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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문화유산 ‘홧김 방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사적 제3호)의 서장대(西將臺)가 방화로 누각 2층이 모두 소실됐다. 이곳엔 소화전이 설치되지 않은 데다 야간순찰도 전무한 상태였다. 1일 오전 1시35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팔달산 정상의 화성 서장대 누각 2층에 안모(24·무직)씨가 자물쇠로 잠긴 누각의 경첩을 돌로 부수고 침입, 자신의 속옷 등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졌다. 불은 목조인 기둥과 서까래 등에 순식간에 옮겨 붙으며 누각 2층(19㎡)을 모두 태웠다. 화성사업소 정반석(41) 보호계장은 “지난 1996년 서장대에 큰 불이 나 복원했는데 이번에 또 소실됐다.”며 “1층 기와도 훼손돼 복원비용만 10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씨는 불을 낸 뒤 현장에서 10여m 떨어진 망루에서 불을 지켜보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에 붙잡혔다. 안씨는 “카드빚 때문에 밤 9시부터 만석공원에서 혼자 소주 2병을 마신 뒤 서장대로 갔다가 2층 누각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올라갔다.”며 “누각에 무당옷 같은 것(순라군 옷)이 있어 입어봤다가 귀신이 든 것 같아 벗은 뒤 함께 벗은 속옷과 함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안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서장대는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해발 128m)에 있으며, 연무대(鍊武臺)와 함께 평일 2만여명, 주말 5만여명이 찾는 화성의 문화유적 중 최고 인기코스다. 그러나 화성이 24시간 개방되는데도 불구하고 화성사업소는 문화재 훼손에 대비한 밤시간대 순찰근무를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씨가 입은 서장대 순라군 옷은 아르바이트생이 일과시간 후 벗어 놓은 것으로 확인돼 관리에 문제점을 드러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굴러온 입장권 행운 자칫 봉변 부를수도

    WBC의 열풍과 함께 야구계는 구름 관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로는 관중 동원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만 보면 기대에 한참 모자란다. 황사와 날씨가 심술을 부린 영향이 크다. 다행히 지난 일요일 경기에는 개막전 이후 최다 관중이 몰려 5월의 특수를 다시 기대하게 만든다. KBO,KBL, 축구협회 등은 법률적으로는 야구, 농구, 축구를 관장하는 지배기구다. 그러나 실제로 들여다보면 군림하기보다는 소속 구단과 선수 및 언론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큰소리를 칠 때가 거의 없다. 다만 포스트시즌에는 목에 힘을 준다. 표를 달라는 청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제값을 다 받고 표를 주면서도 생색을 낸다. 최근 국내 스포츠의 경쟁 상품이 늘어나면서 포스트시즌에도 이런 생색을 낼 기회는 많이 줄어들어 한국시리즈경기에 암표상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뉴스거리가 될 정도가 됐지만 아무튼 중요 경기의 입장권은 일반 팬 입장에서 구하기기 쉽지 않다. 매년 있는 포스트시즌 경기가 이럴진대 월드컵 결승전이나 올림픽 개막전의 입장권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번 독일월드컵의 경우는 독일 정부의 까다로운 규정으로 더 심해졌다. 입장권 실명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독일 내각과 상원 합동 회의는 테러와 훌리건 난동 방지를 위해 입장권에 RFID 칩을 내장시켰다. 여기에는 성명, 생년월일, 국적, 여권번호가 입력된다. 입장권을 구매할 때 이런 사항을 같이 기재해야 한다. 따라서 한번 입장권을 산 다음에는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도 다른 사람에게 입장권을 판매할 수가 없다. 개인적인 입장권 재판매가 가능한 경우는 질병, 사망, 출국금지, 독일 입국 거부, 가족 사이의 양도뿐이다. 이런 입장권 실명제는 암표를 막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규제가 강화되어도 이를 빠져나가는 귀신들이 있다.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이 범죄를 줄이기는 커녕 마피아와 같은 조직범죄 집단의 배만 불려준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입장권 경매가 진행됐다. 진단서 정도야 허위로 만들기가 간단한 나라도 많은 게 현실이다.FIFA가 강력히 항의했지만 영국 이베이 사이트의 경매만 금지시키는 데 그쳤다. 영국의 축구 서포터스 협회 국제 담당은 “팬들 사이에 선의로 거래되는 입장권 교환을 금지시켜서 오히려 팬들을 암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이는 오로지 FIFA가 대회 이전에 입장 수입을 미리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황당한 짓을 하고 있는 탓이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FIFA와 독일 정부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 배당된 입장권은 8%다. 이 입장권을 구매한 우리 축구팬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여행상품이나 이벤트를 통한 입장권 제공도 불법인데 독일가기 이벤트도 무성하다. 먼 독일까지 가서 경기장 입장을 거부당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사례가 없기를 바라는 노파심마저 생긴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환경·생명] ‘아윽 아윽~’ 독도 바다사자 되살아나나

    [환경·생명] ‘아윽 아윽~’ 독도 바다사자 되살아나나

    “아윽∼ 아윽∼ 아윽∼” 바다사자의 크고 높은 울음소리가 독도에 다시 울려퍼지게 될까.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간 파고가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가 일제시대에 절멸된 바다사자를 독도 주변에 되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바다사자는 물개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몸체는 이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해양 포유동물로, 정부가 지정한 1급 멸종위기종(12종) 가운데 유일한 바다동물이다. 일제 강점기는 한반도의 야생동물에게도 수난의 시대였다. 호랑이·표범·반달가슴곰 같은 육상의 대형 맹수들이 이 시기에 거의 씨가 말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양동물 가운데는 전 세계 84종의 고래류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이란 학명이 붙은 한국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도 일제의 남획 등을 피해 수 십년 전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춘 상태다. ●상반기 중 연구결과 내놓을 계획 환경부는 이들 멸종위기 포유동물 가운데 반달가슴곰과 산양 등 9종을 골라 단계적인 종(種) 복원 작업을 통해 국립공원 등지에 풀어놓는다는 ‘멸종위기종 복원 프로그램’을 올해 초 발표한 바 있다. 독도 일대를 최대 서식처로 삼으며 번성해 오던 바다사자 역시 일제의 남획으로 야생에서 절멸된 상태다. 멸종위기종 복원 대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복원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진지한 연구가 올초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민간 전문가 등으로 연구조사팀이 구성돼 그동안 국내외 문헌 조사 등 자료수집은 물론 19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원 등으로 활동한 울릉도·동해안 일대 어민들로부터 과거 바다사자의 서식실태 등 증언을 듣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 2월엔 독도 주변의 해양 생태계를 현장조사하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 유병오 생태복원과장은 “아직은 초기단계여서 바다사자를 독도 주변에 되살릴 수 있을지 여부를 단정짓기 어려운 상태”라면서 “바다사자를 해양에서 실제로 복원할 수 있을지 여부와 복원 이후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상반기 중 연구결과를 내놓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전문가 검토를 거쳐 바다사자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러시아 연안이나 베링해 등 독도 바다사자와 혈통적으로 가까운 종을 들여와 복원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렇지만 난점도 있다. 자연자원과 김홍주 사무관은 “바다사자의 식성이 워낙 좋아 복원하게 되면 어종 감소 등 독도 일대 생태계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어민들의 어획량 감소 등 문제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05~1912년 1만 4000여마리 잡아 연구팀은 독도 바다사자가 절멸하게 된 과정도 구체적으로 파악해 둔 상태다.“일제 강점기 무렵 절정을 이룬 남획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이후 급격한 멸종의 길을 밟게 됐다.”(국립공원관리공단 한상훈 종복원팀장)고 한다. 한 팀장은 10여년 전부터 문헌자료 수집 등을 통해 바다사자의 생태특성 연구를 해 왔는데, 현재 국내에선 이 분야에서 거의 유일한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최대 수난기는 1905년∼1912년까지 8년 동안이다. 한 팀장이 확보한 일본측 조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2만∼3만여마리의 바다사자가 독도 주변에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 기간 동안에만 무려 1만 4000여마리가 남획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 팀장은 “당시 일본의 ‘다케시마 어렵합자회사’가 암수와 연령을 가리지 않고 바다사자를 무차별적으로 남획했다.”면서 “이 때문에 최대 번식지였던 독도에서 바다사자가 집단적인 파멸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사자의 개체수는 이후 급감하게 됐고, 포획량도 덩달아 줄어들었다.1916년∼1928년엔 연간 100∼300마리가 잡혔고,1933년∼1941년 사이엔 연간 16∼49마리의 어린 새끼가 생포돼 동물원이나 서커스 단체에 팔려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바다사자의 이같은 절멸의 역사를 감안해, 정치권에선 바다사자 복원 문제를 독도 영유권 강화와 연계해서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제종길(열린우리당) 의원은 “일본이 예전엔 바다사자를 남획해 멸종시키고, 지금은 독도를 노리고 있다. 이 때문에 바다사자 복원은 비단 자연생태계를 되살리는 측면에서뿐 아니라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바다사자 Q&A 국립공원관리공단 한상훈 종복원팀장으로부터 바다사자의 생태·특성 등을 Q&A로 알아봤다. 한 팀장은 1998년 바다사자에 대한 국내 최초의 보고서를 월간지 ‘사람과 산’에 발표한 바 있다. Q 바다사자는 몇 종류? A 세계적으로 서식처에 따라 크게 3개 아종(亞種)으로 구분된다.▲독도 주변을 비롯한 동해와 러시아 연해주, 일본 연안에 생존했던 ‘바다사자’ ▲북미 캘리포니아 연안의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남미 갈라파고스 군도에 살고 있는 ‘갈라파고스 바다사자’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종은 모두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다. 독도 바다사자는 1972년 한 마리가 생포된 기록이 남아있을 뿐,30여년 전부터 목격담마저 끊긴 상태다. Q 독도 바다사자, 어떻게 생겼나? A 세 종류의 바다사자 가운데 독도 바다사자가 가장 우람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다 자란 수컷의 경우 몸길이가 평균 239㎝, 체중은 490㎏이나 나간다. 웬만한 황소쯤 되는 크기다. 이에 반해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는 평균 380㎏, 갈라파고스 바다사자는 250㎏ 정도. 고음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아윽, 아윽” 또는 “오엌, 오엌”하는 소리로 들린다. Q 뭘 먹고, 어떻게 번식하나? A 수컷 한 마리는 10∼15마리의 암컷과 함께 살다가 번식기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진다. 해마다 5∼6월에 번식해 한 마리씩 출산한다.4∼5세 무렵부터 성숙하기 시작하며, 수컷은 9세 무렵부터 자신의 영역권을 갖는다. 적당한 먹잇감이 눈에 띄면 거의 해치울 만큼 대단한 포식자다. 모두 50종 이상의 먹잇감 가운데 오징어, 명태, 정어리, 연어 등을 주로 먹는다. 천적은 상어와 범고래. 사람의 접근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배가 가까이 접근하면 물속으로 들어간 뒤 쳐다보는 습성이 있다. Q 어떻게 진화했나 A 고래나 물범 등 다른 해양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뭍에 살다가 바다로 되돌아갔다. 화석기록과 국제연구결과 등에 따르면 2700만년 전쯤 북태평양 동부지역에서 곰의 계통에서 갈라져 나와 수생생활에 적응한 뒤 진화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가장 오래된 화석은 1000∼1200만년 전 캘리포니아 일대 지층에서 발견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사시대(후기 신석기∼청동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에 한국귀신고래 등과 함께 바다사자가 등장한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儒林(58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7)

    儒林(58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7)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7) 따라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알성시의 책제(策題)들은 대부분 정치와 관련된 질문들이었다. 예를 들면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하고 조광조에게 물었던 중종의 책문을 위시하여 세종대왕은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혹은 ‘어떻게 하면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정치적인 질문을 알성시를 통해 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명종은 ‘육부의 관리를 어떻게 개혁하여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가 하면 ‘교육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라고도 묻고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치른 후 선조는 ‘(일본과)화친하는 것이 좋으냐, 정벌하는 것이 좋으냐.’는 나라의 생사가 걸린 양자택일의 책문을 던지고 있고, 가장 책문을 즐겨했던 임금은 조광조를 총애하다가 마침내 사약을 내려 죽게 하였던 중종으로 알려져 있다. 중종은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하는 책문 이외에도 ‘외교관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처음부터 끝까지 잘 하는 정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정치적인 질문을 던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광조를 발탁하였던 이듬해 1516년 ‘별시문과’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험문제까지 내고 있다. ‘술의 폐해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술의 폐해가 문제되었던 것은 어느 시대부터인가. 우임금은 향기로운 술을 미워했고, 무왕은 술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으며, 위나라의 무공은 술 때문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는 시를 지었다. 이토록 오래 전부터 술의 폐해를 염려했으나 아직까지 뿌리를 뽑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술의 폐해를 논하라.’는 내용의 책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임금이 내린 책문 중에서 가장 유니크하고 독창적인 것은 광해군이 내린 책문이다. 훗날 반정으로 폐위가 된 광해군은 그로 인해 후세의 사가들로부터 변덕스러운 군주로 낙인찍혀 죽은 후에도 임금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폭군 연산군과 더불어 ‘군(君)’으로 격하하였지만 광해군은 실제로 개혁에 투철한 선각자였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지금 가장 나라에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1616년 겨울 증광회시에서는 조선 역사상 가장 돌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면 반드시 돌아오니 해이고, 밝으면 반드시 어두워지니 밤이로다. 그런데 섣달그믐밤에 꼭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또한 소반에 산초를 담아 약주와 안주와 함께 웃어른에 올리고 꽃을 받치는 풍습(椒盤頌花:두보의 시에 나오는 노래의 한 구절)과 폭죽을 터트려 귀신을 쫓아내는 풍속은 섣달 그믐밤에 밤샘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침향나무를 산처럼 얹어서 쌓고 거기에 불을 붙이는 화산(火山)풍습은 언제부터 생긴 것인가. 섣달그믐 전날 밤 하던 액막이행사인 대나(大儺)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함양의 여관에서 주사위놀이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두보는 今夕行이란 시에서 홀로 긴 밤을 지새우며 여관에서 주사위놀이를 하며 자신의 고독을 달래었다고 노래한 적이 있다.) 여관에서 쓸쓸하게 깜빡이는 등불을 켜놓고 잠을 못 이룬 사람은 왜 그리하였을까.…”
  • 장묘문화센터 무료改葬 추진

    장묘문화센터 무료改葬 추진

    한식(寒食)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지. 무성한 잡초와 나무가 뒤엉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무덤들이 눈에 띈다. 마침 성묘를 하러 온 신희선(43·여)씨는 “그야말로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라면서 “무덤을 관리 못할 거라면 화장(火葬)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연고 묘지가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핵가족화로 가족 구성원이 줄어드는 데다 세월이 흐르면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핵가족화·세대바뀜의 영향” 서울 시립묘지를 관리하는 서울시 장묘문화센터는 무덤을 무료로 개장(改葬)해서 화장해 주는 고육책까지 동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매장 위주의 장례문화가 자연장(自然葬·화장한 유골을 수목·화초·잔디 등에 뿌리는 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 자연장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서울시 장묘문화센터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용미리·벽제리·망우리·내곡리 묘지에서 무덤 주인을 파악하기 위한 신고를 받은 결과 8만 5265기 가운데 3만 8206기(44%)만 접수됐다. 센터측은 신고하지 않은 무덤 4만 7059기 가운데 1만여기(20%가량)를 ‘버려진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머지는 주인이 있으면서도 신고가 안 된 경우다. 벽제리 묘지의 경우 버려진 무덤이 1만 3374기 가운데 753기인 것으로 파악됐다. 묘지 관리자는 “묘지 자체가 경사가 급해서 장마가 심할 경우 흙이 무너져 길을 가로막기도 한다.”고 전했다. 센터는 이처럼 버려진 무덤에 대한 관리 비용으로 연간 6억원 안팎을 투입하고 있다. 센터 김홍렬 소장은 “그나마 시립 묘지라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이지 일반 묘지는 더욱 문제가 많을 것”이라면서 “핵가족화와 의식 변화로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명절 때 묘지를 찾는 성묘객들도 줄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설날 연휴(1월28∼30일) 시립묘지 성묘객은 7만 398명으로 작년 설 연휴(2월8∼10일) 성묘객인 11만 1646명에 비해 현격하게 줄었다. ●개장비 무료→수목장·산골 유도 이에 따라 윤달이 낀 해에는 자발적으로 무덤을 개장해 화장·납골하는 유족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개장된 무덤은 2001년에는 1736기에서 2004년에는 2177기로 증가했다. 실제로 센터가 성묘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60명이 비용이 무료라면 개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전통 매장법이 국토를 심각하게 잠식할 뿐 아니라 환경훼손을 한다는 판단에 따라 자연장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장이 국·공유림을 활용한 30만㎡ 이상의 대규모 수목장(樹木蔣)림을 조성하도록 했다. 또 개인이 자연장 구역을 설치할 경우 면적이 100㎡ 미만이면 관할 시·군·구에 신고만 하고,100㎡ 이상이면 별도의 재단법인을 설립하도록 했다. 서울시 장묘문화센터 역시 무연고 무덤에 대해서는 2009년까지 점진적으로 개장을 권유해 수목장을 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우선 1기당 44만원이 드는 개장 비용을 지원할 예정이다.1만 600기분인 9억 3300만원(잠정)의 예산을 책정했다. 올해까지 일제 신고·접수를 마친 뒤 2007∼2008년 방치된 무덤을 개장하고 2009년 수목장림으로 만드는 등의 묘지 재개발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심재억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문화마당] 남녀칠세 지남철(指南鐵)/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4월7일(음력 2월22일)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세상을 떠난 지 170주년이 되는 날이다. 팔당 호숫가 그의 무덤에서 지내는 묘제(墓祭)를 비롯해, 업적을 다시 조명하는 여러 행사도 치러질 모양이다. 그의 삶을 기리는 이유는 시대를 앞서 산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서책의 제목이나마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대학생들도 한자 앞에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이긴 매한가지다. “정약용의 대표적인 저작이 무엇이지요?” ‘목민심서(牧民心書)’‘경세유표(經世遺表)’‘흠흠신서(欽欽新書)’…. 책 이름은 모두가 안다.“자! 한 구절을 한글로 옮겨야 집에 보내준다면, 모두 이 강의실을 맴도는 귀신이 되고 말겠지요.” 교양한국사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던지는 농담이다. 인류학자 레드필드(R Redfield)에 따르면, 문화전통은 관습이나 입으로 전해지는 작은 전통과 글과 책으로 이어지는 사상과 문학 같은 큰 전통으로 나뉜다. 대학 캠퍼스에서 간간이 들리는 농악 소리도 작은 전통일 뿐이다. 우리들의 마음이 떠난 사이 전통문화와 고유사상이 오롯이 담긴 고전들은 지금도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좀먹고 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 통 무슨 소리인지 모를 것은 한적(漢籍)만이 아니다. 본토 발음을 제대로 내도록 어린 아이의 혀 밑을 끊어주는 수술도 꺼리지 않을 만큼 영어능력이 몸값을 좌우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한자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기미독립선언,1919년)” 100년이 채 안 된 우리 독립선언보다 200백년도 더 된 남의 나라 미국의 독립선언(1776년)이 귀에 더 쏙쏙 들어오는 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현주소다. 그들은 조선시대의 선조들만이 아니라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와도 지적인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요즘은 ‘남녀칠세부동석’이 아니라 ‘남녀칠세지남철(指南鐵)’이지요.” 수업시간에 긴장을 늦추기 위해 던진 조크에 영 반향이 없다. 그들은 지남철이 아니라 자석만 안다. 동시대를 사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소통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대국에서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9세기 후반 이래 우리는 서구 따라잡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문으로 지식을 교환하고 의사를 소통하기엔 장벽이 너무 많았다.2000년 전 춘추전국 시대 중국인들이 쓰던 죽은 문자이자 문장어인 한문은 용도 폐기되었다. 서구의 앞선 문물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문일치(言文一致)가 필요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글을 사랑하자는 한글전용론에 묻혀 한자 교육은 등한시되었다. 그 결과 서구의 젊은이들이 400여년 전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데 반해 우리의 청년들은 자국의 큰 전통이 담긴 고전은 물론 부모세대가 남긴 한문이 섞인 서책들과도 아쉬운 이별을 하고 말았다. 서구 사람들이 그들의 정신적 보고에 무시로 드나들며 영혼의 양식을 섭취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남의 뒤꽁무니만 쫓을 수밖에 없다. 세계화의 광풍이 몰아치는 오늘날 영어능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고전은 보석이되 절차탁마해서 빛을 내지 않으면 하찮은 돌덩이와 다를 바 없다. 요컨대 한자는 알리바바의 보물창고에 들어서기 위한 “열려라 참깨”와도 같은 패스워드이자, 고전의 광맥을 캐는 칠흑의 갱도를 비출 호롱불을 켜기 위해 호호 불어 되살려야 할 소중한 불씨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장국영, 그를 다시 만난다

    장국영. 영화 팬들은 그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 자신을 속여왔던 형에 대한 배신감에 사로잡혀 분노를 터뜨리던 젊은 형사(영웅본색·1986), 귀신과 애절한 사랑을 나누던 순진한 청년 서생(천녀유혼·1987), 갓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숨지던 형사(영웅본색2·1987), 속옷 차림으로 맘보춤을 추던 아비(아비정전·1990), 아찔한 미모를 자랑했던 경극 배우(패왕별희·1993)…. 2003년 4월1일 거짓말 같은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다. 한창 빛나던 시기에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국내외 팬들은 만우절 장난으로 알았을 정도였다. 지금 살아있다면 나이는 지천명.1976년 홍콩 음악 콘테스트에서 2등으로 입상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고,78년부터 영화배우로 입문했다. 연기자로서는 적룡, 주윤발과 함께 ‘영웅본색’에 나오며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어 왕조현과 호흡을 맞춘 ‘천녀유혼’은 그를 탄탄대로를 달리게 했다.‘당년정(當年情)’,‘분향미래일자(奔向未來日子)’ 등 그가 부른 주제곡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에서 가수로서도 성공을 일궜다. 당시 국내 모 초콜릿 CF에 이영애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홍콩 영화 열풍은 금세 잦아들었지만 장국영은 도약했다.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와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해피투게더’(1997) 등으로 세계에서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다. 그를 다시 만난다.EBS가 장국영 3주기를 맞이해 31일 오후 11시55분 방송되는 프로그램 ‘시네마천국’의 ‘광대를 위하여’ 코너를 추모 특집으로 꾸몄다. 아시아 슈퍼스타로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넘나들었던 장국영의 연기 인생을 그의 대표작들을 통해 되짚어본다. 채널 스토리온에서는 새달 1일 밤 12시부터 ‘영웅본색’ 1,2편을 연속 방영한다. 또 12일 새벽 1시에는 양조위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동성애 연기를 펼쳤던 ‘해피투게더’가 시청자들을 찾는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14)중학년 논술지도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14)중학년 논술지도

    초등학교 중학년은 논리적 사고력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며 사고를 하는 데 모순이 적어지고 일반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학년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지도 방안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의견 말하기 비판적 분석 및 설득 능력의 향상을 위하여,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도록 한다. (1)이유를 들어가며 말하기 자기의 의견을 표현할 때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이번 주말에 우리 가족이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 본다. (2)다른 사람과 자신의 생각 비교하여 말하기 다른 사람의 의견과 근거를 잘 듣고 근거가 타당한지 생각해 본다. 내 의견에 대한 다른 의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더 좋은 이유를 생각해서 제시하도록 한다.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기 부모님과 같은 책을 읽고 책의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책 내용에 대한 단편적인 물음에서 전체적인 이해, 그리고 자기 의견의 표현 과정으로 발전시키면서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일방적으로 부모님이 어린이에게만 묻기보다는 같이 묻고 서로의 입장에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황선미님의 ‘과수원을 점령하라’라는 책을 읽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구청장 아저씨는 오리들에게 상으로 무엇을 해 주었나요? -글쓴이는 왜 제목을 ‘과수원을 점령하라’라고 지었을까요? -내가 왕버드나무의 영혼인 나무귀신이라면 이사를 갈 것인지, 아니면 이사를 가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인지 말해 봅시다. ●논리적 표현력 기르기 논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장력, 즉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논리적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작성하여 글의 전체적인 구성이 체계적으로 되도록 한다. 개요 쓰기는 자기의 의견과 근거를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기의 의견을 주제에 맞게 알맞은 이유를 들어가며 주장했는지를 살펴보고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쓰기 전 개요를 작성하는 습관을 갖는 것은 내 의견과 근거를 다른 사람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논술쓰기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꾸준한 글쓰기 활동을 통해서 향상되는데 일기쓰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대한 자기의 의견과 이유를 적는 습관은 자기도 모르게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며 같은 생각이라도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서울교대 부설초등학교 교사 박종달
  • [책꽂이]

    ●태현경(양웅 지음, 김태식 풀어옮김, 자유문고 펴냄) 한나라 사부(辭賦)의 최고 작가로 꼽히는 양웅이 ‘주역’을 모방해 지은 ‘태현경(太玄經)’을 우리말로 풀어 옮겼다. 양웅은 전한(前漢) 왕조가 왕망의 신(新) 왕조로 교체되는 격변기를 살다간 문학가이자 정치가. 주역에서는 우주만물의 절대법칙으로 태극을 설정한 데 비해 태현경은 현(玄)이란 개념을 내세운다. 현에서 천지가 생겨나고 인간이 생겨나고 만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양웅은 당시 유행하던 음양오행사상과 천문역법 지식을 이용한 점복(占卜)의 형식으로 세계에 대한 도식화를 꾀한다. 저자는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2만원.●권력규칙(쩌우지멍 지음, 김재영ㆍ정광훈 옮김, 한길사 펴냄) 중국 5000년 역사 속에서 권력의 주위를 맴돌며 명멸을 거듭했던 인물들의 예화를 통해 권력의 속성과 실체를 밝혔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인 명 태조 주원장, 스스로 중국 최초의 여성 황제가 된 무측천, 나라를 사들인 거상 여불위, 상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똥물을 들이킨 신화 등 수많은 인물들이 어떻게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전 2권 1만 6000원.●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세밀화(이성아 지음, 송훈 그림, 현암사 펴냄) 우리 꽃의 아름다움을 식물 세밀화를 통해 보여준다. 세밀화는 식물의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본래 식물 동정(同定)에 사용했다. 이 책은 카메라 렌즈에는 담을 수 없는 잎맥 하나, 솜털 하나까지 우리 꽃의 작고 앙증맞은 모습을 그대로 전해준다.1만 2000원.●코리안차이니즈 신화를 창조하는 사람들(김호림 지음, 평화문제연구소 펴냄) 중국에 사는 200만명의 조선족 중엔 중국 대륙을 무대로 이름을 떨친 이들이 적잖다. 마오쩌둥 주석의 보건의사로 일한 천련필,‘땅귀신’ 잡는 지진전문가 리유철, 중국의 대표적인 조선족 작가 김 훈, 나무뿌리 조각가 리춘남, 최승희를 꿈꾼 무용계의 꽃 최미선 등. 각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는 조선족 동포들을 소개한다.1만 2000원.
  •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 (11) 찬반 논의형 논술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 (11) 찬반 논의형 논술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문제들과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진리를 파악하고 허위와 모순을 제거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문제에서 제시하는 글을 꼼꼼히 읽어야 찬반 논의형 논술은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상충되고 반대되는 두 가지의 견해를 보여준다. 이후 찬성이나 반대를 선택하는 유형과 문제에 대해 한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찬성·반대를 선택하거나 자기만의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제시하는 문제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첫째 ‘귀신은 있는가?’ ‘우리나라에 야생 호랑이가 있는가?’와 같이 사실에 대한 참이나 거짓을 분명하게 검증하는 문제 유형이 있다. 둘째 ‘초등학생이 휴대전화를 꼭 사용해야 합니까?’ 또는 ‘선생님의 일기 검사, 글쓰기 교육인가? 인권 침해인가?’와 같이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문제 유형이 있다. 과학적 논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논술 문제 유형은 자기가 사건에 대하여 논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가치를 판단하는 문제 유형이다.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문제에서 제시하는 글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고, 주장에 대하여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근거가 논리적이고 타당한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제시한 근거 중에서 비논리적이고 타당하지 못한 근거를 찾아야 한다. 특히 찬반 논의형 논술은 상대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나의 주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 주장과 근거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정확하게 꼼꼼히 따지면서 읽어야 한다. ●비판을 바탕으로 주장 제기 제시문을 정확하게 이해한 다음에는 논술문을 쓰기 위하여 개요를 짜고 글을 써야 한다. 서론에서는 서로 대립되는 주제를 확인하고 자신의 입장을 제시한다. 본론에서는 상대 주장의 근거를 비판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찬반 논의형 논술의 특징은 자기주장에 앞서 상대 주장에 대한 근거를 비판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상대방이 제시한 근거 중에서 논리적이지 않고 타당성이 없는 근거를 찾아내어 상대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할 때는 이 근거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 주어야 한다. 상대 근거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나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상대 근거에 대하여 자기가 비판한 내용을 극복할 수 있는 자기주장을 나타내고 이에 논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결론에서는 상대 근거들에 대하여 지적한 내용과 자기가 제시한 근거들을 간단하게 요약하고 다시 한 번 자기주장을 강조하면서 끝을 낸다. 논술문이 완성되면 ‘고쳐쓰기’ 과정을 실행한다. 작성한 논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읽어본다. 자기 입장이 확실하게 나타났는지, 상대 근거를 비판할 때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따져가면서 비판하였는지, 무작정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는지, 내가 제시한 근거가 논리적이고 타당한지,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제대로 되었는지, 전체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도록 한다. ■ 서울교대 부설초등학교 교사 박종달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1) 세시풍습과 차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1) 세시풍습과 차

    우수(雨水)다. 땅이 속살부터 풀려가고 있다. 아지랑이는 먼 산등성이부터 피어오르고 대나무 광주리를 인 아낙들이 봄나물을 뜯는다. 머리에는 하늘의 뜨거운 기운을 방지하려는 듯 수건을 동여매고, 호미를 쥔 손은 개미의 발걸음처럼 부지런하다. 얼음이 녹아내린 논두렁 밭두렁에서 봄 나물을 캐는 아낙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문화적 원형을 생각하게 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민족의 삶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자연의 과학적 법칙에 따른 공동체적 문화를 형성해 왔다.입춘이 오면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우수가 오면 땅이 풀리는, 그래서 동면했던 모든 생명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자연의 윤회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속에는 도전과 응전의 격렬한 내적 운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들은 거대한 장강의 흐름처럼 언제나 완벽하게 추동해낸다. 마치 수억만 기가의 용량을 가진 슈퍼컴보다도 더 정확하게 그것들은 짜여 간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차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매달 차를 만들거나 마시는 문화적 규범을 멋스럽게 가꾸어 왔다. 지금은 차를 만드는 절기를 곡우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중국의 백차와 승설차처럼 경칩 이전에 차를 만들기도 했다. 경칩이 되면 첫 싹이 움튼다. 그 차싹을 이용해 열흘 동안 만들어 황제에게 진상하던 풍습이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성행했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조선시대까지 좋은 차를 얻기 위해 경칩이나 보다 이른 때 차를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차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과 서거정은 그같은 일이 빈번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매월당으로부터 차를 받아 마셨던 서거정은 그 고마움을 다음과 같은 시로 답한다. “봄천둥 울지 않고 벌레는 아직 깨지 않았는데/산의 차나무는 움터서 새싹을 이루었네/경주의 눈빛 종이로 봉지를 만들고/그 위에 초서로 두서너 글자를 적어 봉하였네/봉함을 여니 하나하나 봉황의 혀/살짝 불에 쪼여 곱게 가니 옥가루가 날리네/서둘러 아이불러 다리 부러진 냄비를 씻어/눈물로 담담하게 차를 달이며 생강도 곁들이네.” 서거정은 ‘유다’나 ‘조아차’로 이름 붙여진 차의 모습을 봉황의 혀요, 옥가루라고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으면 이같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선대 차인들이 가졌던 고귀한 차의 정신이 경이로울 정도다. 우리나라 왕실에서는 대대로 매달 새롭게 생산되는 각종 과일과 채소를 조상에게 올리는 ‘천신’제를 행했다. 고려시대때 천신품목 중 하나는 ‘얼음’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2월에는 천신품목으로 생합 낙지 얼음 전복 그리고 작설차를 바쳤다고 한다. 차가 매우 성행했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차가 천신의 품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천신의 품목이었다는 것은 당시 차가 그만큼 귀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2∼3월에도 ‘유다’나 ‘조아차’ 같은 차들이 일상적으로 만들어져 진상됐음을 의미한다. 4월은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차와 꽃의 계절이었다. 진달래가 피면 산으로 나가 ‘화전’을 부쳐 먹으며 차를 마셨다. 청명과 곡우 그리고 중양절의 하나인 삼월삼짇날이 있는 4월은 축복받은 차의 계절이기도 하다.4월을 차의 달로 만든 차의 명인은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이자 차승이었던 충담사다. 충담사는 해마다 4월이 되면 경주 남산의 삼화령 미륵부처님께 차를 올렸다. 충담사는 세상 만물이 눈을 뜨는 달을 맞아 미륵부처님께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양절마다 부처님께 차를 올렸다. 그런 점에서 충담사는 우리 사원다례의 선구자로 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답청때 차를 마신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시인이자 차인인 영수합 서씨는 삼월삼짇날 답청준비를 위한 차도구를 준비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여러해 동안 은근한 불로 작은 화로에 차를 끓였으니/신기하고 영묘한 공덕이 조금은 틀림없이 있을 터요/차 한 잔을 마신 뒤 거문고를 어루만지니/밝은 달님이 나와서 누군가를 부른다네/봄날 차반의 푸른잔에 옥로차를 올리노라니/오래된 벽에 그을음이 앉아 얼룩진 그림이 되었네/잔에 가득 찬 것이 어찌 술이어야 하리/답청 가는 내일은 차호를 가져가리.” 조선시대는 가부장적 권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그러나 답청날만은 여성들의 바깥 출입이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남성들이 손수 여성들을 위해 노동을 해준 날이기도 하다. 답청날 남자들은 곡수연이라 해서 물이 굽이치는 계곡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사대부집 여성들은 이날 먼 곳까지 나가 물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거문고를 타며 차를 마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다신계 절목´에서는 청명과 한식때 차 모임을 시작한다고 되어 있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청명을 봄을 맞이하는 ‘영춘다회일’로 부르며 차의 명절로 지내고 있다. 입하 때는 칠가차를 마시기도 한다. 중국풍습인 칠가차는 우리가 정월 대보름때 오곡밥을 지어 여러 집이 함께 나눠 먹는 것과 비슷하다. 칠가차란 일곱 집에서 각각 잘 만들어진 차를 가져다가 한 주전자에 넣고 우려 여러 사람이 모여 즐겁게 나눠 마시는 차를 말한다. 여러 차를 한꺼번에 한 주전자에 넣고 우려내어 나눠 마시는 것은 각자 고유의 차맛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차의 공동체적 살림살이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매우 유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사대부적 권위가 드셌던 조선시대 여인들이 가졌던 차의 미학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단오날이다. 창포물로 머리를 단정하게 감는 단오날 여인들은 규방을 빠져나와 꽃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차회를 열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모여 솜털이 곱살거리는 하얀 목덜미를 내밀며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여인들의 모습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청량함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창포 냄새에 취해 벌이는 아름다운 차회의 모습은 차도미학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중국에서도 단오날을 약차절이라고 부르며 창포차를 마시고 약차를 만들기도 한다.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유월 보름의 명절 ‘유두’는 다함께 모여 차를 마시고 차떡을 나눠 마시는 풍습이다.‘차약 먹는 유두놀음’이라는 민요는 ‘유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한다.“유월이라 유두날에/작설떡을 차려심더/화개장에 오신 장사/차약 먹는 유두놀음/벌리보세 에헤라/에헤라 상사디야.” ‘동국세시기´를 보면 유두날 떡을 먹는 것은 단오날의 풍습을 옮겨온 것이다. 작설떡은 떡차를 끓여 마시던 것을 변형해 쌀가루와 섞어 만들어 먹은 것으로 보인다. 유두때는 불길한 것을 씻기 위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고 액을 막기 위한 술자리도 함께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유두날 역시 차와 작설떡 등의 놀이로 액을 막고 벽사의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추석이나 설 명절의 차례 역시 매우 중요한 세시풍속 중 하나였다. 지금은 대부분 차례를 술로 지내지만 신라시대부터 ‘차’로 ‘차례’를 지냈다. 김수로왕과 허황후 때부터 시작된 차례는 조상들에게 햇곡식과 함께 차를 올렸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조상들에게 올리고 있는 ‘차례’에 차가 아닌 술이 올라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옛 차인들은 세시기별로 차를 마셨다. 차와 함께 봄에는 화전이나 진달래차, 가을에는 국화차, 겨울에는 매화차 같은 꽃차와 백로의 이슬 등 절기에 맞춰 자연의 변화를 즐겼다. 그같은 삶은 각박한 우리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했다. 옛날이나 현재의 살림살이는 똑같다. 다만 그 환경만 조금 다를 뿐이다. 매일매일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가는 중생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각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차인들은 그같은 삶을 차와 자연의 일체를 통해 녹여냈다. 동적인 것을 정적인 것으로 바꾸고 그 가운데서 삶의 지혜와 세상을 맑히는 정신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자연과 함께 영위하게 해준 세시풍속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가치라고 보여진다. 외국 자본의 상혼에 물든 ‘초콜릿데이’인 밸런타인데이면 세상은 온통 초콜릿에 물든다. 얼마 전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콜릿데이에 쓰여진 용돈 규모는 한달 살림살이를 전부 투자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문화에는 우리의 정신도 우리의 삶도 내재하지 않는다. 입춘날 부적을 내걸고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유두날 떡을 함께 먹으며 질펀한 놀이를 함께 즐기는 우리의 삶은 자연과 대지에 깊게 뿌리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단한 우리 삶의 의미와 내용을 가치있게 빛내는 것들이었다. 차인들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외형보다는 우리의 삶속에서 차의 변화를 맛깔나게 즐겼던 선대 차인들의 지혜를 본받아 이 시대에 걸맞은 차문화를 만들어내야 할 때다. 그것이 웰빙시대 차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차인들의 역할이 아닐까? 일지암 암주 ■ 茶씨앗은 아들 낳는 부적으로 이용하기도 민간신앙과 차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문화로서 그 기능과 가치를 확산해 왔다. 일반 백성들은 차를 벽사나 기복의 수단으로 신성시하고 숭배했다.‘차’라는 글자를 부적으로도 썼고, 차를 끓여 신에게 바치기도 했으며 차나무를 신성시해 ‘서초괴’(상서러운 식물중의 괴수),‘왕손초’(王孫草)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의 노정벽이라는 다인은 심지어 다구를 보고 의관을 갖춰 절을 했을 정도로 민간에서는 차를 신성시했다. 그런 점에서 민중에게 차는 신령스러운 ‘벽사’( 邪)의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신이 큰 공덕을 준다고까지 믿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차’라는 글자는 나쁜 액을 물리치는 벽사의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홍만종은 그의 저서 ‘산림경제’에서 “단오날 오시(午時)에 붉은 주사로 ‘茶’를 써서 붙이면 사갈이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도 ‘차’자 부적에 관한 글이 나온다.‘규합총서’에는 “단오날 오시에 주사로 ‘차’자를 많이 써 붙이면 뱀과 지네가 없느니라.”고 되어 있다. 당시 민중은 단오날 한 해의 액운을 막기 위해 부적을 써붙이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풍습이었다. 또하나 재미있는 부적은 ‘신다울루’(神茶鬱壘)라는 것이다. 주로 불행이 집안의 문안에 들어오지 못하게하는 문신(門神)의 역할을 한 ‘신다울루’에는 ‘신다울루’라는 글자나 다신의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였다고 한다. 신다울루는 형제신의 이름으로 중국 동한때 채옹이 쓴 ‘독단’에 나와 있다.‘독단’에 따르면 “바다 가운데 도삭산이 있고, 그 산위에 복숭아 나무 하나가 있다. 그 나무는 3000리 근방까지 서리어 구불구불하다. 낮은 가지의 동북쪽으로 귀신이 다니는 문이 있어 온갖 귀신이 드나든다.‘신다’와 ‘울루’두신이 이 문의 양쪽에 버티고 서서 모든 귀신을 검열한다.‘신다’와 ‘울루’신은 남을 해치는 귀신을 갈대로 꼰 새끼에 묶어 호랑이에게 먹인다.”고 적고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입춘에는 단오날에 쓸 부적으로 문에 붙이는 첩자에 ‘신다울루’넉자를 쓴다. 옛 풍속에 설날 도부(桃符:복숭아나무 부적)에 ‘신다’와 ‘울루’의 형상을 그려 문에다 걸어 흉악한 귀신을 쫓았다.”고 적고 있다. 이같은 정황을 볼 때 입춘날 ‘신다울루’라는 부적을 써 단오날 문에 붙였던 풍습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또 부적을 태운 후 찻물과 함께 마시는 풍습도 있었다. 민중은 현세와 내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왕생정토’ 부적을 태운 후 불전에 올린 찻물에 타서 마셨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일정한 날에 서쪽을 향해 나무아미타불을 천번 외고, 또 주문을 108번 외운 후, 정토부적을 살라서 그 재를 불전에 올린 찻물인 퇴다수에 타서 마셨다. 그같은 풍습은 부처님이 마신 찻물을 먹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인간의 염원을 잘 반영한 것이다. 차씨는 또 아들을 낳는 부적으로도 사용됐다. 차가 많이 나는 지방의 민중은 딸이 시집 갈 때 차씨와 함께 보냈다. 차씨는 상서로운 식물의 종자로 귀한 아들을 낳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점제하는 차씨’라는 민간구전요는 이같은 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다.“영축산록 자장골에/자장율사 따라왔던/자장암의 금개구리/차씨 한 알 토해주소/우리 딸년 시집갈 때/봉채집에 넣어주어/떡판 같은 아들낳게/비나이다 비나이다/그 문중에 꽃이 되고/이 가정에 복을 주소/점제하려 비옵니다.”
  • 개·대보름 새 세시풍속 공개

    살랑살랑 꼬리치는 푸른 다리 위 하얀 개/쇠우리에 가둔 듯 복숭아 가지로 목줄 걸었네/사방문을 향해 짖게 하며 주술을 행하니/산하의 모든 귀신들 위험에 두려워 떠네(상원리곡 중) 병술년(丙戌年)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12일)을 앞두고 개와 정월대보름에 관한 새로운 세시풍속 기록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조선후기 12편의 시집에 수록된 시 310수를 번역해 펴낸 ‘조선대세시기Ⅱ’를 통해서이다. 이 책에는 조선후기 문인 김려가 정월대보름의 다양한 풍경을 읊은 ‘상원리곡’ 25수가 담겨 있다. 이 중 19번째 시는 복숭아 가지로 목줄을 만들어 개에게 채운 뒤 채찍질하며 사대문으로 내몰아 돌림병을 쫓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박물관측은 “개띠 해를 맞아 개에 대한 새로운 기록이며, 처음으로 소개되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자료”라고 설명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7080 추억의 설 풍경

    7080 추억의 설 풍경

    “세 밤 남았다, 두 밤 남았다.” 섣달 그믐날 밤이 왔습니다. 눈썹이 셀까 조바심에 눈꺼풀을 열심히 비빕니다. 아버지가 안타까웠는지 화롯불로 손짓합니다. 가래떡을 살짝 구워주시며 화장실 귀신, 참새 귀신, 처녀 귀신 얘기로 공포스럽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 동이 터오를 새벽녘에 그만 꾸벅 잠이 들었습니다. 때때옷이랑 새 신발을 손에 꼭꼭 쥔 채로…. 드디어 정월 초하루가 밝았습니다. 눈 비비고 일어나니 마당에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한 달 된 강아지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 블루스를 춥니다. 볏을 꼿꼿이 세우고 닭이 바짝 경계를 합니다. 백옥같이 흰 가래떡을 쑥쑥 썰던 어머니가 힐끔 쳐다보더니 “저것들도 명절인 줄 아는가벼.” 하면서 밤새 음식을 장만하느라 지친 몸을 달래 봅니다. 아버지가 어깨를 툭 치며 어서 가자고 손짓합니다. 이끌려 할아버지한테 세배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복주머니를 꼭꼭 쥔 채로…. 설날 저녁이었습니다. 삼촌이랑 건넛마을에 사는 친척 형제들이 세배하러 왔습니다. 아버지가 술과 음식을 권합니다.“느그들 명절엔 온갖 근심을 다 내려놓그라. 가족이 있어 이렇게 보는 게 얼마나 좋으냐.”고 몇 번이고 강조하십니다. 어머니는 “어여 많이들 먹어.”라며 분위기를 돋웁니다. 쌀밥과 쇠고기, 기름진 떡을 실컷 먹었습니다. 이날 밤처럼 변소간을 자주 들락거린 적이 없었습니다. 신문지를 찢어가며 손에 꼭꼭 쥔 채로…. 자라서 나중에 아버지가 됐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똥개 ‘도그’와 올가미에 걸린 꿩을 잡으러 갔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꿩은 해산한 순이 엄마한테 갖다 주라던 어머니 말씀에 막 울었던 나의 살던 고향이 그립습니다. 성질부려 흘리는 코를 손으로 닦아주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좋아했던 술을 줄여 동네 꼬마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설 선물로 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에 새삼 머리 숙여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왔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고향은 늘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세 밤’‘두 밤’을 헤아렸던 아이가 “고향 가면 할아버지 산소에 가야지.” 하는 얘기에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독자 여러분 올해는 더욱 가족을 챙기시고 꼭꼭 부자되세요∼. WE팀
  • [Book&Life] 記實과 故事 ‘中문학장르의 양면’

    [Book&Life] 記實과 故事 ‘中문학장르의 양면’

    ‘지스´ 그리고 ‘구스´. 이 낯선 중국말을 한자로 표기하면 각각 기실(記實)과 고사(故事)다. 기자가 지스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가을 베이징 시내의 한 서점에서였다. 책방엔 ‘기실문학(지스원슈에)´이란 별도의 코너까지 마련돼 있었다. 중국에서 이토록 인기를 얻고 있는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동행한 S교수는 그런 기자가 안타까웠는지 중국 기실문학의 대가 웨난(岳南·44)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웨난은 ‘마왕퇴의 귀부인´‘부활하는 군단´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산둥성 출신 작가. 그는 기실문학을 사실에 근거해 쓰되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한 일종의 다큐멘터리로 정의했다. 기실문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밀한 취재다. 재미를 위해 없는 사실(史實)을 꾸며내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중국에는 현재 수만명의 기실문학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도 르포를 위주로 비슷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기실문학이란 표현을 쓰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웨난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기실문학이란 말이 점차 정착돼 가는 조짐이다. 비록 우리가 만든 용어는 아니지만, 장르적 속성을 잘 드러낸 말이란 점에서 받아들일 만하다. 이제 그럴듯한 이름도 얻었으니 기실문학의 텃밭을 일궈나가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고사문학(구스원슈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최근 L출판사 대표는 기자에게 “구스란 용어는 우리에게 아직 낯설지만 중국에선 마치 ‘성경´처럼 읽혀지고 있는 독특한 문학장르”라고 열변을 토했다. 과연 그런가. 이른바 고사문학이라는 것은 중국에 분명 존재한다. 지혜, 우언, 신화, 애정, 귀신 같은 낱말들이 앞에 붙어 ‘××이야기´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입에 올리는 ‘구스´를 새삼스레 묶어 독자적인 문학 갈래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국의 주류 문학가나 학자들 또한 이를 진지한 학문 분야로 여기지 않는다. 혹자는 ‘천만 명의 마음을 울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나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살아가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등의 작품에 ‘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그런 간판이 적실한 것일까.‘기실문학´이란 말과는 달리 ‘고사문학´이란 용어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가 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儒林(52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0)

    儒林(52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0)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0) 전해오는 야사에 의하면 이원수는 꼬박 사흘 낮 사흘 밤을 쉬지 않고 오백그루의 밤나무와 오백 개의 밤톨을 혼자서 심었다고 한다. 이원수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졌으나 노추산은 이로부터 원효가 태어난 밤나무계곡, 즉 ‘율곡(栗谷)’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강릉의 오죽헌 집에 탁발승 하나가 찾아들었다. 외할머니는 정성껏 담은 쌀 한 되를 가져다 바랑에 넣어다 주는 순간 그 스님이 1년 전에 찾아왔던 바로 그 스님이란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스님께서는 작년에 오셨던 그 스님이 아니신가요.” “그래, 밤나무는 모두 심으셨는가요.” “스님의 말씀대로 더도 덜도 아닌 꼭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지금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럼 이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밤나무를 심은 파주의 노추산에 있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 즉시 파주의 노추산을 찾아간다. 노추산에서는 이원수가 땀을 흘리며 밤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이원수가 스님을 쳐다본 순간 스님은 다짜고짜로 밤나무의 숫자를 세어보기 시작하였다. “한 그루, 두 그루,….” 스님은 지팡이로 밤나무를 일일이 확인해 나가면서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다. “998,999,….” 하나하나 밤나무의 숫자를 헤아리던 스님의 지팡이는 마침내 땅위에서 멎어섰다. “한 그루가 모자라는군요.” 한 그루가 모자란다는 말에 이원수는 깜짝 놀라며 다시 세어보았다. 그러나 과연 스님의 말대로 꼭 한 그루가 모자랐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히 오백그루의 밤나무 묘목과 오백 개의 밤톨을 심었는데, 한 그루가 부족하다니. 그러자 스님이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이제 당신의 아이는 하늘의 것이요. 곧 하늘이 당신의 아이를 데리고 갈 것이요.” 그때였다. 낙심하던 이원수는 땅에 떨어진 낙엽을 헤치다 이제 막 땅을 뚫고 솟아나오는 새싹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여기도 있습니다.” 이원수는 소리쳐 말하였다. “분명히 밤나무 새싹입니다.” 스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하였다. “내가 졌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순간 스님은 호랑이로 변하여 울부짖으며 하늘을 박차고 사라졌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로부터 파주의 노추산은 밤나무가 많은 율곡리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한갓 야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율곡의 호는 이러한 야담의 본거지인 ‘율곡리’에서 따온 것이었으며, 실제로 원효가 태어난 곳이 율곡의 ‘사라수’ 아래였다고 삼국유사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율곡이란 이름도 이처럼 원효와 깊은 인연을 가진 불교적 숙연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 인터뷰보다 더 재미난 후일담

    100호를 맞기까지 주말판 ‘We’를 빛나게 한 수훈갑은 뭐니뭐니 해도 톱스타들. 그때그때 영화, 드라마, 가요계에서 활약이 돋보이는 스타들을 ‘We’는 참 부지런히도 만나왔다. 주말판이 생기고 근 1년 동안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톱스타를 인터뷰해서 표지로 이끌어냈다. 분초를 쪼개 사는 스타들을 번번이 표지로 ‘모셔내기’란 간단할 수가 없는 일. 스타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지면 뒤에서 오고갔다. # 선한 눈망울의 과묵한 그녀, 수애 시쳇말로 연기력은 ‘끝내’주는데, 언변이 유별나게 달리는 스타도 꽤 있다.‘가족’‘나의 결혼 원정기’ 등을 거치며 연기파 신인으로 자리매김한 수애가 그랬다. 질문에 명쾌한 즉답을 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건 물론. 사슴처럼 선한 눈망울로 ‘예’‘아니오’의 단답형 대답만 돌려준 통에 인터뷰 시간이 곱빼기나 들었던 기억이 돌아보면 재미있다. # 송혜교 “죄송했어요, 독자 여러분!” 표지얼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끝내 불발에 그친 사례도 없지 않았다.TV드라마 ‘햇빛 쏟아지다’로 안방극장을 달구고 있던 송혜교. 촬영이 한창인 SBS 탄현스튜디오까지 찾아갔으나 방송담당 기자는 헛걸음을 해야 했다. 인터뷰 시간까지 정하고 갔으나, 웬걸? 아무리 기다려도 송혜교는 밴 차량(배우들이 타고 다니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승합차)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매니저는 “감정몰입이 안돼 배우가 난감해하니 오늘 인터뷰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답답한 말만 되풀이하고. 고스란히 하루를 공쳐버린 그날, 취재팀의 분노와 속앓이는 엄청났다. 갑자기 ‘빵구’난 지면을 땜질하느라 그날 밤 흘린 식은땀을 생각하면…. 최근 영화 ‘파랑주의보’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들은 그녀의 때늦은 해명.“감정이 제대로 안 잡히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코디네이터도 옆에 못오게 해요, 제가. 앞뒤 따져 보질 않거든요. 변명 같지만 증거도 있어요. 메이크업 손질도 못하게 까탈을 부려서 눈썹 한쪽이 바보처럼 지워진 채 눈물장면을 찍기 일쑤예요. 잘 한번 보세요.” 배시시 눈웃음으로 덧붙인 멘트.“We 독자 여러분, 그땐 진짜진짜 죄송했습니다∼” 이쯤해서 취재팀은 귀여운 그녀와 그만 화해하기로 했다. # ‘인간성’ 들통나는 ‘We’ 밀착인터뷰 사진촬영에 인터뷰까지 2시간여의 만남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품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터뷰의 리듬을 타지 못해 난감한 스타가 없을 리 없다. 누구 하면 세상이 다 아는 한 남자 스타.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다시 기자에게 돌리는 괴팍한 버릇으로, 취재팀이 인터뷰 백지화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 박솔미 “제 내숭에 속으셨죠? 호호” 새침떼기 같은 외모의 편견을 순식간에 확 걷어내주는 스타를 대면하는 건 언제나 신선한 ‘충격’. 한가인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매너를 보인 스타로는 박솔미를 잊을 수 없다. 잠자리 날개처럼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내숭’을 떨었으나, 인터뷰 자리에선 싹 얼굴을 바꿨다.“(첫 영화 ‘바람의 전설’의)시나리오를 우연히 보고 맘에 들어 제작사로 쫓아가 막 졸랐다.”며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한 멘트를 날리던 스타였다. 공인으로서 박수 받을 만하다 싶게 ‘친절한 그녀’들도 많았다. 김정은, 엄정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근사근함으로 기자들에게 ‘표’를 많이 챙기기로 소문난 얼굴들. # ‘보고 싶은 얼굴´ 1호 한가인 ‘보고 싶은 얼굴’이란 타이틀 아래 첫 인터뷰 대상으로 잡은 얼굴이 한가인.‘연정훈의 여자’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때. 그러니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개봉을 앞둔 2004년 1월.CF 2편, 드라마 2편쯤 조연으로 출연한 게 이력의 전부였던 당시, 그녀는 기자에게 유달리 강력히 스타예감을 안겼던 얼굴로 기억이 생생하다.“얼굴에 칼(?) 한번 대본 적 없는 100% 자연미인”이라며 집게 손가락으로 심하게 돼지코를 만들어 보이던 장난기 많은 스물두살 ‘꽃띠’였다. # 하늘에서 울리는 피아노선율, 이은주 두고두고 가슴이 짠한 만남이 있었으니, 고 이은주이다.‘안녕, 유에프오’를 개봉시킬 즈음 만났던 그녀. 배우답지 않게 유난히 낯을 많이 가리던 ‘심사숙고형’.“온갖 잡생각이 많은 A형이며, 배우가 안됐으면 피아니스트로 살았을 것”이라고 조용조용 말하던 그녀가 지금 우리곁에 있다면? 그녀의 희망대로 이제쯤 피아노 음반을 한 장쯤 내서 또 한번 지면을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 인어아가씨, 오후의 반란? 그러고 보면 ‘인어아가씨’ 장서희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첫 영화 ‘귀신이 산다’의 개봉 즈음. 본사로 찾아온 그녀는 깍쟁이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사려깊은 맏딸 같은 여유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오후 3시쯤. 한참 마감중이던 편집국이 그녀의 ‘깜짝 순회공연’으로 한바탕 시끌시끌. 총각, 유부남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카메라폰을 눌러댄 즐거운 어느 오후였다. # 김래원, 소크라테스 다 됐네~ ‘We’ 스타 인터뷰난에 두 번이나 밥상을 받은 운좋은 스타도 몇 있다. 김래원. 로맨틱 코미디 ‘어린 신부’때 어눌해서 답답했던 그가 얼마나 빠르게 성숙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몇달 전 원톱 주연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앞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 왈,“웅변학원을 다녔나? 화술 많이 늘었네∼” # ‘귀하신 몸´을 낚아라! 정상에 올라갈수록 인터뷰가 까다롭게 성사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2,3주일 전 심지어는 몇달 전에 미리 인터뷰를 예약해야 하는 ‘귀하신 몸’들도 많다. 달리는 밴에서 새우잠을 자는 톱스타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인터뷰 짬을 낼 수야 없는 일. 배우라면 새 영화 개봉을 앞뒀거나, 가수라면 새 음반을 냈을 때 몸이 쪼개져라 정신없이 홍보작업에 매달린다. 그럴 때 잽싸게 그들을 낚아채(?) 커버스토리로 앉히는 게 취재팀의 역할. 촬영은 본사 5층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조막만한 얼굴을 다 가릴 만큼 큰 선글라스, 헐렁한 추리닝이나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들의 변신은 10여분이면 끝난다. 피곤에 절어 눈동자가 풀렸다 싶지만, 잠자리 날개 옷만 갈아입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낯빛이 달라진다. 그들에겐 카메라 앵글이 다시 없는 ‘원기소’. 사진에 애착이 유별난 여배우라면 20∼30분의 촬영에 옷을 두어번쯤 바꿔 입는 것도 예사이다. 인터뷰 스타일도 언변도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공통분모를 나누는 사실 하나. 초보 배우든, 최고의 톱스타든 인터뷰장을 떠날 때 남기는 한마디는 매한가지,“자∼알 좀 써주세요, 기자님∼” 이제 결론. 그들을 긴장시키는 가장 힘센 사람은 언제나 독자 여러분이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정감록’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주제를 40개 정도로 나눠 일년 가까이 연재를 해왔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예언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들이다. 그 중엔 그냥 버려두기 아까운 것이 꽤 많아 몇 가지를 간추려 보았다. 특히 암울했던 일제시대엔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염원이 간절해서인지 각종 예언과 관련된 일화가 많았다. 또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동학과 관련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예언에서 찾은 조선독립의 희망 1920년대에는 천도교가 예언과 관련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천도교는 동학의 후신이라 이상세계의 실현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했다. 당시 교단 지도부는 재정에 충실을 기하려고 성미(誠米) 적립운동을 펼쳤는데, 성미운동에서도 예언이 등장했다. 대강 이런 식이었다. 천도교 신도는 성심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끼니 때마다 가족 수만큼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교단에 바쳐야 된다고 했다. 하늘은 성미가 많고 적음에 따라 신도들의 성심을 상중하로 판단해 장부에 기재하므로, 성심이 깊으면 복을 많이 받지만 적거나 없으면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교단에 따르면, 교조 최제우는 동학이 창건된 지 61주년째 되는 1920년 한국에 갱생한다 했다. 세상에 다시 내려온 최제우는 오만 년 무극대도(無極大道)를 펼쳐 전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연맹을 대신해 세계정부를 세운다 했다.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예언이었다. 기독교의 재림예수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천도교 신도들은 교단의 가르침을 성심껏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했다. 그들 각자가 바치는 정성은 하늘을 감복시켜, 성미를 많이 바친 이는 새 세상에서 고위관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본인은 물론, 자손들까지도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르침은 통했다.1920년경 천도교 측이 거둔 성미 수입은 당시 화폐로 수십만 원이나 되었다. 참고로, 일제말기 초등학교 교원의 초임은 45원에 불과했다. 천도교의 성미운동을 식민지 당국은 사기적인 약탈행위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성미는 물론 천도교단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상당부분은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투입되었다.1919년의 3·1운동 때도 천도교 측은 운동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했다. 그 뒤에도 천도교 측은 ‘개벽’과 같이 선진적인 계몽잡지를 발간했고 농촌운동을 일으켰다. 기꺼이 성미를 적립했던 신도들도 마음속으로 조선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심지어 천도교의 곁가지인 무극대도교나 상제교 측도 그러했다. 무극대도교는 일제의 보안법을 자주 위반한 것으로 유명했다. 상제교도 교주 김연국이 상제로부터 홍서(紅書)를 받았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또 다른 일파인 수운교도 교조 최제우를 부처의 후신으로 보았다. 이들 교단은 여러 예언을 동원해 곧 지상천국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지상천국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독립을 기본전제로 했다. 일제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신종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감언이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상 그것은 단순한 감언이설이 아니었다.“이 교단”은 혁명 즉, 정권창출에 성공할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배출하게 되며,“이 교”에 입교해 신앙 활동을 잘 하면 생활이 안정되고 새로운 정치지배세력의 일원이 된다는 확신이 뚜렷했다. 이미 언급한 천도교 등 여러 신종교들을 비롯해 보천교, 금강도 및 청림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기존 예언서인 ‘정감록’을 중시했고, 거기에 자기네 나름으로 새 예언을 덧붙였다. 심지어 전혀 이름조차 없는 소규모 단체들도 ‘정감록’에 기대어 독립을 점쳤다.1931년 3월31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경찰서 고등계는 경북 상주와 문경 등지에 사는 평범한 남녀 주민 4명을 보안법 위반자로 검거했다. 당시 40∼50대 나이로 장년층에 속했던 이들은 조선독립을 목표로 비밀결사를 조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들은 ‘정감록’의 한 구절,“땅값이 똥값이 되며 천 마리 말이 소가죽을 입는다.(土價如糞 馬千牛服)”라는 대목을 장차 반드시 일어날 미래의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해석은 특이했다. 장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0년간 지속된다고 보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멸망하고 조선독립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된다 했다. 우연한 일이지만 이 예언은 거의 들어맞았다.1939년 제2차대전이 터졌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일본은 연합국 측에 패전해 무조건 항복했으며, 마침내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런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은 ‘정감록’ 예언을 따라 십승지를 찾아갔다. 그들은 경북 상주군 화북면 중대리에 있는 우복동에 주목했다. 거기 피난처를 정한 다음, 그들은 조선독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1928년 5월, 우복동에서 결사를 맺고 사찰을 지어 승려로 가장했다. 이웃한 지역사회에서는 그들의 취지에 공감해 사찰건립기금을 낸 사람이 20명가량이나 되었다. 우복동의 ‘선민’들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진인 정씨의 출현을 기다리며, 그 때 긴요하게 쓰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종교 교육활동에 몰두했다 한다. 사실 19세기 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예언이 난무했다. 그 중엔 ‘정감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 예언도 많았다.1933년 8월21일, 충청북도 영동 출신의 박모라는 사람은 그동안 누구도 풀이하지 못한 예언시를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그 일부가 우연히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문제의 예언시는 첫 구절이 이러했다.“봄날 나무에서 원숭이가 우니 귀신도 알지 못한다.”(猿啼春樹鬼不知)는 것이다. 박 도사는 여기 나오는 원숭이(猿)를 임신년 즉 1932년으로 간주했고, 그 해 3월 만주국이 창건될 것을 예견한 시라고 주장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비바람이 치는 날 닭이 울 때”(一天風雨鷄鳴時)라 했다. 박 씨는 닭이 울 때(鷄鳴時)를 계유년(1933)으로 상정했다. 그 해에 만주국의 주권을 둘러싸고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예견했다. 회의에서 일본이 만주를 불법 점령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내다보았다. 엄밀한 의미로, 이것은 틀린 해석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만주국의 성립은 장차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리란 예고편이었다. 그 전쟁이 확대되어 마침내 1939년, 세계 제2차대전으로 번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박씨의 예언 풀이는 제법 타당한 점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예언시의 마지막 부분은 “만국이 진을 이루고 개가 울 때” (萬國成陳犬吠時)란 구절이었다. 박씨는 이 구절에 대해,“개가 울 때”(犬吠時)는 갑술년(1934)이며 만주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계전쟁이 유발되고 악성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대로 1934년에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일본의 패망을 예언한 대본교(大本敎) 같은 신종교도 있었다. 그 교주 왕인은 1945년에 “국체변혁”(國體變革), 즉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내놓았다. 그의 위험한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식민지 당국은 대본교의 교당을 헐어버렸다. 왕인 등 교단 지도부도 몽땅 체포했다. 본래 왕인이란 사람은 농부였다. 그런데 예언능력이 탁월해 신종교의 교주가 된 것이다. 그는 교당의 터를 잡을 때 여기를 파면 반석같이 큰 바위가 나오리라 예언했다. 과연 그 말 대로였다. 세상 사람들은 왕인이 땅속까지 꿰뚫어보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할 만큼 형안을 가졌으면서도, 자기 교당이 허물어질 줄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며 비웃었다. 중요한 사실은 평범한 개인이든, 크고 작은 신종교 단체든 일제시기 내내 많은 한국인들이 늘 조선독립을 점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대부분 ‘정감록’을 토대로 했다.‘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弓弓乙乙’ 담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정감록’에 대해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동학경전을 읽어보면 그는 정감록을 믿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믿는 것 같다. 그가 “기이한 동국 참서”, 즉 ‘정감록’을 손에 쥐고 들려준 가르침을 좀 풀어보면 이렇다. 과거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利在松松 이여송 형제가 도움이 됐다)이라 하였고, 가산 정주 서적(西賊 홍경래 난)때는 이재가가(利在家家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라고 ‘정감록’ 등에 기록돼 있지. 다 맞는 말이었네. 그런 선례를 본받아 우리의 미래도 한번 설계해 보세. 앞으로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정감록’에 나오는 구절이네만 이재궁궁(利在弓弓 궁궁이 유리하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봐야 하네. 매관매직을 일삼는 세도가들도 그 마음은 오직 궁궁에 있는 듯하고, 돈 많은 부자들도 궁궁만 찾고 있네. 거지들도 궁궁, 풍수에 미친 사람들도 궁궁촌을 찾아 더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다네. 더러는 서학(西學 천주교)에 입교해 그것이 궁궁인 줄로 믿고들 있지. 세상 사람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이 몽땅 궁궁에 관한 것뿐이네. 그러나 제 몸을 닦고, 집안일을 바로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 강산을 찾아가면 뭐하나. 경박한 세상 사람들 같으니! 다들 이익이 송송(松松)이니 가가(家家)에 있다고 한 말뜻은 겨우 알아낸 듯하지만 정작 궁궁이 무엇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군. 최제우는 자신이 발견해낸 종교적 진리가 바로 궁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무극대도”라 불렀고, 앞으로 5만년간의 태평시절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감록’에 적힌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구절에 모든 진리가 압축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에 입각해 그는 궁을부(弓乙符)를 만들었다. 이 부적을 몸에 붙이면 상처가 생기지 않고, 이것을 불살라 먹으면 만병이 사라진다고 최제우는 가르쳤다. 그러다 고종1년(1864)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동학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던 갑오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군들의 깃발에는 ‘오만년수운대의´(五萬年水雲大義)란 글귀가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수운, 즉 최제우가 설파한 5만년 이상세계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요컨대 궁을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겠단 것이었다. 고종30년(1894)에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을 전후해 민간에 여러가지 노래가 유행했다. 단순한 노랫가락이 아니라 요참(謠讖), 즉 노래형태를 빈 예언이었다. 더러는 일제시대까지도 남아 인구에 회자되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甲午歲 甲午歲 乙未 乙未 丙申되면 못 간다)” 기왕 일을 벌이려거든 갑오년(1894)에 서울까지 밀고 올라가서 일을 마무리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을미년이나 병신년까지 지연되면 실패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 노래는 갑오 동학농민운동 당시 김개남 등 급진파 측에서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뒤늦은 후회를 예언의 형태로 담아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동학농민군이 서둘러 서울로 진격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원 방면을 공략하다 뜻밖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운봉 아전 박봉양이 이끈 반항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저항은 요참에도 담겨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아랫녘 새야, 윗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하루박(하눌타리), 후-여!” 전라도 고부 출신 녹두장군 전봉준은 ‘하루박´으로 표현되는 박봉양에게 밀린다는 말이다. 참시에서 저항세력을 하눌타리 또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박씨라고 일컬은 점은 재미있다. 이런 비유로 볼 때 노래를 만든 이나 부른 이는 농민군 편이었다. 노랫말에 보이는 “후-여”는 새 쫓을 때 내는 소리다. 녹두새 전봉준에게 미리 경고해 농민군이 남원쪽으로 움직이지 말게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느껴진다. 알다시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운동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전봉준과 김개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수많은 농민군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도 물론이다. 이런 동학농민군들의 비원을 담은 노래는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란 노래였다. 전봉준을 녹두꽃에 비유해 그의 죽음이 곧 민중의 비극이란 것이다. 그밖에 “솔잎과 댓잎이 파르라니 봄인 줄 알고 찾아 왔는데, 흰눈이 펄펄 흩날리니 송죽이 나를 속였었구나.”란 노래도 널리 유행했다. 솔잎과 댓잎만 보고 겨울을 봄으로 착각했다는 가사는, 농학농민군이 시세판단을 잘못해 너무 일찍 군대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농민군의 준비부족을 한탄한 것이다. 이들 가요는 내용을 가지고 보면 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그 편에서 만들어 부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노래를 채집한 이은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제시대 민중은 이 노래들을 후일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노래가 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유행한 예언이었다고 믿었다. 민중은 동학농민운동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에게 특별한 예지력이 있다고도 생각했다.1894년 음력 4월경 전라감사 김문현은 농민군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전봉준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는 자객 2명을 밀파했다. 자객들은 담배장사로 변장해 전봉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신분이 탄로되어 붙들리고 말았다. 전봉준은 점술에 밝았기 때문이다. 점괘를 던져본 그는 자객이 온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한다. 믿고 따를 지도자라면 당연히 예언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민중은 생각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국가기관이나 공신력을 자랑하는 주요연구소에선 다음해의 경제성장을 전망하곤 한다. 이런 예언, 예시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필수조건인 모양이다.
  • 작업의 定島 겨울 남이섬

    작업의 定島 겨울 남이섬

    남이섬의 겨울은 연인들의 천국이다. 살을 에는 바람도, 온몸이 얼어버릴 듯한 추위도 그들을 갈라놓지는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더욱 가깝게 만든다. 꼭 잡은 두 손, 빈틈없이 낀 팔짱, 꼭 감은 늑대 목도리를 하고 그들은 차가운 겨울 남이섬을 헤매고 다닌다. 새 인생을 시작하는 연인들이여! 들어갈 때는 따로 떨어져서 가지만 나올 때는 하나가 되어 나오는 곳 남이섬으로 떠나보자. 남이섬 선착장은 유난히 겨울바람이 거세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남이섬으로 가는 배에는 유난히 승객이 많다.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이 특히 눈에 띈다. 남이섬까지는 배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 작업의 천국 남이섬 12월의 남이섬은 겨울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그만이다.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내리니 파란 하늘과 넘실대는 호수, 깨끗한 공기가 먼저 반긴다. 내리자마자 만나는 것은 아름다운 숲길.1㎞정도 이어진 숲길이 보인다. 낙엽도 지고 을씨년스러운 길을 걷는 연인들이 따뜻해 보인다. 손을 꼭 잡고 팔짱을 낀 채 숲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자기야 춥지. 이거 해”하며 목도리를 여자친구의 목에 걸어주는 남자.“바람이 너무 세다. 춥지”라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팔을 여자친구에게 감싸는 남자의 행동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그거다.‘작업’을 하고 싶은 남자들은 남이섬으로 가라. 그것도 옷이나 머플러를 잔뜩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많이 춥지.”라며 하나씩 그녀의 목에 감싸주어라. 여자친구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일 것이다. 겨울의 황량함을 녹이는 사랑의 밀어. 남이섬의 겨울은 그래서 따뜻하다. 잣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 다양한 전시공간과 식당 등이 모여있는 다운타운이 나타난다.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있다. 연인들이 불 앞에서 연신 언손을 비벼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산타복장을 한 이들이 등장을 하더니 노래를 시작한다.“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무드넘치는 색소폰 연주와 더불어 감미로운 목소리로 불러주는 크리스마스 캐럴부터 올드팝, 가요, 재즈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노래를 들려준다. 모닥불에 노래까지, 청춘 남녀들이 사랑을 나누기 위한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 있는 셈이다. 저녁이 되자 땅에는 가로등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히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수백만 개의 작은 전구들이 빛을 내뿜는다. 밤하늘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별들과 휘영청 밝은달이 얼굴을 내밀며 분위기를 잡아준다.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옆에 있다면 어깨에 기대고 싶어지는 그런 밤이다. 밤 9시50분에 남이섬에서 나오는 마지막 배가 떠난다. # 다양한 이벤트로 해 떨어지는 줄 몰라 남이섬 하면 어린시절 밤을 따던 기억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변화된 이곳을 보고 새삼 놀라게 된다. 정말 많은 상설전시와 기획전 등 다양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 남이섬이다. 1950년대부터 80년대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그때 그 시절 전시관. 낡은 증기기관차 모양의 전시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에겐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어른들로선 추억이 깃든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보게 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어린시절 초등학교 교실. 낡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는 교실 풍경. 칠판엔 떠든 아이와 화장실 청소 당번 이름이 적혀 있고, 큼지막한 조개탄 난로 위에는 양철 도시락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너 저런 것 모르지. 저게 말이야 최소한 70년대 하늘을 보고 자란 사람들만 간직할 수 있는 기억이야.” 남자친구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자랑스러워한다. 그 옛날 이발소 풍경, 대장간, 자전거 포, 만화방 등 60∼70년 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놓아 아주 재밌다. 레종갤러리에서 마련한 사진전인 유영범의 남이섬 풍경전도 꼭 들러보자. 이렇게 아름다운 남이섬이 ‘내 눈에는 안보이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눈 쌓인 풍경 사진은 마치 외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나오는 출구에 낙엽이나 메모지에 서로의 사랑을 적어놓은 것도 흥미롭다.‘넌 내 거야. 민숙’,‘경민 오빠 내가 찜 했음’. 올겨울엔 남이섬에서 사랑의 언약을 해보시길. 입장 무료. 노래박물관에서 열리는 발명왕 에디슨의 그 때 그 소리 진품체험전에서는 책으로만 보아왔던 에디슨의 발명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실내공간이 따뜻해 진정 연인을 위한다면 입장료 1000원을 아끼지 말자. 축음기, 전구, 영사기 등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품을 직접 느끼고 경험해 볼 수 있다. 전기 선풍기, 커피 포트 등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부지런한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고 했다.‘작업’을 하려면 에디슨에 대해 먼저 공부하고 가라. 그녀 앞에서 좀 아는 체를 한다면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이밖에 유니세프홀에서 열리는 기쁨공식이란 예쁜 카드전도 볼만 하다. 무조건 엽서를 사라. 판매액의 절반을 유니세프에 기증한다니 폼도 잡고 크리스마스에 좋은 일도 하고 그야말로 ‘ 먹고 알 먹고’아닌가. 입장은 무료. 레종갤러리 밖에서 하는 아프리카 풍물전도 볼만 하다. # 그녀와 나만을 위한 닭살 추억만들기 작업의 성공을 위한 마지막 카드는 체험공방이다. 여기서 그녀와 함께 펜던트나 양초, 컵에 서로의 얼굴을 그려 나누어 갖는다면 작업은 게임 오버. 반짝이는 예쁜 구슬과 색색깔의 컬러스톤으로 장식한 펜던트 만들기는 7000원, 완성된 머그잔에 유약으로 여자친구의 얼굴을 예쁘게 그리거나 사랑의 맹세를 할 수 있는 그림그리기는 8000원. 굽는데 40분. 또 양초 만들기는 1만원이다. 문의 (031)581-0321. 자전거를 타는 것은 춥기는 하지만 친밀도를 높이는 데 한몫 한다.2인용 자전거를 타거나 새로 나온 전기 자전거를 타며 닭살 돋는 ‘나 잡아 봐라’를 해도 좋을 듯.2인용 자전거 30분에 6000원, 전기 자전거 30분에 5000원. # 배가 고프다고 도시락이나 먹을거리 등을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이 추운 겨울에 밖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면 그건 ‘헤어지잔’소리. 그녀를 위해 마지막 남은 총알을 아낌없이 쏟아붓자. ‘겨울연가’ 제작 발표회 기념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카페 ‘戀家之家(연가지가)’의 ‘옛날 벤또 도시락’은 남녀노소, 특히 연인들이 좋아하는 메뉴. 울퉁불퉁한 양철 사각 도시락통에 밥을 담고, 위에 계란 프라이, 밑에는 김치를 놓고 뚜껑을 덮은 뒤 연탄난로 위에서 데워 먹는다. 먹기 전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도시락을 들어 사정없이 흔드는 게 ‘요리’의 포인트.4000원. 섬 중앙 변화가의 ‘섬향기’에선 닭숯불갈비 맛이 그만이다. 황토 화로에 참숯을 넣은 뒤 그 위에 얹은 그릴에 두툼하게 토막낸 양념 닭갈비를 구워먹는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는 닭갈비가 주위 연못 풍경과 어우러져 한층 정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2인분 기준 1만 6000원. 이밖에 편의점도 있고 불에 구운 가래떡, 핫바 오뎅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다. 값도 그리 비싸지않다. # 섬의 밤은 아름답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섬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낭만적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람들 그림자도 없는 그런 섬을 그녀와 함께 걸으며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해보자. 추워서 떠는지, 무서워서 떠는지 모르는 그녀. 너무나 귀엽지않은가. 섬 동남쪽 강변에 있는 남이섬호텔은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변과 울창한 숲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겨울연가’ 촬영때 배용준과 최지우가 잠도 자고 휴식도 취했던 호텔이다. 숙박료 5만 5000원. 가족 단위라면 남서쪽 강변에 위치한 콘도형 별장을 추천한다. 탁 트인 호수가 커다란 창문을 통해 한눈에 들어오고 따사로운 햇살이 넘실대는 별장이다. 보통 8인실로 2가족이 이용할 수 있다. 방 2개, 화장실 2개, 주방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TV가 없고 책장에 책이 꽂혀있는 것도 맘에 든다.20만원. 문의 남이섬 관리사무소 서비스센터(031)582-5118. 글 · 사진 남이섬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19일 TV 하이라이트]

    ●튀는지식-팝콘(EBS 오후 8시5분) 인생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잠. 우리는 과연 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가위 눌림, 귀신의 장난일까? 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또 재미있게도 동물들 중에는 잠을 자지 않거나 잠을 자는 동안 전혀 호흡을 하지 않는 동물들도 존재한다고 한다. 어떤 동물들이 이런 신기한 특성을 가졌을까.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영화 속에서 명함을 위조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사문서 위조죄에 해당 되는지를 살펴본다.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한 목격자에게 죄가 있는지도 확인해 본다. 또 남매를 버리고 보살피지 않은 어머니가 큰 부자로 성장한 아들 앞에 나타나 자식은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작년부터 일고 있는 사이언스 코리아운동.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과학기술시대라 불리는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과학적 사고이다. 한발 앞선 과학적 사고로 세계 경제질서를 재편할 과학기술 분야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숨은 공로자들을 만나본다.   ●안녕, 프란체스카(MBC 오후 11시5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를 갖고 싶은 인성. 가족들은 아빠 역할을 대신해주려 하지만, 인성은 진짜 아빠를 원한다. 프란체스카는 인성을 위해 결혼정보회사에 의뢰해 아빠를 구하는데, 인성이 진짜 원하는 아빠는 따로 있다. 바로 인성의 담임선생님. 프란체스카와 가족들은 담임선생님을 납치하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뿌리, 줄기는 물론 잎까지도 남김없이 활용하는 오가피는 혈압 조절과 관절 질환은 물론 어린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가피가 몸에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어떻게 좋은지 실상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가피는 어떤 식물이며, 어떤 효능을 갖고 있는지 알아본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문화예술인이 운영하는 조직으로 거듭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초대위원장인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 문학, 연극 등 취약한 우리 예술문화계를 살릴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인지 그에게 들어본다. 또 KBS가요무대 최다 출연 기록을 보유한 주현미의 꾸밈없는 이야기가 공개된다.
  • [녹색공간] 메마른 도시에 ‘드므’를 살릴 방법은?/이도원 서울대 환경계획학 교수

    우리의 수도 서울의 광화문 앞 동서쪽으로 하나씩 해태 모양의 돌조각이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나는 그것의 속내를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서울은 화강암 바위 덩어리가 만든 지반과 토양 위에 놓인 도시다. 모암이 화강암이기 때문에 선인봉과 인수봉과 같은 바위투성이의 산이 생기고, 옛사람들의 눈에 불꽃처럼 보였다는 관악산 형상이 나오기 쉽다. 그런 곳에서 풍화된 토양은 입자가 굵다. 굵은 입자 사이로는 물이 잘 빠져나간다. 그래서 사대문 안의 서울은 비가 내린다 해도 물이 청계천으로 빠르게 빠져나가 땅에 남는 양이 적어진다. 그런 까닭에 여름날 비가 그치고 해가 쬐면 도시는 금방 달구어진다. 그런 특성을 지닌 서울을 불기운이 강한 땅으로 본 것이 아닐까? 더구나 요즈음처럼 비열이 낮은 돌덩이로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놓았으니 열섬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밖에 없다. 조금만 가물어도 쉽게 공기가 데워진다. 이런 경관에서 적으나마 청량감을 얻으려면 열기를 식혀주는 실질적인 방편이 필요하다. 관악산의 불기운을 제압한다는 광화문 앞의 해태가 발휘했던 효과는 아무래도 상징적인 것으로 보인다. 굳이 실용적인 효과를 찾아본다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옛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해태를 보고 불조심의 마음을 다짐하는 정도의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날이 바쁜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거쳐 돌 해태가 불기운을 꺾는 데는 아무래도 물이 줄 실질적인 효과를 따르기 어렵겠다. 내 흥미를 끄는 다른 대상은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드므’라는 물건을 사용한 일이다. 처음 드므라는 단어를 만나고 도대체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 나이가 들도록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드므를 ‘입구가 널찍하게 생긴 독’이라고 풀어놓았다. 드므는 경복궁 근정전 계단 양쪽에 있었고, 경운궁(덕수궁) 중화전 네 귀퉁이에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아무튼 이제 드므는 쓸모없는 장치라 많은 사람들이 말조차 들을 기회가 없다. 이러한 드므에는 원래 물을 채워놓았다. 근정전 드므의 경우 궁궐에 들어 불을 내뿜으려고 하는 관악산의 불귀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놓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너무 못생겨서 기절하거나 다른 화마가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근접하지 않도록 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이 설에는 광화문 앞의 해태처럼 약간의 미신적 요소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일부 사찰(예를 들면 강화도 전등사)에서는 방화수를 담아놓는 수조로 드므를 이용했다는 말이 있다. 주변 공기의 건조와 화재 피해를 막는 물의 제어 기능을 어느 정도 활용한 셈이다. 드므에 관심을 가지면서 경복궁에 자주 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얻은 몇 개의 사진을 보니 드므의 널찍한 입구를 특별히 만든 것으로 보이는 뚜껑으로 덮어놓았다. 빗물이나 방문객이 버리는 쓰레기로 채워지는 것을 막는 모습이다. 전통적인 것이 기능을 잃으면서 귀찮은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생명을 잃은 박제처럼 전통이 정말로 죽어버린 처연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 그러한 드므에 담긴 전통 지혜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를테면 메마른 도시 녹지 공간에 드므를 몇 개 놓아두었다가 빗물을 받고, 땅이 마를 때 토양을 적셔주는 정도로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적어도 개인 주택의 정원에는 한 두 개씩 설치하도록 장려하는 방안은 없을까? 나아가 공공장소에서도 드므를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요 며칠 전에는 독일에서 빗물을 이용하기 위해 드므와 비슷한 장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전통과 빗물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계획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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