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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기하네”…아스팔트 뚫고 올라온 죽순

    죽순의 열정은 아스팔트보다 강한 것일까…. 단단한 아스팔트 한 복판을 뚫고 올라온 죽순이 한 사진작가에 의해 포착돼 네티즌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최근 후쿠오카(福岡)시 출신의 카메가와 슈이치로(亀川秀一郎·60)씨는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시가(佐賀)현 키야마(基山)마을의 숲을 걷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죽순을 발견했다. 두께 5cm에 키가 10cm 정도인 이 죽순은 산길 주변의 대나무 숲으로부터 10m 이상이나 떨어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죽순이 뚫고 나온 흔적으로 보이는 어른 주먹 크기의 아스팔트 파편이 있었다. 슈이치로 씨는 “죽순을 발견한 뒤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었다.”며 “길 한복판에 나와 있어 차 바퀴에 치이지나 않을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죽순의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다니 정말로 대단한 생명력이다.”(블로거 medama1978.cocolog-nifty.com/medama) “아스팔트에서 자라는 무는 봤어도 이런 힘을 가진 죽순은 처음”(ID 愛海ちゃん)이라고 말하는 등 신기해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제 불교 대중화 실마리 풀리나

    백제 불교 대중화 실마리 풀리나

    ‘풍납토성의 목탑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적힌 대로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이듬해인 385년에 세운 백제 최초 절의 흔적인가.’ 한성 백제의 왕성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절의 목탑터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서울신문 4월30일자 8면 보도>됨에 따라 학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한성 백제 지역에서는 당시의 불교유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에 불교가 전해져 절이 처음으로 세워진 곳이 어디이고, 또 불교가 어떻게 정착할 수 있었는지가 모두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한 변이 10m 남짓한 추정 목탑터는 깊이 3m가량의 네모난 구덩이를 판 다음 내부를 점토와 사질토로 교대로 다지고 다시 그 위에 점성이 적은 모래질 점토를 채웠다.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신대박물관의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교수는 “이런 형태의 축조방법은 사비시대 백제 목탑터 등에서 보이는 것과 같다.”면서 “절에 흔히 쓰이는 연꽃무늬 기와가 나온 것도 백제 목탑터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유적이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4세기 후반이라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언급된 침류왕 시절 불교 전래 및 사찰 건립 기록과 일치한다. 두 사서는 ‘백제 제15대 침류왕이 즉위한 384년에 호승 마라난타가 동진(東晉)에서 오자 그를 궁중에 두고 공경했으며, 이듬해 새 도읍 한산주(漢山州)에 절을 세우고 열 사람을 뽑아 스님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백제 불교의 시초’라고 적고 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이 유적이 절의 목탑터로 확인된다면, 왕궁의 내원(內院·부속사찰) 기능을 한 왕실사찰로 사비(부여)의 정림사보다도 격이 높은 것”이라면서 “백제 불교의 호국적 성격으로 볼 때 왕실의 비호와 장려를 받으며 불교의 번창을 이끈 사찰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목탑터가 경우에 따라서는 백제 최초의 사찰일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목탑터가 절의 흔적으로 확인된다면 백제 초기 불교의 발전 양상뿐 아니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으로 혼선을 빚고 있는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몇몇 일본학자들은 ‘일본 서기’의 기록에 따라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를 침류왕 시절이 아닌 동성왕(재위 479∼501년)으로 한 세기 이상 늦춰잡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 규슈대학의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 교수가 대표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낙랑군을 떼어내 대수(帶水) 남쪽에 대방군을 설치했다.’는 중국 기록을 근거로 대수를 한강으로 간주하면서,‘풍납토성은 대방군의 치소(治所)’라고 엉뚱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풍납토성의 목탑터가 백제 특유의 건축기법으로 조성된 절의 중심 건축물로 밝혀진다면 이런 주장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책꽂이]

    ●경영의 미래 아웃소싱(장 루이 브라바드 등 지음, 박은정 등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 아웃소싱의 이해를 도와주는 종합 지침서. 아웃소싱 전문가인 저자들은 아웃소싱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거래 및 전략설계, 위험요소 경감, 명확한 공유 가치, 가치기반 협상, 새로운 발상의 전환, 이익 실현 등 여섯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제시.2만 5000원.●인맥관리의 기술(김기남 지음, 서돌 펴냄) 인맥관리 전문가인 저자의 성공적인 인맥관리 안내서.1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DB화해 관리하는 저자가 인맥 관리의 비법과 성공 사례, 실전 전략노트 등 20년간 쌓아온 인맥관리 성공 노하우를 공개.1만 2000원.●내 아이의 공부를 망치는 엄마 마음습관(박재원 등 지음, 김영사 펴냄) 서울 강남 대치동 입시 전문가인 저자가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드는 방법을 담은 책.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느냐에 따라 공부하는 아이들의 자세와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1만원.●쿨헌팅, 트렌드를 읽는 기술(피터 A 글루어 등 지음, 안진환 옮김, 비지니스맵 펴냄) 쿨헌팅은 새로운, 또는 기존 트렌드 변화에 대한 관찰과 예측을 하는 활동이다. 컨설턴트인 저자들이 쿨헌팅의 최신 기법과 전문 소프트웨어, 인터넷 기술 제공을 통해 스스로 트렌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1만 5000원.●성공의 기술(빌 보그스 지음, 최우수 등 옮김, 행복우물 펴냄) 조 토레 LA다저스 야구팀 감독, 부동산 황제 도널드 트럼프, 영화배우 르네 젤위거 등 40명의 유명 인사를 인터뷰해 성공 스토리를 담은 책. 저자는 미국 NBC-TV ‘위크엔드 투데이’ 프로그램의 앵커.1만 3000원.●상식을 뛰어넘는 부자만의 발상법, 아니다 혁명(후지타 다카시 지음, 김경인 옮김, 리더&리더 펴냄) 비디오 대여점 체인으로 2004년 일본 규슈 시코쿠지구 최고 고액납세자가 된 저자의 성공 법칙을 제시한 책. 저자는 성공 비결이 끊임없이 현재에 의문을 가지고 시장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것이라고 단언.1만 1000원.
  • [비정규직 日·佛에선] 너도 나도 ‘悲정규직’…지구촌 신빈곤층 는다

    [비정규직 日·佛에선] 너도 나도 ‘悲정규직’…지구촌 신빈곤층 는다

    세계경제가 저성장·고물가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취업의 문이 더 좁아지고 비정규직도 크게 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양극화 및 내수 침체 심화 등의 부작용으로 세계적인 노동·경제정책의 쟁점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친기업 정책’이 자칫 “노동자 계층의 희생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 속에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노동계의 화두로도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이 문제의 대응책을 모색·고민해 온 ‘비정규직 대국’ 일본의 해법과 고질적인 청년 실업 속에 해법에 고심하고 있는 프랑스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사진은 일본 NTV가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파견의 품격´의 한 장면. 파견사원의 활약상을 그렸다. ■ 日 - 근로자 3분의 1이 비정규직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도교 스기나미구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요시다 이치로(28)는 시간당 750엔(약 7000원)을 받는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해 아예 오전·오후로 나눠 2곳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조사한 전국의 시간당 평균수당 673엔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결혼 여부를 묻자 현재로선 결혼을 생각하는 것만도 ‘사치’라고 말했다. 일본이 해마다 늘어나는 비정규직에 고민이 적잖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경제회복에 힘을 보태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수경기를 진작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익이 늘면 근로자의 주머니가 두둑해져야 소비가 살아나고 다시 기업의 수익이 증가하는 이른바 ‘선순환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빈부격차인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탓이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다음달 1일부터 기업 등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권장하는 내용을 담은 ‘파트타임 노동법’을 시행하는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노사협상에서 비정규직의 처우 문제는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다. ●90년 초 버블경제 이후 임시직 늘어 일본 총무성의 2007년 고용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3분의1을 넘고 있다. 임원을 뺀 전체 고용자 중 정규직은 66.5%인 5174만명인 반면 비정규직은 33.5%인 1732만명이다. 비정규직의 비율은 2002년 29.4%에서 2003년 30.4%,2004년 31.4%,2005년 32.6%,2006년 33%로 증가 추세는 여전하다. 일본 규슈국제대 경영학부 허동한 교수는 “1990년대 초 버블경제가 붕괴된 뒤 기업들은 비정규직 이른바 임시직 근로자들을 대거 채용했다.”면서 “정규직에 비해 임금도 싸고 고용도 쉽고 해고 때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근로자파견법을 개정, 파견기간을 1년 이내에서 3년부터 무제한으로 연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정규직의 양산만을 초래했다. 물론 일본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활용, 고용의 유연성과 비용 절감 등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효과도 거뒀다. 일본에서는 양극화를 대변하는 계층을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라고 부른다. 일자리는 있지만 생활에 쪼들려 자녀 양육을 위해 정부 지원을 받는 계층으로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심지어 PC방에 해당하는 인터넷카페나 만화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네트카페 난민’도 생겼다. 보이지 않는 ‘홈리스’이다. 후생성 조사결과, 네트카페를 전전하는 비정규직의 평균 월수입은 10만 7000엔. 이들의 66.1%가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이유로 보증금을 낼 수 없어서’라고 밝혔다. ●일자리 있어도 생활 쪼들려 일본의 최대 인력파견업체인 ‘굳윌(Good Will)’과 같은 파견업체는 호황이다. 굳윌에 가입한 임시직 구직자들만도 무려 270만명에 달한다. 굳윌의 1일 평균 파견인력은 3만 4000명이다. 일용직들은 파견업체로부터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해결에 적극적이다. 오는 4월부터 시행되는 ‘파트타임노동법’이 대표적이다. 법안은 ▲업무내용과 노동시간이 정규직과 같고 ▲전근과 이동이 가능하고 ▲오래 동안 지속적으로 일한 파트타임 근로자에 대해 급여와 복리후생에서 정규직과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기업이 정사원을 채용할 때 파트타임에게 지원의 기회를 줘 정규직으로의 길을 터놓도록 권장하고 있다. 금융기관 및 기업들은 법안의 영향 때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속속 전환시키고 있다. 미즈호은행은 오는 4월 비정규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가는 중간단계를 신설,2년 안에 800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미즈호 은행은 전체 사원 중 40%가 파트타임이나 파견사원이다. 미쓰비시 도쿄 UFJ은행도 올해 파견사원 1000명을 계약사원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러나 파트타임노동법의 조건에 맞는 비정규직은 정작 4∼5%에 불과해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나아가 기업들도 크게 내색을 않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채용에 대해 64.0%가 ‘경험과 능력을 고려하겠다.’는 조건을 제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2006년 6월 일본경제단체연합의 조사에서 드러났다. 정부는 또 ‘잡카드(Job Card)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직업훈련을 희망하는 비정규직에게 잡카드를 준 뒤 정부 및 민간기관·기업 등에서 훈련을 받으면 ‘직업능력증명서’를 발행, 취업까지 연결시키는 일종의 ‘취업보증제’이다. 도쿄도는 오는 4월 ‘네트카페 난민’에게 생활 자금의 대출을 비롯, 생활 안정을 꾀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센터’를 개설하기로 했다. 호세대 대학원 스와 야스오 교수는 최근 요미우리신문에서 “일본의 인력 육성은 그동안 기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지만 이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가 장기적으로 인재를 키운다는 자세로 나설 때”라고 주문했다. hkpark@seoul.co.kr ■ 佛 - 석사 학위자가 ‘호텔 벨보이’ 대졸 정규직 ‘하늘의 별따기’ |파리 이종수특파원|스테판 아라공(34). 프랑스 북서부 루앙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청운의 꿈을 안고 파리로 유학왔다. 파리 1대와 10대학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각각 취득한 뒤 계속 공부할 형편이 여의치 않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무기한 계약직(CDI)´ 이른바 정규직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은행·기업 등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뒤 짧은 기간 비정규직을 몇 군데 거쳐 어렵게 정규직을 구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아 출판전문 경영대학원(MBA)과정인 파리고등상업학교(ESCP)에 다시 입학했다. 이곳에서 학위를 따면 바로 정규직을 얻을 확률이 매우 높아서다. 그의 친구 피에르 르펭(31)의 사정은 더 열악했다. 파리2대 법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땄지만 그가 구할 수 있었던 첫 직장은 기간제 계약직(CDD)인 비정규직 호텔 벨보이였다. 그 뒤 비정규직을 전전한 끝에 간신히 변호사 사무실에서 정규직을 구했다. 파리3대학에서 영화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MK2극장 검표원으로 일을 한 여학생도 있다. 일단 정규직을 얻게 되면 직업적 안정성과 복지 조건이 좋아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드물어 정규직 신규 채용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테판처럼 일반대학 학부나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위한 학위인 DESS나 MBA로 재입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른 부류는 프랑스보다 취업이 쉬운 인근 영국이나 불어권인 캐나다로 취업 이민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국립 경제·통계연구소(INSEE)통계에 따르면 2006년 말 프랑스 경제활동 인구는 2503만 6000여명이다. 이중 취업자 2223만 1000여명 가운데 정규직 종사자는 1931만 4000명으로 77.1%다. 이에 견줘 비정규직은 205만여명(8.2%)이다. 나머지는 임시직(54만명,2.2%)과 장인 견습생(32만 7000명,1.3%) 형태로 일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규직은 말 그대로 무기한 계약 노동자다. 해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고용주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 현재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은 일반대학 졸업생이 정규직을 얻기란 쉽지 않다.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더라도 5개월 안팎의 수습기간을 거친다. 따라서 첫 직장을 구하는 대부분의 일반대학 졸업생은 1회 연장이 가능한 1개월∼1년 동안의 비정규직을 거친 뒤 겨우 정규직을 얻을 수 있다. 비정규직도 못 구한 경우는 직업소개소에 등록한 뒤 임시직을 얻어 일하면서 비정규직을 기다린다. 대신 고용이 불안정한 임시직의 경우 휴가를 가지 못하기 때문에 정규직보다 10%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비정규직은 휴가를 가지 않을 경우에 한해 정규직보다 10% 많은 임금을 제공받는다. 지난 1월11일 프랑스 노사가 잠정 합의한 ‘노동시장 현대화’ 협정안이 법안 개정으로 이어질 경우 약간의 변화도 예상된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용자와 상호 합의할 경우 해고가 가능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계약기간도 최대 36개월까지 늘어난다. vielee@seoul.co.kr ■ 용어 클릭 ●비정규직 정규직의 상대개념이다. 파트타임·아르바이트·파견·촉탁·계약직·임시직·일용직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4월부터 시행되는 일본의 ‘파트타임 노동법’에는 파트타임 근로자는 ‘짧은 시간 근로자’로 규정하고 있다.‘프리터(Freeter)’ 역시 비정규직의 한 유형이다. 한국과는 달리 자발적인 비정규직이다.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일본식 조어로 스스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35세 이하의 젊은 층을 지칭한다.
  • 부산~후쿠오카 초광역경제권 추진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를 잇는 ‘초(超) 광역경제권’ 구축이 추진된다. 부산시는 7일 허남식 시장을 비롯한 경제 및 관광 관련 방문단이 8일부터 이틀간 후쿠오카시를 방문해 ‘초 광역경제권’과 ‘광역관광권’ 구축 등 현안 사항을 상호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도시는 초 광역경제권 형성과 광역관광권 공동사업,2009년 교류 20주년 기념사업, 한·일 만화 페스티벌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우선 두 도시간 공동연구 용역으로 ▲유학생 상호 장학지원과 전문가 등 인적교류 ▲국제회의 공동개최와 부산∼후쿠오카 쿠폰관광제 도입 등 단일 권역화 추진 ▲저가항공 운항으로 1일 경제권 형성 등 교통망 확대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산업 및 비즈니스 과제로 ▲부품협력센터 설립 등 자동차 부품산업 협력체계 구축 ▲정보기술(IT) 공동 연구센터 건립 ▲상대 도시 진출기업 공동 인센티브 도입 등 벤처마켓 협력 ▲국제메디컬센터 설치 ▲의료시설 및 기관 공동 이용 ▲시네마 스쿨 설립 등 영상산업 등도 제시할 방침이다. 부산∼후쿠오카 초 광역경제권은 인구 794만명에 지역 내 총생산 2000억달러 규모의 부산·울산·경남 동남경제권과 인구 1335만명에 지역 내 총생산 4070억달러의 일본 규슈경제권이 함께 공동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추진된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숭례문 복원에 써주세요”

    “숭례문 복원에 써주세요”

    후쿠무라 미쓰오기쿠치(菊池) 시장 등이 참가한 ‘기쿠치 숭례문 복원성금모집 실행위원회’는 25일 성금 30만엔을 숭례문 복원에 써달라며 후쿠오카 한국 총영사관에 기탁했다. 규슈에 있는 기쿠치 시는 일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처음으로 2003년 한국인 무비자 운동을 전개했으며 후쿠무라 시장은 이 공로로 대한민국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은 바 있다. 후쿠무라 시장은 “숭례문이 복원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 공항서 여행가방 들어주는 로봇 ‘인기 짱’

    공항서 여행가방 들어주는 로봇 ‘인기 짱’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어드립니다.” 최근 일본 기타규슈(北九州)공항에서 무거운 여행가방을 대신 옮겨주고 길 안내도 해주는 로봇이 이용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지난 7일 첫선을 보인 이 로봇은 야스가와(安川)전기와 지도서비스업체가 4년간 공동 개발했으며 3륜 주행식으로 최대 20kg의 짐을 운반한다. 이용객이 로봇 포터의 터치스크린과 음성으로 행선지를 입력하면 짐은 든 로봇은 보행 속도에 맞춰 이동하며 운반 후에는 원래 출발점까지 자동적으로 되돌아온다. 이 로봇은 공항 내 공간을 동영상 카메라로 인식해 스스로 궤도를 수정해 나가며 레이저 센서를 통해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 5시간 충전 시 3~4시간 가동한다. 로봇 포터 1대의 가격은 500만엔(한화 약 4400만원)으로 향후 역과 병원·쇼핑센터 등에 사용할 방침이다. 사진=아사히신문 인터넷판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Local] 日 방송사 ‘광주 첨단산업’ 방영

    일본의 유력 방송사가 ‘광주의 첨단산업’을 집중 조명하는 ‘타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해 관심을 끌고 있다.31일 광주시에 따르면 일본 후쿠오카의 대표적 민영 방송사인 ‘TVQ규슈’는 최근 광주 광(光)산업 단지와 문화콘텐츠 산업을 취재, 방영했다. 이 방송사는 간판 경제 프로그램인 ‘규슈경제 나우’의 미니특집(규슈·아시아 신시대)을 통해 최근 무안공항 직항로 개설로 가까워진 광주와 규슈간 비즈니스 교류 가능성을 탐색하는 특집방송을 내 보냈다. 우류 세이야 기자 등 취재단 일행은한국 광기술원과 광산업 업체인 LED라이텍, 영상센터와 문화전당, 충장로와 국립5·18민주묘지 등 광주 전반을 취재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제주항공 7월부터 국제선 띄운다

    제주항공 7월부터 국제선 띄운다

    저비용 항공사인 제주항공이 오는 7월 국제선을 띄운다. 고영섭 제주항공 사장은 24일 창립 3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오는 6월 국제선 면허를 받아 안전성을 확보한 뒤 7월부터 부정기 국제선에 취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 사장은 “오는 2013년까지 신형 항공기(B737-800) 15대를 도입할 계획”이라며 “4월에 2대를 먼저 들여와 국내선에 투입한 뒤 7월부터 국제선에 띄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5월부터는 국내선 신규 취항도 확대한다. 검토 노선은 울산·청주·광주·원주 등이다. 국제선 취항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지 않는 일본 및 중국 지역을 공략하기로 했다. 일본은 규슈 지역을 비롯해 히로시마, 오사카, 기타큐슈, 나고야 등이다. 중국은 산둥반도와 하이난도 등이 유력하다. 고 사장은 “올 상반기 중 외자유치 및 애경그룹이 참여하는 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자본금을 8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면서 “자본금을 늘리더라도 애경그룹의 지분율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단체장 새해 설계] 허남식 부산시장

    [단체장 새해 설계] 허남식 부산시장

    허남식 부산시장은 지난 8일 신정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과 함께 북항 재개발 현장과 신항, 거가대교, 가덕도, 강서운하 및 물류·산업단지 조성지를 헬기로 둘러봤다. 부산시장이 새해 첫 일정으로 상공인들과 주요 사업지를 시찰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부산시가 최근 발표한 각종 경제 지표는 조선 산업의 활황 등에 힘입어 조금 나아졌지만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는 것이 시민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허 시장은 13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강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의 현안들이 당선인의 공약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경제를 살리는 방안의 하나로) 강서 첨단 운하 및 물류·산업도시 건설 등 10대 비전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를 추진할 ‘전략 비전 추진본부’를 최근 발족했다. ●강서구 그린벨트 3300㎡ 해제 추진 허 시장은 이같은 사업을 추진하려면 산업용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부산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원인이라고도 말했다. 도시가 배산임해로 앉혀졌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기업체는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족한 산업용지 대책으로 그린벨트 해제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해법지역으로 강서지역을 지목했다. 신항만과 김해국제공항을 끼고 있는 강서구 일대 3300만㎡ 규모의 그린벨트를 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곳에다 부산의 성장동력이 될 첨단 운하와 물류·산업단지를 건설,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 동맥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때마침 정부 차원의 대운하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어서 전망은 어둡지 않다. 그는 “이 지역의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새 정부 출범 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강서운하와 물류·산업단지는 구역별 특화 개발로 국제복합운송물류단지와 첨단부품 소재산업 클러스터, 친환경 중심도시 등 단계적으로 조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허 시장은 이어 “조성 중인 강서구 화전산업단지 등 7곳 외에 명례지구 등 동·서 부산권 5개 산업단지도 개발, 용지난을 풀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산시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남부산권 신공항 건설사업도 정부에서 지난해 1단계 용역을 마치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규모와 입지 선정 등을 위한 2단계 용역이 빨리 추진되도록 새 정부와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영상테마파크 사업자 올 안에 선정 허 시장은 “동부산 관광단지 개발의 핵심인 영상테마파크 사업자를 올해 중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영상테마파크 사업자에는 필요한 부지를 50년간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또 환경오염 조사 등 한·미간의 이견으로 답보 상태인 부산시민공원 조성과 관련해서는 올해 안에 옛 하얄리아부대 부지를 반환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허 시장은 일본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한 규슈지역과 ‘초광역 경제권’을 구축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이를 위해 올해 후쿠오카 시장과 부산에서 회의를 갖고 민간에서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들이 피부로 가장 많이 느끼는 복지시책 추진 방향도 밝혔다. 시는 올해 처음으로 사회복지예산 1조원 시대를 맞았다. 이는 시 일반예산의 27%를 차지한다. 출산 장려책과 관련, 조례를 만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시행에 들어간 시내버스 준공영제와 버스·지하철간 환승할인제도 올해 마을버스까지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제주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제주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제주는 언제 가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숨겨진 곳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요. 요즘 같은 연말연시에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욱 이어집니다. 특히 새해 해돋이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이 많지요. 자, 이쯤 해서 제주의 아픔이 서려 있는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슬포 인근, 우리나라 최남단 산인 송악산 주변에 ‘알뜨르’ 비행장이란 곳이 있습니다.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답니다. 연말연시를 제주에서 보낼 계획이라면 한번쯤 들러보시지요. 가슴 뭉클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자녀들과 간다면, 살아 있는 역사공부 등으로 더욱 값진 여행이 되겠지요. 왜냐고요?시계추를 잠시 1941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일본은 한때 태양의 제국을 꿈꾸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태양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이카루스가 죽음으로 증명했음에도, 자신들만은 예외라고 믿었습니다. 그 해 12월8일 일본은 제국건설의 걸림돌이었던 미국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합니다. 일본은 승기를 이어가다 1942년 6월5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주력 항공모함과 우수한 전투기 조종사 대부분을 잃고 미국에 참패하게 됩니다. 미국 등 연합국이 여세를 몰아 규슈 등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해 교두보로 삼을 만한 곳이 어딜까요. 일본군 지휘부는 그곳이 제주도, 특히 서남부 모슬포 해안일 거라 판단합니다. 그래서 모슬포 앞바다를 낀 알뜨르 비행장을 선봉으로 주변에 고사포 진지, 해안 어뢰정 기지 등 군사시설들로 가득 채우지요. 제주 앞바다를 1차 저지선, 중산간오름을 2차 저지선, 그리고 어승생악을 3차저지선 삼아 제주도 전체가 요새화됩니다. 이렇듯 현재 일본을 제외하고 태평양전쟁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 제주도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제주에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흔적, 알뜨르 비행장 주변을 다녀왔습니다. 이곳 일대가 ‘제주평화대공원’으로 조성된다고 하니, 번듯하게 정비된 전적지보다 다소 황량하긴 해도 현재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가는 김에 꼭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 태평양 전쟁의 거점기지 모슬포 알뜨르의 ‘알’은 ‘아래’ 혹은 ‘낮다’는 뜻이고,‘뜨르’는 너른 들녘을 말한다. 즉 모슬봉 아래 너른 들판이란 뜻이다. 이처럼 정겨운 이름의 내면에는 전쟁의 아픈 기억이 숨겨져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근대문화유산 제39호)조성계획이 처음 수립된 것은 1926년. 중일전쟁을 준비하던 일제가 중국대륙 공격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1931∼1936년 1차 조성공사가 끝나면서 약 60만㎡(18만평)의 비행장이 완성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알뜨르 비행장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중국 난징과 상하이 등을 공격하기 위해 일제는 본토 나가사키현의 오무라항공대를 제주도로 이동하고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제로젠’과 연습용 비행기 ‘아카톰보(Akatombo·일명 잠자리비행기)’의 격납고 20개를 만드는 등 2차 확충작업을 벌인다. 당시 알뜨르 비행장에서의 난징 출격횟수는 36회, 연 600기였고, 투하폭탄은 총 300t에 달했다. 알뜨르 비행장이 현재 크기와 비슷한 265만㎡(80만평)까지 확장된 것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모슬포 해안 일대를 미군 등 연합군의 가장 유력한 상륙지점으로 꼽았던 일본군 지휘부는 ‘결(決)7호 작전(작전지역 1∼6호는 일본 본토)’을 통해 알뜨르비행장을 확장하고, 모슬봉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는 등 군사시설 확충을 서두르는 한편, 만주 관동군 소속 111사단 병력을 이동시키는 등 총 7만 5000명의 병력을 제주도에 집결시킨다. 당시 조선 내 일본군 병력이 21만명가량이었다고 하니, 총 병력의 3분의1이 제주도에 배치된 셈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도 알뜨르 비행장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나가사키 등에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제주도가 최후의 결전지 ‘아마겟돈’이 될 수도 있었던 것.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대목이다. # 자살특공대 가이텐, 가미카제의 흔적도 현재 알뜨르 비행장 주변에는 풀로 뒤덮인 활주로와 격납고 20기, 관제탑, 지하벙커, 샛알오름 고사포 진지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나같이 제주도 주민 등 강제 노역에 끌려나간 부역자들의 밭은 숨결이 배어 있는 곳들이다. 돔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격납고는 가로 15∼20m에 높이 6m, 두께 1∼4m로 튼실하게 지어졌다.20기 중 19기는 원형이 보전됐고 1기는 잔해만 남았다. 알뜨르 비행장 옆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섬뜩한 형상의 해안동굴들이 있다.3∼40m 크기 15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일오동굴(등록문화재 제313호)’이라고도 부른다. 일제가 제주도에 만든 5곳의 자살특공전 기지 중 한 곳. 소형 어뢰정을 숨겨 놓고 미국 함대가 나타나면 어뢰정을 탄 자살 특공대가 돌진해 자폭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졌다. 이 ‘인간어뢰’부대를 ‘가이텐(回天)’이라 불렀는데, 비행기를 타고 자폭했던 가미카제(神風)특공대와 같은 임무였다. # 지하 갱도진지의 절정 가마오름 1944년 7월 사이판이 함락되는 등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 지휘부는 이를 계기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에 대비해 거대한 지하참호 건설을 시작한다. 나고야현에 천왕이 대피할 마쓰시로 대본영 등을 짓는 한편 제주도에도 지휘소, 통신실, 숙소 등이 갖춰진 지하 갱도진지를 조성하게 된다. 제주도내 지하갱도의 총연장은 32㎞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송악산 샛알오름 아래 1.2㎞짜리 동굴진지를 비롯, 제주도내 360여개 오름 중 약 120곳에 지하 갱도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경면 청수리의 가마오름 진지동굴이다. 높이 140m의 가마오름 기슭에 자리잡은 진지동굴은 일본이 미국과 최후의 일전을 대비해 구축한 진지 중 최대 규모다. 약 2㎞ 길이의 1,2,3땅굴 가운데 제1땅굴 약 300m 구간이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지하갱도 곳곳에 강제 노역에 시달린 제주도 주민들의 피와 땀이 엉겨붙어 있는 듯하다. 참혹한 과거의 흔적 위에 현재는 평화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강제 노역했던 고 이성찬씨의 아들 이영근(55)씨가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 2004년 사재를 털어 조성했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군수품과 각종 땅굴작업용 도구들을 볼 수 있다. 관람료 3000∼5000원.peacemuseum.co.kr,772-2500.
  • “아직도 살아숨쉬는 조상의 숨결 느껴”

    “아직도 살아숨쉬는 조상의 숨결 느껴”

    “마음이 매우 아늑해진다.” 정유재란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자기 노예의 후손 도고 가즈히코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가 7일 남원을 찾아 밝힌 첫 소감이다.<서울신문 11월2일자 26면 보도> 1598년 지리산 자락 남원 도공들이 일본군에 끌려간 뒤 400여년 만에 이뤄진 귀향이었다. 설렘으로 도고 교수는 전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새벽에는 숙소인 서울대 호암생활관에 서설이 내려 기대가 더 커졌다. ●“가고시마 마을과 산세 너무 비슷” 오전 8시 정각. 남원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국의 눈덮인 산하를 차창밖으로 구경하다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3시간 반 만에 남원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남원시청 김순호 계장과 김전형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 옛날 도공들도 먹었음직한 서민적인 점심식사를 한 뒤 김전형씨가 “예정된 곳을 둘러본 뒤 시간이 나면 질그릇을 굽는 인월요업에 가보자.”고 말하자 도고 교수는 “그곳이 가장 가보고 싶다.”고 말해 곧바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이동중 차창밖으로 지형을 살피던 도고 교수가 외친다.“할아버지 등이 사시던 가고시마 미야마 마을의 들판과 산세가 너무 비슷하다.”고 말한다. 언덕 위에 신사가 없는 것만 다르단다. 인월요업 김종찬 이사가 “1998년 가고시마의 유명한 도예가 심수관씨가 다녀갔다. 남원 가마의 불씨를 우리가 구운 화로에 담아갔다.”고 소개하자 “놀랍다.”며 감탄했다. 인월요업은 최근에 질그릇 제작에 특화했다. 이어 옛 선조 도공들이 장작을 채취하기 위해 누볐을 지리산중 달궁 일원도 둘러봤다. 그리고 50여㎞ 떨어진 남원시내로 다시 와 광한루와 향토박물관, 도예대학을 찾아봤다.1995년 일본에 간 조선도공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오늘이 오늘이소서’ 탑과 만인의총도 마지막으로 참배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돼” 특히 도고 교수는 향토박물관에서 ‘정유재란 때 나에시로가와(옛 미야마)로 박평의, 아리타(규슈 사가현)로 이삼평씨 등이 끌려갔다.’는 안내에 눈을 번쩍 떴다. 박평의(朴平意)가 자신의 선조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자는 물론 한글 발음도 물어 소중하게 적어 가져가겠다고 했다. 저녁에는 반찬이 20가지나 나온 5000원짜리 식사를 하며 게장을 두 손으로 잡고 맛있게 먹자 김전형씨가 “너무 소탈하다. 얼굴 생김새를 봐도 남원사람의 후손 같다.”며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그리고 소감을 묻자 “이곳저곳을 보고 여기서 무슨 일이(역사가) 있었는지 알게 돼 크게 감동했다. 놀랍다.”를 연발했다. 막판에는 긴장이 풀렸는지 남원시 발전을 위한 조언을 계속했다.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춘향이의 순애보를 활용하라고 강조했다.10년 계획으로 남원의 옛 농촌마을 모습을 실제로 재현하라고도 권했다. 미야마 등지와 자매결연을 맺어 정기교류를 할 것도 추천했다. 남원시내를 흐르는 요천을 본 뒤 “강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활용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봐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남원을 한·일 양국 교류의 거점으로 활용하라.”고 권하면서 앞으로 부인과 함께 다시 와보고 싶다고 말했다. 두 아들에게 선조들의 체취가 살아있는 남원을 설명해 주겠다면서 오후 7시50분 용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도자기에서 조상의 숨결·전통이 살아숨쉰다는 걸 확인했다. 기대보다 훨씬 즐거웠다.”고 말할 때 그도 벌써 남원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본 외무성 전 국장인 그는 23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글 남원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데스크시각] 강진의 스포츠마케팅/이춘규 체육부장

    일본은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들은 가난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일본 정부는 빚더미 위에 앉아 있다. 장기불황 후유증이다.3월말 현재 나라빚만 834조엔(약6900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의 150%를 넘어 선진국 중 최악이다. 세수는 줄었지만 빚잔치를 계속해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체 빚도 203조엔인 데다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기가 힘들어져 비상이 걸렸다. 형편이 옹색해지며 자치단체들의 자구노력은 강화되고 있다. 살림살이는 최대한 줄이고 있다. 대신에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 세원확보를 위해 기업유치전이 뜨겁다. 특산물 마케팅에는 국경이 없다. 각종 회의·대회 유치에 체면을 벗어던진 지 오래다. 기초단체인 시·정·촌은 지난해까지 3232개가 1800여개로 통합되며 직원과 의회 의원 등 몸집을 줄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외국특파원도 마케팅에 활용한다.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은 각 국 특파원들을 실비로 초청, 경쟁력 있는 산업과 특산물을 마케팅한다. 도야마시나 니가타시 등 기초단체들도 한꺼번에 10여명의 특파원들을 1박2일간 초청, 특산물 판로 개척에 열을 올린다. 관광명소 판촉은 기본이다. 특히 도야마 시장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한국도 가끔 방문, 관광객을 유치한다. 니가타시도 농산물 해외마케팅에 열성이다. 규슈의 기쿠치시는 시나 시의회 인사들이 한국어학습에 열중이다. 소도시지만 교통안내판에 한글을 병기했다. 한국인관광객을 위해서다. 광역단체들은 도쿄 한복판의 15층짜리 도도부현 회관에 십여명 안팎이 상주하며 마케팅활동과 예산 확보전을 벌인다.47개 중 44개 광역단체가 입주해 있다. 기초단체들도 도쿄에 개별 혹은 합동사무실을 두고 마케팅활동에 열정적이다. 바햐흐로 무한경쟁시대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재정사정이 일본 보다는 훨씬 낫다.(올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30.0%). 일본에 비해 지자체들의 위기의식을 약하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그래도 지방자치가 10년을 넘기고 재정자립 요구는 커지며 마케팅 경쟁은 가열되는 기류다. 그 중에서 남도땅 전남 강진군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인상적이다. 군수를 포함한 공무원, 주민들이 마케팅에 혼연일체다. 덕분에 봉황쌀, 토하젓 등 농수산물과 강진청자축제는 지역명품이 됐다. 특히 강력한 스포츠마케팅은 다른 지자체에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올 한해 스포츠마케팅을 통해서 300억원의 지역경제 부양효과를 거두었다. 인구 4만 2800여명인 군으로선 큰 규모다. 그러나 강진군은 최근에야 스포츠마케팅에 눈을 떴다. 스포츠 메카로 거듭나기 위해 05년 ‘스포츠기획단’을 출범시킨 뒤 시설을 보강, 고객감동 마케팅으로 불가능에 도전했다. 그 결과 2005년부터 3년간 유소년축구를 중심으로 19개 전국규모 대회를 유치했다. 자원봉사자를 활용했고, 마을회관을 숙소로 쓰며 친절마케팅으로 승부했다. 특히 서울보다 4도 정도 높은 기후조건을 살려 동계훈련 유치를 특화시켰다. 경남 남해나 제주도와는 서비스로 경쟁한다. 지난해엔 여자국가대표 축구팀과 축구, 사이클, 태권도 등 138개팀,3200여명의 선수가 15일안팎 훈련했다. 이번 겨울도 축구, 사이클, 태권도, 럭비 등 158개팀의 동계훈련을 유치했거나 교섭 중이다. 정규야구장만 4개면인 베이스볼파크도 내후년 완공시킨다. 치밀한 사전·사후 관리를 통해 3년 뒤에는 1000억원의 경제파급 효과가 예상된다고 군측은 밝힌다. 이런 마케팅활동 등으로 지역이 활기를 되찾으며 인구감소세도 멈춰간다고 한다. 강진군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도전과 변신이 그래서 신선하다. 이 같은 지자체의 열정적인 변신 움직임이 강진군을 뛰어넘어 더 많은 지자체로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이춘규 체육부장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청국장 박사 김한복 호서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청국장 박사 김한복 호서대 교수

    다음은 얼마전 인터넷사이트 ‘청국장닷컴’에 등장한 내용 중 일부다. 한 50대 아주머니는 “두 달 정도 생청국장을 먹었더니 혈당과 혈압이 떨어져 이젠 약 없이도 살 것 같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한 20대 여성은 “청국장을 먹고 체중이 3㎏ 정도 빠졌다.”고 거들었다.30대 후반의 여성 주모씨는 “변비가 심해 20여년간 3∼4일에 한 번꼴로 변을 봤는데, 생청국장을 먹은 뒤 매일 변을 본다.”며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고 했다. 이에 모 대학의 소화기내과 교수는 “변비가 심한 22세 여성을 대상으로 변비검사(방사선 비투과성 표지자 검사)를 시행한 결과 음식이 장을 통과하는 시간이 29시간으로 나타났으나 1주일간 생청국장을 먹게 한 뒤 재차 검사했을 때는 9시간으로 줄었다.”고 했다. 한 사업가는 “성기능 감퇴가 생청국장을 먹은 뒤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했다. 이 사이트에 드나드는 회원은 현재 1만 5000여명에 이르며 조회건수만 82만 3000여건에 달한다. ●웰빙시대 청국장은 ‘콩으로 만든 보약´ 썩은 듯한 특유의 냄새로 한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청국장이 이제는 최고의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국적으로 청국장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 최근 특허청에 따르면 청국장 관련 특허출원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총 288건이 출원됐다.2004년 79건,2005년 67건 그리고 2006년 84건이 출원되어 최근 3년간 출원 건수가 근래 7년간 출원 건수의 8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특허출원의 기술 유형을 보더라도 초콜릿, 과자, 빵,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두유 등의 간식류 등을 비롯해 스파게티, 피자, 자장면, 김치, 미용용품 등 생활 각 분야로 다양하게 번지고 있다. 청국장은 알다시피 자연식품이자 발효식품으로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식품 중의 하나.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발효에 의하여 흡수율이 높은 것으로 입증됐다. 특히 청국장에 포함된 미생물, 효소 또는 생리활성물질이 인체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고혈압, 당뇨, 고지혈, 복부비만 등 우리나라 4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래저래 청국장은 ‘콩으로 만든 보약’이라는 칭송과 함께 웰빙 식단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쯤 해서 ‘청국장 박사’로 알려진 호서대 김한복(50) 교수를 안 만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가 바로 청국장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기 때문. 그는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1992년부터 본격적인 청국장의 효능을 연구했다.2003년에는 ‘청국장 다이어트 건강법’이라는 책을 내 화제가 됐고 특히 2006년 4월 고혈압 환자에 특효가 있는 ‘혈압 강하 청국장’(특허명:기호도가 향상된 혈압 강하 기능성 분말 청국장 조성물)을 처음 개발해내 신문과 방송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요즘 언론에 통 등장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하여,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요즘 공부에 푹 빠져 있으니 인터뷰를 사양하겠다.”고 거절했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거듭 설득해 허락을 받고 호서대 아산 캠퍼스로 달려갔다. 연구실에서 만났다. 근황을 물었더니 “고등학교 수학공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면서 웃는다. 그의 책상에는 ‘이산수학’과 ‘선형대수학’ 등의 책자가 여러 권 놓여 있었다. 또 통계학과 컴퓨터프로그램과 관련된 공부도 병행하고 있단다. 까닭이 있을 터. 청국장의 효소가 인간의 유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유전자가 3만개라고 할 때 청국장에서 나오는 미생물 효소는 수십만개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이 인체세포와 어떻게 화합, 적응하느냐는 것. “다시 말해 인체 유전자 발현과의 연관성, 즉 면역학적 관계를 밝히고 신약개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지요. 복잡한 생물정보계통을 정리하려면 수학과 통계학을 필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청국장안 신진대사 균형물질 규명 그러면서 청국장 연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암시했다. 지난 15년 동안 청국장이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을 알리고 전도했다면 앞으로는 토종 청국장에서 세계 최초로 신약개발을 해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이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그는 일본 도쿄대학과 규슈대학에서 청국장과 관련된 세미나에 참석, 이 같은 사실을 귀띔해주자 여러 교수들이 높은 관심을 갖더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 학계지인들로부터 청국장을 먹고 살이 많이 빠졌다는 얘기도 전해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연구는 어느 정도? “청국장이 갖고 있는 효소와 생리활성물질 등은 우리 몸에서 신진대사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즉 청국장 효소가 몸에 들어갔을 때 인체의 과잉상태 부분을 정상으로 내리고, 또 부족한 상태는 다시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조절역할을 한다는 것. 수십만개의 효소가 3만개의 인체 유전자들과 얽히고 설키고 만나 인해전술식으로 원활하게 신진대사를 돕는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우리 몸에서 생기는 각종 알레르기나 관절염 등은 면역이 지나친 반응에서 생겨난다.”면서 결국 과잉억제조절을 해주는 기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사실을 토대로 현재 새로운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늦어도 2,3년 안에 학술지에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 이후 단계는 이를 제품화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혈압과 당뇨 등 성인병 조절 기능을 갖춘 신약을 의미했다. “당뇨만 하더라도 신진대사의 신호체계가 어긋났을 때 발생하는 것이지요. 멀지 않은 날에 바로 그 기능을 정상화시켜주는 것을 청국장에서 추출해낼 것입니다. 이제는 과학연구를 미국식으로만 하지 말고 우리의 전통에다 새로운 첨단을 접목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왔지요.50나이에 학생들도 싫어하는 수학공부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집에서도 청국장 만들기 쉬워요” 다음은 청국장 박사가 권하는, 일반 가정에서 쉽게 청국장으로 발효시키는 요령.(1)슈퍼마켓에서 대두 500g 한봉지를 산다.(2)콩을 물에 하룻밤동안 불리면 통통해진다. 콩이 물을 잡아먹기 때문이다.(3)불린 콩을 삶는다. 가스레인지에 얹어 두시간 정도 삶은 후 물을 뺀다.(4)보온을 해준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스치로폴과 모기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전자매트를 이용하면 쉽다.(5)2,3일 뒤 콩색깔이 바뀌고 뜬 냄새가 나면 일단 성공이다. 하얀 콧물같이 생긴 생리활성 물질이 안생겼다고 해서 실패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6)이를 일주일동안 매일, 또는 3회정도 한두 숟가락씩 먹으면 좋다. 청국장을 복용하는 동안 식사때 현미밥과 마늘을 먹어주면 효과는 더욱 높아진다. 김 교수는 7년 전 이같은 방법으로 6개월여 만에 체중 15㎏을 감량했으며 지금도 175㎝의 키에 60㎏의 체중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집안식구들도 청국장을 좋아해 틈틈이 청국장 요리를 직접 해준다는 그는 “청국장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우리 인체와 매우 친하려는 습성이 있으므로 꾸준히 즐기면서 먹으면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약은 당장에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내성과 부작용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청국장과 같은 자연식을 권한다. 그의 언급대로, 늦어도 10년 안에 성인병과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청국장 신약’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8년 대전 출생 ▲82년 서울대 미생물학과 졸업 ▲84년 동대학 미생물학 석사 ▲92년 한국과학기술원 분자생물학 박사 ▲97∼98년 미 스태퍼드대 미생물 및 면역학과 연구원 ▲94∼현재 호서대 생명공학과 교수 ▲2000년∼현재 청국장 먹기 운동 전개 ▲01년 캡슐형 청국장 개발 ▲03년 ‘청국장 다이어트 건강법’ 발간 ▲05∼06년 미 매사추세츠대 의과대학 객원교수 # 주요 연구내용 청국장 발효균주 개발, 청국장의 기능성(항산화, 혈압강하, 면역조절 등) 연구, 청국장 관련 논문 40여편 발표 및 특허등록 3건, 청국장이 인간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마이크로어레이(DNA칩)·생물정보학 등을 이용한 신약개발 연구 준비 중.
  • 日, 새달 지대공 패트리엇 훈련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심장부인 도쿄를 지켜라?’ 일본 방위성이 다음달 도쿄도 내 10곳에서 도심을 겨냥해 ‘적국’이 발사할지 모르는 탄도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지대공 패트리엇(PAC3)의 이동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25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훈련은 신주쿠교엔과 방위성이 위치한 이치가야, 오다이바해병공원, 하루미부두공원, 네리마구에 있는 육상자위대 제1사단 등 PAC3를 운영할 수 있는 10곳의 공원과 시설에서 전개된다. 도쿄에선 간간이 방위훈련이 실시됐지만 이처럼 10여곳에서 동시에 이뤄지기는 이례적이다. 특히 훈련에서는 PAC3를 쐈을 때 주변 고층건물에 의한 시스템의 오작동 여부, 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 등 관제기기의 통신 여건을 정밀 점검할 방침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일본의 미사일방어(MD)체제는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 ‘곤고호’에서 요격미사일(SM3)을 발사, 대기권 밖에서 파괴하지 못하면 PAC3가 지상에서 다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2단계로 구성되어 있다.방위성은 이에 따라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고 장기간 활동할 수 있는 도쿄 안의 넓은 부지에 PAC3를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내년에는 한신·나가교·북부 규슈 등에서도 PAC3 훈련을 전개하기로 했다.방위성은 다음달 SM3를 탑재한 이지스함 ‘곤고호’가 미국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실탄 요격훈련을 시행한다고 덧붙였다.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사투리 공부/함혜리 논설위원

    우리말 사투리를 쓰는 외국인들이 있다. 지방에서 우리 말을 배운 까닭이다. 이집트인 가이드가 들려준 얘기가 생각난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카이로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유학을 왔다. 하숙집 주인과 대화를 하면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신촌에 하숙집을 구했다. 그런데 그 하숙집 아주머니가 경상도 사람이었다. 사투리인 줄 모르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열심히 따라했다. 학교에 가서 한차례 웃음거리가 된 뒤 사투리인 줄 알았다나. 그후로 책을 소리내어 읽으며 표준말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일본영화 ‘도쿄 타워’를 봤다. 배우들이 하는 일본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기에 이 영화를 교재로 삼으면 되겠다 싶었다. 일본어를 잘하는 동료에게 그 얘기를 했다. 격려의 말을 기대했는데 웬걸.“배우들이 사용하는 말은 규슈 지역 사투리여서 교재로는 부적합하다.”는 거다. 역시 아는 게 힘이다. 하마터면 일본어 사투리를 열심히 따라할 뻔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월드 사이언스]

    [월드 사이언스]

    ‘지저분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비듬. 비듬균과의 싸움에서 사람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바로 비듬을 일으키는 곰팡이의 유전자 구조가 완전 해독됐다. 이에 따라 비듬 곰팡이가 비듬을 유발하는 원인은 물론, 뛰어난 성능을 가진 치료제 개발도 가능할 전망이다. ■홍역 바이러스 감염 원리 규명 홍역 바이러스가 인체의 세포에 침입할 때, 세포와 결합하는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의 구조를 일본 규슈대학의 연구팀이 밝혀냈다. 이에 따라 바이러스의 결합 부위에 인위적으로 화합물을 붙이면 홍역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입해도 발병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구 결과를 발전시키면 에이즈를 포함한 항바이러스제나 새로운 백신의 개발도 가능할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미국 과학잡지 PNAS 인터넷에 게재됐다. ■모유 수유가 어린이 IQ 향상시킬까 특정한 형태의 유전자를 가진 어린이만 모유 수유시 지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특정 형태의 FADS2 유전자를 갖고 있는 어린이가 모유 수유시 IQ 테스트에서 7점 이상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FADS2 유전자를 갖고 있는 어린이는 모유 수유가 IQ에 미치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FADS2 유전자는 뇌 발달과 관련이 있는 식품의 지방산을 분해하는 데 이용되며 몇 종류의 형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IQ 7점 차이는 아이를 반 상위 30%에 들게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모유 수유의 IQ 향상여부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왔다. 현재 확인된 사실은 미숙아의 두뇌 발육에는 모유 수유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신생아의 지능 발육과 관련해 모유 수유보다는 환경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점 등이다 ■비듬균 유전자 해독 성공 미국의 건강생활용품 회사 ‘피앤지 뷰티’는 최근 미국 학술원회보를 통해 비듬을 일으키는 ‘말라세지아균’의 유전자 구조를 완전히 해독했다고 밝혔다. 말라세지아균은 번식 과정에서 피부의 각질을 벗겨내 비듬을 유발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라세지아균의 어떤 유전자 혹은 단백질이 활성을 조절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DNA 염기서열 분석 결과 말라세지아균은 불과 4285개의 유전자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다우손 박사는 “말라세지아균과 인체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새로운 비듬 치료제 개발도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말라세지아균과 유사한 많은 균들이 신생아의 면역기능 장애 또는 호흡기 알레르기 증상에 관련하고 있어, 치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임진왜란 때인 1598년 전북 남원에서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400년 이상 흘렀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6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뿌리찾기에 나섰다. 그는 규슈 가고시마현 미야마 마을에 정착, 지금도 14개 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조선도공들 가운데 박씨의 후손이다. 한·일관계는 물론 뒤엉킨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도고 교수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시게노리 2차대전 때 외무대신 역임 도고 교수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전과 패전시 외무대신을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다. 아버지도, 그도 고위외교관 출신으로 3대 외교관 집안이다. 도자기노예인 조선도공 박씨 집안 3대가 일본의 고위 외교직을 차례로 역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게노리는 원래 박무덕이었다. 부친 박수승 대까지 도자기노예 후예로서 모진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으로 차별이 심화됐다. 수승은 박씨란 성을 자신의 대에서 끊고 귀화했다.1882년생 시게노리가 5살 때이다. 수재 시게노리는 고향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학에 들어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그 뒤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독일 외교관시절 만난 그의 아내는 독일여자였다. 아이가 다섯 있던 그녀의 사별한 남편 게오르그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기본 설계한 건축기사다. 시게노리는 독일과 소련 대사를 역임한 뒤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인 1941년 외무상에 발탁되었다. 군부에 맞서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외무상을 그만뒀으나 종전 직전인 45년 4월 외무상에 재기용됐다. 그때 일왕에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라고 강력 주장, 조기종전으로 일본사람의 전멸을 피하게 했다는 칭송도 받았다. 시게노리는 A급 전범으로 20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개전 반대 노력 등을 전범재판소가 평가, 사형은 피했다. 도고 교수는 “다섯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막연한 기억밖에 없다. 어머니, 형과 함께 가끔 스가모형무소로 면회갔을 때 낭하에서 검붉은 환자복을 입고 걸어나오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시게노리는 미군병원에서 1950년 7월 숨졌다. 시게노리는 겉으로는 도공 박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겼지만 가보지 못한 조선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국장 시절 조선에서 최초로 외교관 시험에 합격, 일본 외무성 과장으로 부임했던 직원에게 자신도 조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토로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시게노리는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고, 무덤은 도쿄시내 아오야마묘지에 있다. ●DJ납치, 주한미군철수와 아버지 시게노리는 외동딸만을 두었다. 딸과 결혼한 자신의 비서관 출신 사위를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켜 도고 후미히코라고 하게 된다. 후미히코의 한국사랑은 유별났다.1973년 한일 각료회의 때 외무성 심의관으로 한국을 방문, 김대중납치사건을 처리했다. 문세광의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뒤 한국을 재방문, 사건수습에 진력했다고 한다. 외무성 차관 때도 한국과 인연을 맺었으며 차관 사임 뒤 부부가 한국을 다시 방문해 판문점과 휴전선 부근의 남침용 땅굴을 보고, 한국의 안보 상황을 체험했다.77년 카터 전 미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일본대사로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자 워싱턴 조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 한·일 공동외교를 폈다. 부친이 한국과 공동외교전을 폈다는 사실에 대해 도고 교수는 “거의 모르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아버지는 사무차관 때 중국 및 한국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오래 전부터(400여년전) 한국과 연결됐다.”고 독백처럼 말했다. 후미히코는 20여년 전, 부인은 10여년 전 숨졌다. ●남원의 박씨 집안 후손… 뿌리를 찾아나섰다 후미히코는 태평양전쟁 말기 노약자 소개정책에 따라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을 뒀다. 형 시게히코는 워싱턴포스트지 도쿄특파원을 하다 최근 퇴직했다. 특파원 시절에는 한국도 여러번 방문, 따뜻한 가슴으로 여러편의 기사를 작성해 신문에 실었다.“현재 퇴직후 공부중”이라고 한다. 도고 교수는 도쿄대학 출신 엘리트외교관이었다.17년간 러시아관계 일을 맡아 러시아어, 영어에 능통했다.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마디만 할 수 있다. 두 아들(각각 34·30세)은 현재 일본의 회사에 재직중이다. 형도 아들만 둘이다. 도고 교수는 “내 핏속에는 독일인 피도 4분의1이 흐른다. 일부 조선인의 피도 흐른다.”며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일본이 나의 유일한 조국”이라며 단호했다. 그러나 핏줄찾기 열의는 대단하다. 최근의 일본인들에게 핏줄의식은 없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하기 전 고향 미야마 마을을 찾았다고 밝힐 때는 고향·핏줄을 중시하는 조선도공의 영향이 느껴졌다. 그의 조상들이 남원서 왔다는 것은 형의 ‘조부 시게노리’라는 책에 실려 있다.“한국에 있는 4개월 동안 반드시 가보고 싶다.”면서 남원과 ‘춘향전’,‘광한루’ 등이라고 적은, 소중하게 갖고 온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형 시게히코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조선시대 도자기 사발을 가보로 모신다. 자신도 미야마의 조선도공 출신 심수관씨로부터 받은 몇 개의 도자기를 도쿄 미나토구 한국대사관 근처 자택에 “소중히 보관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연결된 끈들이다. ●현대사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도고 교수는 2002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촉망받던 고위 외교관리였다.1997년 유럽아시아 국장이었다.98년 11월 조선도공들의 가고시마 정착 400주년 기념식장에 당시의 한·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김종필 한국 총리 등과 동석하는 큰 영광도 누렸다. 그 해에 ‘시게노리 기념관’이 생겨나는 등 고향 미야마 마을은 온통 조선도공의 열기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양국 총리와 외무장관 등이 시게노리의 동상 등을 방문했을 때는 마을의 지도자와 한국측 참석자들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를 “아주 독특하고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복잡한 일본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측근인 외무성의 사토 마사루가 2차대전 뒤 일·러간 현안인 북방4개 섬 일본 반환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2002년 구속되면서다. 그도 네덜란드대사 부임 8개월 만에 해임돼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지난해 6월 사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까지 4년 이상 일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조국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4개 섬 일괄반환론 틀 안에서 4개 섬의 귀속을 인정해주면 러시아가 언제까지 보유해도 무방하다는 ‘가나와 제안’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안 되면 우선 2개 섬 반환을 확실히 하고,2개 섬은 다음에 교섭하는 단계론을 펴다 우익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맹렬한 공격에 사토가 구속되고 실무 추진 당시 상사였던 그는 해임됐다. 도고 교수는 “북방영토가 일본의 영토라는 원칙은 전후에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지 교섭 방법론이 문제였다.”며 당시에는 자신도 네덜란드에서 귀국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본행을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눌러앉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망명은 저널리즘적인 표현이다. 그저 일본이 싫어서 귀국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외무성을 퇴임한 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2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2년, 타이완 단코대 4개월,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 6개월 등의 교수를 거쳤다. 지난 7월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부인과 함께 일본 도쿄에 주민등록을 해 영주키로 했다. ●“한국학생들 매우 논리적” 그는 미국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번 학기 초빙교수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일주일에 3시간짜리 한 강좌를 맡고 있다. 한국 학생 20명과 외국학생 10명에게 한·일관계 등 동북아 외교 현안을 정면으로 가르친다. 도고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논리적이다. 이들이 한국지도부에 들어가는 날 한·일 양국관계는 매우 밝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학자, 시민단체 등 새로운 형태의 한·일 교류가 활발한 것도 반기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 정권이 한·일 관계를 잘 해갈 것이라며 급한 국내과제를 해결, 일본 내부 반발을 해소해 정권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최근 정치·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감이 북한·일본과의 관계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봤다. 대통령선거 뒤 한·일 양국이 정상간 셔틀외교를 재개하길 바랐다. 아울러 ‘일본은 없다’,‘혐한류’ 등 책이 출판돼 양국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도고 교수는 일본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 동북아시아 평화시대를 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사회가 우경화됐다지만 우경화되거나 반한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상으로 한반도는 통일될 시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도고 가즈히코 교수 ▲1945년 나가노현 출생(태평양전쟁말기 노약자의 소개정책으로 인해 모친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거주중) ▲68년 도쿄대학 교양학과 졸업 ▲68년 4월 외무성 입성 ▲72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근무(모두 3차례 대사관 근무를 포함 소련과장과 유럽아시아국장 등으로 17년간이나 러시아관계 일을 맡음) ▲91년 워싱턴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98년 외무성 조약국장 ▲99년 유럽아시아 국장 ▲2001년 네덜란드대사 부임 ▲02년4월 네덜란드대사 해임 ▲02년5월 일본을 떠나 유랑 ▲07년7일 5년 만에 일본 귀국 ●최근의 저서 ‘북방영토 교섭비록’(일어) ‘일본외교 1945∼2003’(영어)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3) 일본의 氣 가 살아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43) 일본의 氣 가 살아나다 Ⅱ

    1629년 겐포(玄方) 일행은 상경을 허용하라고 요구하면서 자신들이 도쿠가와 막부 장군의 명령을 받아 온 사자(國王使)라고 강변했다. 조선 조정은 그들이 진짜 국왕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홍명(鄭弘溟)을 선위사(宣慰使)로 왜관에 보냈다. 하지만 겐포 일행은 국왕사가 마땅히 지참해야 할 국서(國書)를 갖고 있지 않았다. 조선은 당연히 상경을 다시 거부했다. 겐포는 국왕사라고 우기며 협박을 계속했다. 임진왜란 이후 최초의 상경을 둘러싼 실랑이는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외교전문가로 길러진 겐소의 제자 겐포 겐포(1588∼1661)는 17세기 초반 조·일 관계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승려였다. 그의 정식 이름은 기하쿠 겐포(規伯玄方)였고 호를 백운(白雲) 또는 회계(晦溪)라고 했다. 규슈 하카다(博多)에서 태어난 그는 출가한 이후 쓰시마로 건너갔는데, 출가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겐포에게 외교술을 가르쳐준 스승은 게이테쓰 겐소(景轍玄蘇)였다. 본래 하카다의 성복사(聖福寺) 주지였던 겐소는 1580년 쓰시마로 건너갔다. 겐소는 뛰어난 한문 실력을 바탕으로 쓰시마에서 조선과의 외교 교섭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활약했다. 조선과의 교역이 경제적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였던 쓰시마의 입장에서는 능숙하게 외교문서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절실했다. 문화적으로 일본인들을 ‘한 수 아래’로 보았던 조선 관인들과 접촉하려면 한문 실력뿐 아니라 시문(詩文) 등을 수작(酬酌)할 수 있을 만큼 문학적 재능도 필요했는데 겐소는 바로 그 같은 임무에 적격이었다. 겐소는 임진왜란에도 참전했다. 왜란 당시 명군 지휘부는 그를 일본군의 모주(謀主)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하여 그의 목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상금을 주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겐소의 활약은 왜란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한 이후 쓰시마의 소오씨(宗氏)는 겐소를 내세워 조선과의 강화를 성공시켰다. 겐소는 조선 사절의 도일(渡日)을 이끌어내고 기유약조(己酉約條)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과의 관계를 놓고 볼 때, 겐소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외교관이었던 셈이다. 겐포는 17세부터 쓰시마의 이정암(以酊庵)이란 곳에 머물며 겐소를 보좌하면서 조선과의 외교를 배웠다.1611년 겐소가 세상을 떠나자 스승을 이어 쓰시마의 외교문서를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오씨는 겐포의 나이가 아직 어린 점을 고려하여 그를 교토(京都)로 보내 좀더 학문을 닦도록 했다. 겐포는 1619년부터 쓰시마의 외교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1621년에도 국왕사라는 직함을 갖고 부산에 왔던 적이 있었다. 요컨대 겐포는 스승 겐소와 쓰시마 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길러진 외교 전문가, 조선 전문가였던 셈이다. ●조선, 논란 끝에 상경을 허용하다 겐포가 상경을 고집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조선 조정은 고민했다. 인조는 강경했다. 그는 ‘왜놈들은 우리의 원수’라고 전제한 뒤 일단 금제(禁制)를 풀면 이후의 폐단을 막을 수 없다는 것과 대의(大義)를 고려하여 상경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상경을 허용하면 공갈과 협박에 굴복하는 셈이 되고, 일본은 분명 조선에 사람이 없다고 여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료들의 의견은 사뭇 달랐다. 병조판서 이귀(李貴)는 ‘선조(宣祖)께서도 일본을 이웃나라로 대우했는데 이웃 사신의 상경을 불허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그는 현실론을 내세웠다.‘호란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현실에서 왜인들의 비위를 거스를 수는 없으며 유순한 태도로 강자를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보국(保國)의 방책’이라고 강조했다. 신료들의 생각도 대체로 이귀의 주장과 같았다. 하지만 인조가 워낙 강경하게 반대하여 결론은 쉽사리 내려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겐포가 왔을 무렵 안팎의 사정이 너무 뒤숭숭했기 때문이다.1629년 2월, 후금 사신 만월개(滿月介)가 서울에 들어왔고, 같은 달 후금군은 선사포에 있는 모문룡의 둔전을 습격했다. 이 때문에 서울에는 후금이 다시 쳐들어올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퍼지면서 피란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3월에는 홍타이지가 국서를 보내와 ‘조선이 맹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질책하고 ‘모문룡과 관계를 끊으라.’고 다시 협박했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계속되는 와중에 명화적(明火賊) 등이 발생했다. 이정구(李廷龜)는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당시의 조선을 가리켜 ‘공허한 나라(空虛之國)’라고 표현했다. 이귀가 다시 나섰다. 그는 ‘후금과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사단을 만들 수는 없다.’는 논리로 상경을 허용하자고 주장했다. 이정구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는 겐포 일행 가운데 몇 사람만 ‘특소(特召)’라는 명목으로 상경을 허용하되 나머지 인원은 부산에서 접대하자고 주장했다. 인조도 상황 논리에 밀려 결국 신료들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정의 절충안이 부산으로 전달되었다. 조선 조정은 겐포 일행에게 상경을 허용하면서 그들을 국왕사가 아닌 바로 아래의 거추사(巨酋使) 급으로 대우하기로 결정했다. 국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왕사의 사절 정원은 25인이었는데 거추사의 정원은 15인이었다. 겐포는 반발하면서 거추사의 인원에 수행원 4인을 더 추가해야 한다고 강청했다. 또 자신이 ‘보행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가마를 타고 상경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정홍명은 겐포 일행의 집요한 요구에 밀려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1629년 4월6일,19명으로 구성된 겐포 일행은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다. 임진왜란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상경 길이었다. ●돌아갈 때 목면 600동까지 챙겨 겐포 일행은 4월22일 서울로 들어왔다. 그들은 4월25일, 경덕궁(慶德宮, 오늘날의 경희궁)에서 인조에게 인사를 올리는 숙배(肅拜)를 행하고 5월21일 출발할 때까지 약 한 달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그들은 인조를 알현할 때 진상품으로 조총 20정을 비롯하여 화약 원료인 유황(硫黃)과 염초(焰硝) 수백 근을 바쳤다. 조선이 후금과 막 전쟁을 치렀던 것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전쟁을 치른 조선이 가장 아쉬워 할 수밖에 없는 무기류를 헌상함으로써 쓰시마의 존재 가치를 환기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기도 했다. 겐포가 이끄는 사절단의 본래 목적은, 막부의 명령을 받아 정묘호란 이후의 조선과 대륙 정세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겐포 일행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조선 내부 사정은 물론 명과 후금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부심했다. 조선인들을 통해 얻어들은 정보를 기행문 등에 꼼꼼하게 적었는가 하면, 대동했던 화가들을 시켜 목도했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기록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겐포 일행은 실리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쓰시마 도주(島主)가 특별히 보낸 스기무라(杉村采女)는 무기류 등을 헌상하여 조선의 환심을 사는 한편,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조선으로부터 받지 못했던 목면(木棉)을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스기무라가 요청한 목면의 양은 600동(同)이었다. 자그마치 3만 필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조선 조정은 당연히 거절했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겐포 일행은 5월21일 서울을 뛰쳐나갔다. 조선 조정이 쓰시마 도주에게 보내는 서계(書契)의 접수도 거부했다. 조선 조정은 난감했다. 최명길 등은 남변(南邊)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달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은 결국 목면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왜관에 머물며 조선의 수락 소식을 들은 겐포 일행은 6월12일 유유히 귀국선에 올랐다. 정묘호란을 겪은 직후 ‘공허지국’ 조선의 외교를 이끌던 당국자들의 고뇌가 눈에 밟힌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하회탈 중 사라진 ‘별채’ 추정 日서 발견

    하회탈 중 사라진 ‘별채’ 추정 日서 발견

    국보 제121호인 하회탈 가운데 사라져 전해 오지 않는 ‘별채’ 탈로 추정되는 탈이 일본에서 발견됐다. 문화재 전문위원인 고려대 전경욱 교수(국어교육과)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야쓰시로 시립박물관이 소장한 탈을 고증한 결과 하회탈 가운데 포악한 관리를 상징하는 별채 탈일 가능성이 높다.”고 19일 밝혔다. 하회탈은 본래 13종 14점이지만 현재 양반, 초랭이(양반의 하인), 선비, 이매(선비의 하인), 할미, 각시, 부네(기생), 중, 주지(2점), 백정 등 10종 11점만 원형이 알려져 있으며 별채, 떡달이, 총각 등 3종은 사라진 상태다. 전 교수는 “야쓰시로 박물관에서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였던 고니시 유키나가 유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이 탈을 발견해 고증을 의뢰해 왔다.”며 “탈의 주름, 코의 형태 등을 볼 때 경상도 지방의 탈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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