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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전세계에 한국인이 단 한명도 살지 않으면서 동네 이름에 ‘코리아’가 붙은 그런 곳이 있다. 현지에서는 일명 ‘코리아 사파르(Korea Sefer)’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파르는 현지어로 ‘지역’ 정도의 의미. 아디스 아바바 시내의 아라트 키로라는 곳에서 벨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케벨레(Kebele) 5’에서 내리면 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케벨레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상의 ‘동(洞)’에 해당된다. 코리아 사파르는 케벨레 5에서 케벨레 6에 걸쳐 있다. 마을은 아주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엉성한 양철지붕에 우리나라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유엔 참전국 16개국 중 하나였던 에티오피아의 참전 용사들이 전쟁이 끝나 본국으로 귀환한 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현재 약 3만명 정도가 살고 있고 이 중에 참전용사 가족들은 약 6천명 정도다. 1970년대 사회주의 체제의 돌입으로 한국전 당시 북한을 상대로 싸웠던 이들은 모진 시련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안에 모스크가 하나 있지만 이슬람교(에티오피아 전체 인구 절반이 믿고 있다.) 신자는 약 5% 정도고, 90% 이상이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다. 가난을 탓하지 않는 정교회 교리 때문인지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은 아주 가난하다. 마을 안에 공공 시설이라고는 한국 정부가 지어 준 Hibret Firre 초등학교가 전부이다. 학령기의 아이들 중 13.4%만 이곳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우리한테도 원조를 받고 있는 에티오피아지만 1950년대만 해도 황제시대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가 파견한 참전용사들은 ‘깍뉴(Kagnew)’라고 불리던 황제의 근위병들이었다. 당시 총 6,037명이 파병되었으며, 253개의 주요 전장에서 단 한 명의 포로 없이 총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치료시설이 열악해 부상자들은 대부분 유엔의 군용헬기에 실려 일본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951년 4월 13일 제 1차 깍뉴부대(깍뉴부대는 1965년 3월 1일 본국으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총 5차에 나누어 파병되었다.)를 싣고 에티오피아를 출발한 배는 중간에 그리스, 태국, 필리핀 병사들을 태운 후, 같은 해 5월 6일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간단한 훈련을 마치고 이들은 바로 그 해 8월부터 전장에 투입되어 크고 작은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하며 혁혁한 공훈을 세운다. 이례적인 것은 전시 중에 깍뉴부대원들이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다는 것이다. 상상이 가지 않지만 전쟁 중일 때는 고아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면서 끝까지 함께했다는 것이다. 휴전 후 돌보던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이들을 해외로 입양하는 일도 추진했다고 하는데 그리스나 다른 참전국에는 군인들을 따라간 고아들이 많았는데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따라간 고아들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깍뉴부대는 1년을 주기로 교체되었는데 참전용사와 결혼까지 간 한국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차 혹은 휴가를 즐기러 일본을 방문했던 병사들과 일본여인들과의 로맨스는 지금도 노래로 불려지고 있다. 이 노래는 같은 리듬으로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에티오피아에서는 암하릭어로 불려지고 있다. 제목은 Japanwan Wodije. 한국전 참전용사들 중에 전쟁이 끝난 후 콩고 내전에 참가했던 병사들도 많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콩고 빌리지’는 남아있지 않고 에티오피아에는 ‘코리안 빌리지’만 남아 있다. 현재 한국의 월드비전을 비롯해 몇 개의 NGO 단체가 유아 혹은 여성을 위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현재 국제협력단(KOICA)에서 초등학교를 지어준 후 이 곳에 3명의 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가 아디스 아바바와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으로 똑 같은 모양의 참전용사회관을 춘천과 아디스 아바바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디스 아바바의 경우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무용지물이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총장이 이 곳에 관심을 표명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변화의 조짐이 없다.       <윤오순>
  • [K-리그] K리그 별들의 귀환 “우리가 돌풍의 핵”

    프로축구 K-리그의 인기가 식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2005년 K-리그는 ‘천재’ 박주영의 출현으로 사상 최다 관중(287만 3351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경기수가 늘었던 지난해에는 245만 5484명으로 떨어졌다. 위기 의식이 반영됐는지 14개 팀은 저마다 화끈한 공격 축구를 천명하고 나섰다. 리그 운영 방식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별들의 복귀가 유난히 많아 르네상스가 오는 것 아니냐며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25년째를 맞은 K-리그는 새달 3일 지난해 정규리그챔피언 성남과 FA컵 우승팀 전남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9개월 동안 254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에 돌입한다. ‘돌아온 별,K-리그 르네상스 이끈다.’ 2007년 K-리그의 화두는 ‘반지의 제왕’ 안정환(31·삼성)과 ‘앙팡 테리블’ 고종수(29·대전)의 귀환이다. 안정환과 고종수는 1990년대 말 이동국(28·미들즈브러)과 함께 K-리그 중흥의 기폭제가 된 대형 스타였다. 특히 이들 세 명이 함께 뛴 1998∼2000년 3년 동안 국내 축구 열기는 유례없이 뜨거웠다.1996년 데뷔한 고종수는 98년 최우수선수(MVP)가 됐고, 이동국은 98년 신인왕, 이동국과 함께 프로에 데뷔한 안정환은 99년 MVP였다. 이동국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떠났지만 이와 동시에 안정환과 고종수가 돌아와 K-리그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한·일월드컵에 이어 독일월드컵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솜씨를 뽐낸 안정환은 그러나,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로 떨어진 뒤스부르크를 떠나 빅리그 잔류를 모색하다 6개월 이상 무적 상태가 됐다. 실전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표팀에서 제외되는 수모도 맛봤다. 지난달 수원 유니폼을 입으며 7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사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 시절을 제외하면 안정환의 해외 진출은 그다지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5개 팀을 전전하며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소속팀 훈련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안정환의 화려한 부활이 기대되는 이유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안정환 영입으로 공격진이 강해져 미드필더와 수비진이 더 안정적으로 가동될 수 있게 됐다.”면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안정환이 멋지게 부활해야 한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천재로 각광받다가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했으나 적응에 실패, 내리막을 걸었던 고종수의 귀환은 더욱 극적이다.2005년 전남에서 방출되며 지난해엔 무적 상태로 그라운드를 밟아보지도 못했다. 이제 대전에 입단한 뒤 올해가 축구 인생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체중을 줄이며 훈련에 매진했다. 오른쪽 무릎 십자 인대 부위에 이상징후가 있어 따로 재활 훈련을 했지만 정밀 검사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명났다. 최윤겸 대전 감독은 “패싱이나 킥, 드리블 능력은 예전 그대로”라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체력과 자신감 회복”이라고 했다. 고종수의 복귀전은 새달 11일 울산과 치르는 홈 개막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시 이라크 증파안 ‘일진일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의회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추가파병안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주말 상원과 하원에서 벌어진 이라크 파병 반대 결의안 투표에서는 승패가 엇갈렸다. 그러나 민주당 주도의 의회는 부시의 이라크 추가파병을 막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미 하원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추가파병안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찬성 246, 반대 182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공화당 의원들도 17명이나 가세한 이 결의안이 부시 대통령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겨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은 “하원의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의회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군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전면 지원하고 유연성을 발휘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원에서는 17일 민주당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하려 했으나 결국 투표는 이뤄지지 못했다. 상원은 이날 공화당이 표결에 계속 반대하자 먼저 결의안 표결 처리 여부를 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56대 반대 34. 그러나 표결 처리를 위해서는 60표가 필요했기 때문에 부결된 것이다. 민주당은 비록 상원에서는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공화당 의원들도 일부 동참했기 때문에 명분을 얻었다고 보고 이라크 추가 파병을 막기 위한 입법활동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우선 부시 대통령에게 전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이라크 침공의 길을 열어준 2002년 미 의회 결의안을 개정하자는 아이디어가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 당시 의회가 부시 대통령에게 부여한 ‘무제한의 권한’에 제한을 가해 내전상황에 끼어드는 것을 미군의 임무에서 제외하자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 소속인 칼 레빈 상원 군사위원장은 18일 폭스뉴스 회견에서 “미군의 임무를 전투가 아닌 지원 임무로 한정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손질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2008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중진 조 바이든 상원의원도 CBS 인터뷰에서 2002년 부여된 권한을 폐기, 대통령 권한을 재조정하고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임무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이같은 아이디어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그것이 그대로 추인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의회 내의 반 이라크전 분위기를 앞장서 이끌었던 민주당의 존 머서 하원의원은 일단 파병됐다가 귀국한 장병들이 1년 안에 다시 파병되지 못하도록 제안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병력 부족으로 귀환 뒤 곧바로 재파병되는 병사들의 숫자가 많은 데 착안한 것이다. 머서 의원은 “이라크 및 아프간전에 소요되는 예산 930억달러를 승인하는 예산안에 관련 조항을 넣겠다.”고 밝혔다.dawn@seoul.co.kr
  • 귀환어부 최욱일씨 “아들 세배 받으려니 설렙니다”

    “아들 세배 받으려고 32년을 기다렸습네다.” 1975년 납북돼 지난해 북한을 탈출, 올초 고국으로 돌아온 ‘귀환어부’ 최욱일(68)씨는 설 명절을 앞두고 아들의 세배를 받는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 있다. 가족들과 재회한 이후 몰라보게 건강해진 최씨는 “한달여 만에 8㎏이나 몸무게가 늘어 58㎏이 됐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부인 양영자(67)씨도 같이 웃으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건 처음 먹어보는데.’라고 하는 게 안쓰러워 이것저것 만들어 주다 보니 살이 많이 찌게 됐나 보다.”고 말했다. 최씨 부부는 이번 설을 아들 내외, 손자(7)와 함께 보낼 생각이다. 납북 당시 생후 7개월이던 아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진짜 우리 아버지가 맞느냐.”고 물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들과 화투도 치며 설을 보낼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면서 “아들 가족과 설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북에 두고 온 가족 얘기에 이르자 가슴이 아픈 듯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 안 아프면 사람이 아니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과 생활하며 많이 건강해졌지만 북에서 중국으로 건너갈 때 다친 머리가 아직도 욱신욱신 아프다는 최씨는 말소된 주민등록이 회복되지 않아 병원에 다니지 못하는 등 불편함이 많다. 부인 양씨는 “피랍 당시(1975년)엔 납북사실조차 하소연하기 힘들어 서둘러 사망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무엇보다 주민등록증부터 빨리 발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 연합뉴스
  • 정태기 한겨레신문 사장 사임

    한겨레신문 정태기 사장이 13일 사임했다. 이에 따라 한겨레는 새 대표이사 선출 때까지 사규에 따라 김효순 편집인이 사장 대행을 맡아 회사를 운영한다. 정 사장은 전날 곽병찬 편집국장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가 부결된 데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 이날 오전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앞서 한겨레 편집국 소속 기자들은 전날 정 사장이 지명한 곽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를 부결시켰다. 이번 투표는 오귀환 편집국장의 자진 사퇴에 따른 것이지만 한겨레 내부에서는 정 사장 재신임과 연결짓는 분위기였다.지난달 30일 정 사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자 오 국장 등 간부들이 동반사퇴했고, 정 사장은 지난 5일 사의를 번복하면서 오 국장 사표만 수리해 편집국 기자들이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금명간 사내선거를 통해 신임 대표이사 후보자를 선출한 뒤 오는 3월31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킨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에바 가드너 몸매 지닌 리 마빈”

    김혜수(사진 왼쪽)가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로부터 “에바 가드너(오른쪽)의 몸매를 가진 리 마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개봉한 국내 영화 ‘타짜’ 리뷰 기사에서 정 마담 역을 연기한 김혜수를 이처럼 평가했다. 주인공 고니 역의 조승우는 “젊은 시절 존 쿠삭의, 세련되지 않았지만 쿨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라고 소개했다.에바 가드너는 1950∼1960년대를 주름잡았던 미모의 할리우드 여배우이며, 리 마빈은 ‘지옥의 사자’ ‘킬러’ ‘델타 포스’ 등에 출연했으며 196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이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두 배우를 비유해 김혜수의 미모와 연기력을 인정한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도박, 혼돈스러운 인생’이란 제목의 리뷰 기사에서 “‘타짜(Tazza)’는 최고의 도박사를 일컫는 말로, 최동훈 감독은 감각적인 에너지와 무모하리만큼 낙관적인 젊은 날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이 기사를 쓴 매트조럴 사이츠는 고니와 정 마담의 관계를 장 뤼크 고다르의 초기작품에서 보이는 캐릭터와 유사하게 보았다. 또한 ‘타짜’는 은근한 유머와 낭만적인 그리움, 충격적인 폭력장면을 담고 있지만, 김혜수가 올누드로 등장해 고니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본능적이고 육감적인 장면’이자 “이 영화의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동훈 감독에 대해서는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귀환’으로 각본상을 수상한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팝아트적 영상을 선보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재미를 위해서 ‘타짜’에 베팅한다면, 절대 잃지 않을 것”이란 말로 ‘타짜’에 대한 추천을 대신했다.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봄 메이크업 트렌드] 고전·현대미의 감각적 조화

    올봄 랑콤이 제안하는 메이크업은 아기천사의 귀환을 모티브로 한 ‘팝 셰럽(Pop Cherub)’이다. 랑콤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 구치 웨스트만 빌이 제안하는 팝 셰럽은 로맨틱한 고전미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보여주는 컬렉션으로 사랑스러운 엔젤룩을 표방하고 있다. 계속되는 ‘쌩얼’ 열풍에 맞춰 얼굴 표현은 더욱 투명하고 창백하게 연출한다. 메탈릭 소재의 유행에 따라 눈매에는 은은하게 반짝이는 펄감을 주며, 볼륨감 있는 선홍빛 입술 연출이 포인트다. 아기천사와 같은 피부 표현을 위해 글로시한 질감의 제품들을 사용하면 좋다.
  • 美 최신 항모 ‘레이건호’ 日로 출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 해군의 최신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CVN-76)’가 한반도를 비롯해 서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해군 7함대에 배속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기지를 27일 출발,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고 미 해군이 28일 밝혔다. 레이건호는 그동안 일본 요코스카항을 중심으로 활동해오다가 정비에 들어갈 예정인 항공모함 키티호크호를 대신해 작전을 수행하고 서태평양 지역에서 각종 훈련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또 키티호크호의 정비를 마치는 대로 귀환할 계획이다. 키티호크호는 6개월 동안 정비하게 된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호는 제14항공모함비행단의 전투기 및 공격기 70∼80대, 조기경보기, 전자전지원기를 탑재하게 된다. 또 제7구축함 전대를 동행하고 임무에 들어가 서태평양지역 미 해군의 전력이 상당 정도 증강될 것으로 분석된다. 항공모함 중 가장 큰 규모인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레이건호는 지난해 7월까지 걸프만과 서태평양에서 ‘첫 임무’를 마친 뒤 6개월만에 다시 작전에 투입되게 됐다. 레이건호는 미 해군의 현역 항모 12척 중 가장 최근인 2003년에 취역한 니미츠급 항모(초대형 핵추진 항모)로, 항공기 80여대를 싣고 한번의 연료 보급으로 20년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레이건호의 한반도 인근 배치는 최근 F-117 스텔스 전폭기 비행대대의 한반도 배치 및 F-22 최신예 전투기의 일본 배치에 뒤이어 나온 것이어서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 움직임 및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편 레이건호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해군함대 대응작전계획(FRP)에 따라 서태평양지역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며 함대 대응작전계획은 지구상의 어떤 임무에도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능력을 미군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dawn@seoul.co.kr
  • “강제북송 국군포로 가족 1명 북한 보위부 조사받다 凍死”

    지난해 10월 중국 선양 한국총영사관의 보호 아래 민박집에 머물다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로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 9명 중 1명이 북한 보위부 조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대북 소식통은 “북송 가족 중 노인 1명이 보위부에서 한달 전 동사(凍死)했다.”면서 “현재 나머지 가족의 행방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보위부 조사과정에서 숨졌다는 노인이 국군포로의 부인으로 보인다고 전했으나, 사망자가 고령으로 애초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보위부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등 정확한 사인은 불투명하다.또 “가족 전원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지는 않았다.”면서 “일부 노약자는 집으로 돌려보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12일 중국 공안에 체포된 지 하루 만에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 9명은 2명,3명,4명 등 세 가족으로 이뤄졌다.한편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해 “선양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국군포로나 납북자,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귀환에 도움이 될지는 논의해봐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이에 대해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정부는 국군포로 가족의 신병을 인계 받은 후 북송된 것에 책임을 지고 중국과 북한에 이들의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고 반발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주말탐방] 밀리터리 마니아의 세계

    [주말탐방] 밀리터리 마니아의 세계

    남성 트리오 ‘별 셋’이 부르던 드라마 ‘전우’의 주제가를 기억하는가. 빅 모로 주연의 외화물 ‘전투’는 또 어떤가. 어느새 맘 속으로 멜로디 한 소절을 흥얼거리고 있다면 당신 역시 밀리터리 마니아의 기질이 농후한 사람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라고? 흥분할 것까진 없다. 활 잘 쏘고 말 잘 타는 동이족의 후예 아닌가. 전쟁 좋아하는 유전자 한쌍쯤 가지고 있다고 해서 크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이번 주말탐방에서는 총과 무기, 군(軍)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밀리터리 마니아의 세계를 엿보았다. 마니아(mania). 말 그대로 ‘미친’ 사람들이다. 병리학적 ‘광인’과 다른 점은 ‘미침(狂)’의 대상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선 ‘노빠’,‘황빠’ 등 21세기 벽두에 등장한 ‘토종 신인류’와도 유사하다. 하지만 ‘∼빠’라는 호명에 담긴 경멸과 혐오감이 마니아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속물적 다수와 구별되려는 엘리트 집단의 오만과 권력의지가 묻어난다고 할까. ●“우린 미쳤다. 그래서 왜?” 밀리터리 마니아는 어떤가. 기실 이들은 마니아 세계에서도 이단적인 비주류에 속했다. 각종 총기류와 무기 제원을 줄줄 읊어대고, 본드냄새 나는 골방에 처박혀 플라스틱 병기를 조립하거나, 교외의 야산과 폐건물을 찾아 ‘패거리 총질’을 일삼는 이들에게서 바로크 마니아, 누벨바그 마니아에서와 같은 고상함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도 차갑기만 했다. 범속한 ‘교양인’들이 볼 때 이들은 총과 무기에 정신 팔린 ‘철부지 전쟁광’이거나 군 가산점 폐지 주장에 발끈해 여자대학 홈페이지에 사이버 테러나 일삼는 ‘마초집단’이었고, 치안을 걱정하는 경찰에겐 고성능 ‘유사총기’로 무장하고 언제든 은행으로 돌진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집단’일 뿐이었다. 결국 이들은 새천년의 문턱에 들어서도록 ‘문화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채 언더그라운드를 포복하는 슬픈 운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변했다. 마니아 특유의 ‘전투적’ 학습열 덕에 유통되는 정보의 양과 질은 놀랄 만큼 깊고 풍부해졌고, 마니아 출신 평론가들의 약진에 군과 전문가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인터넷의 등장은 이들이 고립된 ‘오타쿠’로 전락하는 것을 막았다. 온라인을 매개로 한 활발한 오프 활동이 이들로 하여금 음습한 지하세계를 탈출해 지상으로 귀환할 수 있는 비상구를 제공한 것이다. ●“서바이벌은 ‘애국 스포츠’” 중견 제약회사 과장인 강양수(34)씨도 인터넷을 통해 서바이벌 세계에 입문한 경우다.4년전 컴퓨터 슈팅게임을 즐기다 자연스럽게 총기로 관심이 옮아왔다. 인터넷에서 총기류를 검색하다 동호회를 알게 됐고 지금은 한달에 1∼2차례 필드를 찾는다.‘총 가지고 노는 어른’이란 주변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서바이벌이 골프나 산악자전거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서바이벌 게임이 체력은 물론 국방에 대한 관심도 키울 수 있는 ‘애국 스포츠’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바이벌 게임용 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건숍’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영업중인 건숍은 30여곳. 이 가운데 10여곳이 서울에 있다. 서울 충무로에서 건숍을 운영하는 최범석(35)씨는 “인터넷 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진 2002년을 전후로 시장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면서 “대형 매장은 연 매출이 10억원을 넘는다.”고 귀띔했다. 매장에서 취급하는 총은 대부분 일제 전동총이다. 외양과 무게만으로는 진짜 총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 총알은 흔히 알려진 페인트탄이 아닌 6㎜ 비비탄을 쓴다. 페인트탄총은 모양이 투박한 데다 게임을 할 경우 박진감도 떨어져 이벤트 업체가 아니면 좀체 사용하지 않는다. ●무기제원? 나한테 물어봐 이들 서바이벌 게이머 대부분은 열정적 모형총 수집가이거나 해박한 총기 지식의 소유자들이다. 이범석(34)씨가 그런 경우다. 서바이벌 마니아가 되기 전 그는 인터넷 군사무기 카페에서 필명을 날리던 총기 전문가였다. 아직까지 세계 각국에서 만든 총기 대부분에 대해 개발과정과 제원은 물론 장단점까지 줄줄 꿰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명동 헌책방을 드나들며 ‘건’같은 일본 군사잡지들을 닥치는 대로 사모았고 대학에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플라스틱 모형 총기를 조립하는 데 몽땅 쏟아부은 덕분이다. 그는 “과거 외국잡지 등으로 제약됐던 정보습득 채널이 인터넷 덕분에 놀랄 만큼 다양화됐다.”면서 “요즘은 중학생이라도 맘만 먹으면 미국에서 개발중인 신형 소총의 제원과 가격을 찾아 한국 사이트에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상을 보여주는 것이 인터넷의 밀리터리 카페들이다.3년전 만들어진 네이버의 밀리터리 카페는 회원수가 7만에 육박한다. 하루 평균 300개 정도 올라오는 글마다 댓글이 빼곡하다. 글의 종류도 단순한 국방기사 스크랩을 넘어 동호회 활동에서 외국 군사 사이트와 무기회사 홈페이지에 실린 최신 무기정보까지 다양하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가 운영하는 ‘유용원의 군사세계’는 방문자 수가 4900만명을 넘어섰다. 일일 평균 접속자가 5만명으로 국방부와 군 공식 홈페이지 방문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문화 소비자 아닌 정책 생산자를 꿈꾼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의 활동이 단순한 정보의 교환과 소비단계를 넘어 국방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실제 각종 밀리터리 사이트에서는 국방개혁이나 차기 전투기 사업, 해군의 이지스함 도입 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첨예한 논쟁이 벌어진다. 홈페이지를 통해 국방예산 증액이나 차세대 무기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오프라인 상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기도 한다.2005년 일군의 마니아들이 벌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 지지 시위가 대표적이다. 서명·시위 같은 압력행사 단계를 넘어 정책 입안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활동을 통한 개입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주변에서는 국정감사나 예산안 심의 때 보좌진으로 들어가 국방관료들을 능가하는 전문지식으로 현안들을 송곳처럼 파고드는 일급 마니아들이 여럿 있다. 마니아 출신으로 의원 비서관 경험도 있는 A씨는 “군 출신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현안들이 많기 때문에 ‘시즌’이 되면 여러 경로를 통해 질의서 작성 의뢰가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음악이나 영화 등 과거 마니아의 영역에 속했던 고급정보들이 인터넷의 활성화로 인해 교양지식 수준으로 평준화되고 있다.”면서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마니아 집단과 달리 전문·세분화를 통해 마니아적 정통성을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분야가 밀리터리 영역”이라고 평가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밀리터리 마니아 계보학 1990년대 초반 국내에 도입된 서바이벌 게임은 10년새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나 각종 청소년 캠프의 단골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군에서도 예비군 훈련과목의 일환으로 적극 장려되고 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게이머들은 밀리터리 마니아 중에서도 소수그룹에 속한다. 필드에 나가기 위해선 적잖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데다, 게임에 사용되는 총의 가격이 30만∼80만원에 이르는 등 금전적 부담도 적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서바이벌 마니아는 30∼40대 직장인들이 많고, 그 수도 2만명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적으로 밀리터리 마니아는 서바이벌 마니아와 무기모형의 제작과 수집을 즐기는 플라모델 마니아, 군사지식을 수집·탐구하는 지식 마니아층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는 시·공간적 제약이 따르지 않고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군사지식 마니아층의 저변이 가장 넓다. 연령대도 10대에서 장년층까지 다양하다. 관심사도 다양해 총기 정보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차·장갑차·야포 등 지상군 무기에 관심있는 사람, 함정이나 항공기가 주 관심사인 사람들이 있다. 일각에선 이들이 군의 2급비밀 사항인 육상·해상전력을 정확히 알고 있고, 공군전력도 80% 이상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글의 게시와 열람이 자유로운 군사지식 사이트가 사실상 정보의 ‘허브’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등장한 플라모델 마니아는 1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주로 제작하는 것은 전차와 전투기, 함정이다. 이 가운데 축소비율이 크고 부품이 많은 함정류가 가장 제작이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이밖에 군장 마니아, 전쟁영화 마니아, 전략 시뮬레이션과 슈팅 게임 마니아 등이 밀리터리 마니아의 범주에 들어간다. 마니아 세계에선 플라모델 마니아→군사지식 마니아→서바이벌 마니아로 이어지는 단계를 통상적인 마니아의 진화경로로 본다. 물론 변수는 ‘나이’와 ‘돈’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사설] 국군포로가족 死地로 내몬 선양 총영사관

    ‘제 살 길은 할아버지 고향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잡히면 7∼15년 감옥생활을 해야 합니다.(한국에서)열심히 살겠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중국으로 탈북한 뒤 지난 7월 선양의 한국 총영사관에 편지를 보내 구원의 손길을 호소한, 이 국군포로의 손자 L씨가 끝내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고 한다. 동행한 다른 국군포로 가족 8명과 함께 선양 총영사관이 소개한 민박집에 숨어 있다 중국 공안에 붙들려 북송됐다는 것이다. 사선을 넘어 가까스로 정부 품에 안긴 이들을 선양 총영사관은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사지로 끌려가도록 했는지 개탄스럽다. 국군포로 가족들은 영사관의 어떤 도움도 못 받고, 민박집 주인 신고로 붙잡혔다. 총영사관측이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을 돕던 납북자가족모임에 따르면 우리 외교당국은 이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에도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제 귀환한 납북어민 최욱일씨도 선양 총영사관측의 냉대로 한때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정부가 탈북자들을 보호할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탈북자 문제의 민감성이나 정부의 고충을 안다. 중국·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내놓고 탈북자 대책을 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무성의한 자세까지 면책되지는 않는다. 지난 5월 선양 영사관에 머물던 탈북자 4명이 담을 넘어 미국 영사관으로 진입한 일이나 주중 대사관 여직원이 국군포로 장무환씨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것은 외교 당국의 안이한 자세가 원인이다. “이번 사건을 교훈 삼겠다.”는 외교부의 입 발린 다짐은 설득력이 없다. 즉각 중국과 협의에 나서 무분별한 탈북자 북송을 막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탈북자 보호 및 처리와 관련한 해외 공관의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일선 공관원들의 해이해진 소명의식을 강화하는 노력도 서둘러야 한다.
  • [사설] 31년 걸린 납북어부 최욱일씨의 귀환

    1975년 동해상에서 납북된 ‘천왕호’ 사무장 최욱일씨가 그제 귀환했다. 낯선 땅에서 신고의 세월을 보낸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31년 5개월이 걸렸다. 활짝 웃는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잃어버린 시간의 복잡다단한 궤적이 읽힌다. 그를 구출한 것은 가족과 납북자가족모임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어렵사리 탈북한 그를 냉대했을 뿐이다.67세가 될 때까지 나 몰라라 했던 국가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자는 480여명이다. 납북자에 무관심했던 정부는 2000년 이후 남북회담을 통해 생사확인에 나서는 등 한발짝씩 움직이고 있다. 비록 소수이긴 해도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이 이산가족상봉을 했다. 지난해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전쟁과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보수진영의 반발은 있었으나 납북자 송환과 대북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납북자 문제도 허공으로 떠버렸다. 최씨는 정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탈북했다. 기획 탈북은 본인은 물론 북에 남아 있는 납북자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납북자가족모임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납북자 귀환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기획 탈북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일본은 지난해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납치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우리의 납북자 가족들이 안전한 송환을 위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 부서를 만들라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며 누구의 눈치 볼 일도 아니다.
  • [일요영화]

    ●태양의 눈물(채널 CGV 오후4시40분)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대형 전쟁 액션 모험물. 이라크와의 전쟁 분위기로 미국 전역이 어수선한 가운데 개봉한 이 영화에서 윌리스가 맡은 역할은 ‘명령을 따르느냐, 아니면 자신의 인간적 양심에 따르느냐.’ 갈등하는 최정예 전투부대 네이비실의 베테랑 장교 역이다. 윌리스를 이러한 갈등에 빠뜨리게 하는 상대역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매트릭스2’에 출연한 미녀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맡았다. 현실감 넘치는 치열한 전투장면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해외파병과 그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 ‘정의로운 미국’을 그린 영화여서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든다. 산전수전 다 겪은 네이비실의 베테랑 장교인 워터스 중위(브루스 윌리스분)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다. 바로 민주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붕괴되기 시작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변방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미국인 의사 레나 켄드릭스(모니카 벨루치)를 구출해 오는 일이다. 워터스 중위와 부대원들은 평범한 임무로 생각하고 현지에 도착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린다. 켄드릭스가 돌보고 있는 주민들을 버려두고는 떠날 수 없다며 구출을 거부하는 것이다. 주민들을 버려두고 귀환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 할지, 켄드릭스의 의견대로 인간적 양심에 따라 그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 할지 갈등하던 워터스와 부대원들. 현지 군인들의 잔인한 만행을 목격한 후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피란민들을 국경너머까지 보호해주기로 결심한다는 내용이다. 2003년작,118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안녕, 나의 집(EBS 오후 2시20분) 프랑스 파리 외곽의 성에 사는 명문가와 빈곤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민들을 통해 현대 가족의 의미와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네아스트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는 이 작품에서 술과 개, 장난감 기차를 사랑하는 아버지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됐다. 대부호의 아들인 니콜라는 냉철한 비즈니스 우먼인 어머니와 알코올중독에다 한량인 아버지가 있는 거대한 저택을 벗어나 뒷골목에서 거리의 부랑자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허름한 옷에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돌아다니며 접시 닦기, 유리창 청소 등 잡일을 해 푼돈을 번다.
  • [씨줄날줄] 유해발굴감식단/황성기 논설위원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유지하는 은밀한 영적(靈的)장치였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의 슬픔을 “죽어서 신이 된다.”는 기쁨으로 바꾸어 젊은이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통치 기제로 이용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진보 지식인이 쓴 야스쿠니 관련서 중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야스쿠니 문제’를 통해 야스쿠니에 ‘감정의 연금술’이 내재한다고 분석했다.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개입에 이어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고, 이 시각에도 사상자를 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미국이 30년 된 육군중앙감식소 등을 통합해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를 하와이에서 창설한 것이 2003년이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라는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전사자건 실종자건 전쟁포로건 최후의 1인까지 고국으로 귀환시킨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미국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 땅에 두고온 미군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처음에는 북측이 발굴한 유해를 감식한 뒤 사들였다. 그것도 모자라 북한에 들어가 유해를 발굴하며 그 대가로 2500만달러를 지불했다. 북핵 문제로 2005년 5월 중단하긴 했어도 미국이 전쟁 희생자에 쏟는 집착은 유별나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보증을 JPAC는 유형무형으로 보여준다. 연중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 유일의 국가인 미국에 이 같은 보증은 전장에 나가거나 내보내는 사람들에겐 든든한 기제로 작동한다. 정치적 안경을 벗어 던진다면 유해든 포로든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국방부가 그제 JPAC를 본뜬 ‘유해발굴감식단’의 창설행사를 가졌다. 한국전쟁의 전사·실종자 13만여명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낙동강변,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를 포함한 중부전선이 주 대상이다. 서둘러 퇴각했던 평북 운산을 비롯한 북한 내 유해발굴도 장기과제다. 다만 생존한 국군포로의 귀환은 업무 밖이라는 점이 아쉽다. 이 점만큼은 미국을 본뜨지 않은 모양이다. 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하나 더 덧붙인다.“발굴이 군만의 일이 아닌데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이 없다.”고. 새겨들었으면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부시 “미군 2만1500명 이라크 증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이라크에 2만명 이상의 전투병을 추가로 파병하고,10억달러의 재건 예산을 투입하는 내용의 새로운 이라크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미국인은 전쟁확산을 원치 않고 있다.”며 추가 파병안에 반대 의사를 밝혀 부시의 새 이라크 정책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저녁 9시 TV를 통해 미 전역에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지금 이라크에서 물러서면 이라크 정부의 붕괴를 막을 수 없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혀 한층 위험한 적들과 대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이라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이라크인들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우리 군의 귀환 일정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추가 파병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AP통신을 비롯한 미 언론들은 이라크 증원군 규모가 2만 1500명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난해 미군 증강을 지시하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이라크 전략의 실책을 처음으로 공식 시인했다. 이와 함께 이라크의 안전과 재건을 위해 10억달러를 지원하고 이라크재건조정관도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이라크연구그룹(ISG)’이 권고한 이란 및 시리아와의 직접 대화 추진 등에 대해서는 “이라크내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는 양국의 노력을 차단할 것”이라고 강조, 거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 민주당은 이라크 주둔군의 규모를 현재의 13만 2000명으로 제한하는 법안 등을 추진하고, 예산 삭감 등의 수단을 총 동원해 증파안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dawn@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돌아온 스타, 인기도 되돌리길

    안정환이 돌아왔다. 한 때 ‘반지의 제왕’으로 불렸으니 수원 삼성을 통해 K-리그에 복귀한 것을 두고 ‘왕의 귀환’이라고 부를 만하다. 2006 독일월드컵 이후 소속팀 없이 혼자서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당장 상반기의 치열한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예전의 기량을 보여줄지는 의문이지만, 차범근 수원 감독 말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이며 후반의 조커로 활약’할 대형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또 한 명이 돌아왔다.‘앙팡 테리블’ 고종수. 푸른 그라운드를 밟은 지가 오래전 이라 지금은 ‘잊혀진 천재’가 됐지만 최윤겸 대전 감독의 부름과 허정무 전남 감독의 용단에 힘입어 올해엔 대전시티즌의 무대를 밟게 됐다. 프랑스 작가 장 콕토의 작품에서 따온 앙팡 테리블이란 말은 문화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기존 문법에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운 천재성을 보여준 신예를 가리키는데 바로 그 별명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고종수가 돌아오게 된 것이다.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로 예전 같은 ‘악동’ 이미지는 많이 옅어졌다. 그러나 누구보다 고종수를 아꼈던 김호 전 수원 감독의 ‘그만큼 이쁘게 차는 선수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처럼 그는 틀림없이 대전 팬들에게 경이로운 축구의 희열을 보여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등 번호 10번을 단다. 이 번호는 공격수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지만 아무나 달 수 없는 번호다. 펠레, 플라티니, 마라도나 등 전설의 영웅들이 이 번호로 세계 축구를 휘저었고 지단, 호나우지뉴, 토티 같은 당대의 거장들이 이 번호를 자신의 수호성으로 삼고 있다. 안정환, 고종수와 더불어 서울의 박주영, 울산의 이천수가 10번을 달고 뛰게 되었으니 이 정도라면 올해 K-리그는 뚜껑을 열기도 전에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세련되고 공격적인 ‘마케팅’이 절실하다. 감독과 선수는 본인들의 타고난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그라운드에서 최선의 경기를 아름답게 펼치면 된다. 이를 열정적인 흥행 무대로 이끌어 낼 책임이 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에 있는 것이다. 월드컵 같은 대형 호재가 없어 오히려 프로 경기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은 충족되고 있다. 터키 출신의 귀네슈 감독이 FC서울에 부임함으로써 포항의 파리아스, 부산의 에글리 등 세 외국인 감독이 동시에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이는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여기에 안정환과 고종수의 화려한 부활을 고대하는 팬들의 발길을 이끌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섬세하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과 시너지 효과를 내 K-리그가 오랜만에 한바탕 떠들썩한 무대로 바뀌기를 기대해본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눈을 통해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살펴본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 매주 목요일 연중기획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준비 없이 전쟁을 선택하다 1636년(인조 14년) 봄.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청의 수도인 선양(瀋陽)에서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척화파(斥和派) 신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며 “정묘년(丁卯年,1627년)에 그들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어 ‘황제 운운’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의 목을 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주화파(主和派) 신료들은 “청이 명을 능멸할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현실을 인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사신을 박대해서도 안된다.”고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는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곧 이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정이 청과 맺은 맹약을 파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청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내용으로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극비교서(敎書)를 가져가던 금군(禁軍)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교서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자신의 목을 치라는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있던 용골대 일행에게, 다른 곳도 아닌 조선 영토 안에서 국왕의 밀찰(密札)을 빼앗긴 것이다. 척화냐, 주화냐를 놓고 정쟁만 무성했던 와중에 정작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1636년 12월6일.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질풍같이 내달렸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병력을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大路) 바깥에 위치한 산성들 속으로 집결시켰던 조선군은 청군의 침입 사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군이 조선군과의 접전을 피해, 곧장 서울로 진격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책임진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청군이 침입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묵살하고 조정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다가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해 버렸다. 청군이 이미 개성을 지나 양철평(良鐵坪-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월14일. 서울 도성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이들과 노약자들, 부녀자들의 울부짖음속에 피란행렬이 줄을 이었고, 조정 신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조는 왕실 가족들과 종묘에 모셔져 있던 역대 국왕의 신주(神主)들을 강화도로 먼저 옮기도록 했다. 이어 자신도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대문까지 갔다가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돼지´에게 무릎을 꿇다 1637년(인조 15년) 1월 중순. 준비 없이 들어왔던 남한산성의 상황은 참혹했다. 청군이 산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삼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군량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청군은 연일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면서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조선 조정이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을 지킬 의욕을 잃은 장졸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신료들은 척화와 주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인조는 눈물을 보이며 대책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1월26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청군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하여 수전(水戰)을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강화도 조선군 지휘부의 방심이 불러왔던 결과였다. 청군은 이에 앞선 1월22일, 조선에서 노획한 선박에 홍이포까지 싣고 강화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벌였다. 조선군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강화도는 함락되었고, 피란했던 왕실 가족과 중신들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강화도의 함락 소식은 남한산성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와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이윽고 그는 높다란 수항단(受降壇) 위에 앉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예를 바쳤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 예식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홍타이지를 포함한 여진족들을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로 경멸했다. 일부 인사는 심지어 청 태종을 ‘황태극(皇太極)’ 대신 홍태시(紅泰豕)라고 불렀다.‘붉고 큰 돼지’란 뜻이다. 그런데 인조가 ‘인간’도 아닌 ‘돼지’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끌고 철수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또 다른 다짐을 받아냈다. “내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단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뒤에 도망쳐 오는 포로는 조선 조정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무시무시한 약조였다. 날이 갈수록 영토는 넓어지는데 인구가 부족했던 청은 조선인 포로들을 보배로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노동력이자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청은 10만이 훨씬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조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아냈던 것이다. 훗날 실제로 청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왔던 포로들은 이 ‘약조’ 때문에 청으로 다시 박송(縛送)되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청군에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에 신음해야 했다. 호란 후에도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의 통곡소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추원의 비극을 책임질 것인가? 1664년(현종 5년). 항복 후 27년이 지나 한 남자가 청에서 도망쳐왔다. 마흔한살의 안추원(安秋元)이 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개성 부근에서 살았던 열세살의 소년 안추원은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했다. 하지만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될 때 그는 청군의 포로가 되었고, 선양으로 끌려갔다. 그는 선양에서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린 신세가 되었다. 호란이 끝난 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몸값을 치르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안추원은 그렇지 못했다.1644년 명이 멸망하자 청은 베이징에 입성한다.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청 조정은 선양의 거주민들에게 베이징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물한살이 된 안추원은 그의 주인에게 이끌려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지난 1662년(현종 3). 서른아홉의 장년이 된 그는 조선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베이징으로 송환된 그는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墨刑)에 처해졌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비원(悲願)은 처절했다. 다시 2년이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정확히 27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금지하고 있던 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27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 보내겠는가. 청이 알까봐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내륙으로 옮겨졌다.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는 당장 생계조차 막막했다. 조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또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으로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했다. 1666년(현종 7). 그는 결국 고국을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처형되었을 것이다.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 영의정까지 올라 안추원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오판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병자호란을 통해 수많은 ‘안추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극’을 불러왔던 최고책임자인 인조는 왕위를 유지했고, 책임을 져야할 신료들의 상당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전쟁 발생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과의 싸움마저 회피하여 국왕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은 인조 말년 최고위직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병자호란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돌아본다. 꼭 10년전 ‘IMF 외환위기’가 불러온 칼바람 속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민초들.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의 과실 또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령들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공을 초월하여 유전되는 것일까. 비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년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교수> ●필자 한명기 교수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001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논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광해군’(2000) 외 다수 ●청태종 송덕비(위 사진) 병자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강요해서 세운 청 태종 송덕비. 병자호란의 전말을 적었다. 사진은 일제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삼전도에 있었다. 현재도 삼전동에 있으며 사적 101호로 지정돼 있다.
  • “6개월만에 또…살아만 돌아왔으면”

    10일 나이지리아에서 피랍된 대우건설 직원 가족들은 피랍 소식에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면서도 뉴스를 체크하며 노심초사 석방 소식을 기다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회사 이문식(45) 차장의 아내 홍순선(39)씨는 “어제 저녁에도 남편과 밤 늦게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사이에 납치가 됐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 또 다른 피랍자인 김남식 차장의 형 김남열(51)씨는 “말을 하기 힘들 만큼 떨린다. 어머니도 함께 회사 상황실로 가겠다는 것을 겨우 말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지난해에도 현지에서 한국인 노동자 2명이 납치됐다가 풀려난 적이 있었다. 동생이 작년 11월에 보름 정도 휴가를 얻어 서울에 왔을 때 돌아가지 않도록 말리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 당국이 빨리 조치를 취해 동생이 무사히 풀려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면 일광면의 김종기(47) 반장의 아버지(74)는 “작년에도 피랍사고가 발생해 그렇게 당부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남 양산시 모 빌라에 거주하는 윤영일(53) 대리의 부인(49)은 충격을 받은 탓인지 문을 굳게 잠그고 “무사귀환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경기 동두천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최종진(39) 과장의 아내는 “회사로부터 피랍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대구 칠성동의 홍종택(41)차장의 가족들은 상경한 듯 집에 아무도 없었다. 한편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편입된 대우건설은 지난해에 이어 반년 만에 또다시 피랍사건이 발생하자 아연실색하는 분위기다. 해외사업본부 정태영 상무는 이날 밤 브리핑을 통해 “비선조직 등 모든 채널을 동원해 알아본 결과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서울 주현진 임일영기자 jhkim@seoul.co.kr
  • 다시 날세운 앙리

    ‘역시, 앙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이 7일까지 소화한 경기는 모두 33경기. 이 가운데 팀 간판 티에리 앙리(30)가 뛴 경기는 19차례에 불과하다. 앙리는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피로누적으로 잔 부상에 시달렸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목 부상으로 한 달 동안 그라운드에 나설 수 없었다. 때문에 03~04시즌부터 3회 연속 득점왕에 등극했던 최고 스트라이커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을 낼 수밖에 없었다. 아스널도 앙리없이 지내는 동안 4승3무1패로 좋지 않았다. 쉬는 동안 날을 바짝 세운 앙리가 새해 귀환하자마자 불 같은 공격력을 뽐냈다.7일 리버풀과의 FA컵 64강전에서 1골1어시스트를 낚으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이날 앙리는 토마시 로시츠키의 두 번째 골이자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앙리는 후반 들어 디르크 카윗의 만회골을 앞세워 리버풀이 바짝 추격해 오자,39분 승부를 결정짓는 쐐기골을 작렬시켰다. 앞서 앙리는 지난 3일 복귀전이었던 찰턴과의 정규리그 경기에선 1골 2어시스트로 아스널에 4-0 승리를 선물하기도 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설] 자국민 보호 외면하는 공관 왜 두나

    재외공관의 존재의미를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 또 벌어졌다.31년만에 중국으로 탈북한 납북어부가 심양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도움은커녕 직원으로부터 질책만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탈북 국군포로가 도움을 요청했다가, 공관 여직원으로부터 거절당해 논란이 됐던 이른바 ‘대사관녀’사건의 복사판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국민 보호에 무심한 재외 공관의 이런 행태를 언제까지 관용하고, 지켜봐야 할지 답답하다. 외교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즉각 사과했다. 해당 공관의 업무태세를 점검하고 탈북자가 조속하게 국내에 귀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도움 요청 전화를 받은 직원이 정식 공관원이 아니고, 휴대전화는 주재국의 감시를 받을 수 있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는 해명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사선을 넘은 탈북자는 지금도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일반인이라도 백방으로 나서 도우려는 게 인지상정이다. 재외공관을 없애라는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 다른 나라 주재공관에도 유사한 소홀함이 없는지 따지고,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탈북자에 대한 재외 공관의 인식과 대처방식을 정리하는 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본부의 관리책임자 문책도 필요하다. 해당 주재국이나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일단 시끄럽게 하지 말자는 인식이 외교부나 재외공관에 팽배해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탈북자 대처 매뉴얼이라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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