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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정본 백범일지 복간 이기웅 열화당 대표

    [김문이 만난사람] 정본 백범일지 복간 이기웅 열화당 대표

    인생의 발걸음은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곡을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기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태어나 평생을 사는 동안 누구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길 것이다. 때문에 기록은 자연스럽게 후대의 밑거름이자 귀감이 되는 일이다. 비록 보잘 것 없다고 하더라도 진실된 노력과 성찰의 흔적이기에 소중한 유산으로 남게 된다. 지난달 14일 강릉 선교장의 열화당에서 ‘백범일지를 어떻게 복간할 것인가’에 대한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기웅(74) 열화당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위대한 기록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우리 시대에 용기를 주는 제 목소리 그대로 염(殮)하려 하니 많은 성원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백범일지’는 알다시피 김구 선생이 항일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생사를 기약할 수 없어 유서 대신으로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경륜과 소회를 기록한 것이다. 장대한 감동이 있기에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읽히는 훌륭한 저술이다. 그렇다면 ‘백범일지’ 복간작업은 언제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지난달 25일 경기 파주시 출판단지 내에 있는 출판사 열화당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헌책을 옆에 놓고 열심히 필사를 하고 있었다. 내용을 물었더니 최초의 한국계 미국 작가 강용흘이 쓴 ‘초당’(1947년)이란 책을 보여준다. 그는 “필사를 하다 보면 초조해지지 않고 앞서 살다간 인생 선배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 같은 책들을 읽으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느냐”며 웃는다. 그러면서 2년 전 설립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 대해 설명을 한다. 이 학교는 세종 이도의 디자인 정신을 섬기며 타이포그라피를 가르침의 바탕으로 삼는다고 했다. 서로 경쟁하지 않으며 넓게 배우는 한배곳(대학), 실무프로젝트를 통해 배우는 더배곳(대학원)이 어우러진 자율적 공생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라는 것이다. 그의 사무실 출입구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고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노자 사상에 나오는 말이다. 대안학교 설립취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 대표는 “김동리 선생이 27세 때 쓴 글씨인데 당시 받을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보니 아주 좋다”고 말한다. ‘백범일지’ 복간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표(師表)이신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간행돼 온 역사를 보면 우리는 하나의 소중한 기록이 여러 환경과 여건에 따라 그 본의가 잘못 전달되고 있음을 목격했고 이것이 역사의 기록으로 전해질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라도 백범의 숨결이 그대로 담긴 육필원고와 파란만장했던 일생의 자취를 정성껏 염하는 심정으로 ‘정본 백범일지’를 복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일찍부터 그런 생각을 했지만 출판단지를 조성하는 일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지금에야 복간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백범일지’는 광복 후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국사원, 1947년)라는 표제로 출간된 것이 그 효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본을 현대문으로 윤문하는 과정에서 친필 ‘백범일지’와는 그 내용과 표기방법, 서술형식이 다른 판본이 됐다. 이후 1994년 백범의 후손 김신 장군이 친필 원본을 공개하고 ‘친필을 원색 영인한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집문당)가 간행되면서 친필 원본이 일반 독자에게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친필 ‘백범일지’는 그 위상에도 불구하고 영인본이기에 일반 독서를 위한 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촘촘히 써내려간 백범의 달필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글씨가 바랜 곳은 판독조차 힘들고 결락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이 대표는 책의 형식 면에서 세로짜기, 한자의 사용 등까지 그대로 전달해 백범의 숨결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반듯한 판본, 즉 진정한 의미의 정본을 복간하겠다고 말한다. 복간분량은 모두 5권이다. 제1·2권은 친필본 상·하권과 구술본 하권 등을 원본의 한자와 한글을 그대로 표기한 세로짜기 형태다. 제3권은 원본 내용을 한글 위주 현대어로 쉽게 풀어 낼 예정이다. 제4권은 친필본(보물 제1245호)을 원래 형태로 영인한 복각본으로, 제5권은 김구 선생의 사진 화보와 연보를 포함한 자료편으로 펴낸다. 선교장 열화당이 생긴 지 200년이 되는 내년에 복간을 완료할 예정이다. 그가 정본 ‘백범일지’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기록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평소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갑골문자와 수메르 문자 등이 생겨나면서 뭔가 기록하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그 문자가 역사를 거듭하면서 일정한 종이책의 양식을 창안해 가다듬어왔고 우리는 인류 유산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인 기록문화, 책으로 금자탑을 쌓아왔습니다. ‘백범일지’의 복간은 우리의 올바른 ‘말뿌리’와 ‘글뿌리’를 찾고자 하는 출판정신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지요.” 그가 기록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에 대해서는 2000년 1월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을 엮어 펴낸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나의 영원한 스승 안의사의 치열했던 기록이, 용기를 잃고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널리 읽혀 그들이 용기를 회복하고 자신 있는 삶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출판단지 조성은 이렇듯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출판을 중흥시키는 일”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1989년 열악한 출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으로 ‘출판 관련 산업의 협동화 사업계획’에 착안했다. 이 계획은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라는 문화산업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요즘에는 쌀농사와 사람농사를 축으로 하는 인간중심의 친환경문화도시를 만드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 쌀농사와 책농사가 주가 돼 이를 통해 사람농사를 지어가며 여기에서 파생되는 환경 중심의 종합미디어시티를 구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첨단 문화산업이 가장 원시적인 쌀농사와 함께 공존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이다. 또한 그는 ‘영혼도서관’ 설립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서의 ‘영혼’은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정신의 실체를 말합니다. 진실된 자서전을 쓰는 일은 한 인간의 육신을 정성껏 염하듯이 영혼을 온전히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평생 계속해서 참다운 자서전을 쓰는 일에 착수하면 얼마나 맑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영혼도서관’에서는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주선해주는 곳입니다. 인생의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 본연의 진정성을 터득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평생 자서전을 쓰다가 목숨을 다하게 되면 영혼도서관은 유족과 함께 고인이 남긴 원고를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뒤 영혼도서관에 꽂게 된다. 그 자서전은 제한적으로 열람이 가능하며 영구히 보존된다. 고인의 영혼이 한 권의 아름다운 책 속에 따뜻하게 묻히게 되는 것이다. 아직 완공은 되지 않았으나 영혼도서관에는 현재 몇 권의 책이 있다.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와 고 민영완 목사의 회고록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 ‘김익권 장군 자서전’, 그리고 고 이청준 작가의 복간된 작품집인 ‘별을 보여드립니다’ 등이 있다. 이처럼 그는 앉으나 서나 항상 아이디어를 개발해내고 부지런하게 일을 추진한다. 그런 정열이 어디에서 나올까. 이 대표는 선교장에서 자랐다. 어려서 선조들로부터 검소와 절제 등 삶의 지혜를 배웠다. 어른들은 모든 물건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했다. 선교장을 지킨 자긍심과 자존심을 알게 했다. 선교장의 열화당은 5대조인 오은(鰲隱) 이후(李厚)가 1815년에 지었다. 열화당 건물의 구조를 보면 도서관 형태를 하고 있다. 당시 문집과 족보도 찍었다. 고건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연구 대상이다. 작은 문화센터라고 할 만큼 많은 장서와 서화 등도 있다. 그는 5~6세 때부터 군불을 때고 여러 가지 심부름을 했다. 장마가 지나가면 쌓여 있던 책들을 그늘에 말리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곰팡냄새 때문에 싫었지만 점차 익숙한 냄새로 변해갔다. 자연스럽게 출판을 어떤 사명의식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결국 1971년 열화당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미술 전문 출판사를 차렸다. 주위에서는 돈이 되겠느냐고 했지만 우리의 전통공예를 소개하는 ‘한국의 칠보’를 시작으로 ‘열화당 미술문고’ 시리즈와 ‘한국문화예술총서’를 내면서 오늘날의 열화당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의 발걸음은 나이답지 않게 힘차고 빨랐다. 중학교 때에는 30리 되는 거리를 걸어서 등·하교를 했단다. 지금도 걷는 습관은 변함이 없다. 매일 아침 일찍 자택 근처인 일산 호수공원에서 한 시간 이상 빨리 걷는다. 이 같은 부지런한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 기록문화유산을 ‘반듯하게’ 이어나가지 않을까 싶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이기웅 대표는… 1940년에 태어나 강릉 선교장에서 자랐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60년대 일지사 편집자로 출판계에 몸담은 후 1971년 미술 전문출판사 열화당을 설립했다. 1988년 뜻있는 출판인들과 함께 파주출판도시 추진을 입안하면서 그 조직의 책임을 맡아 25년 동안 출판도시 건설에 힘써 왔다. 한국일보 백상출판문화상을 10여차례 수상했고 출판학회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중앙언론문화상, 가톨릭 매스컴대상,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 인촌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출판도시를 향한 책의 여정’(2001년), 사진집 ‘세상의 어린이들’(2001년), ‘내 친구 강운구’(2010년)가 있고 옮겨 엮은 책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2000년)와 엮은 책 ‘의리를 지킨 소 이야기’(2007년) 등이 있다. 현재 열화당 대표와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송파, 장애타파!

    송파, 장애타파!

    송파구가 복지도시로 변신한다. 특히 여느 사람과 어딘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장애인을 위해 각종 정책 지원에 나선다. 송파구는 올해 장애인을 각종 지원 사업 등에 지난해(143억원)보다 30억원(21%) 늘어난 173억원을 투자한다고 1일 밝혔다. 2012년 126억원보다 47억원 늘린 것이다. 어려운 구 살림살이에도 소외계층 지원을 늘린 것은 이날 2기를 시작한 박춘희 구청장의 철학 덕분이다. 박 구청장은 “모든 주민들이 어렵지만 그늘진 곳에서 벗어나기 버거운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에 더 집중해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모든 역량을 어려운 곳에 있는 주민 보살피기에 쏟아붓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선 6기 첫날을 거여동 임마누엘복지재단에서 보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 구청장은 이날 오전 55명의 무의탁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임마누엘복지재단을 찾아 대청소에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는 청소뿐 아니라 빨래 널기와 점심식사 준비, 배식봉사는 물론 장애인 물리치료 돕는 일과 장애인 보호작업장 쇼핑백 작업 봉사까지 다양한 나눔 활동을 실천했다. 덕분에 시설을 두루두루 살폈고, 그 과정에서 거주 장애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작은 불편까지 구석구석 챙겼다. 박 구청장은 “송파구 주민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한다”면서 “다양한 복지 정책과 행정서비스 업그레이드로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이날 박 구청장은 취임식을 직원 정례조례로 대신했다. 오전 9시 30분 1200여 전 직원이 모인 구청 대강당에서 취임 인사를 통해 민선 6기의 구정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다. 박 구청장은 “세월호 참사와 어려운 경제 사정 등을 고려해 화려한 행사를 지양하고, 직원·주민과의 소통지수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섬김과 봉사를 바탕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소박하지만 알찬 임기 4년을 보내겠다”고 덧붙였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난민을 마치 죄인처럼… ‘인권’이 운다

    난민을 마치 죄인처럼… ‘인권’이 운다

    모제스(30·수단·가명)는 지난해 8월 정치·종교적 박해를 피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인천공항에서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가까스로 한국 땅을 밟았지만 심사를 거치는 동안 죄인이 된 것처럼 굴욕을 느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인정 신청을 할 때나, 심사에 회부할지를 결정하는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못하는 모제스를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특히 난민 인정 심사에 넘겨지기를 기다리는 7일은 구금이나 다름없었다. 식사로 콜라와 샌드위치가 제공됐으며, 관리인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화장실도 없는 방을 쓰게 하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 모제스는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참았다”면서 “난민 신청과 면담 과정은 명백한 취조였다”고 회상했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지 1일이면 벌써 1주년이지만 당국자들의 인권 인식 수준이 낮은 데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뒤따라가지 못해 제도가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난민인권센터(NANCEN)가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은 신청자 708명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2명으로 1.7% 수준에 불과했다. 난민법 시행으로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이 가능해졌지만 이 가운데 신청이 받아들여진 수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한 49명 중 20명만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나머지는 신청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난민법은 난민 인정 심사 과정에서 진술 녹음·녹화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실제 장비를 갖춘 곳은 없었다. 난민 신청자 A는 최근 난민 인정 심사 면접 때 녹음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녹음시설이 준비되지 않았고, 난민 신청을 한 시기가 난민법 시행 이전이라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정부는 올해 난민 예산 가운데 통역 예산을 2배로 늘렸지만 난민 신청자들은 여전히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또 다른 난민 신청자 B씨는 “내가 한국어를 조금 한다는 것을 알고는 통역이 면접관의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면접관은 한국어로, 그것도 반말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앞서 모제스 역시 “대학생 통역은 아랍어를 전혀 할 줄 몰랐으며, 오히려 나에게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니 도와 달라’고 말해 황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난민법을 입법하고 시행한 것은 전향적이지만 제도적 뒷받침이나 난민에 대한 인식은 많이 부족하다”면서 “특히 난민법 시행 이전에 들어온 대부분 난민은 법의 그늘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年 375만원… 익사에 손 못쓰는 지자체

    年 375만원… 익사에 손 못쓰는 지자체

    여름철 물놀이 사고로 숨지는 사람 10명 중 8~9명은 정부에서 안전 관리를 하지 않는 물놀이터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하천과 계곡 등을 관리지역 및 위험구역으로 정해 안전요원과 구조장비 등을 배치하고 있지만 정작 안전사고는 관리 사각지대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7일 소방방재청의 ‘익수 사고 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6월 2일~8월 18일) 모두 150명이 강, 계곡, 해수욕장 등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다슬기 등을 잡다가 숨졌다. 이 가운데 21명은 이른바 관리 지역 혹은 위험구역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129명은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 사고를 당했다. 전체 사망자의 86.0%가 안전 사각지대에서 숨진 셈이다. 소방방재청은 전국 물놀이터 가운데 1698곳을 관리지역으로, 329곳을 위험구역으로 정해 관리하고 있다. 관리지역은 그늘진 교각 밑 등 여름철 피서객이 많이 찾는 주요 지점으로 지자체 등이 안전요원을 두고 구명조끼 등을 배치한다. 위험구역은 관리지역 중 사망사고 등이 자주 발생한 곳으로 부표를 띄워 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사각지대에서 사고가 발생한다고 해서 물놀이하는 모든 곳을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충북의 한 지자체 관계자도 “사각지대에 인력을 배치해 안전관리를 해야 하지만 지자체마다 담당 공무원이 한두 사람에 불과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지난해 여름 물놀이 사망사고 시간을 분석한 결과 44명(29.3%)이 인명구조요원 근무시간이 아닌 0시부터 오전 9시 사이와 오후 6~12시에 발생했다. 사고가 가장 빈번한 시간대는 오후 3~6시(47명)였고 ▲낮 12~오후 3시 (39명) ▲오후 6~9시(23명) ▲오전 9~12시(18명) ▲오전 9시 이전(13명) ▲오후 9시 이후(8명) ▲미상(2명) 순으로 많았다. 많은 지자체에서 피서객이 많이 몰리는 오전 9시~오후 6시 계곡, 하천 등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있지만 역시나 ‘사각 시간대’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사망자의 86%는 인명구조요원이 아예 없는 ‘사각지대’에서 발생했지만 관리지역의 안전요원을 늘린다면 그나마 물놀이 사고 희생자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강원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사각시간대의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요원의 근무시간을 오후 7시까지로 조정했다”면서 “물놀이 안전관리 비용이 연간 375만원에 불과해 안전요원을 더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커버스토리] 중국 한류 3.0의 그늘

    ‘한류 3.0시대’에는 한국 배우들의 몸값이 눈에 띄게 뛰었다. 드라마 한 편당 출연료는 국내의 최소 2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형성돼 있다. CF 쪽에서는 한국의 1.5배 이상이 통용가격으로 굳어 있다. 기업 행사에서는 계약 담당자가 한류 스타에게 “얼마를 받길 원하느냐”고 대놓고 물어보는 사례가 흔하다. 하지만 양국의 제작 시스템 및 문화 차이로 위험 부담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 한 해 동안 사전 제작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는 평균 3만~4만편. 이 가운데 절반 정도만 방송되고 나머지는 빛을 못 본 채 사장된다.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부 당국(광전총국)을 통해 사전에 시나리오 검열에 통과해야 촬영이 가능하다. 거기다 귀신, 외계인 등의 소재는 일체 금지됐다. 또 중간에 영상 검열이 있는 데다 작품을 찍은 뒤에도 배급권이 있어야 방송사에 팔 수 있다. 한 가수 출신 연기자는 수년 전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었지만 아직까지 전파를 타지 못하는 상황이다. 높은 개런티에 쾌재를 불렀다가 제작 과정에서 투자가 끊겨 드라마가 ‘엎어지는’ 사례도 많다. 신한류 붐을 타고 불법 에이전트, 사칭 매니저가 난무하는 것도 문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현빈, 이민호, 김수현 등을 한꺼번에 섭외하겠다며 40만 위엔(약 7000만원)을 영업비와 진행비로 요구한 중국 에이전트 사기 사건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배우와 찍은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친분이 있다고 중국 투자자를 속여 막무가내로 한류 스타의 사무실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출연료 가로채기 등의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국내 한 여배우의 매니저는 “중국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고 실제 제작사에서 지불한 출연료와 지급된 돈이 달라 알아보니 중간에 소개해 준 불법 에이전시에서 수억원을 가로챈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캐스팅과 관련된 거짓 루머나 초상권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한 한류 스타의 소속사 관계자는 “가끔 우리도 모르게 소속 배우의 생일 파티를 연다는 전단지를 보거나 아예 출연이 확정됐다며 얼굴이 박힌 드라마나 영화 시놉시스를 받아 볼 때는 황당하다”면서 “특정 시놉시스를 오래 검토할 경우 출연이 확정됐다는 소문이 발생해 연쇄 피해가 나기 때문에 중국 작품의 출연 제의는 빨리 검토하고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게 철칙”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시장에서 한국 스타들을 경계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인터넷TV 하나당 한국 드라마 편수를 규제하고 한국 연예인의 광고를 규제하려 하는 것. 드라마나 CF 촬영장에서 한국 스태프를 4명 이하로 제한하기도 한다. 중국 방송사나 기업들이 전세기까지 동원해 한국 스타 ‘모시기’에 열을 올린다는 소식에 불만의 목소리도 이어진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한국 스타들의 고액 출연료가 알려지면서 중국 스타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한국 스타들이 돈을 많이 주면 무조건 출연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안티 블로그나 안티 카페가 생겼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지 문화를 잘 파악하고 진출하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중국 전문 에이전시 아이엠컴퍼니의 배경렬 대표는 “한국 스타들의 일방통행만으로는 모처럼 형성된 중국 한류가 다시 세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지 예능 프로그램이나 팬미팅 등의 노출 빈도를 늘려 중국인들과 친밀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한류 3.0의 생명력을 이어 가려면 중국 배우들도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쌍방향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한국 벨기에전 김승규 인터뷰 “실점 다 내 잘못” 눈물…정성룡 대신할 수문장 ‘눈도장’

    한국 벨기에전 김승규 인터뷰 “실점 다 내 잘못” 눈물…정성룡 대신할 수문장 ‘눈도장’

    김승규 인터뷰 “실점 다 내 잘못” 눈물…정성룡 대신할 수문장 ‘눈도장’ 2014 브라질 월드컵 한국 벨기에 전에서 골키퍼 김승규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7일 새벽 5시(한국시각) 브라질 쿠이아바에 위치한 아레나 판타날 경기장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벨기에전에서 상대의 퇴장으로 얻은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0-1로 패배했다. 한국은 조별리그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벨기에전에서 정성룡을 대신해 선발 출장한 골키퍼 김승규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김승규는 여러차례 눈부신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빠른 판단이 빛을 발한 경기였다. 무리하게 공을 잡으려 하지 않고 적절히 쳐내기도 했다. 후반 13분에도 강한 슈팅을 잘 막아내 실점 위기를 막았다. 후반 32분 벨기에 공격수 디보크 오기리의 낮은 슛을 몸을 던지며 잘 막아냈지만 쇄도하는 공격수를 한국 수비수가 놓치며 결국 후반 33분 벨기에 수비수 얀 베르통언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후반 막판 추가실점 위기도 막아냈고 먼거리에서 날아오는 슈팅이나 정확히 김승규를 향한 공까지 정확히 꿰뚫고 막아냈다. 김승규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월드컵은 경험을 쌓으러 나오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을 겨루는 자리다. 이번 경기를 경험이 아닌 실패라고 생각한다”면서 “후반 실점 모두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눈물을 흘려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정성룡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던 김승규는 이날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월드컵 첫 출전에 첫 실점으로 고개를 떨군 김승규에 한국 축구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승규 인터뷰 도중 눈물…잘 막고도 운 이유 알고보니 ‘개념 골키퍼’

    김승규 인터뷰 도중 눈물…잘 막고도 운 이유 알고보니 ‘개념 골키퍼’

    김승규 인터뷰 도중 눈물…잘 막고도 운 이유 알고보니 ‘개념 골키퍼’ 2014 브라질 월드컵 한국 벨기에 전에서 골키퍼 김승규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7일 새벽 5시(한국시각) 브라질 쿠이아바에 위치한 아레나 판타날 경기장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벨기에전에서 상대의 퇴장으로 얻은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0-1로 패배했다. 한국은 조별리그를마무리했다. 하지만 벨기에전에서 정성룡을 대신해 선발 출장한 골키퍼 김승규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김승규는 여러차례 눈부신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빠른 판단이 빛을 발한 경기였다. 무리하게 공을 잡으려 하지 않고 적절히 쳐내기도 했다. 후반 13분에도 강한 슈팅을 잘 막아내 실점 위기를 막았다. 후반 32분 벨기에 공격수 디보크 오기리의 낮은 슛을 몸을 던지며 잘 막아냈지만 쇄도하는 공격수를 한국 수비수가 놓치며 결국 후반 33분 벨기에 수비수 얀 베르통언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후반 막판 추가실점 위기도 막아냈고 먼거리에서 날아오는 슈팅이나 정확히 김승규를 향한 공까지 정확히 꿰뚫고 막아냈다. 김승규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월드컵은 경험을 쌓으러 나오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을 겨루는 자리다. 이번 경기를 경험이 아닌 실패라고 생각한다”면서 “후반 실점 모두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눈물을 흘려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정성룡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던 김승규는 이날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월드컵 첫 출전에 첫 실점으로 고개를 떨군 김승규에 한국 축구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5) 佛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5) 佛 파리 루브르 박물관

    센강을 낀 파리의 중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프랑스의 상징을 넘어 인류 문명의 보고로 자리 잡았다. 38만점에 이르는 소장 예술품이나 방문객 수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루브르는 2013년 연중 관람 인원 933만명으로 2위인 영국 박물관(670만명)을 한참 앞서며 선두 자리를 지켰다. 더 이상 부연할 것도 없어 보이고, 다 아는 것 같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곳이 또한 루브르다. 근대 박물관의 역사를 이끌어 온 루브르는 지금도 그 어떤 박물관보다 앞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12세기 말에 지어진 요새에서 시작된 루브르의 역사는 20세기 유리 피라미드를 거쳐 2015년 말 개관 예정인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까지 이어진다. 루브르 박물관의 중앙 입구는 루브르의 주정원인 나폴레옹 궁정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를 사용한다. 박물관 개관 시간에는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 있어 루브르의 식을 줄 모르는 명성과 가치를 대변하기도 하는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가 설계했다.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고색창연한 석조건물들로 둘러싸인 궁전 마당 한가운데에 유리와 경량의 알루미늄 골조로 세워진 피라미드에 지금은 모두 익숙해졌지만 30년 전 건설계획이 발표됐을 당시만 해도 온 나라가 들끓었을 정도로 숱한 반대에 부딪혔던 구조물이다. 루브르의 새로운 시대를 연 유리 피라미드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추진한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의 하나였다. 라데팡스 신개선문, 바스티유 오페라, 국립도서관, 라빌레트 공원 등 그랑 프로제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불렀던 것이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였다. 1983년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선정된 페이의 계획은 역사적 석조건물과 초현대적인 유리 피라미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6년 뒤인 1989년 3월 30일 유리 피라미드가 완성됐을 때 이런 비난은 순식간에 찬사로 바뀌었다. 나폴레옹의 역사를 간직한 가로 110m, 세로 220m의 박물관 내 궁정에 들어선 35m×35m×22m의 하이테크적인 유리 피라미드는 세간의 논란이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특수제작된 투명 유리와 경량의 알루미늄 빔이 만들어 낸 피라미드의 기하학적 형태는 오래된 주변의 건물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도시의 역사와 미래의 비전을 꿰뚫는 페이의 통찰은 루브르가 명실상부하게 프랑스 역사를 대변하는 건축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역사와 전통의 도시 파리에 기념비적인 현대 건축물들을 조화롭게 들여놓음으로써 세계적으로 위상이 실추돼 가는 프랑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미테랑 대통령의 원대한 프로젝트는 제대로 그 목표를 달성했다. 현재의 루브르 건물은 12세기 말 필립 2세 왕이 세운 요새가 그 시초다. 앵글로노르만 족의 공격으로부터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립 2세는 이곳에 외벽과 탑, 내부 건물로 이뤄진 요새를 지었다.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요새만으로 파리를 보호하기 어려워지자 14세기 후반 샤를 5세는 건축가 레이몽 뒤 탕플에게 루브르를 거주하기 위한 성으로 개조하도록 지시했다. 16세기 들어 프랑수아 1세는 낡은 중세의 건물을 부수고 그 자리에 본격적인 왕궁을 건설했다.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피에르 레스코가 건설 총책을, 벽면 장식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 장 구종이 각각 맡았다. 이후 루이 13세와 루이 14세는 계속 궁전을 확장했다. 루브르가 궁전에서 왕실 소장 예술품 관리 및 전시를 위한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루이 14세가 1682년 거처를 베르사유 궁으로 옮기면서다. 소수 특권층만이 누리던 전시 공간이 국민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본격적인 의미의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대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국민의회는 “루브르는 국민들을 위해 국가의 걸작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1792년 9월 27일 프랑스 박물관으로 설립했다. 이어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작품을 루브르궁의 갤러리에 전시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박물관을 필두로 19세기 유럽에는 다양한 근대 박물관이 잇따라 설립됐다. 쉴리관에는 17~19세기 프랑스 회화와 파라오 시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에트루리아·로마, 근동의 문화재 외에 루브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문화 강국 프랑스를 상징하는 루브르는 과거에 만족하지 않고 막강한 브랜드파워를 발판으로 미래를 향해 도약 중이다. 2012년 12월 프랑스 북부의 광업도시 랑스에 제2박물관을 개관한 데 이어 2015년 12월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수도 아부다비에 첫 해외 분관이 문을 연다. UAE 정부가 관광특구로 개발하는 ‘사디야트아일랜드’(행복섬)에 건설 중인 루브르 아부다비는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를 맡았다. 돔형의 건물이 신기루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형상의 초현대식 건물은 벌써부터 화제다. 사막의 직사광선 아래에서 쾌적한 휴식처가 되도록 직경 180m의 파라솔을 씌워 거대한 그늘을 만들고 돔 아래로는 점점이 떨어지는 ‘빛의 오아시스’를 경험하도록 했다. UAE는 30년 동안 ‘루브르’라는 이름을 쓰는 대가로 프랑스 정부에 5억 2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루브르로부터 미술품 대여와 특별 전시회, 전시 컨설팅 등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7억 4700만 달러를 추가로 내게 된다. 박물관 건축 공사에만 1억 800만 달러가 들어갔다. 그것뿐이 아니다. UAE는 어마어마한 돈을 치르고 최근 몇 년간 피카소의 ‘젊은 여인의 초상’, 르네 마그리트의 ‘억눌린 독서가’ 등 작품160여점을 구입했다. 지난 2일부터 오는 7월 28일까지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루브르 아부다비 개관에 앞서 박물관을 소개하고 전시작품을 미리 선보이는 ‘박물관의 탄생’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lotus@seoul.co.kr
  • [사설] 與 진흙탕 당권 경쟁으로 무슨 희망 주겠나

    다음달 14일 이뤄질 새누리당 차기 대표 선출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의 진흙탕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파를 앞세운 줄세우기 논란으로 구태를 재연하나 싶더니 엊그제는 여론조사 조작 논란까지 불거지며 집권여당임을 의심케 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주요 당권 주자인 김무성 의원 측이 그제 제기한 한 여론조사 조작 의혹은 누가 보더라도 석연치 않다. 김 의원 측은 “지난 19일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보도한 여론조사업체 모노리서치의 차기 새누리당 대표 적합도 조사 결과는 조작된 것”이라며 경쟁자인 서청원 의원 측을 배후로 지목했다. 그동안 여론조사와 달리 서 의원이 김 의원을 앞선 것으로 보도됐으나 실제 해당 여론조사 결과는 이와 크게 다르다는 게 김 의원 측 주장이다. 이에 서 의원 측은 “모노리서치에 여론조사를 의뢰하지도 않았고, 조사 결과를 언론에 배포하지도 않았다”고 부인하면서도 비공식 경로를 통해 전달받은 여론조사 결과를 일부 매체에 전달한 사실은 인정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여론조사 결과를 몇 단계를 거쳐 받아 일부 매체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지율 수치가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의도적 조작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진위야 새누리당 경선관리위원회가 가리면 그만이고, 책임 또한 그에 맞춰 물으면 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로서는 이런 논란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 집권여당의 옹색한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해 그저 딱할 뿐이다. 명색이 집권여당의 대표를 뽑는다는 선거에,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차기 여권 대선후보 지형이 가려진다는 중차대한 선거에 군소정당에서나 있을 법한 논란이 벌어진다는 게 한심할 뿐이다. 새누리당은 자문해 보기 바란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야당과 우열을 가리지 못한 이유를 새누리당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래도 새누리당의 저력을 국민들이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에 하나 그렇다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반성도, 비전도 없는 선거를 치르는 것이라면 새누리당의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고령화에 따른 유권자의 보수화 경향과 인구 수에서 앞선 지역 기반,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없었다면, 그리고 야당이 뚜렷한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한 정치 지형이 아니었다면 새누리당의 참패는 불문가지였다. 결코 새누리당 자력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었으며, 국민들이 마지막 기회를 준 선거였던 것이다. 티끌만큼의 위기감도 새누리당에 보이질 않는다. 정책과 노선을 둘러싼 가치 논쟁도, 그 흔한 혁신 경쟁도 없다. 이러니 누가 당 대표가 된들 청와대 그늘 속 새누리당이 국민 눈에 보이겠는가.
  • [TV 하이라이트]

    ■리틀빅 히어로(tvN 오후 6시 50분)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 노인들과 장애인 시설을 돕는 족발집 사장님의 이야기로 감동을 전한다. 조용철씨는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 2대째 족발 맛집을 운영하며 독거노인과 장애인, 해외아동 후원까지 15년째 이웃을 돕고 있다. 도움의 손길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 동네 곳곳 어디라도 달려가는 그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NCIS 11(OCN 밤 11시) NCIS는 해군과 해병대에 연루된 범죄들을 해결하는 특수수사팀이다. 콴티코 기지 내에서 뺑소니 사고가 일어난다. 현장에 남은 증거로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차량을 찾아내고 차량 주인인 던 하사를 체포하지만 던 하사는 변호사를 선임해 알리바이를 주장한다. 전직 FBI 대원이었고 깁스 팀과도 함께 일한 적 있는 캐리 변호사는 던 하사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갈등에 휩싸인다.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용서(EBS 밤 10시 45분) 고 배삼룡은 따뜻한 웃음을 주며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국민 코미디언이었다. 그에게는 장남이자 친아들인 배동진씨와 수양아들인 이정표씨가 있었다. 친아들인데도 양아들의 그늘에 가려 인정받지 못했던 배씨와 오해 속에 살아야 했던 양아들 이씨는 서로를 원망했다. 두 사람이 지난 20년간 서로에 대한 오해와 상처들을 풀고자 화해의 손을 내민다.
  • [공직현장 목소리] 한국의 행정개혁 세계가 주목한다

    [공직현장 목소리] 한국의 행정개혁 세계가 주목한다

    지난 몇 년간 참여해 온 행정 분야 공적개발원조(ODA) 프로젝트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 ‘행정개혁부’가 추진 중인 행정개혁의 내용과 방법이 우리 정부가 10년 전 추진했던 내용과 무척 비슷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 방문했던 나이지리아 정부 역시 우리가 20년 전에 만들었던 ‘정보통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 전자정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또 50년 전 우리 경제기획원 공무원들을 자국에서 연수시켰다고 자부하는 파키스탄은 물론 이집트, 터키, 방글라데시도 요즘은 한국 행정에 대한 학습 열의가 대단했다. ‘행정 한류’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의 행정을 자신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모델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 행정이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 각국이 배우고 싶어 하는 훌륭한 정부의 모델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우리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의 모습을 너무나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행정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경제만이 아니라 안전과 복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성공 경험에만 머무를 수는 없게 됐다. 남을 가르치기에 앞서 고갈돼 가는 우리의 성공 경험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진정 알고 싶은 것도 우리가 이뤄 낸 과거보다는 지금 작동하고 있는 우리 행정의 현재일지 모른다. 경제성장의 그늘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더 성숙한 행정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이제 다른 나라에서도 공감하는 행정개혁, 세계인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정책을 존중하고 채택해야 한다. 단순히 일부 부처를 이리저리 바꾸는 차원이 아니다. 23일부터 26일까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유엔공공행정포럼’이 열린다. 100여개 국가에서 1000명 이상이 참가해 세계 행정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미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를 계기로 앞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실망에 가득 찬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정직하고 신뢰받는 우리 행정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창길 2014 유엔 공공행정포럼 자문위원
  • 일그러진 국제 입양… 한국의 친생 가족 강화가 해법

    일그러진 국제 입양… 한국의 친생 가족 강화가 해법

    구원과 밀매/캐서린 조이스 지음/박준영 옮김/뿌리의집/480쪽/2만 2000원 양친과 양자가 부모·자식의 관계를 맺는 신분이라는 법률적 의미의 입양(入養). 그 입양은 흔히 ‘윈·윈’의 방편으로 여겨진다. 가정이 필요한 아이는 가정을 얻고, 아이를 원하는 부모는 아이를 얻을 수 있다는 차원의 인식. 그럼에도 입양에는 많은 경우 학대와 유린의 상처가 공존한다. ‘구원과 밀매’는 미국의 탐사전문 저널리스트가 아동 입양의 현실과 배후의 부정적 동인을 파헤친 탐사록이다. 미국과 아이티, 우크라이나,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르완다, 한국 등을 오가며 밝혀낸 추한 모습들이 충격적이다. 친자녀를 여럿 두고도 지속적으로 입양을 시도하는 미국 여성과의 만남을 계기로 시작된 탐사는 복음주의 기독교와 신학을 일그러진 입양의 큰 원인으로 주목한다. 미국과 전 세계에서 생겨나는 아동 입양의 최대 추동 주체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고, 근저에 복음주의 입양신학이 있음을 들춰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런 목사와 그가 담임인 새들백교회가 입양신학의 바탕에서 전개되는 국제 아동 입양 운동의 강력한 리더라는 사실은 대표적 사례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혔고 수많은 목회자가 신앙 교재로 쓰고 있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한국전쟁 이후 국제 입양을 선도한 홀트복지회가 설립부터 ‘아이들의 육체와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강한 복음주의적 소명 의식을 유지해 온 사실도 눈길을 끈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국으로 이동하는 국제 입양의 어두운 그늘은 책에 숱하게 소개된다. 친생 가족과의 결별·단절로 인한 상처, 입양 부모에 의한 살해며 성폭행, 정착하지 못하는 유랑….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아동들을 불법으로 납치한 사건과 구소련 몰락 후 독립 국가가 된 우크라이나 아동들을 미국에 데려가 입양 중개를 시도한 사기에 얽힌 복음주의 선교사의 파행도 충격적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입양신학은 오류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이타(利他)의 행동이지만 ‘자신이 한 일은 옳고 심지어 (입양을) 하나님이 명한 것이라는 확신’은 입양의 악을 양산하는 축이 된다는 것이다. 책은 국제사회가 법으로 규정하는 ‘친생 가족 양육 우선’의 원칙에 충실하자는 것으로 귀결된다. 결론인 마지막 장을 한국의 사례로 할애해 대안을 제시한 점이 눈에 띈다. 저자는 지난 60년간 20만명 이상의 아동을 해외로 송출한 한국이 세계 최고의 아동 수출국이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귀환 입양인들과 미혼모 공동체, 시민사회가 함께 벌이고 있는 친생 가족 강화를 통한 입양 극복 운동을 새로운 길로 소개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내우외환 한국경제] “규제완화·내수산업 육성 등 필요… 부동산 부양은 가계 부채폭탄 위험”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경제에 타개책이 있을까. 박근혜 정부가 ‘구원 투수’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내세웠지만, 그 역시 뾰족한 수를 내놓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내수 침체가 깊고 세계 경제의 그늘도 넓어 고도의 복합 처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최 후보자의 발언으로 봐서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관심을 갖는 듯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가야 할 길이 아니다’고 진단한다. 가계발(發) 부채 폭탄을 만날 수 있는 만큼 부동산 경기 부양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추가경정예산도 타이밍을 놓쳐 현재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당장 반짝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아 규제 완화와 내수산업 육성,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 등 미시적인 정책을 긴 호흡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세월호 참사’로 잔뜩 위축돼 있는 소비 심리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19일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야에서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을 옥죄는 것을 풀어줘야 한다”면서 “서비스와 소프트산업 등에서 소규모 사업주들이 많이 나오도록 내수산업을 키우고 인프라를 깔아줘야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경기 부양과 관련해서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집을 안 사는 것이지, 돈이 없어 집을 못 사는 상황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부동산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튜닝’(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야지, 부동산이 경기 부양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필요한 자원이 부동산으로 집중돼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안 되는 것이 문제”라면서 “부동산은 시장에 맡기고, 불공정한 시스템을 공정하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돈이 들지 않는다”면서 “글로벌 경제 가운데 유독 독일 경제만 승승장구하는데,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타개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효근 KDB대우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금리 인하와 추경은 지금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며, 부동산 분야는 어떤 정책이 나와도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면서 “경기 변동에 따라 바로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정부의 시그널을 시장에 주고, 규제 완화를 통해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것이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열린세상] 폭염피해 줄이려면 ‘도시숲’ 늘려야/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폭염피해 줄이려면 ‘도시숲’ 늘려야/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예년보다 이른 더위가 찾아오면서 숲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에어컨 바람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나무그늘에 앉아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을 따로 내야 숲을 찾을 수 있는 도시민들은 여름이 벌써 두렵기만 하다. 중국에서는 지난달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고 우리나라도 올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다가올 폭염에 단단히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폭염은 농촌보다 도시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심지어 도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국립기상연구소 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100년 동안 발생한 기상재해 중 ‘폭염’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며 특히 1994년에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400여명에 이르렀다. 고려대 조용성 교수팀은 폭염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사망률 변화연구에서 “1인당 녹지면적은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데 병·의원 수보다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온도와 열지수가 높은 지역은 대구이지만, 1인당 의료비용은 서울·광주·대전·부산 등이 더 높았다. 대구는 최고기온과 열지수가 높은 반면 도시공원 면적이 서울과 대전보다 넓고 여가복지 시설도 서울보다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무더위로부터 도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도시 숲’이다. 도시 숲은 도시민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숲과 공원녹지로 길거리의 가로수도 포함된다. 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려 잎에서 내뿜는다. 물은 주변에서 에너지를 끌어들여 기체가 되는 ‘증산작용’을 통해서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이 과정에서 나뭇잎과 나무 주변의 기온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또한 나뭇잎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사람에게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피하게 함으로써 ‘그늘효과’를 발휘해 체감온도를 낮춰준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6~9월 대구에서 나지(地), 가로수, 도시 숲을 대상으로 기온감소 효과를 실험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가로수의 기온감소 효과는 1도 이하였지만, 도시 숲에서는 최대 4도까지 낮게 나타났다. 특히 35도가 넘는 열대야가 있는 날에도 도시 숲은 최대 4도 정도까지 기온을 낮춰 줬다. 현재 도시 숲의 면적은 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 637만㏊의 17%(108만㏊)를 차지한다. 그러나 정작 생활 속에서 휴식과 산책을 즐기거나 기후조절 같은 직접적인 환경기능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생활권 도시 숲은 3.3%(3만6000㏊)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생활권 도시 숲 면적은 평균 8.0㎡이며, 서울 4.0, 대구 5.7, 광주 8.8로 상해 18.1, 파리 11.5보다도 작다. 또 1975년부터 2006년까지의 서울시 녹지 연결성을 분석한 결과 북한산, 관악산, 남산 등 대규모 숲은 남아 있지만 소규모 숲은 줄어들어 녹지 연결성은 점차 낮아지고 회색 도시가 커졌다. 녹화사업으로 서울 외곽의 대규모 숲은 비교적 울창해졌으나 생활권 주변의 소규모 숲은 많이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도시 속의 무더위를 식히려면 더 많은 도시 숲이 필요하다. 산림청은 대규모 숲도 중요하지만 녹색쌈지숲, 학교 숲, 마을 숲 등을 시민과 함께 조성하고 골목마다 화단을 만들거나 꽃나무를 심는 도시녹화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무더위 속 도시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도시 숲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평균 폭염 환자 수는 1만 4368명으로 매년 평균 1311명씩 증가했다. 최근 폭염 사망자 64%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폭염 문제는 더욱 주목된다. 또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냉방장치나 샤워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제적 취약계층도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도시 숲이 더욱 간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자연재해다. 우리는 무더위 속의 오아시스인 도시 숲을 잘 가꿔서 폭염에 취약한 노년층과 어린이, 그리고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폭염을 안고 사는 회색 도시에서 초록 도시 숲은 시민에게 건강한 그늘막이 돼 줄 것이다.
  • 불꽃인지… 꽃불인지…무주, 초여름밤의 축제

    불꽃인지… 꽃불인지…무주, 초여름밤의 축제

    요즘 다소 달라졌다고는 하나, 전북 무주는 여전히 나라 안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오지다. 두메 곳곳마다 질그릇 같은 투박함이 스몄다. 한데 무주의 초여름 밤 풍경은 달랐다. 매끈하고 고혹적이었다. 남대천 물길 위에서 펼쳐진 낙화(落火)놀이가 특히 그랬다. 정념을 갈무리한 불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모습은 화사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였다. 밤하늘을 형광빛으로 수놓은 반딧불이의 혼인비행도 그에 못지않게 단아했다. 투박함 위로 고졸한 정취가 덧씌워진 풍경, 무주의 초여름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무주를 횡으로 가르는 남대천. 그 물길 위로 주황빛 불꽃들이 분분히 날리고 있다. 한 올 한 올 여인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닮은 불꽃이다. 30분 남짓 현란한 풍경이 이어지는데도 강변을 딛고 선 사람들은 입을 열 줄 몰랐다. 말을 잊게 하는 강한 힘, 그게 무주 남대천 낙화놀이엔 있었다. 낙화놀이는 낙화봉에서 불꽃들이 떨어지는 모양새가 꽃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줄불놀이, 낙화유(落火遊) 등으로도 불린다. 장대에 연결된 줄에 200개 정도의 낙화봉을 달고 불을 붙이면 불꽃이 아래로 휘날리며 불꽃쇼를 펼친다. 오래전엔 음력 정월대보름이나 사월 초파일 등 특별한 날에 열렸지만, 요즘엔 지역 축제장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무주 남대천 낙화놀이다. ●낙화봉은 뽕나무·참나무 태워 만든 숯이 주재료 낙화봉은 뽕나무나 참나무를 태워 만든 숯이 주재료다. 여기에 소금, 말린 쑥 등을 섞어 한지 위에 올린 뒤 둘둘 말아서 만든다. 낙화봉에 불을 붙이고 나면 30분 이상 불꽃이 떨어져 내린다. 초여름 밤을 수놓기에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의 양이다. 서양의 불꽃놀이나 중국의 폭죽놀이가 화려하고 역동적이라면 낙화놀이는 더없이 잔잔하고 서정적이다. 물 위로 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떨어지는 불꽃을 보자면 우리 선조들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단박에 알게 된다. 무주 낙화놀이의 시발지는 안성면 금평리 두문마을이다. 덕유산 자락에 기댄 산골마을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긴 낙화놀이를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되살렸다. 마을 위쪽의 작은 방죽에서 소규모로 벌이던 낙화놀이는 입소문을 타고 금방 퍼졌고, 몇 해 전 무주 반딧불축제에 첫선을 보인 이후부터는 축제의 핵심 볼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축제는 끝났지만 낙화놀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다. 두문마을에서 오는 8월 1~2일 낙화놀이를 벌인다. 규모는 작아도, 한여름밤의 정취로 보자면 남대천 낙화놀이에 전혀 뒤질 게 없다. 마을 홈페이지는 ‘불꽃이춤추는마을.kr’이다. 기상 상황이 낙화놀이의 가장 큰 변수이니만큼, 방문에 앞서 일기예보를 꼼꼼히 살피는 게 좋겠다. 낙화놀이 체험, 목공예 체험 등 다양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천연기념물 반딧불이들의 ‘혼인 비행’ 도 장관 낙화놀이가 사람이 만든 작품이라면 반딧불이의 비행은 자연이 그린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관찰되는 반딧불이는 운문산반딧불이와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이다. 나라 안에서 청정 지역으로 소문난 무주에서조차 반딧불이가 귀해 녀석들의 서식지를 천연기념물(제322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무주에선 3개종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운문산반딧불이가 가장 먼저 나오고, 뒤이어 애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반딧불이는 종에 따라 발광신호가 다르다. 운문산반딧불이와 애반딧불이는 점멸광, 늦반딧불이는 지속광이다. 다만 애반딧불이의 경우 빛의 밝기가 현저히 낮고, 활동 반경도 다른 종에 견줘 상대적으로 작다. 따라서 반딧불이를 보았다면 열에 여덟아홉은 운문산반딧불이일 가능성이 높다. 빛의 형태가 무엇이건, 빛을 내는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짝짓기를 앞둔 혼인비행이다. 반딧불이 암수는 빛으로 유혹의 춤사위를 펼치며 서로를 찾아간다. 그러니 반딧불이의 비행을 본다는 건 녀석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것과 다름없다. 반딧불이 출몰 시기는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운문산반딧불이의 경우 무주에선 보통 5월 하순경에 관측됐다. 하지만 올해 5월을 달군 기상이변으로 반딧불이 출몰시기가 당겨졌다. 현재 무주에서 운문산반딧불이의 집단비행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애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를 관찰하는 것으로 목적을 변경하는 게 좋다. 세 종의 반딧불이 가운데 가장 늦게 등장하는 늦반딧불이는 해가 진 뒤 1시간가량 빛을 내며 날아다닌다. 기상여건에 따라 변화가 심해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예년의 경우 8월 초순부터 하순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다만 올해 운문산반딧불이가 1주일 이상 일찍 관찰됐듯, 늦반딧불이 또한 다소 일찍 혼인비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무주군에선 토요일인 8월 23·30일 오후 7시 30분 ‘늦반딧불이 신비 탐사’를 떠난다. 참가 신청은 반딧불이 축제 홈페이지(www.firefly.or.kr)에서 받는다. ●무주 읍내 등나무운동장에서는 ‘산골영화제’ 무주 읍내의 등나무운동장은 꼭 한 번 가볼 만하다. 무주 군민들이 나라 안 운동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운동장으로 꼽는다는 곳이다. 무엇보다 운동장 조성 경위가 인상적이다. 오래전 주민체육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이었는데, 하필 ‘본부석’에만 차양막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니 관중석에 앉아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아야 했던 주민들에게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주민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를 안 군수가 관중석에도 등나무 그늘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고, 그 작업을 ‘감응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고 정기용(1945~2011)에게 맡겼다. 당시 무주에서 인간미 물씬 풍기는 건축물을 여럿 설계했던 정기용은 생전 자신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로 꼽을 건축물을 이 운동장에 세운다. 그게 바로 등나무 스탠드다. 정기용은 등나무와 비슷한 굵기의 철봉을 엮어 관중석 전체에 지줏대를 세웠다. 줄기 뻗을 자리를 만난 등나무는 순식간에 자랐고, ‘본부석 차양막’보다 훨씬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등나무 그늘에 들면 건축은 홀연히 사라지고 자연이 오롯이 주인공으로 남는다.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일깨워준 곳”이란 정기용의 표현 그대로다. 등나무운동장에서 산골영화제가 열린다. 올해 2회째를 맞은 새내기 행사다. 26~30일 창, 판, 락, 숲, 길 등 5개 부문으로 나뉘어 무주 일대에서 열린다. 17개국 51편의 영화가 관객을 찾는다. 등나무운동장에선 5개 부문 가운데 ‘락’ 부문 행사와 개막식이 펼쳐진다고 한다. 가족·고전 영화와 음악공연 등이 준비됐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 방면으로 가다 당산교차로에서 한풍루로로 갈아탄 뒤 곧장 가면 등나무 운동장이 나온다. 한풍루, 예체문화원 등이 이곳에 몰려 있다. 경관 조명이 아름다운 ‘사랑의 다리’(남대천교)는 등나무운동장에서 무주군청 쪽으로 가면 나온다. 두문마을을 먼저 보겠다면 덕유산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낫다. 이어 19번 국도로 사전교차로까지 간 뒤 덕유산로로 갈아타고 곧장 가면 된다. 일곱 못과 일곱 폭포, 이른바 칠연칠폭(七淵七瀑)으로 유명한 칠연계곡도 지척이다. 묶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맛집 무주구천동 초입의 별미가든(322-3123)은 산채정식, 무주읍내 금강식당(322-0979)은 어죽, 무주나들목 만남의광장 반디어촌(322-1141)은 어탕국수와 다슬기 수제비로 이름난 집들이다. →잘 곳 적상면 사천리 서창마을의 ‘언제나봄날’(적상산 황토펜션)은 가재잡이와 반딧불이 투어 안내로 이름난 집. 설천면 청량리 ‘통나무펜션’(320-5665)도 깔끔하다. 일반 숙박업소는 무주읍내에 많다. 무주관광안내소 324-2114. 글 사진 무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문화단신]

    한국작가회의 현대문학 강좌 마련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가 한국 현대문학의 문제작을 중심으로 우리 문학을 굽어볼 수 있는 16강의 강좌를 마련했다. 오는 13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리는 1기 강좌에서는 신경림의 ‘농무’(1974), 은희경의 ‘새의 선물’(1995), 성석제의 ‘조동관 약전’(1997),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1985) 등을 공부한다. 작품을 쓴 작가들이 직접 출연해 작품 얘기를 들려주고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곁들여진다. 김연수, 김경주, 공지영, 고은 등이 참여한다. 모집 인원은 매학기 선착순 80명이며, 작가회의 홈페이지(www.hanjak.or.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분기별 20만원. (02)313-1486. 시각장애인 콘서트 ‘세종과 지화, 춤을 추다!’ 시각장애인들이 국악기의 선율에 맞춰 뜨거운 몸짓을 피워올리는 무대가 오는 25일 북촌창우극장에서 열린다. 세종대왕의 장애인 복지정책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와 국악 밴드 비단의 국악 연주, 시각장애인의 춤이 어우러진 콘서트 ‘세종과 지화, 춤을 추다!’이다. 공연에는 역사 전문가의 강연도 이어져 역사에 대한 이해와 입체적인 감동을 전한다. 1만 5000원. (070)4046-8854.
  • 참혹한 시간 견뎌온 ‘용산’ 소통의 문화 꽃피는 ‘용산’…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본다

    참혹한 시간 견뎌온 ‘용산’ 소통의 문화 꽃피는 ‘용산’…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본다

    문인들이 디딘 발걸음으로 세계지도를 그린다. 명소만 찍고 사라지는 관광객의 자취가 아니다. 골목 하나에도 애정과 연민을 품는 ‘동네 사람’의 시선으로 옮긴 걸음걸음이다. 산책은 사유로, 사유는 글쓰기로 연결됐다.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의 새 시리즈 ‘걸어본다’이다. 세계 곳곳에 사는 작가들에게 저마다의 고향과 동네 이야기를 접수했더니 세계지도가 그려졌다. 강석경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경북 경주를, 재독 시인 허수경은 독일인 남편과 결혼하며 터전이 된 뮌스터를, 소설가 강병융은 교수로 일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를,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고향인 전남 비금도를 산책한 기록을 차례로 내놓는다. 첫걸음으로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용산에서의 독백’을 펴낸 이광호(51·서울예대 교수) 문학평론가를 8일 서울 용산의 한 대안공간에서 만났다. 왜 용산이었을까. 용산은 그가 4년째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산문 쓰기 좋은 동네’, 바꿔 말하면 ‘이야기가 많은 동네’이다. 그를 매료시킨 건 분주한 변화와 과잉으로 하나의 ‘거대한 가설무대’ 같은 용산이 품고 있는 참혹함과 혼종성이었다. “한양도성의 주변부였던 용산에는 몽고, 일본 등 식민과 이식의 역사가 흐르고 있어요. 우리가 습관적으로 부르는 이태원에 이태원(異胎圓·왜군이 당시 이 지역에 있었던 절 운종사에서 비구니들에게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과 관련)이라는 뜻도 있었다는 게 얼마나 참혹해요. 미군 부대 때문에 개발이 억제된 것도, 그게 풀려서 황당한 개발이 이뤄지는 것도, 용산 참사가 벌어진 것도 참혹한 시간들의 연장인 셈이죠.” 처음엔 목적 없이 일주일에 2~3일씩 거닐던 길이었다. 1년 전 글쓰기를 염두에 두면서부터는 ‘시간의 지층을 파내려가는 고고학자’처럼 길과 골목의 이야기를 파고들었다. 그랬더니 용산은 일제 강점기의 근대, 박정희 시대의 개발 근대, 미군기지라는 억제된 근대, 과잉 개발의 현재 등 4개 이상의 시간이 겹쳐진 공간이었다. 공간의 사회적, 미학적 의미를 짚어내는 사유의 문장과 시적인 문장이 교차하는 글에는 이 시간의 기억들이 단절되고 망각된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무력감이 배어 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주상복합 옆에 왜 저런 허름한 골목이 있지?’, ‘청파동에는 왜 적산가옥들이 눈에 띄지?’ 신기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식민의 체험은 보존하지 않습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린다는 건 참혹하고 쓸쓸한 일이지만, 장소의 현재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죠. 글을 쓰다 보니 장소는 곧 시간이었어요. 지금 내 감각이 느끼는 현재적인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장소가 겪어왔던 시간의 흔적들이기도 하죠. 후자도 중요하거든요.” 참혹한 시간을 견뎌온 용산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가능성을 본다. 혼종성 때문이다. 이태원 이슬람사원에서 시작되는 우사단길이 대표적이다. 신성한 사원 바로 밑에서는 밤이면 게이바와 트랜스바가 흥성거린다. 깊고 불안한 눈으로 전화 부스에 매달려 있는 아랍 청년과 이태원 토박이 노인, 재기발랄한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어떻게 보면 매우 이질적인 존재들이 섞여 있는 것 같지만 문화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장면입니다. 거대 자본이나 기업이 들어와서, 혹은 뉴타운 같은 폭력적인 개발로 동네가 변하는 게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소통으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거죠.” 용산은 그래서 서울뿐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를 성찰하게 한다. 그 성찰은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넌지시 가리킨다. “용산 참사를 보면 개발이 갖고 있는 그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자, 미군기지를 생각하면 개발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아이러니가 실현되는 곳이죠. 개발의 폐해, 개발이 강제로 억눌렸을 때의 문제들이 집약돼 있어 공간·개발의 문제가 늘 이슈인 한국 사회에 큰 상징성을 지닙니다.” 도시인에게는 ‘어차피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어떻게 디자인할지와 연결된다. 저자의 사유가 그 징검다리가 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세월호 참사 50일… 그들이 전하는 아픔과 희망 이야기] 눈 감으면 출렁거리던 시커먼 바닷물 그 속으로 가라앉는 배가 자꾸 생각나

    [세월호 참사 50일… 그들이 전하는 아픔과 희망 이야기] 눈 감으면 출렁거리던 시커먼 바닷물 그 속으로 가라앉는 배가 자꾸 생각나

    “가끔 원인 모를 분노가 치밀어 아내에게 이유 없이 발끈하기도 합니다. 아내는 왜 이렇게 사람이 변했느냐고 하는데 정작 난 왜 화가 났는지, 누구에게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50일. 하지만 세월호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강병기(41)씨의 시간은 ‘4월 16일’에 멈춰버린 듯하다. 그날 이후 이유 없이 폭식을 하고, ‘김밥’ 같은 쉬운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울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정신이 멍해질 때가 있다. 길을 걷다가도 10분쯤 멍하니 서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만히 있어도 이유 없이 손이 떨릴 때가 많다. 공공기관에서 문서를 작성할 일이 있으면 다른 분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대신 써달라고 부탁한다”고 털어놓았다. 거리를 지나는 어린 학생만 보면 눈물이 난다. 일부러 학교 주변을 피해 먼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며칠 전 사촌 동생 결혼식에서는 축가를 듣다가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생각나 눈물을 쏟았다. 사고 당일인 지난 4월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만난 강씨를 3일 경기 부천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난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강씨는 4월 15일 장인 이용주(70)씨와 직원 이모(47·중국 동포)씨와 함께 제주 방파제의 난간 보수 공사를 하러 세월호에 올랐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한 뒤 3층 선수 다인실에서 장인 이씨, 직원 이씨와 함께 나란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강씨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왼쪽으로 기운 것을 느꼈다. 창문으로 배 앞쪽에 실린 컨테이너 박스들이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강씨는 장인을 안심시킨 뒤 상황을 살피러 안내데스크로 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배는 기울었고, 차가운 바닷물이 차올랐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에게 눈에 띄는 대로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을 돕던 강씨는 배가 심하게 기울자 본능적으로 잠수해 좌현 출입문 쪽으로 빠져나왔다. 수영을 못하는 데다 구명조끼도 입지 못했던 강씨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죽음의 그늘이 덮쳐 오던 순간, 누군가 손목을 잡아 끌어올렸다. 고무보트에 탄 해경이었다. 장인도 해경이 선실 유리창을 깬 덕에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2년여를 함께 일했던 직원 이씨는 사고 발생 10여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 발생 이후 경기 부천의 한 병원에 20여일간 입원했던 강씨는 지난달 8일 퇴원했다. 2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무섭게 출렁거리던 시커먼 바닷물과 그 속으로 가라앉는 배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떠오른다고 했다. “병원에 가면 담당 의사는 ‘몸이 어떤가’, ‘머리는 안 아픈가’ 정도를 물을 뿐입니다. 퇴원하고 나서도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으라고 조언했지만, 이제 일도 해야 하고, 아파도 참게 됩니다.” 아픈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가장이자 한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라는 책임감이 강씨를 짓눌렀다. 강씨는 지난 두 달 간 정부에서 월 108만원의 긴급 생계비를 지원받았다.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1000만원에 육박하는 기계 공구와 공구가 실린 1t 트럭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탓에 당장 일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강씨는 “사고 전에 수주받았던 공사 몇 건을 다른 업체에 넘겨줬다”면서 “벌써 몇 달째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해 면목이 없는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해 줘서 고마울 뿐”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날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힘이 듭니다. 빨리 일을 해서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면 힘든 기억도 빨리 잊혀질까요? 금쪽 같은 자식들을 잃은 단원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차마 말을 못 꺼냈지만 정부가 생존자 가족들의 고통에도 조금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밝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담론이다. 이미 19세기의 토머스 칼라일은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권력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고, 20세기의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은 텔레비전의 거대한 위력을 보고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언제나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함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되면 그것은 사회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지 못하고 무서운 폭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제4의 권력’이라고 말하는 언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웨인 부스는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사실과 가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언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담론이지만, 고급한 정론지(혹은 건강한 공정방송)의 길을 걷지 못하고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저급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지닌 가치와 사회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오히려 사회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뉴스의 가치는 신속·정확함에 있다고 하지만, 거의 모든 방송사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끝을 보겠다는 자세로 24시간 계속해서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카메라로 비쳐 국민들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MBN과 JTBC는 정부를 불신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겠다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자학(自虐)에 빠질 정도로 집단적인 외상(外傷)을 입혔다. 이러한 일부 방송사들이 보인 무절제한 태도에 말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나라 전체가 완전히 침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때문에 블레이크의 말처럼 ‘뼈가 묻힌 무덤이라도 달구지는 몰아야’ 한다. 수장(水葬)을 한 304명이나 되는 후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쓰러져 있지 않고 일어나야만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슬픔을 위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문학적인 담론을 얘기한다면, 비록 방송인들은 뉴스는 신속해야 하고 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것이다. 화이트헤드와 폴라니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우주에는 사실과 가치가 분리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들이 세월호 참상에 대해 나라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절제력 잃은 충격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너무나 많이 난립한 방송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문제로 인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방송기자들이 시청자들에 대해 언제나 일방적인 통로로 담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착시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권력이 강해지면 아이러니하게 자칫 그것의 힘에 지배되거나 압도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린 불손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 윌리엄 피트는 “무제한의 권력은 지배자를 타락시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중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제4의 권력을 행사하는 언론사들이 KBS처럼 겸손의 미학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물론 동료 간의 신뢰마저 버리고 진영 논리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면,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최근 언론인 5623명이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국선언을 하며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 [문화 In&Out] 처음 열린 개인화랑 미술재단 시대

    [문화 In&Out] 처음 열린 개인화랑 미술재단 시대

    개관 31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개인화랑인 가나아트가 최근 문화재단을 출범시켰다. “성공한 상업 화랑의 경험과 축적된 미술자산을 공익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유명 화상이 만든 프랑스의 매그 미술관과 스위스 바이엘라 미술관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은 3억원의 자본금을 내놨고, 올 4분기에는 개인 컬렉션(소장 미술품) 200여점을 기탁할 예정이다. 재단 설립은 물밑에서 속도감 있게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발기인 대회를 거쳐 올 2월 서울시로부터 비영리법인허가를 받았고 3월에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됐다. 이사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김형국(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전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이사장을 맡았다. 이 회장 외에 고영훈·박영남·임옥상 작가와 윤범모 미술평론가, 이진학 딜로이트코리아 부회장, 정병국(전 문화부 장관) 의원은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7일 출범 간담회에서 김 이사장은 “예전 가나아트가 진행해 온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확대해 공익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상업 화랑이 담당하기에는 시장성이 약하고, 공공미술관이 하기에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미공개 미술 작품도 발굴하겠다”고 운영 계획을 밝혔다. 가나아트는 현재 70여곳의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작가에게 임대료와 관리비 대신 작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재단이 출범하면 무상 지원할 계획이며, 월북작가인 정종여 등 그늘에 가려진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방침이다. 윤범모 평론가는 “(이 회장이) 마음이 흔들리기 전 지금 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으나 당사자인 이 회장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간담회에는 참석지 않았다. 이렇듯 출발은 긍정적이지만 안팎에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문화재단이 이 회장 일가의 상속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30일에는 이 회장이 회장을 맡은 서울옥션 주총을 통해 친동생인 이옥경 가나아트 대표가 서울옥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장남인 이정용 상무가 가나아트 대표가 된다. 이런 시점에 수익사업을 제한받는 사단법인이 아니라 재단법인 형식으로 출발한다는 점도 일각에서는 예사롭지 않게 본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김 이사장은 “일단 출연된 자산은 개인 미술관과 달리 재단 해체 시 모두 사회에 귀속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도 “우리는 그림이 재산인데 (등록되지 않은)그림을 상속시키려면 오히려 재단에 등록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사설 화랑으로는 국내 처음 재단을 출범시킨 가나아트가 미술품을 시장 논리로만 평가하는 국내 미술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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