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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도순씨 아들 박형재 결혼

    탤런트 박형재가 지난 8일 서울 삼성동 웨딩의 전당에서 5년간 사귀어온 채자연(28)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탤런트 김성민이 사회를 보고 축가는 가수 윤종신이 불렀다. 성우 송도순의 아들인 박형재는 1995년 SBS탤런트 공채 5기로 연예계에 발을 디딘 뒤 ‘옥탑방 고양이’‘낭랑18세’‘반올림2’‘왕꽃 선녀님’ 등에 출연했다.
  • 「노·브라」7人의 아가씨

    「노·브라」7人의 아가씨

    별난 아가씨 7명이 별난「클럽」을 만들고 한국최초라고 기염을 토했다. 이름지어「노·브라·클럽」. 『여성의 자연미를 해치는「브래저」를 추방하자』고 자못 기세등등하게 선언을 했다. 구미(毆美) 각국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브래저 안하기 운동」이 바야흐로 한국에도 불어닥친 것일까? 불편하고 부자연한 물건 벗어보니 생동감 그럴싸 얼핏보아서「브래저」를 착용 안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양가슴의 구릉이 약간 처진듯 한게 다르달까? 움직일때 유난히 꿈틀거려 생동감을 주는게 그럴싸하다. 일곱명의 아가씨중 두 아가씨가 약속을 어기고 아직『불미스런 잔재』(그들은「브래저」를 이렇게 불렀다)를 그대로 지니고 있음이 발견됐다. 다섯 아가씨는 큰 일이라도 일어난듯 기성을 질렀다. 두개의「브래저」가 당장 두 아가씨의 가슴에서 떨어져 나왔다. 한개는 흰빛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정색. 불태워 버리자는 제의가 나왔다. 모두 찬성했으나 불행히도 성냥이 없었다. 한 아가씨가『다시는 이런 불미스런 일이 없도록 다짐하는 뜻에서』 흰 빛의 그것에「잉크」칠을 했다. 「NO·BRA」라고 써서 두사람이 치켜들고 한바탕 깔깔 웃음. 그 모습이 그대로「카메라」에 담겨 나왔다. 이들 7명의 아가씨가 「클럽」을 만들기로 합의한건 이 모임이 있기 이틀전인 10월 24일이란다. 당초엔 6명의 동조자로 출발했는데 이틀밤 사이 1명이 추가되어 7명이 됐다.『불편하고 부자연한「브래저」를 벗어던지고 싶은 여자는 얼마든지 있을테니까-』「클럽·멤버」는 훨씬 가능성이 있단다. ”자신없는 여자는 제외하고 브래저를 벗어라”고 기염 -이「클럽」의 취지는? 『거추장스런 속박에서 벗어나자는 거죠. 남자들이 가령 띠같은걸로 가슴을 묶고 다닌다고 생각해 봐요. 사흘도 못견디고 벗어던졌을 거예요』 -그토록 거추장스러운 건 아닐듯한데. 가령 옷도 거추장스럽다면 벗어던질 용의가 있는가? 『그건 사회가 용인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죠. 그렇지만「브래저」를 안해 문란하다고 공격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그런 것 없이도 정숙한 부도를 지켰으니까요』 -가령 그게 불편하다 해도 몸맵시를 내기위해 참고서 하는줄 아는데? 『그런 조작된 위장에 속을 사람은 이제 없을거예요. 그렇지만 자신없는 여자는 할 수 없죠. 가슴을 묶어서라도 모양을 낼 수 밖에』 7명중「리더」격인 문영숙(文英淑)(가명·22·양장점원)양의 얘기. 그의 말을 정리하면 이「노·브라·클럽」의「슬로건」은『「브래저」를 벗어라, 단 자신없는 여자는 벗지 않아도 좋다』 40대 남자양장점 주인이 배후조종 했다는 소문도 그럴싸해서인지 이들 7명의 아가씨는 모두 탐스런 가슴을 갖고 있다. 얄팍한「터틀·네크」의 앞가슴에「내추럴」하게 솟아오른 구릉, 예쁜 유두가 뾰족하게「셔츠」밖으로 튀어 나올것 같다. 「셔츠」이외의 의상도 이「노·브라」족의 취미를 살려 특별히「디자인」된듯, 유방부분에 여유있는 포물선이 그어져있다. 20~24세사이인 이들 아가씨의 성분을 보면 미용사가 2명,「디자이너」1명, 양장점원 1명, 여대생 1명, 편물업 1명,무직 1명. 여대재학생 1명을 제외하면 1명이 대학중퇴고 나머지는 모두 여고졸업의 학력에 2~4년의 직장경력을 지녔다. 3명은 평소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고 4명은 이번 기회에 사귀어 이 최초의 별난「클럽」에 합심 협력키로 했다. 자신의「브래저」를 벗어 던지고 남에게까지 그것을 권장하려는 이 아가씨들의 당돌한 행동동기는? 재미있는 것은 이들「노·브라·클럽」의 배후에는 이를 고취한 것으로 보이는 한 양장점 주인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 종로3가에 자리잡은 N양장「센터」의 최찬두(崔贊斗)라는 40대 사나이. 한때 영화제작자로 영화계를 주름잡다가 양장업으로 전업한 화제의 인물이다. 배후의 인물이란 말엔 펼쩍 뛰면서도 그는「브래저리스」의 찬양엔 열을 올렸다.『보기만 해도 딱딱한「브래저」를 벗어 버리는게 왜 나빠요. 가장 아름다운 옷차림은 자연미를 잘 살린 것 아니겠어요? 외국에선「브래저」회사들이「브래저」안한 것처럼 보이는「브래저」를 안들기에 정신이 없다지만. 신체조건만 좋으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려주는게「디자이너」의 양식이지요』세계의「미니·스커트」의 돌풍을 불러 일으킨 어느 재단처럼 그는 이땅에「브래저리스」의 선풍을 일으켜 볼 심산일까? ”애인도 무척 좋아하데요” 전여성의 가슴 해방다짐 7명의 아가씨중 4명은 이 최씨의 권유가「브래저」를 벗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망설였으나 일단 실행해보니『애인도 좋아하더라』고. 미용사 아가씨는 위생·미용상의 이유를 치켜 들었다.「브래저」를 벗으면 땀이 차거나 답답해질 염려가 없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일 할 수 있다고. 「브래저」가 위생상 나쁘다는 이론은 아직까지 내세운 사람이 없으니까 이 미용사 아가씨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자기주관에 속한다. 답답한 속박감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즐기려는 젊은 여인의「기분」이 아닐까? 어쨌든「노·브라」의 선풍은「토플리스」나「미니·스커트」바람 못지 않게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미국의 일부지역에서는 여대생의 3분의 1이 이미「노·브라」의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 수백명의「노·브라」주창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아올린「브래저」에 불을 지르고 여성만세를 올렸다는게 이제 물 건너의 얘기로 그치지는 않을 것 같다. 유행이란 옮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전염병처럼 밀려오게 마련.「노·브라」역시 그 시비가 채 논의되기도전에 이미 이 땅의 젊음 여심들속에 파고 들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노·브라」의 전위격인 이「노·브라·클럽」아씨들은 그래도 자심의 이름만은 꼭 기사에서 빼어주길 원했다. 불량한 여성으로「오해」받는다는게 이유. 모든 여성이 모두 자기들처럼「브래저」를 추방한다면 이런 오해는 있을 수 없고 그때를 위해 적극적인 운동을 벌인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선데이서울 69년 11/2 제2권 44호 통권 제 58호]
  • 10년사귄 선원(船員)때문에-Q여사에게 물어보세요(45)

    서른 두 살의 이른바 「하이·미스」입니다. 독신주의가 철저해서 결혼을 않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벌어 먹여야할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결혼하자고만 하면 당장이라도 허락하고 싶은 남자가 한 사람 있기는 있읍니다. 10년 전에 처음 사귀어 1년에 겨우 네댓번씩 만나 온 그 남성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선원이어서 1년중 8,9개월을 해외에서 보냅니다. 나머지 4,5개월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釜山)에서 근무합니다. 우리가 겨우 네댓번씩 만나게 되는 이유는 여기 있읍니다. 이때껏 고백(告白)다운 고백을 서로 한 적은 없지만 그가 나를, 그리고 내가 그를 사랑하고 못잊어 하는 것만은 틀림 없읍니다. 그런데 그는 한번도결혼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읍니다. 이를테면 저는 10년간 그의 결혼신청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편지도 서로 보내는 일이 없고 이제 잊어야겠다고 단념할만 할 때 한번씩 해외에서 보낸 그의 편지가 도착해서 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요즘 저의 집에서는 신랑감을 줄줄이 갖다놓고 강제결혼이라도 시킬 기세입니다. 그에게 먼저 결혼말을 꺼내기에는 어쩐지 자존심이 허락하진 않는군요. <서울 영등포구 황인숙> <의견>적극적으로 나가셔요 시시한 자존심을 버리고 이편에서 적극적으로 나가기를 권합니다. 당신의 글로보아 그는 1년중 8,9개월이나 해외에서 보내는 직장생활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진정으로 이 남자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면 대담하게 결혼신청을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물론 연중 4~5개월만 같이 있는 부부생활을 감당할만한 각오는 서 있어야겠지요. 10년이나 끌어온 두분의 연애라니까 그것쯤 문제야 없겠지만.<Q> [선데이서울 69년 9/28 제2권 39호 통권 제 53호]
  • [서울광장] 이명박 시장의 원죄/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명박 시장의 원죄/임태순 논설위원

    몇년전 제주도 출장을 가 산에 있는 전원형 주택에서 숙박을 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퇴직자 부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1층은 레스토랑과 주방이,2층엔 투숙객을 위한 방이 마련돼 있었다. 밤에는 몰랐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신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창문 너머로 맑은 공기와 함께 산새가 지저귀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쳤다. 이런 신기한 일이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서울시청 터에는 최근 ‘반짝공원’이 생겼다. 서울시가 최근 청사를 새로 짓기 위해 본관건물을 제외한 부속건물을 허물자 널찍한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중충한 건물이 사라지면서 시야가 탁 트이고 햇빛을 받게 되자 도심 직장인들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마음이 시원할 수 없다.’며 청사철거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공원은 청사신축 건설업자가 선정되고 공사가 재개되면 없어질 ‘시한부’ 공원이다. 그러나 그냥 뒀으면 하는 시민들의 바람은 식지 않는다. 최근에는 시원한 노송과 함께 산수유꽃, 벚꽃이 어우러져 근사한 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새들이 산수유나무와 벚나무를 오가면서 지저귀어 이러다 정말 도심 사무실에서 새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진다. 중이 제머리 깎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서울시청사 뒤터를 그냥 둬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시민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이명박 시장의 원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공약대로 청계고가를 허물고 청계천을 복원했다. 청계천에는 직장인, 장노년층, 아베크족, 학생 등 각계 각층 사람들이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 사시사철 찾고 있다. 그는 또 서울광장과 숭례문광장을 새로 조성하고 지하도, 육교 대신 지상 횡단보도를 만들어 보행환경을 개선했다. 개발에 찌든 시민들에게 사람우선, 환경우선의 의식을 심어줬다. 그렇게 길들여진 시민들에게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먹혀들 것 같지 않다. 또정도(定都) 600년이라는 서울의 무게와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다. 쓸데없이 크게 지어 허장성세해서도 안 되겠지만 새 청사는 21세기 시대정신,600년 역사 등이 어우러진 수도서울의 이정표가 돼야 한다. 이전의 조순, 최병렬, 고건 시장 등이 청사신축에 나섰다 매듭짓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현 청사 부지는 협소하다. 설사 완공돼도 여기저기 있는 청사 사무실을 모두 수용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청사신축 공청회를 수요자보다는 건축업자 등 공급자 중심으로 개최했다는 절차상의 하자 외에도 현 서울시청사는 1926년 우리나라를 강제병탄한 일본이 조선왕조의 기를 누르기 위해 건설한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 용산미군기지가 이전하고 세종로청사가 비는 등 청사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가지 변수가 많이 생겼다. 또 청사신축도 아직 업자가 선정되지 않는 등 초기단계여서 부담이 많지 않다. 물론 서울시 공무원들로선 청사신축 계획이 중단되면 언제 청사가 신축될까 하는 걱정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청사가 철거된 마당에 신축문제를 무한정 방치할 순 없기 때문이다. 떠돌이 생활을 시민들에게 강요할 강심장 시장은 없다. 이명박 시장도 청사를 증개축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새 청사는 새 시장의 몫으로 남겨두는 미덕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시장의 결자해지를 기대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여성&남성] ‘나쁜X’에게 난 이렇게 채였다

    [여성&남성] ‘나쁜X’에게 난 이렇게 채였다

    ‘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마세요.’흔히들 ‘사귀어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하지만 남녀관계에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안배경, 학벌, 재산 등 이른바 ‘조건’을 떠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화려한 작업능력 속에 가려진 ‘나쁜 남자’‘나쁜 여자’를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 전문가들을 통해 들어 봤다.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가 당신에게 너무 무관심해 불만인가. 그녀가 당신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투정만 부려 짜증스러운가. 그렇다면 아래 세 사람의 기구한 연애사를 들어 보라. 그리고 애인에게 당장 전화해서 “당신만한 사람 없다.”고 사랑스럽게 속삭여 보라. A(30·여)가 더 이상 남자를 안 만나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그가 겪은 이성들은 하나같이 ‘나쁜 남자’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귄 학과 선배. 모든 사람들이 졸업하면 둘이 결혼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선배는 “미안해. 다른 여자가 생겼다.”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나갔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다 우연히 동창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양가 상견례까지 마치고 한창 결혼준비를 하던 중 예비 시댁에서 지나친 혼수를 요구했다. 파혼, 그리고 A는 독신을 선언했다. 집에서는 A를 가만 두지 않았다. 결국 맞선을 본 사람과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결혼했다. 신혼초 행복도 잠시, 남편은 폭력을 휘둘렀다. 이혼을 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취직했다. 여기서 한 남자를 알게 됐고 동거까지 했다.‘조건’을 따지자면 별 볼일 없는 사람. 그래도 진실된 모습이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남자 집안에서 이혼경력을 문제 삼았고 결국 남자는 떠나갔다.A는 진절머리나는 ‘잔혹 연애사’를 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B(26·여)도 대학 새내기 시절 만난 남자로부터 호되게 당했다. 지방 출신으로 혼자 자취하는 그를 위해 매일같이 찾아가 밥해 주고, 과외해 번 돈으로 용돈까지 대줬지만 그는 B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먹까지 휘둘렀다. 3년 연애 끝에 굳은 마음으로 이별을 고했지만, 그는 절대로 안된다며 도서관,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며 B를 스토킹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달이 넘게 연락이 끊겼다. 술 마시고 함께 잠자리를 한 후배가 임신해 집안에서 억지로 결혼시키게 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는 “나야 잘 됐지만 결혼한 여자가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올해 서른둘인 C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회사에 들어간 직후였다. 첫눈에 반한 C는 갖은 정성을 다해 그녀에게 대시했다. 그녀 역시 그가 싫지 않은지 말로는 관심 없다면서도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가 하면 영화를 보다 먼저 손을 잡기도 했다. 드디어 멋지게 프러포즈를 하는 날, 그녀는 “누가 당신 같은 사람 좋다고 했느냐. 혼자 오버한 것 아니냐.”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대학시절부터 사귀어 온 남자친구가 있었다.C는 “반년 넘게 좋은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한순간에 그 여자의 놀림감이 돼버렸다. 이제 다시 여자를 만나도 또 그런 사람일까봐 두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지혜 나길회기자 wisepen@seoul.co.kr
  • 미스·한미재단 김정숙(金貞淑)양 – 5분 데이트(41)

    미스·한미재단 김정숙(金貞淑)양 – 5분 데이트(41)

    158cm, 45kg의 쥐일 것 같은 가는 몸매에 목이 긴 새하얀 얼굴은 학을 보는듯 맑고 또 귀하게 여겨진다. 따라서 그렇게 쉽게 사귀어질 것 같지않은 고고함도 함께 엿보이는 「미스·한미재단(韓美財團)」김정숙양. 수도여고를 거쳐 이대(梨大) 도서관학과를 올봄에 졸업하자 곧 한미재단 유학생 직업보도처장의 비서로 일해오고있다. 『제 PR보다는 우리재단에서 하는 일을 PR하고 싶어요』라며 「서비스」정신으로 일관된 한미재단의 여러 사업을 조리있게 들려준다. 미국 기념일, 공휴일까지 미국인들과 똑같이 휴일로 쳐서 쉬다보면 매주 토요일을 합쳐 여가 선용하기에는 무슨 직장보다 좋은 곳이라기도. 여행하는 취미를 그대로 살려 골고루 여행하기와 책읽기로 여가를 즐긴단다. 여름에 여행해본 여수(麗水)의 오동도(梧桐島) 대나무밭은 좀처럼 잊기 어려운 곳. 많이 읽은 책 중에서는 몇 년전에 작고한 영국 작가의「인간의 멍에」를 감명 깊어하고 있다. 세살이 되던해 엄마 품에 안겨 월남한 평북 태생은 고향을 알지못하는채 컸지만 고향 이웃의 맛 함경도 함흥냉면을 즐긴단다. 배우자 선택에 관한한『예측을 불허하는 문제가 아니냐』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반문한다. 1남1녀 중 맏딸. [ 선데이서울 69년 7/13 제2권 28호 통권 제42호 ]
  • 미스·경제기획원 강복희 – 5분 데이트(35)

    미스·경제기획원 강복희 – 5분 데이트(35)

    1남2녀 중 맏딸다운 의젓함이 생김새에서 몸짓에서 까지 잘 배어 있어 별 경계심 없이 사귀어 질 것 같은 부드러움이 있는 강복희양. 「미스·경제기획원」. 이 해가 시작하는 첫날부터 조사통계국 심사계에 출근하기 시작, 주로 상업 「센서스」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고향인 천안에서 천안여고를 졸업한 47년생. 조그만 마당을 일궈 「글라디오라스」가 피는 꽃밭을 만드는 즐거움에 봄, 여름을 지나고 단풍 진 낙엽을 모으는 소녀 취미로 가을을 나면 이가 시린 동치미 맛으로 겨울 역시 즐겁단다. 특기라면 잘 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없어 여가를「동생 공부 좀 봐 주는 것」으로 보낸다. 결혼 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은 안돼있는데 『없다고 해도 좋을 애인도 아닌 사람 정도는 있다』 극히 아리송한 대답을 한다. 결혼을 할때는 월급쟁이는 싫고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 생의 의욕에 차있는 자신 만만한 사람과 하겠다고 서슴없이 얘기하기도 한다. 1백60cm, 47kg의 알맞게 통통한 강양을 『복스럽다』면서 어른들이 보기만 하면 맏며느리로 삼고 싶다고 슬쩍 운을 떼보기도 한단다. [ 선데이서울 69년 6/1 제2권 22호 통권 제36호 ]
  •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한국을 배우려고 한류스타의 나라에 유학 온 일본인 모녀가 있다. 구보타 가즈코(51)·아야노(17) 모녀. 히로시마에서 온 이들은 지난 9일부터 3개월 과정으로 고려대 한국어문화센터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엄마는 최고령, 딸은 최연소 학생 이들을 특별한 경험으로 이끈 것은 지난해 일본내 한류전문 출판사가 주최한 한국어 모녀 어학연수 희망자 공모. 한쌍의 모녀에게 3개월간 학비와 체류비를 전액 지원하는 대신 한국 생활을 날마다 일기로 적어 사진과 함께 무선인터넷에 공개하라는 조건이었다. 평소 무선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자주 접해 온 ‘한류 마니아’ 아야노양이 공모에 참가하자고 엄마를 졸랐다.3차례 심사를 거쳐 420여쌍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발의 영예를 안았다. 딸은 지난해 2월부터 틈틈이 한국말을 공부해 왔고 엄마는 ‘가, 나, 다, 라’부터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반이 서로 다르다.“우리 딸이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죠.‘이런 건 제때 제때 외웠어야지.’‘이건 활용법이 틀렸잖아.’라면서 어찌나 무섭게 혼내는지.” 아야노양은 가장 어린데다 성격이 활달해 반에서 인기가 좋다.“일본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들으러 가도 아줌마나 아저씨들뿐이었어요. 이번에 한국에서 나이 비슷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돌아가고 싶어요.” 가즈코씨는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워낙 한국어에 대한 기초가 없어 처음에는 “몰라요.”만 연발하며 당황해 했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고 들은 단어들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게 마냥 뿌듯하다. 길거리를 걸을 때에도 간판들을 더듬더듬 읽으며 신기해 한다. ●딸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선생님 이들이 한국에 빠진 것은 2004년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부터였다. 드라마 ‘풀하우스’와 ‘아름다운 날들’에서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류스타 중에 엄마는 강동원을, 딸은 류시원을 가장 좋아한다.‘욘사마’(배용준)는 자기들 취향이 아니란다. 이번 한국행에 앞서 가즈코씨는 가슴앓이가 컸다.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기 위해 오랫동안 해온 간호사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한국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과 한동안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일은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딸에게는 이번 연수가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50대 들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고요. 결국 남편도 1주일 만에 화를 풀더군요.” 가즈코씨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려워져 걱정”이라면서 “우리 모녀를 보고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야노양은 “대학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공부를 해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모녀는 20일 아침 일찍 강릉에 현장 학습을 떠났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가서 살고 싶어요』-「미스·코리어」진(眞)을 자퇴한 김지연양은 이마를 짚었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녀의 경우는 가인박복(佳人薄福)이라고나 할까. 거국적인 미녀뽑기에서 아무튼 제1위를 차지한 여자다. 진을 자퇴하고 주최자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한 이유가 응모자격에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지, 그 자태나 용모에 있어서 모자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 본명 김정혜(金正惠), 마감 이틀 전 미장원 마담 권유로 응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이러쿵 저러쿵 풍문이 시끄럽게 나돈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요즘 자택(서울특별시 갈월동)에서 바깥 출입을 일절 금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방 한구석에 박혀 산다. 일이 모두 수습이 되고 잠잠해질 때까지 얼굴을 내놓기가 싫은 심정이다. 자퇴한「미스·코리어」김지연양의 본명은 김정혜. 1949년 6월 30일 생이니까 만 20세.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287의 1. 평소 자주 드나들던「센추리」미용실「마담」의 권유로「미스·코리어」서울 예선에 응모한 것이 대회 이틀 전인 4월 25일. 응모자「프로필」난에 소개된 金양은 - . 『 … 현재 숙대(淑大) 가정과에 재학 중인 金양은 서울 태생으로 올해 나이 20세 … . 결혼문제엔「아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엉뚱하게도「40세가 되면 생각해 보겠다」고. 신장 166, 무게 51, 36-23-36』으로 되어 있다. 4월 27일 상오 10시 대한체육회관에서 열린 서울예선대회에서 金양은「미스·서울」9명 중에 뽑혔다. 전국 결선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운명의 5월 1일 밤 9시 35분. 장충체육관에서 1만여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미스·코리어」진으로 선발되는 순간 金양은 정신이 아찔했다. 당선의 감격은 벅찼는데 그날부터 소문나기 시작 『뜻밖의 영광에 뭐라 할 말을 잊었다』며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감격은 잠깐, 다음날부터『「미스·코리어」진은「미스」가 아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입이 빠른 미용실, 양장점 사이로 소문은 삽시간에 확산. 이렇게 되자 金양은 5월 7일자로「미스·코리어」진 사퇴서를 냈다. 심사위원회의 재심이 있고 5월 9일자로 주최측 지상을 통해『1969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된 김지연양은 본 대회 선발규정에 의하여 그 자격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며, 이에 따라 본인이 자퇴하였으므로 당선을 취소합니다』로 정식 발표되었다. 金양은 감격 9일만에「미스·코리어」의 왕관을 되돌려 주어야 했던 것이다. 취소되자 숙대선 “그런 학생 없다” 공한(公翰) 이렇게 되자 金양의 출신교로 알려진 풍문(豊文)여고와 숙대측에서도 해명공한을 냈다. 金양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다닌 사실이 없다는 것. 먼저 숙대측이 재학한 사실이 없음을 10일자 공한으로 각 신문사에 밝혔다. 다음은 숙대측 공한 전문. 『1969년「미스·코리어」당선자에 대하여 금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되었다가 그 자격이 취소된 김지연양에 대하여 그가 자칭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이라고 보도된 바 있으나 본 대학교에서는 그의 학적을 둔 사실이 전혀 없사옵기 이에 알려드리오니 보도에 정확을 기하는데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선에서 진으로 당선된 임현정양은 본명이 임희선으로서 본 대학교 영문과 3학년에 재학 중임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1969년 5월 9일.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처장』 당사자인 金양과 그 가족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역시 공한 낸 풍문여고엔 고3까지 다닌 것은 사실 그러자 이번엔 金양이 다녔던 풍문여고측에서도 공한을 띄웠다. 다음은 공한 전문 - . 『「미스·코리어」진 김지연의 학력사항 정정의 일 - 금번「미스·코리어」진에 당선되었다 취소된 김지연이 본교 졸업생인양 보도된 바 있으나 본교 졸업한 사실이 없음을 통보하오니 학력사항을 정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69년 5월 10일. 풍문여자고등학교장』 알고 보면 金양이 풍문여고를 다닌 것은 사실. 그러다 고3 되던 해인 67년 5월 가발을 쓰고 어떤 군인과 극장에 갔다가 여선생에게 적발되어 자퇴형식으로 제적을 당한 것이다. 한편 金양은 여고시절부터 사귀어오던 김태문(23·무직)씨와 그 해(67년) 10월 31일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화촉을 밝혔다. 金양이 정식으로 김태문씨의 호적에 결혼신고 된 것은 그 이듬해인 68년 10월 28일자. 이런 金양은 왜「미스·코리어」선발대회에 출전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9일만의 여왕」金양이 밝히는 그 전모는 다음과 같다. 요정 나간다는 건 뜬소문, 그 집 마담과 친한 사이뿐 - 추천자인「센추리」미용원의 유숙자「마담」과 알게 된 것은? 『제가 그곳을 단골로 다녔거든요. 「미스·코리어」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 집에 다니고 있었어요』 - 소문으로는 거의 매일 다녔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었나요? 『1주일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이었어요. 매일 나갈 돈도 없었구요』 - 듣기로는「바」에도 나갔다느니 혹은 한남동에 있는 간판 없는 고급요정에 나갔다는 말도 있는데.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취소가 되니깐 별의별 말이 다 나오는 거예요. 그 집「마담」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잘 어울려 다녔어요. 그 소문이 난 것이겠죠. 저의 집은 그런 장소에 안 나가도 괜찮을 만큼은 삽니다. 무슨 필요가 있어서 술을 따르러 나가겠어요?』 그녀의 조부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있는 일간신문 C일보의 초대편집국장을 지냈다. 아버지 金씨는 현주소에 대지 280평의 4층짜리「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땅값이 평당 10만원은 되는 곳. 그 부동산 값만 해도 2천 8백만원은 된다. 딸에게 충분한 용돈은 안 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색하게 딸의 벌이로 살아나가야 하는 그런 가정은 아니다. -「콘테스트」에 나가는 것을 부모님들이 알고 있었어요? 『전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예선에 당선된 뒤 신문을 보고 부모님이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최자측은 제가 고아가 아닌가라고 몇 번이나 묻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결승날에 겨우 2백원짜리 표를 사서 입장했습니다』 막상 진으로 뽑히고 보니 미녀를 낳은 모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취소가 되었을 때의「쇼크」와 집안 체면 걱정이 컸을 것이다. 金양의 어머니는 지병인 고혈압이 도져 요즘 매일 병원에 다니고 있다. - 이미 기혼자이고 숙대에도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미스」로 둔갑하고 숙대 재학 중이라고 학력을 속였습니까? (응모요령 중의 자격규정에는「1951년 7월 1일 이전에 출생한 미혼여성」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저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 예선이 박두해서 미용원측에서 자꾸 나가라고 부채질 했어요. 저는 숙대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콘테스트」가 있기 훨씬 전에 미용원에서 직업이 뭐냐고 묻기에 어물어물 숙대에 다닌다고 했구요, 여자가 또 자기가 기혼여성이라고 미용원에서 밝힐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딱 잘라 말하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었어요. 「마담」이 다 적당하게 적어 넣으면 된다기에 맡겨버렸죠』 - 학교관계는 결격이유가 안되겠지만 호적에 버젓이 기혼녀로 되어 있는 것을 몰랐나요? 『호적에까지 그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결혼을 한 일은 있었죠. 그렇지만 입적은 하지 않았고 사실상 별거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는 미혼일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저는 67년 10월 31일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4개월 뒤에는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 계속 별거 중입니다. 그리고 저와 김태문씨와는 이혼하기로 서로 서약서까지 쓴 것이 있어요』 그 서약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1968년 10월 21일 이후에 본인 김태문은 김정혜와 해어질 것을 약속함. 21일까지 김정혜는 김태문과 같이 있어야 됨. 만약 이 약속을 이행치 않을 시는 모든 것이 무효임. 헤어지지 않을 시는 내 목숨을 끊음. 1968년 10월 18일. 본인 김태문(지장), 김정혜(지장)』 이러한 서약서를 교환한 뒤 10월 28일에 남자쪽이 멋대로 입적시켰다는 것이며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다. - 학력관계는 어떻든 결혼문제에서는 법률적으로「미스」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군요. 『네, 그런데 제가 호적상 기혼자로 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호적을 펴 보니 정말 그렇게 되어 있어요.』 -「미스·코리어」로 당선되면 외국에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다는 소문인데. 『별의별 소문이 다 나죠. 세상사람들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지금 심경은 외국에 나가고 싶습니다』 - 진으로 뽑혔다는 자부 같은 것은 있겠죠? 『네, 거기 나온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제가 진으로 뽑혀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 세상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배운 점이 있다면? 『저를 뽑아주신 주최자에게 감사드리고 싶구요. 그 다음에는 어린 제가 앞으로는 만사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찮은 저로 인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점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 시아버지는 “며느리 잘못 둔 덕에 기막혀” ◇ 김태문씨 아버지의 말 창피해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며느리 한번 잘못 둔 덕택에 얼굴도 제대로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둘이 서로 알기는 우리애(태문)가「카투사」로 미8군에 근무할 때부터다. 둘이 좋다는데 부모가 어쩔 도리가 있는가? 정혜가 학교를 그만두던 해인 67년 가을에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식을 올려주었다. 혼인을 끝내곤「벌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그 이듬해(68년 2월) 둘이 따로 나가서 살아보겠다기에 다 큰 애들을 굳이 시부모 밑에 잡아둘 생각도 없었기에 살림을 내보냈다. 처음 저희들 말로는 신촌 어디다 전세방을 얻는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집에 가서 같이 산 모양이다. 「미스·코리어」로 뽑힌 다음 친정집 두 처남이 찾아와『제발 이혼을 해주어야 이번 일이 무사해진다』면서 이혼하자기에 너무 어이없는 일이 되어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은 어떤 회사에서 찾아와 또 그런 이야길 하길래『며느리한테 속은 것도 괘씸한데 당신네 사업을 위해 이혼하라니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다. 호적만 해도 그렇지 양가 부모가 다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까지 올려놓고서 시집에서 결혼신고한 게 뭐가 잘못이냐? 오히려 결혼식 직후에 호적에 안올린 것이 차라리 글렀지, 안그래요? 사람이 결혼하고 이혼하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서로 마음잡고 잘 살기를 빌 뿐이다. 지금 우리 아들은 자살하기 직전의 상태이니 그 애를 만나야 더 충격을 줄 뿐이다. 제발 애비로서의 부탁이니 우리 아들을 만나는 것만은 그만둬 주시오. [ 선데이서울 69년 5/18 제2권 20호 통권 제34호 ]
  • [儒林 속 한자이야기] 白面書生(백면서생)

    儒林(487)에는 ‘白面書生’(힌 백/얼굴 면/글 서/낳을 생)이 나오는데,‘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한갓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經驗(경험)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白面郞(백면랑)이나 學究(학구),措大(조대)도 이와 類似(유사)한 말이다.‘白’의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머리’라는 설이 타당해 보인다. ‘白’에는 ‘희다’의 뜻 외에도 ‘아뢰다’ ‘말하다’ ‘없다’ ‘비다’ 등이 있다.用例(용례)에는 ‘白頭如新(백두여신: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이지만 서로 간의 정이 두텁지 못함을 비유),白書(백서:정부가 정치, 외교, 경제 따위의 각 분야에 대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여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만든 보고서) 등이 있다. ‘面’자의 甲骨文(갑골문)은 사람 얼굴 안에 ‘目’(눈 목)이 있는 형태이다. 얼굴이란 뜻을 표현하는데 눈을 강조한 것은 사람의 印象(인상)에서 눈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 때문이라고 한다. 후대로 오면서 ‘만나다, 향하다, 겉, 방향’과 같은 여러 가지 뜻이 派生(파생)하였다.用例에는 ‘面目(면목:얼굴의 생김새.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面識(면식:얼굴을 서로 알 정도의 관계)같은 것들이 있다. ‘書’자의 위쪽은 ‘聿’(붓 율)은 붓을 잡고 있는 모양이며, 아래쪽은 ‘날’(日)이나 ‘말하다.’(曰)가 아니라 먹물이 담긴 벼루의 모양이다. 본래의 뜻은 ‘글을 쓰다.’이며 글을 써둔 ‘책’을 가리키기도 한다.用例로는 ‘書庫(서고:책을 넣어두는 곳집),書案(서안:책상, 문서의 초안),良書(양서:내용이 교훈적이거나 건전한 )’ 등을 들 수 있겠다. ‘生’자는 풀 포기의 상형인 ‘ ’(철)과 地表(지표)를 나타낸 ‘一’을 합쳐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의 모양을 나타냈다.用例(용례)에는 ‘生家(생가:자기가 태어난 집),生老病死(생로병사:사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고통 등이 있다.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에 宋(송)과 北魏(북위)는 江南(강남)의 四鎭을 둘러싸고 尖銳(첨예)하게 대립해 있었다.西紀(서기) 449년, 북위의 太武帝(태무제)가 柔然(유연:몽골 땅에 자리 잡고 살던 고대의 유목민족)을 공격하였다. 송나라의 文帝(문제)는 북위를 制壓(제압)할 수 있는 絶好(절호)의 機會(기회)로 보고 文臣(문신)들과 구체적인 방법을 論議(논의)하였다. 이때 武官(무관)인 심경지(沈慶之)는 북위와의 빈번한 전투에서 패배했던 前例(전례)를 들어 섣부른 出兵(출병)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進言(진언)하였다.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시면서 백면서생과 圖謀(도모)하시니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今陛下 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이 이야기는 ‘宋書’(송서)의 ‘沈慶之傳(심경지전)에 전한다. 그는 열 살의 나이에 이미 東晉(동진)의 遺臣(유신:왕조가 망한 뒤에 남아 있는 신하) 손은(孫恩)이 逆謀(역모)를 꾀하자 私兵(사병)을 이끌고 參戰(참전)하여 武名(무명)을 떨쳤다. 그 후 수많은 戰功(전공)을 세워 建武將軍(건무장군)에 임명되어 邊境(변경) 守備(수비)를 總括(총괄)한 百戰老將(백전노장)이었다.專門家(전문가)의 忠言(충언)을 무시한 卓上空論(탁상공론)이 실패를 부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김석제 경기도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눈에 띄네 이 얼굴] ‘애인’의 성현아

    [눈에 띄네 이 얼굴] ‘애인’의 성현아

    8일 개봉한 멜로 ‘애인’(제작 기획시대)의 여주인공으로 성현아 아닌 어떤 배우를 상정할 수 있을까. 미동을 하지 않아도 천연색 매력이 사방으로 발산되는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 도발적인 캐릭터를 그토록 감쪽같이 소화해낼 수가 있었을까. 턱밑까지 정갈하게 블라우스 단추를 채운 조신한 ‘여자’(극중에서 불리는 그녀의 이름).7년 사귄 남자와의 결혼을 한 달 앞둔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장난처럼 만난 낯선 남자와 하루동안의 ‘기습 사랑’에 빠진다. 약혼자와의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낯선 남자와 시간을 보내는 여자의 동선은 ‘도발’ 그 자체. 대낮에 텅빈 갤러리에서 격정적인 섹스를 나누고,10년을 사귀어온 사람처럼 갑자기 툭툭 반말을 튼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읽힌 뒤 올 여름 공포영화 ‘첼로’로 맹렬히 홀로서기 했다. 목젖까지 차오른 도발성을 꾹꾹 누르는 극중 역할은 그녀의 실제 이미지와 많이 닮았다. 속살을 들킨 기분이어서일까. 영화 개봉을 앞두고도 인터뷰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그녀의 속내는….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깔깔깔]

    ● 뽀뽀 한 마을에 미모의 여대생이 살고 있었다. 마을의 청년들은 모두 그 여대생과 사귀어보고 싶어서 접근을 해봤지만 번번이 딱지를 맞았다. 한 청년이 “내가 그 여자와 뽀뽀를 하고 오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 이튿날부터 청년의 작전은 시작됐다. 그는 매일 밤 12시 여대생의 집에 가서 그녀의 방 창문을 두드리면서 큰 소리로 “뽀뽀”하고 외치고는 도망쳤다. 그러기를 한달. 청년은 친구들에게 “드디어 그녀와 뽀뽀했다.”고 자랑을 했다. 증거를 대보라는 친구들을 데리고 청년은 여대생의 집 앞으로 갔다. 청년은 그녀의 방 창문을 두드린 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뒤 창문이 확 열리면서 그녀가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야, 너 또 ‘뽀뽀’하려고 왔지?”
  • 신동파 선수가 저를 울려요

    신동파 선수가 저를 울려요

    한국대표 농구「팀」의 명「포드」신동파(申東坡)를 사칭한 사기한이 나와 숱한 여인들을 울렸다. 멀리 자유당 시절의 가짜「귀하신 몸」에서부터 최근에는 가짜 판사, 가짜 영화감독, 배우까지 등장, 바야흐로 가짜가 판을 치는 판국에 이제는 가짜「올림픽」선수마저 나타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세태의 한 면을 드러내고 있다. 후리후리한 키에 균형잡힌 몸매. 말쑥한 차림에 좋은 언변으로 서울 한복판을 누비는 가짜 신동파가 처음 나타난 것은 약 1년 전이었다. 지난해 3월 중순의 어느 날. 일본「야하따(八幡)」「팀」과의 친선경기를 끝내고 피로한 몸을 집에서 쉬고 있는 신동파에게 어떤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미스」구(具)라는 것이었다. 자기를 모르겠냐는 것이었다. 신동파로선 전혀 모를 여인. 다방에서 만났다. 역시 모를 여인이었다. 여인도 자기가 알던 신동파가 아니라고 당황했다. 여인은 신동파라고 사칭하는 사기한과 두 달 동안을 사귀어왔다.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옆자리에 운동선수 차림의 건강한 청년 3, 4명이 앉아 잡담을 하는데 친구들이 한 청년을 가리켜 신동파라고 떠들어댔다. 잠시 후 가짜 신동파가 여인에게 다가왔다. 감쪽같이 신(申)선수로 알고 원정(遠征) 간다기에 돈줬더니 이렇게 알게 된 두 사람은 그 뒤 자주 만나게 됐다. 그들은「미도파」앞 M다방에 자주 들렀다. 다방의「마담」,「레지」들이 신동파 선수 왔다고 야단들이었다. 어떤 때 가짜 신동파는 약속시간에서 20~30분 정도 늦게「트레이닝」바람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연습하다 잠시 빠져 나왔다면서 오늘은 연습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다음날 만나자 하고는 돌아갔다. 다음날은 말쑥한 양복을 차려 입고 양복 깃에 태극「배지」를 달고 나타났다. 양복 안쪽에 신동파라는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명동 D음식점에서도 마찬가지. 주인은 그를 진짜 신동파로 믿고 있었고 그는 친구들과 함께 외상조차 먹고 다녔다. 하루는 그가 여인에게 곧 일본원정을 떠나게 됐다면서 원정비가 모자라 큰일이라 했다. 여인은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10만원을 주었다. 돌아올 때 선물을 사다 달라고 2만원을 따로 보탰다. 일본으로 떠난다면서 굳이 비행장에는 타오지 말라고 했다. 3, 4일이 지났다. 여인이「라디오」를 트니까 장충체육관에서 육군「팀」과「야하따」「팀」의 대전 실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일본에 갔어야 할 신동파가「게임」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이상히 여겨 농구협회로 전화를 걸었다. 일본에 원정한 사실이 없다는 대답. 여인은 곧 신동파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신동파라고 하다 김무현(金武鉉)으로 둔갑도 앉아서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에 어리벙벙한 채 정신을 못 차리는 신동파에게 다시 두 번째 피해자가 나타났다. 역시 같은 수법이었다. 7만여 원을 사기당했다. 신동파는 하도 어이가 없어 동료선수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며칠 뒤 가짜 신동파는 같은 육군「팀」의 백문철(白文哲)에게 덜미를 잡혔다. 백문철이 부대로 들어가기 위해 흑석동 집을 나오는데 담배가게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담배가게 주인과 웬 키 큰 청년의 싸움. 담뱃값을 10원 더 내고 덜 냈다는 다툼이었다. 『여보시오. 내가 담뱃값 10원을 덜 낼 놈같이 보이오? 나도 유명한 사람이오. 내가 신동파요!』 백문철은 며칠 전 신동파에게 들은 사기한이 바로 이놈이구나 생각하고 뒤를 밟았다. 합승에 뒤따라 올라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저 혹시 신동파 선수 아닙니까?』 그는 시치미를 떼고 그렇다고 했다. 백문철은 신선수「팬」이라면서 어디까지 가시냐고 물었다. 중앙청 쪽으로 간다는 대답, 내려서「택시」로 모시겠다면서「택시」에 잡아 넣었다. 멱살을 잡고 사기꾼이라고 호통쳤다. 가짜는 연기를 시작했다. 눈물을 금방 흘리면서 용서를 빌었다. 백문철은 그의 능란한 말솜씨에 홀려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파출소에 차를 대고 내리면서 순경을 부르는 순간, 가짜는 잽싸게 백문철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가짜 신동파가 한 달쯤 전에 다시 등장했다. 이번의 피해자는 답십리에 사는 이(李)모양. 이양의 동생은 D중학 농구선수였다. 연습을 끝내고 돌아가는데 3, 4명의 청년들이 나타나 D중학을 졸업하면 좋은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겠느냐고 꾀었다. 그 중의 한 청년이 자기는 신동파라고 했다. 이군은 농구장에서 신선수를 보아 알고 있었다. 신동파가 아니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더니 사실은 김무현(기업은행 소속)이라고 돌려댔다. 이양 경우는 부모도 속아, 사위 삼으려고 백만원 줘 가짜 김무현으로 둔갑한 사기꾼은 이군의 부모를 만났다. Y고교 진학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부모들은 이군의 진학을 염려하던 터라 고마웠다. 이양을 만나게 됐다. 그 능숙한 솜씨로 이양에게 접근했다. 이군의 진학을 위해 교제비가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었다. 훈련비가 모자라 큰일이라고 울상이었다. 이양의 집에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돈을 내주었다. 나중엔 그와 이양의 약혼 얘기까지 나오게 됐다. 양복을 세 벌이나 해줬다. 시계도 사주었다. 화곡동에 집도 마련해 주기로 하고「오토바이」도 사주기로 약속했다. 한 달 동안에 가짜가 털어낸 돈과 패물은 근 1백만원어치. 이름을 사기당한 진짜 신동파는 한심한 세태에 가슴이 아프다고 술회했다. 『저를 사칭하고 사기를 일삼는 그 친구도 나쁘지만 피해를 입는 여자들도 한심합니다. 이름 석자에 홀려 앞뒤를 재지 못한대서야 말이 됩니까? 정신들을 차려야겠습니다』 한국 제1의「골·게터」신동파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유홍락(劉洪洛)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3/30 제2권 13호 통권 제27호 ]
  • [Love & Wedding] 심윤섭·함명숙

    [Love & Wedding] 심윤섭·함명숙

    아내를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하니 웃음부터 나온다. 현대카드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한달간 교육을 마치고 동기들과 여러 팀에 인사를 다녔다. 당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다니는 또 한 무리의 어린 여사원들이 있었다. 무리 속 그녀는 앳된 얼굴의 여고 3년생이었다. 말 그대로 어린애 였다. 지하철 노선이 같다는 이유로 그녀와 나를 포함한 팀원 4명은 출퇴근을 같이 하며 함께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뜻 없이 친근하게 그녀를 대했는데 그게 후일의 화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야근을 하고 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가지고 오는 피로회복제, 그리고 때때로 싸오는 맛있는 김밥과 주먹밥을 난 그냥 호의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길에 근사한 카페를 데리고 가달라 조르는 그녀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한강 근처 어느 카페를 가게 됐는데 그 자리에서 그만 그녀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게 된 것. 나는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고 이미 진지하게 생각하는 여자 친구가 있다는 등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리고 애처로운 마음에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그만 거기서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에게 입술을 뺏기고 만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인지 갑자기 사귀던 여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았고, 헤어짐의 아픔을 느낄 시간도 없이 난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우리 아내에게 그만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일단 사귀어 보고 아직 어린 그녀의 맘이 변하면 미련없이 헤어져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시작했던 만남. 난 도둑놈 소리를 들을까 조마조마하며 사람들 모르게 사귀고 싶었으나 철없는 그녀는 우리 사이를 알리고 싶어 안달 난 사람 같았다. 도시락을 싸와 같이 먹자 하고 커플링을 하자고 졸랐던 것. 스물 한 살의 여자와 서른 즈음 남자의 닭살스런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현대카드 모든 직원들이 우리 사이를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모두들 날 도둑놈 취급했고, 도통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회사의 공인 커플이 됐고 연애기간 동안 아무리 싸워도 매일 얼굴을 안보고 넘어간 적이 없었다. 참 많이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고 3년이나 연애를 했다. 그리고 열애 끝에 드디어 우리는 2001년 9월16일 결혼했다. 이제 어느덧 졸졸 쫓아 다니며 무조건 좋다고 애교를 부리던 그 소녀는 사라지고 하늘 같은 ‘마눌님’이 되어 시시콜콜 잔소리를 한다. 설거지,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게다가 아들 귀한 우리 집에 들어와 나를 쏙 빼닮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은 후에는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여자가 되었다. 예전의 그 귀여운 꼬맹이가 가끔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 내 곁에서 우리 아이와 나를 보살펴 주는 하늘 같은 그녀를 난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 앞으로도 그 결심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자기야 사랑해.
  • 인삼…삼삼한 축제를 찾아서

    인삼…삼삼한 축제를 찾아서

    도시생활에 지친 몸을 다스리고 싶다면 인삼 향기 그윽한 충남 금산으로 떠나보자. 국내 최대의 인삼장을 둘러보고, 각종 인삼요리를 맛보고, 인삼캐기 체험에 인삼찜질까지 즐기다 보면 도심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다. 또 시골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멋진 개인 박물관과 레스토랑은 여행의 색다른 멋을 제공한다. 특히 금산에서는 다음달 2일부터 11일까지 지구촌 건강축제인 ‘제25회 금산축제’가 열려 관광객 맞이에 한창이다. 가을에 더 아름다운 금산에서 다가오는 가을을 맞아보자. 서울을 떠난 지 2시간. 금산 인터체인지(IC)를 빠져나와 금산 읍내에 들어서자 차창밖으로 쌉싸름한 인삼과 약초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읍내 한가운데 있는 금산인삼약초거리에 들어서자 한약방에 들어선 듯 인삼과 약초의 냄새가 강렬하다. 매월 끝자리가 2·7일마다 열리는 ‘금산 5일장’이 한창이었다. 전국 인삼 생산량의 80%가 이 곳을 거쳐간다는 인삼장은 이른 아침부터 직접 재배한 인삼과 약초를 팔러 나온 상인들로 북적거린다. 시장안에는 수삼센터와 인삼종합 쇼핑센터 등 대형 유통센터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 시골장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직접 재배한 약초를 가지고 나온 노점상들의 모습에서 아직도 재래시장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소규모 장사를 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노상에서 직접 재배한 약초 등을 내놓고 팔고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삼은 1채(750g) 단위로 거래되는데 믿을 수 있는 인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1채가 3∼4뿌리로 가장 큰 ‘왕왕대’가 6만∼7만원, 크기가 가장 작은 삼계(50∼60뿌리) 1채가 2만 2000원에 거래되는 등 크기에 따라 다양한 인삼을 구입할 수 있다. 또 묘삼, 건삼, 홍삼, 태극삼, 미삼 등 모든 종류의 인삼을 구입할 수 있다. 금산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인삼 좋고 인심 좋은 인삼 찜질·캐기 시장통에 있는 인삼 찜질방인 ‘금산웰빙 24시 불가마사우나’(041-754-0020)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 인삼탕에 몸을 씻고 인삼 찜질을 즐기면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긴다. 요금은 찜질을 포함,7000원이다.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40년째 장사를 해온다는 서울식당(041-751-0607)은 시장통 밥집의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식당이다. 이 식당은 5일장이 열리는 날과 전날만 문을 여는데 4000원짜리 백반을 시키면 꽁치와 청국장 등 맛깔스러운 토종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어 읍내를 벗어나면 곳곳에서 검은 천막을 드리운 인삼밭을 만난다. 병풍처럼 둘러싼 짙푸른 녹음 사이로 펼쳐진 인삼밭은 한폭의 풍경화다. 읍내에서 개삼로를 따라 10분쯤 달리면 금산에서 인삼을 처음 재배한 개삼터다. 도로사이로 난 좁은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금산에서 인삼을 키우게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1500년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병든 모친의 쾌유를 위해 진악산 관음굴에서 기도하던 중 ‘빨간 열매 3개 달린 풀이 있으니 그 뿌리를 달여 드리면 완쾌하리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모친의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금산 여행의 즐거움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쏠쏠한 재밋거리가 있다. 남일면 신정리에 있는 홍도인삼마을(www.hongdofarm.co.kr)이 대표적인 곳으로 인삼캐기와 인삼술담그기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인삼캐기 체험은 인근 5년근 인삼밭에서 이뤄지는데 흙밭에 들어가 인삼 향기를 맡으며 갈고리 모양의 호미로 직접 인삼을 캘 수 있다. 인삼의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인삼 뿌리와 10㎝이상 떨어뜨려 널찍하게 캐야 하며, 심어진 순서대로 차례로 캐야 한다.1뿌리를 캐는데 5000원이며, 수확한 인삼은 그냥 가져가거나 마을에 돌아가 인삼술(3만원)을 담가 가져가면 된다. 문의는 도원농원(041-752-6861). 이날 어머니와 함께 인삼캐기 체험을 온 김은주(12·금산초 5년)양은 “어려서부터 인삼밭은 많이 봐왔지만 직접 캐보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우리 지역의 소중한 특산물인 인삼을 새롭게 느껴보는 계기가 됐다.”고 즐거워했다. ● 적벽강 따라 가을은 찾아오고 늦더위를 식히려면 부리면 방우리의 적벽강이 좋다. 층암절벽으로 이뤄진 산아래로 금강이 흐른다고 해서 적벽강으로 불린다. 적벽은 바위산이 붉은 색이란 데서 유래된 것으로 30m가 넘는 장엄한 절벽에는 강물 아래에 굴이 뚫어져 있어 운치를 돋운다. 가을에는 적벽이 불붙는 듯한 단풍이 강물에 얼비쳐 절경을 이룬다. 적벽 아래 흐르는 금강은 마치 호수같이 잔잔하며 감촉이 매끄러운 자갈과 모래사장이 길게 깔려 있어 맨발로 걸으면 좋다. 오염의 때가 묻지 않은 이 곳에는 쉬리와 어름치, 꺽정이 등 1급수에서만 사는 희귀어종들도 손쉽게 만날 수 있으며, 다슬기가 지천으로 깔려 다슬기를 잡으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적벽강 인근의 종가집(041-752-0229)에서는 금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둥글게 둘러 담은 ‘도리뱅뱅이’를 맛보면 좋다.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는 도리뱅뱅이는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으며 아삭하고 담백한 맛을 낸 민물고기 튀김이다.1접시에 1만원. 또 인삼이 들어간 어죽도 일품이다. 금산에서 진안방향으로 10㎞정도 달리면 호젓한 사찰인 보석사를 만난다. 운치가 있다. 얼마전 영화배우 한석규가 찍은 CF 덕분에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일주문에서 마주하는 200m의 전나무길이 장관이다. 보석사 앞에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100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버티고 서있다. 이밖에 한국의 100대 명산인 서대산과 대둔산 천태산 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이렇게 멋진 곳이 숨어있었나 금산에는 태영박물관과 레스토랑 말메종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남이면 하금리 태영박물관(041-754-7942)은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을 지낸 이기복(60)씨와 부인 임태영(55)씨가 평생을 모아두었던 향토 토기와 옹기, 민속품 등 120여종을 전시한 개인박물관이다. 대단한 보물을 전시한 박물관은 아니지만 주인 내외의 손때 묻은 옹기들과 토기, 야생화가 가지런히 정리된 아담하고 예쁜 박물관이다. 입장료 1000원. 특히 별채로 지어진 초가집 2채를 민박집으로 대여하는데 옛날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황토방으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온돌방이다.10∼20명이 머무를 수 있는 이곳은 하룻밤에 10만원이다. 퓨전 음식점 말메종(041-754-4442)은 마치 한적한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복수면 구례리 산길을 따라 차로 10분쯤 올라가면 숲 마지막에 그림같이 멋진 집이 나타난다. 모르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전직 잡지사 기자였던 박현숙씨가 만든 레스토랑으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과 함께 지냈던 성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 레스토랑은 야외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음식은 돼지 훈제 바비큐와 목살, 인삼튀김 등이 나오는 푸짐한 한정식이 1인 2만 5000원. 디저트로 나오는 과일이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이 집에는 3개의 객실이 있는데 주인이 직접 꾸민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 여행 메모 금산인삼축제집행위원회(041-750-2391)는 9월2∼11일 금산엑스포광장에서 제25회 금산인삼축제를 개최한다. 디스관광정보연구원(02-3453-5380)은 축제기간 중 매일 오전 8시 서울 강남역에서 출발하는 ‘금산웰빙여행’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경비의 40%를 금산군에서 지원,1인 3만 8000원이다. 승용차로는 대전·통영간고속도로 금산IC에서 나가면 금산 읍내가 나온다. 금산군 문화공보관광과(041-750-2392).
  • “선생님, 제 마음의 문이 열려요”

    “선생님, 제 마음의 문이 열려요”

    “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선생님의 학생이 된 것 같았어요. 팬티만 입고 함께 뒹굴며 장난치던 기억을 잊지 못할 거예요.”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9일부터 2박3일간 경기 안성시 금강면 안성수덕원에서 ‘선생님과 함께하는 여름캠프’를 열었다. 학교폭력에 가담한 적이 있거나 학업성적이 부진한 학생 등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 24명이 담임교사나 학생부장 교사와 한 방에서 먹고 자며, 게임·봉사·체험활동 등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캠프였다. 학교부적응 학생과 부모가 참가하는 캠프는 있었지만 담임교사와 함께하는 캠프는 드문 일이다. ●처음 열기는 힘들어… 동의를 얻어 참가하긴 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처음에는 캠프 참가 자체에 거부감을 보였다.A종고 3학년 최현기(18)군도 그랬다. 잦은 흡연이 문제가 된 최군은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참가하긴 했으나,“학교에서 보는 것도 지겨운 선생님과 함께” 2박3일을 보내야 하는 것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 3만원 남짓 벌고 있기도 했는데 캠프라니,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나 선생님과 밥을 지어 먹고 함께 씻고 하면서 조금씩 표정이 밝아졌다. 성격·심리 검사 프로그램, 조별 프로젝트 게임, 제빵 체험 등을 함께 하면서 틈틈이 선생님과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담배는 얼마나 피우냐, 술은 얼마나 마시냐, 여자친구는 사귀어 봤냐….’평소와는 다른 선생님의 진솔한 모습에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 것. 최군은 “선생님과 함께해도 짜증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술 마시는 거나,PC방에서 노는 것보다 즐거웠고,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도 사라졌다.”며 좋아했다. ●한번에 안 되더라도 조그만 변화를 P공고 2학년 C군은 가출과 무단결석 때문에 징계를 받는 대신 캠프에 참가했다. 친구들이 훔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데 가담했다가 구속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캠프에 와서도 잘 입을 열지 않던 C군은 식사를 준비하며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꼼꼼하고 적극적으로 변한 자신에게 스스로도 놀랐을 정도.“체험활동 중 선생님을 업어 드렸을 때 가장 기뻤다.”는 그는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과 밝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모든 학생이 단 2박3일에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아니다. 가출과 결석을 일삼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폭력에 가담했던 S중 2학년 S군은 마지막날까지도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아버지밖에 없는 가정환경에 좀처럼 말을 하려 들지 않던 S군은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알아서 사실 기분이 좋았다.”고 털어놨다. 담임 김모(28) 교사는 “처음에는 캠프도 안 오겠다고 버티더니 조금씩 이야기도 하고 승마 체험을 할 때는 활짝 웃기도 하더라.”면서 “단 한번에 활짝 열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변할 수 있다는 것 느껴” 캠프 마지막날인 11일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몰래 마련한 영상편지를 보면서 새로운 각오와 함께 캠프를 마무리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진지한 소감도 쏟아냈다. “음식에는 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듯 우리 인생에도 강약이 있죠. 학생일 때는 학생다운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느꼈어요. 말썽 피우지 않고 착한 학생으로 졸업할 거예요.”(J고 3학년 Y양) 경기도교육청 양익철 장학관은 “학생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교사들도 느낀 점이 많다.”면서 “징계나 처벌보다는 앞으로 이런 캠프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별인사를 하며 최현기군이 살짝 귀엣말을 했다.“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학교 재단을 만들어 우리 선생님을 모실 거예요. 그때까진 선생님한테 비밀이에요.” 안성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섹스토리(9) 당당하게 숨기기

    그와 나는 오늘도 ‘비디오방’으로 간다. 비디오방은 ‘여관’보다 돈이 훨씬 적게 들 뿐더러, 훨씬 더 은밀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방에는 순전히 커플끼리만 온다. 모두들 스킨십을 즐기고 싶어서이다. 단속을 한다고 해서 비디오방에는 방마다 창문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서울 각 지역의 비디오방에 가본 나로서는, 이제 딱 들어가 보면 그 비디오방의 눈속임 장치는 무엇이든간에 쉽게 간파할 수가 있다. 신촌에는 유명한 비디오방이 몇군데 있다. 우선 록카페 ‘콜라’ 옆의 세번째 골목에 있는 A비디오방. 이곳에 가서 주인 아줌마한테 특별히 부탁하면 아줌마가 뒤의 커튼으로 가려진 철문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그곳에는 가격은 좀 비싸지만 완전히 가려진 침대방이 있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어둡다. 그리고 구석방으로 가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밖에서는 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래도 큰 창문이 하나 있어 좀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고객을 위한 배려에서인지 주인 아줌마는 남녀 커플이 들어오면 검은 천조각을 건네준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유리창문에 딱 붙이도록 장치가 되어 있으니 필요하면 붙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런 다음 이어서, 단속반이 뜨면 방 내부의 불을 켜고서 천조각을 붙이라고 알려준다. 또 아줌마는 단속반이 물러가면 천조각을 떼면 된다고 당연한듯이 말해주는 것이다. 검은 천조각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것을 창에 붙이고 나면 남녀가 둘 다 훨씬 더 대담해져서 여관방에서처럼 옷을 다 훌훌 던져버리고 ‘딥(deep) 스킨십’을 즐기게 된다. 그리고 또 신촌에서 유명한 곳은 B비디오방이다. 이곳은 정말 비디오방 중에서도 그 교묘한 장치로 너무 유명한 나머지, 스포츠신문 같은 데서 ‘신촌의 모 비디오방’이라고 하면서 기사로 나가기도 했다.B비디오방은 주말에는 한시간 넘게, 평일에도 운이 나쁘면 삼십분 정도는 기다려야 자리가 난다. 이곳은 창문이 있긴 하지만 검은색 불투명 창문으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는 절대로 들여다볼 수가 없다. 시설도 첨단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소파’가 첨단이라는 점이다. 그냥 보면 평범하게 생긴 등받이만 매우 높은 의자이다. 오히려 다른 비디오방의 긴 소파 의자와는 달리 불편하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왜 B비디오방이 그렇게 붐빌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비디오방을 애용하는 다른 친구가 그 의자의 비밀을 말해주고 나서야 비로소 납득을 하게 되었다. 의자를 쫙 펴면 큰 더블 침대가 되는 것이었다. 와-이렇게 좋은 비디오방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하면 그곳 역시 여관방과 비슷한 장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약간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런 불안함이 오히려 섹스의 ‘스릴’ 요소가 된다. 그럼 비디오는 언제 보냐고? 물론 처음과 끝만 본다. 그러고 나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내용을 짐작해본다. 오랜만에 비디오방에 간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못 볼 경우도 있다.‘END’ 자막이 뜨고 스태프들 명단이 자막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옷을 다시 제대로 차려입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점잔을 빼가며 비디오방을 나오는 것이다. 물론 1학년에 입학한 직후에는 이런 종류의 비디오방은 잘 몰랐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비디오방에서 키스 정도만 했다. 그때 나는 남자 친구가 자꾸 옷 속으로 손을 넣으려 해 막 울었고, 그런 문제로 남자 친구와 다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1학년 5월 첫 축제때, 남자 친구가 용케 알아가지고 찾아간 그 요상한 비디오방에 가게 되어, 들뜬 축제 분위기 때문에 ‘은밀한 행위’를 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A나 B비디오방으로 가서 이젠 마음 놓고 스킨십과 페팅을 즐긴다. 가끔가다 그가 질외사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내 입에다가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질 안에다가는 절대로 안 한다. 우리들은 현명하게 섹스를 즐길 줄 알게 된 것이다. 비디오방이 아니라 카페 같은 곳에 가서도 우리는 옆으로 탁 붙어앉아 은밀한 행위를 즐긴다. 그가 윗저고리를 벗어 그의 사타구니 위를 덮는다. 그러고는 윗저고리 안에서 바지 지퍼를 내린다. 그런 다음 내 손이 그 안으로 파고들어 간다.…ㅋㅋㅋ…말 안 해도 알겠지…. 물론 내 손이 그의 일어선 페니스를 조물락조물락 주물러대는 것이다. 우리는 차츰 더 대담해져서 영화관에 갈 때도 그런 행위를 되풀이하게 되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처음엔 영화의 스토리를 놓치게 되었다. 하지만 차츰 습관이 들자 내 손이 자동적으로 니글니글하게 움직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나 그나 영화 내용을 놓치지 않고 감상하면서 ‘당당한 숨기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위에서 적어놓았듯이 요즘 대학생들의 성생활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사회단체들이 순결캠페인을 벌여봤자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일부의 쪼다같은 대학생들이 그런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비디오방 등의 ‘사랑독려업체’(?)나 외설물추방운동 같은 것을 벌여보기도 하지만 실효를 거두긴 어렵다고 본다. 물론 요즘 대학생들, 특히 여자대학생들은 ‘겉’으로만은 ‘순결’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전혀 ‘아니올시다’인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얼굴에 상당히 두꺼운 철판을 깔고 비교적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은 ‘축소·은폐’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조금 친해지고 나면 ‘아주 친한’ 여자 친구들 한테만은 대개 다 털어놓는다. 거의 모든 여대생들은 처음에는 남자를 거부하고 처녀성을 지키겠다고 맹서하며 몸부림을 친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대담한 ‘스킨십’을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 남자를 사귀게 되면 90% 정도의 여대생들이 성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설문조사 같은 데서는 그런 수치가 절대로 안 나온다. 왜냐하면 대개는 거짓말로 써놓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순결운동이니, 처녀·숫총각이 아닌 이성하고는 절대로 결혼해선 안 된다느니 하는 등등의 언급은, 글쎄 뭐랄까…아무튼 좀 웃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시대착오적 망발을 하느냐 말이다. 처녀성을 지키는 여자라면,20대 후반까지 남자 한번 못 사귀어본 ‘폭탄여자’(폭탄처럼 봉건적인 여자)이거나,‘옥떨메킹카’(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를 킹콩이 짓밟은 것처럼 못생긴 여자) 또는 처녀막재생수술을 말끔하게 한 여우이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요즘 세태는 인터넷에 있는 ‘익명 게시판’ 같은 곳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PC통신xx’ 같은 데는 젊은 세대들이 솔직한 얘기를 털어놓는 익명 게시판으로 유명하다. 익명 게시판은 글을 써서 올려도 쓴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용감해진 무사(武士)들이 대담무쌍하게 자신의 경험담이나 의견을 써놓는다. 대학 가운데는 내가 다니는 Y대학교의 ‘익명 게시판’이 가장 유명하다. 각종 섹스 얘기와 체위 얘기, 돈 주고 여자(또는 남자) 사서 하는 얘기, 낙태, 피임 같은 얘기들이 마치 ‘하수도 문화’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히 올라온다. 그래서 게시판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 당장 폐쇄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 보다 더 솔직한 곳은 여성동호회 ‘XYZ’이다. 이곳은 여성이 아니면 가입할 수 없는 곳으로서, 남자가 여자의 아이디를 빌려서 가입하거나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면 아이디 자체가 취소되어 버린다. 이런 ‘여자들만의 세상’이기 때문에 방문자들은 언제나 솔직하다. 여대생에서부터 가정주부까지 모든 여자들이 익명으로 서로의 경험 얘기를 솔직하게 나누고 자신이 겪은 각종 경험을 올려놓으면, 그 분야의 여성 전문가들이 대답해준다. 섹스얘기, 피임얘기, 임신문제, 유부남과의 사랑얘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솔직하게 오간다. 그렇다면 지금 나이가 찬 처녀들 중에서 진짜 숫처녀의 비율은 대체 얼마나 될까? 10%미만? 글쎄…진짜 비율은 아마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또 시집 잘 가기 위해서, 성에 관한 한 ‘보수적인 체’ 해야만 하는 악습이 있다. 그래서 모두들 진실을 축소·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안 솔직한 경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성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결혼하는 여성들, 때로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갈 것이 틀림없다. 오늘도 나는 그와 함께 비디오방으로 간다. ■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5분 데이트 (11) - 강형숙

    5분 데이트 (11) - 강형숙

      『전 외교관 부인이 될래요』 미스·모의(模擬)유엔총회 강형숙(姜馨淑)양 『직접 제가 외교관이 되는 건 싫고요. 외교관 부인으로 뒤에서 뒷바라지 해주고 싶어요』 하는 이 깜찍한 아가씨 강형숙양은 방년 20세. 외대 영어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교동국민학교, 숙명여중, 경희대부고를 거친 재원으로 어학에는 재주가 있어 중·고교 시절부터 꼭 1등 차지. 대신 수학, 역사 등이 싫었고. 『남자친구는 많이 사귀어 보았지만 아직 맘에든 애인감은 없어요. 저와 목적하는 바가 다르거나 똑똑해 보이지 않으면 같이 앉아 말할 기분조차 안나요』 그래서 남학생들 사이에선 약간「콧대 센 아가씨」로 통하는 모양이나 붙임성은 좋다. 한두 번 집안을 통해 중매가 들어왔으나「전적으로 제가 결정할 문제」라 선도 안보았고. 고등학교 때 별명은「새침이」. 중국요리「깜붕기」가 먹기 좋고 겨자든 초밥은 딱 질색. 식모아줌마가 시골간 틈에 꼭 한 번 밥을 지어봤는데 가까스로 먹을만한「61점짜리」가 되었고. 저녁엔 8시, 9시면 잠이 든다는 초저녁파. 그래서 엄마가『시집가서 남편 늦게 돌아오면 어쩔래?』하는 꾸중을 들어도『잠 안오는 약 먹고 기다리죠』하는 정도. 대신 새벽 3, 4시면 깨어 일어나 中·日 등에 사귀어 놓은「펜·팔」에게 편지를 쓴단다. 「펜·팔」하고 있는 사람 중 대만에 있는 대학교수 한 분은 자식이 없다고 강양을 자기 친딸처럼 생각, 지난번 대학총학장회의에 참석차 한국에 왔을 땐 집에 들러 강양의 부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 묵어가기도. 「퀴즈」를 하나 내라니까『달이 물에 비치면 왜 커보이나?』알아 맞추란다. ※ 뽑히기까지 지난 11월 21일 열린 제7회 모의UN총회엔 70여명의 여대생들이 참가, 시선을 끌었는데 이중에도 특히 한복차림의 귀여운 사회자 강양의 재치있고 애교있는 사회는 이날 남학생들에게 인기의 초점이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미스·모의UN총회」. 지난번 외대 영어극『다리 위에서의 조망』에서도「히로인」을 맡은 바 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

    사연 : 꼬마신랑은 부끄러워서 저는 한 3년 전부터 친구처럼 사귀어 온「김(金)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27살이나 된 처녀가 시집을 안 간다고 부모님들은 한 달에 한 번씩은 선을 보이시는데 저는 통 마름에 없어요. 시집을 가 버릴까 궁리해 보다가 김의 얼굴만 떠오르면 절대로 떠날 수 없는 걸 깨달아요. 우리들은 모든 조건이 다 잘 맞는 신랑 신부예요. 다만 한 가지 그는 키가 158cm, 체중은 45kg인데 저는 키 166cm, 체중 58kg의 거구예요. 꼬마신랑하고 결혼식을 올릴 생각을 하면 부끄러워 죽겠어요. 아마 그도 그런 생각인지 청혼을 해오지 않아요. 그러나 우린 매일 만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친해져 버렸습니다. 저는 그만 노처녀로 늙고 마는 것일까요? <이은자.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의견 : 신랑감에 실컷 먹이셔요 왜 그리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계세요? 세상에는 색시보다 키 작은 신랑은 얼마든지 있어요. 게다가 그런 부부가 더 잘 산다는 속담이 있답니다. 영국의「윈스턴·처칠」아시죠. 부인보다 키가 썩 작지 않았어요? 누가 그 부부의 체구를 비웃었겠습니까. 일본에서는 그런 부부를 특별히 벼룩이 부부라고 부르면서 축복한답니다. 이양, 용기를 내세요. 부모님들께 김청년을 떳떳이 신랑감으로 소개하세요. 우선 지금부터 한 달쯤 둘의 돈이란 돈은 먹는 데만 쓰세요. 물론 신랑감을 먹이는 거죠. 그대신 이양은 좀 굶더라도. 키는 어쩔 수 없다지만 체중쯤 한 달 안에 바꿀 수 있거든요. 신랑감의 체중을 10kg만 늘리세요. (건강한 사람의 표준체중은 신장에서 1백 내지 1백 10을 뺀 숫자랍니다.) 체중증대작전이 성공한 한 달쯤 후엔 의젓한 김씨의 체구를 보고 김양도 김양의 부모님도 부끄럽기는커녕 든든하고 대견하기만 할 거예요. 그럼 건투 빕니다. <Q> [ 선데이서울 68년 9/29 제1권 제2호 ]
  • 김희정의원 28일 화촉

    17대 국회 최연소 의원인 한나라당 김희정(34) 의원이 오는 28일 오후 1시 국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현역 의원이 임기중에 결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예비신랑은 현재 LG그룹 계열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독일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으며, 김 의원은 작년 총선에 출마하기 이전부터 예비 신랑과 사귀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때 유권자들로부터 “시집부터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난감한’ 질문에 접할 때면 “당선되면 17대 임기내 결혼하겠다.”고 말해왔다. 김 의원은 국회에서 백년가약을 맺기로 결정했으며 예식장소로 야외인 의원동산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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