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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능 초전도 박막’ 국내 개발

    초고속 슈퍼 컴퓨터와 마이크로파 통신,뇌파 측정장치 등을 개발하는데 쓰이는 세계 최고 성능의 초전도 박막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포항공대 초전도연구단의 이성익(李星翊·49)·강원남(姜元南·40) 물리학과 교수팀은 절대온도 39K(영하 섭씨234도)에서 안정된 화합물 형태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마그네슘 다이보라이드(MgB2)’ 박막을 개발했다고 13일밝혔다.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지 13일자에실렸으며, 초전도 박막 제조법은 미국·일본·유럽 등에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초전도 박막은 그동안 23K에서 초전도 상태가 되는 금속초전도체를 이용,뇌파를 측정하는 뇌지도 자석 등에 적용됐다.그러나 냉각비가 많이 들고 상태 유지가 어려워 관련학계에서는 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갖는 금속을개발하기 위해 경쟁을 벌여왔다. 이 교수팀이 개발한 초전도 박막은 저항없이 무한대의 전류가 통한다.냉각시키기 위해 액체헬륨을 사용하지 않고특수 제작된 저온 냉동장치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게할 수도 있다.특히 두께가 500~1000옹스트롬(1옹스트롬은1억분의 1cm) 밖에 되지 않아 전자소자 개발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연구진이 박막재료로 사용한 MgB2는 마그네슘과 붕소의화합물이다.지난 1월 일본 연구팀은 이물질이 39K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사실을 발견했다.미국과 일본 정부가수출금지 조치를 취할 정도였으며,세계 물리학계는 이 물질을 이용한 박막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 교수는 “초전도 박막은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무선통신 기지국의 주요 부품으로 먼저 사용될 것”이라면서 “특히 마이크로파 소자들을 이용한 이 부품이 우주공간에사용되면 우리나라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2001 길섶에서/ 종점에서

    강원도 오지를 달리는 정선선이 끝나는 역은 구절리역이다.아오라지강을 따라 폐광지대를 잇는 정선선에는 두 량(輛)짜리 기차가 하루 2차례 운행된다.구절리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타고 일 보러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 역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나그네는 문득 구절리역이 궁금해진다.그래서 기찻길이 끝나는 지점을 향해 가본다.온종일 텅 비어 있다시피한 역사(驛舍).이를 중심으로그 앞 큰 개울과 나란히 하여 달려온 철길이 오른쪽으로 150여m 가량 이어지다 멈춘 곳.녹슨 레일이 끝나는 지점에는 허리 높이 만큼 침목을 쌓아 올려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다.그것이 정선선의 진짜 종점이었다. 산간 마을의 오후는 짧다.구절리 뒷산으로 저무는 해를본다.오후 4시다.인생의 시계는 지금 몇시쯤일까.모든 사물에는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종점은 다가온다.종점에 닿기 전까지는 누구나 종점의 모습을 알지못한다.나그네는 구절리역이 종착역이라고만 여기고 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즐겨 시발역이라고 부른다.현재가 항상 종점이자시작이 된다는 것을 그동안 잊고 살아온 것일까. 이경형수석논설위원
  • [다가오는 시베리아] (2)극동 창구 나훗카항

    [나홋카(러시아) 이석우특파원] 극동러시아 제1의 항구나홋카는 동트기 전부터 분주하다.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운반된 목재,철재,원유 등을 밤새 대기하던 배로 옮기고 한국 일본 동남아에서 보내온 곡물 소비재상품 등을 부두에 부린다.부산에서도 직항로가 개설돼 있다. 20∼30t에서 300t용량의 대형 기중기들도 쉼없이 원자재들을 배에서 부두,부두에서 수송 열차로 옮겨놓고 있다. 부두까지 이어진 철로는 TSR교차점 우수리스크를 향해 긴행로를 재촉한다.3월 새벽 쌀쌀한 날씨는 나홋카 사람들에게 두터운 가죽옷과 털모자 ‘샤프카’를 벗기지는 못했지만 얼굴엔 활기가 넘친다. 나홋카는 인구 20만명의 작은 도시지만 사통팔달 잘 닦여진 도로에 배부른 듯 짐을 가득실은 트럭과 차량들이 풍요로움을 연상시킨다.거리 곳곳에 보이는 항만과 선박그림을배경으로한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므이 류빔 체바 나홋카)고 쓰인 대형간판도 나홋카의 자존심을 상징한다.시민들의 옷차림도 모스크바에 비해 손색없다. 지난 49년에 개발돼 반세기 가깝게 극동러시아의 창구 역할을 해온 나홋카는 새로운 공업중심지로 기지개를 켜고있다.러시아정부는 한러공단 등을 경제특구로 지정,공업중심지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중국선전,주하이 같이 성공한 경제특구로 키워보겠다는 게 꿈이다.한러공단은 그 핵심 프로그램이다.봉제,기계조립,목재가공등이 유망분야다. 극동지역 대통령대표부의 프리코프스키 대표가 지난 15일 나홋카 등 연해주 연안도시를 돌아본 주요 목적도 한러공단 등 특구지정.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이광희(李光熙) 블라디보스토크 관장은 “다음주 주말쯤 프리코프스키 대표가 모스크바로 가 푸틴 대통령과 한러공단의 특구지정에대한 정부입장을 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한러공단 등 외국공단 유치를 위해 입주기업에게 수출입관세·기업소득세·재산세를 5년간 면제하고그후 5년간 50% 감세안을 제시하고 있다. 수출품에 대해선부가가치세도 면제하고 공단내 외화의 사용관리 자유도 약속했다.의회인 듀마의 허가를 얻어 법이 통과되면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부지를 정리하고 한국 등 외국기업에게 분양하게 될 것이라고 비호레바 우리에바나 나홋카 자유경제특구위원회 부위원장은 설명했다.한국공단 후보지는 나홋카지역 보스토치니항구 일대.우선 6만평 가량을 개발하고장기적으론 100만평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지난 92년부터 추진해온 기존 후보지 파르티잔스크 일대의 개발계획은사실상 폐기됐다. 한러 두나라는 지난 1995년 3월 한러공단의 기본합의서를체결했고 다음해 파르티잔스크 일대를 개발하려 했다. 7년동안이나 다른지역과의 형평문제,러시아 의회인 듀마의 반대 등으로 계획이 지연돼 왔다.마르티노브 V 파블로비치나홋카 자유경제특구위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이 한러공단 개발에 적극적”이라며 “올해내 의회 비준을 거쳐 러시아 첫 자유경제지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평양쪽 항구가 없어 지린성 등 동북 3성의 발전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중국도 나홋카지역에 대한 거점확보에관심이 있다.시 외곽에 높게 솟아있는 호텔 ‘위엔둥(遠東)’은 중국 국영수출입공사가 운영하고 있다.호텔 매니저인 고려인 리 타티아나씨는 “당장 이익이 나지는 않지만미래를 보고 중국측이 투자한 것”이라고 말했다.북한 총영사관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기지 않고 시 외각에 그대로남아있다.“노무 수출과 수출입 업무도 담당한다”는 시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북한 총영사관은 밖에선 인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적한 분위기다.정문 옆 유리게시판에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만이 눈에 띌 뿐이다. 외곽을경비하는 러시아 경찰관은 “겨우내 철수했던 벌목공,건설노무자 등 북한 인력들이 돌아오는 4월이 돼야 영사관이다시 활기를 띠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진다”고 귀띔했다. swlee@. *세메노비치 시장 인터뷰. [나홋카(러시아) 이석우특파원] “한러공단은 러시아 첫자유무역지대가 되어 극동지역 공업화와 나홋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 그네즈디로프 V 세메노비치 나홋카 시장은 “한러공단을자유무역특구로 지정하는 나홋카 공단특구법 등 특별법이올해 중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세메노비치 시장은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나홋카는상트페테르부르크,흑해의 나바르시드 등과 함께 물동량 기준 러시아 3대 항구”라며 “소련해체후 생산감소로 절반수준으로 줄어들었던 화물량이 지금은 70%수준인 연간 2,506만t 수준으로 회복,활력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나홋카지역에 어떤 공장설립이 유리한가 각종 원자재가모이는 곳이지만 첫 단계로 봉재,목재,수산물가공 및 식품가공 분야는 중소기업도 참여하기 쉬울 것이다. ◆나홋카 발전계획은 단순물류기지에서 공업단지를 낀 ‘중국식 특구’로 발전시키자는 생각이다.시베리아지역의자원을 이곳에서 가공,해외에 수출하는 경제자유지대 구상이다.한국공단과 함께 보스토치니 부근에 미국공단도 추진되고 있다.특구가 지정되면 입국비자를 면제하거나 러시아다른 지역과 달리 비자를 쉽게 얻고 장기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현재 나홋카가 벌어들인 세금 중 85%는 중앙정부로 들어가고 있다.중앙정부에 이를 줄여달라고 요청해놓고 있다. 재원이 마련되면 북측 15㎞지점에 있는 졸로타야 돌리나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나홋카의 시설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연간 1,000만t의 화물을 처리하지만 나홋카는 3배인 3,000만t 이상을 소화할 수 있다.나홋카는 러시아어로 ‘횡재’란 뜻이다.1859년 표류중인 군함이 우연히 발견,개발을 시작한지 50년을막 지난 이곳은 평균 연령이 35세인 젊은 도시다. 러시아정국이 안정되고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선 만큼 시설투자도 확대할 것이다. ◆나홋카는 북한과 긴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는데 시장으로서 한국 기업인들과 친하지만 북한영사관에도 자주 다닌다.건설 노무자 등 북한인력의 수입문제,나홋카지역에 상주하는 600∼1,000명 가량의 북한인력의 비자처리,수산업 및목재가공 등 협력할 사항이 적지 않다.
  • 영구 임대아파트/ (상)문제점 진단

    서울시내 영구임대 아파트 밀집지역이 급속히 슬럼화,대책마련이 시급하다.장애인과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 등 극빈층이 특정지역에 몰려 살면서 인근지역과의 격리현상이 뚜렷이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아파트 노후화와 관리부실에 따른 슬럼화의 진행,일반아파트 주민들과의 심적 괴리감,학교문제,자치구 지원의 한계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특히 영구임대 아파트가 강서·노원구등 일부 자치구의 특정지역에 수천가구씩 몰려 있어 문제가심화되고 있다. *‘못사는 이웃’ 감싸기보다 왕따. 강서구 가양2동 K초등학교 교장 유모씨(53)는 올해 신입생을 배정받으면서 서운하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경험을 했다. 인근 민영아파트 주민들이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결국 아이들을 다른 학교에 입학시켰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이같이 주장하는 이유는 단 하나.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여기에 독거노인 및무자녀 장애인의 비중이 커지고 학령기 자녀를 둔 가구는감소하면서 학생수도 급격히줄고 있다. K초등학교의 경우 지난 99년 36학급에서 지난해에는 30학급으로,올해는 29학급으로 학생수가 줄어들었다.유교장은“이러다 학교가 문을 닫지는 않을까 걱정마저 든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위의 예처럼 민영아파트와 영구임대 아파트 주민간의 심적 괴리감은 심각하다.영구임대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동장으로 재직중인 안모씨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민영아파트주민들이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찾는 일은 드물다”며 “얼마전 임대아파트에서 한 정신장애인이 밖으로 던진 병에지나가던 사람이 다친 후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노후화 및 관리부실로 인한 슬럼화 현상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영구임대 아파트들은 대부분 1989년 이후 건립됐다.대부분 지은 지 10년도 안된 상태.그러나 노후화의 기색이 완연하다. 가양2동 한 단지내 놀이터에는 그네가 줄이 끊어진 채 방치돼 있고 빈병과 신문지 조각도 널려 있다.외벽도 곳곳에얼룩이 지고 페인트가 벗겨져 흉한 모습이다. 관리 담당자는 “6년마다 아파트 외벽을 도색하는데 왠지민영아파트보다 빨리 낡는 것 같다”며 “정신장애인들이많이 살다보니 시설 및 주변경관 훼손이 잦다”고 말했다. 물론 부족한 관리인력과 빈약한 관리예산도 원인이다.10평 미만이 수천가구씩 대단지를 이루고 있지만 관리인력은 민영아파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아파트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시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민영아파트의 경우 관리인력 1인당 가구수가 50 이하인 반면 영구임대아파트는 1인당 100가구를 훌쩍 넘는다”고 밝혔다. 임창용기자 sdragon@
  • [굄돌] 사랑의 오아시스를 꿈꾸며

    길을 묻거나 혹은 상점에서 물건에 관해 물을 때 흔히 듣는 말이 “몰라요”다.질문의 대상이 바로 옆집인데도 그 무관심한 “몰라요”라는 대답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없는 고생을 하고 귀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가. 인생의 나그네 길에서 잊지 못할 살아있는 추억의 장면중휴스턴에서 대학 다닐 때의 일이 떠오른다.어두운 기숙사 방에 혼자 누워 고열·기침과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낸시라는 미국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목이 아파 쉰 목소리로 겨우 전화를 받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어둠 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고 있을 때 현관에서 벨 소리가 났다. 낸시와 그녀의 남편이 한 시간이 넘는 시골길을 달려 나를데리러 온 것이었다.차의 뒷 의자에 깔아준 담요에 누워 낸시의 집으로 가면서 차창 밖을 쳐다보니 반달이 처량하게 떠 있고 마른 내 얼굴엔 눈물이 흘렀다.너무 고마웠다. 불이 환히 켜진 낸시의 집에 도착하자 낸시는 나를 데리러오기 전에 찜통에 끓인 닭죽이 다 되었으니 감기에 좋은 따끈따끈한 닭죽을 먹으라고 주고 자기아들 방으로 안내했다. 초등학생인 낸시의 아들은 나 때문에 자기 방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그는 잠자는 포대를 들고 와 부모 방 침대 밑에 누우면서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한밤중에기침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둠 속의 내 침대 옆에 낸시가 꿇어 앉은 채 기침약을 숟가락에 부어 들고 먹으라고 했다.보통 사람 같으면 자기 집 식구에게 감기가 옮을까봐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낸시는 잠도 안자고 시간을 맞추어약을 주었다.아침햇살과 더불어 나의 기침도 가라앉고 낸시의 정성으로 며칠 후에는 열도 내려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려면 친절과 신의를 지키라는 지혜서의 말을 낸시는 늘 아름답게 실천하며 무관심의 사막이 아닌 사랑의 오아시스를 만들어 주었다. 곽수 서양화가
  • 눈·코·피부·기관지 ‘황사 경보’

    최근 닷새동안 지속된 황사로 안과,내과 등 병·의원을 찾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안과에는 눈물과 통증,출혈 등의 증세를 호소하는 눈병환자가,내과에는 기침,감기,천식(호흡 곤란) 환자들이 평소보다크게 증가했다. 신철 고려대 안산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는 “지난 3일 황사가 발생한 이후 코,기관지 점막에 염증이 난 60대 노인들이매일 5∼6명씩 진료를 받고 있다”면서 “3∼4일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상당히 나아진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광혜안과의원의 임진옥 원장은 “황사의 영향 때문인지 40,50대 세균성 결막염 환자가 조금 늘어났다”면서 “진득진득한 분비물이 흘러 나와 눈꼽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서울 중랑구 상봉2동 이의석 이비인후과의원장은 “환절기환자인지 황사 환자인지 명확히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코와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황사 때 자주 발생하는 병 건조하고 쌀쌀한 날씨와 황사가 맞물리면 심한 감기,후두염,천식 등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킨다. 신교수는 “건조한날씨로 호흡기의 일차 방어막인 코와 기관지 점막이 말라 있을 때 황사에 노출되면 바이러스가 쉽게 침투할 수 있다”고 말했다.특히 기관지가 약한 천식환자나 폐렴,폐결핵 환자 등이 황사에 노출되면 호흡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또 황사는 안구를 자극해 결막염을 일으킬 수 있다.눈이 가렵고 눈물이 많이 나며 충혈이 되고 눈에 뭔가 들어간 것같은 느낌을 준다.아울러 안구건조증을 심화시키는 등 각종 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피부병도 일으킨다.건조한 날씨와 황사가 겹치면 가려움증,따가움이 생길 수 있으며 심하면 피부염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대책 황사가 심할 때는 외출시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가장좋다. 집에 돌아오면 양치를 반드시 하고 세면하며 눈과 코도 깨끗이 씻어야 한다. 특히 황사는 노인과 어린이 등 호흡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폐렴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천식환자의 기관지를 수축시켜 발작 횟수를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이같은 사람들은 황사철에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고 외출시에는 반드시마스크를 써야 한다.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새빛성모안과의 박규홍 원장은 “황사기간동안 렌즈 착용자들은 렌즈보다 안경을 쓰고 다니라고 권하고 싶다”면서 “시력이 정상인 사람들도 선글라스 등을 끼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유상덕기자 youni@. * 황사피해 줄이는 상품들. 건강에 해로운 ‘반갑지 않은 손님’ 황사. 그러나 황사 때문에 잘 팔리는 물건들도 있다. 미도파백화점 상계점,할인점 홈플러스 등 유통업체들은 황사철에 맞춰 발빠르게 관련 상품 판촉에 나섰다. 정광성 미도파백화점 상계점 패션잡화팀장은 “황사 피해를 막는데 도움이 되는 모자,썬글라스,마스크 등이 평소보다많이 팔리고 있다”면서 “피부 보호 제품도 많이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을 감싸는 스카프,바람막이 티셔츠,빨래 건조대등도 황사철에 잘 나가는 제품들”이라면서 “특히 유모차레인커버는 유모차위에 덧쒸울 경우 먼지를 막아 주고 우산대용으로도 쓸 수 있어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기들을 가진 소비자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덧붙였다.홈플러스의 고영실 홍보팀 주임은 “황사현상이 나타난 뒤노폐물을 제거하는 바디샴프 등 목욕용품과 손수건,클렌징,기초화장품,에센스 등을 갖춰놓은 코너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편 황사로 인해 유통업체의 자동차용품 코너나 자동차 정비업소,주유소 정비코너 등에는 워셔액을 구입하는 운전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유상덕기자. *황사란? 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누런 흙먼지인 황사(黃砂)는3∼5월 우리나라를 찾는 불청객(不請客)이다. 중국의 고비 사막이나 황허(黃河) 유역의 황토 고원 등 건조 지대의 작은 모래나 먼지가 바람을 타고 3,000∼5,000m상공으로 올라가 한반도나 일본 지역으로 이동해 가라앉는현상을 말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황사 가운데 30%는 발생지에 재침적되며 20%는 인근 지역에 가라앉고 나머지 50%가 한국이나 일본 지역으로 날아온다. 고려대 안산병원 산업의학센터 박종태 소장은 “황사는 실리콘,알루미늄,구리,카드뮴,납 등으로 이뤄진 흙먼지가 주성분으로 대기를 오염시켜 시정(視程)을 떨어뜨리고 눈병,호흡기병 등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그는 “황사의 입자 크기는 대개 20㎛(마이크로미터) 이상으로 코나 목 등에 영향을 미치고 폐까지 내려가지는 않는다”면서 “카드뮴 등 중금속이 들어 있어 눈병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기 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황사가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석회 등 알칼리 성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산성인 국내 토양을 중화시키고 산성비 피해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또 칼슘과 마그네슘도 들어 있어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고바다의 플랑크톤에 무기염류를 제공,어족(魚族)을 풍부하게하기도 한다. 해마다 우리나라에 날라와 쌓이는 양은 200만∼500만t에 이른다. 유상덕기자
  • 2001 길섶에서/ 쉬운 길과 어려운 길

    한 소녀가 길에서 울고 있었다.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얘야 왜 우니?” “집 찾는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너희 집이 어딘데?”“이 근방이랍니다”“다 큰 아이가 이 근방에 집을 두고 못 찾는단 말이냐?”“그렇답니다.제가 원래소경이었는데 조금 전에 눈을 떴습니다.전에는 더듬어서 길을 찾았었거든요” 나그네가 잠시 난감한 표정이더니 좋은 생각을 해 냈다.“얘야 다시 눈을 감고 더듬어 보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나오는 소경의 우화는 여기서 끝난다.이 삽화(揷話)에 다음과같이 사족(蛇足)을 달아보면 어떨까? 소녀는 얼른 눈을 감더니 금세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익숙한 몸짓으로 더듬더듬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를 나그네가 불러 세웠다. “얘야 내말 들어보렴,네가 지금 다시 눈을 감으면 집 찾기는 쉬우나 그렇게 되면 죽을때까지 눈을 감고 살아야 하지않겠니…”김재성 논설위원
  • 용인일대 가볼만한 곳들

    봄기운이 완연하다. 봄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컴퓨터에 옭아매지 않고 생동하는봄 마당으로 불러내자.경기도 용인은 잘 알려진 한국민속촌과 에버랜드,호암미술관 외에도 각종 전문 박물관들로 가족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명주와 아빠의 박물관나들이(myhome.netsgo.com/janghy/)의안내로 용인지역 박물관 산책에 나서보자.휴관일이 제각각이어서 출발 전에 전화로 확인하는 게 좋다. ◆경기도박물관 www.musenet.or.kr영동고속도로 신갈분기점을 나와 한국민속촌 가는 길목에 있다. 자연사실,고고미술실,문헌자료실,민속생활실,서화실,기증유물실등 6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에 3,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야외전시장에는 백제온돌 주거지를 비롯하여 14개의 전시물이 있다. 어른 700원,19∼24세 300원,18세 이하 무료 (031)288-5300◆삼성 교통박물관 www.carmily.org에버랜드 제2주차장 뒤쪽에 있다.국내외 희귀한 자동차 20여대와 오토바이,자전거,마차 등 각종 교통수단의 실물과 모형,관련 부품,장식품,용품,기념품,예술품 등 총 700여점이 전시되어 있고자동차와 선박의 발달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연표를 정리해두었다. 관람객의 직접 체험을 위한 다양한 작동전시물도 갖추고 있다. 어른 2,500원,청소년 2,000원,어린이 1,500원 (031)320-9900◆세중 돌 박물관 www.oldstonemuseum.com5,000여 평의 수려한 경관이 우선 자랑거리.영동고속도로 양지나들목을 나와 양지사거리에서 아시아나 골프장 쪽으로 들어오면 된다. 주제를 각기 달리한 야외전시관이 10개나 있다.장승과 벅수,솟대,망부석,귀여운 모습으로 나그네 발길을 붙들던 동자석등 우리의 돌 조각들과 석탑,석등,덕망 높은 스님의 안식처인 부도 등의 불교 유물,연자방아,맷돌,다듬이돌,우물돌,돌솥 등 생활용품 1만여 점을 구경할 수 있다. 어른 5,000원,청소년 3,000원,노인 어린이 2,000원 (031)321-7001◆태평양 박물관=경기도 박물관에서 조금 더 남하,한국민속촌 못미쳐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의 각종 화장 유물 및 차 유물 등 4,000여 점 가운데 1,000여점을 상설 전시중이다. 하루 5만갑이 팔렸다는 박가분,비녀,은장도,족집게등 각종화장품과 제조 용구 ,장신구 등의 여성용품 등 모두 1,500여 점을 갖춘 화장사관과 차의 예술적 경지를 경험할 수 있는다예관이 있다.무료 (031)285-7215◆한국등잔박물관=서울 양재역에서 500번 버스를 타고 능골삼거리에서 내려 정몽주선생 묘소 지나 100m 지점에 있다.부채모양의 광배가 달려 있는 청동촛대를 비롯해 토기,도기,자기,청동,놋쇠,나무,옥석 등을 이용한 등경,등가,초를 꽂는촛대,들고 다니는 제등,걸어놓는 괘등,바닥에 놓는 좌등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대인 3,000원,중·고등학생 1,500원,초등학생 1,000원 (031)334-0797◆신세계 한국상업사 박물관=오산에서 용인행 또는 용인에서 오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창리저수지 입구에서 하차한 뒤 걸어서 10분 거리.자가용은 용인에서 45번 국도를 타고 송전삼거리에서 302번 지방도를 바꿔탄다. 화폐 도량형 등 상거래 용품과 고려시대 벽란도의 무역 모습등을 매직비전으로 보여주는 등 우리 상업의 역사를 한눈에알아볼 수 있다.무료 (031)339-1234임병선기자 bsnim@
  • 국정교과서 저작권료 99년 2학기분 첫 지급

    ‘피천득 309만5,538원,황순원 203만6,096원…’ 99년 2학기 초·중·고교의 국정교과서 국어책에 실린 작품에 대한교육인적자원부의 저작권료 명세서다. 교육부는 99년 2학기 국정교과서에 실린 문예·미술·음악·사진저작물에 대한 저작권료 1억2,815만원을 처음으로 지급했다고 19일 밝혔다.국정 이외의 검정교과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료는 출판 발행사가 지급한다. 저작권료 지급은 99년 7월 발효된 저작권법에 따른 것이다. 과거에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무료로 게재했다. ■99년 2학기 문예저작물 저작재산권자 432명 중 수필가 피천득씨(고2년의 큰바위 얼굴 등 4건)가 309만원으로 가장 많다.이어 아동문학가 채광수씨(초등5년의 별주부전 등 3건),소설가 황순원씨(중1년의 소나기),국문학자 이병주씨(중2년의 국문학이야기),소설가 김붕구씨(중3년의 별),생태학자 최기철씨(중2년의 홍도의 자연) 순이다. ■2000년 1학기 교육부는 오는 4월 2000년 1학기 국정교과서의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료도 지급할 예정이다.문예저작물중 소설가 이청준씨(고교의 선학동 나그네)가 623만원으로가장 많았다.소설가 박경리씨(〃 토지),극작가 오영진씨(〃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소설가 김동리씨(중2년의 역마),소설가 하근찬씨(고교의 수난2대),희곡작가 이강백씨(중3년의들판에서) 등이 뒤를 따랐다. ■저작권료 산정 산문은 200자 원고지 1장에 590원,시는 1편에 5,900원이다.99년은 순수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한 반면,2000년에는 1만부를 기준으로 해 저작권료 차이가 크다. 박홍기기자 hkpark@
  • 상속세 폐지하자는데 美 갑부들 왜 발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조6,000억달러 규모의 세금감면 방안의 하나로 상속세 폐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자 미국의 대표적인 갑부 120여명이 발끈하고 나섰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 갑부들은 상속세 폐지를 적극 찬성할 것 같지만 이들은 상속세 폐지는 서민들의 납세 부담만가중시킬 뿐이라며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청원서에 서명한 갑부들은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석유왕 록펠러의 후손 데이비드 록펠러 2세,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의 부친인 빌 게이츠 시니어,사업가 아그네스군드,벤&제리의 창업자 벤 코헨 등이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빌 게이츠 시니어.그는 “상속세 폐지는 억만장자들의 자식들만 살찌울 뿐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에게는 납세 부담만 가중시킨다”면서“특히 사회보장과 의료,환경보호 등 중요한 사회프로그램에대한 정부지원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또한 상속세를 폐지하면 억만장자들이 세금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에서 자선단체 등에 돈을 쾌척하는,미국의 대표적 전통인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원서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주식투자로 억만장자가 된워렌 버핏도 “미국은 부의 상속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력이성공을 좌우하는 실력주의 사회”라고 전제한 뒤 “상속세폐지는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장남을 뽑아 2020년올림픽팀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빌 게이츠도“회사일만 아니라면 ‘상속세 존속을 위한 백만장자 압력단체’를 결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버핏과 게이츠는 이미사후에 모든 유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들은 상속세를 폐지하면 갑부들의 저축과 투자가 증가해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도 의문을 품고 있다.즉 상속세 폐지는 소수 억만장자의 부만 증가시킬 뿐이기 때문에 다른 세금을 폐지하는 쪽으로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것이다.부시 행정부로서는 전혀 예상치 않은 복병을 만난 셈이 됐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국민카드사 ‘만능카드’ 첫선

    교통·신용카드 및 전자화폐 기능을 총망라한 ‘만능카드’가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선보인다. 국민카드는 마스타카드와 공동으로 초소형 IC(집적회로)칩을 이용한 다기능 ‘국민 트레이드 패스카드’를 14일부터출시한다고 13일 밝혔다. 기억용량이 기존 마그네틱 카드의 70배나 돼,교통·신용·직불카드 기능은 물론 출퇴근 체크,전자화폐 등 각종 개인정보(ID)카드 기능도 한 장에 담았다. 신청자에 한해 시범발급(연회비 5,000원)하며 기존 국민패스카드 소지자는 교체발급해준다.전자화폐용 자동판매기나가맹점 등 다기능 카드를 쓸 수 있는 ‘인프라’가 아직 취약하다는 게 단점이다. 안미현기자
  • [씨줄날줄] ‘살색’ 없애기

    ‘살색’이라는 말엔 원래 인종차별의 뜻이 담긴 것은 아니다.‘하늘색’‘배추색’‘국방색’하듯이 늘상 만나는 사물과 연관시켜 쉽게 통할 수 있는 색깔 표현법이다.다만 이같은 표현법은 우리끼리만살 때 얘기다. 세계화 시대,국내에서도 각색의 사람들을 이웃사촌 만나듯 만날 수있다.이제 ‘살색’이라고 하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아니면 갈색인지 헷갈리게 됐다.물론 우리끼리 그 말을 못 알아듣기야 할까마는 이말을 삼갈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이 말에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바로 그들이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5일 낮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 어드벤처 앞 길에서 중국 동포,동남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 등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살색 없애기’란 제목의 이색 캠페인이 열렸다.이들은흑·백·황색의 각 표지판에 적힌 ‘살색’이라는 문구를 물감으로지우는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외쳤다.경기도 성남의 ‘외국인노동자의 집’이 외국인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와 한국인들의 그릇된인식을 바꾸기 위해 마련한 캠페인이었다. 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우리가 미처 모르던 우리 안의 부끄러운 인종차별주의를 발견하게 된다.즉 “한국인들은 백인에게 유독 약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중에서도 이란 등 피부가 백인 비슷한 사람들은 푸대접이 좀 덜하고 피부가 검은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멸시한다”는 것이다.더욱 민망한 대목은 “같은 흑인인데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면 ‘검둥이’라고 멸시하고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영어를 배울 수 없겠느냐’는 둥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타향살이’‘나그네 설움’등이 삼천만의 애창곡이었듯이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도 이국땅에서 노동의 아픔을 모르는 민족이 아니다.일찍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이민을 비롯해 서독광부,간호원의 애환이 있다.그뿐인가.아직도 일천만 이산가족이 있고우리 핏줄이 미국, 일본, 연해주 등 세계 각처에서 이방인의 설움을톡톡히 겪고 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다.하지만 역사를 개척한 많은 사람들은 나그네의 신산한 세월을 겪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2001 길섶에서/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신년 벽두에 한반도는 기본적 외교수수께끼의 모범적 시험대라고 보도했다.안보는 “적과의 ‘부드러운협상’으로 달성되는가, 아니면 적의 세력을 무디게 하기 위한 군비증강정책으로 성취되는 것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였다.그러면서 사족처럼 올바른 안보정책은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라는 국제정치학원론을 모범 답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기분이 영 개운치 않다.한반도 전체가 모르모트와 같은 실험대상이 된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그래서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대한 사회에 주인 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라는 도산 안창호(安昌浩)선생의 반문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도산은 1924년 ‘동포에게고하는 글’에서 민족사회에 영원한 책임감을 가진 자만이 이 땅의진정한 주인이라고 역설했다. 나라 경제나 각 개인의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요즈음이다.가정에서,직장에서 그리고 이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무한책임을 지려는 주인일까,아니면 불만만 토하는 나그네일까. 구본영 논설위원
  • 새로나온 외국소설들

    국내소설들의 동한기라고 부를 만한 이때 볼 만한 외국소설들이 여럿번역소개되고 있다.본격소설과 역사소설로 나눠 이들을 좀 더 자세히살펴본다. [본격소설] 우리와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은 소설 읽기의 거대한 원천 중의 하나이다.좋은 외국소설은 더 나아가 삶의 울긋불긋한 다양함에다 튼튼한 줄을 매단 뒤 보편성의 드높은 허공으로 독자들을 활짝 솟구쳐 올려주는 일급 그네와 같다. ‘축복받은 집’(동아일보사)은 줌파 라히리라는 인도계 미국 여성작가의 소설집으로 2000년도 퓰리처상 수상작.1967년생 작가의 처녀작인 이 소설집의 아홉 단편들은 상당수가 1·2세대 인도계 미국이민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이야기의 폭은 좁지만 뉴스위크와 뉴욕타임스서평처럼 절제된 언어,정교한 플롯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국내작가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 틀림없다. 이 소설집과는 달리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의 ‘마법의 숙제’(문학동네)는 말많은 화자가 앞에 나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나 매력적인상상과 재치를 펼치는 적절한 장치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대중적인기가 높은 작가의 이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아이가 되는 동화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아이 시절에 아이답게 사는 것의 중요함과 함께 아이와 어른이 서로에게 품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차없이 적시해 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미지의 섬’(큰나무)은 수상직전에 쓴 짤막한 작품으로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꿈을 너무 쉽게 단념해 버리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우화로읽힌다. [역사소설] 진행과 결말의 해답이 이미 알려진 과거에 무단편승하는역사소설,그것도 외국의 역사소설에서 문학성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존 상식을 비틀어 다소 허황하더라도 새로운 상상력의 틈새를 벌리려는 역사소설의 최근 추세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의미 이전에 괜찮은 역사소설 읽기의 ‘문학성’도 적지 않다. 프랑스 작가 제랄드 메사디에의 ‘신이 된 남자’(책세상·7권)는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1988년 작으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예수의동정녀 탄생과 십자가형 죽음에 대한이견을 내세우고 있는데 예수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신성 대신 인간으로서 사실적면모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같은 프랑스의 쥘리에트 벤조니가 쓴 ‘왕비의 침실’(영림카디널·3권)은 프랑스 루이13세의 아들로 알려진 태양왕 루이14세의 탄생의비밀을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미국 작가 잭 단의 ‘대성당의 기억’(영림카디널·2권)은 이탈리아르네상스의 정화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부제가붙어 있다.그러나 이설(異說)보다는 이 거인의 사랑과 도전을 보다상세하게 그린다. ‘이단자 아케나톤’(홍익출판사)은 프랑스 작가 알랭 다른의 99년작으로 기원전 14세기의 이집트 파라오에 관한 소설이다. 소년왕 투탕카멘의 아버지라는 이 왕은 노예해방 등 개혁을 시도하다실패, 비극적 종말을 맞은 뒤 이집트 역사에서도 이단자로 찍힌 인물이다. 한편 ‘티베트의 고독’(아라크네·2권)은 티베트족 출신의 작가 알라이가 썼는데 지난 세기 티베트의 중국 복속 시기를 다소 환상적인인물과 사건 설정으로 이야기해준다.‘멀리 가는 길’(이끌리오)은중국 명나라 시절 과거길에 나선 형제의 이야기인데 미국 작가 말콤보세가 썼다.청소년 성장소설로 94년도 미도서관협회의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뽑힌 수작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박철 백두산·월출산 사진전

    백두산과 월출산의 만남.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남과 북 두 산의 이미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색다른 전시가 마련된다.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갤러리 1전시실에서 열리는 사진작가 박철(48)의 ‘새천년 국토읽기-백두산·월출산’ 사진전.남북의 산은 떨어져 있지만 결국 한 몸,하나의 국토임을 말없이 전해준다. 백두산이 우리 민족 태동의 전설을 안고있는 성산(聖山)이라면 전남 영암의 월출산은 하늘의 기운을 토해내는 희망의 영산(靈山)이다.작가는 이번에 천지와 장백폭포 등 백두산 비경과 칠치폭포,천황봉 등월출산 절경이 담긴 사진 35점을 내놓는다.하나같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명편들이다. 백두산과 월출산은 봉우리가 바위로 이뤄져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전라북도 넓이의 백두산은 최고봉인 장군봉을 비롯,20여개 봉우리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다.월출산 또한 기암괴석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바위산.이 두 산자락에는 깊은 산의 정기 덕인지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깃들였다.백두산 아래는 조국독립을 위해 말달리던 선구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또 월출산 아래는 왕인박사,도선국사,가야금산조의 창시자 김창조,명필 한석봉,별박사 최지몽 등 시대를 빛낸 문화인물들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박씨의 사진은 두 산의 감추어진 내력을 온전히 보여준다. 영상시집 ‘도시의 나그네’‘로스토프행 열차’ 등을 낸 시인이기도 한 박씨의 사진은 시적인 정취를 풍긴다.그는 새해 벽두 백두산에시 한편을 바쳤다.‘…백두산 천지에 오르면/물 속 하늘이 열리고/하늘에 몸담은 봉우리들/구름으로 옷깃을 여민다…’ 이 시구는 이내‘태초 이야기’라는 사진작품으로 이어졌다.백두산과 천지는 하루에도 수십차례 기후가 변하고 구름과 안개에 가려 전경을 보기 어렵다. 박씨는 평화로운 소천지(小天池),금강대협곡의 기암절경,백두산 왕지(王池),이도백하(二道白河) 등 백두산의 다양한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박씨의 작품은 거대한 지리산의 정상이 천왕봉이라 불리는데 ‘아담한’ 월출산 정상은 왜 천황봉이라 불리는지 짐작이 가게 한다.‘광암터’란 사진을 보면 마치바위들이 제각각 형상을 이뤄 숨을 쉬고있는 듯하다.‘구정봉과 향로봉’‘영암바위’‘천황봉 설경’ 등도주목할 만하다.작가는 월출산을 “철따라 이야기가 넘쳐나는 전설어린 돌들의 고향”으로 읽는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 증진을 위해 지난해 생긴 한중문화교류협회(회장 김진호)의 창립기념전이다.(02)2000-9737.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매일을 읽고/ 관광 온 외국인 ‘공항서죄인취급’사과해야

    ‘공항 입국검색 인권시비’기사(대한매일 1월5일자 23면)를 읽고어처구니가 없었다.우리가 언제부터 그리 잘 살게 되었다고 우리보다못한 나라의 국민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지,‘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라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다. 밀폐된 방에서 중죄인 취급을 10시간 받은 뒤 겨우 출국했다고 하니언젠가 대통령과 톱스타들이 나와 ‘Welcome to Korea’를 외치며 ‘관광 한국’을 내세운 것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김포공항 관계자의 말은 더 가관이다.“불법체류 가능성이 커 돌려보낸”것이고 “입국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몇몇 불법 체류자가 무서워 그네들을 취조하고 입국을 거부했다는 것은 완전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지 않은가.관광오는 이들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100원 벌자고 1만원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잘못을 했으면 사죄하는 것이 옳다.그것이 정도요,도리인 것이다.태국 국민과 정부에게 사죄하라.말도 안되는 변명따위는 내뱉지 말고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라. 이형근 [yoneui@hanmail.net]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최하림론(2)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시의 자리-최하림론. 4.풍경의 미학 정신. 최하림의 시는 역사와 실존이 부딪치는 자리에서 수행되는 치열한시적 사유의 세계이다.두 테마에 대한 집요한 천착 과정을 통해서 그가 보여준 절제와 균형의 미학은, 그의 시세계에 시적 긴장을 유지할수 있는 동인이었다.질곡의 한국현대사를 통과하면서,그리고 그 현실에 부단한 시적 대응을 견지하면서도 특정한 관점에 경도되거나 생경한 직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그의 시가 자신을 시적 사유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시적 사유를 시작한다는 것은,세계와의 정서적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는 미적전략이다.관조와 응시를 통해 세계에 접근하는 최하림의 시적 방식은,심미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시적 태도인 셈이다.역사와 현실에 대한집요한 시적 장고(長考)는 그의 시가 기초한 진지한 미학 정신에서연유한다. 이 미학정신을 구현하는 시적 형식으로 최하림은 풍경화(風景化)의방식을 사용한다.그것은 ‘겨울’,‘골짜기’,‘밤’,‘눈’,‘개’,‘새’,‘강’,‘어둠’,‘바다’,‘사내’ 등 시대적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는 소재들을 동원하여 현실을 암시하는 상황을 설정하고,그상황을 시인의 내면적 정서나 정신적 지향과 겹쳐서 하나의 압축된풍경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이러한 그의 시적 방법은 현실에대한 내적 관조와 깊은 침잠이 선행되어야 하는 창작 방법이다. 현실에 대한 직설적 토로나 생경한 비판의 형식이 아닌,그것을 하나의 형상으로 구축하는 최하림의 미학 정신은 그의 시가 발딛고 있는 기지이자 오늘의 시점까지 그의 시를 추동시킨 문학적 원동력이다.그 심미적 시정신은 자신과 현실적 사태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토양인 셈이다. 큰 나무들이 넘어진다 산과 산 새에서/강과 강 새에서 마을 새에서/길을 벗어난 사람이 어디로인지 달리고/길러진 개들이 일어서서/추운겨울을 향하여 짖는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걸어간다/저녁 그림자처럼 걸어간다 마을도/나루터도 사라지고 과거도 현재도/보이지 않는다/날아가는 새들의/불길한울음만 공중에 떠돌며/얼어붙은 겨울을 슬퍼하고/// 언덕도 상점도폭설에 막히고/거리마다 바리케이트 쳐져/사람들이/어이어이어이 울부짖고/갈색 옷을 입은 사내 몇,들리지 않는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또 다른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그 소리들이 모여/겨울나무를넘어뜨린다/// 꽁꽁 언 새벽 여섯 시,地靈처럼 걷는/사람들 새로 우리들은 걸어간다/살얼음의 아픔이 여울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갈기를 날리고,/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단의 사내들이/사냥개를끌고 온다 개들이 짖는다/이제는 얼어붙은 우리들의 꿈이여/눈과 같은 결정체로 三韓의 삼림에 내리어오라/기다리는 노변에서 상수리숲도 우어이우어이/울고 겨울새도 울고 우리도 울고 있다.― 「겨울 精緻」 전문 암담한 시대적 상황이 구체적인 풍경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시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음울한 절망의 정조가 ‘우리’라는 대명사와 결합되고 등장하는 소재들이 암울한 시대적 상징으로 수렴되면서, 시는비극적 현실을 환기하는 한 반영으로 읽힌다. 산에서는 숲을 숲이게만드는 ‘큰 나무들이’ 사라져 가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입을 다물고 걸어가는’ 상황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몰수된 황폐하고 암담한 현실이다. 폭설로 봉쇄된 암담한 겨울,새의 울음과 숨죽인 통곡만이 가득한 강제와 감시의 현실을 시인은 ‘地靈처럼 걷는 사람들’이라는 섬뜩한죽음의 형상으로 그리고 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 갈기를 날리는’ 듯한 것으로 생생하게 경험되는 현실의 고통은,출구에 대한 욕망의 절실함만큼이나 격렬한 것으로 감각된다.꿈마저 얼어붙은 전망부재의 현실에서 ‘우리들’은 눈을 부르고 있다.하늘을 향해 ‘내리어오라’고 주술처럼 되뇌이는 사람들의 바람 속에는 일말의 가시적인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우리의 암울한 질곡의 현대사를 최하림의 시는 이렇게 묘사한다. 당대 현실에 대한 아무런 직설적 비판이 없는데도 이 시가 보여주는 암담하고 폭압적인 상황은,상황 자체로써 이미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수행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형상화된 현실은그것이 그리는대상 자체보다 생생하며,그것의 문제적 국면은 증폭되어 표출된다.구체적 풍경이 발휘하는 형상력은 시적 정서와 의식을 보다 직핍하고절실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감당한다.문학의 본질적인 힘은 바로 이구체성에서 발원하는 것으로서,삶과 현실에 대한 섬세한 사유와 그것의 미적 형상화는 문학을 다른 제도와 구별짓는 힘의 원천이다.심미주의의 좌절은 야만주의를 부른다. 거친 육성과 생경함 속에 건설된시는,시간의 거센 물살을 견뎌낼 수 없으며,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조잡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현실을 형상화하는 최하림의 시적 태도는, 사실적 풍경도 정신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다음의 시에서 우리는 풍경과 의식이 상호 작용하여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구체적 형상으로드러내는 최하림 시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이 내리니/나뭇가지들이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포물선을 그리며휘어지다가/눈을 털고 일어나고,/다시 눈을 털고 일어나고 한다/오후 내내 그 일을 단조롭게/반복한다 우리가 날마다/아침을 시작하고또/시작하는 것과 같으다/// 이런 날/하늘은 지붕 가까이/내려와 멈추고 세상 길도/들녘에서 모습을 지운다/나는 천근 무게로 눈꺼풀이/내려 앉아 꿈속처럼 눈을 감는다/아이의 속뼈같이 여린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떠올라 머나먼 마을에/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눈벌판을/마구 쏘다니고 싶지만/나는 결코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지/못한다 눈은 나를 덮고 또 덮으며/종일 내려 쌓인다 ― 「아무 생각 없이 겨울 풍경 그리기」전문 이 시에는 오랫동안의 응시를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는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최하림의 [바라보는 시]가 빈번하게 펼쳐 보이는 눈여겨보지 않은 사물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정겹게그려진 작품이다.나뭇가지들이 ‘눈을 털고 일어나고 다시 털고 일어난다’는 묘사 속에는 순진무구의 서정성이 담겨 있다.비어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정경들이 시인의 투명한 시선에 의해 포착된다.최하림의 최근시가 보여주는 정결한 세계는 이러한 시선에 의해 확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하림의 시적 특질은 그러한 맑은 시선이나 그 시선에 포착된 자연 대상의 아름다움보다,오히려 그것을 정신성의 세계로 고양시키는 시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눈내린 상황을 인간의 일상으로전환시키고,그것을 다시 보편적 시간의 세계로 확대하는 방식은,사물의 정경을 정신의 풍경으로 환치하는 최하림 시의 특징이라 하겠다. 여기서 눈의 의미는 일상성으로,그리고 다시 시간의 무게로 전이되면서,‘지붕’과 ‘길’과 ‘들녘’에 내린 눈은 사람과 마을을 지우는무화(無化)의 상징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인이 ‘눈을 감고’ 의식의심층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개별적 존재들을 지워버리는 시간의 냉혹함이다.명멸하는 ‘아이의 속뼈같은’ 가지들이 ‘차곡차곡 쌓이’는‘머나먼 마을’이란, 존재들이 묻힐 시간의 영원한 심연을 의미한다.이 마을의 광경은 시인의 의식이 형상화한 정신의 풍경인 것이다.말할 수 없는 비극성을 삼키고도 저토록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고요 속에 잔혹함을 내포한 시간의 벌판을 시인은 ‘사나운 짐승’이 되어‘마구’ ‘마구 쏘다니고’ 싶다.그것은 모든 인간의 삶 속에 내재하는 존재의 비극적 충동이다.시간의 고요한 위력 앞에 선 무력한 인간의 보잘 것 없음,정화된 풍경 속에 내재한 동적 충동의 이유인 것이다.외부의 풍경을 정신화하고 정신을 풍경화함으로써,이 시는 생의비극성을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최근의 시들을 중심으로 최하림의 많은 시들은 정적(靜寂)의 풍경을노래한다.투명하고 정결한 정서를 보여주는 이 시들 속에는 사물과의화해를 꿈꾸는 생의 충동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꿈꾸기가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바라보는 일이 종내에는 어둠으로 귀착될 것임을 시인은 안다.어둠은 죽음이고,어둠은 무(無)이다.삶에 내재하는 비극성이 동적 충동을 부른다.그가 보여주는 정화의 풍경은존재의 비극성이 미만한 시간의 풍경이며,그래서 생의 충동으로 가득한 허무의 비가(悲歌)이다. 최하림의 역사적 상상력과 실존적 고뇌는 구체적 풍경을 통해서 생생하게 형상화된다. 반성적 거리에 뿌리를 둔 이 풍경의 형식 속에는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이러한 정신에 기초한 시적 사유의 세계는 그 깊이만큼의 집요함과 강인함을 내포한다.역사와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미학정신이 최하림의 시세계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5.다시 꿈꾸는 아침의 역사 현재적 삶이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의의있는 연결이라는 신념이 없다면,인간은 생의 종말을 단순히 불길하고 허무한 상징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다.고통스러운 역사와 유한한 존재들을 모두 삼켜버린 시간의 냉혹함 앞에서,최하림은 인간의 자세를 생각한다.절망적인 역사와실존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역사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이는최하림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시적 사유의 대전제이다.최하림에게 역사와 실존은 삶이 끌고 갈 두 개의 테마이다.‘지옥 같은 역사’의기억과 질병을 통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그는 황폐한 삶의현장을 다시 응시한다.“보이지 않는 들판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들판」) 냉엄한 역사적 현실과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안고 건너야 하는 그 들판은, 정신의 강인함이 요청되는 고되고 지난한 삶의 현장이다.최하림은 들판을 건너는 방법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길의 줄기찬 모색과 그 모색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내 눈이 너를 보고/내 귀가 너를 듣는 동안에/감추인 아침이 차츰차츰 열리고/감당할 수 없이 세상이 밝아온다/경이로운 아침이여 새벽부터 길들은/사립을 나서서 숨소리 깊은 들로 간다/내가 처음의 나그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몇 사람째 이슬을 털고 갔다/그들의 발걸음이 들을 깨우고 비린내음 물씬한/밭고랑옥수수들을 흔든다 옥수수들이/눈 비비며 일어나 제 모습 본다/우리도 어느 날,들을 가면서 우리가 지나는 모습/볼 것이다 긴 낫 들고,그림자 드리우며,/존재하는 것들이 밝게 얼굴 드러낼 것이다/언덕으로 올라가는 도랑에서,나는 잠시,햇빛에 싸여,/걸음이 미치지 않는곳의 신비를 본다/가려고 하지 않는 길들은 매력있다 ― 「밭고랑 옥수수」전문 건강한 아침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들을 깨우고 새벽을여는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모색을 그리고 있는 이 시에는 역사의 운동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담겨 있다.‘차츰차츰 열리’는 역사의 새벽을 ‘감추인 아침’이라고 적고 있는 표현에는,[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의식의 개안을 통해 아침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시인의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감당할 수 없이 밝아오’는 ‘경이로운 아침’은 그것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 ‘동안’,다시 말해 정화된 응시의 시간이 있고 나서야 찾아오는 국면인 것이다.이는 ‘오래오래’ ‘멈춘 평화’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들판’을 건널 수 있다는 「들판」의 사유와도 상통한다.이응시의 시간은 ‘처음의 나그네’를 ‘부지런한 농부’로 전환시키는인식의 계기이다. ‘이슬을 털고’ ‘들을 깨우고’ ‘밭고랑 옥수수들을 흔’들며 역사의 새벽을 걸어가는 이 부지런한 농부들의 발걸음에서,‘숨소리 깊은 들’은 건강한 생명력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개인에게 의식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러한 상상력 속에는,역사란 개인의 고통과 반성을 통해서 성취되는 변증법적 삶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들을 찾아 나서는 ‘농부들’은 바로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굳건한 존재로 선 역사적 주체들인 것이다.‘걸음이 미치지 않는 곳’의 ‘신비’함과 그 길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고통과 반성을 거친 자들의 가슴 속에 찾아온다.역사는,아니 역사적 삶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패배 속에서 다시 꿈꾸는 것임을,최하림은 새벽을 여는 농부들의 힘찬 발걸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역사적 세계에 대한 염원은 최근 시들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아침 이미지]에서 잘 드러난다. “미소 속으로 아버지가 쇠스랑을 메고/온다 이슬 젖은 잠방이 바람으로 온다/(오오 고통스런 세상으로 오시는 아버지!)/노동으로 빛난얼굴을 하고 아버지는/사립으로 온다 우리 가족은 모두/아침의 유대속에서 아침의 빛을 뿌리며//온다 새로운 아이들이 따뜻한 유대 속으로/온다 무성한 시간의 숲을 헤치고/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포르릉포르릉 날며”(「아침 유대」,5·6연)에 그려진 것처럼,찬란한 역사의아침은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통해서 열리는 세계이다. 황폐한대지를 갈고 고르는 노동을 통해서 이룩되는 역사, 그 노동으로 다져진 아버지의 ‘빛난 얼굴’은, 고통을 통해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역사의 변증법적 운동력을 상징한다.개인의 고통과 줄기찬 노동이 역사를 일구어 간다.역사의 아침은,고통을 견디고 또다시 꿈꾸는 강인한 정신 속에 깃드는 것임을 최하림의 시는 보여준다. [농부의 대지적 상상력]이라 부를 수 있는 최하림의 역사 의식은 인간적 실존에 기초한 공동체의 연대를 모색한다.그 삶이란 “모서리들이/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모서리들이/닳아지고 모서리들이 정다워지면서/죽음 가까이 죽음처럼 둥글”(「모카커피를 마시며」)어 지는조화와 화해의 삶이며, 모든 존재의 동질적 비극성에 기초한 관용과사랑의 정신에서 연유하는 삶이다.아울러 이러한 개인의 유대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삶은 ‘목적이 없고 관객이 없으므로 그들 자신이 춤이고 즐거움’(「즐거운 딸들」)이 되는,과정 자체가 하나의 목적을이루는 삶이다.존재에의 연민에 뿌리를 둔 공동체의 유대는,개인의실존과 역사가 만나는 인간적 역사의 모습이며,냉소주의와 자기아집에 대항하는 부단한 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집요하게 존재와 역사의 막막함을 들여다보는 최하림의 질긴 시적고투의 역정은,속도와 효용성이 주도하는 현실세계에 있어서 시의 역할을 재고하게 하는 육중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밤새도록 죽지를눈에 박고 졸며 혼몽 속을 헤매’(「눈을 맞으며」)는 굴뚝새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실종된 역사를 고통스럽게 견뎌내는 최하림의 고독한 견인주의는 우리에게 시와 시인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시의 진정한 자리는 인간적 진실을고민하고 탐색하는 반성적 사유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미학 정신 위에서 건설되며,인간적 진실은 경험과 존재가, 사색과 생이 만나는 자리위에 구축된다. 시의 위의(威儀)는 준엄한 자기 반성과, 그 반성을 통해 한 단계 나아간 진실에의 깨달음에서 발현된다.최하림이 한 작은 글에서 ‘창조적 정신을 잃고 관성에 의지하는 시’가 ‘지상의 평화를 헤친다’고했던 고백은,시적 정신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새로운 세기의시의 모습이 인간과 역사를 보다 창조적인 시각으로 열어 보일 길찾기가 될 것이라면,최하림의 시적 작업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극복해야 할 언덕이다.더불어 그의 시가 현재를 넘어서 또다른 세계에 도달할 것을 믿는 것은,그의 진지하고 강인한 정신의 역투에 대한믿음에서이다. 김문주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9.끝)사랑과 맛

    페미니스트가 들으면 발끈할지도 모르지만 절망에 빠지고 좌절한 남자에게는 여성이 세상과 닿는 통로이며 자기 존재를 확인 시켜주는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사랑에 빠질 때 그렇다는 말이고 어느만큼 지나면 서로 냉정한 타인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헤밍웨이의 초기 단편에 보면 전장에서 돌아온 젊은이의 허무와 자폐증에 대한 심리 묘사가 곳곳에 나온다.죽음의 본질 비슷한 것을 곳곳에서 엿보고 돌아온 자는 생이 덧없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눈치채게 된다.군대에서는 의학적으로 ‘전쟁 공포증’이니 ‘야전 신경증’ 정도로 다루고 후송과 ‘휴양’을 강조하고 있다. 휴양 중의 행위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여자와의 접촉이다.성행위를 하든 안하든 간에 여성과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최소한간호만 받아도 안정을 되찾는다.그래서 나이팅게일 이후 ‘무기여 안녕’에 이르기까지 전장의 병사들에게 여성은 ‘천사’나 다름없다. 내가 베트남에서 돌아와 제대를 하고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보낸 일년은 악몽이었다.우선 아무런 의욕이 없었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하고생각도 없고 누구와 말도 하기 싫고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했다.사나흘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냥 누워서 잠이 깼다가 다시 돌아누워잠들었다가 하면서 보낸 적도 있었다.즉 폭력의 상처 때문에 남과의사회적인 접촉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없으므로 자폐되는 것이다.밤에는 눈 멀뚱히 뜨고 일어나 앉아서 담배나 피워 대다가 해가 번히 뜬대낮에 죽은 것처럼 자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한번은 자고 있는데 고등학생이던 아우가 내 몸을 건너 뛰다가 잘못하여 팔을 밟았고 나는번개 같이 일어나 손에 닿는 대로 잡아서 후려쳤다.화병으로 머리를때렸으니 도자기는 산산조각이 나고 아이 머리도 터져서 피투성이가되었다.그리고 또 어떤 날은 잠 자다가 일어나 마당으로 뛰어나가서땅바닥을 기어 다니기도 했다.이러니 온 식구들이 공포에 질렸을 밖에.어머니가 목사님을 청해다가 안수기도도 올리며 법석을 떨었다.나는 어느 잡지에 나온 글을 읽다가 그 주소에다 대고 편지를 쓰는 것으로 밤을 새우기 시작한다.상대가 누구인지 나이가 몇인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나는 나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 시키려 하고 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그렇게 편지를쓰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생각이 있고 느낌이 있고 살아 있다는 것을확인한다. 내게는 어쨌든 내 존재를 비쳐주고 확인시켜줄 타인이라는거울이 필요했던 셈이다. 몇 통의 편지를 연달아 쓰고나면 날이 훤하게 밝았고 그것을 우체통에 갖다 집어 넣고 나서야 하루를 살았다는강열한 의욕이 생겼다.나는 젊어서부터 글을 쓰기로 작정을 했던 사람이고 ‘좋은 글을 쓰겠다’라는 생각은 전장의 위험 속에서도 거의강박관념이었다. 내가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은 앞으로의 행복한 사생활을 위해서가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여생으로서의 삶을 위해서였다.뭔가 끄적여보려고 했지만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던 제대 이후에 나는 편지라는형식을 통해서 수십장씩의 ‘자기 표현’을 할 수가 있었다.요즈음은인터넷이 있어서 ‘자폐’는 묘하게 은페되어 있다.혼자 독방에 앉아누구와도 직접 관계하지 않으면서 컴퓨터가 세상으로나가는 ‘창’이라고 착각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드디어 ‘왜 그러십니까?’식의 한 줄짜리 답장이 상대에게서 날아왔고 접촉이 시작 되었다.나는 그네를 만나러 시청 앞의 어느 찻집에나갔고 내 옷 차림새만을 전해둔 뒤였지만 상대의 반응이 없어서 그네가 과연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젊은 여성이 드나들 때마다 눈여겨 보았지만 다른 사람의 자리로 갈 뿐이었다.결국 두 시간쯤 기다린 뒤에 그네가 오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찻집을 나오게 된다.그러나 혹시 그네가 살그머니 왔다가 먼데서 관찰만 하고 돌아갔을지도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곳을 떠나면서도 조바심이 났다. 나는 주소를 가지고 그네의 집을 찾아 가기로 한다.이런 행동은 자기최면의 성격이 더욱 강해서 다른 가능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아직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자신도 믿을 수가 없으며 그러나 자기 표현에목마른 젊은이들이 불가항력적인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하는 편집증에대하여 잘 안다. 이를테면 빈센트 반 고호가 사촌누이에게 구애하려고 찾아가서 만나 주기를 청하고 거절당하자, 거실의 촛불에 손가락을 집어 넣고 ‘이 손가락이 타는 동안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부르짖던 절박한 광경이 떠오른다. 빈센트는 그 뒤 절망에 빠져 자살하려던 창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날은 마침 추석 전날이라 달이 휘영청 밝았고 골목길마다 전 부치고 고기 굽는 냄새로 귀가하는 이들은 발걸음이 빨랐고 인기척도 일찍 끊겼다. 나는 주소지 근처에서 웬 아이를 만나서 길을 묻게 되고그애가 그네의 남동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우여곡절 끝에 나는 그네를 드디어 만났다.짧은 글에서 본대로 그네는 부드럽고 침착한 성격이었고 내 자폐증을 서서히 치유 받게 되었다.그네는 그날 다른 장소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이름의 찻집이 있었던것이다.나는 어쨌든 그 무렵의 다른 제대한 젊은이들처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그리고 그네의 인도에 의하여 세상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아마 초겨울이었을 것이다.전라선 기차의 창가로 싸락눈이 부딪혀 날려가던 게 생각이 나니까.그때는 단풍철도 다 끝나서 기차에 승객도별로 없었다.내장산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싸락눈에 살짝 덮여 있었다.함박눈이 덮이면 더욱 풍성한 눈꽃이 피어나겠지만 싸락눈이 희끗희끗 덮인 나무와 산등성이들은 초로의 여인네처럼 조금 쓸쓸해 보였다.귀틀집을 독채로 여러 채 지어 놓은 방갈로들이 유원지에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벽난로가 없고 방 한 가운데에 투박한 석탄쇠난로가 있었다.장작을 잔뜩 집어넣고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다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오솔길에는 싸락눈이 얼어서 뾰죽뾰죽한 성에가바사삭 부서지고 유리창도 꽃처럼 얼어붙었다.나는 산장의 아침 밥상에서 처음으로 ‘고들빼기’ 맛을 보았다.서울에서 자란 나는 물론이고 경기도가 고향인 그네도 고들빼기를 처음 보고 이름도 처음 들었다.쌉쌀하고 풀향내 나는 잎과 아삭이며 씹히는 뿌리의 맛이 여간 독특하지가 않다.고들빼기를 소금물에 며칠동안 담가 쓴맛을 우려내어멸치 젓국에 찹쌀풀과 갖은 양념을 버무려 실파와 함께 담그었다가일주일쯤 지나면 먹을 수 있다.그리고 한 겨울에까지 눈 속에 남아있는 돌미나리와 냉이는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옛 시처럼싱그럽다.모시조개 넣고 된장 고추장에 끓인 ‘냉이 토장국’은 옛날의 잊혀진 사진 같이 정겨웁다.겨울의 하얀 냉기 속에서 봄날의 풀꽃들을 찾아내는 기쁨 같은 것이다.돌미나리 김치와 파래김치 같은 맛들은 묵은 김장 김치며 기름진 육것으로 포위된 듯한 한 겨울에 봄을재촉하는 방안 화초의 물기어린 방향과도 같다.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 시리즈를 이번 회로 끝맺습니다.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8)제5장 사랑과 맛

    지나간 날의 사랑을 기억해내는 데 있어서도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있다고 한다.즉 여자는 연장되지 않은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현재의 사람에 관한 가까운 기억으로 대치 시킨다는것이며,그도 아니면 할머니나 삼촌이나 사촌 형제나 또는 어린 시절의 소꼽친구를 떠올리듯이 친근하고 일상적이던 추억을 간직한다.그에 비하면 남자들의 흘러간 사랑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이 퍼즐을 맞추어 놓듯이 여자와 가졌던 에로틱한 순간들을 모아서 간직하거나,좋고 나쁜 일에 대해서도 전체의 줄거리는 잊어버리고 어느 시간의 미세한 부분을 곰살스럽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흔히는 남녀가 그 반대일 것이라고 여기다가도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맞는 구석이 많은 것 같다.잠재된 욕정과 거친 세상으로부터 따로 떼어 놓은 감각적이고 부질없는 순간들이 오히려 남자들의 옛사랑에 대한 추억의 본모습이라니 어쩐지 수컷이 슬프게 여겨진다. 프로이트 선생의 말씀을 들지 않더라도 성욕과 식욕은 어릴 적부터잠재되어 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지배한다.남녀가 함께 밥을 먹으면 ‘정든다’는 우리네 속담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영혼의 집’으로 유명한 칠레의 작가 이자벨 아옌데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같이 먹었던 요리에 대한 얘기로 책 한 권을 쓸 정도였다. 어느 먼 산골이나 바닷가 어촌에서 두 사람이 먹던 음식의 맛은 지금아무데서나 다시 찾아 먹을 수 있는 흔한 먹거리라 할지라도 다시는되살려낼 수가 없다.또한 그네가 가끔씩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준비하던 달그락 거리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식탁 맞은편에서 따뜻한눈빛으로 이편을 건너다 보던 날의 맛을 어디서 되살려 낼 것인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물처럼 지나간 시간은 자취도 없지만 그감각만은 생생하다. 전쟁 때,우리 식구는 지금은 경기도 광명이라고 부르는 괭메이에 피란을 갔었는데 농가의 외양간을 빌려서 여름 한 철을 보냈다.벽이 삼면만 있고 앞은 툭 터진 대신에 통나무 속을 파낸 여물 구유가 버티고 있었다.소는 전쟁 통이라 없어지고 더러운 건초더미만 쌓였는데쇠똥이며 짚덤불을 깨끗이 치우고나서 흙바닥 위에멍석을 깔고 기둥네 귀퉁이에 모기장을 쳐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도회지 사람들의 피란살이라는 게 어디나 같아서 쓸만한 물건들을 식량 가진 촌 사람들에게 야금야금 내주며 버티기 마련이었다.재봉틀이없어지고 옷가지와 귀금속이 없어지고 자전거가 사라지는 식이었다. 나는 근처 개천에 가서 송사리도 잡고 개구리도 잡으면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는데 지금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내 또래의 계집아이가 생각난다.당시의 시골 아이들은 여름철이면 그냥 고무줄 넣은 검은 무명 팬티 하나로 벌거숭이가 되어 뛰어 다녔는데 그래도 나는 어머니때문에 위에다 런닝은 걸쳐야 했다.우리 식구가 빌어 살던 집 건너편에 그 아이가 살았다.그 아이네 집에선 참외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집앞에 멍석을 펴놓고 함지에 가득 참외를 갖다 놓고 팔았다. 함지에는 참외나 찐옥수수가 있기 마련이고 아이의 할머니가 나와서앉아 있곤 했다.어느 저녁녘에 어머니는 나와 누나들을 데리고가서참외를 사주었고 계집아이를 알게 되었다.아이는 시골 아이 같지않게누나들처럼 간따후꾸(원피스)를 입고 있었다.그리고 작은 코고무신을신었던 것도 생각난다.할머니와 어머니가 주고 받던 먼 고장에 대한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신기했으며 모깃불이 타는 냄새와 별이 우수수쏟아질 것같던 밤하늘은 아주 가깝게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멍석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계집아이와 북두칠성 찾기 내기도 하고 별똥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그애가 나를 불렀다.그애는 한 손을 치마자락 안에 감추고 있다가 가까이 간 내게 내밀었다.그건 방금 솥에서 긁어낸 누룽지였다.아주 딱딱하게 탄 것이 아니라 거죽의 밥알과 덜 탄 누룽지를 함께 긁어내어 동그랗게 뭉친 것이다.사실은 그런 상태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누룽지다.한입 베어물면 부드러운 밥알이 씹히면서도 속에서 바삭바삭 누른 쌀알이 씹힌다.아이가 작은 소리로 말한다.수남아,너만 먹어! 나는 누룽지를받아 먹으면서 어쩐지 좀 부끄러웠다.그리고 이상하게도 죄를 지은듯한 은밀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 고추 잠자리가 가득히 날아다니던 날이었으니 팔월말 쯤이었을 것이다. 우리 식구는 그 무렵에 괭메이를 떠나 영등포로 돌아갔다.한낮이었는데 건너편 사립문 앞에서 그애가 나를 불렀다.마당으로 들어가니 집안에는 모두 들에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다.그애가 부엌에 들어가더니큰 쇠솥 안에서 찐 단호박 몇 토막을 들고 나왔다.우리는 마루에 앉아서 함께 먹었다.호박은 식었지만 말랑하고 단맛이 그만이었다.마당에는 장닭과 암탉들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벌레 사냥을 하던 중이었다.그애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누워서 할머니처럼 배를 쓸어 달라고 했다.나는 참새의 가슴처럼 따뜻하고 쉴새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애의 배에 손을 얹었다.그리고 몇번인가 아래 위로 쓸어내리는중에 갑자기 멈추고는 화가 난 것처럼 얼른 일어나서 달아나버렸다. 고추가 갑자기 뜨겁고 아픈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Y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집을 나가서 남도를 돌아다니다가 왔을 무렵이니까 자신이 이미 세상을 다 겪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흑인 올페’라는 영화를 둘이서 보았던 생각이 난다.대학에 갔을때였는지 군대에 나갈 준비를 하던 해였는지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서해안의 어느 섬에 갔다가 태풍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배가 끊겨서갇혀 있었다.몇가지 특별한 기억이 있다.민박을 하던 집의 뒷간은 마당 뒷편에 텃밭을 건너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냥 항아리를 묻고 소나무 가지로 나지막한 울타리를 세워 놓은 게 전부였다.Y가 밤에 뒷간엘 가려면 무섭다고 꼭 나를 데려가서 울 밖에 파수를 세워놓곤 했다.그러면 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확실하게 보초를 선다는보증으로 노래를 불러 주어야 했다.날 저무른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같은 노래였을 것이다.그건 누나가 변소에 간 나를 지키러 와서 저도 무서우니까 부르던 노래들이다.하여튼그 집에서 배가 올 때까지 몇날 몇밤을 지내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에 그댁 아주머니가 맛이나 보라고 굿떡을 했다고 보시기를 우리 문간방으로 건네 주었다.이게 웬 떡! 호박 시루떡이다. 늙은 호박 속을 길게 깎아서 말려 두었다가 쌀가루 한켜,검은 콩 한켜, 호박 한 켜를 차례로 깔아 시루에 쪄낸 것이다.어느 때에는 대추나 밤도 박아 넣는다. 호박의 단맛은 은근하고 너무 달지는 않아서 구수한 단맛이라고나 할까.우리는 뜨거운 떡을 호호 불면서 가끔씩 손가락에 달라붙는 찐득한 호박을 빨면서 떡을 먹었다.그래서 괭메이의 소녀를 기억해내게된 것일까,아니면 괭메이의 단호박을 떠올리다 그 섬에서의 민박을생각하게 된 것이었을까. 황석영
  • 대한매일 히트상품/ 본상

    -금강제화 에스쁘렌도. 정통 정장용 신발의 틀을 벗어난 세미 정장용으로 96년 9월 출시된이후,패션감각이 뛰어난 20대 초중반의 남녀에게 인기를 끌었다.특히 남성화의 경우 신세대 신랑에게 예식용으로 선호되고 있다. 소량 생산하는 캐릭터 신발로 최신 트렌드와 패션정보를 제품개발에 신속히 반영시킨 것이 큰 특징.주된 소비자의 반응을 체크한 후 생산에 100% 반영,반복구매의 빈도를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제일모직 로가디스 언컨수트. 언컨수트란 ‘언컨스트럭션 수트(Un Construction Suit)’의 줄임말. 신사복에 들어가는 부자재를 최소화하여 가볍고 착용감이 편안한 제품이다.이지(Easy)스타일에 대한 소비자 욕구를 먼저 파악한 제일모직은 99년 언컨수트를 처음으로 출시,비즈니스맨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4겹의 어깨솜을 한겹으로 줄이고 앞판에도 모심과 가슴심만 넣었다.안감도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겼다.몸판은 청량감과 통기성이 뛰어나고 하이테크 처리된 100% 폴리에스터 소재를,소매는 비스코스 소재를 사용했다. -지인텍 코크린.의료기기전문 벤처기업인 지인텍이 지난 10월 4일 출시한 가정용 비염치료보조기.식염수나 약물을 초미립자상태(0.68미크론)로 콧속 깊은 곳까지 자극없이 분사해 코를 세정할 뿐 아니라 콧속 분비물을 흡입하여 치료효과를 극대화해준다.알레르기 비염,축농증,코골이,감기,급성·만성 비염,부비동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쉽게 코질환을 관리하고 예방할 수 있다.휴대가 쉽고 사용방법이 간단해 유아에게 특히 유용하다. -정보문화사 컴퓨터 길라잡이. 컴퓨터 초보자들의 필독서.책에 제시된 방법대로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각 과정마다 눈길 끄는 그래픽을 실어 지루함을없앴다.‘한글 윈도 98’‘한글 워드 2000' ‘한글 815 특별판’‘한글 엑셀 2000’‘PC통신/인터넷’‘유틸리티’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특히 이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천리안·하이텔 등 무료이용권을 비롯해 CD-ROM,컴퓨터 용어 소사전,인터넷 분야별 사이트 목록등을 제공,수요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아름고리 빠볼라 아동복. 99년 10월에 선보인중저가 브랜드.10개월만에 85개 대리점을 확보했고,계속 대리점이 늘고 있다.1년 갓넘은 신규 브랜드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IMF경제 위기속에서 꾸준히 성장해온 비결은 ‘고품질중저가’라는 전략이 적중했기 때문.소재는 코튼과 한단계 향상된 합성섬유를 사용했다.풍부한 색깔과 장식,월등한 디자인으로 이탈리아캐쥬얼 룩을 구현했다.주 고객층은 11세이지만 5∼7세의 아동복도 내놓고 있다. -두산 세계대백과 엔싸이버. 16만 항목의 일상정보,학술정보를 수록한 CD-ROM 타이틀.탁월한 제품기획력과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초·중·고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전국 학교에서 선정한 4,000여개의 과제물과 백과사전 항목을연결한 숙제해결 마법사는 학생과 학부모의 고민을 덜어준다.다양하고 편리한 검색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3만8,000여개의 멀티미디어 파일을 제공하고 있다.특히 2만7,000여명의 인물 정보와 세계·한국·문학사 연표 등을 갖추고 있다. -청호나이스 정수기 오딧세이UV. 고급화·차별화된 정수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변화된 욕구를실현시켰다.획일적인 디자인을 탈피했고,선택 핸들을 돌리면 섭씨 4∼95도의 물을 기호에 맞게 선택해 마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또한역삼투압 정수기의 핵심부품인 ‘마그네틱 펌프’와 99%이상의 제거율을 자랑하는 필터 TFC멤브레인을 사용,고급화를 도모했다.어두운실내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불을 켜는 자동조명,절전기능 등 부가기능을 갖췄다. -옥시 불스원샷. 엔진내부 세척제.97년 8월부터 판매를 시작했으며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51.2%,올해는 70%가 넘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온에도견딜수 있고 세척작용을 한후 자기자신도 분해되어 배기가스로 배출되는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엔진내부 인젝터와 흡기밸브는 물론 자동차성능 저하의 주범인 연소실에 낀 카본때를 말끔하게 세척해줘 출력증강,연료절감,매연·소음 감소 효과가 있다. -한국도자기 뮤즈 시리즈. 명품을 선호하는 국내외 고객을 대상으로 한국도자기가 선보인 야심작. ‘뮤즈’는 젖소뼈를 태운 가루를 50% 이상 함유해 맑고 투명하며강도가 높은 본차이나의 특징을 갖고있다.섬세한 디자인과 색깔,클래식한 금장처리가 품위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식기는 물론 보석함,재떨이,담배케이스 등 다양한 소품으로 구성돼,선물용으로 더없이 좋다.뮤즈 콜렉션은 두가지 종류. -고시연수원 공무원·자격증 수험교재. 국가가 시행하는 각종 자격고시에 대비한 필독서로 수년째 독보적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부문별 점유율은 공무원 55%,간호학 95%,검정고시 50%,자격증 65%,교원임용시험 70% 등이다.회원으로 등록하면공무원 시험은 해당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기타 자격증 시험은 3년동안 무료로 학습자료 및 수험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국내 처음으로 리콜제도를 도입,수험교재에 하자가 있을 경우 이유를 묻지 않고 즉시바꿔줘 신뢰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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