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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3)의열단 자취 남은 南京·廣州

    광복군 제3지대가 있던 안휘성 부양(阜陽)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강소성 성도 남경에 내렸다.중경·무한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찜통’이라 부른다더니 아침부터 사우나실처럼 후꾼후꾼했다.양자강이 가까워 고온다습하기 때문이었다.남경은 수운의 이점이 있어 예로부터 강남의 중심 구실을 했고 삼국시대에 손권이 오나라를 세운이래 10개의 왕조가 왕도로 삼은 곳이다.근대에 와서도 태평천국의봉기군이 청나라 정규군과 서구열강에 대항해 싸울 때 거점으로 삼았으며 신해혁명 이후 손문도 중화민국의 임시수도로 삼았다.중일전쟁때도 임시수도였으며 일본군에 의해 양민 30만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 시절,우리 선열들의 항일운동도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취재팀이 먼저 찾은 곳은 남경대학.그곳에 항일전쟁사의 걸출한 인물 여운형(呂運亨)과 김원봉(金元鳳)이 다닌 금릉(金陵)대학 캠퍼스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조국에서 3·1운동이 실패하자 무력항쟁 밖에 없다고 생각한 김원봉은 금릉대학을 중퇴하고 서간도로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갔다.그러나 그곳의 교육은 중국 명문대학을 다닌 그를충족시키지 못했다.그는 길림으로 가서 저 유명한 암살 폭파 비밀결사인 의열단을 만들고 수많은 테러공작을 감행해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이때 그의 나이는 약관 21세였다. 30대 장년이 되자 김원봉은 의열단의 테러공작을 지양하고 군대조직을 계획했다.뒷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였다.그는 스스로 광동성 광주(廣州)로 가서 황포군관학교를 나와 조선혁명간부학교를 만들었다.이 학교출신으로 유명한 이는 뒷날 태항산에서 전사한 윤세주와 진광화,그리고 민족시인 이육사이다.김원봉의그런 활동은 거의 남경에서 이루어졌다.황포군관학교 동기생으로 중국의 첩보기관 삼민주의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의 대표였던 등걸(騰傑)이 그를 도왔다. 남경대학은 우리 대학들과 달리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이 넓고 녹지가 많아 여유로워 보였다.플라타너스·팽나무가 지천이었다.시 인민정부가 발행한 백서를 보면 가로수가 40만 그루라던가.금릉대학 캠퍼스는 예스러운 품격을 지닌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푹신한 네모꼴의 잔디밭을 두고 3동의 건물이 둘러앉아 있었다.그 앞쪽에 뚝 떨어져서 대례당(大禮堂)이란 간판이 붙은 회당 건물이 있었다.민족혁명당을 창당한 곳이 이 대학의 강당이라 했으니 이것이 틀림없을 듯싶은데 전면이 일부 개축되어 있다. 남경대학을 나온 취재팀은 얼음이 섞인 생수병을 들이키며 의열단원들이 묵었던 명양가(鳴羊街)와 화로강(花露崗)을 찾아나섰다.한상도교수의 논문 ‘재중한인군관학교연구’를 보면 조선혁명간부학교는 1932년 10월20일 남경교외 탕산(湯山)의 선사묘(善祠廟)라는 사원에서 개교했고,교관들은 남경성내 명양가 호가화원(胡家花園)에서 묵었다.골목을 더듬어 찾아가보니 명양가와 화로강은 이어진 골목이었다.김원봉에게 호의적이었던 부호 호대해(胡大海)는 자신의 장원 호가화원에 김원봉을 식객으로 묵게 했고,김원봉은 자신의 의열단 동지들을위해 근처 화로강에 머물게 하면서 혁명간부학교 교관들의 숙소도 마련했을 것이다. 어림짐작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컸을 듯한 호가화원은 퇴락된 채 빈민들이 살고 있었다.그 옛날 주인이 손님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음직한연못가의 팽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문득 ‘지절시인’ 이육사가 떠올랐다.그는 조선혁명간부학교 1기생 명단 26명 가운데 육사(陸史)라는 가명으로 실려있다.그가 이 연못에서 올곧은 의지로 시를 썼을 것 같은 생각에 이곳저곳 두리번거렸다.연못가에서는 얼굴에 여유로움이 가득한 노인이 낚시질을 하고,해오라기 한 마리가 긴 부리로우렁이를 찍어올리고 있었다. 남경에는 백범 김구가 만든 한국특무대독립군 본부도 와 있었다.‘김구구락부’로 더 알려진 테러공격 비밀결사였는데 목장영 고안리(木匠營 高安里)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호가화원의 연못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이 목장영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일러주기에 찾아갔으나 새 아파트단지 입구에 붙은 ‘목장영’이라는 간판을 본 것만으로만족해야 했다. 취재팀은 저녁 비행기로 광동성 광주로 날아갔다.우리 항일투쟁사에 큰 몫을 한 도시이기 때문이었다.광주 백운(白雲)공항에서택시를타고 달리는 동안 필자는 중국의 도시라기보다는 유럽에 온 느낌이었다.네온사인이 현란하고 거리를 질주하는 깨끗한 중형차들이 질서있게 차선을 지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세련되어 보였다.건물의 외형까지도 첨단화된 미를 뽐내고 있었다.하기야 북경,상해에 이어 중국 3대도시이며 1인 평균 생산액이 전국 1위인데다 백년전부터 중국내륙으로 들어가는 교통요지였고 홍콩과 가깝다보니 그럴 것이었다. 광주는 중국의 역사에서 혁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손문이 혁명을일으켜 ‘호법(護法)정부’를 세웠고 공산주의자들은 광주봉기를 일으켰다.광주봉기를 배경으로 쓰여진 앙드레 말로의 소설이 ‘정복자’이다.우리의 항일투사들도 이곳에 와서 크고 작은 자취를 남겼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황포군관학교(본래의 이름은 육군군관학교)이다.수많은 우리 항일투사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황포군관학교는 1924년 1월 손문이 국민당과 공산당을 합작한 결과탄생했다.국민당측의 장개석이 교장을,공산당 측의 주은래가 정치주임을 맡았는데 그로 인해 학생들도 양분되었고 그곳에 재학중이던 한인청년들도 뒷날 임시정부와 광복군,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으로갈라서는 결과가 되었다.그들의 입학은 1924년의 3기생들로 부터 시작되는데 유명한 이는 박효삼(朴孝三)·왕자량(王子良)·김원봉 등이다.그밖에 남경과 무한에 있던 분교를 졸업한 이도 많다. 황포군관학교에는 우리 교관요원들도 있었다.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가 러시아 유학을 하고 돌아온 양림(楊林.본명 金勳),1922년 의열단원으로 상해 황포탄 의거를 일으켰던 오성륜(吳聲輪),뒷날 만주에서 동북항일연군 간부로 활동한 최용건(崔庸健),의열단원이었다가 조선의용대 간부로 활동한 박효삼,이빈(李彬),양달부(梁達夫),김원봉,채원개(蔡元凱)등이다.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金山. 본명은 張志樂)도 교관이었다고 하나 연구가들의 실증은 없다. 취재팀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군관학교를 찾아갔다.광주시를 관통해 흐르는 주강(珠江)의 제방을 따라 보리수가 싱그럽게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대절한 자동차를 페리에 싣고 20분쯤 걸려 도시의 동남쪽에 있는 장주도(長州島)로 건너갔다.섬 거의 전체가 해군부대 주둔지였는데 황포군관학교는 옛날의 모습 그대로 보존,복원되어 있었다.우리나라의 중고생들이 극기훈련,야영훈련을 가듯 남녀 학생들이 입영훈련을 받고 있다.김원봉이 생도시절 중국인 생도 등걸과 우정을 쌓으며 토론을 한 곳은 어디일까.필자는 그런 상상을 하며 강의실,생도 숙사,강당,연병장 등을 돌아보았다.발길을 돌려 중산대학을 찾아갔다. 아나키스트였던 김성숙(金星淑)과 김산이 졸업한 중산대학은 필자가 돌아본 십여개의 전통있는 중국의 대학들 가운데 건축미가 가장 돋보였다.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옛날 것들인데 깨끗하게 보존되어고상하면서도 웅장한 품격을 뽐내고 있었다. □광주(중국 광동성)■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올겨울 화려한 모피패션 바람분다

    ‘모피는 야만스럽다’거나 ‘과분한 사치품’으로 생각해 아예 관심권 밖으로 미뤄 두었던 여성들도 올겨울엔 마음이 흔들릴 것 같다. 이제까지 코트 깃이나 소매 끝단에 부분적으로 털장식을 하는 정도였던 모피가 올 겨울에는 코트는 물론 원피스,스커트,바지,숄,망토,자켓 등 온갖 종류의 아이템에 장식용으로 대거 동원된다. 또한 블랙 밍크코트 스타일에서 탈피해 토끼,머스카렛(물쥐),피치(족제비과),누트리엘(사양쥐) 등 각종 모피가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로물들여져 거리를 온통 수놓을 것으로 보인다. 높은 가격대와 동물 애호가들의 거센 반발에 지금까지 모피는 웬지멀게만 느껴져왔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고전적인 세련미와 귀족미를 추구하는 ‘럭셔리패션’ 바람이 분 데다,지난 10여년간 많은 디자이너들이 모피에 새로운 패션성을 부여하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듯하다. 베스띠벨리 디자인실 정소영 실장은 “가장 원시적인 의상소재였던모피가 21세기 첫 겨울을 맞이해 가장 미래지향적이고 실험적인 소재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가을·겨울컬렉션에서 모피옷을 전체 아이템중 25%나 사용한 디자이너 박지원은 “이제 관건은 ‘어떤 모피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했느냐’이다”라고 설명했다. 올해의 특징은 머플러,모자 등 소품류부터 옷 전체를 모피로 가공한코트류까지 종류가 셀수 없을만큼 다양해진 것.예를 들어 상의의 여밈선이나 코트에 달려있는 모자의 테두리에 살짝 두르거나 롱코트의칼라와 소매 부분에 과장되게 붙인 것도 있다.겉감은 나일론 소재이지만 안감은 토끼털 등으로 모피 처리된 것도 눈에 띈다. 디자이너들의 이러한 새롭고,재미있고 보다 가벼운 접근법은 특히 젊은층에 자연스럽게 어필했다.모피 장식 액세서리와 의류들이 갑작스레 빠른 속도로 확산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소재역시 고가의 밍크(300∼600만원대)에서 토끼털(50∼60만원대),화려한 여우털(100만원대)외에도 외관상은 토끼털과 유사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쥐과의 머스카렛(100∼200만원대)도 각광받고 있다. 가공하지 않은 제 색깔보다는 보라,파랑,빨강,분홍 등의 컬러에 이중,삼중 염색을 통해 고급스럽고 깊이있는 색감을 주는 제품들이 많다. 여성복 업체 ‘씨’의 영업팀 대리 강승주씨는 “올 겨울모피는 고급스러움이라는 가을,겨울 트렌드에 힘입어 대인기가 예상된다.모피 의류 출고가 예년보다 보름이상 빨라졌고 물량도 지난해에 비해 20% 늘렸다”며 매출이 25%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현재 출고된 ‘씨’의 모피의류 중 털이 길고 화려한 카멜색(진한 베이지)여우코트가가장 많이 팔렸다. 모피는 값이 비싼만큼 처음 구입할 때부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털이 촘촘하고 윤기있는지 ▲바느질이 꼼꼼한지 ▲입어서 가벼운지를 우선 살피도록 한다.보관할 때는 넓은 옷걸이에 걸어 통풍이 잘되도록 신경쓰고,눈비에 젖었을 때는 잘 털어 그늘진 곳에 걸어 말리고,직사광선이나 난로 등 발열기구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허윤주기자 rara@
  • [먹거리 축제를 찾아서](8)나주 영산포 홍어

    홍어는 맛의 고장 남도에서도 진미(眞味)중의 진미로 꼽힌다.남도사람들은 눈물이 ‘핑’돌만큼 얼큰하고 톡 쏘는 홍어의 맛과 향을너나없이 즐긴다.때문에 결혼식 피로연이나 회갑연 등 잔치상에 홍어를 빠뜨렸다간 ‘젓가락 갈데 없더라’는 핀잔을 들을 각오를 해야한다. 다른 고장의 어떤 먹거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별난 맛을 자랑하는 ‘홍어’ 축제가 오는 30일부터 11월1일까지 사흘간 전남 나주시영산포 선창에서 펼쳐진다. 나주시 19개 읍·면·동사무소와 선창번영회 등은 영산포 나루터에20여개의 천막을 치고 회,구이,국 등 각종 홍어 요리를 선보인다. 선창번영회 지용일(池龍一·64)회장은 “영산포 홍어의 맛을 널리알리고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축제를 마련했다”면서 “홍어 200여마리(2,000㎏)를 준비했는데 이는 1만5,0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가격은 7∼8명이 안주삼아 먹기에 충분한 1㎏에 1만8,000원선.포장 판매도 한다. 홍어는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히는 흑산 홍어를,요리는 영산포에서숙성시킨 것을 최고로 친다.홍어와 흑산도,영산포의 관계는 고려말왜구 침략에 대비해 흑산도에서 가장 큰 섬인 영산도 주민들을 현재의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킨데서 비롯됐다. 홍어 도·소매상을 하는김창원(金昌原·48)씨는 “당시 흑산도에 남아있던 어부들이 영산포로 이주한 옛 이웃들에게 홍어를 팔러 왔으며 일주일 정도 걸렸을 운반 도중 홍어가 삭아 자연스레 남도의 진미 홍어회가 탄생했을 것”이라며 나름대로 유래를 추정했다. 홍어의 맛은 ‘1코 2미’다.코 부분에 얼큰한 맛을 내는 물렁뼈가있어 가장 맛있고,육질이 쫄깃쫄깃한 꼬리 부분이 다음이다.회,구이,국,포 등 여러 요리 중 항아리에 넣어 영상 5∼10도 그늘에서 열흘정도 삭힌 홍어 회가 역시 으뜸이다.봄철 된장국에 홍어내장과 보리싹을 넣고 끓인 ‘홍어애 보릿국’도 별미다. 먹는 방법중 삭힌 홍어회와 묵은 김장김치,삶은 삼겹살을 한꺼번에싸서 먹으면 ‘삼합’,막걸리(탁주)를 더하면 ‘삼탁’이다.‘홍탁’은 결대로 썬 홍어회를 소금이나 초장에 찍어 막걸리와 함께 먹는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홍어중 40%는 원양어업으로 잡은 것이고 60%는 중국산이나 칠레산 수입품이다.순수 국산은 거의 없다.흑산도에 홍어잡이 배 1∼2척이 남아 있지만 겨우 명맥을 잇는 정도다.흑산 홍어는㎏당 6만∼7만원,통상 1마리에 70만원을 호가하지만 구하기가 하늘의별따기다.문의 나주시 문화공보실 (061)330-8221,8542나주 남기창기자 kcnam@
  • 초점인물/ 한나라 金文洙의원

    국정감사 때마다 운동화에 진흙을 묻혀 가며 묵묵히 그늘진 현장을확인,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의원들도 있다.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49·경기 부천소사)의원이 대표적이다. 재야 출신으로 70년대 도루코노조위원장을 지낸 이력에 걸맞게 처음 금배지를 단 지난 15대부터 줄곧 환경노동위를 맡았다.상수도 오염,생활 폐수 등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환경기능사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감사에서는 수도권 주민들의 먹는 물 오염 문제와 노사문제 관련 공안대책협의회의 실체 등을 현장 중심으로 파고들것”이라고 밝혔다.그동안 상수원 오염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경기도 팔당호 인근 호텔 신축현장을 3차례나 방문,사진 채증과 주민 인터뷰 등 실사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오는 26일 경기도 감사에서 상수원 근처 호텔 신축의 부당성을 집중적으로 따질 생각이다. 지난 20일 노동부 감사때는 롯데호텔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 파업 당시 현장을 발로 뛰어 직접 확인한 공안대책협의회의 실체를 폭로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사설] 국감 구태 못 바꾸나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16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진행중에 있다.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그늘에 가려져 있던 국정감사 실상이 언론에 공개돼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16대 국회에서는 국정감사가 한단계 발전해서 정책국감이 될 것으로 기대했음에도,여전히 정치공방과 무성의한 질의 답변,그리고 한건주의식 폭로로 흐르는 등 구태가여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여야 의원들이 국감장을 정치공방을 위한 무대로 착각하고 있는 점이다.야당의원들은 막무가내로 정부에 대해 흠집을 내는 데 급급하고 있는가 하면,여당의원들 또한 무조건 정부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국민들로서는 270여명의 의원들이여야로 나뉘어져 정치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더구나 ‘한빛은행 대출외압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는 마당이다.여야가 첨예한 정치공방을 벌인 끝에 진상규명은커녕 국정조사나 국정감사 자체가 파행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같은 당 의원들끼리도 질의사항을 내부적으로 조율하지 않아 중복질의가 이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보도에 따르면,시민단체가 국감현장을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은 주어진 질의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중복질의를 한다는 것이다.같은 사안은 공동으로 질의할수도 있고,내부 협의를 거쳐 국감대상 기관에 따라 ‘대표 질의자’를 정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국감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또한 의원들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함에 있어 질의의 ‘양(量)’보다는 질의의 ‘질(質)’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국회법 개정에 따라 16대 국회는 상임위 상시 가동과 국감의 질의응답 의 ‘일문·일답’방식이 원칙으로 돼있다.다만 위원회의 의결에따라 ‘일괄질의’‘일괄답변’이 가능한데,거의 모든 상임위에서 일괄질의 일괄답변을 선호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19일 건교위의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대한 국감의 경우,의원 25명이 13시간에 걸쳐 질문을 하고 공사 사장은 40분 답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앞으로는상임위를 상시 가동함으로써 그때 그때 문제점을 파악하고 국정감사에 앞서 미리 질의와 응답을 주고 받음으로써,국감에서는 누락된 사항과 답변이 미진한 부문에 한해 일문,일답을 통해 국감의 내실을 기할 필요가 있다.그렇게 해서 국감은 현장 점검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질의를 할 때는 열을 올리다가 다른 의원이 질의할 때는 자리를 비우거나 자리에 남아 있어도 TV카메라의 향방에 따라 몸가짐을 달리하는 국감현장의 구태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 KBS ‘천둥소리’ 매창役 오정해 인터뷰

    경북 문경시 주흘산 자락에 위치한 KBS ‘천둥소리’ 촬영 현장에오정해(29)가 나타나자 순식간에 등산객 20여명이 몰려들며 사인 공세를 펼친다.“실물이 훨씬 예쁘네요”라고 팬들이 칭찬을 늘어놓자오정해도 듣기 싫지는 않은 듯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짓는다. 영화 ‘서편제’로 널리 알려진 국악인 겸 배우 오정해가 처음 TV드라마에 출연한다.허균의 일대기를 그린 ‘천둥소리’에서 오정해는허균과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기생 ‘매창’ 역을 맡았다. 93년 ‘서편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태백산맥’,‘축제’등 모두 3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악극 ‘아버님전상서’ 등에도 등장했다.현재 ‘퓨전 콘서트 가락’과 ‘정겨운 우리 가락’ 등 4개의 국악 관련 프로의 진행을 맡고 있고 전주 우석대 겸임교수로 ‘판소리와 재미’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눈코뜰새 없는 생활인 셈이다. “TV드라마 출연은 왠지 겁이 나서 그동안 출연 제의를 마다했어요. 이번 역은 그동안 제가 해온 국악과 관련이 있고 한복에도 익숙하기때문에 용기를 냈습니다”라고 그녀는 밝혔다. 바쁜 나날이지만 음악 공부는 지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단다.“하루에 1시간이라도 연습을 하죠.시간이 나는 날에는 더 많이 하구요”라고 그녀는 말했다.하지만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 이 길로 들어선 것에 절대 후회는 없어요”라면서도 “그렇지만 네살짜리 아들 영현이와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죠”라고 말할 때는 얼굴에 잠시그늘이 스치기도 했다. 국악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다보니 오히려 더욱 국악을 깊게 이해하고 음악에 대한 견문이 넓어지는 장점도 있다고 오정해는 설명한다. “국악 관련 방송을 하다보니 국악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어떤 방향으로 가는 지 빨리 알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됩니다.뮤지컬을 통해 서양식 창법을 배운 것도 좋구요”라고 그녀는 밝혔다. 소리꾼,연기자,MC,교수 등 다양한 역할 가운데 오정해가 가장 갖고싶은 이름은 어떤 것일까.그녀는 “소리꾼으로 남고 싶지만 연기자로서의 모습에도 만족하기 때문에 어느 쪽도 놓칠 수 없어요”라며 욕심을 보인다.“술이나 따르는여자가 아니라 시인이자 음악인으로 풍류를 즐겼던 진짜 기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천둥소리’에 임하는 오정해의 소망이기도 하다. 장택동기자 taecks@
  • [외언내언] 조용수와 ‘역사의 승리’

    1961년 서른한살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趙鏞壽)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그때 이미남북협상·이산가족 재회 등을 주장하며 평화통일 실현에 앞장선 언론인의 비극적인 종말은 주의를 끌 만했지만 그 이름 석자는 오랜 세월 독재정권의 그늘 속에 묻혀왔다. 민주화를 이룬 요즘도 통일운동·혁신운동·언론탄압의 역사,또는독재권력의 ‘사법 살인’을 폭로하는 사례에서 언급될 뿐 보통사람이 쉽게 접하는 영역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그를 본격적으로다룬 책은 언론노조연맹이 총서의 하나로 발간한 ‘조용수 평전’(원희복 지음,1995년 간)정도가 눈에 띈다. 그 조용수가 15일 밤에 방영한 MBC-TV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되살아났다.‘민족일보와 조용수’라는 부제의 이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은 ‘박정희는 왜 조용수를 죽여야 했는가’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추었다.좌익 전력이 있는 박정희(朴正熙)는 미국이 ‘5·16쿠데타’의 성격을 의심하자 조용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분석이다.제작진은 미국에서 발굴한 관련문서와 쿠데타 주역의 회고록등을 통해 그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때마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의지가 세계적으로 공인됐다.아울러 국내는 연일 축제분위기에 젖어 있다.김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상이 결정된 뒤 노르웨이 국영 TV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정의는 당대에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고 밝혔다. 군부독재 최대의 ‘적’인 김대통령이 여러차례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이를 극복해 오늘에 이른 과정을 안다면 누구나 그 말에 공감할 것이다.그리고 조용수에게도 그 진리가 적용됨을 깨닫게 될 것이다.TV프로그램에 나온 당시 민족일보 기자의 말처럼 조용수는 죽었지만 그는 옳았고 결국 이겼다. 우리는 질곡의 현대사를 겪었기에 아직 승리하지 못한 ‘정의’가적잖게 남아 있다.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민간인 학살,이념으로포장된 정치적 살인, 군부독재 시절의 의문사들-이 모두가 하루빨리 진상을 밝혀야할 일들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아셈 정상들](4)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

    마하티르 모하마드(74·Mahathir Mohamad) 말레이시아 총리는 ‘아시아의 대변자’로 불린다. 그는 아시아경제가 한창 잘나가던 96년 “유럽의 가치는 유럽의 가치일 뿐 아시아의 가치가 보편적 가치”라고 선언했었다.당시 유행한‘아시아적 가치’의 진원이 바로 그다.이후 1년 태국의 바트화 평가절하로 시작된 아시아 경제위기가 시작되자 위기 원인을 ‘서양 투기자본의 농간’으로 규정하고 서양과의 대결에 나섰다.아시아 국가중 유일하게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거부,고정환율제를 통한 외환거래 통제 등 강력한 승부수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또 아· 경제협력체(APEC)와 관련,미국에 대해 아시아경제에 무임승차하려 한다며 강한 비난을 퍼부었다.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은 그의‘입’을 주시했고 언제나 그 반향은 컸다. 말레이시아,나아가 아시아인의 자존심을 강조하는 그의 ‘민족주의’ 성향과 경제 안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 뒤에는 그러나 19년간 장기집권을 가능케한 권위주의적·비민주적 통치라는 그늘이 있었다. 그는 81년부터 지금까지 5번이나 총리에 선출됐다.집권 19년째.아시아 최장수 정부수반이다.지난 9월 조기총선에서 승리,2004년 11월까지의 임기를 채우면 23년 집권 기록을 세우게 된다.98년 자신의 정적(政敵)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를 해임하고 성추행 혐의로 구속하면서 국내 야당세력과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아왔다. 57년 말라야 국립의대를 졸업한 의학박사.8년간 산부인과 개업의로활동하다 64년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총리직을 맡기 전에는 73년 국왕에 의해 임명되는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이후 부총리겸 문교장관,부총리겸 상공장관,통일 말라야 국민조직당 수석 부총재를 거쳤다.최근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부총리를 자신의 권력 승계자로 공표, 퇴임후를 준비하고 있다.부인과의 사이에 3남2녀를 둔 마하티르 총리는 80년부터 94년까지 공식 또는 비공식을 합쳐 모두 6차례 방한했다. ■ 프로필. ▲1925년 12월20일생 ▲57년 말라야 국립의대 졸업 ▲64년 하원의원▲73년 상원의원 ▲76∼77년 부총리 ▲78년 통일 말라야 국민조직당수석부총재 ▲81∼99년 총리 ▲99년 12월 총리 중임김수정기자 crystal@
  • 단원·혜원 작품 한자리에

    단원 김홍도(1745∼1806이후)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또 친근하게 느끼는 옛 화가다.화가일 뿐만 아니라 글씨,시조,한시,음악 등에도 두루 능했던 교양인이었다.단원하면 으레 함께 이야기되는 화가가 그와 풍속화의 쌍벽을 이룬 혜원 신윤복(1758?∼1813이후)이다.남녀의 애정을 주제로 한 정태(情態)묘사에 뛰어났던 혜원은 이름은 잘알려져 있지만 그 활동상을 엿볼 수 있는 문헌기록은 매우 드물다.단원과 혜원.이들은 진경시대(1675∼1800) 말기에 태어나 풍속화를 절정에 올려놓으며 진경문화를 찬란히 마무리짓게 한 대표적인 화원화가다.그러나 두 사람은 상반되는 특성을 지닌다.단원은 세습화원 집안출신이 아니면서 화원화가가 돼 정조 재위기간 내내 국왕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국왕 직속 특급 화원으로 일했다.반면 혜원은 세습화원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인 일재 신한평은 초상화와 풍속화에 뛰어났다.74세까지 도화서에 출사했던 아버지의 그늘에 가린 혜원은 화원화가이면서도 부친과의 상피(相避)로 인해 도화서에 나가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그런 만큼 이들은 대조적인 화풍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단원이 진경산수화를 비롯한 일반 산수화와 도석(道釋,신선과 불보살그림),화조,영모,누각,사군자 등 제반 화과에 두루 통달한 데 비해 혜원은 풍속인물에서만 기량을 발휘했다. 간송미술관(02-762-0442)이 올 가을 ‘단원·혜원 특별전’을 마련했다.1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단원과 혜원을 한 눈에 비교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단원의 작품은 ‘옥순봉’‘수미탑’‘황정환아’(黃庭換鵝:황정경을 거위와 바꾸다),‘무이귀도’(武夷歸棹:무이산으로 노저어 돌아가다),‘마상청앵’(馬上聽鶯;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 듣다),‘월하취생’(月下吹笙:달빛 아래 생황을 불다)등 70여점.혜원 작품은 ‘계명곡암’(溪鳴谷暗:시냇물 소리쳐 흐르고 골짝이 어둡다),‘연소답청’(年少踏靑:젊은이들의 봄나들이),‘납량만흥’(納凉漫興:바람들이의 질펀한 흥겨움)등 30여점 나온다. 김종면기자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1)西安-延安

    *광복군-조선 의용군 마지막 활동지 西安-延安. 서안은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1천여년 동안 중국 역사에서 서주(西周) 서한(西漢) 당(唐)등 12개 나라의 왕도로 영광을 누렸던 도시다.따라서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적이 많다.우리의 항일유적지도 상당히 많다.조선청년전지공작대 주둔지,한청반 훈련장,광복군 전선사령부,그리고 미국 OSS(전략첩보국)과 합작해 국내진공을 준비했던 광복군의 흔적도 있다. 취재팀이 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을 이용해 바로 서울에서 서안으로 날아간 것은 서안 교외에 있는 광복군 OSS훈련장을 먼저 찾아보기 위해서 였다.공항에서 차를 대절해 서안시 남쪽 25㎞ 지점에 위치한 광복군 제2지대 기지와 OSS 훈련장이 있던 두곡진(杜曲鎭)으로 향하는 길은 끝이 없어 보이는 짙푸른 옥수수밭이 이어진다.산이라곤 거의없는 황토고원지대인 이 지역의 주 생산물이다.안내인은 몇년전 한국에서 상영된 중국영화 ‘붉은 수수밭’도 이 지역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그동안 기자는 실크로드 답사를 위해 몇차례 서안을 지나간 적이 있다.그때마다 서안의 변화모습에 놀랐는데 이번에는 정말 몰라볼만큼달라져 있었다.새로 뚫린 서안시내 우회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창옆으로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있다.이따금 거대한 왕릉이 보였다.서안 외곽의 작은 시가지를 스쳐가고,참외·수박을 파는 저자거리를 지나고다시 평원이 나타난다.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리자 멀리 제법 높아 보이는 산이 나타났다.광복군 대원들이 OSS훈련을 받은 종남산(宗南山)이었다. 1945년 3월 15일 한국 광복군과 미군은 한미 군사합작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공동의 적인 일본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상호 협력하여공동작전을 전개한다는 것.광복군은 미군으로부터 필요한 전술을 훈련받고 적진과 한반도에 잠입해 연합군작전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한다는 것 등이었다.그리하여 서안 근교에 주둔한,‘청산리 전투’의 영웅 이범석이 이끄는 제2지대가,안휘성 부양(阜陽)에서는 조선혁명군 참모장 출신 김학규가 이끄는 제3지대가 낙하산 강하 폭파,암호 무전통신 등 특수전훈련을 받았다.그리고 8월 11일을 국내진공일로잡고 작전계획을 세웠다.그러나 8월 9일,원자폭탄 세례를 받은 일본은 연합국측에 무조건 항복을 통고함으로써 광복군의 국내 잠입작전은 무산되고 말았다. 취재진은 당시 제2지대 본부 겸 훈련소가 있던 곳을 찾았다.그곳은지금은 두곡 양참(糧站)이라 불리는 곳으로 서안시 양식국의 창고로변해 있었다.당시의 자취는 없고 창고건물에 둘러싸인 1,000여평의마당이 옛 모습을 암시할 뿐이었다.사무실로 들어가서 책임자인 진강정(陳康正) 참장(43세)을 만났다. “한국손님들이 더러 찾아옵니다.지난해에는 원로 몇 분을 모시고온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구보도 했지요” 문화혁명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노예묘’라는 상당히 큰 규모의도교사원이 있었는데 문화혁명때 완전히 없어지고 양참이 들어섰다고 한다.그는 측백나무 소나무 등 나무들이 우거져 거주지로 삼았던 것같다며 멀리 건너다보이는 종남산 아래에도 절이 있었다고 말한다.광복군 OSS 훈련대원들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종남산 아래 종남사라는불교 사찰에서 훈련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두곡 양참을 둘러본 취재팀은 그곳에서 2㎞ 떨어진 인근의 흥교사(興敎寺)를 찾아갔다.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떠났던 고승 현장법사(玄裝法師)의 사리를 모신곳인데 신라유학승 원측(圓側)탑이 현장법사의 탑 옆에 천년의 세월은 안은 채 서있다. 그곳에서 차를 돌려 시내로 들어가는데 진 참장이 두곡에 있던 옛날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들려준 가슴아픈 얘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예전에 한 한국인이 아이를 데리고 와 훈련받다가 그곳을 떠날 때 남겨두고 갔는데 아이는 그후에도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는 것이다.광복군 아버지가 남겨둔 그 어린 아이는 그 후 어찌 됐을까.지금 살았으면 아마 50살도 넘었을 텐데….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취재진은 서안 시내로 들어갔다.전지공작대와 광복군 전선사령부가 있었던 자리를 찾기 위해서 였다. 전지공작대는 1939년 11월 중경에서 나월한·김동수·김인 등 청년투사들이 조직한 아나키스트성격이 강한 단체였다.그들은 일본군 점령지 교란작전을 위해 전선에서 가까운 서안으로 이동,중국군 전시간부훈련단 안에 한국청년특별반(약칭 한청반)을 만들었다.수료생들은소위로 임관되고 뒷날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에서 큰 역할을 했다. 서안 성내 이부가(二府街)29호,전지공작대가 주둔했던 자리는 중급인민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같은 골목의 4호,옛 광복군 전선사령부가 있던 장소는 유명한 당대(唐代)의 유물인 종루(鐘樓)로 향하는 길을 넓히면서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전지공작대원들이 장교교육을 받은 ‘한청반’ 자리는 지금의 서북대학 안에 있었다.백양나무 그늘이 시원한 현장을 찾으니 연병장은 잔디가 깔려 있고 일부는 도서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당시의 사열대는 국기게양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서안시내의 유적을 찾아본 뒤 취재팀은 한밤중에 침대열차를 타고중국 공산당 혁명성지인 연안으로 떠났다.연안은 서안 정북 방향,깊숙한 분지에 있다.중국 공산당의 장정(長征)과 관련깊은 곳이다.1934년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홍군 30만명은 국민당의 공격을 피해 화남(華南)의 비옥한 근거지를 버리고 행군을 거듭,최후의 근거지인 연안에 도착했다.남은 병력은 3만.그러나 모택동은 이를 기반으로 국민당 군대에 저항하고 항일전을 전개하면서 재기하는데 성공한다. 1930년대 후반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은 발전적으로 해체,조선의용대를 만들었다.우리동포들이 많이 이주한 화북에 진출해서 투쟁한 대원들을 화북지대라 불렀다.그들은 김원봉이 이끄는 대본부가 광복군으로 통합되자 화북독립동맹 산하의 조선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 공산군인 팔로군의 지원을 받으며 인근의 태항산에서 싸우다가 연안으로 들어가서 해방을 맞았다.독립동맹의 대표는 유명한 국학자인김두봉,조선의용군 사령관은 김무정이었다. 침대열차는 에어컨이 잘 들어왔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다.이따금 터널을 달리는 듯 소리가 커져 잠을 깨곤 했는데 둔중한 느낌을 주며용을 쓰듯 달리는 것으로 보아 끊임없이 경사진 고원을 오르는 듯 했다.차창으로 새벽빛이 스며들어 창문을 여니 보이는 것이라곤 황토뿐이었다.벼랑에 뚫린 구멍이 있어 눈여겨 보니 그게 유명한 토굴집인 요동(寮洞)이었다.연안역 앞에서 만두로 아침을 때운우리는 조선의용대와 독립동맹이 있던 라가평(羅家坪)마을을 찾아갔다. 라가평 마을은 연하(延河) 위에 놓인 다리 건너에 있었다.마을어구비탈에 기념표시판이 있어 다가가 보니 조선혁명군정학교 자리 표지석이었다.먼지가 일어나는 비탈길을 올라 노인을 찾아 물었다.83세의 고영유(高零有)노인은 벼랑에서 가장 높은 곳을 가리켰다.모두 8개의 요동이 보였다.그곳에는 8개의 요동을 포함 모두 20여개의 요동이 있었는데 군정학교와 독립동맹,조선의용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요동은 아무 보존조치를 취하지 않아 무너질듯 위태해 보였다. 다시 연하를 건너 동북쪽으로 달려가면 교얼구로 갔다.길가 버스정거장 장려한 천주교회당이 보였다.그것이 유명한 노신기념관으로 옛날에 노신예술학원으로 사용한 건물이었다.최근 다시 예술학원이 개교해 교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가 김산(金山)을 처음 만난 도서관은 여학생들의 기숙사가 돼 있었다. 취재팀은 밤 기차를 탈 때까지 시간이 넉넉해 연안 서북쪽에 위치한 중국공산당의 여러 근거지중 모택동이 교시한 ‘문예강화(文藝講話)’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양가령(楊家嶺)을 돌아봤다.이밖에 연안시내 중심가에는 항일군정대학의 옛터가 보존돼있는데 이곳은 김산이 일본의 첩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숙청될 때까지 ‘일본경제사’를 강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안(중국) 박찬기자 parkchan@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 (18)나그네살이

    *밤새 플라멩코춤 이방인도 한식구 올리브축제. ‘페데리고 가르샤 로르카’는 안달루시아의 시인이다.파블로 네루다와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집시 노래집’이 유명한 시집이고 ‘피의 결혼’이나 ‘베르나르도 알바의 집’ 같은 희곡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 공연 되었다.그는 ‘집시마차’라는 문화패를 이끌고 벽촌을 찾아 다니며 안달루시아 빈농들을 위해서 공연했다.내전 중 그라나다 부근의 마을에서 프랑코의 파시스트들에게 피살된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작은 언덕이나 골짜기마다 우리네 산골 마을 같은 작은 동네가 나타나곤 했다.거의가 산등성이에 올리브 농사를 짓고 있어서 작은 터전마다 올리브 나무가 빽빽했다.올리브는 절여서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름을 짠다.지중해 연안 나라들은 모두 올리브 기름으로 조리하고 샐러드를 무친다. 올리브 기름은 아직 덜 익은 것을 따서 짜야 최상급인데 거의 푸르스름한 녹색을 띠며 익히는 용으로 쓰지않고 싱싱한 채로 음식에 쳐먹는다.멀리서 보면 우리네 지리산 산자락에 붙은 작은 산골 마을처럼보인다.여기 아이들도 또한 눈이 새카맣고 머리가 곱슬곱슬할뿐 표정이나 장난끼 어린 웃음이 우리네 촌 아이들과 똑 같아 보인다. 이런 마을들을 지나다가 때마침 올리브 축제가 열린 마을에 당도하게되었다. 마을의 중심부에 제법 너른 광장이 있었고 앞쪽에 일 미터쯤되는 높이의 무대를 설치해 놓았고 광장 둘레에는 둥글게 나무 의자와 길다란 나무 탁자를 놓았다.가운데는 역시 둥글게 비워둔 셈이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올리브 축제는 온 마을이 협동해서 올리브를 딴뒤에 밤새도록 마시고 춤추며 노는 행사다.이런 잔치는 또 우리네가그렇듯이 타관의 나그네나 이방인도 한 식구로 받아들인다.탁자 위에는 포도주와 통밀 빵이 있고 이 동네 특산물인 햄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서로 자기네 테이블로 오라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웃음소리를헤치고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을 향하고 앉았다.앉자마자 사방에서 잔을 권하고 포도주를 따라 준다.무대 위에서는 플라멩코 가수와무희들이 손뼉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다.근방 마을에서 온 집시들이다.그러나 그들의 노래 솜씨에 못잖은 마을 사람 누군가가 올라가서 차례로 뒷소리를 이어 받는다.빠른 박자의 박수치기는 옆사람이 하는 시늉을 따라서 해보면 쉽게도 비슷한 신명나는 소리가 난다. 남자들은 프릴이 달린 소매 넓은 흰 셔츠에 허리가 꼭 끼는 검은 나팔바지를 입고 발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도록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여자들은 원색의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치맛자락을 쳐들고 흔들면서춤을 춘다. 탬버린이 흔들린다.주위에 둘러앉은 마을 사람들이 취기가 돌고 신이 오르면 가운데의 빈터로 나가서 플라멩코 춤을 춘다. 이런 밤에 포도주를 마시고 구수한 통밀 빵을 손으로 아무렇게나 뜯어 먹고 간간이 전채로 잘 먹는 ‘멜론 콘 자몬’을 먹는다.스페인의훈제 햄은 유명해서 대도시의 의류를 파는 상가들 틈에도 진열창에줄지어 매달린 돼지의 뒷다리를 볼 수 있다.바싹 훈제하여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기름기가 완전히 빠진다고 한다. 이것을 날 것인 채로 얇게 썰어 놓으면 젖은 종잇장처럼 보인다.서양참외인 스페인 멜론은 전 유럽에서 유명할정도로 달고 향기롭다. 기후가 건조하고 햇빛이 강열하기 때문이다.가뭄에 과일이 잘 익는다는말처럼. 붉은 주황색 속을 가진 것도 있고 우리네 청참외처럼 푸른속도 있고 흰 속도 있다.생햄에는 푸른 멜론이 보기에도 좋고 입맛도난다. 스페인의 한달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으랴.시에라네바다의 정상을차를 몰고 넘던 생각이 난다.몇 시간이고 꼬불거리며 비탈길을 느릿느릿 올라가서 제법 너른 공지에 이르렀는데 노랗게 마른 풀들만 조금씩 보였고 한라산 백록담만이나 한 아담한 분화구 연못이 있었고주위의 그늘진 곳에는 두터운 얼음이 남아 있었다.물은 푸르고 맑았다.가운데는 제법 깊어 보였다.부랑자와 나는 기념으로 발가벗고 그순수한 물에 뛰어들어 잠깐 수영을 했다.산을 넘어 코르도바 쪽으로가면서 생각해보니 스페인에서 파는 생수의 이름이 ‘아구아 데 시에라네바다’인 것이 생각났다.‘시에라네바의 물’이란 소리다.이를테면 모든 스페인 사람이 마시는 물의 원천지에서 못된 짓을 하였으니추방감이다. ‘파에야’는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알려진 음식이다.우리식으로 보면‘해물밥’인 셈인데 누구나 먹어 보면 집에 돌아가 다시 해 먹고 싶은 만만함과 친근한 느낌이 든다.파에야라는 말은 밑이 넙적하고 둥근 프라이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조개,홍합,왕새우 등속과 닭날개등을 재료로 한다.붉은 피망과 양파,마늘은 다져서 쓴다.해물은 따로마늘과 화이트 와인을 넣어 타임 잎을 넣고 끓여 익혀 두고 국물은따라 둔다.새우는 살짝 볶아 둔다.닭날개는 양파 마늘을 넣고 볶아서쌀과 토마토와 피망을 넣는다.모든 준비한 재료를 쌀 위에 얹고 준비해 둔 닭국물과 해물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부어서 익힌다. 중앙 고원 지대의 알려진 음식은 ‘아사도’인데 새끼돼지의 통구이다.갖 태어난 돼지새끼는 어미의 젖 밖에 먹은 것이 없어 고기가 매우 연하고 정갈하다.‘엘 쿠아르토데 아사도’는 새끼양 다리 로스트인데 마늘 소금 후춧가루로만 양념하여 샐러리 당근 양파를 깔고 오븐에 고르게 구은 것이다. 말라가의 해변 좌판에서 링이 되도록 둥글게 썬 오징어 튀김과,정어리 튀김에 새우와 조개를 넣고끓인 ‘살스에라’를 먹던 생각이 난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과 동굴에서 집시 가족이 부르던 플라멩코도생각나고,고성이나 수도원을 호텔로 만든 호화판 파라도르의 방 창문으로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던 일,그날 아침에 전통 복장을한 웨이터들이 뷔페를 차리던 것이며.마드리드에 심야에 도착했을 때레스토랑은 모두 문을 닫았고,어느 노천 카페에 앉아‘마늘 수프’를먹었다.그야말로 우리 뚝배기처럼 생긴 볼에 뜨거운 수프와 빵을 내왔는데 어두워서 내용물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묵은 치즈 냄새며 마늘이 어우러져 된장찌개 맛이 났다. 황석영.
  • [외언내언] 세계화의 그늘

    탈냉전 이후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화두는 단연 세계화일것이다.하지만 세계화의 물결이 지구촌을 휩쓸면서 시장의 풍요와 함께 부정적 측면도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가 대표적이다.국제적으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괴리가,각 나라별로는 부유층과 빈곤층간 격차가 나날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 본산격인 미국의 경우 최근 수년간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그럼에도 하이테크 산업 등에서 떼돈을 버는 소수와 전통적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저소득층으로 이분화되면서 중산층이 엷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올들어 의료보장(medicare) 혜택을 입지 못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가 1.000만명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잡힐 정도다.지식층 일각에선 경쟁에서 이긴 20%와 뒤처진 80%로 양극화되는이른바 ‘20 대(對) 80사회’가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도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추세다.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호구조사에서 90%의 국민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응답했던 ‘신화’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미국과 일본이 이럴진대다른 나라는 말할 나위 없다.우리의 경우도 얼마전 통계청의 발표에따르면 올 2·4분기 소득격차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더욱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물리학의 법칙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따르는 법.근래 ‘무분별한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시위대의 활동이 격렬해지고 있다.이들의 시위가 최근 체코 프라하에서 열렸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연차총회를 조기 폐막시킬 정도로위력적이었다고 한다. 세계화는 초국적 자본의 국경없는 이동과 경쟁원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다.그러나 미국적 무역·금융 시스템 도입 등 미국화를 ‘강요’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최근 펴낸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그런점에서 비판적으로 읽어볼 만한 책이다.“국경이 허물어진 오늘날 어느 나라도 미국식 합리주의로 무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속삭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와 개인이 하루하루 단거리 경주하듯 경쟁”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낙오자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데 세계화의 맹점이 있다.그럼에도 세계화는 사회주의권이 자멸하고 ‘제3의길’마저 힘을 쓰지 못하는 21세기 지구촌에서 불가역적 흐름일지도모른다.‘인간의 얼굴을 가진’ 세계화가 진행되도록 국내 소득세제개편은 물론 세계적 차원의 외환거래세 도입 등 제도적 보완대책이논의돼야 할 때인 것같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 소사 50개 첫 홈런왕

    2일 끝난 미국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결과 ‘비운의 2인자’ 새미소사(시카고 커브스)가 50홈런으로 생애 첫 홈런왕에 올랐다.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그늘에 가려 98·99년 연속홈런랭킹 2위에 머물렀던 소사는 지난해보다 15개나 적은 홈런을 치고도 운좋은 홈런 1위를 차지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방어율 1.74로 이부문 선두에 올라 68년 루이스 타이안트(1.60·클리블랜드 인디언즈) 이후 최소 방어율을 기록했다.내셔널리그에서는 LA 다저스의 케빈 브라운이2.58로 랜디 존슨(2.6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을 제쳤다. 토드 헬튼(콜로라도 로키스)은 .372로 타격왕에 오름과 동시에 타점왕(147점)도 차지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톰 글레빈은 21승으로다승왕에 올랐다.2위는 20승을 거둔 데릴 카일(세인트루이스)등 3명류길상기자 ukelvin@
  • [녹지를 가꾸자] 가로수길 조성·개선점(끝)

    가로수가 지역의 명물이자 녹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가로수 하면플라타너스가 떠오를 정도로 획일적인 나무심기에서도 벗어나고 있다.이전에는 도로를 넓히면서 몇십년된 아름드리 가로수를 마구 잘라내거나 민원 등의 이유로 볼썽사납게 가지치기를 하는 등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지역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도시화로 녹지가 갈수록부족해지고 있는데다 잘 가꾼 가로수길이 지역의 명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어서다. 전남 담양군은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로 유명하다.그런데 담양읍 남산리와 학동리간 1,000여m 거리의 가로수가 도로확장 공사로 사라질위기에 놓였다.건설교통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2002년 완공 계획으로 광주∼순창간 도로확장 공사를 추진하면서다.수령 30∼40년의 메타세콰이아가 길 양쪽에 늘어선 이 가로수길은 70년대초 당시 내무부가 시범 가로수길로 지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 하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벌목 방침이 당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됐다.익산국토관리청은 “국도 확·포장 공사로 메타세콰이아 가로수제거 작업이 불가피하지만 지역 여론을 감안해 벌목 구간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밝혔다.국도 확장 구간에 포함돼 당초 178그루를 잘라내기로 한 메타세콰이아는 200여m 구간 64그루로 줄어들었다. 충북 청주시도 시의 상징인 플라타너스 가로수터널길이 2003년까지왕복 4차로에서 8차로로 확장된다.그러나 시는 무엇보다 보존 정책에우선을 뒀다. 나무를 그대로 두기 위해 도로 양 옆에 2개 차선을 신설하고 새로 700여 그루의 가로수를 심기로 했다.시민들이 자전거와도보로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폭 5m의 인도를 설치하고 쓰지 않는일부 도로에는 사진촬영장을 조성할 방침이다. 지역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특이한 가로수도 많이 심고 있다. 전남 광양시는 희귀종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꾸미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이팝나무는 5∼6월에 꽃이 필 때 나무 전체를 덮은 꽃송이가마치 사발에 담긴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로 불리다 뒤에 이팝으로 변했다. 특히 이팝나무는 중부 이남에만 분포해 군락지를 찾기 힘든 희귀종이지만 광양읍 유당공원내에 있는 이팝나무는 수령이 450년이나 돼천연기념물(235호)로 지정돼 있는 등 군락을 이루고 있다.이에 광양시는 97년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선정,지난해까지 1,100여그루를 심었으며 연말까지 600그루를 심을 계획이다.시 관계자는 “나무에 꽃이피는 정도를 보고 농민들이 한해 풍년농사를 점치는 등 이팝나무는우리 고유의 나무”라며 “이팝나무로 전체 가로수가 꾸며지면 타 지역과 비교되는 가로경관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군은 새롭게 개통한 평창읍과 진부면 우회도로에 지난해8,370만원을 들여 희귀한 향토 특산수종인 마가목 700여그루를 심었다.평창군은 98년에는 용평면내 국도 6호선과 31호선변에 돌배나무가로수길을 조성하기도 했다. 서울시도 30여만그루의 가로수가 있지만 은행과 버즘나무 두 수종이전체 가로수의 8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도시미관상 단조롭다는 지적에 따라 시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목백합 등 나무 모양이 아름답고공해에 잘 적응하는 수종으로 바꿔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수난당하는 가로수가 많다.특히 아름드리 나무를 키우려면 수억원의 예산이 들어가 조림사업에도 역행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전북 완주군은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는 대아저수지 진입로변의 20년 이상된 가로수를 베어냈다.완주군은 농작물 재배에 피해를 주고교통사고 위험을 막아달라는 일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지난 1월 고산면 삼기리 봉림경찰소초에서 소향리 고산자연휴양림 입구까지 2㎞구간 도로변에 심어진 플라타너스 300여 그루를 잘라냈다. 어쨌든 오래전부터 도로에 푸르름을 줘 보행자에게 그늘을 제공하고지역·문화적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들어 왔던 가로수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김영중기자 jeunesse@. *가볼만한 전국 유명 가로수길. 우리나라도 영화속 외국의 가로수에 결코 뒤지지 않는 멋진 숲길이많다. 가을을 맞아 찾아 가볼만한 가로수길을 알아본다. ■충북 청주인터체인지 진입로 경부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청주시내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청주 복대동 가로수길은 플라타너스가터널을 이룬 길로 유명하다. 전국 최고의플라타너스 거리.현재는 길옆으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예전같은 정취를 맛볼 수는 없지만 아직도 6㎞쯤 되는 길은 시원한 여름과 낭만의 가을을 선사하는 산책로나 드라이브코스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대구시 동대구로 동대구로는 동대구역에서 수성못에 이르는 6km의대로를 말하는 것으로 히말라야시다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세계 3대정원수의 하나라고 할정도로 나무모양이 아름답다.이밖에도 버즘나무,영산홍 등이 숲을 이루는 이 도로는 대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손꼽힌다. ■전남 담양 메타세콰이아길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금성면 원율리까지 6㎞ 구간. 여름에는 30m 남짓 곧게 뻗은 나무가 터널숲을 이루고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이 붉은 비를 뿌리는 듯한 장관을 연출,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호남고속도로 담양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온뒤 담양읍에서 국도 24호선 순창방면으로 가면 이 가로수길을 만난다. ■충북 영동 감나무길 감나무가 군나무로 지정된 영동군은 가로수가감나무로 유명하다. 가을이면 탐스럽게 열린 감들이 주렁주렁 열린감나무 가로수가 읍내 14㎞에 이르러 계절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영동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오지 말고 미리 옥천인터체인저로 나오는 것이 좋다.옥천∼영동간 국도가 왕복 4차선으로포장이 잘돼 있는데다 차량도 많지 않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제주 삼나무길 북제주군 대천동 4거리에서 성산일출봉 쪽으로 가다보면 도로변에 유럽풍의 이국적인 숲길이 탄성을 자아낸다.50∼60m높이의 삼나무가 폭 2∼3m의 길 양쪽으로 빽빽이 들어차 끝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장관이다. 영화 ‘레인맨’에서 톰 크루즈가 더스틴 호프먼을 요양원에서 데리고 나오던 그 울창한 숲길과 꼭 닮은 가로수길. 이 길은 영화 촬영지가 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제주로 여행 온 서울 남자와 관광안내원인 제주 여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 ‘연풍연가’와 ‘이재수의 난’의 촬영지였다. 김영중기자
  • 남자양궁 단체전 12년만에 金명중

    남자 궁사들도 12년 만에 올림픽 양궁 단체전 금과녁을 명중시켰다. 한국은 시드니올림픽 개막 8일째인 22일 올림픽파크 양궁장에서 열린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장용호(예천군청)·김청태(울산남구청)·오교문(인천제철)이 차례로 사선에 나서며 세계 1위 미켈레 프랑질리가이끄는 이탈리아팀을 255-247로 물리쳤다. 남자 양궁은 단체전이 신설된 88년 서울올림픽 우승 이후 12년 만에금메달을 획득, 여궁사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이로써 한국은 4개의 양궁 금메달 가운데 3개를 휩쓸어 ‘신궁의 나라’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여자 유도의 김선영(용인대)은 달링하버 제2전시홀에서 열린 무제한급 패자결승에서 산드라 쾨펜(독일)에 판정승, 동메달을 땄다. 탁구 여자복식의 김무교(대한항공)-류지혜(삼성생명)조도 스테이트스포츠센터에서 열린 3~4위전에서 헝가리의 크리스티나 토스-실라 바톨피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끝에 3-2로 승리, 탁구 첫 메달을 동메달로 장식했다. 시드니 특별취재단
  • 오늘 육상 남자 100m 결승

    ‘인간 스피드의 한계에 도전한다’- ‘올림픽의 백미’,‘총알탄 사나이’들의 격전장인 육상 남자 100m가 23일 벌어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결승은 오후 6시20분(이상 한국시간)에 펼쳐진다. 기록상으로는 모리스 그린(26·미국)의 적수가 없다.그린은 지난해아테네 육상대회에서 9초79를 기록,‘마의 9초8의 벽’을 깼다.게다가 올시즌 각종 대회에서 1∼3위 기록을 모두 독차지했고 지난 14일시드니 현지 연습경기에서 9초78의 비공인 세계기록을 작성,일찌감치금메달이 예고됐다. 세계 육상 관계자들은 그린의 금메달 여부보다는세계 기록을 끌어내릴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출 정도다. 97년 전미육상선수권에서 9초90으로 우승,혜성같이 떠오른 그린은이후 지금까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자신이 세계기록을 수립하고 또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힘겨운 작업이다.그린은이번 올림픽에서도 자신의 세계기록을 0.03초 앞당긴 9초76을 작성하는 것. 하지만 육상 100m에 변수가 많은 데다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돌아온 챔프 도노번 베일리(33·캐나다)는 4년전 애틀랜타올림픽의영광을 되찾기 위해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9초84의 기록으로 애틀랜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베일리는 98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의기로에 섰었다.그러나 지난해 10월 부상 후유증을 말끔히 씻고 복귀한 그는 지난 6월 스위스 국제초청대회에서 9초98로 1위를 차지,올림픽 100m 2연패의 가능성을 보였다. 또 그린의 그늘에 가려 항상 ‘넘버 2’였던 아토 볼든(27·트리니다드토바고) 역시 복수의 칼을 곧추세우고 있다. 시드니 특별취재단
  • [대한광장] 가을이다

    어느 날 문득 가을이 우리 곁에 왔다.소매 끝을 스치는 바람결이 어제와 다른가 싶어 먼 산을 바라보니,산빛도,강가에 나뭇잎 부딪치는소리도 어제와 다르다.우리 몰래 세월이 벌써 이렇게 훌쩍 흐른 것이다.둘러보면 산 뿐이 아니다.태풍에 시달린 나무 이파리들도 상처를쓰다듬으며 어느새 색깔이 퇴색해 간다.큰물에 쓰러진 개울가의 고마리꽃이며,물봉선화며,구절초도 꽃을 환하게 피웠다. 이제 이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들은 한 계절을 정리하고 있다.쓰러졌으면 쓰러진 대로,꼿꼿하게 서 있으면 서 있는 대로 그것들은 살아 온 세월 앞에 고개를 수그리며 익어간다. 논두렁을 넘어 찰랑찰랑 익어가는 벼며,콩 밭에 키 큰 수수도 제 무게로 고개를 숙였다.큰바람 속에서도 제 몸을 잘 간수하여 붉어져 가는 대추야,감아,알밤들아,모든 바람을 이긴 곡식들아,풀들아,나무들아 콘크리트 벽 속에서 소주를 마시며 더위를 이겨 낸 사람들아,모두 애썼다.작고 크든 시련을 딛고 일어선 것들은 산들바람부는 이 가을 하늘아래 모두 눈부시다. 밤길을 걸으며 풀섶에서울어대는 풀벌레 울음소리,깊은 밤 어디선가 낭랑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한 계절의 이 쓸쓸한 모퉁이를 돌아가며,나는 문득 소슬해지는 어깨를 추스린다.나는 잘 살았는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그러므로 가을은 남보다 자기를 들여다보게 하는,자기에게 더 외로운 계절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가.내가 온 힘을 기울여 애쓰는 이 수고가 세상의 어디에 소용이 된단 말인가.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내 몫인 것 같은 이 재물과 권력과 지식은 얼마나 하찮고 부질없는 것들인가.세월은 바람같이 빠르고 인생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다만 이 세상에 남을 것은 진실 뿐임을 알 때 생은 경이로워진다.눈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떡에 눈 멀면 훗날 그 떡보다 더 큰 욕을 먹는다는 것을 알라.한줌 권력이 저 들에 피어있는 들꽃보다 낫다는 생각을 나는 해보지 않았다. ‘사랑의 온기가 더 그리워지는/가을 해거름 들길에 나는 서 있습니다/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산그늘도 묻히면/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그대 얼굴이/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내 안의 그대처럼/꽃들은 쉼없이 피어나고/내 밖의 그대처럼/풀벌레들은/세상의 산을일으키며 웁니다/한 계절의 모퉁이에/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춥지않아도 되니/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 한지요/지금 이대로 이 길을 걷고 싶고/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하얀 풀꽃 한 송이로 서고 싶어요’ 어느 가을.나는 힘없고 가난한 내 사랑에 따뜻한 온기가 되고 싶어,해지는 들길에 앉아 이 시를 썼다. 내가 근무하는 작은 학교 운동장에 서늘한 산그늘이 내려온다.아이들이 놀다 돌아간 운동장은 산뜻하게 비어 있다.소슬바람이 부는 산아래 나는 두 손을 편히 내려놓고 서서 산을 올려다본다.어쩌면 산은 저리 변함이 없을꼬? 산그늘은 천천히 내려오며 작은 마을을 덮고 푸른 강을 건너 앞산을 오른다.해 지는 동네도,강변에 풀잎들도 참 곱다.서산에 걸린 해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발광하는 저 찬란한 가을논과 강물의 풍경을 함께 보는 일은 행복하다. 보아라,저 메밀잠자리들은 내가 밥 한 숟갈 주지 않았어도 푸른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저 풀잎들은 그대가 눈길 한번 주지 않았어도 저렇게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간다. 가을이다.이 가을 저 들에 풀잎 한 포기,한톨의 곡식인들 어찌 내게 무심하리.한 계절의 모퉁이는 돌며 나는 나에게 진정 다시 묻고 싶다.너의 가을은 저 파란 우리나라 가을하늘처럼 참말로 근사한가? [김 용 택 시인]
  • 크로아 역도 페찰로프

    ‘새로운 조국에 금메달을 바칩니다’. 크로아티아의 니콜라이 페찰로프와 미국의 레니 크레이젤버그가 국적을 바꿔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뒤 새로운 조국에 빚을 갚은 기분이라며 감격해 했다. 불가리아 출신의 페찰로프는 남자 역도 62㎏급에서 325㎏을 들어 올려 새조국 크로아티아에 금메달을 안겼다.페찰로프는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은메달,96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동메달에 머물렀다.조국이같은 ‘작은 헤라클레스’로 불리던 나임 술레이마놀루가 그의 금메달 획득을 저지한 것. 페찰로프와 술레이마놀루는 불가리아에서 같은 역도 스승을 모셨다. 그러나 페찰로프는 술레이마놀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술레이마놀루가 터키로 국적을 바꿔 올림픽에서 3연패를 달성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뒷전에 있었다.당연히 국내에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96년국적을 바꾼 이유다. 페찰로프는 결국 국적 변경뒤 첫 출전한 이번 올림픽에서 술레이마놀루의 악몽에서 탈출했다.술레이마놀루가 인상 145㎏에 3차례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하는 바람에싱겁게 라이벌간 대결을 승리로 이끌었다. 수영 남자 100m에서 53.72초로 금물살을 가른 우크라이나 출신의 레니 크레이젤버그는 지난 89년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아버지의 결단에 의해서였다.우크라이나에 머물면 수영선수로서의 성공도 기약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미국생활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45분간 버스를 탄 뒤 20여분을 걸어야 수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던 그는 선수로서의 길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만류로 어려움을 이겨냈다.마침내 지난해 8월 배영 50m,100m,200m 세계기록을 세워 배영 1인자로 떠올랐었다. 시드니 특별취재단
  • 고시촌 산책/ 미리 본 인터넷시대 고시촌 풍경

    2년째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A군은 오늘도 하루 스케줄을 컴퓨터 앞에서 체크한다.그가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사이트는 사시 준비연차에 따라 자신의 인적사항을 넣으면 지금쯤 어떠한 스케줄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시한다. 그는 이 사이트가 보여준 총 10개의 모델 중에서 자신의 상황에 가장 알맞은 모델을 선택해서 학습 진도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의고사에서 A군의 경우 현재 헌법과 영어가 가장 취약한 과목으로 판명났다.사이트에서는 꽤 ‘강도 높은 처방’을 제시했다.매일 컴퓨터를 켤 때마다 테스트 문제 2개를 푸는 것이다.틀렸을경우 경고 메시지와 함께 학습해야 할 새로운 학습량을 제시한다. A군은 최근에 여자친구와 몇차례 갈등을 빚으면서 사이버 고시교육방송이 제시하는 학습 진도를 제때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그래서조군은 지난 주말에 K교수의 헌법 강좌를 동영상으로 보면서 사이트의 학습 진도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 일요일 저녁 10시.주말을 반납하고 온통 동영상 강의를 통한 복습에 열중한 끝에 사이트가 제시하는 문제 테스트를 통과했다.겨우 다음진도를 위한 단계별 코스에 합류할 수 있었다. A군은 고시동아리의 정회원으로 가입이 허용됐다.정회원이 되면 각고시 과목별로 조직된 동호회에 자동 가입이 되면서 회원 상호간에수험 정보를 교환하고 채팅을 통해 학습 진도별 토론을 할 수 있다. 사시 2차를 준비하고 있는 그의 친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음성채팅으로 5명의 스터디팀과 토론식 스터디를 하고 있는 중이다.당번을 정해 서브노트를 서로에게 메일로 전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결코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지금 우리 눈앞에서 진행될수 있는 일이며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이 가능하다. 인터넷 정보의 시대는 예상보다 빨리 우리 모두의 삶의 구석구석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신림동 고시촌에서도 인터넷 전용선 접수대에삼삼오오 짝지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 고시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치 우리 사회의 그늘이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이 멈춰 서던 고시촌과 고시생들마저도고시 정보의 바다에 눈을 돌리고 있는것이다. 김채환 고시정보신문사 대표
  • [새천년 우리고장 핫 이슈] 청주동헌 보존

    청원군청안에 있는 청주동헌의 복원이 시급하다.문화재적 가치에도불구하고 오랜동안 방치돼 썩어 들어가고 있다.하지만 복원문제를 놓고 청원군,청주시,충북도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어 해결책이 쉽게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영조 7년(1731)에 지어진 청주동헌은 청주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목조건물로 조선시대 ‘겹처마 팔작지붕’이라는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조선 후기의 지방관아건축을 원형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그러나 청주동원은 그동안 문화재적인 가치가 알려지지 않아 방치돼 왔다.청원군 청사가 78년 동헌바로 앞에 들어설 정도다.뒤늦게 82년말 충북도 유형문화재 109호로지정됐다. 내버려진 청주동헌은 퇴락해가고 있다.군청 본관건물에 가려 햇볕이들지 않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부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원형도 많이 망가졌다.일제시대부터 70년대까지 사용되면서 내부를고쳐 창호·천장 등이 모두 개조됐다. 청원군은 동헌 복원비용이 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해체작업을 한뒤 기와와 기둥 등 50% 정도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청주동헌이 방치된데에는 청원군청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군은 한번도 청주동헌을 보수한 적이 없다.동헌 때문에 비좁은 청사를 새로 지을 수 없는 청원군의 입장에서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는 추측에서다.이에대해 청원군 관계자는 “98년과 올해 동헌보수비를 신청했다가 의회에서 모두 부결됐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따라 문화재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청주동헌의 훼손을 막기위한 방안을 하루빨리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대다수 전문가들은 청원군청사를 이전한 뒤 이 곳을 사적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의견을 제시하고 있다.이들은 “역사적 건물인 청주동헌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경우 역사적 가치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엉뚱한 문제가 청주동원의 복원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청원군청 이전 문제에 대한 청주시,청원군,충북도의 사이에서 의견이엇갈리고 있어서다.청주·청원이 통합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청주시 입장과청주·청원 통합반대는 물론 군청 이전을 주장하는 청원군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청원군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이 거론되는 마당에 일찌감치 군청사를 이전,통합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화재 보존을 명분으로 청사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군청사가 청주시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군은 청주시가 이 곳을 매입해 사적공원화해 줄것을 요청하고 있다.동헌이 원래 청원군동헌이 아닌 청주동헌이기 때문에 청주시가 관리하는 것이 명분상 타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매입의사를 타진하고 있다.반면 청주시는 예산이 없어 매입할 여력이 없다고 손사래만 치고 있다.시로서는 머지 않아 청원군이 시로 통합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터에 통합에 저해가 될 일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91년 전국적으로 시·군 통합이 추진될 당시에도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문제가 거론됐다.청원군의 반대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통합론은 사라지지 않았다.잠복 상태다.청주시는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청원군청사 부지를 매입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다급해진 청원군은 청주시가 군청사 부지를 매입하는데 도와줄 것을충북도에 요청했다.지난 3월에는 39개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한 ‘청주동헌대책추진위원회’를 발족하는데 도움을 줬다.청주동헌을 보존하려면 청원군청이 자연스럽게 이전할 수 밖에 없는 점을 노렸다. 충북도는 청원군청 이전을 내심 반기고 있다.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 충북도는 ‘속빈 강정’이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이런 점을 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북도는 청원군의 문화재 관리 소홀 책임을 따져 묻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청사 이전을 통해 청주·청원 통합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어 청원군입장과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청원군·충북도와 청주시 사이의 고래싸움에 새우가 돼버린 청주동헌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갈수록 퇴락해 가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청주동헌은 어떤 유적.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1가 751번지 청원군청사안에 있는 청주동헌(청녕각·淸寧閣)은 영조 7년(1731년) 당시 현감을 지낸 이병정(李秉鼎)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기록돼 있다. 동헌이란 한 고을의 수령이 집무를 보던 정당(政堂)으로 관아건물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청주는 고려시대부터 목(牧)이었으나 청녕각이 지어진 조선 영조시대 이인좌의 난으로 서원현으로 강등됐다.건축 당시 이름은 지금의 청녕각이 아닌 근민헌(近民軒)으로 불렸다. 이후 고종 5년(1868년) 청주목사 이덕수(李德洙)가 10칸이던 것을정면 7칸,측면 4칸의 28간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확장했다. 이 건물의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는 ‘道光 午年 乙酉五月日 淸州衙舍改建瓦造作’이라는 명문이 보여 조선 순조 25년(1825)에개축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주동헌은 조선시대 겹처마 팔작지붕 이라는 건축양식의 대표적인건물이고 목사의 정당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 가치가높다. 정당을 중심으로 배치돼 있던 관아의 전체구조를 알려주는 자료로서도 중요시된다. 한편 청주동헌의 이름이 청녕각으로 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제기되고 있다. 청주읍성도를 볼 때 현재 청주동헌 위치가 현 위치일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동헌의 이름이 ‘헌’(軒)이 아닌 ‘각’(閣)으로 된 것에 대해서는 현판이 옮겨진 것이라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청주동헌 현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해야”/金英敎 청주동헌대책위원장. “청주동헌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현 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해야 합니다” 3월 발족한 청주동헌 대책추진위원회 김영교(金英敎·65·청원군 문화원 부원장) 위원장은 하루가 다르게 파손되고 있는 동헌에 대한 복원방법을 이렇게 제시했다.김 위원장은 “청주동헌은 조선 고종 5년(1868년) 개축한 이후 한번도 보수되지 않아 훼손 상태가 심각한 실정”이라면서 “동헌이 그늘에 있는데다 통풍도 되지 않아 기둥이 썩어들어가는 등 지지력이 약해지고 있어 복원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청주동헌은 문화재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청주 역사의 주무대입니다.군청사 옆에서 썩어 가는 것을 보고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복원문제가 금방 해결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청원군민과 청주시민,도민들을 상대로 청주동헌 복원의 당위성을 역설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공청회와 서명운동 등을 통해 범도민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뒤 가장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겠다고 김 위원장은 벼르고 있다.대책위는 지난달 30일 청주 예술의 전당 소회의실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청주동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청원군청사를 옮기고 이 지역을 사적공원화 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이웃한 충주시의 경우 관아가 있던 자리를 ‘관아공원’으로 꾸며 건물등을 유적으로 보전하는 한편시민들에게 휴식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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