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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 세종기지 연구원 8명 조난 4명생존·1명사망 확인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파견 근무중인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연구원 8명이 지난 6일과 7일(이하 현지시간) 동료 연구원을 귀환시키고 기지로 돌아가다 실종됐다. 9일 0시 현재 이들중 4명의 생존사실은 확인됐지만 1명은 사체로 발견됐다.아직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나머지 3명의 생존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8·9면 현재 생존이 확인된 대원은 세종1호에 탑승했던 정웅식(28·연구원),진준(30·기관정비),김홍귀(31·중장비),황규현(26·의무) 대원이며 전재규(26) 연구원은 사체로 발견됐다.세종2호에 타고 있던 강천윤(39·연구반장),최남열(38·기계설비),김정한(26·연구원) 대원은 최후의 교신장소가 육지인 만큼 생존가능성이 높다.세종기지에 있는 최문영 연구원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세종2호 탑승자의 최후 교신장소가 육지인 만큼 생존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8일 총리실 산하 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파견된 월동대원 24명을 귀국시키기 위해 지난 6일 오후 1시10분(한국시간 7일 새벽 1시10분) 기지가 있는 ‘킹 조지’ 섬을 출발한 ‘세종 1·2호’ 등 2대의 고무보트는 이들을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한 인근 칠레기지에 내려 놓은 뒤 세종기지로 귀환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세종1호’는 무사히 기지로 돌아왔으나 3명의 대원을 태웠던 ‘세종2호’는 강풍과 짙은 안개 등 기상악화로 “인근 기지로 향한다.”는 연락을 끝으로 통신이 두절됐다. 세종기지는 이들에 대한 수색·구조를 위해 7일 오후 1시쯤 5명의 구조대원을 태운 ‘세종 1호’ 보트를 출발시켰으나 출발 1시간30분 후 “고무보트에 이상이 생겼다.”는 마지막 교신을 남긴 뒤 연락이 끊겼다. 이후 세종1호에 탑승해 수색에 나섰던 5명은 실종 13시간 30분 만인 오전 10시30분쯤 러시아 수색대에 의해 중국기지 인근 알드리 섬 대피소에서 발견돼 이곳에서 10㎞ 떨어진 칠레기지로 이송됐다. 조현석기자 hyun68@
  • 사고당한 가족·동료 표정/“살아있을 줄 알았어요”

    남극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전재규(27·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9리) 연구원의 가족들은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실종된 대원 3명의 가족들도 “설마…”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도저히 못 믿어…” 전재규씨 가족 오열 전 연구원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버지 익환(55)씨는 “하나뿐인 아들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울부짖었다.8일 오후 조난 연락을 받고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가족들은 재규씨의 사망 소식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출국을 만류했던 어머니 김명자(48)씨는 비보를 듣고 실신하기도 했다.김씨는 “지난 1일 아들과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도 안부부터 묻는 착한 아들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대 대학원 지구과학물리시스템 전공 3학기에 재학중이던 재규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돈을 벌어 학비에 보태려고 남극 근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전씨는 지원동기서에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지원했다.”고 적었다. ●“부디 살아오기를…” 기도반장 강천윤(39·경기 의왕시 내손면)씨의 부인 노난숙(36)씨는 남편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외아들 동우(9)군의 손을 꼭 잡았다.노씨는 이날 저녁 7시쯤 남편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혹독한 추위 속에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을지 걱정했다.노씨는 “하늘이 무너진 듯 걱정했지만 3년전에도 남편이 남극에 1년 머물다 온 적이 있기 때문에 남편을 믿는다.”고 말했다. 기계설비사 최남열(37·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1동)씨의 부인 김성옥씨(35)는 “지난 6일 남편과 마지막으로 통화했다.”면서 “아직 아이들에게는 알리지도 못했다.”며 실종소식이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김씨 집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인척과 이웃들이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며 몸져 누운 김씨를 위로했다. 조난된 연구원 김정한(27)씨의 경북 김천 평화동 집에는 육순의 부모님과 두 누나,매형 등이 모여 생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조난 소식이 알려진 8일 밤 늦게 4명의 생존자가 확인됐다는긴급뉴스를 들은 가족들은 “정한이도 살아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어머니 장영애(65)씨는 아들 이름만을 애타게 불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아버지 김건교(64)씨는 “7일 오후 3시 아들이 대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믿을 수가 없다.”고 했했다. ●“생사확인 안된 분 가족에 미안” 실종됐다가 생존한 것으로 확인된 진준씨의 부인 이희순(29·인천시 계양구 병방동)씨는 “7일 밤 통화 때 ‘조심하라.’고 하자 남편이 자신있게 ‘걱정마.’라고 말했기 때문에 사망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이씨는 남편의 실종 소식을 듣고도 딸(4)과 아들(2)이 놀랄까봐 친정으로 보내고 침착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이씨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분들의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 김홍귀씨의 부인 이선희(32·인천시 남구 용현5동)씨는 8일 오후 11시쯤 생존소식이 전해 질 때까지 딸 효진(4)양과 시누이 김선화(29)씨와 함께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 접촉을 피했다.이씨는 남편 소식을 묻는 전화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으나 생존이 확인되자 “집을 떠난 뒤 한 달도 안됐는데 다섯번이나 편지를 보냈고 매일같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반드시 살아올 줄 알았다.”며 기뻐했다. ●도전정신 투철했던 조난 대원들 조난자들은 지난해 12월 세종연구기지에 채용될 당시 인터넷 홈페이지에 남긴 지원 이유에서 포부를 밝혔다. 김정한씨는 ‘새로운 도전과 경험’이라고 밝혔고,전재규씨는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남극생활을 경험하고 자연환경을 알고 싶어서’라고 했다.연구원 정웅식(29)씨는 ‘하계 연구 때 본 월동대원의 모습이 너무 멋지고 자랑스러워 보여서’라고 지원이유를 밝혔다.정씨는 이어 “무사히 월동생활을 마치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가능하다면 좋은 사람 만나서 열심히 사랑하는 게 제 바람이다.”라고 밝혔다. 최남열씨도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내 인생의 도약을 위한 현명한 판단’이라고 말했고 의무 담당인 황규현(25)씨는 ‘생소한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적었다.강 반장은 ‘40대 인생설계를 위한자기개발 시간을 갖자.’라고 썼고,김홍귀씨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많은 것을 배우고,1년간의 남극 생활에 자신을 보다 성숙하게 하고 싶네요.’라고 밝혔다. 인천 김학준·구혜영 이유종기자 koohy@
  • 사고경위 재구성/“보트에 이상…” 최후교신

    남극 세종기지 연구원 조난사고를 접한 가족들과 한국 해양연구원 동료들은 대원 8명이 조난됐다는 사고 소식과 이들 가운데 4명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잇따라 접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특히 실종자수가 당초 8명으로 알려졌다가 해양연구원측이 8일 오후(한국시간) 이 가운데 3명의 생존 가능성을 흘린데 이어 이날 밤 추가로 4명의 생존과 1명의 사망소식을 확인하면서 가족들간에는 희비가 엇갈렸다.희망과 실망,안도의 한숨과 비탄이 오락가락했던 하루였다.나머지 3명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와 연구원측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실종자가 생존? 남극 세종기지 남상현 연구원은 8일 밤 10시23분(한국시간) 지난 6일 1차로 조난된 강천윤씨 등 3명을 수색하러 나섰던 대원 5명 가운데 4명이 생존해 있으며,1명이 사망했다고 해양연구원에 긴급 타전했다.곧이어 생존자는 김홍귀(31·중장비)·황규현(25·의무)·진준(29·기관정비)·정웅식(29·연구원) 대원 등 4명으로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보고했다.사망자는 전재규 대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연구원측은 “러시아 구조대가 4명의 생존 사실을 세종기지에 알려왔다.”고 전했다.이들은 당초 수색을 나간 중국기지와 칠레기지 인근 알드리 섬 비상대피소에 대피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앞서 조난된 강천윤·김정한·최남열 대원 등 3명의 생사는 9일 자정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6일 조난 17차 대원 6명은 지난 6일 오후 1시10분 고무보트인 세종 1호와 세종 2호(1차 조난보트:강천윤·김정한·최남열씨 등 실종)에 3명씩 나눠 탔다.이들은 제16차 월동대 24명을 인근 칠레 공군기지에 내려 놓고 작별 인사를 한 뒤 세종기지로 돌아가기 위해 보트를 돌렸다.동시에 출발한 2개의 보트 가운데 세종 1호는 1시간 만에 무사히 세종 기지로 돌아왔다.강풍과 폭설 등으로 약 15㎞ 거리의 바다를 건너 평상시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다.그러나 세종 2호는 귀환하지 못한 채 오후 5시 30분쯤 ‘인근 중국기지로 향한다.’는 교신을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 세종기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세종2호와 무선연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또 우루과이와 칠레 해군함정에 요청,이들 함정이 사고해역을 수색했지만 초속 20m의 강풍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 다음날인 7일 오전 8시30분 세종 2호에 탑승했던 강천윤 대원이 “대원 3명 모두 안전하다.”는 통신을 보내와 한가닥 희망을 가졌다.이후 통화가 두절됐다가 오전 10시쯤 세종2호 무전기의 버튼터치 신호가 감지됐다.이 때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넬슨 섬 등을 중심으로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소득이 없었다. ●7일 조난 세종기지는 오후 6시10분 조난대원이 육상에 있을 것으로 보고 김홍귀 대원 등 5명으로 비상대기조를 편성,본격 수색작업에 투입했다.1차때 나갔다가 귀환했던 김홍귀 대원과 정웅식 대원을 포함해 황규현,진준,전재규씨(사망) 등 5명이 수색조에 참가했다. 구조대는 오후 7시쯤 중국측으로부터 안전에 대한 협조를 약속받았으며,기상상태가 호전돼 수색에 문제가 없다는 연락을 해왔다.또 8시20분에는 칠레기지를 지나면서 알드리 섬을 수색하겠다는 무선교신을 했다.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고무보트에 이상이 생겼다.조종수가 물에빠졌다.”는 김홍귀 대원의 교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그러나 이들 5명 가운데 4명의 생존은 확인됐다. 강동형 유지혜기자 yunbin@
  • ‘부안 장기시위 원동력’ 전문가 분석/독특한 농촌 공동체 자발 참여 늘어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시위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부안에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과거 핵폐기장 후보지로 거론됐던 안면도와 굴업도 등에서 유사한 양상이 전개됐지만 부안처럼 반발이 장기간 지속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저항이 가장 심했던 91년 안면도 사태는 정부의 백지화로 7일만에 끝났다.95년 굴업도 사태는 7개월을 끌었지만 적극 참가자는 주민 300여명뿐이었다. ●‘부안 현상’…학자들도 관심 최근 부안을 방문했던 상지대 사회학과 홍성태 교수는 “인구 7만명도 안 되는 군 단위 자치단체에서 1만명이 넘는 대규모 집회가 여러 차례 열리고 저녁마다 1000명 규모의 집회가 수개월 동안 이어지는 것은 세계 운동사적으로 유례가 드물다.”면서 “부안시위는 사회운동론적 접근이 필요한 독특한 사회현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안 현상’의 원동력을 부안의 독특한 지역문화와 지도부의 탄탄한 조직력,지도부와 주민과의 효과적인 결합 등으로 분석했다.전북대 사회학과 정철희 교수는 “농촌 특성상 정서적 동질성이 강하고집단주의적 공동체문화가 남아 있다.”면서 “부안 시위는 강도와 지속성 면에서 도시에서 나타나기 힘든 현상”이라고 진단했다.7년째 현지에서 목회활동 중인 부안 제일교회 황진형(50) 목사는 “일과 여가를 함께 하고 희로애락을 공유해온 만큼 한가지 이슈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기 쉽다.”고 말했다. ●애향심이 장기시위 이끈 주요인 5개월 시위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풀이된다.부안경찰서 관계자는 “생거부안(生居扶安·살아서는 부안에 거주하라.)이란 말이 있을 만큼 주민들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면서 “그래서 위험시설에 ‘죽기살기’로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운동경험이 풍부한 지도부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시위를 주도하는 핵폐기장 반대 범부안군민대책위에는 20여명이 상근한다.이들 대부분은 학생운동을 하다 귀향한 농민회 간부와 귀농민들이다.김진원 조직위원장과 김종성 집행위원장은 1970∼80년대 서울서 대학을 다닌 ‘386 운동권’으로 농민회를 이끌어왔다.이현민 정책실장은 대학시절 농촌활동을 부안에서 한 것이 계기가 돼 정착했다.문규현 부안성당 주임신부와 김인경 원불교 교무 등 종교계 인사와 지역원로들로 구성된 공동대표단도 주민들에게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조직력 부안군내 13개 읍·면에 구성된 읍·면대책위에는 자율방범대,지역발전협의회 등 기존의 공조직과 부녀회,청년회 등 비공식 조직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실핏줄처럼 부안군민을 엮고 있는 것이다.읍면대책위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것은 농민회다.70년대부터 이어진 가톨릭 농민운동과 87년의 소몰이 시위,89년의 수세투쟁 등을 거치며 경험을 축적한 농민회는 13개 읍면 가운데 8개면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여기에 지속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면서 지도부의 ‘과학적’ 반핵논리를 익힌 주민들의 자발성도 빼놓을 수 없다. 부안 이세영 유지혜기자 sylee@ ■최규만 안면도 반핵투쟁위장의 제언 “정부와의 싸움보다도 주민간 반목이 더 힘들었어요.” 충남 안면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을 이끌며 정부와 3년간 싸운 최규만(崔珪滿·사진·50) 당시 ‘안면도 반핵투쟁위원회’ 위원장은 “1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 앙금이 주민들 사이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유치찬성 일부 주민의 얼굴에는 반핵투쟁 집행부에 몸담았던 이웃들을 보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저 ××,밥맛 떨어져.’라는 표정이 역력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반핵 집행부는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탈자가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핵폐기물유치 찬성주민에 대해 ‘경조사에 불참한다.’‘상여도 빌려주지 않는다.’ 등 10개항의 규칙을 정해 불이익을 주었다.그는 “규칙이 만들어진 후 5촌 고모가 숨졌지만 상여를 빌려주지 않아 홍성까지 가 사서 장사를 치렀다.”며 가슴아파했다. ●안면도는 ‘무조건 NO’ 최씨는 “당시 안면도의 분위기는 ‘보상이고 뭐고 무조건 내 고향에 핵폐기장은 안 된다.’여서 부안처럼 대화의 여지가 없었다.”며 “이는 지역이기주의보다 ‘지극한 고향사랑’”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부안은 대화여지를 남겨 수용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안면도 사태’는 90년11월6∼8일 3일간 일어난 사건이다.‘안면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선다.’고 보도되자 주민들이 파출소를 습격하고 휘발유 드럼통에 면직원들을 발가벗겨 붙들어 매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든 뒤 경찰 진입을 저지했다.백지화 얘기가 나오면서 진정됐으나 이듬해 재선정된 후보지에 안면도가 들어가자 주민들은 다시 반대운동에 나섰다. ●장기화되면 집안꼴도 엉망진창 최씨는 “투쟁이 장기화된 시기에 정부의 포섭 및 회유로 유치찬성으로 돌아선 주민들과 반목이 시작됐다.”며 “주민들이 생업까지 포기하고 반대활동에 나서 집안꼴도 말이 아니게 됐다.”고 얘기한다.자신도 건축자재상을 해 ‘안면도 갑부’로 불렸으나 사비를 투쟁자금과 손님접대비 등에 쓰면서 사태후 알거지가 됐다고 한다. 최씨는 “가산을 탕진해 고향을 떠날까 했으나 ‘고향사랑’을 외치며 싸운 게 허구였다는 걸 자인하는 것 같아 못 떠났다.”며 “아내와 함께 소일삼아 낚시로 잡은 고기를 ‘시절 좋을 때’ 사뒀던 양식장에 하나둘 넣어기른 게 생업이 됐다.”고 말했다.그는 “일이 끝난 뒤 돈이 없어 자식들이 빈병을 주워 노트를 사는 모습을 보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며 “부안도 장기화되면 나같이 결딴난 이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결정은 이를수록 좋다 최씨는 “주민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고 이를 백퍼센트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정부는 주민투표든 뭐든 조속히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투명하고 일관성있는 정책추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또 “정부가 ‘시간이 없다.’며 밀어붙였지만 10년 이상을 허송세월했다.”며 “사전에 주민이 핵폐기장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게 안전성을 증명할 수 있는 대책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대화가 안 되는 상태에서 공권력이 투입되면 ‘생존권’이 달린 주민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옹호했다. 안면도 이천열기자 sky@
  • 세상 모순 알리는 ‘푸른 호각 소리’/6년만에 8번째 시집 ‘은빛 호각’ 낸 이시영 시인

    중견 시인 이시영(54)이 6년 만에 내놓은 8번째 시집 ‘은빛 호각’(창비사 펴냄)은 새로운 형식과 일관된 시정신으로 빛난다.특히 산문시가 많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시인은 첫시집 ‘만월(滿月)’을 비롯하여 ‘바람 속으로’‘길은 멀다 친구여’ 등에서 주로 쉽고 긴 시로 이야기하듯 세상의 모순을 고발했다. 그러다 시적 연륜이 무르익어서였는지 91년 발표한 시집 ‘이슬맺힌 노래’를 시작으로 94년 ‘무늬’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짧은 시로 변화를 모색했다.노장(老莊)사상을 보는 듯 선시(禪詩)에 가까운 압축적 시는 96년 시집 ‘사이’에서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중에는 2∼3행으로 이루어진 ‘저녁빛 속’‘시월’등 간결한 시에서 함축미를 보여주었다.당시 시인은 “시적 호흡이 긴 시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던 시인이 세상에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더 한가로워진 것일까.이번에 산문시라는 새로운 발걸음을 떼어놓았다.산문시임에도 늘어지거나 산만하지 않고 행간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익살스러운 대화와 차분한 장면묘사로 새만금 갯벌을 살리려는 삼보일배 행렬을 그린 ‘수경 스님,규현 신부님’,날조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허무맹랑함을 고발한 ‘증언’ 등은 산문시라는 틀에서 제값을 발한다. ●산문시라는 새로운 발걸음 선보여 또 동료 문인들을 노래한 작품이 부쩍 많아졌다.이전에 그의 작품을 채운 사람들은 대개 이름없는 민초들이었다.그런데 이번 시집엔 ‘혼불’의 작가 최명희 등 문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유신시절 함께 유치장에 갇혔던 이들은 물론 경찰관까지 몰두하게 만든 이야기꾼 이문구의 모습(‘구류’),두차례 만남에서 “근원적 고독감”과 그의 이면에 담긴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을 느낀 최명희(‘최명희씨를 생각함’),항일투쟁에 빛나는 옌볜 작가 김학철 옹이 의연하고 위엄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노 혁명가의 죽음’) 등을 통해 시인은 ‘문단의 큰 사람’으로서의 다양한 교유경험을 확장시켜 문단사의 한축 혹은 현대사를 풍성하게 한다. ●가난한 이웃에 대한 애정 묻어나 아울러 가난한 이웃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는 이번 시집은 엄격하고 치열한 자세로 한결같이 인간다움을 지향해온 시적 여정을 오롯이 반영한다.그 모습은 다음 시에 비유적으로 담겨있다.“겨울이 깊어가자 라일락나무에 다시 꽃망울이 돋았다/거리엔 바람 불고 하늘은 푸른데/세상의 모든 아픈 것들은 저렇게 오는가”(시 ‘맺힘’ 전문) 시인은 76년 첫시집을 내면서 세상과 자신에게 “정말,좋은 시를 쓰고 싶다.그것이 나의 꾸밈없는 노래이면서 우리들의 진정한 노래로 불려질 수 있는 시를”이라고 세상과 자신에게 다짐한 바 있다. 이번 시집은 새로운 틀을 모색하면서도 그의 초심만은 푸른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종수기자 vielee@
  • 말말말˙˙˙

    그동안 신부로 살면서 한 일이 있다면 민주화와 평화를 위한 ‘거리투쟁’이었다.이제는 유랑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평화를 만들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팡이가 돼주고 싶다. -문규현 신부,14일 이라크 파병 반대와 반전을 염원하는 유랑을 떠나며-
  • 책 /유럽의 탄생

    /장 바티스트 뒤로젤 지음 유럽은 서양사의 중심이다.근대를 형성한 사회구조와 그것의 근간이 된 철학·정치(민주주의)·과학·경제(자본주의) 등의 발원지가 바로 유럽이다.그러나 유럽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역사 속에 등장했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유럽은 우리에게 언제나 ‘단일한’ 실체로 인식돼 온 측면이 없지 않다.우리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럽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서구에서 들여온 지식체계에 근거를 둔 것이다. ‘유럽의 탄생’(장 바티스트 뒤로젤 지음,이규현 등 옮김,지식의풍경 펴냄)은 유럽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부정한다.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유럽이 어떻게 ‘탄생’됐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제우스 신에게 몸을 빼앗긴 아름다운 요정 에우로파로부터 그 이름을 빌려 온 유럽.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에서 오랜 세월 여러 종족과 국민들이 서로 어울려 살고 싸우면서도 유럽인들은 오늘의 유럽을 특징짓는 공통된 문화와 문명을 가꿔왔다.하지만 그것이 곧 역사상 하나의 실체로서 유럽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유럽은 헤로도토스에게는 단순한 지리학적 명칭이었으며,플리니우스에게는 최선의 질을 갖춘 대륙이었고,중세에는 기독교 세계 혹은 서방이었다.또한 17∼18세기 구체제 시대에는 세력균형 원리에 묶여 대립하는 국가들의 총체였으며,이탈리아의 마치니와 같은 19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서로 연대감을 느끼는 국민국가들의 집합체였다.1차세계대전을 전후한 20세기에는 냉혹한 민족주의적 대결의 장이었다.그렇게 볼 때 하나의 정치 단위로서의 유럽은 비교적 최근에 고안된 ‘발명품’임을 알 수 있다. 유럽합중국운동에 뜻을 두기도 했던 저자는 오늘날 유럽연합이 탄생했다고 해서 유럽이 번영과 화합의 공동체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자기도취적 환상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어쨌든 유럽의 통합은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실이 됐다. 유럽연합은 2004년이면 서유럽뿐만 아니라 전 유럽대륙에 걸친 명실상부한 국가연합체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25개 회원국에 4억 5000만명의 인구를 지닌 세계 최대의 단일 경제권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 혹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는 우리 지식사회에 유럽의 본질적 중요성을 알리는 작은 계기가 될 만하다.1만 6000원. 김종면기자
  • ‘경찰의 날’ 365명 훈·포장

    정부는 제58돌 ‘경찰의 날’인 21일 민생치안 확립에 기여한 공로로 권지관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경찰관 365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다음은 훈·포장 수상자 명단. (개 인) ●홍조근정훈장(6명) △권지관(부산지방청장)△김상봉(중앙학교장)△송인동(본청정보국장)△최광식(경찰청 혁신단장)△최화영(서울101경비단장)△최석민(서울경비부장) ●녹조근정훈장(19명) △손진우 이영화 김정식(이상 경찰청 총경)△김수환(경찰청 경정)△손창완 박종환(이상 서울 총경)△배효갑(서울 경정)△김태진(부산 총경)△오규만(대구 총경)△이상원(인천 총경)△박영천(울산 경정)△이연우(경기 총경)△허만영(강원 총경)△조규성(충북 총경)△양재천(충남 총경)△김운회(전북 총경)△양종열(전남 총경)△전희상(경북 총경)△이오건(경남 총경) ●옥조근정훈장(5명) △조성래(서울 경감)△장상철(서울 경위)△김종호(부산 경위)△유기서(경기 경사)△강월진(제주 경감) ●근정포장(36명) △김학배 조용섭 김기용 박재현 문점호 김병철 김인택 이동선(이상 경찰청 총경)△김상운윤명성(이상 경찰청 경정)△노희민(경찰청 경위)△최성철(서울 총경)△이호준 박형식(이상 서울 경정)△김형생 이진모(이상 서울 경사)△박영진(부산 경무관)△박홍석(부산 경정)△최을용(부산 경위)△손인섭(대구 경위)△이성형(인천 경정)△김동욱(울산 경정)△유복열(경기 경정)△권영헌(경기 경감)△한효성(경기 경사)△박승동(강원 경위)△최광옥(충북 경감)△유재호(충남 경정)△이만춘(전북 경위)△장동수(전남 경정)△김규일(전남 경위)△김상걸(경북 경위)△서윤석(경남 경위)△김희인(제주 경위)△송강호(경찰대학 경무관)△이부길(운전면허 경감) ●대통령표창(145명) △강대형(경찰청 경무관)△윤재옥 조길형 장희곤 유근섭 한풍현 박수현(이상 경찰청 총경)△장권영 최경식 신승철 박재진 안창훈 김창연(이상 경찰청 경정)△한영록 최호열 이종윤(이상 경찰청 경감)△김경숙 이병석(이상 경찰청 경위)△조우석(경찰청 경사)△한완상(경찰청 혁신위)△박점욱 김정석 황성찬(이상 서울 총경)△하상구 백준태 고귀영 홍순광 정겸균 천범영 윤희중 이인구 이병하 노성순 김춘배(이상 서울 경정)△구본영 박정근 최흥묵 윤재선 홍진국(이상 서울 경감)△이동환 윤성혜(이상 서울청 경감)△장명본 백순근 정내인 안태준 최종성 송재원 박영삼(이상 서울 경위)△노태호 문현욱 안강호 손영석 전영근 서성환(이상 서울 경사)△이한명 송수태 김진영(이상 부산 총경)△김철준 류해국(이상 부산 경정)△위승준 강희태 김용철(이상 부산 경감)△박수철(부산 경위)△지형식(부산 경사)△정동식(대구 경정)△이강호 박용관 장재관(이상 대구 경감)△최경준(대구 경위)△김광원(인천 경정)△안종성(인천 경감)△구무모 이상균(이상 인천 경위)△인태길(인천 경사)△김재병(울산 총경)△서융근(울산 경사)△김도식(경기청 경무관)△나옥주 이재영(이상 경기 총경)△이한일 박준배 천시훈 유현수(이상 경기 경정)△김옥남 홍재일(이상 경기 경감)△김화자 한상용 이병운 김종규 나완주(이상 경기 경위)△김기섭(경기 경사)△정성옥(강원 경정)△박동영 김동혁(이상 강원 경감)△장석두(강원 경위)△최기영(충북 경정)△박용기(충북 경감)△황순광(충북 경위)△신건우(충북 경사)△강종식 박준창 주현종(이상 충남 경정)△지채흠 김남윤(이상 충남 경감)△조준형 전경태(이상 충남 경사)△이기철(전북 경정)△조영신 조동환(이상 전북 경감)△임진옥(전북 경위)△조종선(전북 경사)△안병갑 안병호 김도기 임광문(이상 전남 경정)△황인옥(전남 경감)△나홍주 유영섭 정길석 정방기(이상 전남 경위)△김동영(경북 총경)△김수희(경북 경정)△이준근 류영운(이상 경북 경감)△정대영(경북 경위)△방재식 김근수(이상 경북 경사)△양동인(경남 총경)△곽예환 나종옥(이상 경남 경정)△정경주 박지홍(이상 경남 경감)△류해명 장봉명(이상 경남 경사)△김동규(제주 총경)△한성호(경찰병원 의무부이사관)△김소연(경찰병원 의무서기관)△박기선(경찰대학 총경)△이상안(경찰대학 교수)△박봉하(종합학교 경감)△유난수(중앙학교 경감)△신기범(운전면허 경감)△장광영(경목연합회)△강정웅(경기 경승) ●국무총리표창(154명) △정호선 신문철 박병무 김성기 엄상춘(이상 경찰청 경위)△이종철(경찰청 경사)△김원준 노승일 김성완 박신규 강계령 김석곤 이한병 김준철 김규현(이상 서울 경정)△이상백 김장호 심은섭 한정태 박영식(이상 서울 경감)△최유조 김동원 이명우 이명숙 강계영 한종 설위수 우대우(이상 서울 경위)△이상철 김예승 오삼택 최홍우 이천호 김영환 김재용 정도야 황규호 최동석 고춘삼 함두병(이상 서울 경사)△이홍재 이풍종 지화명 조치헌(이상 서울 경장)△배종환(부산 경감)△이재홍 김주복 이영근 안경일(이상 부산 경위)△박명욱 임기홍 민경만 박영조 성동환(이상 부산 경사)△이형록 강병열(이상 부산 경장)△권혁우(대구 경정)△박준영 차광년 황인구 배영춘(이상 대구 경위)△장원덕 김덕남 박배권(이상 대구 경사)△조종림 소선영(이상 인천 경정)△신성권(인천 경감)△장정순 이충성 문영제 고영훈(이상 인천 경위)△최진우(인천 경사)△노갑이 김종성 지용근(이상 울산 경위)△홍창원(울산 경사)△정용환 김형덕 이은정(이상 경기 경정)△전갑성 김석홍 김경식 장한주 이경환(이상 경기 경감)△서성기 윤연성 임동순 김윤학 우재진 신철선김형수(이상 경기 경위)△김태기 김종만 한재덕 김병갑(이상 경기 경사)△이영호(강원 경감)△한기현 박영실(이상 강원 경사)△김진수 안칠성 박칠용(이상 강원 경위)△변재철(충북 경감)△나균석(충북 경위)△박진호(충북 경사)△김재선 이종욱(이상 충남 경정)△유재숙(충남 경감)△이을수 류지헌 조만제(이상 충남 경위)△이은우(충남 경사)△이홍석(충남 경장)△이동민(전북 경정)△김종관(전북 경감)△안민현 송미영(이상 전북 경위)△박병주(전북 경사)△최복규(전북 경장)△김규남(전북 경위)△고광채 김운봉(이상 전남 경정)△정영기 윤주현 김옥천 이완진(이상 전남 경감)△김근영 국윤상 조정훈 김만성(이상 전남 경위)△이창용(전남 경사)△신한수 조용권 이춘교 이장우(이상 경북 경감)△안선 이상훈 석교근 김동수(이상 경북 경사)△김상우(경북 경장)△최호윤(경남 경정)△박원태 이용선(이상 경남 경감)△김종열 박수길(이상 경남 경위)△정창엽 이도숙(이상 경남 경사)△전필욱(경남 순경)△김홍두 홍인식(이상 제주 경사)△오충윤(제주 경위)△민정자(경찰병원 간호사무관)△김도형(종합학교 경위)△하명수(중앙학교 경감)△박재섭(운전면허 경위) (단 체) ●대통령표창 △충남지방경찰청△서울 종로경찰서△서울 2기동대 23중대△서울 713전경대△부산 남부서 방순대
  • 부안 핵폐기장 재검토 가능성/정부·주민 대화기구 합의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추진이 지연돼 온 원전수거물 관리센터(원전센터)의 전북 부안유치 문제가 정부와 부안주민간 대화기구를 통해 재검토될 전망이다. 고건 국무총리는 3일 낮 삼청동 공관으로 ‘핵 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반대대책위) 대표단을 초청,오찬간담회를 갖고 정부와 반대대책위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대화기구’를 구성키로 합의했다고 총리실이 발표했다. 총리실은 “대화는 조건없이,모든 사안에 대해,진지하게 해 나간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지난달 29일 고 총리가 부안측 대표단을 공관으로 초청,‘기탄없는 대화’를 제의한 데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뤄진 이날 간담회에는 문규현 신부,수경 스님,김인경 원불교 교무,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고영조 반대대책위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양측은 이에 따라 ‘대화기구’ 구성을 위한 실무기구를 정부대표 2명,반대대책위 2명,중재인 1명 등 5명으로 구성해 이르면 내주 첫 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노주석기자 joo@
  • [김광림의 플레이볼] 포스트시즌의 열쇠 ‘집중력’

    얼마 전 삼성은 롯데와의 경기에서 어이없는 릴레이 실책으로 한꺼번에 3점을 헌납해 부산 사직구장을 찾은 프로야구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롯데는 이날 1회말에 안타 2개와 4구 2개를 묶어 1득점한 뒤 계속된 무사 만루의 찬스를 이어갔다.타석에 들어선 5번타자 박정태의 희생플라이때 모든 주자가 홈으로 들어온 것이다.이해가 잘 안 되는 상황이다. 당시 상황을 재현해 보면 이렇다.발단은 삼성 좌익수 양준혁의 송구.3루주자 문규현이 박정태의 희생플라이때 홈으로 쇄도하자 평소 자신의 송구에 불안감을 갖고 있던 양준혁은 플라이볼을 잡자마자 급하게 홈으로 뿌렸다.공은 홈으로 쇄도하던 문규현의 등에 맞고 방향이 급선회했다. 포수 뒤에서 백업플레이를 하던 투수 권혁은 이 공을 주운 뒤 2루로 뛰던 1루주자 이시온을 아웃시키기 위해 2루로 던졌는데,2루수 고지행의 키를 훌쩍 넘겨 중견수 앞까지 굴러갔다.양준혁에 이은 권혁의 실책.이 사이 2루주자 손인호는 쉽게 득점했다. 삼성의 수비 실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중견수 박한이마저 연속득점을 허용하자 급한 나머지 스텝이 꼬이면서 또다시 공을 뒤로 빠뜨린 것.그 사이 2루를 돈 이시온마저 여유있게 홈을 밟아 롯데는 3득점 했다.좌익수 양준혁과 투수 권혁에 이은 중견수 박한이의 릴레이 실책이 순식간에 벌어졌고,결국 삼성은 꼴찌 롯데에 3-5로 패했다. 경기를 하다보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실책도 하게 되고 본 헤드플레이도 저지를 수 있다.또 기록되지 않는 실수로 승리를 날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하지만 때가 문제다.9월이면 정규시즌이 끝나고 하루나 이틀 뒤에 바로 포스트시즌이 시작된다.정규시즌이 풀리그인데 견줘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은 토너먼트로 ‘지면 바로 끝장’이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상대팀의 전력을 완전히 파악하고 경기에 나서기 때문에 특히 정신력이 강조된다.팽팽한 상황에서 실책 하나는 바로 실점으로 연결되고,팀 분위기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혹자는 멘털스포츠인 야구에서 경기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오는 것은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애써무시하려 한다.하지만 바꿔 말하면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실책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승리의 지름길인 셈이다. 광주방송 해설위원 kkl33@hanmail.net
  • 명동성당 닮아가는 부안성당/반핵시위 핵심 수배자들 은신 경찰도 ‘성역’여겨 진입 자제

    반핵운동의 중심지인 전북 부안성당이 민주화운동의 산실이었던 ‘제2의 명동성당’으로 떠오르고 있다. 2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는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진원지인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의 부안성당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안지역에서는 지난 7월 9일 반핵시위가 발생한 이후 70일째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촛불시위가 60여일째 열리고 있고 고속도로 점거,등교거부,군수폭행 등 격렬한 시위도 끊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부안성당은 반핵운동의 중심지가 됐다.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문규현 신부가 이끌고 있는 부안성당에는 핵대책위가 최근 사무실을 차렸다.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대책위 핵심인물들도 이곳에 머물고 있다.독재에 맞서온 성당은 경찰 등 수사기관이 함부로 진입할 수 없는 성역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군수 폭행사태 이후 부안지역의 치안 회복을 위해 60개 중대,7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한 경찰도 부안성당만은 공권력 행사의 예외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불법시위와 군수 폭행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에 78명이나 배치됐지만 핵대책위 핵심간부와 수배자 12명이 부안성당에 은신하고 있어 검거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성당에 병력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핵대책위에 천주교뿐 아니라 원불교,불교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어 자칫 ‘종교와의 전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 고심 중이다. 1926년 부안읍 서외리에 세워진 부안성당은 2398평의 부지에 읍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웅장한 교회 건물과 막강한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
  • 김승훈신부 타계/박종철치사 폭로… 6·10항쟁 기폭

    지난 70년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핵심으로 활동하면서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승훈(마티아·사진) 신부가 2일 오전 2시35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숙환으로 선종했다.64세. 김 신부는 암울했던 군사정권 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일관되게 주장,정의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현장 목회를 실천하면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고통을 함께 나눈 대표적인 성직자였다.193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김 신부는 서울 성신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멤버로 가입했고 이후 삭발과 단식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민주화 운동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특히 1987년 박종철군 고문 치사 조작 사건 폭로는 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불을 지펴 서슬퍼런 군부독재를 무너뜨린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당시 천주교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명의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김 신부는 바로 이 성명 발표를 주도한 인물이다. 평범한 목회자로 현장을 지키다가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74년 9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 지학순 주교가 구속될 즈음 탄생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면서부터.이후 “한 줄기 정의와 양심의 횃불을 밝혀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자.”는 구호를 내걸고 정의와 평화통일의 일선에 나섰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았다.대학생 신분으로 방북해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통일의 꽃’ 임수경씨 방북 때도 당초 문규현 신부 대신 고인이 동행자로 내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76년 명동성당에서 있은 3·1시국선언에 연루된 이후 선종할 때까지 각종 시국선언의 공동대표나 발기인으로 활동했으며,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씨 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냈고 김재규씨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는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도 맡았었다.고인의 유해는 2일 명동성당으로 옮겨졌으며 장례미사는 4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02)777-0641∼3. 정부는 김승훈 신부의 생전공로를 기려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키로 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고양의회 “철도 옆 아파트 반대”

    고양시의회 ‘경의선전철 고양시구간 지상화계획 변경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심규현 의원)는 15일 대한주택공사가 추진하는 일산2택지지구 철로변 공동주택 건설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특위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착공을 눈앞에 둔 일산2지구 내 A1,A2,A3 지구는 철로변에 위치,공동주택이 들어설 경우 기존 철로변 탄현·일산1·풍동 등의 경우처럼 소음·진동과 교통장애 등 심각한 주거환경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특위 심규현 위원장은 “주공은 법적 이격거리 50m가 넘는다는 이유로 철로에서 불과 70m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려 한다.”고 밝히고 “특히 이 지역에 무주택 서민용인 국민임대아파트를 철로변으로 전진배치하는 비도덕적 계획을 강행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심 위원장은 “이같은 피해는 경의선 복선이 지하 또는 반지하로 건설될 경우 해결된다.”고 밝히고 “현재 특위와 고양시·철도청이 경의선 복선 구간의 반지화 또는 지화하를 협의중이므로 택지지구 공사 착공을 일단 연기하거나 계획을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문규현신부 노대통령에 공개서한

    부안 핵폐기장 백지화 대책위원회 공동의장인 문규현(부안성당) 신부는 3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안의 상황과 민심을 전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문 신부는 편지에서 “우리가 대통령의 적도 아닌데 인구 7만명인 부안에 5000명의 병력을 상주시킨데 이어 ‘극단적인 행동을 엄단하라.’는 당신의 호령을 매일 같이 듣는다.”면서 “경찰은 군민을 향해 방패와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핵폐기장 선정위원의 신상 조차 밝히지 않은 것은 투명한 행정을 강조한 노 대통령의 신념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부안 임송학기자
  • 위도주민 “기대” · 부안군민 “사탕발림”/ 현금보상 엇갈린 반응

    전북 부안군 위도의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를 둘러싼 주민·시민단체와 정부간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정부가 위도 주민에 대한 현금보상 방침을 밝히는 등 사태진화에 나섰지만 시민단체 등 시설 유치에 반대하는 측에선 “위도 주민을 현혹하기 위한 사탕발림”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는 27일 오후 8시부터 전북 부안수협 앞에서 주민과 회원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핵폐기장 무효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촛불시위를 벌였다. 지난 26일 오후에는 주민과 시민단체 관계자 1500여명이 군청 앞에서 쓰레기수거 차량을 불태우는 등 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이 과정에서 대책위원장인 문규현 신부의 이마가 찢어지고 주민 10여명이 다쳤다.경찰 2명도 부상했다.경찰은 최모(55)씨 등 10명을 연행해 조사 중이다. 시위대는 “공청회 등 주민의 의견수렴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위도를 핵폐기장으로 확정한 것은 원천 무효”라면서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 한 정부를 상대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이날 오전에는 군민 500여명이 부안군청을 방문한 김두관 행자부 장관과 윤진식 산자부 장관 등과 면담을 요구하다 경찰에 의해 제지당한 뒤 군청 주위를 둘러싸고 농성을 벌였다. 한편 26일 위도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현금보상 방침이 알려지면서 민심이 엇갈리고 있다.위도 주민들은 현금보상 방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반면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를 반대하는 측에선 “주민을 현혹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두관·윤진식 장관 일행이 이날 부안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금보상 방침을 밝히자 주민들은 직접 보상과 보상액을 확실히 약속해줄 것을 요구했고 일부 주민들은 ‘직접 보상에 대한 확약이 없을 경우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의 유치를 반대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에 따른 보답으로 가구당 3억∼5억원의 현금 보상을 기대하며 위도로 주민등록을 이전하는 인구도 급격히 늘었다.4월말 674가구에 1458명이던 주민은 지난 26일 870가구 1806명으로 3개월 만에 196가구 348명이 늘어났다. 위도로 가는항구가 있는 변산면 주민들은 “원전센터 유치에 따른 보상은 위도 주민들이 차지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변산 주민들이 떠맡아야 하느냐.”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
  • 7000명 백지화 시위

    ‘위도 핵폐기장 백지화’를 요구하는 전북도민 총궐기대회가 25일 오후 2시부터 전북 부안군 부안수협 앞에서 열렸다. 지난 9일부터 17일째 계속되고 있는 시위에는 문정현·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전북도내 30여개 환경·시민단체와 농민회,노동계 관계자,주민 등 7000여명이 참가했다. 집회에는 위도에서 불과 1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변산·진서·주산면 상인과 주민들이 방학중인 초·중학생 자녀들과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집회장에 ‘핵폐기장은 청와대로,핵 발전소는 여의도로’ ‘핵은 죽음이다’ 등 각종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현수막,깃발 등 100여장을 내걸고 위도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 백지화를 요구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
  • NGO / 친환경 개발도 반발하는 ‘새만금 생명연대’“갯벌살릴 대안 뭐죠”

    “새만금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한다고요? 그것은 ‘아름다운 살인’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이하 새만금연대) 오영숙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법원으로부터 새만금 사업 집행중지 결정까지 이끌어냈지만 새만금연대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대통령이 새만금사업 재개 의지를 밝힌 데다 법원도 방조제 보강공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새만금연대 사람들을 들뜨게 했던 축제분위기도 잠시였을 뿐 다시 또 새만금 갯벌을 ‘완전히’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법원 결정 이전에 진행중이던 공사가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새만금연대측의 주장이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는 한마음에서 출범한 새만금연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200여단체 하나돼 2년째 활동 새만금연대는 2001년 3월19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실 앞에서 전국 200여개의 종교·시민·환경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족식을 가졌다.천주교 문규현 신부·박승해 수녀,불교 수경 스님,원불교 이성종 교무,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가 공동 상임대표를 맡았다.총 본부를 전북 부안에 두고 사무국은 서울 환경운동연합에서 더부살이 중이다. 종교계가 종파를 따지지 않고 하나로 뭉쳤다.종교계 지도자들은 출범당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각 종파 신도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만금 간척사업 백지화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새만금 갯벌이 곧 교회·성당·법당이자 21세기의 성지”라고 주장하며 새만금 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어 종파별로 기도회와 법회가 잇따라 열렸고 ‘3보1배’와 여성 성직자 새만금 도보순례 기도회까지 고행과 수행을 겸한 새만금 사업 반대운동을 환경단체들과 연계해 펼쳐왔다. 새만금연대에는 종교계와 시민·환경단체 외에도 각분야 전문가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서울대 고철환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그룹은 새만금과 관련된 워크숍,국제 심포지엄 등 각종 학술행사와 해외 전문가들과의 공동연구 등을 추진해왔다. 최열 공동대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현장답사 등 이론적인 학술적 근거제시가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해외 전문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만금문제를 공동과제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특히 갯벌전문가인 아돌프 켈러만 독일 환경연방청 생태계 연구팀장의 법정증언은 법원이 새만금 사업 집행중지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보이지않는 지원자 곳곳에 처음엔 200여개의 단체가 연합한 만큼 자칫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됐다고 한다.하지만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이라는 두 환경단체가 중간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이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여성 환경운동가로 96년초 환경운동연합과 인연을 맺은 장지영 팀장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성직자들의 삼보일배,기도수행과 자전거 순례 홍보 등 2년 넘게 활동을 벌였음에도 4공구 물막이 공사가 강행됐을 때 허탈감을 느꼈다.”면서 “이제 더이상 무모한 개발논리를 접고 하루빨리 새만금 갯벌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3보1배라는 극한 투쟁의 방법까지 동원해 반대운동을 벌이고도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자 새만금연대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었다. 그와중에 환경단체와 전북도 주민 3539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사업시행인가 처분취소 청구소송 결과가 나온 것이다.법원의 공사중단 결정은 늘어졌던 마음을 추스르며 더 강한 투쟁의 열의를 되살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새만금 소송에서 변호를 맡았던 박태현 변호사는 환경전문가와 선배 변호사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그는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보게 됐다.”면서 “본안소송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아울러 “대법원결정까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발전적인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북도민 이해 조정 필요 공감 이제 새만금연대의 운동방향은 대안제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잠정 중단결정만 내려졌을 뿐 근본적인 대안이 제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최종적으로 승소판결이 난다고 하더라도 현재까지 진행된새만금 사업은 논란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사업중단과 더불어 실의에 젖은 일부 전북도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3보1배’라는 극단적인 자기희생과 고통을 사업중단촉구 방법으로 채택했던 새만금연대 사람들이 또 어떤 상생의 비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유진상기자 jsr@
  • 이런 책 어때요 /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지음 / 이규현 옮김 나남출판 펴냄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역작 ‘광기의 역사’의 완역본.1656년 파리에선 구빈원 설립과 함께 6000명에 이르는 방탕자와 범죄자들을 미치광이들과 함께 ‘대감호’시설에 무차별적으로 수용했다.또 18세기 중엽부터는 미치광이들만을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근대적 정신병원이 처음 세워졌다.푸코는 이 두 사건을 계기로 광기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비이성적인 것일 뿐 질병이 아니었던 광기가 질병으로 낙인찍히게 됐다고 말한다.그는 광기의 탄압,그 주모자로 서구의 이성주의를 지목하며 철학·심리학·정신의학을 이성주의의 나팔수로 본다.3만 8000원.
  • 말말말˙˙˙

    어리석기 짝이 없고 바보 같기가 한없던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닮고 싶습니다. -문규현 신부,새만금사업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는 동안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낸 감사 편지에서-
  • [녹색공간] 새만금의 죽음

    또다시 새만금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지난 9일 오후,군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새만금의 제4공구 구간이 농업기반공사에 의해 기습적으로 메워졌다.황급히 배를 저어 간 부안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알렸다.조계사 앞 단식 농성장에 있던 사람들이 청와대 앞 네거리에 모였다.기습 공사를 규탄했고,그 공사를 알고 있었던 청와대를 성토했다.깊은 밤,밤을 재촉해 현장으로 달려가 4공구 방조제의 끄트머리,2m쯤 남은 물길을 지키던 부안 사람들과 합류했다. 이튿날 ‘생명평화’의 이름으로 기자 회견을 마치고 많은 사람들은 현지로 달려갔다.삽과 곡괭이를 들고 막혀 가는 방조제 끝자락을 파헤쳤다.조금이라도 더 물길을 넓히려는 눈물겨운 안간힘이었다.장대비 속에서 수십 명이 5시간여 달라붙었지만 가까스로 2m쯤 물길을 열 수 있었다.방조제를 메웠다고 꽹과리를 치며 기뻐하던 사람들의 세찬 모욕과 조롱도 갯벌을 살리려는 젊은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렇지만 그 물길은 거대한 굴삭기에 의해 단 10분만에 메워져 버렸다.굴삭기는 ‘보호받는 폭력’이었고,2m라도 물길을 넓히려는 활동가들의 안간힘은 국책 사업 방해자가 된 셈이다.삼보일배를 마치고 문규현 신부가 세상에 처음 발표한 글에서 그 물길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서서히 막혀 가는 물길,마침내 막혀버린 물길을 눈물 흘리며 그저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그나마 가녀린 숨줄조차 조여오자 물살은 갈 곳 몰라 몸부림을 쳤습니다.이 폭력적이고 야만스러운 세상에서 어쩌면 갯벌은,바다는 차라리 자살을 꿈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숨을 쉴 수 없으니 그들은 곧 온몸이 뻣뻣하게 굳고 시커멓게 죽어갈 것입니다.’ 그렇다.이제 새만금 갯벌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여의도 140배 넓이의 살아 있던 갯벌은 시화호가 그랬듯이,화옹호가 죽어가고 있듯이 이제 죽어갈 것이다.혹자는 4공구 방조제에 의해 갯벌의 74%가 죽을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4공구 끝자락에 달려간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행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갯벌을 죽이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입된 사람들에 의해 여러 활동가들이 폭행을 당했다.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했으며,실신해 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있었다.취재 기자의 카메라도 파손되었다.경찰은 그런 폭행을 지켜보기만 했다.항의하자,“당신들이 먼저 (국책공사를 방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답했다.“그러면 왜 우리를 잡아가지 않느냐?”고 말하자,“고소가 들어오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그 얼마 후,몇 환경단체 간부는 65일 삼보일배 도중 하루 22시간 야간공사를 했던 농기공에 의해 고소를 당했다.‘살림’의 사람들이 ‘죽임’의 사람들에게 폭행당하고,고소당한 것이다. 6월 새만금 방조제의 폭행을 바라보며,문득 인도의 소금행진 때 영국 경찰이 강철을 입힌 방망이로 간디를 따르던 사람들의 머리를 내려치던 광경이 떠오른다.곤봉에 맞아 볼링 핀처럼 쓰러지면서도 단 한 사람도 곤봉을 피하지 않았다고 ‘비폭력의 역사’는 전하고 있다.비폭력(非暴力)을 ‘폭력이 아니다.’라는 뜻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비폭력은 ‘폭력이 아닌 힘’이다.폭력이 아닌 분노이고 눈물이고,그래서 기도이기도 하다.“아직 2공구와 3공구 사이 3㎞가 남았어요.거기 살려 달라는 갯벌들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지요.” 서울 공덕동에 사는 한 회사원의 말이다.이 기도가 어찌 폭력보다 강하지 않은가. 최 성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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