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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벽/김중태 지음(화제의 소설)

    ◎남북 병사통해 통일의지·동포애 부각 휴전선 철책 안에서 만난 남북 병사를 통해 통일에의 의지와 동포애를 부각시킨 소설. 철책안에서 작전중 낙오돼 길을 잃은 남한 병사가 남한 기습작전중 부상당한 북한 병사와 마주친다는 다소 생소한 배경에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처음엔 서로를 견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화를 나누게되고 남한 병사가 북한 병사를 부축해 귀환하다가 사살당하는 비극이다. 적대관계에서 우정 동포애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분단을 뛰어넘은 남북 젊은이들의 고뇌와 동족애,그리고 분단현실의 아픔을 부각시킨다. 일선출판사 6천원.
  • 아이티 군실권자 국외탈출 기도설/미,이이티인 비자취소

    【포르토프랭스·워싱턴 AP AFP 연합】 클린턴 미행정부는 민선대통령의 복귀를 가로막고 있는아이티 군사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아이티인들의 미국 비자(입국사증)를 취소할 것이라고 미행정부의 한 소식통이 25일 전했다. 한편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아이티 정부 막후 실력자인 세드라스가 최근 50만달러를 아이티 중앙은행에서 인출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미국과 캐나다의 민항기 취항 중단 조치로 아이티군부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이같은 움직임은 세드라스장군의 국외탈출 가능성을 가리키는 서곡일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다르 소식통은 이 돈이 망명중인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대통령의 귀환을 저지하기 위한 대미 로비자금으로 사용될 것으로 믿고 있다며 엇갈린 시각을 보였다.
  • 방북회담 내용 40분간 설명/카터 귀환·회견·이한 표정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은 18일 아침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온뒤 하오 이한하기에 앞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기자회견◁ ○…김영삼대통령과의 오찬을 마친뒤 카터전대통령은 정동 미대사관저로 돌아와 내외신기자 2백여명과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북한방문 배경과 김일성주석과의 회담내용및 방북인상등을 40여분에 걸쳐 자세히 설명. 이날 기자회견은 예정보다 20분 늦은 하오2시20분쯤 시작돼 카터전대통령이 미리 준비한 성명을 발표한뒤 기자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 카터전대통령은 먼저 자신의 방북은 지난 91년부터 있었던 북한의 초청에 카터재단 소장이라는 개인자격으로 응했음을 강조. 그는 특히 평양에서 자신의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중단」발언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자 『이는 개인 입장에서 북한이 전날 제안한 사항들을 충분히 이행한다면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중지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라며 미국정부와의 모종의 사전협의설을 부정. 카터전대통령은 또 김일성주석이 『상당히 합리적이며 활발하고 지성적이었으며 복합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었고 적어도 나에게는 솔직했다』며 김주석을 호의적으로 표현. 그는 또 김주석이 이번에 한 제안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발언의 진실성은 앞으로 서방과의 대화를 통해 입증될 것이며 가까운 시일안에 거짓으로 밝혀질 것을 제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답변. 내외신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속에 진행된 회견동안 카터전대통령은 약간 피곤한 모습이었으나 외국기자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통역사에게 질문을 반복해주는등 여유를 보이기도.그는 회견직후 3시5분쯤 부인 로절린여사와 함께 김포공항으로 직행,4시15분발 델타항공 050편으로 남북한 동시방문을 마치고 이한. ▷청와대 오찬◁ ○…김대통령과 카터전대통령은 이날 낮12시부터 접견을 포함,모두 1시간30분동안 오찬회동. 김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카터전대통령의 방북결과를 설명듣고 북한핵문제를 포함,남북관계에 대해 많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돈식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 관련사항만 발표. ▷판문점 귀환◁ ○…카터전대통령은 3박4일동안의 북한방문을 마치고 이날 상오 8시35분 방북때와 같은 절차를 거쳐 판문점 남측지역으로 귀환. 카터전대통령은 북측관계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한후 군사분계선을 넘어 레이니 주한미대사등 환영객들과 악수를 교환한뒤 방북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좋았다』며 특유의 함박웃음.
  • 김성애 화려한 복권/김일성 후처,오랜만에 정치무대에

    ◎카터와 대동강유람… 서방에 이례적 공개/“반정일파” 내리막 20년… 작년부터 재부상 김일성 북한 주석의 후처이자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가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지난 17일 서방 TV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가 김주석의 전처(김정숙) 소생의 공식 후계자인 김정일과의 불화로 그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인 김일성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여맹위원장이라는 대외적 직함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김성애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6월 「평양시당 전원회의」때부터.이 회의에서 김성애의 존재가 후계체제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본 김정일측이 그녀의 측근에 대해 월권행위와 전횡을 내사해 집중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성애는 공식활동을 자제하면서 조용히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지난해 7월 시아누크 캄보디아국왕의 방북 환영행사와연말 여맹 전원회의에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복권」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올해 4월 시아누크의 방북시에도 모습을 드러낸 사실이 북한방송에 의해 보도됐었다. 그녀의 친아들인 김평일은 김정일에 의해 「곁가지」로 몰리면서 주로 대외직책을 맡아오다 지난 3월 핀란드대사를 끝으로 평양으로 귀환해 군관계 요직을 맡았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김정일과의 후계투쟁에서 밀려나 20여년간 모습을 감추었던 김영주가 지난해 정치무대에 복귀한 것과 함께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김일성일가의 이같은 신상변화가 기왕의 후계체제를 다지기 위한 결속차원인지,아니면 김정일 후계체제의 불안감을 느낀 김일성의 노회한 「교통정리」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중 반체제인사 왕단 감시항의 단식돌입

    【북경 AFP 연합】 중국의 주요 반체체인사인 왕단은 15일 경찰의 탄압과 당국의 정치민주화 거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48시간의 시한부단식에 들어갔다. 지난 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지도자인 왕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법을 무시한 감시행위가 계속돼 스스로 권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단식은 민주주의확대를 요구하는 중국인민들의 청원에 당국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한 항의의 뜻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왕은 천안문사태후 4년간 복역한 뒤 지난해 석방됐으며 이달초 천안문학살 5주년을 맞아서는 경찰과의 충돌을 피해 산동성에서 보낸 뒤 12일 북경으로 귀환했다.
  • 카터 내주 평양 방문/판문점 거쳐

    ◎“핵문제 논의 희망”… 서울도 들러/유엔결의안 방북결과 나오기전 채택 안될듯 【워싱턴=이경형특파원】 지미 카터전미대통령이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내주 평양을 방문한다고 미애틀랜타 소재 카터센터가 9일 공식 발표했다. 카터전대통령은 센터가 낸 성명에서 『(미)시민 자격으로 로절린(부인)과 함께 내주 남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이번 방문이 워싱턴이 아닌 「코리아」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으로 본인은 미정부와 관련한 공식적인 임무를 띠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 91년 이후 이 여행과 관련해 많은 초청을 받아왔다』면서 『백악관을 떠난 후 다른 국제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랬듯이 한반도상황과 관련해 적절한 브리핑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고 덧붙였다. 카터전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방문과 관련해 『본인은 그곳 지도자들과 요즘의 중요한 사안들중 일부에 대해 논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북한 핵문제를 거론 할 의향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카터전대통령은 평양방문에앞서 서울을 들르며 귀국길에도 다시 서울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교도 연합】 미국은 유엔안보이에 제출할 대북한 제재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으나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북한 방문결과가 나오기전에는 결의안이 채택될 것같지 않다고 외교 소식통들이 9일 말했다. ◎김 대통령 예방 정부는 오는 14,15일쯤 남북한을 차례로 방문하는 카터전미국대통령을 통해 북한측에 국제사회의 우려와 우리의 단호한 방침을 전달해 주도록 요청할 계획이다. 카터전대통령은 방한 기간동안 김영삼대통령을 예방,북한핵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담당자들로부터 정부의 방침에 대해 설명을 들을 예정이다. ◎정부,판문점 통과 허가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은 오는 14일 서울에 도착,하루를 지낸뒤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며 18일 서울로 다시 귀환할때도 판문점을 이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10일 『카터 전대통령측으로부터 판문점을 통과,남북한을 왕래할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정부는 전직대통령이라는 그의 위상을 감안,이를 허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카리모프대통령 안내로 한인농장 시찰(김대통령 북방여로)

    ◎중앙아의 「한국농업」 개척자가족 격려/사마르칸트선 실크로드 유적들 관람 ○…우즈베키스탄 방문 이틀째를 맞은 김영삼대통령내외는 5일 상오(한국시간 5일 하오) 카리모프대통령내외가 손수 안내하는 가운데 유서깊은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를 항공편으로 방문,중앙아시아 최대의 유적들을 돌아봤다.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 타슈켄트로 돌아와 근교의 한인농장을 돌아보고 교민들을 위한 리셉션에 참석하는등 때마침 일요일인데도 바쁜 여정을 보냈다 ▷김병화농장방문◁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 타슈켄트 교외에 있는 김병화농장을 방문,농장일대를 시찰. 김대통령은 카리모프대통령과 함께 농장에 도착,아크라모프 타슈켄트주지사와 김병화씨 미망인등의 영접을 받고 아디야로프조합장으로부터 농장현황을 청취. 김대통령은 농정자료전시관과 이곳에서 이름을 떨쳤던 고려인 김병화동상등을 돌아보고 대형벽시계를 농장에 선물. ▷타슈켄트 주지사 만찬◁ ○…김대통령내외는 곧 이어 아크라모프주지사가 고려인들을 위해 마련한 리셉션에 참석,2백여명의 동포및 우즈베키스탄인들을 격려. 김대통령내외는 카리모프대통령내외와 함께 나란히 입장해 서건이주우즈베키스탄대사의 안내로 헤드테이블로 가면서 주변 참석자들과 악수로 인사를 교환. 아크라모프지사의 농장방문 환영사에 이어 카리모프대통령도 『김병화농장의 기적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두나라의 친선을 상징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환영사.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1930년대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동포선조들이 보여준 인내와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중앙아시아에 새롭게 우뚝서는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 이어 농장대표가 김대통령내외에게 선물을 전달했으며 실내악이 흐르는 가운데 김대통령내외는 약10분동안 참석자들과 환담. 약 45분동안에 걸친 리셉션이 끝난뒤 두나라 대통령과 대통령부인들은 각각 차량에 동승해 타슈켄트로 귀환. ▷사마르칸트관광◁ ○…김대통령 내외는 김병화농장 방문에 앞서 이날 상오 카리모프대통령내외와 함께 카리모프대통령의 특별기편으로 실크로드 교역의 십자로 역할을 했던사마르칸트를 방문,유서깊은 유적들을 시찰. 사마르칸트는 수도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로 50여분 거리에 있는 인구 40만명의 우즈베키스탄 제2도시.약 2천5백년전 소그트인들의 손으로 건설된 뒤 기원전 4세기쯤 알렉산더대왕이 이곳까지 내습하는등으로 아시아·페르시아 문화와 그리스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문화를 탄생시켰던 중앙아시아의 역사 깊은 도시. ○…김대통령은 사마르칸트공항에 도착,흐마노프주지사와 나시로프시장의 영접을 받고 전통의상을 입은 우즈베크 여성으로부터 화환을 증정받은 뒤 8세기 이슬람교도들의 묘역인 샤히진다(살아있는 왕)로 출발. 김대통령은 묘역입구에서 사마르칸트 이슬람지도자의 영접을 받았고 11개의 묘역중 압바스묘역을 돌아보는 동안 푸른색 모자이크 타일과 돔으로 장식한 묘역의 건축술과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굉장한 문화유적』이라고 감동. ○…김대통령은 이어 레기스탄(모래의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차안에서 중앙아시아 최대의 회교사원인 「비비하님 모스크」등 시가유적들을 시찰. 15∼17세기 회교식 건축물들이 들어선 레기스탄은 왕에 대한 알현식등 공공집회가 열린 사마르칸트의 중심지로 광장 안에는 3개의 회교학교가 위치. 김대통령은 레기스탄에 도착,시르도르(용맹한 사자)회교학교 앞 광장에서 민속공연과 전통자수 시범을 잠시 관람하고 공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 김대통령은 이어 회교학교 안으로 들어가 아기사슴을 쫓는 사자의 모습과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내부를 관람한 뒤 15세기 티무르왕과 가족의 묘역인 구르 에미르(지배자의 묘)를 관람. 카리모프대통령이 이날 김대통령의 사마르칸트 방문에 동행한 것은 사마르칸트가 자신의 고향이자 김대통령에 대한 특별한 배려의 의미라는 풀이. 사마르칸트 관광을 끝낸 김대통령은 이어 카리모프대통령과 함께 흐마노프 사마르칸트주지사가 영빈관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 뒤 타슈켄트로 귀환. ◎“북의 핵투명성 입증기회 남아있다”/김 대통령 수행 고위당국자 문답 김영삼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수행하고 있는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5일 북한핵 문제와 관련,『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고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단순히 상징적인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데 미국등 우방국들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단계적인 제재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과거 핵활동의 투명성을 입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아직까지도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다.교체연료봉에 대한 계측말고 특별사찰이나 또다른 사찰방법으로도 알 수 있다.제재가 처음부터 투명성 입증 기회를 봉쇄하는게 아니다. ­북한의 동향은. ▲특이한 게 없다.24시간 구석구석을 감시할 수 있는 최첨단 정보능력이 총동원됐다.한미간에 긴밀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고 있고 필요하면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북의 도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중국 외교부의 당가선부부장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한국을 방문,한중 외무차관회담을 가졌을 때 북한 핵문제도 논의됐다.중국도 북한이 연료봉 교체를 강행한 데 대해 우려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의 태도는. ▲강석주 외교부부부장의 최근 발언은 연료봉 교체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미·북 3단계 회담이 이루어지면 특별및 임시사찰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으로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 ­안보리 밖에서 한·미·일등 우방국들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도 검토되고 있나. ▲지금으로서는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제재를 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본다.물론 여러가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통해 러시아의 확고한 지지 약속을 받았으므로 안보리 결의를 추진할 것이다.
  • 은행측 완강한 거부로 “빈손 귀환”/「상무대국조」계좌추적실패 안팎

    ◎민주,“국조중단” 등 초강경대응 선회 상무대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위한 은행계좌 추적작업은 설전만 오간채 「예상대로」 무산됐다. 국회 법사위의 3개 조사반이 2일 서울 여의도 주택은행 본점등 5개 점포를 대상으로 계좌추적작업을 벌이려 했으나 은행측이 완강하게 자료제출을 거부한 것이다.조사반은 『고발하겠다』는등 「협박」도 서슴지 않았지만 금융실명제 긴급명령의 개인비밀조항을 내세워 막무가내로 버티는 은행측을 설득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이같은 논쟁은 3일 주택은행 안산시 원곡동지점등 3개 은행의 5개 점포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은 국정조사의 전면중단및 관계책임자 탄핵소추 불사등 「초강수」를 띄우고 나섬으로써 난항을 겪고 있는 국정조사가 상당기간 표류하거나 아예 좌초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날 조사1반(반장 함석재)이 찾아간 여의도 주택은행 본점은 20억원,10억원씩의 큰돈이 거래된 곳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은행측이 「불가」를 고집,결국 계좌추적에 실패.민주당 의원들은 고성까지 섞어가며 청우측 명의의 게좌번호 400401­91­204963의 거래원장·전표·발행및 회수수표등 관련서류의 제출을 요구.이에 정순영영업1부장은 『하루전인 1일 하오에 공식통보를 받고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을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아 제출할 수 없다』고 응수,소득없는 공방전만 계속.정부장은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15조에 기타법률과 상충되면 신법우선 원칙에 따라 긴급명령이 우선하도록 돼 있다』고 거부 이유를 설명. 강철선의원(민주)이 은행들의 거부방침이 「상부의 지시」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자 정부장은 『실무자로서 법테두리안에서 집행하는 것일뿐』이라고 부인.강의원은 『긴급명령은 검은돈을 차단해 부정비리를 근절하자는 것이 취지』라고 법정신을 강조했으나 정부장은 「법규정」으로 맞대응. 강철선 강수림의원등 민주당의원들은 국정감사및 조사법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법등을 내세우며 『고발당할 각오가 돼 있느냐』고 은근히 「위협」도 해봤지만 별무성과. ○…국민은행 서여의도지점에 대한계좌추적에 나선 조사2반(반장 이인제)의 활동도 같은 식의 실랑이만 거듭한 끝에 30분만에 일단락. 조붕묵지점장은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시행령에 따라 거래내역은 물론 거래사실조차도 공개할 수 없다』고 자료제출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관련 자료가 있는지도 조사해 보지 않아 모른다』고 첨언.이에 나병선(민주)유수호(국민)의원등은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흥분. 의원들은 조지점장이 이같은 방침을 직접 결정했다고 답변하자 『지점장 개인이 법률을 멋대로 해석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으나 조지점장은 『금융종사자로서 이같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일은행 동여의도지점에서 실시된 조사3반(반장 정상천)의 계좌추적작업도 정대철의원(민주)이 법전까지 제시하며 관련자료의 제출을 요구했으나 역시 같은 양상으로 맥빠진 분위기. 은행측은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자는 명의인의 서면요구나 동의를 받지 않고는 금융거래 정보나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되풀이.이에 의원들은 『지점측이은행장및 중역들과 상의하거나 지시받은 적이 없느냐』고 추궁했으나 은행측은 「순수히 자율적인 판단」이라고 강변.
  • 보물선의 사연/김용한(굄돌)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안보물선과 더불어 생활한 지 벌써 십수년이다.침몰선의 복원은 발굴에서부터 보존처리,조립에 이르기까지 상상하기 어려운 인내와 끈기가 요구되는 일.몇해전 어느 하오,밀리는 졸음도 쫓을 겸 선체 조각들이 담겨있는 풀장주변을 걷다가 언뜻 보물선에 숨어있을 침몰당시의 사연이 소설처럼 떠올랐다. 600여년전 중국의 어느 항구,동이 채 트지않은 항구 한쪽켠에서는 부산한 움직임이 인다.많은 도자 그릇들과 각종 화물로 가득찬 배 한척이 무사귀환을 비는 가족들의 전송을 받으며 해가 떠오르는 쪽을 향해 무겁게 나아간다.가족걱정,부를 향한 야심,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되면서 점차 깊은 바다로 항행한다.정성을 다해 출항제를 올린 덕인지 음력 유월의 남서풍이 상쾌하게 돛을 밀어준다. 낮과 밤이 바뀌기를 몇차례,바위와 나무로 둘러싸인 섬을 멀리 지나치면서 노선원은 고려땅 흑산섬이라고 젊은 선원에게 일러준다.아직 목적지인 일본땅은 멀다.갑자기 남쪽 하늘로부터 검은 기운이 일기 시작하고 배의 흔들림이 심상치 않다.바다는 순식간에 칠흑같이 변해버리고 집채만한 파도에 갇히기를 몇차례,「뚝」하는 소리와 함께 키가 부러져 나간다. 아수라장속의 선원들도 차라리 평온해지는 듯 병석에 누워계신 부모님,만삭이 된 아내,재롱 부리던 아이의 생각을 떠올린다.만신창이된 배는 반쯤 기울어진 채 바람과 파도에 밀려 다도해에 도달했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일 뿐 지친몸을 바닷속에 완전히 뉘이고 만다.동쪽 저멀리 수평선을 응시하던 고향의 가족들도 결국은 망각의 위로만을 받게된다. 600여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원나라 때의 무역선은 「신안보물선」이라는 동화같은 친근한 이름으로 우리곁에 와 있다.엄청난 양의 유물을 토해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수중고고학자들에게는 바다를 역사의 장으로 인식케 한 더없는 보물임에 틀림없다.몇가지 사연을 간직한 신안선은 멀지않아 목포에 신설될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영원히 닺을 내리게 될 것이다.
  • 바그다드·암만/하트라의 축제(아랍서 지중해까지:2)

    ◎「저항의 역사」 신전을 무대로 재현/로마군 물리친 베드윈족 그려… 제사땐 양을 제물로 우리가 모술의 호텔 현관으로 들어설 때 아가씨 몇명이 나와서 일행들의 가슴에 빨간 장미 한송이씩을 달아주었다.가이드로 나온 사람,호텔 종사원들이 달려나와 박수까지 쳐줬다.우리를 환영한다는 뜻인데 이 장면은 약간 어색했다.환영하는 그들도,꽃을 받은 우리도 우리가 완전한 동지라는 확신은 아직 갖지 못했던 것이다.몇사람의 아랍계 사람을 제외하면 일행은 대부분 미국과 그 추종세력(?)인 서방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모술시로 두시간 내겐 그 꽃선물이 「동지가 되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기 보다 지루한 기차여행을 견디고 모술까지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받아들여졌다.바그다드 정거장에서 모술역까지는 꼬박 9시간이 걸렸다.호텔 만수르의 어떤 가이드는 간밤에 모술까지 서너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말해줬다.서너시간이 9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이곳 사람들의 시간개념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은 여러곳에서 확인되었다. 바그다드 정거장은 우선 그 구역이 매우 넓고 복잡한 선로와 플랫폼이 질서정연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었다.시설은 아주 낡았지만 최초의 설계가 매우 치밀했음을 알 수 있었다.이 정거장이야말로 독일제국이 3B 정책의 상징으로 건설한 바그다드 철도의 시발점이 아닌가.비잔티움·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이 노선에서 모술도 중요한 거점의 하나였다.우리는 독일제국이 식민쟁탈의 수단으로 건설해 놓은 이 고색 창연한 철도를 이용해 모술로 가는 것이다. 넓고 긴 플랫품에는 북쪽에서 귀환하는 많은 군인들과 고향으로 가는 많은 민간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특히 군복을 느슨하게 입은 젊은 군인들이 아주 많았다.해가 진뒤 스산한 저녁나절에 군인들과 검은 차드르 혹은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부녀들이 한데 뒤섞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피난길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객차 좌석에 앉아있는 부녀자들은 거의 표정이 없었다.군인들도 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그들은 골격이 크고 윤곽이 분명해서 희노애락을 드러내기가 한층 쉬울텐데 마치님루드궁전 입구의 돌조각처럼 시종 무표정이다.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자궁핍과 낙후된 생활환경에 잔뜩 불만을 품고 있을까? 혹은 유구한 역사가 현재와 혼재되어 그 역사의 숨결을 하루하루 생생하게 느끼며 살고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일까? 그야 어떻든 그들이 우리 이방인의 시각에서 보면 놀라울만큼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것은 분명했다.그점은 그들의 투명하고 매혹적인 눈빛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바그다드∼모술간 철도주변은 대부분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해당되는 곳이다.밤에는 못봤지만 새벽이 되자 차창 밖으로 크게 자란 옥수수밭과 밀밭,감자밭들이 이어지고 있었다.그러나 농지관리는 산만했고 구획이 정해진 농지보다 버려진 초지가 많은걸 볼 때 경작방법은 아직 원시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들에는 천막 가득 모술에는 아시리아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성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이 도시 자체가 유적이었다.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북부 최대도시로 알려졌지만 현대도시란 느낌보다 역사의 시간속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고대도시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우리가 묵은 모술호텔은 이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다.호텔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모술 유적관람을 뒤로 미루고 축제가 열리는 하트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모술에서 하트라까지 버스로 다시 두시간 반이 소요되었다.가는 길목에서 이따금 언덕위에 설치된 포대와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이 포대는 아마 터키 국경부근에 출몰하는 무장 쿠르드족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양떼나 놀고 있어야 할 한가로운 언덕위에 견고하게 구축된 포대와 병사들,이것은 오늘날 이라크가 처해 있는 복잡한 내외환경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상징물로 보였다. 대상도시 하트라는 AD 1세기쯤 아라비아 반도에서 흘러온 베드윈족들이 건설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유명한 하트라 성도 베드윈의 캐러밴들(대상)이 세운 신전이며 하트라 부근에는 베드윈의 분위기,그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검은색 아라비아 의상을 걸치고 쿠트라란 이름의터번을 쓴,말을 탄 용감한 병사들이 많이 등장한다.골격이 뚜렷한 얼굴,멋진 수염,날카로운 눈빛이 이 용맹한 무사들의 공통된 특징이다.하트라에는 이런 복장,용모를 지닌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길가에 천막을 설치해 놓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앉아 있었다.수염을 멋지게 기른 베드윈의 촌장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수십명 천막아래 나란히 앉아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천막안에도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는 한가운데 걸려있었다.한쪽에서는 산채로 양의 목을 베어 큰그릇에 그 피를 쏟아붓고 있다.사람들이 양의 피를 마시려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축제때면 알라신에게 살아있는 양의 피를 바친다는 베드윈의 관습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멀리서 온 극동의 손님에게도 친절하게도 한 양푼의 양의 피를 권한다.우리가 질겁하고 뒤로 물러서자,촌장들은 점잖고 인정스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이런 천막들 숫자가 하트라성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늘어났다.들에는 흰 천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축제의 본무대인 신전은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헬레니즘의영향을 받은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의 화려한 원기둥들이 즐비하며 벽면의 조각품에도 그리스나 페르시아의 양식이 도입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얼핏 보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많이 닮은 꼴이었다.그리스 신화 속의 괴물인 메두사의 머리가 전면 벽에 크게 부조된 것도 좋은 증거물이었다.무대로 사용되는 신전의 회랑에는 아무런 장식물도 설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무대가 너무 썰렁하고 보잘것이 없었다.그러나 개막프로인 「사막의 힘」(춤과 노래가 혼합된 무용음악극)이 펼쳐지면서 붉고 푸른색 조명이 비쳐지자,지금까지 그늘진 폐허로만 보였던 그 무대가 갑자기 역사의 현장을 되살린 것 같은 지극히 환상적인 무대로 돌변했다.투구와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을 든 고대 로마군의 진격과 거기에 맞서는 베드윈 용사들의 항전­이것은 AD 2∼3세기 로마군이 하트라 성채를 공략했으나 주민의 저항으로 퇴각했던 실제 역사를 재현한것­이같은 극의 전개와 무대배경이 된 하트라 신전의 전면 회랑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저음의 합창 장엄 이 무대는 역사물을 다룬 어떤 오페라 무대보다 더 장엄하고 더 환상적이며 더 실제적이었다.유적현장을 장식없이 그대로 무대로 사용한 착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그러나 주최측이 심혈을 기울인 「사막의 힘」은 구성과 춤동작에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볼쇼이의 명품 「스팔타카스」처럼 춤동작이 좀 더 다양하게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면 그 환상적인 무대는 좀 더 빛이 났을 것이다.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진 아랍인의 합창­이것은 하트라에서 내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다.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 단순히 소리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아름답고 장엄한 합창이었다.저녁 어스름에 뒤덮인 하트라의 평원을 찌렁찌렁 울려줬던 아랍 남성들의 저음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어떤 비원을 담고 있는 듯한 그 노래가락은 군중에게 충분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이 합창을 듣고 나는 하트라의 축제가 소기의 목적을 거두고 있음을 확인했다.왜냐하면 거기 모인 군중들­대부분이 차를 가졌거나 차에 편승이 가능한 중류층 이상이며 이들은 지배이데올로기 편에 서있을 가능성이 많지만­의 표정이 노래가 들리는 순간 하나같이 엄숙해졌기 때문이다.그들은 그 순간에 침략자를 상기하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민족이 더욱 뭉쳐야 한다고 다짐한건 아닐까. 하트라 축제의 포스러를 보면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 카드 네자르 2세(BC 605∼562년)와 나란히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 나와있다.네부 카드 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재건자이며 특히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태인을 끌어다가 노예로 부린 장본인이다.이 포스터가 말하는 것은 후세인이 바로 그의 계승자란 사실이다.후세인은 아득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빌려 그의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그는 역사의 복원을 외치며 국민에게도 역사와의 동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 「러」 외교문서서 밝혀진 「6·25전야」

    ◎「웅진반도 점령·삼척해방구 건설」/김일성,당초 국지전 계획/개전직전 소·중지원 약속받고 전면전 선회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세우면서 초기에 전면전 대신 옹진반도 점령과 강원도 삼척의 탄광지대에 「해방지구」건설등 국지전 전략을 수립했다가 개전 직전 이를 남침 전면전으로 수정했음이 25일 러시아 외무부 비밀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졌다.다음은 김일성이 남침의사를 굳힌 49년 여름 주평양 소련대사관과 모스크바 사이에 오간 전문 요지. ◇49년8월12일=김일성과 박헌영은 남조선이 자신들의 평화통일 제의를 거부했기 때문에 남조선에 대한 무력공격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함.두 사람은 무력공격이 남조선 내부의 대규모 인민봉기를 수반할 것이라고 강조.슈티코프소련대사는 북한지도자들의 기도가 실현될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함.김일성은 이런 「냉담한」반응을 들은 뒤 남조선 강원도 삼척 탄광지대에 「해방지구」를 만드는 계획을 제시함.슈티코프대사는 이에 대해 그런 일은 매우 신중히 준비하고 상황을 분석한 연후에 실행에 옮겨야한다고 말함. ◇8월14일=김일성은 남조선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아울러 소련으로부터의 무기,기술지원 조속 실행을 요구.김은 옹진반도 점령문제를 제기함.그럴 경우 38도선에 걸친 수비지역이 줄어 적은 병력으로 국경을 수비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함.슈티코프대사는 김일성과의 이날 면담내용을 전문으로 보고하지 않고 모스크바 귀환후 직접 본부에 보고함. ◇8월27일=슈티코프는 8월12일,14일 김일성과의 면담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이 자리에서 슈티코프는 다음의 이유로 남침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제시함.첫째,남침시 미국이 개입할 것임.미국은 무기,탄약공급 뿐 아니라 일본군대까지 투입할수 있다.둘째,미국은 남침을 소련에 대한 적대적 선전용으로 이용할 것임.셋째,북한군은 남한군에 대해 확고한 전력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 슈티코프대사는 「해방지구」안과 옹진반도 점령은 군사적 관점에서 긍정 검토할만 하다는 견해를 밝힘. ◇9월3일=평양발.김일성은 자신의 개인비서겸 러시아어 통역인 문일을 임시대리대사 툰킨에게 보냄.문일은 옹진반도 점령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재차 문의.2주내,길게 잡아 2개월이면 남한전역을 점령할수 있다는 김일성의 뜻을 전달함. ◇9월11일=모스크바발.툰킨대리대사에게 본부의 지시.김일성을 가능한한 빨리 만나 다음 사항을 알아볼것.1,김일성이 남한군의 전투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2,남조선내 빨치산조직의 활동상황.3,남침시 남한국민들의 반응.4,미국의 대응.5,북한군 전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9월12일∼13일=툰킨대사 김일성·박헌영과 면담.김은 38도선 지역에서의 충돌경험을 근거로 남조선군의 전력을 약하다고 평가.김은 남한에 1천5백∼2천명의 빨치산이 활동중이라고 밝힘.박헌영은 빨치산의 기여가능성을 높게 평가.남한내 주요 건물,지역의 점령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다고 말함. ◇9월13일=김일성은 남한에 대해 압도적 무력우위를 확보하지 못해 일단 옹진반도 일부와 옹진반도 동쪽의 남조선영토 일부(해주까지)를 점령하는 국지전을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힘. 김은▲옹진반도에 위치한 남조선 2개여단을 패퇴시키고 ▲이 거점을공고히 한뒤 ▲이후 상황전개에 따라 확전여부를 결정한다는 3단계 전략을 제시.옹진반도 점령 뒤 남한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면 남쪽으로 추가공격을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점령지역에서 요새를 공고히 한다는 전략.김일성은 옹진반도 점령시 수비병력의 3분의 1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 이후 김일성은 스탈린과의 2차회담 및 모택동과의 회담을 통해 남침에 필요한 적극적인 군사,정치적 지원을 보장받으면서 전면전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 “국보급 고미술품”/신윤복화첩 되찾아왔다

    ◎동호인 모임 인우회,새달 3∼14일 덕원미술관서 전시/고려청자·「백자조문각병」 등 총 122점/문갑·책장 등 조선조 생활품도 선보여 세계 각급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점차 한국 미술품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등 해외에 유출됐던 우리의 귀중한 고 미술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자리가 동호인들의 노력으로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고 미술품 수집을 통해 결성된 40대후반의 고 미술품 동호인모임 인우회(회장 진이근)가 오는 6월3일부터 14일까지 덕원미술관(723­7771)에서 여는 「고미술정품전」이 그것으로 서화 57점,도자기 38점,민속공예품 27점이 선보인다. 전시품들은 인우회 회원들이 해외에서 수집한 귀환문화재가 대부분으로 혜원 신윤복(1768∼?)이 술을 마시고 그린 「취화첩」과 속화첩등 조선시대 회화와 고려청자·백자청화등 자기,그리고 문갑 책장등 조선시대 생활품이 다양하게 전시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미술품은 신윤복의 취화첩 6폭과 속화첩 10폭. 신윤복은 18세기 조선화단에독특한 화풍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연기를 써넣지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이번 전시에 나온 취화첩은 그림마다 시를 써놓고 곁에다 「술에취해 썼다」(취서)고 밝히고 있으며 작품에 「무진맹추」로 기록해 혜원이 54세때 그린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이와함께 속화첩 10폭도 현존하는 그의 풍속화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혜원풍속도」(간송미술관 소장)보다 먼저 것으로 추정돼 주목된다. 이 속화첩가운데는 혜원풍속도와 비슷한 화풍의 것도 4폭이나 들어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그보다 먼저 그린 혜원의 초기작이다. 이 속화첩에는 교미중인 개를 보고 있는 야릇한 모습의 부인과 처녀를 그린 것과 등을 든 소년을 앞세우고 세남녀가 밤 길을 가는 모습,기방에서 남녀가 얼싸안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등 에로틱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도자기는 고려시대 청자와 함께 18∼19세기의 백자청화가 주류를 이루어 청화의 원속에 점을 찍듯 그린 새와 각진 병 어깨 양쪽에 두마리의 다람쥐가 납작 엎드린 모습을 한 「백자청화원권조문각병」과 주둥이가 밖으로 휘어지면서 띠를 둘렀고 몸통에 원을 그려 그안에 매화를 간결히 처리해 여백의 공간과 원속의 매화가 아름답게 조화를 보이는 「백자청화매화문지통」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와함께 이층 책장과 주칠용문 3층장등도 실용성과 평민적인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목공예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 제3국 통해 귀순… 북트집 차단/“북벌목공 서울 오기까지” 경위

    ◎여행증명등 합법처리… 관련국 배치/향후 탈북자 귀순협상에 선례될듯/ 정부는 18일 시베리아의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 5명의 귀순에 대해 이들의 이름과 제3국을 거쳐 이날 하오 서울에 도착했다는 내용의 짤막한 보도문만을 발표했다. 그리고는 더이상의 공식 발표나 배경설명은 없다고 밝혔다.김포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기자회견조차 없이 곧바로 미리 정한 숙소로 떠나버렸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들의 신변안전 문제와 보안유지를 희망하는 관련국들의 뜻을 고려해 당장 모든 것을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이들의 귀순에 따른 일정한 틀이 정해지고 나면 그때가서 기자회견등을 통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탈출 경로및 경위와 관련국들과의 외교적 노력및 협의 내용등을 모두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겉보기에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더라도 이들이 귀순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숨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가장 걸리는 것은 러시아등 독립국가연합(CIS)과 북한과의 외교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은 옛 소련때 체결한 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인도조약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상태이다.사실 북한은 벌써 탈출 벌목공 가운데 40명이 「범죄인」이라고 주장,이들의 북한인도를 요구하고 나섰다.또 『시베리아 벌목공이 한국에 귀순하면 이를 납치행위로 간주하겠다』는 으름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회담에서 북한은 러시아측의 벌목공 귀순허용 방침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우리와 러시아가 비교적 조용히 이 일을 추진하려 하고 러시아가 처음부터 외교경로를 통해 한국언론의 자제를 당부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여기에 최청남씨등 이번에 귀순한 벌목공들은 영주권이나 거주권이 없는 사람들로 알려지고 있다.이 때문에 합법적인 절차를 위해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임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곧바로 우리나라로 오지 않고 제3국을 거쳐 귀순한 것으로 전해진다.해당국에 퍼부어질 북한의 불평을 최소화하기 위한 외교적 배려인 셈이다. 어쨌든 정부는 이들의 귀순을 계기로 시베리아 벌목공의 귀순을위한 새로운 선례와 지평을 열었다고 할수 있다. 그동안 북한 탈출자들의 귀순은 외교채널보다는 비공식적인 비밀통로에 의존해왔던 게 사실이다.최근 귀순한 여만철씨 가족등 중국을 거쳐 귀순하는 사례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날 귀순은 처음부터 외교적 경로를 통해 추진됐다. 이와 관련,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새정부의 인권외교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영삼대통령의 인도적 차원에서의 벌목공 수용방침을 뒷받침하고 앞으로 있을지 모를 대규모 귀순사태에 미리 대비해보자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서 협상을 맡은 외무부관계자들은 이번 귀순협상이 추가협상및 앞으로 있을 중국과의 협의에 대비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나아가 관계자들이 협상경위등을 철저히 비밀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는 이번 선례를 모범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홍순영외무부차관도 『멀지 않은 장래에 이번 귀순절차가 확고한 틀로 정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들 5명의 귀순은 외교적 귀순협상의 시험적 의미가 크다고 할수 있다.곧 마무리될 나머지 90여명 벌목공에 대한 추가협상및 북한과의 줄다리기,해당국과의 외교적 절충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틀이 마련될 것이고 귀순의 폭도 달라질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귀순자 지원대책을 보면/민간시설 집단수용… 사회적응 훈련/「정착돕기」에 기업등 참여로 고무적 18일 서울에 온 북한탈출 벌목공 1진 5명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정착하는데 필요한 훈련과 지원을 받는다. 정부는 이들을 정부 또는 민간의 관련시설에 함께 수용하면서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훈련을 시켜 사회에 내보낼 방침이다.이들은 그러나 지금까지 다른 귀순자가 받았던 별도의 대우는 받지 못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앞으로 오게 될 다른 북한벌목공들도 마찬가지다.오는 6월초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로 예정된 합동기자회견 때가 되면 귀순 북한노동자는 적어도 20명선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지난해 3월 제정된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은 귀순자에게 15평이하의 주택을 임대해주거나 구입해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돈으로 따지면 1천만∼3천만원이다.이와 함께 1천5백만∼2천5백만원의 정착금도 지급할 수 있다.구체적인 지원 내역은 보건사회부차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의 지원내용은 임의규정이다.법조문에 명시된 대로 지원을 해줄 수도 있고 안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정부가 이 법이 임의규정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상 그같은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암시나 같다.귀순을 원하는 북한벌목공의 숫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또 국내 생활보호대상자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넉넉하지 못한 재정형편이 북한벌목공들에게 앞서 귀순한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해주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올해 귀순북한동포 지원금으로 책정된 정부예산은 5억9천만원.지난해 5억5천1백만원보다 3천9백만원이 늘어났다.하지만 이는 귀순자를 10명미만으로 예상하고 정한 것이다.앞으로 우리나라에 올 북한벌목공이 적어도 두자리 숫자에 이를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지난 87년이후 아직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지원금만 해도 8억2천5백만원에 이른다.그렇다고 해서 별도로 재원을 염출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정부의 고민은 지난 4일 구성된 실무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실무대책위원회에는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경제기획원 외무부 내무부 법무부 보건사회부 노동부 공보처 안기부 경찰청등의 관계 실·국장들이 참석한다.귀순자들의 국내 수용과 사회적응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직업훈련과 취업알선,거주정착 지원대책등을 수립하고 관계법령의 정비등을 논의한다.위원회는 그동안 두차례의 회의에서 정부의 재정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북한벌목공들을 되도록 많이 데려올 수 있는 방법보다는 국내 정착을 위한 지원의 수준에 관심을 기울였다.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일정기간의 숙식과 함께 사회적응훈련과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일은 그동안 노하우가 축적돼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열쇠는 돈이다. 정부와 별도로 민간기업과 시민운동단체들도 북한벌목공들을 돕는데 열심이다. 자유총연맹은 벌써 회원들로부터 5천만원을 모금해 17일 대한적십자사에 맡겼다.대한적십자사도 자체적으로 본부및 각 시·도지사에 의연금품 접수창구를 열어놓고 있다.지난 10일 발족한 「탈북동포돕기운동본부」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앞으로 시민운동단체의 참여는 계속 확산될 전망이다.대기업들도 노동부의 직업교육 요청에 매우 호의적이다.이같은 여러 지원들이 원만하게 이뤄지면 그 다음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려는 귀순자들의 의지와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고 보여진다. ▷벌목공 귀순일지◁ ▲67년=소련­북한 임업협정 체결, 러시아 극동에 벌목장 설치. ▲91년 5월=소련,북한에 벌목장 설치근거인 임업협정 자동연장거부시사. ▲〃 10월=탈출벌목공 이정의씨 첫귀순. ▲〃 11월=벌목공 장기홍씨 귀순. ▲92년 12월=벌목공 강봉화씨 귀순. ▲93년 8∼12월=러시아,북한과의 임업협정 재계약 협상에서 벌목공 인권보장조항삽입을 요구,협상 난항으로 벌목작업 크게 위축.벌목공 탈출자 대거 증가. ▲94년 2월=벌목공 박창환씨 러시 아 선박으로 밀항,부산항으로 귀순.벌목공 최명학 김태범씨 위조 여권으로 러시아 항공을 통해 귀순. ▲〃 2월28일=정부 제1차 벌목공 대책회의. ▲〃 4월13일=김대통령 『탈출 벌목공 인도적 차원에서 수용』 발표. ▲〃 4월14일=한승주외무부장관 ,러시아 정부에 벌목공 귀환 협조요청. ▲〃 4월21일=최동진외무부1차 관보,모스크바 방문,러시아 정부와 벌목공 처리절차 협의. ▲〃 5월18일=벌목공 최정남등 5명 처음으로 공식절차 거쳐 서울 도착.
  • 러 비밀문서로 본 1950년 4∼6월 상황

    ◎모,“중·북 국경에 병력 추가배치”/5월15일/38선종심 10∼15㎞ 인민군배치 개시/6월12일/김일성,소에 “25일 전면전 불가피”/6월22일 한국전쟁 발발과 관련한 구소련의 비밀외교문서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50년4월10일=평양발.평양주재 이그나체프 소련임시대리대사가 본부에 보고한 내용.북경주재 북한대사 이주은이 모택동을 면담,김일성의 북경방문 요청을 전달했음.모는 이주은에게 『김일성이 만약 한국통일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면 이 회담은 비밀회담이 돼야한다.계획이 없다면 공식회담으로 하자』고 언급.모는 이어 『만약 제3차대전이 시작된다면 조선도 참여를 피할수 없을 것이다.북조선도 그에 대비한 병력준비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스탈린면담 후속 ◇50년4월25일=모스크바발 전문.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모스크바회담에서 스탈린은 49년 3월 김일성과 회담시 남한에 대해 방어적인 무력대응만 하라고 했던 입장을 바꿔 『국제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통일을 시작하겠다는 제의에 동의한다』고 밝혔다.그러나 만약 중국지도자들의 의견이 부정적이면 이 문제는 다시 토의한다고 첨언했다. ○미 두려울것 없다 ◇50년5월12일=평양발.슈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 김일성·박헌영과의 면담내용 보고.김일성은 면담에서 북경주재 북한대사의 발언을 인용,『모택동이 「한국통일은 오직 무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설명.김일성은 이어서 『모택동이 「미국이 한국과 같은 작은 영토 때문에 3차세계대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미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김은 또 5월 13일 모택동을 만나기 위해 북경을 방문할 계획임을 밝히고 ①남한 무력통일의사 전달 ②북조선과 중국간 조속한 시일내 무역협정체결문제 ③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스탈린과의 회담내용 보고등 방문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김일성은 또 인민군총사령관에게 6월 남한공격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다고 슈티코프대사에게 설명. ◇50년5월13일=김일성과 박헌영 북경에 도착.14일 모택동은 노신 주중국 소련대사를 면담,스탈린과 김일성간 모스크바회담내용을 보고받음.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남북한 상황에 대한 북한지도자들의 인식에 동의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최종결정은 필리포프동지(스탈린)의 의견을 들은 후에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개입 여부 질문 ◇50년5월15일=모택동은 김일성,박헌영과 상세한 의견교환.김일성은 이 자리에서 ①병력준비 및 집중 ②대남 평화통일 제의 ③남한이 이 평화통일제안 거부시 군사행동 시작등 3단계 통일추진계획을 설명.모택동은 이 계획을 승인한 뒤 몇가지 질문을 했다.우선 일본의 개입가능성을 물었다.김은 일본개입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고 대신 미국이 2만∼3만명의 군대를 파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모는 미군이 참전한다면 중국이 병력을 동원,북한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모택동은 소련은 미국과 38도선 분계선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소련군이 직접 군사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강조.하지만 중국은 그런 협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지원할수 있다고 말했다. 모는 북한이 무기·탄약지원을 필요로하는지 묻고 중국·북한국경지역으로 병력을 추가배치하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김일성은 소련의 무기·탄약지원약속을 이미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모의 제의를 거절. ○“공격시기 6월말” ◇50년5월16일=김일성,박헌영 평양으로 귀환.김은 슈티코프 소련대사와 만나 4월 모스크바회담에서 합의한 무기·기술지원 대부분이 평양에 도착했다고 말함.김은 새로 창설한 사단을 방문하고 창설작업이 6월말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슈티코프대사에게 설명.소련군사고문단 바실리예프장군이 인민군총사령관과 함께 김일성에게 공격최종계획 보고.김이 이를 승인.김은 공격시기를 6월말로 잡고 이를 미루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했다.그는 더이상 미루면 전쟁준비에 관한 정보가 남한에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고 둘째로 7월부터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슈티코프대사는 김일성을 면담한 뒤 바실리예프장군,포스트니코프장군과 잇따라 만나 6월공격이 좋다고 동의했다. ○3단계 작전수립 ◇50년6월16일=평양발.슈티코프대사는 인민군총사령관이 준비한 최종공격작전계획 본부에 보고.이 작전계획은 3단계로 나뉘어 있고 작전기간은 1개월.6월 12일 38도선을 따라 10∼15㎞지역에 걸쳐 인민군의 배치가 시작됨.각급지휘관 회의가 열리고 작전명령이 하달됨. ◇50년6월16일=북조선인민대의원회의 최고회의 남한의회에 평화통일 제의. ○국지전계획 폐기 ◇50년6월22일=슈티코프대사는 김일성과의 면담내용을 본부에 보고.김은 면담에서 남한이 인민군의 공격계획을 사전 입수,준비태세에 들어갔다고 주장.김은 그렇기 때문에 6월 25일 전전선에 걸쳐 군사행동을 개시하는 게 좋겠다고 설명.김은 옹진반도를 목표로 한 「국지전 계획」은 폐기한다고 말함. ◇50년6월22일=모스크바발.『통신보안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코드를 사용한 서신,전문교환을 일체 중단하라는 명령이 하달됨.
  • “박 목사가 탁씨 살해 사주”/검찰 추정

    ◎2중결혼 등 사생활폭로 겁내/“사탄 그냥 두다니…” 임홍천 부추겨/미 체류 박씨 조속송환 추진 검찰은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살해사건과 관련,대성교회 설립자 박윤식목사(66·미국 체류중)가 구속된 임홍천씨(26)에게 범행을 사주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지검 형사3부 김규헌검사는 18일 『박목사가 30여년간 본명과 가명으로 이중호적을 유지,전처 소생의 딸도 감추어두고 있었으며 경력도 대부분 허위임이 드러났다』면서 『지난 1월 숨진 탁씨가 이같은 사실을 알고 폭로하려하자 자신의 입지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박목사가 임씨를 사주,탁씨를 제거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목사의 전처인 김모씨(64)의 딸 박모씨(46)가 지난해 5월 호적조작및 이중결혼등 박목사의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박목사를 상대로 친생자관계 확인소송을 내고 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50억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2월22일 딸 박씨가 박목사의 측근인 신귀환장로에게 박목사의 살해교사 여부를 추궁하자 박목사가 신장로를 통해 딸 박씨의 입막음 용도로 3천만원을 건네준 사실도 밝혀졌다. 박목사는 북한에서 월남한뒤 김씨와 결혼,딸을 낳자 54년 「박철」이라는 가명으로 호적을 만들어 입적시켰다. 그뒤 기독교에 입신,목회자로 나선 박목사는 이들 모녀를 버리고 다른 여성과 재혼하면서 기왕의 호적은 그대로 두고 「박윤식」이라는 본명으로 60년 새호적을 만들어 30여년동안 이중호적자로 생활해왔다. 박목사의 딸 박씨는 당초 1백억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앞서 박목사는 2월5일 대성교회 목사·장로등 1백여명을 모아놓고 자신의 사생활을 고백한 뒤 다음날 임씨에게 『눈에 보이는 사탄을 두고도 가만히 있느냐』는 등의 말로 범행을 간접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임씨가 아직 진술을 번복하고 있지는 않으나 지금까지 드러난 보강증거만으로도 박목사의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보고 주미 한국대사관및 주한 미대사관과 협조,조속한 시일안에 박목사를 송환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 귀환 선원 소환/나포경위 조사/해경

    【부산=이기철기자】 부산해양경찰서는 17일 중국 경비정에 나포됐다가 귀항한 제27태흥호(선장 신현복·43)와 제2송광호(선장 박흥량·40)에 타고 있던 선장 신씨등 선원 전원을 불러 영해침범여부와 정확한 나포경위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선원 22명은 억류 16일만에 석방돼 중국 여서항을 출항,나포됐던 제27태흥호를 타고 이날 상오 6시 부산 남항에 귀항했다. 해경은 제27태흥호와 제2송광호가 중국측 조업수역을 침범한 사실이 밝혀지면 선장 신씨등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 중국나포 선원22명 오늘 부산항에 귀환/벌금 만3천불 합의

    【부산=이기철기자】 지난달 29일 중국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중국 경비정에 의해 나포된 제27태흥호와 제2송광호 선원 22명이 풀려나 17일 부산항으로 돌아 온다. 16일 수산청및 관계회사등에 따르면 이들 억류선원들은 한·중 양국간의 벌금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억류17일 만인 인 이날 석방돼 제27태흥호편으로 귀환중에 있으며 17일 하오 부산 남항으로 귀항할 예정이라는 것이다.중국측은 이들 선원 22명에 대해 영해침범과 불법조업등으로 벌금 10만달러를 요구했으나 그동안의 협상을 통해 1만3천7백28달러(한화 1천1백만원)에 합의,이날 석방됐다.
  • 미,“북핵 전용안돼야 3단계회담”

    ◎IAEA/「심의한 단계」땐 사찰단 조기 철수/북,“연료봉 교체 안전상 중단 불가”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들이 입회하지 않은 가운데 5메가와트 원자로의 연료교체를 시작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전달함으로써 북한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같은 북한측 통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IAEA사찰단이 입회하지 않은 가운데 연료봉을 교체할 경우 미·북한 대화를 중단할 것이라는 경고와는 달리 일단 사찰결과를 보고 미·북한 3단계회담 추진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이 전했다. 미국무부의 데이비드 존슨 대변인대행은 13일 미·북한 3단계회담전망에 대해 『IAEA로부터 (사찰에 관한)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 『핵안전조치의 계속성이 유지됐느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IAEA이며 우리가 다음 조치가 적절한지를 판단하기 전에 IAEA의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해 선핵사찰 후3단계회담 추진문제 결정방침을 시사했다. 【빈 AFP 연합】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4일 북한이 논란많은 원자로의 핵연료봉교체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만약 교체작업이 「심각한 단계」에 도달했을 경우 IAEA사찰단은 사찰을 단축,조기 귀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찰단은 15일 빈을 출발,17일중 북한 영변에 도착할 예정인데 북한이 5메가와트급 원자로의 연료봉교체를 위한 정상적인 준비조치들을 이제 막 착수했는지 또는 핵연료봉인을 제거하는등 교체작업이 이미 「심각한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데이비드 키드 IAEA대변인은 말했다. 키드대변인은 만약 북한측이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을 경우 IAEA사찰단은 빈으로 소환될 것이며 만약 작업이 정상적일 경우 사찰단의 업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외】 북한은 1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입회하지 않은 채 핵연료봉 교체작업을 시작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조하면서 안전상 이를 중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노심연료 교체작업」과 관련해 관영중앙통신과 가진 회견을 통해 『IAEA가 사찰단 파견을 회피하고 노심연료 교체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대책을 취해주지 않은 조건에서 우리(북)는 안전상 이유로 하여 부득불 해당 봉인들을 해체하고 노심연료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지금 일부에서 노심연료교체 작업을 중지하고 연기하면 입회문제가 풀릴수도 있다는 여론이 나돌고 있지만 그것은 시험원자로의 기술안전상 특성을 전혀 모른데서 나온 비현실적인 억측』이라고 말했다.
  • 미,아이티침공 가상훈련/미지 보도

    ◎민정이양 압력… 무력개입 강력 시사 【보스턴 AP 연합】 미국은 아이티 침공을 가상한 대규모 군훈련을 최근 완료했다고 보스턴 글로브지가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군 소식통들을 인용,2주간에 걸친 이번 가상 침공 훈련에는 해병대와 육군 특수부대를 비롯한 4만4천명의 병력과 전투기,헬리콥터,수륙양용정,그리고 잠수함 1척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글로브지는 카리브해에서 실시되는 미군의 훈련이 대부분 일상적인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익명의 군 소식통들이 『이번 훈련이 그 시기와 전술면에서 아이티를 염두에 두고 계획됐음을 알려왔다』고 전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한 백악관 관리는 12일 글로브지에 클린턴 정부가 아직 무력이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짓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한 군 소식통은 「기민한 공급자」란 암호명의 이번 작전이 『군사적 선택이 완전한 시험운영에 들어갔음을 시사하는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이번 작전이 지난 83년 그레나다 침공시 발생했던 것과 같은 조정상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는데 목적이있다면서 한편으로 아이티 군사정권으로 하여금 망명중인 민선 대통령을 귀환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는 노력이 될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군관계자 부인 이에 대해 미군관계자들은 이날 대규모 모의침공훈련을 실시한 사실은 시인했으나 이같은 훈련이 아이티침공을 겨냥한 것이라는 일부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 중단된 연대축제 서바이벌게임/김태균 사회부기자(현장)

    ◎“전쟁놀이할 시기 아니다” 복학생들 저지 『이렇게 중간에 막을거면 왜 처음부터 게임을 못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시행을 결정했으면 적법한 절차에 의해 해결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11일 하오 2시40분쯤 연세대내 소나무숲 「청송대」. 국방색 조끼를 입고 안면보호대까지 착용한 50여명의 학생들이 고학년으로 보이는 10여명의 학생들과 격렬한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많은 논란속에 시행여부가 불투명했던 연세대 「무악축제」중의 한 프로그램인 서바이벌게임이 예정대로 하오1시에 강행된 지 1시간30여분만에 중단된 것. 모의전쟁놀이인 서바이벌게임은 모의실탄이 발사되는 소총과 안면보호대등을 갖추고 고지 쟁탈전을 펼치는 게임으로 월남전 참전 미군들이 귀환후 고안해 낸 게임이다. 연세대에서는 이달초 총학생회가 모맥주회사의 전액협찬으로 이번 행사를 주최했다고 발표한 뒤부터 끊임없이 「전쟁놀이」라는 지적과 대학문화의 상업성과의 연계문제로 논란이 계속돼 왔었다. 서바이벌게임에 대한 문제제기를 가장먼저 들고 나온 「예비역 복학생협의회」의 김경태군(25·기계3)은 『국내외로 전쟁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얼마전 예비군훈련을 받던 대학생이 총기오발로 사망한 시점에서 대학내 전쟁놀이를 굳이 해야만 하는가』라고 반문하고 게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서바이벌게임 중단사태는 게임시작과 동시에 중앙도서관앞 민주광장에서 총학생회와 복학생협의회 대표자간의 토론이 끝난 뒤 총학생회측이 백기를 들고 게임중단을 선언한 직후 복학생들이 실력저지를 하면서 일어났다. 이번 무악축제기획을 담당했던 총학생회 하승주정책국장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재학생의 반발이 거세 물리적 충돌을 우려,부득이 게임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서바이벌게임에 참가했던 이수호군(19·법학1)은 『이미 시작된 행사를 실력으로 저지한 것은 민주적인 처사가 결코 아니다』고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이날의 사태는 단순한 전쟁놀이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는 80년대 민주화운동세대 대학생과 90년대 신세대 대학생간에 잠재해 있던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한 복학생의 말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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