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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운트 다운 시작된 느낌… 실험자료 꼼꼼히 챙겨”

    “발사 날짜가 확정된 만큼 더 열심히 노력해 좋은 성과를 거두겠다.” 한국 최초 우주인 정·부 후보로 각각 선정된 고산(31)씨와 이소연(29)씨는 26일 오후(현지시간) 모스크바 샬루트 호텔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소유스 우주선이 내년 4월8일 오후 8시(한국시간) 카자흐스탄 바이코루르 우주 기지에서 발사되며 귀환 날짜는 4월19일”이라고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고씨는 “그 동안 잠정적으로 발사 날짜가 잡혀 있었지만 최근 러시아 연방우주청이 한국 정부에 최종 발사 날짜와 시간을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사 날짜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느낌”이라면서 “우주에 가서 할 교육실험 자료를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 씨는 “마치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학생의 기분”이라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빨리 발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모스크바 외곽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이들은 다음달 23일, 우주에서 수행하게 될 과학실험 추가 점검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이어 미국 휴스턴 유인우주비행센터에서 1주일간 훈련을 받은 뒤 러시아로 돌아간다. 이후 귀환시 고산지대에 비상 착륙할 것에 대비한 생존훈련을 받고, 발사 10∼15일 전 바이코누르 기지에 도착해 대기한다. 탑승팀에 속한 고씨는 세르게이 볼코프(선장), 올레크 코노넨코(우주비행 엔지니어)와 함께 떠나며, 탑승팀에 문제가 생기면 예비팀의 이소연씨가 막심 서라예프(선장), 올레크 스크리포크카(우주비행 엔지니어)와 함께 출발한다. 우주인들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머물면서 미리 준비해간 장비로 18가지 우주과학실험을 하며 이 기간 ISS의 미국 모듈도 방문한다. 이들은 한국의 미래 우주 과학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분야를 찾아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씨는 “유인우주선과 로켓 분야가 아닌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블루오션’을 찾는 것이 과제”라면서 “이웃 일본의 경우 유인 우주 프로그램에 한국보다 10배가 넘는 예산을 투자했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반도체와 같이 우리가 잘 개발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해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 보면서 우주강국이 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따져 보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열린세상] 태왕사신기 유감/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열린세상] 태왕사신기 유감/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최근 고대사를 다룬 드라마들이 쏟아지는 현상은 세계문화사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며, 한국적 상황에서도 충분한 문화적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고대사가 돌아오고 있는 현상은 한국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부심의 바탕 위에서 다시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붉은악마 현상’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한국인을 주눅들게 했던 열등감을 벗어내기 시작했다는 증거 중의 하나이다. 이런 현상들을 두고 ‘민족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논자들도 있다. 우리 문화 안에 버려야 할 닫힌 민족주의적 성향이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혼혈아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잘못된 시각 등 닫힌 민족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고대사의 귀환이나, 붉은악마 현상 등은 이러한 닫힌 민족주의의 발현이라기보다는 한국인들이 문화적 열등감을 벗어내고, 당당한 세계 주민으로서 자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해 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드라마가 고대사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고대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백억원씩 돈을 퍼부어 만든 ‘태왕사신기’ 같은 드라마라면, 그 문화적 대차대조표를 뽑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선 ‘태왕사신기’가 광개토대왕을 신격화하기 위해 무리한 신화 해석을 하는 바람에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회에서 주신제국의 기원은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통해 설명된다. 홍익인간의 메시지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신단수, 곰, 호랑이, 단군, 풍백, 우사, 운사 등 단군신화의 신화소(神話素)가 그대로 사용된다. 웅족과 호족의 대결에서 웅족 부족장 새오가 환웅의 사랑을 얻어 환웅의 아기를 잉태한다는 해석에는 큰 무리가 없다. 단군신화 연구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웅녀의 유래를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 대결에서 곰 토템 부족이 승리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 외에는 문제투성이이다. 가장 큰 문제는 광개토대왕을 신격화하기 위해 단군을 지워 버렸다는 사실이다. 단군신화는 분명히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제시한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이 환웅의 환생이라면, 단군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또한 4신의 무리한 해석도 문제가 된다.4신은 음양오행 철학에서 유래한 방위 신으로 동서남북을 관장하며, 그 방위는 각기 목금화수(木金火水)의 원소에 대응한다.‘태왕사신기’는 환웅이 하늘에서 데리고 내려왔다는 우사, 운사, 풍백을 현무, 청룡, 백호에 연결시키는데, 이는 매우 무리한 해석이다. 운사, 풍백은 모두 농경신이다.4신과는 기능이 전혀 다르다. 나는 이 드라마가 차라리 순수 판타지를 지향했더라면, 이런 모든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인문학을 경시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신화’를 황당무계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신화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겉보기의 황당무계함 아래에는 인류의 수천년에 걸친 문화 경험이 녹아 있다. 그것의 재해석은 얼마든지 용인되는 것이며, 신화는 재해석에 의해 생명력을 이어 간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재해석이 철학 없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질 때, 신화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화려한 볼거리만이 좋은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공한 판타지는 탄탄한 인문학적 해석에 바탕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판타지라면, 더욱더 치밀한 인문학적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 ‘팝의 디바’ 다시 팬 곁으로

    ‘팝의 디바’ 다시 팬 곁으로

    디바들의 재림이 눈부시다. 몇년간 음반 시장에서 모습을 감췄던 ‘급 있는’ 여성 팝 가수들이 11월 일제히 새 앨범을 발표하며 건재를 과시한다. 그간 온갖 구설수에 오르며 ‘망가졌던 ’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10월 말 새 음반을 내며 재기한 이후로 이번 달에는 셀린 디옹, 스파이스 걸스, 알리시아 키스, 카일리 미노그 등이 차례로 등장해 연말 ‘팬심’을 조준할 예정이다. 전 세계에 2억장의 음반을 팔아치워 여성 음악인으로는 세계 최고의 음반 판매고를 자랑하는 가수. 여신이라기보다 전사의 이미지가 강한 셀린 디옹(39)이 4년 만의 공백을 16곡의 새 앨범으로 메운다. 기교 부린 고음이나 떨림보다 직선으로 꽂는 가창력으로 인정받은 그는 새 영어 정규 앨범 ‘Taking Chances’로 록의 향취마저 뿜어낸다. 셀린 디옹 스스로도 “내 음악적 업적에서 긍정적인 혁명·발전이 될 만한 앨범”이라며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1996년 데뷔해 2001년 해체한 스파이스걸스도 원숙미를 과시하며 재결합해 신곡 두 곡과 히트곡을 모은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지금껏 총 600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판 스파이스걸스는 여성 그룹으로는 가장 높은 판매 기록을 갖고 있다. 활동 당시 미국 음반 차트에서 비틀스의 기록을 깰 정도의 기염을 토했던 이들이 이제 10년 전의 소녀가 아닌 ‘아줌마’가 되어 팝 시장에 나선다. 이들은 ‘스파이스걸스의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12월2일 캐나다 밴쿠버 공연을 시작으로 전세계 11개 도시를 도는 월드 투어에도 나선다. ‘falling’‘If ain’t got you’ 등의 히트곡으로 끈적하면서도 쿨한 솔의 감성을 퍼올린 알리시아 키스(26)도 5년 만에 귀환 앨범을 냈다. 그는 이번 새 음반 ‘As I am’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보컬·작곡·작사에 전방위로 참여하며 더 세련되고 진한 멜로디를 구사했다는 평이다. ‘춤 되고 노래 되고 몸매 되는 언니’ 카일리 미노그(39)도 26일 새 앨범을 발표한다.4년 만이다. 음반 판매량 높은 이들의 재기가 장기 침체로 침울한 음반 시장에 ‘보톡스 효과’가 될지 주목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특파원 칼럼] 日국민 저버린 오자와의 야합/박홍기 도쿄 특파원

    일본 국민들이 또다시 뒤통수를 맞았다. 믿었던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로부터다. 충격이 적잖다.‘배신’,‘배반’이라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오자와 대표는 지난 7월29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 제1당으로 도약한 민주당의 실질적인 얼굴이다. 일본 국민들은 당시 참의원 전체 242석 가운데 119석을 ‘생활 제일’을 내건 민주당에 몰아줬다. 자민당의 무능·부패를 심판하고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오자와 대표는 참의원 선거 뒤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라며 중의원 해산을 겨냥, 정권교체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그랬던 오자와 대표가 지난 2일 대표회담에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제안한 ‘대연정’을 덥석 손에 쥔 채 간부회의에서 의견을 물었다. 정치적 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다. 결과는 거부였다. 그러자 4일 전격적으로 대표직에 대한 사의를 표명했다. 간부회의의 결의를 굳이 ‘불신임’에 연결시켰다. 대연정 거래는 밀실에서 이뤄진 ‘정치적 야합’이다. 정치의 큰 틀이 바뀔 엄청난 결정을 공론화도 없이 정치적 유착을 통해 꾀하려 했다. 정책적 합의에 대한 투명성도 저버렸다. 오자와 대표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명분도, 정당성도 약했다. 정책의 일관성도 내팽개쳤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말문이 막힐 만큼 놀랍고 어이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에서 대연정은 곧 ‘대합병’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이유인 즉 자민당과 민주당의 정책이나 이념이 별다른 차이가 없어서다. 체질적 한계다. 때문에 일본에서 ‘건전한 경쟁관계’의 양당 체제는 아직 요원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일본 국민들은 오자와 대표의 행보에 뜨악해했다. 대연정의 필요성을 피력한 것도 그렇거니와 대표직 사의도 마찬가지다.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56%가 대연정을 반대했다. 또 민주당의 대연정 거부에 55.9%가 손을 들어줬다. 오자와 대표는 분명 정권교체와 양당 체제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더욱이 ‘정권교체 역량부족론’을 제기, 민주당에 치명적인 생채기를 남겼다. 당 대표의 발언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일본 국민들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버티다 지난 8월 느닷없이 사퇴한 아베 신조 총리도 경험한 적이 있다. 또 곧바로 자민당 내 9개의 파벌 가운데 8개 파벌이 담합, 후쿠다를 총리로 추대하는 ‘파벌 정치로의 회귀’도 지켜봤다. 오자와 대표의 사의 철회 과정 또한 어설펐다. 민주당은 오자와 대표의 ‘정치 9단’,‘파괴자’라는 별칭을 의식, 탈당을 우려해 전전긍긍했다. 잇단 회의를 통해 당의 총의라며 “오자와대표의 잔류”를 건의했다. 예상했다는 듯 오자와 대표는 바로 복귀했다. 마치 일본의 아마노이와토(天の岩戶) 신화와 비슷하다. 신의 나라를 다스리는 아마테라스오가미가 동생의 횡포에 화가 나 아마노이와토라는 동굴에 들어가 나오지 않자 세상은 암흑으로 변하고 재앙이 닥쳤다. 많은 신들이 아마테라스오가미의 귀환을 빌어 아마테라스오가미가 나오자 세상은 광명과 질서를 되찾았다는 줄거리다. 사의 소동은 사흘만에 끝났지만 정치 불신의 골은 한층 깊어졌다.3개월 남짓한 동안 아베 전 총리의 무책임과 오자와 대표의 오만을 몸소 느낀 탓이다. 세습 정치인들의 자질마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정치는 요즘 과도기를 걷는 것 같다.‘정치적 탈각’을 위한 변혁의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일본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이 팽배한 상태에서는 개혁은 버겁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현재 비온 뒤 땅이 굳어지기는커녕 풀어야 할 과제들만 겹겹이 쌓아놓은 꼴이다. 따라서 오자와 대표가 ‘정치적 야합’의 멍에에서 벗어나 어떻게 난제들을 헤쳐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공직 인맥 열전] (10) 재정경제부 (3)·끝

    [공직 인맥 열전] (10) 재정경제부 (3)·끝

    재정경제부 세제실과 금융정책국, 국제금융국, 국고국 등은 옛 재무부의 맥을 잇는 부서다. 특히 세제실은 그 역할과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세졌다. 참여정부 들어 세제가 정책 전면에 등장, 부동산과 복지정책 등을 주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결과다. 국제금융국도 글로벌 경제의 동조화 현상에 맞춰 중요성이 커졌다. 반면 금융정책국은 감독기능을 금융감독위원회에 넘기면서 시장 영향력이 다소 감소했다. 하지만 시장은 재무부 이재국을 거친 금융정책국의 ‘맨파워’를 아직도 의식하고 있다. 김도형 조세정책국장은 세제실과 국세심판원, 국세청 등 ‘3대 조세당국’에서 국장을 지냈다. 이용섭 건교부 장관이 세제실장과 국세심판원장, 국세청장을 유일하게 거친 것과 비교된다. 사무관 시절에는 증권국 증권정책과에서도 일했다. 국세청 법무심사국장으로 있으면서 ‘과세품질’ 개념을 도입했다. ●금융정책국은 영향력 다소 줄어 윤영선 조세기획심의관과 주영섭 근로장려세제(EITC)기획단 부단장, 백운찬 부동산실무기획단 부단장은 모두 세제실에서 잔뼈가 굵었다. 현 직책은 약간 비켜서 있지만 실력만큼은 자타가 공인한다. 윤 심의관은 세제국 사무관만 14년 일했으며 조세지출과장과 소비세제과장을 지냈다. 중장기 조세개혁을 주도하기도 했다. 성품이 온화하다. 주 부단장은 국세청(8년)에서 실무를 익힌 뒤 소득세제·소비세제·조세정책과장 등 요직을 거쳐 국세심판원에서 2년간 근무했다. 남궁훈 생보협회 회장을 과장, 국장, 실장 등으로 모셨다. 백 부단장은 소득세제·조세정책과장을 지냈다. 김진표, 남궁훈, 정덕구 전 세제실장과 위스콘신주립대 동문이다. 현금영수증제와 EITC 도입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김교식 재산소비세제국장은 사무관 시절 관세청과 이재국에서 일했다. 외환위기 당시 공보과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는 홍보관리관을 맡아 능력을 인정받았다. 대인관계가 뛰어나다. 장근호 관세국장은 첫 민간인 출신의 재경부 국장으로 유명하다. 홍익대 교수이다. 임승태 금정국장은 일처리가 깔끔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동북아 금융허브의 골격을 완성했으며 세계은행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선친이 임기호 전 서울고법원장이다. 청와대 경제수석·경제정책수석 행정관을 지냈다. 조인강 금융정책심의관은 옛 경제기획원 출신이면서도 뉴욕 재경관을 마치고 금정국으로 입성했다. 정책판단이 빠르고 대외업무에 밝아 권오규 부총리의 신임이 두텁다. 김광수 공자위 사무국장은 이재국 금융정책과에서만 6년 가까이 근무했다. 재경부 내에서 금정과 근속기간만으로 김태현 장관실 비서관에 이어 두번째다. 당시 금정과장으로 정건용, 유지창, 신동규, 김규복, 진영욱씨 등을 모셨다. 김석동 1차관과는 이재국 시절에 이어 금감위에서도 함께 일했다. 신제윤 국제금융국장은 금융정책과장과 국제금융과장을 역임했다. 금정국과 국제금융국 주무과장을 모두 지낸 것은 진영욱 한화손해보험 부회장 이후 처음이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을 은행과장과 국제금융국장으로 모셨다. 최종구 국제금융심의관은 2002년 북핵위기가 터졌을 때 국제금융과장으로 당시 권오규 경제수석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모시고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을 찾아 대외신인도를 지켜낸 공로가 크다. 김용덕·신동규·권태신씨 등을 모셨다. 강계두 국고국장은 기획예산처 행정재정기획단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일반직 고위공무원단의 부처교환 사례로 재경부에 왔다.98년 기획예산위원회로 분가한 지 8년만의 귀환이다. 추진력과 포용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강형욱 금융정책심의관은 국제금융과에서 잔뼈가 굵은 국제금융통. 서기관 시절 임창열 차관보와 함께 한·중 금융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중국 인민은행과 재경부의 정례협의회를 출범시켰다. 관세협력과장으로 있으면서 한·칠레 FTA 시동을 걸었다. ●과장급 서울대 출신 82학번이 주류 과장급에선 서울대 출신의 82학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유광열 혁신인사기획관을 비롯해 세제실의 안택순 소득세제과장·최영록 재산세제과장·진승호 부가가치세제과장, 경제정책국의 김철주 종합정책과장, 금정국의 최상목 금융정책과장·박영춘 보험제도과장, 국제금융국의 문홍성 외화자금과장·송인창 외환제도혁신팀장, 경제협력국의 이동재 통상조정과장 등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이회창 대선출마 선언]범여권 득실계산 분주

    범여권은 7일 ‘창의 귀환’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거친 표현이 난무했고, 목소리엔 날이 섰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를 ‘역사의 퇴행’으로 규정했다.“반드시 싸워 이기겠다.”며 전의도 불태웠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이 전 총재를 ‘불법 대선자금의 최종 책임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노욕의 대통령병 환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한때 대쪽판사였던 분이 난데없이 반공투사로 돌아온 건 시대의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범여권은 한편 ‘적의 분열’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다. 급변하는 상황 전개에 따른 득실계산으로 분주했다.‘위기’인지 ‘기회’인지 섣불리 판단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범여권 관계자들은 “득실을 따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오히려 당장은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도는 동반 하락 중이다.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이 교차한다. 통합신당의 한 관계자는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상황이다. 이슈를 선점하면 역전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기대 섞인 분석을 했다. 범여권 선두주자인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측은 ‘그리 나쁠 것 없다.’는 계산이다. 정 후보측 한 관계자는 “승산이 희박한 상태에서 판이 흔들리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기회”라고 표현했다.‘3자구도’의 형성으로 일말의 가능성이 생겼다는 얘기다. ‘전선’의 변화 조짐도 긍정적 요소라는 게 자체 판단이다. 정 후보측 박영선 의원은 “‘부패 대 반 부패’,‘과거 대 미래’ 등으로 전선이 변화되면 범여권이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이 대결’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면 자칫 변방으로 밀려나 주도권 경쟁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정 후보측 한 관계자는 “힘 한번 못 써보고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고민은 또 있다. 이 전 총재가 전통 보수층을 결집할 경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중도층’ 공략을 강화할 공산이 커진다. 정 후보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나머지 범여권 후보들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문 후보측 한 관계자는 “여론의 초점에서 멀어지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인제 후보측도 3자 구도 속에서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내비쳤다. 권 후보측은 직접적인 득실 요인이 없을 것으로 보면서도 상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소비심리 대선타고 2.2P ↑

    ‘창(昌)의 귀환’으로 정치판은 어수선하지만 대통령 선거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비자들의 심리는 호전됐다. 고유가와 물가 등에 대한 불안감보다 대선과 강세 주식장(場) 등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78.1세까지 살고,65.4세까지 일하기를 원한다는 흥미로운 조사결과도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6일 내놓은 ‘4분기(10∼12월) 소비자태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태도지수는 53.4로 나타났다. 전분기보다 2.2포인트 올라 4분기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기준치(50)도 2분기째 웃돌았다. 지수가 50을 넘으면 소비자들의 현재 경기 판단과 향후 경기 예상이 긍정적임을 뜻한다. 연구소측은 “경제성장세 회복과 주식 강세장 유지, 대선이 경제에 미칠 막연한 기대감 등이 소비자 심리를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토종 코트여왕은 나!”

    27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리는 우리은행-삼성생명전을 통해 막을 올리는 07∼08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볼 수 없다.7년 만에 처음이다.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 그동안 센터는 외국인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 또 새 시즌은 단일리그로 치러진다. 전체 7라운드로 팀당 정규 35경기, 전체 105경기. 플레이오프도 5전3선승제로 늘었다. 장기 레이스라 체력 안배와 적절한 선수 활용이 승부의 관건으로 꼽힌다. ●센터의 귀환 이번 시즌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부상 등으로 지난 시즌을 뛰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센터들이 많아 외국인 선수가 없는 이번 골밑 경쟁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금호생명의 강지숙(28·198㎝)이 가장 눈에 띈다. 신한은행의 주축 선수로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했었으나 심장 판막에 구멍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코트를 떠났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뒤 금호생명 유니폼을 입은 강지숙은 “하은주를 잘 알기 때문에 막아낼 자신이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신세계에는 허윤자(28·183㎝)와 정진경(29·190㎝)이 있다.2004년 아테네올림픽 멤버인 허윤자는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1년 동안 코트를 떠나 있었다. 다시 팀 주축으로 일어서야 할 때다. 정진경 역시 국가대표 출신으로 타이완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05년 국내 코트를 밟았다. 무릎 부상으로 긴 재활을 거쳤고 정상 컨디션을 찾아가는 중. 삼성생명은 이종애의 초반 공백 탓에,2002년 코트를 떠났던 허윤정(28·183㎝)을 긴급 수혈했다.‘제2의 정은순´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큰 활약 없이 은퇴했던 허윤정은 “조금이라도 팀에 보탬이 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모두 약점은 있다 우승 0순위는 신한은행이다. 그 뒤를 삼성생명이 추격하고 있고, 나머지 네 팀이 플레이오프 티켓 2장을 놓고 승부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2강4중 판세. 신한은행은 전주원-최윤아가 번갈아 지키는 앞선에서 정선민-하은주가 버틴 포스트까지 빈틈이 없다. 이영주 감독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임달식 감독의 지휘 스타일에 선수들이 얼마나 적응하는지가 관건이다. 삼성생명 또한 박정은-변연하-이미선 등 ‘빅3’가 건재하다. 특히 오랜 부상 끝에 지난 겨울리그 플레이오프부터 팀에 합류한 이미선은 전성기 기량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은행은 전력이 약화됐다. 물론 김진영-김은경-김은혜-홍현희-김계령으로 이어지는 베스트5는 탄탄하다. 하지만 식스맨 층이 얇고 주전과 기량 차이가 크다. 만년 하위권 금호생명은 강지숙을 영입해 높이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팀의 버팀목이 될 해결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국민은행은 큰 변화가 없다. 세계청소년여자선수권 득점왕 출신인 루키 강아정을 뽑은 것은 전력의 상승 요인. 무엇보다 김영옥-김지윤이 얼마나 시너지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과거 정보기관 통제사찰 실태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과거 정보기관 통제사찰 실태

    국가정보원 진실규명위원회가 24일 펴낸 보고서에는 과거 중앙정보부와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정치·사법·언론 등 각 분야를 광범위하게 사찰, 통제한 흔적이 담겨 있다. ●여야 막론 ‘무차별´ 정치사찰 박정희 정권 때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의원까지 정치 사찰이 이뤄졌다. 특히 초대 중앙정보부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JP) 사찰’이 광범위하다. 3선 개헌 논의 때 JP가 공화당 박종태·김용태 의원을 만나 개헌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개헌이 본격 추진될 경우 자신은 표면에 나서 범국민적인 개헌반대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한 내용이 기록된 문서도 발견됐다.▲전 공화당의장 김종필 동향첩보 통보 ▲김종필 동향 첩보 입수 ▲국회의원 김용태 동향첩보 통보 ▲김용태에 대한 첩보 ▲개헌 논의를 포함한 정계동향이다. ●원하는 판결위해 ‘판사 뒷조사´ 각종 시국사건 때 정보기관은 담당 재판부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해 원하는 판결을 유도했다. 1982년 ‘송씨 일가 사건’은 검찰 기소 때부터 대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안기부가 모두 개입, 조정했다. “북한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 송창섭씨가 남파, 친인척을 간첩으로 만들어 25년간 암약했다.”는 내용의 이 사건은 안기부가 피의자를 불법으로 장기 구금하고 고문으로 진술을 받아낸 뒤 검찰에서도 그대로 말하도록 강요했다. 별다른 물증이 없고, 검찰 조서의 임의성 문제가 제기돼 대법원이 두 차례나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자 안기부는 검사와 함께 판사를 찾아가 설득했다. 이 밖에도 국가배상법 위헌 판결 등 정권의 의도와 다른 판결을 내린 판사를 뒷조사했고,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1983년 대법원 비서실장 뇌물사건을 재조사하도록 해 부장판사 2명과 검사장·지청장을 사임하도록 유도했다. ●기자연행·광고통제로 언론 탄압 정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글을 실은 매체에 압력을 가한 것도 정보기관의 몫이었다. 김지하 시인이 1970년 ‘사상계’ 5월호에 정부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시 ‘오적’을 게재하고, 신민당이 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6월1일자로 이 시를 다시 싣자 중정이 반공법 위반혐의로 그를 구속하고 사상계의 폐간을 추진했다. 정권에 부담이 되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정보기관에 연행돼 조사받은 것도 국정원 보유자료를 통해 공식적으로 첫 확인됐다. 광고를 통제해 언론을 탄압하기도 했다.1973년 주요 광고주 대표를 불러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는 점이 국정원 자료로 확인됐고,1974년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도 중정이 주도했음이 유추된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통제 가능한 노조간부 특별 관리 1961년 대한노총을 해산하고 한국노총을 조직한 장본인이 중정이었다. 중정은 직접 통제가 가능한 구성원으로 한국노총 간부를 육성하고 관리했다. 노총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력도 행사했다고 진실위는 판단했다. 중정은 또 김말룡씨 등 비판적 성향의 인물이 간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압, 회유를 반복하며 공작을 벌였다. “용공지하서클을 결성,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며 크리스천아카데미 사회교육원 간사 등을 연행한 1979년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도 중정이 유신체제를 위협하는 반체제 활동으로 간주, 사건의 실체가 과장됐다고 진실위는 강조했다. ●대학별 담당관 운영해 학원 통제 학생운동 사찰은 물론, 대학정책 입안과 학사행정 업무까지 중정과 안기부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학원사태로 제적된 학생의 복교, 타 대학 입학을 막고, 소요가 극렬한 학과는 정원을 감축했으며 비판 성향의 교수는 승진을 불허했다. 주요 학원문제가 생길 때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해 교련교육, 교수 재임용제, 졸업정원제 등 범정부 대책을 마련한 것도 정보기관이 주도했다. 대학별 담당관을 지정, 운영하는 등 광범위한 정보망으로 학원을 통제한 점도 이번 조사로 밝혀졌다. ●간첩사건, 실체보다 확대·과장 우선 조사한 7대 사건에 동백림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등 3건이나 포함된 것만 봐도 정보기관이 간첩사건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월북한 친인척과 접촉, 간첩교육을 받고 국가기밀을 제공했다며 간첩으로 몬 81년 ‘박동운 사건’이나 납북귀환 어부를 간첩으로 몰아붙인 82년 ‘정영 사건’, 조총련을 찬양하고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했다는 82년 ‘차풍길 사건’ 등 적잖은 간첩사건들이 실체보다 확대, 과장됐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2010년 달 착륙” 中·日·印 경쟁

    “2010년 달 착륙” 中·日·印 경쟁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최초의 달 탐사위성 ‘창어(嫦娥) 1호’의 발사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주창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극대화하는 ‘축포’와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24일 시창 위성발사센터 주변에는 이 역사적인 관경을 보기위한 중국인들로 가득찼다. ●10만원짜리 관람석 일주일 전 매진 발사를 이틀 앞둔 22일부터 관광객, 내외신 보도진, 과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발사센터 부근 뉴터우산(牛頭山)중턱에 마련된 관망대에서 발사 광경을 볼수 있는 800위안(10만원)짜리 관람석 1500석은 이미 지난 17일 예약이 끝났다. 시창 시내 호텔들 객실도 거의 동이 났다. 시창 주변의 대도시인 청두(成都)로 가는 항공편도 모두 매진됐으며 24일 이후 27일까지 시창에서 청두로 되돌아오는 항공기 표와 기차 표도 예약이 끝났다. 창어1호는 오는 31일 지구와 달 전환궤도를 초속 11.2㎞의 속도로 5일 동안 비행하다 다음달 5일 달 궤도에 진입할 예정이다. 이후 달 상공 200㎞ 지점에서 127분 만에 한번씩 달 주위를 돌게 되며 11월 말쯤 첫 3차원 입체 영상을 전송하며 1년간 탐사할 예정이다. ●1957년부터 우주선 연구 착수 중국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1957년 10월 발사된 직후부터 우주선에 대한 연구에 착수,66년부터 우주선 개발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70년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모든 우주개발 사업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이후 첩보위성의 시험 발사가 몇차례 있었으나 이마저도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중단됐다. 우주계획이 재점화된 것은 90년대초의 일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99년 11월 첫번째 우주선인 ‘하늘이 내린 배’ 선저우(神舟) 1호가 발사됐고 2003년 10월15일 첫 유인 우주선을 탄 중국의 우주 영웅 양리웨이(楊利偉)도 탄생했다. 달 탐사 계획은 2004년 시작돼 창어 1호 발사에 이어 2012년 착륙선 발사,2017년 우주왕복선 발사 등 모두 3단계로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달에 무인우주선을 착륙시킨다는 구상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체 우주정거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日 지난달 14일 탐사선 발사… 中 자극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지난 6일 달 표면에 착륙해 탐사활동을 벌일 ‘셀레네 2호’를 2010년대에 발사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신경전을 펼친 측면이 있다. 지난달 14일 발사된 달 탐사위성 ‘가구야’가 달 궤도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도 거액을 들여 계속 정찰 위성을 배치해 나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9년 시작된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로켓과 지상 설비를 포함해 약 550억엔(약 4000억원)을 투입했다. 인도는 지난 4월 첫 상용위성 발사에 성공한 뒤 1년내 우주 탐사선 발사를 준비해왔다. 이어 2010∼2011년까지 달 표면을 탐사할 ’찬드라얀 2호‘를 발사한다는 계획이다.2015년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고,2020년 달에 유인 우주선 착륙을 목표로 하고 있다. jj@seoul.co.kr ●창어프로젝트(嫦娥工程) 중국 달 탐사 계획으로 ▲인공위성 발사를 통한 달 표면 입체분석 ▲탐사선 달 착륙 ▲우주인 달 착륙 후 귀환의 3단계로 이뤄져 있다. 창어는 달나라로 날아간 전설 속 선녀의 이름이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2) 일본의 氣가 살아나다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42) 일본의 氣가 살아나다 Ⅰ

    정묘호란의 발생은 조선과 일본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쓰시마(對馬島)와 도쿠가와(德川) 바쿠후(幕府)는 동원할 수 있는 채널을 모두 가동하여 전쟁의 추이와 승패를 파악하려 했다. 그들은 조선과 후금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전쟁이 자신들에게 미칠 파장을 따져보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후금의 침략 때문에 곤경에 처한 조선의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점이다. 그것은 우선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완강한 거부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던 왜사(倭使)의 상경(上京)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 사람들의 대일 감정은 격앙되었다. 무고하게 침략하여 처참한 살육과 약탈을 자행한 데 대한 원한과 적개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특히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등 왕릉을 파헤쳤던 일본군의 행위에 격분했다. 왜란 직후의 기록에는 일본을 가리켜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원수(萬世不共之讐)’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등장한다. 심지어 1607년(선조 40) 일본에 갔던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가 소지했던 국서 속에도 ‘의리상 귀국과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日은 같은 하늘 이고 살 수 없는 나라” 이 같은 적개심을 고려하면 임진왜란 직후 조선이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쓰시마는 절박했다. 경제적으로 자활할 수 없었던 그들은 조선과의 교역이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국교를 다시 열고 교역을 재개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599년 쓰시마는 국교 재개를 요청하기 위해 가케하시 시치다유(梯七太夫)와 요시조에 사콘(吉副左近) 등의 사절을 조선에 보냈다.1600년에는 유타니 야스케(柚谷彌介)를 다시 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살아서 귀환하지 못했다. 쓰시마는 한편으로는 왜란 당시 잡아간 조선인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등 ‘성의’를 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 국교 재개 요청을 계속 거부하면 다시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실제 1603년, 사쓰마(薩摩)에 억류되어 있다가 송환되었던 하동(河東) 출신의 유학(幼學) 김광(金光)의 보고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조선과 다시 화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과 ‘화친 요청을 거부할 경우 재침이 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조선은 긴장 속에서 승려 유정(惟政)을 탐적사(探賊使)란 명칭으로 파견하여 일본의 정세를 살피도록 했다.1605년 4월, 유정은 후시미성(伏見城)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화친에 대한 그의 의도를 탐지하고 조선인 포로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조선은 이어 ‘일본이 먼저 화친을 요청하는 국서(國書)를 보낼 것’,‘선릉과 정릉을 파헤친 범인(犯陵賊)을 묶어 보낼 것’,‘조선인 포로들을 돌려보낼 것’ 등을 국교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쓰시마는 조선이 제시한 요구에 신속히 응답했다. 그들은 1606년 9월, 이에야스 명의의 국서와 범릉적을 조선에 보냈다. 국서는 위조된 것이었고, 범릉적 또한 날조된 인물들이었다. 조선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를 덮어두었다. 이윽고 1607년 조선은 강화(講和)를 위해 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으로 통신사(通信使)를 일본에 파견했다. 임진왜란으로 단절된 양국의 국교가 회복되는 출발점이었다.1609년(광해군 1)에는 기유약조(己酉約條)를 맺어 쓰시마와의 교역을 허락했다.1617년에는 2차 회답겸쇄환사를 보내 도쿠가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잔당 세력을 소탕한 것을 축하했다. 조선이 이렇게 적개심을 억누르면서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일본측의 간청과 협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더하여 북방에서 날로 고조되고 있던 누르하치의 위협을 염두에 둔 조처이기도 했다. 누르하치의 위협에 대처하려면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서북방과 동남방 양쪽 모두를 적으로 만들 수 없는 지정학적 조건이 작용했던 것이다. ●누르하치 세력 커지자 일본과 국교재개 국교를 재개하고 교역을 허용했지만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의식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쓰시마에서 왕래하는 교역선의 숫자를 왜란 이전에 비해 대폭 줄였고 일본인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했다. 특히 왜사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은 엄격히 금지했다. 과거 그들에게 상경을 허용함으로써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산천 형세와 지리 정보가 모두 유출되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조처였다. 쓰시마는 상경을 불허한 조선의 조처에 답답해했다. 그러나 조선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묘호란의 발생은 상황에 변화를 몰고 왔다. 조선은 후금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서북방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고 있을 때부터 그 사실을 왜관(倭館)의 일본인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일어난 판국에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선은 1627년 2월, 정묘호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왜관에 통보하고 전란이 끝날 때까지 사선(使船)의 파견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묘호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쓰시마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쓰시마 도주(島主) 소오 요시나리(宗義成)는 조선에 사람을 보내 ‘이미 파견한 선박을 회항(回航)시키는 것은 어렵고, 그럴 경우 조선이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또한 조선을 돕기 위해 병력을 보내고 조총(鳥銃) 등의 무기를 원조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쓰시마는 정묘란을, 위기에 처한 조선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얻어내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본은 여진을 달단()이라 불렀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 무렵부터 만주의 정세와 여진의 동향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미 1592년 여름, 함경도를 점령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두만강을 건너 여진 마을에 침입하여 그들과 군사적으로 접촉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후 달단이 더욱 강성해져 후금을 건국하고 요동을 점령하자 일본의 위기의식은 높아갔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후금이 1621년 요동을 점령했다는 정보를 당시 나가사키(長崎)에 왕래했던 중국상인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1623년 새로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는, 후금 관련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여 보고하지 않았다고 쓰시마의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를 질책했다. 다급해진 소오 요시나리와 야나가와 시게오키는 조선에 조총 등을 보내는 한편, 요동 사정을 탐문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이 여전히 상경을 허용하지 않자 쓰시마 측의 조바심은 높아갔다. ●“상경길 안 열면 문제 생길 것” 공갈치는 일본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쓰시마 측은 위의 전례를 흘려 조선을 압박했다. 즉 ‘전에도 바쿠후가 요동 사정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는데, 만일 이번에 야나가와가 잘 주선하지 않으면 바쿠후가 요동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킬 것이고 그러면 조선과 쓰시마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1627년 11월, 소오 요시나리는 에도(江戶)로 가서 정묘호란과 관련된 전후 상황을 바쿠후에 보고했다. 조선과 대륙 정세 변화에 민감했던 바쿠후는 요시나리에게 조선과 대륙 정세를 상세히 조사하여 다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1628년 11월, 쓰시마로 돌아온 요시나리는 승려 겐포(玄方)를 차출했다. 1629년 윤 2월, 겐포는 ‘조선과 대륙 정세 파악’이라는 중책을 안고 부산에 상륙했다. 요시나리는 이미 조선에 서계(書契)를 보내 겐포 일행의 상경을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은 여전히 거부했지만 이번에는 겐포 일행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경을 허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공갈을 쳤다. 정묘호란으로 수세(守勢)에 처한 조선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9집 더 시크릿 오브 컬러2 라이브황제 이승철의 귀환

    9집 더 시크릿 오브 컬러2 라이브황제 이승철의 귀환

    9집 앨범을 내며 컴백을 앞둔 이승철(41)의 얼굴은 한결 건강하고 편안해보였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까. “예전엔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즐겼는데, 이젠 집에 일찍 들어가니까요. 이게 다 아내 덕이죠.” 4집 ‘색깔속의 비밀’(1994) 이후,‘오늘도 난’‘오직 너뿐인 나를’‘긴하루’‘소리쳐’등 매 앨범마다 대중성을 추구해온 그가 이번에 내놓은 음반의 제목은 ‘색깔속의 비밀2’다. “4집이 뉴욕스타일의 재즈, 블루스, 아카펠라 등을 담았다면,9집엔 LA의 음악적 색깔을 입혔어요.‘이승철이 이런 음악도 하네’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게 다양한 시도를 해봤죠.” 음악적 욕심만큼이나 음반에 참여한 해외 뮤지션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내에는 ‘아이 스웨어’(I swear)로 유명한 아카펠라 R&B 그룹 ‘올포원’의 리더 제이미 존스가 3곡을 작곡한 것을 비롯해 마이클 잭슨, 스팅의 앨범에 참여했던 스티브 핫지가 믹싱 프로듀서를 맡았다.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참여했다는 것이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가 더 잘 알아요. 나라마다 다른 정서적 장벽을 넘지못해 실패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대중성을 간과했던 4집의 부진을 교훈삼아 최대한 한국적으로 만들고자 노력했죠.” 이런 그가 이번에 타이틀곡으로 내놓은 것은 록발라드풍에 익숙한 후렴구가 인상적인 ‘사랑한다’. 언뜻 들으면 지난해 히트했던 8집 ‘소리쳐’와 비슷해 이의 아류같다는 인상도 준다. “올 8월 이후 가요계에 변신을 꾀해 성공한 가수가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사회적으로도 변화를 싫어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10∼50대로 구성된 제 팬클럽에서 ‘사랑한다’를 가장 좋아해주셨어요. 어차피 히트곡은 대중들이 만들어주시는 것 아니겠어요?” 이 밖에도 결혼과 함께 얻은 사춘기 딸이 사랑에 설레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프로포즈’를 비롯해 70년대 디스코사운드와 거북이의 랩이 돋보이는 ‘파트 타임 러버’, 고유진이 발표한 곡을 리메이크한 ‘눈물자욱’ 등도 주목해 볼 만하다. 매번 2년에 한번꼴로 앨범을 냈지만,8집 이후 1년여 만에 신보를 낸 것은 매년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다는 연말공연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음반을 통해 팬들과 빨리 만나고 싶기도 했고, 물론 공연 때문이기도 하고요. 외국에서도 앨범 발매와 공연은 바로 이어지잖아요. 제 공연을 뮤지컬처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게 꿈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데뷔 20년인 ‘라이브의 황제’라도 최근 가요계 음반 시장 침체에 대한 불안감은 떨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번이 CD로 발매되는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년전 ‘네버엔딩 스토리´ 때 40만장이 팔리고, 불황이라는 지난해도 18만장이 나갔지만, 올해는 고작 초판 4만장으로 시작하니까요. 제가 이 정도니 이렇게 가다가는 가수가 멸종되지나 않을까요?” 새달 3일 의정부를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이어지는 전국투어를 앞두고 있는 이승철. 올초 두살 연상의 아내와 새 가정을 꾸리고 처음으로 낸 앨범과 공연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미국 LA 할리우드의 5층짜리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음반을 준비했어요. 영어에 익숙한 집사람이 녹음 스튜디오를 예약하면, 한곡한곡 녹음을 마칠 때마다 함께 들어보는 과정의 연속이었죠. 그런 행복함과 음악적 완성도가 여러분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국무회의 의결 안건] 부패사범 해외 숨긴 재산 환수 가능

    앞으로 뇌물수수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부패사범이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16일 중앙청사에서 한덕수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안’ 등을 심의·의결했다. 특례법안은 2003년 10월 유엔이 채택한 ‘유엔 반부패협약’ 및 관련 국제협약을 시행하기 위한 것이다. 환수 대상인 부패 관련 범죄는 뇌물, 횡령, 경매·입찰 방해, 배임 등이다. 법안은 우리 법원이 국내 부패 사범의 해외도피 재산에 대해 몰수·추징 판결을 내리고 외교장관이 상대 정부에 집행을 요청하면 상대국 협조를 받아 부패 사범 재산을 국내로 환수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부패 사범이 국내에 재산을 숨길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농어업인 특별법 개정안 정부는 회의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이행에 따른 농어업 분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개정안도 의결했다. 현재는 지원 요건이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여기에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를 추가해 농어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 FTA 이행지원기금 조성과 관련,FTA를 체결한 전체 국가를 기초로 지원기금을 통합적으로 조성·운용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지금은 국가별로 기금을 조성하고 지원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재정 운용이 경직되는 문제점이 있었다.●귀환 납북자 정착 지원 귀환 납북자의 조기 정착을 돕는 ‘군사정전협정 체결 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안’도 통과됐다.3년 이상 납북됐다 귀환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정착금을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200배 범위내에서 기본금과 가산금으로 구분해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북한지역을 벗어난 납북자의 귀환을 위해 필요할 경우 정착금의 기본금 중 일부를 우선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신한동해오픈] 역시 최경주…29개월만에 국내무대 정상

    ‘왕의 귀환.’ ‘탱크’ 최경주(37·나이키골프)가 세계 3위 짐 퓨릭을 꺾고 신한동해오픈 우승컵을 품었다.1년 만의 귀국 선물을 우승컵으로 대신한 셈. 최경주는 14일 경기 용인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남코스(파72·7544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4타를 줄여 합계 12언더파 276타를 쳐 막판까지 분전한 ‘갈기머리’ 석종률(39·캘러웨이)을 1타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올해 미프로골프(PGA) 투어에서만 2승을 거둔 최경주는 이로써 2005년 5월 SK텔레콤오픈 이후 2년5개월 만에 국내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또 3년 연속 출전한 이 대회에서 2005년 연장 접전 끝 준우승, 지난해 3위에 그쳤던 아쉬움도 털어 냈다. 이날 전반에만 보기 없이 버디 2개를 잡아내며 2타를 줄인 최경주는 후반 11번홀(파5)에서 환상적인 이글을 잡아 우승을 예고했다. 티샷을 290야드에 보낸 최경주는 두 번째 샷이 그린 뒤로 살짝 벗어났지만 8m 거리에서 퍼트한 공은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지막 고비는 17번홀(파5)에서 찾아왔다. 티샷을 오른쪽 러프에 떨어뜨린 최경주는 5번 아이언으로 세컨드 샷을 했지만 그린에 올리지 못한 것. 보기를 범하면 석종률과 동타를 이뤄 연장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세 번째 샷을 홀컵 2m 거리에 붙인 최경주는 침착하게 파를 잡아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최경주보다 한 발 앞서 출발한 석종률은 17번홀까지 4타를 줄이며 1타차 2위로 최경주를 압박했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는 버디 기회를 잡아 연장 승부를 예고했지만 불과 2m짜리 버디 퍼트를 놓쳐 땅을 쳤다. 최경주와 함께 챔피언조로 출발한 ‘8자 스윙’ 짐 퓨릭과 강경남(24·삼화저축은행)은 전반 9번홀까지 팽팽한 접전을 펼쳤지만 후반 뒷심 부족으로 각각 더블보기를 범하며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퓨릭과 강경남은 이날 똑같이 1타를 줄여 각각 9언더파 279타,8언더파 280타로 단독 3,4위에 오르는 데 만족해야 했다.‘슈퍼루키’ 김경태(21·신한은행)는 1오버파 73타로 부진, 합계 3언더파 285타로 공동 9위에 그쳤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女談餘談] 그녀들의 귀환/이순녀 국제부 기자

    독립영웅의 딸로 태어났다. 두살때 국부로 추앙받던 아버지를 정적의 손에 잃었다. 열여섯살에 인도로 떠난 뒤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정치와 경제, 철학을 공부하며 학자의 길에 몰두했다. 그러나 1988년 잠시 들른 고국땅에서 군부가 시위대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를 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명망있는 총리의 딸로 태어났다. 스물여섯살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부친이 처형되자 부친이 창당한 정당의 중앙위원이 되어 반정부 운동에 앞장섰다. 두 차례 총리로 재임하며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지도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미얀마(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와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인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나이는 수치 여사가 62세로 부토 전 총리보다 여덟살 많지만 둘 다 부친의 정치적 영향력을 물려받았다는 점, 외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 군부정권에 맞서는 정당의 지도자라는 점 등이 판박이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부토 전 총리는 2005년 여성세계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정치적 자유를 잃고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인 가택연금에 시달리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페르베스 무샤라프 현 대통령이 무혈쿠데타에 성공한 98년 런던으로 망명해 10년 가까이 외지에서 머물고 있다.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군부정권에 의해 수족이 묶이고, 언로가 막혔던 그녀들이 다시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수치 여사는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민주화시위에서 변함없는 영향력을 드러냈다. 유엔 특사가 수치 여사를 면담하는 등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미얀마 군부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대화를 제의하며 유화책을 펴고 있다. 부토 전 총리도 장기집권을 노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권력분점 제안에 따라 오는 18일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할 예정이다. 그녀들의 귀환이 폭력과 독재로 얼룩진 두 나라에 평화와 민주주의의 새 기운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이순녀 국제부 기자 coral@seoul.co.kr
  • [부고]

    ●오완근(전 안중제일의원 원장)씨 별세 용환(숭의여고 교장)봉환(회사원)귀환(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준환(안양 성문여중 교사)씨 부친상 공재응(건국대 명예교수)경명현(전 비씨카드 부사장)신동일(사업)씨 빙부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410-6919●김용식(동부건설 부사장)경식(베스티안병원 이사장)씨 부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 3010-2631●박영조(자영업)완기(전 현대파워텍 사장)씨 부친상 조영승(자영업)이재환(〃)씨 빙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010-2293●김재명(한진중공업 부장)재곤(목사)재룡(금융감독원 팀장)씨 부친상 11일 부산 고신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11-9920-2609●임상룡(삼성물산 재무팀 과장)상기(AJC인터내셔널 무역대표)씨 부친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5시30분 (02)3410-6906●염택구(대한안과학회 정회원)씨 별세 곽형우(경희의료원 안과 교수)씨 빙부상 11일 경희의료원, 발인 13일 오전 11시 (02)958-9545●표영도(정민전자 상무)영업(메이트커뮤니케이션즈 매체국장)영대(ING생명 과장)씨 부친상 김동홍(신라CC 과장)홍기철(LS산전 차장)성봉수(사업)씨 빙부상 11일 경남 거창시 적십자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30분 (055)949-3437●박영원(남가좌교회 담임목사)씨 모친상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3일 오전 10시 (02)392-0499●유영웅(대구시교육청 교육위원)영철(전 영남일보 편집국장)영규(건축설계사)영숙(죽곡초등학교 교장)씨 모친상 김두련(동천초등학교 교장)씨 시모상 허한순(농촌진흥청 과장)정삼갑(범일중 교사)씨 빙모상 11일 대구 효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30분 (053)768-0325●권상률(전 SK에너지 화학RM팀장)씨 별세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010-2265●정재욱(전 곡성 농업기술센터 과장)재두(전 한국통신 〃)재흔(한국폴리텍Ⅴ대학 교수)재현(광주일보 논설위원)재섭(전북 남원 남광철재 이사)재인씨 모친상 11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62)250-4409●우경하(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타격코치)씨 빙모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10시 (02)3010-2261●하종필(전 에이스침대 전무이사)씨 상배 두영(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학 교수)유진(신암중 교사)씨 모친상 안철홍(위슬런수학전문학원 강사)씨 빙모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11시 (02)3010-2294●이경동(고양법원 대표집행관)씨 부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010-2292
  • [옴부즈맨 칼럼] TV와 차별화 못한 남북정상회담 보도/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한 주 신문을 장식한 빅뉴스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의 주인공은 텔레비전이었다.7년 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때 녹화된 테이프를 기다리던 것과 다르게 정상회담의 주요 소식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회담과정 내내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이를 통한 정치효과 역시 매우 컸다. 남북정상회담 그 자체가 거대한 미디어 이벤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서는 장면에서부터,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한 평양에서의 환영행사가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지난 4일 노 대통령의 귀환 때에는 9시 뉴스시간대에 맞춰 도라산역에서 대통령의 상세한 귀국보고가 생중계로 이어졌다. 귀환 당일 심야시간에 방송된 각 방송사의 생방송 토론프로그램에는 정상회담의 주요 배석인사들이 참여해서 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정상회담 전후로 모든 정치행사가 텔레비전에 맞춰진 듯했다. 역동감있는 텔레비전 중계를 보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 본 신문은 식어버린 죽 같기도 하다. 내용이 새롭지 않고, 이미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를 정리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광속의 시대에 신문이 갖는 기능적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문제는 세계신문업계의 공통된 과제로 최근 몇년간 고민되어온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경향이 데드라인기사에서 기획기사로 1면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 시각적 이미지의 강조,‘무엇이 발생했나’에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아’로 보도의 방향을 바꾸는 것, 심층 해설기사의 강화 등이다. 국내 신문도 이러한 경향을 좇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1면의 차별화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기사의 수보다는 깊이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보도에서도 많은 신문들이 남북정상선언 이후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자매체와 기능적 차별화를 시도했다. 서울신문 역시 정상선언 이틀 후인 10월6일자부터 향후에 미칠 영향과 현안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꼼꼼히 읽어보면 텔레비전 뉴스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른 경쟁지도 상황은 비슷하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빈약한 취재원에 있다. 예를 들어 6일자 ‘경협비용 최대 11조원’이라는 긴 해설기사의 경우 타 언론사와 같이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에 의존해서 작성했지만, 연구원 자료 이외에 실명 취재원이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돈 오보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와의 인터뷰기사는 미국 내 전문가의 시각을 보여주어서 유익했다. 서울신문은 고급 취재원을 보다 강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신문이 이종매체와 경쟁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신문기자의 생명력은 취재원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 차원의 취재원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지식경영의 일부이다. 우수한 취재원을 기자들이 상호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뉴스룸 정책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기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문사들은 라디오 저널리즘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라디오저널리즘은 다양한 전문가를 사안별로 초대한다. 자사 기자에 의존하지 않고 신문기자나 인터넷매체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시급한 사안을 정리하기도 한다. 탄력적으로 취재원을 연결하고, 경계선을 긋지 않고 누구든지 협력자로 만들어서 깊이있는 정보를 주려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결국, 정보상품으로서 신문의 효용가치는 생생한 현장감이나 속보라기보다는 깊이와 적절성으로 대표되는 뉴스의 품질에 있기 때문이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열린세상] ‘계란 열사들’의 나라/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열린세상] ‘계란 열사들’의 나라/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철 지난 얘기지만,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납치되었던 인질들은 두 명의 희생자를 남긴 채 대부분 무사히 돌아왔다. 이 사건은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봉사’라 둘러대더니 희생자를 ‘순교자’로 부르는 것을 보니 교회에서는 그 행위를 ‘선교’로 인식하는 듯하다. 지금 한국 교회는 ‘선교’와 ‘봉사’를 새로 정의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하지만, 교회에서 정직하게 꺼내서 논의해야 할 것은 “기독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낡은 원칙이다. 듣자 하니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당연한 얘기를 하는 신학자가 외려 출교 당하는 게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 아닌가. 한국 기독교의 눈에 이슬람 국가는 이른바 ‘복음화율’이 세계에서 가장 떨어지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선교의 대상지역이다. 이슬람은 종교적 열정의 결핍이 아니라, 종교적 열정의 과잉으로 고통 받는 지역이다. 그런 곳에 그 못지않게 극성스러운 종교를 하나 더 들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순교’를 해서라도 사마리아 땅 끝까지 기독교화하겠다는 한국 기독교의 중세적 열정. 그 못지않게 중세적인 것이 바로 귀환한 피랍자들을 대하던 한국 사회의 험악한 분위기다. 듣자 하니 한 극성스러운 분자가 공항에까지 나와 피납자들에게 계란을 던지려고 했단다. 물론 이런 맹동주의자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맹동주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니, 온통 이 위험한 자를 ‘계란열사’로 만들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분위기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심성이 어쩌다 이 지경으로 망가졌을까? 한 달 동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심리적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던 사람들이다. 당신도 사형이 집행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달을 지냈다고 생각해 보라.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극심하겠는가? 도대체 그런 사람들에게 계란을 던지겠다는 그 잔인한 심성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봉사로써 예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생각 자체는 비난할 게 못 된다. 그 젊은이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저 아프간 여행의 위험을 너무나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 생각의 천진난만함이 공항에서 계란을 맞아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일까? 교회에 계란을 던질 수는 있다. 잘못은 교회가 했고, 교회는 납치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는 영혼에 치유하기 힘든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다. 그런데도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나 트라우마를 겪어야 할 희생자들에게 계란을 던진다? 이는 그야말로 인간성을 의심하게 하는 행위다. 왜 그러는 걸까? 어떤 사람이 잘못된 일인지 버젓이 알면서도 그 짓을 저지를 때에는, 그 잘못을 사소한 것으로 덮어줄 더 큰 대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를 ‘계란 열사’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그 대의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듣자 하니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름에 대피하라는 경고를 무시했다가 조난당한 피서객들을 구조해줬다고 나라에서 어디 비용을 부담시키던가? 생각을 잘못해 위험에 빠졌을 때에도 국가로부터 무료로 구조 받을 권리 좀 요구하면 안 되는가?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아프간에서 납치됐다 풀려난 일본인도 “고국에 돌아갈 일이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거기서 이것은 이른바 ‘국권’ 대 ‘민권’의 문제다.‘민권’보다 ‘국권’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국가에 누를 끼친 개인은 유형무형으로 공동체의 제재를 받는 모양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왜 이렇게 불쌍한 ‘국민’으로 살아야 할까?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 [사설] 10·4선언 국민공감대 넓히는 노력을

    남북 정상이 합의한 10·4 선언을 놓고 우리 사회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큰 틀에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찬반 의견이 나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귀환 보고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강조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대해서는 각 진영의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의도라고 경계심을 나타낸다. 정부와 진보 진영은 군사문제를 경제적 공동이익 관점에서 접근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여긴다. 서해평화지대를 실천으로 옮기려면 공동어로수역 설정과 해주 직항로 허용의 세부사항을 남북이 재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NLL 재설정을 북측에서 제기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측 우려를 이해한다. 하지만 민간 선박이 드나들고, 남북이 함께 고기를 잡는다고 NLL이 폐기되거나 조정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지대에 포함된 해주 특구 개발은 이곳에 밀집한 북한 군사력의 재배치를 기대할 수 있다. 군사 대치와 충돌의 상징인 서해의 긴장완화와 해주 항만 조성은 개성공단을 뛰어넘는 남북 윈윈의 표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에 대해서도 “성과가 없다.”고 깎아내리지만 9·19성명과 2·13합의를 지키겠다는 약속 이상의 것을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받아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북핵 폐기 로드맵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두 정상이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의 공존도 없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은 적지 않은 성과다. 경제협력 분야의 다양한 합의에 대해서도 보수측은 전가의 보도인 퍼주기론으로 비판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어느 정부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10·4선언을 보는 시각차는 존재한다. 정부는 국회 동의는 물론 선언의 실천을 위해 국민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소중한 남북 합의가 당리당략이나 이념 때문에 삐걱대서는 안 될 것이다.
  • [일요영화] 귀향

    ●귀향(KBS1 명화극장 밤 12시50분) ‘귀향’이란 제목은 함축적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17번째 장편영화를 찍기 위해 자신의 고향 라 만차로 돌아왔다는 뜻이자, 한층 심도있는 인생의 성찰을 위해 생명의 근원인 모성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2006년작 ‘귀향’에서 억척스럽게 생을 꾸려가는 여성들의 삶을 특유의 코미디적 색깔을 버무려 펼쳐놓는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실감나게 여성들의 연대를 구현해내기 위해 그는 생과 죽음,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것을 마다않는다. 마드리드에서 살아가는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 젊고 매력적인 그녀의 삶은 질퍽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놀고 있는 남편과 사춘기 딸을 먹여살리느라 그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라이문다는 남편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딸 파울라를 성추행하려다 파울라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진 것이다. 이때 홀로 불법미용실을 운영하며 사는 여동생 솔레에게서 전화가 온다. 라만차에 살던 이모가 돌아가셨으니 함께 가자고 하지만, 라이문다는 핑계를 대며 남는다. 한편 라만차에 간 솔레는 죽은 어머니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전해듣는다. 그리고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자동차 트렁크 안에 숨어있던 어머니와 조우하게 된다. 솔레는 어머니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라이문다에게는 숨긴 채, 함께 살아간다. 미용실 손님에게는 러시아 노숙자라고 소개한다. 어머니는 돌아온 현실 세계에 비교적 잘 적응하지만, 정작 가장 만나고 싶었던 라이문다 앞에는 나타나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딸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기 위해 세상으로 귀환한 유령 어머니, 그녀의 딸로서 역시 자신의 딸이 저지른 치명적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어머니…. 이처럼 3대에 걸친 평범하고도 강인한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귀향’은 지구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120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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