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그냥 쉼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8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경북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경북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농촌 마을에 봄이 깊어지면 농부는 유쾌함이 동반된 분주함으로 몸과 마음이 설렌다. 못자리를 살피고, 볍씨를 파종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한창 바쁘다. 길가에 줄지어 서서 꽃 피운 벚나무는 어느새 가지마다 연초록의 잎사귀를 한가득 돋웠고, 하얀 꽃잎은 봄눈이 되어 흩날린다. 농촌의 분주함은 길가의 낮은 둔덕에 아무렇게나 솟아오른 쑥을 캐는 할머니들의 손길에서도 느껴진다. 쌉싸름한 쑥개떡이라도 쪄 먹으려면 다 자라 쇠기 전의 여린 쑥을 뜯어야 한다. 환한 꽃으로 밝아온 농촌의 봄이 깊어지면서 마을의 풍요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도 만개한다.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는 농촌의 봄은 그래서 햇살뿐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까지 한없이 밝다. ●해마다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일본 노인 낙동강변의 풍요로운 농촌 마을 경북 구미 옥성면 농소리. 마을 회관 앞 도로변의 낮은 둔덕 풀밭에 마을 노인들이 쑥을 캐러 나와 앉았다. 노인들의 굽은 어깨너머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구쳐 오른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바라다보인다. 마을 회관 지붕에 놓인 대형 스피커에서는 ‘봄 노래’가 쉼 없이 흘러나온다. “나무 앞의 간판에는 저 나무를 400살이라고 해놨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실제 나무의 나이는 1000년도 넘었어. 내 고조부 때부터 그렇게 이야기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알고 있지.” 이 고장에서 태어나 군대 생활 몇 년 빼고는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토박이 이성록(74) 노인은 나무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나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언제 심은 나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400살이라고 쓰인 문화재청 안내판의 나이는 틀렸다고 단언한다. “어떻게 우리 나무를 알았는지, 일본 후쿠시마에 산다는 팔순 노인이 몇 해째 거푸 찾아왔어. 그 사람 말이 재미있어. 옛날 중국에서 매우 큰 은행나무의 자손으로 자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거야. 그 나무 중의 딸 나무가 바로 우리 은행나무고, 아들 나무인 수나무는 일본에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일본 나무와 우리 나무가 남매라는 거야.” 지난해 가을에도 몇 사람의 동반자와 함께 찾아와서 한참 동안 나무만 바라보고 돌아갔다고 한다. 자신의 신분과 나무를 찾아온 목적을 또렷이 밝히지 않아 처음엔 그냥 관광객 정도로만 보았는데, 세 차례나 반복되는 그의 방문은 예사로이 여길 수 없었다고 한다. 전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문헌이나 증거도 없다. 곁에서 쑥을 캐며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들도 그 일본 노인의 태도가 대단히 진지했다고 덧붙인다. ●안녕을 기원하는 시월 동고사 그럴 수도 있고,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증명할 자료는 없다. 그러나 마을에서 오래도록 전해온 이야기나 일본 노인의 이야기가 모두 나무의 나이를 1000년 넘게 본다는 주장이다. 1970년에 문화재청은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 제225호로 지정하면서 나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전제했다. 전문가의 조사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은 마을 근처의 지명 가운데에 ‘바윗골 절터 양지’라는 표현이 있어서 나무 곁에 절이나 장터가 있었고, 나무는 절집과 관계있을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나무의 나이를 400살 정도 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결과이지만, 식물학적 생육상태로는 400살쯤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지금 나무의 키는 21.6m, 줄기 둘레는 11.9m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모든 은행나무를 통틀어 무척 큰 나무에 속한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나무가 1000년을 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그러나 어차피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측량할 어떤 근거도 없는 이상 마을 사람들의 말을 비과학적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정확한 수령의 측정보다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키며 살아가는 나무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가 더 중요한 까닭이다. “시월 상달에 처음 드는 오(午)일에 동고사(洞告祀)를 지내지. 마을에서 제일 깨끗한 사람을 제주로 정하는데, 제주가 되면 몸을 더럽힐 일을 피하느라 바깥출입도 금하면서 제사를 준비해야 해. 옛날에는 집집이 쌀 한 되씩을 갹출해서 제수를 준비했는데, 요즘은 현금으로 40만원쯤 모아서 제수를 준비하지.” 15년 전쯤에 동고사를 지내지 않고 해를 넘겼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마을에 흉한 일이 빈발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기는가 하면, 젊은 사람이 몹쓸 병에 걸려 쓰러지기도 했다. 궁리 끝에 다시 동고사를 올렸고 마을엔 평화가 돌아왔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가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서의 의미로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가을엔 단풍이 아주 좋지. 열매가 많이 맺혀서 냄새도 대단해. 해거리를 하기 때문에 그 양이 들쭉날쭉한데, 잘 열리는 때에는 다섯 가마 정도를 거두지. 그걸 내다 팔아서 동고사 지내는 비용에 보태.” ●앞으로도 천년의 세월을 살아야 할 나무 긴 세월 속에 정확한 나이를 잊은 한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하늘 끝에 나뭇가지를 내걸고 마을의 살림살이를 화평하게 지켜온 나무다. 1000살이든 400살이든 말없이 사람의 마을을 지켜온 것처럼 앞으로도 수굿이 제자리를 지킬 것이다. 마을 어디에서라도 하늘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길에 걸리는 한 그루의 나무를 사람들은 언제까지라도 삶의 지킴이로 기억할 것이다. 파릇이 새잎 돋우고 늘어진 가지들이 지어낸 나무 그늘의 평화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글 사진 구미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북 구미시 옥성면 이곡1길 10(농소리). 중부내륙고속국도의 상주나들목으로 나가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낙동대로를 타고 선산 대구 방면으로 간다. 10㎞ 남짓 가면 낙단교차로가 나온다. 오른쪽 도로로 빠져나가서 낙단대교 아래를 지나 700m 뒤에 이어지는 교차로에서 오른쪽 도로를 이용한다. 국도 59호선을 이용해 6.3㎞ 직진하면 농소2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도로 위에서 마을회관 뒤편으로 높지거니 솟아오른 나무가 먼저 보인다. 나무 곁에 자동차를 세울 공간이 없으니 회관 앞 도로 옆에 주차해야 한다.
  • [2012 런던올림픽 D-100] “현장 가봐야 누가 잘 하는지 알지”

    [2012 런던올림픽 D-100] “현장 가봐야 누가 잘 하는지 알지”

    기자는 종종거리며 뛰다시피했다. 엉덩이를 붙일 틈이 없었다. 체력엔 자신있었는데 오후쯤 되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차 마시며 편안하게 인터뷰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런던올림픽을 100여일 앞둔 박종길(66) 태릉선수촌장을 하루 쫓아다닌 소감이다. 지난 12일 박 촌장은 쉼없이 훈련장을 누비며 “현장을 봐야 누가 잘하는지, 선수들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선수촌장의 ‘분(分)치기 삶’을 옮긴다. ●AM 6 새벽훈련 선수로, 감독으로, 촌장으로 40여년을 태릉에서 보낸 박 촌장은 에어로빅과 러닝으로 아침을 연다. 졸린 눈의 선수들과 달리 오전 5시 30분이면 선수촌을 도는 촌장의 눈빛은 살아 있다. 비가 와 새벽훈련이 취소돼도 우산을 들고 뛴다고. 날씨가 너무 안 좋을 때는 실내에서 108배를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바로 뒤 불암산을 오른다. ●AM 9 간부회의 매일 아침 유정형 운영본부장, 윤옥상 훈련지원팀장, 송상우 관리팀장이 촌장실에 모여 크고 작은 안건을 다룬다. 이날은 태권도 국가대표선발전-레슬링 런던대책회의-역도 아시아선수권 결단식 등 일정은 물론, 올림픽 D-100 일정까지 미리 챙겼다. 촌장은 “요새 OO종목 애들 표정이 어둡더라. 전과 다르다.”며 감독에게 물어 사기 진작책을 알아오라고 했다. ●AM 10 언론 인터뷰 대사를 앞둬서인지 사흘 연속 인터뷰가 잡혀 있다. 박 촌장은 “내 기사가 많이 나와 민망하다. 하지만 선수들은 훈련에 방해될 수 있으니 나라도 궁금증을 해소해줘야 한다.”며 응했다. ●AM 11 태권도 대표선발전 올림픽 본선만큼 힘들다는 국내선발전. 발차기 한 번에 운명(?)이 좌우되는 치열한 현장에서 박 촌장도 “애들 실력은 백지장 차이인데.”라며 마음을 졸였다. 태권도협회 임원들과 만나서는 “다른 건 안갯속이어도 태권도는 (금메달이) 확실하잖아요.”라고 압박을 듬뿍 줬지만, 선수들 앞에선 그저 자애로운 미소만 지어 보였다. ●낮 12 점심식사 선수촌을 찾은 최종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과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양사부터 식사 중인 직원들까지 정답게 인사를 나눴다. 박 촌장은 태릉선수촌에 사는 선수들과 직원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운다. ●PM 1 회의 박 촌장은 “한국스포츠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며 회의를 비공개로 하겠다고 했다. 탁자에 둘러앉아 1시간 회의가 이어졌고, 다음 1시간은 문제의(?) 현장을 돌았다. 사소한 농담부터 선수단 현황보고, 다소 무리한 부탁까지 민원이 넘쳐났다. ●PM 3 역도 결단식 런던에 나설 대표를 뽑는 아시아선수권대회(24~30일·평택)를 앞두고 역도대표팀 결단식이 열렸다. 박 촌장도 당연히 참석해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을 격려했다. 선수들에게 “재밌냐?”고만 물었고 “세계정상이 되는 건 당연히 쉽지 않다. 즐기면서 재밌게 해야 성공한다.”고 했다. ●PM 4 선수촌 순회① 본격적인 ‘현장 방문’. 박 촌장은 여자단체전 훈련이 한창인 리듬체조를 먼저 노크했다. 매트의 청결상태부터 연습장 온도, 선수들 컨디션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이어 여자레슬링, 여자핸드볼, 배드민턴, 남자레슬링, 복싱 연습장을 차례로 돌았다. 선수들은 늘 그랬다는 듯(!) 살갑게 인사했다. 복싱 신종훈은 “촌장님이 아빠같이 잘해주셔서 꼭 금메달 따야 돼요.”라고 잽을 날렸다. ●PM 5:30 선수촌 순회② 이번에는 여자유도장을 찾았다. 이원희 코치에게 선수들 컨디션을 묻고, 몇몇에겐 이름을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같은 승리관 지붕 아래 새로 지어진 탁구장도 둘러봤다. 박 촌장은 “(5월 초 입촌할) 탁구선수들한테 빨리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체조연습장까지 둘러보고 이날의 현장방문은 끝났다. 일정을 함께한 이옥자 지도위원은 “매일 이렇게 훈련장을 둘러보신다.”고 혀를 내둘렀다. ●PM 6:30 저녁식사 배식 전에 밥 먹는 선수들 사이를 쭉 돌았다. 땀에 전 선수에겐 두툼한 옷을 억지로 입혔고, 밥맛이 없는 선수에겐 고민을 물었다. 배드민턴 이용대에게는 전화번호를 땄다(!). 식당이 한가해진 7시 30분을 넘겨 들어온 여자 유도팀까지 모두 살핀 뒤에야 자리를 떴다. “선수들뿐 아니라 나도 세계 각국 선수촌장들과 경쟁한다. 1등이 되겠다.”던 약속은 허풍이 아니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수입 95% 저축… 5년 더 땀 흘리면 예전 삶으로”

    2010년 4월 어느 날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한 아파트 옥상. 난간에 걸터 앉아 불콰해진 얼굴로 연신 소주를 들이켜는 이성식(45·가명)씨의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순간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와 이혼한 뒤 우울증 때문에 2005년부터 집에서 주식 투자에만 매달렸던 그는 1억원을 잃고 빚까지 얻은 상태로 거리로 나와 고시원 생활과 노숙을 하며 살아왔다. 이혼 전에는 잘나가는 영어학원 강사에 토끼 같은 딸을 둔 가장이었지만 하루아침에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떨리는 입에서 “인생 이렇게 살아서 뭐해. 그냥 죽자.”는 말이 나왔지만 순간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딸을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에 이씨는 아파트를 내려와 무작정 둔촌동 지구대로 달려갔다. 지구대장에게 “살 곳도, 돈도 없지만 죽을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으니 도와 달라.”고 사정했다. 다행히 경찰의 소개로 서울 강동종합사회복지관의 노숙인 쉼터에 입소할 수 있었다. 쉼터의 규칙은 엄격했다. 자활 과정 도중 번 돈의 50%를 저축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유흥으로 돈을 탕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서울시 신용회복지원사업을 소개해 빚을 일부 탕감해 줬다. 이씨는 건설일용직으로 공사장에서 벽돌부터 날랐다. 첫 일당은 5만원이었지만 일이 익숙해지자 12만원까지 받았다. 그는 소개비 10%를 뗀 나머지 돈의 95%를 저축했다. 한 달에 180만원을 저축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보호시설 노숙인 1222명의 저축실적을 검토해 이씨처럼 소득 대비 저축률이 높은 70명을 ‘올해의 노숙인 저축왕’으로 선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4억 6000만원을 벌어 절반 이상인 2억 6000만원을 저축했다. 상위 7명은 수입의 90% 이상을 저축했다. 저축왕이 되려면 6개월간 꾸준히 근로소득이 있어야 하고,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시는 상위 7명에게 상장을 주고, 70명은 오는 3월 ‘희망플러스통장’ 가입자로 추천한다. 희망플러스통장은 저축액만큼의 금액을 시에서 지원해 저소득층의 자활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생명의 窓] 휴(休)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생명의 窓] 휴(休)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레비라는 랍비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달려가는 남자를 보았다. “왜 그렇게 달려가는가?” 랍비가 묻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행운을 잡으러요.” 이 말에 랍비는 말했다. “어리석은 자군. 자네의 행운이 자네를 붙잡으려 뒤쫓고 있는데, 자네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어.” 무엇에 홀린 듯 뛰어다니는 현대인을 위한 한 방이다. 아니 멀리 볼 것 없이 그대로 매일 시간대별로 꽉 찬 일정을 헉헉거리며 소화하던 필자를 향한 꼬집음이다. 올해는 그나마 안식년이라 조금 덜 켕기지만 어쨌거나 한창 활동 중일 때도 1년에 7, 8월은 꼭 비워 두곤 했다. 이 기간 동안 독서와 집필 그리고 기획·방송·녹화에 전념하면서 푹 쉰다. 어찌 보면 이런 것들도 일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필자에게는 그저 노닥노닥 즐길 수 있는 낙()일 따름이니 가능한 것이다. 휴가철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할애할 시간이 없는 삶, 일몰을 감상할 시간이 없는 노역, 의무를 위해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해야 하는 굴레 등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를 만끽할 계절인 것이다. 휴(休)는 단지 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에서는 흔히 서서히 크레센도로 음악을 점점 높여 가다가 갑자기 뚝 멈춘다. 그 침묵의 순간에 나오는 대사는 어떤 것이든 보다 분명하고 보다 강력하게 들린다. 침묵을 배경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사에는 특별한 힘이 실리는 것이다. 이는 그대로 음악에도 적용된다. 음악을 들을 때, 포즈 곧 휴지(休止)의 박자를 유념해서 들어 보라. 무언가 심오한 느낌이나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연설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틴 루터 킹의 그 유명한 연설문을 보자. 그 박자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드디어 자유입니다. (휴지) 드디어 자유. (휴지) 전능하신 신께 감사드리나니 우리는 드디어 자유를 찾았습니다.” 요컨대 휴는 삶의 강약과 리듬을 조절하는 결정적인 인자이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반드시 쉬어 가야 할 장소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오아시스에서 쉬어야 할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 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상하게도 멈추어 쉬고 활력을 되찾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잠시 멈추어 있다면 이 기간이야말로 충전의 시간이요, 도끼날을 가는 시간임을 명심하라. 바쁘게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바쁘다’는 의미의 한자 ‘망’(忙)은 다음과 같은 두 글자의 조합임을 알게 된다. 바로 ‘마음’(心)과 ‘죽음’(亡), 즉 ‘마음을 죽인다.’는 뜻이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행동주의와 과로와 스트레스로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있는가. 휴의 가치를 가장 잘 깨닫고 활용할 줄 알았던 민족은 역시 유대인이다. 그들은 오늘날도 안식일을 글자 그대로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안식일 하루를 온전히 쉬기 위해 모든 가사를 금요일 저녁 이전에 해치운다. 그러고는 안식일에는 일체의 노동을 피하고 미리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심신을 편안히 쉬게 한다. 안식일에 가장 큰 덕으로 숭앙받는 것은 ‘게으름’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문화에서는 휴일이나 휴가 문화가 오히려 더 많은 일거리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그동안 밀렸던 빚을 받아 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블루 먼데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쉴 때는 그냥 쉬는 것이다. 한껏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다. 황금 같은 휴가철, 게으름의 권리를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말 일이다. 휴- 하라! 고단한 몸의 긴장을 풀고 충분히 충전하라. 그래야 더 멀리 갈 수 있고,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9)강릉 오죽헌 율곡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9)강릉 오죽헌 율곡매

    사람살이의 오래된 자취를 간직한 고택이나 산사와 같은 문화재에서 옛사람의 흔적을 가장 많이 담고 서 있는 건 노거수(巨樹), 나무다. 옛 건축물이나 조형물은 오래 지키기 위해 사람의 손을 조금씩 덧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솜씨 좋은 건축가라 해도 오래된 나무만큼은 새로 지어낼 수 없을뿐더러 덧댈 수도 없다. 옛 사람들의 숨결을 조금씩 담아내며 살아온 나무를 사람이 흉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나무는 앞서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오래된 문화재의 안팎에서 옛사람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참으로 소중한 자연문화재다. 물론 그의 깊은 속내를 들춰내는 건 사람에게 주어진 몫이다. 오래된 문화재를 찾는 사람들 가운데 그 안에 남아 있는 나무를 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숨결이 남아 있는 강릉 오죽헌 뒤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매화나무 앞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사람살이의 오랜 자취를 담고 있는 오죽헌의 큰 나무에 눈길을 맞추는 사람을 수굿이 기다렸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찾아드는 단체 관광객들은 쉼 없이 이어지지만, 뒤란의 큰 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추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큰 나무가 매실나무 맞아? 정말 크네.” “여기 그렇게 써 있잖아. 신사임당이 살아있을 때부터 있던 나무래.” ●오죽헌을 짓고 심은 600살 된 매화 말없이 스쳐 지나는 사람들 틈에서 신혼 부부로 보이는 한쌍의 젊은 연인이 나무 앞의 안내판을 바라보며 허투루 두어 마디 던지고는 곧바로 걸음을 옮긴다. 나무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나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더 흘려 보냈다. 공들여 사진을 찍고,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며 나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여대생 정은선(22)씨가 나무를 찾아온 건 한 시간쯤 지난 뒤였다. 정씨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도 걸음을 떼지 않고 신기한 표정으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에 대해 잘 몰라요. 그런데 안내판을 보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님이 애지중지 키운 나무라는 게 신기해요. 나무의 내력을 알고 나니, 오죽헌 방 안에서 사임당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해요.” 2007년 가을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된 강릉 오죽헌 율곡매는 ‘율곡매’라는 이름으로 매화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매화나무다. 600여 년 전인 1400년대 초반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이 집을 짓고, 뒤란에 심은 나무다. 신사임당이 이 집에 머무를 당시에는 이미 100년쯤 된 큰 나무였다. 사임당은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맏딸의 이름에 매화를 넣어 매창(梅窓)이라 한 것도 매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뒤란의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폈을 게 틀림없다. 사임당이 남긴 그림 가운데에는 고매도, 묵매도 등 매화를 소재로 한 그림도 여럿 있다. 대개는 자신의 집 뒤란에서 도담도담 자라는 이 매화나무를 보고 그린 것이지 싶다. 이 나무가 율곡매라는 이름을 얻은 건 최근의 일이다. 오래된 매화는 대부분 자기만의 고유 이름을 가진다. 오래전부터 선비들은 매화를 좋아했던 까닭에 그의 기품을 살리기 위해 특별한 이름을 붙였다. 이를테면 남명 조식이 심은 매화를 남명매, 퇴계 이황이 키운 도산서원 매화를 퇴계매 등으로 부르는 방식이다. 오죽헌 매화나무는 율곡 선생이 사임당과 함께 키운 매화여서 율곡매라 이름했다. 율곡매는 연분홍 꽃을 피우는 홍매로 키가 7m를 넘고, 줄기 둘레는 2m 가까이 된다. 나뭇가지는 동서로 8m, 남북으로 7.4m나 뻗어냈다. 우리나라의 여러 매화나무 가운데에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다. 600살이라는 나이 또한 우리나라 최고령의 매화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매화는 은은한 향기가 좋은 나무다. 옛 선비들은 그래서 매화향을 암향(暗香)이라 했다. 코를 찌르는 짙은 향기는 아니지만, 은은하면서도 아득히 멀리까지 퍼진다는 것이다. 또 매화의 암향을 감상하는 걸 선비들은 문향(聞香)이라 했다. 코를 바투 들이밀고 향기를 맡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깨뜨리면서 고요하게 번져오는 향기를 귀로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번잡한 저잣거리가 아니라, 선비의 고택이나 천년고찰의 정원에 서 있는 매화를 매화 중의 으뜸으로 꼽는 근거다. ●오죽헌 앞마당엔 ‘명품’ 배롱나무 오롯이 꽃 지고 열매 맺는 여름이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오죽헌의 옛 풍광이 그려진다. 정갈한 방안에 든 사임당은 침묵 속에서 벼루를 갈아 한 송이 매화 꽃을 그리고, 뒤란의 매화는 까무룩이 암향을 퍼뜨리는 풍경이 긴 세월의 늪을 탈출해 살아난다. 오죽헌의 앞마당에는 오래된 명품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여름에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다. 이 배롱나무 역시 율곡매와 같은 나이의 나무로 사임당이 이곳에 머물 때 함께 있던 나무다. 뒤란의 율곡매가 꽃 지고 열매를 매달 즈음, 앞마당의 배롱나무는 서서히 붉은 꽃을 피워 여름 한낮의 무더위를 희롱한다. 오죽헌에서 율곡매와 배롱나무 없이 신사임당과 율곡의 자취를 온전히 느끼는 게 불가능하다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그러나 두 나무는 모두 사임당보다 먼저 이곳에 자리잡고 살았다. 바라보는 사람이 없어도 나무들은 옛사람의 손길을 어떤 건축물보다 생생하게 오래 간직할 것이다. “나무를 잘 모른다.”면서도 “나무가 참 좋아요.”라며 떠난 여대생 정씨의 한마디가 유난히 고마운 이유다. 글 사진 강릉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201. 강원 양양에서 동해를 잇는 동해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 동해고속국도의 강릉 요금소를 나온 뒤 왼쪽의 강릉 방면으로 원주대학교 캠퍼스까지 간다. 원주대학교 정문 로터리에서 우회전하여 800m 남짓 북쪽으로 가면 오죽헌 담장이 보이는 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면 곧바로 오죽헌 입구의 주차장에 닿게 된다. 시내 곳곳에 오죽한 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일고여덟살 무렵부터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신문을 펼치는 사람은 나였다. 아침에 눈만 뜨면 내복바람으로 달려나가 신문을 집어들고 와서 먼저 펼쳤던 것이 ‘TV편성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색연필까지 들고서 만화영화의 편성시간대에 체크를 하고, “~하고 마는데…” 하고 끝나는 프로그램 예고기사를 두근거리는 맘으로 읽기도 했다. 여덟 살 꼬마에게 신문읽기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신문사랑’은 계속되었다. 열살 때는 연재소설에 맛을 들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야했다. “보지 마라.”는 부모님의 핀잔은 어린 가슴에 불을 댕겼고, 그 이후로 아침마다 가장 먼저 신문을 읽고 나서는 안 읽은 척, 새 신문인 것처럼 각을 잡아놓곤 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몰래 읽는 스릴이 최고였다. 나이가 들고 관심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스포츠 섹션, 시, 짤막한 칼럼, 독자참여란이나 오피니언 등의 순서로 ‘열독 코너’의 수준이 높아지고 범위가 확장되어 갔다. 서울신문에서 요즘 가장 즐겨 읽는 코너는 토요일자 서평 섹션이다. 마음만큼 책을 읽지 못하는 욕구불만을 서평으로 대리만족하곤 한다. 이렇게 자잘한 재미를 찾아 신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신문과 친해지고 그 이로움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하여 신문을 읽는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소소한 즐거움이 있기에 신문을 집어들게 된다. 매일 아침 펄떡거리는 새 뉴스를 상에 올리는 신문이지만 고정적으로 즐겨 찾는 밑반찬 같은 코너가 있다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위안은 자못 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일까. 눈에 들어오는 편집과 디자인 덕에 전체적으로 읽어 나가기에는 쉬운, 젊은 느낌의 신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을 붙일 만한 피처기사들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취약하다는 점은 아쉽다. 유머는 한물간 것이고, 날씨는 지면 중간 애매한 곳에 있어 가독률이 떨어진다. 만화, 만평, 운세는 다른 신문과 별반 차이가 없다. 풍부하고 충실한 내용 이외에도 독자의 충성도를 높여줄 ‘갈고리’를 추가로 장착할 것을 제안한다. 서울신문은 지난 19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연재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국 신문소설의 역사, 나아가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는 시대지만 여전히 연재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전력을 살려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실험적인 작품의 연재는 어떨까. 서평이나 문화면에서도 차별화를 권한다. 서평 전문기자의 충실하고 풍부한 서평은 지금도 좋다. 책의 주제를 쉽게 함축한 디자인에는 눈이 덜컥 가서 걸린다. 하지만, 책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그냥 화제작이나 신간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읽어 볼 만한 책이라든지 특정 주제의 책을 묶어 소개하는 식으로 기준을 다양화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구색갖추기용 지면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 신문을 읽을 때 먼저 1면을 대충 훑어보고 그 다음 뒤로 넘겨 신문을 펼친다고 한다. 오피니언 면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거리가 ‘길섶에서’와 ‘씨줄날줄’ 이다. 주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히 풀어낸 글은, 편하게 앉아 현명한 인생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 같아 좋다. 기사를 읽기 전 혹은 후에 쉬어갈 수 있는 코너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알차고 풍부한 내용이라도 쉼 없이 읽어 내려면 생각만 해도 숨이 찬다. 물론 그런 것이 신문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정공법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젊은 층이 신문을 외면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도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어릴 적 그 설렘을 다시 떠올리며 깊이 있는 신문, 살아있는 신문에 더해 재미있는 신문, 정이 가는 서울신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의 삶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21세기 삶의 원형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단순한 역사 속 영웅, 그것도 침략자로 일컬어지는 다른 나라의 영웅을 그려내는 역사소설인 것만은 아닌 이유죠.” 지난해 7월 몽골로 떠나 울란바토르 외곽에 허름한 방 한칸 구해 놓고 글을 쓰다 잠시 귀국한 소설가 김형수(52)를 지난 22일 서울 서교동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작가블로그(blog.yes24.com)에 장편소설 ‘조드’를 연재하고 있다. ‘조드’는 12~13세기 몽골 유목민의 삶이 담긴 대륙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칭기즈칸 이야기다. 그러나 숱한 칭기즈칸 이야기와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 한다. ‘조드’는 초원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일컫는 몽골어다. 김형수는 1999년 이후 무려 열두 차례나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에 머무는 동안에는 툭 하면 차 빌려서 초원으로 취재 여행을 나갔다. 그렇게 취재한 유목민의 풍속과 삶이 소설로 들어왔고, 초원을 휘감아 도는 바람소리, 늑대의 심상까지 몽땅 담았다. 이것들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원시의 투박함을 닮은 대륙의 서사(敍事)가 되어 김형수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에 담겨 유장히 흘러간다. 그렇더라도 연재 초에 스스로 밝힌 것처럼 ‘침략자 미화’라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터. 그는 “13세기 칭기즈칸의 활약은 너무도 대단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서사에서 그를 단순한 정복자 또는 전쟁 영웅으로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풀어왔던 것은 그가 벌인 전쟁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던 탓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설명. “칭기즈칸의 전쟁은 소통과 교류를 막고 있는 세상의 칸막이를 무너뜨려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예컨대 일제의 침략 지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부족민을 지구인으로 바꾸는 작업, 그 자체였던 겁니다.” 프랑스의 세계적 지성 자크 아탈리가 설파한 ‘디지털 유목민’의 원형은 이렇듯 700~800년 전 칭기즈칸의 사유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그는 “칭기즈칸이 침략자라는 오해는 소설을 다 읽으면 충분히 불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배시시 웃었다. ‘조드’를 읽다 보면 지구와 인간의 관계, 수천년에 걸쳐 나뉘어진 유목민과 농경민의 삶의 방식으로 사유가 연결된다. 그리고 어느새 인류의 시원(始原)까지 생각의 걸음이 닿는다. “네티즌들의 댓글마다 꼬박꼬박 답글 달며 우리 시대의 소통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있습니다. 답글도 작품을 쓰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매일 댓글 다는 스무명 남짓의 열혈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답한다. ‘반가워요. ○○님’라든가 ‘또 오셨네요. ◇◇님’ 같은 의례적 답글이 아니라 치열한 사유를 쉼없이 확장시키는 공간이자 방법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취재 일기’와 ‘작가 노트’까지 중간 중간 달린다. 고향의 기억을 자극하는 시편들까지 읽을 거리로 등장하니 ‘조드’는 그냥 연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학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 알려진 대로 그는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문학평론가다. 그에 앞서 담론 생산자이기도 한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자주적 문예운동론’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지금의 30~40대 작가 가운데 한때나마 사실주의 문학을 접했다면 김형수의 자장(磁場) 언저리에서 글을 쓰고 배웠을 것이다. 김형수는 “올 5월 정도면 일단 초원을 통일하는 데까지 완성될 것 같다.”면서도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서사가 시작하는 연작 장편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혼녀·철부지엄마와 그 아들, 불안·고독한 마이너리티 삶은…

    이혼녀·철부지엄마와 그 아들, 불안·고독한 마이너리티 삶은…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 펴냄)는 작가 은희경(51)이 안에서 오랫동안 품어 왔던 두 페르소나가 세상에 나와 성장해 가는 기록이다. 철부지 엄마 ‘신민아’와 그의 아들, 열일곱 소년 ‘강연우’다.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자신을 애써 지켜내고 싶은 철부지 싱글맘은 쿨하고 센 척하지만 한없이 약하다. 그에 반해 열일곱 소년은 꽤 의젓하거나 혹은 삶에 심드렁해 보인다. 둘은 쉼 없이 세상과 사랑하고, 연인과 사랑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둘은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지나칠 만큼 섬세한 감성은 사회 주류에 끼어드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내용의 관계 앞에서 남들보다 더 아파하고,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내적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 소설은 지독하리만치 철저히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이혼녀인 엄마의 직업이 ‘옷칼럼니스트’인 것도, 소년이 자석에 이끌리듯 힙합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엄마의 애인이 현학적인 문화평론가인 것도, 소년의 친구 독고태수가 외국 유학 귀국 부적응자인 것도 모두 사회의 주류에 편입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드러낸다. 인물들은 불안하고 고독하며 따스한 손길을 갈망한다. 소년들이 늘 그러하듯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극복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힘은 이미 스스로 지니고 있다. 도망가지 않기, 솔직하게 들여다보기를 통해 은희경은 이를 하나씩 증명한다. 5년 전 시작한 뒤부터 썼다가 지우고, 지었다가 부수기를 연신 반복하며 내놓은 작품인 만큼 인물들은 잘 영글어 있다. 성장하는 이가 겪어야 하는 모든 복잡하고 세밀한, 그래서 쉬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선의 변모 지점을 에둘러 가지 않고 덤덤하게 마주한다. ‘소년’에는 성장소설이 필연적으로 빠지고 마는 어설픈 훈계가 없다. 게다가 애써 건강한 척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불필요하게 냉소적인 쿨함도 없다. 그저 소년이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존재에 대해, 관계에 대해 하나씩 사유하고 새롭게 발견해 간다. 긴장감 넘치는 극적인 사건의 연속을 원한다면 맥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은희경 특유의 톡톡 튀는 문체-기존 작품들보다 더욱 두드러진다-와 인물 개개인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잘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극적인 사건까지 쉽게 이르게 된다. 실제로 안쪽 가지런한 치열까지 모두 드러날 만큼 활짝 웃거나 콧잔등에까지 잔뜩 주름을 잡아 웃는 은희경의 모습에서 소년-소녀가 아니다- 자체를 읽어 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은희경의 힙합 예찬, 달리기 예찬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에게 힙합은 ‘내가 그냥 나일 수 있는 세계’ 혹은 ‘선율을 배제해 버린 채 음악의 완성을 추구하는 배짱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힙합의 혁명성’이다. 표면적으로는 폭력과 욕설을 매개 삼아 내뱉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무정형의 소통 도구이기 때문이다. 달리기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고 하는 전 우주를 오롯이 혼자 짊어진 채 달리는 것’,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 등 고독한 운동 달리기가 주는 만족감을 한껏 드러낸다. 홍익대 주변 힙합 공연장을 직접 찾아다니는가 하면 하프마라톤을 여러 차례 완주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대학 다니는 딸(김새남)과 아들(김이롭)에게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은희경은 책 머리에 ‘감동적인 첫 만남 이후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며 딸, 아들에게 이 소설을 헌사했다. 딸과 아들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페르소나이니 결국 자신에게 바치는 소설이기도 한 셈이다. 왜 그리도 긴 시간 동안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주말화제]세종문화회관 2기 시민배우 연극교실

    [주말화제]세종문화회관 2기 시민배우 연극교실

    “상대 배우가 휴대전화를 쳐다보며 통화가 끊어졌다는 걸 확인한 뒤에 대사를 들어가야 내가 알아차렸다는 뜻이 됩니다. 그 전이나 그 이후에 들어가면 행동과 대사가 연결이 안 돼요. ” “여러분 발 밑에 흰 점선 보이시죠? 그게 분할 조명 표시입니다. 그 선을 넘으면 조명을 못 받아요. 그 점 신경 쓰면서 다시 한번 갑니다. 정신 차리세요. 낼모레가 공연이에요.” “거기서 한 문장 끝나잖아요. 그 대목에서 숨을 끊고 다음 대사 해야죠. 안 그러니까 다음 대사가 무슨 말인지 안 들리잖아요. 그리고 대사 외운 티 내지 말고요.” 지난 4일 오후 9시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5층 연습실. ‘진짜 진짜 리얼리티쇼’의 연출을 맡은 강신구씨의 지청구가 쉼 없이 이어진다. 두 시간 전 연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만두로 빈속을 달래며 “목요일반 표는 벌써 매진됐데.”, “우리 표도 팔려야 할 텐데 어쩌지.”라며 웃어대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뻔히 다 아는 대사에, 상황에, 동선인데 이게 왜 자꾸만 엉키나. 서로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연기에 몰입한다. 이들은 그냥 일반인들. 하여 시민배우다. 정확히는 세종문화회관이 지난 4월에 뽑은 ‘시민연극교실’ 화요일반 배우들이다. 지난해 1기에 이은 2기다. 45명을 선발, 화·수·목요일반 세팀으로 나눠 각각 ‘진짜 진짜 리얼리티쇼’ ‘고백 오마이 갓’ ‘나비섬 가는 배’를 6~7일 이틀 동안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 무대에 올린다. 아이디어는 김석만 서울시극단장이 냈다. 삶은 연극이라는데, 대학교수, 최고경영자(CEO), 직장인, 주부, 무당까지 다양한 사람을 골고루 섞어서 연극을 만들면 그 어떤 기성 배우나 작품보다 괜찮은 ‘물건’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2기생 약력을 훑어보니 대충 감이 온다. 보험설계사, 교사, 등산학교장, 치과의사, 주부, 카페 매니저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였다. 국민가요 ‘개똥벌레’를 작사한 이흥건씨도 있다. 나이도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공통점이 있다면 연극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 시민배우들은 대본도 직접 만들었다. 거창한 남 얘기가 아니라 소소한 내 얘기를 해보자는 뜻에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나를 회복하고 치유해 보자는 의도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이두성 서울시극단 지도단원은 이를 ‘자기화된 것의 표현’으로 정리했다. “간혹 불만스러워하시는 분이 있으세요. 셰익스피어의 명작 같은 걸 해보고 싶었다는 거지요. 그럴 때마다 송강호를 팔아서 진압합니다.” 배우 송강호가 연극무대에 처음 섰을 때, 경상도 사투리에 너무 신경썼다고 한다. 아무리 주변에서 “너다운 연기를 하면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송강호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스러운 연기를 하면서 비로소 영화배우로도 성공했다고 설득하는 거죠. 하하하.” 그런데 이들은 왜 멀쩡한 생업을 놔두고 밤마다 ‘리얼리티쇼’에 매달리는 것일까. 화요일반의 맏언니 장선혜(57) 제인인터내셔널 대표가 대답했다. “처음엔 쳇바퀴 같은 인생에 뭔가 탈출구가 필요해 지원했어요. 와 보니 저 같은 사람이 절반이더군요(웃음). 용기를 내 저지르긴 했는데 그래도 이 나이에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처음엔 ‘인문학 강의’ 들으러 다닌다고 집에 거짓말했어요. 그런데 이게 하면 할수록 참 재미있더라고요. 이런저런 강의를 많이 들었지만 이런 (시민배우) 프로그램은 정말 흔치 않아요. 희곡에 대한 이론수업 자체가 인문학 강의예요. 그리고 이제는 문화를 즐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해보는 시대 아니던가요?” 1기 선배인 주부 이성주씨도 거들고 나섰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해보면 맛을 알게 돼요. 그래서 12월에 1기 20여명이 모여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 공연을 해요. 한번 하고 말 게 아니라 계속 이어가자는 뜻이지요.” 세종문화회관 시민배우교실은 해마다 4월쯤 모집한다. 명동예술극장도 올해 ‘아마추어 배우교실’을 신설했다. 주부반·직장인반 15명씩 선발하고 지원서는 오는 10일까지 접수한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시민배우들의 얼굴은 여전히 흥분과 열정으로 넘쳐났다. 이때 누군가 툭 던지는 말, “그런데 공연 담당 기자분이라면 누구보다 이런 거 먼저 한번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차!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화려한 싱글도 피해갈 수 없는 집안일

    화려한 싱글도 피해갈 수 없는 집안일

    혼자 독립해 생활하는 것은 언뜻 호수에 떠 있는 백조처럼 우아하고 화려해 보인다. 멀리서 보면 누구보다 여유 있게 시간을 즐기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물고기를 포식하며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는 수면 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을 놀려야 하는 노동이 뒤따른다. 잠시라도 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화려한 싱글이라도 ‘집안일’을 피해갈 수는 없다. 생활의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쓰지만 일은 끝이 없다. 조금만 방심하고 손을 놓으면 음식 접시와 빨랫감이 쌓인다. 싱글들의 가사생활에 얽힌 웃지 못할 이면을 들여다봤다. 대학생 이정일(23)씨의 자취방은 여느 또래들처럼 너저분하다. 이것저것 발에 걸리는 물건들이 많아 방안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씨는 부모와 함께 살 때만 해도 ‘깨끗, 깔끔’을 모토로 살아 왔다. 한 번 입은 티셔츠·바지는 다시 입는 일이 절대 없었다. 집안에서는 이씨의 방이 가장 깔끔했다. 바닥에 머리카락 떨어지는 게 싫어 누나의 머리띠와 머리핀을 빌려 꽂을 정도였다. 속옷까지 직접 빳빳하게 다려 입으며 유난을 떨었다. 그러나 장거리 통학이 힘들어 올 초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그를 바라보는 가족 모두가 ‘집안일은 깨끗하게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도 “간단한 음식도 할 줄 알아 혼자 사는 일에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집안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고 과제를 하거나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빨래나 청소를 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가사라는 게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음식은 집에서 곧잘 해 먹었지만 매일 갈아입어 수북이 쌓인 빨랫감을 빨고 다시 걷어 차곡차곡 개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손바닥만 한 원룸은 닦고 또 닦아도 금세 더러워졌다. 결국 이씨는 매주 토요일을 ‘대청소의 날’로 정해 놓고 토요일만 되면 집안일에 ‘올인’했다. 다른 날은 손도 까딱하지 않는다. 그는 “너저분한 환경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면서 “그래도 항상 깨끗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현준(32)씨도 나름 자취생활 4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집안 상황은 ‘혼돈’ 그 자체다. 분리해서 내놓아야 하는 쓰레기를 그냥 아무렇게나 비닐봉지에 넣어 수북이 쌓아 놓았다가 주말이 되면 새벽을 이용해 한꺼번에 내놓는다. 이웃 주민에게 적발돼 주의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집에 들어오면 만사 제쳐두고 침대로 몸을 옮긴다. 격무로 몸이 피곤할 때면 씻지도 않고 그냥 침대로 들어간다. 집에서 밥을 해 먹으려다 씻어 놓은 그릇이 남아 있지 않아 나가서 사 먹는 일도 흔하다. 집안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차 있지만 혼자 오래 살다 보니 그것조차 면역이 된 듯하다. 대구에 있는 어머니조차 서울에 있는 박씨의 집에 오면 “어떤 여자가 너같이 게으른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하겠냐.”고 면박을 주기 일쑤다. 박씨는 “하루에 최소 10시간 이상 일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챙기는 것이 너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서 “친구들이 ‘그렇게 지저분한데 결혼이나 하겠냐.’고 놀릴 때마다 상처받지만 집에 들어오면 또 다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혜진(29·여)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식 냄새를 싫어했다. 집안에서 생선 굽는 냄새, 고기 누린내, 기름 냄새 나는 것이 가장 싫었다. 향이 조금만 강한 음식 냄새를 맡으면 헛구역질이 바로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김씨의 어머니는 “나중에 다 해 먹고 살 건데 왜 그러냐.”면서 핀잔을 주곤 했다. 어머니의 구박 아닌 구박을 받고 살던 김씨는 ‘음식 냄새 해방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3년 전 독립했다. 그는 “비위가 약해 그러는 것뿐인데 엄마가 타박할 때마다 너무 서운했다. 혼자 살면서 좋은 향만 나도록 할 테다.”라고 속으로 다짐도 했다. 그러나 독립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김씨가 자취방에서 주방기기의 불을 켜는 일은 ‘물 끓일 때’ 빼고는 좀처럼 없다. 끼니는 거의 빵으로만 해결한다. 식빵을 사다가 토스트를 해 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끔 빵이 물릴 때는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때도 있다.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 음식을 찾다 보니 얼리거나 딱딱하게 말린 가공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냉장고에 김치 냄새 배는 것이 싫어 김치도 먹지 않는다. 그런 김씨도 가끔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김씨가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은 컵라면. 집에서 당차게 나왔지만 돌아온 것은 궁색한 가공식품뿐이었다. 그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나 설거지도 싫어하기 때문에 컵라면을 먹는 게 편하다. 앞으로 계속 이런 패턴으로 생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코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직장인 최수영(32·여)씨는 평소 ‘수더분한’ 성격이다. 최씨는 특별히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중간쯤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아서 하는 편이고 청소하는 주기도 일정하다. 긴 생머리를 갖고 있어 머리카락이 집안에 나뒹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은 밑반찬 위주로 간단하게 차려 먹는 편이다. 남들과 특별히 다를 것 없이 무던한 최씨가 절대로 참을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물때가 찬 화장실이다. 최씨는 생각날 때마다 표백제나 소독제를 풀어 화장실 청소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물때는 못 참는다. 대학 때 친구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더러운 화장실을 보고는 도저히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아 청소용 솔, 소독제, 고무장갑 등 청소도구를 사다 대신 청소를 해 주기도 했다. 욕조나 변기가 더러운 것도 참지 못한다. 최씨는 “더러운 욕실에서 씻거나 용변을 보면 그렇게 불쾌할 수가 없다.”면서 “가끔은 얄미운 친구들이 일부러 화장실을 더럽게 해놓고 초대할 때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자취 5년차인 직장인 김해영(30·여)씨의 일요일은 빨래와 함께 시작된다. 바쁘고 정신없던 평일 동안 내내 쌓였던 수건과 블라우스, 속옷 등을 세탁해야 한 주를 차질 없이 생활할 수 있기 때문. 친구들과 토요일 저녁까지 어울리거나 일요일까지 약속이 있는 날은 밖에 나와서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는 “월요일 출근 때 입어야 할 정장 블라우스는 다림질까지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 구겨진 옷을 입고 갈 때도 있다.”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기 때문에 청소며 설거지, 자질구레한 집안일까지 신경 쓸 일이 많아 주말 몇 시간은 꼬박 집안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혼자 사는 것도 힘든데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까지 돌보며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피곤한 집안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예 가사 도우미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회사 컨설턴트로 일하는 김재윤(33)씨는 일주일에 두 번 직업소개소에서 연결해준 파출부를 부른다. 4시간 동안 청소와 빨래, 집정리 등 집안일을 해 주는 대가로 3만원씩을 지불한다. 그는 “일주일에 6만원씩 24만원을 주지만 일주일 내내 신경 쓰지 않고 가사에서 벗어나는 게 기회비용으로 봤을 때 더 이득”이라면서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일에 파묻혀 지낼 때가 많고 야근이나 밤샘, 술자리가 많아 청소 등을 할 겨를도 없는데 50대 아주머니께서 가족처럼 가사를 도맡아 줘서 든든하다.”고 도우미 예찬론을 펼쳤다. 학원강사 7년차인 박효원(31·여)씨에게는 알아서 반찬까지 만들어 갖다 주는 ‘우렁각시’가 있다. 바로 인근에 사는 어머니다. 한 달에 서너 차례 딸 집을 찾는 어머니가 쓰레기 등을 가져다 버리고 냉장고에 김치며 멸치볶음 등 밑반찬까지 가득 채워 놓는다. 그는 “아직까지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조금 죄송하고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솔직히 시집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엄마 그늘에 있다는 게 기분 좋을 때도 있다.”면서 “대신 용돈을 팍팍 챙겨 드리는 것으로 무마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홍선아(28·여)씨는 자취생활 6년 만에 주부 9단이 다 됐다. 고향을 떠나 처음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세탁기 한 번 제대로 돌려본 적 없던 그다. 혼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집안일은 엉망이었다. 색깔 옷을 흰옷과 섞어 빨아 물들이기 일쑤였다. 한 번은 음식물 쓰레기를 큰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여름철에 구더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기겁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재활용 분리배출부터 수납공간 늘리기, 얼룩 없이 세탁하는 법까지 살림꾼이 됐다. 웬만한 밑반찬이나 찌개류도 척척 만든다. 그는 “1~2년 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사 먹기도 했지만 물가도 비싸고 직접 해 보자고 마음먹은 뒤로는 집안일이 재밌기까지 하다.”면서 “처음에는 혀를 끌끌 차고 내려가시던 부모님들이 이제는 내가 직접 만든 반찬을 먹어 보고 시집 가도 되겠다며 대견해하신다.”고 자랑했다. 직장인 최성훈(33)씨는 웬만한 여자보다 집안일을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혼자 생활한 지 4년. 처음에는 집안일이 하기 싫어 방바닥도 한 달에 한 번씩 청소하고,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곤 했지만 ‘이래선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생활패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시작했던 집안일이 이제는 인터넷 블로그에 가끔씩 글을 올릴 정도로 고수가 됐다.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함께 김치를 담글 때마다 “총각이 김치를 이렇게 맛깔나게 담그는 모습은 처음이야. 우리 사위로 들어오시우.”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다. 혼자 사는 친구의 생일날 그를 초대해 미역국을 끓여 주고 “돈 들여 나가 먹을 일 있냐. 내가 직접 만들어 보겠다.”며 얼큰한 꽃게탕을 만들어내 주변을 놀래키기도 한다. 최씨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했던 집안일이 이제는 내 생활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면서 “결혼하고 난 뒤에 가끔씩 배우자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줄 수 있는 남자가 나의 이상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현용·백민경·이민영기자 junghy77@seoul.co.kr
  • [생명의 窓] 생명은 채움이다/성전 남해 용문사 주지

    [생명의 窓] 생명은 채움이다/성전 남해 용문사 주지

    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향해 합장한다. 가만히 하늘을 우러른다. 새벽하늘은 내게는 성스러운 곳이다. 그곳은 나의 법당이고 내 마음의 처음이다. 나는 언제나 새벽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스스로 배경이 되어 저토록 영롱한 별과 달을 띄워 내는 새벽하늘의 마음결을 닮고만 싶다. 새벽하늘에 하늘만 있다면 그것이 과연 아름다움일 수 있겠는가. 별과 달이 영롱하게 빛나지 않는다면 새벽하늘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리라. 새벽하늘은 아름다움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배경이 되어 별과 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론 맺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듯하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있으므로 부족하여 벌레와 바람이 찾아와 암술과 수술을 중매한다. 생명은, 그 가운데 결여를 안은 채 그것을 다른 이에게서 받아들인다.” 요시노 히로시라는 일본 시인의 ‘생명은’이라는 시. 생명은 그렇다. 생명은 스스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느 것도 스스로 존재하는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니다. 생명은 어느 것이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는 연기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상의상관성이 생명의 실상이다. 어느 것도 스스로 구족한 것은 없다. 생명은 다른 것에 의존하고 다른 것을 받아들임으로써만 생명일 수 있다. 그래서 생명은 결여다. 받아들임으로만 생명일 수 있을 뿐이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하나의 존재에도 온 우주가 들어 있다고. 작은 하나의 존재와 우주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형상의 다름은 있으나 생명의 본 모습은 같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생명도 우주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존재할 수 있다니 이 살아있음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렇다면 결여는 오히려 놀라운 축복이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여 이 작은 존재가 우주와 같은 존재가 된다면 이 수용을 거부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채움은 비움으로만 가능하다. 비우지 않으면 채움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야 만다. 나라는 견해로 자신을 무장한 사람은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산다. 나라는 견해로, 인간이라는 우월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반(反)생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것은 불행의 길이고, 절망의 길이기도 하다. 입으로는 행복을, 상생을 말하지만 이것은 이기적 탐욕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세태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이,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듯이 생명은 하나의 길을 가지고 있다. 순리가 바로 그것이다. 순리는 생명의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평화롭고 또한 고요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생명에게 너와 나의 대립과 투쟁은 무의미할 뿐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나 다만 가리고 택함을 꺼린다고 한다. 지극한 도는 생명의 길을 의미한다. 다만 가리고 분별하지만 않는다면,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나’라고 볼 수만 있다면 그는 생명의 길 위에서 평화를 만날 수가 있다. 저 들녘에 피어나는 꽃과, 흘러가는 강물과, 온 산하에 고루 내리는 달빛은 그 어디에도 분별심이 없다.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므로 아름답고 평화로울 뿐이다. 우리 절에 주련이 하나 걸려 있다. 그 주련의 글귀가 유난히 눈을 끈다. 글 내용은 이렇다. “붉은 향 얼굴을 치니 그 소식을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 꽃향기 다가와 얼굴을 때려도 생명의 소식을 끝내 모르고야 마는 이 무명을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받아들임을 모른다면 생명의 소식은 어디에서고 만날 곳이 없다. 지척에 꽃은 피고 강물이 쉼없이 흘러도 우리는 그냥 밖을 보며 살아갈 뿐이다. 내 안의 꽃과 강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 말라갈 뿐이다. 생명은 채움이다. 내가 없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아의 구현이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곳에서 우리는 생명의 즐거움을 만날 수가 있다. 새벽하늘을 보라. 그리고 암수로도 모자라 벌레와 바람의 중매까지도 받아들이는 꽃을 보라. 거기 우리들 삶의 길이 있지 않은가.
  • [싱글 라이프] 싱글들의 바캉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싱글 라이프] 싱글들의 바캉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여름휴가.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에 뛰어드는 상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단어다. 고단했던 삶을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싱글들의 자세도 남다르다. 긴급 다이어트·운동 등 몸짱만들기 프로젝트부터 은근히 인연을 기대하는 마음가짐, 나홀로 여행을 떠나는 이별족까지…. 다양한 싱글들의 바캉스를 엿본다. 백민경·정현용기자 white@seoul.co.kr ●고시로 찌든 때 벗고 기차에 몸 실어 최근 남자친구와 이별한 직장인 주지현(29)씨는 여름 휴가를 앞두고 ‘나홀로 여행’을 계획 중이다. 친구,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20대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다. 그는 “원래 같았으면 3년 사귄 애인과 함께 오붓한 휴가를 즐겼겠지만 싱글이 돼서도 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지금이 아니면 혼자 떠날 수 있는 기회도 마땅치 않은 데다 이번에 멀리 유럽으로 나가 제대로 된 인생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시생인 김창수(32)씨도 올 여름 5박6일간 울릉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책 속에 파묻혀 어지러웠던 2년여간의 생활을 되새겨 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잡아 보기 위해서다. 공부도 잠시 미뤘다. 김씨는 최대한 간소한 옷차림과 세면도구 등 필수품만을 가지고 조만간 기차에 몸을 싣기로 했다. 그는 “울릉도부터 인근 지역을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면서 “휴가를 다녀오면 머리가 맑아져 고시준비도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에 사는 회사원 박성일(33)씨도 이번 여름휴가에 혼자만의 지리산 종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친구들이 같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자고 아우성이지만 번잡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고심 끝에 지리산 종주여행을 계획했다. 싱그러운 숲길을 걸으며 지금까지의 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구상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혼자만의 여행이 부담스러워 생각만했을 뿐 감히 실천에 옮기질 못했다는 그다. 박씨는 “30대가 되면서 혼자만의 여행을 반드시 한 번 다녀오고 싶었다.”면서 “이번 여름에는 일주일간 휴가를 쓸 수 있게 돼 마음 편하게 먹고 지리산에 갔다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몸짱만들기 프로젝트 ‘땀 뻘뻘’ 7월 말로 잡힌 휴가기간을 앞두고 ‘긴급 관리’에 들어간 싱글들도 있다. 보험업계에 근무하는 6년차 직장인 강지원(30)씨는 원푸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제모시술과 태닝까지 마쳤다. 그는 “남자친구와 처음 해수욕장에 놀러 가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면서 “다른 친구들도 애인과의 바캉스를 앞두고 비키니를 입기 위해 피나는 관리 중”이라고 귀띔했다. 서울에서 중견 제조업체에 다니는 김용우(30)씨도 연초부터 휴가를 대비한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동해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면 일단 ‘식스팩’이 기본이라고 생각해 4개월 전부터 헬스클럽을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술 한 잔 해야지.”라며 어깨에 손을 걸치는 동료들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지만, 단 일주일의 휴가라도 쳐진 배를 보여주기 싫어 운동을 한다는 그다. 최근에는 마음이 맞는 몇몇 친구들까지 설득해 운동을 함께 다닌다고 했다. “근사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벌써부터 몸을 부지런히 놀린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김씨는 “작년에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아무 준비도 안 했다는 친구들이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며 나타났을 때 상대적인 박탈감까지 들었다.”면서 “연초부터 이것만은 실천하자며 준비했던 것이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됐다.”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부산에 사는 회사원 김희연(30)씨는 한여름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늘고 있다. 가녀린 몸매를 가진 친구들은 “여름에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질 않는다.”고 기분 좋은 투정을 하지만 김씨의 눈에는 그들의 말이 곱게 비칠리 만무하다. 몸매에 자신이 없어 단 한번도 바닷가에서 비키니를 입지 못했지만 이번 여름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집 근처 헬스장 트레이너에게 단기간 집중코스를 요구했다. 하지만 트레이너에게 “하루아침에 살을 뺀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꾸준히 다녀야 성과가 있다.”고 핀잔을 들었다. 김씨는 “바닷가에 가자고 친구들이 졸라대는데 몸매에 자신이 없어 혼자 바닷가에 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이 많다.”면서 “지금부터라도 노력해 보려고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토로했다. ●“휴가 함께 가실래요” 블로그에 글 올려 파트너 구하기 돌입 휴가에 앞서 미팅에 열을 올리는 청춘 남녀도 있다.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는 신정수(32)씨는 “처음에는 일주일이나 되는 휴가를 혼자 보내기 싫다는 생각만으로 주말마다 소개팅 등에 매달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짧은 바캉스라도 이 만남을 계기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만큼 특별한 여름이 되기를 고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와 휴가를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벌써 한여름으로 접어든 것만 같아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던 그는 지난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해 보자며 나간 소개팅에서 마침내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다. 그는 “8월 초인 휴가기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는데 이번에 정말 마음이 끌리는 상대를 만나게 돼서 가슴이 벅차다.”면서 “당일 여행이라도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쁜 휴가가 될 것 같다.”며 벌써부터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대학원생 김세연(26)씨도 방학을 이용, 인연만들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여고생 동창 넷이 함께 부산 해운대로 놀러 갈 계획을 세우면서 현지에서 짝을 찾자고 의기투합했기 때문. 그는 “논문 준비며, 조교생활에 지쳐 있었는데 모처럼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가는 만큼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고 올 생각”이라면서 “한 순간의 우연이 아니라 정말 좋은 인연을 이번 기회에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5년차 직장인 김성범(32)씨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함께 휴가 떠나실 분~’이라는 글을 올렸다. 바캉스 기간을 같이 보낼 애인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글을 올린 것이다. 그는 “영화처럼 누군가 이렇게 온라인에 적힌 글을 통해 연락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꼭 이성이 아니더라도 친한 고등학교 동창생들에게 연락해 우정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로지 ‘쉼’…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으로 대전에 사는 회사원 김지연(30·여)씨는 이번 여름휴가 기간 동안 마음먹고 해외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회사에는 이번달에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기로 미리 얘기를 해 두었다. 지난 4년 동안 정신없이 영업업무를 담당해 그야말로 ‘휴식’만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던 것. 그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틈나는 대로 필리핀 보라카이섬,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 등 휴양지 정보를 체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관광지에서는 남는 것이 ‘사진’이라는 점을 되새겨 휴가기간을 한 달이나 앞두고도 벌써 옷을 고르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물론 집에서 가까운 곳을 다니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결혼하기 전 인생에 기념이 될 만한 일을 한번 벌여 보고 싶었다.”며 한껏 부푼 기대감을 밝혔다. 서울에 사는 대학원생 최수연(29·여)씨는 모처럼 부모님과 경남 남해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해외여행도 고려해 봤지만 번거롭게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아 국내여행으로 방향을 바꿨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바닷가를 거닐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3일간 가족여행을 다녀온 뒤 서울에서 친구들과 만나 동해안에 들른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최씨는 “우리나라 관광지도 돌아보지 못한 곳이 너무나 많다.”면서 “일정이 빡빡하긴 하지만 효도도 하고 친구들과 여름도 즐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벌써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중견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성희(30·여)씨는 한여름 밤의 파티를 꿈꾼다. 남녀 동반 여행은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 뻔해 친한 여자친구 2명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 호텔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열기로 했다. 숙박비만 20만원이 넘고 두어 달 전에 미리 예약해야 하는 수고가 만만치 않았지만 5년 만에 절친과 함께하는 파티에 기대가 적지 않다. 가능하면 호텔에서 스파 등의 고급서비스를 모두 해 볼 생각이어서 더욱 들뜬다. 단 나흘간의 휴가를 위해 5개월간 용돈을 아껴가며 모았지만 부산에서는 아낌없이 쓰겠다는 각오다. 김씨는 “친구들과 함께 수다도 떨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고 싶다. 밤 바다에 발을 담글 생각을 하면 지금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바비킴, 음악은 인생..‘솔의 대부’는 작은 훈장(인터뷰)

    바비킴, 음악은 인생..‘솔의 대부’는 작은 훈장(인터뷰)

    가수든 배우든 한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쉼 없이 걸어오고 또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설명해주는 수식어 한 두 개쯤 따라붙기 마련이다. 가수 바비킴 앞에는 항상 ‘솔(Soul)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는 1994년 닥터레게라는 그룹의 멤버로 등장해 부가킹즈와 지금의 바비킴이 있기까지 한 길만을 올곧게 걸어온데 대한 작은 훈장과도 같다. 하지만 최근 4년여 만에 정규앨범을 들고 팬들 앞에 선 바비킴은 그런 수식어가 부담스럽단다. 구지 ‘솔의 대부’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바비킴을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바비킴은 1993년 한국으로 들어와 당시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울과 힙합을 가요계에 전파하는데 힘써왔다. 그렇게 묵묵히 10년을 걸어온 바비킴은 2004년 솔로 1집 타이틀곡 ‘고래의 꿈’을 히트시키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터전을 일구고 그 결과물까지 따먹은 셈. 어찌 보면 ‘솔의 대부’라는 말로도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래퍼로 데뷔한지 꽤 돼서 ‘랩할아버지’는 만족스럽지만 ‘솔의 대부’는 부담스러워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힙합이나 소울만 고집하는 애들에게 욕먹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혼으로 마음에 있는 걸 내뱉으니까 ‘소울’은 괜찮아요. 그냥 ‘소울 맨’이라고 불러주세요.(웃음)” 실제로 바비킴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소울만 고집하진 않아 정체성을 두고 많은 오해도 있었다. 바비킴이 그간 드라마OST 등 발라드도 많이 부른 탓이다. 하지만 이는 “소울은 장르라기보다 그냥 마음속에 있는 메시지”라는 바비킴의 말을 생각한다면 배신(?)이나 외도는 아니다. 바비킴은 자신의 신념처럼 항상 자신의 마음을 앨범에 담아내고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이번 정규 3집 앨범 ‘하트&소울’(HEART & SOUL)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앨범에 담긴 14곡에 그가 살아온 삶과 느껴온 감정들을 진솔하게 담아냈고 가요계 대세인 아이돌을 제치고 음반·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의 인생이 담겨 있는 앨범인 만큼 곡 하나부터 트랙순서까지 모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바비킴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쓸쓸함이지만 이번 앨범엔 희망도 많이 담겨 있다. “음반은 한 편의 영화에요. 대부분 타이틀곡만 듣는데 그 전후의 곡들 역시 타이틀곡을 설명해주고 또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거든요. 그러한 순서를 통해서 제 삶에 대한 성찰과 누구나 힘들지만 용기와 희망을 갖고 살자는 의미를 하나씩 풀어갔어요.” 이처럼 바비킴은 언제나 앨범에 자신의 인생을 담아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려 애썼다. 물론 음악적인 욕심도 있다. 다양한 장르를 섞어가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 다양한 장르라곤 하지만 바비킴은 언제나 소울로 살아왔고 소울로 노래했으며 뭘 해도 소울이 넘친다. 본인이 부담스럽다고 해도 우리는 바비킴을 ‘솔의 대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진 = 오스카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6)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상화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6)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상화

    “그동안 올림픽만 보면서 뛰었던 만큼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얼른 끝내고 푹 쉬고 싶어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부 대들보’ 이상화(21·한국체대)가 전설을 쓸 채비를 마쳤다. 이상화는 올림픽 전 마지막 대회에서 대표팀 ‘큰오빠’ 이규혁(서울시청)과 나란히 정상에 오르며 올림픽 금빛 기대를 고조시켰다. 지난 17일 막을 내린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여자부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 한국 여자선수 최초의 종합우승이었다. 이상화는 “주변에서 ‘네가 역사를 다시 썼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저도 기분은 좋은데 아직 올림픽이 남았으니 긴장을 놓으면 안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큰 일을 앞두고 조심조심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 여자부 최초 종합우승 5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예니 볼프(독일)를 누르고 차지한 우승이었다. “제가 금메달을 땄으니 올림픽 땐 걔네들이 더 벼르고 나올 거예요. 예니 볼프가 ‘이상화 때문에 더 분발해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던데요?”라고 깔깔 웃는다. 톱 스케이터를 고개숙이게 한 짜릿함이 전해진다. 올림픽을 앞둔 각오를 물어도 ‘금메달을 따겠다’, ‘여자부 역사를 새로 쓰겠다.’ 같은 호기는 부리지 않는다. 그냥 “상위권 선수들과 기록을 비슷하게 가져가고 싶어요.”라는 선에서 입을 꽉 닫는다. 올림픽이 어떤 대회인지 잘 알기 때문이란다. ●“열심히 기록만 줄이자는 생각으로 버텼죠” 사실 이상화는 2006토리노올림픽 때도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열 일곱 소녀였던 이상화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기억. “토리노 때는 주변에서 부담주고 그러니까 ‘메달 따야되는건가?’ 싶어서 긴장도 많이 했죠. 실력도 부족했는데…. 어려서 좀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한다. 그래도 500m 5위로 여자부 역대 최고성적을 거뒀다. 동메달과 0.17초 차이였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훌훌 털어버렸다. “열심히 기록만 줄이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이번에 좋은 일이 있으면 되겠죠.”라고 대꾸한다. 지난 올림픽보다 훨씬 좋은 기량을 보이는 지금은 오히려 담담하다. “지금은 톱 클래스 선수들과 (기록이) 같이 가고 있으니까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세계 정상급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부쩍 성장했기에 가능한 여유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발을 동동 굴러도 차가운 입김이 쏟아지는 태릉 스케이트장에서 이상화는 콧잔등에 땀이 맺힐 정도로 쉼없이 달린다. 세계정상급 남자 단거리 선수인 이규혁-이강석-문준-모태범이 빙판을 가르고, 맨 꽁무니에는 이상화가 악착같이 뒤쫓는다. “다른 여자 선수들과 기록차이가 많이 나서 거의 오빠들과 연습을 해요. 워낙 잘 이끌어줘서 기량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라는 설명. ●초반 스타트 중점보완… 살짝 삐끗하면 메달색 달라져 왼팔 움직임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오른팔을 앞뒤로 흔들며 리듬을 맞춰 코너를 돈다. 안정적인 자세와 쭉쭉 뻗는 스트로크가 일품이다. 그렇게 지치지도 않고 꼬박 2시간을 달린다. 보완점을 묻자 스타트와 피니시 때 중심이동을 꼽는다. 단거리인 만큼 초반 스타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셀 수 없이 연습한 스타트지만 그때그때 다르다. 살짝 삐끗하면 바로 메달 색깔이 달라진다. “훈련이 너무 힘들고 지쳐 빨리 대회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그동안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다. 덕분에 스케이팅 감각에 한층 물이 올랐다. 4년동안 절치부심 준비해온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이 성큼 가까이 온 듯 하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54) 제천 신선봉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54) 제천 신선봉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정선, 영월, 단양의 골짜기를 우당탕 굴러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 충주호다. 제천, 충주, 단양에 걸쳐 있어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가 아름다운 이유는 월악산, 금수산, 제비봉, 옥순봉 등의 명봉들이 호반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알려지지 않은 곳이 신선봉(845m)이다. 수려한 암릉이 숨어 있고, 충주호 조망은 어느 산에 뒤지지 않는다. 제천의 산꾼들이 쉬쉬하며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다 제천시에서 주최하는 산악마라톤 코스에 신선봉 일부가 들어가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솔향 가득한 충주호 전망대 충주호 주변의 산 중에서 우두머리는 ‘중원의 맹주’로 불리는 월악산이다. 충주호 남쪽에 자리한 월악산은 최고봉인 영봉의 웅혼한 기상과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톱날 능선이 주변을 단숨에 제압한다. 충주호의 2인자는 동쪽에 자리 잡은 금수산이다. 예전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선생이 이 산에 올라 그 빼어남에 취해 금수산으로 불렀다는 지명 유래가 내려온다. 신선봉은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900m봉에서 서쪽인 충주호 방향으로 약 7㎞ 뻗어 내려간 능선의 최고봉이다. 신선봉 능선에는 조가리봉, 학봉, 미인봉, 신선봉 등 총 4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산행 코스는 하학현 마을 금수산 가든 앞의 미인봉 등산로 입구에서 미인봉, 학봉, 신선봉을 차례로 오른 뒤에 사태골로 하산해 상학현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길이다. 거리는 약 7㎞, 5시간쯤 걸린다. 금수산 가든 앞쪽의 미인봉 등산 안내판 앞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컨테이너 뒤로 빨간 이정표가 붙어 있어 길 찾기가 쉽다. 이 길은 저승골 왼쪽의 날등을 타고 오르게 된다. 본래 미인봉은 저승봉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렸다. 천길 바위 벼랑으로 둘러싸인 저승골은 골이 깊고 으슥해 예로부터 골짜기에 들어선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어 저승골이란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들머리에서 10분쯤 오르면 오른쪽 조가리봉에서 뻗어 내린 암봉들의 수려함에 살짝 마음이 설렌다. 이후 제법 가파른 된비알을 30분쯤 오르면 쉼바위에 도착한다. 쉼바위 암반에는 분재한 것 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소나무 옆에 앉아 바라보는 조가리봉과 충주호 조망이 무척 아름답다. ●학봉에서 수려한 암릉 펼쳐져 쉼바위에서 다시 발길을 재촉하면 로프를 잡고 오르는 코스가 나온다. 두 손에 힘을 주고 등줄기에 땀이 좀 날 무렵이면 미인봉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여인의 젖가슴처럼 생긴 두 개의 바위가 있고, 잘생긴 소나무에 ‘미인봉 596m’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미인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거대한 암반이 나타나고 시야가 툭 터진다. 왼쪽 동산 능선과 학현 고개, 오른쪽으로 가야 할 학봉이 잘 보인다. 암반에서 학봉까지는 1시간쯤 걸리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학봉에 서면 손바닥바위가 서 있는데, 그 생김새가 기이해 킹콩바위라고도 부른다. 손바닥바위 뒤로 충주호가 아스라하고, 걸어온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학봉에서 본격적인 암릉 코스가 1㎞쯤 이어진다.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와 암릉이 어울려 선경을 빚어낸다. 조망 또한 빼어나 보는 각도에 따라 충주호, 금수산, 월악산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동금대삼거리에서 임도 따라 하산 학봉에서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천 길 낭떠러지가 나온다. 단단하게 묶인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바위를 올라야 한다. 아기자기한 암릉 구간에는 아찔한 코스가 연달아 나타나지만 곳곳에 튼튼한 로프가 있어 큰 위험은 없다. 이 길의 고비는 암릉이 끝나는 마지막 봉우리로 대략 20m 직벽이다. 로프가 잘 묶여 있어 팔 힘이 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팔 힘이 약한 사람은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없으면 그냥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 직벽을 오르면 암릉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이어지는 평탄한 능선을 40분쯤 가면 돌로 쌓은 케른(돌무더기)이 있는 신선봉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이어진 하산 길은 아주 순하다. 완만한 능선은 동금대삼거리로 이어지고, 여기서 길은 왼쪽으로 꺾여 임도로 변한다. 동금대삼거리는 봄, 여름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곳이다. 완만한 임도를 따라 사태골을 40분쯤 내려오면 하산지점인 상학현 마을에 닿는다. 상학현에서 출발지점인 금수산 가든까지는 30분 걸어 내려오거나 지나가는 차를 잡아야 한다. 하학현리에서 16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오면 왼쪽으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신선봉 능선이 보인다. 그 속에 수려한 암릉이 숨어 있을지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글 사진 mtswamp@naver.com ■ 가는 길&맛집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자가용을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으로 나온다. 청풍으로 이어지는 82번 지방도를 타고 금성면을 지나 청풍대교를 건너기 전에 16번 지방도 신선봉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영아치를 넘으면 학현리다. ES리조트 근처 얼음골매운탕(041-651-6075)은 주인이 직접 고깃배를 타고 나가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주는 맛집이다.
  • ‘시크릿’ 류승룡 “악랄? 이정도면 젠틀한 것”

    ‘시크릿’ 류승룡 “악랄? 이정도면 젠틀한 것”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생각해낼 때까지 사정없이 때린다. 진실이든 아니든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면 망설임 없이 작두를 들이민다. 또 사람 입에 골프공을 가득 채우고 골프채를 휘두르기도 한다. 이 장면들은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스릴러영화 ‘시크릿’에서 살해된 동생의 복수를 명목으로 범인 사냥에 나서는 깡패 두목 재칼 캐릭터가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이정도면 악랄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마련이지만 정작 재칼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은 “캐릭터가 젠틀하고 멋있어 보이게 하려고 이 정도에 그친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생각한 재칼 캐릭터는 클래식도 듣고 동양화도 그리는 등 고급문화를 통해 악을 희석시키는 인물이에요. 또 죽인 사람 사진을 찍어서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그런 사람일 것 같았죠. 하지만 스릴러에서 악역은 긴장감을 증폭시키기는 것이 주된 역할이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하면 된다는 생각에 가지를 쳐버린 거예요.” 가지를 쳐버린 대신 류승룡은 자신이 생각했던 재칼 캐릭터를 아예 뿌리에 심어버렸다. 재칼이 습관적으로 씹는 루악이 한 통에 30만원이고 섬뜩하게 내뱉던 ‘킥’ 같은 의성어는 승마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부의 상징이다. 또 악랄함을 넘어선 싸이코틱한 기질은 미묘한 그의 표정과 행동 하나 하나 그리고 낮게 치켜뜬 눈빛에 담아낸 것. 류승룡은 몇날 며칠 열병을 앓을 정도로 고심했던 열정과 맞바꿔 별다른 상황설정 없이 자신이 생각했던 캐릭터를 재칼에 녹여낼 수 있었다. “제가 처음 생각했던 재칼을 감독님께 보여드렸더니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슷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봤더니 정말 날름거리는 혀나 초점 없는 시선처리 등 여러모로 제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거예요. 결국 더 다듬은 뒤에 지금의 재칼을 완성할 수 있었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으련만 더 고민해가면서 캐릭터를 수정한 것은 “다른 연기를 답습하지 말자.”라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류승룡은 캐릭터를 설정할 때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참고하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따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 사실 말이 쉽지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긴 어려운 법이다. 류승룡이 고집스러울 만큼 자신만의 연기관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1986년부터 20여 년간 연극무대에서 갈고 닦아온 연기내공이 있기에 가능했다. 정극은 물론 모든 장르의 공연을 섭렵한 류승룡은 비록 단역이었지만 2004년 ‘아는 여자’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류승룡의 두 번째 작품은 2005년 ‘박수칠 때 떠나라’로 이번에 ‘시크릿’에서 호흡을 맞춘 차승원과 처음 만났다. 나이는 같지만 당시 류승룡은 갓 장편에 데뷔한 신인이었고 차승원은 톱스타였다.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차승원 씨의 존재감이 부담스럽기도 했죠. 촬영을 마치고 제가 절제된 연기를 잘 했다며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사실 절제된 연기가 아니라 긴장해서 그런 거예요. 숨도 못 쉬고 대사를 내뱉었어요.(웃음) 지금은 많이 편해졌죠.” 그도 그럴 것이 류승룡은 ‘시크릿’에서 차승원을 다시 만나기까지 13편의 영화와 2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구축해 왔다. 5년 동안 15작품에 출연했으니 쉼 없이 달려온 셈이다. 힘들었을 법도 했지만 류승룡은 “인간의 뇌는 놀라운 것 같다. 바쁠 때 더 많은 에너지가 생성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열정을 불사른 만큼 변한 것도 많다. 류승룡은 “이젠 현장이 낯설지 않다. 내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체득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류승룡보다 앞으로의 류승룡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女기자, 육군 부사관학교 유격훈련 가다①

    女기자, 육군 부사관학교 유격훈련 가다①

    남자 둘만 모이면 대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 군대다. “여자도 알게끔 설명해주세요.”라고 쏘아붙이면 대체로 “가보지 않고는 절대로 모르는 곳이 군대”라는 알듯 말 듯한 대답이 돌아온다. 대체 군대가 어떤 곳이기에 남자들이 이렇게 추억하는 것일까. 단순한 궁금증과 엉뚱한 오기로 군대 체험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계획했다. 국군의 날을 맞아 지난달 29일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부사관훈련 학교에서 이뤄진 유격훈련 및 분대공격훈련에 참가했다. 부족한 체력으로 민폐만 끼친 여기자를 너그러이 받아준 부사관 후보생과 관계자들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여기자, 군복을 입다 <오전 8:30> 동이 채 뜨기도 전인 새벽 5시부터 쉼 없이 내달려 8시께 완주에 있는 부사관학교 유격훈련장에 도착했다. 고백하건데, 군대에 들어가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흔한 면회 한 번 못 가본 터다. 훈련장을 한 폭에 안은 대부산과 거울처럼 빛나는 대야 저수지의 수려한 풍경이 가장 먼저 기자를 반겼다. 9시부터 시작하는 빡빡한 훈련 일정에 자연경치를 감상할 틈이 없었다. 곧장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당연히 군복 역시 처음이었다. 가슴팍에는 ‘손바로크’(손바느질이란 군대 용어)로 박은 명찰이, 군모에는 ‘5-89’라는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오늘 하루 내 이름은 없다. ‘89번 후보생으로, 제대로 굴러보자.’며 주먹을 꽉 쥐었다. ◆ 죽음의 PT체조를 하다 <오전 9:00> 벌써 올라간 후보생들을 따라잡으려 바쁘게 군화를 움직였다. 훈련은 산 정상에서 진행되는 중이었다. 마음은 바쁜데 군화가 말을 듣지 않았다. 세 치수나 더 큰 군화를 신은 터라 자꾸만 미끄러졌다. 낑낑대며 30분을 부지런히 걸은 뒤에야 정상에 당도할 수 있었다. 여기서 떠오른 부끄러운 질문 하나. 그래도 여잔데 군인들이 반겨주진 않을 까였다.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PT 체조에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후보생들은 기자를 본체 만 체였다. ‘악플’보다 더한 ‘무플’에 괜한 민망함을 느끼듯 89번 후보생은 조에 합류했다. 100m 17초, 체력장 특급…. 고등학교 3년 내내 ‘체육소녀’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체력에는 자신 있었으나, PT 체조를 10분 정도 했을 때 그 생각은 뒤바뀌었다. “여자라도 다른 후보생과 똑같이 해주세요.”라고 부탁한 게 원망스러웠다. 구호에 맞춰 쪼그려 뛰기, 팔벌려 뛰기 등을 연달아 훈련을 받자 얼굴에는 땀이 범벅이 되고 정수리가 후끈댈 정도로 몸이 뜨거워졌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허벅지는 터질듯이 아파왔다. “거기 뭐합니까. 89번 훈련생, 지금 웃습니까.”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민망해서 웃었다가 혼만 더 났다. 무표정에서 흘러나오는 공포감에 “아, 아닙니다.”를 외치고 다시 PT 체조를 시작했다. 어쭙잖게 요령을 부리다가는 귀신 보다 더 무서운 교관에게 더 혼나겠다는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군기 빠진 기자, 제대로 걸렸다 싶었다. ◆ 레펠 훈련,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다 <10:00> “복명복창 안합니까.”, “골반 뒤로 안 뺍니까.” 교관의 말이 날카롭게 들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10m 절벽에 섰다. 몸은 부들부들 떨리는데 정신은 이상하게 또렷해 졌다. 미리 털어놓건대, 기자는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놀이기구를 한번 못 타봤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는 힘이 쭉 빠진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회사에 큰소리 치고 여기까지 왔는데 레펠 훈련도 못 받고 그냥 왔다고 할 순 없었다. 교관의 설명에 따라 줄을 꽉 잡았다. 조금씩 풀면서 내려가야 하는데 손이 말을 안 들었다. 손이 말을 들으면 그 때는 다리가 말을 안 들었다. 답답했다.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고 조금씩 줄을 풀었다. 끝까지 내려왔을 때 고소공포증을 이겨냈다는 성취감이 든 것도 잠시, 다음 코스로 이동해야 했다. 그 다음도 비슷한 훈련이었다. 이번에는 절벽에서 땅을 바라보고 내려오는 전면 레펠 훈련이다. 사고를 예방하려고 조교가 생명 줄을 잡고 있는데도 발이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꼿꼿하게 펴고 하체보다 상체를 더 앞으로 내미는 게 관건이었다. 절벽을 내려오다 중간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89번 훈련생 안내려옵니까.” 교관이 소리를 질렀다. “바, 발이 안 떨어집니다.”고 대답하자 곳곳에서는 큭큭 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발이 땅에 닿고 나서야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 누가 이 밥을 ‘짬밥’이라고 했나 <12:00> 세 시간에 달하는 거친 훈련을 받고 산에 내려오니 이미 정오였다. 입술에서는 짠맛이 났고 냉수 한잔이 애절하게 그리웠다. 문득 이곳에 안 왔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있진 않았을까. 복잡한 생각을 뒤로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꼬리곰탕에 김치, 싱싱한 야채와 오징어 젓갈 등 반찬은 훌륭했다. 맛이 궁금했다. 회사 앞에서 7000원에 사먹는 곰탕에 견줄 정도로 맛있었다. 혹시 취재진 때문에 나온 특식이 아니냐고 물으니 후보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전승필 공훈 보좌관은 “조리병 3명이 솜씨가 좋아요. 260명분을 뚝딱 만들죠.”라고 대답했다.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짬밥’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괜히 식당에서 밥이 맘에 안 들면 “차라리 짬밥을 먹겠다.”는 남자 동료들의 투정에 짬밥은 ‘맛없는 음식’이라고 단단히 오해해왔다. 고된 훈련 때문일까, 곰탕에 밥을 말아 맛있게 먹었다. ②편에 계속 전북익산=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사진=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 동영상=김상인VJ bowwow@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계로 뛰는 국내·외 산업현장을 가다

    세계로 뛰는 국내·외 산업현장을 가다

    ■ SK에너지 울산 정유사업장 24시간 풀가동 하루 43만배럴 수출 지난 15일 SK에너지 울산사업장 제7부두. 2만 6000t급 인도 제품선이 부두 파이프라인인 ‘로딩암’을 통해 윤활유 10만배럴을 싣고 있었다. 이천우 SK에너지 해상출하2팀장은 “3기의 로딩암을 붙이면 시간당 4만배럴을 채울 수 있고, 1.4일이면 100만배럴까지 가능해 선적 시간을 크게 줄인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100만배럴은 우리나라의 하루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다. SK에너지 울산사업장이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하루 84만배럴을 정제해 석유제품 43만배럴을 수출한다. 울산사업장 1~8부두는 세계 30여개국으로 석유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쉼없이 가동된다. 이 곳엔 22척의 유조선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부두 곳곳엔 90여개의 유류 저장탱크가 설치돼 있다. 저장 용량은 모두 1000만배럴로,서울 장충체육관(50만배럴 규모) 20곳에 석유제품을 채운 것과 같다. 특히 제8부두는 100만배럴까지 실을 수 있는 길이 280m 규모의 초대형 유조선도 정박할 수 있다. SK에너지는 지난 1분기 3278만 5000배럴 규모의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3% 늘었다. 1분기 석유사업 매출액(5조 8076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2조 9227억원을 수출로 벌어들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유럽과 남미·아프리카 등 수출지역도 다양해졌다. 수출량이 급증한 데에는 지난해 6월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한 제3고도화 설비가 큰 역할을 했다. 원유 정제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석유제품 가운데 40%가 가격이 싼 벙커C유 등의 중질유이다. 중질유는 황(S)함량이 많고, 사용처가 제한돼 있어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 이런 중질유를 휘발유와 등유· 경유 등의 청정 경질유로 바꾸는 설비가 ‘지상유전’이라고 불리는 고도화설비다. SK에너지는 제1· 2고도화설비에 이어 지난해 6월부터 하루 7만배럴 규모의 제3 고도화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제3기 고도화설비 김동호 생산1팀장은 “원유를 수입해 단순하게 정제만 하면 배럴당 3~4달러의 손해를 본다.”면서 “단순 정제에서 나온 40%의 벙커C유를 경질유로 바꿔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아모레 퍼시픽 도쿄·홍콩지점 입소문으로 日매출 103% 성장 │홍콩·도쿄 유지혜특파원│1994년 프랑스 파리 외곽의 작은 약국.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이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구석에 진열된 ‘순정’ 화장품을 집어 들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는 고객들의 외면을 그대로 보여 줬다. 91년 500만달러를 들여 제품을 론칭한 지 2~3년 만의 ‘완패’였다. “시장조사도 없이 나이브(순진)하게 제품부터 막 깔았어요. 이걸 그냥 놔두면 다음에 사업할 수가 없는데…. 직접 모조리 수거해서 다 폐기했습니다. 우리 물건을 팔아 주는 고객, 사 주는 고객이 얼마나 무서운지 뼛속에 임플란트라도 하듯이 새겨 넣는 계기가 됐죠.” 프랑스에서의 실패로부터 꼭 15년이 지난 지금, 아모레퍼시픽은 수천억원대 해외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2015년 1조원대 매출을 꿈꾸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비전을 발표한 해외 현장을 찾았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15일 홍콩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글로벌 프레스티지 브랜드 성장전략’을 발표, 2010년 중 미국과 중국에 설화수를 론칭하고 2015년 해외 매출 1조 2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전세계 16개국에 진출해 있는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말 기준 2637억원의 해외 매출을 올렸다. 10대 메가브랜드 육성과 전체 판매 5조원 달성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모레퍼시픽(AMOR- EPACIFIC) 브랜드로 1·2위로 꼽히는 미츠코시와 이세탄 백화점에 입점, 지난해 전년 대비 103% 성장(판매기준)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06년 일본 진출 직후에는 서 대표이사가 백화점 실무진을 직접 질책할 정도로 실적이 부진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현지법인의 과장이 일본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유명 패션·스타일리스트 잇코(IKKO)에게 여섯달 동안 편지와 제품을 보내 고객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잇코의 화장대가 아모레퍼시픽 제품으로 가득찬 장면이 방송을 타자 신주쿠 이세탄백화점에 손님이 몰려 하루 만에 4000만원 어치를 팔았다. 홍콩에서는 5개 매장을 운영중인 설화수가 매출 50억원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홍콩 유명 배우 량차오웨이-류자링 부부가 공개적으로 ‘설화수 마니아’라고 밝혀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wisepen@seoul.co.kr
  • [서울광장] 빈자일등 빈자일적/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빈자일등 빈자일적/김성호 논설위원

    불교경전 현우경에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애틋한 사연이 전한다. 난타라는, 먹을 것도 없을 만큼 가난한 여인에 얽힌 이야기이다. 부처님께 바칠 등(燈)을 위해 잠도 안 자고 가가호호 정성스레 구걸 끝에 결국 등을 마련, 부처님 앞에 올릴 수 있었다. 밤이 되어 모든 이들이 바친 등이 꺼졌지만 난타의 등만이 남아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의 꿋꿋한 정성과 올곧은 뜻이 세상의 으뜸 빛이 된다는 교훈으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회자된다. ‘빈자일등’의 교훈에 얹어 지금 세상의 도마에 오른 두 전·현직 대통령을 떠올림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험한 시절 인권변호사로 학생, 노동자 등 가난한 약자의 편에 섰다가 독재정권의 핵심에 정면칼날을 들이대 청문회 스타로 부각, 낡은 부패정치 청산을 외치며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천주교 사제로 가난한 빈민들과 부대끼며 헌신적인 사목활동을 펴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다가 지난해 “갱과 나치 전범의 천국을 민주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 대통령이 된 파라과이의 루고이다. 양심과 인권의 대변자로 우뚝 섰다가 ‘몹쓸 인간’으로 급전직하한 두 대통령을 보면 정말 세상사는 ‘모를 일’이다. 한 사람은 측근·친인척과 연결된 뇌물수수며 공금 횡령 혐의를 받고 있고 한 사람은 주교시절과 대통령 취임 후의 여성 편력으로 낳은 ‘대통령의 아들’이 뒤늦게 줄줄이 나서는 바람에 현대판 ‘주홍글씨’로 입방아에 올랐으니. ‘빈자의 등’에서 가난한 이들의 적, ‘빈자일적(貧者一敵)’으로의 추락이 안타까울 뿐이다. 두사람 중 노 전 대통령의 몰락이 우리에게 더 큰 아픔이다. 청렴과 도덕성의 상징으로까지 통하며 ‘빈자일등’의 우상이었다가 쓰나미 같은 실망과 충격을 휘몰아다 준 옛 영웅. 드라마에서도 드물 만큼의 급반전 결말을 본 관객, 국민은 충격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 퇴임 후에도 옛 영웅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아든 100만명의 인총이 위안을 찾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낸 전도자에 앞서, 가난하고 아픈 자들의 편에 섰던 실천적 혁명가로서의 예수는 더 빛이 난다.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메고 따르라.’며 제자들에게 호통쳤던 예수의 가르침은 다름아닌 자기희생과 모범의 다짐이다. “노무현 한 개인의 몰락이 노무현 가치와 이상 전부의 몰락이 아니길 바란다.”는, 그냥 평범한 이들의 마지막 애정은 그래서 당당함의 요구로 향한다. 세상의 눈총을 받는 비리와 잘못에 대한 모면식 뻣대기가 아닌 진실에의 솔직하고 당당한 처신을 바라는 것이다. 30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은 지금과는 훨씬 다른 길 위에 놓이게 된다. ‘불구속 기소’와 ‘구속’을 저울질하는 세간의 앞선 설왕설래가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법의 칼날은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평생 낮은 데로 임해 살면서 가난한 자의 어머니로 통했던 성녀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촌음을 헛되이할 수 있느냐.”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쉼 없는 배려와 희생을 요구한 마지막 유언이다. 헌신적 사랑과 배려의 미담이 공허할 뿐인 지금 꺼져 가는 마지막 등불의 실낱같은 희망은 진실앞의 당당함, 그것뿐일 것이다. ‘貧者一燈 貧者一敵’. 통재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챔피언스리그] 히딩크그는 남다른 2%가 있다

    “그림대로 되지 않아 화가 치밀었다.” 거스 히딩크(63) 첼시 감독은 이렇게 스스로를 꾸짖었다. 첼시는 15일 리버풀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4-4로 비겼다. 결국 1차전 3-1 승리를 포함해 1승1무로 4강에 올랐는데도 말이다. “난 아직도 배고프다.”는 말로 역시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마법도 그냥 나오진 않는 법. 경기력 외에 보이지 않는 ‘무엇’을 갖춘 사령탑이다. 지난 2월 첼시에 부임한 뒤 10승1무1패(승률 83%)다. 우승한다면 1988년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 사령탑 시절 이후 생애 두 번째다. ●고래떼를 춤추게 한 칭찬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2002월드컵과 네덜란드에서 뛸 무렵 히딩크에 대해 “넌 믿음직하다며 다독여 힘이 났다.”고 최근 말했다. 히딩크 아래에서 공격 본능을 살린 첼시의 디디에 드로그바(31)도 “그는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전임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61)와는 달리 특정 선수가 아니라 팀의 잘못을 꼬집는다.”고 했다. 히딩크는 지적을 하더라도 선수의 장점을 먼저 꺼내는 칭찬 화법을 써서 마음을 사로잡고, 이는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넣게 만든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놓치기 쉬운 점을 되새긴 것. 이전의 첼시는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거느리고도 모래알 조직이라는 말을 들었다. ●전 선수 멀티플레이어로 활용 히딩크는 ‘토털 사커’로 잇달아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쉼없이 누비는 박지성도 그렇다. 멀티플레이를 소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기회를 맞으면 누구나 골을 넣을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골을 먹을 위험에선 누구나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역시 승리엔 필요충분 조건이다. 포지션은 장악력을 갖추도록 한 기본형일 뿐이다. 그는 부임 뒤 미드필더 외에도 오른쪽 윙백과 중앙수비수까지 볼 수 있는 마이클 에시엔(27)을 중용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장단점 읽어 자원 최적화 히딩크는 이 같은 밑그림을 바탕으로 가용 자원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빼어난 재주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용병술과 직결된다. 엄청난 승부욕의 다른 이름이다. 15일 리버풀전에서도 0-2로 뒤진 전반 36분 니콜라스 아넬카(30)를 들여보내 분위기를 싹 바꿨다. 후반 인저리타임 2분만 남긴 상황에도 드로그바를 빼고 신예 프랑코 산토(20·194㎝)를 투입하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첼시는 1차전 4-0 승리에 이어 2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1-1로 비기며 4강에 오른 호세 과르디올라(38) 감독의 바르셀로나와 오는 29일 4강 첫판을 벌인다. 히딩크 감독이 ‘만년 4강’ 징크스를 깰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