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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외면 어려운 정부, 방위비 협상·남북관계까지 고려해 ‘결단’

    美 외면 어려운 정부, 방위비 협상·남북관계까지 고려해 ‘결단’

    호르무즈, 한국행 원유의 70% 이상 수송 해협 인근 국민·선박 보호 등 국익 우선 한미 동맹·이란 관계도 고려한 ‘절충안’ 친이란 무장세력 ‘타깃’ 위험 부담 덜어정부가 21일 호르무즈해협에 사실상 독자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은 해협 인근 국민과 선박을 보호할 필요를 고려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협력 사업과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에서 미국의 협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한미 동맹을 고려하면서도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이란이나 친이란 무장세력의 공격 목표가 될 우려를 감안해 미국이 주도하는 호위 연합체(IMSC)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 파병이라는 ‘절충안’을 선택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해 5월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과 상선이 잇따라 피격되자 파병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오만만과 아라비아만을 잇는 호르무즈해협은 걸프 지역의 주요 원유 수송 루트로,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70% 이상이 지나가는 곳이다. 미국은 그해 6월 유조선 피격 사건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7월 한국에 미국이 주도하는 IMSC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12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IMSC 참여 등 파병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미국이 지난 3일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드론 공습으로 살해하고 닷새 후 이란이 이라크 미군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보복 공격하면서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정부는 파병에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서는 듯했다. 다만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9일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펴면서도 “청해부대를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함에 따라 파병은 하되 IMSC 참여보다는 독자 파병에 무게를 싣고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후 지난 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사실상 파병을 요청하는 등 미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정부가 파병 시기를 더 늦추지 않고 독자 파병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파병 결정이 남북협력 사업,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과는 상관없이 이뤄졌다고 설명했지만, 두 현안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발휘되길 바랐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 남북협력 사업 논의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파병 결정을 고려하며 남북 사업 추진을 지지하거나 대북 제재를 면제하지 않겠으나, 사업 추진을 둘러싸고 최근 불거졌던 한미 엇박자 논란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 아울러 방위비분담협상에서도 미국의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에 한국은 분담금 외에 한미 동맹에 기여하는 분야를 설명하며 맞서고 있는데, 선제적으로 파병을 결정해 동맹에 기여함으로써 미국의 인상 압박을 낮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남북협력사업 관련 대북 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 법령의 문제이기에 정부의 파병 결정이 큰 변수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한미 동맹 균열 우려를 불식시킬 계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CNN “해리스 콧수염 논란, 한국인의 인종주의”

    CNN “해리스 콧수염 논란, 한국인의 인종주의”

    한국 정부의 남북 협력 구상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그의 콧수염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을 CNN 등 외신들이 주요하게 보도했다. CNN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인종주의, 역사, 정치: 왜 한국인들은 미국 대사의 콧수염에 펄쩍 뛰나’라는 기사에서 “한국 내에 해리스 대사가 일본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점을 문제 삼는 여론이 있다”면서 “이상한 비난이며 한국인의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리스 대사는 일본에서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미 해군 태평양사령관으로 재직하다 2018년 7월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CNN은 “해리스 대사는 미국 시민으로, 그를 ‘일본 혈통’으로 치는 것은 미국에선 인종차별”이라면서 “인종적 다양성이 없는 균질한 사회인 한국에선 혼혈 가정이 드물고 외국인 혐오는 놀라울 정도로 일반적”이라고 꼬집었다. BBC는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 8명이 모두 콧수염을 길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은 일제강점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고 논란의 배경을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본계 미국인을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한 사실이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라며 한미 방위비 협상 과정에서 그에게 ‘고압적인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CNN은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 논란은 해리스 자신을 넘어섰다”면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 인종차별, 방위비 협상 문제 등으로 수십 년간 지속한 한미동맹의 미래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리스 대사는 최근 간담회에서 “내 인종적 배경, 특히 내가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언론,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비판받고 있다. 난 일본계 미국인 대사가 아니라 미국 대사”라며 “출생의 우연만으로 역사를 가져다가 내게 적용하는 것은 실수”라고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콧수염을 자를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월드포토+] ‘잿빛 필리핀’…화산재 뒤집어 쓴 파인애플에 농부 망연자실

    [월드포토+] ‘잿빛 필리핀’…화산재 뒤집어 쓴 파인애플에 농부 망연자실

    지난 12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65㎞가량 떨어진 카비테주 타가이타이섬 탈(Taal) 화산이 폭발한 가운데, 화산이 내뿜은 화산재 때문에 잿빛 도시로 변해버린 인근 지역의 모습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CNN필리핀은 탈 화산 폭발로 인근 마을이 온통 까맣게 변했다고 보도했다. 또 농작물과 가축을 포함한 재산 피해 규모는 현재까지 5억 7739만 페소(약 132억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필리핀 농무부에 따르면 이번 폭발로 루손섬 남부에 화산재가 떨어지면서 쌀과 옥수수, 파인애플, 바나나 등 농작물 재배지가 큰 타격을 입었다. 가축 2000여 마리도 폐사하는 등 농가 피해가 막심하다. 15일 루손섬의 한 파인애플 농장에서는 화산재를 뒤집어 쓴 파인애플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농부가 눈에 띄었다.필리핀 민족운동가 호세 리살의 동상도 화산재 때문에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을 어귀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음료수병들은 어떤 제품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화산재가 짙게 붙어 있었다.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화산 폭발 현장에 남겨진 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탈 화산 폭발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와 추가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레나토 솔리둠 필리핀 지진화산연구소 소장은 14일 “이전에 발생한 탈 화산 폭발이 몇 달간 지속됐다”면서 “현재의 화산 활동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솔리둠 소장은 “폭발적인 분출 가능성에 대한 경보는 아마 몇 주간 유지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용암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탈 화산에서는 14일 현재까지도 높이 800m의 짙은 회색 증기가 분출됐으며,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인근 지역에 계속 떨어졌다. 또 분화구 주변에서 다수의 균열이 새로 나타나고 화산 지진이 이어지는 등 훨씬 더 강력하고 위험한 폭발 징후를 보였다. 폭발 이후 반경 14㎞ 이내 주민 50만 명에게 대피령을 내린 필리핀 정부는 화산재로 인한 재산피해를 보전하고자 인근 지역 농어민에게 긴급융자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탈 화산의 화산재가 다른 화산재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와이대 켄 혼 화산학 교수는 화산재가 공기 중의 물 분자와 만나면 더욱 미세한 입자로 쪼개져 흡입하기 좋은 형태가 된다고 밝혔다. 때문에 호수에 둘러싸인 탈 화산의 화산재는 건강에 더욱 치명적일 거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화산폭발로 인한 사망자는 없는 것으로 집계됐지만, 호흡기 질환에 따른 인명피해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신전에서 ‘볼일’ 본 무개념 관광객…몸살 앓는 마추픽추

    신전에서 ‘볼일’ 본 무개념 관광객…몸살 앓는 마추픽추

    페루 경찰, 외국인 관광객 6명 체포아르헨·브라질 등 국적의 2030 남녀 세계적인 유적지인 페루 마추픽추의 신전에서 ‘볼일’을 본 무개념 관광객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마추픽추는 해마다 100만명 이상이 찾는 유명 관광지인 만큼 유적을 훼손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페루 안디나통신에 따르면 페루 쿠스코 경찰은 지난 12일 마추픽추 ‘태양의 신전’ 내의 접근이 금지된 지역에서 관광객 6명을 발견해 체포했다. 이들은 11일 밤 통제구역에 몰래 들어간 뒤 신전 벽의 돌 파편을 떨어뜨려 바닥에 균열이 생기게 한 것도 모자라 신전 안에서 대변까지 본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객들은 20~30대의 남자 4명과 여자 2명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인 각각 2명과 프랑스, 칠레인 1명씩이다. 경찰은 이들을 구속 상태로 조사한 후 범행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아르헨티나 남성은 문화재 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나머지 5명은 추방하기로 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15세기 잉카 문명 유적지인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 탐험가에 의해 처음 발견된 후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전 세계에서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만큼 몰상식한 관광객들로 인해 몸살을 앓은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엔 칠레인 2명이 마추픽추 벽에 낙서했다가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후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2017년에도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관광객들이 낙서해 체포됐다. 2000년에는 맥주 광고 촬영 과정에서 마추픽추 내 유명 유적인 ‘인티우아타나 바위’가 훼손된 적도 있다. 페루 당국은 마추픽추를 보호하기 위해 하루 입장객의 수를 제한하고 태양의 신전을 비롯한 주요 유적은 부분적으로 접근을 통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사립유치원 ‘국가회계시스템’ 의무화…사립학교 경영자 교비 유용하면 처벌

    사립유치원 ‘국가회계시스템’ 의무화…사립학교 경영자 교비 유용하면 처벌

    최초 발의 박용진 “정의 바로서는 계기”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담긴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지 383일째인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이 끝까지 반대하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일부 사립유치원이 총선을 미끼로 로비를 벌여 여야 5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공조에 균열이 나타나는 듯했지만 막판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65명 중 찬성 164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재석 162명 중 찬성 158명, 기권 4명으로 통과됐다.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재석 165명 중 찬성 161명, 반대 1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이날 통과된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립유치원에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 사용을 의무화하고, 회계 항목을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세입세출 항목에 따라 세분화해 입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에서는 사립학교 경영자가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이나 재산을 교육 목적 외로 부정하게 사용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했다. 유치원 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학교급식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유아교육법’에 따른 유치원도 학교급식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고, 유치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일정 요건을 갖춘 자에게만 급식업무를 위탁하게 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리를 저지른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하고 유치원3법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한국당에 발목이 잡혀 유치원 3법이 통과하지 못하자 민주당은 2018년 12월 27일 유치원3법(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 중재안)을 헌정 사상 두 번째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박 의원은 “유치원 3법의 통과는 대한민국에서 상식과 사회 정의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바로 세우고 깨끗한 교육현장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사립유치원 ‘국가회계시스템’ 사용 의무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담긴 유치원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지 383일째인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막판까지 반대하며 여야 5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공조에 균열이 나타나는 듯했지만 막판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65명 중 찬성 164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재석 162명 중 찬성 158명, 기권 4명으로 통과됐다. 학교급식법 개정안도 재석 165명 중 찬성 161명, 반대 1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이날 통과된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립유치원에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 사용을 의무화하고, 회계 항목을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세입세출 항목에 따라 세분화해 입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법에는 사립유치원의 회계관리시스템 사용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에서는 사립학교 경영자가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이나 재산을 교육 목적 외로 부정하게 사용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했다. 유치원을 설립한 이는 유치원 원장을 겸직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른바 ‘셀프징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유치원 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학교급식법도 통과됐다. ‘유아교육법’에 따른 유치원도 학교급식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고, 유치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일정 요건을 갖춘 자에게만 급식업무를 위탁하게 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리를 저지른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하고 유치원3법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한국당에 발목이 잡혀 유치원3법이 통과하지 못하자 민주당은 2018년 12월 27일 유치원3법(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 중재안)을 헌정 사상 두 번째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제자는 꿈을 잃었다”… ‘무용계 첫 미투’ 유명 안무가 징역 2년형

    “제자는 꿈을 잃었다”… ‘무용계 첫 미투’ 유명 안무가 징역 2년형

    “피고인, 애정 문제로 치부 범행 부인” 무용연대 “문화예술계 권위주의 균열”“피고인은 애정 문제라며 범행을 부인하지만, 피해자는 범행으로 인해 성적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무용의 꿈을 접게 됐습니다.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합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 김연학)의 심리로 열린 현대무용가 류모(49)씨의 선고 공판. 재판부가 선고를 마치자 방청석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엄격한 상하 관계로 성범죄 폭로가 쉽지 않았던 무용계에서 제기된 첫 미투(나도 피해자다) 사건에서 사법부는 그렇게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류씨는 2015년 4월부터 5월까지 제자이자 후배인 A씨를 4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4년간의 침묵을 깬 A씨가 지난해 류씨의 범행을 폭로했지만 류씨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A씨가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고, 신체 접촉을 할 때도 반항이나 저항을 하지 않아 허용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이유에서다. 자신에겐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만한 권력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은 단순히 교습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학에 출강하고, 각종 콩쿠르에서 심사를 봤으며 무용단의 대표로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장래 무용수가 되려는 피해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범행장소가 류씨의 개인 연습실이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를 이용해 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이기는 하지만 일관되고 구체적이라고 봤다. 특히 첫 추행 당시 “류씨가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해 당황하고 몸이 얼어버렸다”는 A씨의 진술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이 부분은 피고인과 피해자의 지위, 피고인의 위력 행사, 피해자의 피해 감정을 종합하는 본질적인 의미”라고 덧붙였다. 재판과정에 피해자와 함께 한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 #위드유’ 회원들은 선고 직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이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권위주위와 비민주적 현장에 균열을 가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트럼프 美우선주의 ‘올인’… 자유무역·안보동맹·세계화 흔들다

    트럼프 美우선주의 ‘올인’… 자유무역·안보동맹·세계화 흔들다

    2019년이 미중 패권 경쟁으로 점철됐다면 2020년은 좀처럼 세계 평화를 위해 힘을 쓰지 않는 ‘미국의 공백’에 대응하는 각국의 경쟁이 심해질 전망이다. 지구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보고 군사력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 미국 편과 중국 편으로 나누던 기존의 지정학은 금융·과학·무역·사이버 등 ‘하이브리드 무기’로 무장하고 각자의 이득에 의해 민첩하게 움직이는 ‘신지정학’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소위 ‘각자도생’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판에서 한국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선택해야 할까. 5회 시리즈로 짚어 본다.2017년 1월 20일 최강국 미국의 수장으로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통상·외교·안보 등 기존 질서를 뒤흔들었다. 제45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학살을 멈춰야 한다’는 섬뜩한 문장으로 ‘미국 우선주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했고, 지난 3년간 소위 ‘질서 파괴자’라고 불리며 `예측 불가능’한 접근법으로 세계를 술렁이게 했다. 국경을 맞댄 멕시코에는 불법이민을 막겠다며 장벽을 들이댔고, 유럽연합(EU)과 이란 핵 및 시리아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무역전쟁,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무역전쟁 등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으로 주변국이 몸살을 앓고, 중동 또한 일촉즉발의 화약고가 됐다.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은 한국, 일본, EU 등 전통적 동맹관계도 위태롭게 했다.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주의 정책기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세계주의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 ‘일방주의’로 급격하게 바꿨다. 이는 지구촌이 ‘더불어’에서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사흘 만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을 몰아붙이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버리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새로 체결하는 등 기존의 통상 협약을 다시 썼다. 이른바 ‘ABO (Anything But Obama·오바마만 아니면 돼) 정책’에 따라 미국이 2015년 영국과 프랑스, 중국 등 주요 6개국과 함께 이란과 체결했던 ‘핵 합의’에서도 2018년 돌연 탈퇴한 데 이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복원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트럼프는 급기야 지난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공습으로 이란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제거, 미·이란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외교를 모르는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세계 곳곳에 긴장을 심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무단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선언한 데 이어 요르단 서안의 정착촌 건설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41년 만에 미국의 외교적 입장을 뒤집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느닷없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함으로써 미국을 도와 대테러전을 수행하던 쿠르드족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에 시리아가 이란과 러시아, 터키 등의 각축장으로 변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인 중동 정책은 중동을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이) 시리아를 혼돈으로 밀어 넣고 이슬람국가(IS)를 대담하게 하는 진행 중인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자국에 도움이 되지 않고 중국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올해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도 연내 탈퇴를 목표로 절차를 밟고 있으며, 글로벌 통상질서를 유지해온 세계무역기구(WTO)의 상소기구 기능도 무력화시켰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세계 보안관 역할을 하던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쫓으면서 세계 안보·외교 질서를 조정하는 글로벌 리더십에 공백이 생겼고, 국제기구나 협약도 미국의 일방주의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더욱 ‘미국 우선주의’에 몰입하면서 전 세계는 ‘더불어’가 아니고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맹=돈’으로 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 때문에 EU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도 흔들렸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가장 강력한 안보동맹이었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지난해 창설 70주년을 맞은 기쁨보다 존재의 위기에 직면했다. 나토와 상의 없이 시리아 철군을 결정한 미국의 일방주의와 시리아 쿠르드족 침공·러시아제 방공미사일 시스템 도입에 나선 터키의 독불장군 행태로 상처를 크게 입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나토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며 나토 결속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지 않으면 무역으로 걸겠다’는 트럼프 으름장에 공평 분담을 약속하는 등 미국에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모습을 표출했다. 노골적인 분담금 증액 압박은 한미, 미일 등 동북아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조력하는 전통 동맹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일에 올해 방위비 분담금을 지난해보다 4~5배 높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올해 방위비 분담금으로 지난해(약 1조 389억원)의 다섯 배인 50억 달러(약 5조 8000억원)를 요구하고 있다. 무리한 방위비 분담 압박은 한미일 안보협력체계에 연쇄적으로 균열을 일으켰다.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이유로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가하자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계획으로 맞대응하면서 한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로 군사정보 공유에 균열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일 간 소원해진 관계는 아직 봉합되지 않았다.17개월 동안 세계 경제를 위협하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오는 15일 ‘1단계 무역 합의’에 대한 서명으로 일단락될 예정이다. 2018년 3월 중국의 ‘불공정 무역을 바로잡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선공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은 양국이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세계 경제를 출렁이게 했다. 지난해 12월 15일로 예정됐던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직전에 미중이 전격적으로 1단계 합의를 이뤄 한숨 돌렸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중국이 앞으로 2년간 제조업, 에너지, 농업, 서비스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2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서비스의 추가 구매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2017년 중국의 대미 수입 총액이 1880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했을 때 2년간 미국산 제품·서비스 수입을 두 배로 늘려야 하는 셈이다. 미중이 완전히 무역분쟁을 타결하기까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100년 이상 미중의 무역전쟁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2단계 협상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핵심 의제 중 하나가 중국의 대규모 산업 보조금 문제다. 미국은 그동안 보조금과 첨단기술 등을 2단계 의제로, 무역 합의에 대한 이행 강제 메커니즘 논의를 3단계 의제로 거론해왔다. 하지만 중국도 이 쟁점에서 쉽게 물러서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보조금은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중국 지도자들에게 경제 관리의 주요 도구”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미중의 전략적 경쟁 구도가 치열해질수록 한국은 정책적 선택의 압박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이 지금까지 미중의 패권싸움에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입장을 취해왔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처럼 미중에 더 큰 압박과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의 한 통상전문가는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한다면 한국은 중거리미사일 배치 등을 강요당할 수 있다”면서 “지금부터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행동해야 미중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빗장 건 도시…윤리를 묻다

    빗장 건 도시…윤리를 묻다

    ‘도시 계획의 어머니’로 불리는 저자 사회적 인간탐구 3연작의 마지막편 물리적·의식적 공간 분리된 도시 조명 지역적 특권에 빠진 폐쇄 공동체 진단 흔히 도시라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삶을 함께 영위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 도시는 그저 삶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만큼이나 복잡한 생활양식과 의식을 함께 품기 마련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적지 않은 도시가 번창하거나 쇠락을 거듭해 왔다. 인간에게 도시는 과연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짓기와 거주하기’는 아주 친숙하지만, 대개의 사회 구성원들이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도시의 윤리적 측면을 꿰뚫었다. 노동과 도시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는 미국 뉴욕대·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인 리처드 세넷이 지난 10여년간 지속해 온 사회적 인간 탐구 연작(1부 ‘장인’, 2부 ‘협업’)의 마지막 편으로 책을 냈다. 책은 다소 생경한 도시의 윤리를 키워드로 삼았다. 도시의 윤리가 뭘까. 그 궁금증은 ‘도시계획의 어머니’로 불리는 미국 도시계획가 제인 제이컵스의 말을 통해 쉽게 풀린다. 제이컵스는 인간의 척도를 무시한 도시 변화에 맞서 “전문가들의 보고서에 등장하는 숫자로는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를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사회학자 겸 언론인이다. 특히 주거, 상업, 공업, 녹지로 공간을 구획하는 기능주의 도시보다는 사람들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는 ‘길의 활력’을 역설해 도시계획 분야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회자된다. 일단 저자의 지론은 제이컵스의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책은 그 지론대로 ‘열린 도시’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어떻게 하면 ‘열린 관계’에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해 나가는 흐름이다. 도시는 대개 큰 전체 도시나 그 물리적 공간인 ‘빌’과 작은 지역사회와 그와 관련된 감정과 의식을 가리키는 ‘시테’로 구성된다. 빌이 사람이 들어사는 공간의 측면에 기운 물리적 개념이라면 시테는 그 속의 양식과 철학까지를 포함하는 정신적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빌과 시테 사이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며 지난 19세기의 도시 제작자들이 ‘사는 것’과 ‘지어진 것’을 연결시키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20세기에는 빌과 시테가 서로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도시 만들기가 진행됐고 그 결과 도시는 이제 내적으로 ‘빗장 공동체’가 돼버렸다고 꼬집는다.책의 특장은 유명 도시들의 번창과 쇠퇴 흐름을 소개하면서 절대 악이나 선 등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독자들의 판단을 유도하는 점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에익삼플레의 격자식 도시 블록,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인도 델리의 네루 플레이스 시장…. 그 안의 공간과 삶의 양식을 다양한 문헌과 자료들로 풀어내는 장단점 묘사가 도드라진다. 스마트 시티로 계획된 우리나라 인천 송도 신도시가 사용자 친화성이 지나쳐서 오히려 거주민을 바보 취급해 폐쇄 도시가 된 사례도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작업에 방해되는 요소를 최소화하고 직장 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설계된 미국 구글플렉스는 구직자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개인주의적 특권의 아이콘으로 일 외에 다른 모든 관계를 차단한 지역사회로 묘사된다. “인간이라는 비틀린 재목으로는 곧은 물건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이마누엘 칸트), “도시는 상이한 종류의 인간들로 구성된다. 비슷한 인간들만 있으면 도시가 존재할 수 없다”(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을 콕 짚어 소개한 저자는 결국 미래의 바람직한 공간으로 ‘열린 도시’에 방점을 찍는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면 시골에서 피신해 온 다양한 종류의 부족들은 물론 타 도시 사람들의 망명도 받아 주었던 고대 도시 아테네를 소개하면서 “사람들은 따로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강하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2020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심사평] 모험적이나, 낯선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의 패기에 박수를

    [2020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심사평] 모험적이나, 낯선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의 패기에 박수를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총 8편이었다. 그중 4편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대학 동기의 문상을 떠나는 친구들의 이야기 ‘봉투’는 적절한 톤을 유지하며 흥미롭게 서사를 꾸려 나갔다. 일상적 에피소드 뒤에 질문을 감추는 솜씨도 엿보였다. 다만 사유의 규모가 네 인물의 개인사 밖으로 확장되지 못해 아쉬웠다. ‘상어와 선인장’은 가사 도우미와 주인 남자의 관계를 의외적 긴장으로 그려냈다. 감각적이고 정련된 문장에서 공력이 엿보이는 작품이었지만 그에 비해 담고 있는 서사는 다소 느슨하게 느껴졌다. ‘완벽한 밀 플랜’은 바닷가 리조트에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신혼부부의 대화로 시작된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문장으로 씌어졌지만 들어가보면 삶과 죽음의 내밀한 접점을 만나고, 거기로 떠밀려 가는 인간에 대한 슬픔과 무력감을 만나게 된다. 바닥을 디딜 수 없는 바다 수영, 바다거북을 찾아갔다가 보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물고기의 뿔에 찔린 상처, 부표의 위태로운 긴장, 푸른 바다와 검은 바다의 경계 등의 비유도 인상적이었다. 더욱 서사가 풍부해진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당선작은 ‘균열 아카이브즈’이다. 이 작품은 문장과 내레이션과 소재 모두 낯설어서, 초반에는 독특함인지 미숙함인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카라얀의 마지막 연주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주인공은 그 연주장의 안내인이다. 문장은 문어체 번역투이고 결말 또한 고전 영미소설의 클리셰 느낌이 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거기에서 오는 긴장이, 에피소드에 그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기침을 막는 목캔디나 동파된 수도관, 라벨의 ‘볼레로’ 등의 디테일도 시스템의 이중성에 대한 폭로라는 메인 서사와 잘 조율되어 있다. 다소 모험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낯선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의 패기에 박수를 보내기로 결론을 내렸다. 큰 축하를 보낸다.
  • [2020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균열 아카이브즈

    [2020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균열 아카이브즈

    목캔디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 겉에는 다른 관객들을 위해 두 개 이상은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공연장 로비 내의 누구도 그 경고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른 남자가 플라스틱 상자에 팔을 욱여넣고 한줌 크게 쥐었다. 왁스를 먹인 캔디의 껍질에서는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살라는 저것들을 협찬해준 사측의 직원을 만나본 적이 있다. 여자는 성마르게 생겼지만 웃을 때는 잇몸이 모두 보이도록 입을 벌렸다. 여자의 치아는 살라가 여자를 만날 때마다 점점 미묘하게 비뚤어졌기 때문에, 그녀는 여자가 치아교정을 했었고 지금은 유지 장치도 제대로 끼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자에게는 종종 불소 냄새가 났다. 여자의 가방은 치과에 다녀온 날이면 평소보다 무거워 보였다. 이른 아침의 기상일보는 오늘이 겨울 들어 가장 춥고 눈 내리는 날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살라는 문득 그녀가 집의 수도꼭지를 너무 꽉 조이고 나왔음을 깨달았다. 동파되고 말 거야. 살라가 당황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공연장 내부는 점차 소란스러워졌다. 로비 안에 들어온 관객의 수보다 그들의 발자국이 더 많았다. 입구부터 길게 깔아 놓은 붉은색의 카펫도 눈 젖은 발자국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 오자, 관객들이 어셔에게 그들의 겉옷과 소지품을 맡기기 시작했고 근처에 두꺼운 프로그램 북을 사기 위한 줄이 세워졌다. 아이들은 프로그램 북으로 서로의 머리를 가격하고 놀았다. 관객 몇몇은 공연장 입구 옆에 위치한 음반 가게에서 미리 음악을 들어 보기도 했다. 어떤 관객은 다른 독주회를 중계해주는 모니터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러나 살라는 알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의 관객들은 저런 독주회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저들은 카라얀을 보러 왔다. 카라얀이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에 티켓 값은 끔찍할 정도로 비쌌다. 모든 좌석이 매진되었기 때문에 티켓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공연을 생중계해주는 모니터라도 차지하기 위해 집을 나섰을 것이다. 살라가 그녀의 발치를 맴도는 남아를 보호자에게 보내고 나니 독주회 홀에서 관객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오케스트라 홀의 문이 열렸고 어셔들이 재빨리 줄을 정리했다. 홀의 내부는 조금 어두웠다. 남자들이 여자보다 앞서 걸음을 재촉했다. 홀에는 남자인 네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 그곳은 어둡기 때문이야. 그들은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살라가 아는 어셔와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뭔가 쏟아지고 엎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라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소음의 근원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목캔디를 담은 박스가 엎어져 모조리 쏟아져 있었다. 무리하게 까치발을 들어 팔을 집어넣었던 것이 분명한 아이가 빨개진 얼굴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두꺼운 바지를 입었다. 바닥에 엎어진 무릎이 아픈 게 아니었다. 바닥에 미끄러진 것을 부끄러워할 나이였다. 아이의 보호자가 아이를 안아 달랬다. 살라는 목캔디를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이런 상황을 정확히 교육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살라의 상식으로도 잘 벗겨지는, 왁스를 먹인 공연장용 목캔디가 구정물이 묻은 바닥에 굴러다닌다면, 그것은 절대 주워 담아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입장은 멈추지 않았다. 상황을 전해 들은 청소부가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하기 삼십분 전이었다. * 살라가 홀 뒤편인 음향조절시설로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였다. 붉은 의자에 앉은 관객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돌아다니는 아이를 붙잡아 앉혔다. 헤드셋을 쓴 관리자들이 음향시설을 조절했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저마다 악기를 만지작거렸다. 요란하게 울리는 금관악기 소리와 낮게 웅성이는 관객들의 목소리는 돌림노래처럼 이어졌다. 서로 알은체하며 악수하는 관객 두세 명이 크게 웃었다. 난 악기 조율소리가 제일 좋더라. 관객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살라는 잠시 관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버튼을 눌렀다. 살라가 버튼을 누름으로써 그녀의 월급에 작은 수당이 더해질 수 있다. 그것은 휴대폰 벨소리를 재생하는 역할이었다. 관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바지춤을 뒤졌다. 휴대폰을 보관하고 온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휴대폰을 소지하고 온 관객들은 황급히 휴대폰을 끄거나, 정말로 꺼졌는지를 확인했다. 초대석에 앉은 어떤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살라는 그 남성관객의 옆모습을 얼핏 목격할 수 있었다. 찡그린 것 같았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았고, 남자가 다시 앉기도 전에 홀 내부의 조명들이 어두워졌다. 이윽고 카라얀이 입장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박수소리를 들으며 살라는 파이프를 떠올렸다. 집의 수도관들은 지금쯤 단단히 얼었을까? 균열처럼 연속되는 성에들이 물을 막고 있을까? 카라얀은 박수를 갈무리하고 뒤돌았다. 그리고 지휘봉을 치켜들었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가장 첫마디를 시작했고 이어 피아노가 보조선율로 들어왔다. 현악기의 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오케스트라 가장 앞쪽에 앉은 현악기 연주자들이 정지했다. 악보를 넘기는 행동도 하지 않았고 목관악기 파트가 주선율을 장악할수록 카라얀의 팔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곧 피아노와 목관악기의 역할이 바뀌고 현악기가 자리를 차지했다. 겨울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겪은 적 없는 쓸쓸함을 선사한다고, 어떤 음악평론가가 주장한 적이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단조에서 빛을 발하지 않겠습니까? 혹자는 차이콥스키를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로 꼽지만 그건 라흐마니노프의 정서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광고가 반을 차지하는 프로그램 북을 살라는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끝난 후, 바로 차이콥스키의 심포니 5번을 지휘한 카라얀을 보면 그 음악평론가가 단숨에 새로운 평론을 써내려갈 것을 알았다. 예정에 없는 곡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지니고 있던 프로그램 북을 넘겨보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겨울의 공연장 홀 안에서는 아무도 소음을 내선 안 됐다. 그건 공연 시간에 늦은 사람이 마음대로 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이어 살라가 유일하게 제목과 음악가를 모두 알고 있는 라벨의 볼레로가, 그리고 익숙하지만 제목은 알 수 없는 곡들이 연주되었다. 살라는 인터미션이 다가오자 조용히 홀 밖으로 나갔다. 살라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중계 모니터에 밀도 높게 붙어 있는 관객들이나, 새 독주회에 입장하는 관객들이 아닌, 캔디를 채우러 온 여자였다. 여자의 무채색 코트는 녹은 눈 탓에 비루할 정도로 젖어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은 넘기면 넘길수록 여자의 이마에 달라붙었고 여자는 외양을 정리할 새도 없이 빈 캔디 박스에 새 캔디들을 쏟아부었다. 플라스틱 통에서 작은 벼락소리가 났다. 그리고 여자가 살라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좋지 않네요. 여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여자가 발갛게 붓고 젖은 손가락을 코트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주먹 쥔 손을 내놓았다. 사탕 좀 드시겠어요? 여자의 손에는 갖가지의 사탕이 담겨 있었다. 기침을 예방하는 공연장용 캔디는 아니었다. 살라는 여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사탕을 받았다. 여자의 치아는 저번보다 더 뒤틀려 있었다. 살라는 짙은 색의 껍질의 캔디를 까서 입에 넣었다. 예상대로 인공적인 맛이었기에 도저히 어떤 과일 맛인지 추리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는 것과 동시에 오케스트라 홀 문이 열렸다. 살라가 여자에게 사탕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할 틈도 없이 그녀의 어깨가 빠르고 강하게 붙잡혔다. 여자의 얼굴이 빙글 돌았다. 당신이지요? 중년의 남성이었다. 살라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살라의 어깨를 붙든 손에 힘을 더욱 강하게 실었다. 어셔들이 황급히 남자를 말렸지만 남자는 듣지 않았다. 당신이 벨을 울렸어. 겨우 살라에게서 남자를 떼어낸 어셔들이 숨을 골랐다. 매니저가 달려와 살라에게 눈빛을 보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따위의 물음이 확실했지만 그녀도 알지 못했다. 살라의 입 안에서 사탕이 굴러갔고 달콤한 즙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매니저는 남자를 사무실로 데려가기 위해 살라와 그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이야기 하실까요? 벨을 울렸다고, 당신이. 남자는 매니저 어깨 너머에 있는 살라에게 검지를 치켜들었다. 당신이 울린 거야. 남자는 매니저와 함께 사무실로 향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는 중간중간 살라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달려들 것만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살라가 침을 삼켰다. 작아진 사탕과 함께. * 세면대의 물은 나오지 않았다. 온수를 틀어보기도 하고, 언 수도관에 끓인 생수를 붓기도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살라는 생수와 그것으로 끓인 물을 섞어 세수했다. 윗물은 너무 뜨거웠고 아랫물은 너무 차가웠다. 물기를 채 닦지 않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살라는 거울을 바라본 상태로 잠깐 생각해야 했다. 왜 내 얼굴이 빨갛지? 그리고 몇 초 후 깨달았다. 코피가 나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세면대에 박은 상태로 숨을 내뿜었다. 고기의 핏물을 빼고 난 그릇이 이런 모습이었다. 살라는 뒤집힌 양말을 다시 뒤집어 원상태로 만들었다. 공연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옷장이 단조로워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살라는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기꺼운 일에 가까웠다. 아무도 그녀의 옷차림을 지적하지 않는다. 모두가 유니폼을 입고, 비슷한 색의 양말을 신었다. 그녀는 세탁물을 정리한 후 고지서 봉투를 뜯기 시작했다. 거주자님께, 로 시작하는 봉투는 뜯지 않았다. 그것은 고지서를 빙자한 기부금 홍보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코피는 멎었지만 살라는 여전히 약간 어지러웠다.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세와 공과금을 지불하고 나면 그녀에게는 겨우 최소 생계비가 남아 있었다. 살라는 반사적으로 공연장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의 조각품이나 장식품들, 심지어 바닥에 깔린 마감재 한 조각의 가치를 알아채기 어려웠다. 글쎄, 아름답다는 건 비싸다는 뜻 아닐까. 그녀의 동료 중 하나는 쾌활하게 말했었다. 살라는 필사적으로 그 역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가 계산기에 마지막 숫자를 두들겼을 때 그녀는 떠올리고 말았다. 살라는 꼭 그런 움직임으로 공연장 내부에 벨소리를 울려왔었다. 벨을 재생하는 버튼은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묵직했다. 살라가 버튼을 누를 때면, 그녀는 그녀도 모르는 기쁨에 살짝 빠져들곤 했다. 누구보다 잘 교육받은 관객들이 살라의 손짓 한 번에 당황했다. 맡겼거나 챙겨오지도 않은 휴대폰을 찾느라 빈 허벅지를 찰싹 때리기도 했다. 안전한 유리창 너머로 살라는 그들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 관객이 살라의 어깨를 붙잡았을 때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살라는 계산기를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계산을 마저 하기가 꺼려졌다. 그녀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월급은 일정했고 지불해야 할 돈도 일정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했다. 반듯하게. 매니저는 살라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살라는 휴대폰을 쥔 상태로 잠들었지만 아침까지 그녀에게 온 메시지나, 부재 중 전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공연장으로 출근하자마자, 그녀는 느꼈다. 그녀의 추론은 어딘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벨은, 벨을 울리는 건 규정에 있잖아요? 그래도 하필 그 벨이었어. 살라, 넌 그 벨을 울린 거야. 매니저는 살라를 맞은편에 앉힌 후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벨은 늘 같은 걸 써왔어요. 기억 안 나세요? 살라, 제발. 그냥 가서 죄송하다고 해.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야. 이해가 안 되는데요…. 네가 관객에게 피해를 입혔어. 그렇게만 알아둬. 나가도 좋아. 살라는 입을 잠깐 벙긋거렸지만 곧 일어나야 했다. 매니저는 서류를 들춰보고 있었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왔을 때 그녀는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관객에게 사과를 할 때까지 살라는 공연장 일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프로그램 북조차 만질 수 없었고 그녀와 면식이 있던 어셔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조금 쉬어도 좋잖아. 모두가 비슷한 말을 했다. 살라는 가끔 길 잃은 관객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곤 했다. 그게 전부였다. 목캔디는 주기적으로 채워졌고 여자는 목캔디를 두고 와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헛발걸음을 몇 번 했다. 살라는 아주 멀리서 공연장 내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여전히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살라는 그녀 곁을 지나가는 어셔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 어셔는 금방 그녀의 눈을 피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이끌고 온 신입 어셔들을 교육하는 것에 열중했다. 여러분 모두 공연장 지리를 외워야 합니다. 신입 어셔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그것이니까요. 신입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듯 두리번거리던 신입이 살라를 쳐다보았다. 말간 눈이었다. 살라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살라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녀가 신입 티를 벗기 전부터 그녀는 길을 잃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살라는 지금 그녀가 어디를 향해 걷는지 알 수 없었다. 검정색의 굽 낮은 단화가 뒤꿈치를 사정없이 찔러올 때까지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살라는 많은 동료들을 지나쳤다. 가장 처음 얼굴이 뭉개지고 그다음은 목소리가 흐려졌다. 살라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살라를 부르거나 알은체하지 않았다. 겨우 걸음을 멈췄을 때, 그녀는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목캔디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 나지 않는 목캔디는 공연장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살라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다정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다고, 살라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 굳이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여자가 잇몸을 내보이며 활짝 웃었다. 오늘은 누가 무슨 공연을 하지요? 여자가 주머니를 뒤적이며 물었다. 눈 탓에 흠뻑 젖었던 그 코트 같았다. 그러나 오늘의 코트는 아주 잘 말라 있었고 어쩐지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살라는 입을 벙긋거렸다. 오늘은, 어. 그러니까, 오늘은…. 아, 사탕을 모두 먹어버린 것 같아요. … 모르겠어요. 의사가 그렇게 먹지 말라고 했는데도요. 어쩌면 좋지? 모르겠어요….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옆구리에 끼고 온 공연장용 목캔디 박스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한 주먹만큼의 캔디를 꺼냈다. 살라는 손을 펼치지도, 여자에게 다가서지도 않았다. 여자는 넉살 좋게 살라의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목캔디를 가득 담아주었다. 여자는 살라에게 인사했다. 다음에는 꼭 드릴게요. 새 사탕이요.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살라에게서 멀어졌다. 살라는 한참이나 목캔디를 받든 자세로 서 있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낮은 자세였다. * 그다음날도 살라는 공연장 근처를 맴돌았다. 달라진 것이라고 더이상 그녀가 공연장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입 어셔임이 분명한 이들이 홀 안을 배회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는 길 잃은 고객 관리였지만 신입들은 모두 특유의 빛나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꾹 깨문 입술에서는 약간의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살라가 신입과 눈이 마주치면 신입은 멋쩍게 웃었다. 마치 살라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신입이 고객을 잘못된 방향으로 안내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살라는 나서야만 했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콧잔등의 땀이나 빨개진 귀, 떨리는 목소리. 살라는 그것을 뒤로하고 고객을 올바른 장소로 안내하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순간 그녀는 내장이 아래로, 더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오싹해졌다.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살라의 어깨를 두드린 것은 고객도, 매니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번 식은 피가 데워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다른 어셔가 고객을 데려갔고 살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었어, 따위의 말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그것보다 더 단순했다. 살라, 쉬어야 하는 거 아냐? 어셔가 물었지만 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에 있으면 안 돼. 그는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여기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야. 그렇지? 살라는 그의 태도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녀도 그런 말투나, 몸짓을 직접 실행해야 했다.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마주치고 주머니에서는 사탕이나 껌을 꺼냈다. 아니면 프로그램 북을 펼쳐 가장 사진이 많은 페이지로 상대방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살라는 말했었다. 울지 마. 엄마를 찾아줄게. 아빠를 찾아줄게. 그러나 살라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넌 내 매니저가 아니야. 모두가 네 매니저야. 살라, 정신 차려. 그녀의 말에 그가 대답했다. 그의 말에는 어떠한 대꾸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사과하면 끝날 일을. 그는 그대로 뒤돌아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무겁고 눅눅한 히터바람이 살라의 머리카락 몇 올을 흔들었다. 공연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살라는 알 수 있었다. 어떤 일은 관성처럼 작용했다. 관객들의 발소리나 웅성거림 외에도 그녀가 공연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릴 방법은 많았다. 겉옷과 소지품을 맡긴 관객들이 오케스트라 홀로, 독주회 홀로 입장했고 잠시 후 단발성적인 소란이 홀을 뒤덮었다. 어셔 중 하나가 벨소리를 재생했으리라. 살라는 두꺼운 문 너머로 지휘자가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떤 공연인지, 누구의 지휘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카라얀만큼 유명하지 않다면 그는 꽤 예의 바르게 인사했을 것이다. 불쾌한 관객 탓에 연주를 멈추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가벼운 목례 후에 멋지게 뒤돌아 지휘봉을 치켜들 것이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고……. 공연을 생중계해주는 모니터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모니터 앞을 떠나는 사람, 젖은 손을 바지춤에 비비는 사람. 어떤 아이는 보호자의 엉덩이에 끊임없이 자신의 머리를 박았다. 그러나 보호자는 아이에게 신경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보호자는 성가신듯 아이의 머리를 밀어냈다.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말랬지. 하지… 그리고 살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물었다. 저기요. 지금 연주하는 곡이 뭐예요? 살라는 입을 조금 벌렸다. 당장 발음이 샐 것처럼 흉부에 공기가 들어차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게요. 모르겠네요. 살라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뭔지 몰라요? 보호자는 살라의 차림새를 다시 한번 살폈다. 살라의 차림새는 어셔가 분명했다. 보호자는 그녀의 대답을 더 기다리기 싫다는 듯이 프로그램 북을 판매하는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이는 이제 보호자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아파. 아프다고. 볼레로, 라벨의 볼레로요. 살라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보호자는 듣지 못했다. 볼레로로 말할 것 같으면, 글쎄요. 저는 라벨의 음악을 딱히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수학자들의 기호에는 딱 들어맞은 셈입니다. 우리는 수학의 기원으로 올라가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볼레로는 구조입니다, 이 음악에는 주선율이 흐릅니다. 이제부터 그것을 A라고 지칭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편곡하여 반복한 선율을 A’ 라고 부를 것이고요. 볼레로는 기본적으로 A와 A’ 선율의 반복입니다. 형태와 악기만 조금씩 바꿔서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것이 볼레로의…. * 주말이 찾아오자 살라는 여분의 돈을 더 지불한 후 수도관 수리공을 불렀다. 수리공은 수도관이 아주 꽝꽝 얼었기 때문에 수도관을 모두 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수리공에게 몇 개의 전화번호를 얻은 후, 그녀는 시장에서 채소 몇 종류와 붉은 고기를 사왔다.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끓여 먹었다. 그다음주에 살라는 그 관객에게 사과하기로 결심했다. 매니저는 기꺼이 관객에게 연락을 넣겠다고 대답했다. 살라는 말끔한 카펫이 깔린 공연장을 배회했다. 캐나다의 거장 건축가가 설계하고 건축을 지도했다는 공연장은 신문기사를 인용하자면, 모던했다. 그 누구도 거스르지 않을 만한 곡선은 매끄러웠고 바닥은 차가웠다. 내부는 반짝이거나, 반짝이지 않았다. 그게 모던이었다. 살라는 현대적인 소파에서 시간을 죽였다. 마침내 그 관객이 사무실로 들어갔고 살라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따라 들어갔다. 관객은 매니저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매니저는 공식적인 서류 작업을 위해 함께 있겠다고 했지만 관객은 그것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매니저는 사무실을 떠났다. 살라는 아침에 발톱을 깎고 오지 않은 것을 약간 후회했다. 단화 안의 발톱이 유독 무거웠고 거슬렸다. 발톱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지만 살라는 사과를 잊지 않았다.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벨을 울린 것 말입니까? 네. 벨을 울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가 울렸습니다. 그게 고객님께 피해를 입혔다면…. 제가 무슨 피해를 입었는지 아십니까? 살라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햇빛을 직접적으로 받은 남자의 얼굴은 저번에 봤던 것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노골적인 자연광 탓일지도 몰랐다. 살라는 매니저에게 그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들은 바가 없으므로, 말을 얼버무려야 했다. 포괄적인 사과에 대해 배운 적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 어떤 사과로도 복구가 안 될 피해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순간 살라는 그를 기억해냈다. 그는 그녀가 홀에 벨을 울리자마자 화가 나 일어났던 그 남자였다. 그 옆모습이 확실했다. 당신은 전혀 모르는군. 남자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문을 세게 닫았기 때문에 문고리, 경첩, 책상 위의 액자, 모든 것이 흔들렸다. 살라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조용히 울었다.
  • 공수처 표결 직전까지 서로 맹공

    공수처 표결 직전까지 서로 맹공

    국회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30일 본회의에서 표결하기 직전까지 여야는 극한 대치를 이어 갔다. 공수처법을 악법으로 규정한 자유한국당은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 균열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공수처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한국당은 이날 4+1 협의체 소속 의원들의 양심에 호소하며 공수처법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용기 있게 행동해 달라”며 “헌법 사상 최악의 법이 20대 국회를 통과하는 데 협조한다면 역사가 여러분을 어떻게 기록할지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하라”고 말했다. 실제 4+1 협의체 소속인 바른미래당 당권파 의원 일부는 공수처법에 거듭 반대 의견을 밝혔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은 페이스북에 “여권과 일부 의원이 검찰개혁을 위해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은 검찰개혁과 무관하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바른미래당 당권파인 김동철, 주승용 의원도 공수처법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28일 4+1 협의체의 공수처법에 대해 수정안을 낸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권은희 의원은 무기명투표를 요구했다. 4+1 협의체 소속 의원들이 무기명투표를 하게 되면 눈치를 보지 않고 ‘권은희안’에 찬성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한국당을 향해 “권은희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최악의 공수처를 막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권은희안’에 대해 “실질적 기능을 거의 못 하는 공수처를 만드는 법”이라고 평가하며 4+1 협의체의 공수처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권 의원의) 수정안은 차라리 공수처 무효법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며 “공수처를 무력화하면서 정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하는 안이기 때문에 공수처법으로서의 역할을 못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수처는 무소불위, 안하무인의 검찰을 견제해 국민을 위한 검찰로 바꾸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한국 참여·민주 이탈 조짐에… ‘4+1 공수처법’ 끝까지 표 단속

    한국 참여·민주 이탈 조짐에… ‘4+1 공수처법’ 끝까지 표 단속

    한국, 권은희 수정안 표결 참여도 주목 이탈표 노린 오신환 ‘무기명 투표’ 촉구 이인영 “공동 발의 156명…걱정 안 해” 더불어민주당이 29일 0시를 기점으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가 종료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의결하기 위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30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히면서 공수처법 표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관건은 재적 295명 중 과반인 의결정족수 148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지느냐는 점이다.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와 여기에 동조하는 무소속 의원들을 모두 합하면 166명으로 계산된다. 19명 이상 등을 돌리면 4+1 협의체가 마련한 단일안은 부결된다. 공조 체제는 선거법 개정안 의결 때부터 조금씩 금이 간 상태다. 156명 찬성으로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바른미래당 당권파인 김동철, 김성식, 박주선, 이상돈 의원과 평화당 황주홍 의원,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선거법 개정안 표결에 불참했다. 공수처 설치법에 대한 바른미래당 당권파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주승용, 박주선, 김동철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권력이 충분히 견제될 수 있다며 공수처 설치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바른미래당 당권파 중 공수처 설치법에 찬성 의견을 확실하게 밝힌 의원은 김관영, 채이배 의원 등 2명에 불과하다. 민주당에서도 공수처 설치법에 공개 반대 의사를 표시해 온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금태섭, 조응천 의원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공수처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해 왔다. 다만 민주당 관계자는 “기명투표인 데다 공수처법이 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숙원인데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할 의원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가결 정족수 확보를 재확인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의원 156명이 공동 발의자로 돼 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는 4+1 협의체의 균열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권은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수정안이 변수다. 국회법에 따라 30일 본회의가 열린다면 4+1 협의체의 단일안에 앞서 권은희안이 먼저 표결된다. 범여권과 뜻을 함께해 왔던 호남 지역 무소속 김경진, 이용주, 이용호, 정인화 의원은 이미 권은희안에 동참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탈표 극대화를 위해 문 의장과 민주당에 무기명투표를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무기명투표가 현실화되면 한국당 의원 전원(108명), 한국당 성향 무소속(4명), 바른미래당 비당권파(15명)에다가 4+1에서 이탈표가 10표 이상 나올 수 있어 권은희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한국당은 30일 의원총회에서 권은희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통과시킨 뒤 내년 총선으로 눈을 돌려 기어코 비례민주당을 만들어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의 등에 칼을 꽂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4+1 흔들기에 주력했다.김진아 기자 jin@seoul.co.kr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한국 참여·민주 이탈 조짐에… ‘4+1 공수처법’ 끝까지 표 단속

    한국 참여·민주 이탈 조짐에… ‘4+1 공수처법’ 끝까지 표 단속

    한국, 권은희 수정안 표결 참여도 주목 이탈표 노린 오신환 ‘무기명 투표’ 촉구 이인영 “공동 발의 156명…걱정 안 해”더불어민주당이 29일 0시를 기점으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가 종료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의결하기 위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30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히면서 공수처법 표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관건은 재적 295명 중 과반인 의결정족수 148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지느냐는 점이다.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와 여기에 동조하는 무소속 의원들을 모두 합하면 166명으로 계산된다. 19명 이상 등을 돌리면 4+1 협의체가 마련한 단일안은 부결된다. 공조 체제는 선거법 개정안 의결 때부터 조금씩 금이 간 상태다. 156명 찬성으로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바른미래당 당권파인 김동철, 김성식, 박주선, 이상돈 의원과 평화당 황주홍 의원,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선거법 개정안 표결에 불참했다. 공수처 설치법에 대한 바른미래당 당권파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주승용, 박주선, 김동철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권력이 충분히 견제될 수 있다며 공수처 설치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바른미래당 당권파 중 공수처 설치법에 찬성 의견을 확실하게 밝힌 의원은 김관영, 채이배 의원 등 2명에 불과하다. 민주당에서도 공수처 설치법에 공개 반대 의사를 표시해 온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금태섭, 조응천 의원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공수처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해 왔다. 다만 민주당 관계자는 “기명투표인 데다 공수처법이 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숙원인데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할 의원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가결 정족수 확보를 재확인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의원 156명이 공동 발의자로 돼 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는 4+1 협의체의 균열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권은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수정안이 변수다. 국회법에 따라 30일 본회의가 열린다면 4+1 협의체의 단일안에 앞서 권은희안이 먼저 표결된다. 범여권과 뜻을 함께해 왔던 호남 지역 무소속 김경진, 이용주, 이용호, 정인화 의원은 이미 권은희안에 동참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탈표 극대화를 위해 문 의장과 민주당에 무기명투표를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무기명투표가 현실화되면 한국당 의원 전원(108명), 한국당 성향 무소속(4명), 바른미래당 비당권파(15명)에다가 4+1에서 이탈표가 10표 이상 나올 수 있어 권은희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한국당은 30일 의원총회에서 권은희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통과시킨 뒤 내년 총선으로 눈을 돌려 기어코 비례민주당을 만들어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의 등에 칼을 꽂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4+1 흔들기에 주력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공수처법 필리버스터 자정 종료…30일 표결 전쟁 재연되나

    공수처법 필리버스터 자정 종료…30일 표결 전쟁 재연되나

    민주 ‘4+1’ 공조 균열 막으려 안간힘공수처법 처리 과정서 일부 이탈표 우려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신청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29일 0시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종료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소집 요구한 새 임시국회 회기가 열리는 30일 오전 10시부터는 또다시 표결 전쟁이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오후 9시 26분 시작된 공수처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날을 바꾼 28일에도 계속됐다. 김재경 한국당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서 이날 0시 8분(2시간 44분)까지 토론한 뒤 백혜련 민주당 의원(1시간 28분), 윤재옥 한국당 의원(2시간 3분), 표창원 민주당 의원(1시간 3분),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1시간 7분), 정점식 한국당 의원(2시간 29분), 박범계 민주당 의원(1시간 2분) 등 여야 의원이 번갈아 나와 팽팽한 토론을 펼쳤다. 민주당은 새 임시국회의 개회와 동시에 공수처 법안의 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열어달라고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요청할 계획이다. 국회법에 따라 새 임시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면 공수처 법안은 필리버스터 없이 바로 표결 절차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의 거센 반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공수처 법안이 통과되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8개월 만에 국회 본회를 통과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번 주말 사이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의 공조전선을 탄탄히 하기 위한 작업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선거법 표결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반발이 공조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당장 바른미래당 당권파인 주승용 의원은 전날 최고위원회에서 “공수처법에 대해 반대입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공직선거법 표결에서는 바른미래당 당권파인 박주선·김동철·김성식 의원과 평화당 황주홍 의원이 불참했다. 여권 성향으로 분류되던 무소속 이용호 의원도 표를 던지지 않았다.대안신당 천정배 의원은 기권했다. 민주당에서는 원혜영·추미애·이원욱 의원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29일 오후 최고위원회를 열고 공수처 법안의 표결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서울 노원구, 상계로 확장으로 노원구 진출입 빨라진다

    서울 노원구, 상계로 확장으로 노원구 진출입 빨라진다

    서울 노원구가 상계 덕송간 광역도로와 연계된 상계로 확장공사를 마치고 전면 개통했다고 27일 밝혔다. 총 사업비 452억원(국비 281억원, 시비 171억원)을 투입해 2016년 11월 착공했다. 덕릉터널 초입부터 당고개역 인근 기업은행 사거리까지 541m 구간의 왕복 3차선이었던 도로를 4차선으로 늘리고 폭은 15m에서 25~30m로 넓혔다. 이와 함께 상·하수관 정비도 완료했다. 또한 버스가 정차할 때 교통 흐름이 막히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버스베이(버스 정차 공간)를 확보했다. 구는 서울 동북부와 경기 북부를 연결하는 광역 도로망의 시발점이 될 상계로 확장 개통으로 노원구 진출입이 한층 빠르고 편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도로는 차량 정체가 극심했던 곳이다. 남양주 별내에서 덕릉터널을 지나 상계동으로 진입 시 왕복 4차선이었던 도로가 3차선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병목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매연, 소음 등으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 왔다. 이번 상계로 확장은 교통 흐름 개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확장 구간 내 건축물에 대한 ‘철거 안전관리 대책’ 수립이다. ‘노원구 철거 전문위원회’를 적극 활용해 총 52동의 건물을 철거하는 동안 단 한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건물 철거 시 ‘정밀 안전점검 진단’으로 인접 건물의 균열과 파손을 방지해 다른 건물에 피해가 가는 것을 사전에 예방했다. 두 번째로 오랫동안 무질서하게 설치한 공중시설물을 정비하고 가로 환경을 개선했다. 한전, KT 등과 전신주·공중선로 지중화를 위한 협약을 이끌어냈다. 현재 지중화 공사 공정률은 70%로 겨울철 도로 굴착 통제가 해제되는 내년 3월부터 공사를 재개해 6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기 위해 확장공사 구간 내 조경사업도 추진했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기존 은행나무를 왕벚나무로 교체하고 건물 철거로 인해 발생한 자투리땅에 녹화를 추진했다. 마지막으로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장애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공사에 반영했다. 건물 철거로 인해 오랫동안 정들었던 삶의 터전과 일터를 옮겨야 하는 주민들과는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순조롭게 이주를 완료시켰다. 주민 입회하에 경계 측량을 실시해 신뢰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자 노원경찰서와 협의해 교통 신호체계를 변경했다. 기업은행 사거리에서 덕릉터널 방면으로 이동 시 성림아파트 주변으로 진입이 용이하게 비보호 좌회전을 설치해 교통 불편을 해소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상계로 확장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 뿐만 아니라 인근을 오가는 모든 분들이 쾌적하고 막힘없는 노원구 진출입이 가능해졌다”며 “앞으로도 안전하고 편리한 도로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美 내년 대선 러시아 개입 대비해 사이버전 준비 중

    美 내년 대선 러시아 개입 대비해 사이버전 준비 중

    러시아의 SNS 분열작전 대응트롤에게 “신원 확인돼” 경고무시하면 최소 3일 서버 다운역으로 트롤링 메시지 교란도고위층엔 가짜뉴스로 경쟁폭발 미군 사이버사령부가 러시아 고위관리나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등을 겨냥한 정보전쟁 전략을 개발 중이며, 이는 러시아의 2020년 미국 대선 개입 차단을 위한 대비인 것으로 전해졌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미군 전현직 고위관리는 “사이버사령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는 아니더라도 러시아 고위 지도부와 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작전을 탐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안상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러시아가 계속 미국 선거에 개입을 시도한다면, 민감한 개인 정보를 이용해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암시했다. 바비 체스니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법학과 교수는 “미국은 러시아인들이 기판에 뭔가를 심으면(해킹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려 한다”면서 “러시아 의사결정자들이 특정 적대 행동을 할 경우 치명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의 이런 계획은 중앙정보국(CIA)이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발견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가볍게 여긴 것과 다소 앞뒤가 맞진 않는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선거에서 외국의 개입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이 계획을 세웠다. 미 의회와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미군의 사이버 작전에 대한 규제를 완화, 군 사이버사령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미국은 사이버 공격 능력을 군사 작전에 접목시키길 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이버사령부와 국가안보국(NSA)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미국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주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갈등의 씨앗을 계속해서 심는 방식으로 미국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고위관리는 “이런 방식은 항상 우리 사회의 균열된 틈을 노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이버사령부는 지난 가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짜뉴스’를 뿌리는 러시아 기관을 공격하기도 했다. 사이버사령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자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잘못된 정보를 뿌리고 있는 러시아 ‘트롤’(악랄한 장난을 치는 사용자)들에게 이메일, 팝업, 문자 등을 통해 신원이 노출됐으며 공개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냈다. 이들 트롤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올리가르히가 운영하는 민간단체 ‘인터넷연구소(IRA)’ 소속이었다. 미군의 사이버작전은 러시아 군사정보국 해커들에게도 이용됐다. 트롤이 경고를 무시하자 사이버사령부는 선거일부터 최소 사흘 동안 이들의 서버를 무력화시키는 공격을 단행했다. 이어 컴퓨터 시스템 관리자를 포함한 IRA 직원과 러시아 군사정보국 요원들 간에 혼란과 불화를 확산시키는 메시지를 역으로 전송했다. 미군의 사이버 공격을 받은 러시아 기관에선 당시 내부자가 개인 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오인해 내사에 착수하기도 했다.이런 경험을 살려 러시아 고위 관리와 권력 최고위층 사이에 경쟁심을 조장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작전도 가능성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개발한 전략이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현 정부에 와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정책을 담당했던 마이클 카펜터는 “사이버작전만으로는 상대의 행동에 변화시키기엔 충분치 않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너희의 행동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작전을 경제제재 등 동맹국의 지원을 받는 다른 수단과 함께 사용하면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트럼프 비판 복음파 잡지 편집자 잇따라 물러나 든든한 ‘뒷배’ 균열?

    트럼프 비판 복음파 잡지 편집자 잇따라 물러나 든든한 ‘뒷배’ 균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든든한 뒷배로 여겨지는 복음주의 교단을 대표하는 잡지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천 포스트’의 냅 나스워스 정치부문 편집자가 회사를 떠난 데는 교단 지도자들의 일치된 트럼프 지지가 작용했다고 영국 BBC가 24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나스워스는 23일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어려운 결정에 내몰렸다”며 “발행인이 스스로를 팀 트럼프의 일원으로 만드는 논조를 채택했다. 이런 논조로는 잡지 편집을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퇴사의 변을 밝혔다. 정치 부문 에디터로 10년 가까운 경력의 그는 트위터 해시태그로 #트럼프는 안돼(Never Trump)를 사용했다.BBC가 게티 이미지스 사진을 쓴 것이 눈길을 끈다. 여러 종파 지도자들로부터 성탄 축원을 받는 장면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모습이 눈에 띄는데 2016년 대선 때 트럼프가 그를 부통령으로 기용한 것이 복음주의 신도들의 표를 그러모으는 ‘신의 한 수’가 됐다는 말들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앞서 지난 19일 또하나의 복음주의 대표 잡지인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의 마크 갈리 편집장은 사설 가운데 “대통령은 정적 중 한 명을 괴롭히고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외국 지도자를 강압하는 데 정치적 권력을 사용하려 시도했다”며 “이는 헌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심각하게 부도덕하다는 것”이라고 밝히며 대통령은 탄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달 퇴직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알려진 갈리는 대놓고 트럼프가 대통령의 품위 기준을 떨어뜨리고 여성들과 불미스러운 관계를 시인했다고 전한 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잘못된 표현과 거짓, 비방의 연속이라며 도덕적으로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의 완벽한 예에 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갈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계속 지지하는 많은 복음주의자에게 ‘당신이 누구이고 누구를 섬기는지 기억하라’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이 잡지는 저명한 복음주의 지도자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1956년 발간한 잡지로, 이 매체에 트럼프 탄핵을 요구하는 글이 실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집권당인 공화당의 근간이자 스스로 ‘미국의 주인’임을 자부하는 세력으로, 미국의 개척과 번영을 이룬 ‘미국 정신’의 원류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0월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대선 때 스스로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유권자의 81%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했고, 지난 3월 조사 때 78%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 멕시코 장벽 건설, 무역 장벽 강화, 동성애와 낙태 반대, 반 이슬람 행보를 보인 것은 이들을 의식한 행동이란 해석을 낳았다. 그런데 나스워스와 갈리의 트럼프 탄핵 주장은 트럼프의 뒷배에도 상당한 균열이 생겼다는 의미를 가져 간단치 않은 일이라고 BBC는 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복음파들이 당장 민주당 지지로 돌아설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앞서 퓨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백인 복음주의 신도 가운데 3분의 2는 공화, 3분의 1은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민주당 역시 낙태권 때문에 분열돼 있어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허훈 빠진 KT, 팥 없는 붕어빵

    허훈 빠진 KT, 팥 없는 붕어빵

    9년 만의 7연승으로 잘나가던 부산 KT가 주전가드 허훈의 부상 이후 갑자기 부진을 보이고 있다. 허훈의 부상 전까지 쉴 틈 없는 3점슛으로 상대팀을 폭격하던 공격력이 무뎌지며 최근 3경기 모두 패배했다. 허훈은 지난 17일 안양 KGC전을 앞두고 허벅지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허벅지 앞 대퇴부 근육 손상이었다. 이날 허훈 없이 치른 경기에서 KT는 KGC에 70-84로 졌다. 득점 우위 시간이 6분 11초에 불과할 정도로 일방적인 패배였다. 이후 KT는 20일 전주 KCC, 22일 원주 DB와의 경기도 내줬다. 패배도 패배였지만 경기 내용이 더 문제였다. 허훈의 공백 전까지 KT는 평균 83.2득점으로 전체 1위였다. 그러나 KT는 허훈 공백 이후 3경기에서 모두 80점을 넘기지 못했다. 3경기 평균득점이 73.7점으로 허훈 부상 이후 기준으로는 전체 9위의 초라한 성적이다. 주전가드로서 경기를 조율하던 허훈의 가치는 단순히 패스에만 있지 않았다. 허훈이 출전하면 기본적으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역할을 맡았고, 허훈을 막기 위해 상대가 더블팀 수비를 붙일 때 공간이 나는 선수에게 득점 찬스가 이어지는 장면도 종종 나왔다. 그러나 허훈 부상 이후 수비에 균열을 낼 선수가 없다 보니 KT의 공격은 자주 막혔고 3점슛 의존도가 높은 KT의 공격패턴은 상대가 더 수월하게 수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공동 2위였던 KT는 3연패와 함께 어느새 5위까지 내려왔다. 허훈이 이번 달 내로 복귀하는 건 무리로 알려지면서 KT는 허훈 없이 최소 3경기를 치러야 한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남태평양서 美우방 흔드는 차이나머니

    남태평양서 美우방 흔드는 차이나머니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 기지화 의지도 도서 지역들 “中 주도 일대일로 참여할 것” 美는 인도·태평양 전략 통해 中견제 나서미중 경제전쟁의 여파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섬나라들로 이뤄진 남태평양 도서 지역도 두 나라의 패권 경쟁 각축장이 됐다. 중국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워 이 지역에 대한 지원을 줄여 가는 등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두 나라가 이들 국가에 서로 “내 편에 서라”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 “중국과 미크로네시아 간 우정이 깊어지면서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두통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도·태평양 전략’(미국이 호주와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를 연결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계획)의 요충지인 미크로네시아를 외교적으로 공략해 균열을 일으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 1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 대통령에게 “중국은 미크로네시아와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고 강조한 뒤 수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협력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파누엘로 대통령도 “중국과 경제, 무역, 인프라 건설, 농업, 교육 등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희망한다”며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참여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크로네시아는 하와이와 필리핀 사이에 있으며 과거 일제가 ‘남양군도’로 부르며 조선인들을 강제징용한 곳이다. 시 주석 등장 이후 중국은 ‘해양굴기’의 기치 아래 미크로네시아를 비롯한 남태평양 도서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은 대규모 경협을 내세워 이들 국가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을 군사기지화해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도 또한 숨기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전쟁(1941~1945)을 벌인 지 70여년 만에 미국과 중국이 또다시 이곳에서 맞붙고 있는 형세다. 중국이 남태평양 도서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들 국가 상당수가 대만의 우호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으로서는 대만과의 단교를 유도해 홍콩 시위로 흔들리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미국에 맞서 태평양 지역을 확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대만을 지지하는 미국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과 호주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해 중국 견제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막대한 ‘차이나 머니’를 이기지 못해 고민이 크다고 SCMP는 분석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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