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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공,추석 고속도 이용객 설문조사

    ◎7일 자정∼상오 6시/8일 하오6시∼자정/9일 자정∼상오 6시/귀성길 덜 붐빈다/8일 출발예정 44%로 최다/승용차로 귀향이 58% 차지 올 추석에 고속도로를 이용,서울을 떠나 고향을 찾는 차량은 8일에는 하오 10시부터 자정 사이,7일에는 자정부터 상오 7시 사이,추석당일인 9일에는 자정부터 상오 6시 사이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한국도로공사는 최근 고속도로 이용객 3천2백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같이 조사됐다고 4일 밝혔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귀성 출발 예정일로 추석전날인 8일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43.6%) 7일(26.2%)과 추석당일인 9일(16.8%)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도로공사는 가장 혼잡한 시간대를 7일에는 낮 12시부터 자정까지,8일은 하루종일(0시부터 하오 10시까지),9일에는 상오 7시부터 낮 12시까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용할 교통수단은 승용차가 57.9%로 가장 많았으나 작년의 62.8% 보다는 줄어들었으며 버스는 27.6%로 작년보다 8.9% 포인트나 늘어 버스전용차선제가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반증했다.
  • 여·야/「경색 정국」 풀기 접점모색 분주

    ◎대야채널 총동원… 조기 정상화 모색­민자/“대화 제의 해오면 만날터” 타협 시사­신당 정치권에 대한 사정으로 여야의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듯하던 정국상황은 4일 민자당이 다각도의 대화채널을 가동,야당을 설득할 움직임을 보이고 야당,특히 새정치국민회의도 대화에 응할 뜻을 내비치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사정 대상에서 정치권만을 떼내기에는 명분도 약하고 기준 자체가 모호한데다 국민회의는 외견상 일련의 사정작업이 「창당방해」「야당탄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적정수준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자당◁ ○…정기국회 및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경색정국의 장기화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판단 아래 대화채널을 총가동,경색정국을 조기에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강삼재 사무총장과 김영구정무1장관은 5일 국민회의 창당대회에 참석,화해의 제스처를 보낼 예정이며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도 국민회의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을 방문,축하인사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서정화 원내총무는 국민회의의 신기하 총무와 비공식접촉을 갖고 11일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협조해 달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학규 대변인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다각도의 방법을 통해 야당측과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해 경색정국을 풀기 위한 「물밑 대화」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 관계자는 『지난 93년과 지난해 정기국회 때 WTO(세계무역기구)협정에 대한 국회비준 동의안 처리 등을 위해 고위당직자들이 일대 일로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들을 모두 만나 문제를 풀어나갔다』고 상기시키면서 야당과의 접촉을 다양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야당이 요구하는 만큼 확실한 「담보」를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민자당의 고민이다.정치권에 대한 비리수사가 「표적사정」「정치사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야당 정치인은 더이상 사정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약속은 사안의 성격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김윤환 대표위원은 이날지구당위원장 회의에서 『정국운영을 위해서는 가급적 조기에 종결짓는 게 좋겠다』고 말해 선거사범 수사와 정치권 사정이 분리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민회의◁ ○…정치권 사정에 정면으로 대응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경색정국의 해빙을 위해 여권과의 접촉도 암중모색하는 등 강온 양동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날 「야당탄압 비상대책특위」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최락도·박은태 의원과 아태재단에 관한 검찰의 수사를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과 국민회의를 음해하려는 「표적수사」로 규정하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의원총회에서 채영석·오탄·이경재·박태영의원 등은 『현정권의 창출과 관련된 비리인사들은 「봐주기식」 수사로 면죄부를 주는 반면 야당의원에 대해서는 편파적인 표적수사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경대응을 주장했다. 국민회의는 그러나 여권이 정국수습을 위해 대화를 제의해 온다면 이에 응한다는 방침이다.이와 관련,박지원 대변인은 『공식적인 채널은 아니나 한두 인사가 민자당측과 접촉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종찬 의원장도 『못만날 이유가 없지 않느냐.이런 상태로 정기국회를 개원할 수 없다는 입장은 민자당이 더 강한 것 같다』고 경색된 정국을 푸는 실마리가 있음을 시사했다. ◎민자 「당 결속 모임」 잇따라/김대표 어제하루 지부장회의 등 5곳 참석/분발·단합 당부… 의원엔 귀향 활동비 지급 민자당이 총선을 겨냥한 내부결속 강화에 나섰다. 대표로부터 사무처에 이르는 하드웨어를 새로 짠데 이어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사기와 응집력의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패배이후 동요하고 있는 일부 소속의원 등이 정치권에 대한 사정 회오리,공천물갈이설 등으로 불안해 하고 있는 시점이라 이같은 집안단속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4일 하루에만도 시·도지부장회의,지구당위원장회의,고문단 오찬,서울시구청장후보만찬,시·도별 지구당위원장 오찬 등 각급 모임을 잇따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윤환 대표위원은 이날 여의도 63빌딩에서 취임 이후 처음 열린시·도지부장회의에서 『앞으로 지부장회의를 매달 2차례로 정례화 하겠다』고 밝혔다.또 지금까지 사무총장이 지부장회의를 주재해왔으나 앞으로는 대표가 직접 주재,청와대 주례회동 등을 통해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과 정부에 지역민심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말했다.일선 조직의 어려움과 정책건의 등에 대한 의견수렴의 폭을 적극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부장 사퇴의사를 밝힌 정호용 대구시 지부장과 양정규 제주지부장은 이날 불참했다. ○…추석귀향활동 대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구당 위원장 회의에서는 새 지도부가 한 목소리로 「민의를 떠받드는」 당운영을 강조했다. 김대표는 인사말에서 『6·27선거결과는 한마디로 불안요인을 만들지 말고 나라를 안정되게 이끌어달라는 국민들의 요구』라고 지적하고 『안정희구세력이 기대를 갖고 신뢰할 수 있는 집권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15대 공천과 관련해서는 『인위적·의도적 물갈이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뒤 정치권에 대한 사정과 관련,『선거부정등은 단호히 조치하되 정국긴장의 조속한 해소를 위해 조기에 수사가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총재께 건의했다』고 의원들을 안심시켰다. 강삼재 사무총장도 젊은 총장 발탁에 대한 일부의 불안감을 의식한 듯 『민심회복에 최우선을 두고 당의 화합과 결속에 밀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종호 정책위의장은 수해대책비의 추가경정예산 반영,추곡수매량 최대한 확대,중소기업 부도대책마련 등 민심회복 정책을 제시했다.또 즉석에서 10월로 예정된 일반사면에 대한 위원장들의 의견서를 제출받기도 했다.지구당위원장들을 정책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날 현역의원들에게는 5백만원,원외위원장들에게는 3백만원씩의 귀향활동비(속칭 오리발)도 지급됐다. ○…63빌딩에서 열린 고문단 오찬에서 김대표는 『세대교체가 나이를 기준으로 경륜있는 중·장년을 밀어내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김정례고문 등의 지적에 대해 『청·장년층의 조화속에 국정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결집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김대표는 서울시 구청장에 출마했던 당소속 후보들이 참석한 63빌딩 만찬에서 『이제 민심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며 분발과 단합을 당부했다.
  • 1·4후퇴뒤 혼란정국(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4)

    ◎거창학살­국민방위군 사건 잇달아 발생/이 대통령,국회와 마찰… 대통령 직선 추진 한국전쟁은 1951년 새해가 밝으면서 개전 2년째를 맞았다.미 공군은 설날에도 전폭기 편대들을 전선과 북한지역 깊숙이 발진시켰다.그리고 8백12회의 출격을 설날에 기록했다.전선은 남쪽으로 크게 밀려나 38도선 부근에 와 있었다.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은 전선이 압록강 한·만국경에 고착될 것으로 기대한 한국민의 희망을 깡그리 앗아갔던 것이다. 정부는 1월3일 임시수도를 부산으로 결정하고 다음날 서울을 비웠다.전해 9·28수복으로 환도했던 정부의 공식 서울 철수를 역사는 1·4후퇴로 기록하고 있다.서울시민 30만명이 피란길에 오른 가운데 5일에는 중공군 선발대가 한강을 건너 영등포까지 진출했다.주문진,홍천,양평,수원을 잇는 제2방어선도 곧 무너졌다.유엔군은 7일 오산을 포기해 버렸다. ○양민희생자 6백명 그 2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남 거창에서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공비토벌에 나섰던 육군 제11사단 9연대 제3대대가 2월11·12일에 거창군 신원면에서 저지른 이 사건의 희생자는 6백명이나 되었다.이유는 공비와 내통했다는 것이었는 데 일일전과 보고는 주민 희생자수를 1백87명으로 기록했다.국회가 이를 문제시하고 4월7일 현지조사에 나섰다가 공비로 가장한 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주동자들은 구속되어 군법회의에서 실형을 받았다.그러나 모두 1년안에 풀려났다.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한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5월7일 해임되었다.그의 해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거창 사건말고 새로 불거져나온 국민방위군 사건이 더 크게 작용했다.이 사건은 51년1월 국민방위군 집단후송과 수용과정에서 고개를 들었다.국민방위군 설치법에 따라 제2국민병에 해당하는 17∼40살의 장정들을 방위군에 편입시켜 경북지역 각 교육대에 수용했다.이를 계기로 방위군 고위 간부들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빼돌렸다.그 부정규모는 당시 화폐 24억원,양곡 5만2천섬에 달했다. 국회는 4월30일 방위군 해산을 결의했다.이에따라 5월12일 방위군이 공식 해산되었으나 장정들의 귀향조치는 3월중순부터 이루어졌다.사건이 확대되고 희생자가 날로 늘어나자 정부는 진상조사에 나서 김윤근 사령관을 구속했다.다른 간부 5명과 함께 군법회의에 회부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사형이 선고된 5명의 방위군 간부들에 대해서는 8월13일 대구 근교에서 총살이 집행되었다.숱한 청장년을 헐벗게 하고 굶긴 건국이래 최대의 비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방위군 간부 5명 총살 1951년의 이 두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임기 내내 따라붙은 불명예였을 뿐 아니라 정적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특히 거창사건 주동자 가운데 김종원의 경우 뒷날 경찰총수인 치안국장으로 기용했다는 사실은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도덕성을 문제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이 사건들은 이기붕을 권력의 주변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가져왔다.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신성모 후임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이를 단초로 이승만 대통령을 핵으로 한 권력의 인맥이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는 장래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 기용에 앞서 거창사건의 책임을 물어 조병옥 내무장관,김준연 법무장관의 권고사직을 4월24일과 25일에 전격 수리했다.대통령은 조병옥을 오랫동안 못마땅하게 여겼다.당시 대통령의 업무일지에는 1951년1월 서울에서 내려온 이후 조병옥은 내무부가 있는 대구보다는 부산에 더 많이 머물러 있다고 기록했다.그 이유는 정치적 책략을 동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그리고 대통령을 찾아오는 일이 없고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게 고작이라는 불만도 곁들였다. 조병옥은 사퇴서를 보내놓고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래서 4월24일자 대통령 업무일지는 「조병옥은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굳혔고 대통령에 반대해서 싸울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주한 미국대사 무치오는 조병옥의 사표수리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다.이를놓고 이승만 대통령 쪽에서는 미국이 다음 대통령 선거를 좌지우지 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무치오가 새로운 내무장관을 장면과 같은 온건한 인물로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장면에게는 이미 국무총리직이 수임되어 있었다.장면은 사실상 주미대사로 워싱턴에 더 머물기를 희망했다.그럼에도 이승만은 새해들어 그의 소환을 결심하고 1월5일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시영 부통령이 5월9일 「시위」에 앉아 소찬을 먹는 격에 지나지 못했기 때문에 물러난다」는 서한을 신익희 국회의장 앞으로 전달했다.이와 더불어 부통령직 사임서를 피란국회에 보냈다.사임서가 국회에서 반려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본인의 고사로 3일후 국회 본회의가 이를 수리했다.국회는 두 차례의 보궐선거끝에 5월16일 김성수를 부통령으로 뽑았다.그 역시 잔여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1952년 정치파동의 와중에 전격 사임해 버렸다. ○개헌 결심…자유당 창당 한반도를 아비규환의 전쟁으로 몰아붙인 그 6월이 또 다가왔다.4월11일 전격해임된 맥아더장군에 이어 리지웨이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은 6월19일 철원,김화,평강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그러나 중공군은 금성지구 한국군 2군단 전면에서 춘계공세 이래 최대의 공격을 개시했다.공산군은 4월22일 제1차 춘계공세 이후 6월17일까지 21만5천9백명의 병력손실을 입었다.그럼에도 유엔군사령부는 아직 대공세 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승만은 계속 국회와 부딪쳤다.일반적 여론은 국회가 대통령을 간선으로 선출할 경우 그가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그래서 헌법개정을 결심했다.8월15일 그의 신당구상은 11월19일 자유당 창당으로 실현되었다.자유당 창당 이전인 10월17일 국무회의는 대통령 직선과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의결하고 11월20일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미 「알렉시스 존슨 파일」/미,한국전중 “기독교도 구출” 논의/전쟁 확산→한반도 포기상황 전제/북한측 박해 밝혀져 인권차원 거론 미국은 한국전쟁이 확산되어 한반도를 포기할 경우 한국민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구출하는 문제를 토의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알렉시스 존슨(Alexis Johnson)파일」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같은 기독교인 구출문제에 대한 논의는 1951년 11월2일에 작성한 미 국무성 회의비망록에 들어있다.회의에는 미 국무성 극동국의 러스크,동북 아시아과의 맥 크러킨이 참석했다.이는 미국 장로교인 트류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당시 미국은 다른 종교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특히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공산권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큰 박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유엔군 북진에서 드러나 더욱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 북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철저하게 말살되었다.가톨릭의 경우 함경남도 덕원 면속구의 피해는 컸다.1945년 민족해방 이후 1949년 5월9일 이후 수도원은 몰수 당했다.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많은 신부와 수사,수녀들이 고난속에서 순교했음이 밝혀졌다.개신교에서도 많은 순교자를 냈다는 사실이 서방에 전해짐으로써 기독교인들의 구출은 인권 차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민 기독교인 구출은 한국에 살고있는 미국 민간인 철수작전과 더불어 제기되었다.한국전쟁 발발 당시인 1950년 서울은 물론 대전이 예상이외에 빨리 북한군에 점령되어 미국의 민간인들이 포로로 취급받은 데 따른 대비책으로 미 민간인 철수는 심도있게 논의됐다.그러니까 이 비망록을 작성할 당시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가 불투명했다는 추론이 나올 수 있다. 알렉시스 존슨은 1930년대 후반 한국에도 살았던 외교관으로 이승만이 미국에 망명해 있던 시절 그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다.한때 미 국무성 극동아시아과에서 영향력을 가진 관리로 활약했다.
  • 추석연휴 총선사전운동 단속/귀향인사 빙자한 향응 제공/대검

    ◎관광·야유회 금품찬조 대상 대검 공안부(안강민 검사장)는 2일 내년 15대 국회의원 총선출마예정자들이 추석연휴기간동안 사전선거운동을 벌이지 못하도록 철저한 단속을 벌이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했다. 검찰은 이번 단속에서 ▲추석인사,귀향인사 등을 빙자한 금품제공 및 선전 ▲노인위안잔치나 노인회관등에 금품 또는 식사제공 ▲불우이웃돕기,위문활동 등을 명목으로 일반선거구민에게 금품 또는 식사를 제공하는 행위등을 집중단속할 계획이다. 또 추석인사명목으로 정당명 또는 입후보예정자의 직함이나 성명이 게재된 현수막·벽보·유인물등 선전물을 게시하거나 일반당원을 대상으로 한 당내행사에서 금품및 향응을 제공하는 행위,향우회·종친회·동창회·친목회 기타 사교단체등에 금품 또는 식사를 제공하는 행위등도 단속대상이다. 이와 함께 평소 지면이 없는 선거구민의 경조사와 개업식등에 금품을 제공하거나 선거구민의 관광·야유회 등에 기념품·경품등을 제공하는 행위,민속경기대회·체육대회·경연대회 등에 금품을 찬조하는 행위도집중 단속된다.
  • 효도 휴가비(외언내언)

    우리 조상에게 효행의 전형이 되었던 것은 「삼국유사」에 소개되고 있는 손순부부의 얘기다.신라 흥덕왕때 너무나 가난하던 이 부부에게 어린 자식이 노모의 밥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로채는 게 큰 고민거리였다.부부는 참다 못해 아이를 죽여서 묻어버릴 생각으로 산속으로 간다.한밤중에 땅을 파는데 괭이끝에 걸려 나온 것이 있었다.진기한 석종.청아한 소리를 내는 돌종 때문에 효성스러운 부부는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손순부부의 얘기 말고도 지극한 효행에 관련된 설화는 많다.부모 3년상을 산소옆 초막에서 보낸 효자가 호랑이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는 효행담도 전해온다.부모님 병환에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간병했다는 일화는 흔한 얘기.충과 효가 사회를 지탱하는 양대가치이던 시대에 있을 법한 일들이다. 그러나 산업화·핵가족화가 이루어진 요즘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행이자 비상식이다.효의 실천을 위해 자식을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닌가. 시대에 따라 효의 개념은 그만치 달라진 것이다.그렇다 해서 효자체가 윤리적 덕목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패륜이 횡행하고 있는 오늘의 사회지만 도처에서 효의 복원과 부활을 외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배경을 말해준다.노부모를 모신 자녀에게는 아파트추첨의 특전도 주고 어버이 생신날에 효친휴가를 주기도 한다.신입생과 학부형이 어울리는 「효도캠프」를 개설한 대학도 있다. 총무처는 올 추석부터 공무원의 「효도휴가비」를 대폭 인상키로 했다.효도휴가비는 설에도 지급된다.추석이나 설명절에 효도휴가비 받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 뵈오러 가는 길은 얼마나 흐뭇하고 가슴벅찰 것인가.열흘 뒤엔 추석이고 2천6백만의 귀성·귀경 대이동이 시작된다.이렇듯 치열한 귀향전쟁도 그 바닥에는 훈훈한 효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 귀향길 9월6일 아침·8일 하오에 떠나라/추석연휴 교통 안내

    ◎15개 IC진입 통제… 7∼10일 버스차선제/서울∼대전 6시간 예상… 9·12일 귀경수월/열차 3백94편 등 증편… 예매안내 「정보센터」 운영 올 추석연휴에도 서울에서만 4백만명 등 전국에서 2천8백만명이 이동하고 이 중 80%이상이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서울·수원에서만 추석 3일전인 9월6일부터 추석날까지 4일동안 고속도로를 이용해 내려가는 차량만도 77만8천대에 이르러 극심한 혼잡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건설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는 9월6일 아침 또는 8일 하오에 출발하기를 권한다.올라올 때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9일 또는 12일에 출발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건교부와 도공이 28일 발표한 추석절 특별수송기간대책(9월6일∼9월11일)을 통해 고속도로 이용실태 및 소통대책을 알아본다. ▷예상교통량◁ 전국적으로 추석당일인 9일 1백98만여대의 차량이 몰려 가장 붐빌 것으로 보이나 하행선은 9월7일이 피크다.서울 수원에서만 21만2천대가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부산은 3만3천대가 붐빌 것으로 예상된다.광주지역은 8일이 가장 많은1만8천대가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톨게이트 기준으로는 7일에 가장 많은 10만4천3백대가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그리고 9일 9만5천9백대,6일 8만7천3백대,8일 8만3천8백대다.서울기점으로 하행선은 9일에 차량이 가장 적을 것 같다. 서울 상행선은 10일이 최고로 교통체증이 극심할것 같다.11만2천8백대가 그날 한꺼번에 서울로 들어온다.11일도 비슷해 11만2천3백대,9일은 9만3천1백대로 추정된다. 서울기점을 기준으로 시간대별로 보면 하행선은 9월9일 상오1∼2시.상행선은 9월 9일 상오 4∼5시사이에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차량이 가장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서울 등 수도권 귀성객들은 출발과 도착시간을 그시간대에 맞춘다면 가장 수월하게 이동할 것 같다. ▷구간운행시간과 귀성분포◁ 서울∼대전의 경우 이번 추석연휴기간중 승용차로는 6시간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서울∼부산과 광주는 10시간 이상이다.그러나 버스는 서울∼대전이 평상시보다 10분정도가 긴 2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서울∼부산과 광주는 1시간20∼30분이 더 소요되는 6시간 정도로 잡고있다.고속버스 전용차선제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건교부와 도공등은 가급적이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귀성차량을 권역별로 보면 9월7일에는 충청권에 가는 사람이 30%정도로 가장 많고,9월8일에도 마찬가지다.영·호남등 고향이 먼 사람들은 추석날까지 전체 귀성차량의 18% 내외로 예상되어 충청권에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것 같다. ▷차량통제와 전용차선제◁ 이 기간에 경부고속도로 잠원,중부고속도로 광주,호남고속도로 엑스포 인터체인지 등 15개 인터체인지의 차량진입이 통제된다.9월7일 상오 9시부터 10일 자정까지 경부고속도로 양재인터체인지와 청원인터체인지간 1백24㎞ 구간에 버스전용차선제를 실시한다.9인승 이상 승합차량에 한해 진출입을 허용하되 6인 미만 승차한 경우와 지프형 승합차는 제외한다. 서울종합,강남고속버스터미널∼반포 인터체인지간과 서울 남부시외버스터미널∼서초 인터체인지간,부산 동부시외버스터미널∼경부고속도로 입구간에도 버스전용차선제가 실시된다. 하행선은 9월7일 상오 9시부터 9일 낮12시까지 경부선 잠원,반포,서초,수원,기흥,오산,안성 천안,청원,신탄진 인터체인지와 중부선 광주,곤지암,서청주인터체인지,호남선 엑스포,서대전 인터체인지의 진입이 통제된다.잠원,서초,광주,곤지암 인터체인지는 전차량에 대해 진출도 안된다. 상행선도 9월9일 낮12시부터 10일 자정까지 경부선 신탄진,안성,오산,기흥,수원,판교 인터체인지와 중부선 곤지암,광주 인터체인지의 차량진입을 통제한다.갓길운행이나 전용차선 위반차량에 대해서는 6만원의 범칙금과 30일간 운전면허가 정지된다. 한편 9월7일에 경부선 반포∼서초 인터체인지간이 4차선에서 6차선으로,서초∼양재 인터체인지간이 4차선에서 8차선으로 각각 확장 개통되고 서울∼부산·대전간에 고속버스 왕복승차권제와 신용카드 전화예약제가 실시된다. ▷교통수단증편및 안내◁ 임시열차 3백94편,3천2백90량의 객차를 늘려 2백70만명을 수송키로 하고 구로·서부공단의 근로자 수송을 위해 12개 전용 임시열차를 영등포∼부산·목포·순천 및 수원∼부산·목포·순천간에 투입한다. 고속버스는 예비차 3백79대를 추가투입,이 기간에 1백26만명을 수송키로 하고 수요가 더 늘어나면 전세버스 5백여대를 추가로 투입한다.항공도 하루 평균 45회 증회운항하고 연안 여객선도 하루 평균 1백회 증회 운행한다. 한편 건교부내에는 건설교통종합정보센터가 설치돼 고속도·국도·시내도로의 소통상황과 철도·항공·고속버스 등 각종 교통수단의 좌석예매현황등을 알려주게 된다. 종합정보센터 전화번호는 504­9000·9119,500­4113.
  • 주유소 치열한 판촉전/「거리제한 철폐」로 난립… 적자메우기 안간힘

    ◎도우미 채용·미니스커트 마네킹으로 “미인계”/귀향길 고객상대 다단계 경품티켓 준비까지 높은 볼륨의 음악에 3∼4명의 에어로빅 무용수들이 수영복에 가까운 체조복 율동으로 운전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고객들의 출입구에는 정장차림의 도우미 아가씨들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있다. 진입로 한켠에는 미니스커트를 입힌 마네킹을 세워놓거나 한복차림의 여성을 고용한 곳도 있다. 흡사 야간업소가 손님들을 끌어들이기위한 「미인계」처럼 비쳐지지만 요즘 웬만한 주유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한동안 과당경쟁 폐해를 없애기 위해 수그러 들었던 주유소들의 판촉경쟁이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여름 휴가철인 지난달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최근 추석특수를 앞두고 경쟁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과당경쟁에 따른 업주들의 살아남기 전략도 하루가 다르게 정도를 더하고 있다. 전국에 30여개 영업망을 두고 있는 O주유소측은 올 추석시즌(9월1일∼15일)의 매상목표를 1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목표달성을 위해 화사측은 올추석연휴동안 귀향길 방문 차량에게 경품티켓을 주고 귀경길에 들리면 고가품(?)과 바꿔주는 연계 판매전략을 세워두고있다.물론 평균 1천∼2천원대 안팎의 경품서비스는 기본으로 제공한다. 지난해 윷놀이 기구로 인기를 끌었던 경부고속도로의 K주유소측은 올해 바둑판과 10장들이 카메라필름을 준비중이다 인근 H주유소는 일정액의 티켓을 주어 티켓액수만큼의 기름을 체워주는 실속서비스로 맞설 생각이다 이밖에도 어린이장난감,효도상품,세차,심지어 노출이 심한 여성들의 눈요기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아이디어도 가지각색이다. 판촉경쟁이 심해지는 만큼 업주들의 속사정도 딱하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10년째 주유소를 해오고 있는 O주유소 대표 최모씨(57)는 『2∼3년전만해도 월수 2천만원이상의 비교적 높은 수익을 올렸으나 거리제한이 철폐된 1년새 주변에 4개의 주유소가 생겨 적자폭이 커지자 전업을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또 경남과 광주 등 몇몇 지방주유소에서는 적자액을 메우기 위해 물을 섞고 계량기를 속여 팔다 적발되기도 했다.경품관련업계는 올 매출액규모를 5백억원대로 보고 있다. 한때 「독점적 호황」을 누리던 주유소의 변신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역시 경쟁이 있어야 서비스 개선이 이뤄진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미인계 등 일부업소의 보기에 민망한 상혼에 대해서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 한중분규 극적 타결/임금 7% 인상 합의

    【창원=이정규 기자】 한국중공업 노사분규가 23일 노사가 임·단협안에 잠정합의함에 따라 전면파업 6일만에 타결됐다. 노사 양측은 22일 상오 11시부터 이날 상오 11시까지 철야로 마라톤협상을 벌여 ▲통상임금 7.1%(5만5천7백58원)인상 ▲건강관리비 월 2만원 지급 ▲상여금 1백%인상 ▲연말성과급 추석전 1백%·12월 1백%지급 ▲추석귀향비 20만원지급 등에 합의했다.
  • 현대자/새달부터 주42시간 근무/단체 협상 합의

    ◎기본급 5.7% 인상 현대자동차가 주 42시간 근무를 실시한다. 이 회사 노사는 21일 하오 4시부터 22일 상오 2시까지 제15차 임·단협 협상을 갖고 기본급 4만8천6백원(통상급 5·73%)과 호봉 승급 2만5백원,산업안전보건비 2만5천원 등 임금 9만4천1백원 인상과 추석귀향비 15만원을 포함해 일시금 1백만원 지급 등에 잠정합의했다.
  • 장백진과 혜산시(압록강 2천리:2)

    ◎장백진에 조선족 2∼4세대 1만3천명/다리하나 건너 혜산시,북한철도 종착점/“못가는 고향땅”… 가슴엔 증오의 그리움만 일제치하에 우리민족이 무리지어 건넜다가 8·15 감격속에 다시 우르르 몰려 고국땅으로 넘어갔던 국경의 강.백두산기슭 장백조선족자치현 탑산에서 내려다본 국경의 강 압록수는 올해 8월 아침에도 유유했다.그러나 역사는 의구한 산하와는 달리 운명이 바뀌어 강건너 고국은 분단된 지 50년이 되었다. 그 강건너 지척에다 고국을 두고 중국에 눌러앉은 조선족은 백두산 아래 장백현에도 보금자리를 이루었다.장백조선족자치현이라는 행정구역상의 명칭처럼 장백현에는 조선족이 많이 산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장백현의 조선족 이주민 후손들은 1만3천1백명으로 전체인구의 17.1%를 차지하고 있다.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았던 1929년에는 4천2백57가구 2만4천3백49명이나 되었다. ○전체 인구의 17% 차지 장백진 조선족에게 고향을 물어보면 모두가 고국의 고향을 댄다.이주민 1세들이야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2세는 물론 4세들 까지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대단했다.그러나 강건너 북한 땅에 고향을 둔 사람은 여권이나 통행증이 없어서 못 가고,한국에 고향이 있는 사람은 혈육이 없거나 연령제한으로 선뜻 귀향길이 열리지 않고 있다.이래저래 애만 태우는 조선족은 고향이 원수 같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장백진에 사는 이태원(80·강원도 회양군 태생)노인은 갈래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증오 섞인 말로 표현했다. 『누군들 고향 떠나기가 소원이겠수.등 따뜻하고 배 고프지 않으면 안 떠났을 거우다.그래도 고향은 핏줄 같아서 가보고 싶을 때가 많수다.나이들면 새록새록 더 생각이 나디만 맘대로 갈 수가 없다우다.어려서 떠나서리 잊을 만한 나이도 되았는데….어떻게 고쳐 맘먹으면 가지도 못하는 고향이 고향이가 하고 단념할 때도 있수다.그런데 그 맘이 오래가지 않으니 어찌하갔수.그놈의 고향이 뭔디…』 이태원노인은 13살 나던 정월 열엿새날 고향을 떠난 것으로 정확히 기억했다.헐벗고 굶주려도 고향과 선산을 지키겠노라던 아버지도 더 버티지 못하고 짐을 꾸렸다.만주를 목적지로 하고 떠났지만 함흥에 이르러 생각이 달라졌다.조선땅을 떠나기가 싫었을 뿐 아니라 신흥군 발전소공사장에 가면 돈을 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신흥군 장진에 막상 들어갔더니 발전소 일이라는 것이 도수로터널공사여서 하루에도 수십명씩이 죽어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어 삼수 개원을 찾아나섰다.그런데 길에서 일곱식구가 개원에 들어갔다가 다 죽고 혼자 살아온다는 사람을 만났다.거기도 살곳이 못된다 싶어 결국은 조선땅을 떠나기로 하고 6식구가 혜산을 거쳐 장백현으로 들어와 눌러앉았다.조선족이면 그만한 사연은 다 가지고 있다.그럼에도 지지리도 못 살아 버리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동물적 귀소본능에서일까. ○한족도 망향탑 세워 탑산에는 망향봉이라고 이름한 산봉우리가 있다.그리로 발길을 옮겨보았다.조선족이 그런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아닌가 했지만 사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족이 모이는 곳이라 했다.웬 한족의 실향인가 하겠지만,장백현에는 하북성이나 산동성 사람들이 많다.그들은 중양절이면 망향봉에 올라 서남쪽을 향해 꿇어앉아 절을 올리며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는 것이다. 이 망향봉에는 비석 하나가 서 있다.거기에 「그제날 고향이 그리워 눈물 짓더니 오늘은 고향을 바라보며 환히 웃네」라는 한시가 보였다.「고향을 바라보며 환히 웃는다」는 한족의 그 마음과 우리 조선족의 마음은 사뭇 달랐다.조선족의 심사를 읊조리라면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다」라고 했을 것이다.손을 뻗으면 닿을듯 가까운 강건너 혜산시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처지고 보면 조선족의 망향의 한은 뼈에 사무치고 있다. 혜산시는 지난 1954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일부를 합해 신설한 양강도의 중심 도시다.삼수와 갑산을 이웃한 이 국경도시의 인구는 약 22만명이라고 한다.이른바 백두산청년선(길주∼혜산간),삼지연선(혜산∼삼지연간),북부내륙선(혜산∼운봉간)등의 철도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특히 삼지연선은 백두산의 그림자가 수면 위에 일렁이는 삼지연이웃에 닿는 철길인데,삼지연 일대는 북한이 자랑하는 혁명 사적지라고한다. 혜산시는 조선전쟁(한국전쟁)때 운명이 바뀔뻔했다.장백진의 노인들은 19 50년11월께 혜산에 들어왔던 미군들을 먼 발치로 보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노인들 뿐아니라 50대들도 강건너에 온 미군들을 기억해냈다. ○미군기 폭격도 받아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난 뒤에 미군들은 없어졌으나 장백진 사람들은 혜산쪽을 향해 곤두박질하면서 폭격을 해대고 다시 치솟는 미군 비행기 꼬리를 전쟁 내내 목격했다.장백진 조선족 중에는 연변조선족처럼 조선의용군 자격으로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어떻든 조선전쟁을 피부로 느꼈을 만큼 혜산과 장백진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다.장백진 사람들은 모진 사람 곁에 있다 벼락 맞는 꼴로 전쟁을 간접적으로 치른 셈이다.돌 팔매질은 아니나 혜산의 돌이 장백현으로 날아올 때도 있다.지난 1971년 혜산시에서 도로공사를 하느라고 터뜨린 다이너마이트가 폭파하면서 돌멩이가 압록강을 넘어 장백현 마록구로 날아들었다.이 때에 호옥방이란 중국사람이 돌에 맞아 불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는반대로 지난 1977년 4월25일 장백현 마록구 도로공사 현장에서 폭파작업을 할때 날아간 돌이 강을 넘어 혜산시 청동고등중학교 학생 김경옥양을 때렸다.그 학생은 아예 생명을 빼앗겨 버렸다.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 쪽에서 으레 위문대표단을 피해자 쪽에 보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압록강은 국경이어서 사사로운 도강은 어림없는 일이다. 이 팔월 무더운 날에 옛 함경도 땅 양강도 냉면 한 그릇을 맛보는 것도 좋으련만 생각으로 그쳐야했다.함께 동행한 서울신문 김명국기자도 함경도 냉면 이야기를 했더니 침을 삼켰다.김기자는 아마도 통일이 되어야 함경도 냉면을 제바닥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서글픈 감회가 들었다.
  • 「정치방학」 실종/의원들/지역활동 포기

    ◎민심 되찾기 대책 부심… 귀향 주저­민자/분당 소용돌이 속 갈길찾기 촉각/민주 국회의원들의 하한기 활동에 이상기류가 보인다. 예년 같으면 「정치방학」을 맞아 중앙정치 무대에서 잠시 벗어나 지역구에 매달릴 때다.국회의원 총선이 9개월밖에 남지 않는 시점이어서 더욱 그렇다.그런데도 의원들이 서울로 「역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다름 아니다.민자당 의원들은 지방선거 패배 이후 지역구 가기가 두렵고,민주당 의원들은 집안사정이 복잡해 내려갈만한 여유가 없는 탓이다. 민자당 의원들은 지방선거에서 등돌린 민심을 바로잡을 길을 찾지 못해 지역구 활동을 주저하고 있다.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잡음이 일면서 균열된 조직을 정상화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중앙당이 민심수습 대책을 마련해 주기만을 고대하지만 중앙당이라고 뾰족한 대책이 있을 리 없다.지역구에서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데 대책도 없이 내려가서 뭘 하냐는 푸념들이다. 경북 김천·금령출신의 박정수 세계화추진 위원장은 『지역구활동을 할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다음달 초까지 지구당 간부들도 모두 휴가를 보내고 당분간 서울에서 머물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남 밀양이 지역구인 신상식의원은 민자당 공천후보가 밀양시장선거에 낙선하자 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그래서 『부덕의 소치…당원들간의 앙금을 털어버리자』고 호소하는 인사장을 당원 2만여명에게 돌리는 것으로 지역구활동을 대신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김윤환 조직위원장은 『지방선거때 지구당위원장이 와봐야 감표요인만 된다는 지구당이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전하고 『현역의원들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당쪽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신당문제가 의원들의 발을 묶고 있다.신당파·구당파·잔류파 등으로 삼분되면서 한가로이 지역구에 매달릴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 부천 원미구의 안동선의원은 『신당쪽으로 결정했지만 당내 사정을 지켜보느라 지역구에 내려가지 못하고 대신 다음 달에 지역구민들을 40∼50명씩 세차례에 걸쳐 국회를 방문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경기 여천출신인민주당의 이규택 대변인은 경조사를 빼고는 지역구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구당모임 대변인인 제정구의원도 후원회 행사 말고는 지역구활동을 일체 자제하고 있다는 것. 이같은 분위기 탓인지 외국에 나간 의원들이 상당수다.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외유길에 나선 의원만 해도 60여명에 이른다.경북출신의 한 민정계 의원은 『지역구에 내려가 봐야 유권자들 시선이 따갑고,서울에 있어봐야 정국해법은 나오지 않고,그래서 외국에나 가자는 동료의원들이 몇몇이 있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외국방문에 나선 의원들도 적지 않다.민자당의 이세기·곽정출의원은 중국을 다녀왔고,서정화·김진재의원은 미국과 영국으로 떠났다. 민주당에서는 이 철의원과 이기택총재 계보인 이상두 하근수 강수림의원 등이 미국과 유럽등지로 떠났다.김상현의원도 앨 고어 미국부통령 등을 만난다는 명분아래 18일부터 미국 방문길에 나섰다.
  • 역설의 일본사/이자와 모토히코 지음(화제의 책)

    ◎일본 정신의 본질·고대 대한관계 고찰 일본 정신의 본질과 일본 고대사의 쟁점,일본 천황가를 중심으로 한 고대 한일관계들을 고찰했다. 지은이는 조화를 뜻하는 「□(와)」에 일본인은 최고의 가치를 둔다고 분석했다.그들은 일정한 틀 안에서는 대립을 피해 서로 조정하며,일단 정해진 사항은 굳게 지킨다.그러나 그 범위를 벗어난 상대에게는 「□」가 적용되지 않는다.따라서 순박한 농부가 군복을 입고 출병하면 어떤 잔혹한 짓도 하지만 귀향한 뒤에는 다시 순한 농부로 돌아간다는 것.이같은 「□」정신은 일본 역사 초기부터 나타나며 이를 음사한 한자가 「위」「화」라고 주장했다. 또 「천황가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학설에 대해 지은이는 그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일 양국이 합동으로 천황릉을 발굴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기자 출신 작가인 지은이는 책머리에서 일본 사학계의 문제점 세가지를 자세히 지적했다.사료에만 얽매이며 권위주의적이고,연구대상으로 삼은 시대의 정신배경을 무시한다는 것이다.정연한 이론이돋보이는데다 우리 학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어 관심을 끈다. 고려원 유재성 옮김,7천5백원.
  • 서두르는 워싱턴,신중한 서울/이도운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미·북 「준고위급회담」이 진행되는 주무대는 콸라룸푸르시 동부의 미국대사관과 북한대사관이지만,시 동남쪽 신시가지에 자리잡은 리젠트 호텔도 벌써 3주가 넘게 국제적인 뉴스의 산실이 되고 있다. 이 호텔의 14층에 한국의 장재용 주미공사와 미측 수석대표인 토머스 허바드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일본의 다케우치 유키오(죽내행부) 외무성 아주국 심의관이 나란히 묵고 있다. 미·북 협상과정에서 한·미·일 3국 공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세 사람은 수시로 만나고 있다.특히 장공사와 허바드 부차관보는 양국 대사관에서 공식 협의를 하기도 하지만,아침식사를 함께 하거나 티 타임을 갖기도 하고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쳐도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지금까지는 이번 미·북협상이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돼왔던 것처럼,한·미간 공조도 별 탈 없이 진행돼왔다. 그러나 미·북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협상의 쟁점이 한국형 경수로의 표기와 부대시설 추가지원 문제로 좁혀지자 장공사와 허바드 부차관보간에 다소 서먹한 분위기가 형성된인상이다. 엉뚱하게도 협상의 양상은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가 아니라 미국이 한국측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이런 와중에 특히 우려되는 것은 미측이 왠지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허바드 부차관보로서는 3주 가까이 계속되어온 「지겨운」 회담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해 버리고 「핵협상 타결자」로서 귀향하고 싶을지 모른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아침 김영삼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가진뒤 곧바로 로버트 갈루치 핵대사와 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서울로 파견했다.마치 미국이 한국의 양보를 설득하기 위해 총공세라도 펴는듯한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제네바 미·북 3단계 회담때도 미측은 막바지에 타결을 서둘러 핵심인 경수로형 문제를 얼버무리고 넘어갔다.이 때문에 제네바 합의는 매우 조악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비판받아오고 있다. 또 제네바 합의가 나온지 8개월이 지난 오늘 열대의 콸라룸푸르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수로 협상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것도 제네바에서 합의를 서두르다가 마무리를 그르쳤기 때문이라는 점을 미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짝 못찾는 농촌 총각(두만강 7백리:15)

    ◎처녀·총각 빌율 1대25… 장가들기 “별따기”/“힘든일 싫다” 혼기찬 여자들 도시로 몰려/노총각 신세 면하려 한밤 과부 보쌈질도/딸가진 부모 섧다는건 옛말… 아들둔 부모들 한숨만 어느 날 하루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 들렀더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마을에 경사가 났다. 34살 노총각이 용정시 조양촌의 여인을 아내로 맞는 날이라 잔치로 떠들썩했다.그도 그럴 것이 몇해 사이에 딸들을 외지로만 내놓다 모처럼 여인 한 사람이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법석을 떨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구촌에는 혼기가 찬 처녀가 단 1명 뿐이어서 우글거리던 노총각들도 경쟁자가 하나 줄어든 터라 이날 혼사가 사실상 기쁘기도 했다.하지만 노총각들의 기쁜 마음이란 어디까지나 제 생각들이었다.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마시는 꼴이라고나 할까.요즘 세월에 귀한 딸을 농촌에 주려는 부모도 흔치 않거니와 농촌총각을 배필로 삼겠다는 처녀도 없기 때문이다.이날 맞는 신부도 남편 하나를 이미 거친 이혼녀인데다 그나마 다리를 저는 불구자이고 보면알만한 일이다. ○농촌 시집 생각안해 나이가 들면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이 인륜대사이거늘 모두가 옛말이 되었다.연변의 시골 행정구역인 향진의 총각 처녀가 배필을 맞을 수 있는 적정비례가 깨져 25대1이라는 수치도 나와 있다.그래서 처녀가 아무리 박색일지라도 총각들을 줄세워놓고 이마를 튕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거짓말이 아니다.시골치고 생활이 윤택하다는 용정시 대소 과수농장 총각들은 장가 못가는 근심이 없이 살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처녀들이 제 마을 총각들은 쳐다보지 않고 한 수를 높여 도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오히려 여성이 풍년이다.공장과 상점 등에 취직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연줄도 없고 가진 재간도 없는 여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직업은 음식점과 유흥장소이다.그녀들은 적지 않게 자의든 타의든 부모가 물려준 몸을 밑천으로 돈주머니를 챙긴다.잠깐 사랑이 50원이요,긴 밤 봉사면 1백원이 표준이다.그러나 통이 큰 사내들을 만나 성심 봉사로 나오면 돈 액수가 큰 폭으로 오른다.한달 수입이 보통 4천∼5천원,대개 젖가슴을 타고 넘는 사내의 수가 많을수록 수입이 많다. 매음이 성행하면서 도시에는 성병이 만연되고 성병환자가 불어나고 있다.성병진료소가 골목마다에 늘어섰다.공동변소,전선대,벽마다에 「일차성 제근」이라는 유혹으로 성병치료 광고판이 나붙는다.한국의 보따리 장사꾼들은 성병약을 가져다가 몇배의 값으로 도매하여 돈을 벌기도 했다.매음은 불법으로서 지하영업으로 되어 있다.일단 경찰에 잡히면 남자는 5천원 벌금에 행정처벌을 받고 여자는 벌금형에다가 15일 구류를 살아야 한다. ○도시 유흥가로 전전 유흥가에 발을 들여놓은 여성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남성들이 징그럽다는 것과 돈을 벌면 혼자서 살지언정 시집은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징그러운 남성들을 상대로 쉽게 돈을 벌면서 매춘을 후생수단으로 삼는 이들 여성은 귀향의 꿈은 아예 꾸지도 않는다.매춘을 일삼는 여성들 사이에는 착한 농촌총각 약혼자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 경우도 있다.유행가 가사같은 한 농촌청년의 하소연을 들었을 때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제 이름 만큼은 밝히지 마시라우요.내래 3년을 사랑한 약혼녀가 있었습네다.그런데 장인될 양반이 중풍에 걸려 누었지 뭡네까.돈은 자꾸만 들고….생각다 못해 약혼녀가 돈을 벌러 연길로 나갔디요.그래서 내래 가시집 논밭까지 다 부쳤수다.나중에 알고봤더니 유흥가에 있었는데,파혼을 하자고 기래요.종당에는 거기서 만난 한국사람 기업가의 첩이 됩데다 그 한국사람이 아파트까지 사주었다니 어디 고향에 오갔시요.총각귀신이 되는 수밖에 없디요』 옛날에는 딸 가진 부모는 두번 섧다고 했다.낳아서 섧고 시집 보낼 때 섧고….지금은 세월이 바뀌어 아들을 둔 부모들이 한숨을 쉬게 되었다.대소 과수농장의 한송원(72)노인은 장가 못가는 사람들을 위해 과부 동여매 오던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냈다.노총각들이 장가 못가는 꼴이 하도 안쓰러워서였을 것이다. ○약혼녀에 배신당해 노인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했다.마을에 공삼이라는 홀아비가 아들 둘을 데리고 사는 모양이 딱해서 과부 동여매 올 상논을 했다.마침 남평촌에 젊은 과부가 있다는 말이 나와 동여매오기로 하고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 쳐들어갔다.과부를 이불채로 말아 메고 오는데 이로 물고 뜯고 앙탈을 부리다가 나중에는 지쳐 체념하는 눈치를 보였다.그제야 과부를 내려놓고 담배쉼을 하는데 여자가 말을 걸었다. 과부의 말인즉 『도대체 홀아비가 누군가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당사자인 공삼이는 키도 작고 못생긴 터라 허우대가 좋은 한응호가 나섰다.과부는 마음에 들었는지 유순하게 업혀왔다.그런데 막상 신방을 차리고 공삼이를 밀었더니 과부가 『그 사람 아니다』라고 울며 행악을 부리더란다.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 맞다』며 억지로 첫날밤을 치르게 했다.거기서 새로 얻은 아이들이 커서 지금도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과부 동여매오기 이야기가 나왔을까.연변농촌의 총각 짝짓기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있다.
  • 「노마지지」 살려쓸줄 아는 사회로(박갑천칼럼)

    전라도 영광에 사는 선비 채씨는 여러번 과거에 낙방했다.실망한 그는 늦게 얻은 아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그러고서 죽었다.어느날 이정이 관가의 전령을 가지고 채생한테 와서 읽어달라고 하자 글을 모르는 그는 화가 나서 내뜨려버린다.이정은 선비랍시고 글을 모르니 개·돼지와 뭐가 다르냐면서 돌아갔다.부레끓은 그는 공부를 시작하여 52살때 명경과에 급제하고 그 고을 원이 되어 귀향한다.「청구야담」에 쓰여 있는 얘기다. 요즈음이라면 정년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그는 벼슬길에 오른 것이 아닌가.성여신·김태시·백현룡같은 영남유생이 나이70인데도 과거공부를 그만두지 않은 것(「계서야담」)은 늙음이 벼슬길 오르는 것과는 관계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어쩌면 그들은 기로과 응시를 위해 정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 영조32년(1756년)기로과라는 과거시험이 처음으로 실시되었다.이 기로과는 왕이나 왕비,혹은 대비나 대왕대비의 나이가 60살 또는 70살이 되었을때 그를 경축하는 뜻으로 치러졌다.응시자격은 60살 이상 되는 노인에게만 있었다.1756년은 대비의 나이가 70살 되는 해였는데 이 첫 기로과에서는 문과에 이가우등 6명,무과로는 이명한등을 뽑았다.60이 넘어 무과에 급제한 사람은 어떤 기골이었을까 생각해보게도 한다. 이런 풍조였으니 방촌황희같은 이는 만인지상인 영의정의 자리에 타계하기 3년전인 87살까지 앉아서 국사를 처결했다.방촌의 경우는 특수한 사례였다고 하겠으나 그렇게 나이를 상관하지 않는다 할 때 60살 과거합격도 결코 늦었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60이면 정년이란 이름의 굴레를 쓰고 시르죽어 있어야 할 오늘의 현실과 비겨지는 옛일이 아닌가 한다. 정부투자기관등 공공기관에서의 고령자채용이 늘어나게 되었다.경제부총리가 지시한 일이므로 넉장뽑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그 결과 고령자가 얼마나 더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뜻부터가 깊다.그래서 반가워진다.오늘의 우리사회 「젊은늙은이」들은 옛시조마따나 『늙기도 설워라커늘 일을조차 뺏을까』고 생각하고들 있는 현실이 아닌가. 「한비자」에 노마지지란말이 나온다.관중이 했던 말이다.나이든 사람은 그만큼 만고풍상을 겪었다.경험에서 얻은 「늙은 말」의 지혜를 살려쓸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겠다.
  • 학생회간부 자해 병역기피/인천대/1명구속·2명 수배

    서울지검 특수2부 오세경 검사는 9일 인천대 총학생회 전문화국장 이병길(23·기계공학과 3년 제적)군을 병역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총학생회 전부회장 김정훈(영문학과 4년 제적)군과 전동아리 연합회장 이동주(22·법학과 3년 제적)군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이들은 인천대 총학생회 간부를 맡으면서 지난해 8월 입영영장이 나오자 군입대에 따른 학생회 활동의 위축을 우려해 팔 등을 일부러 부러뜨려 입대를 기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역입영대상자인 이군은 지난해 10월 대학총학생회 사무실옆 베란다 난간에 왼팔을 올려 놓고 수배된 이동주군에게 각목으로 내리치게 해 전치 8주가량의 상처를 내고 입대,군의관으로부터 3개월동안 귀향처분을 받았다. 이군은 이어 지방병무청으로부터 다시 신체검사통지가 나오자 손으로 유리창을 깨 상처를 내고 입대를 피했다.
  • 후투족 난민 2천명/르완다에 귀환 허용

    【키갈리 AP AFP 로이터 연합】 2주전 수천명의 대량학살극이 벌어졌던 르완다남부 키베호난민캠프에 투치족군대에 의해 포위돼 있던 약 1천8백명의 후투족난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합의했다고 세스 센다숀가 내무장관이 4일 발표했다. 후투족난민이 무사히 고향으로 귀환하게 되면 추가유혈사태로 번질 것으로 우려되던 키베호난민촌의 포위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센다숀가 장관은 『원칙적으로 그들은 모두 귀향하는 데 동의했으며 우리의 목표는 난민촌에서 그들을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당국이 그들중 극단주의자를 색출할 수 있도록 고향으로 귀환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미용실 종업원 살해/20대 긴급 구속

    【인천=김학준 기자】 인천 동부경찰서는 9일 윤태수씨(28·무직·인천시 남구 주안동 61의11)를 강도살인혐의로 긴급구속했다. 윤씨는 8일 상오8시 30분쯤 인천시 남구 주안4동 향수머리방에 침입,청소를 하던 종업원 박모씨(21·여)를 흉기로 위협해 엎드리게한 뒤 금품을 털려다 함께 있던 미용사 송귀향씨(25·여)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려 하자 송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다.
  • 추상화가 유영국(이세기의 인물탐구:72)

    ◎간결한 선­강렬한 색채 “산의 화가”/데생을 하지않은 성품… 비례로 화면 골격잡아/자신의 그림 천여점 보좌,12일부터 공개 전시/고교2년때 화가 결심… 도일후 대학3학년때 일 미술전 대상 수상 그의 산은 항상 젊다.거센 불길로 타오르거나 짙푸른 숨결로 우거져 있다.화면 여기저기서 문득문득 솟구치는 빛의 반사는 비바람과 일출,일몰을 함축한다.단순하게 선 하나를 그었을 뿐인데도 원근의 면과 지평선의 무한공간,원과 삼각형이 절묘하게 조화된다.잡다한 수사학을 떨친채 그의 산은 높고 꿋꿋한 기상으로 피안을 우러르고 「강렬하고 명쾌한 색채의 변부」는 급류처럼 화면에 휘몰아친다. 그가 산을 그리게 된 것은 「산이 높아 골이 깊다.(산고곡심)」는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그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친 속에서 산만을 바라보며 성장했다.울진의 중첩된 산들은 습곡단층을 이루면서 항상 무엇으론가 꽉차 있었고 그때부터 산은 무한한 신비감과 감동으로 그에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산의 작가」이자 「원색의 연마사」로 대변되는 화가 유영국은 『화가의 눈은 항상 먼곳을 바라볼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먼곳으로 눈을 돌릴때 산과 바다와 자신의 세계가 도저(도저)하게 펼쳐진다.일부러 산을 그리지 않아도 자연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절로 『산과 바다가 대어나온다』고 도했다. ○“항상 먼곳을 보라” 강조 「근대한국미술논총」을 보면 평론가 김영나는 「1930년대 동경 유학생들」이란 글에서 『유영국의 경우 19 48년부터 계속 산을 주제로한 그림을 그려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제국미술학교출신이며 판화가인 정규는 『1930년대 자유전을 대표한 추상주의 화가는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이지만 그중에서도 철저한 우리나라의 추상주의 화가는 유영국』이라고 단정하고 있다.그만큼 보이지 않는 변화속에서 산에 대한 그의 사고와 사상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틀속 갇혀 안주하는 형은 아니다.구성과 묘사가 완성되는 타블로와는 달리 초기엔 크고 작은 나무판을 콜라주한 릴리프(부조)적인 방법으로 앵포르멜 경향을보이고 있다가 차츰 기하학적 구성에서 벗어나 넓은 면과 밝은 색채,직선을 선회한 곡선의 이미지로 장식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색채 감정에 대해 『매우 투명한 원색이 주류를 이루면서 화사한 색채의 구성은 경쾌한 사유를 동반한다』고 말한다.모든 것을 극도로 걸러낸 생략과 절제는 이미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극치로서 색채언어를 완결했다는 의미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것은 서울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반때 부터다.일본 유학 안내팸플릴을 보고나서 화가가 될것을 결심했으나 그는 도무지 데생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망설이던 끝에 데생시험이 까다로운 동경(동경)제국미술학교 대신 데생시험이 없는 동경(동경)문화학원을 지망하게 되었고 혼자서 데생을 공부하는 모색과 탐구의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지금도 그는 그림을 그릴때 데생을 하지 않는다.화면에 자리와 크기만 정하고 공간관계 비례관계로 골격을 잡아 나간다.야외에서 스케치를 하는 일도 없고 미대 시절외엔 대상을 놓고 그림을 그린 적도 없다. 당시동경(동경)분위기는 일본 문부성이 주도하는 문전(문전)과 이과전(이과전)이 대립되어 일년 내내 전시회가 열릴 만큼 회화운동이 열기를 띠고 있었다.그는 대학 3학년때인 38년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에서 영예의 최고상을 차지 했다. ○한때는 고기잡이 생활 그러나 전쟁말기의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선 면 색」의 삼요소로 형태의 절대화를 추구하게 되었고 설화성과 감정이 배제된 단순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그가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의 작가 몬드리안을 좋아하는 이유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말하는 회화」이기 때문이며 그림은 그래야 된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화가로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자 그는 43년에 귀국하여 일단 고향에 잠적했다.한동안 고기잡이 배를 타는 엉뚱한 생활을 하다가 해방과 함께 김환기 장욱진 이규상과 신사실파전을 창립,「절제된 율동미로 신비스런 평면세계를 전개」하기도 했으나 또다시 6·25가 터져 귀향,이번엔 죽변에 정착하여 그림을 멈추고 부인 김기순여사와 함께 양조장 경영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새벽부터 밤늦도록 술을 거르기도 하고 마차로 손수 술배달에 나서기도 했다.그러다가 『이만하면 생계에 급급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수 있다』고 생각되자 다시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고향에 두고온 양조장은 그가 그림을 팔지 않아도 될만큼 얼마동안은 생활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처음엔 난로를 피워도 손이 시려운 약수동의 적산가옥에서 몇시간씩 선채로 그림을 그린 것이 화근이 되어 뒷날 골절을 앓게 되었고 79년부터는 화곡동에 거주 7년전부터 건축가인 차남(건)이 지어준 지금의 신방배동으로 이사해 왔다.자녀는 2남2녀.다리가 불편 해서 주로 휠체어를 타고 그림을 그린다. 최근의 그는 산의 형상성을 존중하여 자연으로 귀의하려는 또다른 변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 「동양적인 또는 한국적인 자연관을 지닌 때문」이며 근작들에 이르러「더욱 불타는 색채의 대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산은 모든 자연풍경의 시초이자 종말」이라는 러스킨의 말을 절감시킨다.처음은 즐겁고 다음은 깊은 사색을 던지며 상서로운 관유(관유)와 유열의 진동이 화면전체에 창만해 있다. ○휘체어 타고 그림 그려 언제나 시대의 첨단에 서서 선도적 구실을 했다는 자부심을 감추고 갈채를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까.그는 최초의 추상작가니 선구자니 하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자신이 좋아서 했을뿐」선구자가 되겠다는 의도는 없었기 때문이다.회화의 개화를 주도한 이후 혼란과 무분별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언제나 의연하게 자신의 세계를 지켜왔고 현재도 그는 시대적인 경향으로 자신만의 회화간을 고수하는 자세다. 큰 키에 희끗한 머리.은근하게 멋이 풍기는 옷차림에 꾸밈없는 경상도 억양이 그럴수 없이 정답다.직업화가로서 고집스럽게 평생을 버텨온 그로서는 실은 커다란 우여곡절을 겪었다곤 할수 없다.그의 절친했던 화우인 장욱진같은 기인기질도 천재적 광기도 신화도 없어 보인다.다만 싫은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모슴을 쉽사리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아침마다 동네를 산책하고 한달에 한번 예술원 회의,병째 마시던 폭주습관은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은 천여점,드물게 거의가 보관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은 한 화가의 위대한 투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직장에 나가듯 하루 8시간의 작업을 지켰으나 요즘은 아침 저녁 한시간씩 그린다. 그의 화실에는 근작 소품들의 손질이 끝나가고 있다.12일부터 갤러리 현대 초대로 실로 10여년만에 60년대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한지리에 펼치기 위해서다. 그의 산하는 여전히 푸르르고 보석더미처럼 번쩍이는 화면은 이제 「차가운 추상」을 지난 중첩되는 산주름이 격정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경이롭다. 만일 현대의 고전이란 말이 가능하다면 형태와 색채에 있어 독보적일 뿐만 아니라 미술사를 말할때 그를 빼고는 말할수 없다는 차원에서라도 그의 존재는 눈부신 그의 화면만큼이나 「빛나는 고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보 ▲1916년 경북 울진출생 ▲1935년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후 동경문화학원 유화과 진학 ▲1937년 일본 독립미술전 출품,제1회 자유미술전 출품(42년까지),N·B·G(NeoBeaux­ArtsGroup)출품(41년까지) ▲1938년 동경문화학원졸업,제2회 자유미술전 회고상 수상 ▲1947년 신사실파 창립회원(유영국 김환기 이규상),서울대 강사 ▲1957년 모던아트 창립전 ▲1958∼61년 현대작가초대전 및 국제자유전 ▲1962년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신상회 창립전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64년 제1회 개인전(서울신문회관 화랑),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 ▲1966년 제2회 개인전(중앙공보관)한국현대회화 10인전 ▲1967년 동경국제 미술전 ▲1969년 제3회 개인전(신세계화랑) ▲1971년 제4회 개인전(신세계화랑),한국회화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제5회 개인전(현대화랑) ▲1976년 제6회 개인전(신세계) ▲1977년 제7회 개인전(진화랑),예술원상 수상 ▲1978년 살롱 드메초대전(파리시립현대 미술관) ▲1979년 국립현대 미술관초대 유영국 회고전(1백20점 전시) ▲1982년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5년 서울미술대전출품 ▲1988년 88올림픽 기념 세계현대미술제출품 ▲1995년 갤러리 현대초대전 「1965∼1990」 예술원회원,화집 「유영국」(79년 국립현대미술관 출간)
  • 가고 온 사람들(두만강 7백리:5)

    ◎광복­6·25이후­문혁때 귀향 줄이어/60년대말까지 쉽게 도강… 65% 다시 연변에/“지금은 갈수 없는 땅”강 건너 바라보며 눈물 ○보따리 이고 강 건너 끼룩 끼룩 끼루룩…. 한떼의 기러기가 일찍 얼음이 녹은 강 한구석을 박차고 북한땅을 멀리 돌아 날아간다.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았다.한낱 짐승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강.그렇지 못한 우리에게 두만강은 늘 한을 던져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옛날 선조들이 불렀다는 「월강곡」을 되뇌어 보았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개척민에 뽑혀 산길을 찾아 나선 선조들은 밀물처럼 강을 건너왔다.그리고 또 광복 후 이주 당사자들과 후손들은 고국이 그리워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시 강을 되건너 썰물같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귀향은 광복 당시였다.일제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나라가 독립을 맞자 조선족들은 보따리를 싸지고 두만강을 건넜다.당시 귀향민들은 두가지 부류다.대부분의 사람들은조상들이 묻힌 땅을 찾아 귀향했다.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고향을 찾았지만 살수가 없어 이남으로 곧장 월남했다.광복이 되자 연변과 북한의 공산당 정부는 일제주구 청산부터 시작했다.훈춘의 대지주이고 대동아전쟁때 비행기를 헌납하고 동경에 가서 천황의 접견을 받은 한희삼은 물론 다른 지주와 친일파들은 처단 당했다.항일부대 토벌에 공로가 있는 용정의 박도끼는 북한으로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청진에서 잡혀 총살당했다고 한다. 화룡현 신선대 대장 김일로는 일제가 연길공원에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던 김동환 다음으로 가는 주구였다.1940년 3월25일 일본인 산림경찰대장과 함께 자기의 병졸들을 휘몰아 독립군을 추격하다가 홍기하에서 매복습격을 받아 1백20여명의 졸개를 잃었다.김일로도 졸개들을 호령하다가 벌린 입으로 탄알이 꿰뚫고 지나갔지만 요행히 목숨은 건졌다.이남으로 건너간 그는 여생을 편히 보내다가 수원에서 일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번째 대 귀향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였다.한국전쟁(6·25)이후의 일인데 전후복구 지원을 위해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던 것이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49호가 나갔다.그리고 인민공사가 시작되면서 굶어 죽게 되자 다시 살길을 찾아 북으로 건너갔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최태경 일가는 19 62년에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이사했다.최씨의 막내 딸 최해옥은 연사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중 5학년 때 평양으로 뽑혀갔는데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서 「꽃파는 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인재들이 많이 갔다.중국에서의 반우파투쟁이 지식인들을 잡는 운동이나 다름이 없고 민족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되는 판국이라 떠나들 갔다.유명한 시인 주선우,작곡가 정진옥,소설가 김동구,아동문학가 채택룡 등 문학예술계 인사들도 떠나갔다.용정시 삼합향 승적 신재룡은 길림성 공업학원 학생이고 축구를 잘 했다.지금 그는 조선체육대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너왔다 도로 가고 용정시 삼합향 북흥촌 이기희(54)는 연변대학을 다니다가 2학년 때인 1961년 7월 북한에 들어가 만 6년을 살고 다시 돌아왔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 살다가 다시 연변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당시 회령의 사탕공장건설은 연변에서 건너간 귀향민이 대부분이였댔습니다.나는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 공무직장에 배치 받았디요.직장장의 이름을 딴 김희진작업반에 배치합데다.그때 국가 철도상이자 함북도 건설사업소 소장으로 파견나왔던 김주봉이 하루는 우리 공장에 와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에서 하루에 백오십명씩 건너오고 또 매일 백여명씩 되넘어갑니다.조국에 왔으면 참답게 살아야지 이것이 뭡니까」라고 비판을 했디.어떤 날 출근하면 많은 사람이 없어집데다.알아보면 중국으로 돌아간거디요.67년 7월에 나도 가정을 데리고 도강을 했으니 아마 이튿날 내 자리가 비어 야단이었을 것이 뻔합데다.이북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호구를 붙여주지 않다가 67년 9월 정부에서 한꺼번에 복적시켰댔시요』 세번째 귀향은 문화대혁명시기이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만 해도 항일에 참가했던 사람들 70여명 모두가 귀순 분자로 투쟁을 맞았으니 2백50호 중에 70호가 적이된 셈이었다.그중 10여호가 북한으로 도망갔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 차덕균은 일제시기 동경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일본에서 공부한 사실이 간첩조건이 되어 투쟁을 맞았다.모진 매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북한으로 갔는데 떠나던 날 큰 딸이 친척 집에 가고 없어서 두고 간것이 생이별이 되었다.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사이섬에서 총 사격을 받고 수백명이 종성으로 집체도주 한 일이 대표적 사건이다.선구촌 문영기(54)씨도 그 사건에 끼었던 한사람이다.캉다(강대)요 홍색이요 하는 조직간에 말로하던 시비질이 주먹질,돌팔매질,몽둥이 싸움으로 번졌다. ○“북에 남아라”만류도 1967년7월29일 연길 캉다에서 개산툰에 와 개산툰 캉다와 합세하여 홍색을 쳤다.싸움은 공장울안에서 일어났는데 쌍방은 돌멩이를 던지고 창으로 찔렀다.홍색에서는 열세에 몰리자 해관의 총을 내다 불질을 해댔다.캉다패들은 결국 선구 대안 두만강 복판 사이섬으로 쫓겨나고 말았다.8월2일 홍색은 사이섬을 포위하고 투항하라고 공포를 놓았는데 총소리를 들은 북한땅 종성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와 어서 건너오라고 소리를 쳤다.3백여명이 모조리 강을 건너갔으나 여자 하나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북한에서는 대우를 제법 해주었다.그러면서 돌아가면 잘못 된다고 북한에 남으라는 선전을 했지만 몇사람 이외에 모두가 두달 후 되돌아왔다.주모자들은 감옥에 들어가 1년씩 구류를 사는 것으로 그쳤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당시의 일들이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그때 북한으로 건너가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손해배상을 받아갔다.용정시 삼합진 승지촌 김광진은 지방 자위단에 있었다는 죄로 투쟁을 당하다 죽었다.그래서 온 가정이 야간 도주하여 회령으로 건너갔다가 지난 92년에 아들 김상연이 와서 용정시 민정국에 상소,3만원(인민폐)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현재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의 내 숙부(유인상·77)는 낮이면 두만강가에 나가 건너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시기 일쑤다.내 고모가 60년도에 조선 청진으로 간 이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조카들은 60년대 초에 다녀갔고 몇해전까지는 편지라도 오갔는데 벌써 5년째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앞길이 멀지 않은 숙부는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부친(유민상·84년 별세)께서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말끝마다 외우시다가 한많은 세상을 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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