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그늘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새 앨범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91개국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1분기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꽃잎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605
  • [여기는 남미] 폭염과 학대 탓에…뼈만 앙상한 말 구조기

    [여기는 남미] 폭염과 학대 탓에…뼈만 앙상한 말 구조기

    불볕더위에 매까지 맞으며 수레를 끌다 결국 바닥에 쓰러진 말이 주민들에게 구조됐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라페레레에서 최근 벌어진 일이다. 30일(이하 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의 주인은 폐품을 주워 생계를 꾸리는 한 노인이다. 노인은 체감온도 4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9일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폐품을 주우러 집을 나섰다. 하지만 제대로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말도 무더위를 견디긴 힘들었다. 말이 힘을 쓰지 못하자 주인은 잔인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는 주인에게 묵묵히 맞고만 있던 말은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주인은 화가 난 듯 더욱 세게 채찍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런 주인을 막고 나선 건 우연히 창문으로 이 광경을 보게 된 한 여자주민이다. 여자는 "아무리 동물이라지만 너무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그렇게 말을 때릴 수 있느냐"고 강력히 항의했다. 주인은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라며 다시 채찍질을 시작하려 했지만 어느새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주민은 이미 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 분노한 주민들이 "주인이라면서 인정도 없는가.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이렇게 학대해도 되는 것이냐"고 따지기 시작하자 노인은 순간 위협감을 느꼈다. 당장이라고 린치를 당할지도 모르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노인은 수레에서 내리더니 주민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디론가 줄행랑을 쳤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주민들은 수레를 불태워버리고 말에게 물을 먹였다. 그늘로 옮겨진 말은 그제야 힘이 나는 듯 다시 일어섰다. 구조된 말은 동물보호단체에 넘겨졌다.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말을 돌봐준 주민들에게 감사한다"면서 "사건을 정식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말을 인수, 보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비아부에노스아이레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기고] ‘고령화 그늘’ 노인 일자리가 답이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기고] ‘고령화 그늘’ 노인 일자리가 답이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이 추위에 노인이 골목길 청소?”저소득 노인의 힘든 겨울나기는 연말연시 단골 기사다. 고령사회의 그늘인 빈곤 노인의 삶을 생각하면서, 노인 빈곤 완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떠올린다. 노인 빈곤과 노후의 무위(無爲)는 우리나라가 포용국가로 가는 길에서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2016년 4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은 60대는 소득 감소, 건강 악화, 사회관계 상실을 경험하면서 ‘행복한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공적연금 외에도 노후소득 보장과 행복한 노후 지원을 위해 ‘노인일자리 사업’을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인의 소득 보충과 사회활동 참여 지원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61만개에서 2022년까지 80만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노인들이 겪는 삶의 고달픔은 흔히 4고(苦), 즉 ‘빈곤·고독·질병·무위’로 표현되곤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 따르면 노인일자리 사업은 빈곤 완화뿐 아니라 건강 증진, 자아 존중감 향상 등 4고 해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어르신에게 용돈을 쥐어 주는’ 사업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갈 곳이 있고 일할 거리가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는 일자리 참여 어르신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노인일자리는 고령자가 은퇴 후 새롭게 사회에 참여하는 통로다. 일자리를 통해 사회관계망을 새롭게 형성하고,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 생활의 기반을 만든다. 또 취약계층 아동의 방과후 활동을 돕고, 장애인 활동을 보조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역할도 한다. 일자리 참여 노인은 복지 정책의 수혜자인 동시에 복지서비스 제공자인 것이다. 정부는 ‘다층적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뿐 아니라 퇴직·주택·농지연금 등 다양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또 어르신들이 살던 곳에서 계속 건강한 노후를 보내도록 지원하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도 시행한다. 다만 그간 노인일자리가 단순 근로 활동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데 치중됐다는 지적도 겸허히 새겨듣고 있다. 노인들의 다양한 욕구와 수요를 정확히 반영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은 물론 일자리 발굴 확대, 효율적 전달체계 개편, 어르신 눈높이에 맞춘 홍보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에게 다가올 고령사회의 모습은 침체되고 배고픈 잿빛이 아니다.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적정한 소득을 보장받는 은빛 세상을 그려 본다.
  • 인도의 숨겨진 얼굴 열여섯…산비탈 사이 골짜기 너머 소박한 행복

    인도의 숨겨진 얼굴 열여섯…산비탈 사이 골짜기 너머 소박한 행복

    인도 나갈랜드州 코히마·자카마 인도 동북부 끄트머리, 히말라야 자락에 자리한 마니푸르주의 임팔공항에 도착했을 때 여행자를 반긴 건 맑은 공기였다.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의 공기와 질이 달랐다. 목마른 사람이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듯 게걸스럽게 심호흡을 했다. 상쾌한 나무향기가 나는 것도 같았다(하지만 불행하게도 맑은 공기는 여기까지였다. 곧 엄청난 먼지를 마시게 된다).임팔공항에서 만난 가이드 에이프릴은 나갈랜드주의 가장 큰 도시인 코히마까지는 차로 약 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거리는 고작 150㎞였다. 이 말은 도로 상태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 실제로 나갈랜드주를 여행한 사흘 동안 포장도로는 10㎞도 달려 보지 못한 것 같다. 지금도 코히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먼지와 급커브다. 해발 2000m의 산자락에 들어선 이 도시의 모든 도로는 공사 중이었고 언제나 수많은 차들로 정체 상태였다. 차들은 전부 뽀얀 먼지를 쓰고 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길을 걸었다. ●몽골로이드계 나가족… 16개 부족 공존 나갈랜드는 인도 동부에 자리한 주다. 미얀마 북서부에 접하고 있다. 주도는 코히마. 주 전체 인구는 220만명으로 우리나라 충청남도 인구와 비슷하다. 이 가운데 코히마에 9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몽골로이드계 민족인 나가족이 많이 거주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인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한때 아삼주에 속했지만 나가족이 꾸준히 분리독립운동을 한 결과 1963년에 나갈랜드주가 만들어졌다. 늦은 밤 코히마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욕실 문을 열었을 때 온수기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뭔가 예감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더운 물은 나오지 않았다. 프런트에 말하니 양동이에 더운 물을 담아 왔다. 방도 너무 추웠다. 후드 재킷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잤다. 자면서 내일 아침엔 씻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긴 인도니까 하루쯤 안 씻어도 되지 않겠어. 코히마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내에 자리한 나갈랜드 박물관. 오전 10시 반에 도착했는데 박물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안내판에는 9시 반에 문을 연다고 분명하게 씌어 있었다. 뭐, 여긴 인도니까. 박물관 앞 마당에는 교복을 입은 다섯 명의 소녀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학교 안 가고 뭐해요?” “오늘 저녁에 시험이에요.” “그럼 시험 공부 해야지.” 소녀들은 입을 가리고 까르르 웃었다. 가이드 에이프릴은 이들을 보자마자 전부 다른 부족이라고 했다. 인사말도 다 달랐다. “나갈랜드에는 모두 16개 부족이 있고 언어가 다 달라요.” 에이프릴은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학생들이 말한 인사말도 다 달랐다. 공용어는 힌두어와 아삼어가 섞인 나가믹스어와 영어라고 했다. 실제로 코히마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에서 물고기 요리 이름을 주인에게 물었더니 주인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부족마다 이 물고기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요. 그러니까 모두 열여섯 개의 이름이 있는 셈이죠. 그냥 나가 스타일 피시라고 하시죠.” 박물관은 훌륭했다. 과거 원주민의 물건과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미니어처들이 있었는데 볼만했다. ‘나가’(Naga)는 벌거벗은(Naked), 혹은 귀에 뚫은 큰 구멍을 뜻하는 ‘낭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들은 아주 호전적인 민족으로 아이들은 태어날 때 바구니를 하나 받게 되는데 이 바구니는 전쟁에서 머리를 담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코히마 시내 한가운데 시장이 있다. 식재료와 생활용품 등을 판다. 그런데 식재료 코너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애벌레였다. 에이프릴에게 먹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나도 좋아해. 먹어 볼래?”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근데 저기 벌집은 뭐지?” 꼬물거리는 노란색 애벌레 옆에 하얀 스티로폼 같은 벌집이 가득 놓여 있었다. “그것도 먹는 거야.” “꿀은?” “꿀도 먹고 벌집 속의 애벌레도 먹지.” 에이프릴은 하나를 빼서 권했다. 그래, 먹어 보자. 그래야 뭐라도 쓸 거리가 생기니까. 애벌레 하나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혀 위에 놓인 애벌레가 꿈틀거렸다. 차마 씹지는 못하고 꿀꺽 삼켰다. 근데 목구멍 안쪽에 깊숙이 걸린 애벌레는 한 번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여러분 여행작가는 이런 직업입니다. 한 줄 문장을 쓰기 위해 애벌레도 먹어야 한답니다).●전통집 모룽 짓고 사는 평화로운 앙가미족 코히마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카마 마을이 있다. 1400명 남짓의 앙가미 족 사람들이 전통집 모룽을 짓고 살아간다. 에이프릴은 자기도 앙가미족 후손이라고 했다. 앙가미족은 16개 부족 중 가장 인구가 많다. 마을 이름 마지막에 ‘마’가 들어가면 앙가미족의 마을이다. 마을은 평화로웠고 한적했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공터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길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소녀는 이방인이 나타나자 부끄러운 듯 라켓을 거두어 얼굴을 가렸다. 마을 한가운데는 공동 우물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서 머리를 감고 빨래도 했다. 노인들은 처마 그늘에서 오래된 책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앙가미족의 전통 가옥 구조는 간단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다란 쌀독이 있는 창고가 먼저 나타난다. 이 쌀독이 많을수록 부자다. 창고를 지나면 부엌. 화덕이 있고 컵과 냄비 등이 그 옆에 놓여 있다. 여자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요리를 한다. 건너편은 침실이다. 침대 하나가 단출하게 놓여 있다. 쌀로 만든 이곳 전통주를 맛볼 수 있었는데 시큼하고 텁텁한 맛이 막걸리와 비슷했다.에코투어리즘 즐기는 마을 코노마 코노마는 코히마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마을이다. 450여 가구, 2000여명이 모여 산다. 집과 집 사이로 난 작은 골목을 들여다보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 마을의 명물은 다랭이논. 산비탈을 일궈 만든 논이 마을 앞에 펼쳐져 있다. 여행자들은 이 다랭이논 사이로 트레킹을 즐기고 홈스테이를 하고 마을 문화도 체험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에코투어리즘 여행상품이 잘 갖춰져 있다.마을을 걷다 잔치 준비에 한창인 어느 가정을 방문했다. 노인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따뜻한 차와 음식을 내주었다. “나갈랜드의 결혼식은 보통 사흘 동안 열려요. 하루는 남자의 집에서, 또 하루는 여자의 집에서 잔치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교회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벌이죠.” 에이프릴이 설명했다. 마을 광장에 자리한 공동 창고에서는 남자들이 소와 돼지를 잡아 뼈와 고기를 해체하고 있었다. 보통 결혼식에 5~8마리를 잡는다고 한다. 갓 잡은 소와 돼지의 대가리가 문 앞에 찡그린 얼굴로 걸려 있었다. 창고 안은 날고기 냄새와 피 냄새로 가득했다. 해 질 무렵 에이프릴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작은 공터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전통옷을 입은 앙가미족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나와 또 다른 한 여행자 단 두 명을 위해 전통 춤을 추었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여자들의 목소리는 높아서 골짜기 너머로 멀리 날아갔고 남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후렴을 넣었다. 여자들의 얼굴에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의 공연이 아직은 어색한 듯 부끄러움이 묻어 있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뭔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따뜻한 물에 손바닥을 대는 듯한 느낌이었다. 코히마로 돌아와 하룻밤을 묵었다. 방은 추웠다. 더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씻을 엄두가 나지 않아 물티슈로 대충 닦고 후드티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채로 잤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한 번도 덮지 않았던 옷장 속의 담요를 꺼내 덮었다. 닭과 트럭 소리가 잠을 깨웠다. 방음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마치 길바닥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호텔 현관 앞에서 햇빛을 쬐었다. 방보다 거리가 따뜻하다. 바다 이구아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체온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내 앞으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트럭이 경적을 울리고 지나가고 자욱하게 먼지가 인다. 짓다 만 건물들이 어색하게 서 있다. 이렇게 서 있으면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난 여기에 왜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뾰족한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여행을 왔기 때문에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서도 우린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 여행수첩 한국에서 나갈랜드로 가는 직항은 없다. 델리나 콜카타를 경유해 임팔공항 혹은 디마푸르공항으로 가야 한다. 임팔공항이나 디마푸르공항에서 나갈랜드 코히마까지 최소 4시간이 걸린다. 코히마에서는 호텔 우라에 묵었다.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데, 직원에게 부탁하면 정해진 시간에 가져다준다. 코히마의 2차 세계대전 추모 묘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졌던 영국·인도 연합군과 일본군 간의 전투에서 희생당한 군인들을 묻은 곳이다.
  • 이제 24명뿐…위안부 피해 할머니 별세

    이제 24명뿐…위안부 피해 할머니 별세

    새해 들어 처음 별세…장례식 등 비공개“활동가보면 반가워하던 정 많던 분”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모 할머니가 별세했다. 95세. 정부에 등록된 피해 생존자는 24명으로 줄었다. 28일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해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날 오전 7시 30분쯤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 측 요청으로 피해 할머니의 신원과 이후 장례 절차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 할머니는 17살이던 1942년 직장인 방직공장에서 퇴근하던 길에 군인에게 납치됐고, 10여명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강제로 배에 태워져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갔다. 이 할머니는 시모노세키에서 또다시 중국 만주로 끌려가 끔찍한 피해를 겪었다. 어느 날부터 일본군들이 오지 않아 해방됐다는 걸 알게 된 이 할머니는 “조선으로 가는 배가 있다”는 말에 동료들과 항구로 갔고, 조선인 선주에게 사정해 소금 밀수선을 간신히 얻어 타고 귀국했다. 정의기억연대는 “할머니는 활동가들을 보면 무척 반가워하고 집에 잘 돌아갔는지 확인 전화도 할 정도로 정이 많으셨던 분”이라면서 “피해의식과 죄책감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셨고 항상 얼굴에 그늘이 져 있어 안타까웠다. 이제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 외롭고 힘든 기억 모두 잊고 편안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Ghost/강성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Ghost/강성은

    Ghost/강성은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때 죽은 여자 같더니 죽고 나선 산 여자처럼 밤의 정원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는 작은 새처럼 밤하늘을 떠다니는 검은 연처럼 장갑을 끼면 손가락이 생겨나고 양말을 신으면 발가락이 생겨나고 모자를 쓰면 머리가 생겨난다 책을 읽으면 눈이 생겨나고 음악을 들을 땐 귀가 생겨나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입술이 생겨나는데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입이 있어도 말은 못 한다 -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읽습니다. 여자는 밤의 정원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작은 새 같습니다. 여자가 하는 일은 죽어서나 살아서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장갑을 끼면서는 손가락을 사랑하지요. 양말을 신을 때면 발가락을 사랑해요. 책을 읽을 때면 눈을 사랑하고 음악을 들을 때면 귀를 사랑해요.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 때면 입술을 사랑하지요. 그런데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지 못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있으므로 삶은 조금씩 따뜻해지고 죽음은 사과향이 나는 그늘을 지닐 것입니다. 내게 그 말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곽재구 시인
  • [금요칼럼] 체육계 성폭력과 젠더 결손(gender deficit)/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금요칼럼] 체육계 성폭력과 젠더 결손(gender deficit)/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결손’이란 ‘어느 부분이 없거나 모자라서 불완전한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과거에 ‘결손가정’이란 말이 있었다. 부모 중 한편이 사망하거나 떠나서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가족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썼던 말이다. 지금은 이 단어의 차별적 의미를 알고 쓰지 않게 되었지만, 한때 결손가정이란 말은 개인의 가족 배경과 관련해 무서운 낙인을 찍는 말로 생각됐다. 경제적으로 ‘결손’이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금전상의 손실이 생기는 경우를 뜻한다. 역시 부정적인 의미다. 어떤 사람이 재정적으로 결손 상태에 있다면 그는 십중팔구 빚을 지거나 재산을 잃어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또 어떤 회사가 장기적인 결손 상태에 있다고 한다면 그 회사는 머지않아 심각한 채무 상태에 빠지거나 아예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조직에서 말단 직원들은 남녀가 비슷하게 모여 있지만 관리자나 경영진은 남성이나 여성 한쪽으로만 구성돼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조직에서 주로 지휘나 명령을 내리고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갖는 사람들은 관리자나 경영진이므로 조직의 제도나 문화, 관행은 그들의 성별 특성에 좌우되기 쉽다. 이를테면, 남성 관리자가 대부분인 회사에서 군대식의 상명하복 문화가 발달해 있다든지 회식 때 으레 삼겹살에 소주를 마신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반대로 여성이 관리자나 경영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직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남성들은 군대보다는 아이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회식 때 삼겹살보다는 파스타를 더 자주 먹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차이가 소소한 일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조직 속에 여성들이 적지 않다고 해도, 의사결정권을 갖는 지도적 위치를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다면 조직에서 제도와 규칙을 만들고 구성원을 평가하고 상과 벌을 주는 사람은 남성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고 판단하는 행위와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행위, 옳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꼭 처벌할 필요는 없는 행위, 옳지 않지만 더 큰 목적(예컨대, 돈을 더 벌거나 더 많은 권력을 갖는 일)을 위해서는 눈감아 줄 수 있는 행위 등등 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남성 리더들의 경험과 인식에서 나온다. 이 경우 일시적으로 적당히 넘어감으로써 더 큰 과실(과실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그들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늘 아름다운 과실만은 아니다. 통제되지 않는 폭력과 처벌받지 않는 범죄는 그늘 속의 독버섯처럼 넓고 크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탈과 범죄 행위에 대한 리더들의 침묵은 그것들을 덮으려는 목적의 더 많은 일탈과 범죄를 불러오기 쉽다. 빙상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갈지 끝을 알 수 없는 체육계의 성폭력 사건은 근본적으로 성별 불균형한 조직구조에 그 씨앗이 내재돼 있다. 선수는 여성이지만 ,감독도 코치도 트레이너도 남성인 조직에서 나이 어린 여성은 폭력과 성폭력의 피해자로 살아야 한다.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그녀는 자기 삶의 주인공을 포기해야 한다. 승리를 움켜쥐기 위해 누군가가 자신을 움켜쥐어도 참아야 한다. 체육계의 성폭력 사건은 심각한 ‘젠더 결손’(gender deficit)의 당연한 결과다. 체육계 리더십 내부의 강고한 성별 불균형은 남성 지도자와 여성 선수라는 지위와 권한, 연령과 성별의 교차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하는, 어쩌면 그전에 먼저 분노를 삼키며 링크를 떠나야 하는 수많은 여성 선수들을 낳았다. 조사도 중요하고 처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체육계 내 여성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文대통령,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 직언하는 참모 있어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文대통령,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 직언하는 참모 있어야”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안 나오는 건 최저임금만 가파르게 올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확장적 재정정책과 복지 증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84%(2017년 6월 2일)와 45%(2018년 12월 11일).’ 문재인 정부 지지율의 최고치와 최저치다. 집권 1년 반 만에 절반 가까이 빠졌다. 이는 상당 부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충격과 고용 악화, 경기 하락 등 경제정책의 실패에 따른 결과다. 이에 야당 등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첫 정책실장을 지낸 국내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 이정우(68)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서울 남대문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 이사장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등에서 “정부가 당장의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조급증을 버리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최근 경기 하락은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요인과 더불어 정부 정책의 실책도 원인으로 꼽히는데.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로는 부동산 폭등 등 불평등 심화와 불로소득 팽창에 따라 혁신성장이 이뤄지지 못하고, 대·중소기업 간의 공정경제 구조가 미흡하며, 증세 등을 통한 적극적 재정정책이 부족하다는 걸 꼽을 수 있다. 이를 위한 처방으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라는 정책 방향을 설정했고, 이는 잘 잡았다고 본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옳았는데 처방 약을 너무 약하게 썼다. 그래서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계속 고통을 받고 병은 낫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토지 보유세 강화와 복지 증세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앞서 밝혔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면 중산층 서민의 소비 진작 효과가 커지면서 지난해 우리 경제는 3~4% 성장도 가능했을 것이다(실제로는 2.7% 기록). 국가 경제정책의 핵심인 성장과 분배, 고용이 살아나려면 순서가 중요하다. 분배가 잘되면 성장이 일어나고 고용이 따라오게 돼 있다. 정권 초반에 “마차(일자리)를 말(경제성장) 앞에 둘 수 없다고 지적한 까닭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평가는. -적정 수준은 5~10% 인상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합친 명목GDP 성장률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 바람직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보완하기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가 정부의 ‘실적 쌓기’용으로 변질되고, 정작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영국이 1795년 저임금 농업 노동자의 빈곤을 보전해 주기 위해 마련한 스피넘랜드(Speenhamland) 제도다. 자본가는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주면서 부족액은 보조금으로 메우려 했고, 노동자는 최저임금이 보장되니 노동생산성이 급속히 떨어졌다. 생산성이 하락하자 자본가는 임금을 올리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200년이 지난 뒤 한국에서 스피넘랜드 제도와 유사한 정책이 시행됐다는 건 잘못된 일이다. 한국의 시간당 임금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이젠 중간 정도는 되는데도 과도한 인상으로 몰아갔다. 대선 공약 중 하필 1만원 공약만 너무 충실했다. 선거 과정에서는 일부 지나친 공약을 내놨어도 선거 이후에는 냉정을 되찾았어야 했다. →정권 초반에 소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일관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균형재정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목표에 해당한다. 경기가 바닥일 때는 적자 재정정책을 쓰고, 경기가 좋아질 때는 흑자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계속 흑자가 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두 해 연속 대규모 흑자가 발생한 것은 다소 실책이 아닌가 싶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투자, 수출, 재정이 아니라 소비의 저조이고, 그것은 분배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이 문제를 타개하는 유효한 수단이 소득주도성장이다. 정부 재정이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역할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기재부는 대단히 유능한 관료 집단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드물고 늘 비슷한 대책만 갖고 온다. 대표적인 게 예산의 조기 집행이다. 예산을 앞당겨 쓴다고 무슨 큰 효과가 있나. 그보다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 복지를 위한 증세, 대기업 갑질 근절 등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재부는 수술실에 들어온 중환자에게 환부에 소독약 바르는 정도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참여정부 때 근로장려세제 도입 직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당시 모 경제 부처 장관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엉뚱한 시비를 걸고 나왔다. 이미 오래전에 미국이나 영국에서 성공한 근로장려세제에 대한 이해조차 없던 거다. →문 대통령이 경제 면에서 편향된 정보만 보고받아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관측도 있다. -문 대통령은 경청하는 열린 귀를 갖고 있는 건 확실하다.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다. 다만 최근에는 외부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외부와의 소통을 굉장히 많이 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청와대 안이 외부의 학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학자들의 발길이 끊긴 것 같다. 청와대에 다녀왔다는 학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경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대통령이 (외부에) 전화라도 해서 자문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아쉬운 점이다. 현재 청와대 비서진 중에서는 유능하면서도 선량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직언하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 당장은 옳은 말을 하는 게 어렵지만, 지나고 보면 누군가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화된 경제지표를 올리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성과가 안 나오는 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기조를 버리고 경제활성화나 투자 촉진, 기업 기 살리기 등으로 돌아갈까봐 걱정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줄곧 봐 오던 모습이 아닌가. 혁신성장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중요하다. 소득주도성장은 한국처럼 불평등이 심해서 중산층 서민의 소비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잘 듣는 약이라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불평등이 해소되고 소비가 올라가고 경제가 살아나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약이 안 들을 것이다. 그때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엔진은 필요 없고, 혁신성장 한 개의 엔진만으로도 갈 수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참여정부 직후 한 심포지엄에서 당시 김상조 교수는 “재벌 개혁과 관련해 참여정부가 한 게 하나도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하더라. 이에 대해 참여정부 첫 공정위원장이던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아마 맞는 말이겠지요”라며 더이상 변명을 하지 않았다. 몇 년 뒤 젊은 학자가 김 위원장을 향해 “문재인 정부는 재벌 개혁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공격할까봐 걱정이다. 본인은 열심히 재벌 개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왜 아무것도 안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반발로 못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법을 고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청년 실업은 세계적 문제이자 한국의 문제다. 과거에 비해 청년의 구직이 매우 어려워졌다. 제조업의 고용탄력성이 하락한 것도 있지만, 산업구조 변동에 때맞춰 적응하지 못한 면도 있다. 제조업을 대체할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구조 변동에 따른 이직을 촉진하되 새 일자리의 구직과 훈련을 강화해 일자리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을 조속히 갖춰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된 택시 카풀 문제도 먼 장래를 내다보는 국가의 적절한 개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새 기술은 적극 받아들이되 그늘은 보살피는 국가의 역할이 요구된다.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과 투자 보장을 위해 차등의결권이나 가중의결권 등을 인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가중의결권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우리 상황에서 총수 일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동의하기 어렵다. 재벌 개혁 중 외부 개혁이 대기업의 갑질 근절이라면 내부 개혁은 지배구조 개혁이고, 그 수단으로 노동이사제도 고려해 봄직하다.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외부 교수들이 용돈을 타 쓰는 대신 99.9% 찬성하는 거수기로 왜곡됐다. 미 코닝사나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기업들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면서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다. →민주노총이 오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결정할지 관심이 쏠린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강경파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내걸고 등장한 지도부다. 정부가 노동계를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은 노동에 대한 이해가 높지만, 청와대 안에 노동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까지 고향인 대구를 거의 떠나지 않은 게 눈에 띈다. 성향이 보수적인 대구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대구에서만 50년을 살았다. 서울(서울대 경제학과 등)에서 12년, 미국 보스턴(하버드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6년 지낸 게 타지 생활로는 유일하다. 유학을 끝낸 뒤에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 전에 교편을 잡던 경북대로 다시 돌아왔다. 원래 대구는 혁신적인 움직임이 활발했던 도시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도 4·19혁명 이후 교원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수업 시간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부친(고 이종하 영남대 법대 학장)도 노동법을 전공해 진보 성향에 가까웠고, 그 때문에 고초도 겪으셨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덕분에 분배 문제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대구 사람들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인간적으로 상당한 매력이 있다. 의리와 체면을 중시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지탄하는, 일종의 선비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한 문화는 우리가 보전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두걸 논설위원 douzirl@seoul.co.kr
  • “주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 혁신… ‘소확행’ 노원의 길 가겠다”

    “주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 혁신… ‘소확행’ 노원의 길 가겠다”

    “소확행으로 구민들의 삶을 바꾸고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가는 노원구를 만들겠습니다.”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이 22일 서울신문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주민들의 소소한 행복에 천착하는 따뜻한 행정, 미래 성장동력의 토대를 만드는 성과를 만드는 행정 두 가지를 임기 2년차 구정 목표로 제시했다. 폭염 대책과 한파 대책 등에서 재기 넘치는 역량을 보여 준 오 구청장은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정책을 구상하기 위해 신문을 꼼꼼히 챙기고 구청 직원과 주민들을 쉴 새 없이 만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임기를 시작하고 나서 이제 2년차를 맞는다. 새해 각오는. -올해 구정 슬로건을 ‘오늘이 행복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노원’이다. 소확행을 통해 구민들의 삶을 바꿔 나가는 노원구를 만들자는 뜻을 담았다. 아울러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가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한 해가 되자는 의지를 표현했다. 그렇게 현재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구정을 추구하고 싶다.→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 때 가장 큰 성과로 무엇을 꼽고 싶나. -주민들이 기뻐하고 행복을 느끼는 게 멀리 있는 대단한 사업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 폭염과 한파에 힘들어할 어르신들을 위한 대책에 기뻐하고 예쁘게 심은 꽃과 그늘막 디자인을 좋아하신다. 6개월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걸 꼽으라면 구청 직원들과 소통하며 호흡을 맞춰 나간 것이다. 구청장과 구청 직원들이 서로 생각을 이해하고 보조를 맞춰 가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더 잘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동주민센터 업무보고를 비롯해 주민들을 계속 만나면서 노원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가장 아쉬웠던 건 어떤 것인가. -노원구의 오랜 숙원 사업인 창동차량기지와 도봉면허시험장 이전 부지 확정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노원구로선 10년 넘게 노력해 왔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올해 반드시 이뤄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이전 기지를 확정해 노원구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올해 주력하려는 핵심 사업 목표는 무엇인가. -창동차량기지와 도봉면허시험장을 이전하고 나서 개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청사진이 있어야 어떤 시설을 포함하고 어떤 기업이 입주할지 결정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강서구 마곡지구나 상암DMC 선례는 물론이고 해외 사례도 많이 연구하고 장점을 배우려고 생각 중이다. 광운대 역세권에 있는 시멘트 공장을 옮긴 뒤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올해 예산안에서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무엇인가. -자연·문화·복지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자연은 수락산 자연휴양림이나 불암산 힐링타운 등 주민들이 서너 시간 동안 맘 편히 놀 수 있는 녹지를 만들자는 뜻을 예산에 담았다. 영축산에는 무장애숲길을 조성하고 화랑대 철도공원에는 박물관과 야간경관 조명을 조성한다. 문화예술회관은 공연의 수준을 더 높일 예정이다. 특히 북서울미술관에서 천경자·이중섭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문화재단도 설립하려고 한다. 공동육아방이나 초등돌봄센터, 고교 무상급식. 어린이집 보육교사 처우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어르신 쉼터와 청소년 공간도 권역별로 추가하려 한다.→노원구는 다양한 주민 맞춤형 정책이 인상적이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비결은. -주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유심히 보고 놓치지 않고, 주민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핵심이다. 왜 낮에만 무더위 쉼터를 운영할까 밤에도 더운데 선풍기로만 열대야를 보내려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다가 무더위 쉼터라는 폭염 대책이 나올 수 있었다. 겨울에 24시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다가 찜질방을 생각하게 되면서 한파 쉼터를 구상했다. 반려견 1000만 시대라고 하는데 반려견 걱정에 명절 귀향길을 망설인다는 신문 기사를 보다가 반려견 돌봄서비스를 내놓게 됐다. 구청장이 되니까 기사를 더 꼼꼼히 보면서 아이디어도 얻고 다른 지역 사례도 연구하게 된다. →구청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정 원칙은 무엇인가. -결국 관계가 핵심이다. 내가 최종 책임자이고 결정권자이지만 혼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있다. 노원구청 직원이 약 1500명이다. 과장만 40여명이다. 각 분야에서 직원들이 신나게, 자기가 구청장인 것처럼 일하도록 하면 구정은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구청장 혼자서는 결코 40개 부서 업무를 다 할 수가 없다. 권한을 많이 나눠주려고 노력한다. 일 잘하는 직원에겐 인센티브도 주고 휴가도 보내 주는 식으로 상벌제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친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 호프타임도 하고 산도 같이 오르면서 인간적인 교류에 신경 쓴다. →서울시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서울시가 일자리 정책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 일자리 센터는 서울 전체에 하나밖에 없다. 장애인일자리센터도 하나뿐이다. 장애인일자리센터는 강남구, 노인일자리센터는 종로구에 있다. 노원구에서 가려면 몇 시간 걸린다. 여성발전센터가 서울시에 5개 있고 여성인력개발센터가 25개로 구마다 있는데, 장애인·노인 일자리도 여성 일자리 지원 기관 정도의 수준은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장애인·노인 일자리지원센터를 권역별로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형 복지를 많이 강조하는데 좀더 과감한 투자가 아쉽다. 특히 고교 무상급식은 발표만 놓고 보면 서울시가 전액 책임지는 것처럼 돼 있지만 실제로는 시비보조사업이다. 논란 끝에 서울시가 70%, 구청이 30%를 부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오승록 구청장은…노무현 前 대통령 도보 방북 기획한 靑 의전행정관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은 학생운동과 국회, 청와대, 지방의회를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은 끝에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연세대 부총학생회장을 역임했으며,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의전담당 행정관으로 일하면서 비외교관 출신으론 최초로 대통령 해외 순방 행사를 총괄했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할 당시 노란색 군사분계선을 직접 건너는 행사를 기획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시의원으로 일했다. 현장·주민 중심 행정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실천하는 게 구정 목표다.
  • 수목원 뺨치는 하천변 12.6㎞… ‘45억 녹색옷’ 입는 안양천

    수목원 뺨치는 하천변 12.6㎞… ‘45억 녹색옷’ 입는 안양천

    안양천 첫 단추… 도림·목감천으로 확대서울 구로구가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녹색도시´ 청사진의 첫 단추로 안양천 녹화 사업에 시동을 건다. 이성 구로구청장의 민선 7기 핵심 공약 사항인 ‘하천변 수목원화 사업’의 하나이다. 구로구는 안양천 일대를 수목원 수준의 녹지를 갖춘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2022년까지 대규모 하천녹지 사업을 펼친다고 22일 밝혔다. 향후 안양천에 이어 도림천, 목감천 등 지역 3대 하천에 거리 12.6㎞, 면적 51만 4140㎡에 달하는 녹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그 첫 단계로 올해 모두 45억원을 투입해 안양천 생태복원과 녹지대 확충 작업 등을 한다. 우선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안양천 오금교 북단에 1만 8000㎡ 규모의 서남권 최대 생태초화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차량 통행과 유동인구가 많은 광명대교부터 신정교까지 서부간선도로변 3.7㎞ 구간에는 길게 뻗은 장미정원을 만들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안양천 우안 산책로 등 3곳에는 야생 및 저온에서도 잘 자라는 라벤더를 심고 포토존을 설치한다. 또 고척교에서 오금교에 이르는 1㎞ 구간은 환경 개선과 생태 복원을 위해 잡목과 위해식물군을 제거한다. 고척교에서 신정교까지 산책로 2.6㎞ 구간에는 여름철을 대비한 그늘목을 심고, 야간 이용객을 고려한 발광다이오드(LED) 조형물과 ‘로고젝터’(그림자조명)도 설치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2022년까지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수변관찰데크, 생태교육이 가능한 생태놀이터,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학습원, 포토존 등 다양한 공간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구는 현재 폐기물을 처리하고 지반을 정리하는 등 사전 정비작업을 모두 마친 상태다. 구로구 관계자는 “인위적인 조성이 아닌 기존의 하천생태계와 어우러지는 자연 휴식공간을 확충해 구로구민뿐 아니라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지역 명소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SKY 캐슬’ 윤세아 진정성 있는 연기, 결말 향할수록 빛나는 저력

    ‘SKY 캐슬’ 윤세아 진정성 있는 연기, 결말 향할수록 빛나는 저력

    ‘SKY 캐슬’ 윤세아가 진정성 있는 연기로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결말을 향해 갈수록 윤세아의 저력이 빛나고 있다. 19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에서는 노승혜(윤세아)가 차민혁(김병철)에게 이혼을 고한 가운데, 승혜의 사이다 반성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윤세아의 연기와 목소리가 입혀진 반성문 장면은 통쾌함과 동시에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아무리 설득해도 변하지 않는 남편, 아빠에 대한 원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승혜는 결국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승혜는 “나 당신하고 더는 못 살겠어요”라며 “차민혁씨 우리 이혼해요”라고 선언했다. 이어 승혜는 “당장 피라미드 없애고 애들한테 강압적으로 당신의 교육관, 가치관 강요하지 말아요. 애들을 당신하고 똑같은 인격체로 존중해달라”는 조건을 걸며 ”지금 내가 한 말 당신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당신하고 이혼할 거다“라고 엄포했다. 하지만 민혁은 승혜의 선전포고에도 비소 섞인 말로 자신의 자존심만 내세웠다. 이혼 소송해도 유책사유가 없다는 것. 승혜는 ”언어폭력도 폭력이다“라며 응수했지만, 오히려 민혁은 반성문을 써놓으라며 협박했다. 퇴근한 민혁에게는 텅 빈 거실 안 대형 피라미드만이 반겼다. 승혜가 남긴 반성문에는 이혼 서류를 제출하라는 말과 함께 ”가부장적인 친정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인생의 가치관에 대해 깊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차민혁씨 같은 남자와 결혼한 것을 반성합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차민혁 씨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육방식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근 20년간 아이들의 당해온 고통을 방관한 저 자신을 깊이 반성합니다. 연장은 고쳐서 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차민혁 씨에게 끝까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저 자신을 통렬히, 반성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날 노승혜의 이혼 선언과 반성문은 인상적이었다. 사이다의 정점을 찍은 것. 김병철의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윤세아의 덤덤한 표정과 일침은 짜릿함을 더했다. 특히 반성문을 읽는 김병철의 모습 위로 점점 감정이 고조되어가는 윤세아의 목소리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이 오버랩돼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가부장적인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강인한 모성애와 무거운 책임감이 고스란히 느껴진 부분이었다. 노승혜는 그동안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권위적인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거짓된 삶을 꾸밀 정도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뒤 큰 충격과 깨달을음 얻었다. 윤세아는 길고 긴 인내의 시간들을 거쳐 엄마로서도, 스스로도 단단해져 가는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이번 ‘SKY 캐슬’로 윤세아의 저력이 다시금 입증됐다. 사진=JTBC ‘SKY 캐슬’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녹색도시 부산 조성… 기업들 릴레이 기부

    녹색도시 부산 조성… 기업들 릴레이 기부

    녹색도시 부산조성을 위한 기업들의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는 18일 오전 11시 부산시청에서 부산시민공원 숲 조성을 위해 NH농협은행이 40억원 규모의 기부금 기탁식 행사를 가졌다고 밝혔다. 부산시가 민선 7기 들어서 ‘걷기 좋은 보행 도시’를 선언하고 녹색 도시 성장 비전을 밝힌 데 농협은행도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농협 기부금으로 만들어질 부산시민공원 내 새로운 숲 이름은 ‘농협 숲’으로 정했다. 시는 다음 달 중으로 농협 숲 조성공사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하고 4월쯤 숲 조성공사에 들어간 뒤 10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한다. 농협 숲은 농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녹음이 풍부한 큰 나무를 심고 다양한 농구기를 비치해 스토리가 있는 숲으로 만들 계획이다. 앞서 주류업체 무학도 17일 부산시민공원에 ‘좋은데이 숲’ 조성을 위한 기탁금 2억5000만원을 부산시에 전달했다. 무학 기탁금으로 조성되는 숲은 부산시민공원 방문자센터 옆 하야리아 잔디 공간에 마련될 예정이다. ‘좋은데이 숲’은 부산시가 올해 10억원을 들여 조성하기로 한 ‘그늘 숲길’과 연계해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시민공원은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쳐 미군 부대가 주둔하면서 100년여 년간 시민 출입이 금지됐다.군 부대가 이전하면서 공원으로 조성돼 2014년 도심 공원으로 개장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시민공원 조성이후 연간 800만 명이 방문하고 있지만 나무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시민공원을 뉴욕 센트럴파크와 같이 기업들 기부로 숲을 조성하는 세계적인 숲속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올해 ‘그늘 숲길’에 이어 내년에도 산림청 국비로 ‘바람길 숲’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월드 Zoom in] 주식·펀드 등 위험자산 많은 日 고령 투자자들, 죽음과 함께 증시에서 6년간 270조원 사라져

    주식·투자신탁 등 일본 자본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닛케이평균주가가 2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을 만큼 시장이 강세를 보였지만, 개인투자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일본사회의 변화를 말할 때 많은 경우가 그렇듯 여기에도 고령화의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일본 증시에서 개인투자는 27조엔(약 270조원)의 순매도를 나타냈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투자자의 고령화’가 있다. 고도성장기와 거품경제기를 거치며 가파른 경제 팽창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투자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크다. 현재 일본 증시의 개인투자자는 19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니혼게이자이는 “투자자 평균연령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한 대형 증권사의 경우 평균 연령을 60대 후반으로 보고 있으며 다른 중견 증권사의 경우는 70세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1860조엔에 이르는 일본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은 인구의 4분의1을 구성하는 65세 이상 인구가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또 절반은 75세 이상 인구가 갖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일본의 독특한 연령대별 투자 성향이 자본시장에 대한 고령화의 영향을 증폭시킨다. 주식·펀드와 같은 위험자산은 일반적으로 젊은층이 선호하는 경향이 높지만, 일본은 반대이기 때문이다.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에서 위험자산을 보유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가계 연령대는 70세 이상으로, 금액이 줄잡아 110조엔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280조엔 규모로 추정되는 가계 위험자산의 40% 가까이를 70세 이상이 보유한 셈이다. 니혼게이자이는 “고객 투자금액이 지난달에 1000만엔, 그 전월에는 3000만엔이 빠져나갔다. 수억엔 단위로 줄어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대형 증권사 직원의 말을 인용하며 주식·투신에서 운용하던 고객 자산이 자녀들에게 승계되지 않고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투자자의 사망에 따른 유족들의 자금 인출 요청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증권사들은 원 소유자가 갖고 있던 투자 형태 그대로 상속재산이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자녀들은 현금화해 은행에 예치하는 성향이 강하다. 일본 증권업계에는 고령 투자자의 유고로 후대에 상속이 이뤄질 경우 해당 자산의 30% 정도는 은행 등으로 빠져나간다는 분석도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캄보디아 봉사활동 떠난 건양대생 2명 숨져

    한방서 기거…동행 17명은 이상 없어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건양대 여학생 2명이 숨졌다. 학교 측은 현지 병원에서 사망 원인을 폐렴 및 패혈 쇼크로 인한 심정지라고 밝혔다고 발표했다. 건양대는 10일 프놈펜에서 의료공과대 2학년 A(20)씨와 B(20)씨 등 여학생 2명이 현지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두 학생은 지난 8일 오전 복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은 뒤 상태가 좋아져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튿날 오전 또다시 같은 증상을 호소해 재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A씨는 9일 오후 5시, B씨는 10일 오전 5시(한국시간) 각각 숨졌다. 두 학생은 지난 6일 의료공과대 2학년 16명(남녀 8명씩), 같은 과 교수 2명, 교직원 1명으로 이뤄진 해외봉사단에 포함돼 출국, 같은 날 저녁 프놈펜에 도착해 한 방을 썼다. 동행한 다른 사람들은 현재까지 건강에 이상이 없는 상태다. A씨와 B씨 등 학생들은 프놈펜 현지에서 야생동물방지 닭장, 어부 그늘막 등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 주는 봉사활동을 벌인 뒤 오는 16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건양대는 이날 낮 12시 55분 비행기로 의료공대학장과 학생처장 등 수습팀을 급파했다. 유족 6명도 함께 출국했다. 학교 측은 현지 병원이 밝힌 심정지를 일으킨 정확한 이유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세균 침투, 풍토병, 식중독 등이 심정지의 이유인지 등도 조사한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이원묵 총장이 출국했다. 감염내과 교수 등 의료진은 현지에 남은 학생들도 점검한다. 복통 증상 전 두 여학생의 행적 등도 정밀하게 살펴볼 예정이다. 건양대 관계자는 “다른 학생과 교수 등은 세 팀으로 나눠 11~12일 조기 귀국시켜 곧바로 역학검사를 실시해 안전성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신길동 남서울아파트 놀이터에서

    [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신길동 남서울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직 봄바람이 차갑던 지난해 3월, 서울지하철 7호선 신풍역에 내렸다. 신풍역은 최근 몇 년 사이 흑석·노량진·영등포와 함께 뉴타운 개발로 주목받고 있는 신길동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들 지역은 식민지 시대에 경인(京仁) 메트로폴리스의 동쪽 구역으로서 일찍부터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그러다 보니 현대 한국에 들어서는 다소 낙후된 감이 없지 않았다. 최근 나는 경인 메트로폴리스, 또는 경인 공업지대의 초기 흔적을 확인하는 장기 작업을 시작했고, 이날은 신길뉴타운 개발과 함께 철거되고 있는 그 이전 시기 신길동의 몇몇 흔적을 찾기 위해 신풍역에 내린 것이었다.신풍역 5번 출구를 나오자, 남서울아파트라는 아파트 단지가 나타났다. 1974년에 입주가 시작된 5층짜리 아파트 단지로, 현재 안전등급 E등급을 받은 상태이며 천장이 내려앉을 정도라고 한다. 필자도 구반포주공아파트와 개포주공아파트1단지에 살면서 천장이 내려앉아서 비가 줄줄 흘러내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조금만 비가 내려도 천장에서 비 새는 걸 걱정해야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현재 남서울아파트는 신길뉴타운 10구역에 지정되어 재개발 건설사도 정해졌다고 하니 재개발은 기정사실이다. 이날 처음, 그것도 잠깐 남서울아파트에 들른 것이었지만, 이 단지는 결국 재개발이 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그런 생각을 하며 단지 안쪽으로 들어가니 탁 트인 놀이터가 나타났다. 모래밭에 미끄럼틀, 시소, 그네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등나무 그늘과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벤치 옆의 벽돌 기둥에 붙어 있던 두 개의 머릿돌이었다. ‘준공 1979. 8 어머니회 일동’과 ‘一九八九年 二月 어머니회 증축’. 1979년에 당시의 어머니회가 놀이터를 만들었고, 10년 뒤인 1989년에 당시의 어머니회가 놀이터를 증축한 것을 각각 기념하는 내용이었다.이 두 개의 머릿돌을 보고 1974년 입주한 뒤 1979년에 아파트 단지의 어머니들이 자금을 모아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를 만들었고, 그로부터 10년 뒤에 또 다른 어머니들이 놀이터를 증축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재개발 와중에 남서울아파트의 놀이터는 사라질 것이고, 1979년과 1989년의 두 차례에 걸쳐 놀이터를 만들고 증축한 어머니회 회원들의 뜻을 담은 머릿돌들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에서 유독 아파트 단지가 발달한 것은, 원래라면 국가가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각종 기반 시설을 아파트 단지에 입주하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하게 했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서는 이른바 ‘낙후 지역’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남서울아파트의 놀이터는, 국가에 의지할 수 없는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 기반을 만들어 나간 현대 한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그리고 두 개의 머릿돌은 그 역사를 증언하는 역사적 기록이다.
  • ‘톱스타 유백이’ 전소민 이상엽, 데이트 포착 ‘상반된 표정’

    ‘톱스타 유백이’ 전소민 이상엽, 데이트 포착 ‘상반된 표정’

    ‘톱스타 유백이’ 전소민, 이상엽이 묘한 기류 속 ‘동상이몽 마돌호 데이트’를 선보인다. tvN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측이 4일 전소민, 이상엽의 극과 극 표정이 담긴 스틸을 공개했다. 공개된 스틸 속 전소민-이상엽은 여느 커플처럼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이상엽은 본격적인 데이트에 앞서 전소민에게 그녀의 얼굴만큼 곱고 화사한 꽃다발을 선물로 건네고 있는 모습. 전소민과의 데이트가 믿기지 않은 듯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또 다른 스틸 속 두 사람은 마돌호에 탑승한 채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서로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마냥 행복해야 할 데이트가 즐겁지 않은 듯 전소민의 표정에 그늘이 한껏 드리워진 것. 이들의 극명한 온도차가 벌써부터 무슨 상황인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한편 ‘톱스타 유백이’ 7회 엔딩에서는 전소민에게 그 동안 감춰왔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이상엽의 프러포즈가 그려져 흥미진진함을 배가시켰다. 이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김지석(유백 역)-전소민-이상엽의 삼각 로맨스 향방에 시청자들의 각기 다른 응원이 쏟아지며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상황. tvN ‘톱스타 유백이’ 제작진은 “오늘(4일) 8회 방송에서 서로에 대한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그려져 김지석-전소민-이상엽의 관계가 더욱 절정에 이를 것”이라며 “세 사람에게 벌어질 상상초월 삼각 로맨스를 본 방송을 통해 확인해달라”고 전해 기대를 높였다. 한편, tvN ‘톱스타 유백이’는 4일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 = tvN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햇살 한 뼘 담요/조성웅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햇살 한 뼘 담요/조성웅

    -------- 햇살 한 뼘 담요 / 조성웅 울산 용연 외국계 화학공장에 배관철거 수정 작업 나왔다 기존 배관라인을 철거하는데 먼지가 일 센티미터 이상 쌓여 있었다 변변찮은 마스크 하나 쓰고 먼지 구덩이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땀과 기름때로 범벅이 된 내 생의 바닥을 만나곤 한다 마스크 자국 선명한 검은 얼굴로 정규직 직원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까끌까끌한 시선이 목구멍에서 느껴졌다 기름때 묻은 내 작업복이 부끄럽지는 않았으나 점심시간 어디를 찾아봐도 고단한 몸 쉴 곳이 없었다 메마른 봄바람이 사납고 거칠었다 흡연실에서 담배 한 대 물고 버티는데 축축해진 몸에 한기가 돌았다 흡연실 쓰레기통 옆이 그런대로 사나운 바람도 막아주고 햇살 한 뼘 따뜻했다 함께 일하던 이형이 쓰레기통 곁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더니 몸을 오그려 고개를 숙였다 이내 코고는 소리가 쓰레기통에 소복이 쌓였다 난 그의 곁에서 오래도록 아팠다 안정도 지금 그를 안내할 수 없고 행복도 지금 그를 도와줄 수 없고 코뮤니즘도 지금 그를 격려할 수 없었다 쭈그려 쪽잠 자는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그의 고단한 몸을 깨우지 않는 것이었다 햇살 한 뼘조차 그늘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난 햇살 한 뼘을 가만히 끌어다 덮어주고 싶었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가진 것 하나 없는 맨몸으로 도달한 투명한 수평 햇살 한 뼘 담요! - 시는 느낌이다. 설명을 하면 죽는다. 마음의 행간에 종이배를 띄우고 천천히 흐르자. 당신이 ‘햇살 한 뼘 담요’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멋지지 아니한가. 곽재구 시인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살아 있는 화석, 메타세쿼이아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살아 있는 화석, 메타세쿼이아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 근처에는 거대한 직삼각 수형의 나무가 있었다. 네모난 학교 건물과 동그란 호수, 세모난 나무를 한 페이지에 그린 그림이 내 생에 처음 그린 풍경화다. 어렸을 때는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몰랐고, 커서도 도무지 무슨 종이었는지 기억해낼 수 없이 그저 직삼각 수형의 바늘잎나무라고만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2년 전 모교에 초대받아 강의를 하게 되면서 20여년 만에 그 나무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을 때 한눈에 그 나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메타세쿼이아였다. 연둣빛의 가느다란 잎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거대한 나무. 나무 앞에 커다란 이름표까지 떡하니 꽂혀 있었는데 왜 어릴 적 나는 그걸 보지 못했을까. 나무는 내 기억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20m는 족히 돼 보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에서 여전히 똑같은 그 나무가 대견해 가까이 다가가 붉은빛 수피를 쓰다듬으니 어쩐지 옛날 생각이 나면서 울컥했다. 내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준 메타세쿼이아. 재밌게도 이 나무는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되살아난 나무’ 혹은 ‘여전히 살아 있는 화석 나무’라고 불린다. 공룡이 살던 시대에 존재했던 이 나무가 19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지구에서 멸종된 줄만 알았으나 1944년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노목으로 다시 발견됐기 때문이다.낙우송과 메타세쿼이아속 3종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 종은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리에 중국을 넘어 미국과 유럽에 전파되고 증식돼 세계적인 원예식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1952년 현신규 박사에 의해서 처음 도입됐다. 흔히 메타세쿼이아와 같은 과의 식물인 낙우송이 수형도, 잎 형태도 비슷하게 생겨 헷갈리기가 쉬운데, 가장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은 잎이 마주나면 메타세쿼이아, 어긋나면 낙우송이다. 가까이 다가가 잎을 보지 않더라도 낙우송은 공기뿌리가 땅 위로 볼록 솟아나 있어서 나무 주변에 뿌리가 보이는지 둘러보면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 메타세쿼이아는 1952년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한창 가로수 식재가 많던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도시 가로수와 공원 조경수로 널리 이용돼 왔다. 빨리 자라기 때문에 도시 녹화에도 유용하고, 수고가 워낙 높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색적인 형태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식물은 내 모교에도 식재됐을 것이다.그러나 안타까운 건 이 나무가 최근 베어지는 일이 늘고 있다는 것. 나무의 수고가 높아 햇빛을 가리다 보니 주변이 늘 그늘지고 주변 상가의 간판을 가리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물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에 뿌리가 하수도를 파고들어 공사가 연이어진다. 계획도시 창원을 가로지른 명물, 메타세쿼이아는 이제 이곳의 애물단지가 됐다. 뿌리가 높이 뻗어 보도블록이 깨지고 뒤틀려 해마다 공사하느라 말이다. 그렇지만 그 누가 메타세쿼이아를 원망할 수 있을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듯, 세상에 나쁜 식물 또한 없다. 커피의 카페인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잠을 못 이루게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흥분을 유도해 정신 건강에 활력을 주듯이, 모든 식물에게 유용성과 독성은 공존한다. 그것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얼마나 이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도심에 식재된 메타세쿼이아의 거대한 수고와 수형이 사람들에게는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주지만 주변 상인들에게는 햇빛과 간판을 가리는 불편이고, 잘 자라는 성격, 뿌리가 넓게 뻗어나가는 특성이 땅을 초록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롭지만 뿌리가 하수도를 막히게 하고 있다. 모두 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식재하지 못한 탓에 생긴 문제다. 물론 당시에는 그 누구도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타는 바람에 급격히 원예식물로 이용돼 그에 기반한 연구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라도 이들을 깊숙이 알게 됐으니, 이런 부작용을 또다시 범하지 말아야 한다. 나무 한 그루를 베는 건 그 나무가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을 베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초등학교 호수 곁에 심어진 메타세쿼이아는 비교적 행복한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뿌리를 마음껏 내디딜 수 있는 한가로운 운동장, 좋아하는 물 곁에서 조용히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시의 모든 식물이 행복할 2019년을 희망한다.
  • “섭씨 43도까지” 호주오픈 테니스 폭염에 ‘10분 브레이크’

    “섭씨 43도까지” 호주오픈 테니스 폭염에 ‘10분 브레이크’

    남반구 호주는 이맘 때 늘 폭염과 산불에 신음한다. 지난해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도중 여섯 차례나 대회 우승을 차지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가 가엘 몽필스(프랑스)와 경기하던 도중 얼음물에 적신 타올을 두른 채 한숨을 푹 내쉬는 사진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 조코비치는 남자 선수도 쉬게 해달라고 조직위원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올해는 더욱 심하다. 지난달 28일 빅토리아주 남부는 섭씨 44도까지 수은주가 치솟았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평균 기온은 예년보다 16도나 높이 치솟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 멜버른에서 막을 올리는 호주오픈 조직위원회는 지난 연말 특별한 조치를 취했다. 우선 남자 단식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수은주가 섭씨 40도 이상 오르면 10분 동안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지난해까지 여성과 주니어 단식 참가자들에게 허용했던 일인데 올해는 남자 선수들에게까지 허용하고 휠체어 단식 참가자들에게는 15분의 휴식을 부여하기로 했다. 조직위원회가 만든 폭염 스트레스 지수(Heat Stress Scale)가 4.0이 되면 3세트 이후 10분 휴식이 허용된다. 여자와 주니어 단식 경기 때는 2세트와 3세트 중간에 쉬게 된다. 휠체어 단식 때도 마찬가지로 15분의 휴식이 주어진다. 만약 5.0이 되면 주심이 경기를 순연할 수 있게 했다. 또 올해 달라지는 것으로는 날씨를 측정하는 여러 장비를 보강하고 대회 장소인 멜버른 파크의 설치 장소를 대폭 늘린 것이다. 호주테니스협회의 의료 국장인 캐롤린 브로데릭 박사는 “이 지수는 선수가 버텨낼 수 있는 폭염 스트레스의 최대치, 땀 분비율, 체온 등을 포함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무더위에 대한 최근의 의학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라며 “성인과 장애인, 주니어 선수들의 신체 특성을 감안하고 기온, 열 방사나 태양의 강도, 습도, 풍속 등 날씨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다룬다”고 말했다. 한편 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 상금 총액을 14% 인상해 6250만 호주달러(약 492억원)로 책정했다고 새해 첫날 밝혔다. 메인 이벤트 진출자는 1라운드에서 탈락해도 7만 5000 호주달러(약 5908만원)를 보장받는다. 단식 우승자는 410만 호주달러(약 32억원)를 챙긴다. 상금 총액은 지난 5년 동안 89%가 올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올해도 나 혼자 산다] 문 잠가도 불안·식사는 대충… 혼자는 고단해

    [올해도 나 혼자 산다] 문 잠가도 불안·식사는 대충… 혼자는 고단해

    1인 가구라고 모두 화려하고 자유로운 삶만 사는 건 아니다. 원치 않지만 여러 이유로 혼자의 삶을 이어 가고 있는 1인 가구들이 있다. 지난해 KB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8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다수 1인 가구는 자발적 사유(41%)보다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해 비자발적(59%)으로 혼자 살게 됐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들이 1인 가구가 된 계기는 각양각색이다.●결혼 여부·분가·사별 등 이유도 제각각 “친구들 청첩장 받는 날은 무조건 아버지에게 혼나는 날이었어요. ‘너는 대체 언제 결혼하느냐’는 호통이 날아왔죠.” 직장인 강모(39)씨는 부모와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다 혼자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집에 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의 눈총은 심해졌다. 강씨는 “결혼도 못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 산다는 게 눈치가 보여 독립했지만, 혼자 살다 보니 너무 외롭다”고 토로했다. 강씨는 “지방에서 직장을 구하고 정착하면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더 줄어들었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일부러 야근을 하거나 동네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간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7년째 연애 중인 이모(32)씨 역시 비자발적 1인 가구다. 결혼을 꿈꾸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의 집값이 가로막고 있다. 이씨는 “마음은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지만 몇 푼 안 되는 월급으로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고 싶진 않다”면서 “주변 친구들도 고민의 90%가 신혼집 마련”이라고 말했다. 20~30대의 경우에는 대부분 대학 진학이나 직장을 이유로 처음 1인 가구의 삶을 시작한다. 이들에게 1인 가구로서의 삶은 미래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들이 40대에 들어서면 결혼 여부가 1인 가구의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혹은 경제적 자금이 탄탄하지 못해서 1인 가구의 삶이 이어진다. 50대 이상에선 이혼이나 사별, 자녀 분가 등의 이유로 혼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최저 주거 기준 미달 청년 가구 11.3% 이들 대부분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거주한다. 특히 아직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20~30대는 보증금이 없는 월세방 등에서 생활하며 최저 주거 기준조차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가구주 연령이 20~34세인 청년 가구 중 전체의 11.3%인 29만 가구가 최저 주거 기준 미달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거주하는 우모(30)씨는 10년 전 대학 입학으로 서울에 온 이후 줄곧 고시원이나 원룸에서 살았다. 우씨는 “당연히 넓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지만 몇 년째 고시를 준비하느라 돈은 벌지 못해 원룸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층들의 취업 시기가 점차 늦어지면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기간 역시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2017년 기준 남자의 경우 일반 가구원 대비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이 30세(22.5%)라는 통계청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열악한 거주 환경은 안전과도 직결된다. 특히 여성 1인 가구의 경우 주거 침입 등 각종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이중, 삼중으로 현관문에 잠금장치를 다는 등 임시방편으로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려 노력한다. 직장인 이모(27)씨는 신발장에 남동생 신발을 가져다 두고, 택배를 받을 때는 남자 이름으로 배달을 시킨다. 이씨는 “혹시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는 게 알려지면 범죄의 표적이 될까 봐 조심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임서영(28)씨는 최근 새벽 4시쯤 누가 도어록을 삑삑 누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스라치듯 놀라 이불만 끌어안고 있던 임씨는 다음날 곧장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다행히 술 취한 이웃이 집을 헷갈려 저지른 실수였지만, 임씨는 잠금장치를 추가로 설치했다. 임씨는 “혼자 사는데 새벽에 도어록 소리가 나는 것도 너무 무서웠지만, 그 시간에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게 더 두려웠다”고 말했다.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지 못해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것도 1인 가구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직장인 이모(28)씨는 끼니는 못 챙겨도 비타민 B·D,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루테인, 오메가3, 프로폴리스 등 약은 꼭 한 주먹씩 챙겨 먹는다. 이씨는 “혼자 살다 보면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만들어 먹을 때가 많다. 요리를 하면 재료값이 더 나가고 만든 요리도 다 먹지 못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간편하게 부족한 영양을 채울 수 있는 약이라도 챙겨 먹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엄모(26)씨도 “혼자 살 때는 끼니마다 밥을 차리는 게 귀찮고 피곤해서 잘 해먹지 않다 보니 굶거나 대충 먹는 게 일상이 됐다”며 “과일도 전혀 먹지 않아 영양 불균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엄씨는 최근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왕복 2시간 거리의 출퇴근 시간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란 사실은 공포로 다가온다. 아내와 이혼한 뒤 16년째 혼자 살고 있는 박모(51)씨의 고민은 응급 상황에서의 대처다. 혼자 지내다가 죽고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사례들이 뉴스에 나오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6월 기준 65세 이상 노인 무연고 사망자는 547명에 달했다. 고독사는 따로 통계가 없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다. 박씨는 “또래 남성 1인 가구들은 우울증에도 많이 걸려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않다”며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최소한의 주변 도움이라도 받으려고 복지관 등을 열심히 다니며 동네 주민들을 사귀고 있다”고 털어놨다.●고령일수록 사회적 관계망 형성 노력 필요 이처럼 외로움이라는 적과 싸우는 1인 가구는 개인적으로 사회적 관계망 형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고립되기 쉽다. 고령일수록 사회적 관계망은 1인 가구의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 1인 가구 중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집단은 사회 관계망이 잘 형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족도가 높은 집단의 이야기 상대는 평균 2.1명,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1.9명인 반면 만족도가 낮은 집단은 이야기 상대는 1.2명,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약 20년째 혼자 지내는 우모(68)씨 역시 은퇴 이후 적적해진 삶을 달래기 위해 마라톤을 하며 친구들을 정기적으로 만난다. 식사는 집에서 혼자 하지 않고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한다. 우씨는 “번거롭게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급식소에 가면 ‘혼밥’(혼자 밥먹기)하지 않아도 되고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시지프스의 나무, 그 역설의 존재론-이영광론/신수진

    1.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위상학 인간을 위해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었지만 신에게 붙잡혀 영원한 벌을 받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사유한다. 1) 그가 주목한 것은 바위가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주저 없이 고통의 근원으로 다시금 향하는 시지프스의 바로 그 돌아서는 순간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감히 통찰하고 부조리한 삶을 무한히 들어올림으로써 결코 패배하지 않는 반항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지프스의 결의와 반복처럼 이영광은 계속해서 쓴다. 우울과 명랑을 진자처럼 오가며 그는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지고 절벽을 오른다.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 아니 그건 너무 SF적이다.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끝까지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이 바람과 좌절은 그 자체로 시지프스의 은유와 부합한다. 1998년 등단 이후 서정적 주체의 환부를 드러내고 그 통증의 발로를 소상히 추적하고자 하는 시정신으로 그는 이제 ‘끝없는 사람’에 당도했다. 다섯 권의 시집에서 아픔을 갱신하며 정신의 높이를 몸의 위치로 끌어내린 그는 기꺼이 병실로 치환된 세계를 겪어낸다.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 새 없이 자라나는 위태로운 상태일지라도 그는 적어도 자기 세계를 가진 자로서 이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입지는 이영광의 정신적 배후로, 그의 위상학으로 건재해왔다. 이영광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문득 “한 번도 문제가 돼본 적”(‘문제’) 없는 역설적인 세계를 깨닫는다. 합리와 효용만을 쫓는 병리학적 사회에 대한 통찰과 반성이 예의 그 반동의 시작점에 있었다면 그의 시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은 역설적 사유의 방식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죽음이라는 테마는 삶보다 더 압도적이다. 죽음은 미학적 감수성의 대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도약시키는 극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대 한국시에서 진단되는 시대적 감각이나 향유적 양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의 대결구도를 견디는 주체의 극기를 보여준다. 세계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윤리는 자칫 자기 동일성에 포섭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폭력의 메커니즘이 확산되고 있는 세계를 주시한다. 2) “죽기 전에”(‘오일장’) 죽기 위함이라는 역설과 비판적 실천 의지는 자해에 가까운 자학으로 점철되었고 마침내 이러한 기근 속에서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나무의 존재로 현현한다. 나무와 숲이라는 식물적 상상력과 가공할 병실로 환원된 세계 인식을 근거로 계속해서 “간다”, “가야한다”(‘나무는 간다’)를 역설하는 이영광의 이 길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3) 2. 상실과 존재의 원환(圓環)으로서 병폐의 징후 : 미치다, 아프다, 병들다 이영광의 시에는 상실과 결여의 수사가 넘쳐난다. 상실은 존재를 표상하고 존재는 다시 상실을 견인한다. 그에게 상실은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의식화이다. 대상이 충족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의식하지 않는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는 사랑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사랑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때의 상실은 사랑의 존재에 대한 의식화인 것이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결승선(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나무는 간다’ 전문 이상(李箱)에게 열두 명의 무서워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가 있었듯, 이영광에게는 미치고 푸르고 가고 가버린 나무가 있다. 시인의 자기의식은 나무로 환유되고 있는 이지러진 시적 주체의 자화상으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지평으로서 나무는 시적 주체의 술에 취한 가계(家系)와 생활과 속내를 목도해왔을 뿐 아니라 그 울음을 위로하던 내밀한 기억으로 인하여 제 자신 역시 깊은 병을 앓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씩 미쳐가는 나무는 제 스스로의 몸에 묶여 혀를 빼물고 있으면서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도망치지 못한 채 순순히 미쳐가고 있던 나무는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면서도 계속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징한 로고스를 탈각한 채 세계를 거대한 병실로 치환하면서 그것과 한몸인 나무가 겨우 붙어 있는 숨으로 뱉어내는 전언, 이 신음이 바로 이영광의 시가 육박해가는 시의 음성이다. 그것은 “고문받는 몸뚱이”의 형상이리만치 처절하게 으스러진 어떤 것이다. 변형되고 훼손되고 상실하면서 이제 나무들은 간다. “결박”과 “독방”이라는 이 문제적 존재의 필요충분조건 위에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나 있다. 그것이 설령 “제자리걸음”일지라도 가고자 하는 까닭은 세상이 “뒤집히”거나 “녹아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분의 관계로서 나무의 뿌리격인 세상은 나무의 존재를 끊임없이 몰락시키며 역설적으로 바로 그 허물어지는 순간들로부터 나무가 재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출해낸다.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미쳤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미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 광기와 착란의 고투는 “공중의 결승선”에서 마침내 분신하듯 정신을 잃고 제 몸을 산화하고 만다. 정신을 잃고 나서야 푸르게 미친 나무와 푸르게 미친 숲은 모두 서로에게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온통 상실과 결여의 비존재로 읽히는 세계에서 에포케가 발생하는 이 공명의 찰나로부터 이영광의 시집은 시작된다. 정체와 암전에서 시동을 걸 때 나타나는 재부팅의 효과, 그 광포한 분란을 통과할 때에만 겨우 돌아오는 불규칙한 심호흡이 바로 이영광 시에서 나타나는 병폐의 첫 번째 징후인 ‘미치다’의 증상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미친, 혹은 미쳐버린 이 나무들의 진격은 삶의 벼랑 끝에서 발휘되는 재기의 몸부림이자 고유한 주체 확보의 계기가 된다. 시끄럽게 부서지고 피 나던 집이었는데/누구도 아이를 욕하거나 때리지 않았다/조용한 아이였다/조심하는 아이였다/모든 걸 알고 모든 것에 준비된 표정으로/떨려고 하지 않았다/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중략)/아프지 않겠습니다/아이가 되지 않겠습니다/온몸을 희끄무레한 붕대로 감고 있어서/아플 곳이 없었다/죽으면 죽으리라. 4) /살면 살리라/벗은 아이였다/벗겨진 아이였다/생각하지 않고,/늘 남의 생각만 생각하는/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무섭고 많은/시간이 잡은 아이였다/하루는 사십년처럼 흐르고/사십년은 하루처럼 멎어/어느 날, 돌아온 아이였다/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아직도 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망가져가는 아이’ 부분 상실과 결여로 화하는 존재의 나쁜 사정(아프거나 혹은 죽거나)은 핏속을 흐르는 불가해한 광기와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시라는 것에 붙들려 오도 가도 못하는 몹쓸 운명에 다름 아니다. 문명과 역사의 폭압으로부터 거세된 욕망은 이제 생태적 상상력을 넘어서 가족 내력으로부터 발생한 병폐적 징후들, 상실된 존재라는 치부로 고백된다. 폭력과 방임과 유기라는 총체적인 학대 속에서도 아이는 자라야만 한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숨죽여 자라는 동안 모든 걸 알아차려버린 아이는 어느덧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가 된다.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어서 아플 곳이 없는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경을 외우는 동안 죽고 또 죽어 역설적으로 그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러나 사십년의 세월 속에서도 조금도 빛바래지 않는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의 하루는 사십년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사십년은 하루처럼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발가벗겨지고 죽임당한 채 자신을 영구히 복원하지 못하는 이 시적 주체의 내력은 질병의 코드로 나타나며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상실과 결여의 반대급부로서만 존재의 기표에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다. 모든 곳이 아파서 아플 곳이 없는 아이, 아픈데도 아프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아이, 아픈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데도 안 보이는 아이로 아픔이 재현되는 양상에서 볼 수 있듯, 이영광이 상실의 주체를 존재의 그것으로 전복시키는 역설을 보여줄 때 그 도화선은 병폐적 징후로 드러난다. 병폐적 징후의 두 번째 시어로서 ‘아프다’ 역시 꺼져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의지의 기제로 작동되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새 활로의 모색을 담당하는 기저가 된다.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그는 병들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가만히 멈춰 있기죠/그는 병들었다, 하지만/나는 왜 병이 좋은가/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그는 버르적댄다/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침이 흐른다/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평에/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어떤 기적이 필요하다/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하지만 너무 오래 벌받고 있지 않는가, 그는/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중략)/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그는 힘없이 낫는다/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대홍수가 나지 않아도,/메뚜기떼가 새까맣게 하늘을/덮지 않아도 좋다/나는 안락하게 죽었다/나는 내가 좋다/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소주와 꿈 없는 잠/소주와 꿈 없는 잠 ―‘저녁은 모든 희망을’ 부분 이영광은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한다는 뒤바뀐 선후 관계를 통해 병의 중의적 차원을 암시한다. 이는 낫기 위해서는 먼저 병이 들어야 하는 논리적 인과성에 대한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하지만 병폐의 징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은 본래 어떠해야 했는지를 복기시키는 반동의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병들어 있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전력을 다해 멈춰 있기 위해 “혁명”이라든가 “기적”과 같은, 존재의 근원을 통째로 뒤바꿀 만한 지각변동을 꿈꾸지만 현기증을 일으키는 이 소요 사태 속에서 ‘나’는 도리어 병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병은 푸르게 미쳐가는 생의 긍정적 요소로 읽어내야 한다.) 시어들을 모두 거꾸로 뒤집어놓은 이러한 양상들은 이제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음을 가시화하기 위한 이영광식의 역설로 정립된다. 그래서 이영광이 쓰는 존재의 본질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며 와해되고 생성한다. 이 유동적인 성질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존재가 되기 위해 ‘그’는 “버르적”대고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린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는 또 다른 ‘나’이지만 ‘나’는 ‘나’를 만듦으로써 도리어 더 외로워지는 아이러니에 처한다. 고통과 쾌락, 경험과 선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시인이 접근하고자 하는 ‘나’는 다가갈수록 멀어질 뿐 한시도 오롯한 ‘나’가 되지 못한다.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몸이라는 집을 한 채 지니고 있다. 집은 일종의 병실로 나타나며 그는 이 무력한 “스물네평”에 “변혁”, “새날”, “자폭”, “재앙”, 혹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대혼란이 벌어지길 기도한다. 그것은 더 완벽하게 미치고, 더 못 견디게 아프며, 더 깊이 병들어 차라리 그 병세에 차도가 없어져버리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희망을 앓아온 ‘그’는 싸워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완치되고 만다. 이것은 패배조차 허락되지 않는 참담한 실패를 증거한다. 상실을 경험함으로써만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이러한 역설적 구조는 이영광이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유의 패러다임으로 병폐의 세 번째 징후인 ‘병들다’의 의미다. 내 것조차 될 수 없는 고통의 전유물인 ‘나’ 앞에서 시인은 그의 유일한 도구인 시만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시는 이영광의 시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인 상실과 존재의 원환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세계 속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멈춰 있는 것, 불변하는 것, 영구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논리적 명쾌함은 불가능해지고 점점 수식어가 많아질 뿐이다. 이 구태의연한 언어의 불가능성은 상실과 결여로서 존재에 대한 회의와 그대로 닮아 있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나’와의 간극은 모순으로 일관하고 있는 세계의 이원성, 이를테면 안과 밖, 전력과 정지, 죄와 벌, 아침과 저녁, 빛과 어둠, 삶과 죽음, 현실과 꿈 등을 통해 구조화된다. 마침내 모든 상실이 존재를 부상시킨다는 것을 예감하게 된 ‘나’는 “소주와 꿈 없는 잠”에 혼곤하게 빠져든다. 만해의 “잠 없는 꿈”(‘잠 없는 꿈’, 님의 침묵, 회동서관, 1926)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 이 구절 속에는 모든 대상이 뒤집어진 거울 속 같은 세계가 놓여 있다. 현상과 이면이 전복되는 세계를 목도하며 ‘나’는 세계의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트랙을 돌며 남겨진 부분(병폐로 나타나는 이상 징후)을 확보하고 그것을 존재로 변환할 궁리에 몰두한다. 3. 시지프스의 역설 : 나무의 존재론 지난 시력으로 볼 때 이영광의 작업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서 병폐의 징후를 포착하는 동시에 시대적 데카당스를 향한 분기였고 시적 실천에 의한 궐기였다.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기인하는 디스토피아와 대치하면서 그가 겪어내는 소외와 환멸은 미치고, 아프고, 병든 시적 주체의 상태로 반복된다. 시인은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이 고통을 직면함으로써 사람다움의 정의에 대해 생각한다. 세월호 삼보일배가 살려고, 기어서 남녘에서 올라오고 있는데/잃은 아이 언니인가 누나인가 하는/그 여린 아가씨, 옷이 함빡 젖고 운동화가 다 해졌데/(중략)/마음이란 거 그거, 찌르지 마, 자꾸 피가 샌다고/중환자실 천장에 달려 뚝뚝 떨어지는 피 주머니 같은 그것에게 ―‘마음 1’ 부분 아니, 아니…… 돌아가야 해요/예쁘고 미운 친구들과 괴롭고 즐거운 학교와/인사하던 골목길과 상점들에게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로/돌아가야 해요,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괜찮아지던 곳에,/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해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유령 6’ 부분 시집 곳곳에 기록된 4월 16일은 우리로 하여금 섣불리 환부를 봉합하는 대신 고통을 날것 그대로 경험하도록 한다. “오늘도 무사하지 않았느냐고” “겁도 없이”(‘겁’) 이야기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징역 살고 싶”(‘무인도’)은 심정을 토로한다. 고통의 근원지를 밝히고 불편과 부끄러움을 마주함으로써 우리가 “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갈 때만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이영광의 피 흘리는 세계는 사람의 것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광에게 존재가 되기 위한 상실과 병폐의 과정은 다음 시들에서 죽음의 이미지들로 변환된다. 시집 전반에 걸쳐 삶과 죽음이라는 시어는 전도되어 있으며 자주 몸 바꾸어 나타나는 죽음의 현시들은 삶의 부장품처럼 예상치 못한 일상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출토된다. 이는 삶과 죽음을 매 순간 견디어내면서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과도 같다.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기를/살려주는 일/정말 해야 할 일도 저에게 위로를/던지지 않는 일/입이 말을 못하겠나/손이 구원을 못 쓰겠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하지 않는 것을 해내는 일 ―‘깔깔대는 혼’ 부분 고독이 안되자 그는 삶을 물어뜯었다/사람이 안되면 사람을,/진심에 지피면 진심을 무찔러야 했는데/삶을 쓰러뜨렸다/죽음이 안되면 죽음을 여의어야 했는데/삶을 버렸다 ―‘하지만’ 부분 자기를 순순히 살려주는 일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하는 이 전언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려는 저 위악과 자위의 역설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때문에 내가 나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영광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나로 죽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 “진심을 무찔러야”하고, “죽음을 여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 견딤의 미학이 그에게는 시를 쓰는 행위, 존재를 성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시의 외연에 등재시킨 상실과 결여의 병폐적 현상들을 주체의 확립과 존재로 복귀시키며 재구조화하는 이영광의 시도는 그것이야말로 시의 임무와 사명임을 숙연하게 보여준다. 뒷밭이 우릴 먹여주지 않니 시인은 싫다 너는 학교에서 라디오도 타왔지 않니 취직도 안하고 출세도 안되고 시인이 되어 내려갔을 때는, 나는 네가 시인만은 되지 말길 죽 바랐다, 이젠 객사하지 말라고 기도해야겠다, 어머니는 말했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시인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뒷밭이 북풍한설이어서 굳게 다짐했다 시인이, 나는 아니다 언젠가는 가짜를 들킬 것 같아 두렵다 어쩌다 어머니 말을 잊어먹을 때면 그 짐승이 불쑥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그때 깊이 눌러 감추어버렸던 시인이란 것을 들킬까봐 또 나는 무섭다 세상 모든 밭들은 왜 다 기근인가 객사 얘기는 그만하세요 뒷밭은 언제나 우릴 굶겼어요 저는 그냥 방랑만 하는 거예요 시늉만 하는 거예요 ―‘뒷밭’ 부분 시인님이 되느니/땅끝까지 실종되고 말겠다/시인님이 되느니/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겠다//높이지 않아도 시인은/만장처럼 드높으므로/아무리 높여도 시인은/꿇은 상주처럼 낮으므로 ―‘시인님’ 부분 자전적 시임이 분명한 위의 메타시들에서 시인은 시 쓰기를 업으로 삼고 영원한 삶을 견디는 시지프스로 화한다. 평생 뒷밭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시인이라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들려주던 김삿갓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데 김병연의 전기를 가능케 한 드라마틱한 방랑과 객사에만 방점을 두어 마치 시인이 되면 반드시 떠돌다가 죽게 될 것이라고 믿는 듯 아들의 행보를 심려한다. 시인이란 대개 시대의 병폐를 가장 먼저 진단하는 첨병으로 부나 권력과 같은 가치들을 풍자하며 으레 속세를 떠난 듯 자유로운 자들로 통용되지 않는가. 문학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게도 시인의 입지가 지닌 이 변방의 좌표가 어렴풋이 짐작되었으리라.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이 겪어야 할 그 정처 없는 빈곤도 싫었겠지만 도무지 숨길 수 없는 저 반역과 모반의 기질, 세상을 척지고 홀로 싸워나가야 하는 어두운 예감 같은 것이 서늘히 엄습해왔을 것이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인 어머니에게 불효를 자처하면서 기어이 멋대로 시인이 되어버린 시적 주체는 그러나 간혹 제가 가짜임이 들통날까봐 저어한다. 또 제가 정말 시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것 역시 두려워한다. 자신은 그저 시인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그의 말은 어쩐지 자신을 더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되느니 “땅끝까지 실종되”거나 “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고 말겠다는 이 호언장담, 이 비하와 경멸의 자기모멸감 속에는 기실 시의 쪽배로밖에는 이 깊은 생을 건널 재간이 없는 한 사람의 떨림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만장처럼 드높”고 “꿇은 상주처럼 낮”은 이 고결하고도 비천한 이름 곁에 선 시인의 결연함은 슬프도록 장엄하고 눈물겹도록 어리석다. 뭇사람들이 그 눈에서 “죄인”과 “천치”를 읽고 간 미당의 피맺힌 아침과도 같은 부끄러운 혼, 그러나 뉘우치지 않는 그 오만한 자세를 이영광은 어딘가 닮아 있다. 나무의 적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빈 들은 이글거리는 뿌리들을 비끄러맨다/바람은 잡념의 가지들을 조각조각 부러뜨린다/나무의 정권들이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한 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의 백만 대군을,/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무한의 지평선을/한그루 장창으로 막아선다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부분 맨주먹을 쥐고 눈밭에 선 나무, 시적 주체로 형상화된 이 강인한 나무는 무방비 상태의 싸움꾼이다. “저렇게, 싸우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렇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의 상대는 바람이다. 바람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으로 나무와 교전한다. 제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의 정직한 생의 기록은 어디서부터 불어왔는지 모를 홀연한 바람의 태생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나무가 거역할 수 없는 피투성(被投性)의 존재로서 육중한 삶을 떠메고 가야 한다면 바람은 무한한 가변성이라는 무상함을 상징한다. 제 몸을 한그루 장창 삼아 “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 불어오는 지평선을 제압하는 나무 안에는 뜯겨나간 뿌리와 부러진 가지들의 비명이 난무한다. 이 부서진 한 그루의 육체 안에는 삶과 죽음이 온통 뒤엉켜 있어 그 둘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지게 된다는 이 유연한 나무의 병법을 통해 시적 주체는 상실과 병폐를 넘어서는 영원한 시지프스의 시 쓰기와 존립을 이루게 된다. 언제나 환한 볕보다는 그늘의 모서리를 맴돌던 시적 주체는 마침내 “한 점 배후도 없이” 맨몸으로 제 삶을 일궈내는 나무가 된다. 당신이 한낱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날 죽여 나는 음 사월 물푸레나무같이 푸르렀습니다 푸르고 튼튼하게 병났습니다 물푸레나무 곁에서 춤추는 물푸레나무같이 기쁨을 못 이겨, 나는 당신이 한없이 외로웠습니다 당신은 한낱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쳐 날 다시 살려내고, 사랑 없는 사랑이 되어 떠났습니다 마른 가을이 살찐 여름을 단숨에 쓰러뜨리듯 나는 모든 기쁨을 힘없이 무찔러 이기고, 음 시월 물푸레나무같이 시들어 병 나았습니다 ―’물푸레나무같이’ 전문 당신이 건넨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인하여 병들고 죽어가는 ‘나’는 기쁨에 못 이겨 춤을 추면서도 당신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당신이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치자 ‘나’의 병은 나았지만 나는 사랑도 기쁨도 잃은 채 시들게 된다. 시인의 책무란 본래 사람의 것으로 아플 때 죽음과도 같은 병폐 속에서 도리어 시퍼렇게 살아나 그 한없는 외로움을 읊는 것이며, 사람의 것이 떠났을 때 힘없이 시들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상실과 존재의 아포리아 속으로 망명하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시적 주체는 이제 자신의 생애보다 오래된 나무의 부동자세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의 무한수열을 느낀다. 그 바람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며 나무의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곳에서 분다. 그 바람을 관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람보다 먼저 미치고, 먼저 아프고, 먼저 병들어버리는 자로서 시인뿐이다. 시적 주체는 필연적으로 역설의 폐허에서 기아와 고독과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존재의 상실이야말로 새 존재를 생성해내기 위한 회로의 추동장치로 작동한다. 이영광은 병폐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결국 시를 앓을 때만 존재가 도래할 수 있는 기반을 예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픔으로 인하여 시적 주체는 소진되거나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려가는 순간에 시를 통한 삶을 발견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존재로 재탄생한다. 사랑과 상실, 기쁨과 슬픔, 병과 치유, 죽음과 생명이 마치 한몸처럼 붙어 있는 이 역설의 시학은 나무의 존재로 부활하는 이영광식의 신화를 재현하고 있다. 시적 주체는 바람이 일으키는 병폐의 징후를 통해 생사의 영원한 지평 위로 나무의 삶을 고양시키고 재편한다. 그때 들려오는 푸른 존재의 잎사귀 소리는 원래 자기 몸 안에서 울리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천지의 울음을 내재하고 있는 나무의 존재론은 이제 이영광 시의 아이덴티티가 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시를 기억하는 주요한 하나의 축으로 자리할 것이다. 4. 역설의 폐허에서 자란 존재의 아포리아 2000년대 이후 미정형 주체들의 등장은 기존의 논리로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서정시라는 장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생성했다. 스스로 자기 존재의 기원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난해함에 유폐된 것일지라도 기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명의 의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정치적 추문이라는 2010년대의 현실에 직면한 시는 윤리적 문제에 봉착한다. 해체환상유희적 계보에 틈입한 윤리의 맥락 속에서 이영광은 가장 클래식한 발성과 감성으로 노래할 때만이 구축될 수 있는 자기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담론보다 광활하고 가변적이며 모순적인 존재로서 ‘끝없는 사람’을 구현하는 시. 그가 세속성의 탐닉이나 언어의 실험에 동참하지 않고 자신의 좌표를 확보한 까닭은 사람이 가진 그 예외적 불가능성만이 시의 자기복제가 아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너무 나 같아서 나 같지 않”고, “너무 나 같지 않아서 나 같”(‘불을 끄려고 한다’)다고 하는 시적 주체의 음성은 소외와 환멸로 점철된 우리 시대의 메아리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세계의 트랙을 돌며 이영광은 미치고, 아프고, 병들어 있는 이상 징후들을 감지하고 그 상실의 집합들을 지속적으로 출몰시킨다. 병을 앓듯 자신을 오래도록 앓는 자만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의 중의성을 비롯한 역설적 언어의 고안은 시 안에 자신의 존재론을 도입하기 위한 장치이자 다의적 층위를 포섭하기 위한 그의 기획을 보여준다. 나무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한 무더기의 푸른빛만이 단지 거기에 남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영광의 숲은 마음껏 길을 잃도록 안내한다. 그는 병들어 있는 주체를 통해 그 존재 자체가 곧 황폐한 세계의 산물임을 증거하고, 현실 맥락 속에 은폐된 이력과 배후를 드러낸다. 그러나 병의 의미가 긍정과 부정의 이중적 층위로 활용되면서 더 깊이 병들어 죽어버리는 지경에 이를 때라야 그 죽음으로서 삶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소외되고 병든 주체의 착란과 광기는 가고 가고 또 감으로써만 이 견고한 세계를 꿰뚫고 장악하고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덩어리의 푸른 흔들림으로 산화한 나무의 기투는 결국 “나는 자꾸자꾸 미쳐서 반드시 삶이 되고 말 것”(‘오일장’)이라는 다짐 속에서 두터운 자기 그늘을 겹겹이 축적해간다. “산은 산이다. 산은 산이 아니다. 다시 산은 산이다.”라는 선문답이 있다. 이 변증법에 의하면 이영광의 시도 나였다가, 나가 아니었다가, 다시 나로 재편됨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산 채로 죽어보는 건 커다란 일”(‘동구릉’)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영광은 간다. 간다는 말에는 저 피안으로 향하기 위해 이곳의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뜻도 숨어 있다. 이영광은 간다. 더 잘, 더 곱게 가기 위하여 그는 “나으려 하지 않는 병”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숱한 사랑의 말”(‘세한’)을 찾기 위함이다. 그것만이 시지프스가 되어 기꺼이 감당해내야 할 자신의 길이기 때문이다. 1) 알베르 카뮈, 오영민 옮김, 시시포스 신화, 연암서가, 2014, 201~208쪽. 2) 들뢰즈의 차이(difference)나 레비나스의 타자성(alterity)과 같은 숱한 담론에서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상호 존립 가능한 관계의 회복은 이영광 시에서 여전히 화두로 존재한다. 3) 최근 두 권의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 2013)와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을 대상으로 하며 시를 인용할 때는 작품의 제목만 표기한다. 4) 에스더서 4장 16절.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