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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日成 유훈통치’ 시대 끝날까/北 최고인민회의 소집 안팎

    ◎국내서 “김정일 주석 추대 요식절차” 분석 북한 金正日이 마침내 국가주석직에 등극하는 요식 절차를 밟을 참이다. 북한당국이 19일 최고인민회의 소집을 공고한데서도 분명해진다. 북한 중앙방송은 20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를 9월5일 평양에서 개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물론 회의의 안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측 당국자들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金正日의 주석 대관식이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7월 명목상이나마 주석 선출권을 갖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새로 뽑았기 때문이다. 72년 개정된 북한 헌법에 따르면 주석임기는 최고인민회의 임기와 같다. 북측이 최근 들어 해외에서부터 그의 주석직 취임을 위해 ‘바람을 잡아온’ 사실도 주목해야 할 것같다. 이를테면 북한은 콩고에서 친북단체를 움직여 ‘金正日 국가수반 추대위원회’를 구성했다. 박의춘 주러시아 북한대사는 7월29일 아예 “최고인민회의가 金正日을 주석으로 추대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기까지 했다. 金이 이미 승계한 당총비서가 최고권력직이라면 국가주석은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자리다. 지난 94년 金日成 사후 이 자리는 지금껏 공석이었다. 이로 인해 파견되는 대사의 신임장을 죽은 金日成의 이름으로 내보내는 기괴한 일까지 벌어진 바 있다. 따라서 주석직까지 꿰차게 되면 명실상부한 金正日시대가 개막됨을 뜻한다. 그가 이른바 ‘金日成 유훈통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전면에서 전권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제에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전진 배치될지 여부도 주목된다. 와병중인 姜成山 정무원총리 등 이른바 ‘혁명1세대’를 2선으로 물러앉힐 개연성이 크다는 게 당국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 시나리오들은 ‘거수기 집단’에 불과한 최고인민회의에 앞서 열릴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대부분 짜여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주석취임후 金은 대내외적 정책방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 방송/고성장 뒤안 정권통제 그늘(한국문화 50년:5)

    ◎라디오 한개채널서 TV만 40여개로 늘어/공영 단일체제서 90년대들어 민영화 맞아/IMF로 민방들 한파… 방송법 통과 과제로 건국후 첫 방송을 시작할때는 라디오채널 하나뿐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지상파 채널만 TV 5개,라디오 15개,케이블TV와 지역민방 등을 합치면 TV채널만도 40개 안팎이다.61년 TV개국과 80년 컬러TV 시작,95년 케이블TV와 지역민방 출범 및 위성TV 개시 등을 거치며 제작·송출기술의 엄청난 발전과 함께 프로그램의 질도 높아졌다.특히 88서울올림픽은 한국방송의 도약을 과시한 쾌거였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발걸음 뒤에는 정부의 끊임없는 견제가 따랐다.건국후 대한방송협회가 정부로 흡수되고,방송사업 국유화로 KBS의 국영방송 시대가 열렸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61년 MBC,64년 TBC를 비롯, 많은 민영방송을 허가함으로써,자유경쟁체제를 마련하는 듯했다.그러나 75년 월남 패망을 기점으로 방송통제가 시작됐다. 70년대는 일일극시대였다.TBC ‘아씨’,KBS ‘여로’,MBC ‘신부일기’등이 현실의 고난을 잊으려는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무기력함과 소비적이라는 여론의 거센 비난으로 84년 일일극시대는 막을 내린다. 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정권은 TBC,DBS를 KBS에 통합시키고 MBC주식의 70%를 국가에 헌납하게 함으로써 방송구조는 공영체제로 일원화됐다.‘땡전뉴스’로 비하되던 왜곡보도의 시대가 열렸다.한편 컬러방송은 상업화를 가속화,호화 쇼등 오락프로가 판을 치고 ‘백분쇼’등 대형쇼가 등장했다. 굴욕의 역사를 넘어 90년대 방송계는 구조적 대변혁을 이루는 전환점을 마련했다.평화·불교·교통방송과 91년 SBS 개국으로 10년간의 공영 단일체제에서 다원체제로 바뀌었다.또 케이블TV,위성방송 등 뉴미디어의 실용화와 지역민방 개국으로 다채널 다매체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 성장의 뒤안으로 찾아온 ‘IMF 한파’는 지역민방과 케이블TV를 존망의 기로로 몰아가고 있다.이 모든 문제의 해결과 맞물린 새 방송법은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우리 방송의 현주소이다.
  • 세상사 榮枯盛衰를 보고 또 보며(박갑천 칼럼)

    아름다운 꽃을 말할때 장미를 빠뜨릴 수 있겠는가.늦봄에 담장을 휘감아 흐드러진 넌출장미의 그 진홍빛만 해도 넋을 빼앗아가는 터.하건만 지는 모습은 왜 그리 가년스러운 것이던고.그건 가녀린 들국화의 어리뜩한 시듦과는 대조를 이룬다.권세등등하던 사람의 조락(凋落)과 여들없이 살던 사람의 스러짐을 말해주는 섭리의 뜻이라 해두자. 세상의 흐름따라 등이 처져버린 한 알음을 만난다.추상열일(秋霜烈日)같이 서슬퍼렇던 날의 영바람은 어디로 간 것일꼬.이울어가던 넌출장미의 아름다웠던 만큼 덧없고 허구퍼지는 그늘이 어린 얼굴.화려했던 날 붕붕대고 훨훨 거리던 벌나비의 노래는 귓전에 남아 여운을 긋고 있는 것이겠거니.그는 지금 어떤 배신을 지그시 참아보고 있는 것일까.그래.그래서 그 웃음엔 오히려 마음속 체읍(涕泣)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리라. 곤룡포(袞龍袍) 벗기이자 임금이었던 광해군도 한낱 열쭝이 신세로 되는 것 아니던가.반정(反正)에 참여한 훈신(勳臣)의 아우가 나달거리며 희롱하는 말을 옴나위 없이 들어야 했다.그뿐인가.제주도에 억류되어서는 표독스런 궁인의 ‘훈계’까지 듣는다.하루는 불손한 궁인을 광해군이 나무랐던 듯하다.그러자 궁인은 임금으로 있을 때의 허물을 낱낱이 들추며 골풀이한다.이에 광해군은 한마디 대꾸없이 머리숙여 눈만 껌뻑였다는 것이다.(鄭載崙의 ) 이게 바로 인생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모습이다.옛임금 뿐 아니라 오늘의 권세가나 재벌도 겪는 일이고 일반서민이라 해서 예외로 되는 것도 아니다.다만 세도가 크고 남보다 가멸졌던 사람의 조락은 서민의 그것보다 더 아파뵌다는 차이는 있다.여기서 기기(기器)라는 물그릇의 고사를 생각해본다.비어 있을 때는 기울고 반쯤 차면 똑바로 서며 가득 차면 넘어진다는 그릇이다.어느날 공자가 노(魯)나라 종묘에 들렀을때 이 그릇을 보고서 제자에게 물을 부어보라고 했다.가득 차자 넘어졌다.공자의 탄식­“그 어디에 가득 차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하랴”( 宥坐편).가득 채우지 말고 분수를 지키라는 가르침이었다고 하겠는데 비고 차고 기울고 하는 것은 인생사 영고성쇠라 할 것이다. 가득 차면 기운다.춘하추동이 바뀌는 것과 같이 영고성쇠의 진리는 영원할 것이다.하건만 오늘도 가득 채우면서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으스대며 강팔지게 사는 사람들은 있는 듯하다.
  • LG그룹/具本茂의 정도경영(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인간존중·가치창조로 ‘초우량’ 지향/“더뎌도 올바른 길 가야” 취임식때 제2혁신 선언/“격식보다 자유토론 통해 의사 결정” 프로정신 중시 “강함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具本茂 LG회장을 두고 한 말일까. 13만여명을 거느린 재벌총수답지 않게 具회장은 ‘이웃 아저씨’처럼 가까이 다가온다. 양주보다 소주가 제격이고 양식보다는 김치찌개가 더 어울린다. 그러나 이면에는 ‘프로정신’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1등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의 잭 웰치 회장을 가장 좋아한다. 취임 일성도 “초우량 LG,1등 LG”였다. 그러나 지름길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소 더디더라도 바른 길만을 고집한다. 철저한 유교식 교육을 받은 탓인지 외도를 허용치 않는다. 이른바 정도(正道)경영이다. 95년 2월 ‘3세 경영’의 시대를 열때 具회장은 ‘강한 LG’를 강조했다. ‘제 2의 혁신’이란 말도 취임사에 여러차례 담았다. ‘안정경영’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종전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과거 LG는 삼성과 현대라는 재계의 양두마차에 가려 제 빛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현실에 안주,2등과 3등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곤 했다. 과거의 영화(榮華)가 퇴색하고 있다는 굴욕적인 얘기도 들었다. 具회장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더이상 3등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그의 승부근성이기도 했지만 글로벌 경영에선 초일류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확신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10년 안에 재계의 선두에 서겠다는 ‘도약 2005년’의 발표는 재계에 ‘선전포고’로 비쳐졌다. 미국의 대형 가전업체인 제니스사 인수에 이어 경전철 사업과 부산가덕도 신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사업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96년 6월 꿈의 통신으로 불리는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자 재계는 LG의 변신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봤다. 그러나 LG는 ‘공격경영’이라는 말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LG의 경영이념이 왜곡됐다고 한다. LG가 과거와는 다르게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변한 것은 분명하나 공격경영이라는 표현에는 중요한 점이 간과돼 있다. ‘정직과 공정을 바탕으로 인간존중과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에 주력한다’는 정도경영이다. LG가 최고를 지향하는 것은 양(量)이 아니라 질(質)이다. 이윤을 추구하는게 기업의 ‘권리’라면 고객에게 최고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임무’다. 다른 기업보다 뛰어난 기술로 1등을 했을 때만 ‘임무’를 100%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정하고 철저한 경쟁을 통해서다. 具회장이 지난 3월 사장단 회의에서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고 고객 신뢰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법인은 LG브랜드를 공유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은 정도경영을 구체화한 사례다. 그렇지만 LG가 삭막한 프로의 세계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선대의 경영이념인 인화와 화합은 具회장에게로 이어졌다. 具회장은 격식을 싫어한다. 서류로 보고받기 보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하기를 좋아한다. 회장실은 늘 열려있다. 과장이나 차장은 언제든지 노크할 수 있다. 회장 집무실은 그룹 임직원의 휴게실이기도 하다. 회장 전용헬기는 임직원들의 출장차량으로 활용된다. 具회장은 아직도 임·직원에게 존댓말을 쓴다. 회장과 직원이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고 있다. ◎具 회장 진면목/남 배려할줄 알고 직원과 잘 어울려 승부근성 정평 나 얼마전 일이다. 서울 여의도 트윈빌딩 앞을 지나던 LG 具本茂 회장(53) 이승용차 안에서 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힘겹게 길가 화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具회장이 비서에게 말했다. “저기에 의자를 설치하면 어떻겠소” 얼마후 정류장 부근에는 돌의자 63개가 마련됐다. LG 직원들에게 회장에 대해 물으면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세심한 마음씨를 꼽는다. 공장에 기념 식수 하나를 하더라도 기왕이면 휴게실 근처에 심어 직원들이 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하지만 “촌사람처럼 생겼다”는 본인 표현에도 불구하고,승부근성은 정평이 나있다. “내 골프 핸디는 고무줄 핸디다. 내기 할 때는 잘 하지만 그냥 치면 잘 못한다”라는 말에서도 그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잘 나타난다. 具회장은 광복 직전인 45년 2월 경남 진양군에서 具滋暻 현 명예회장의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고 15회 졸업생으로 63년 연세대 상대 1학년을 수료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애시랜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중매로 만난 부인 金英植 여사(46)는 金泰東 전 보사부장관의 딸로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LG사이언스홀/기업 ‘사회환원’에 좋은 본보기/민간 최대 과학관 10년째 운영/640평 규모… 관람객 200만명 돌파 벽과 바닥이 온통 파란색인 무대에 맨손으로 서서 허공에 공을 튀기는 동작을 하면 한쪽에 설치된 TV에 본인이 실제 농구장에서 농구공을 튀기며 경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상대편 수비수를 제치고 덩크슛을 쏠 수도 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빌딩 서관 3층 ‘LG 사이언스홀’에서 체험할 수 있는 내용중 하나다. 총 면적 640평으로 민간 최대규모의 과학관인 사이언스홀은 연평균 15만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으면서 관람객수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이곳에 와 보면 기업이 사회를 위해 얼마나 바람직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첨단산업을 개척해온 LG가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꿈을 심어주기 위해 87년 개관한 사이언스홀은 방학인 요즘도 하오 1시쯤 되면 대기표가 매진될 정도로 관람객이 많다. 덕분에 트윈빌딩 로비는 언제나 놀이공원 처럼 어린이들로 북적댄다. 관람객이 직접 미래 과학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기 비결. 10개의 전시관 가운데 눈길을 끄는 곳은 생명과학관,신기술관,환상체험관 등이다. 생명과학관에서는 컴퓨터 합성기로 얼굴을 찍고 잠시 기다리면 1∼50년 뒤에 자기가 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기술관에 들어서면 4.3g짜리 손톱만한 로봇이 눈길을 끈다. 더 작은 로봇이 개발되면 사람 몸에 들어가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도우미가 설명한다. ◎‘락희화학공업사가 모태’ LG 성장사/47년 럭키그림­55년 치약 생산으로 기반/58년 금성사 설리베 흑백TV 최초로 생산/95년 LG로 그룹명 개칭… 사원만 10만명 “보통학교요?” 손위 처남이 불쑥 던진 권유에소년신랑 具仁會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이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가슴이 콩콩 뛰었다. LG그룹 신화의 서곡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LG의 창업주인 고(故) 具仁會 선대회장은 1907년 경남 진양군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한학을 익히던 具회장은 13세때 만석군 집안인 許씨 가문과 결혼한 뒤 처남의 권유로 보통학교에 편입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신학문에 눈을 뜬 具회장은 19세의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어 고향에서 소비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했다. 이때 터득한 ‘장사 감각’을 바탕으로 1931년 진주에서 ‘구인회상점(具仁會商店)’이라는 포목상을 열면서 천부적인 상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45년 해방후에는 부산으로 진출,우연히 손을 댄 화장품판매업에서 짭잘한 이윤을 남긴다. 작은 성공이었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간파한 具회장은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팔기로 결심,오늘날 그룹의 모체(母體)인 ‘락희화학공업사(樂喜化學工業社)’를 설립했다. 이때가 47년 1월로 락희화학에서 만든 ‘럭키크림’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55년 ‘럭키치약’을 생산한 락희는 이어 세탁비누,화장비누,가루비누를 줄줄이 내놓았으며,67년에는 국내 최초로 샴푸도 개발했다. 화학 업계를 석권하는 과정에서 58년에는 전자 쪽으로 눈을 돌려 금성사(金星社)를 설립한다. 당시 일본 ‘통산성백서’에서 전자공업을 유망한 분야로 전망한 것을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이다. 59년 국내 최초로 라디오 개발에 성공한 금성은 이어 선풍기 자동전화기 세탁기 냉장고 흑백TV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전자제품’하면 금성이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具회장은 69년 타계했다. 70년 1월 45세의 나이로 2대 회장에 취임한 具회장의 장남 具滋暻 회장은 25년 동안 재임하면서 취임 당시 8개였던 계열사를 20개로,2만명이었던 사원을 10만명으로 불려 현재의 ‘몸집’을 만들었다. 95년 1월1일을 기해 그룹이름을 ‘LG’로 바꾸고 제2의 도약을 선언한 具회장은 다음달 22일 돌연 장남인 具本茂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계열사 현황(*는 상장회사) 회사명 업종 설립 연월 *LG화학 종합화학 생활건강 47. 1 LG석유화학(주) 석유화학 78. 3 (주)LG실트론 반도체 재료 83. 4 LG얼라이드시그널 엔지니어링 프르스틱 89. 2 (주) CFC 대체 물질 LG오웬스코닝(주) 유리장섬유 제조 도매 90. 5 LG MMA(주) 유기화학제품 91. 3 *LG­Caltex 석유류 및 석유화학제품 67. 5 정유(주) LG정유판매(주) 석유류 도소매 70.12 *LG­Caltex LPG 수입,저장,판매 84. 9 가스(주) 호유해운(주) 유류수송 72. 8 원전에너지(주) LPG 도·소매 95. 6 *LG전자(주) 종합전기·전기·통신 58.10 LG전자부품(주) 종합전자부품,금형제조 70. 8 LG마이크론(주) 전자부품 및 전기사업용 83. 5 기계장치 LG포스타(주) 스피커,스피커시스템 제조 71. 9 LG소프트(주) 컴퓨터 S/W,컴퓨터 교 85. 2 육/출판/음반/영상 LG히다찌(주) 소프트웨어 개발/수출 시 86. 9 스템 자문,판매 및 관련 서비스 *LG정보통신(주) 종합정보통신기기 제조 79. 9 *LG산전(주) 산업용 전기·전자기기 및 87. 3 시스템,승강기,FA기기 및 메카트로닉스 LG하니웰(주) 자동제어시스템 및 기기 84. 5 *LG반도체(주) 반도체 소자 및 디스플 89. 5 레이 기기 (주)LG텔레콤 개인휴대통신(PCS)서비스96. 7 LG정밀(주) 방위산업장비,정밀계측기기,76. 2 차량용전장품 *LG산전(주) 환경산업설비,농업기계, 62. 5 산업기계,무선통신시스템, 케이블류,산업소재 LG기공(주) 전기·통신공사업 74. 7 *(주)LG금속 비철제련,특수소재,금속 36. 6 귀금속 가공 *(주)LG상사 종합무역의류제조,도·소매 53.11 *LG건설(주) 종합건설 69.12 LG엔지니어링(주) 종합기술용역 78.10 LG에너지(주) 발전,전기업 96.10 LG ENC 설계,감리 83. 3 LG엔지니어링(주) 종합기술용역 78.10 (주)LG유통 수퍼마켓,빌딩관리 단체급 71.12 식,편의점 (주)LG백화점 백화점 94. 2 (주)LG애드 종합광고대행 84. 7 (주)LG­EDS 정보처리서비스 87. 1 시스템 *LG증권(주) 증권 73. 6 LG투자신탁운용(주)금융증권,투자신탁업 88. 3 LG선물(주) 선물거래 92. 7 *LG화재해상 손해보험 59. 1 보험(주) LG신용카드(주) 여신금융 88. 3 LG신용정보(주) 채권추심 98. 5 *LG종합금융(주) 금융,부동산 73. 5 (주)부민상호 신용금고업 67. 7 신용금고 (주)LG스포츠 오락,문화,및 83. 1 운동관련 사업 한무개발(주) 관광호텔 85.11 (주)LG경제 경제·경영·환경연구 86. 4 연구원 및 자문 (주)LG레저 서비스 88.11 (주)LG홈쇼핑 종합유선방송,통신판매, 94.12 홈쇼핑프로그램 공급 LG창업투자(주) 금융96. 7 *극동도시가스(주) 도시가스 배관 자재 81. 3 (주)LG인터넷 부가통신 97. 7 (주)LG돔 돔구장의 건립 및 운영 97. 9 (주)LG교통정보 부가통신업 외 97.12
  • 시인 黃東奎(이세기의 인물탐구:179)

    ◎삶의 불편 찬미하는 ‘詩소년’/현미경같은 詩語에 해맑은 웃음·빛나는 예지/‘順元의 아들’ 벗으려 깨어있는 詩心 채찍/‘風葬’부터 ‘악어를 조심하라고?’까지 탐험 계속/데뷔때 ‘낙엽으로 내리고 싶다’던 無爲 경지에 ‘풍장(風葬)’의 시인 黃東奎는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 소년같은 시인이다. 삶에 지친 회의와 고뇌의 시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모범생과 밝고 솔직한 도시기질이 그의 풍모다. ‘눈보다 더 차갑고’‘얼음보다 냉혹한’ 시를 쓰지만 해맑은 웃음과 티내지 않는 감동, 역사를 통찰하는 예언자의 목소리가 그 안에 들어있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은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하고 죽음과 삶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면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통통배에 띄워 달라고 노래부른다. ○모범생의 솔직한 풍모 그와 절친하면서도 걸핏하면 긴 논쟁으로 밤을 지새우던 평론가김현은 생전에 ‘긴장된 자기를 확인하기 위해 긴장하지 않은 자기를 회의하기 위해’ 언제나 ‘깨어있는 정신’이 황동규 시(詩)의 원리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을 과격한 모더니스트나 치졸한 감상주의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삶이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려는 모든것과 싸우고 방어하는 모습을 평상시에도 흔히 보인다. 1958년 그가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을 때도 김현은 ‘그가 20세의 어린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그의 부친이 黃順元이라는 사실은 그의 시작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예를들어 ‘젊은 나이에 추천을 받았다는데 대한 자부심은 서울고를 1등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를 수석 입학한 것과 겹쳐 대단한 수재·천재의식을 심어주었으며’ 그로 하여금 ‘결단코 남에게 질수 없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부친의 명성은 그를 문단에서 ‘황순원의 아들’로 더 알려지게 했으며 그는 이 이율배반적인 요소를 끈질기게 극복한 결과 시인 황동규와서울대 교수의 위치를 이룩하게 된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교때의 단짝 친구이던 시인 마종기도 ‘평생동안 자기 시를 갈고 닦는 정성, 언제나 어디서나 좋은 시를 쓰는 것만을 최상’으로 알면서 사생결단으로 시 쓰기에 매진하는 그의 열정은 때때로 주변의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고 시절 전학년을 거쳐 교과서나 노트 한권 없이 빈손으로 학교를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마종기와 밤샘 시험공부를 할때도 타고르와 예이츠의 영문시집이나 읽으면서 ‘내일은 무슨 과목 시험이냐, 혹시 공부하다가 중요한 것이 있으면 물어봐달라’고 하고는 먼저 잠자리에 들곤 했다는 것이다. 문학적 정열과 함께 인사동에 있던 음악실 르네상스에 드나들 때도 화성학이나 대위법 등의 책들을 읽으면서 은근히 작곡과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자신이 약간 ‘음치’라는 사실을 발견하자 작곡가의 꿈을 무산시켜 버렸다. 그의 여행취미는 고교 2년때부터 시작된다. 여행은 삶의 비유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시적 실존의 궤적에 대한 비유’ ‘적극적인 문학적 실천행위’의 한방법이기도 하다. 이른바 일상생활의 규범에서 벗어난 ‘정신적 가출’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주로 김정웅 김병익 김주연 정현기와 함께 지금도 전국의 산사를 누비고 있다. 평론가 유종호씨가 ‘극서정시’로 평가한 ‘겨울의 빛’과 ‘풍장’ 시리즈도 이때의 소산이다. 죽음에 대한 황동규의 시적 탐구는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염사(念死)의 형식이며 스스로를 비우는 가벼운 마음가짐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죽음의 해방 위한 念死 결국 그의 시의 특징은 평론가 정효구에 의하면 ‘객관적 세계를 가능한한 현실감있게 묘사하여 재현하려는 리얼리즘정신’이 투철하다. 어느 시대의 인간이든지 얼마만큼의 변화미와 자유분방함을 누린다손 치더라도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하면서 생기넘치는 현실을 창출하기란 힘든 노릇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정시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연극성을 강조한 ‘악어를 조심하라고?’‘몰운대행’을 감행했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대개 서투르다는 전제하에 ‘고분고분말을 잘듣지않는 건방진 시’를 쓰기도 했다. ‘손님이 오시는 오늘 피었으면 좋겠는데/ 끝내 피지않고 내일 피는 꽃이 되고 싶다’가 그 예이다. 황동규는 완벽주의자다. 만약 본인이 들으면 완강하게 부인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맺고 끊는것이 분명하고 깍듯하고 결곡하다. 그런 한편으로는 연약함이 심화되어 그날 좋은 친구를 만나면 ‘한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이요’를 부르기도 하고 영국 에든버러대에 유학하고 돌아오자 그만의 유니크한 창작 춤을 만들어 한동안 친구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춤추어 보이기도 했다. 평남 숙천 출생. 46년 가족이 전부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하면서 덕수초등학교를 졸업, 청소년기엔 서정주 윤동주 김소월의 시를 애송했고 같은 서울대와 대학원을 나온 高靜子씨와의 사이에 남매가 있다. ○완벽한 성격에 결곡함 그는 ‘불편하게 살기 위해 시인이 됐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감각,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내것으로 만들려고 시를 썼으며’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변하는 인간의 맛’을 전달할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선지 비교적 난해시면서도 지난 75년 출간된 ‘삼남에 내리는 눈’은 당시 6만부 이상, 최근 영화화와 더불어 하루 아침에 베스트 셀러가 된 ‘즐거운 편지’는 하루 3,000여권씩 주문량이 쏟아지는 센세이셔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 시인의 명징성은 일찍이 데뷔 시 ‘시월(十月)’에서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고 예언한대로 시의 무위(無爲)를 터득한 경지에 서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의 광맥(鑛脈)의 그 한 끝을 캐내기 위해 그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엄혹(嚴酷)한 긴장을 언제까지라도 멈추지 않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38년 평남 숙천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시월’‘즐거운 편지’‘동백나무’추천 ▲1961년 서울대 영문과졸업, 첫시집 ‘어떤 개인 날’(중앙문화사)상재 ▲1965년 시집 ‘비가’(창우사)상재 ▲1966년 서울대 대학원졸업 ▲1966­68년 영국에든버러대 수료 ▲1968­현재서울대 영문과 교수 ▲1970년 미 아이오와대 체류 ▲1987년 미국 뉴욕대 교환교수 ▲1991년 서울대 대학신문주간 ▲1982­95년 ‘풍장’연작 완성 ▲1997년 미 버클리대 문학강연 ▲1998년 황동규시 전집출간 ▲저서 시집 ‘열하일기’(72년 현대문학사)‘나는 바퀴만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78년)‘악어를 조심하라고?’(86년)‘몰운대행’(91년)‘미시령 큰바람’(93년)‘외계인’(96년)등 문학과 지성사출간, 독일어판 ‘풍장’(독일 괴팅겐 에디치온 페페코른출판사)외 자작시 해설집 ‘나의 시의 빛과 그늘’(94년), 시선집 ‘삼남에 내리는 눈’(75년)‘견딜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88년), 시론집 ‘사랑의 뿌리’(76년), 산문집 ‘겨울 노래’(79년)외 ▲수상 현대문학상(68년) 한국문학상(80년) 연암문학상(88년) 김종삼문학상·이산문학상(91년) 대산문학상(95년)
  • “한국정치는 日 정치의 복제품”

    ◎강태현씨 ‘일본 자민당 파벌투쟁사’서 주장/日은 黨·한국은 인물중심 권력 독점/거물 퇴장후 파벌정치 출현 등 예상 유별난 반일감정과는 달리 일본의 그늘을 벗어날수 없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현실이다. 유권자보다는 유력자에 줄을 서고 계파를 만들어 계보정치를 하는 양태의 뿌리는 일본이다. 일본은 종전 이후 자민당이라는 다수당이 지배해 온 일당 지배체제였다. 이에 반해 우리는 일인 체제의 몇개 정당의 생성소멸로 점철돼 왔다. 비록 당과 인물이라는 서로 다른 축으로 움직여 왔지만 독점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것에서는 일치한다. 일본은 우리미래상을 반추해주는 자화상적 성격이 강하다. 일본동아시아통합연구소 부소장 강태현씨는 ‘일본 자민당 파벌투쟁사’(무당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미래를 조망한다. 그는 1945년부터 94년까지 일본정치사를 자민당이라는 거대 정당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에서 일본은 한 개의 정당안에서 많은 파벌이 존재하고 그들의 투쟁에 의해 당이 유지돼 왔다며 거물들이 퇴장한 이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파벌정치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예상은 최근 우리정치사의 흐름을 지켜 볼 때 단순한 예단이 아니라 사실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에서 10년전,20년전 발생할 일이 우리에게 낯익은 모습으로 다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복제품을 살펴보자. 70년대 중반 자민당 총재선출을 위한 대의원선거의 부패상도 빼놓을수 없다. 당시 자민당 보스들은 표를 얻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하는 대의원을 역에서 납치하거나 호텔에서 불러내 자기편에 투표해달라고 강권한다. 이 과정에서 돈이 오갔음은 물론이다. 개,고양이가 당원이 된 것을 꼬집는 ‘개·고양이 당원’,‘유령당원’이 나온 것도 이 때다. 의원들의 부패사건이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봉합되는 것도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이 책은 일본정치를 이해하는데 기초가 되는 1차 자료라고 할수 있다.
  • 침수가옥 관리 요령/흙탕물 밴 의류 수산으로 표백처리

    ◎냉장고는 에탄올로 소독 한후 사용/침수주택 전지 다시 쓸땐 안전점검 느닷없는 호우로 집이 물에 잠기거나 가재도구에 피해를 입은 가정이 적지 않다. 젖은 물건을 손질하고 집안을 정리하는 요령을 소개한다. □부엌=조리대·찬장 등을 행주로 깨끗이 닦은 뒤 문을 열어 바람이 통하게 하고 선풍기를 틀어 습기를 없앤다. 행주를 식초나 알코올에 적셔 닦으면 곰팡이를 막을 수 있다. 그릇은 세제로 닦아 볕에 말린다. 냉장고에는 구석구석 소독용 에탄올을 뿌린다. □옷·침구류=일광소독 후 막대기로 두들겨 진드기·먼지를 털어낸다. 흙탕물이 밴 것은 물에 적신 면헝겊으로 두드려 얼룩을 지운 뒤 물빨래를 한다. 수산으로 표백 처리하는 것도 한 방법. 화학솜 이불은 중성세제를 사용,거품을 충분히 낸 뒤 헹군다. 목화솜은 알칼리성 고체비누로 일단 빨고 솜틀집에 맡긴다. □벽지·장판=습기 찬 벽은 마른 걸레로 닦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린다. 습기제거제를 뿌리거나 유성페인트를 살짝 발라준다. 들뜨고 곰팡이가 슨 벽지에는 물과 알코올을 4대 1로섞어 뿌린다. 장판 밑의 물기는 마른 걸레로 닦은 뒤 신문지를 몇장 깔아 습기를 빨아들인다. □가구=중성세제에 적시거나 마른 걸레로 흙·오물을 닦아낸다. 니스 또는 래커를 칠한 가구는 석유와 합성세제를 섞은 걸레로 닦아야 흠이 생기지 않는다. 볕에 말리면 형태가 변하기 쉬우므로 그늘에서 말린다. 다시 놓을 때는 벽에서 10㎝ 이상 떼어놓아 습기를 막는다. □기타=사나흘에 한번쯤 보일러를 켜거나 불을 때 습기를 없앤다. 침수된 집의 전기를 다시 쓰기 전에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안전확인을 받는다. LPG·도시가스 관련물도 물에 잠겼을 때는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 특히 가스레인지를 켤 때는 실내를 완전히 퉁풍시켜야 한다.
  • ‘수난 4代’ 독립운동가 가문(金三雄 칼럼)

    무궁화 피고 태극깃발 물결치는 8월,우리는 해방 53년과 건국반세기를 맞는다.여전히 분단상태에서 북쪽은 기아,남쪽은 실업의 고통이 따르지만 아무려면 일제식민지 시대의 참혹했던 생활에야 비하랴. 8월이면 우리는 감사해야 할 수많은 애국지사 순국선열을 생각한다.해방을 못보고 눈을 감은 선열들과 해방후에도 독재정권에서 신산한 삶을 사신 지사들을 잠시라도 생각하면서 이 8월을 맞았으면 싶다. 흔히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다.그만큼 일제의 탄압이 심했고 역대 정권이 지사들과 유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데서 생긴 말이다. 나는 독립운동을 하다가‘3대가 망한’집안을 알고 있다.실제는 4대째 수난과 시련을 겪고 있다.이것은 단순히 한 가문의 수난사이기보다 왜곡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단면이라 하겠다. 동농(東農) 金嘉鎭은 상해임시정부 고문과 북로군정서 고문을 지낸 독립운동가다.망명에 앞서 항일단체 대동단을 조직,총재로 있으면서 의친왕 이강공(李堈公)의 상해 탈출을 기도하여 만주 안동현까지 갔으나 붙잡히고 동농은 74세의 고령으로 상해에 망명했다.그 가문의 고난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큰아들 의한(毅漢)은 부친과 함께 망명하여 대동단원과 광복군 창건에 참여하다가 해방후 납북되고,며느리 정정화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뒤를 따라 상해로 탈출하여 임정 밀사 자격으로 독립운동자금 모금의 밀명을 띠고 여섯 차례나 국내에 잠입하면서 밀령을 수행했다.최근 나온 ‘長江日記’는 여성독립운동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손자 자동씨는 4·19이후 진보매체인 ‘민족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군사정권의 핍박을 받고 이후에는 민간통일운동에 헌신해왔다. ○저항하다 탄압받는 민족양심 金씨의 사촌형 석동씨도 광복군으로 활동했다.자동씨의 큰 딸 진현씨는 유신시절 학생운동으로 대학에서 제적되고 졸업후에는 의료보험연합회 노조위원장을 지냈으며,둘째딸 선현씨는 노태우정권시절 웨스트팩은행 노조위원장으로 외국계은행 노동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탄압과 시련이 따랐던 것은 당연하다. 동농에서 선현씨까지 4대째 이어지고 있는 이 가문의 고난은 한 가족사의 아픔이기보다 민족사의 비극이다.바로 일제와 독재에 저항하고 탄압받는 민족적 양심의 정형이다.동농의 가문뿐만 아니라 상당수 독립운동가 집안이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고난을 겪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의 정부에서도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솔직히 국민이 정권교체를 선택한 것은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그늘진 곳에는 햇볕을 비추고 굽고 휜 것은 펴고 단절된 것은 이으라는 시대적 소명이었다. ‘정직한 역사를 되찾으라’는 소망이었다. 최근 보훈처는 동농의 서훈을 또 다시 거부했다.이유는 간단하다.일제로부터 ‘남작’을 받았다는 것이다.물론 ‘남작수여’는 악질 친일파의 대명사다.그렇지만 동농의 경우는 다르다.일제는 종3품이상 고관 72명에게 작위를 주면서 “조선귀족들은 한일합방에 찬성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각종 기록은 “동농은 작위를 거절했다”(민족문화대백과사전),“합병후 작위를 주었으나 불락(不樂)하였다”(조선독립소요사론)고 썼다.또 설혹 작위수여의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이공속죄(以功贖罪)’즉“공을 세우면 죄를 용서받는”것이 대원칙이다. ○무원칙한 보훈처 정부는 제2건국을 표방하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포했다.그렇다면 임정 법통을 이어받은 정부가 임정 고문을 지낸 동농을 친일부역자로 몰아 구정권과 똑같이 서훈을 거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주변에서는 보훈처가 동농의 후손들이 복지부 서훈심사의 불공정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반정부적인 활동을 해온 전력때문에 서훈이 거부된 것으로 인식한다.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이다.동농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훈장을 준 국가가 그 장본인을 제쳐놓은 것은 모순이다. ‘만절(晩節)을 보면 소지(小志)를 안다’고 했다.동농의 경우가 그렇다.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기록을 뛰어넘어 4대째 시련을 겪고있는 동농가문에 더 이상의 절망을 주어서는 안된다.합당한 서훈과 함께 상하이 송경령 능원에 방치된 동농의 유해를 환국시켜 뒤늦게나마 애국지사를 대접해야 하겠다.
  • 일사병/충분한 수분·영양섭취가 예방길

    ◎의식잃었을땐 그늘서 다리쪽높게 눕혀야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에 무리하게 움직여 땀을 많이 흘렸을때 몸안에 수분이나 염분이 모자라 생기는 병. 두통이나 메슥거림 구토 식욕부진 등이 나타나며 심할 경우 근육경련 등으로 의식을 잃기도 한다. 체온조절 기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만성질환자는 특히 여름나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사병을 막으려면 충분한 수분과 영양섭취를 해주어야 한다. 땀을 많이 흘렸을때는 맹물보다는 흡수가 빠른 주스나 스포츠음료 등을 마시는게 좋다. 또 햇볕이 강렬한 날엔 상오 10시부터 하오 3시 사이에는 가급적 외출을 피하고 나가더라도 뙤약볕 아래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한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때는 환자를 우선 시원한 곳으로 옮기고 다리쪽을 높게해 피가 뇌로 잘 전달되도록 해준다. 이렇게 해야 혈액순환이 좋아져 회복이 빠르다. 그래도 체온이 떨어지지않고 열이 오르면 찬물에 적신 수건이나 담요를 덮어주거나 얼음찜질을 해 체온을 섭씨 38∼39도로 낮춰주면서 빨리 병원으로옮기도록 한다.
  • 가족과 떠나는 미술·박물관 휴가

    ◎마이크로 월드전 등 볼만한 전시회 5선 여름방학을 맞아 각 박물관과 미술관이 청소년을 동반한 가족나들이 객을 위해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IMF시대 온가족이 휴가 삼아 가볼만한 전시회들을 소개한다. ◇중국문화대전­63앵콜전 29일부터 9월6일까지 여의도 63빌딩 별관 1층 특별전시장 및 옥외전시장에서 열린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5천년 중국문화를 한눈에 볼수 있다. 지난 1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려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수준높은 전시. 진시황 동마차,병마용,갑골문,월왕구천검 등 시대별 핵심작 500점과 함께 중국의 기인과 예인이 보여주는 갖가지 이벤트가 마련된다. 초등학생 4천원,중고생 6천원,일반 8천원. ◇볼 수 없던 세계,마이크로 월드전 오는 8월6일까지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린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진기한 마이크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사진전시회이다. 인체,생활,자연,시간,빛 등을 주제로 1천여점의 마이크로 세계 사진과 동영상이 관람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5,200배로 확대한 혀,날아가는 총알을 찍은 사진,산호초처럼 생긴 남성호르몬,이탈리아 토리노성당의 성수의(聖壽衣)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유치원생 4천원,초중고생 6천원,성인 8천원. ◇400년만의 귀향­일본속에 꽃피운 심수관가 도예전 8월10일까지 광화문 일민미술관(구동아일보)에서 열린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도예를 전해주고 ‘사쓰마야키’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를 일구어낸 초대 심당길로 부터 14대 심수관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140여점이 선보인다. 주요작품으로 조선의 흙과 유약에 불만 일본의 것을 빌렸다는 초대 심당길의 ‘불만 빌린 그릇’(원명:히바카리다완),8대 심당원의 ‘사자승 관음상’,14대 심수관의 ‘금칠보설륜문대화병’등이 있다.청소년 2천원,일반 3천원. ◇우리 호랑이 특별전 8월1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호랑이해를 맞아 조상들이 남긴 호랑이 관련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 조선시대 ‘산신도’를 비롯,단원 김홍도 임희지 합작의 ‘죽하맹호도’,호랑이무늬 방망이,호랑이가 그려진 ‘청화백자철화송호문필통’,목제 호랑이상,영천 은해사의 ‘산신탱’,승주 선암사의 ‘목조 산신상’등 200점 전시되고 있다. 초중고생 무료,대학생 300원,일반 900원. ◇우리네 여름이야기 특별전 8월3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다. 옛 선인들의 여름나기 풍습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전시회다. 여름의 대표적인 놀이인 천렵을 묘사한 풍속화를 비롯,시원한 그늘에서 부채질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겸제 정선의 ‘유음납량도(柳陰納凉圖)’,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탁족도(濁足圖)’등 현대인들이 쉽게 볼수 없는 여름관련 옛그림과 고문헌을 모았다. 이밖에 죽부인만들기,화문석짜기,감물들이기 등 여름용품 제작과정을 보여주고 입장객에게 부채를 나눠준다. 또 31일에는 입장하는 어린이들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주며 단오 유두 음식인 유두국수 등 각종 여름음식도 제공한다. 초중고생 무료,성인 700원.
  • 수하르토 하야 이후 印尼/더딘 개혁속도… 머나먼 새시대

    인도네시아가 갖가지 개혁정책으로 새시대를 여느라 안간힘이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하야한 때는 지난 5월21일. 32년간 깊숙이 뿌리 내린 철권통치의 청산작업이 쉽지가 않다. 인적 청산작업을 시작으로 갖가지 개혁정책을 펴고 있지만 구체제에서 혜택을 누려온 기득권층의 반발과 집단이기주의가 행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게다가 극심한 경제난과 소수 종족들의 분리독립 요구로 국론마저 갈리고 있다. 개혁의 새시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현주소를 점검해본다. ◎인적청산/수하르토 일가 ‘퇴출’ 불구 기득권층 입김 여전 인도네시아의 개혁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출시키는 데서 시작되고 있다. 수하르토의 32년 철권정치를 떠받치고 때로는 선도해온 그들이 개혁시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고 국가사회의 발전보다는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앞세웠다는 비판을 받아온 그들이기도 했다. 하비비 대통령은 최근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사위이기도 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중장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뜻을 내비쳤다. 32년 철권정치 동안 행방 불명된 14명의 민주 인사들의 실종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프라보워 중장은 한때 최정예 부대를 이끌며 수하르토의 철권정치를 뒷받침해준 핵심 인물. 그에 대한 단죄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적 청산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집권 골카르당도 변신을 위한 몸부림을 시도하고 있다. 22일에는 국민협의회(의회) 의원직을 가지고 있는 7명의 수하르토 일가의 의원직을 박탈하기로 했다. 과거 정권과의 단절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수하르토의 자녀 6명 중 4명을 비롯해 의붓형제,사촌과 며느리 등이 국민협의회 의원이다. 벌써 지난 11일에 아크바르 탄중 국무장관이 새 총재로 선출되면서 수하르토와의 결별은 감지됐다. 총재 경선에서 수하르토를 등에 업은 에디 수스드라자트 후보를 낙선시키는 ‘작은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새시대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인적 청산의 폭과 속도가 미흡하기만 하다. 인권단체인 법률구조협회의 한 실무 책임자는 “집권자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기반(개혁 주체)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어쩌면 하비비 정권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사실 하비비 대통령과 위란토 국방장관 등 현정부의 주요인사 중 주류는 수하르토의 그늘 밑에서 성장한 인물들이다. 집권당의 신임 사무총장에 군 관계자가 임명되는 등 아직도 군부의 입김은 막강하다. ◎물적청산/수하르토 일가 재산 단계적 환수/긍정평가속 “조금 더 지켜봐야”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환수 문제는 인도네시아의 개혁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수하르토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 그의 가족들이 각종 특혜와 족벌경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척,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탓이다. 현재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국부(國富)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택시회사에서 첨단 정보통신업체에 이르기까지 문어발식 경영으로 끌어 모은 수하르토 일가의 총재산은 무려 460억달러. 인도네시아가 당면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지원받게 될 구제금융 403억달러를 웃도는 액수다. 새 정부는 수하르토 일가에 대해 일련의 단계적인 청산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누려오던 은행대출 특혜와 독점 판매권,단독 계약 등 각종 특혜를 없애는 한편 이들이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당연하다는 인식과 함께 일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부의 개혁적 조치들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수하르토의 장남 시지트와 차남 밤방이 지분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 최대 민간은행 BCA가 파산했다. 자카르타시에 있던 3남 후토모 소유의 빌딩 두채는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유화됐다. 앞으로 수하르토 일가가 경영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갖가지 특혜가 사라질 것이고 이들 일가의 기업들이 속속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풀어야 할 과제/분리독립 요구 등 국론분열 양상/경제회생에 국가역량 결집 필요 개혁을 서두르는 인도네시아 새 정부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개발 독재가낳은 최악의 경제난에다 소수 종족들의 분립독립 움직임이 개혁의 발걸음을 붙들어 맨다. 최근 경제는 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극심한 수출 부진에다 무역외 수지마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520만명이 찾아와 66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던 관광산업마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올 들어서만 물가가 두배 가까이 올랐다. 연말이면 실업자가 전체 인구의 10%인 2,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날로 가중되는 경제난은 빈곤층을 확대시켜 사회안정 기반마저 위험수준으로 몰아간다. 이달 들어 동(東)자바와 자카르타 교외에서는 폭도들이 중국계 상점과 농장,새우 양식장들을 습격해 강탈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군 당국이 약탈자 무조건 발포령을 내릴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여기에다 동(東)티모르와 이리안 자야 등에서는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집회와 시위가 끊이질 않는다. 경제발전에 국력을 집결시켜야 할 판에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 통합이 훼손되면서 개혁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들 지역의 분리독립 욕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다양한 종교의 400여 종족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자칫 큰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제난과 소수 종족들의 요구 충족이 당장의 과제인 셈이다. ◎누가 이끄나/하비비­수하르토 대리인… 개혁 이행 한계/위란토­군부 실세… 위로부터의 개혁 주도/라이스­회교지도자… 인적·물적 청산 요구 ■하비비 대통령(61)=당초 수하르토의 충실한 대리인으로 분류되며 개혁에 소극적인 인물로 투영됐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발빠른 개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히 불식시켰다. △정치범 석방 △노조결성 금지조항 철폐 △정당결성권 허용 △대통령 임기 및 연임 횟수 제한 등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축재 사실 자체를 공공연히 부인하고 나서면서 개혁 수행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위란토 국방부장관(50)=군 총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 군부 실세. 수하르토의 부관을 지내며 충성심을 인정받으며 군 최고실력자가 됐다. 강경 진압을 자제하는 등 지난 5월의 민주화운동에는 묵시적인 동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가와티 전 민주당 당수 등 야당 인사와도 교분을 맺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과거의 계승과 단절을 적절히 조화시켜 가고 있다. 하비비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보완해주며 ‘위로부터의 질서 있는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아미엔 라이스(54)=회교단체 무하마디야의 지도자로 반 수하르토의 선봉장. 이슬람교 학생연맹 대표로 지도자 역량을 발휘해 2천800만명의 이슬람 세력을 결집,수하르토 퇴진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메가와티와 함께 ‘시민평의회’를 구성,수하르토 일가의 재산환수 등 인적,물적 청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여자아이 性조숙증/陳東奎 삼성서울병원 소아과(전문의 건강칼럼)

    경아는 올해 세살된 여자아이다.한손에 곰인형을 들고 있는 경아를 병원으로 데려온 경아엄마의 얼굴엔 그늘이 가득하다.서너달전까지만 해도 살짝 봉우리진 가슴이 지난주엔 아이 주먹만하게 커진데다 아래로 피까지 약간 비치는 것이다.여중생에게나 있어야할 변화가 이제 세살된 경아에게 생긴 것이다. 사춘기변화는 뇌하수체에서 성호르몬의 음성(陰惺)되먹임에 대한 역치의 변화로 일어난다.낮은 수준으로 억제되던 성선자극 호르몬이 어느날 충분히 억제되지 못하고 증가해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게 된다.인체 신비중의 한가지로 이런 변화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직은 뚜렷한 원인 규명이 안된 상태다. 어쨌든 경아는 성조숙증의 한 예로 소아내분비 전문의들이 드물지 않게 관찰하게 되는 경우다.여자 어린이의 성조숙증은 대부분 성선자극호르몬의 분비가 때이르게 증가돼 발생하는 것이다.즉,가슴이 커진다든지,여성으로서의 분비물이 생긴다든지 하는 사춘기때의 신체적 변화가 어린아이에게 나타난다.겨우 엄마 아빠나 부를 아이가 갑자기 부분적으로만성숙한 소녀가 되는 셈이다. 치료는 약제투여로 가능하다.증상에 따라 매달,혹은 세달에 한번씩 약제를 주사함으로써 이런 이상 증세를 없애고 나이에 맞는 신체로 되돌아가게 한다.그러나 너무 늦게 치료를 시작하면 성장판이 빨리 닫혀버려 키가 자라지 않는다.성인이 됐을때 다른 사람보다 훨씬 키가 작아 또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최근엔 다른 질병을 치료하다 부작용으로 성조숙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소아백혈병이나 뇌종양 등을 치료하기 위해 방사선 조사를 받았던 아이들중 뇌하수체 기능저하를 보이면서 때로 성조숙증이 나타나는 수가 있다.이런 어린이들도 제때 치료만 하면 큰 문제는 없다. 이런 증상이 보이면 미루지말고 바로 소아내분비 전문의를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한다.문의 3410­2260
  •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한다/동서양 영웅 다룬책 줄줄이

    ◎역경 이겨낸 당당한 이야기/몽골 칭기즈칸·클레오파트라·중국 진시황제 어지러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카리스마에 기대게 만드는 것일까.요즘 서점가에는 동서양 역사의 영웅들을 다룬 책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칭기스칸은 살아 있다’(신현덕 지음,강),‘천년영웅 칭기즈칸’(이재운 지음,해냄),‘클레오파트라’(조지 마가렛 지음,,미래M&B),‘진시황제’(김성한 지음,조선일보사) 등이 그런 책들이다. 우선 관심을 끄는 인물은 몽골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칸.미 워싱턴포스트는 95년 지난 1,000년동안 가장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했다. 또 일본에서는 공무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고,그의 조직관리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의 중화사상이 여전히 남아 있어 칭기즈칸이나 누르하치 같은 유목영웅들을 한낱 오랑캐로만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역사·문화에세이 성격을 띤 ‘칭기스칸은…’과 대하역사소설 ‘천년영웅…’은오늘의 시각에서 칭기즈칸을 조명한다.‘칭기스칸은…’을 쓴 신현덕씨(세계일보 생활부장)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몽골 국립사회과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몽골문제 전문가다.그런 강점을 살려 이 책에서는 칭기즈칸 이야기 못지않게 몽골인의 여러 생활풍습도 낱낱이 살핀다. 칭기즈칸은 몽골인들의 자부심의 원천이며 마음의 지주다.그것은 그가 단순히 10만 병사로 전세계를 제패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칭기즈칸은 군인과 군사 요충지는 철저하게 파괴했지만 비전투적인 민간인들에게는 위해를 하지 않았다.이 책은 칭기즈칸의 지도자로서의 인간적 덕목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지은이는 “칭기즈칸은 심지어 일반 병사들까지 ‘너’라고 불렀을 정도로 백성과 친밀함을 유지했다”고 설명한다. “몽골군이 지나간 뒤에는 먼지만 남는다”는 말이 있다.그들의 잔인함을 강조한 말이다.모두 8권 중 세 권이 출간된 ‘천년영웅…’은 13세기 몽골 초원을 달렸던 ‘인간태풍’ 칭기즈칸의 야수성을 그린다.하지만 이 소설이 정작 강조하는 것은칭기즈칸의 세계경영 지혜와 불요불굴 정신이다. 미국 여성작가 마가렛 조지의 ‘클레오파트’는 ‘이시스의 딸’‘파라오의 사랑’‘동방의 진주’‘악티움의 노을’‘하데스의 눈물’등 5부로 된 전기소설.17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기까지 로마라는 초강대국의 그늘 아래서 이집트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역정을 그렸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타고난 미모로 좌지우지한 천하의 요녀(妖女)다” 이런 세간의 평가는 과연 적절한가.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이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작가는 우리가 클레오파트라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클레오파트라의 적들이 쏟아낸 비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키케로,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 같은 대문호들이 클레오파트라의 정적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바비도’의 작가 김성한이 엮어낸 ‘진시황제’(전3권)는 진시황의 아버지인 장양왕과 진시황,그리고 그의 아들 호해 3대에 걸친 권력쟁탈 과정을 그린 역사소설이다.이 작품 역시 폭군으로만 인식됐던 진시황제를 이상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야심만만한 통치자로 재조명하고 있다.이 책에서 영웅이란 ‘억지’를 쓰고 그 억지를 관철할 수 있는 인물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지금,결코 선인(善人)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영웅들의 이야기에 왜 눈길이 가는 것일까.그것은 이 시대가 역경을 뚫고 피나는 노력으로 당당히 일어선 진정한 영웅정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다섯시면 문닫는 대학(朴康文 코너)

    이름도 있고 역사도 긴,서울의 한 대학은 하오 다섯시만 되면 건물들의 출입문을 잠근다.한 푼이라도 경비를 줄이겠다고 하는 일이다. 방학 동안 쓰지 않는 강의실이야 문을 닫아도 되겠지만,연구실에 있던 교수들이 기나긴 여름해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책을 덮고 나와야 하니,이일 하나로도 학문 연구의 세계에도 경제의 주름이 이렇게 저렇게 적지않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헌절날 텅빈 의사당 그렇게 줄인다고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학문의 발전과 학생 교육,나아가 국가의 먼 장래까지 생각한다면,그런 절약이 진정 절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오히려 장기적으로 큰 손해일지도 모르지만,한편으로는 오죽하면 그러겠나,딱하고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런 어려운 때에 국회가 긴 여름잠을 자는 것에 대해 여론이 좋을 리 없다.웅장한 국회의사당이 비어 있고 국정은 여기서 논의되어 본 지 오래다.경비를 아끼려고 건물을 비어 둔 것이 아니다.국민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의사당 앞에서 이따금 얼룩송아지들이 이리 닫고 저리 뛰면서 축산농가의 분노를 대변할 뿐이었으니 국회의 위신이 말이 아니다. 나라가 태평하여 할 일이 없어서 의원들이 논다면야 다행이련만,나라는 내우(內憂)에다 외환(外患)이 겹겹이다.국민의 대표들이 밤을 낮으로 삼아 지혜를 모두 짜 내어도 풀기가 어려운 일들이 쌓여 있건만,여야가 머리를 맞대지 못하고 있다. 50년전 제헌국회가 구성되어 민주 헌법을 처음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제헌절은 국회로서 가장 뜻깊은 날인데도,이날까지 국회의장이 없다는 것이다.여론의 압박에 밀려 행사용 대행자를 뽑아 이 경축일을 치러 나가기는 하지만,반세기 전의 제헌의원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다. 후반기초부터 ‘없던 국회’가 공헌한 것이 전혀 없지도 않았다는 말도 있기는 하나,이는 반어적(反語的)인 풍자일 뿐이다.“신문에서 정치 기사 덜보니 좋더라”는 것인데,대의정치에 대한 불만과 실망의 표현이다.그 동안 국회가 열렸다고 해 봐야,고함과 드잡이로 날을 지내다가 흩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을 되풀이했을 것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지난 6월에북한 잠수정이 꽁치 잡는 그물에 걸리더니 이달 7월에는 잠수복 차림의 무장간첩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일부 노조들의 연대 파업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경제 전망은 흐려지고 있다.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국회는 후반기 원 구성이 되지 않아 의사당이 정적(靜寂)속에 묻혀 있었다. ○국민 정치무관심 부채질 국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 또는 냉소주의가 심해질 수 있다. 대의제도롤 통해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이 잃지 않게 하는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다.진지한 국회,고민하는 국회,국민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국회를 보고 싶다. 대학이 하오 다섯시에 교수들을 연구실에서 내쫓지 않고 늦은 밤까지 불을 켤 수 있게 하려면, 또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되찾고 공장들의 모든 기계를 다시 힘차게 돌릴 수 있게 하려면,국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라고 노래되는 제헌절이다.
  • 팔당호에 내년 인공섬 시범 설치/애기부들로 ‘물청소’ 한다

    ◎다년생 수초… 질소·인 등 강력 흡수/조류발생 억제·BOD감소 효과 높아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수초가 빽빽히 들어선 인공섬이 설치된다. 국립환경연구원은 내년 4월 팔당호 남쪽 경안천 광동교(橋) 근처에 100평 가량의 인공섬을 시범적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인공섬에는 호소(湖沼)의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질소(N) 인(P) 등 영양물질을 다량 흡수하는 애기부들이 자란다. 애기부들은 늪 또는 연못가에 자생하는 부들과(科) 수초로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질 개선에 활용되고 있다. 줄기로는 부채를,잎으로는 방석을 만들기도 한다. 물 속 20∼30㎝에 뿌리를 내리며,다년생이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이용하지 못하는 부레옥잠 개구리밥 등 1년생 수생식물보다 쓸모가 더 있다. 단기(6개월 정도)효과는 부레옥잠이 우수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애기부들이 더 낫다. 연구원은 철제 구조물 위에 수세미처럼 작은 구멍이 송송 난 스펀지를 깐뒤 애기부들 씨앗을 뿌리는 방법을 쓸 계획이다. 철제 구조물은 상수원 보호를 위해 곧 철거될 팔당호 주변 가두리양식장에서 수거하기로 했다. 인공섬이 설치되면 경안천 수질이 상당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용인 등의 생활하수가 유입되는 경안천은 대성리(북한강),월계사(남한강),팔당댐 앞,경안천 서하교(橋) 등 팔당호의 4개 수질 측정지점 가운데 조류(藻類)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도 제일 높다. 연구원 柳在根 수질연구부장은 “100평 가량의 인공섬에 애기부들을 심으면 질소농도가 1.2ppm에서 0.6∼0.8ppm,인 농도가 0.06∼0.07ppm에서 0.03∼0.04ppm으로 각각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도 1.6∼1.8ppm에서 1.4ppm 정도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섬은 수질 개선 외에 철새와 치어(雉魚) 및 작은 물고기의 서식지 역할도 한다. 또 호소 한가운데 그늘을 만들어 수온 상승을 막기 때문에 조류(藻類) 발생도 억제한다. 柳부장은 “인공섬은 질소 인 등 영양물질 제거 뿐 아니라 조류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덕수궁 돌담길/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덕수궁 돌담길에는 사연이 많다. 지금이야 젊은이의 장소가 서울 외곽으로까지 확대됐지만 60∼70년대 서울의 젊은이들에게 이곳은 사랑의 산책길이었다. 고궁의 큰 나뭇가지들이 늘어져 그늘을 드리우는 돌담길을 걷는 것이 낭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눈 오는 날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는 장소로 가장 많이 꼽힌 곳이기도 하다. 숱한 만남과 이별의 사연을 간직한 이곳을 노래하는 대중가요가 나오기도 했다. 돌담장에도 사연이 많다. 덕수궁 돌담을 헐고 목책이나 철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쟁이 몇차례 벌어졌다. 실제로 60년대엔 시민들에게 고궁을 돌려준다는 취지로 완자무늬 창살의 투시형 철책으로 바뀐 바 있다. 조선 9대왕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私邸)였던 덕수궁 담장은 원래 목책이었으나 고종때 돌담장으로 축조됐다. 지난해부터 이 길이 보행자 중심 녹화 거리로 조성돼 서울시민 휴식공간으로 호평을 받아 오더니 어처구니없는 교통행정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서울시와 경찰이 덕수궁길 중 아직 녹화공사가 끝나지 않은 정동제일교회∼경향신문 구간의 일방통행 방향을 거꾸로 바꾼것이다.즉 ‘정동제일교회→경향신문’방향을 ‘경향신문→정동제일교회’방향으로 바꾸어 23일 0시부터 오는 9월까지 시행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덕수궁길은 양쪽 끝인 대한문쪽과 경향신문쪽에서만 일방진입이 가능한 이상한 도로가 돼 쓸모없게 된다. 이 길은 원래 을지로나 소공로 또는 태평로에서 진입해 서대문으로 좌회전하거나 삼성강북병원 앞으로 직진할 수 있어 하루 1만여대의 차량이 통과했다. 그러나 일방통행 방향이 거꾸로 바뀌면 미국 대사관이나 정동제일교회 근처를 찾는 차량 이외에는 찾을 필요가 없는 길이 된다. 서울시와 경찰이 덕수궁길의 일방통행 방향을 바꾼것은 미국대사관의 요청 때문이라고 한다. “대한문쪽 진입로가 시위등으로 막힐 경우 대사관저 접근이 불가능해지므로 정동교회 앞에서 서소문쪽으로 나있는 일방통행로의 방향을 바꾸어 달라”는 대사관의 요청을 받고 서소문쪽 대신 경향신문쪽의 일방통행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미국 대사관의 편의를 위해시민의 불편과 교통혼잡을 초래한 셈이다. 한국과 미국의 선린관계를 위한 것이라지만 터무니없는 처사이다. 교통지옥의 서울에서 이번 조치로 인한 시민들의 불만은 서울시와 경찰은 물론 미국으로도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 名唱 成又香(이세기의 인물탐구:172)

    ◎민족의 恨한큼 깊고 아득한 울림/동편제 대표격 김세종제 ‘춘향가’ 명맥이어/굵은 통성 세마치장단 할용 꾸밈없는 득음/우렁차고 한이 여울지는 소리 남창 못잖아/판소리 오미 오롯이… 힘든 가풍계승 정업/시류 영합않고 안숙선 등 13제자 길러내 춘전(春田) 成又香은 김세종제(金世宗制) ‘춘향가’의 명맥을 잇는 이 시대 대표적 명창의 한 사람이다.송계(松溪) 김세종은 전북 순창출신으로 조선조말의 申在孝문하에서 수학한 동편제소리의 전설적인 인물.장자백 이동백에 이어 강산제 소리의 대가였던 鄭應玟이 김씨 창제를 이어받았고 춘전이 정응민을 잇고 있다.지난 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년’ 기념공연만 봐도 그가 소리에 들인 공력이 얼마만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성소리 뒤늦게 소개 춘전이 걸어온 판소리의 길은 민족정서의 심연만큼이나 멀고 깊고 아득하다.그의 성색은 감기다가도 곧게 뻗고 잠기다가도 치솟으며 서럽고 답답한 삶의 애락이 소리전체에 면면히 깔려있다.넘실대는 가락은 물리학적인 음향이 아닌,민중의 아픔과 슬픔,절망과 신명을 능란하게 엇가른다.어느 때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막을듯이 유장한 진양조 장단을 울리다가도 숨이 넘어갈듯 자지러진 휘몰이며 산천초목이 더덩실 춤추고 일어서는 엇모리 단모리의 멋스러움은 가히 절품의 경지다. 마치 ‘남창을 연상케하는 호방하고 장엄한 소리는 삼각산을 등에 지고 대로를 가듯 시원하게 소리판을 짜나간다’고 이보형 문화재전문위원은 평한다.보성소리는 다른 소리제에 비해 뒤늦게 서울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72·74년에 그가 두번에 걸친 연구발표회를 가졌을 때 각 신문은 ‘춘전 강산제의 특색은 굵은 소리인 통성을 많이 쓰고 진양조보다 빠른 세마치장단을 활용하면서도 꾸미지않은 비범한 득음이 가슴을 울린다’고 특필했다. 오죽하면 국악계에선 그의 통큰 소리를 두고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우렁차고도 한이 여울지는 소리에 연전에 작고한 고수 김명환이 무덤에서벌떡 일어나 장단을 치러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춘전은 전남 화순에서 성영문과 김재녀사이의 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명고수 성차옥이백부이고 명창 주난향과는 고종 사촌간이다.어릴 적 이름은 판례였고 동네의 한학자 한분이 예명과 아호를 내려주었다. 5살이 되자 벌써 백부에게 가곡과 평시조를 배우기 시작했고 화순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화순의 안기순을 독선생으로 모신 것을 비롯 10대에 섭렵한 스승만도 광주의 정광수 남원의 강도근 한애순 강요진 등등이다.그리고 20세가 되던 무렵에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산간벽지로 송계를 찾아들어가 4년간 살이 물러터지도록 김세종제 ‘춘향가’를 사사했으며 다시 서울에 올라와 박초월 박녹주의 ‘흥보가’‘수궁가’의 창제와 더늠을 익히는 등 그의 학습은 문자그대로 ‘금성철벽(金城鐵壁)’으로 소문나있다. 춘전이 처음 회천에 갔을 때 스승은 ‘신식소리나 배우라’고 가르치기를 거절했으나 그의 타고난 성음에 가능성을 느끼고 제자로 받아들였고 ‘김세종제춘향가는 통성으로 우조를 써야한다’고 처음부터 단단히 강조해 마지않았다.스승이 부르는 ‘심청가’의 발림이 너무 애절하여 눈이 퉁퉁 붓도록 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씩 목에서 피를 토하는 가혹한 수업을 받았다. 임종자리에서도 스승은 ‘소리를 변질시키는 것은 정절을 버리는 것과 같다.절대로 소리를 만들지 말고 옛것을 그대로 하라’고 끝까지 타일렀다.‘판소리는 한바디를 기둥삼아 불러야하며 판소리 한바탕에는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 오미(五味)가 골고루 배열되어있으나 여러 바디의 좋은 대목만 따다가 조각보같이 짜맞추면 단맛만 앞서고 오미가 결여되어 판소리의 원리가 깨어진다’고 했다. ○“옛것 그대로” 스승 유언 춘전은 스승의 창법에다 다양한 붙임새를 개발하여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완자걸이 등 기묘한 장단붙임과 통성의 덜미소리를 들고나서면서 좌중을 사로잡는다.더구나 소리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통성이 강한데다 소리맺음을 할 때 짧게 끊거나 힘차게 통성으로 올려끊는 스승의 가법을 가장 잘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그래서 그의 공력은 곧잘 ‘설 벼린 칼은 쉬 부러지지만 수만번 단단히 벼린 칼은 바위를 쳐도 끄떡없다’는 이치에 비유되기도 한다.원로 국악인 성경린씨가 ‘성우향의 명창으로서의 대성은 타고난 성음,음악적 재능과 함께 하나같이 높은 스승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다. 70년대 이후 서울에 올라와 활동하면서 긴 곡절끝에 부군과 이혼 후 바둑교실을 열고있는 아들 진성환과 살면서 며느리인 원미혜가 그의 뒤를 잇고있다.삼양동 언덕배기에서 어려운 살림을 꾸리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에 봉지쌀을 사가지고 오면서 집앞까지 쌀이 새는 줄도 모른채 빈봉지를 들고올 만큼 경황없는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잔칫집에 나가 창을 부르지 않았고 ‘일반 가객들이 힘들고 난삽하여 꺼리는 가풍이지만 그는 계승의 책임감으로 이를 지켜왔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자양성에만 한 평생을 던져왔다. 그의 문하에는 1백여명의 훌륭한 제자들이 도열해있으나 아직 중요무형문화제로 지정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있다.그의 제자중에는 각종 판소리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수연 김영자 박양덕 안숙선 등 13제자가 있고 그는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완창발표를 12차례나 갖기도 했다.순수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로서 업적과 소리의 진가는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데도 흙속에 묻힌 보석인듯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얄팍한 세태가 안스럽기만 하다. ○문화재 재정안돼 아쉬움 허무하고 긴 예로(藝路)의 여정에서 인생의 파란이 얼룩져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상(嚴霜)속의 정목(貞木)’답게 단 한번도 그늘진 구석을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초연한 자세로 주변을 감싸고 보살핀다.그를 아끼는 기라성같은 제자들에 둘러싸여 존경과 선모를 한몸에 받는 이상,그리고 위대한 스승들로부터 이어받은 소중한 유음(遺音)을 전승하는 일을 자신의 정업으로 삼은 이상 그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스스로 우뚝선 참으로 홍복의 예인에 틀림없다.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전남 화순출생 ▲1949년 동일 창극단입단 ▲1950­52년 강도근판소리수업 ▲1953­57년 정응민문하사사 ▲1955년 전국판소리명창대회 1등▲1958년 임방울창극단 입단 ▲1960년부터 한국국악협회 회원 ▲1968·72년 재일교포 위문공연 ▲1972년 제1회 江山 박유전制 ‘심청가’완창발표 ▲1974년 제2회 김세종制 ‘춘향가’완창발표, 전국명인명창대회 장원 ▲1977년 전주대사습대회장원 대통령상수상기념 ‘춘향가’ 완창발 표 ▲1986년부터 국립창극단 초청강사, 사단법인 판소리보존회 연구 분실원장, 김세종제 ‘춘향가’ 완창발표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 후보지정 ▲19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주년기념공연(세종문회관 소강당 ) ▲1998년 김세종제 ‘춘향가’ 발표 성우향판소리연구소 대표, 국악예고 및 서울대등 8개대 출강 KBS국악대상(88년) ‘판소리 수궁가 (전3매)
  • 어린이·여성행사 등 찾아 바쁜 나날/李姬鎬 여사의 100일

    ◎비공식행사 포함 54회 참석/명예박사학위도 2번 받아 대통령 부인 李姬鎬 여사가 지난 100일동안 金大中 대통령과 함께 혹은 홀로 참석한 행사는 공식·비공식을 합쳐 모두 54회다.지난 4월26일에 입은 대퇴부 경부 골절상으로 지난달 28일까지 한달여 ‘공백기간’을 감안하면 ‘활동적이었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평가다. 李여사의 일정은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여성,소년소녀 가장 및 불우한 이웃에 집중되어 있다.관련 시민단체나 인사들로부터 행사 참석요청이 오면 되도록 참석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朴仙淑 청와대부대변인이 전했다.휠체어를 타고 어린이날 행사를 참석했으며,지팡이를 짚고 청와대 직원 다과회장에 나와 일용직 직원들까지 일일이 격려하기도 했다.‘소외된 이웃과 그늘진 곳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것이 청와대 입주전의 약속이었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지난 3월1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국채 판매촉진콘서트’와 같은 달 8일의 ‘제14회 한국여성대회’,4월11일 전국주부교실중앙회가 주최한 ‘주부교실지도자대회’ 등이다. 李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는 드물게 지난 4월24일 도쿄 아오야마(靑山)대학에서 명예 교육학박사,지난달 30일 이화여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앞서 같은달 29일에는 이화여고가 동문 졸업자에게 수여하는 최고상인 이화기장을 수상했다. 李여사는 참석하는 어디 행사에서든 나름의 영역을 찾고 있다.런던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는 24개국 정상들의 부인들과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지위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 느낌 극락같은·천년의 수인/개성강한 연출자의 두 무대

    ◎느낌 극락같은­불상 코러스 연출로 원작 난해성 줄여/천년의 수인­재미 곁들여 비틀린 한국현대사 조명 연극 ‘느낌,극락같은’과 ‘천년의 수인’.공통점이라야 대표적 전업 극작가 신작이다,6월14일 끝난다는 등이 고작이어 뵌다.하지만 보고 나면 둘다 연출의 개성이 그 정도의 동굴을 파냈다는 걸 수긍하게 된다.정체성 모를 평면 무대가 난무하는데 연출자 나름의 자장과 힘을 느끼게 하는 공간을 만나는 건 기쁨이 아닐 수 없다.안겨 볼 만한 깊이와 그늘을 거느린 동굴인 건분명하되 막다른 골목,절벽은 없는지 발밑도 살펴보자면. 이강백씨 신작 ‘느낌,극락같은’은 우선 연출자 이윤택의 ‘탈각’ 몸짓이 진지하다.천성이 화려하고 공격적인 연출자는 불교가 형식이냐,내용이냐 설왕설래하는 고전적 대본을 받아놓고 한호흡 졸라맨 것 같다.불상 코러스는 생각보다 요란스럽지 않게 희곡의 굳은 반죽을 무르게 하는 일등공신이 됐다.뒤쪽까지 넓힌 무대를 시원스럽게 써 공백만 보면 채우고자 하던 기질을 억제한 티도 역력했다. 문제는 희곡.이강백작품의 관념성이야 고유 세계라 치더라도 신작이 그의 연대기에서 뚜렷한 발전으로 뵈지 않는다.소재만 불교로 옮아갔을 뿐.예를 들어보자.형식보다 부처 마음이 중요하다고 돌부처를 만들며 떠도는 불상 제작자 서연.죽은 스승 함묘진은 그를 뒤쫓는 딸의 환상에 나타나 “돌부처 있는 길에서 못 만났거든 없는 길에서 기다려 보라”고,비워야만 찾아지는 삶의 비의를 은유한다.이는 방황 장면의 초현실적 정황에서 울림있는 상징으로 설득력 있다.그렇다면 이 대목.‘형식’파 동연과 형태니 마음이니 숱한 논쟁을 벌이다 집나간 서연이 오랜만에 돌아와 “사람사는 곳 돌아다녀 보니까 모든 것을 형태가 결정하더라”고 또 되뇐다.이 정도 되면 형태며 마음은 더이상 상징이 아니다.구호다.이런 날말들을 쏟아부으며 연출가에게 살을 붙이라는 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게다가 연기.역사적 맥락이나 일상이라는 안전장치가 없는 은유적,우화적 작품에서 연기자는 어쩌면 유일한 도구다.그는 서사 전달을 넘어 울림의 공간을 보여줘야 한다.사투리며 혀짧은 소리는 부수적이라고 접어두자.본질로만 따져도 젊은 연기자들은 한참 수련을 요한다.예술의전당 토월극장.580­1880. ‘천년의 수인’ 이전에 근엄한 표정의 한국현대사를 누가 감히 ‘개그’로 건드려 볼 생각을 했을까.연출가 오태석은 안두희,비전향 좌익수,80년 광주 진압병 등을 통해 한국현대사 고름의 진원지를 꿰뚫을 기도를 한다. 그런 류의 기도는 흔했다.그런데 방법이 전복적이다.총 한발에 평생을 저당잡혀버린 안두희 가족의 불운이,명령복종한 죄로 살인자가 돼버린 저격병의 광기가 드러나려 할 때마다 람보같은 상사가 이끄는 감시군이,노란 비옷차림의 간호사가 떼로 나타나 쇼를 벌이며 미꾸라지처럼 감정이입의 상황에서 관객을 빼간다.‘수인’들의 푸념과 초현실같은 코미디가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연극은 일단 재미있다.그 숨가쁜 호흡이 때론 빠른 컷으로 돌아가는 컬트영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연극에서 한국현대사 처지는 불운하다.현대사를 이리저리 비틀어 관객에게 낯설게 보이게 하자니 무얼 다시 봐야 하는가.안두희며 저격병이며 수인들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이고 책임질 권력자가 따로 있다?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저처럼 역사에 잘못 발목잡히면 피보기 쉽다.그저 조용히 살아야지”하는 역사 허무주의와 상대주의에나 빠지게 만들 위험이 없는지.이 ‘조울증’ 연극은 재미로는 성공했지만 ‘현대사 다시보기’에 새롭게보탠 뭔가는 없어 뵌다.동숭아트센터.3673­4466.
  • 마을금고聯 ‘좀도리운동’ 편다/결식아동·복지시설 등 지원

    ◎1,200만 회원대상 연말까지 현금·쌀 모금 새마을금고 연합회(회장 柳瑢相)는 25일 무료급식단체,각급 학교의 결식아동,소년소녀가장 등 사회의 그늘진 이웃을 돕기 위해 ‘좀도리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기로 했다. ‘좀도리운동’은 식량이 부족하던 지난 60년대 새마을금고 회원들을 중심으로 매 끼니마다 한 숟가락씩의 쌀을 절약,여분의 쌀독에다 저축하던 운동.‘좀도리’란 호남지방에서 쓰이는 방언으로 ‘조금씩 곡식을 모운다(節米)’는 뜻이다. 연합회 측은 우선 1,200만 회원을 대상으로 다음 달 1일부터 연말까지 현금과 쌀 등을 접수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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