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그늘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그린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교육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갈등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인준안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744
  • 김지호 “성숙한 연기 보여드릴게요”

    “결혼이후 첫 출연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커요.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2월 결혼 이후 3달만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는김지호(29)는 여유로워 보였다.신혼 재미가 꽤 쏠쏠한 모양이다.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SBS 주말연속극 ‘유리구두’(토·일 오후 9시45분)로 방송에 복귀하는 그의 털털한 미소가여느 때보다 싱싱하다.지난해 여름 SBS의 ‘로펌’에 출연한 이후 8개월만이다. ‘유리구두’에서는 어린시절 실수로 동생을 잃어버리고죄책감을 안고 사는 태희 역을 맡았다.일찍 부모를 잃고부자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지만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어두운 그늘이 있는 인물이다. “나중에 남자를 사이에 두고 친동생과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해요.친동생인 줄 모르거든요.동생으로는 김현주씨가 나오는 데 저랑 많이 닮았죠?” 그의 말대로 짧은 단발머리에 발랄하게 웃는 모양새가 김현주와 빼닮아 있다.이런 외모 덕분에 지난 98년 SBS의 ‘사랑해 사랑해’에서도 자매로 출연했다. 그는 그동안 주인공이 아니거나 작품이 좋지 않으면 출연을 사양해 왔다. 출연작이 드물었던 이유다.그러나 진정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역할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강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태희는 그동안 보여줬던 발랄한 이미지를 벗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그에게 이런 푸근한 맛이 생겼기 때문일까? 최근에아줌마들을 비롯해 중년 팬들이 많이 생겼다. 그를 변화시킨 신혼생활은 어떨까? “아침에 함께 밥해 먹고 실컷 놀면서 지냈어요.두 달동안 살이 삼 킬로나 쪘어요.지금 식사량을 줄이고 헬스하면서 다이어트하는 중이예요.” 결혼하기 전에는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요즘엔 웬만한 요리는 다 한단다.그의 행복한 신혼을 보여주듯 요즘웨딩잡지에는 그의 신혼여행 사진들이 잔뜩 실려 있다. “17박 18일로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어요.다른 커플도 여행일정이 길다면 동남아의 자연에서 편안하게 쉬고 문화유적도 둘러보는 것이 좋아요.일정이 짧다면 결혼준비로 지친 몸을 푹 쉬는 것이 좋구요.” 이렇게 봄철을 맞아 결혼하는 예비 신혼부부에게 조언하기도 했다.2세 계획에 대해 물어보자 “아이는 내년쯤에가질 계획이지만 빠르면 올해 가질 수도 있구요.”라면서웃는다. “솔직히 같은 시간대의 KBS ‘제국의 아침’때문에 드라마가 잘될지 걱정이에요.‘로펌’ 성적이 안 좋았잖아요. 그렇지만 시청률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진정한 연기를 보여줄 나이가 됐다고 생각해요.”이송하기자 songha@
  • 새 시집 ‘나무’출간…섬진강 시인의 천진한 언어들

    ‘섬진강 시인’ 김용택(54)씨가 ‘그 여자네 집’(1998년) 이후 4년만에 새 시집 ‘나무’(창작과 비평사 펴냄)를 냈다. 4년이란 세월에 시인은 변했을까.5년을 붙박이로 교편을 잡아온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를 떠나,새학기부터 인근 덕치면의 덕치초등학교로 전근가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8번째인 새 시집에도 여전히 꾸밀 줄 모르는 순진한 그만의 언어들로 가득차 있다.모두 25편이 실린 이번 작품의 특징은 몇 쪽씩 이어지는 산문시들이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방학을 맞아 찾아간 홀어머니의 시골집에서 방 구들을 벗삼아 써내린 시어들은 ‘세한도’라는 제목으로 엮였다.장장 13쪽 짜리다. 문학평론가 남진우씨의 평문처럼 그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역시 천진한 언어로 농촌공동체의 훼손되지 않은삶을 그리는 대목들에서다.포크레인에 찍혀 앞산 소나무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면 시인의 속은 꺼멓게 탔다.‘너거들정말 그렇게 아무 곳이나 올라가 파고,뒤집고,자르고,산을부술래 이 염병 삼년에 땀도 못 나고뒈질 놈들아.’(‘세한도’에서) 그렇다고 섬진강 시인이 봄내 풀풀 피어나는 강변의 서정을 전해주지 않을 리도 없다.‘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서 있었지/봄이었어/나,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나무’에서) 유년의 속살같은 추억담도 고집스레 붙들고 있는 소재다.‘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용태가아,밥 안 묵을래/저 건너 강기슭에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이 소 받아라’에서) 이내가 깔리는 시골마을의 해질녘,금방이라도 밥짓는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쳐올 것만 같다. 황수정기자 sjh@
  • “완벽한 올림픽” 美언론도 편파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국 언론들은 판정시비와 스캔들로 얼룩졌지만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편향적 판정으로 물의를 빚었다고 보도했을 뿐 방송을 필두로 한 대다수 언론들은 판정시비를 ‘옥의 티’ 정도로 간주했다. 특히 독점중계한 NBC 방송은 좋지 않은 일은 금새 잊혀지게 마련이라며 피겨 스케이팅 스캔들과 한국 및 러시아의항의를 무시하라고 편파보도를 계속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5일 유연한 대회 운영과 효과적인 보안,시민들의 친절,선수들의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판정시비와항의 때문에 올림픽 전체에 종종 그늘이 졌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장이 판정 시스템을 재고하겠다는 발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로게의 지도력은 안타깝게도 실망스러운 것”이라는 비판을함께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24일 ‘매혹적인 스포츠와 성난 반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올림픽을 ‘신 포도’에 비유했다.멋있고 감격적인 경쟁이 계속되면서도 반발과손가락질이 잇따르는 ‘2개의 트랙’을 달렸다고 평가했다. 특히 캐나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에게 공동 금메달을 수여한 것과 관련,미국과 캐나다인에게는 가슴 뭉클한 감격적 순간이지만 다른 나라에게는 북미지역의 언론이 올림픽지도자들에게 ‘강한 압력(strong arming)’을 행사했다는증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회를 처음부터 생중계한 NBC는 미국의 오만함과지나친 애국심을 보도한 외국의 언론에 신경쓸 필요가 없으며 이는 지속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루 기사거리(one day headline)’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쇼트 트랙 남자부문의 최강국이라 생각한 한국인들은 미국의 압력과 오판을두고두고 비난할 것이라고 말해, 항의를 감정적 대응으로치부했다. CNN은 한국과 러시아가 판정에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바람에 부정적인 면이 부각됐으나 판정시비는 경기가 있을때마다 늘 불거졌던 문제라며 극적인 순간들이 더 많았던성공적이고 완벽한 대회라고 평가했다. USA투데이는 한국의 김동성 선수가 자기나라 국기를 던질 만큼 불만을 표출하고 러시아가 보이코트까지 위협했으나 가장 잘 짜여진대회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 이번 동계올림픽을 망칠 수는없었다고 보도했다. mip@
  • 진정한 ‘은반여왕’ 누구냐

    미셸 콴(22·미국)과 이리나 슬루츠카야(23·러시아)가‘동계올림픽의 꽃’인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 우승을 놓고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영원한 라이벌’ 콴과 슬루츠카야는 20일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선제압에 나선다.금메달의 주인은 쇼트프로그램 점수와 22일 열리는 프리스케이팅 점수를 합산해 최종결정된다. 콴은 우승후보 ‘0순위’답게 금메달에 가장 근접해 있다.우아함에 있어서는 그녀를 따라 올 적수가 없다.전미선수권 6연속 우승과 세계선수권 4회 우승으로 최근 6년간 세계정상을 지켰다.그러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다.98나가노대회에서도 태라 리핀스키(미국)에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다. 콴은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고 있다.특히 홈에서 열리는 만큼 우승을 자신하고 있다. 대진도 콴에게 다소 유리하다.쇼트프로그램에서 총 27명가운데 후반부인 15번째로 출전하게 됐다.일반적으로 심판들이 초반 출전자에게 점수를 ‘짜게’주는 경향이 있는점을 감안하면 좋은 징조다.라이벌인 슬루츠카야는 13번째.그리고 팀 동료이면서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른 사라 휴(17)는 5번째다. 최고의 ‘기술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슬루츠카야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나가노대회에서 5위에 그친 슬루츠카야는 명예회복과 함께 정상복귀를 노리고 있다.최근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3번이나 콴의 그늘에 가려 은메달에 그친 그녀는 금메달을 위해 ‘히든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18일 첫 연습에서 “예전에 선보인 적 없는 새로운 고난도 점프를 선보이겠다.”면서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게다가 최근 8번의 메이저대회에서 콴을 눌러 자신감에 넘쳐 있다.그러나 고난도 기술 구사로 인해 실수가 잦다는 것이 단점이다. 복병도 있다.지난달 3년만에 유럽선수권대회 정상에 복귀한 노장 마리아 부티르스카야(30·러시아)와 미국의 신예휴도 호시탐탐 정상을 넘보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
  • [세기의 게이트] (4)리크루트 게이트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전후 최대의 스캔들로 기록되는‘록히드 사건’ 재판이 한창이던 1988년 일본 열도는 또한차례 대형 스캔들로 요동쳤다. 일본 최대의 취업정보 제공업체인 리크루트 그룹의 관련회사인 리크루트 코스모스의 주식이 시장에 공개되기 전정·관·재계의 실력자들에게 싼 값으로 건네졌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발단은 그해 6월 가와사키(川崎)시 간부에 대한 리크르트측의 주식 양도 의혹에서 시작됐다.록히드 사건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사건이 단순한 공무원 비리를 넘어섰음을 포착했다.뇌물성주식 양도가 정·관계 실력자에게 이뤄진 권력형 비리로드러나자 검찰 수뇌부는 정권의 압력을 뿌리치고 특수부에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수사는 이듬해 2월 에조에 히로마사(江副浩正) 리크루트회장을 뇌물 증여 혐의로 구속함으로써 성과를 올리기 시작해 정계,노동성,문부성과 일본 최대의 통신회사인 NTT의실력자 12명이 줄줄이 기소됐다. 불똥은 곧바로 자민당 정권을 강타했다.같은 해 4월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이 퇴진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계의 막후 실력자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민당을 탈당했다. 무려 300회에 가까운 공판이 진행됐지만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후지나미 다카오(藤波孝生) 전 관방장관은 1심에서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의 끈질긴 보강수사에 힘입어 도쿄지방법원은 무죄 판결을 뒤집고 97년 3월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추징금 4270만엔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후지나미 의원이 리크루트사의 에조에 회장으로부터 취직정보 안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민간기업과 대학간 ‘취직협정’을 존속시켜달라는 청탁을 받았으며 이대가로 2000만엔과 미공개 주식을 챙긴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정경유착에 대한 사법의 ‘단죄’가 이뤄졌다. 리크루트 사건은 정경유착의 일본 정계에 정치개혁의 바람을 몰아왔다.선거제도의 개혁이나 정치헌금의 규제를 강화한 정치자금 규정법의 개정이 잇따라 1994년에는 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값이 오를것이 확실한 미공개 주식을 정·재계의 실력자에게 나눠 준,거품경제의일본을 상징했던 이 사건 이후에도 검은 돈으로 얽히는 정경유착은 사라지지 않았다.대형 운송업체인 사가와규빙(佐川急便) 사건,제네콘(종합건설업체) 비리 등 크고 작은 스캔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더욱이 당시 리크루트 사건에 관련돼 불명예 퇴진했던 정치인들도 사건이 잠잠해지자 모두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 다케시타 전총리는 지난해 타계하기까지 일본 정치의 그늘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는가 하면 나카소네 전 총리도 자민당 탈당 2년 후 다시 입당해 지금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유죄 판결을 받았던 후지나미 의원은 자민당을 탈당했을뿐 무소속으로 남아 일본 정계의 중진(11선)으로 활약하는등 스캔들이 터지면 정치일선에서 사라지는 미국과는 전혀다른 풍토를 일본 정치는 보여주고 있다. ◆ 사건일지. ■1988년 6월 리크루트 주식양도 의혹 최초 제기. ■1989년 2월 에조에 히로마사 리크루트 회장 구속. ■1989년 4월 다케시타 내각 퇴진.나카소네 전총리 자민당탈당. ■1997년 3월 후지나미 다카오 전 관방장관 징역3년 추징금 4270만엔 유죄판결 받음. ■1994년 정치험금 규제강화한 개혁법안 국회통과. ■2000년 6월 다케시타 타계. marry01@
  • 이색 설맞이 2題/ 공주 갑사 ‘괴목 대신제’

    국립공원 계룡산의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충남 공주시계룡면 중장리 갑사(甲寺)의 번영과 마을 주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괴목 대신제가 14일 사찰에서 열린다. 괴목 대신제는 수백년 전 마을에 번진 역병을 퇴치하기위해 스님과 마을 주민들이 갑사 입구에 있는 1600년 된괴목(느티나무)에 제례를 올리면서 유래됐다.해마다 정월초사흘 스님과 인근 상가 번영회,주민 등 500여명이 참여해 대신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10여년 전 태풍으로 부러져 현재 밑동만 남아 있는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당시 영규(靈圭·?∼1592)대사가 승병들을 나무 그늘에 모아 놓고 작전을 세웠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날 행사는 점심 공양과 국악,무용,불교무술 시범,윷놀이 등에 이어 오후 6시 괴목 대신의 위패를 모시는 제례로 절정을 이룬다. 공주시 문화관광과 이걸재(李乞宰·44) 문화예술담당은“전국에서 보기 드물게 사찰과 마을 주민이 함께 개최하는 괴목 대신제는 주민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뜻깊은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
  • 한화갑 경선출마 공식선언

    대권과 당권 도전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상임고문이 7일 여의도 당사에서 대권도전을 공식 선언했다.“민주당과 ‘국민의 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겠다.”는 게 출마의 변이었다. 이로써 ‘7룡(龍)’으로 불리는 민주당 예비 대선주자 7명이 모두 공식 출마선언을 한 셈이다. 당내에서는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을 30여년간 보필해온 동교동 비서 출신인 한 고문이 대권 도전을 계기로 DJ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지에 시선이 쏠려 있다. 특히 대중지지도는 낮지만,당내에동교동계 신파(新派)로 불리는 폭넓은 지지세력을 갖고 있는 한 고문이 경선에서 어느 정도 폭발력을 발휘할지 관심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스타감독 너도나도 영화사

    충무로가 ‘감독 영화사’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몇편의 화제작으로 명성을 얻은 스타감독들이 너나 할 것없이 앞다퉈 개인 영화사 창립을 선언하고 속속 제작에 들어가고 있다. 배경은 간단하다.한국영화 시장의 ‘파이’가 급팽창하면서 관객몰이를 하는 데 감독의 이름값이 스타배우 못지 않게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강우석 감독을 위시해 영화사 대표로 나선 강제규·장윤현 감독 등의 성공사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스타감독들,“내 이름 석자로 승부건다.”=최근 ‘영화사대표’란 직함을 새로 챙긴 유명감독은 한둘이 아니다.‘무사’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올 중반쯤 개업을 목표로 최근 영화사 ‘나비픽처스’ 설립을 선언했다.박흥식 감독의 SF멜로를 창립작으로,신인 조동호 감독의 본격 SF액션을 그 후속작으로 준비 중이다. ‘세이 예스’를 끝으로 김성홍 감독도 지난해 12월 서울강남구 도곡동에 ‘스튜디오 플러스’를 열었다.순제작비 40억원의 코믹액션 어드벤처 ‘스턴트맨’을 첫 작품으로 오는 4월 직접 메가폰을 잡는다. 지난해 공포영화 ‘가위’로 데뷔해 단박에 흥행감독 반열에 오른 신인 안병기 감독도 가세했다.새 영화사 ‘토일렛픽처스’에서 하지원 주연의 공포물 ‘폰’(Phone)을 다음달 초부터 찍는다. ‘경영’과 ‘연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나서는 움직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속속 가시화됐다.곽경택감독은 ‘친구’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진인사 필름’을 설립,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생애를 담는 ‘챔피언’을 야심차게 찍고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신라의 달밤’으로 연속 흥행가도를달린 김상진 감독도 영화사 ‘감독의 집’을 차렸다.차승원주연으로 교도소 탈출 이야기를 다룬 코믹액션 ‘8·15 특사’가 첫 작품.3월 중순 크랭크인해 올 여름 개봉한다. ‘눈물’의 한지승 감독,‘킬러들의 수다’의 장진 감독도각각 ‘시선’,‘수다’란 이름의 영화사를 설립,첫 작품을물색 중이다. #흥행 감독 & 유명 프로듀서 짝짓기=감독들의 영화사 차리기 붐에는 뚜렷한 흐름이 하나 잡힌다.감독들이 내로라 하는 프로듀서들과 짝짓기를 한다는 점이다.프로듀서는 작품의제작과정을 총지휘한다.제작 실무나 경영에 서툰 감독으로서는 역할 분담자가 꼭 필요한 셈이다. 김상진 감독은 ‘신라의 달밤’의 프로듀서였던 이민우(전좋은영화 소속)씨와 손잡았다.김성수 감독도 ‘무사’에서호흡을 맞췄던 프로듀서 조민환(전 싸이더스 소속)씨와 짝이 됐다. ‘선물’‘주유소 습격사건’‘신라의 달밤’ 등 잇따른 흥행작으로 억대 시나리오 작가로 대접받는 박정우씨도 감독데뷔와 동시에 영화사를 연다. 그의 파트너는 시네마서비스의 지미향 제작이사.시네마서비스 강우석 회장의 적극 후원에 힘입어 3월 중순쯤 회사설립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우산’속으로=감독 출신 초보 경영자들이 흥행의 관건인 투자,배급을 무시할 순 없는 일.안정적인 투자·배급 라인을 업고 제작에 전념키 위해 너나없이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우산 속으로 ‘헤쳐모이는’ 추세다.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회장과 친분이 도탑기로 소문난 김상진 감독은 감독의 집에서 만드는 모든 작품의 투자및 배급을시네마서비스에 맡긴다.‘강우석 패밀리’로 통하는 한지승·장진 감독,지미향씨의 새 영화사들 역시 시네마서비스의우산을 쓰게 되는 건 물론이다. 김성수 감독의 나비픽처스도 작품 일체를 싸이더스와 CJ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망을 탄다.곽경택 감독의 진인사필름은 ‘친구’로 인연을 맺은 코리아픽처스,안병기 감독의데뷔작 ‘폰’은 브에나비스타가 각각 파트너이다. 영화사와 투자·배급사간의 이같은 신디케이트 경향에 대해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는 “한국영화가 산업화될수록제작과 배급이 이원화·전문화되는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갈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빛과 그림자=감독 영화사 설립 붐에 대한 충무로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우선 그것은 국내 영화시장의 환경이 몰라보게 좋아진 방증이라는 풀이들이다. 실제로 시나리오와 아이디어만 빛나면 돈을 끌어대는 건 문제가 아닌 게 현실이다.후배 감독들에게 영화사 설립을 꾸준히 권장해온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회장은 “영화사는 감독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하기 위한최소한의 요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늘도 없진 않다.한 제작자는 “경영에 대한 중압감에 감독이 작품활동에만 전력하기가 어렵다.”면서 “영화를 한탕주의 사업쯤으로 보는 풍토가 확산돼서는 곤란하다. ”고 지적했다. 황수정기자 sjh@
  • 테러 갈등 해소·경기회복 모색

    세계화냐 반(反)세계화냐를 놓고 열띤 논란을 불러온 세계경제포럼(WEF)이 31일부터 5일간 뉴욕에서 열린다.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려 왔으나 지난해 9·11테러 참사를 겪은 뉴욕에 대한 위로와 지지 표명을 위해 개최 장소를 바꾼 것이다.세계 각국의 주요 정치·경제 지도자 2700여명이 모여세계화와 테러 근절 등 정치·경제 현안들을 두루 논의한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세계경제포럼을 ‘부자들의 고급 국제사교장’이라고 폄하하고 있다.그러나 세계경제포럼이 이들의주장처럼 꼭 ‘칵테일 파티’인 것만은 아니다.회의가 끝난후 당장 가시적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회의에서 오고간 아이디어들 중 많은 것이 4∼5개월 후면 현실로 나타나곤 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어떤 것들이 논의되느냐를 보면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을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회의에서는 특히 지난해 전세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9·11테러와 같은 전세계적 갈등의 해소와 세계경제를 사로잡고 있는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 모색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갈등 해소 방안 모색을 위해 이번 회의에는 세계 43개 종교 대표들이 특별초청됐다.회의 주제도 ‘불안정한 시대의 리더십:공유하는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 정해졌다.이같은 주제 아래 ▲지속적 경제성장의 회복 ▲안보의 확립 ▲기업의도전 ▲빈곤의 퇴치와 형평성의 확립 ▲가치의 공유 및 이견의 조화 ▲경제지도자의 역할 재정립 등 여섯개의 작은 의제가 설정됐다. 5일간 300여개의 분임토의가 이뤄지며 테러를 근절시키기위한 세계의 대(對)테러전을 지지하고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세계의 추세임을 재확인하는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세계경제포럼이 다국적기업과 일부 선진국들의 이익만 대변한다고 비난하는 반세계화 단체들은 올해에도 뉴욕에수만명의 시위대를 보내 세계화 반대투쟁을 펼 계획이다.뉴욕 경찰은 매년 되풀이돼 온 반세계화 시위가 올해에도 재연될 것에 대비,보안검색 강화 등 시위 억제를 위한 비상경계에 돌입했다.뉴욕 경찰은 지난해 9·11테러에 따른 반테러정서가 과거와 같은 격렬한 시위가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낙관하면서도 경계의 눈길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올해 회의에는 한국의 한승수(韓昇洙) 외교통상부장관이 ‘안정된 세계를 위한 연대 구축:누가 부담을 공유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안보 대표,조지 로버트슨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주토론자로 참석한다. 유세진기자 yujin@
  • 새 비디오/ 결혼기념일에 생긴 일

    ■결혼기념일에 생긴 일. 이제 막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려는 소설가와 여배우 부부의 결혼기념일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는 데뷔감독 조(앨런 커밍)와 여배우 샐리(제니퍼 제이슨 리)부부의 결혼 6주년 기념일.부부의 직업이 직업인 만큼 초대된 손님도 모두 배우 아니면감독이다.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던 파티는 손님들이 내놓은 예상치 못한 선물로 혼란스러워지고 조와 샐리의 결혼생활이 느닷없이 적나라하게 해부된다. 기네스 팰트로,케빈 클라인,피비 케이츠,제니퍼 빌즈 등실제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 ‘무더기’로 나와 영화감상은 더 한층 즐거워진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여배우 제니퍼제이슨 리와 ‘엠마’의 앨런 커밍이 함께 연출했다.2월4일 출시. ■와니와 준하. 김희선,주진모가 주연한 멜로영화.순정만화처럼 달콤하고아련하다. 애니메이터인 여자 와니와 무명 시나리오 작가준하가 소꿉놀이같은 동거를 하고 있다.소박하지만 조용한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그들의 틈새로 문득 그늘이 끼어든다.이복동생이 유학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에 와니는 남몰래숨겨둔 첫사랑의 아픔때문에 갈등한다. 지난해 11월 개봉에서 흥행재미를 보진 못했다.하지만 ‘비천무’ 이후 김희선의 연기 폭이 부쩍 넓어진 걸 확인할수가 있다.2월7일 출시. ■스파이더 게임. 모건 프리먼이 주연하고 리 타마호리가 연출한 액션스릴러.여러모로 ‘키스 더 걸’의 후속편같다. 모건 프리먼이정신분석학자 겸 형사인 크로스 역으로 다시 나와 엽기적강박증에 사로잡혀 미모의 여성들만 납치하는 범인과 대결한다.‘키스 더 걸’에서 애슐리 주드가 맡았던 크로스의파트너 역을 모니카 포터가 대신했다.30일 출시.
  • [발언대] 정치 여성性域 스스로 넓히자

    사회가 다양성을 갖고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면서 전통사회의 그늘에서 제 모습을 잃었던 여성들이 다방면에서 그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그러나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이고있음에도 유독 정치면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미미하다.우리나라의 여성의원 비율은 국회의원의 5.9%,광역의원의 5.9%,기초의원의 1.6%에 불과하다.미국의 경우 상원의원의 13%,하원의원의 13.6%,일본의 경우에는 여성각료 비율이 30%,중의원 의원의 7.5%,참의원 의원의 17.1%에 달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정계진출에 특히 부진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사회통념,돈이 많이 드는 선거에 있어서 여성의 경제력이 취약하다는 점,그리고 여성후보에 대한 여성들과 정당의 지지 부족,상대방에대한 흠집내기, 흑색선전과 중상비방의 선거풍토에서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성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광역의원 비례대표 명부에 여성을 50% 이상 포함시키는 정치관계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고,각당에서도 여성에 대한 참여를적극 지지하고 있다.이제는여성들 스스로 권익을 보장하고 지키기 위해서 적극 나서야한다고 생각된다. 전 유권자의 반을 점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이 결정하려는 내용에 소극적으로 동의하는 데 그쳐서는안된다.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어 직접 국정또는 지방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특히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하는지방선거에 적극 참여하여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꼼꼼함으로 깨끗하고 청렴한 지역 생활정치를 이끌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도 투표할 때 후보자의 성별을 문제삼지않고 후보자 결정에도 성이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투표권 행사가 지름길이라는 것을 여성 스스로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혜란 [대전 서구선관위 근무]
  • 클릭 2002월드컵/ 김도훈-이동국 벤치탈출 황금찬스

    국내파 스트라이커의 대명사인 김도훈과 이동국이 벤치설움을 씻어낼 절호의 찬스를 맞게 됐다. 북중미골드컵축구대회 출전을 위해 미국 전지훈련중인 한국대표팀의 김도훈과 이동국이 모처럼 히딩크호에서 선발출장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최근 최전방을 주로 맡아온 황선홍과 최용수가 각각 소속팀으로부터 복귀명령을 받아 조별리그 2경기가 끝난 뒤 유상철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는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김도훈과 이동국은 한국이 같은 B조의 미국(20일) 쿠바(24일)와 두차례 경기를 벌여 조2위 이내에 들 경우 8강전부터 선발출장 기회를 잡을 것이 확실시된다. B조 3팀의 전력으로 보아 한국의 8강진출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한국은 첫 출전한 2000골드컵에서 코스타리카 캐나다와 같은 조에서 만나 3팀이 나란히 2무를 기록했으나 골득실과 추첨 등으로 8강진출에 실패했다.그러나 이번엔 월드컵진출 1회(38프랑스대회)에 FIFA랭킹 76위로 한수 아래인 쿠바 정도는 무리 없이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김도훈 이동국의 벤치탈출 희망을 지핀 결정적 계기는 당초 마지막까지 잔류할 것으로 알려진 최용수의 느닷없는 복귀명령이다.포지션이 겹치는 최전방의 최용수가황선홍에 이어 자리를 비움에 따라 주전을 꿰찰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최용수마저 잃게 된 거스 히딩크 감독도 돌발상황에 부딪히자 “그동안 자주 출전하지 못한 공격수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겠다”고 말해 김도훈 이동국을 선발기용할 뜻을 내비쳤다. 행운의 기미가 보이자 고질적인 오른쪽 발목부상으로 재활훈련에 머물러온 이동국은 14일부터 킥연습에 돌입하는등 훈련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이후 황선홍의 그늘에 가려 줄곧 대표팀에 발탁되고도 주전경쟁에서 밀려난 김도훈도 이날 모의게임에서 한결 날카로운 슛을 선보이며 결의를 다졌다. 두 선수는 지난해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9월의 나이지리아전에서 나란히 한골씩을 올려 2-1 승리를 이끈 뒤아직 A매치 골맛을 보지 못하고 있다.특히 김도훈은 나이지리아전에서 넣은 골도 페널티킥 골로서 히딩크호에서필드골 맛을 본지가 1년이나 됐다. 한동안 주전에서 밀려난 설움을 곱씹어온 김도훈 이동국에게 이번 골드컵은 월드컵 주전자리를 확보할 새로운 기회의 마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해옥기자 hop@
  • 한고문 측근 “당권으로 선회를”

    민주당 한화갑(韓和甲)고문이 대권 도전 의사를 굽히지않고 있는 가운데 한 고문 진영 일각에서 “한 고문이 대권보다는 당권쪽으로 조속히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한 고문 계보의 핵심 A의원은 11일 “한 고문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나 마음껏 역량을 펼치도록그동안 적극 뒷받침해왔으나,이제 선거가 임박한 만큼 현실을 직시하고 당권쪽으로 마음을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B의원도 “한 고문의 결단이 이르면 이달안,늦어도 지구당개편대회가 끝나는 다음달까지는 내려질것”이라고 말해 ‘저울질’이 한창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더욱이 측근인 C의원의 경우 최근 한 고문으로부터 선대본부장 제의를 받았으나 본인도 최고위원에 출마해야 한다는이유로 거절,한 고문의 대권행에 동요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고문의 한 특보는 “한 고문의 대권 도전 의지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2002 지구촌 이슈] (7)지구촌의 그늘 극빈국 문제

    90년대 국제경제의 화두는 세계화였다.세계 모든 국가들이 무역장벽을 없애고 자유시장 경제제도를 채택하면 인류가 다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새 천년이 시작된 지금 그 믿음은 ‘반쪽짜리 진실’이 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900달러에도 달하지 못하는 최빈국은 통계가 처음 시작된 1971년 25개국에서 지난해 49개국으로 오히려 늘었다.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에티오피아 부룬디 시에라리온은 연간 1인당 평균소득이 130달러도 안된다. 최빈국 거주자 6억3,000만명은 하루에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고 있다.최빈국 부채도 90년 1,212억달러에서 98년 1,504억달러로 상황이 악화됐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1인당 GDP,성인 문맹률,평균 수명,칼로리 섭취량,경제구조 취약성 등을 토대로 3년마다 최빈국 명단을 작성한다.최빈국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대부분이 모여 있고 동남아시아,카리브해,태평양 등에일부 분포돼 있다. 최빈국은 ‘종합병동’이다.GDP 규모를 넘는 외채,가난과 이에 따른 환경 파괴,의료시스템 미비로인한 에이즈 창궐,종족간 분쟁과 내전 등에 시달리고 있다.지난 수십년간 수단 소말리아 콩고 등에서는 내전으로 1,700만명 이상이 죽었다.3,600만명으로 추산되는 에이즈 환자와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의 70%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최빈국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이제는 접근법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국제기구와 최빈국들은 주장하고 있다.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50년이 지나도 최빈국 중 몇몇 국가만이 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선 자금운용 방식의 변화다.외채에 허덕이는 최빈국에대한 원조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빚만 늘렸다.원조가 주어지기 전에 최빈국이 요구하는 전액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외채 탕감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인식이다.최빈국은 그동안 외채 탕감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또 민간자금의 유치도 외채 탕감과 원조 등 큰 틀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첫 실험무대는 3월 멕시코에서 열릴 개발재원 마련을 위한 국제회의다.유엔은 아프리카 대륙 최빈국 지원에만2015년까지 현재 지원되는 금액의 두배 이상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차관보다는 무상지원 형식으로,장기간에 걸쳐 예측가능한 일정에 맞춰 지원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유엔의입장이다.그러나 재원 마련 방안에서는 해결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환경보존을 위한 최빈국 지원도 시급하다.환경 파괴는 기근과 난민을 양산,지역의 안정성을 해친다.오는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릴 환경보존에 관한 정상회의에서도이 문제가 심도깊게 논의될 전망이다. 최빈국의 관광산업 측면에서도 환경보존은 중요하다.유엔무역개발기구는 관광의 발달은 고용 창출 등 다른 분야에파급효과가 크고 국내외를 잇는 서비스산업이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외국자본 유치의 촉매제로 작용하는 등 긍정적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아시아의 몰디브가 대표적인예다. 이와 함께 국제기구는 최빈국 당사자들에게 이른 시일 내에 강력한 통치기구를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국제사회의 원조도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강력한 정부기관이 있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내전과 종족간 분쟁의 해결이 최빈국 탈출의 첫걸음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허윤주기자의 교육일기] 그늘에서 잘익은 포도주를 기억하자

    K에게. 한겨울로 치닫는 1월의 추위는 정말 매섭구나. 며칠 전 네 소식을 들었다.대학 정시모집에서 떨어졌다는말을 듣고 무척 마음이 아팠다.네가 얼마나 그 대학에 가고싶어했는지,잔디 푸른 캠퍼스를 걸어보고 싶어했는지 아는나로서는 너무나 안타까웠단다. 유치원부터 오로지 대학에 목을 매고 달려온 우리나라 수험생들에게 대입 실패는 얼마나 큰 상처인지는 나도 잘 알지. 그렇지만 너보다 좀더 오래 산 인생 선배의 말에 잠시 귀기울여보렴.슬픔에 빠져 있을 너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구나. 아줌마는 입시 실패 경험은 없어.여고를 졸업하면서 원하는 대학에 붙었지.시골 출신인 탓에 세상을 다 얻은듯 신났고뭐든지 내 뜻대로 될듯 했지.입학 후에는 해방감에 놀기도많이 놀았어.‘386세대’로 학생운동도 많이 했지.수업시간에 막걸리집에서 술잔을 기울인 일도 있었지. 그런데 한두번 입시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재수생 신입생인 ‘예비역’들은 뭔가 달랐어.한번 ‘덴’ 탓인지 열심히 공부했고 매사에 진지했어.기껏 한두살 차이인데도 실패는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이라는 걸 알았단다. 내 성적은 어땠냐고? 학사경고만 면했지 바닥을 헤맸다.진로 걱정도 않다가 졸업 후에 1년간 취업 재수를 했지.입사시험에 10번도 넘게 떨어진 그때 기분이란…. 한 때의 실패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시기만 다르지 누구나 삶의 중간중간에 실패를 하게 돼 있지.중요한 것은 빨리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의 길로 뛰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크고 작은 삶의 고비길에서 가끔 우울해질 때면 나는 포도주를 떠올려.포도를 짠 원액에 햇빛만 비추면 시큼하게 상해버리지만 지하실 어두컴컴한 그늘에서는 그윽한 맛으로 깊어가지.지금의 좌절이 ‘그늘’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더구나. K야,힘내.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야.김요한시인의 ‘지나고 나서야’라는 시를 소개할게.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고통이 나의 인생을 성숙시켰다는 것을/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눈물이 나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것을/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시련이 나의 삶을 단단하게 묶었다는 것을/그래서 나는 알았습니다/나의 길은 소중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허윤주기자
  • 대한매일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할아버지의 오동나무-김은수

    할아버지의 슬레이트 집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있었다.금모래가 질펀한 강변을 따라 녹푸른 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강에서는 늘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헌 장판을 씌워 만든 평상에서 강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집 안팎으로 빼곡이 들어찬 어린 오동나무들을 손질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낙인 것만 같았다.뒷산 꼭대기엔 장송들이 우람하게 서 있고 주위는 온통 솔 향이 넘실대건만 할아버지는 오동나무를 심어 기르면서 집 둘레에 있던 소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리셨다. “소낭구는 햇빛 욕심이 많아서 안돼.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린 묘목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어.”사실 오동나무가 우뚝 자라려면 창이가 할아버지의 큰아드님만큼 나이를 먹어야 할까? 창이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렴풋하게 시간을 재고 있었다.하지만 할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오동나무를 돌보셨다.그런 까닭에 줄기마다 통통하니 물살이 오르고 오동잎은 사뭇 푸르렀다. 촉촉한 바람이 할아버지의 흰 머리칼을 헝클고 지나갔다. “할아부지,우리 공기놀이하자.”창이는 점을 치려고 두 손을 비틀어 모아 눈가에 갖다 대었다. “가새,바위,보재기.”할아버지가 나무 껍질 같은 손을 천천히 내민다. “히히...내가 먼저여.”할아버지는 히죽 히죽 웃으며 조약돌을 풀어 던졌다. 창이는 할아버지와 공기놀이를 할 때면 여간 신이 나질 않았다.할아버지가 너무 늙으셔서 오래 못하는 섭섭함이 따르긴하지만.그럴 때면 창이는 더 하자고 조르지도 않았다.할아버지는 한 번 뱉은 말은 두말이 필요 없는 고집쟁이니까. 할아버지에게 야속한 마음이 먹어질 땐 창이는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고집쟁이 할아방구 같으니라구.”언제인가 뒤뜰 오동나무 응달엔 하얀 꽃이 피어났다.가냘픈줄기 마저 백짓장처럼 하얀 그 꽃은 언제나 고개를 땅으로숙이고 있었다.꽃잎에 이슬이라도 맺히면 창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낙엽들이 흩어져 쌓인 곳에,가을 날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낸 그 슬픔이 남모르게 하얀 수정초로 피어난 것만 같았다.오두마니 그 곳에 앉아 하얀 꽃을 보고 있노라면 창이는 자꾸만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그래서 마당으로 뛰쳐나와 한없이 강을 바라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늘 한결 같았다.샛바람이든 하늬바람이 불든 강물은 새처럼 활짝 펼쳐 올린 날개 선으로 상 하류를 엇갈려 흐르고 있었다. “시간은 유수 같거늘….윗물과 아랫물이 구분이 없으니…. 예전과 지금이 함께 있는 듯하구나.”할아버지가 혼자소리로 하던 어려운 말이 어슴푸레 강바람에 섞여 불어왔다. 할아버지는 아득한 시절을 꿈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을씨년스러이 굳게 닫힌 작은 방으로들어가셨다.창이는 감히 가까이도 못 가보고 방안에서 새나오는 가야금 소리를 훔쳐 들어야 했다.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는 늘 생가지 같은 다리를 길게 모은 두루미가 날개 짓도못해보곤 사라지듯 뚝 그쳤다.소리는 그렇게 끝났는데 할아버지는 방 안에서 감감 나오지를 않으셨다. ‘어두운 방안에서 할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계신 거지?’어느 날 창이는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살금살금 다가가 문 창호지에 귀를 대고 들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방에서 잠이 드셨나?’창이는 검지에 침을 묻혀 창호지 위를 살살 문질렀다.콩알만하게 구멍이 뚫리자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거무룩한 방 안에서 할아버지는 가야금을 끌어안고 고개를숙이고 계셨다.어두움을 삼키는 듯 할아버지의 야윈 어깨는가늘게 떨었다.할아버지도 뒤뜰에 핀 하얀 꽃 같은 아픔을지니고 사시는 가 보았다. 창이는 서럽게 핀 수정초를 쳐다보다간 냉큼 회 벽을 보고돌아앉았다. 돌 틈에서 까만 돌을 주워 들고 창이는 회 벽에 아기 새를그렸다.언제인가 눈 먼 아기 새처럼 울고 있을 때 처음 보는 할아버지는 창이를 따듯한 품에 보듬어 주셨다.그렇게 안긴 인연으로 할아버지는 창이를 양자로 들이시고 큰아드님의집에서 나와,수십 년 전에 살던 시골에서 창이와 함께 지내는 터였다.창이는 아기 새 옆에 키 작은 오동나무를 그리고그 다음,가야금을 드리운 할아버지를 그렸다.얼핏 보면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얽혀 있는 낙서 같지만 창이는 제 마음을담뿍 담아냈다. 신작로까지 내려가는 샛길 귀퉁이는 창이네 마당과 이어져있었다.샛길 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오는길인지 중노인 한 분이 버들잎새를 입 끝에 물고 마당을 기웃거렸다. “계슈우?”중노인에게서 날아온 버들잎이 뱅그르르 돌다간 댓돌,할아버지 신발 위에 살포시 앉았다.할아버지는 방문을 활짝 열고내다보았다. “아이구 이 사람아...”중노인은 할아버지를 보더니 입 언저리에 곰살궂은 웃음을걸고 두 팔을 번쩍 치켜올렸다.그리곤 단풍잎같이 손바닥을펼치곤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사뿐사뿐 춤을 추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중노인의 춤 장단에 맞추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며 버선발로 걸어나오셨다. “기별도 없이 우짠 일이여어?”할아버지는 노랫가락을 붙여 물으셨다. “부평초 같은 이내몸 바람 따라 와았소.”“그려.그려.잘 왔네.”안부를 노래로 물으며 할아버지와 중노인은 얼싸 안고 춤사위를 벌렸다. 창이는 뒤뜰에서 쪼르르 달려 나와 희한한 광경에 입을 벌리고 웃었다. “창이야.어여 절 드려라.할아버지 친동생이나 진배없어.”창이는 중노인을 향해 땅바닥에 털썩 앉듯 서투르게 절을 했다. “네가 바로 갸 구나.”할아버지는 윗도리 속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창이에게 내미셨다. “얼른 아래께에 내려가서 소주 두어 병만 사오너라.”그러자 중노인이 배죽배죽 웃으며 안 저고리에서 술병을 꺼내 들고 찰랑찰랑 흔들어 보였다. “으이구….도깨비 같은 눔.”할아버지의 술판은 점점 여물어만 갔다.한바탕 술판이 무르익지니 강 저편에는 노을이 풀리고 있었다. “성님,가얏고를 다시 만들어보오.”할아버지는 맥없는 한숨을 뚝 떨구었다. “예끼….가당치도 않지.그게 언제 적 일인데….”“성님이 가얏고를 좀 잘 지었소? 형수님이 그렇게 가시지만 않았어도….”고개를 젓는 중노인의 이마엔 금방 움푹한 주름이 패였다. 할아버지는 엷은 노을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창이는 오동나무까지 휘휘 울리다 그쳤던 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를 떠올렸다. 그 옛날 할아버지는 이 곳 강가에서 가야금을 만들며 사셨다고 한다.할아버지의 소원은 영영 시들지 않는 소리 꽃을 피우는 가야금을 만드는 거였다.할머니 또한 가야금 타는 솜씨가 빼어나 두 분은 가난했지만참 행복하게 사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할머니가 세상을 뜨신 이래 할아버지는 두 아드님을 데리고 도시로 나가셨다고 했다.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이곳으로 돌아올 날만을 꿈꾸며 사셨다고 했다. “다시 가얏고를 지을 수만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허나 이젠 늦었네.가슴은 그대로라고 친들 손이 너무 굳어먹어서…쯔쯔.”“그래도 그 솜씨가 어디 갔겠소? 다시 만들어 보오.나두 성님이 만든 가얏고 소리가 그리워서 그러오.”중노인은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가얏고 임자는 제가 다리를 놓아 드리지요.”할아버지는 눈을 감고“꿈이라도 꾸어봄세….”그러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여보게,실은 말일세.내가 그 분을 만난 적이 있다네.”“누구요?”할아버지는 중노인에 귓속말을 했다.그러자 중노인이 눈을크게 떴다. “우륵님을?”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에이….성님도….연세가 드니깐 별 농을 다 치네.허허허….”중노인은 할아버지를 힐끔 흘겨주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초겨울,찬바람이 문밖에서 잠을 깨우는 이슥한 새벽이었다. 창호지에 뿌리는 달빛처럼 아득하게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창이는 잠결에,씨익 미소짓다간 눈을 떴다. 할아버지가 두루마기를 두르고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게 보였다. 창이는 이상한 생각에 조용히 일어나 할아버지를 뒤따라 나갔다.여느 때와는 다른 걸음걸이로 할아버지는 마당을 가로질러 샛길로 성큼성큼 사라졌다.창이도 얼른 샛길 쪽으로 달려갔다.할아버지는 어느새 산비탈로 옷자락을 날리며 오르고 있었다.바람에 날아가 듯한 뒷모습이었다. “할아버지.할아버지.”아무리 불러도 할아버지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꼬부랑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찬바람이 낙엽을 휘날리고 발목은 가시가 할퀴는데 얼마나쫓아 왔을까? 창이는 언제인가 할아버지가 들려준 산도깨비가 떠올라 할아버지를 죽자고 따라 올라갔다.고개 하나를 넘자 장다리 장송들이 하늘을 우러르다 잠이 든 까뭇한 벼랑이 나왔다.거기를 벗어나니 강바람이 불어왔다. 쏴아…. 달빛은 밝기만 한데 할아버지는 큰 바위로 올라가 겨울,강바람을 온전히 맞고 서 계셨다.할아버지의 머리칼과 두루마기자락이 마구 휘날렸다.그 때,창이가 꿈결에서 들었던 가야금 소리가 은은히 스쳐갔다. 할아버지는 바위에서 넙죽 절을 하였다.그리고 강을 바라보았다.그러자 바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가야금의 소리 꽃이 하늘로 강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동녘이 밝아왔다.창이는 할아버지가 되돌아간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해 걸었다.내내 얼떨떨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벌써 할아버지는 두루마기를 벗고 키 작은오동나무 숲을 돌아보고 계셨다.짚 옷이 입혀진 어린 나무줄기 마다 할아버지는 따듯하게 어루만졌다. “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는 겨?”할아버지는 천연덕스레 물으셨다.할아버지의 입김이 소로로오동나무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똥 누러.”차마 할아버지를 뒤쫓아 갔다오는 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창이를 꼭 끌어안으셨다. “내게 가장 큰 바람은 우리 창이가 우람한 오동나무처럼 잘 자라는 거여.”할아버지는 유유히 남한강을 바라보고 계셨다. 창이는 회 벽에 여우비가 내리면강 모래밭에 드리우곤 하던 무지개를 더 그려 넣었다.
  • “삽살개로 외로움 더세요”

    “‘털북숭이’ 삽살개의 재롱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래세요.” 천연기념물 368호인 ‘삽살개’가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의 벗으로 다가간다. 사단법인 한국삽살개보존회는 전국의 양로원과 고아원에생후 2∼4개월 된 삽살개 20마리를 무상으로 분양한다.경기침체로 찾는 사람이 크게 줄어 어느 때보다 쓸쓸하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양로원과 고아원에 삽살개가 사람대신 ‘훈기’를 불어 넣을 것을 기대한다. 삽살개는 성격이 온순해 사람을 물지 않고 잘 친해지며겉모습이 귀여워 외로운 사람들의 애완견으로 제격이다. 지난 85년부터 멸종 위기를 맞았던 삽살개를 복원하고 보존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 단체 부회장 하지홍(河智鴻·48·경북대 유전공학과) 교수는 “그늘진 환경에서 어렵게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삽살개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삽살(揷煞)은 ‘독한 기운(煞)을 퍼낸다(揷)’는 뜻.때문에 ‘액운을 막는 개’로 알려져 있다.복스러운 털이 많아 ‘더펄개’로도 불린다.하교수는 지금까지 300여마리를전국 단체와 개인에게 분양했다.경북 경산시 집단 사육장에서는 지금 400여마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지난 98년에는 독도에 3쌍이 보내져 국토의 동쪽 끝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경찰들의 ‘친구’가 됐다.또 지난해 10월에는 자폐아동과 정신분열증상을 가진 성인들의 ‘치료견’으로 전국 장애복지시설에 10마리가 기증됐다. 보존회는 12일까지 분양을 희망하는 양로원과 고아원의접수를 받은 뒤 서류심사와 현지 실사를 거쳐 오는 17일분양자를 발표하고 19일 분양한다.(053)953-0370. 조현석기자 hyun68@
  • [대한광장] 패거리 문화와 얼굴

    대학 다닐 때 지금의 나만한 나이를 먹은 여자를 보고서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사람 같지 않다는 느낌은 한 인간이 한 인간이게 하는 얼굴의 표정과 개성,정체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와 억압적인 독재 하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자기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아줌마들의 슬픈 현실을 철없는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이다.한 노인이 군인들이 가득 탄 버스에 타면서 ‘사람이 한 명도 없네'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에서 획일화된 군인들 또한 같은 운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어쨋든 그때의 기억 때문에 요즈음 젊은이들을 만날 때면 꿈과 생기를 잃어버리고 시류와 이해관계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얼굴 없는 존재로 보이지는 않는지 새삼긴장하게 된다. 이제 세상이 많이 달라졌으니 사람들은 자기만의 얼굴을 갖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공적인 부분에서는 답보상태인 것 같다.개인적인 취향이나 사적인 관계에서는 자기 스스로의 의견이나 안목이 뚜렷해졌지만,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선택에 있어서는그 사람의 연고를 알면 더이상 물어 볼 것도 없다.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안목이나 합리적인 판단은 존재할 틈이 없이 집단정서와 패거리의 이해관계에 자신을 그저 내맡기는 것이다.그다지 큰 이해관계를 가질 것 같지 않은데도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한데도)사람들이 이렇듯 자기자신을 포기하고 집단정서 속에 안이하게 숨어버리는 그 뒷면에는,집단에 대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나서는 자들을 집요하게 왕따시키고 처단하는 폭력적인 위협이 자리잡고 있다.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자발적인 신념의 외양을 갖추게 되면 굳이 위협을 할 필요도 없이 집단정서는 확대재생산되게 된다. 배타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관철하려는 패거리 이기주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갇혀 있는 상황인지라,자기자신만의 얼굴을 간직해 나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지역감정의 역풍을 가슴으로 안고 부산을 지킨 노무현 의원이나,당론으로부터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김원웅 의원과김홍신 의원,오랜 세월 굳어진 정치관행을 벗어나기 위해 정치개혁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오고 있는 민주당 젊은 의원들의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건강보험과 관련한 집단이기주의적인 대치상황에서 이해관계를 훌쩍 뛰어넘는 움직임을 보여준 일부 의사들이나,각 직역에서의 개혁과정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면서까지 패거리이기주의를 넘어서서 대승적으로 행동해온 사람들 또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지켜가기 위한 아름다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그뿐인가.공동체의 연대를 파괴하는 패거리 정서와 거리를 두고 어렵게 자기 선택을 지켜가는 모든사람들이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분들이라 믿는다. 합리적인 자기 규준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터무니없는 지역감정이나 무조건 팔이 안으로 굽는 직역이기주의나 학연,연고에 휩쓸리지 않는다.이렇게 자기 안목을 가지고 자기 중심을 지키는 건강한 시민들이 많아져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킬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의견들이 백가쟁명하면서도 합리적인 토론으로 조정돼 가는 생기있고 성숙한 사회가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 당장은 천편일률적인 집단정서를 자극하면서적극적으로 악용하는 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출세한다고 해도그 인생은 얼굴 없는 자가 남의 얼굴을 지우면서 산 쓸데없는 인생밖에 되지 않는다. 마흔의 턱을 넘어서면서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고민으로 주름이 깊게 팬 얼굴이든,중노동으로 핏기없이 핼쑥한 얼굴이든,소외돼 그늘진 얼굴이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다만 나 자신이 또 우리 모두가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을 일 대일로 마주하고 당당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자신만의 얼굴을 갖게 되기를 진심을 실어 빌어 본다. ▲박주현 사회평론가·변호사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1)

    개자리를 찾아가는 밤길은 온통 어둠뿐이다.먹빛을 겹쳐바르고 곧 쏟아져 내릴 듯 낮게 가라앉은 하늘,그 사이로우쑥우쑥 솟은 산줄기들이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좁은 산길을 에워싸고 있다.길로 뿌려지는 차 불빛이 어둠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다가 이내 끊어지고 만다.몇 걸음 달려가면이내 길은 먹빛의 산자락 속으로 사라졌다. 실로 오랜만에나는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백미러는 무엇 하나 반사해내지 못했다.어둠만을 담아내는 검은 거울.간혹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어느 막다른 골짜기로 들어가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어둠 속에 20여 년 세월 저쪽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 역시 밤길에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그토록 철저하게 잊으려 했던 그곳을 찾아가 무엇을 할 것인가,생각해 보면 막막할 뿐이었다.막막하기로는 여행이 될수 없는 이 번 여정 내내 그랬다.그저 발길 닿는 대로 흐르다,한번쯤은 길 위에 선 나에게 나의 길을 묻고 싶었다. 서해안에서 시작된 여정은 남해안을지나 동해안으로 이어졌다. 포항에서부터 바닷물에 철썩이며 이어지는 7번 국도에 올라섰을 때도 나는 이번 여정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서울을 떠난 지 9일이 지나고 있었다.하루가 남았다.아내는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여기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어요.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진부령을 넘어서울로 돌아가면 아내와 약속한 열흘 안에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차를 가지러 온 처제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를 타면 아내의 말대로 만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삼척항 뒤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는데,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부르르 떤다. 아내였다. 어디예요? 삼척? 당신,하루밖에 안 남았다는 거 알고 있죠. 내일 밤 12시까지는 도착해야 되는 거 잊지 말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당신, 괜히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말아요.우리가 당신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것을 이해해줬으면 해요. 아내가 집어낸 엉뚱한 곳은 마하의 개자리다.아내는 우리라고 말했다.나나도 더 이상 아빠를 기다리지 않아요,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내는 항상 우리와 당신으로 나누었다. 나는 식당 문을 열다말고 되돌아선다.차문을 열자 억눌러두었던 멀미가 울컥 올라온다.길에 서서 바닷바람을 마셔본다.겨울바람에 언 비린내가 묻어있다.속이 다시 출렁인다.7번 국도를 타면 통일전망대까지 바다에 젖으며 가야한다.바닷물처럼 출렁여 흔들리며 갈 자신이 없었다.나는삼척에서 7번 국도를 버렸다. 42번 국도를 타고 백복령을 넘었다. 정선 여량에서 잠시길을 멈추었다.오래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었다. 송천과 골지천이 어우러진다는 아우라지.우리는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자고 했다. 강변의 민박집에서 나는 아내에게 개자리에서의 내 어린 시절과 홀로 강물에 사무쳐 울던어머니를 이야기했다.지루한 아내는 잠을 청하며 말했다. 피곤해, 옛날은 옛날이지 뭐.나는 밤새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뒤척였다.나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우리는어우러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새벽을 맞았다. 아우라지 강물은 그 때와 변함 없이 흐르고 있었다.아내와 나의 두 물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로 뒤섞이며흘러보지 못했다.나는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내 기억들을 모두 털어 버리듯 마하까지 한달음에달려왔다. 마하까지 이어지던 포장도로가 끊어졌다.이제부터 동강까지는 개울을 따라 자갈밭 위로 덜컹거리며 가야한다. 옛날 미탄 양조장에서 막걸리 배달차가 드나들던 길이다. 하얀 고무 막걸리 통은 창리천과 동강의 합수머리인진탄나루에서 배에 실려 강 건너 마을로 배달됐다.진탄나루 뾰족바위로 올라서자 상류에서 바람이 밀려온다.차가운강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대며 하류 쪽으로 휩쓸려간다.상류 쪽 강가로는 아까부터 반딧불이 만한 불빛 하나가 기우뚱거리며 강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진탄나루에서 문희마을 쪽으로 희미한 비포장도로가 나 있다. 예전엔 사람 하나 다닐만한 토끼길이 고작이었다. 내심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강을 만나면 이내 돌아서게될 것이라 짐작했다.이쯤에서 길을 접고 뒤돌아서면 늘가슴 한켠에서 펄럭이던 그곳에 대한 회오리도 멎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개자리에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모를일이었다.하지만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작은 불빛이 위안이 된다.상류 저 멀리로 기우뚱대며 가물거리던 불빛이 산모롱이를 돌았고,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문득 강물에 깃드는 불빛의 여운.어둠 속의 손짓처럼 희미하다. 길은 얼어 있었다.바퀴 밑에서 얼음이 버적버적 깨지는소리가 들려온다.나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 황새여울의 자갈밭을 지난다.바퀴 밑에선 쟈그랑쟈그랑 잔자갈 부딪치는소리가 요란하다.황새여울을 지나자 협곡 사이의 무당소가언뜻언뜻 드러난다.길에 선다는 것은 매순간 어디로 갈 것인지를,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갈등의 시간이다.회사에서 밀려나 명예퇴직을 할 때도,아내에 등 떠밀려 이민서류를 앞에 놓았을 때도,이것도 그저 일상이려니했다. 갈등의 시간 앞에 온전히 앉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에몸이 부르르 떨린다. 불빛에 놀라 깨어난 어둠들이 뭉텅뭉텅 잘려 차창을 스치며 뒤로 밀려난다.갑자기 차가 헛바퀴질을 해대며 소리를지른다.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백운산 자락이 움찔움찔 놀란다.무당소 앞 자갈밭에 빠져 얼마쯤이나왕왕거리며 헛바퀴질을 해댔던가.랜턴 불빛이 둔덕에서 어둠을 휘휘 내저으며 다가오고 있다. “급할수록 조바심을 놓아야지요.” 남자가 파헤쳐진 모래밭에 마른 쑥대를 깐다.조용한 말소리와는 달리 익숙한 손놀림을 하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차에서 내린다.발을 디디자 살짝 언 모래밭 밑으로 물컹,하는 감촉이 전해온다.무당소 앞까지 가보겠다고 드문드문자갈이 박힌 모래밭으로 차를 들이민 게 잘못이었다.나는하늘을 올려다보며 북극성을 찾아본다.북극성은 바다나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과 세상의 지루하고 번잡한 길을 떠도는 자들이 길을 묻는 별이다.옆자리에 펼쳐놓은 책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남자가 그 글귀를 읽었을까? 헛바퀴질을몇 번 해대던 차는 쑥대를 짓이기며 자갈밭을 나온다. 남자가 차안에서 손짓을 한다.남자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자연스레 그의 손님이 될 준비를 마친 느낌이다. “여긴막다른 길입니다. 여기서 하룻밤 묵어 가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강가 둔덕의 밭 사이로 길이 나 있다.밭은 묵정밭처럼 쑥대가 우거졌고,두어 채의 집들은 빈집인 듯 불빛이 훑고 지나가기가 무섭게 깜깜해진다. “겨울이면 민박을 치던 이들도 다 떠나고 개자리는 빈동네가 됩니다.” 나는 그가 개자리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개자리,하고 중얼거린다.남자가 흘끔 나를 쳐다본다. 빈집에서 튀어 나온 들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산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흐릿하다.습기가 어린 차창이 뿌옇다. 개자리는 이 강줄기에서 가장 살기 좋은 텃자리다.내가 이곳을떠나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어머니는 가장 따뜻한 집에서 한 세월을 보냈다.한겨울에도 개가 해바라기를 하며 팔자 좋게 엎드려 낮잠을 즐긴다는 개자리에서. “저도 민박이랍시고 명함을 걸어두었더니,사람들이 저더러 개자리민박집 문씨라 부르더군요.” 개자리집은 옛날 그대로였다.호박돌로 쌓아올린 키 높은봉당이며 울퉁불퉁한 마루며 내가 쓰던 문간방의 아궁이며.마당 한켠에 서 있던 대추나무 자리에 민박 손님을 받기위해 가건물을 들어앉힌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어머니와살던 옛날 어느 시간처럼 문간방과 안방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저 불 속에 사라져버린 나를 던져버릴 수 있다면….내가 짜왔던 삶의 무늬 위에 엎질러진얼룩들을 골라낼 수 있을까.겨울밤 어머니와 화롯가에 앉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감자 껍질을 까고,감자 한 개를다 먹을 때마다 손바닥을 탁탁 마주치며 미련을 털어 내던어린 나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낮은 문설주에 머리를 숙이며 들어간 안방도 그대로다.군불에 익을 대로 익어 누렇게 변해버린 아랫목 장판도 옛날의 그것처럼 눈에 익었다.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들려왔고,순간 나는 어머니가 밤참을 만드시는가 하는 헛생각에 웃음을 흘린다.벽에 걸린 투박한 괘종시계가 막 열두 시를 치기 시작하자 갑자기 낯설어져 나는 우두커니 서있다. “올창묵이나 차려봤는데,입에 안 맞으면 옥수수막걸리나한 사발 하시지요.” “조금 전에 들어오신 모양이죠?” 나는 진탄나루에서 상류로 올라가던 불빛을 생각하며 묻는다. “그랬습니다.한잔하시고 문간방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빈방에도 불을 지펴두는 모양입니다?” “가끔,봉두난발의 어수선한 마음으로 천리 먼길 헤집어오는 손이 있지요.” 살얼음이 동동 뜨는 옥수수막걸리는 새큼하면서도 텁텁한맛이 시원스럽게 퍼진다.그는 숟가락 가득 뜬 올챙이묵을후르륵거리며 맛있게 먹는다.심심해서 엊그제 만들어봤는데,옛날 맛은 아닌데요.후르륵거리는 소리에 잘려나가는그의 말은 쥐어짜면 금세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처럼 젖어 있다. 여름철 옥수수가 누릿누릿 익어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올챙이묵을 쑤었다.옥수수 국수인 셈인 올챙이묵을 어머니도올창묵이라 불렀다.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옥수수 알을 따서 맷돌에 곱게 갈았다.이어 고운 체에 밭아서 가라앉힌앙금을 얻을 때면 허리를 펴고 등허리를 투덕이며 강물을하염없이 바라보았다.솥에 넣고 된죽을 쑤느라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을 때까지 강물 바라보기는 그칠 줄 모른다.찬물을 그득하니 받아놓은함지박에 구멍 숭숭 뚫린 묵틀을걸어놓고 나서야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은 조금 가신다.야야,올창묵 먹자.니라두 실컷 먹었음 좋겠구나.느 아부진올창묵이라믄 자다가두 벌떡 일어났다야.찰기가 거의 없는올챙이묵은 찬물에 떨어져 뚝뚝 끊어지며 올챙이가 유영하듯 가닥가닥 흔들렸다.호박나물이며 잘게 썬 김치를 소로얹고 양념간장을 쳐도 내 그릇에서는 올챙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아버지 생각으로 만드는 어머니의 올챙이묵이 나는 싫었다.올창묵은 야,그저 한 숟갈 가뜩 떠 넣어도어데 우물거릴 새가 있는 줄 아나.후르륵, 후르륵 하민서올창묵을 목구멍에 넘기구 난 다음참에 찾아드는 덤더 무리한 맛을 알어야 올창묵 맛을 제대루다 아는 거여. 니가,언제쯤이믄 이 덤더무리한 맛을 알까. 어머니로부터 개자리집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늘 달 밝은밤이었다.마당 한켠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대추나무에 걸린 달 그늘이 덮은 마루는 어둠침침했다.무릎을세워 턱을 고이면 어린 내 등은 새우처럼 휘었고,이미 할머니처럼 늙어버린 어머니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그런 날이면 처마 밑까지 내려온 산자락은 한여름에도 겨울에나어울릴 법한 바람을 쌩쌩 날려보냈고,그바람에 물푸레나무이파리들이 묵정밭 쑥대처럼 서걱이며 마구 흔들렸다. 그런 밤이면 나는 왠지 모를 무섬증에 떨며 어머니의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따사로웠다. “개자리….지낼만하신 가요?” “어디서 꼭 한번은 만났던 분처럼 낯이 익군요.” 가부좌로 앉은 민박집 문씨는 엉뚱한 한마디를 던져놓고는 말이 없다. 그는 몇 번 허허 웃었고,고개를 몇 번 갸웃거린다.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내가, 이것도 괜한 질문이 되는 모양입니다, 하고 겸연쩍어하자 슬몃 말꼬리를잡는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2)

    “지낼만 하다 안 하다 그런 구분을 버렸습니다.그저 내마지막 정처(定處)이려니 하는 거지요.한 십 년이 돼 가나요.처음엔 묵정밭에 흑염소를 치며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이젠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다하는 게 옳겠지요.그동안 내 대화상대라는 것이 강물이거나 그 물결이거나 그아래 조약돌이거나 그 사이 물고기들이었으니….” 나도 이곳에서 강물과 대화하던 시절이 있었다.어둑어둑산줄기와 물줄기를 덮어먹는 어둠이 밀려드는 저녁이면 나는 강으로 내려갔다.그곳에서 어린 나는 밤새 내 곁을 스치며 흘러가는 강물을,몇날 며칠 강물에 씻겨도 사라지지않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을,그리고 쿨럭쿨럭 마른기침에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는 강의 새벽을,그것들에 홀로 사무쳐밤을 새워 울어야 하는 소쩍이의 서러움 따위를 생각했다. 매일 저녁 강에 나가 새롭게 흘러온 강물을 만났다.나는그 저녁 무렵을 좋아했다.저 강 양편의 산줄기 밑자락으로거뭇거뭇 이내가 밀려들고, 강 수면으로 하루살이가 발버둥을 치고,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시간.나는 그 시간이면늘어딘 가로 떠나고 싶어 강에 나가 종이배를 띄우고는 했다. 어떤 날은 내 고무신까지 띄워 보냈기에 어머니가 미탄 장에 가서 사온 신발을 내 발에 억지로 꿰어맞출 때까지나는 맨발이었다.그 무렵 나는 눈치챘다.이내가 곧 어둠이되어 강을 덮어먹는 먹장구름처럼 밀려들 때면 이 강의 저녁을 견디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한 짓이라는 것을. 그 날,그러니까 어머니 곁에서 아예 사라지겠다고 처음으로 훌쩍강을 등지던 시간도 저녁쯤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어머니는 이 개자리집이 마지막 거처였습니다.” 술잔을 들다 우뚝 멈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는 개자리집에서 젊은 시절부터 강을 오르내리는뗏꾼들을 상대로 주막을 열었다. 뗏목은 아우라지를 지나조양강을 거쳐 밤이나 낮이나 떠내려왔다. 뗏꾼들은 험한황새여울을 지나가기 위해 무당소에 이르면 강변에 뗏목을 댔고, 개자리주막으로 올라와 술을 청했다.좋은 시절이었다. 강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마루 밑의 개도 낮술에취해 어슬렁거리다 잠들었다 했을 정도로 흥청거렸다. 뗏목의 끝물이었다. 궁궐떼는 물론이고 서까래떼도 보기어려웠던 뗏목 막바지였다.하루종일 지켜봐야 겨우 부동떼나 화목떼 서너 바닥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나귀에봇짐을 싣고 부지런히 강마을을 찾아 강을 오르내리던 한남정네가 그 어름에 이 짓도 마지막이라며 개자리주막을스쳐갔다. 칠족령을 넘어 상류의 강마을 찾아간다는 그 남정네는 이튿날 믿지 못할 강바람 같은 기약 하나를 떨구고갔다.이번에는 기어코 이 강의 최상류 오대산 우통수까지다녀오겠다고 했다.그리고 한세월 개자리에서 등 붙이고살겠다고 했다.하지만,아무리 먼 길이라 해도 한 달포면우통수를 돌았을 터이고,또 한 달이면 강을 되짚어 내려왔을 시간이 흘렀건만 코끝도 보이지 않았다.남정네는 징용끌려가 감감무소식인 남정네들만큼이나 돌아올 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2년이 지났다.강에는 날마다 남정네의 소식을 묻는 물푸레나무 나뭇잎배가 띄워졌다. 3년으로 접어들던 어느 보름달 밝은 밤이었다.마루 밑 누렁이가 달을 베어 물고 컹컹 짖어댔다.한 사내가 절퉁절퉁몸을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털푸석 주저앉은 사내가 다짜고짜 청했던 물 한 대접을 들이붓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문지방을 넘었다.사내야 그 남정네가 맞건만 그 좋던 풍채는 다 어디에 떼어먹히고,머리는 쑥대머리요,걸친 것이라곤 어느 집 똥수세미요,다리 한짝은 뒤틀린 싸릿가지 모양으로 배배 꼬였다. 반딧불에 글을 읽어도 좋았을 눈빛이었건만 꾸물꾸물 진물이 배어나는눈자위엔 쉬파리만 닝닝대며 꼬여들었다. 이 강의 시원이우통수가 아닌 검용소란 말이여? 밤낮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정성이 지극했음인지,남정네는 일년을 반 토막낸그 여름에 훠이훠이 강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회복했다.그런 그가 가을 무청을 엮어 뒤꼍 바람벽에 주렁주렁 시래기를 매달아놓고는 또 길을 나서겠다고 말했다. 고향 청풍에 다녀오겠다는 남정네의 말은 아직 색깔 하나변하지 않았던 무청처럼 시퍼렇게 당찬 것이 믿을 만했다. 내 맘에는 그래도 느이 아부지가 첨부텀 끝까정 애오라지내 남정네였다야.니는 느이 아부지를 그래 빼다박았으면서두 성정은 으째 그리두 다른지….어머니의 이야기는 늘 그사람을 내 아버지로 오금박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남정네와의 언약을 무당소 깊은 강 밑에 갈무리해두었다.하지만 그뿐이었다.강바람을 타고 오르내린 소식몇 점이 무당소를 회오리쳐대다가는 떠내려갔을 뿐이다. 한 뗏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소 앞에서 굿을 하던무당이 굿판에 도취되어 스스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렸다는 무당소.어머니는 밤을 낮 삼아 무당소 기슭에 넋을 놓고 주질러앉았고,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었다.강물은 어머니의 돌팔매질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푸념이 지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뗏목아라리를 부르며 강을 쓰다듬었고 자신을 위로했다.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잠시 잠깐이라네.우리 맺은 언약이 강물에 흘러갔나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나를 보세요,함께 갑시다.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무당소 황새여울에 떼를 띄워놓았네.무당소 개자리집아 술상 차려 놓게나. 내가 흥얼거리던 뗏목아라리를 따라 부르던 그의 눈빛이먹먹해져 있다. “충주댐 아랫마을에 살았던 때가 있었지요. 저녁이면 버릇처럼 충주호에 낚싯대를 담갔습니다.간혹 낚시를 따라온어머니가 이 아라리를 불렀지요.아버지가 부르던 소리라며.호수에 수장된 어머니와 나의 고향이 낚싯바늘을 물어줄리도 없었건만,우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흘러간 뗏목아라리를 부르곤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나는 끔찍한 선물을받았습니다.” 그의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은 뱀장어였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에는 뱀장어가 많이 살았다. 하지만 고향남태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충주호에 갇힌 뱀장어는 사람 팔뚝만큼이나 살이 뒤룩뒤룩 올라 있었다. 그 날, 그는낚싯대를 꺾어버렸다.그 뒤부터 밤이면 지붕 위 허공 어디에선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선 살찐 뱀장어가 뒤척였다. 강에서 살던 뱀장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무려 3,000㎞나 떨어진,자신이 태어났던 태평양 먼바다로 헤엄쳐 가야한다.뱀장어는 자신의 알이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칠흑의 어두운 그믐날에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최후를 맞이한다.다시 태어난 뱀장어 치어 댓닢뱀장어는 바다 물결에 실려 한반도까지 오며 실뱀장어로바뀌어 봄이면 서해와 남해로 흘러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이것이 뱀장어가 가고 싶은 길이다.하지만 이땅의 강은 이미 뱀장어의 강이 아니다.하구둑이나 수중보가 가로막고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빈 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인다. 술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빈 주전자에 옥수수 막걸리를 가득 채워 들어온다. 오래도록 말없이 천장을바라보던 그가 입을 연다. “이 강물에 어머니를 잃고, 나는 정처 없는 떠돌이가 되었지요. 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잃는 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길을 잃을 때 길의 본질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백척간두의 순간에머무르고자 했습니다.잃어버린 길을 잇기 위해 동강으로들어왔다고 하면 그대의 궁금증이 조금 풀릴는지요.” 그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그 낭떠러지의 허공이 가난하게떠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여백이 되는지를,그 여백은 정처를 정하면 충만해지는지를.하지만 나는 말로 만들어내지못한다. “내 어린 시절의 강에는 뱀장어보다 열목어(熱目魚)가많았습니다.”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더 찬 상류로상류로 올라가야만 하는 물고기.어린 내 친구들은 그 물고기를 엿메기라 불렀다.우리는 싸리나무 낚싯대로 고등어만한 열목어를 낚아 올리고는 했다.그 엿메기를 잡는 날은최고의 낚시꾼이 되었다.개울 한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열목어를 낚아채다 보면 낭창낭창한 싸리나무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했고,물고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 속으로 풍덩빠지기도 했다.그래서 물고기를 잡다가 열목어도 잡지 못하고 물에 빠지면 엿메기를 잡았냐며 놀려대기도 했다. 어린 내가 어찌 열목어의 열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살다보면 세상에는 열을 올려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그래서 저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어찌알았겠는가. 나는 이 강의 개자리집에 돌아와서야 내 눈에식혀야 할 열이 참으로 많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의 바짓가랑이에 휩쓸려온 바람에는 저 먼 북태평양 베링해의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연어를 만나기 위해 남대천에 가본 적이 있는지요. 10월의 남대천에는 베링해를떠나온 연어가 산란절식(産卵節食)으로 상류로 거슬러 오릅니다. 섬세한 지도를 그릴 줄 아는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떠올리고,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해낸답니다.그대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이곳까지 왔는지,그대는 어느 시절 어느 세월을 휘돌아 여기까지 거슬러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쩌면 내 대답을 듣기 위해 청한 물음이 아닐 수 있다.나는 길을 나서기 전, 나침반으로동서남북을 가늠해보고 지도를 펼쳐 길의 처음과 끝을 짚어보며 준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어디서 휘어져 산모롱이를 돌아나가고 어디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하는지를 살피지 못했다.길에 서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낯선 길에서 깃들 곳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힘겨운가를,얼마나 서러운가를…. 한강 하류에 사는 동안 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해 저녁이나 밤이면 집으로 돌아왔으며, 일요일이면 밀린빚을 청산하듯 하루종일 잠을 잤으며, 우리 가족은 살강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대로 지낼 만한 사이였다. 그도시에서의 20여 년은 그렇게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즐거움과 적당한 상실감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이었다.그 시간이 얼마나 밍밍한 시간,아니 세월이었는지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 개자리로부터 나는 철저히 도망치려했으며 깨끗이 잊고 싶어했다. 아내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받아들였다. 아내가 딸 나나의 교육을 위해 불현듯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베링해의 물결은 지금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아내는 5년 전 캐나다로 떠난 처형네를 찾아갈 것이다. 처형네 세탁소에서 한 3년 다림질을 하다 보면 이 땅에서의 기억은 다 증발될 것이다.아내는 나의 옛날을 다 증발시키고 싶어한다.나나를 위해 내일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 수는 없는거야? 아내는 나의 정처를 모른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 연락할 수 없다.이곳은 핸드폰 불통지역이다. “어딜 가나 적응하려 애쓰는 건 정신보다 몸이 먼저지요. 하지만 상처를 만나 먼저 시름에 겨워하는 것은 정신이 아닐는지요.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강물처럼 소리소문 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더군요.” 어머니는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얻은 자식 때문이었는지멍울은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뗏목이 사라지고,남정네가사라진 강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산자락 비탈밭을 일구기시작했다.이 일대 밭은 모두 어머니가 화전으로 일구어냈다.밤이면 산비탈에선 파란 도깨비불이 일었다.큰물이 지는 여름이면 무당소에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새 꾸르릉꾸르릉 이무기 우는 소리가 강을 흔들어댔다. 한낮에도 산그늘이 지는 무당소 뼝대에서는 뻐꾸기가 무섭다며 뻐버꾸뻐꾹 울어댔다. 뻐꾸기가 우는 여름이면 어머니는 말했다. 세월처럼 무서븐 게 없다드니 참말이네.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어머니는허물어지기 시작했다.밭은 하나둘 묵정밭으로 변해갔고,개자리집에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산다는 소문으로 흉흉했다.아랫마을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밤이면 승냥이처럼울어대는 어머니의 곡성이 강을 타고 내려가 아랫마을을하얗게 흔들어 깨우곤 했다.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더먼 곳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당소로걸어 들어갔다. “강이 꽝꽝 얼었어요. 누치도 잡고, 보고 싶다던 무당소밑바닥도 실컷 봐요.…,먼저 나갑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밤새워 술 마신 티가묻어 있지 않다.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이불 속으로묻는다.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아내는 내가 돌아가지않아도 나나의 손을 잡고 예정된 시간에 공항으로 나갈 것이다.나는 이불 속에서 머리를 흔들어본다.머릿속은 끊임없이 윙윙 울리고 있다.겨울 하늘 높이 날아올라 팽팽하게당겨진 연줄이 우는 소리 같다. 어젯밤 그는 말했다.밤새 강이 얼 것이며,날이 새면 누치를 잡으러 가자고.요즘도 1월이면 무당소는 물론이고 1㎞상류까지 얼어붙는다고 했다.이 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는누치는 100마리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올 때도 있다.지난 겨울엔 강바닥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누치떼가 올라왔다.겨울이 되면 찬물에 산란하기 위해 상류로올라오는 것이다.얼음썰매를 타고 누치를 찾아 강을 오르내리며 이마에 땀이 배어날 시간이 흘러갈 즘이면 강바닥을 뒤집는 누치떼를 만날 수 있다.도끼와 작살을 움켜쥐고얼음 위를 질주하며 누치떼를 쫓다보면 놈들은 숨을 헐떡이며 꼼짝도 못하고 강바닥에 엎드려 있다.누치는 얼음장아래 찬물에서 쫌만 움직여도 곧바로 뼈 가운데로 얼음이생겨 오래 달릴 수가 없어요.누치가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서 있을 때 도끼로 얼음을 깨고, 작살로 단방에 찔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북진나루.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그는 마당에 없다.저 아래 무당소에서 움직이는 그가 조약돌처럼 작게 보인다. 개자리에 앉은 내 몸도 이제는 보호색을 띠어 강변의 자갈밭을 닮아있지 않던가요.그의 말처럼 그는 개자리에 앉아 조약돌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어젯밤 그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그도 어쩌면 슬픔하나를 갈무리해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는 어머니를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고 말했다.충주댐이막히면서 청풍의 절반쯤은 물에 잠겼지요.하지만 남한강뱃길이 있던 시절엔 제천의 중심이었습니다.서울에서 올라온 돛단배들은 소금에 절인 바닷물고기며 온갖 물건들을그득그득 싣고 북진나루로 들어왔지요.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봇짐장수였던 우리 아버지는 서울 물건들을 사서 나귀에 싣고 남한강 강마을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그 강물에아버지를 빼앗겨버린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기며칠 전에야 말했지요. 동강에 한번 가보자.느 아부지 여즉 거서 잘 살고 있는지? 강은 정말 꽝꽝 얼어붙었다.그는 누치를 찾아 상류로 더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군데군데 얼음구멍을 낸 흔적이보인다. 얼음은 유리처럼 맑아 무당소의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물고기의 비늘이 얼핏 물 밖의 햇살을 받아내며 반짝 물살을 뒤집는다.그 물고기는 어머니의 하얀 버선을 닮았다.그토록 보고싶었던 무당소의 강바닥.하지만 어제의 그 강물은 이미 떠나고,얼음장 밑으로는 오늘 지금의강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거울처럼 맑은 강물 위에 내 얼굴을 댔다.어머니의유품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나를 쫓아온 댓돌만한 거울이그랬듯 얼음거울 역시 나를 다 비추지 못한다.하지만 나는알고 있다. 아무리 비춰 보아도 내 안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어린 시절의 내 강물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내 몸은 메말라 있다는 것을. 나는 몸을 뒤집어 무당소에 눕는다.하늘은 눈이 시리도록푸르다.그곳에서 깨알같던 점 하나가 점점 커지며 검은 불덩이로 변해 무당소로 떨어지고 있었다.내 이마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다.내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간다.곤두박질치던 그것은 무당소 바위벼랑에 다다른 순간,다시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솟구친다.교미 중인 검독수리 한 쌍이다.어머니는 무당소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던 그 해 겨울,내게 말했다.언제 청풍 북진나루에 가보거라.느이 아부지 거서 여적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비틀걸음으로 상류로 오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