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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엄 표결 왜 안 했나” vs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죠”…문체위 파행

    “계엄 표결 왜 안 했나” vs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죠”…문체위 파행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20일 ‘비상계엄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긴급 현안질의를 열었지만 여야 공방 끝에 파행했다. 야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일부 여당 의원들의 행적을 지적하며 해명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문체위 전체 회의에서 “오늘 회의는 윤석열의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피해, 내란동조 실태를 밝히기 위한 것”이라며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은 분이 있다”고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을 저격했다. 그는 “계엄 해제 표결을 앞둔 본회의장에 있었음이 사진으로 증명되는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본회의장에서 누군가 통화를 나눴다는 점도 있다. 추정되는 시간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국방위원회에서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졌다고 의원들의 끄집어내라고 한 시각과 비슷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신 의원은 그날의 행적과 사실 확인, 입장 표명을 먼저 해주셔야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신 의원은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것”이라며 “언론마다 소상하고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와있어서 곧 계엄이 해제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의결정족수가 채워진 상태였다”며 “추경호 원내대표와 일부 저희 당 의원들과도 통화해서 ‘지금 본회의장으로 오시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이 격하게 충돌하자 여당 간사인 박정하 의원이 중재에 나섰다. 박 의원은 “엄중한 상황인데 지금 논쟁이 되는 사안은 우리 상임위에서 다룰 일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확인되어야 할 일은 수사를 통해서 확인되고 논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신 의원은 “사실과 다르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강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강 의원은 “계엄 해제 표결을 앞두고 본회의장에 있었는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진이 있지 않나”라며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문체위 상임위하고 별건으로 진행되는 건도 있고 만약에 회의가 저희 당에서 요구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오늘 현안 질의에 계속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여당 의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났다.
  • 나경원 “與의원들, 계엄 때 민주당 지지자들 심한 말에 국회 못 들어가고 당사로 복귀”

    나경원 “與의원들, 계엄 때 민주당 지지자들 심한 말에 국회 못 들어가고 당사로 복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에 여당 의원들이 참석하지 못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때문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의원은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방(산자위)에 어느 위원도 대통령의 계엄에 대해 해야 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위원은 아무도 없다. 대통령께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셨다”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해제 요구에 모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해서 해제 요구에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의원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일찍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국민의힘 대부분의 의원들은 부랴부랴 국회 경내로 들어오려고 했을 때 이미 민주당 지지자들로 국회가 모두 포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 의원들은 국회 경내로 들어가려다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심한 말을 듣고 모두 당사로 복귀해서 해제 요구를 (하려고 했다). 우리가 당사에 있었지만 (야당 의원들의 뜻과) 똑같은 의미였다”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의 이러한 발언에 곧바로 야당 의원들은 “국민 때문에 못 들어온 것처럼 말씀을 하신다”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나경원 의원은 “저희가 (국회 경내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면서 “이제는 우리가 차분해져야 한다. 이젠 계엄 사태를 지나서 탄핵 절차가 끝났다. 헌법 절차와 법의 절차가 있으니 거기에 맡기고 우리는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회의의 목적은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국회가 어떻게 이것을 바로 잡아서 (논의를 해서) 대한민국 경제가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다시 그날의 일정을 복기하는 것이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계엄군을 막으러 온 국민들 때문에 국회에 못 들어왔다고, 목숨을 걸고 국회를 지키려 했던 국민들 탓을 하는 겁니까. 국민들 때문에 못 들어왔다고요?”라며 “정말 정신 좀 차리시라. 지금 나경원 의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날 한걸음에 달려온 국민들 덕분이다. 진짜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 [황수정 칼럼] 누가 폐족인가, 한동훈인가

    [황수정 칼럼] 누가 폐족인가, 한동훈인가

    그래도 2년 반이나 대통령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판단을 했을까. 많은 것이 의문이지만 분명해진 사실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고두고 야사(野史)의 혼군(昏君)으로 남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막아야 하는 계엄령을 왜 평일 밤에 내렸을까. 계엄은 지속 가능했을까. 국방장관은 뭘 위해 다 걸기 도박을 했을까. 이렇게 허술한 각본은 쓰기도 어렵다. 아내를 위해 국정을 던져 버린 대통령. 사실과 소문의 곤죽 속에 윤 대통령은 ‘카더라’ 야사의 주인공이 됐다. 비극의 대통령도 기가 막히지만 희극의 대통령도 기가 막힌다. 무슨 일이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대통령 탄핵도 마찬가지다. 학습효과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집권여당이 지금 학습효과를 적나라하게 입증하는 중이다. 무조건 고개 숙였던 8년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딴판이다. 탄핵소추된 대통령 당사자는 “탄핵에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사과는 한마디도 없다. 탄핵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은 단 사흘도 자숙하지 않았다. 탄핵소추 이틀 만에 당대표 한동훈을 쫓아냈다. 다섯 달 만에 당대표가 축출된 사유는 대통령을 탄핵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것.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국민이 70%를 넘었다. 그러니 한동훈을 쫓아낸 친윤들은 용감하다. 탄핵에 찬성한 동료 의원을 “부역자”, “쥐새끼”라고 비난한다. 색출하자고도 한다. 셀럽처럼 등장한 한동훈이 밑천을 너무 빨리 거덜낸 것은 사실이다. 자주 말을 뒤집었고 번번이 애매한 태도였다. 대통령과의 갈등 국면에서 탄핵까지 리더십의 한계도 드러냈다.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날 때 “시간을 갖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재등판을 늦추고 내공을 쌓고 있었더라면 최선이었다. 엎질러진 물잔. 그렇다고 한동훈이 적어도 친윤한테 멍석말이를 당할 이유는 없다. 탄핵이 가결되지 않았다면 국민의힘은 성난 민심을 감당 못 해 정당 존립을 걱정했을 판이다. 보수 궤멸을 재촉한 책임은 윤 대통령과 친윤들에게 있다. 당대표 이준석을 쫓아내 뺄셈의 정치를 하다 소수당으로 쪼그라졌다. 그러고도 같은 패착을 또 반복했다. 당론으로 탄핵을 반대하며 “똘똘 뭉치자”던 친윤 집단에 상식 있는 국민이면 시선을 접는다. 당권을 쥐겠다는 이름들이 벌써 들린다. 사람들은 하품부터 하고 있다. 한때 윤 대통령도 기대를 받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책을 27년이나 끼고 살았다고 했다. 후보 시절의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자유주의 이념을 그의 방식대로 소화한 내공이 있겠거니 믿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뒤 책 한 줄 읽는다는 풍문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이 때가 되면 내놓는 그 흔한 ‘휴가 도서’ 한 권도 들어 본 적 없다. 쓴소리하는 신문을 멀리한다더니 아예 유튜브만 본다는 소문이 돌았다. 철학이 없으면 리더십은 황폐할 수밖에 없다. 부정선거 같은 황당한 음모론에도 휘둘리고 만다. 정치 초보라도 성공한 국정 지도자는 많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도 정치 생초짜다. 무정부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경제학자. 큰 기대가 없었으나 포퓰리즘에 중독된 나라를 회생시키고 있어 세계가 놀란다. ‘벨벳 혁명’을 이끌어 노벨평화상 후보에 몇 번이나 올랐던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 그는 극작가였다. 이들 모두 정치 철학이 확고한 리더들이다.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에게 패배했을 때 친노 핵심 안희정은 스스로 “폐족”이라 불렀다. “우리는 실컷 울 여유가 없다”고 자책했다.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이들이 지금 누군가. 친윤들이 폐족이다. 그런 사람들이 반성은 없이 보수의 싹마저 제 손으로 잘라 내고 있다. 오늘의 친윤은 그날의 친노보다 명백히 아랫급이다. 한동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정치인 하나를 만드는 일이 거저 될 리 없다. 준비 덜 된 대통령의 후과가 이렇게 쓰라리다면 기왕에 올라온 싹을 자르는 자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라면 이런 자멸 행위를 과연 이 시점에 했을까. 벚꽃 필 때든 장미 필 때든 조기 대선은 기정사실로 굳어진다. 보수는 불과 몇 달 뒤 어떤 얼굴을 대표선수로 세울 건가. 홍준표인가. 황수정 논설실장
  • 서울의 밤 지킨 시민들… 잊지 못할 그날의 함성

    서울의 밤 지킨 시민들… 잊지 못할 그날의 함성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9분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군은 헬기를 타고 국회운동장에 내렸고 국회 진입과 장악을 시도했다. 45년 전 선포됐던 계엄 때와는 정치권과 국민의 대응이 달랐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상황은 실시간으로 공유됐고 서둘러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계엄군의 탱크와 총구에 맞섰다. 국회는 2시간 만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를 윤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6시간 만에 상황은 종료됐다. 계엄의 후폭풍은 거셌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국내 주식시장이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은 폭등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출국이 금지됐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가 함께 공동수사본부를 꾸렸다. 계엄군 지휘관들은 줄줄이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 대학 등은 시국선언을 하며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를 촉구했다. 야당은 계엄 이튿날 첫 번째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표결이 이뤄진 7일 안철수 의원을 제외한 여당 의원들은 단체로 본회의장을 퇴장하며 탄핵을 거부했다. 이런 가운데 다시 돌아와 표결에 참여한 김예지·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의 결단은 빛났다. 캄캄한 정국 속에서 시민들은 응원봉을 들고 국회대로를 가득 메웠다. K팝 콘서트를 방불케 한 평화 시위는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14일 국회 본회의에 2차 탄핵안이 상정됐고 투표 인원 300명 중 204명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통과됐다. 잠 못 드는 서울의 밤에도 평화로운 밤이 찾아왔다. 계엄 선포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숨가빴던 지난 열흘간의 기록을 사진으로 전한다.
  • “尹 미치광이 캐릭터, 엔딩은 탄핵뿐” 김은숙·이우정…작가들도 탄핵 촉구

    “尹 미치광이 캐릭터, 엔딩은 탄핵뿐” 김은숙·이우정…작가들도 탄핵 촉구

    스타 작가 김은숙을 포함한 작가들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13일 ‘내란의 수괴 윤석열을 탄핵하고 구속 수사 처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 ‘도깨비’ ‘미스터선샤인’ 등을 집필한 김은숙을 비롯해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경성크리처’ 강은경, ‘열혈사제’ 시리즈 박재범, ‘셀러브리티’ 김이영, ‘응답하라’ 시리즈 이우정, 예능 ‘피지컬: 100’ 강숙경, ‘흑백요리사’ 모은설 작가 등이 이에 동참했다. 작가들은 윤 대통령을 향해 “아직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짓밟던 그날의 망상에서 깨지 않았다. 국민을 향해 겨눴던 총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이런 미치광이 캐릭터 주인공 엔딩은 하나 뿐이다. 지금 당장 윤석열을 탄핵하고 구속·수사·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12·3 계엄 당일에 대해 “과거 유물인 줄만 알았던 것들이 현실에 튀어나와 모든 것을 압도하는 기이한 경험에 방송작가들 역시 분노하고 전율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계엄사령부 포고령 3항인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문구를 언급하며 “군홧발로 머리를 짓밟히는 생생한 충격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전초기지로서 시대와 가장 맞닿아있는 방송 현장에 계엄의 전조가 난입한 지 오래됐다”며 “12월 3일 그 한순간으로 국민적 자부심과 국격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K-컬처 위상과 성취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내란의 모든 과정은 진실의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내란 수괴에게 동조·방조·협조한 공범들 역시 부역자 이름으로 박제되며, 두고두고 우리의 원고에 그 이름이 오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요즘이 어느 시댄데” “5월 공포 떠올라”… 대구·광주도 ‘발칵’

    “요즘이 어느 시댄데” “5월 공포 떠올라”… 대구·광주도 ‘발칵’

    대구 야권·시민단체 尹 퇴진 시위대학가에도 곳곳에 ‘탄핵’ 대자보‘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 열고 규탄5월 단체 “또 피를 봐야 하나 싶어” “나라 운영이 장난인교? 요즘이 어느 시댄데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단 말이고.” 4일 오전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대구 중구 달성로 서문시장. 이곳에서 만난 건어물상 이호선(57)씨는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잘하겠다고 해서 나라를 맡겨 놨더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면서 “대통령이 한밤에 내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상인과 시민들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전날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떡을 팔던 한 상인은 고객에게 “‘전쟁 나는 것 아니냐’고 울면서 걱정하는 딸을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일부 상인들은 좌판에 앉아 유튜브를 검색하며 전날 벌어진 일을 뒤늦게 챙겨 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보수의 심장인 대구 민심도 싸늘하게 돌아섰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75.14%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문시장에서 약 10년째 빵과 음료를 파는 강진욱(50대)씨는 “서민들은 경기가 안 좋아서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저런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빵을 사던 손님은 “술김에 저지른 일 아니겠냐”며 거들었다. 이날 대구지역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도 동대구역과 대구시청 앞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 100여명은 ‘윤석열 OUT’,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앞서 지역 노동계와 법조계도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발했다. 분노한 대구 민심은 대학가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북대 캠퍼스에는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었다. 한 사범대생은 “국민이 동의하지 못하는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당장 사과하고 스스로 거취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충격과 공포감 속에 밤을 새웠다. 1980년 5월 계엄령으로 군홧발에 도시 전체가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광주시민들은 “악몽이 되살아난 듯한 밤”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만난 시민 김모(59)씨는 “비상계엄 발동 뉴스를 보는 순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5월 광주’가 떠올랐다”면서 “그날의 공포가 떠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27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날 오전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윤석열 일당을 즉각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새벽부터 5·18민주광장에 나온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또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면서 “광주시민은 반드시 윤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창 시절 5·18을 겪었다는 박모(62)씨는 “고등학생 때 도청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다니며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런 비극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분노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166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됐다. 부상자 수도 2617명에 달했다.
  • ‘보수의 심장’ 대구도, ‘민주화 성지’ 광주도…尹 깜짝 계엄에 화났다

    ‘보수의 심장’ 대구도, ‘민주화 성지’ 광주도…尹 깜짝 계엄에 화났다

    “나라 운영이 장난인교? 요즘이 어느 시댄데,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단 말이고.” 4일 오전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대구 중구 달성로 서문시장. 이곳에서 만난 건어물상 이호선(57)씨는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잘하겠다고 해서 나라를 맡겨놨더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면서 “대통령이 한밤에 내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상인과 시민들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전날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 이야기를 나눴다. 호떡을 팔던 한 상인은 고객에게 “‘전쟁 나는 것 아니냐’고 울면서 걱정하는 딸을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일부 상인들은 좌판에 앉아 유튜브를 검색하며 전날 벌어진 일을 뒤늦게 챙겨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보수의 심장인 대구 민심도 싸늘하게 돌아섰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75.14%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문시장에서 약 10년째 빵과 음료를 파는 강진욱(50대)씨는 “서민들은 경기가 안 좋아서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저런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빵을 사던 손님은 “술김에 저지른 일 아니겠냐”고 거들었다. 이날 대구지역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도 동대구역과 대구시청 앞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참가자 100여 명은 ‘윤석열 OUT’,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앞서 지역 노동계와 법조계도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발했다. 분노한 대구 민심은 대학가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북대 캠퍼스에서는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었다. 한 사범대생은 “국민이 동의 못 하는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당장 사과하고 스스로 거취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충격과 공포감 속에 밤을 새웠다. 1980년 5월 계엄령 속 군홧발에 도시 전체가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광주시민들은 “악몽이 되살아난 듯 한 밤”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만난 시민 김모(59)씨는 “비상계엄 발동 뉴스를 보는 순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5월 광주’가 떠올랐다”면서 “그날의 공포가 떠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27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날 오전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윤석열 일당을 즉각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새벽부터 5·18민주광장에 나온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또 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면서 “광주 시민은 반드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창 시절 5·18을 겪었다는 박모(62)씨는 “고등학생 때 도청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다니며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런 비극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분노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166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됐다. 부상자 수도 2617명에 달한다.
  • “계엄군 총·칼에 짓밟힌 ‘5월 악몽’ 되살아나”…광주시민들 충격·분노

    “계엄군 총·칼에 짓밟힌 ‘5월 악몽’ 되살아나”…광주시민들 충격·분노

    “비상계엄 발동 뉴스를 보는 순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5월 광주’가 떠올랐습니다. ‘또다시 피를 흘려야만 하나’라는 생각에 온 몸이 떨려왔습니다.” 지난 3일 밤 45년 만에 비상계엄령 선포되고 총과 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지켜본 광주시민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되새기면서 충격과 공포로 밤을 지샜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 ‘5월 민주화운동’의 현장인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을 찾은 시민 김 모 씨(59)는 “광주는 5·18당시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계엄군에게 학살당한 아픔이 있는 도시”라면서 “그날의 충격과 공포가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민 박 모씨(62)씨는 “1980년 5월 고등학생 시절 도청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다니며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세대로서 그런 비극을 또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분노했다. 박 모 씨(55·여)는 “국회 앞에 헬기와 함께 장갑차까지 등장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너무도 두려워 TV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며 “서울에 있는 딸에게 연락해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게 어떻게 현실의 2024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며 말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모씨(32)는 “영화에서나 봤던 일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 충격을 받았다”며 “당장 주식시장이 붕괴되는 등 경제를 비롯한 모든 일상이 단번에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개탄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계엄선포 뉴스를 보자마자 1980년 생각이 나면서 ‘또 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면서 “계엄령이 해제돼 다행이긴 하지만 광주 시민은 반드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5·18을 경험하지 못한 최 모씨(31)는 “지금은 유튜브나 SNS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데, 언론이 통제된 5·18 당시에는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안 된다”며 “총칼을 든 계엄군과 학살의 공포 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용기를 내 준 광주시민이 존경스럽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27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4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시국 대회에 참석한 강기정 광주시장은 “계엄의 밤은 가고 심판의 시간이 돌아왔다. 5월의 아픔을 기억하고 배운 우리는 이 상황을 결코 용납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퇴진하는 그날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한편, 1980년 5월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진입한 광주에서는 166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됐다. 당시 부상으로 사망한 이도 113명에 이른다.
  • “신혼 때 독도 지켰다”…日 침략 맞선 ‘독도대첩’ 70주년

    “신혼 때 독도 지켰다”…日 침략 맞선 ‘독도대첩’ 70주년

    “저는 첫 신혼생활을 독도의용수비대 합숙훈련으로 시작했습니다.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이하여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1954년 11월 21일. 일본의 무장순시함 헤쿠라호와 오키호가 독도를 점령할 목적으로 독도에 접근해왔다. 당시 국가의 공권력이 미흡하던 시기에 홍순칠 대장과 대원들은 전투태세를 갖추고 박격포와 소총 등으로 일본의 함정에 맞섰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6·25 전쟁 때 특무상사를 달 정도로 명사수인 제1전투대장 서기종 대원이 박격포 초탄을 명중시켜 배에서 몇 사람이 나가떨어졌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독도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필사의 항전을 펼쳤고 결국 일본 함정은 물러가게 된다. 그날의 ‘독도대첩’이 없었더라면 독도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올해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기념식 행사가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독도의용수비대원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마련됐다. 행사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과 생존 대원 박영희씨를 비롯해 400여명이 참석했다. 박씨는 고인이 된 홍 대장의 아내이기도 하다. 박씨는 “홍 대장을 중심으로 6·25 전쟁 중 부상 당한 몸이지만 피 끓는 청춘들의 애국심 하나로 뭉쳐 독도를 사수했다”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씨는 “그저 국민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해 감동을 줬다. 그는 “비록 50년간 정부의 무관심과 외면을 받아 왔지만 2005년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이 통과돼 기념사업회 출범과 현충원 안장의 예우를 받게 돼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면서도 “어렵고 힘든 시절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다가 대우 못 받아보고 세상을 떠나신 대장님 이하 대원들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고 털어놨다. 이어 “바람이 있다면 생전에 그토록 이루고자 하셨던 홍 대장의 유지대로 이제 독도는 지키는 독도에서 생산하는 독도가 되어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하는 비옥한 영토가 되도록 우리 유가족과 국민 모두가 합심해 잘 보존·발전시켜 나가기를 염원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어려운 시기에 저를 도와주신 여러분께 큰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마쳤다. 행사에 참석한 강 장관은 “홍순칠 대장님을 비롯한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원님들은 6·25전쟁의 막바지 혼란을 노린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3년 8개월간 혼신의 힘을 다해 독도를 지켜냈다”면서 “독도의용수비대원의 헌신이 있었기에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고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국가보훈부는 독도의용수비대원을 비롯해 대한민국을 지켜낸 분들을 국민과 함께 기리고 그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독도의용수비대 소개 영상 시청, 기념 공연, 독도수호 결의문 낭독, 독도의용수비대의 노래 제창 등이 진행됐다. 독도수호 결의문은 독도의용수비대 청소년 명예 대원인 수원 삼일공고, 평택 물류고, 대구 대륜중 학생 대표가 읽었다. 기념식을 마친 후에는 수원 삼일공고 ‘독수리 역사사절단’의 독도 탐방 발대식과 유가족의 독도의용수비대 묘역 합동 참배가 이뤄졌다.
  • 본지 신혜원·황제현 ‘이달의 편집상’

    본지 신혜원·황제현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창환)는 제277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으로 종합부문 서울신문 신혜원 차장, 황제현 기자의 ‘죄를 지은 건 그들인데… 그날의 감옥에 갇혔다’ 등 5편을 선정했다.
  • 경매에 나온 낡은 금시계 ‘27억’에 팔렸다…정체 알고 보니 ‘헉’

    경매에 나온 낡은 금시계 ‘27억’에 팔렸다…정체 알고 보니 ‘헉’

    1912년 침몰한 타이태닉호 승객 700여명을 20여척의 구명보트에 태워 구조해 낸 여객선 선장이 생존자로부터 감사의 의미로 선물 받은 금시계가 경매에서 27억원에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은 타이태닉호 승객을 구했던 RMS 카르파티아호의 아서 로스트론 선장이 생존자들로부터 선물 받은 티파니의 18K 회중시계가 경매에서 156만 파운드(약 27억원)에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이 시계는 타이태닉 침몰로 숨진 미국 재계 거물 존 제이컵 애스터의 부인 등 3명의 생존자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로스트론 선장에 선물한 것이다. 타이태닉호는 1912년 4월 14일 북대서양 한복판에서 빙산과 충돌 후 침몰했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메들린 애스터는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저택에서 로스트론 선장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 시계를 선물했다. 시계에는 생존자인 메들린 애스터와 존 B. 세이어 부인, 조지 D. 위더너 부인의 이름과 함께 ‘세 명 생존자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담아’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스트론 선장은 1912년 4월 15일 새벽 타이태닉호의 조난 신고를 듣고 지중해로 향하던 카르파티아호를 돌려 구명보트 20여척에 타고 있던 700여명의 승객을 구조했다. 그날의 행동으로 로스트론 선장은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의회 훈장을 받았으며 조지 5세 영국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한편 현재까지 타이태닉호에서 수습된 물품 중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은 타이태닉호 침몰로 사망한 미국 재계 거물 존 제이컵 애스터 4세가 남긴 금시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FP,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애스터 4세가 차고 있던 금시계가 영국 경매업체 ‘헨리 알드리지 앤드 손’이 주관한 경매에서 한 미국인에게 117만 파운드(약 20억원)에 팔렸다.
  • 진짜 ‘美 핵잠수함’ 낚은 어부들 사연…“물고기와 함께 대형 어망에 걸려”[핫이슈]

    진짜 ‘美 핵잠수함’ 낚은 어부들 사연…“물고기와 함께 대형 어망에 걸려”[핫이슈]

    미국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이하 USS 버지니아)이 소형 어선에 ‘낚이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현지 외교·안보전문지 더 내셔널인터레스트가 1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날 노르웨이 북쪽 솜마뢰위 항구마을에 사는 어부들은 여느 때와 같이 어업활동을 위해 일찍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 이들은 작은 어선인 ‘섬 소년’(Øygutt)호를 타고 미리 그물을 펼쳐놨던 바다 한가운데로 다가가 그물에 걸려 있는 물고기 수백㎏을 낚았다. 물고기를 배에 실은 어부들은 빈 그물을 바다에 다시 던지고 항구로 돌아가던 중, 해안 경비대로부터 무전 연락을 받았다. 이들이 물고기를 낚기 위해 던진 대형 그물에 ‘미국 핵 잠수함’이 낚였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해양경비대에 따르면, 미국 USS 버지니아 잠수함이 솜마뢰위 북쪽 해역을 항해하던 중 잠수함 프로펠러가 어부들이 던져놓은 그물에 걸렸다. 무게 7800t에 달하는 이 잠수함은 그물에 걸린 채 약 4㎞를 더 항해한 후에야 자신들이 ‘낚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해양경비대가 출동해 잠수함 프로펠러에 걸려있는 그물을 모두 잘라냈고, 임무 수행 중이던 미국 핵추진 잠수함은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그물에 걸려있던 물고기들은 모두 빠져나갔고, 그물을 던졌던 어선은 뒤늦게 해양경비대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았다. 어선의 선장은 현지 매체인 바렌츠 옵서버에 “미국 잠수함이 (그물의 주인인)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은 채 선체에서 그물을 찢어내 버렸다. 그물은 해저에 가라앉았고 우리는 그 그것을 다신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그물에서 건져 올린 대구와 가자미 등으로 번 돈은 2만 크로네(한화 약 251만원) 정도지만, 잠수함 때문에 쓰지 못하게 된 그물 값은 4만~5만 크로네(약 500~628만 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또 “어망을 넘어 항해하는 선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잠수함이 그물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오슬로에 있는 미 대사관은 현지 언론에 “미 해군 잠수함이 그 시각 솜마뢰위 해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중해 방면을 담당하는 미국 6함대는 노르웨이 해군에게 “(그물에 걸린) 잠수함 구출을 도와줘서 감사하다”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안보 환경 속에서 위협을 억제하고 방어하는데 필수적인 미국의 잠수한 배치에 대한 노르웨이의 지속적인 지원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물에 걸린 잠수함이 어선 침몰시키기도더 내셔널인터레스트는 “노르웨이해(海)와 바렌츠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러시아 군함이 자주 드나드는 해역이다. 아마도 군함이 이 해역에서 그물에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며,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1999년 11월 영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아일랜드 서쪽에 있는 아란섬에서 훈련하던 중 같은 해역에 있던 일반 어선이 던진 대형 어망에 걸렸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잠수함은 어망에 걸린 채 항해를 이어갔고, 어망과 연결돼 있던 어선은 잠수함에 끌려가다 결국 전복됐다. 이 사고로 당시 어선에 타고 있던 선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더 내셔널인터레스트는 “당시 사고 이후 영국 해군 잠수함이 어업 수역 근처에서 운항하는 일은 보기 어려워 졌다”면서 “다만 어선과 잠수함의 ‘전투’에서 어부들은 ‘큰 물고기’(잠수함)이 그물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면 운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그날의 ‘어획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베스트 원’과 ‘온리 원’

    [나태주의 풀꽃 편지] ‘베스트 원’과 ‘온리 원’

    나이 들어 나의 일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강연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니 책과 작품에 대한 강연이 주종인데 더러는 인생이나 교육과 같은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일단 나는 강연 원고가 없다. 그때그때 청중과 주변 환경을 살피며 내 이야기를 풀어놓고 남의 이야기를 하고 지금껏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을 한다. 정답이 없고 분명치도 않은 이야기들을 하는 강연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을 위로한다. 하지만 청중이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는 걸 보면 오히려 이쪽에서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것은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강연할 때는 청중과의 교감과 소통이 중요하다. 이쪽에서 하는 말을 저쪽에서 어떻게 받아 주느냐에 따라 강연의 방향이 바뀌고 질이 결정된다. 어떤 때는 팍팍한 사막 길을 가는 것처럼 고달플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잔잔한 물 위로 배를 띄워 나가는 것처럼 시원하고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어떤 강연은 마치고 나면 다리에서 힘이 쑥 빠지도록 피곤한데 어떤 강연은 마치고 나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솟아난다. 주로 청춘의 청중을 대상으로 할 때 기분이 좋고 기운이 솟아나는 강연이 된다. 오히려 내가 젊은 그들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다. 지난 10월 초순 어느 날의 일이다. 어떤 언론사에서 대규모 강연회를 준비하고 나더러 기조 강연 비슷한 것을 청해 왔다. 강사가 여럿이었고 청중도 많다고 해서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약속된 일이라서 꽁무니를 뺄 수도 없는 노릇. 다른 강연과는 달리 강연 주제에 맞춰 강연 원고를 준비했다. 강연 주제는 ‘나다움과 아름다움’. 막연한 대로 나는 내가 쓴 시 가운데서 두 편을 골라 나다움과 아름다움에 관한 영상자료까지 준비했다. ‘흐르는 맑은 물결 속에 잠겨/ 보일 듯 말 듯 일렁이는/ 얼룩무늬 돌멩이 하나/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야지/ 집어 올려 바위 위에/ 놓아두고 잠시/ 다른 볼일 보고 돌아와/ 찾으려니 도무지/ 어느 자리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혹시 그 돌멩이, 나 아니었을까?’ (시 ‘돌멩이’) ‘놓일 곳에 놓인 그릇은 아름답다/ 뿌리내릴 곳에 뿌리내린 나무는 아름답다/ 꽃필 때를 알아 피운 꽃은 아름답다/ 쓰일 곳에 쓰인 인간의 말 또한 아름답다.’ (시 ‘아름다움’) 그런데 그 강연 모임을 주최한 언론사 대표가 개회사를 하는데 나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언론사 대표는 강연회 요지를 밝히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었다. ‘베스트 원’(best one)의 삶과 ‘온리 원’(only one)의 삶. 과연 어떠한 삶이 행복한 삶인가? 최고만을 지향하는 삶은 피곤하고 버겁다. 불안하다. 하지만 ‘온리 원’을 선택한 삶은 여유가 있고 나름대로 만족이 있고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 부처님의 말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도 실은 ‘베스트 원’보다는 ‘온리 원’을 권유하는 것이고, 공자님의 말씀 ‘지자불여호자(知者不如好者) 호자불여락자(好者不如樂者)’ 또한 ‘온리 원’으로서의 삶을 추천한 셈이다.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는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삶이 바로 나다운 삶이고 아름다운 삶이다. 그날 기껏 강연 준비를 열심히 해서 간다고 하긴 했는데 정작 강연도 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말을 미리 들었고 나 또한 삶의 한 해답을 찾은 셈이다. 당황스러운 대로 기뻤다. 그렇다. 바로 저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힘들었던 것은 최고의 삶만을 고집하며 살아서 그런 것이다. 그날 나는 최고의 강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다운 강사, 평범한 강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그날의 해답이었고 또 내일의 해답이었다. 나는 시인으로서도 나의 시와 인생이 최고가 되기를 주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다운 나, 대체 불가능인 나, 유명한 나보다는 유용한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변의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어울리면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나태주 시인
  • 모래바람 뚫고 피어난 ‘공공 예술’… 카타르, 글로벌 문화 강국 꿈꾼다

    모래바람 뚫고 피어난 ‘공공 예술’… 카타르, 글로벌 문화 강국 꿈꾼다

    사막부터 시장까지‘지붕 없는 미술관’ 변신 중카타르 뮤지엄, 세계 기자 초대타 중동국과 달리 ‘자원 의존’ 탈피 해가 지평선과 가까워진 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약 60㎞ 떨어진 서부 사막 지역 제크리트에 차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멈추자 낮은 협곡 사이 우뚝 선 거대한 철판이 눈에 들어왔다. 해수면에 맞춰 서로 수평을 이루는 14.7~16.7m 높이의 철판 4개는 브루크 자연보호구역부터 걸프(만)까지 1㎞가량 이어졌다. 10년 전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1938~2024)가 공개한 작품 ‘동-서/서-동’으로, 설치에만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독일에서 제작해 들여온 강판은 사막의 뜨거움과 바다의 짠바람에 조련된 듯 석양에 붉게 빛났다. 18~19세기 진주를 채취하며 연명하던 나라에서 1950년대 석유 채굴을 시작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나라. 중동에서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카타르가 글로벌 문화 강국을 꿈꾸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사막부터 시장까지 공공 예술을 심으며 국토 전체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고 있는 셰이카 알마야사 알사니 카타르 뮤지엄스 이사회 의장이 있다. 그는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알사니 의장이 이끄는 카타르 뮤지엄스는 지난 3일(현지시간) 전 세계 기자들을 초대해 100여개의 공공 예술품을 소개했다. 카타르 뮤지엄스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하고 이를 관리하며 대중의 창의적 지평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다른 중동 국가들이 석유, 천연가스 의존형 산업구조를 보이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카타르의 첫 얼굴인 하마드 국제공항은 수장고라고 할 정도로 많은 공공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스위스 출신 설치 미술가 우르스 피셔(51)의 ‘램프/베어’다. 7m 높이의 노란 테디 베어는 공항에 온기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네덜란드 조각가인 톰 클라센(60)은 카타르 국조인 매를 형상화한 작품 ‘팔콘’을 출국장을 마주 보고 있는 난간에 설치했다. 프랑스 예술계 거장 장미셸 오토니엘(64)은 이슬람 ‘아스트롤라베’(고대에서 중세까지 사용한 천체 관측 기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코스모스’를 선보였다. 또 카타르 국립 컨벤션센터에서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한국 호암미술관 등에 설치된 프랑스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거대한 강철 거미 조각 ‘마망’을, 카타르 최북단 지역인 아인 모하메드 외곽의 사막에서는 덴마크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57)의 ‘그날의 바다를 여행하는 그림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 3-2-1 카타르 올림픽·스포츠 박물관에는 미국 작가 대니얼 아샴(44)의 ‘스포츠볼 갤럭시’가, 전통시장인 수크 와키프에는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1921~1998)의 ‘엄지손가락’이 설치돼 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돌, 철 등으로 ‘아트 퍼니처’를 만들어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된 최병훈(72)은 올해 2월 카타르 국립 박물관 중앙 광장에 ‘아트 벤치’를 설치해 화제가 됐다. 앞서 2022년에는 강서경(47), 최정화(63)가 각각 알 다프나 공원과 에듀케이션 시티에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카타르의 공공 예술 프로그램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전 세계적인 ‘K컬처’ 열풍에 도취해 미래를 등한시하는 한국 문화계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카타르 뮤지엄스는 새로운 공공 예술 작품인 미국의 설치 미술가 라시드 존슨(47)의 ‘태양의 마을’을 최근 공개했다. 그가 자란 시카고는 파블로 피카소가 1967년 설치한 ‘더 피카소’ 등 공공 미술로 유명한 도시다. 작품 앞에서 만난 존슨은 “어릴 때 시카고에서 미끄럼틀인 줄 알고 놀았던 것이 나중에야 공공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나 역시 이 작품을 만들면서 대중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미래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의 행운을 빈다”고 힘줘 말했다.
  • 성산포 광치기해변의 눈물… 4·3 희생자 214명의 이름이 새겨진 문이 세워졌다

    성산포 광치기해변의 눈물… 4·3 희생자 214명의 이름이 새겨진 문이 세워졌다

    제주에서 빼어난 절경으로 손꼽히는 성산일출봉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광치기해변에 보석처럼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누가 알았을까. 모래사장으로 밀려드는 물결이 시리도록 푸른 광치기해변이 4·3때 제주도민 214명이 희생된 비극의 학살터였다는 사실을. 제주에서 첫손 꼽히는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의 가족과 형제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는 것을… 5일 오전 9시부터 이곳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광치기해변 ‘터진목’ 4·3추모공원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밀려들기 시작했다. 매년 11월 5일이 되면 이곳 터진목 4·3추모공원에선 성산읍 4·3 희생자 위령제가 열린다. 이날은 유족들이 예년과 달리 설렘과 기대에 차 있었다. 10년 가까이 염원하던 4·3조형물 제막식을 겸해 위령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오전 10시. 광치기해변 터진목 언덕에 세워진 성산읍 4·3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오종구 성산읍 4·3희생자유족회장이 주제사를 통해 “올해도 저희는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추스르고 영령님들 전에 진설 분향한다”며 “고개숙여 명복을 빌며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고 영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76년 전 4·3 광풍으로 이곳 터진목을 비롯한 성산읍 여러곳에서 400여명의 무고한 희생이 있었다”며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은 폐허가 되고 그 아픔은 아직까지 아물지 않는 통곡의 상처로 남았다. 유족분들, 그 비극의 시절을 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통한의 세월을 감내하시느라 얼마나 가슴 아프셨냐”고 되물었다. 이어 “오영훈 도지사의 각별한 관심과 성원 덕분에 7년여만에 유족들의 숙원사업인 학살터 조형물 설치 및 추모공원 정비사업이 완료돼 제막식을 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유족 여러분께서 4·3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결과 4·3해결에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이 지급되고 불법군사재판 뿐 아니라 일반재판 희생자에 대해서도 직권재심 청구로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으며 4·3의 뒤틀린 가족관계도 폭넓게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추도했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제주 제1경인 성산일출의 아침 햇살은 변함없이 이곳을 비추고 있다”며 “그날의 햇살도 오늘처럼 밝고, 그날의 바다도 오늘처럼 푸르렀는가.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76년 전 희생자들의 피맺힌 한이 서려 있는 아픔을 다시 마주하며 마음을 가눌 길 없다”고 추도했다. 특히 이날 4·3관계자들과 유족 등 100여명은 위령제를 지낸 뒤 학살터인 터진목에 세워진 조형물 ‘해원의 문’ 앞으로 이동해 제막식을 거행했다. 도 관계자는 “높이 3.2m 규모의 해원의 문은 기단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4·3을 직시하고 앞으로도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감시자로서의 분과 평화를 호소하는 눈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며 “오석 모자이크는 눈동자 형태로 안구의 실핏줄이 터질 만큼 고통을 받아온 유족들의 삶을 표현했다. 청동 원 형태는 4·3의 비극적인 역사를 넘어선 해원과 상생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 해원의 문을 넘어서면 희생자 분들이나 살아있는 우리는 모든 것을 넘어선 평화의 길이 된다”며 “상부 백색 조형은 희생자들을 하늘로 인도하고 안내자 역할을 뜻하는 기하학적인 새의 깃털, 종이배 형태로 영혼이 축복받는 거룩한 곳으로 모시는 매개체로 표현됐다”고 전했다. 원 안에는 이 학살터에서 희생된 21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터진목은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성산읍을 비롯한 인근 구좌읍, 표선면, 심지어 남원읍 사람들까지 무참히 학살당한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 학살당한 성산읍 희생자만 400여 명이나 되며, 특히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유족도 없이 모래밭에 묻혀버리거나 바닷물에 떠밀려가 버린 시신도 허다했다고 전해진다. ‘터진목’이란 지명은 터진 길목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실제 19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성산일출봉이 있는 성산리는 물때에 따라 육지길이 열리고 닫혔었다. 이후 주민과 행정당국이 공사를 벌여 육지와 완전히 이어지게 됐는데 이 일대를 ‘터진목’이라 부른다. 오종구 성산읍 4·3희생자유족회장은 당시 성산사람들은 “콩 볶듯 볶아대던 구구식 장총소리를, 시퍼렇게 지나가던 징 박힌 군화소리를 듣고 보았다”면서 “총탄을 몸으로 막아내며 늙은 어머니를 구해내던 어느 이웃집 아들의 죽음이, 젖먹이 자식만은 품에 꼭꼭 껴안고 처절히 숨져 가던 어느 젊은 어미의 한 맺힌 죽음이 서린 곳”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 모래밭을 파헤치면 그날 희생된 유골이 나올 수 있다”고 한숨을 몰아쉬며 한탄했다. 그날 실종된 또 다른 4·3희생자가 잠들어 있을 지 모른다는 추정이었다. 이날 제막식 후 ‘해원의 문’ 원형 안에 새겨진 희생자의 이름을 만지고 쓰다듬는 유족들. 그들은 그 이름 앞에서 한참을 떠날 줄 몰랐다. 그들에게 4·3의 비극은 76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아직도, 끝나지 않은 참극으로 머물고 있었다.
  • 미나 “엄마, 욕조서 쓰러진 채 발견…심정지” 충격적인 사건

    미나 “엄마, 욕조서 쓰러진 채 발견…심정지” 충격적인 사건

    가수 미나가 어머니 사망 당시의 심정을 고백했다. 2일 방송된 MBN 리얼 버라이어티 ‘가보자GO’ 시즌3 7회에는 원조 섹시 가수 미나, 류필립 부부와 안무가 배윤정이 출연했다. 안정환과 홍현희는 미나와 17살 연하 남편 류필립 부부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결혼 7년 차지만 여전히 신혼의 달달함이 느껴지는 미나와 류필립의 집을 구경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MC들은 수입 관리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미나는 “이제는 제가 관리해야 할 거다. 자꾸 수입이 생기면 투자를 해서”라며 “주식이랑 코인으로 돈을 (남편이) 날렸는데, 빌려준 돈이 억대다. 주식이랑 이런 것도 다 제 돈으로 했다”고 폭로했다. 일본 활동으로 대박이 터진 류필립에게 일본에서 대시를 받은 적이 있는지 묻자 류필립은 “시선을 느끼긴 했다. 그런데 그 시선이 굉장히 불편하더라”라고 말했다. 또 류필립은 “최근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제가 이성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농담을 하기도 어렵더라. 어린 친구들이 저한테 말 거는 것조차 묘한 느낌이 싫더라”라며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고 밝혔다. MC들과 미나, 류필립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류필립의 친누나가 깜짝 등장했다. 최근 총 31㎏ 감량에 성공한 류필립의 누나는 “미나가 엄청 많은 도움을 줬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고, 미나는 “10㎏ 뺄 때마다 100만원을 주기로 했고, 총 200만원을 줬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MC들은 서로의 호칭을 물었고, 이에 미나는 “나랑 16살 차이다. 그런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형님이라고는 하지 않고, 남편이 부르는 것처럼 ‘수지 누나’라고 부른다”며 “형님이라고 부른다면 못 만날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어 류필립은 “사실 누나랑 3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런데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 미나가 ‘수지 누나가 죽으면 후회할 거다’라고 말했다”라며 미나 덕분에 다시 가족과 연을 이어가게 된 사연을 전했다. 엄마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진 미나는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수면마취를 할 때 조심했어야 했는데 몰랐다. 수면내시경 후에 엄마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졌고, 어느 날 욕조에 갔더니 엄마가 쓰러져 있었다. 이후 병원에 가셨는데 결국 한 번 더 심정지가 와서 돌아가셨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돌아가시고 두 달은 소파에 앉아서 ‘엄마 미안해’하면서 울었다. 우리 엄마 정말 예쁘고 멋진데, 얼마 전까지 우리 방송에 나오셨는데”라며 어머니의 사고를 목격했던 그날의 충격과 심경을 최초로 고백해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다.
  • “어머 이건 봐야해” 지난해 전설 남긴 루간스키, 5년 만의 리사이틀

    “어머 이건 봐야해” 지난해 전설 남긴 루간스키, 5년 만의 리사이틀

    지난해 국내 공연계에는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연주 단체가 찾으며 역대급 클래식 음악 축제가 펼쳐진 바 있다. 그런데 이 치열한 클래식 대전의 와중에도 해외 단체들을 제치고 엄청나게 화제가 된 국내 교향악단의 공연이 있다. 바로 지난해 12월 열린 KBS교향악단과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연주회였다. 루간스키는 KBS교향악단과 이틀에 걸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네 곡을 모두 연주했는데 특히 이틀째 공연에서 선보인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이 평단과 관객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전설로 남았다. KBS교향악단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15만 조회수를 돌파했을 정도로 인기가 남다르다. 그날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은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 곡의 최고 기준점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 숱한 화제를 남긴 루간스키가 1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협연이 아닌 리사이틀이다. 러시아 출신으로 러시아 음악의 최강자답게 올해 공연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고 온 만큼 놓칠 수 없는 공연으로 꼽힌다. 루간스키 리사이틀은 오는 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리사이틀은 5년 만이다. 루간스키는 199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해 이후 활발한 연주 활동으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음반으로 발매해 디아파종 황금상, 에코 클래식 어워드,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등에 선정되는 등 평단의 찬사와 함께 ‘러시안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런 그가 1부에 선택한 프로그램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들과 여섯 개의 전주곡이다. 단단하고 정확한 타건으로 다채로운 형식의 음악을 섬세하고 진중한 해석이 돋보이는 러시아 정통 피아니즘으로 선사할 예정이다. 지난해 이미 보여줬던 빼어난 기교와 음악성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연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남다르다. 2부에서는 바그너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 중 일부를 발췌해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버전으로 연주한다. 첫 곡 ‘신들의 황혼’은 루간스키 본인이 직접 편곡한 만큼 그만의 해석을 더해 원곡과는 또 다른 느낌의 음악으로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을 리스트가 편곡한 피아노 독주를 위한 버전으로 연주한다. 사랑의 애절함이 증폭되는 신비로운 화성과 끝나지 않는 느낌의 자유로운 선율, 바그너의 ‘무한선율’ 기법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 책과 땅과 사람, 운명적으로 만나는 곳… 오르막 끝나갈 즘 ‘터득’에 도달하였다 [박상준의 書行(서행)]

    책과 땅과 사람, 운명적으로 만나는 곳… 오르막 끝나갈 즘 ‘터득’에 도달하였다 [박상준의 書行(서행)]

    나무선·이효담 작가 부부의 거처단출하고 투박한 나무 간판 하나백운산에 기댄 모습 책방·북카페‘그림책 독자는 0살에서 100살까지’하루 4인 이하 한팀 북스테이 운영그림책센터 일상예술1년간 출간 그림책 정보 총망라아침 방문객 맞춤 그림책 낭독도박경리 작가가 마지막 보낸 ‘원주’‘문학의집’ 토지 육필원고 등 전시반계리 수령 800~1000년 은행나무나무 그늘만큼 ‘가을 노란빛’ 가득 터득골북샵. 책과 터득이라니. 그 이름이 귀에 쏙 들어와 박힌다. 터득골은 책방이 자리한 곳의 옛 지명이다. 행정구역을 줄줄이 늘어세우면 원주(原州)시 흥업(興業)면 대안(大安)리 터득(攄得)골이다. 차례로 너른 마을, 새로 일을 일으킴, 큰 편안인 셈이다. 그 끝에 터득, 즉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달아 알아냄’이 붙는다. 땅과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대안적 삶의 플랫폼 처음에는 도로 옆으로 난 샛길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단출하고 투박한 나무 간판 하나 서 있으니 첫 방문에 길 잃은 이가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사는 게 그렇기는 하다. 목적지를 정하고 내비게이션을 사용해도 종종 길을 헤맨다. 얼마간 헛걸음과 헛발질에 헛손질까지 하고서야 목적지에 다다른다. 좁은 오르막이 끝나는 중턱에는 집 한 채가 맞이한다. 첫 번째 건물이 북스테이고 뒤편 산기슭에 기댄 긴 집이 책방 겸 북카페다. 고지대여서 스산한 가을바람에 정신이 맑아진다. 그 터의 문양이 말을 거는가 보다. 터득골북샵은 황대권 작가의 ‘야생초편지’(도솔)를 기획한 나무선, 방송작가로 일하던 이효담 부부가 운영한다. 두 사람은 1996년 강원 원주로 이주했고 2005년 터득골로 이사했다. 지금이야 작은 마을을 이루지만 그때만 해도 부부의 흙집이 유일했다. 집은 박종선 작가가 함께 지었다. 그는 영화 ‘기생충’의 가구 제작자로 잘 알려진 목수이자 가구 디자이너다. 나무선씨는 박 작가에게 목공을 배우며 연을 맺었고 집 짓기로 발전했다. 부부의 살림집 겸 출판사 사무실로 쓰던 공간에 책방이 들어선 건 또 한참이 지난 2016년의 일이다. 더듬더듬 나아간 셈이다. 책을 기획하고 만들던 이가 책방을 내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대안적 삶과 공동체마을의 연장에 가깝다. 그 바탕과 소통의 매개로 택한 것이 책이고 책방이다. 나무선씨의 말을 빌리면 ‘전통적 서점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서점’이다. 이때 라이프스타일은 삶과 일과 마음공부의 연결이고 그 플랫폼으로서 서점이다. ●삶에 귀를 기울이면 사선으로 난 계단을 올라 책방 앞에 닿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 동쪽으로 넘실대는 백운산 능선에 마음을 빼앗긴다. 잠깐 멈춰 서서 가을이 붉게 저무는 모습을 감상한다. 동남향의 집은 오전 햇살이 맑고 깊어 책방 안쪽까지 깊게 스민다. 책방은 3개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옛 살림집의 구조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서가는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해 정리했다. 가장 큰 공간인 왼쪽 방에는 ‘살림’이나 ‘목공·집 짓기’, ‘나는 누구인가’ 같은 주제가 눈길을 끈다. 부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만나지는 흔적이겠다. 카페 주방 쪽 작은방은 그림책과 원주지역 작가의 책들이 차지한다. ‘그림책 독자는 0살에서 100살까지’라는 글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가운데 눈여겨봐야 할 그림책 한 권을 고른다면 ‘오냐나무’(강혜숙 그림)다. 출판사가 ‘터득골’이고 글 작가가 이효담씨다. 터득골북샵의 지향이 담긴 책이겠다. ‘오냐나무’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다.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 문제는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 가운데는 두렵고 무서운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그것대로 이뤄지니 고민이다. 그 근심을 함께 나누고 풀어 보자는 것이 삶디자인학교다. 터득골북샵은 ‘북샵’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역할이 많다. 책방과 북카페로서 존재하고, 하루에 한 팀(4인 이하)만 묵을 수 있는 북스테이를 운영한다. 우드스탁 윈드차임의 한국 공식 유통사이기도 하다. 삶디자인학교는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궁극의 목표다. 인문학 강의와 워크숍, 리추얼 등을 통해 삶을 온전하게 살아내고 살아갈 힘을 기르는 배움 공동체다. 그 개념을 짧게나마 느껴 보고 싶을 때는 책방을 나와 뒷산으로 향한다. 11월에는 가을이 깊숙하게 깃들어 낙엽 밟는 소리가 발끝에서 서걱댄다. 눈앞에는 활엽 단풍이 푸른 솔잎 사이로 흔들린다. 그 그늘 아래가 삶디자인학교의 야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솔빛극장이다. 터득골에서 나온 돌을 놓아 객석을 만들었다. 솔빛극장에서는 ‘오냐로드’라 이름 붙인 짧은 산책로가 이어진다. 그럼 산책로에 오냐나무가 있다는 의미일 텐데 많은 나무 가운데 어느 것이 오냐나무라는 설명은 없다. 그저 앞뒤가 트인 작은 산막(오냐의집) 하나가 오냐로드 끝에 자리한다. 산막 안에는 달랑 윈드차임 하나가 걸려 있다. 윈드차임은 서양식 풍경이자 자연이 연주하는 악기다. 바람이 들고날 때마다 산막을 울린다. 그 소리는 억지로 흉내 내 표현할 수 있겠지만 고스란히 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터득골북샵에 가거든 그 자리에서 윈드차임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말하고 싶다. ●햇빛으로 가늠한 시간 빛처럼 반짝이는 윈드차임 덕에 가을 숲속에서 넋을 잃고 만다. 산막에서 눈을 감은 채 책장을 넘기듯 숲의 바람 소리를 따라다닌다. 그러다 문득 눈을 뜨니 산막 안쪽에 붙어 있는 사람들의 소원이 읽힌다. 소원지 앞면에는 ‘소원은 비는 게 아니라 선언하는 겁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차임을 치며 온 우주에 알려 보라 권한다. 그 행동이 다소 멋쩍다 느끼면서도 혼자여서, 책방 안에서 읽은 ‘오냐나무’가 생각나서 슬쩍 윈드차임을 울려 본다. 귓가에 은은하니 또 자리에 앉아 반짝이는 자연의 품에 고개를 묻을 수밖에. 마음에 새길 선언의 문구는 북카페에 돌아와 서가를 서성댄 후에야 찾아낸다. 너른 창으로 넉넉하게 스미는 가을빛도 감상하고 박종선 작가의 손길이 깃든 가구도 탐하다가, 인연처럼 잡은 책은 ‘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놈 아키텍츠, 킨포크 저, 박여진 번역, 윌북)이다. 책 속 문장 하나가 윈드차임처럼 가슴에 남는다. “…강물 위에 비치는 햇빛으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풀벌레와 새, 개구리 울음소리가 숲에서 울리는 이곳에서 시간 확인은 시간에 대한 인식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이 책은 슬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킨포크’와 덴마크 디자인 스튜디오 ‘놈 아키텍츠’가 ‘아름다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한 책이다. 빛, 자연, 물질성 등의 주제 아래 아름다운 집들을 소개한다. 비단 머물고 싶은 집에 대한 이야기만일까? 그보다는 머묾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열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묻게 된다. 한 해의 끝을 한 달 앞둔 11월이라 그런 것일 테다. 그럼에도 이 시절의 책은 마음을 물들이는 단풍이고 작가가 써 놓은 말들은 마음 한편에 낙엽처럼 떨어진다.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마음에 거름으로 남겠지. 그리 믿어야겠다.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터득골에서 얻은 오늘의 깨달음이다. ●그림책으로 여는 아침이라니 북스테이를 하거나 원주 어딘가에서 하루를 묵었다면 다음날 아침은 꼭 원주시그림책센터 일상예술에서 맞이하시길. 이상희(원주시그림책센터장) 그림책시인은 센터 1층 그림책아카이브에서 그림책을 읽어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화~토) 아침 8시 40분부터 15분간 진행되는 ‘아침을 여는 그림책’이다. 그날의 그림책은 그림책아카이브의 큐레이션 서적이나 시인이 날씨, 방문객 등을 고려해 고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책 읽는 목소리 또한 자연의 음성만큼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전 예약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림책으로 아침을 열고 나서는 서가에서 여운을 누린다. 이곳, 작은 도서관 규모인데 알이 꽉 찬 제철 석류 같다. 원주시그림책센터만의 분류법(WPC)을 적용한 주제별 분류나 상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같이 노는 그림책’ 등은 겉보기로 가늠할 수 없다. 이용자가 자주 찾는 똥·방귀, 공룡, 시간, 요일 같은 분류만으로도 그림책의 보물섬이라는 걸 알겠다. 이맘때 발간하는 ‘한국그림책연감’도 원주시그림책센터의 수고이자 자랑이다. 전년도 1년 동안 국내에서 출간한 그림책을 월별로 보관한 자료집이다. 한 해의 그림책 정보를 총망라한다. 심지어 무료 배포다. 2일부터 온라인 신청을 받고 오는 16일부터 현장 배포한다. 그림책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원주시그림책센터 뒤쪽에는 원주시 그림책도서관이 위치한다. 그림책도서관은 어린이를 위한 ‘처음그림책’ 자료실과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모두그림책’ 자료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전시실도 들러 볼 만하다. 전시실에서는 홍유경(홀링) 작가의 ‘줄무늬 미용실’(북극곰) 원화 전시가 한창이다(오는 10일까지). ‘줄무늬 미용실’은 곱슬머리 꼬마 사자가 얼룩말 미용실을 찾아간다는 설정부터 미소를 자아낸다. 원화 전시에 그치지 않고 전시장을 미용실로 꾸몄다. 거울과 의자, 가발 등으로 미용실 놀이 체험과 포토존을 겸한다. 어른들은 바람 쉼터를 좋아한다. 도서관 옥상에 인디언 텐트 등을 설치해 가을 하늘 아래 그림책을 즐길 수 있다. ●어마어마한 800명과 25년 박경리 작가 또한 원주의 큰어른이다. 작가는 원주에서 ‘토지’(다산책방)를 완간하고 생의 마지막 시간도 원주에서 보냈다. 도심에는 박경리문학공원이 있어 옛집과 유물을 전시한 문학의집(전시관)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작가의 옛집은 너른 마당을 가진 2층 양옥이다. ‘토지’를 쓰고 텃밭을 일구고 손주들을 위해 직접 연못을 꾸민 자취가 남아 있다. 마당에는 호미를 두고 쉬는 박경리 작가의 동상이 있다. 곁에 나란히 앉으면 세상 시름이 잊힌다. 작가는 원고지 약 3만매, 등장인물 800여명의 ‘토지’를 무려 25년에 걸쳐 써 나가지 않았던가. 문학의집은 ‘토지’ 속 공간과 인물도 등을 입체적으로 전시한다. 작가가 직접 지은 옷과 유품들도 관람할 수 있다. 박경리 작가는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문학공원 곳곳에는 시비가 있어 가만히 읊조리면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던 유고시집 제목이 떠오른다. 공원 한쪽에는 원주시 그림책의 산 증거 패랭이꽃그림책버스가 있다. 폐차한 시내버스를 재활용해 꾸민 버스 도서관으로 올해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채색했다. 지는 가을이 못내 아쉬울 때는 원주시 교외의 반계리로 향한다. 천연기념물 반계리 은행나무는 수령 800~1000년으로 높이가 32m, 둘레가 16.27m에 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에 소문이 나 단풍 드는 11월 초 주말에는 차가 밀릴 정도다. 하지만 나무 앞에 서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 한 그루가 아니라 숲이라 해도 믿겠다. 나무 그늘만큼이나 너른 터에 가을이 노란빛으로 가득 차 있다. ■여행수첩 원주 터득골북샵 -오전 11시~오후 5시(평일), 오전 11시~오후 6시(토·일) 월·화 쉼. -누리집 www.instagram.com/tudeukgol_bookshop
  •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응 무죄라니…참혹했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냈다. 다음은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임규호 대변인 논평 전문 2년 전 오늘, 이태원 173-7번지 좁은 골목길에서 159명의 무고한 생명이 스러져갔습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대표의원 성흠제)은 10·29 이태원 참사로 인해 세상을 떠난 모든 희생자를 추모하며, 여전히 슬픔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계신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지난 2년간 우리 사회는 한목소리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법원은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기소되었던 전 서울경찰청장과 용산구청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에 대해 ‘무죄’로 답했습니다.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고 발생이나 확대와 관련해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이나 인과관계가 엄격히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판결이 이유입니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핼러윈데이를 맞아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충분히 예측된 상황에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행정과 경찰의 안일한 대처로 발생한 인재(人災)입니다. 우리의 ‘헌법’과 ‘재난안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이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 재난과 사고를 예방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조차 거부하더니 이제는 법이 명시한 책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대형 참사를 두고 법에서 정한 ‘재난관리책임기관’에 책임이 없다는 후안무치한 세력들의 기만을 우리는 납득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라 부르라고 강요하며 책임을 축소·회피하고, 애도할 기간, 추모의 방식, 심지어 리본의 모양까지 규제하던 그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면하는 한 우리의 시계는 2022년 10월 29일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참혹한 그날의 밤에 여전히 갇혀있습니다. 책임을 묻는 것이 진정한 애도입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진심어린 위로입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명확한 책임규명으로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천만 서울시민의 아픔과 절망을 위로해 줄 것을 정부와 여당에 엄중히 요청합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이 유가족과 희생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유가족들의 슬픔에 진심어린 위로를 전하며,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임규호
  • 경기도, 10.29 참사 2주기 맞아 ‘온라인 기억공간’ 개편

    경기도, 10.29 참사 2주기 맞아 ‘온라인 기억공간’ 개편

    경기도가 10.29(서울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참사 당시부터 상시 운영 중인 온라인 추모관을 새로 개편했다. 온라인 추모관 ‘10.29 참사 2주기 온라인 기억공간’은 경기도청 누리집(www.gg.go.kr)에서 ‘기억과 연대’ 아이콘을 누르면 연결된다. 도민은 물론 국민 누구나 마음을 담아 희생자들에게 추모 편지를 작성할 수 있다.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참사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기록’ 기능을 강화했다. 참사 당시 일어난 일들을 시간대별로 정리하고 기록해, 또 다른 참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먼저 ‘그날의 기록’에서는 참사 당일 최초 경찰 신고부터 중상자와 희생자 이송까지의 기록을 시간대별로 돌아볼 수 있고 ‘기억해야 할 그날의 이야기’ 코너에서는 희생자 4명과 생존자 1인의 이야기를 통해 희생자의 삶과 참사의 아픔,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고통을 함께 공감하고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원일 경기도 홍보기획관은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또 다른 참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억의 힘’을 모으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면서 “온라인 기억공간이 10.29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당시에도 도민들이 마음을 담아 추모할 수 있도록 1월 22일부터 4월 30일까지 ‘10주기 온라인 기억공간’을 개설해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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