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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포럼] 서정우와 안희정

    돈에도 눈이 있다.은밀한 뒷거래일수록 정확하고 예리하다.누구에게 언제 전달해야 중간 배달사고가 나지 않고,약효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여기에도 격과 급이 있는데,최고권력을 창출하는 불법 대선자금이 그중 으뜸이다. 그 돈이 찾아낸 사람이 바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서정우 변호사,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는 안희정 정무팀장이다.그 누구도 이 두 사람이 자금 창구라고 공개하지도,또 드러낸 적도 없다.그런데 돈은 이들을 만남의 광장에서,지하주차장에서 책포장으로,차떼기로 조우했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자금창구는 아예 처음부터 거리를 두려는 사람도 있지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역할이다.서 변호사는 이 총재의 고교·대학 8년 직계 후배로 이 총재가 대법관 시절부터 친근해지면서 집안식구처럼 지내온 측근중의 측근이다.자신의 말로도 “왜 나를 지목했는지를 물었더니,‘당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좌(左) 희정'으로 불리는 안 전 팀장은 10여년간고락을 같이해온 동업자이다.또 ‘노사모와 노란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 강조할 만큼 노 대통령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돈이 이들을 찾아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30년 가까이 정경유착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기업들이 누가 실세이고,누구한테 돈이 전달돼야 효과 만점인지 다 안다.문민정부 이후 검은돈과 관련해 옥고를 치른 인사들의 면면을 봐도 명쾌하다.김현철,홍인길,김홍업,권노갑,서상목,이석희 등 아들들과 동생,후배 등 이른바 실세란 실세들은 망라된다. 그런데 서 변호사는 규모가 350억원이고,안씨는 11억원일까.검찰수사가 아직 미완이어서 그런 것일까,아니면 한나라당 주장대로 기업들이 집권층 눈치보느라 입을 닫고있는 탓일까. 이 전 후보는 당내 공천혁신과 남북정상회담 발표 등을 견뎌내고 2000년 총선때 제1당이 되면서 대선 때까지 정국을 좌지우지했다.이 총재의 미래는 마치 ‘떼논 당상’처럼 보였다.게다가 대선을 치른 경험이 있어 연결 통로도 잘 정비되어 있는 터였다. 한때 노 후보 공보특보였던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노 캠프에 3번 봄날이 찾아왔는데,지난해 3월 광주 노풍(盧風)때와 11월24일 후보단일화 이후,그리고 12월19일 당선 이후라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반짝 노풍’ 이후 6월 지방선거와 8·8재보선의 연이은 참패로 후보 지위까지 내놓을 뻔했던 노 캠프다.열린 우리당 한 의원은 그래서 당선 이후가 더 문제일 것이고,노 대통령이 최도술 비서관 건을 보고받고 “앞이 캄캄하다고 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불법자금의 속성상 두 사람 말고 거액의 뭉칫돈을 만진 사람이 더는 없을 것으로 본다.기업들로서는 후보에게 돈을 줬다고 말하지 않아도,돈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될 사람으로 이 두 사람을 꼽았기 때문이다.현재 검찰수사에서 자금유용,개인적 치부 혐의 등이 흘러나오고 있으나 대기업들의 대선자금 보험료에 비하면 아마 ‘푼돈’ 수준에 불과할 게다. 불법자금의 속성이란 이렇다.권력과 마찬가지로 타인과 절대 나눠 가질 수 없다.따라서 불법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뿐,많고 적음이 면책사유의 잣대가 되진 못한다.다만 불법자금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정치에 치유하기 힘든 앙금을 남기고,정치인들에게는 깊은 상처를 입힌다.어쩌면 동시대를 사는 유권자들은 모두 공범일지 모른다.‘무조건 싫고,아무튼 좋은’ 양단의 선택을 피할 길은 없는 것인가. 양 승 현 논설위원 yangbak@
  • [씨줄날줄] 선영시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자기 조상을 공경하며 살아왔다.자기존재의 뿌리에 대한 관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문화적 전통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기독교와 합리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서양에서는 조상은 단지 추모의 대상일 뿐이다.그러나 유교적 전통을 지닌 동양에서는 조상은 신과 동격이 되며,숭배의 대상으로 섬김을 받는다.죽은 조상을 섬기는 의식이 바로 제사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제사는 먼 옛날 천재지변이나 질병,맹수의 공격 등을 막기 위한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그것이 동양에서는 조상숭배 사상과 유교 문화가 결합돼 각 가정마다 제사를 드리게 됐다.예서(禮書)에는 “제왕은 하늘에 제사 지내고,제후는 산천에 제사 지내며,사대부는 조상에 제사 지낸다.”고 돼 있다.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에게는 천지가 절대자이고,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에게는 산천이 절대자이며,일반인들에게는 조상이 절대자라고 보는 것이다.그만큼 조상은 하늘신이나 땅신에 비견되는 영구불멸의 신격을 지니고 있다. 진실로 자기 존재를 고맙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돌아가신 조상 섬기기를 살아 계신 조상 모시듯’(事死如事生)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조상 앞에 나설 때는 생사를 불문하고 한 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이를 소홀히 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며,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그것이 우리의 법도이며,서양도 부러워하는 우리만의 문화적 전통이다. 요즘 정치인들의 조상을 모신 전국 곳곳의 묘소들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묘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 반대 귀신 신위’라는 지방을 써놓거나,‘자손의 매국적 행위를 막아주시고…’ 등의 내용이 담긴 제문을 읽으며 제사를 드린다고 한다.이른바 ‘선영(先塋)시위’다.조상을 모시는 곳이 선영 아닌가.농민들의 다급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성스러워야 할 제사를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다니 부끄러울 뿐이다.이제 조상 묘를 파헤치는 일도 머지않은 것 같다. 염주영 논설위원
  • [시네 드라이브] 영화가 反轉 노출 막기

    막판반전이 절묘한 심리스릴러의 대명사 ‘식스센스’가 막 개봉했을 때 한 극장에서 발생한 해프닝.매표소 앞에 길게 줄선 관객들에게 먼저 관람하고 나오던 이가 소리쳤다.“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기대에 부푼 관객들에겐 얼마나 잔인한(?) 한마디였을까. 영화담당 기자가 곤혹스러울 때도 그 비슷한 경우다.허를 찌르는 반전 자체가 ‘전부'인 영화를 놓고 반전이 뭐냐고 집요하게 물어올 때.한창 흥행가도를 달리는 최민식·유지태 주연의 스릴러 ‘올드보이’(감독 박찬욱)도 그랬다.이미 본 관객이라면 익히 알겠지만,자칫 한마디 잘못했다간 ‘스포일러’가 되고마는 영화다. ‘올드보이’ 마케팅팀이 반전노출을 막는 데 온 신경을 쏟은 건 그래서다.언론시사 다음날 영화기자들에게 반전노출을 피해달라는 이례적인 당부를 이메일로 돌리기까지 했다.그럴만도 했다.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과 배우는 물론,스태프 전원이 ‘반전 발설시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계약조항에 합의했던 영화다.캐스팅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돌릴 때도 반전관리는 철저했다.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반전이 묘사되지 않은 대목의 시나리오만 공개했다.개봉 후에도 ‘반전과의 전쟁’은 계속됐다.홈페이지의 스포일러 글을 감시하는 아르바이트를 따로 뒀다. 얼마전 전세계 동시개봉으로 떠들썩했던 ‘매트릭스3’도 반전(결말)노출을 막기 위해 극비작전을 전개했다.기자시사회를 개봉 하루전날 갖는 별난 마케팅도 그 연장선상에서 돌출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이렇듯 유난스러운 마케팅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다.‘올드보이’ 기획팀의 김유경 실장은 “‘직접 보고 즐길 권리’를 빼앗기는 데 대해 요즘 관객들은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면서 “설령 스포일러 글이 홈페이지에 오르더라도 관객들끼리 보지 말라고 귀띔하는 등 ‘자정운동’을 벌일 정도”라고 말했다.실제로 ‘올드보이’나 ‘매트릭스3’의 기사에서 반전포인트를 귀띔한 몇몇 기자들은 영화 홈페이지에서 관객들의 맹공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영화가는 “관객들의 영화보기 문화가 적극형으로 급속히 변해가는 증거”라며 일단 좋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영화도 상품이다.무슨 상품이든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의견교환이 활발히 이뤄져서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다. 황수정 기자 sjh@
  • 우당탕탕… 사극코미디/ 윤제균 감독의 ‘낭만자객’

    ‘두사부일체’‘색즉시공’을 잇따라 흥행 성공시켜 ‘코미디의 귀재’란 꼬리표를 단 윤제균 감독이 이번엔 사극 코미디를 선보인다.새달 5일 개봉하는 ‘낭만자객’(제작 두사부필름).사극이란 외피 속에 현대감각의 온갖 코미디 장치들을 버무린 퓨전스타일이다. 영화의 독특한 외형만으로도 감독은 충분히 자신있었던 걸까.요란한 스타 캐스팅 대신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운 개성이 눈에 띈다. 때는 조선시대.청나라 대사의 몸종인 어린 여동생과 오순도순 사는 게 꿈인 요이(김민종)는 돈을 벌려고 예랑(최성국)이 두목으로 있는 낭만자객단에 들어간다.영화는 정색 한번 하지 않고,작정한 듯 코미디만 느물느물 늘어놓는다.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얼빵한’ 요이,폼만 잡을 뿐 실수만 연발하는 예랑을 번갈아 조명하며 코미디의 강도를 높여간다.의뢰를 받고 불륜남녀를 잡아가다 흉가에 들른 자객단은 처녀귀신들을 만난다.그러나 귀신들에게 큰 실수를 저지른 대가로 그들의 원수인 청나라 고수를 대신 처치하는 위험한 임무를 떠안는다.무술 겨루기 같은 심각하고 절도있는 장면은 없다.처녀귀신들과 푼수 자객단이 엮는 해프닝에서 재미를 길어올리는 데 전력을 쏟을 뿐이다.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입만 떼면 거친 욕설에다 와이어 장치로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는 처녀귀신들,그들에게 꼼짝못하고 휘둘리는 실수투성이 자객단이 빚어내는 화면은 재치있는 볼거리로 손색없다.‘색즉시공’으로 활동을 재개한 진재영,코미디 조연으로 한창 뜨고 있는 신인배우 신이가 경상도 사투리를 실감나게 구사하는 터프한 처녀귀신으로 열연했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이 갈수록 소재의 참신성을 갉아먹는 단점들을 드러낸다.요이와 예랑이 얼떨결에 나누는 적나라한 키스,대소변을 등장시킨 화장실 엽기유머 대목들은 외면해버리고 싶을 만큼 부담스럽다.어떻게든 웃겨야 한다는 강박감이 자충수가 돼 버린 건 아닌지…. 황수정기자
  • [열린세상] 파라치 없는 사회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이 있다.믿었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고 적으로 돌아선 예는 얼마든지 있다.최근에 한 운전기사가 택시회사 회장을 납치한 사건,현직 중학교 교장이 비위사실 징계에 앙심을 품고 상급자를 무고한 일,굿시티 분양사기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전직경찰관이 “나혼자 죽을 수 없다.”면서 동료를 협박한 물귀신 작전이 오늘의 인심을 그대로 반영해준다.이웃이 이웃을 관청에 고발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의 비리를 돈 때문에 팔아먹기도 한다.각박해지는 세태의 변화는 숨이 가빠서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한동안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고발하는 카파라치가 유행하더니 이제는 자파라치 노파라치 팜파라치 담파라치 쓰파라치 주파라치 등 별의별 파라치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무허가 자판기,무허가 노래방,담배꽁초,쓰레기투기,유통기간이 지난 식품 등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기초질서 세우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이다.앞으로 대선과 총선 등 4대 선거에서 후보자 쪽에서 받은 금품을 신고하면 5000만원을 주는 ‘선거 파파라치’도 등장하리라고 예고된다.‘포상금 파파라치’를 위한 사이트는 관련법률과 포상내역,신고양식을 상세히 소개하고 1건당 10만원에서 1억원 이상 등 보통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고수익 포상제도도 있다고 부추긴다.하루 한두건만 해도 웬만한 봉급자와 맞먹는 수입이고 보면 너도나도 파파라치를 지망하는 사태를 빚게 될지 모른다.따라서 건수를 올리기 위한 경쟁심과 함께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초래될 수도 있다.이미 한 시민단체가 손해보험협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카파라치를 고용해서 교통사고 적발건수를 늘렸다는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산 바 있다. 사회 곳곳에는 수많은 비리와 불법이 도사린다.분통이 터질 일,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널릴 대로 널려있다.그래서 고발할 일도 많고 시비걸 일도 많다.파라치 등장은 관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한 데까지 일일이 감시하여 부당행위를 뿌리뽑기 위한 최선책의 하나다.그런 역할은 어느 사회나 필요하다.고발하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질서도 잡히고 법도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다만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요소가 싸우고 고발하는 일외엔 다른 도리가 없느냐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고발정신은 시민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면서 부당한 것에 대한 완강한 제재라는 측면에서 이를 반대할 까닭은 없다.그러나 무조건적인 고발정신이 인간과 인간,이웃과 이웃의 와해로 치닫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걸핏하면 고발하고 찌르는 이웃이 이웃일 수 없고 나를 음해하는 동료가 동료일 수 없다.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 채 신고자와 고발당한 자가 되다 보니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주를 납치하고 상급자를 무고하는 막가는 인심불감증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요즘은 아파트 투기풍조로 한 동네에 오래 정착하는 주민이 드문 만큼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여기에다 고발이라는 매개체까지 등장해서 세상인심을 더욱 사납게 부채질하는 꼴이다. 질서도 좋고 청결도 좋지만 개인이 개인을 적발하는 파라치 방법은 어딘지 무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더구나 파파라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찍은 사진들을 달러와 흥정에 부치던 황색 저널리즘의 주구(走狗)로 알려진 명칭이다.불법 위반을 바로잡는 일이 남의 사생활이나 물고늘어지는 파파라치로 표현되는 것이 마땅한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인상을 씻기위해선 정의로운 자율감시단 또는 정식 감시기구를 편성해서 적정한 월급체제로 정당하게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리고 어딘가 숨어서 남의 위반을 적발하기 전에 먼저 불법행위를 지적해서 경고하고 계몽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환경지킴이,식품지킴이,건강지킴이로 호칭을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따뜻한 인심과 온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노숙자가 늘어난다는 소리도 들린다.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이 이웃과 이웃간의 우정,신뢰와 의리 등 인정주의가 탄탄해져야만 사회의 기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세 기 영상등급위원회 위원 前대한매일 논설위원
  • 책 / 얼굴

    대니얼 맥닐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지구상에는 60억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그들의 얼굴은 모두 다르다.이론적으로 가능한 얼굴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소립자의 수를 능가한다고 한다.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인 대니얼 맥닐이 쓴 ‘얼굴’(안정희 옮김,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이처럼 다양한 얼굴만큼이나 읽는 사람에게 다르게 다가온다.코를 미학적으로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눈을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끼는 사람,여자의 입은 모름지기 작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저자는 시대와 지역과 분야를 가로질러 부위별로 ‘얼굴여행’을 떠난다. 가장 매력적인 코란 어떤 것일까.미국 여류작가 루이저 메이 올콧의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에이미는 낮은 코를 최대의 불운으로 간주,어떻게든 높여보기 위해 빨래집게로 집는다.르네상스시대의 미학자 아뇰로 피렌주올라는 들창코를 흉한 것으로 규정했지만 영국 작가 새커리는 소설 ‘허영의 시장’의 여주인공 베키 샤프에게 들창코를 주었다.소설가 디킨스는 들창코를 비판하는 것은질투 때문이라고 보았다.과학자들은 남성은 작은 코를 가진 여성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고 말한다.마릴린 먼로는 웃을 때 윗입술을 아래로 당기는 연습을 했다.그러면 코가 더 작아 보일까 해서였다.코에 관한 상징은 양극단을 달린다. 육체의 어느 부분도 눈만큼 내면을 잘 드러내지는 못한다.로마의 정치가 대(大)플리니우스의 말처럼 눈은 영혼의 창이다.그것은 얼굴의 심리적 중심이며 가장 섬뜩한 상징이다.마호메트는 카바 신전 안의 우상을 공격할 때 제일 먼저 눈을 표적으로 삼았고,남아메리카의 파린틴틴 인디언은 귀신이 앞을 보지 못하도록 죽은 적의 눈을 먹었다.여자의 커다란 입이 역사상 아름다움의 조건으로 인식된 적은 거의 없다는 점도 흥미롭다.반면에 작은 입은 종종 미인의 필수조건으로 간주됐다.특히 빅토리아 시대에는 작은 입을 품위 있고 우아한 것으로 여겼다.이 책을 읽으면 “모든 것이 얼굴에 있다.”는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말이 한층 설득력 있게 들린다.2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스크린서 TV서 ‘너도나도’ 史劇 레디고!

    스크린,TV할 것 없이 사극돌풍이 거세다. 지난 2일 극장 개봉한 이재용 감독의 멜로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제작 영화사 봄)는 개봉 3주째인 지난 주말로 전국관객 300만명을 훌쩍 넘겼다.지난 17일 개봉한 역사코미디 ‘황산벌’(제작 씨네월드)의 흥행성적도 놀랍다.개봉 열흘 만에 무려 172만명을 불러모았다. ●‘다모' 이어 ‘대장금'도 초강세 안방극장에서도 사극은 초강세다.MBC가 방영하는 ‘대장금’의 지난주 시청률은 43.7%.첫 방송 이후 3주 연속 주간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다모’ 폐인(?)들이 채 정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시대극 열풍이 잇따라 불어닥친 셈이다. 그러면 최근 이같은 사극 열풍의 원인은 무엇일까.일단 경직되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한꺼번에 걷어내는 트렌드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최근 인기사극들의 공통점은 모두 도도한 역사를 오락의 코드로 유연하게 변주해 낸다는 것.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온 ‘과거’는 현대인의 입맛을 자극하는 기발한 감미료가 됐다. 실제로 최근의 화제작들은 시대배경만 과거로옮겼을 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감상주파수는 철저히 현대적 감성에 맞췄다.톱스타 배용준·전도연·이미숙이 극중 삼각관계를 이루는 ‘스캔들’은 조선시대가 시간배경.왕실,권력 암투,당쟁 등 기존 사극들의 틀에 박힌 소재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띄웠다.화려한 복식과 소품들도 ‘퓨전’스타일로 재탄생했다.“현대적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증과 상상을 반씩 섞어 고안했다.”는 게 영화사측의 설명이다. 박중훈·정진영이 주연한 ‘황산벌’의 흥행 노림수도 같은 쪽으로 읽혀진다.1300여년전 신라 김유신 장군과 백제 계백 장군의 대결을 그렸지만,정작 드라마를 살지우는 감상포인트는 배꼽잡는 영·호남의 생활사투리.이준익 감독은 “역사에 관한 한 우리는 지나친 패배주의에 휩싸여 있었다.”면서 “지역감정과 사투리를 그 시절에 대입해 한번쯤 역사를 갖고 놀아보는,적극적 접근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군신(君臣)이나 왕실의 여인들이 권력암투를 벌이는 설정이나 고어투의 대사 등 시대물의 해묵은 공식을 벗어나기는 TV사극 ‘대장금’도 마찬가지다.연기자들의 의상만 현대식으로 바꿔입히면 요리를 소재로 한 트렌디 드라마로 전혀 손색없다.SBS ‘왕의 여자’도 이례적으로 신세대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등 분위기 반전에 애썼다.‘임금님’‘왕자님’ 등 생활용어식 호칭이 매우 새롭다. ●‘스캔들' ‘황산벌' 등 관객몰이 역사의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려는 움직임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12월5일 개봉할 코믹무협영화 ‘낭만자객’(제작 두사부필름)도 역사를 비튼 각도가 혀를 찰 만한 수준이다.조선시대를 무대로,처녀귀신의 한풀이에 나선 멍청한 자객들이 엮는 코미디.서울 강남의 소문난 나이트클럽 줄리아나를 ‘주리아나’(酒里亞羅)란 주점으로 패러디한 설정은 단연 압권이다.테크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한복차림의 남녀,횃불과 거울로 사이키 조명을 만드는 노비 등 과거와 현재를 무차별 ‘짬뽕’시킨 기발함이 벌써부터 충무로의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새달 14일 개봉하는 팬터지멜로 ‘천년호’(제작 한맥영화)도 역사를 거침없이 상상의 재료로 삼았다.실존인물인 신라 진성여왕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음모와 복수로 얼룩진 멜로드라마를 빚어낸다. ‘역사 엄숙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최근의 영상 문화적 시도는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사회전반이 문화적으로 성숙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트렌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그러나 이 못지않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한 제작자는 “뚜렷한 메시지 없이 경박한 아이디어만 남발함으로써 관객들의 입맛에 일시적으로 최면을 거는 거품일 뿐”이라고 꼬집었다.역사가 관객몰이를 위한 ‘봉’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황수정기자 sjh@
  • 책꽂이

    ●사춘기(김행숙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99년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사춘기와 귀신 등 경계에 머무는 소재를 통해 ‘떠도는 감성’을 노래.평론가 이장욱은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서정적 자아를 창조해 현대시의 새 징후를 보여준다.”고 평가.6000원. ●살아남은 자의 전설(장혜영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조선족 작가의 장편.여성 4대의 삶을 소재로 중국에서 겪은 우리 민족의 억압된 역사와 남존여비 등 수난사를 비롯, 자본주의 도입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묘사.모두 2권,각 9000원. ●해방후 조선족 소설문학연구(이광일 지음,경인문화사 펴냄) 중국 옌볜대 교수인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조선족 문학에 대한 기존연구를 검토한 뒤 김학철,이근전 등의 작품세계를 조명.해방 후 조선족 소설이 중국문학의 단순한 번안이 아니라 자체의 발전법칙이 있음을 규명.2만 2000원. ●휴일의 에세이(이어령 편저,문학사상사 펴냄) 나도향,김동인,최인호와 생텍쥐페리,앙드레 지드,보르헤스 등 국내외 유명 문인들의 유려한 에세이 61편을 모은 것.생활·자연·사상·문명·기행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작가들의 내면 풍경과 철학을 섬세하게 담았다.8000원. ●열대어(요시다 슈이치 지음,김춘미 옮김,문학동네 펴냄)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소설집.일본문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적 감수성을 겸비한 작품세계로 젊은 세대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평가받는다.심리묘사 없이 행동만을 묘사한 표제작 등 3편.7500원. ●나의 날개로 날고 싶다(이춘해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교직생활,전업주부로 살면서 습작한 작가의 첫 장편.남편의 숱한 외도를 알면서도 가정을 위해 참아온 주인공이 이혼 뒤 옛 애인을 만나 참된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8500원. ●아쉬움에 대하여(유자효 지음,책만드는집 펴냄) 언론인 시인의 8번째 작품집.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한다.그러나 그 정조는 과거로의 퇴영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긍정하기에 역동적이다.해서 노래한다.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만하다고.물론 “당신이 떠난 뒤에도”.6500원.
  • 책 / 딸아 딸아 연지 딸아

    유안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아랫녘 웃녘 새야/전주 고부 녹두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두류박 딱딱 우여.” 어린아이들의 입을 통해 널리 불려진 ‘녹두새’란 제목의 동요다.여기서 새는 민중이고 두류박은 두류산을 가리킨다.녹두새는 전봉준이 체구가 작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그리고 ‘딱딱 우여’는 날아가라는 뜻이다.전주라는 말에는 전봉준의 전씨가 왕이 되려한다는 의미도 담겼다.그렇게 볼 때 이 동요는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관변에서 만들어 퍼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요는 이처럼 시대상을 반영한다.그런가하면 갓난아이에게 들려주던 자장가,힘든 농사일 중에 부르던 노동요,장터의 각설이타령,세시풍속과 관련된 노래,재치 있는 말장난이 담긴 노래 등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딸아 딸아 연지 딸아’(유안진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서울대 아동학과 교수)가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수집한 우리 노래 209편을 묶은 민요 모음집이다.저자는 민요를 내용에 따라 부녀자들이 불렀던 부요(婦謠)와 남정네들이 불렀던 속요,여자아이들의 동요와 남자아이들의 동요로 나눠 실었다.민요는 우리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종다양하다.작사자나 작곡가가 따로 없고 소리꾼과 청중도 따로 없다.누군가 지어 부른 뒤 또 다른 사람이 저마다 사연을 보태어 부르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 민요다.저자는 “전래동요와 속요야말로 가장 짙고 야한 바탕색 그대로의 우리 말,우리 혼,우리 넋의 우리 문화”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찍이 우리 말과 민속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등 그가 쓴 장편소설이나 ‘월령가 쑥대머리’같은 시집도 모두 민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의 민요 해석은 그런 민속학적 지식에 힘입어 한층 설득력을 더한다.부인들이 부르던 민요 ‘답교’의 한 토막.“정월 상원일에 달과 노는 소년들은/답교하고 노니는데/우리 임은 어딜 가고 답교할 줄 모르난고/이월 청명일에 나무마다 춘풍들고/잔디 잔디 속잎 나니 만물이 희락한데/우리 임은 어델 가고 춘기 든 줄 모르난고….” 답교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다리를 밟던 풍속으로,열두 다리를 밟으면 그 해의 액을 면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그러나 저자의 해석은 사뭇 독특하다.대낮에도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들이 달밤에 다리 위를 건너면서 산책하는 것이 허용·장려된 것은 달빛을 받아 출산력을 강화하고 다리 힘을 키워 건강한 아이들을 자주 임신·출산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나아가 달힘 마시기·달모래 찜질·그네뛰기·널뛰기·탑돌이 등도 부녀자들이 다산력을 얻기 위한 우리 민속이라는 견해를 편다. 민요를 대하면서 얻는 또다른 즐거움은 우리의 맛깔스러운 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고네기·달구·군디·딩겨·강생이·구무·번들개·거렁·다릉개·나승개….민요에는 듣기만 해도 정겨운 사투리와 옛 말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가자가자 감나무/오자오자 옻나무/대낮에도 밤나무/벌건 대낮 밤나무/등 밝혀라 등나무/시퍼래도 단풍나무/죽어서도 살구나무/회초리는 싸리나무/마당쓸어 뱁싸리나무/아무따나 모개나무/멍들었다 자두나무/귀신 쫓는 복숭나무/무덤 둘레 엄가시나무….” 어린 아이들이 한둘 또는 여럿이 선창과 후창으로 불렀던 ‘나무 노래’라는 전래 동요다.나무 이름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다.여러 말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가며 유쾌한 말놀이를 즐겼던 옛 사람들의 재치와 상상은 지금 접해도 신선한 데가 있다. 우리 옛 노래 중에는 전란을 당해 특별히 지어 부른 ‘애국 민요’도 있었다.‘쾌지나 칭칭 나네’와 ‘강강수월래’가 대표적인 예다.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는 ‘강한 왜놈 오랑캐인 가등청정이 물을 건너 왔네’라는 뜻.임진·정유란을 겪으면서 왜의 침략을 받은 전라도 지방에서 봉홧불을 못 올리는 상황이 되자 이같은 노래를 불러 한양 조정에 침략을 알렸다고 한다.한편 경상도에서는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불러 왜군의 침략을 알렸다.‘쾌지나 칭칭 나네’는 ‘왜장 청정(倭將 淸正) 나왔네.’라는 말을 변용한 것이다. 전래 부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토설한 노래.“미나리는 사철이요/장다리는 한철이라/메꽃 같은 우리 딸이/시집 삼년 살고 나니/미나리꽃이 다 피었네.”‘미나리와 장다리’라는 이 민요는 원래 조선 숙종이 장희빈을 편애해 인현왕후를 폐서인시킨 내용을 담은 노래다.민씨 성을 가진 인현왕후를 미나리로,장희빈을 초여름에 꽃피는 무씨받이 장다리에 비유했다.인현왕후의 친정집 당파인 서인,그 중에서도 서포 김만중이 지어 아이들에게 퍼뜨린 동요라는 설도 있다.그러나 저자는 이 민요를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그린 노래로 본다.메꽃같이 튼실하게 어여뻤던 딸이 웃자란 미나리꽃 같이 초췌해진 데 대한 안쓰러움,장다리처럼 한 철뿐인 첩실에 대한 원망 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와 함께 나고 자란 우리 민요가 오늘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현실은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이다.저자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우리의 토종 민들레는 본래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그러나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에 의해 도태당해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요.우리 민요 또한 그런 운명에 처한 것이 아닐까요.” 민요가 사라져가고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아름다운 말들이 고갈되어가는 현실이기에 이 책은더욱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당구테이블 인생의 축소판입니다”/‘1만점 기록 보유’ 당구명인 양귀문씨

    ‘따∼악,휘리릭∼’ 큐를 떠난 흰 공이 경쾌한 파열음을 내며 빨간공에 부딪치는가 싶더니 마치 끈으로 잡아당기듯 이내 반원을 그리며 녹색테이블 구석의 또다른 빨간공을 향해 휘어진다.물 흐르듯 춤추는 큐를 따라 3개의 당구공은 레일을 따라 구르기도 하고,때론 큐를 기어오르기도 하면서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을 그려낸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조끼,백발을 깔끔하게 빗어 넘긴 노신사는 마음씨 넉넉한 여느 집 큰아버지 같은 모습이지만 금테안경 너머로 공의 한 점을 꿰뚫어보는 눈매에서는 매서움이 묻어난다. 대한당구연맹의 수석부회장 양귀문(67)씨.그는 자신의 공식 직함보다는 ‘당구 명인’으로 더 유명하다.국내 최고의 당구(4구) 점수인 ‘명예 2만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한번에 1만점을 쳐내 기네스북까지 오른,말 그대로 ‘당구 귀신’이다. ●목포 만석꾼 양아들의 ‘당구병’ 양씨는 서울 중학동의 내로라하는 부잣집 외아들로 자랐다.목포 만석꾼 출신의 아버지 정모씨 슬하에서 유복한 소년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수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남모르는 아픔도 컸다.자신의 생부가 따로 있었던 것. 본래 정씨 주치의의 셋째아들인 그는 갓난아기 때 강보에 싸인 채 만석꾼 집의 양아들로 들어갔다.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아들이 없던 정씨가 주치의의 막내아들을 양자로 낙점했고,아들만 셋을 둔 그의 생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씨 성으로 자란 그가 다시 자신의 성을 찾게 된 것은 17년 뒤.생부가 사망한 뒤 부산 피란 시절 둘째형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끈질기게 양아버지인 정씨를 설득해 양씨 성을 되찾았다. 양씨의 당구 인생을 열어준 사람 또한 다름아닌 양아버지.대학에 입학한 뒤 취미로 잡은 큐로 인해 ‘당구병’이 도진 그가 밤늦도록 공과 씨름한 뒤 집 안으로 월담하다 장독을 깬 것만 수차례.이후 선뜻 집 안에 당구테이블을 들여놓으며 “당구를 얼마나 치기에 그렇게 빠졌느냐.”고 미소짓던 양아버지의 눈매를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일본 최고수의 제자로 양씨의 당구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귀화 일본인 윤춘식(일본명 다카키 쇼지)씨.14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33세에 당구공 하나로 전 일본을 제패한 윤씨는 지난 1971년 양귀문에게 일본 당구유학을 권한다.당시 영화제작 등 사업에 분주하던 양씨는 모든 것을 접고 ‘최고봉’에 오르겠노라며 대한해협을 건넜다. “두달 동안은 당구공 구경도 못했어요.하루에 꼬박 두 시간씩 큐를 밀어치는 연습만 했지요.오른팔에 근육이 뭉칠 무렵,그제서야 공을 놓아주더라고요.”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더욱 혹독한 훈련 뿐. “세리(빨간공 두 개의 간격을 일정하게 모아놓은 상태에서 쿠션 레일을 따라 이동시키는 기술) 훈련을 하루에 열 바퀴씩 시키더군요.한 바퀴 점수가 2000점이니 열 바퀴면 2만점인데 꼬박 두시간 반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쳐내야 했지요.” 1년여의 유학을 마친 양씨는 8·15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침침한 백열등과 자욱한 담배연기로 상징되는 한국의 당구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사업도 뿌리친 채 당구에 매달렸다.국내외 대회에서 60여차례 우승을 휩쓸었고,당구 보급을 위해 개최한 세미나만 1700여차례나 된다. 지난 84년 한큐 1만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그는 2000년 5월 1대 조동성(사망)씨에 이어 2대 ‘당구 명인’으로 추대됐다. ●당구가 주는 절대교훈 ‘겸손함' 양씨의 당구 철학은 의외로 싱겁다.‘가장 쉬운 공을 가장 어렵게 쳐라.’는 것과 ‘강해져야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것. 양씨는 “당구 테이블은 인생의 축소판이지요.큐 하나로 온갖 모양을 다 그려내면서도 고통은 고통대로,희열은 희열대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당구입니다.무엇보다도 가장 쉬운 상황을 가장 어려운 듯 완벽하게 풀어나가는 겸손함이 당구가 주는 절대 교훈이지요.” 양씨는 또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나폴레옹,그리고 미국의 조지 워싱턴 등 세계를 다스린 제왕과 지도자들도 모두 당구를 즐겼다.”면서 “절대적인 권력과 강인함을 갖추었으면서도 완급과 강약을 아우르는 통치력을 그 안에서 배웠을 것”이라고 확신애 찬 듯 강조했다. 양씨의 당구에 대한 정열은 ‘이순’을 훌쩍 넘어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70살)’을 바라보면서도 끝이 없다.서울 서초동의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매주 강의 중인 양씨는 지난달부터 인터넷 강좌까지 개설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큐 하나로 ‘종심’을 향한 불꽃을 태우고 있다.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
  • [대한포럼] 천정배와 이광재

    천정배와 이광재.노무현 대선 후보 경선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이 털어놓는 인물평이 세간의 화제이다.사람들,그것도 권력과 지근거리에 있는 인사들에 관한 감추어진 됨됨이를 엿본다는 것은 그것이 바른 품평이건,아니면 독설이건 속물 근성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서는 흥미 이상의 재미다.그런데 유 대변인이 유독 호평한 인물이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유 대변인은 이 실장을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니까 유학가겠다고 하더라.’며 권력 관계에 별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고 평했다.대선 과정에서 중요 정책 결정을 앞둔 노 후보가 8층 사무실에서 갑자기 7층 이광재 사무실로 달려가 상의하고 와서 최종 결정하는 것을 종종 봤다고도 했다. 열린 우리당 천정배 의원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의원’이라며 지난해 3월 경선에서 의원 중 처음으로 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뒤 일관되게 처신해온 점을 높이 샀다.두 사람 다 쓰임새와 강도는 달라도 노 대통령의 동지이자,동업자임을 세상에 공표해준 셈이다. 그런 이 실장이 지난 정부 때와는 많이 달라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으니,이목이 집중되고 힘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아무리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도 돈과 정보 만치 권력의 역학관계를 적확하게 읽지 못한다.눈도 없는 돈이 실세를 오차없이 찾아가는 것을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 실장의 궤도 이탈을 듣지 못했으나 재신임 정국 이후 천 의원이 쏜 직격탄을 맞고 사표를 냈다.정보와 권력 독점을 시인도,부인도 않고 대통령의 곁을 떠나 칩거에 들어갔으니,겉으로는 인정한 꼴이다.‘장관들을 설설 기게 만든’ 힘있는 실세라면 한번쯤 대들어보고, 해명하고, 억울함도 호소해 볼 만한데 미련이 없어 보인다. 그의 대응태도는 확실히 ‘노무현 코드’다.무언가에 연연해 하는 모습은 초라하고 대통령에 누가 될 뿐이라는 역동적인 변방의 행동 양식과 인식이 노 대통령을 빼닮은 꼴이다. 천 의원의 ‘충정’은 이제 이 실장을 넘어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특정 386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며 청와대 전면 쇄신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천 의원다운 용기이다.인적 청산 요구는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로,정치에서는 치명적인 적을 만드는 악수이다.‘물러나라는 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나.’라는 정찬용 인사보좌관의 항변은 세상사의 진리다.잘못했다간 역풍에 휘말려 되레 정치 생명을 재촉할 수도 있는,누구도 맡지 않으려는 ‘악역(惡役)’의 결기이다. 노 대통령이 이미 내각과 청와대 전면 개편을 약속했고,청와대 참모들의 미숙함과 코드가 숱하게 도마에 오른 터여서 결과는 뻔해 보인다.우리당과 천 의원이 내놓은 처방전의 승리로 굳어질 것이다.권력이란 표면 상 외부 공격으로 무너지는 것 같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내부의 적으로 인해 무력화된 경우가 흔하다.공성(攻城)을 하건,수성(守城)을 하건 내부의 적을 가장 경계하는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8개월 동안 인적 청산 싸움으로 다퉈온 우리당은 정신적 여당으로서 재신임 정국 위기에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참모들이라고 하나,청와대와 이 실장만이 내부의 적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과거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도 아니고,취임 초부터 평검사들과 입씨름을 해야 했던 곤궁한 처지의 정권에서,386 참모 한 사람이 정보와 권력을 전횡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비이성적이 아닐까. 인적 청산은 권력의 냉혹함을 보여줌으로써 궁중 비사(秘史)처럼 흥미진진할지 몰라도 앙시앵레짐(구질서)의 정치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개혁은 전문가적 노회함보다는 미숙하지만 순수한 열정에서 잉태된다.그래서 ‘천정배 용기’보다는 ‘이광재 결단’에 희망을 걸고 싶다. 양 승 현 논설위원 yangbak@
  • 으스스한 유령의 ‘귀여운 쇼’/테마파크들 핼러윈 이벤트 풍성

    고대 켈트인들의 겨울맞이 풍습에서 유래한 핼러윈데이(10월31일)를 맞아 테마파크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한다. 서울랜드(02-504-0011)는 11월2일까지 모험의 나라에서 여고귀신,간호사귀신 등 으스스하지만 익살스러운 모양의 캐릭터들이 관람객들과 함께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인다.또 통나무 무대에서 핼러윈 호러 시네마 상영,핼러윈 의상 입고 사진찍기,오페라의 유령 테마곡 연주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롯데월드(02-411-2000)는 31일까지 새로 개발한 10여종의 핼러윈 캐릭터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박쥐옷을 입은 로티로리,귀여운 악마로 분장한 모리스,개구쟁이 호박귀신 화이트베어,키다리 해골 등이 광장에 나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사진을 함께 찍으며 축제를 즐긴다. 에버랜드(031-320-2000)에선 11월2일까지 타악 퍼포먼스 그룹 도깨비스톰이 매주 공휴일 저녁 글로벌스테이지에서 핼러윈데이를 테마로 공연을 펼치며,오전 11시와 오후 4시 정문 글로벌페어에서는 호박귀신,도깨비,해골,유령 등의 캐릭터들이 퍼레이드를 벌인다. 63빌딩(02-789-5663)에선 29일부터 11월2일까지 매일 오후 2시30분 다이버들이 해골귀신과 마녀 등으로 분장하고 수족관에 들어가 바다거북·가오리 등 수조 안의 해양생물들과 함께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핼러윈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임창용기자
  • 해병대 ‘귀신잡는 여전사’ 탄생/창설 54년만에 첫 女부사관 10명

    해병대 창설 이후 54년 만에 첫 여성 부사관 10명이 탄생했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은 15일 부대 연병장에서 여성 10명이 포함된 제283기 부사관 54명에 대한 임관식을 가졌다.22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한 이들은 지난 7월부터 14주간의 훈련기간 남성 후보생들과 똑같은 훈련을 거쳤다.훈련 전과 달리 날카로워진 눈매와 각 잡힌 행동에서는 남성들보다도 강인한 분위기가 풍겨진다. 이날 하사 계급장을 단 이지애(24) 하사는 지난 96년 대통령기 전국사이클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남자 후보생들보다 좋은 훈련성적을 거뒀으며 훈련중 실시한 구보에서 3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 맹은영(21) 하사는 해병대 2사단에서 주임상사로 근무하는 아버지(맹철호·52)의 뒤를 이어 해병 부사관이 됐다.맹 하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해병을 동경해 왔다.”며 “훌륭한 해병대 부사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계명대 관현악과를 졸업하고 이번에 해병대복으로 갈아입게 된 정미선(24) 하사는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해병인데다 오빠 역시 백령도에서 해병으로 근무한 해병가족이다. 해병대 관계자는 “정보·과학화로 치닫는 21세기에는 군에서도 섬세하고 치밀한 여성의 역할이 더욱 증대될 것”이라며 “고된 훈련을 극복해 낸 여부사관들이 훈련 기간 다졌던 각오와 정신력으로 군 생활을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맛+α

    무섭고도 재미있는 날이 돌아온다.오는 31일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시내 특급호텔들이 30,31일 핼러윈파티를 계획하고 있다.호박 등으로 해골·박쥐·드라큘라·프랑켄슈타인 등 각종 괴수와 귀신으로 분장한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즐겁게 지낼 수 있다. 핼러윈데이는 고대 켈트족이 죽음의 신 삼하인을 찬양하며 겨울을 맞는 축제에서 유래됐다.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었다.그리스도교 전파와 함께 핼러윈데이는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11월1일) 전날밤의 행사로 자리잡아 전해온다. ●조선호텔의 오킴스(02-317-0388)는 30,31일 오후 6시∼다음날 새벽 2시 ‘프라이트닝 핼러윈 파티’를 연다.드라큘라·미라 등의 복장을 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마녀의 집’을 통과한다.비명 지르기·미라 만들기·호박 무게 알아 맞히기 등의 게임도 있다.입장료 1만원. ●롯데호텔(서울 소공동) 보비런던(02-317-7091)은 30,31일 박쥐·해골·부엉이·잭오랜턴(호박등) 등이 어울린 스산한 분위기의 ‘유령성’을 연출한다.칵테일쇼와 고스트 매직쇼도 있다.입장료 1만원. ●신라호텔 더포인트(02-2230-3202)는 31일 오후 8시∼다음날 새벽 2시 핼러윈 파티를 갖는다.핼러윈 칵테일 2잔이 제공되며,타로 카드로 점치는 점술사의 운명 풀이도 있다.핼러윈 의상 대여와 분장은 무료다.입장료 3만원.
  • 창작뮤지컬 ‘페퍼민트’ 리뷰/기획·캐스팅 뛰어나

    SJ엔터테인먼트와 SMG파이가 공동제작한 창작뮤지컬 ‘페퍼민트’(이유리 작,이두헌 작곡,권호성 연출)는 모처럼 관객의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한 무대였다.충분한 사전 기획,철저한 관객 지향 마인드,적절한 캐스팅이 효과적으로 어우려져 우리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페퍼민트’는 예술적으로 뛰어나다기보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기획 상품’으로서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단적으로 그룹 ‘SES’의 멤버였던 가수 바다가 연기하는 극중 여주인공 ‘바다’는 그녀의 분신이나 다름없다.인기 여가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신데렐라 이미지’를 강요하는 가요계의 현실비판을 축으로 삼고,터주 귀신과 주인공간 동화같은 사랑을 다른 기둥으로 놓아 현실과 팬터지를 오가는 설정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 이를 풀어가는 방식 또한 대단히 대중적이다.그 중심에는 그룹 ‘다섯손가락’출신의 작곡가 이두헌이 만든 감칠맛나는 노래들이 있다.기존 뮤지컬의 정형화된 음악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대중가요의 어법을 활용한그의 노래들은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창작뮤지컬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돼온 음악이,이 작품에서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로 짜여진 세련된 무대미술과 역동적인 춤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무대(천경순),의상(이정우),조명(이우형),안무(서상구)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특히 극중 바다의 뮤직비디오 촬영 장면은 마치 TV쇼프로그램 녹화현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화려한 무대로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나무랄 데 없다.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바다의 연기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으나 빼어난 가창력 못지않은 수준급 연기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터주’역의 남경주,기획사사장 ‘빈’역의 고영빈,아파트 경비원 임철형과 코디네이터 김영주 커플의 감초 연기도 돋보였다. ‘페퍼민트’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점이 있다.앞에서 지적했듯 ‘페퍼민트’는 철저한 기획상품이다.가수 바다의 캐릭터와 상품성에 기대는 부분이 많음을 부인할수 없다.인기 가수를 부각시킨 단발성 기획을 넘어 지속적인 레퍼토리로 자리잡으려면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10월23일까지,뮤지컬전용극장 팝콘하우스(02)399-5888. 이순녀 기자 coral@
  • 평창동의 어제와 오늘/가나아트갤러리 ‘평창동 사람들’展

    서울 종로구 평창동은 북한산 줄기인 보현봉과 북악스카이웨이가 지나는 북악산 자락에 둘러싸인 일종의 ‘풍치지구’.조선시대 대동미 출납을 관장하던 선혜청의 평창이 있어 평창동이란 이름이 붙었다.평창동부라 불린 이 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만큼 수많은 이야기와 문화유적이 숨쉬고 있다.서울특별시 민속자료 3호인 보현산신각,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냈던 천제단터,대를 이어갈 자손이 없는 무사(無嗣)귀신을 위로해 제사지내던 여단터 등 문화유적들이 널려 있으며 10여개의 화랑과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또한 미술인과 문인,음악인 등 400여명의 예술인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문화마을이다. 가나아트갤러리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평창동 사람들’전(10월12일까지)은 평창동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색다른 전시다. 윤명로의 ‘평창동 예찬’,김병기의 ‘북한산 세한도’ 같은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당당한 문화인프라를 갖춘 평창동의 독특한 지역색과 문화를 보여주고그것을 가꿔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전시에는 평창동 일대에 사는 미술인 60명이 참여했다.강대운,강애란,김승연,김창렬,김흥수,노정란,도윤희,박인경,배병우,송수남,신명범,윤명로,이경성,이종상,임옥상,한만영,홍승남….이들이 낸 회화,조각,사진 등 120여점과 가나아트갤러리 소장 작품 50여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본 전시와 함께 평창동 지역에 분포돼있는 문화유적과 명소가 담긴 지도 및 사진 특별전도 마련돼 일반인들이 미처 몰랐던 평창동의 면면을 알려준다.전시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1∼6시에는 가나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기증품을 팔아 얻은 수익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움직이는 가게’가 열려 전시의 의의를 더해준다.(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
  • [길섶에서] 아들에게

    중학교 다니는 꼬마 녀석이 밤 10시가 넘어 온몸이 흠씬 젖은 채 들어왔다.차창 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감안하더라도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릴 정도로 물귀신 모양을 한 사연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녀석은 친구들과 물구경을 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옷을 홀랑 벗고 물놀이를 하고 왔단다.덜덜 떨며 현관에 서 있는 녀석에게 야단을 치면서도 속으로는 웃음이 난다. 녀석은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년 여름이면 마을 앞을 흐르는 탄천에서 살았다.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옷을 입은 채 물에 뛰어 들었다.때가 되면 간식을 챙겨 나오라고 전화로 성화를 부리곤 했다. 뒤늦게 허겁지겁 저녁식사를 마친 녀석은 곧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쏟아내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수다를 늘어 놓는다.미안함을 수다로 때우려는 것 같다.하지만 그것도 잠깐.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더니 방으로 들어간다.금방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녀석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꿈속에서도 물놀이를 하는 것인가. 우득정 논설위원
  • 추락사 3건 ‘공사장 괴담’/귀신 소문… 조사결과 안전 소홀

    ‘여고괴담’보다 더 무서운 ‘아파트 신축현장 괴담’ 5개월간 3건의 추락사망 사고가 난 아파트 건축현장이 있다. 19일 노동부에 따르면 H개발사가 시공하는 울산시 남구 문수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최근 5개월간 3건의 추락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최초의 사고는 지난 3월 13일 오전 11시 10분쯤 발생했다.건설 근로자 1명이 7층 공사현장에서 추락,사망했다.사고는 꼬리를 물었다.2개월 뒤인 6월 17일 오후 5시 20분쯤 23층 옥상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8월 22일에는 근로자 1명이 23층에서 마감 유리 청소를 하다 추락해 숨졌다. 자연스럽게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귀신이 붙었다.’는 괴담이 나돌았다.그러나 노동부 조사 결과 모두 안전조치없이 작업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추락에 의해 근로자에게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는 높이 2m 이상의 장소에서는 안전망을 치거나 근로자에게 안전띠를 착용토록 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 현장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같은 사업장에서 연간 3건 이상의 사망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는 구속한다는 방침에 따라 현장소장 김모(51)씨를 구속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3건의 불상사는 현장소장이 안전관리를 소홀히한 채 공사를 빨리 하려다 일어난 것”이라면서 “재발방지를 위해 현장소장을 구속했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별빛속으로/별자리 관측 동호회 ‘x-노바’

    “전번에는 시잉(Seeing·관측조건)이 나빠 M14(구상성단중 땅꾼자리)가 분해되지 않아 뿌연 큰 덩어리로만 보여 관측하기 어려웠는데,오늘 밤은 정말 시잉이 좋습니다.” “그래.어디 한번 볼까요.정말 시잉이 좋습니다.시잉이 좋으니까 M14가 분해돼 보여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군요.” 지난 15일 밤 9시30분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월현리 중앙천문대.별자리 관측을 즐기는 ‘X-노바(Nova)’의 회원 9명은 별자리와 화성·달표면 관측 등 천문관측에 여념이 없었다.이들은 아스트로 피직스 굴절 망원경(155㎜) 등의 관측장비를 이용해 페가수스·카시오페아·큰곰자리 등 별자리를 찾아내고,화성·M14 등을 관측하는데 골몰하면서 어느새 조용한 희열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반인들은 똑같은 별을 뭣하러 보러 다니느냐고 하는데,사실 그렇지 않습니다.별은 볼 때마다 새롭다는 점이 매력이에요.별자리 관측은 새로운 별자리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이미 발견된 별·행성 등을 찾는 작업이지만,하나씩 찾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한성취감을 느낍니다.” 지난 87년부터 별자리를 관측하는 ‘X-노바’ 회장 김민태(34·회사원)씨는 “별 보기는 순수하고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는 낭만적인 일”이라면서도 “밤새 관측을 해야 하는 등 취미활동으로는 조금 고되다.”고 설명한다. 별보기 등 천문 관측을 즐기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5만명선.대부분 100개 이상의 온라인-오프라인 모임 등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대표적인 동호회 모임중의 하나가 ‘X-노바’.회원은 17명이며,미성년자는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밤새 별자리 관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허락이 필요한 미성년자들은 부담된다는 것.회원들의 연령은 20대부터 50대까지이고,직업은 대학원생·교사·학원강사·회사원·대학교수·건축사 등 다양하다. “저는 천체 사진에 관심이 많습니다.밤새 관측하며 찍어 쓸만한 사진 1∼2장 건지면 말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곤 합니다.” 고등학교 2년 때부터 별보기에 입문한 박성래(28·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생)씨는 “취미로나마 어릴 때 꿈인 별보기를 하게 돼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즐거워한다. 지난 3월 ‘X-노바’에 가입한 ‘왕초보’인 임숙희(33·여·학원강사)씨는 “인터넷 서핑을 즐기던 중 ‘X-노바’를 발견하고 “아 이거로구나.”하고 운명적인 느낌을 받아 회원에 가입했다.”며 “지난달 28일 번개(비정기) 관측 때 본 달과 화성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앞으로는 열성적으로 관측 활동에 참가하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회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관측활동을 한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우리의 보금자리 중앙천문대가 세워지기 전의 일이죠.별자리를 볼 만한 장소가 마뜩하지 않아 강원도 원주시 귀례면 공동묘지를 이용했죠.공동묘지는 주위에 불빛이 없어 별 보기는 좋은 곳입니다.관측을 하는 동안 귀신불이 주위를 날아다녀 두려움에 떨면서도 새벽까지 관측했죠.” ‘X-노바’의 최대 후원자인 김시태(46·건축사사무소장)씨는 “원래 낚시가 취미였는데,낚시하기 좋은 때가 대부분 농사철이어서 농부들로부터 욕 먹는 경우가 많아 별보기로 바꿨다.”며 “별자리 관측으로 바꾸고 나니 아이들이 천문 관측에관심을 갖게 돼 과학 과목은 늘 만점을 받아오는 등 교육적 효과도 컸다.”고 말한다. “스킨스쿠버·스쿠버다이빙 등 안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취미생활을 했죠.하지만 별자리 관측이 그 어떤 것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 정정호(51·서울 서대문구 북가좌초등학교 교사)씨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별자리를 관측하면 볼 것이 많다.”며 “회원들의 직업과 연령이 다양해 세대간의 벽을 허무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강조한다. 93년 ‘X-노바’의 창립멤버중 한 사람인 이지은(47·여·전 회사원)씨는 “80년 여름 우연히 휴대용 망원경으로 토성을 관측하게 됐는데,그 모습에 반해 천체 관련 회사에 취직을 하고 별자리 관측도 하게 됐다.”며 “밤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에 빠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말끔히 떨어내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횡성 글 김규환기자 khkim@ 사진제공 박성래 X-노바 회원 그래픽 유재일기자 jae0903@ 별 여기서 볼 수 있어요 가을은 청명한 데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덕분에 별을 관측하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천문대에 대해 알아보자. ●대전 시민천문대 과학의 메카인 대전시 대덕연구단지에 자리잡고 있다.주요 망원경은 구경 25cm의 굴절망원경.이용시간은 오후 8∼10시이며 이용료는 어른 3000원,어린이 1000원이다.월요일은 휴관. ●영월 별마로천문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해발 799m의 봉래산에 위치하고 있다.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망원경 가운데 가장 큰 구경 80cm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이용시간은 오후 2∼10시이며 이용료는 어른 5000원,청소년 4000원이다.월요일은 휴관. ●코스모피아 경기도 가평군 하면 명지산 중턱에 위치한 사설 천문대.구경 40cm 슈미트 카세그레인식 망원경이 주 망원경이다.사설 천문대인 만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관측할 수 있다.산림욕 등이 포함된 1박2일 프로그램이 성인 6만원,학생 5만원. ●안성천문대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강덕리에 있다.주 망원경은 구경 40cm 슈미트 카세그레인식 망원경.주말 행사 참여료(오후 2∼11시)는 2만 5000원이며 숙박하면 2만원에 4인용 방을 쓸 수 있다.도시락 지참요. ●세종천문대 도자기로 유명한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자리잡고 있다.주 망원경은 66cm 뉴턴 카세그레인식이다.대규모 인원의 교육과 숙박이 가능하다.수용 규모 600명이며,이용료는 성인 1박3식에 4만원. ●양평 중미산천문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중미산 자연 휴양림에 위치하고 있다.행성 관찰에 뛰어난 독일제 8인치 굴절망원경이 자랑거리다.천체 관측 프로그램은 오후 8시부터 2차례 진행된다.1박2일 프로그램이 성인 6만원,학생 5만원. 김규환기자
  • 오늘 개봉 ‘방탄승’/총알도 비켜다니는 不死의 스님

    ‘와호장룡’에서 청룡검을 지키는 무림 고수로 나왔던 저우룬파(周潤發)가 이번에는 날아오는 총알을 비켜다니는 절대무공의 스님이 됐다.할리우드에 진출한 우위썬(吳宇森)감독작 ‘방탄승’(Bulletproof Monk·19일 개봉)은 세계평화를 지키려는 한 티베트 스님의 무용담을 그린 할리우드 액션.저우룬파는 소림무술에서 현대적 액션까지 다양한 몸동작을 펼쳐보이는 주인공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티베트의 이름없는 젊은 스님(저우룬파)은 읽기만 해도 엄청난 힘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신비의 두루마리를 고승에게서 전해받는다.세계정복을 노리는 악의 무리가 이를 빼앗으려 호시탐탐 노리고,저우룬파와 그의 후계자가 된 소매치기 카(숀 윌리엄 스캇)가 이를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40년대 티베트에서 출발한 영화는 이내 60년 뒤의 미국 뉴욕으로 무대를 싹 바꾼다.이후 속도감 넘치는 화면으로 버디액션물의 공식을 무난히 밟아나가는 듯하다.그러나 새로움을 찾는 관객에게는 실망스러울 법하다.뚜렷한 선악구도,이렇다할 반전없이 쫓고 쫓기는단선적인 드라마는 진부하다.귀신같이 총알을 피해다니는 저우룬파,느린 화면의 총알이나 두루마리의 글씨들이 카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컴퓨터그래픽 장면들은 현실감각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홍콩 누아르의 카리스마 하나로 버텨온 저우룬파로서는 단단히 용기를 냈음에 틀림없다.신비의 두루마리를 무사히 후계자에게 넘긴 뒤 순식간에 주름투성이의 90세 백발노인으로 변신하는데,그만 실소가 터지고 만다.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실.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코트자락 휘날리며 멋드러지게 쌍권총을 뽑던 고독한 영웅이 이젠 늙어보인다. 황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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