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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배부회장 11일 방북…남북 친선농구대회 논의

    김홍배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이 28∼29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한 남녀 친선농구경기와 관련,11일 북한을 방문한다.이번 방북에는 박종천 현대프로농구단 코치가 동행할 예정이다. 현대농구단은 6일 “아산재단과 북한측의 협의가 원활하게 진행돼 김 부회장과 박 코치를 특사로 파견하게 됐다”고 밝혔다.김 부회장 일행은 10일 서울을 출발,베이징을 거쳐 11일 평양에 들어가 북한 농구관계자와 친선경기규정을 논의한 뒤 14일 돌아온다. 현대 남녀농구단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오는 27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남녀팀이 2차례씩 모두 4차례의 친선경기를 치른 뒤 30일 판문점을거쳐 귀환할 계획이다. 현대는 지난 7월 12일 방북할 예정이었으나 금강산관광객 민영미씨 억류사건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 통일대축전 참가 밀입국 6명…검거 조사

    서울지검 공안2부(朴允煥 부장검사)는 2일 평양에서 개최된 8·15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밀입북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연세대 휴학생황혜로(23·여)씨와 범민련 남측본부 대표 나창순(64)씨 등 6명이 이날 오후판문점을 통해 귀환함에 따라 검거해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귀한한 남측인사는 황씨와 나씨를 비롯해 서원철 범민련 청년대표,이성우 부산연합 의장,박기수·강형구 전국연합 대표단장 등 6명이다. 황씨는 지난 6월1일 입북한 뒤 한총련 대표 자격으로 8·15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및 범민족대회 등에 참가하고 김일성(金日成) 생가 등을 방문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씨 등 5명은 지난달 7일 중국 북경에서 북측인사와 만나 연방제 통일방안등에 대해 토론한 뒤 입북해 범민족대회에 참가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미르호 승무원 없이 궤도비행 순조

    [모스크바 이타르타스 연합] 러시아 유인 우주정거장 미르호가 승무원 없이자동항법으로 지구궤도를 비행한 지 28일로 만 하루가 지났으며 하루동안 미르호의 비행은 순조로웠다고 러시아 우주비행센터가 전했다. 미르호의 마지막 승무원 3명은 28일 오전 4시34분(한국시간 오전 9시34분)지구로 무사히 귀환했다. 지난 86년 발사돼 13년 이상 우주 공간에 머물면서 무중력 상태의 인체상태연구 등 우주실험을 포함, 27건의 주요 임무를 수행했던 미르호는 유인 우주정거장으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사실상 종료,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러시아 우주비행사 유리 바투린은 내년 1월께 미르호에 우주인이 한차례 더탑승, 재가동시키든지 아니면 태평양에 수장시키기 위한 작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미르호의 재가동을 위한 후원자가 나타날 경우,미르호는 1년 더가동될지도 모르나 러시아가 이같은 조치를 취할 것 같지는 않다고 바투린은전했다.
  • 김영환씨, 잠수정 타고 밀입북

    지난 2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주사파 이론 지침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金永煥·36)씨와 전 ‘말’지 기자 조유식(曺裕植·35)씨가 지난 91년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김일성 당시 주석을 면담하는 등보름이상 체류하다 귀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25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 89년 우연히 남파간첩 김철수(가명)와 접촉한 뒤 900만원과 무전기를 받고 공작활동에 가담했다.이들은 남파간첩의 제의에 따라 91년 5월 중순 경기도 강화군 건평리 해안가에서 북한호송안내원 2명의 인도를 받아 정박중인 반잠수정을 타고 황해도 해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체류하는 동안 김씨 등은 평양 근교의 ‘모란초대소’를 방문했으며 묘향산의 ‘김일성 별장’에서 1박2일동안 머물면서 김일성과 2차례 면담,남한내지하당을 결성하고 ‘김일성주체사상’을 확산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씨 등은 5월말∼6월초쯤 북한 남포항에서 공작선을 타고 서해 공해상을거쳐 제주도 남쪽 공해상까지 내려온 뒤 북한 호송 안내원의 인도로 서귀포로잠입해 서울로 되돌아왔다. 대남공작에 필요한 공작금 40만달러,권총 2정과 실탄,무전기 1대 등은 92년4월 쯤 고정간첩이 미리 마련해 둔 강화군 외포리의 ‘드보크’에서 찾아 권총 등은 숨기고 공작금은 공작활동에 사용했다. 이에 대해 김씨의 변호인단은 “현재 김씨는 조선노동당 가입이나 밀입북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4)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고·수(高隋)전쟁에서 승리한 고구려는 입지가 강화되었으며,통일중국의 패자는 당나라로 교체되었다.그러나 동아시아의 주도권과 교역권을 확보하기위해 당 역시 고구려와 운명을 건 대결을 할 수 밖에 없었다.두나라는 초기에는 탐색전을 겸하면서 소강상태를 유지했다.당은 산업을 발전시키고,대운하와 수도망 등을 활용,남북경제권을 통합하였고,남방무역을 활성화하여 경제력을 강화시켰다.그리고 통일중국을 패배시킨 고구려를 붕괴시켜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고자 하였다. 당나라는 수나라가 패한 원인을 분석한 후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우선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해 외곽 포위전선을 구축하였다.동돌궐과 힘겨운 싸움(630년)을 벌여 지배권을 확실히 하였다.토번(吐蕃:티베트)을 정벌(638년)하였고,서역 상도(商道:실크로드)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창국(高昌國)을 멸망시켰다(640년).뿐 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로 하여금 고구려를 배후에서 압박하게하는 외교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당에 우호적이던 백제는 고구려에 기울어졌다.신라는 당을 향해 출발하는 당항성(黨項城)이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공격을 받는 등 한반도 내에서 고립이 심해지자 친당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심지어는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 백제를 쳐줄 것을 부탁하였다.양국간에 이루어진 비밀 해양외교는 고구려가 황해중부 해상권을 잃어버린 후에 허용한 결과이다. 두 나라는 전쟁준비를 하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한 유화정책을 구사하였다. 당은 고구려에게 수나라의 포로들을 소환시키고,전승기념물인 경관(京觀)을해체할 것을 요구했다.이에 고구려는 당 사신의 방문을 허용하고,포로 1만명을 귀환시키는 등 요구를 들어주는 한편 전력을 강화하고 천리장성을 쌓으면서 전쟁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642년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으면서 양국 간에는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되었다.마침내 645년 4월,당군은 요하를 건넜고,당태종이이끄는 친정군과 고구려간에 대전쟁이 일어났다.개모성(蓋牟城:현재 요동성심양 근처)이 점령당하고,수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요동성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화공을 이용한 당의 공격에 함락당한채 1만명이 전사하고,4만명이 포로가 되었다.이어 백암성이 항복하고 안시성마저 포위되어 외롭게 당군을 맞아 분투했다.연개소문은 15만의 구원군을 보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두 나라의 대결은 3개월동안 치열했다. 이 전쟁은 해양질서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기본적으로 동아지중해의 패권과 교역권을 둘러싼 국제대전이란 점이다.고구려와 백제,왜 사이의 외교교섭은 물론이고 당과 신라,백제,왜 간의 교섭 또한 모두 해양을 매개로 이루어졌다.특히 당과 신라가 적극적 교섭을 한 것은 신라가 경기만을 장악했고,고구려의 수군이 황해 중부 해상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실제 전투에서도 해양전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당태종은 처음부터 해양전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있었다.신라사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쳐줄 것을 요구하자 당 태종은 수백척의 군선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를 기습할수 있다고 대답하였다.고구려와 전쟁을 준비하면서 400여척의 전선을 건조해 곡식을 해로로 운반하도록 하였다.또 수군을 전투에 동원,수륙양면작전을 실시했다. 평양성으로 직공할 목적으로 장량(張亮)은 500여척의 군함과 수군 4만명을거느리고 3월중순 동래항을 떠났다.점점히 이어진 묘도군도를 따라 항해하다가 4월말 요동반도 남단의 비사성에 닿았다.비사성은 요동반도 남단에서 금주만과 대련만을 관리하는 해양방어체제이며 산동반도와 한반도의 서해안을연결하던 연근해 항로의 해상관문이자 요동반도의 내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다. 그러나 사방이 절벽인 난공불락의 비사성도 5월초 함락당했다.이어 구효충(丘孝忠)의 수군함대는 요동반도의 해안을 따라 오고성 석성 등 고구려 해양방어군과 공방전을 벌이며 압록강 하구로 항진했다.본격적인 수군작전이 전개되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평양성이 배후를 기습당할 위험성이 커졌다. 그러나 안시성 공방전에서는 개전초와는 달리 당이 패배,9월18일 당태종이위급한 상황을 벗어나 본국으로 도주하면서 첫번째 고·당 전쟁은 고구려의승리로 막을 내렸다.645년의 국제대전은 또 한번 고구려의 승리로 끝이 난것이다.그후 당태종은 다시 군대를 파견하였는데,본격적인 수륙양면작전을계획했고,이를 위해 수많은 전선을 건조했다.647년 우진달(牛進達)이 이끄는 수군(水軍)이 요동반도 남부 해안에서 100여차례 전투를 벌였으며,해안방어의 중심 성이던 석성 등을 공격하였다.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개수영이 지휘했다는 아름답고 견고한 석성은 7월에 함락당하고 말았다.648년 설만철(薛萬徹)이 3만명의 병력과 누선 전함 등의 함대를 거느리고 출발해 박작성(泊灼城)을 공격하였다.압록강 하구에 있는 박작성은 주변에는 구련성 대행성 서안평성이 있으며,부수도인 오골성(烏骨城)과 국내성으로 접근하는 입구였다.이해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고신감(古神感)이 이끄는 당군 전함을 공격했다.당의 선박은 길이가 100척(약 30m),넓이가 반 정도 되는 큰배도 다수 있었다. 고구려의 선박은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에는 656년 고구려가 왜에 81명의 외교사절을 파견했다고 하였다.그렇다면 배 1척에 40∼50명이 탔음을알 수 있다.이 후에도 당은 대규모 해양전을 염두에 둔듯 대규모의 선박 건조사업을 추진했다.당고종은 고구려를 간헐적으로 공격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660년에 이르러 백제를 공격,동아지중해 3차전쟁인 삼국통일전쟁이 발발했다. 고·당(高唐)전쟁은 정치외교에서 해양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군수물자의 운반은 물론 함선을 이용한 원거리이동과 후방 상륙작전을 실시하여 전선의 범위를 확대하였다.바야흐로 동아지중해의 역사발전은 본격적 해양전의단계로 돌입한 것이었다. *고분서 나온 원통형 토기 학계의 새로운 '흥미거리’ 최근 전남 나주의 신촌리 9호분에서 원통(圓筒)형 토기가 다량 발굴되었다. 지난 5월부터 이 9호분을 발굴조사해 오던 문화재청의 국립문화재연구소는18일 무덤 꼭대기 가장자리와 무덤 옆비탈 성토층에서 32개체의 원통형 토기를 수습했다고 밝혔다.흔한 항아리 형이 아닌 난초분같은 원통형 토기는 이번 발굴이 처음은 아니다.나아가 이 9호분에서도 이미 원통형 토기가 수습된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신촌리 9호분의 원통형 토기 발굴을 많은 학자들은 아주 의미있게 여긴다.토기가 무덤에 ‘묻혀 있는’형식이 매우 유다르기 때문이다. 신촌리 9호분은 나주 반남(潘南)고분군에 속해 있는 옹관(甕棺·독)고분이다.반남고분군에는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옹관고분 30여기가 속해 있으며 9호분은 여기에서 두번째로 큰 무덤이다.네모반듯한 밑자락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방대형(方臺型)인 9호분(사적77호)은 일제시대인 1917∼1918년 일본인에 의해 첫 발굴되었는데 이때 금동관,금동신발,환두대도 등이 출토되었다.파편 상태로나마 원통형을 짐작할 수 있는 토기 7개체도 발굴됐다. 이같은 원통형 토기는 독에 시신을 넣는 옹관 형식을 버리고 석실을 도입한 광주,함평 등 이 지역의 새 묘제에서 보다 세련된 형태로 꾸준히 나타난다. 따라서 이번에 9호분에서 원통형 토기가 원형 그대로 발견된 것은 이곳의 토기가 마한,백제 지역인 영산강 유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입증해 준다. 하지만 이번 발굴에서 새롭게 확인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토기가 한국묘제 최초로 ‘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이제까지 우리 고대 묘에서 발굴되는 토기는 제사용으로 쓰여졌다가 그냥 방치된 것으로 무덤 주위 이곳저곳에 ‘무질서하게’흩어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그러나 이번 재발굴 조사에서 32개체의 원통형 토기들은 무덤의 북,동쪽 옆비탈 가운데를 빙 둘러가며 일렬로 묻혀 있는 형식이었다.이는 대형 무덤을 장식하기 위한 매장자들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 보이는 배열이다. 9호분의 토기를 포함한 영산강 유역의 원통형 토기는 기본 형태 측면에서일본 고분시대의 원통 하니와(埴輪) 토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하니와는 일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묘제에서장식용으로 사용돼 왔다.따라서 이번 신촌리 9호분 발굴은 형태와 기능 측면에서 두 토기의 유사성을 더욱 강력히 제시함으로써 이같은 주장에 무게를더해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신중한 자세다.좀 더 자세히 살피면 서로 다른 점이 더 많이 눈에 띤다고 강조한다.현재는 신촌리 9호분의 원통형 토기가 최초로 묘 장식용으로 쓰였다는 절대적 사실 하나만이 확실하고 그것만으로도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그 이상의 섣부른 유추는 금물이라고 입을 모으고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 황지우·백무산의 일치점 찾기

    황지우와 백무산.문학평론가 김명인이 문예중앙 가을호에 기고한 ‘세 갈래의 운명과 필연의 행로’는 두 사람의 ‘80년대 시인’이 변모해 온 과정을보여준다.특히 ‘전혀 다른 길’을 가던 두 사람이 90년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같은 병’을 얻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어 눈길을 끈다. 황지우는 서울대 출신으로 지난 83년 첫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뒤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가 됐다.백무산은 백봉석이라는 본명 대신 무산계급의 일원임을 강조하는 필명이다.공고를 졸업한뒤 조선·전기·금속노동자로 일했고,노동운동을 하면서 88년 첫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를 펴냈다. 김명인의 표현에 따르면 황지우는 그동안 시쓰는 일 만으로 살 수 없었던‘룸펜 인텔리’였던 반면 백무산은 이름처럼 ‘무산계급’의 일원이다.문단 뿐 아니라 80년대의 사회전체를 지배한 두개의 대표적 정서를 대표하는 시인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최근 나온 황지우의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와백무산의 ‘길은 광야의 것이다’를 보면 “두 시인의 오랜 시적 사유가 다다른 곳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지우는 80년대 초반의 정치적 낭만주의에서 중반 이후 종교적 낭만주의를 거쳐,90년대에 접어들면 일상의 긍정으로 이어진다.백무산은 80년대 후반의 혁명적이고 집단적인 낭만주의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종교적 낭만주의와 그 사상적 승화로 나아간다. 차이는 있지만 두사람이 함께 지녔던 정치적 낭만주의가 종교적 낭만주의,,구체적으로는 불교적 낭만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87년의 달라진 정치·사회적 상황이 계기가 됐다.불교적 사유는 자신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한다.이들이불교적 낭만주의로 간 것도 그만큼 80년대를 보내며 과도하게 큰 짐을 지고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90년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은 더욱 변모했다.황지우의 불교적 낭만주의는일상성의 힘에 의해 점차 모습을 잃어가는 반면 백무산의 그것은 사상적 차원으로 승화되어 갔다 같은 시대에,같은 고민을 한 평론가로서 김명인의 충고는 이렇다.황지우에게는 “눈앞에 전개되는 무한한 일상성의 늪 속에서 예리한 정치적 낭만주의의 상상력과 특유의 유격적 감수성을 갖고 현실에 귀환하라”는 것이다.백무산에게는 “힘들겠지만 다시 시정(市井)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권고했다.과거의 동지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다발의 사상이 아니라 살아남은 누군가의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동철기자
  • 민노총대표단 내주 소환

    서울지검 공안2부(朴允煥 부장검사)는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참석차 방북했다가 14일 귀환한 이갑용(李甲用)위원장 등 민주노총 대표와 선수단을 24일이나 25일쯤 소환,방북 행적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민주노총 대표단이 방북기간 중 평양만수대의 김일성 동상을 찾아헌화한 것과 관련,이적성 여부를 정밀조사한 뒤 혐의점이 드러나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표단이 7∼10일 안에 방북결과보고서를 통일원에 제출하는 절차가 끝나면 소환할 방침”이라면서 “김일성 동상에 헌화한 것은 정부가 승인한 방북 목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만일 북한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헌화로 확인되면 명백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주병철기자 bcjoo@
  • 민주노총대표단 방북

    민주노총 대표단의 방북 행적에 대해 통일부는 일단 문제삼기보다는 의미를부여하는 입장이다. 사법당국의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대표단이 방북 목적과 현행법을 위반했는지 속단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자세다.현재로선 현행법을 넘어서 처벌대상이 될 행동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논란이 일었던 김일성 동상 및 금수산기념궁전 방문도 “북한방문객이라면 모두 거쳐야 하는 의례적인수준”이었다고 정리했다. 14일 대표단의 판문점 귀환에 앞서 이뤄진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도 그 자체만으론 법적 처벌대상은 아니라고 말한다.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 북한을 방문했던 기업인들의 언행에 대한 처리와도 형평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분단이후 첫 노동단체간 체육교류가 정부허가 아래 이뤄졌다는 데더 큰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내년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서울 개최나 남북노동자 대토론회 개최 약속 등도 성과로 보고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줄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북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부와의 약속대로 14일 귀환한 것도 긍정 평가하고 있다.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몇몇 발언에 대해선 민주노총측이 북한언론 등에 의해 왜곡됐다고 부인하고 있다. “김정일 장군님 지도력”의 표현에 대해서도 이갑용(李甲用)위원장은 “대회 성사에 김정일의 결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북측이 설명,이에 감사를표시한 것”이라며 “지도력을 찬양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북조선 노동자들의 밥통이 더 크다’‘외세의 지배가 노골화되고있는 상황’ 등 이갑용 위원장 및 민주노총 간부들의 발언 보도 배경과 맥락 등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해명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노동자축구 대표팀 귀환

    ‘평양 남북노동자 축구대회’에 참가했던 민주노총 축구선수단 37명이 14일 오후 5시22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군사정전위원회 사이의군사분계선을 통과해 귀환했다. 방북대표단의 이갑용(李甲用)민주노총위원장은 도착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남북 산별 지역본부장들이 참여하는 ‘남북노동자 대토론회’를 갖자고북측에 제의해 합의했으며,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남북노동자 대토론회를 갖기에 앞서 북측과 실무협의를 갖기로했다.개최일시와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위원장은 “내년에 서울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갖자고 북측에 제의해김영남 상임위원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4일 오전 김위원장의 초청으로 대표단 일행 가운데 10명이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위원장과 1시간30분 동안 면담했다”면서 “우리 대표단은 남북 노동자 교류에 대한 북한 당국의 협조 등을 요구,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고 소개했다. 이위원장은 대표단이 당초 방북 목적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당국의 우려에 대해 “방북 목적대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면서 “체육교류를위해 방북한다는 정부와의 약속을 깬 적이 없으며,북측은 15일 귀환하기를원했지만 대표단이 강력 요구해 14일 귀환했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오늘의 눈] 민노총 訪北행적 논란

    북한을 방문중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표단의 행적을 놓고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선 친선경기를 하러간 사람들이 “노동자 단결,통일 운운하며 정치행동을 벌였다”며 질책의 목소리를 높인다. 북한의 정치 계산에 놀아나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만만찮다.북한은 12일노동자축구대회 이틀째 시합이 범민족대회의 축전행사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북측이 계획한 정치행사에 민주노총측이 동조·참여했다고 선전한 셈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노동자축구대회와 북한이 주최하는 범민족대회와는 별도라는 사실은 북한측과 합의된 사항”이라며 순수 민간교류임을 강조하고있다.이번 행사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정부도 범민족대회 참가를 불법화했다. 북한이 이번 행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지는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중앙방송은 “남한 당국이 시대 흐름에 동참하기는 고사하고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주장했다.노동자축구대회를 통일 분위기와 연계시켜 남한을 비난하는 계기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내용이다. 외신 등을 통해 흘러들어 오는 이갑용 위원장의 발언도 그렇다.“외세의 지배와 간섭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노동자들이 앞장서 자주평화통일 실현을 위해 투쟁하자”는 등의 발언은 자제했으면 좋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하지만 이같은 발언을 두고 민주노총이 북한을 고무·찬양했다고 단정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같다.통일부도 민주노총의 행적을 비난하기 보다는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민주노총의 방북 의미는 가볍지 않다.노동단체가 정부의 허가를 얻어 평양서 북한팀과 화기애애하게 운동시합을 벌이며 우의를 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서해 남북교전,북한의 미사일발사 강행 위협 등으로 남북관계가 주춤거리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선 더욱더 그렇다.하지만 미묘한 시점에 방북한 대표단의 언행에는 좀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법 당국은 민주노총이 귀환하는 대로 조사를 벌여 행적의 적법성 여부를따질 것이라 한다.실정법을 위반했다면 ‘적절한 조치’를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번 행사가 법 적용과는 별도로 북한을 함께 끌고 나기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 숙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swlee@ * '살신성인'과 '정치 제스처'의 차이신구범(愼久範)축협회장의 할복사건을 대하는 여론은 다양하다.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이 아쉽다” “BJR(배째라)식의 극단적 의사표출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원론적이거나 비판적인 반응에서부터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조직 보호를 위해 살신성인한 것 아니냐”고 다소 동정적인 사람도 있다.그런가 하면 내년 총선 등을 거론,“고도의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냐”며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 신 회장은 농림부에서 잔뼈가 굵고 제주도지사를 지낸 행정전문가이다.정책결정에 있어서 합목적성과 절차의 합리성,나아가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을 추구하는 행정원리를 몸소 터득했을 법하다.그런 그가 극단적 수단을 택한 것은 혹시라도 농·축협 통합을 골자로 한 농업협동조합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할 경우 할복하겠다는 취임 공약의 준수를 위해 강박관념을 가졌기 때문일까. 농업협동조합법안은 역대 정권에서 논란이 많았던 사안이고,현 정부 들어서서도 객관적인 검증 절차와 과정을 충분히 거친 사안이다.지난해 4월 이후 200여차례에 걸친 이해당사자와 전문가,각계 단체 등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취임 한달을 넘은 신 회장도 이를 몰랐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신 회장의 ‘돌출행동’은 그의 성품과도 무관치 않다.많은 사람들은 그의추진력과 투사적 기질을 인정한다.6공 시절 세도가인 현역 의원과 맞서다가타의로 외유를 하거나 검찰 수사에 맞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할복 당일에는 흉기를 미리 종이에 싸 준비하는가 하면 부인에게 두 차례 전화를 하는 면도 보여줬다. 신 회장은 자해라는 수단을 결행,축협통합문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는 성공한 것 같다.동정 여론을 얻는 데도 성과를 거뒀는지는 모른다.그러나 개혁입법을 요구하는 시대적 대세와 상황을 역류시킬 만한 효과를 봤다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국민들은 지난해이후 계속되고 있는 국가적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기업과 금융기관,공공기관,노동계 등 각계각층이 저마다 내는 ‘자기 목소리’를 수없이 목도해 왔다.그러나 국민의 눈은 성숙하다.신 회장의 행동을 보며 뉴스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박수를 치는 국민은 적다.‘일’과 ‘사건’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아쉽다. psh@
  • 옐친, 러총리 스테파신 전격 경질

    [모스크바외신종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9일 세르게이 스테파신총리를 전격 해임하고 후임에 블라디미르 푸틴 국가안보위 서기 겸 연방보안국(FSB) 국장(46)을 임명,국가두마(하원)에 승인을 요청했다. 이로써 지난 18개월간 옐친 대통령은 총리를 4번이나 경질했다. 불과 3개월간 재직했던 스테파신 전 총리는 해임이 발표될 당시 체첸 회교반군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을 방문한 뒤 모스크바로 막 귀환한 상태였다. 오는 12월 총선과 내년 중반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총리의전격 해임은 또다른 정치적 위기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 정부 유람선 관광재개 허용 안팎

    오는 5일부터 금강산 관광선이 다시 뜬다.지난 6월20일 관광객 민영미(閔泳美)씨 억류사태로 중단된 금강산사업이 45일 만에 재개되는 셈이다. 정부는 1일 관광 재개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금강산 뱃길의 ‘결정적 암초’는 제거됐다는 게 통일부의 판단이다. 지난달 30일 밤 북한과 현대간에 관광세칙과 신변안전보장 합의서가 타결되면서 내린 잠정결론이었다.우리 관광객의 일방적 억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란 기대이기도 했다.이같은 판단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양측 사업주체간에 관광세칙이 합의됐다는 사실이다.즉 북한 아태평화위 산하 금강산관광총회사와 우리측 현대아산간에 맺은 ‘금강산 관광시 준수사항에 관한 합의서’가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북측이 일방적으로 디밀었던 세칙안중 이른바 ‘독소조항’이 삭제됐다.‘공화국(북한)에 반대하는 행위를 했을 때는 북한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규정을 뺀 것이다. 둘째,우리측이 분쟁조정에 신속히 개입하는 길을 텄다.각기 3∼4명이 참여하는 ‘금강산관광사업조정위’ 구성에 합의했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예상되는 분쟁을 제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다.이로써관광객의 신변안전보장이 한층 강화됐다는 게 정부나 현대측의 시각이다. 물론 타결내용은 당초 정부의 목표에는 미달한다.정부는 분쟁발생시 당국의 즉각 개입을 관철시킬 방침이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사업조정위’에 당국자 참여는 끝내 배제됐다.북측이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이다. 분쟁조정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즉 문제발언시 관광객 당일 추방(관광선으로 귀환),엄중한 사건일 경우 조정위에서 협의·처리하되,원만히 처리되지 않을 경우 조정위와 (북측)해당기관이 협의·처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북한당국의 ‘자의적 처리’의 불씨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현 단계에선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게 당국자들의 반문이었다.앞으로 당국간 ‘신변안전보장특별위’ 구성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다만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서 서해 교전 이후 꽉 막혔던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열릴것으로도 기대된다.각급 남북회담 등의 재개도 조심스레 모색될것으로 보인다. 금강산사업은 외화가 아쉬운 북측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남북경협사업이다.이번 신변안전보장 협상에서도 확인됐다.정부는 관광중단으로 보류했던 7월분관광대가 800만달러의 대북 송금을 허용했다.여기엔 우리측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북한측에 미사일 재발사 기도 등 대결구도를 버리고 화해협력 노선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구본영기자 kby7@
  • 沿海州의 카레이스키(상)-한민족이 다시 모인다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프리모르스키’는 우리말로 ‘바다에 접해있는 땅’,곧 연해주(沿海州)이다.이곳은 카레이스키(고려인)의 고향이며,그들의 한(恨)과 정(情)이 배어있는 땅이다. 비극과 고난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한신대와 청강문화산업대의 학생 48명과 교수 3명은 지난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 동안 이곳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폈다.고려인촌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우리와 한 핏줄인 그들의 삶과 애환,정서를 이해하자는 취지였다. 동행취재기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19일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재래시장.사람이 붐빌 만큼 제법 활기에 차 있었다.지난해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 침체된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고려인 동행자가 귀띔했다.수백여개의 점포가 밀집한 시장 골목에는 우리와 비슷한 얼굴들이 꽤 많았다.우리 말을 건네니 금방 알아듣는다.고려인 아니면 조선족이다. 같은 날 오후 ‘르노크’라 불리는 ‘알촘’의 한 시장.시장의 러시아 상인들이 낯선 복장의 기자를 경계하는 듯 싶더니 이내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시장의 장(長)인 김 에릭씨(48)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때문이다.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김씨는 90년 초반에 이곳에 와 10년이 채 안돼 성공을 했다.김씨는 요즘 중앙아시아에 있는 고려인 300여가구를 이곳으로 이주시키는 일을기획하고 있다. 1937년 소련정부가 고려인 18만여명을 집단으로 쫓아낸 것과는 비교할 수없는 숫자이지만 이 일이 성사되면 최초의 집단 재이주가 된다.강제 이주 이전 우수리스크와 알촘 등에는 고려인이 많이 모여 살았다.그 뒤로 반세기 가까이 이곳에서는 고려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아니다.귀환자 대부분은 다시 빈손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19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되돌아온 4만여명 고려인의 상당수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극도의 빈곤을 겪어내야 한다.김 에릭씨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상당수는 현지의 경제난에다 재산처분마저 어려워 연해주로 올 차비도 없다”고 전했다. 몇해 전부터 연해주에는 고려인 뿐 아니라 하얼빈·연변 등지의 조선족과한국기업들도 찾아들고 있다.이따금 탄광과 벌목지,농장 등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도 눈에 띈다.사할린 교포들도 적지 않게 살고 있다. 조선족들에게 연해주는 매력있는 장사터이다.우스리스크 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장사를 하고 있는 최용일(崔龍日·19·중국 심양)군은 “러시아의 경제 파탄으로 물자가 부족해진 뒤 중국의 값싼 제품을 가져다 팔면 큰 이익이 난다는 소문이 퍼져 조선족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한국의 기업들은 연해주의 광활한 농토를 차세기 식량자원의 공급원으로 보고,이를 확보하기위해 애쓰고 있다. 동북아지역 여러 국가의 국적을 가진 한민족이 모인 고난의 땅이 바로 연해주인 것이다. 연해주 이지운기자 jj@ *연해주 한민족 이주사 연해주 이주사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생활고에 시달리던 농민과정부에 불만을 가진 양반 등이 1811년 홍경래의 난 이후 연해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공식적으로는 1863년에 한인 13가구가 두만강에 가까운‘포시예트’에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1869년부터 함경도 지방에 3년 내리 흉년이 닥치면서 대대적인 이동이 시작됐다.1937년 강제 이주 이전까지 대략 18만명의 고려인이 연해주에 뿌리를 내렸다.옛 소련정부는 그해 9∼12월거의 모든 고려인을 전격적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 “69년 달탐험 무모”…승무원 우주미아 될뻔

    [브뤼셀 연합]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아폴로 11호 승무원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은 영원한 우주의 미아가 될뻔했다. 이들은 달착륙선이 이륙하는 데 실패할 경우 지구와의 교신마저 끊긴 채 죽어가도록 짜여진 계획에 따라 모험을 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의 BBC방송이 10일 보도했다. BBC 방송은 미국립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를 통해 당시 미국립우주항공국(NASA)은 달착륙선이 달표면에서 재이륙할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으며 우주인들은 사전에 이를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NASA와 미국 정부가 마련한 긴급상황 대처 계획은 달착륙선이 이륙에 실패할 경우 지구와의 통신을 차단하고 우주인들을 그대로 방치해 숨이 끊어지거나 자살토록하고 있다.물론 구조 계획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평화롭게 달 탐사에 나선 우주인들이 달에서평화롭게 영면토록 운명이 정해졌다.용감한 우주인들은 구조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희생에 인류의 희망이 있다는 점을알고 있다”는 내용의 애도 연설문을 전세계 시청자들 앞에서 읽어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은 22시간 동안 머문 뒤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고 이후 닉슨의 우울한 연설문은 30년동안 비밀에 봉해졌다. 또 닉슨은 우울한 연설문을 읽는 대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우주인들을 축하해 줄 수 있었다.
  • 아폴로11호 달 착륙 30주년-2017년엔 민간인 달여행 가능

    “이것은 하나의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를 위해서는 거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20일(한국시각 7월21일 오전 5시17분) 수많은 지구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디면서 ‘아폴로 계획’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3명의 우주인을 태운 아폴로 11호 착륙선 ‘이글(독수리)’호가 달에 착륙한지 올해로 30년이 지났다.20세기의 대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인류의 달 착륙 3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달착륙경쟁은 미·소 냉전의 산물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만 우주과학 기술의 최강자는 러시아(옛 소련)였다.57년 10월 세계 최초로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한 러시아는 61년 4월 12일 인간을 처음으로 우주로 보냈다.당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최악이었다.가장 큰 충격을받은 나라는 당연히 미국이었다.가가린의 최초 우주비행 성공과 거의 동시에 쿠바의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미국 CIA의 작전이 실패로 끝났다.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는 그해 5월 “60년대가 끝나기 전 달에 인간을 보내고 이들을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선언했다.달 정복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62년 유인 달착륙계획(아폴로 계획)이 수립되고 NASA를 중심으로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면서 미국의 우주기술은 급성장했다.미국보다 2년 늦게러시아는 본격적인 달 착륙계획(루나계획)을 수립해 65년 인류역사상 최초의우주 유영에 성공했지만 69년 2월 로켓실험에서 실패,선두를 빼앗기고 만다. 드디어 69년 7월16일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아폴로 11호가 발사됐다.4일 뒤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은 ‘고요의 바다’에 성조기를 꼽았다.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했음을 알리는순간이었다.미국은 아폴로계획에 24억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러시아가 루나계획에 투자한 액수는 4억5,000만달러에 불과했다. ■아폴로 계획,그 이후 아폴로 11호 이후에도 아폴로 12호가 ‘폭풍의 바다’를,14호가 ‘프라마우 고지’를 찾았다.15호에 탔던 우주비행사들은 전기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겼다.아폴로 계획은 72년 12월 17호 승무원인유진 셔먼과 해리슨 잭 슈미트가 마지막으로 달에 착륙한 것을 끝으로 조용히 막을 내렸다. 아폴로 이후 미국의 우주계획은 침체됐다.소련과 우주경쟁을 위한 사령탑으로서 무제한의 예산과 인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NASA는 실속없는 우주사업에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기까지 했다.우주예산을 삭감할 수 밖에 없는상황에서 NASA는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수송시스템,즉 현재의 우주왕복선과우주 스테이션 ‘스카이 랩(sky lab)계획을 추진했다.달에 다시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수립한 나라는 없다.엄청난 비용은 물론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달여행은 언제나 가능할까? 달 여행을 하려면 자급자족이 가능한 영구 달기지가 우선 건설돼야 한다.지난 97년 11월 ‘더 퓨쳐리스트’에 실린 조지워싱턴대학의 예측에 따르면 영구 달기지가 건설되는 시기를 2028년,그 가능성은 55%였다. 한편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루나리소스사는 민간차원의 달여행을 구현하는것을 목적으로 94년 8월 ‘아르테미스 계획’(http:///www.asi.org)을 세우고 회원권 판매에 들어갔다.이 계획에 따르면 늦어도 9년안에 시험비행을 하고 2017년쯤 50인승 왕복 우주선 50대가 마련돼 여행이 가능하다.이때쯤엔또 187개의 객실을 갖춘 루나시티호텔이 달에 들어선다.1주일 여행비용은 약9만6,000달러(1억여원). 함혜리기자 lotus@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운토 투루넨 핀란드 대사

    운토 투루넨 주한 핀란드대사는 핀란드의 유럽연합(EU)의장국 취임을 맞아2일 대한매일과 인터뷰를 갖고 한국의 EU시장 진출과 양국관계증진방안등에대해 입장을 피력했다.투루넨 대사는 “핀란드가 한국상품의 EU시장 진출에관문역할을 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EU의장국 취임을 축하한다.의장국은 어떻게결정되고 주역할은 무엇인가. 15개 회원국이 6개월씩 순번제로 의장직을 맡는다.전임 의장국은 독일이었고 오는 12월1일부터는 포르투갈이 의장국을 맡게된다.의장국이 되면 대외적으로 EU를 대표하고 EU내 실무행정의 총책임자가 된다.한마디로 EU대통령인셈이다. ■현재 EU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현안은 무엇인가. 단기과제로는 코소보 사태 해결이다.발칸 복구는 이 지역뿐 아니라 유럽,전세계의 안정에 긴요하다.EU는 발칸복구를 위해 핵심역할을 수행해야한다.아직은 난민 귀환문제,도처에 매설된 지뢰등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코소보 평화협상을 성공시키는 데 마르티 아티사리 핀란드대통령이 매우중요한 역할을 했다.인구 500만명에 불과한 소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국제적 외교현안 해결에 중심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한데. 유고공습 말기 평화협상 중재자로 나토와 러시아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는데 아티사리 대통령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유고측도 아티사리대통령과는 협상을 할 수 있다고 승락했다.아티사리대통령은 나미비아 내전,가까이는 보스니아내전,유고전 초기에 협상중재자로 국제적인 명성을얻은 인물이다.이런 개인적인 역량이 그같은 역할을 가능케했다.차기 EU의장국 대통령이라는 점도 기여를 했다고 본다. ■한국·핀란드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한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일본에 이어핀란드의 세번째 교역상대국이다.핀란드는 외교,경제,문화등 모든 면에서 한국과 만족스런 관계를 계속하고있다.97년,98년 무역규모가 줄어들었으나 금년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6~7개 대학이 교수,학생교환등 활발한 교류를 하고있고 헬싱키대에는 한국어학과가개설돼있기도 하다.EU는 미국에 이어 한국의 두번째 교역상대국이다.한국기업들은 EU를 잘 이해하고있고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고있다.금년에는 EU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판매가 급신장을 보이고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지금 구조조정작업을 한창 진행중이다.핀란드는 수년전 경제위기를 겪으며 성공적인 구조조정작업을 이룩한 나라로 알려져있다.한국의 구조조정작업을 어떻게 보는지. 핀란드는 92년에 시작해 3~4년간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재정과다 지출,과소비,과도한 외자도입등으로 인한 기업 및 은행의 부실이 주원인이었다.여기다 유럽전체의 불경기와 주요 무역상대국인 소련의 해체,경제난이 겹쳐 사태를 악화시켰다.우리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금융권의 대대적인구조조정 작업을 벌였다.이 개혁작업이 성공해 지금은 연 4~5%의 성장률을기록하고있다.한국의 개혁작업은 핀란드의 개혁작업과 흡사한 길을 걷는 것같다.매우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본다. ■핀란드의 구조조정이 성공한 핵심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의 슬림화다.업종을 10개 이상씩 거느리던 기업들이 한두개의 핵심분야로사업을 집중시켰다.예를들어 대표적인 기업인 노키아(Nokia)의 경우 자동차 타이어,제지,전자제품,고무등에 걸쳐있던 업종을텔레코뮤니케이션 하나로 통합시켜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기업으로 만들었다.다른 기업들도 마찬기지다.정부는 기업합병등의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고기업합병등의 결정은 전적으로 해당기업이 주도했다.정부는 금융지원과 구조조정과정에서 생기는 대규모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주력했다. ■앞으로 두나라 관계 증진을 위해 힘써야할 부분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유통이다.정보가 잘 흘러야 외교도 잘되고 문화,상품,인적교류도 잘 이루어진다.미술,음악분야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야하고 관광객도 많이 오가도록 서로 힘써야한다. 이기동기자 yeekd@
  • 귀가한 閔씨 일문일답“너무 무서웠다”

    29일 오전 집으로 돌아온 민영미(閔泳美·35)씨는 북한에 억류된 경위와 악몽같은 6일간의 억류 생활에 대해 털어놓았다.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환경감시원에게 귀순을 권유했나 그런 적은 없다.친절하게 대답해주길래 서로 왕래하면 좋겠다는 뜻의 말을 했다. 억류된 과정은 산에서 내려오는데 다른 여자 안내원이 불러 길에서 벌금용지에 ‘잘못을 시인한다’는 내용을 적고 주위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벌금100달러를 냈다.관광증을 돌려받은 뒤 관광버스를 타고 장전항 세관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북측 사람이 ‘조사할 것이 있다’면서 관광증을 도로 압수하고 컨테이너 건물로 데리고 가 조사를 시작했다. 가혹행위는 없었나 조사 중 간혹 언성을 높인 일은 있었지만 가혹행위는없었다.너무 무서워 식사도 못하고 잠도 못잤다.수면제를 복용해도 5∼10분밖에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자주 졸도하자 아예 의사가 옆에 붙어있었다. 언제 귀환하는 것을 알았나 25일 오전 갑자기 북한 사람들의 태도가 부드러워지면서 ‘몸은 괜찮냐,먹고 싶은 것은 없냐’고 물어서돌아가는 것을직감했다.오후에는 만두국을 끓여와 먹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소감은 말할 수 없이 기쁘다.나를 조사한 북한측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지만 금강산에 다시 한번 갔으면 좋겠다. 전영우기자 ywchun@
  • 北 “죽이진 않는다” 협박·회유 반복

    정부합동조사반은 서울 중앙병원에서 민영미(閔泳美)씨를 상대로 억류사건의 경위와 과정,북측의 조사행태 등을 조사해 29일 발표했다.다음은 조사결과 요지. 억류 경위 6월20일 오후 2시쯤 금강산 구룡폭포를 관광하던 중 북측 환경감시원에게 “빨리 통일이 되어서 우리가 금강산에 오듯이 선생님도 남한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귀순자 전철우·김용이 TV프로에도 나오고 잘 살아요” 등의발언을 하다가 북측에 억류. 조사 상황 컨테이너 조사(20일 저녁 8시쯤부터 22일 오후 1시까지) 조사관 3명이 들어와 귀순 유도발언을 시인하는 내용의 사죄문 작성을 강요했으나 민씨는 ‘단순히 말을 걸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3회 제출. 당시 조사관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왔느냐.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3년이고10년이고 맛을 봐야 한다”고 위협하면서 서류뭉치로 책상을 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으나 폭행은 없었음. 민씨는 21일 이후 하루종일 조사를 받은 후 밤 10시쯤 극도의 불안감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조치와 함께 링거주사를 맞고 22일 새벽 1시20분까지수면. 22일 아침 6시30분쯤 다시 쓰러져 응급처치를 받은 뒤 오전 중 본인 및 남편의 학·경력,직장,가족사항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았고 북측은 이 장면을 비디오로 쵤영. 금강산여관 조사(22일 오후 1시∼25일 귀환까지) 객실은 7∼8평 크기로 침대 2개,의자 4개,냉장고와 TV 등이 비치.식사는 매끼 쌀밥에 반찬 5가지를제공했으나 거의 먹지 못했다.호칭은 ‘민영미씨,영미씨,동무,아줌마’ 등을 번갈아 사용.22일 저녁 여관 인근의 온천을 다녀왔고 23∼24일까지 평양에서 왔다는 조사관 2명이 번갈아 조사. 사죄문 작성 경위 23일 오전 8시쯤 조사관 2명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실을 이야기하자.핏줄을 나눈 조선사람인데 죽이기는 하겠느냐”,“더 이상말하지 않으면 법대로 처리하겠다.애기 아빠와 아들이 보고싶지 않느냐”며하루종일 회유와 협박을 반복.24일에도 사죄문을 자발적으로 작성할 것을 요구했으나 민씨가 거절. 점심 후 심신이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조사관이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면 집에 갈 수있다”고 회유.오후 5시쯤 조사관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죄문(A4 2장반 분량)을 주면서 일방적으로 “사죄문 초안이니 읽어보고 베껴쓰라”고 강요.민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작성,제출. 25일 오전 7시쯤 조사관 2명이 ‘사죄문’이 잘 되었다면서 사죄문 말미에작성일자와 작성자를 쓰게 한 뒤 무인,서명토록 요구. 석방 과정 25일 오후 5시30분쯤 북측은 책상 위에 야자수 화분과 물컵을 비치,사죄문낭독장면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오후 5시35분부터 6시까지 민씨에게 사죄문낭독연습을 시킨 후 낭독장면,무인 및 서명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6시15분 온정리 소재 현대 보건소로 이동,인계됐고 현대측 의사의 검진을 받은 후 저녁 8시 현대측 선박에 승선. 정리 오일만기자 oilman@
  • 閔씨 귀환이후 한반도기류

    베이징 남북 차관급 1차회담이 끝나고 금강산 관광중 억류된 민영미씨가 돌아온 이후 남북관계는 ‘조정기’에 들어섰다고 보여진다.각종 남북협상에몇가지 중요한 고비가 남아 있어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전체의 정치·군사적 풍향이 달라질 전망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서해 교전사건,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베이징회담에서 북한측의 지연전술 등으로 ‘상호주의 강화’ 필요성이 대두됐다.북한측에 요구할 것은분명히 한다는 생각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대북 경협 확대의 전제로투자보장협정 등 당국간 보장책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우리가 북한측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지렛대는 비료 추가 제공,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대북 경협추진 등이다.지난 26일부터 재개될 예정이던 비료 10만t 추가지원은 이미 유보되어 있다.민영미씨가 귀환했음에도 금강산관광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7월1일 차관급회담에서 이산가족문제의 상당한 진전이 있고,현대와 북측간의 금강산관광객안전보장조치가 조기에 확실히 마련된다면 비료지원과 금강산관광이 재개될 것이다.반대의 경우 남북 긴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군사적 측면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주목된다.따라서 이번주는 남북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느냐,아니면 악화되느냐의 갈림길이다. 북한은 베이징 차관급회담 등에서 ‘시간끌기 전술’을 펴면서도 판 자체는 깨려 하지 않고 있다.군부 등의 강경입장을 고려,내부 입장을 조정하고는있지만 경제적 실리 등을 감안할 때 남북관계를 무작정 긴장국면으로만 몰고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일단 우세하다. 우리측이 북한의 지연전술이나 억지에 넌더리를 내면서도 뭔가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오는 7월1일 차관급 2차회담에서는 북측도나름대로 이산가족 카드를 내밀 것이라는 뜻이다.금강산관광객 신변안전보장 문제도 빠르면 이번주중 매듭지어질 공산이 크다. 북한이 서해 교전사태로 입은 피해와 이에 따른 내부적 충격을 가라앉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있다.그러나 북측은 우리측과의 베이징 비공개 접촉 과정에서 비료만 지원해주면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통크게,폭넓게,전반적으로” 임하겠다는 언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표현법 자체는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당총비서겸 국방위원장의‘전매특허’격이다.‘통큰 정치’(廣幅 정치)는 ‘인덕(仁德)정치’와 함께 북한당국이 김정일의 지도력을 찬양할 때 갖다 붙이는 수사다. 때문에 김당총비서가 이산가족문제나 금강산 관광,남북 경협 등에 있어 뭔가 복안을 가지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7월1일 차관급회담과 금강산 관광객 안전보장 협상 등에서 북측이 ‘현실’과 ‘통큰 정치’를 어떤 식으로접합시킬지 주목된다. 구본영기자 kby7@
  • [사설] 상식 벗어난 北의 형태

    21일 베이징(北京)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남북차관급회담이 북측의 일방적연기로 하루 늦게 개최됐다.당초 지원키로 약속한 비료 10만t 가운데 2만2,000t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풍랑으로 인한 천재(天災) 때문에 수송이 늦어졌고,또 무상으로 지원받는 입장에서 큰소리까지 치는 북의 행태는 한마디로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또한 북한은 20일 금강산 관광에 나선 주부관광객 민영미(閔永美)씨를 억류하는 사태까지 야기시킴으로써 금강산관광사업이 중대위기를 맞고있다. 북한은 북측 환경감시원을 상대로 남한 귀순공작을 했다는 설명이다.설령민씨가 남한이 잘산다는 좀 지나친 선전을 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억류까지 하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다.북한은 현대그룹과 금강산관광사업에 착수하면서 합의한 관광객의 신변안전보장각서를 정면 위반한 것이다.더욱이 북한은우리 정부가 훈련된 전문 귀순공작원까지 투입하고 있다는 모략과 함께 정부차원의 사과까지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정치공세까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관련,정부가 민씨의 귀환시까지 금강산관광선의 출항을 전면 중지키로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물론 북한의 이같은 상식밖의 행태는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서해에서무력도발을 자행하고 베이징 남북차관급회담을 연기시킨 저의는 23일 북·미회담에서 명분과 실리를 함께 얻으려는 회담전략으로 풀이된다.남북차관급회담의 주요 목적인 남북이산가족문제의 성과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함께 갖고 있다.또 금강산 관광객을 억류하고,비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포용정책을 무력화(無力化)하고 이로 인한 남한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극대화시켜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도식적 대남전략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하루빨리 이성을 되찾아 남북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무엇보다 베이징 남북차관급회담에서 이산가족을 위한 인도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그리고 억류된 주부관광객을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줘야 하며,금강산관광이 재개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금강산관광사업의 중단은 북측의 손실이더 크다는 점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금강산관광사업이 진행된 지난 7개월 동안 1억5,000만달러라는 거액이 북한에 돌아갔고 이는 지난해 북한 경제의 최대 수입원이었다. 남북간 화해·협력이 이뤄지고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려면 스스로 반성해서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정부는 또 북한 전략에 능동적으로 대처함과 아울러일관성있는 대북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유도하는 협상력을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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