리만으론 전형적 연애담.하지만 태풍만 오면 날아가버려 때론 시신이 지붕위에 얹히기도 한다는 이 섬의 해안묘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족사의 비극을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 김씨다운 치열함을 엿보게 만든다. 바로 그것.무엇을 쓰건 김씨는 치열하다.가슴속에 활활 불꽃이라도 태우는지 모든 문제를 밑바닥까지 긁어내려간다.또래의 한 남성작가 말에 따르면 『김씨는 극성스럽다.그래서 동료로서 무섭다』는 것이다.김씨는 『글쎄,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삶을 응시하는 거야 모든 작가의 꿈일 테고‥.어디까지 갈수 있을지는 본인이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이 욕심많은 작가는 올 한해 스케줄이 벌써 빡빡하다.3월 신문연재소설을 마치는 대로 또다른 장편을 낼테고 연내에 작품집도 계획하고 있다. 그 흔한 신세대 감수성의 언저리도 기웃거리지 않았으면서 누구보다 탄탄한 필력으로 글샘을 길어올리는 힘에 변함이 없는 김씨.사이버 감수성의 시대에 그는 오히려 리얼리즘을 말한다. 『다음엔호주에 살때 취재한 내지의 오팔광산 노동자 얘기를 써보려구요.리얼리즘은 이제 갔다고들도 하지만 정말 잘 씌어진 리얼리즘 소설이야말로 역시 가장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 경기회복 시점은(97경제 10대 관심사:2)

    ◎“3분기 이후나 기지개”/예상보다 지연… 연말께 저점 통과할수도/노·정 갈등­하반기 정치일정도 불안요인 「경상수지적자 사상 최대」,「아시아 경쟁국중 유일하게 고용악화 된 나라」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모습이다.내리막길로 접어든 우리 경제는 언제 바닥을 치고 올라갈 것인가. 국책 및 민간연구소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은 올 하반기부터 경기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회복속도도 완만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이는 2·4분기부터 저점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당초 예상보다 1·4분기 정도 늦은 것으로 재고조정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또 새해 벽두부터 나타나고 있는 노정갈등에 따른 분규와 하반기의 정치일정도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통상적인 경기순환주기를 감안할 때 우리 경제는 올해 중반에 저점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러나 현재까지의 하강국면에서 수출부진을 겪고 있는반도체와 철강부문의 재고조정이 느리게 진행돼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은행도 섬유업종 등은 재고조정이 이루어졌지만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주력 수출상품은 재고가 계속 늘고 있어 4·4분기에 들어서야 회복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재고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수출이 단가하락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3·4분기가 경기국면 전환의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아시아국가와의 경쟁이 격화돼 주력 수출상품의 경쟁력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기하강국면이 1년6개월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상반기에 저점에 도달했다 하반기에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이들 기관의 전망들은 전망시기가 늦을수록 상승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것이다.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하반기 늦게야 경기저점을 통과해 올해 내내 불황의 그늘에 잠겨있을 가능성도 크다.
  • 미국식 고용수학(새 노동법/더 많은 고용으로 가는 길:1)

    ◎“9백만명 해고해 1천만명 고용했다”/감원→경쟁력 회복→고용창출 정책 성공/“미 본받자” 일·독도 노동법 개정 대열에 우리 경제는 기업활력 회복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대명제와 고용안정이라는,기존 사고의 틀로는 조화하기 어려운 과제앞에 서 있다.때문에 장기화조짐을 보이는 경기불황과 실업위기를 동시에 해소하고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의 재도약을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다.노동계의 총파업을 불러온 새 노동법은 바로 선진경제 진입을 위한 새 패러다임의 도입과 틀깨기 작업에 따른 피해갈 수 없는 일시적 혼란이다.서울신문은 기업활력회복을 통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려는 새 노동관계법을 분석하는 특집시리즈 「새 노동법,더 많은 고용으로 가는 길」을 4회에 걸쳐 게재한다.이 시리즈를 통해 자유로운 고용시장 조성으로 해고보다 더 많은 고용을 만들어내면서 최대호황을 구가하는 미국경제와 종신고용의 틀을 벗지 못해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경제를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노동정책이 가야 할방향을 도출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기업활력과 고용.「양손 줄다리기」의 이 문제는 지금도 각국의 정책담당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뜨거운 현안이다.고용을 보면 기업부담이 크고·작은 몸집으로 가자니 실업이 우려되고…. 그러나 양자택일로 고민하던 세계경제는 점차 성장(기업활력)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용 우선정책은 곳곳에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용조정­실업률 상승의 기존 방정식은 「사망선고」를 받았다.대신 고용조정­기업활력 회복­고용확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급속히 부각되고 있다.『일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보다 감원이 낫다』는 인식과 「감량경영은 경제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신경제학적 시각들도 생겨났다.따라서 노사의 문제도 「분배문제」에서 「생산문제」로 급속히 넘어가고 있다.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이냐의 제로 섬(Zero Sum)보다 파이를 얼마큼 키울 것이냐는 논리가 선호되고 있다. ○“평생고용” 일 신화 종말 미국경제는 올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높은 2.3% 성장이 예상된다.일본경제는 3%대에서 2%대로 떨어질 것같다.종신고용을 고집해 온 일본경제가 장기간 그늘속에 있는 사이,미국경제는 과감한 다운사이징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한 것이다.『미국 자본주의가 일본식 자본주의를 눌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국은 지금 66개월째 호황속을 달리고 있다.업종전환과 과감한 고용조정으로 경쟁력이 회복돼 새로운 일자리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반면 일본은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적시에 고용부담을 덜지도 못했다.피터 드러커는 『일본 주식회사의 신화는 깨졌다』고 일갈했다.일본 불황이 종신고용의 환상에서 덜 깨어난 부담 때문이라면 과장일까. 일본은 그동안 몇차례 구조조정을 경험했다.70년대 석유위기,80년대 플라자합의와 엔고를 전후해서 그랬다.그러나 지금 일본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수익성 악화와 경쟁력 저하로 중병을 앓고 있다.고용문제는 92년 불경기에서 시작됐다.일본식 경제시스템이 적합치 않다는 판단들이 속속 내려졌고 일본을 최강경제로 만든 종신고용제과 연공서열의 관행이 수술대에 올랐다.노동성 조사결과 일본기업의50.5%가 종신고용을 집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일본 주요산업의 시간제 근로자 비중도 최근 14.9%로 5년전보다 3.6%포인트 높아졌다. 신 일본제철은 관리부문의 종사자 1만여명을 3년간 3천명정도로 줄이기로 했고 NTT,닛산,간사이전력은 희망퇴직제와 선택정년제라는 이름아래 감원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이에 불구,일본의 「기업내 실업자」는 1백만명을 웃돈다.이들은 언제 퇴출될 지 모를 사내 잉여인력으로 미래의 실업자군이다.일본 정부도 마침내 변형근로시간제 등 탄력적인 노동제도를 검토중이며 올 7월까지 노동법개정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IBM선 19만명 해고 기존 경제학의 틀을 깬 새 패러다임으로 경제회복을 이룩하고 있는 미국.미국은 일본·독일의 국내시장의 잠식으로 70년대부터 심한 산업공동화를 경험했었다.고통끝에 기업들은 인원정리 등 다운사이징을 선택했다.AT&T사는 40만명에 달했던 종업원을 30만명수준으로,IBM은 전 세계에 40만명에 달하던 직원을 21만명으로 감축했다.이들 사례는 예일 뿐이다. 노조와 마찰이 없을 리 없다.그러나 기업이 망하느니 고용조정과 임금동결을 받아들여야 했다.미국의 GM 새턴공장,제록스,AT&T,모토로라 등 상당기업들이 대립구도를 청산하고 협력구도로 노사가 활로를 찾았다.미국 자동차노조와 포드사간 협상에서 노사는 『근로자의 95%에게 향후 3년이상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한다』고 합의했다.대신 회사가 새 공장을 세우면 새 근로자들에게는 낮은 임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했다.이같은 노력으로 포드 크라이슬러 GM 등 자동차 빅3는 93년 10년만에 흑자로 전환하는 개가를 올릴수 있었다.미국이라고 감원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뉴욕타임스는 올 3월 7차례에 걸쳐 「미국의 다운사이징」이란 특집기사로 해고자들의 애끓는 사연을 소개했다. 그러나 클린턴행정부 집권을 전후,미국에서는 9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과 관련서비스 산업의 발흥으로 1천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겼다.해고도 진정돼 실업수당 신청자도 감소추세다.「고용조정­경쟁력 회복­고용확대」의 미국 방정식은 간단하다.「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기업의 채용부담을 덜어준다.기업활력이 살아나 업종전환과 구조조정이 촉진돼 일자리가 생긴다」.대량감원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기업활력과 직업창출로 이어진다는 발상의 전환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고용을 중시해 온 유럽.이들 국가는 모든 정책이 9∼12%에 이르는 고율의 실업을 안정시키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왔다.복지나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 한 실업과 재정적자를 줄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그러나 이같은 소극적 고용책으로는 고용증진은 커녕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새로운 성장정책으로 전환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새법 고용확대 부메랑” 실업해소와 성장촉진을 위해 독일의 노·사·정은 올 1월 「고용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대」라는 이례적인 합의를 도출해냈다.매우 시사적인 이 연대는 2000년까지 실업자를 현재(4백만명)의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행정규제의 완화,정부재정 축소,사회보장기금의 축소,중소기업 창업지원,근로시간 탄력화,근로자의 재산형성제도 개선을 한다는 것이었다.조합들은 실업보다 임금감축과 노동강도의 강화,노동시간 유연화를 택했다.독일의 해고제한법마저 개정의 도마에 섰다. 노동시장의 경쟁력은 유연성이 그 척도다.시장에서 수요가 격감하면 물량조정(해고 등 고용조정)이나 가격조정(임금동결 등 임금조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우리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이 결여돼 있다는 점은 94년 IMD(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이미 지적됐다.노동유연성에서 41개 조사대상국 중 35위로 경쟁국과 동남아 후발개도국에도 처졌다. 기업에게 날렵한 몸집과 탄력을 주는 고용조정은 후일의 고용확대를 담보할 수 있는 부메랑이다.새 노동법은 이를 위한 제도적 틀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노사가 함께 승리하는 상생(Win Win)의 틀.그 틀은 파이를 키우는 파레토의 최적(자원배분이 가장 효율적인 상태)을 구하는 일이며 틀깨기,새 패러다임의 정착을 위한 시도다.
  • “도덕·윤리 바로잡는 한해를”/종교계 지도자 1997년 신년사

    ◎“반목·갈등 부추기는 정치·패권주의 배제/북 동포 해방·도덕­정위사회 구현에 나서자” 종교계 지도자들은 97년 신년사를 발표,새해에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류가 화해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기원하고 흔들리는 도덕과 윤리를 회복하는데 종교가 앞장서자고 강조했다.각 교계의 신년사는 다음과 같다. ◇박종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대표회장=고통받는 북한동포와 이산가족의 아픔을 안고 신음하는 동포들의 기도가 통일로 이어지도록 교회는 최선을 다해야한다.지역·계층간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행태와 패권주의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사회정의와 경제정의없이는 진정한 민주화가 토착하기 어렵다.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의의 소리를 외쳤던 그리스도의 삶을 새해에는 기필코 구현해야 한다.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올해는 사회의 어둡고 그늘진 곳에 따뜻한 온기가 넘치고 남북·지역·계층간 대립과 갈등이 대승적으로 극복돼 청정한 삶과 환경이 자리잡는 한해가 되어야한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동포를 구호하고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우리동포가 한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길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에 힘을 모아야한다. ◇김도용 불교 천태종 종정=새해를 맞아 온누리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하길 기원한다.새해에는 북녘동포들도 배고픔과 압제에서 해방돼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를 소원한다. 국민 모두가 깨끗한 도덕의 실천으로 이 땅에 살생과 범죄가 일소되고 용서와 화해로써 계층·지역·노사 등 모든 분야에서 대화합이 실현되길 바란다. ◇이광정 원불교 종법사=새해를 맞아 국가와 세계와 교단의 앞날에 큰 서광이 깃들고 전 교도와 국민과 인류에게 은혜가 가득하길 축원한다.21세기를 참문명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인류공동의 과제인 환경에 대해 우리의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새롭게 해야 한다. 우리는 생존환경을 푸르고 맑고 아름답게 가꾸어 자연에 대해 보은해야 하며 근검절약도 생활화해야 한다. ◇각해불교 진각종 총인=새날을 맞으니 온세상이 눈부신 불국토로 다가온다.이 새날의 감동을 가슴 벅차게 간직하는 중생들이 몸과 입과 뜻을 정화하니 이곳이 바로 정토요,이 몸이 곧 부처이다. 우리를 둘러싼 아집과 이기주의의 경계를 허물고 둥글고 화해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안운산 증산도 종도사=하늘과 땅의 때가 무르익어 인류는 지구촌 문명의 시대를 넘어 우주촌 문명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인류는 새로 깨어나 우주일가 문명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상극의 벽을 허물고 서로 남 잘되게 하는 상생의 마당에서 한 가족으로 다시 만나야 한다. ◇김재중 천도교 교령=새해를 맞이하여 새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 돈과 권력이 주체가 된 사회를 개벽해 인간생명이 존중되고 사람이 주제가 되는 도덕정의 사회를 구현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반세기를 넘는 분단조국은 금세기 말이면 남북통일이 가시화할 것이다.조국통일은 멀지 않을 것이며 통일한국은 세계를 통일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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