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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 마중 나선 길… 얼굴이 붉어지다

    ‘임’ 마중 나선 길… 얼굴이 붉어지다

    길은 대개 과정일 뿐 여행 자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길 스스로 목적지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특히 단풍철에 그렇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단풍 절승지로 꼽히는 곳들은 거개가 산자락 깊숙이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곳은 자가용으로 돌아보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단풍철엔 당연히 차들이 밀릴 겁니다. 그렇다고 자연이 벌이는 색채의 축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가을로 들어선 길들을 짚어 봤습니다. 44번, 46번, 56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설악산, 한계령 등 강원의 단풍 명소들을 휘휘 돌아봤습니다. 그 길의 끝은 모두 바다입니다. 단풍 못지않게 고운 동해 바다의 별빛도 가슴 가득 담아 올 수 있었답니다. ① 옛 미시령 휴게소에서 굽어본 풍경. 설악의 산군들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다. 56번 지방도에서 벗어나 ‘미시령 옛길’로 접어들어야 이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② 흰 수피의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놓은 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11월부터는 입산이 통제된다. ③ 밤에 찾은 양양 낙산해변. 총총 뜬 별이 단풍만큼이나 곱다. ④ 단풍으로 이름난 화암사. 절집 앞은 수바위다. 길가 풍경은 철따라 달라진다. 세상에 둘도 없는 경승지를 지나는 길이라도 느낌이 각별해지는 때는 분명 있다. 그래서 저마다 가슴에 길 하나 둘 정도는 새겨 두게 마련이다. 언젠가 꼭 찾을 거라 기약하며 말이다. 44번 국도가 그렇다. 경기 양평에서 시작해 강원 홍천·인제 등을 거친 뒤, 한계령을 넘어 양양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특히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으로 가슴 저린 풍경을 선사한다. 총길이는 얼추 137㎞. 마음먹고 달리면 4시간 안팎에 주파할 수 있지만, 풍경 보며 가자면 1박 2일로도 부족하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출발할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해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주말이면 차들로 몸살을 앓는 양평 구간을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도 밀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사정이 다소 나은 편이다. 동홍천 나들목을 나와 속초·인제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곧 44번 국도다. 여기서 한계 삼거리까지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인제를 지나는 동안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꼭 들러야 한다. 새하얀 수피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다. 38선휴게소 지난 뒤 인제38대교 못미처 오른쪽으로 원대리 방면 이정표가 나온다. 작은 길이라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니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갈림길에서 원대리 자작나무숲까지는 8㎞쯤 떨어져 있다. 숲의 공식 명칭은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규모로 25㏊(약 7만 6000평) 산자락에 70여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숲 초입의 산림 감시초소가 들머리다. 예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까지는 3.2㎞ 거리. 꼬박 1시간 3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가는 길이 넓고 평탄해 그리 힘들 건 없다. 숲에 들면 동공이 확장되고 입은 떡 벌어진다. 수많은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내고 있다. 나라 안 어디서든 쉬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한 줄기 바람이 숲 사이를 훑고 지날 때면 나뭇잎 부비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그래서 숲의 이름도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다시 44번 국도로 복귀해 한계교차로까지 내처 달리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속초·고성으로 나가는 46번 국도, 오른쪽은 한계령 지나 양양으로 가는 44번 국도다. 예서 한계령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나라 안에서 가장 유명한 단풍길이 시작된다. 내설악의 기암괴석과 현란한 빛깔의 단풍이 수채화처럼 어우러져 있다. ‘일반 국도’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특별한’ 풍경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이 길 중간쯤의 한계령 휴게소는 풍경 전망대다. 설악의 산군들과 그 너머 양양 일대가 한눈에 들어 온다. 가수 양희은이 노래 ‘한계령’을 통해 ‘잊어버리라, 내려가라’ 주문했지만 도저히 잊기 힘들고, 아무래도 내려가기 싫은 풍경들에 넋을 놓고 만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양양 방면으로 가다 첫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필례약수 방향이다. 이쪽 단풍도 빼어나다. 외려 이 일대 풍경을 첫손 꼽는 현지인들도 많다. 단풍은 24일쯤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한계 교차로에서 미시령 옛길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멋들어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44번 국도가 기암괴석과 단풍의 앙상블이라면, 미시령 옛길은 설악의 우람한 암릉들과 마주할 수 있는 구간이다. 한계 교차로에서 좌회전, 46번 국도로 갈아탄 뒤, 다시 용대교차로에서 56번 지방도로를 바꿔 타고 가다 도적소 교차로에서 ‘미시령 옛길’ 이정표를 보고 빠져나가면 된다. 오래전 미시령 옛길은 단풍철이면 밀려드는 차들로 몸살을 앓던 도로였다. 하지만 2006년 미시령 터널이 뚫리고 ‘7번 군도’란 이름으로 물러앉은 뒤엔 단풍철에도 썰렁한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쓸모를 잃고 버려졌다 해서 풍경마저 바뀌랴. 미시령의 굽이굽이 고갯길이 보여 주는 장쾌한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길 끝자락에 예쁜 절집 화암사가 있다. 설악산 코앞에 있으면서도 열에 아홉은 모르고 지나친다는 숨은 단풍 명소다. 고성군 토성면의 강원도세계잼버리수련장 인근에 있다. 절집은 금강산 1만 2000봉의 남쪽 첫 봉우리라는 신선봉 아래 터를 잡았다. 개창 시기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가지만 가람 내 대부분의 전각들이 중창 등의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고색창연한 맛은 덜하다. 가을이면 절 뒤편 화암폭포에서 단풍이 빠른 속도로 퍼져 10월 하순이면 절을 완전히 끌어안는다. 미시령 옛길을 내려서면 델피노 골프장 왼쪽으로 화암사 이정표가 있다. 성인대, 수바위를 돌아오는 4㎞짜리 원점회귀 산행 코스가 인기다. 금강산 첫 봉우리에서 설악의 산군들을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코스가 어렵지 않아 2시간 남짓이면 돌아볼 수 있다. 글 사진 속초·양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가 속초·인제·신남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44번 국도를 따라가다 한계 교차로, 용대 교차로에서 각각 46번 국도와 56번 지방도로로 바꿔 타고 가면 미시령, 곧장 가면 한계령이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44번 국도에서 빠져나간다. 38 휴게소와 인제 38대교 사이 남전계곡 가는 길로 들어서면 된다. 11월부터는 겨울철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입산이 통제된다. 정확한 통제 기간은 인제국유림관리소(460-8036)에서 확인할 수 있다. 56번 국도는 원래 동홍천 나들목에서 좌회전해 구성포 교차로에서 올라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단풍철엔 양양 쪽에서 수도권 쪽으로 되짚어 나오며 들르길 권한다. 그래야 이 일대를 원형으로 돌아보는 여정을 꾸릴 수 있다. 구룡령 옛길 산행은 대개 업 힐과 다운 힐 두 가지로 나뉜다. 갈천리 마을회관 쪽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거나, 그 반대로 내려간다. 산행 시간은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홍천 쪽 명개리에서 올라 양양 쪽으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전 구간을 종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잘 곳:속초 쪽엔 델피노 골프 & 리조트(1588-4888), 한화리조트 설악(1588-2299) 등 유명 리조트들이 많다. 양양에선 낙산 해변 쪽에 깔끔한 숙소들이 많다. 바닷가 쪽의 이른바 ‘오션뷰’ 객실은 1만원 이상 비싸다. →맛집:속초 시내 여러 포구마다 횟집촌이 형성돼 있다. 장사항 횟집촌이 그중 호젓하다. 설악산 울산바위 인근 학사평 일대에 김영애할머니순두부(635-9520) 등 순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양양에선 ‘섭’(홍합을 이르는 현지 표현)을 넣고 조리한 전골, 칼국수 등이 별미다. 수라상(671-5857)이 널리 알려졌다. 양양군청 인근에 있다.
  • [스타뷰] ‘협녀, 칼의 기억’으로 돌아온 영화배우 김고은

    [스타뷰] ‘협녀, 칼의 기억’으로 돌아온 영화배우 김고은

    167㎝의 키에 팔은 가늘고 길다. 쌍꺼풀 없는 눈은 웃을 때마다 초승달처럼 휘었다. 기름한 콧날 밑에 자리잡은 콧망울은 도톰하고 곱살스럽다. 활짝 웃거나 신나게 말할 때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입술 사이로 잇몸이 살짝 내비친다. 귓볼에는 귀걸이 없이 자국만 남아 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그 단아함을 드러내는 게 마치 조선의 백자와 같다. 20대의 풋풋함과 당당함이 함께 느껴진다. 아름답지 않은 배우는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얼굴로 개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배우는 흔하지 않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배우 김고은(24)은 스크린에 비치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얼굴이 아름답다기보다는 개성이 넘치고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게 대중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직접 얼굴을 마주한 김고은은 달랐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건만 그는 말갛고 매력적인 얼굴로 낙천적인 에너지를 쉼 없이 뿜어냈다. ●다양한 캐릭터 감정 표현의 귀재…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 그는 2012년 영화 ‘은교’에서 노시인을 존경하면서 노시인이 쏟아붓는 정염의 대상이 됐던 여고생을 연기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 뒤 ‘몬스터’ ‘차이나타운’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기력의 한계를 시험하듯 동생을 죽인 악마에게 복수해야 하는 저능아, 사생아로 태어나 길러준 엄마를 죽여야 하는 숙명을 지닌 뒷골목 부랑아 등 강렬한 역할만을 맡아 왔다. 지난 13일 개봉한 ‘협녀, 칼의 기억’은 물론 개봉을 앞두고 있는 ‘성난 변호사’ ‘계춘할망’에서도 한결같다. ‘협녀’에서 맡은 홍이 역할도 고난도의 무협 액션을 거의 대역 없이 소화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감당하기 힘든, 마음속 깊은 상처를 다스려야 하는 감성의 파고를 드러내는 연기가 더욱 돋보였다. 영화계에서 그에게 ‘괴물 신인’이라는 호칭을 붙여 준 이유에 대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가 처음부터 연기력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데뷔 4년차 배우인 그에게도 술회할 수 있는 연기의 출발 지점이 있었다. “계원예고 연극영화과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대사가 너무 많아 부담스러웠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너무 쿵쾅거렸어요. 그때 ‘아, 내가 연기를 계속하면 심장마비에 걸려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고등학교 때 처음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저 영화가 좋아서 관련 일을 하면 재미있으려니 하고 시작했지만 우연히 출연한 첫 연극에서부터 덜컥 주연을 맡았다. 큰 부담을 느껴 더이상 하지 않으려 했는데 당시 연극반 연출을 맡은 선생님의 “한 작품만 더 해 보자”라는 제안에 못 이겨 무대에 다시 올랐다. 김고은은 “중간에 대충대충 연기를 하는 모습에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잘못 본 것 같다’는 질타도 들었다”면서 “나중에 연극 ‘우리 읍내’를 무대에 올렸을 때는 아주 즐겁고 행복했고, 무대에 불이 모두 꺼졌는데도 내려가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직관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인물 속으로 들어가려 노력하죠” 일관되게 보여준 폭넓은 연기 대역과 깊이 있는 캐릭터는 꼼꼼한 분석과 연구를 배경 삼았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는 직관적이다. 그는 “시나리오가 들어올 때 맡은 역할의 호불호를 보기보다는 이야기에 동의되고 좋으면 하는 편”이라면서 “캐릭터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 그냥 많이 생각하면서 인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협녀’ 촬영을 하면서도 “홍이는 몇 차례에 걸쳐 감정의 데미지가 많았던 만큼 그 무게감을 잘 표현하되 후반부에서 받을 더 큰 상처와 차별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논리적 사고는 노력의 형태로 드러나고, 직관적 사고는 재능의 형태로 확인된다. 김고은은 타고난 재능이 확연히 더 두드러지는 배우다. 그의 성장 과정은 이러한 짐작을 더욱 부추긴다. 김고은은 “4살 때부터 10년 동안 중국에서 살며 유치원, 소학교, 중학교를 다니다 한국에 왔는데 중국에서 말도 타고 자연과 함께 지냈던 것과 달리 학교 끝나고서도 학원에 다니며 공부해야 하고 시험 때 한두 개 틀렸다고 펑펑 우는 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학교 상황에 숨이 턱 막혔다”면서 “오랜 시간 고민하고 관련 정보를 찾아본 뒤 부모님에게 예고를 가겠다고 말씀드려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진지하게 얘기하는 말끝에도 잇몸을 슬쩍 드러내며 너털웃음을 붙이곤 한다. 힘든 일은 비교적 잘 잊고 즐거운 기억은 오래 간직한다. 전형적인 낙관주의자의 모습이다. 낙천적인 성격인 데다 마음속 그늘이 없으니 그동안 함께했던 김혜수, 전도연, 이병헌 등 대선배들 앞에서도 그다지 주눅 들지 않는다. “칸의 여왕, 할리우드 스타 등 저와는 먼 것 같은 느낌은 처음 ‘협녀’ 미팅할 때만 잠깐 들었고 그다음부터는 그냥 편하고 재미있게 지냈죠. 하하하. ” ●“좋은 선배들 만난 건 행운… 가장 닮고 싶은 배우는 전도연” 김고은은 가장 닮고 싶은 배우로 전도연을 꼽았다. 그는 “직접 만나기 전에는 배우로서 존경심이 컸고 그분의 출연 작품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 함께 만나 촬영하면서는 인간적인 부분에서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면서 “특별한 배우에게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알게 해 줬다”고 그 이유를 들었다. “전도연 선배님뿐 아니라 다른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한 것이 저에게는 행운이었죠.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같이 하기에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김고은은 현재 휴학생 신분이다.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한 뒤 아직 졸업하지 못했다. 그는 “‘차이나타운’ ‘성난 변호사’ 촬영 당시는 학교에 다니던 때였는데 죽을 뻔했다”면서 “이수해야 할 전공과목이 많고 다 힘든 과목들이어서 학업은 작품 활동을 안 할 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력은 해야겠지만 졸업할 가망이 없다”는 푸념을 덧붙였다. ‘협녀’는 크랭크업 이후 2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린 뒤 어렵게 개봉한 작품이다. 필모그래피의 두께가 아직 두껍지 않은 젊은 배우에게는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김고은은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 봤을 때는 후반부 작업이 길어져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한다”면서 “틈만 나면 후시녹음 등의 작업에 참여했고, 그 과정이 많이 도움 됐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이제 고작 그가 나온 영화 네 편을 봤을 뿐이다. 올해 개봉할 ‘성난 변호사’에서 날 선 검사로 변신하고, 촬영을 마친 ‘계춘할망’에서는 상처를 간직한 여고생으로 따뜻한 감성을 펼쳐 보인다. 또한 처음으로 드라마를 찍어 이제 스크린이 아닌 TV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내년 1월부터 ‘치즈 인 더 트랩’에서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을 대학생 역할을 맡는다.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김고은의 또 다른 모습이 있을 것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새 영화] ‘러브 앤 머시’

    [새 영화] ‘러브 앤 머시’

    밴드 ‘비치보이스’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맑고 경쾌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서프 뮤직의 대표주자였다. 1960년대 당시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휩쓴 비틀스에 맞서며 미묘한 경쟁 관계를 갖고 있던, 미국 팝송의 자존심과도 같았다. ‘서핑 유에스에이’로 널리 알려진 비치보이스는 단순한 코드, 청량감 있는 화음으로 수십년 동안 세계 각지 여름 해변에서 달뜬 청춘의 심경을 대변해 왔다. 30일 개봉한 영화 ‘러브 앤 머시’는 비치보이스에 대한 영화다. 그렇다고 바닷가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단순하고 흥겨운 리듬이 절로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음악만을 내세우는 영화는 아니다. 밴드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실제로 겪은 삶의 곡절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윌슨은 단순히 유명했던 밴드의 리더뿐만이 아니었다. 작사, 작곡에 능한 천재 뮤지션이었고, 편곡 프로듀싱에 비상한 재능을 나타낸 뮤직 디렉터였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천재적 재능과 아버지와의 불화, 주변의 질시는 윌슨에게 음악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망상형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명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러나 세상과 삶과 벌여오던 힘겨운 싸움은, 사랑의 힘으로 뒤늦게 극복해낼 수 있었다. 영화는 두 가지 시간을 연신 오간다. 1960년대 비치보이스를 이끌며 펼치던 음악 활동을 씨줄 삼고, 세월이 흘러 1980년대 새로운 사랑과 삶을 찾아가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는 인간적인 윌슨의 모습을 날줄로 삼는다. 비치보이스가 철부지 10대들의 노래만이 아님은 1966년 내놓은 ‘펫 사운즈’라는 세기의 명반에서 증명된다. 자꾸 새롭게 음반을 제작하려는 윌슨은 “그냥 옛날 식으로 가볍게 가자”는 밴드의 멤버와 쉼없이 다툰다. 그속에서도 새로운 시도, 실험적인 프로듀싱을 멈추지 않는 모습 등 명반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또 음반이 나온 뒤에도 “평단이 음반을 사주지 않잖냐. 돈이 안 돼”라면서 갈등하는 모습까지를 잔잔하게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젊은 윌슨은 폴 다노가, 중년의 윌슨은 존 큐잭이 맡았다. 둘 다 그 나이대의 윌슨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외모다. 게다가 폴 다노는 윌슨 못지않은 노래 실력까지 선보인다. 작렬하는 태양,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곧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에게도, 이미 다녀와 바다의 기억을 되새기고픈 이에게도, 그조차도 언감생심인 버거운 삶 속에 허덕대는 이에게도 여름바다처럼 상쾌한 음악을 선사해 준다. 그와 동시에 해 질 녘 석양에 물든 바다를 바라보는 듯 인생의 참뜻을 음미하게 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브라이언 윌슨이 직접 ‘러브 앤 머시’를 부르는 영상이 함께 나온다. ‘오늘 밤 필요한 것은 사랑과 자비’라는 후렴구를 반복하며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무한한 인류애를 노래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괜스레 뭉클해진다.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백문이불여일행]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백문이불여일행]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간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계산대에 앉은 여자가 속사포같은 질문을 한다. “마일리지 있으세요?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할인 되는 카드 있으세요?” 그 순간 유해진의 표정이 비장하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 TV 광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심리를 아무렇지 않게 건드린 모순적인 문장 때문이다. 문법적으로 ‘아무것도 안한다’는 ‘격렬하게’와 어울리지 않는다. ‘격렬하게’는 ‘무엇 무엇을 한다’와 어우러져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것도 안하기 위해서는 ‘격렬함’, 용기가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7살이 되어서야 뒤늦게 유치원에 다녔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햇님반’ ‘달님반’ ‘별님반’ 소속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홀로 ‘집’ 소속인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고, 고3이 되었을 때 문득 대학을 가야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주변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사춘기 방황이라고만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3에게는 충분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몇 번의 시험을 치르고 나니 눈깜짝할 사이 대학생이 됐다. 대학생에 클 대(大)자가 쓰이는 이유 중 하나를 자유로움이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 점이 만족스러웠다. 늦잠을 자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학교를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의 생활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딱 그만큼 불안했다. 1학년을 설렁설렁 보내고 나니 성적표엔 낮은 학점이 찍혀있었다. 2학년이 되기 전, 휴학을 신청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친구들이 이유를 물으면 “20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없어. 그냥 초등학교에 가야하니까 초등학교에 가고, 그 다음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왔는데 도무지 꿈도 의욕도 없어. 한번은 그냥 쉬어 보고 싶어”라고 했다. 백프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들 말리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우리나라와 정반대에 있는 뉴질랜드로 향했다. 처음 해외로 가는 건데도 영어를 배우겠다, 문화를 익히겠다 하는 흔한 계획이 없었다. 홈스테이집의 좁은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달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까운 기분이 들지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느리지만 정확하게 고민하고 왔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만, 유독 한국의 시계는 촉박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보낸 오늘의 시간이 다른 이가 보낸 시간보다 언제나 값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렇게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아니,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다고 배웠다. 한국에서는 방학조차 개학 후보다 더 불안하고, 더 바쁘다. 외국처럼 친척집에 놀러가거나, 가족여행으로 추억을 쌓는 일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대학에 와서야 배낭여행도 가고, 취업을 해서야 휴가를 간다. 하지만 그 ‘쉼’의 짧은 시간조차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인터넷에는 ‘유럽 4개국 10일’ ‘동남아 5개국 완전돌파’ ‘중국 골프 무제한 라운딩’ 프로그램이 인기다. 너무 빡빡해서 제대로 쉴 수 있을지 모를 일정이지만, 어느새 그것이 행복을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 그러다보니 좋은 것을 많이 ‘본’ 사람은 많은데 많이 ‘느꼈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느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바캉스(vacant; 비운다)’ 문화가 정착돼 있다. 대부분의 도시 근로자들이 여름철에는 약 한달 가량 가족들과 함께 도시를 비운다.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일상의 업무나 생활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창의성 계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선진국 사람들은 휴가 기간 중에 재미있는 책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세계적인 리조트 체인 클럽 매드의 조엘 티포네 아시아태평양 사장은 한국인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시간’을 제공하고 한국인 직원을 각 리조트에 배치해서 한국인 고객을 아시아 전체 고객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확대시켰다.   ”주말에 뭐했어?”…”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늘 휴일(休日)을 빼곡하게 보냈다. 당직이 잦은 근무 특성상 2주에 1번씩 주말을 보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이면, 일주일동안 못했던 일을 몰아서 했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영화도 보러가야 하고, 요즘 맛있다는 식당에도 가봤다. 머리를 하거나, 옷을 사기도 했다. 밀린 예능프로그램도 챙겨봤다.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월요일이 오는 게 싫어서 앓는 소리를 했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쌓인 피로 때문에 침대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가만히 집에서 보내는 것이 억울했다. “주말에 뭐했어?”란 물음에 “아무것도 안했어”라고 답하는 것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 주말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약속도 잡지 않고, 매일 폰으로 확인하는 뉴스도 보지 않았다. 시계도 보지 않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잠이 오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맛있는 것을 먹고, 별다른 생각도, 행동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심심해져서 컴퓨터로 ‘무한도전’을 보고 웃었다.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집 앞 커피숍에서 가서 커피를 사들고 거리를 걸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할’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안한 주말을 보낸 월요일, 어느 때보다 머리와 몸이 개운하다. 평소 두통이 심해 두통약을 달고 살았는데, 주말엔 먹지 않아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떠오르던 아이디어가 몇 개 떠오르기도 했다. 스트레스도 확실히 줄었다. 조석 작가의 웹툰 <마음의 소리 871화 ‘안해’ 中> ”사실 별로 하는거 없지만 오늘은 더 적극적으로 안할거야.”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8)] 스마트폰 없으니 스마트한 생각해… SNS 단체 공지 못 받을 땐 불편해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8)] 스마트폰 없으니 스마트한 생각해… SNS 단체 공지 못 받을 땐 불편해

    박경태(54)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 자체가 없다. ‘80학번’인 그는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이동통신 기기를 가져 본 적이 없다. 휴대전화 없이 살아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구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급한 연락은 대학 연구실 유선전화를 이용하고 덜 급하면 이메일을 쓴다. 연구실 전화에는 자동응답 기능이 있어 중요한 연락을 놓치는 일은 거의 없다. 박 교수보다 지인들이 더 불편한지 “내가 쓰던 스마트폰을 그냥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한 적도 있지만 매번 거절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또래를 ‘휴대전화 없이도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음을 체험한 세대’라고 정의했다. 예컨대 커피숍 알림판에 메모를 남겨 친구와 약속을 잡는 아날로그식 삶을 경험한 세대라는 것이다. 그는 “그 기억 덕에 이동전화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다”면서 “스마트폰이 없다고 인생이 재미없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동료 교수들과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공연하고 축구회 회원들과 공을 차며, 간간이 마라톤도 뛴다. 경기도 일산의 집에서 서울 구로구의 학교까지 매일 1시간 20분가량 출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휴대전화가 없는 그는 주로 책을 읽는다. 휴대전화 없이 생활하다 보니 박 교수에게는 원칙이 생겼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절대 늦지 않는 것. 그는 “얼마 전 대학생인 아들이 친구와 약속을 잡으며 ‘대략 오후 1시쯤 학교 근처에서 보자’고 하더라”면서 “나는 스마트폰이 없는데 약속 장소에서 엇갈리면 큰일이니 약속 장소를 아주 구체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자신을 연사로 초청한 강연 주최 측에는 “절대 늦지 않을 테니 연락이 닿지 않아도 노심초사하지 마시라”라고 미리 안심시키는 게 일이 됐다. 그는 “카카오톡(카톡) 등을 안 하니 동창회 모임 소식 등을 간혹 못 받을 때도 있지만 크게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는 책과 같은 텍스트 대신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영상, 사진, 그래픽, 짧은 글 등 이미지 중심으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다”면서 “텍스트 없이 이미지만 본다면 깊이있는 사고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박 교수처럼 ‘반(反)휴대전화 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대신 피처폰을 고집하는 사람도 예상 외로 많다. 휴대전화 업계에 따르면 국내 피처폰 이용자 수는 1300만명(2014년 말 기준)이나 된다. 출판 회사에서 정보기술 (IT) 업무를 맡는 심은희(46·가명)씨는 부서에서 스마트폰이 없는 유일한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그의 통신 수단은 4년 된 피처폰이 전부다. 회사에서 종일 PC와 씨름하는데 여가 시간마저 디지털 기기에 매여 있고 싶지 않아 스마트폰을 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직장 동료들이 SNS에 떠도는 가십을 얘기하거나 친구들이 단체 여행 계획을 카톡으로 논의할 때 대화에 낄 수 없어 소외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피처폰족(族)으로서 누리는 장점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퇴근 뒤에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읽을 수 있고 사람을 만나 차 한잔 마실 때도 대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그는 “친구들이 ‘카톡 좀 하라’고 닦달하지만 아직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업무 목적상 스마트폰을 쓸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절제하는 경우도 있다. 문송천(63)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 교수는 전공상 스마트폰을 많이 활용할 것 같지만 실은 급한 전화나 문자메시지(SMS) 송수신 용도로 한정해 사용한다. SNS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을 쓰는 시간은 하루 20~30분에 불과하다. 대신 이메일과 팩스를 많이 쓴다. 업무상 필요한 IT 관련 정보나 뉴스 등은 스마트폰 대신 데스크톱 컴퓨터를 통해 검색한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온라인 보안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문 교수는 최첨단 스마트 기술의 동향을 분석하는 게 업무인 터라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사용하는 ‘얼리어댑터’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첨단 디지털 기기의 역효과에 더 빨리 주목하게 됐는지 모른다. 그는 인간이 스마트폰에 의지하다 보면 생각하는 기능을 사용하지 않게 돼 사고·판단 능력이 퇴화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택시 기사도 내비게이션을 안 켜면 길을 못 찾아가는 시대가 된 것을 단적인 예로 든다. 그는 하루 12시간만 스마트폰을 켜 놓는다. 오전 8시 전원을 켜고는 귀가 뒤인 오후 8시 스마트폰을 끈다. 이후에는 가족과의 대화나 사색을 즐긴다. 일부 교수들은 카톡 등으로 학생들과 밤낮없이 소통하지만 문 교수와 면담을 하려는 학생은 1주일 전 허락을 받고 직접 연구실을 찾아와야 한다. 그래야 스승과 제자 간 건강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날로그적 삶을 위해 아예 도시를 뜨는 이들도 있다. 목공예 작가이자 시인인 정한별(42)씨는 7년 전 서울에서 경기 광주시 초월읍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집에는 TV 한 대 없다. 스마트폰은 사용하지만 통화 외에 인터넷 기능을 활용하는 시간은 하루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아날로그적 삶이 지루할 틈은 없다. 아내는 천연직물을 재봉틀로 돌려 옷을 만드는 일을 주부들에게 가르치고 국문과 교수였던 정씨의 아버지는 동네 학생, 주부들과 책읽기 모임을 한다. 일곱 살배기 딸은 ‘숲 유치원’에서 뛰어노는 게 주요 일과다. 정씨는 “숲 유치원을 보내는 부모들은 IT 계통 등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일하며 숨가쁜 삶의 부작용을 느낀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 중국 지사장 자리까지 제안받았지만 사양했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날로그적 삶으로의 탈출을 감행하지 못하는 이들은 잠시 짬을 내 ‘디지털 디톡스’(디지털 기기에서 잠시 해방돼 휴식하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것에 만족한다. 강원 홍천의 산기슭에 자리 잡은 ‘H리조트’ 안에서는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를 일절 쓸 수 없다. 리조트 안에 전파 차단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주말(1박2일)을 나는 비용은 1인당 20만원 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자발적 불편을 체험하겠다며 이곳을 찾는 이용객이 연간 3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가벼운 산행과 명상, 느리게 책읽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리조트에서 만난 성인영(31·여·가명)씨는 기자에게 “퇴근 뒤 스마트폰과 TV를 멍하니 보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가 허무했다”면서 “디지털 기기 없이 지내 보니 저녁이 참 길더라”고 했다. H리조트 관계자는 “쉼은 일상에서 떨어져야 가능한데 요즘 스마트폰이 있으면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스트레스가 된다”면서 “업무상 급히 인터넷을 써야 하는 방문객을 위해 PC 2대가 놓인 공간을 마련했는데 이름을 ‘스트레스존’이라고 붙였다”고 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병든 앨리스 떨어뜨리기-황정은의 소설 - 이한나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병든 앨리스 떨어뜨리기-황정은의 소설 - 이한나

    1. 황정은, “그녀가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호사는 세로글씨로 조판된 세계문학전집을 탐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작가가 세계문학전집 중 무엇을 가장 아껴가며 읽었을지 제법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녀의 소설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말이다. 잿빛 털을 가진 토끼들이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머리를 짓밟고 가고(「문」), 집이 커진 게 아니라 내가 잠시 줄어든 것이며(「오뚝이와 지빠귀」), 그림자가 일어나고(『백』), 지금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오롯이 설명해줄 말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적혀 있다(「야행」). 토끼 굴을 낙하하는 앨리스를 보고, 꿈속에서 버섯 규모로 작아져서는 용케 밟히지 않은 채로 길 위에 서며(『나나』), 동생에게는 때마다 앨리스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야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그리고 연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구성하는 여러 모티브들은 황정은의 소설 속에서 꾸준히 반복 등장한다. 황정은은 이를 변형하여 차용하기도 하는데, “그냥 모자가 됐을 뿐인데요”(「모자」, 41쪽), 혹은 “그림자가 일어났다고 말하자 여씨 아저씨는 눈을 깜박였다”(『백』, 30쪽)와 같은 구절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아버지가 갑자기 모자로 변해도, 그림자가 슬그머니 일어나도,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코 당황하는 법이 없다. “그냥 모자가 됐을 뿐인데요”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이와 동일하게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서 앨리스는 이상해(wonder)하지 않는다. 모든 게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만 한다. 오히려 소녀는 엄숙하게 골무를 수여하는 도도새를 보고 그 꼴이 우스워 웃음을 터뜨리고 싶지만 그들이 너무나 진지해서 웃음을 참는다. 이로써 황정은 특유의 환상성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그녀의 환상성 일반을 차지하도록 초기작부터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끈질기게, 앨리스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의 인용문이 그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커다란 나무와 앨리스 소년에 관해서. 앨리스 소년은 그 나무 아래에서,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는 나무 바깥으로 나가면 되지, 라고 말했다. 모든 일은 그 새끼가 나무 아래 서 있기를 고집했기 때문 아닐까? 나무 바깥으로 나가면 상황 끝, 오케이? 그렇구나. (…) 하지만 그건 마치 갤럭시와도 같은 대답.(『야만』, 158~159쪽) 끝내는 여장 노숙자가 된, 매일을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 라고 황정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요약될 수(도) 있다. 소년의 이름은 앨리시어. 동생이 죽은 뒤 모든 걸 놓아버린 그는 동생에게 들려주곤 했던 이야기의 끝자락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앨리스 소년은 나무 아래에 자리한다. 앨리스 소년이 나무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두고 한 남자는 간단히 “나무 바깥으로 나가면 상황 끝, 오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갤럭시와도 같은 대답이라 한다. 황정은의 용어 사전에서 ‘갤럭시’란 ‘타인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좆같은 거’다. 이를 통해 앨리시어에게(그리고 황정은에게) 앨리스 이야기란 ‘고통’과 관련 있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란 걸 유추해낼 수 있다. 어쩌면 그녀의 소설이 품고 있는 어떤 새로운 가치를 드러낼 수도 있음이다. 다만 섣불리 접근했다간 “그건 마치 갤럭시와도 같은 대답”이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니 신중해야 한다. 소설 속에서 가난한 이들의 환상은 보통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도피할수록 현실의 나,는 희미해진다. 그러나 황정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다. 환상이 되레 현실의 자아를 첨예화할 수 있음을 안다. 환상이 현실에 대한 고뇌로부터 그들을 멀어지게 하기보다는 가까워지도록 도울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대담하게도 부르주아지인 앨리스의 방식을 몰래 이용하여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이상한 나라로 이어지는 토끼 굴에 슬쩍 가난한 이들 역시 떨어뜨린다. 2. 먼저 아까부터 괜히 낯이 익던 ‘앨리시어’(Alicia)라는 이름에 주목해보자. 이는 ‘앨리스’(Alice)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 그러나 단순히 앨리스의 남성형 정도에 해당한다고 정의 내릴 수만은 없다. 필자의 추론은 이렇다. 앨리시어(Alicia)는 앨리스(Alice)에 어미 ‘-ia’를 더한 것과 같다. 어미 -ia는 그리스어로 ‘국가’(nation) 또는 ‘병’(illness)을 뜻한다. 이 중 후자를 따르자면 앨리시어는 앨리스에 ‘병’을 더한, 즉 ‘병든 앨리스’가 된다. 이 글에서는 황정은 소설의 주요 인물들을 앨리시어, 즉 병든 앨리스로 칭하고자 한다. 우선 저기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낙하하다」, 78쪽)고 있는 앨리시어에게 다가가 보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채 몇 장 넘기지 않더라도 앨리스(Alice)와 앨리시어(Alicia) 간의 큰 차이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앨리스는 토끼 굴 속으로 떨어지지만 앨리시어는 떨어지지, 다시 말해 바닥에 닿지 못한다. 갑자기 쿵! 쿵! 하고 잔가지와 낙엽 더미 위로 떨어진 앨리스와 달리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채 “검은 공간을 하염없이 떨어져 내릴 뿐이”(「낙하하다」, 61쪽)고, “발밑을 내려다보지만 거긴 너무 멀고 텅 비어 있”(「파씨의 입문」, 219쪽)으며, “아직도 떨어지고, 여태 떨어지고 있는 거다”(『야만』, 132쪽). 둘째로, 토끼 굴 속을 떨어지는 와중에 보이는 물건들이 다르다. 먼저 앨리스는 굴 속에서 양 옆을 살피는데, 그 곳엔 ‘찬장’, ‘책꽂이’, ‘지도’,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다. 반면 앨리시어가 떨어지는 와중에 곁에 보이는 것들은 “숟가락, 바닥이 두꺼운 유리컵, 방금 깎은 연필, 종이들, 구멍이 세 개 뚫린 단추, 젓가락 한 짝과 호두를 부술 수 있는 가위 따위”(「파씨의 입문」, 219쪽)이다. 우선 이 중 후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인용문을 읽어 두는 것이 좋다. “‘얘야, 어서 올라와!’ 해도 그냥 올려다보면서, ‘내가 누군데요? 그걸 먼저 말해 줘요. 내가 당신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누군가가 될 때까지 여기 이 아래서 살 거예요.’ 하고 대답해야지.”(『이상한』, 27쪽) 토끼 굴을 통과하여 이상한 나라에 당도한 앨리스는 곧바로 알 수 없는 액체를 마시고는 키가 작아지고, 건포도 케이크를 먹고는 키가 커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곤 외친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 거지? 아, 이건 대단한 수수께끼다!”(『이상한』, 25쪽)라고. 실로 이와 같은 외침 이후에 이상한 나라 안에서의 여러 모험들(adventures)은 이 대단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한 여정으로 둔갑한다. 위의 인용문에서와 같이 앨리스는 당신이 말하는 사람,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당신’(으로 지칭되는 무언가)의 바람을 충족하는 다른 누군가가 되지 전까지는 굴 밖으로 나가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를 의미하는가. 이는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의식적으로 고상한 어휘를 사용하려 노력하고(대부분 잘못 사용하지만), 가정교사와 하인들이 있고, 학교에선 불어를 배우며, 때로는 오빠의 라틴어 문법책을 훔쳐보곤 하는 이 소녀는 결말부에 이르러 바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교양 없이 굴려면 나머지 이야기는 네가 하는 게 좋겠다.”(『이상한』, 104쪽) 즉 ‘교양’을 강조한다. 독일 인문주의의 맥락에서 ‘교양’(Bildung)이란 쉽게 말해 사람 각자가 생득적으로 가진,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최대한 현실화하도록 유도·계몽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필연 ‘자아형성(self-formation)’과도 관련이 있다. 자아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거다. 이는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많은 규범들을 의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생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기행 이후 “나는 주체성을 잃었으나 세계를 발견했다”고 고백한 괴테 역시 자아의 형성이 ‘주체성’이라는 단어보다는 ‘사회화’라는 단어와 더 어울림을 미리 알았다고 볼 수 있다. 앨리스는 토끼 굴 안에서 이런 용어를 내뱉은 것이다. 키가 작아졌다 커졌다 반복되어도, 동물들이 사람 꼴을 하고 말을 건네도, 틈만 나면 “저놈의 목을 치시오!”라고 말하는 여왕을 만나도 소녀의 머릿속은 “지금의 나는 누구인 거지?”라는 물음과 ‘교양’이라는 단어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연관되는데, 앞서 공백으로 남겨둔 ‘당신’의 자리에 ‘교양’이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굴 안에 떨어져 “내가 당신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올라가겠지만”이라고 말했던 부분에서 ‘당신’을 ‘교양’으로 바꾸면 이는 쉽게 “내가 교양이 말하는 사람(=교양의 지향점을 따르는 사람=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으면 올라가겠지만”이 된다. 앨리스는 본래 무식한 꼬마 취급 받는 것을 두려워하던 인물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소녀는 계속해서 (자기보다도 더) 터무니없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 이들 틈에서 “교양 없는 짓이잖아”, “정말 야만적이군요!”와 같은 말들로 무례함, 교양 없음을 지적해 나가며 그들에게 휩쓸리지 않는다. 이렇듯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 안에서의 모험 내내 ‘교양’을 기준으로 ‘교양 있음/없음’을 나누고 ‘교양 있음’의 편에 자신을, ‘교양 없음’의 편에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을 놓는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 거지?”라는 대단한 수수께끼의 해답은, 고로 자아를 찾기 위한 해답은, 자신을 자신 아닌 것과 구별하는 의식 속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그리고 마침내 너희들은 카드 묶음에 불과하다는, ‘너희는 기껏해야 (나와 달리) ○○에 불과하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소녀는 잠에서 깨어난다. 교양에 기반한, 앨리스의 이 모든 행동을 가능토록 만든 것들에 대한 힌트는 이미 이 장의 앞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찬장’, ‘책꽂이’, ‘지도’, ‘그림’. 앨리스가 토끼 굴로 떨어지며 본 것들이다. 유추하건대 대대로 물려온 접시를 보관하는 찬장, 희귀본들이 가득한 책꽂이, 18세기 제국들의 정복지를 표시한 지도, 고조할아버지쯤 되는 윌턴 경의 초상화 등이었을 것이다. 즉 모두가 부르주아지인 앨리스의 자아를 첨예화하는 데에 도움을 주어 소녀로 하여금 잠에서 깰 수 있게, 토끼 굴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앨리시어가 본 것들은? 아아, 그것은 “숟가락, 바닥이 두꺼운 유리컵, 방금 깎은 연필, 종이들, 구멍이 세 개 뚫린 단추, 젓가락 한 짝과 호두를 부술 수 있는 가위 따위”이다. 이 잡동사니들을 움켜쥐고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다면 앨리스와 같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것들로 자아를 첨예화하여 나와 그들을 구분해낼 수 있을까? 글쎄. 턱도 없다. 앨리시어는 모험이 아닌 방황을 할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3. 한 번 이상한 나라에 당도하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앨리시어는 떨어지지 못한다(않는다). 앨리스가 안락한 자아 형성의 과정을 즐기는 동안 앨리시어는 “풉풉 풉풉 풉, 풉, 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풉”(「무지개풀」, 101쪽)하며 다소 엉뚱한 곳에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한다. 또는 TV를 시청한다. 물론 교양 프로그램을 시청하지는 않는다. 한 목격자가 말하길 “단 하나의 채널을 수신할 수 있었는데 몇 번 채널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노이즈가 심했다. 진동하는 모자이크로 탈색된 화면에서 아마도 남자로 보이는 해체된 얼굴이 바직파직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뼈 도둑」, 187쪽). 그나마 한 채널뿐이고, 그나마 해체된(deconstructed) 얼굴만이 바직파직 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다. 이로썬 자아를 견고히 할 수 없다. 이미 절단된 사지는 붙을 가능성마저 잃는다. 유기체(有機體)가 되지 못할 것을 직감한, 교양이라는 ‘틀(機)’이 없는, 병든(-ia) 앨리스인 그는 머리, 팔, 다리, 등, 배로 각기 나뉘어 생각하기 시작한다(「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그러곤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해 보세요, 가마. 가마. 가마. 가마. 가마. 이상하네요. 가마, 라고 말할수록 이 가마가 그 가마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죠. 가마. 가마.(『백』, 37~38쪽) “가마, 가마, 가마, 가마, 가마” 하고 “슬럼, 슬럼, 슬럼, 슬럼” 한다.(『백』) 앨리시어가 보기에 가마는 사람마다 전부 다르게 생겼는데도 그걸 전부 가마, 라고 부르는 건 가마의 처지에서 ‘상당한 폭력’이다. 그러므로 이 ‘상당한 폭력’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강구해낸다. ‘반복 말하기’가 그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이라는 현상은 B라는 점이 아니라 A에서 B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선분이기에 이 A와 B 사이에 숨겨진 무수히 많은 맥락들을 고려해본다면, 정말로 쓸 만하거나 할 만한 말이라는 것은 없다고 설명한다.(「곡도와 살고 있다」) 즉 A라는 한 단어가 B만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는 B도, C도, F도, Z도 뜻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상당한 폭력”은, ‘B’는 희미해진다. ‘반복 말하기’는 기존의 어휘들을 무력화한다. 그간의 ‘맥락’을 끊는다. 동시에 ‘보통’에 대한 강박 역시 누그러뜨린다. A가 B도 F도 될 수 있다면, ‘보통’ 역시 이것도 저것도 다 그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는 B에 의해, 보통에 의해, 어쩌면 교양에 의해 절단된 사지만을 덩그러니 끌어안고 있던 앨리시어로 하여금 유기체적인 매끄러운 몸을 가지고 다시 “세계의 저편”(「파씨의 입문」, 219쪽)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저편에는 찬장, 책꽂이, 지도, 그림들이 아니라 숟가락, 바닥이 두꺼운 유리컵, 방금 깎은 연필, 종이들, 구멍이 세 개 뚫린 단추, 젓가락 한 짝과 호두를 부술 수 있는 가위 따위가 있다. 이것이 앨리시어의 ‘보통’이라면 보통이다. 숟가락 뒷면의 뒤집혀진 상(像)으로, 혹은 방금 깎은 연필로 막 써낸 글로 세상을 바라보아도 괜찮다. 다 괜찮다. 그것으로 처참히 찢긴 제 몸이 다시 온전해질 수, 오롯이 그 유일함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4. 앨리스가 ‘교양’이라는, 선대로부터 켜켜이 쌓아온 그것에 기댄다면 앨리시어는 오로지 자기 자신(또는 자기와 동일시하는 대상)에 흡착한다. 흡, 착, 한다. 있는 힘껏 빨아들이고 착 달라붙는다. 흐읍, 하고 착! 그리고 나서는? ‘나’ 위에 ‘나’를 쌓는다. 그가 말했듯 “세 개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대니 드비토」, 52쪽) 이것은 평면이 아닌 ‘나’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이 유일한 나, 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인다면? 부족이 되나,라고 나는 물었다. 부족민이고 뭐고 없는데? 네가 있잖아. 라고 나기는 말했다. 족장이자 부족민인 네가 있잖아. 나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지, 세상엔.(『나나』 1366쪽) “하나뿐인 부족”이 된다. 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다, 세상엔. 『소라나나나기』는 가난한 세 인물 소라, 나나, 나기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남편을 잃고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애자, 그리고 그녀의 자식인 나나와 나기를 소라의 어머니가 거두게 되면서 이들은 거의 함께 살아간다. 이 중 성인이 된 나나는 예기치 않게 연인의 아이를 임신한다. 연인과 결혼을 하면 보다 윤택한 삶으로 편입할 수도 있다. 잘 사는 집. 그러나 (잔병도 없는)아버지가 요강을 사용하고 어머니가 요강을 비우고, 가장 좋은 날짜가 7일이니 아기는 바로 그날에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집. 그걸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집에 그녀는 진입하기를 관둔다. 말했듯, 하나뿐인 부족이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세상이 그렇게 끝나버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은 거야. 아이나 나나 말이지. 모처럼 낳았고 모처럼 태어났는데. 그냥, 세계가 끝나버리면.…공룡이 사라졌잖아. 멸종이라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실은 천만년이 걸렸대. 천만년에 걸쳐서 서서히 사라진 거야.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 세계는. 천만년이면 나나가 십만명.…하지만 그 십만번 안에 웃는 나나가 있고 우는 나나가 있고 화를 내는 나나가 있고 그리워하는 나나가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나가 있고 두려워하는 나나가 있고 수줍어하는 나나가 있고 토라진 나나가 있고 기다리는 나나가 있고…(『나나』 3271~3272쪽) 하나뿐인 종(種)이 될 것이다. 공룡도 실은 천만년이나 걸려서 멸했다. 나나는 그러니까 “길게 망해”갈 것이다.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나나』 3272쪽) 이것이 병든 앨리스의 생존법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순조로이 빠져나오기를 가능케 할 수 있는, ‘나’와 ‘남’을 구분할 그 무엇이 부재한 그는 이 ‘병’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병든 채로라도 오래 버티길 원한다. 이렇게 버티고 버티고… 떨어지고 떨어진다. 떨어지며 ‘나’를 쌓는다. 앨리시어 위에 앨리시어가 떨어지고 떨어진 앨리시어 밑엔 앨리시어가 깔리고 앨리시어가 떨어지고 앨리시어가 포개지고…. 쌓인 앨리시어는 천만년 동안 십만 명의 앨리시어로 살아남을 것이다. “숟가락, 바닥이 두꺼운 유리컵, 방금 깎은 연필, 종이들, 구멍이 세 개 뚫린 단추, 젓가락 한 짝과 호두를 부술 수 있는 가위 따위”여도 좋다. 나, 앨리시어가 유일한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거라면. 앨리시어는 모자가 되고(「모자」) 오뚝이가 된다(「오뚝이와 지빠귀」). 나를 쫙 흩뜨려 나와 동일시하는 대상에 가 달라붙거나(「대니 드비토」), 하나 존재하는 평면에 대해 되뇐다.(「낙하하다」) 집중한다. 그렇게 살아남는다. 토끼 굴 속에서 낙하하며 ‘나’를 생각한다. ‘나’를 쌓는다. 5. 근대의 실상에 대해, 마르크스는 “단단한 것은 모두 녹아 날아간다”고 했고, 니체는 “토대라는 토대는 모두 미쳐서 날뛰듯이 산산이 부수고 엉망으로 만드는 것, 모든 토대를 녹여서 부단히 흘러가는 진화를 계속하게 하는 것, 존재하는 것이라면 모두 쉼 없이 해체하고 역사화시키는 것”이라 했다. 이 두 정의를 바탕으로 버만은 근대성(modernity)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샬 버만, 『현대성의 경험』, 윤호병·이만식 역, 현대미학사, 1994. 그에 의하면 근대성은, 자족적이고 비연속적인 개체로써 ‘지금, 여기’를 바라보며 기존의 모든 가치를 덧없게 하는 것이다. 진정 이런 거라면, 앨리시어는 근대성을 자신의 유일한 실존적 조건으로 삼은 자라 할 수 있다. 다시 돌아가, 한국 소설 안에서 환상이 가난과 같은 현실의 문제를 도피하는 수단이 아닌 극복하는 방안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환상 속에서 끝없이 현실의 ‘나’를 버리기보다 현실의 ‘나’를 세워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황정은은 (앨리스의) 환상을 이용하여 소설 내내 그가 자신이 유일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하나의 부족이 되어 망해도 길게 망해가기를 바란다. 그녀가 “그럼 길게 망해가자”(『나나』 3272쪽)라고 했을 때는 ‘망함’의 상태를 길게 지속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대한 미루자는 것이다. 백년도, 천년도 아닌, 천만년씩이나. 그러므로 길게 망하자는 건 길게 살아남자는 말과 같다. 천만년을, 그것도 근대성을 자신의 유일한 실존적 조건으로 삼은 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니체의 다음 발언을 유념해야 한다. 개인은 대담하게 자기 자신을 개별화시키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이 대담한 개인은 필사적으로 그 자신만의 일련의 규범을 필요로 하고 자아의 보전, 자아의 고양, 자아의 각성, 자아의 해방을 위한 기술과 책략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현대성의 경험』, 35~36쪽) 자신만의 ‘규범’과 자아의 해방을 위한 ‘기술’과 ‘책략’이 필요하다. 앨리시어는 아직 이를 갖추지 못했다. 자기 자신에 흡착하는, 위 인용문에 따르면 ‘자아의 보전’ 단계에 간신히 다다랐을 뿐이다. 최근의 소설들에서 가난한 연인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는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상류엔 맹금류」, 33쪽)하고, “아무도 없고 가난하다면 아이 같은 건 만들지 않는 게 좋아. 아무도 없고 가난한 채로 죽”(「양의 미래」, 146쪽)으라고 소리치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읽는 사람들, 한권의 책을 펴고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어쨌거나 이런 현실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고 그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며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것도 물론. 그러니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한다. 앨리시어가 자아의 보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고양, 각성, 나아가 기존의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에까지 이르게 될 가능성은 높다. 황정은이 “모든 토대를 녹여서 부단히 흘러가는 진화를 계속하게 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고 부르주아지인 앨리스의 환상을 녹여서 기꺼이 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기, 진작 교양을 무기로 토끼 굴 바닥에 떨어져 환상의 나라를 누비고 있는 앨리스를 눈앞에 고정시켜 두고, 앨리시어를 토끼 굴 속으로 쉼 없이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병든 앨리스는, 병들었기에, 무섭다. 그는 교양이라는 틀이 없는 환자인 동시에 병원체(病原體)이므로. 일단 앨리시어가 저만의 틀을 구축한다면, “숟가락, 바닥이 두꺼운 유리컵, 방금 깎은 연필” 등을 의미화해 나간다면, 그는 토끼 굴 바닥에 가볍게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은 병원균의 번식 속도처럼 재빨리 퍼져나가 천만년 동안 이어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병든’(-ia)이라는 형용사는 지금과는 다른 의미를 지닐지도 모르겠다. 이어질 소설들에서 황정은이 어떠한 기술과 책략을 선보일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다음의 문장을 되뇌며 하루하루 기다리는 수밖에. “내일은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는 다를 것이다. 세계의 귀퉁이가 약간 뒤집혔고 점차로 더 뒤집힐 것이다. 앨리시어는 이제 그것을 안다.”(『야만』, 149쪽) <끝>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수근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수근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

    연말이면 서울 명동 등 전국 곳곳에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린다. 이웃과 희망을 나누려는 구세군 자선냄비 소리다. 거리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이달 초 시작해 31일이면 종료된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효시가 된 자선냄비 모금운동을 펴고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의 이수근(60) 사무총장에게 올해 자선냄비 모금 상황과 나눔의 의미에 대해 들어 봤다. 이 총장은 지난해 구세군에서 발족한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으로서 2년째 모금 및 배분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1982년 구세군 사관학교 신학과를 졸업, 사관에 임명돼 33년째 사관의 길을 걷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종로구 새문안로 구세군 자선냄비 사무총장실에서 진행됐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부터 소개해 주시죠. -1891년 12월 성탄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자선냄비가 첫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도시 빈민들과 배가 좌초돼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조지프 맥피라는 한 여사관이 오클랜드 부두로 나가 큰 쇠솥을 내걸었고 그 위에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였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기금을 마련했고 그 후부터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126개국에서 불우한 이웃과 함께하는 자선냄비 행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자선냄비가 처음 나왔나요. -우리나라 구세군은 1908년에 조직됐으며 자선냄비는 1928년에 나왔습니다. 홍수와 가뭄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았던 한 해의 끝자락에 얼어 죽은 변사체가 발견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당시 박준섭 구세군 사령관이 정부에 공식 모금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해서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 15일 서울 명동 등 20여곳에서 처음으로 자선냄비가 나왔죠. 반응이 좋아서 그때 돈으로 848원 67전이 모였고 이 돈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식사와 땔감을 제공하는 데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한국 사회 모금사업의 효시이자 192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해 겨울 한 번도 쉼 없이 86년간 지속돼 온 한국 나눔문화의 유산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금 및 배분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모금은 서울시내 100곳을 포함해 전국 360곳에서 합니다. 모금이 되면 161개의 전문사회복지시설을 포함한 640곳 나눔처소를 통해 배분합니다. 배분은 지역에서 모금한 것은 해당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결식아동, 노인을 위해 쓰인다고 보면 됩니다. 서울의 경우 홈리스나 독거노인을 위해 쓰고 에이즈 예방사업, 미혼모를 위해서도 씁니다. 각 지역에서는 배분 이후 본부에 그 집행 상황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모금액의 10% 정도는 구세군 국제대표부가 나가 있는 몽골, 캄보디아를 비롯해 구세군 활동이 없는 필리핀, 중국 등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고 있습니다. →기부금의 투명성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자선냄비 본부는 외부 회계감사, 행정자치부 감사, 자체 감사, 그리고 국제 감사까지 네 번의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자선냄비 본부로서는 이처럼 다 감사를 받는데 구세군 종교법인으로서는 감사 대상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자선냄비 본부가 투명하지 못하다고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죠.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 및 배부 내역은 연간 사업보고서에서도 볼 수 있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모금 실적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한국 구세군은 모금 기간을 11월에서 그다음 해 10월 말까지로 잡고 있습니다. 12월 모금을 겨냥해 11월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2012년에 49억원, 13년 64억원, 올해 9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업체 후원과 일반 시민들의 십시일반이 모여 모금 실적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모금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 11월부터 새해 10월 말까지는 120억원 모금이 목표입니다. →전체 모금 중 순수한 거리모금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100억원 모금 목표에 98억원을 모금했는데 11, 12월 두 달간 모금액이 63억원입니다. 이 중 순수 거리모금액은 30억원 정도 됩니다. 올해 11월부터 내년 10월 말까지 모금 목표액 120억원 가운데 11, 12월 두 달간 65억원을 모금할 계획입니다.(30일 현재 구세군은 66억 2000여만원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거리모금을 통해 기부하는 사람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면. -올해까지 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1억여원을 익명으로 기부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름을 알려고 해도 거절합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 ‘신월동 주민’이라고만 자기소개를 한 분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자기앞수표와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어요. 올해에는 “나의 기부 뜻을 이해해 주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위, 딸들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해 주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편지글로 미뤄 어렵게 자수성가한 분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후순위채권 5000만원을 압구정 자선냄비에 넣어 주신 중년 신사가 있는데 올해에도 같은 금액을 넣고 갔습니다. 후순위채권은 소지자가 은행에 가면 바로 환전이 가능한데 암시장에서는 7000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더군요. 이 밖에 아기 돌반지, 금으로 된 교정치아, 헌혈증서 20여장을 내주신 분도 있습니다. 아기 돌반지는 아기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어머니가 기부한 것이었습니다. 헌혈증서 같은 경우 병원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에 수혈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해 오면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손연재 선수도 1000만원을 냈습니다. →자선냄비에 편지 봉투가 들어오면 봉사자들 가슴이 두근두근하겠습니다.(웃음)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봉투 기부자가 많은데 이는 미리 기부를 준비한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저희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죠. 붉은 옷을 입고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로선 “내가 봉사 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많이 들어왔다” 하는 기쁜 마음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자선냄비 모금 장소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아무래도 왕래객이 있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모금은 장소를 포함해 모금 일정을 정부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아서 합니다. 올해는 360곳에서 모금 중입니다. →자선냄비엔 신용카드 단말기도 장착돼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요즈음 현금보다는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세태를 감안해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신용카드를 통한 모금액은 많지 않습니다. 카드는 2000원, 5000원, 1만원, 2만원 단위로 결제가 가능합니다. →기업 등 기부자가 지정 기탁하면 본부에서는 그냥 따르나요. -그렇습니다. 다만 그냥 (임의로) 기부해 주시면 필요한 곳에 쓰는데 지정 기탁하면 중복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올해는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만 옛날부터 대통령들은 우리가 이야기 안 해도 빠짐없이 기부를 했습니다. 우리가 모금하는 장소에 얘기하지 않고 반드시 옵니다. 오시기 몇 시간 전에 연락이 와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모금 시작을 격려하는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대통령 기부액은 얼마나 되나요. -금액은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현금으로 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금액은 어떻게 관리하는지요. -그날 모금한 것은 우체국이나 은행에 바로 집어넣습니다. 거리모금은 12월 한 달만 하는데 20일까지는 오후 6, 7시까지 하며 그 이후는 8시까지 합니다. 서울의 경우 각 거리의 자선냄비 모금통을 자루에 넣고 봉인해서 구세군 본부로 가져오면 자선냄비 본부에서 다시 대형 자루에 넣어 우체국으로 보냅니다. →자선냄비 모양은 세계적으로 같나요. -거의 비슷합니다. 약간씩 다르나 방패 모양은 똑같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우리나라 자선냄비는 8년 전 주방기기업체인 휘슬러에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사용하다 깨지거나 끊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무료로 다 제공해 주고 있어요. 그전에는 양철로 만든 것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구세군 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자선냄비 본부 발족 계기가 있었나요. -지난해 5월 10일에 본부로 출범했습니다. 본부 출범 전에는 구세군 홍보부에서 모금을, 사회복지부가 배분을, 재무부에서 기금 입출금을 각각 담당했는데 보다 체계적으로 모금 및 배분 업무를 하기 위해 나눔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 필요했죠. 본부가 생기면서 연중 모금으로 전환됐고요. →우리나라 기부 수준은 어떤가요. -10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높아졌습니다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습니다. →기부 수준이 낮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시민들이 여유가 없어 기부를 못하는 측면과 여유는 있으나 기부 의사가 없는 점, 그리고 모금단체에 대한 신뢰도 저하 등이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모금 방식을 본받아 모금 및 배분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부처 개발, 사업 유형, 배분 기술이 10년 정도 뒤진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신뢰도 제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세군 자선냄비 활동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죠. -새해 10월 말까지 목표액 120억원 모금을 다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86년 역사가 말해 주듯 가장 낮은 곳을 향한 나눔의 단체입니다. 정부에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지만 정부가 가난 구제를 다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민간도 나서야죠. 사회적 안전망이 느슨해지면 안 되는 만큼 우리가 촘촘하게 이 안전망을 기워 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가장 오래된 나눔단체로서, 국민기부금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서, 더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청렴한 단체로 활동하겠습니다. 박현갑 부국장 eagleduo@seoul.co.kr ■구세군은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은 기독교의 한 교파로 1865년 영국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런던에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 개신교의 한 교단으로 도입됐다. 자선냄비와 같은 사회봉사 활동으로 선교 활동을 대신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구세군이라는 군대식 조직으로 운영된다.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사관으로 임명된다. 신도는 협력자를 포함해 12만명이며 사관은 이수근 사무총장을 비롯해 현재 670명이 활동하고 있다. 정년은 만 65세다. 사관은 종교법인인 대한구세군유지재단법인 산하의 300개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를 맡거나 사회복지법인 구세군복지재단 산하 161개 전문 사회복지시설에 원장이나 사무국장으로 파견된다. 구세군대학원대학교와 기술고등학교라는 구세군 학교법인에서 교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사관은 일반 직장인의 월급에 해당하는 생활비로 가계를 꾸린다. 생활비는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수준인 160만원 정도로 교회재정(헌금)에서 충당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정부 위탁시설이 많아 정부 보조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목회자 생활비보다 많이 받으면 차액을 재단에 반납하게 돼 있다.
  • 늦여름 독차지…늦은 휴가 준비하는 당신, 강원도 평창이 답이다

    늦여름 독차지…늦은 휴가 준비하는 당신, 강원도 평창이 답이다

    늦여름 휴가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절정의 피서철을 피하자는 이도 있겠고, ‘순번’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늦은 휴가를 택한 이도 있겠다. 어떤 경우든 극성수기만 피하면 한결 여유롭게 쉴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늦여름 휴가를 계획하는 당신, 강원 평창에 주목하시라. 물 맑은 계곡과 청량한 공기 가득한 숲이 곳곳에 널려 있다. 피서객 사라진 계곡을 독차지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눈이 삐었다. 엉뚱한 것에 시선을 빼앗겨 정작 봐야 할 걸 못 봤으니 말이다. 장전계곡 이야기다. 몇 해 전 장전계곡을 찾은 적이 있다. 한데 당시엔 상류 쪽의 이끼계곡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장전계곡=이끼계곡’이란 등식만 유효한 줄 알았던 거다. 그 탓에 이끼 뒤덮인 푸른 계곡을 찾아 오르느라 정작 아래쪽의 아름다운 공간들은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다. 평창은 발왕산(1458m), 선자령(1157m) 등의 명산에 둘러싸인 고을이다. 산이 높으니 계곡이 깊은 건 당연한 노릇. 맑은 물 흐르는 보석 같은 계곡들이 즐비하다. 장전계곡은 그중에서도 앞줄에 선다. 장전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는 가리왕산에서 발원해 오대천으로 흘러간다. 듣자니, 장전계곡도 오래전엔 ‘한가락’ 했단다. 그러니까 이끼계곡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부터 빼어난 계곡미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는 것이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지금은 피서객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장전계곡에 들면 입이 떡 벌어진다. 맑은 물이 쉼없이 흘러간다. 과장 좀 보태면, 물길을 따라 수m에 하나씩 푸른 빛의 소(沼)가 형성된 듯하다. 수량이 부족해 조그만 물웅덩이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수도권 인근의 계곡은 도무지 댈 게 못 된다. 긴 가뭄에 인근 계곡의 물줄기가 형편없이 쪼그라들 때도 장전계곡만큼은 늘 가득 물을 품고 있다. 계곡가의 짙은 숲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물이 뿜어내는 냉기 때문이다. 그 덕에 숲에 들면 더위쯤은 단박에 사라지고 만다. 계곡물은 차다. 발을 담그면 금세 발가락이 오그라들고, 몸을 담그면 채 1분을 버티기 어렵다. 물웅덩이 주변엔 반석이 잘 형성돼 있다. 책을 읽으며 쉬거나 물놀이를 하기에 딱 좋다. 이끼계곡은 장전계곡 최상류에 있다. 계곡 초입에서 3㎞쯤 떨어졌다. 크고 작은 바위를 뒤덮은 초록 이끼 사이로 맑은 계곡수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일품이다. 다만 관광객의 답압 등으로 이끼가 말라죽는 경우가 잦으니 각별히 조심하는 게 좋겠다. 막동계곡은 장전계곡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계곡 초입의 아름다운 삼단폭포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두 계곡 간의 거리는 가까워도 계곡수가 발원한 곳은 전혀 다르다. 장전계곡은 가리왕산, 막동계곡은 백석산에서 발원한다. 두 계곡을 거친 물줄기는 오대천에서 합류한다. 막동계곡의 규모는 장전계곡보다 작다. 하지만 3㎞ 남짓 이어지는 계곡은 깊다. 당연히 깊은 골짜기를 지나쳐온 물 또한 맑고 차다. 계곡의 규모에 견줘 수량도 풍부한 편. 1급 청정수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이 물 아래에서 헤엄치며 논다. 막동계곡의 첫손 꼽히는 명당은 삼단폭포 아래다.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면서 일으킨 바람과 물안개로 늘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호사가들은 이 폭포수를 두고 ‘산삼 썩은 물’이라 부른다고 한다. 물길 위쪽, 그러니까 백석산의 돌과 흙, 그리고 식물의 뿌리 등 ‘필터’를 거치는 동안 자연적으로 정화된 물이란 뜻일 터다. 폭포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계곡은 깊어진다. 접근이 어려운 곳도 있지만, 펜션이나 산방 등 건물 주변의 소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인적 드문 곳을 찾는다면 원당계곡이 제격이다. 백덕산(1350m)에서 발원해 평창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만든 계곡이다. 전체 길이는 6㎞ 남짓. 그 가운데 덕말~용소골 사이 약 2㎞ 구간은 7년여 동안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다 지난해 해제됐다. 계곡엔 연둣빛 감도는 맑은 물이 쉼 없이 흘러간다. 발만 담근 채 탁족을 즐겨도 좋고, 냅다 뛰어들어 계곡과 하나가 되는 것도 나무랄 데 없다. 원당계곡 아래쪽의 뇌운계곡은 래프팅 등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계곡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평지를 흐르는 강과 다름없어 피라미 낚시 등 레저활동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흥정계곡은 가장 널리 알려진 명소다. 계곡 주변 도로에 빈틈없이 들어찬 펜션들이 이를 방증한다. 찾아가기 쉬운 만큼 사람 손도 많이 탔다. 10여년 전만 해도 귀틀집을 볼 수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옛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다만 한여름에도 15도를 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해 여름 나기엔 그만이다. 호젓한 곳을 찾는다면 계곡 끝자락의 무이초등학교 흥정분교까지는 가야 한다. 박지산 자락의 신기계곡은 삼복더위에도 발을 오래 담그지 못한다는 곳. 올여름 유난히 수량이 부족한 탓에 여태 제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현지 주민들이 ‘강추’하는 숨은 피서지다. 이 시기에 둘러볼 만한 명소 하나 덧붙이자. 청옥산(1256m)이다. 정상 언저리까지 포장이 잘 돼 있어 승용차로도 너끈하게 오를 수 있다. 청옥산에선 두 곳을 잊지 말고 돌아봐야 한다. 먼저 자작나무숲. 회동리 쪽에서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숲은 그리 넓지 않은 편. 줄 지어 선 자작나무가 펼쳐내는 조형미가 빼어나다. 국유림 지역이라 훼손 행위가 일절 금지돼 있어 변변한 산책로 하나 조성되지 못했다. 다소 불편해도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돌아봐야 한다. 육백마지기도 인상적이다. 청옥산 정상 바로 아래의 대규모 고랭지 배추밭이다. 기온은 낮고 바람은 세차 천혜의 ‘풍욕장’(風浴場)이라 할 만한 곳이다. 8월 말이면 잘 여문 배추들이 이채로운 풍경을 펼쳐낸다. 배추밭 사이사이엔 다양한 종류의 들꽃들이 피어 분위기를 돋운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3)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 진부시내를 지나 정선 방향 59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면 오른쪽으로 막동계곡으로 드는 입구가 나온다. 초입의 삼단폭포가 워낙 도드라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장전계곡은 막동계곡에서 5분 거리에 있다. 흥정계곡은 영동고속도로 면옥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빠르다. 봉평면 이효석 기념관을 지나 허브농원 방향으로 흥정계곡이 이어진다. 원당계곡은 둔내 나들목으로 나와 42번 국도를 타고 평창 방면으로 가다 평창농협산지유통센터를 지나 우회전, 뇌운계곡 방향으로 가다 하일교 방향으로 우회전해 곧장 올라가면 된다. →맛집 들메가든(333-5245)은 상계탕(桑鷄湯)으로 이름난 집이다. 뽕나무를 넣고 끓인 토종닭이 담백하면서도 쫄깃하다. 대화리에 있다. 평창 전통음식을 맛보겠다면 평창올림픽시장을 찾으면 된다. 십 수개의 부침개집이 경쟁을 하고 있는데 저마다 ‘수십년 내공’을 자랑한다. 어느 집을 들어가도 메밀전병, 김치전 등 담백한 토속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땀띠공원 맞은편의 평창한우마을 대화점(332-8300)은 질 좋은 소고기를 비교적 저렴하게 내는 집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 부근의 부일식당(335-7232)은 산채백반이 유명하다. →잘 곳 가족 단위라면 휘닉스파크 리조트를 추천할 만하다. 봉평 읍내 인근의 솔섬오토캠핑장(333-1001)은 캠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곳. 흥정계곡 주변에 펜션들이 늘어서 있다. 이 가운데 허브솔 펜션(334-4445)은 복층식 구조의 목조 주택으로 가족들이 묵어 가기에 맞춤하다. 평창군 홈페이지(www.yes-pc.net)에 다양한 펜션들이 올라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50년간 전통장례문화 물품 수집 ‘쉼’ 박물관 박기옥 관장

    [김문이 만난사람] 50년간 전통장례문화 물품 수집 ‘쉼’ 박물관 박기옥 관장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삶’과 ‘죽음’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웰빙’과 ‘웰 다잉’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평생 ‘삶과 죽음’의 공존 속에 숨 가쁘게 살다가 편안한 ‘쉼’의 세계로 떠난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 위치한 ‘쉼 박물관’은 이 같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 주는 독특한 박물관이다. 현충일 이틀 전인 지난 4일 박물관을 찾았다. 입구 벽에 걸려 있는 명문목판(銘文木板)의 한시(漢詩)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나서 백년 누리기는 어려우나 죽어서는 천추를 누리니/돌아가는 객의 낯빛 속에 청산이 어리었구나/만금의 재물은 모두 덧없는 것이니/이 몸은 어디에 들거나 청산으로 가리라’ 또 있다. 동화작가 권영상의 ‘새’에 나오는 내용이다.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가끔씩/깃털을 버리는가 보다/버릴 것은 버리면서/가볍게/하늘을 나는가 보다’ 박물관의 내부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끼게 하는 글귀다. 주택가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2007년 10월 개관했다. 박물관장이 20대 때부터 꾸준히 모아온 상여, 상여 장식, 요여 등 전통장례 용품 1000여점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내부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조상들의 해학과 순수성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편안히 누워 쉬고 있다는 생각으로 안방 침실에 상여를 전시한 것을 비롯해 옷방과 식당이 꼭두와 용수판, 자개 문갑 등 여러 가지 상여장식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1층 전시실에는 물구나무를 선 꼭두 등 눈길을 끄는 많은 목조각들이 진열돼 있으며 화장실에는 심청전, 오성과 한음, 도깨비 방망이, 이수일과 심순애 등 전통 이야기에 맞춰 전시품들을 배열하고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한다는 용, 봉황, 새, 닭 등 날개 달린 짐승의 상여조각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가지런히 벽 쪽에 진열돼 있다. 용을 타고 피리를 불면서 하늘을 오르는 상여조각, 칼을 든 도깨비 양쪽 어깨에 용의 모습이 장식된 상여조각들도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례문화의 면모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죽음을 장식했기에 박물관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창밖으로 보이는 북악산의 경치와 박물관 주변에 빙 둘러 서 있는 나무와 꽃 등이 더욱 그러하다. 이 박물관의 지하 특별 전시실은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로 만들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예술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그동안 이걸재 소리꾼의 서민상여 퍼포먼스(2007년),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전(2008년), 한국 보자기와 부채전(2011년), 국제 보자기포럼 특별전(2012년) 등을 비롯해 2010년부터 세계인형전을 매년 열고 있으며 지금은 독일의 미술가 게하르트 바치전, 그리고 박물관장이 직접 제작한 부채와 보자기전이 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상례문화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여는 등 조선시대의 장례절차와 분묘, 묘비, 상여에 대한 논문 발표의 장소가 되기도 하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장례문화가 많이 달라졌다는 점 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 박물관은 개관 당시 혼자 사는 한 여인이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박기옥(75) 박물관장과 마주 앉았다. “집도 쉼이고, 만남도 쉼이고, 영면도 쉼입니다. 죽음은 분명 슬프지만 제 남편이 자는 듯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진정한 쉼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요. 그래서 쉼 박물관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박물관이 비록 서울 도심 복잡한 곳에 있지만 잠깐 쉬듯 관람하는 만남의 장소가 됐습니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쉬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삶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죽음의 철학이 아니냐는 것이다. 전시실 한편에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들을 지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슬프다기보다는 웃는 모습이다. 어릴 적 시골 동네에서 들었던 소리가 얼핏 들리는 듯하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대문 밖이 북망일세 에헤 에헤~’ 박 관장은 “예부터 조상들은 죽은 자와 산 자들을 가급적 연결시키도록 했다. 죽은 자의 거처를 마련하고 기념하는 것도 그런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왜 살고 있는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자기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가졌다”고 대답한다. 박물관을 만든 계기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50년 전이다. 평소 우리의 민속품을 좋아해 서울 인사동 등 골동품 가게를 자주 찾았다. 처음에는 나막신이나 떡살, 작은 소반 같은 것을 모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박한 상여에 부착된 여인의 목조각, 목조형물 등을 보고 우직한 오방색에 매료돼 그것을 수집했다. 보면 볼수록 옛날 서민들의 삶 등 하나하나에 특색과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계속 모으게 됐다. 결혼 후에도 상여에 부착된 여러 목조각들의 수집은 이어졌다. 남편한테 “그 빈대 나오는 것들 그만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 10년쯤 지났을 때에는 남편도 오히려 협력자가 됐으며 나중에는 미술 하는 세 딸과 아들도 박 관장의 수집을 이해하고 도와줄 정도가 됐다. 그러던 중 2005년을 전후해 시어머니와 친어머니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죽음은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6년 10월 남편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철학이 달라졌습니다. 삶의 과정이자 연장이고 잠자듯 쉬는 거라는 것을 느끼게 됐지요. 또한 우리의 전통장례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북망산천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죽어서 다시 살 거처도 마련해 주거든요. 전통장례는 장엄하고 엄숙하지만 일종의 새로운 곳을 향하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박 관장의 안방에 상여를 배치한 것도 남편이 편히 쉬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인테리어는 박 관장이 직접 했으며 프랑스에서 작가로 활동하던 막내딸이 소장품 배치를 도왔다. 개관 기념으로 소리꾼들을 불러 지게놀이 등 서민 상여 퍼포먼스를 하면서 상여 문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출발하게 됐다. 7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 관람객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국인도 많아졌으며 프랑스 박물관 포털사이트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지금도 전통장례문화와 관련된 물품들을 모으면서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박 관장은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있기에 잠시 자랑을 하겠다고 말한다. 고인이 된 남편 남방희씨는 호남정유 계열사 중역으로 일했다. “거제에서 태어났고 남몰래 학비를 도와주는 등 불우이웃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또한 기부문화를 몸소 실천했고 가족사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향 후학들에게는 덕불고(德不孤), 그러니까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했지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주변에 새들이 많다. 땡그랑, 풍경소리도 들려온다. 평소 알고 지내는 소리꾼 장사익씨가 바로 윗집에 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장씨는 즉석에서 노래 한 곡을 읊어댄다. ‘잎사귀 가지 하나 놓는다/한세상 그냥 버티다 보면/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 될 줄 알았다/기적이 운다/꿈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다시 장례 얘기로 돌아왔다. “예전 장례는 통곡했는데 그 이유가 한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울음으로 한을 표출하잖아요. 물론 슬프지만 축제처럼 슬픔을 승화시켜 기왕 가시는 분에게, 잘 가시라고 하는 마음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박물관에는 코믹하게 물구나무 놀이하는 꼭두도 있고 장난기 있는 해학적인 조각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여꾼들도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겠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예술꾼들이 조각도 만들고 조형물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러 차례 강조한 부분을 다시 얘기한다.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부터는 우리의 전통 상여는 없어지고 온통 흰 국화로 장식한 운구차가 등장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기자가 서양화가 권옥연 화백과 함께 장례식 광경을 보면서 실망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국장이나 국민장은 이제라도 우리 전통 장례식으로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관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삶과 죽음은 공존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국장만큼은 전통장례식으로 치러야 한다. 그 운동을 펼칠 것”이라면서 뒤돌아섰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기옥은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옛 물건에 관심이 많았고 골동품 수집을 좋아했다. 이화여대 사학과 1회 출신이다. 결혼한 뒤 지금의 박물관 자리에 집을 꾸몄다. 1968년 동아일보에서 ‘꽃꽂이’를 테마로 집이 소개됐으며 대한민국 베스트 드레서 10위 안에 선정됐다. 1986년 ‘뿌리깊은 나무’에 ‘한국의 맛집-미더덕 찜’, 1989년 ‘행복이 가득한 집’에 ‘그림이 있는 집’ 등으로 소개됐다. 1999년 예술의전당 ‘코닝페어’를 시작으로 2002년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한국의 모시작품전에 부채와 적삼 등 여러 작품을 출품했다. 2007년 박물관을 개관한 이후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전(2008년), 한국 보자기와 부채전(2011년), 국제 보자기포럼 특별전(2012년) 등 매년 굵직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 거대한 우주에 ‘또 다른 나’가 있다면…

    거대한 우주에 ‘또 다른 나’가 있다면…

    남녀가 만나는 순간이 있다. 여자가 “팔꿈치 핥아 봤어요?”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여자는 대화를 이어 가려고 말을 늘어놓지만 남자는 “사귀는 사람 있습니다”라고 응답하고는 끝. 암전. 불이 켜지고 또 묻는다. “팔꿈치 핥아 봤어요?” 중얼중얼 말하는 여인에게 남자가 말한다. “여친이랑 진짜 힘들게 헤어졌거든요. 뭐 그렇다고요”라고는 끝. 또 암전. 다시 불이 켜지면 여자는 또다시 묻는다. “팔꿈치 핥아 봤어요?” 영국 극작가 닉 페인(30)의 연극 ‘별무리’(Constellations·연출 류주연)의 형식은 매우 독특하다. 만남의 시작, 첫 데이트, 외도, 이별, 재회, 죽음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남녀의 대화가 여러 번 반복된다. 대사와 감정에서 조금씩 변주한 것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반응과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아홉 가지의 상황과 그 속에 각각 서너 가지 가능성, 해서 48개 장면이 90분 동안 쉼 없이 이어진다. 지구인 듯 우주인 듯, 커다란 돌덩이 같은 단순한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또박또박 대사를 내뱉는 두 배우도 참 대단하다. “대본 복사가 잘못된 줄 알았다니까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주인영(36)은 대본을 받은 첫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보통 드라마는 기승전결이 있잖아요. 이 작품은 그게 애매해요. 상황도 잘게 쪼개지니까, 어디서 힘을 줄지, 또 빼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는 연습을 이어 가면서 “나름의 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잡게 됐다”며 조리 있게 재잘거렸다. 조용히 주인영의 말을 듣던 최광일(44)은 “공연을 올리기 전에는 ‘과연 관객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그 자잘한 시간 안에도 시작과 끝이 있고, 장면마다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조금씩 수월해졌다”고 돌이켰다. 최광일이 연기하는 롤란드는 양봉업자다. 주인영의 마리안은 천체물리학자이니 ‘벌무리’와 ‘별’의 만남이다. 큰 우주와 대비되는 작은 벌의 날갯짓이자, 벌과 같은 작은 만남은 수많은 별처럼 쏟아지고 그것들이 삶과 우주가 된다는 뜻도 있다. 그 연장선에서 꺼내 든 것은 우리 인생이 다중 우주 어딘가에서 또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평행우주론’이다. “재미있는 이론이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거잖아요. 근데 다른 우주에는 이런 나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도 이 불행한 놈이 있다니….” 농담도 진지한 표정으로 하던 최광일은 ‘별무리’에 “지금 이곳에 사는 내게는, 이전의 삶을 묻게 하는 새로운 시작”이란 의미를 담았다. ‘에쿠우스’, ‘클로저’ 등 여러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그는 지난 1년간 무대를 떠나 있었던 터라 ‘시작’이라는 말이 더 묵직하게 들린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 ‘야끼니꾸 드래곤’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호평받은 주인영도 출산과 육아로 2년 6개월 만에 무대에 돌아왔다.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이 나라에는 정말 보육대책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며 한숨을 내쉬더니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사랑하고 싸우고 소모하는 건 참 행복한 일이죠. 지치고 귀찮다고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갖고 감정을 쓸 수 있다는 거요.” 두 배우의 열연으로 지금 이 우주의 삶을 이야기하는 ‘별무리’는 다음 달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2만 5000~4만원. (02)580-1300.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열린세상] 달리는 말, 폭력적인 말/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달리는 말, 폭력적인 말/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청마(靑馬)’의 해를 맞이하여 사회 곳곳에서 ‘한마지로’(汗馬之勞), ‘주마가편’(走馬加鞭), ‘마부정제’(馬不停蹄) 등의 사자성어를 인용하면서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리는 말처럼 올 한 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달성하자는 각오로 가득하다. 그런 힘찬 새해 다짐을 들으면서 나는 경주마를 떠올린다.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눈가리개를 하고 결승선을 향해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하는 말. 친구에게 꼭 연락할 일이 있는데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만두었다. 대입 정시 모집 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입시생 자녀를 둔 친구가 어떤 마음일지를 나는 이미 경험해 본 터라 전화하기가 무척 망설여졌다. 문득, 아이가 어느 대학에 합격했냐고 물으면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농담이 떠올랐다. 이청준 소설 ‘빈방’에는 식인종 농담 시리즈가 나온다. 식인종 둘이 산에 올랐는데 산 아래에 사람을 가득 채운 기차가 지나간다. 한 식인종이 저게 뭐냐고 묻자 다른 식인종이 ‘김밥’이라 답했다. 또 다른 시리즈에는, 식인종이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목욕탕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식당이잖아”라고 투덜거리는 내용이 나온다. 작가가 소설에서 농담 시리즈를 제시한 것은 농담이 그 시대의 풍속도를 압축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언어사회학’ 연작 소설에서 우리 시대의 말(言)은 존재의 집을 잃고 떠돈다고 비판한다. ‘존재의 집’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갈등과 대립 없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이다. 그런 세계의 말에는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기심으로 가득하고 위선과 거짓과 폭력이 난무한 사회로 인해 말이 타락하게 되면서 유령처럼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식인종 농담 시리즈를 통해 식인종 같은 이들이 난무하는 사회와 그 시대의 타락한 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아이가 어느 대학 입학했냐고 물으면 무기징역이고, 아이가 어느 회사에 취직했냐고 물으면 사형이라는 농담을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농담에는 내 일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폐쇄적인 이기주의,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야만 한다는 극단적인 출세지향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나’와 내 자식은 출세를 위해 눈 가리고 앞만 보고 가니 ‘너’도 눈 가리고 네 갈 길이나 가라는 것, 만약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면 실패한 경주마일 뿐이라는 것. 무서운 농담이 아닐 수 없다. 연초 문단 행사에서 두 문인이 대판 싸우는 것을 봤다. 한 문인은 여당 욕을 하고 다른 문인은 야당 욕을 하는데, 가만 들어보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눈가리개를 한 또 다른 경주마의 모습을 보았다. 두 문인은 이렇게 대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친구, 나는 이렇게 생각해서 어떤 당이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네 견해는 어떤가.” “그렇군, 네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나는 이런 점에서 네 의견과 다른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나.”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말이 다시 상호 공존하는 말로 거듭날 수는 없는 것일까. 김춘수는 ‘꽃’에서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우리는 정녕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을 잃고 살아야 하는가.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상처를 입히는지도 모르는 채 앞만 보고 미친 듯이 질주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해서 쟁취한 목표가 어떤 가치를 지닐 것인지는 명약관화한 일 아니겠는가. 이청준 소설 ‘서편제’에는 소리를 잘하도록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소리꾼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런데 딸은 비정한 아버지를 용서하고 자신의 한스러운 삶을 화해의 소리로 승화시킨다. 그런 눈먼 여자 소리꾼의 마음이야말로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아니겠는가. 새해에는 말처럼 열심히 달리되 주위의 소중한 것들을 보살피면서 함께 달린다면, 올 연말에는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주말 인사이드] 주차관리가 업무의 80%…사모님들 외제차 5~10분마다 ‘빼고 넣고’

    [주말 인사이드] 주차관리가 업무의 80%…사모님들 외제차 5~10분마다 ‘빼고 넣고’

    “운전을 못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건 주차 실력이라니까요.” ‘원조 강남 노른자’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지키는 나이 지긋한 경비원의 필수 덕목, 다름 아닌 운전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은 ‘감시(監視)적 근로자’로 분류된다. 피로가 적고 힘들지 않은 감시업무를 주로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동네에서는 그 정의가 어그러진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은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주차가 80%를 넘는다”고 입을 모았다. 원조 강남인들이 사는 곳으로 꼽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경비원들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21일 경비원 이동민(57·가명)씨의 24시간을 들여다봤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40분. 칼바람을 뚫고 이씨가 경비실 초소로 들어왔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으며 몸을 녹였다. 하루 중 유일하게 여유를 느끼는 때다. 똑똑똑.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아저씨~ ○○○○번이요”라며 정적을 깬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층 사장님’의 개인기사다. 이씨는 초소 벽에 걸린 BMW 승용차의 열쇠를 들고 용수철처럼 튀어나간다. ‘주차 전쟁’의 시작이다. 이씨는 ‘△층 사장님’의 에쿠스를 가로막고 있던 BMW를 능숙한 솜씨로 치웠다. 기사는 갇혀 있던 에쿠스를 빼냈고, 이씨는 그 자리에 BMW를 쏙 밀어넣었다. 곧이어 교복 입은 여학생이 “아저씨~ □□□□번 빼주세요”라며 다가왔다. 이씨는 초소로 뛰어가 폭스바겐 키를 낚아챈다. 일렬 주차된 폭스바겐을 치우자 여학생을 태운 벤츠가 미끄러지듯 출발한다. 벤츠가 있던 자리에, 이번에는 폭스바겐이 들어간다. 차들이 빠져나갈 때마다 이씨는 일렬주차된 차들을 빈자리로 요리조리 옮겼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명품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제가 관리하는 차가 130대가 넘어요. 사실 이 동네에서는 이름만 경비이지 사실은 주차 요원이에요. 대충 아무 데나 차를 던져놓고 가도 우리가 다 가지런히 정리해줍니다.” 주차장에 여유공간이 생길 무렵엔 더욱 바빠진다. 간밤 아파트 밖 노상에 대놓은 주민들의 차를 안쪽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는 도로의 불법 주정차 단속이 시작되는데 폐쇄회로(CC) TV에라도 찍히면 골치 아프다. 이씨는 허리를 굽혀 길거리에 대놓은 차량의 번호판을 꼼꼼히 살핀다. 9시 전에 출근하는 주민 차량 7대를 빼고 나머지 10대의 번호를 흰 종이에 옮겨 적는다. 초소로 들어가 열쇠 10개를 뽑아 주머니에 챙겨 아파트 주차장에 안착시킨다. “딱지라도 떼이면 우리만 힘들어요. 기껏 차 열쇠 맡겨놨더니 안 옮기고 뭐했느냐고 혼나거든요. 견인 당한 적도 있는데 진짜 피곤합니다. 시간 없으니까 견인한 걸 직접 찾아오라고 해서 급하게 강남 차량보관소까지 다녀온 일도 있다니까요.” 출근시간이 지나도 ‘사모님’들이 집을 나서는 오전 10시 30분까지는 5~10분 단위로 쉼 없이 차를 빼는 일을 반복한다. 블록놀이를 하는 듯하다. 접촉사고도 잦은데 배상은 전부 경비원 몫이다. “차 주인이 좋은 분이면 그냥 넘어갈 때도 있지만 안 그럴 때도 많아요. 나는 700만원까지 물어봤고, 1000만원을 물어준 경비원도 여럿 있습니다. 살짝 긁혀도 몇 개월치 월급을 물어줘야 하지만 시끄럽게 하면 담당라인(동)을 뺏기기 때문에 어디다 하소연도 못해요. 직함상 주차 요원이 아니니까 보험 처리가 안 된다더라고요.” 이씨가 이곳에서 처음 배운 것도 주차관리다. “경비로 처음 오면 일단 6개월에서 1년은 외근(바깥 순찰)을 하면서 차량 종류나 동선 파악하는 일을 배워요. 담당한 동의 차 번호를 싹 외우고, 어떤 차가 몇시에 나가고 들어오는지도 전부 공부해야 돼요. 비번인 경비를 ‘땜빵’ 하면서 주차하는 법을 익히고요. 그렇게 1년 정도 훈련한 뒤에 동(棟) 하나씩을 배정 받습니다.” 경비실 벽에는 번쩍거리는 차 열쇠가 120여개 걸려 있다. 48평형 동에는 절반 이상이, 56평대 동에는 80% 정도가 외제차란다.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츠, BMW, 아우디, 재규어 등까지 모터쇼가 따로 없다. 시동 거는 법부터 사이드미러 펴는 법, 구동방식까지 전부 제각각이라 차를 다뤄야 하는 경비원의 부담은 더 크다. 자동차 열쇠 하나 값이 경비원 월급을 훌쩍 넘는다. “요거 포르쉐는 열쇠 하나가 250만원이에요. BMW 열쇠는 30만원짜리고요. 지난번에 옆 동 경비원이 포르쉐 키를 잃어버렸다가 물어내라고 해서 주인한테 싹싹 빌고 왔잖아요.” 이게 다 협소한 주차공간 때문이다. 1970년대 고급 민영아파트 바람을 타고 지어진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하 주차장은커녕 주변에 마땅한 공간이 없는 데다 차를 두 세대씩 갖고 있는 주민도 많아 공간은 더욱 비좁기만 하다. 2002년 지어져 ‘부촌의 명성’을 넘겨받은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부러운 대목. 이씨는 “그 동네는 지하주차장도 널찍하고 현대식 보안시설로 무장돼 있어 경비가 편해 보인다”고 입맛을 다셨다. 이씨처럼 마음 졸이며 아침 저녁으로 운전대를 잡는 현대아파트 경비원은 총 106명에 이른다. 그래도 ‘담뱃값’이라며 주민들이 찔러주는 돈이 짭짤하다. 이씨는 “나는 한 달 20만~30만원 정도 생기는 편인데, 한 달에 100만원 정도를 담뱃값으로 받은 동료도 있더라”고 귀띔했다. 주차를 마치고 한숨 돌리고 나면 오전 10시 30분에는 배달 도시락으로 ‘아점’(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 뜨거운 물을 마시며 꾸역꾸역 넘긴다. 마침 얄궂은 인터폰. 이씨는 “아파트 통로에 불이 안 꺼졌다는 전화”라면서 바로 숟가락을 놓고 출동한다. 출근 전쟁이 끝나 정신을 추스르고 나면 분리수거함 정리, 꽁초줍기, 눈쓸기, 불법전단지떼기 같은 일반적인 경비원 업무가 기다린다. 하루에 순찰을 3차례 이상 돌면서 수상한 사람, 낯선 사람을 걸러낸다. 경비원마다 할당된 담당 구역이 있는데 그 라인에서 도둑이 들거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고감이다. 오후 2시. 초소에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또 인터폰이 울린다. 경비실에 맡겨 놓은 택배를 갖다달라는 요청이다. 이씨는 과일바구니를 들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세상이 흉흉해서 그런지 여기 분들은 택배 배달원이 직접 집으로 갖다주는 것도 싫어하더라고요. 경비실에 일단 맡기고 제가 갖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값비싼 물건이 대부분이라 혹시라도 없어지지 않을까 늘 전전긍긍해요.” 이들을 긴장시키는 건 빡빡한 인사평가다. 인사고과는 5등급으로 나뉘고 누적 차등적용, 연봉제까지 적용된다. 입사 동기라도 7~8년 지나면 월급이 30만원 가까이 차이난다. 자잘한 사고를 경비원들 쌈짓돈으로 막는 이유도 괜히 고과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우려돼서다. 이씨는 “힘들고 고달프다”고 했다. 마음 졸이며 외제차 핸들을 잡는 일상도, 손자뻘인 아이들에게 꼬박꼬박 인사하는 모습도, 여러 동마다 하나씩 있는 지하 화장실에 뛰어다니는 생활도. 하지만 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은 용역업체에 소속된 대부분의 경비원들과 달리 아파트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다. ‘내 일터’라는 소속감과 자부심이 강할 수밖에 없다. 정년이 만 60세까지 보장되고 ‘담뱃값’이 쏠쏠한 점도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키는 매력이다. 이씨는 “다들 그렇지 않아요? 욕하면서도 회사 다니고 일 열심히 하잖아요. 좋든 싫든 정든 직장이고 해고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젊고요”라며 웃었다. 글 사진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문화마당] 커피전문점에서 길을 잃다/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커피전문점에서 길을 잃다/주원규 소설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겐 부득이하게 마감이란 벽에 부딪힐 때가 다반사다. 마감에 쫓겨 원고를 송고해야 하는 일간지나 정기 간행물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때론 프리랜서를 표방하며 자신만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마감은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출판사에 보내야 할 원고를 미루고 미루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만 적이 있었다. 그것도 매우 긴박하게 원고지 매수로 환산해 800장 가까이 되는 분량을 나흘 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필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커피 그리고 커피전문점이었다. 금연 이후 필자에게 커피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최상의 기호품이었기에 자연스레 커피 음용을 생활화했고, 그러다 보니 과부하가 예상되는 작업을 앞두고 커피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24시간 커피전문점을 임시 집필실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월요일 오전 6시에 노트북과 원고 뭉치를 잔뜩 챙긴 가방을 둘러메고 홍대에 있는 커피전문점을 찾았을 때만 해도 사실 필자는 일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목요일 오전까지 꼬박 나흘간 그곳에 틀어박힌 필자의 탁자 위에 쌓이는 머그컵만큼이나 필자의 눈에 비친 커피전문점의 풍경은 1인 코피스족, 또는 프리랜서들의 전용 공간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커피의 미학은 단연 휴식, 잠시 멈춰 서는 여유에 집중되어 있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기에서 우리는 일상의 정지를 경험하고, 캐러멜 라테의 달콤함에서 여유를 느낀다. 하지만, 커피의 또 다른 미학은 여유와 일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여유와 일, 두 개념은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사회에선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커피는 우리에게 여유와 함께 일의 동거를 허락해 준다. 일을 하면서도 쉼을 느끼고 쉬면서도 일을 지속하는 이 묘한 동거가 많은 프리랜서를 커피전문점으로 찾아오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커피는 여유와 일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 울타리 안에 가두고 사육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커피는 여유와 일 모두를 풀어준다. 한 마디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길의 상실을 마냥 부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강요해 온 길은 다양성이 압살되고 개성이 거세된 하나의 목표만을 제시해 왔다. 또 그 목표를 성취하고자 가장 빠른 지름길만 찾아다니는 것이 최상의 가치로 인정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명확하게 제시된 획일적 목표와 그 목표를 위해 내달리는 길은 다양성이 혼재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선 어딘가 모르게 미심쩍은 미숙함을 체질적으로 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미숙한 체질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게 하는 것, 여유와 일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또 한편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강요해 온 단선적 편견에서 비롯된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것, 이른바 자발적 길 잃기를 독려하는 곳이 바로 커피 향기를 머금은 커피전문점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유감스러운 건 길 잃기를 가능케 하는 커피의 미학을 담아내야 하는 커피전문점이 ‘빨리빨리’의 목표의식에 너무나 충실히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는 커피전문점은 대규모 마케팅과 엄청난 물량공세가 빚어낸 몇몇 상표를 소비하는 장소가 결코 아니다. 이렇듯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는 가맹점 커피전문점에서 또 다른 경쟁논리만 남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부디 부탁이니 커피마저도 줄 세우지 마시기를. 진하디 진한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담은 공간만큼은 그냥 내버려 두시기를. 길을 잃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다그치지 마시기를 제안한다. 그것이 커피예찬론자 중의 한 명인 필자가 원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경북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경북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농촌 마을에 봄이 깊어지면 농부는 유쾌함이 동반된 분주함으로 몸과 마음이 설렌다. 못자리를 살피고, 볍씨를 파종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한창 바쁘다. 길가에 줄지어 서서 꽃 피운 벚나무는 어느새 가지마다 연초록의 잎사귀를 한가득 돋웠고, 하얀 꽃잎은 봄눈이 되어 흩날린다. 농촌의 분주함은 길가의 낮은 둔덕에 아무렇게나 솟아오른 쑥을 캐는 할머니들의 손길에서도 느껴진다. 쌉싸름한 쑥개떡이라도 쪄 먹으려면 다 자라 쇠기 전의 여린 쑥을 뜯어야 한다. 환한 꽃으로 밝아온 농촌의 봄이 깊어지면서 마을의 풍요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도 만개한다.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는 농촌의 봄은 그래서 햇살뿐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까지 한없이 밝다. ●해마다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일본 노인 낙동강변의 풍요로운 농촌 마을 경북 구미 옥성면 농소리. 마을 회관 앞 도로변의 낮은 둔덕 풀밭에 마을 노인들이 쑥을 캐러 나와 앉았다. 노인들의 굽은 어깨너머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구쳐 오른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바라다보인다. 마을 회관 지붕에 놓인 대형 스피커에서는 ‘봄 노래’가 쉼 없이 흘러나온다. “나무 앞의 간판에는 저 나무를 400살이라고 해놨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실제 나무의 나이는 1000년도 넘었어. 내 고조부 때부터 그렇게 이야기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알고 있지.” 이 고장에서 태어나 군대 생활 몇 년 빼고는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토박이 이성록(74) 노인은 나무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나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언제 심은 나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400살이라고 쓰인 문화재청 안내판의 나이는 틀렸다고 단언한다. “어떻게 우리 나무를 알았는지, 일본 후쿠시마에 산다는 팔순 노인이 몇 해째 거푸 찾아왔어. 그 사람 말이 재미있어. 옛날 중국에서 매우 큰 은행나무의 자손으로 자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거야. 그 나무 중의 딸 나무가 바로 우리 은행나무고, 아들 나무인 수나무는 일본에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일본 나무와 우리 나무가 남매라는 거야.” 지난해 가을에도 몇 사람의 동반자와 함께 찾아와서 한참 동안 나무만 바라보고 돌아갔다고 한다. 자신의 신분과 나무를 찾아온 목적을 또렷이 밝히지 않아 처음엔 그냥 관광객 정도로만 보았는데, 세 차례나 반복되는 그의 방문은 예사로이 여길 수 없었다고 한다. 전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문헌이나 증거도 없다. 곁에서 쑥을 캐며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들도 그 일본 노인의 태도가 대단히 진지했다고 덧붙인다. ●안녕을 기원하는 시월 동고사 그럴 수도 있고,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증명할 자료는 없다. 그러나 마을에서 오래도록 전해온 이야기나 일본 노인의 이야기가 모두 나무의 나이를 1000년 넘게 본다는 주장이다. 1970년에 문화재청은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 제225호로 지정하면서 나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전제했다. 전문가의 조사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은 마을 근처의 지명 가운데에 ‘바윗골 절터 양지’라는 표현이 있어서 나무 곁에 절이나 장터가 있었고, 나무는 절집과 관계있을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나무의 나이를 400살 정도 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결과이지만, 식물학적 생육상태로는 400살쯤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지금 나무의 키는 21.6m, 줄기 둘레는 11.9m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모든 은행나무를 통틀어 무척 큰 나무에 속한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나무가 1000년을 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그러나 어차피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측량할 어떤 근거도 없는 이상 마을 사람들의 말을 비과학적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정확한 수령의 측정보다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키며 살아가는 나무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가 더 중요한 까닭이다. “시월 상달에 처음 드는 오(午)일에 동고사(洞告祀)를 지내지. 마을에서 제일 깨끗한 사람을 제주로 정하는데, 제주가 되면 몸을 더럽힐 일을 피하느라 바깥출입도 금하면서 제사를 준비해야 해. 옛날에는 집집이 쌀 한 되씩을 갹출해서 제수를 준비했는데, 요즘은 현금으로 40만원쯤 모아서 제수를 준비하지.” 15년 전쯤에 동고사를 지내지 않고 해를 넘겼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마을에 흉한 일이 빈발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기는가 하면, 젊은 사람이 몹쓸 병에 걸려 쓰러지기도 했다. 궁리 끝에 다시 동고사를 올렸고 마을엔 평화가 돌아왔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가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서의 의미로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가을엔 단풍이 아주 좋지. 열매가 많이 맺혀서 냄새도 대단해. 해거리를 하기 때문에 그 양이 들쭉날쭉한데, 잘 열리는 때에는 다섯 가마 정도를 거두지. 그걸 내다 팔아서 동고사 지내는 비용에 보태.” ●앞으로도 천년의 세월을 살아야 할 나무 긴 세월 속에 정확한 나이를 잊은 한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하늘 끝에 나뭇가지를 내걸고 마을의 살림살이를 화평하게 지켜온 나무다. 1000살이든 400살이든 말없이 사람의 마을을 지켜온 것처럼 앞으로도 수굿이 제자리를 지킬 것이다. 마을 어디에서라도 하늘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길에 걸리는 한 그루의 나무를 사람들은 언제까지라도 삶의 지킴이로 기억할 것이다. 파릇이 새잎 돋우고 늘어진 가지들이 지어낸 나무 그늘의 평화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글 사진 구미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북 구미시 옥성면 이곡1길 10(농소리). 중부내륙고속국도의 상주나들목으로 나가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낙동대로를 타고 선산 대구 방면으로 간다. 10㎞ 남짓 가면 낙단교차로가 나온다. 오른쪽 도로로 빠져나가서 낙단대교 아래를 지나 700m 뒤에 이어지는 교차로에서 오른쪽 도로를 이용한다. 국도 59호선을 이용해 6.3㎞ 직진하면 농소2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도로 위에서 마을회관 뒤편으로 높지거니 솟아오른 나무가 먼저 보인다. 나무 곁에 자동차를 세울 공간이 없으니 회관 앞 도로 옆에 주차해야 한다.
  • [2012 런던올림픽 D-100] “현장 가봐야 누가 잘 하는지 알지”

    [2012 런던올림픽 D-100] “현장 가봐야 누가 잘 하는지 알지”

    기자는 종종거리며 뛰다시피했다. 엉덩이를 붙일 틈이 없었다. 체력엔 자신있었는데 오후쯤 되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차 마시며 편안하게 인터뷰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런던올림픽을 100여일 앞둔 박종길(66) 태릉선수촌장을 하루 쫓아다닌 소감이다. 지난 12일 박 촌장은 쉼없이 훈련장을 누비며 “현장을 봐야 누가 잘하는지, 선수들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선수촌장의 ‘분(分)치기 삶’을 옮긴다. ●AM 6 새벽훈련 선수로, 감독으로, 촌장으로 40여년을 태릉에서 보낸 박 촌장은 에어로빅과 러닝으로 아침을 연다. 졸린 눈의 선수들과 달리 오전 5시 30분이면 선수촌을 도는 촌장의 눈빛은 살아 있다. 비가 와 새벽훈련이 취소돼도 우산을 들고 뛴다고. 날씨가 너무 안 좋을 때는 실내에서 108배를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바로 뒤 불암산을 오른다. ●AM 9 간부회의 매일 아침 유정형 운영본부장, 윤옥상 훈련지원팀장, 송상우 관리팀장이 촌장실에 모여 크고 작은 안건을 다룬다. 이날은 태권도 국가대표선발전-레슬링 런던대책회의-역도 아시아선수권 결단식 등 일정은 물론, 올림픽 D-100 일정까지 미리 챙겼다. 촌장은 “요새 OO종목 애들 표정이 어둡더라. 전과 다르다.”며 감독에게 물어 사기 진작책을 알아오라고 했다. ●AM 10 언론 인터뷰 대사를 앞둬서인지 사흘 연속 인터뷰가 잡혀 있다. 박 촌장은 “내 기사가 많이 나와 민망하다. 하지만 선수들은 훈련에 방해될 수 있으니 나라도 궁금증을 해소해줘야 한다.”며 응했다. ●AM 11 태권도 대표선발전 올림픽 본선만큼 힘들다는 국내선발전. 발차기 한 번에 운명(?)이 좌우되는 치열한 현장에서 박 촌장도 “애들 실력은 백지장 차이인데.”라며 마음을 졸였다. 태권도협회 임원들과 만나서는 “다른 건 안갯속이어도 태권도는 (금메달이) 확실하잖아요.”라고 압박을 듬뿍 줬지만, 선수들 앞에선 그저 자애로운 미소만 지어 보였다. ●낮 12 점심식사 선수촌을 찾은 최종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과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양사부터 식사 중인 직원들까지 정답게 인사를 나눴다. 박 촌장은 태릉선수촌에 사는 선수들과 직원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운다. ●PM 1 회의 박 촌장은 “한국스포츠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며 회의를 비공개로 하겠다고 했다. 탁자에 둘러앉아 1시간 회의가 이어졌고, 다음 1시간은 문제의(?) 현장을 돌았다. 사소한 농담부터 선수단 현황보고, 다소 무리한 부탁까지 민원이 넘쳐났다. ●PM 3 역도 결단식 런던에 나설 대표를 뽑는 아시아선수권대회(24~30일·평택)를 앞두고 역도대표팀 결단식이 열렸다. 박 촌장도 당연히 참석해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을 격려했다. 선수들에게 “재밌냐?”고만 물었고 “세계정상이 되는 건 당연히 쉽지 않다. 즐기면서 재밌게 해야 성공한다.”고 했다. ●PM 4 선수촌 순회① 본격적인 ‘현장 방문’. 박 촌장은 여자단체전 훈련이 한창인 리듬체조를 먼저 노크했다. 매트의 청결상태부터 연습장 온도, 선수들 컨디션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이어 여자레슬링, 여자핸드볼, 배드민턴, 남자레슬링, 복싱 연습장을 차례로 돌았다. 선수들은 늘 그랬다는 듯(!) 살갑게 인사했다. 복싱 신종훈은 “촌장님이 아빠같이 잘해주셔서 꼭 금메달 따야 돼요.”라고 잽을 날렸다. ●PM 5:30 선수촌 순회② 이번에는 여자유도장을 찾았다. 이원희 코치에게 선수들 컨디션을 묻고, 몇몇에겐 이름을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같은 승리관 지붕 아래 새로 지어진 탁구장도 둘러봤다. 박 촌장은 “(5월 초 입촌할) 탁구선수들한테 빨리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체조연습장까지 둘러보고 이날의 현장방문은 끝났다. 일정을 함께한 이옥자 지도위원은 “매일 이렇게 훈련장을 둘러보신다.”고 혀를 내둘렀다. ●PM 6:30 저녁식사 배식 전에 밥 먹는 선수들 사이를 쭉 돌았다. 땀에 전 선수에겐 두툼한 옷을 억지로 입혔고, 밥맛이 없는 선수에겐 고민을 물었다. 배드민턴 이용대에게는 전화번호를 땄다(!). 식당이 한가해진 7시 30분을 넘겨 들어온 여자 유도팀까지 모두 살핀 뒤에야 자리를 떴다. “선수들뿐 아니라 나도 세계 각국 선수촌장들과 경쟁한다. 1등이 되겠다.”던 약속은 허풍이 아니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수입 95% 저축… 5년 더 땀 흘리면 예전 삶으로”

    2010년 4월 어느 날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한 아파트 옥상. 난간에 걸터 앉아 불콰해진 얼굴로 연신 소주를 들이켜는 이성식(45·가명)씨의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순간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와 이혼한 뒤 우울증 때문에 2005년부터 집에서 주식 투자에만 매달렸던 그는 1억원을 잃고 빚까지 얻은 상태로 거리로 나와 고시원 생활과 노숙을 하며 살아왔다. 이혼 전에는 잘나가는 영어학원 강사에 토끼 같은 딸을 둔 가장이었지만 하루아침에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떨리는 입에서 “인생 이렇게 살아서 뭐해. 그냥 죽자.”는 말이 나왔지만 순간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딸을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에 이씨는 아파트를 내려와 무작정 둔촌동 지구대로 달려갔다. 지구대장에게 “살 곳도, 돈도 없지만 죽을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으니 도와 달라.”고 사정했다. 다행히 경찰의 소개로 서울 강동종합사회복지관의 노숙인 쉼터에 입소할 수 있었다. 쉼터의 규칙은 엄격했다. 자활 과정 도중 번 돈의 50%를 저축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유흥으로 돈을 탕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서울시 신용회복지원사업을 소개해 빚을 일부 탕감해 줬다. 이씨는 건설일용직으로 공사장에서 벽돌부터 날랐다. 첫 일당은 5만원이었지만 일이 익숙해지자 12만원까지 받았다. 그는 소개비 10%를 뗀 나머지 돈의 95%를 저축했다. 한 달에 180만원을 저축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보호시설 노숙인 1222명의 저축실적을 검토해 이씨처럼 소득 대비 저축률이 높은 70명을 ‘올해의 노숙인 저축왕’으로 선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4억 6000만원을 벌어 절반 이상인 2억 6000만원을 저축했다. 상위 7명은 수입의 90% 이상을 저축했다. 저축왕이 되려면 6개월간 꾸준히 근로소득이 있어야 하고,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시는 상위 7명에게 상장을 주고, 70명은 오는 3월 ‘희망플러스통장’ 가입자로 추천한다. 희망플러스통장은 저축액만큼의 금액을 시에서 지원해 저소득층의 자활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생명의 窓] 휴(休)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생명의 窓] 휴(休)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레비라는 랍비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달려가는 남자를 보았다. “왜 그렇게 달려가는가?” 랍비가 묻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행운을 잡으러요.” 이 말에 랍비는 말했다. “어리석은 자군. 자네의 행운이 자네를 붙잡으려 뒤쫓고 있는데, 자네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어.” 무엇에 홀린 듯 뛰어다니는 현대인을 위한 한 방이다. 아니 멀리 볼 것 없이 그대로 매일 시간대별로 꽉 찬 일정을 헉헉거리며 소화하던 필자를 향한 꼬집음이다. 올해는 그나마 안식년이라 조금 덜 켕기지만 어쨌거나 한창 활동 중일 때도 1년에 7, 8월은 꼭 비워 두곤 했다. 이 기간 동안 독서와 집필 그리고 기획·방송·녹화에 전념하면서 푹 쉰다. 어찌 보면 이런 것들도 일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필자에게는 그저 노닥노닥 즐길 수 있는 낙()일 따름이니 가능한 것이다. 휴가철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할애할 시간이 없는 삶, 일몰을 감상할 시간이 없는 노역, 의무를 위해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해야 하는 굴레 등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를 만끽할 계절인 것이다. 휴(休)는 단지 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에서는 흔히 서서히 크레센도로 음악을 점점 높여 가다가 갑자기 뚝 멈춘다. 그 침묵의 순간에 나오는 대사는 어떤 것이든 보다 분명하고 보다 강력하게 들린다. 침묵을 배경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사에는 특별한 힘이 실리는 것이다. 이는 그대로 음악에도 적용된다. 음악을 들을 때, 포즈 곧 휴지(休止)의 박자를 유념해서 들어 보라. 무언가 심오한 느낌이나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연설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틴 루터 킹의 그 유명한 연설문을 보자. 그 박자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드디어 자유입니다. (휴지) 드디어 자유. (휴지) 전능하신 신께 감사드리나니 우리는 드디어 자유를 찾았습니다.” 요컨대 휴는 삶의 강약과 리듬을 조절하는 결정적인 인자이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반드시 쉬어 가야 할 장소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오아시스에서 쉬어야 할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 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상하게도 멈추어 쉬고 활력을 되찾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잠시 멈추어 있다면 이 기간이야말로 충전의 시간이요, 도끼날을 가는 시간임을 명심하라. 바쁘게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바쁘다’는 의미의 한자 ‘망’(忙)은 다음과 같은 두 글자의 조합임을 알게 된다. 바로 ‘마음’(心)과 ‘죽음’(亡), 즉 ‘마음을 죽인다.’는 뜻이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행동주의와 과로와 스트레스로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있는가. 휴의 가치를 가장 잘 깨닫고 활용할 줄 알았던 민족은 역시 유대인이다. 그들은 오늘날도 안식일을 글자 그대로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안식일 하루를 온전히 쉬기 위해 모든 가사를 금요일 저녁 이전에 해치운다. 그러고는 안식일에는 일체의 노동을 피하고 미리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심신을 편안히 쉬게 한다. 안식일에 가장 큰 덕으로 숭앙받는 것은 ‘게으름’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문화에서는 휴일이나 휴가 문화가 오히려 더 많은 일거리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그동안 밀렸던 빚을 받아 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블루 먼데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쉴 때는 그냥 쉬는 것이다. 한껏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다. 황금 같은 휴가철, 게으름의 권리를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말 일이다. 휴- 하라! 고단한 몸의 긴장을 풀고 충분히 충전하라. 그래야 더 멀리 갈 수 있고,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9)강릉 오죽헌 율곡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9)강릉 오죽헌 율곡매

    사람살이의 오래된 자취를 간직한 고택이나 산사와 같은 문화재에서 옛사람의 흔적을 가장 많이 담고 서 있는 건 노거수(巨樹), 나무다. 옛 건축물이나 조형물은 오래 지키기 위해 사람의 손을 조금씩 덧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솜씨 좋은 건축가라 해도 오래된 나무만큼은 새로 지어낼 수 없을뿐더러 덧댈 수도 없다. 옛 사람들의 숨결을 조금씩 담아내며 살아온 나무를 사람이 흉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나무는 앞서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오래된 문화재의 안팎에서 옛사람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참으로 소중한 자연문화재다. 물론 그의 깊은 속내를 들춰내는 건 사람에게 주어진 몫이다. 오래된 문화재를 찾는 사람들 가운데 그 안에 남아 있는 나무를 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숨결이 남아 있는 강릉 오죽헌 뒤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매화나무 앞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사람살이의 오랜 자취를 담고 있는 오죽헌의 큰 나무에 눈길을 맞추는 사람을 수굿이 기다렸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찾아드는 단체 관광객들은 쉼 없이 이어지지만, 뒤란의 큰 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추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큰 나무가 매실나무 맞아? 정말 크네.” “여기 그렇게 써 있잖아. 신사임당이 살아있을 때부터 있던 나무래.” ●오죽헌을 짓고 심은 600살 된 매화 말없이 스쳐 지나는 사람들 틈에서 신혼 부부로 보이는 한쌍의 젊은 연인이 나무 앞의 안내판을 바라보며 허투루 두어 마디 던지고는 곧바로 걸음을 옮긴다. 나무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나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더 흘려 보냈다. 공들여 사진을 찍고,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며 나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여대생 정은선(22)씨가 나무를 찾아온 건 한 시간쯤 지난 뒤였다. 정씨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도 걸음을 떼지 않고 신기한 표정으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에 대해 잘 몰라요. 그런데 안내판을 보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님이 애지중지 키운 나무라는 게 신기해요. 나무의 내력을 알고 나니, 오죽헌 방 안에서 사임당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해요.” 2007년 가을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된 강릉 오죽헌 율곡매는 ‘율곡매’라는 이름으로 매화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매화나무다. 600여 년 전인 1400년대 초반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이 집을 짓고, 뒤란에 심은 나무다. 신사임당이 이 집에 머무를 당시에는 이미 100년쯤 된 큰 나무였다. 사임당은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맏딸의 이름에 매화를 넣어 매창(梅窓)이라 한 것도 매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뒤란의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폈을 게 틀림없다. 사임당이 남긴 그림 가운데에는 고매도, 묵매도 등 매화를 소재로 한 그림도 여럿 있다. 대개는 자신의 집 뒤란에서 도담도담 자라는 이 매화나무를 보고 그린 것이지 싶다. 이 나무가 율곡매라는 이름을 얻은 건 최근의 일이다. 오래된 매화는 대부분 자기만의 고유 이름을 가진다. 오래전부터 선비들은 매화를 좋아했던 까닭에 그의 기품을 살리기 위해 특별한 이름을 붙였다. 이를테면 남명 조식이 심은 매화를 남명매, 퇴계 이황이 키운 도산서원 매화를 퇴계매 등으로 부르는 방식이다. 오죽헌 매화나무는 율곡 선생이 사임당과 함께 키운 매화여서 율곡매라 이름했다. 율곡매는 연분홍 꽃을 피우는 홍매로 키가 7m를 넘고, 줄기 둘레는 2m 가까이 된다. 나뭇가지는 동서로 8m, 남북으로 7.4m나 뻗어냈다. 우리나라의 여러 매화나무 가운데에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다. 600살이라는 나이 또한 우리나라 최고령의 매화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매화는 은은한 향기가 좋은 나무다. 옛 선비들은 그래서 매화향을 암향(暗香)이라 했다. 코를 찌르는 짙은 향기는 아니지만, 은은하면서도 아득히 멀리까지 퍼진다는 것이다. 또 매화의 암향을 감상하는 걸 선비들은 문향(聞香)이라 했다. 코를 바투 들이밀고 향기를 맡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깨뜨리면서 고요하게 번져오는 향기를 귀로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번잡한 저잣거리가 아니라, 선비의 고택이나 천년고찰의 정원에 서 있는 매화를 매화 중의 으뜸으로 꼽는 근거다. ●오죽헌 앞마당엔 ‘명품’ 배롱나무 오롯이 꽃 지고 열매 맺는 여름이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오죽헌의 옛 풍광이 그려진다. 정갈한 방안에 든 사임당은 침묵 속에서 벼루를 갈아 한 송이 매화 꽃을 그리고, 뒤란의 매화는 까무룩이 암향을 퍼뜨리는 풍경이 긴 세월의 늪을 탈출해 살아난다. 오죽헌의 앞마당에는 오래된 명품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여름에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다. 이 배롱나무 역시 율곡매와 같은 나이의 나무로 사임당이 이곳에 머물 때 함께 있던 나무다. 뒤란의 율곡매가 꽃 지고 열매를 매달 즈음, 앞마당의 배롱나무는 서서히 붉은 꽃을 피워 여름 한낮의 무더위를 희롱한다. 오죽헌에서 율곡매와 배롱나무 없이 신사임당과 율곡의 자취를 온전히 느끼는 게 불가능하다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그러나 두 나무는 모두 사임당보다 먼저 이곳에 자리잡고 살았다. 바라보는 사람이 없어도 나무들은 옛사람의 손길을 어떤 건축물보다 생생하게 오래 간직할 것이다. “나무를 잘 모른다.”면서도 “나무가 참 좋아요.”라며 떠난 여대생 정씨의 한마디가 유난히 고마운 이유다. 글 사진 강릉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201. 강원 양양에서 동해를 잇는 동해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 동해고속국도의 강릉 요금소를 나온 뒤 왼쪽의 강릉 방면으로 원주대학교 캠퍼스까지 간다. 원주대학교 정문 로터리에서 우회전하여 800m 남짓 북쪽으로 가면 오죽헌 담장이 보이는 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면 곧바로 오죽헌 입구의 주차장에 닿게 된다. 시내 곳곳에 오죽한 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일고여덟살 무렵부터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신문을 펼치는 사람은 나였다. 아침에 눈만 뜨면 내복바람으로 달려나가 신문을 집어들고 와서 먼저 펼쳤던 것이 ‘TV편성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색연필까지 들고서 만화영화의 편성시간대에 체크를 하고, “~하고 마는데…” 하고 끝나는 프로그램 예고기사를 두근거리는 맘으로 읽기도 했다. 여덟 살 꼬마에게 신문읽기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신문사랑’은 계속되었다. 열살 때는 연재소설에 맛을 들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야했다. “보지 마라.”는 부모님의 핀잔은 어린 가슴에 불을 댕겼고, 그 이후로 아침마다 가장 먼저 신문을 읽고 나서는 안 읽은 척, 새 신문인 것처럼 각을 잡아놓곤 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몰래 읽는 스릴이 최고였다. 나이가 들고 관심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스포츠 섹션, 시, 짤막한 칼럼, 독자참여란이나 오피니언 등의 순서로 ‘열독 코너’의 수준이 높아지고 범위가 확장되어 갔다. 서울신문에서 요즘 가장 즐겨 읽는 코너는 토요일자 서평 섹션이다. 마음만큼 책을 읽지 못하는 욕구불만을 서평으로 대리만족하곤 한다. 이렇게 자잘한 재미를 찾아 신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신문과 친해지고 그 이로움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하여 신문을 읽는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소소한 즐거움이 있기에 신문을 집어들게 된다. 매일 아침 펄떡거리는 새 뉴스를 상에 올리는 신문이지만 고정적으로 즐겨 찾는 밑반찬 같은 코너가 있다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위안은 자못 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일까. 눈에 들어오는 편집과 디자인 덕에 전체적으로 읽어 나가기에는 쉬운, 젊은 느낌의 신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을 붙일 만한 피처기사들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취약하다는 점은 아쉽다. 유머는 한물간 것이고, 날씨는 지면 중간 애매한 곳에 있어 가독률이 떨어진다. 만화, 만평, 운세는 다른 신문과 별반 차이가 없다. 풍부하고 충실한 내용 이외에도 독자의 충성도를 높여줄 ‘갈고리’를 추가로 장착할 것을 제안한다. 서울신문은 지난 19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연재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국 신문소설의 역사, 나아가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는 시대지만 여전히 연재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전력을 살려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실험적인 작품의 연재는 어떨까. 서평이나 문화면에서도 차별화를 권한다. 서평 전문기자의 충실하고 풍부한 서평은 지금도 좋다. 책의 주제를 쉽게 함축한 디자인에는 눈이 덜컥 가서 걸린다. 하지만, 책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그냥 화제작이나 신간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읽어 볼 만한 책이라든지 특정 주제의 책을 묶어 소개하는 식으로 기준을 다양화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구색갖추기용 지면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 신문을 읽을 때 먼저 1면을 대충 훑어보고 그 다음 뒤로 넘겨 신문을 펼친다고 한다. 오피니언 면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거리가 ‘길섶에서’와 ‘씨줄날줄’ 이다. 주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히 풀어낸 글은, 편하게 앉아 현명한 인생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 같아 좋다. 기사를 읽기 전 혹은 후에 쉬어갈 수 있는 코너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알차고 풍부한 내용이라도 쉼 없이 읽어 내려면 생각만 해도 숨이 찬다. 물론 그런 것이 신문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정공법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젊은 층이 신문을 외면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도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어릴 적 그 설렘을 다시 떠올리며 깊이 있는 신문, 살아있는 신문에 더해 재미있는 신문, 정이 가는 서울신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의 삶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21세기 삶의 원형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단순한 역사 속 영웅, 그것도 침략자로 일컬어지는 다른 나라의 영웅을 그려내는 역사소설인 것만은 아닌 이유죠.” 지난해 7월 몽골로 떠나 울란바토르 외곽에 허름한 방 한칸 구해 놓고 글을 쓰다 잠시 귀국한 소설가 김형수(52)를 지난 22일 서울 서교동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작가블로그(blog.yes24.com)에 장편소설 ‘조드’를 연재하고 있다. ‘조드’는 12~13세기 몽골 유목민의 삶이 담긴 대륙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칭기즈칸 이야기다. 그러나 숱한 칭기즈칸 이야기와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 한다. ‘조드’는 초원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일컫는 몽골어다. 김형수는 1999년 이후 무려 열두 차례나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에 머무는 동안에는 툭 하면 차 빌려서 초원으로 취재 여행을 나갔다. 그렇게 취재한 유목민의 풍속과 삶이 소설로 들어왔고, 초원을 휘감아 도는 바람소리, 늑대의 심상까지 몽땅 담았다. 이것들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원시의 투박함을 닮은 대륙의 서사(敍事)가 되어 김형수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에 담겨 유장히 흘러간다. 그렇더라도 연재 초에 스스로 밝힌 것처럼 ‘침략자 미화’라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터. 그는 “13세기 칭기즈칸의 활약은 너무도 대단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서사에서 그를 단순한 정복자 또는 전쟁 영웅으로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풀어왔던 것은 그가 벌인 전쟁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던 탓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설명. “칭기즈칸의 전쟁은 소통과 교류를 막고 있는 세상의 칸막이를 무너뜨려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예컨대 일제의 침략 지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부족민을 지구인으로 바꾸는 작업, 그 자체였던 겁니다.” 프랑스의 세계적 지성 자크 아탈리가 설파한 ‘디지털 유목민’의 원형은 이렇듯 700~800년 전 칭기즈칸의 사유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그는 “칭기즈칸이 침략자라는 오해는 소설을 다 읽으면 충분히 불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배시시 웃었다. ‘조드’를 읽다 보면 지구와 인간의 관계, 수천년에 걸쳐 나뉘어진 유목민과 농경민의 삶의 방식으로 사유가 연결된다. 그리고 어느새 인류의 시원(始原)까지 생각의 걸음이 닿는다. “네티즌들의 댓글마다 꼬박꼬박 답글 달며 우리 시대의 소통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있습니다. 답글도 작품을 쓰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매일 댓글 다는 스무명 남짓의 열혈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답한다. ‘반가워요. ○○님’라든가 ‘또 오셨네요. ◇◇님’ 같은 의례적 답글이 아니라 치열한 사유를 쉼없이 확장시키는 공간이자 방법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취재 일기’와 ‘작가 노트’까지 중간 중간 달린다. 고향의 기억을 자극하는 시편들까지 읽을 거리로 등장하니 ‘조드’는 그냥 연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학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 알려진 대로 그는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문학평론가다. 그에 앞서 담론 생산자이기도 한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자주적 문예운동론’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지금의 30~40대 작가 가운데 한때나마 사실주의 문학을 접했다면 김형수의 자장(磁場) 언저리에서 글을 쓰고 배웠을 것이다. 김형수는 “올 5월 정도면 일단 초원을 통일하는 데까지 완성될 것 같다.”면서도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서사가 시작하는 연작 장편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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