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귀신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근육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예산안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규탄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브라질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275
  • [어린이책꽃이]

    ●자꾸자꾸 모양이 달라지네(팻 허친즈 그림, 보물창고 펴냄) 유아들의 손놀이 필수품인 ‘블록’을 소재로 한 글자없는 그림책.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달라지는 블록쌓기 모양을 통해 형태, 수, 측정 등의 감각을 키울 수 있다.5세까지.8800원.●어처구니 이야기(박연철 글·그림, 비룡소 펴냄) 귀신을 쫓아내려 궁궐지붕 위에 올렸던 작은 조형물의 이름이 ‘어처구니’. 말썽꾸러기 어처구니들로 조용할 날이 없는 하늘나라 이야기. 해학과 상상력이 멋드러지게 손잡은 그림책이다.5세 이상.9000원.●오줌싸개가 정승판서가 되었다네(원동은 글, 홍성찬 그림, 재미마주 펴냄) 돌잔치에서 혼례를 거쳐 늙어죽기까지 인생의 과정을 그림과 함께 되짚어보는 민족생활사 교양서. 민요, 시조, 민담 등 상식을 두루 터득할 수 있는 풍물해설서로 손색없다. 초등생.1만 3000원.●아이와 함께 떠나서 더 행복한 아줌마표 해외여행(김은지 지음, 성하출판 펴냄) 중학교 교사인 지은이가 초등생 딸과의 실제경험을 바탕으로 귀띔해주는 해외여행 노하우. 공항 출발에서부터 여행을 놀이로 삼으라는 제안이 재치있다.1만 3000원.
  • 한자락 바람 치마에 휘감으면

    한자락 바람 치마에 휘감으면

    취재, 글 박혜란 기자 한국 사람처럼 어깻짓하기, 일본 사람처럼 걷기, 중국 사람처럼 미소 짓고 태국 사람처럼 손짓하기, 몽골 사람처럼 뒤돌아보기…. 무용가 백향주(32세)의 몸 안에서 동아시아의 몸짓과 표정과 정신이 충돌하고 조화하고 꽃을 피운다. 관음보살춤, 초립동, 무당춤 등을 완벽하게 재현해 ‘최승희 춤’의 마지막 계승자로 주목받았지만, 그는 스승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최승희는 그때, 저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로 하여금 삶의 반려자로 무용, 그것도 동아시아 무용을 선택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집안의 부모자식, 형제자매의 국적이 다 제각각이지요.” 그의 부모님은 조총련계 재일한국인 2세였다. 그는 재일한국인 3세로 태어났고, 한국 국적을 택했다. 역사, 민족, 국가의 문제는 그에게 3인칭이 아닌 1인칭,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한국춤도 아니고 일본춤도 아니고, 대체 어느 나라 춤이냐고 따지는 이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제 춤이지요.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소통하게 하는 것, 다양한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느껴왔습니다.” 언젠가 그의 손금을 본 이가 ‘굴곡 많은 인생’을 예언한 적이 있다. 예언처럼 유독 많은 위기와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중 세 번의 전환점은 그를 더 높고 먼 곳에 다다르게 했다. 세 번의 황홀한 성장통 “열다섯 살에 북경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아마추어에서 전문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거지요. 그때 전문가의 세계란 것에 무척 충격을 받았어요. 2만 명이 참가하는 콩쿠르란 게 상상이 가나요? 수개월에 걸쳐 심사가 진행되고 끝없는 경합이 벌어지지요. 문자 그대로 배틀이에요. 사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 것 자체가 버거운 나이였죠. 하지만 그때 강한 신념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엔 한민족의 대표로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결심도 대단했지요. 덕분에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따고 외국인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학 최연소 입학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는 열아홉 살에 솔로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두 시간여 동안 한 사람이 여러 얼굴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독무는 이십대 후반에야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독무 공연 준비를 북한에서 했습니다. 최승희 선생의 양아들인 김해춘 선생님께 배웠지요. 난 우리 선생님이 사람인가 귀신인가 했습니다. 연습이 어찌나 혹독했던지 쓰러진 적도 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혀를 깨물고 하라!’ 그러시더군요. 말씀대로 혀를 꽉 깨물고 했더니 너무 아파서 정말 쓰러지지는 않게 되더군요. 그때 저는 아, 명성이란 게 이런 거구나,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노력을 쏟아부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혹독한 훈련 덕분에 그 후 10년을 쉽게 넘어갈 수 있었지요.” 인연이 다하고 태어나는 곳 인생의 세 번째 전환점은 한국과 인연을 맺으며 찾아왔다. 1998년 그는 조총련계 재일교포 무용가로서 민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공연을 가졌다. “누가 부모 인생을 망치면서까지 감히 공연을 고집하겠습니까. 제가 한국 무대에 선다는 것은 부모님이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타국에서 우리말, 글을 지키고자 30년간 노력하셨지만 한순간에 딸을 잘못 가르친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께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2년 전에 돌아가셨지요.” 다정다감한 ‘변종 경상도 싸나이’ 이용권 씨(39세)와 사랑에 빠져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그는 예쁜 딸도 낳았다. 그리고 이제 한 사람의 무용가로서 홀로서기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30년간의 준비를 맺음한 곳이자, 더 넓은 세계로 발돋움하는 새 출발의 거점인 셈이다. 독립을 위한 무대로 그는 비보이브레이크 댄스팀와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과 제가 가진 서로 다른 ‘코드’가 소통한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 기대해요. 함께 연습하며 춤의 새로운 재미를 새삼 발견하고 있어요.” 아시아인 백향주는 그의 스승들이 그에게 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에게 냉정한 충고를 건넨다. “한민족은 머리가 아주 비상합니다. 한국춤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추기 어려운 춤으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현실은 왜 그런지 침체되어 있지요? 저는 그 이유가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든 공유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 따라야 발전한다고 봅니다. 물론 좋은 부분만 이것저것 떼어와서 새로운 걸 조합해내는 건 결코 공유가 아니지요. 상대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배우고자 할 때 진정한 공유가 이루어지는 거지요. 더군다나 예술에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나요? 예술가가 혼자 살고자 하면 다 죽이게 돼요. 그럼 결국 예술가도 죽게 되겠죠.” 월간<샘터>2006.10
  • [씨줄날줄] 사향노루/강석진 수석논설위원

    20여년전 기자 초년병 시절 이야기다. 한약재 시장인 서울 경동시장에서 사기혐의로 몇 사람이 체포됐다. 사기 수법이 기상천외했다. 국산 사향노루를 잡아 대형 냉장고에 놓고서, 비밀리에 원매자를 구하면 배꼽 밑 향낭에서 사향액을 주사기로 뽑아 ‘국산 사향 원액’이라고 속여 팔아온 것이었다. 이들은 범행 후 다시 외국산 사향의 묽은 액을 주사기로 냉장 사향노루의 향낭에 집어 넣었다가 원매자가 나타나면 똑같이 주사기로 뽑아 팔다가 붙잡혔다. 도대체 사향이 뭐기에 그런 기발한 수법까지 동원할까 궁금해 사전을 보니 우황청심환이나 공진단 등 한약에 들어가기도 하고, 최음제로도 쓰이는 비싼 동물성 향료라고 나와 있었다. 공진단이라는 한약이 남성들의 진기를 보한다는 설명도 재미 있었다. 요즘 말로는 만성피로 증후군을 해소하는 데 잘 듣는다는 것이다. 사향노루는 궁노루라고도 하며 가곡 비목에 등장한다.‘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의 궁노루가 사향노루. 예전에는 우리 땅 남단인 전남 해남에도 있을 만큼 널리 서식했지만 지금은 멸종 위기 보호동물이다.1987년 강원 소금강에서 한 마리 잡혔다가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 마지막 소식이었다. 추석 전 환경부가 사향노루 한 마리를 공개했다. 인공 증식과 유전자 확보를 위해 지난해 9월 강원 양구에서 생포한 것이다. 향주머니가 달린 숫놈으로, 잡을 당시 생후 15개월쯤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곧 암놈도 생포해 번식을 꾀하는 한편 멸종에 대비해 유전자를 보존할 계획이라고 한다. 연구기간은 3년. 양구는 2004년에, 비록 주검 상태였지만 야생 여우가 발견돼 환경보호운동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곳이다.‘숲이 깊어야 도깨비가 나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군사보호구역으로 보존돼 온 오지에서 궁노루랑 여우랑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 반갑기만하다. 사향노루가 죽어 향료가 되어서야 기운을 돋우어 주는 게 아니라, 살아 자연의 생명력을 나누어 주는 때가 머지 않아 올 것만 같다. 사할린 근해에서는 학명에 코리아가 들어간 귀신고래 개체 수가 늘어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사향노루 번식 사업이 성공하길 기원한다.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목조각 5000여점 모아 ‘목인박물관’ 설립 김의광 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목조각 5000여점 모아 ‘목인박물관’ 설립 김의광 관장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가마를 타고 간다. 에구메라, 여러 목인(木人)들이 외로울까봐 함께 벗을 하잔다.‘따라와∼’ 창을 들고 호랑이를 탄 남자, 해태 위에 걸터앉은 선비, 물구나무 선 광대, 학을 타고 천도복숭아와 술병을 든 신선, 머리에 뿔이 두개가 나 있는 도깨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들갑이다. 기왕지사, 가는 길에 노래나 몇술 뿌려보자. 자, 이승과 이별하는 최후의 마당이 아닌가.‘이제 가면 언제 오나/허어야 허어야/간다 간다 나는 간다/북망 고개로 나는 간다/서른 서이 상두꾼아/발맞추어 나아가세’ 처량하면서도 차원 높은 해탈의 노래다. 목인(木人), 풀어보면 나뭇조각 인간을 뜻한다. 비록 말이 없지만 웃음과 울음이 있다. 풍자의 여유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주술 및 벽사, 그리고 각종 의례에 사용했다. 죽은 이를 저승길로 무사히 안내하고 극락세계로 모시는 역할도 했다. 무덤의 부장용으로 쓰였던 목용(木俑), 마을의 수호신, 일상 생활에서 각종 민예품으로 사용됐던 흔적들이 뜸뜸이 전해내려온다. 아울러 이들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당시의 생활 풍습과 토속신앙, 복식문화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치로 평가된다. ●목인은 민화와 함께 민중공예문화 대표 특히 상여장식에 표현된 다양한 목인들은 민화와 함께 우리 민중의 공예문화를 대표한다. 하지만 상여소리를 하는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 맥이 끊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잠깐, 여기에서 주목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목인박물관’을 설립한 김의광(57) 관장이다. 강산이 세번 바뀌는 지난 30년 세월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3000여점의 목인과 목조각을 옹골지게 ‘목인석심(木人石心)´으로 수집했다. 조선시대 후기의 상여문화를 알 수 있는 목인을 비롯, 신당(神堂), 절에 있던 목조각 등 귀중한 작품들을 많이 모았고 올 3월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박물관을 열었다. 그랬더니 오늘날 민속학자,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쓰레기통 언저리에 버려졌거나, 그랬음직한 목인들이 일약 스타가 된 셈이다. 그동안 말없이 방치됐던 목인들이 김 관장의 노력에 의해 당시의 생활풍습과 의식문화 등을 알려주는 데 중요한 역할로 떠올랐다. 이쯤되면 김 관장을 가리켜 별난 사람이라기보다는 단절되가는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훌륭한 인물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지난 19일 목인박물관에서 김 관장을 만났다.2층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역시나 애지중지 목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최근에 열린 ‘목인, 세속에서 얻은 성스러움’의 특별전에 대한 마무리 손질작업이기도 했다. 김 관장은 먼저 안에 전시된 여러 목인들을 설명해준다. 전시실에는 300여점의 목인과 상여 앞에 매달렸던 꽃나무 조각 200여점이 벽면에 가득 전시돼 있었다. 지난 세월만큼이나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으나 당시의 생활상을 연상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연꽃, 학, 닭, 기러기, 사당패, 가슴을 드러낸 기생, 봉황탄 어린이 등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조상들의 숨결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그는 “삶을 마감하고 가는 길은 우울하고 어두웠을텐데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준 조상들의 마음이 정말 아름답지 않으냐.”고 하면서 죽음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새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쭉 둘러보노라니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한 줄타기 하는 목인,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붉은 치우천왕, 첩과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는 본처 목인, 아들을 손꼽아 바라는 부부 목인…. ●인도·태국 등 동남아 목조각도 2000여점 모아 그는 “이 박물관 집은 단기 4288년, 흔히 쌍팔년 4월에 지어졌다. 여기 목인들이 있기엔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면서 이들을 불러모으느라 애를 많이 썼다며 웃는다. 특히 이 박물관 1층 지하에는 요즘 보기 힘든 방공호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1970년대초였어요. 외국인 친구네 집에 갔는데 우리나라 전통 민속품이 진열돼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그때부터 취미로 목조각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당시 ㈜태평양에 입사, 근무했던 시절이어서 퇴근 후나 주말 등을 이용해 골동품 가게를 뒤졌다. 주로 인사동이나 청계천 일대였다. 갈 때마다 맘에 드는 목인을 보고 가격이 비싸 만지작거렸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인이 상여장식을 모은다고 하자 ‘귀신이 붙었다.’라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그럴수록 목인은 그에게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다가왔다. 이름없는 장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혼, 보면 볼수록 감동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하나 둘 수집한 것이 3000여점. 최근 2∼3년 사이에는 행동반경을 넓혀 인도, 태국 등의 동남아 목조각 2000여점을 모았다. 당연히 현지에서 발품을 팔았다. “목인 중에서도 상여 목조각에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 그대로 담겨 있어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상여 목인은 주로 조선 후기에 왕성하게 만들어졌지요. 그땐 관을 지키는 사람이 장군이었다가 일제 시대에 와서는 순사로 변합니다.” 김 관장은 “사실 상여문화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습이다.”면서 죽은 자가 현세에 누리는 마지막 호사였고 평민에게는 평소 고관대작이나 탈 수 있는 가마를 죽을 때 타보는 영광(?)도 있었다고 했다. ●올겨울 ‘목인도록´ 제작… 특별전 계획 김 관장은 또 “누군가 그런 것(목인을)들을 모으지 않았다면 쓰레기통 비슷한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목인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함께 살아온 우리 시대의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명분으로 박물관을 열었더니 민속학자 등 주변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보답으로 올 겨울에는 ‘목인도록’도 제작하고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내년 3월 개관 1주년 때에는 그동안 모아온 동남아의 목인들도 전시해볼 계획이다. “우리 박물관은 목인들과의 대화의 장소입니다. 음악과 역사가 공존합니다. 옛날의 목인을 보며 차도 마시는 문화공간이지요.”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 못했지만 60을 바라보는 지금 나이에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 너무 뿌듯하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김 관장은 서울 출신.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75년 설록차를 생산하는 태평양에 입사했다. 이후 태평양 계열사인 장원산업 회장으로 있던 2004년 목인들의 반란(?)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박물관을 설립했다. 그가 박물관과 인연이 된 것은 부친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자유당 시절 상공·교통·내무장관을 지낸 부친(김일환)이 이화여대 이사로 있었던 1999년에 김활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십장생도 병풍’을 기증했다. 조선시대 궁중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병풍은 1972년 프란체스카 여사로부터 선물받아 30년 가까이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것이다. 김 관장은 이때 ‘적재적소’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즉 물건이나 사람이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수집했던 목인들을 모아 박물관 설립을 생각하게 됐다. “공예품이 청자라면 목인은 백자입니다. 또 청자가 귀족의 애장품이라면 목인은 민초의 삶, 애환과 고통 그 자체이지요. 사람에게도 적재적소가 있듯이 목인들도 제자리가 있는 것이지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9년 서울 출생 ▲68년 대광고 졸업 ▲72년 연세대 정외과 졸업 ▲74년 동대학 석사 ▲75년 ㈜태평양 입사 ▲83년 태평양 장업㈜ 전무 ▲92년 태평양 돌핀스야구단 대표이사. 대통령 표창(전통차 계승발전) ▲2002년 장원산업㈜ 회장 ▲06년 3월 목인박물관 관장, 옛돌조각 사랑모임 회장, 사단법인 한국민속박물관회 이사, 서울시박물관협회 이사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언어·예술상징(하)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언어·예술상징(하)

    “임금이 당나라 태종의 고사(古事)를 본받아 즉위 이래의 사초(史草)를 보려고 하니, 대신이 상언하여 옳지 못하다 하고, 대간에서도 또한 상서하여 옳지 아니하다고 하였으므로, 임금이 이에 따랐다.(태조실록,4년)”조선 시대의 격동기였던 조선 초기 실록의 한 부분이지만 정작 실록 속 주인공인 태조는 보지 못한 기록이다. 이번에 소개할 우리 민족 문화상징들인 조선왕조실록, 한글, 풍물, 탈춤, 판소리 등을 돌아볼 때, 우리가 민족문화 내용들을 보다 제대로 안다면 오늘날의 우리 문화 생활을 보다 넓고 깊게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 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기록이다. 이 방대한 역사 기록을 세계에서도 인정하여 유네스코도 1997년 이를 세계기록유산의 하나로 등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사실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은 그 편찬 과정이나 관리 면에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긴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의 사초들에 의해 대부분 이뤄지는데, 사관은 비록 정7∼9품의 하급 관리였지만 항상 궁중에 들어가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는 것을 기록하였으며 그 잘잘못까지 직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뤄진 사초나 실록은 위의 태조 때의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비록 군왕이라 할지라도 볼 수 없었다. 군왕은 ‘국조보감(國朝寶鑑)’ 같은 역사책을 보는 것 정도에 머물러야 했던 것이다. 또한 실록들은 4∼5사고로 여러 질들이 분산 보관되었기에 한두 사고의 멸실에도 실록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록과 관계되는 정신과 지혜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 한글 세계 현존 문자중 가장 과학적 한글은 오늘날 국외에서 더 많이 알아주는 문자다. 현재 세계에는 5000여개의 말들이 있지만, 이 중 100여개만 문자를 가지고 있다. 또 이들 문자들 중 특정한 시기에 과학적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한글뿐이다. 이러한 한글의 과학성과 실용성은 1446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이후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보이는 것으로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도 현재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하여 해마다 각 나라의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일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진(晉)나라의 칠현금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하는데, 예부터 ‘모든 악기들 중의 으뜸(百樂之長)’이라 하였듯, 우리나라의 전통 악기들 중 대표적 악기다. 대금은 우리나라의 전통 관악기들 중 폭넓은 음악 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악기다. 대금과 같이 대(竹)로 만들어, 가로 부는 적(笛)류는 다른 나라들에도 많으나, 우리나라의 대금은 음량이 풍부하고, 취공(吹孔)이 넓어 입술로 소리들을 조절할 수 있으며, 다른 나라의 적(笛)류에는 거의 없는 청공(淸孔)이 있어 거칠면서도 청아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청공은 갈대 속청을 붙여 만든 구멍이다. 풍물은 우리가 흔히 ‘농악’이라고 하는 것이다. 풍물에는 우선 정초 집돌이 때 치는 ‘매구(埋鬼)’와 모심기나 김매기 두레 때 치는 ‘풍장’ 두 가지가 있다. 정초의 매구는 한 해가 오기 전인 섣달 그믐께에 잡귀잡신들을 몰아내는 중국의 나례(儺禮)에서 유래한 것인데, 충렬왕 21년에 이미 민간의 나례를 금했다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부터 이미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두레 때 치는 풍장은 두레가 나면 마을신이기도 한 농신을 농신대에 모셔 가기에 이에 따른 풍악과 두레패들의 오락으로도 활용되는 과정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 중 본격적인 풍물이 이뤄지는 것은 매구를 칠 때다. 정초에 마을의 집집들을 돌다 보름께는 ‘판굿’이라 하여 밤새도록 수준높은 풍물가락들을 치며 노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섣달 그믐 잡귀신 몰아내는 ‘매구’ 탈춤은 각 민족마다 있는 것이고, 각 민족에게 또한 나름의 역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승되는 세계의 탈춤들을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봉산 탈춤, 양주 별산대 놀이, 통영 오광대 놀이 등과 같이 잘 짜여지고 발달된 탈춤들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판소리도 또한 세계적인 고급 성악 예술이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성립된 우리나라의 성악 예술의 하나로 강력한 발성과 고도의 음악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오페라 정도가 이러한 판소리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세계적 예술이다. 그래서 2003년 판소리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만 왜 이런 판소리와 같은 수준높은 성악 예술이 성립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그 당시 다른 나라에는 없는 광대 집단이란 특수 신분 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광대 집단이라면 하나의 신분적 조건으로 광대의 역을 공식적으로 담당한 집단인데, 다음에 보듯 1846년 경기도에만 해도 4만명에 달했고,1894년 갑오경장 때 비로소 ‘창우’ 곧 ‘광대’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들 광대 집단은 신라 진흥왕 때부터 있었던 산대희를 위해 필요한 집단이었다. 산대희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중국 사신이 올 때 행해졌는데, 커다란 산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위와 아래에서 가무백희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조선 시대에는 600명 정도의 광대들이 동원되었듯, 이미 그 이전에도 수백 명의 광대들이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산대희 등을 공식적으로 담당하는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서의 광대 집단이 성립된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송나라 중기에 관청에 소속된 이러한 하나의 특수 집단으로서의 광대 집단은 해방되었다. 중국에서는 민간에서도 광대들이 많았기에, 유사시에는 이들을 동원하면 되었으므로 종래와 같이 관에서 이들 광대 집단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에서의 광대들이 별로 없었기에, 근대 무렵인 1894년까지도 관에서는 이러한 산대희를 하는 광대 집단을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 수많은 광대들이 근대 무렵까지도 있었던 것은 세계 민속 예능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판소리를 비롯하여 앞서 든 풍물, 탈춤 등이 현재 세계 민속예술에 있어 그 수준이 월등히 높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유산 선정 이러한 광대 집단의 사람들로는 경기이남의 세습무 집안 사람들과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대한 광대 집단적 접근은 최근에야 비로소 이뤄지고 있다. 아리랑은 애국가 다음가는 우리 민족의 노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리랑’으로 부르는 노래는 1926년에 만들어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서양 음악식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러면 민요 아리랑과 이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864년 경복궁 중건 때 강원도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벌채한 나무를 뗏목으로 만들어 한강을 타고 내려와 공사장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오늘날 ‘정선 아리랑’이라고 하는 강원도 아리랑을 불렀다. 이에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고종이 아리랑을 즐겼다 하듯, 서울 지역에서는 이 강원도 아리랑을 경토리로 선율을 조금 바꿔 부른 이른바 ‘본조 아리랑’을 성립시켰다. 이후 이러한 본조 아리랑이 지방에도 퍼져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등이 성립되었다. 당시의 이러한 아리랑 문화와 관계해 나운규는 자신의 영화 제목을 ‘아리랑’이라 했고, 그 주제곡 ‘아리랑’도 크게 성공했던 것이다. 이번에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00대 민족 문화 상징은 사실상 문화관광부가 정리하고 있는 민족 문화 상징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민족 문화 상징이 어떻게 100개에만 머물겠는가? 또 사실 많을수록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문화적 차원에서 또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과정이었다. 손태도 문화재 전문위원
  • [이현세 만화경] 하늘에서 외치다

    [이현세 만화경] 하늘에서 외치다

    비행기는 빠르다. 빠르기도 하지만 막힐 일이 없어서 제 시간에 도착한다. 그래서 바쁘거나 명절이면 사람들은 기차나 자동차 대신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비행기 사고는 터졌다 하면 제로게임이 된다. 그래서 비행기가 하늘에서 헤매고 다니면 정말 무섭다. 내가 아는 유명인사 한 분은 평생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는다. 배는 깊은 곳으로 임할까봐 두렵고, 비행기는 낮은 곳으로 임할까 무서워하는 것인데, 당연히 해외여행은커녕 그 흔한 제주도 여행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다. 이 분은 장거리 자동차 여행도 노생큐다. 부산 출장을 갈 때면 이 분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시고 운전기사는 혼자 날듯이 고속도로를 달려서 부산역에서 이 분을 모셔야 한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끔은 이분의 마음이 정말 이해될 때가 있다. 얼마 전에 경주에 갈 일이 있었다. 일요일 당일 오전 급한 약속. 금요일에 일요일 당일 8시25분 K항공 김포발 울산도착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런데 금요일 밤에 시작된 비는 월요일 아침까지 전국을 공습할 것이라고 방송 3사 일기예보는 호들갑을 떨며 겁을 팍팍 주고 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아파트 밖을 보니 과연 가는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서 KTX를 탈까 하고 공항에 예약취소 전화를 하니 비행기는 걱정 없이 잘만 뜨고 내린다니 할 수 없다.6시30분.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7시20분. 공항도착. 택시요금은 2만 8000원. 가볍게 식사를 하고 다시 확인했지만 비행기의 출발과 도착은 이상 무! 모처럼 만나는 경주 친구는 새벽잠도 마다하고 1시간이나 걸리는 울산공항까지 마중을 나온다 하니 모든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8시30분. 비행기는 하늘을 차고 올랐다. 안전벨트 매고 커피 한잔 얻어먹고 설친 잠에 몇 번 기지개를 펴니 15분후 울산공항도착이라는 기내방송이 있었다. 역시 비행기는 빠르다. 창밖을 보니 맑은 하늘 아래 짙은 구름이 두꺼운 솜이불처럼 깔려있다. 드디어 비행기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좋지 않다. 이상기류 탓인지 계단에서 헛발 딛는 곰처럼 비행기가 뚝뚝 뛰어내리더니 곧 기체가 와드드드… 정신없이 흔들린다. 창밖을 보니 쏟아지는 비와 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하늘로 살기 위해 숨 가쁘게 온 몸을 경련하며 솟구친 비행기는 상공을 허우적대며 몇 바퀴 돌더니 결국 기장의 뚱한 기내방송이 나왔다. 본 비행기는 울산공항의 갑작스러운 이상기류와 폭우로 부득불 대체 공항인 김해 공항으로 향하고 있으니 승객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승객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친절한 해설과 함께. 갑작스러운 이상기류라니? 금요일부터 일기예보를 했는데.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니? 누가 강제로 뜨라고 했나. 눈을 감고 겨우겨우 열을 식히고 있는데 다시 기체가 투둑툭 떨어지더니 “와드드드… 덜컹 덜컹!” 시골 소달구지처럼 기체가 인정사정없이 흔들리고 빨간 비상등이 급하게 번쩍이며 죽는다고 울부짖는다. 어이쿠, 결국 예서 죽는구나! 급히 창밖을 보니 역시 폭우 속에 구름인지 안개인지 비행기 날개를 허연 귀신들이 사정없이 휘감는다. 승객들은 완전히 쫄아서 하얗게 질린 얼굴에 누구하나 말이 없다. 이때 구원처럼 다시 기장의 기내방송이다.“김해 공항 역시 착륙이 불가능해서 이 비행기는 다시 서울 김포 공항으로 갑니다. 아울러 이 조치는 오로지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미안한 기색은 별로 없다. K항공도 여기까지 기름값 날린 것 아니냔 말이다. 새벽 6시30분에 집을 나와서 구만리 하늘을 헤매다 다시 김포에 도착하니 시간은 10시30분이 넘었다. 퉁퉁 불어서 비행기문을 나서는데 스튜디어스는 안녕히 가시란다. 미안합니다라고 무릎을 꿇어도 시원찮을 판에… 죽다 살아난 승객들은 완전히 기가 죽어서 가방 챙겨 내리기 바쁘다.15번 매표창구였던가? 환불하러 가니 이번엔 잔돈이 없으니 1번에서 10번 창구에 가서 바꾸란다. 이번엔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은 덧붙였다.10번 창구까지 걸어가는 길은 10리나 되었다. 다시 집까지 돌아오는데 또 택시비 2만 9000원. 부랴부랴 내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거니 오후 1시였다. 미친놈처럼 차를 몰아 경주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약간 넘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항공기 회사는 무법자다. 그날 K항공은 이렇게 얘기해 주었어야 정상이다. 타기 전 공항에서는 “ 오늘 악천후가 예상되어 비행기가 결항될 수도 있으니 손님께서는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페널티는 없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일기예보상 비행기가 많이 흔들릴 수도 있으니 노약자와 심약자는 탑승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라고 얘기해야 하고 또 회항했을 때는 “저희 불찰로 기내에서 많은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고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지 못해서 참으로 더욱더 죄송합니다.” 정도는 해야 한다. 그리고 날아간 시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고 최소한 왕복 택시비는 지불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앞으로 비바람 일기예보가 있으면 가능한 한 비행기를 타지 않을 셈이다. 안개 낀 날이나 눈보라치는 날에도 가능하면 기차를 탈 생각이다. 그러나 제주도를 갈 때는 어떡하나 걱정이다. 배는 괜찮을까요, 여러분. 해외를 갈 때면 또 어떡하나. 혹시 나도 이것저것 다 피하다 보면 그 유명 인사처럼 되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이다. 만화가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영화 ‘괴물’ 제작사 ‘청어람’ 최용배 대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영화 ‘괴물’ 제작사 ‘청어람’ 최용배 대표

    골뱅이? 아니 망둥이일걸? 영화 ‘괴물’을 놓고 네티즌들이 설전을 벌인다. 제작사측은 양서류와 파충류의 중간단계로 보면 된다고 일축한다. 진짜 흥미를 끄는 네티즌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즉 ‘괴물’이 해외에서 리메이크될 경우 드림팀은 어떻게 구성될까. 그랬더니 강두(송강호)의 역할에는 톰 크루즈가 1위였다. 이어 희봉(변희봉)역에는 ‘반지의 제왕’의 이안 매컬린, 남일(박해일)역에는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 남주(배두나)역에는 ‘킬빌’의 우마 서먼, 현서(고아성) 역에는 ‘우주전쟁’의 다코타 패닝이 뽑혔다. 생각만 해도 가히 환상적이다. ●할리우드 리메이크땐 강두役에 톰 크루즈 아무튼 한강에서 잉태된 ‘괴물’은 이제 바다를 향한다. 이미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어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무섭게 돌진할 태세다. 지난 2일 일본에서 개봉돼 첫주 박스오피스 7위를 마크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태국과 싱가포르에서는 지난 7일 개봉됐다. 오는 14일에는 홍콩,15일에는 타이완, 그리고 10월과 11월에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개봉될 예정이다. 내년 2월에는 미국개봉이 약속돼 있다. 특히 미국 메이저 제작사들이 리메이크 판권에 대한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조만간 이와 관련된 계약을 맺게 된다. ‘괴물’은 이래저래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영화 개봉 이후 8월 31일까지 이마트에서는 골뱅이 통조림 판매량이 작년 동기보다 56.1%나 늘었다. 주요 촬영지인 한강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다. ‘괴물’은 흥행세가 계속 이어져 추석시즌까지 상영될 예정이다. 그야말로 1500만,2000만 관객까지 돌파할지 초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시대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나서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다름아닌 ‘괴물’ 제작자 청어람 대표 최용배(44)씨. 토론토영화제에 참석하던 날인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어람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 대표는 토론토영화제 ‘미드나잇 섹션’에 초청을 받아 봉준호 감독과 동행,14일에 귀국할 예정이다. ●토론토영화제 초청받아 봉준호 감독과 동행 먼저 미국 리메이크 얘기가 나왔다.“토론토 현지에서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 관계자들과의 미팅이 약속돼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계약금액과 관련해서는 “보통 50만∼200만달러 사이에서 정해진다.”고 대답했다.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 제작사 관계자들도 만나기로 돼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속편 제작여부를 묻자 “대개 2편이 제작되면 1편보다 못하다는 평을 자주 듣게 된다.”면서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제작하려면 단순하게 해보자가 아니라 1편보다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영화 한편을 만들려면 대개 3년정도 걸린다.”면서 당장은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에 정열을 쏟을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우선 내년 1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낙랑클럽’ 제작이다. 이 영화는 한때 한국의 마타하리로 화제가 됐던 여간첩 김수임을 소재로 했다.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을 무대로 이강국과의 비극적인 로맨스를 다뤘다. 감독은 ‘영원한 제국’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만들었던 박종원씨가 맡았다. 그 다음으로는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용서받지 못한자’의 윤종빈 감독 등과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괴물’의 봉준호 감독과의 합작품에 대해서는 “봉 감독 또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떤 식으로 구체화될지 의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상 중인 것과 합하면 10여편(준비작)은 된단다. 아울러 10월초부터 ‘괴물’이 만화로 변신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연재된다고 했다.“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 이라면서 반응이 좋을 경우 ‘괴물’ 2탄 제작을 검토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만화가는 ‘귀신’으로 잘 알려진 석정현씨. 여기에는 세 명의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또한 괴물도 여러 마리 출현한다고 귀띔했다. 영화에는 왜 괴물이 한 마리만 나오느냐고 하자 “그런 의견들이 있었지만 감독이 그냥 가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괴물’로 얼마 벌었을까.“딱히 얼마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웃어넘긴다. 다만 초기 제작비가 150억원 들어갔으며 투자단계에서 일본과 320만달러의 수출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봉준호, 송강호, 박해일, 변희봉 등 실력파들이 포진해 있어 투자하려다가 괴물이 등장한다니까 망설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했다. “제작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컴퓨터그래픽(CG)이었습니다. 미국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네트워크를 총동원했지요. 당초 CG 제작비용보다 20만달러가 더 추가됐습니다. 솔직히 CG작업이 완성될 때까지 걱정과 불안이 앞서더군요. 투자가들에게 안심을 시키는 것도 그랬고요. 봉 감독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미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CG완성도는 99%가 아닌 100% 이상이어야 했지요.”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즈음, 봉 감독과 점심을 같이하면서 “서로 의기투합했던 작업이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됐다.”며 격려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야 비로소 성공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봉 감독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질문에 “한국 최고의 감독이다. 다른 감독과 경험하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고 칭찬했다. ●‘완벽형´ 봉감독 “한국 최고” 봉 감독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시네마서비스 배급담당 이사로 재직했을 때 ‘플란다스의 개’를 제작하면서 봉 감독의 열정에 매료됐다.”면서 나중에 제작사를 차린다면 봉 감독과 꼭 한번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봉 감독은 모든 일을 철저히 추구하는 완벽형이라고 부연했다. 최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나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했다. 영화 제작에 뜻을 품고 다시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했다. 고교때 국어선생님한테 영화얘기를 자주 들으며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시력이 워낙 안좋아 군면제를 받은 그는 곧장 조감독으로 영화촬영 현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감독보다는 제작자가 적격이라고 판단한 그는 94년 (주)대우 영화사업부 제작투자담당으로 입사했다. 이어 97년 시네마서비스 투자·배급 이사로 자리를 옮겨 경험을 쌓은 뒤 2001년 지금의 청어람을 설립했다.‘청출어람’에서 회사이름을 따왔으며 ‘늘 새로운 영화를 만들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부인 역시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최 대표가 어느날 영화 워크숍 강의를 나갔다가 수강생인 부인을 만났다. 그는 “(부인은)취미보다 높은 수준이며 주위에서 항상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라며 활짝 웃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3년 서울 출생 ▲82년 신일고 졸업 ▲86년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89년 서울예대 영화과 졸업 ▲89∼94년 정지영, 신승수 감독 연출부 ▲94∼97년 (주)대우영화사업부 제작투자담당 ▲97∼2001년 시네마서비스 투자·배급이사 ▲01년 청어람 설립, 대표이사 ●주요 작품 효자동이발사, 작업의 정석, 흡혈형사 나도열, 괴물 등
  • [주말탐방] 국세청 기술연구소 짝퉁양주 분석팀

    [주말탐방] 국세청 기술연구소 짝퉁양주 분석팀

    “친구들이 근무시간에도 술을 마시냐고 물어보는데 실험 대상 술에는 일절 입도 안대요.” 국세청 기술연구소 ‘가짜양주 전담 분석팀’에 근무하는 이창수(46) 김용준(42) 문선희(31·여) 설관수(29) 세무연구관은 가짜 양주를 판독하는 ‘판관 포청천’들이다. ●가짜양주 발본색원, 우리 손에 지난 2000년부터 슈퍼프리미엄급 위스키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가짜양주를 제조해 유통시키거나 유흥주점에서 취객을 상대로 가짜양주를 판매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국세청 기술연구소는 2004년부터 전담분석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세무연구관은 국내·외 양주 분석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은 물론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가짜양주를 판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난 8월말까지 가짜양주로 의심되는 270여건의 신고건수 중 27건을 가짜양주로 판별해 냈다. 가짜 술을 귀신같이 가려내는 이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당(酒黨)’일 것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실제 술 실력은 평균 소주 1병 정도.‘홍일점’인 문 연구관은 소주 3잔 정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될 정도라고 한다. 술 연구가 직업이다 보니 술에 얽힌 일화들도 많다. 이 연구관은 “친구나 친척들이 연구소에서 술에 관한 연구를 한다면 무척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면서 “외부 사람들이 연구소를 방문할 때마다 술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낮에는 양주, 밤에는 소주 가짜 양주 판별에 베테랑인 김 연구관은 연구소 문을 나서면 소주 애호가로 변신한다. 그는 “양주가 워낙 비싸서 내 돈내고 마시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낮에는 양주와 씨름하지만 저녁에는 소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며 웃는다. 대학에서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연구소에 지원했다는 문 연구관은 “처음에는 하루종일 술을 다룬다는게 낯설었지만 이제는 술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소개했다. 연구원들은 잘못 알고 있는 술 지식도 바로 잡았다. 설 연구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음한 이튿날 머리가 띵하고 아프면 가짜 양주를 마신 것으로 의심한다.”면서 “실제로 가짜양주는 현재 유통량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가짜 술을 마셨다기보다는 그날의 몸 컨디션에 따라 심한 두통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 연구원은 알코올이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생각도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만의 원인은 과식과 운동 부족”이라면서 “알코올 자체로는 체내에 축적성이 없지만 음주를 하면서 음식을 많이 먹게 되고, 알코올과 음식물로부터 신체에 필요 이상으로 칼로리를 공급하기 때문에 살이 찌는데 간접 원인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2004년부터 가짜양주 신고제가 시행된 뒤 신고에 얽힌 웃지 못할 해프닝도 종종 생긴다. 올해초 한 50대 남성이 외국에서 마시던 로열 살루트와 밸런타인 30년산의 맛과 국내 한 업소에서 판매되던 똑같은 브랜드의 양주 맛이 다르다며 가짜 양주라고 신고해 왔다. 연구원들은 분석 결과 국내 업소에서 판매한 양주도 진품임을 확인해 주자 연구원들이 제시한 분석데이터를 못 믿겠다며 항의하는 소동도 있었다. ●32명의 연구원, 술의 안전관리와 세원관리 맡아 기술연구소는 가짜 술 판독은 물론 술의 품질관리를 비롯해 안전관리, 세원관리를 맡고 있다. 총 32명의 연구원들이 근무하며 전국 1300여곳에 있는 술 제조 공장의 품질관리와 영세 취약업체에 대한 제조 기술도 지도한다. 한국전쟁 이후 제조된 3000여점의 각종 술을 보관하고 있고 주류 관련 특허만 해도 32건을 보유중이다. 이에 따라 연구소에는 주량에 상관없이 술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지난 75년부터 31년째 재직중인 조성오 총무과장은 연구소의 산 증인. 그는 주류 전문잡지에 술 관련 글을 연재할 정도로 이 분야에는 정통하다. 김 과장은 “최근에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창고에서 정교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가짜양주를 제조하는 등 갈수록 수법이 지능화되는 추세”라면서 “고객이 직접 캡실을 제거하고 캡을 열어 냄새를 맡아 정품과 비교해 보는 것이 위조주를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가짜양주 신고포상금은 가짜양주 제조사에 대한 신고는 1000만원, 가짜양주 중간 유통업자에 대한 신고는 500만원, 가짜양주 판매 유흥업소에 대한 신고는 100만원이다. 신고 접수처는 국세청 홈페이지(www.nts.go.kr)의 소비자감시고발센터나 지방국세청 및 세무서 신고 코너에서 접수한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다큐멘터리 가을 스크린 점령

    다큐멘터리 가을 스크린 점령

    흥행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영화장르가 다큐멘터리이다. 감각을 자극하고 은유로 에두르는 보편적 작법을 거부하는 다큐영화는 그러나 올 가을엔 전례없이 풍성하다.9·11 테러를 그린 ‘플라이트 93’의 8일 개봉을 필두로 국내외 화제의 다큐들이 잇따라 관객을 찾는다.‘괴물’의 독주에 기가 꺾인 극장가 상황을 감안한다면 개봉 자체부터 의미있는 작품들이다. #사이에서(7일 개봉) 발버둥을 쳐도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개척할 수 없는 이들의 숙명이 처연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다큐멘터리. 국내외 각종 페스티벌에서 굿과 공연예술의 접목을 꾀해온 대무(大巫) 이해경을 중심으로 신(神)의 선택을 받은 대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엮인다. 흔히 ‘무당’이라 불리는 이들의 사연은 기실 말초적 흥미를 자극할 소지가 적지 않다. 다큐멘터리 채널(Q채널)에서 오랫동안 다큐물을 연출했던 이창재 감독의 이번 작품에는 신과 인간 사이의 불가해한 소통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애환이 시종 담백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용해됐다.30년간 시름시름 무병을 앓다가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신내림을 받고 편안해지는 50대 여인, 귀신의 장난으로 학교를 다니지도 못하고 실명한 8세 사내아이, 신내림을 거부한 어머니의 대물림으로 무당의 숙명을 타고난 28세 미혼녀. 세 사람의 사연을 조미료 없이 진지한 시선으로 담아낸 화면은 범접못할 존재론적 의미와 굿 제례 자체의 미학적 가치, 괄호 밖의 삶에 던져진 인간을 향한 이해와 깊은 연민으로 충만하다. CGV용산,CGV인디영화관(강변, 상암, 인천, 부산 서면)에서 상영.15세 이상 관람가.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14일 개봉)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은 난감하고 불편하다.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의 환경운동 강연을 옮긴 스크린을 마주하는 1시간 36분은 그래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게 께름칙한 시간일지도 모른다.2000년 대선 실패 이후 정치활동을 접고 환경운동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한 앨 고어가 직접 제작한 ‘슬라이드 쇼’라는 점에 일단 주목할 만하다. 지구온난화와 그 심각성을 위트와 재치로 경고하는 전직 미국 부통령의 개인적 역량 또한 주목할 수밖에 없는 환경다큐멘터리. 인류의 변화된 소비행태가 야기한 이산화탄소의 증가, 이로 인해 북극 빙하가 10년을 주기로 9%씩 녹아내리고 있다는 등의 ‘영상 증언’이 고어의 육성 강연으로 이어진다. 지구온난화를 경고한 학술지의 논문들과 통계자료를 일일이 제시하는 고어의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을 만큼 과학적 설득력이 빛난다. 전체 관람가.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14일 개봉) 세계 최고의 음악축제 글래스톤베리의 35년 역사를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다. 영국 남서부 서머셋의 글래스톤베리는 자유와 해방의 중심이자 유토피아다.1970년 마이클 이비스가 1파운드로 주말내내 팝과 포크를 즐길 수 있도록 자신의 농장을 개방했던 축제의 시작부터 이후 사회, 문화, 세계 정세에 대항하고 변화해온 글래스톤베리의 모든 것을 담았다.2000년부터 축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한 줄리안 템플 감독은 글래스톤베리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으로, 이 축제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업성에 놀아나지 않고 처음 그때의 소박하고 순수한 정신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핑크 플로이드, 데이빗 보위, 스티븐 패트릭 모리시, 라디오헤드, 비요크 등의 공연실황이나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다큐. 서울 압구정 스폰지하우스 개봉.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 최여경기자 sjh@seoul.co.kr
  • 용인 에버랜드 ‘해피 핼러윈’ 축제

    용인 에버랜드 ‘해피 핼러윈’ 축제

    한낮의 햇볕은 아직 따갑지만 용인 에버랜드에선 벌써 가을이 시작됐다. 개장 30주년을 맞아 8일부터 가을을 알리는 ‘해피 핼러윈’축제가 열린다. 또한 이번 축제에 맞춰 ‘가고일의 매직 배틀’이란 새로운 개념의 놀이시설도 선보인다. 미리 느껴보는 가을 속으로 떠나보자.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새로운 마법의 주문이 에버랜드를 가득 메운다.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예쁜 옷의 도우미가 양손을 흔들며 재미있는 주문을 외운다.‘호리 호리 호로롱 팡팡’ 이번 축제에 새로 등장한 마법사의 주문이다. 까만 망토와 고깔 모자를 눌러 쓴 마법사가 어린 아이들 머리에 손을 대고 ‘호리 호리 ’주문을 왼다. 갑자기 머리 위로 색종이가 날리고 커다란 호박이 나온다. 신기한 호박의 세계로 빠져들며 어른과 아이들 모두 “호리 호리 호로롱 팡팡!!”을 외친다. # 귀여운 호박 귀신과 함께 하는 핼러윈 원래 핼러윈 축제는 10월의 마지막날이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도깨비로 분장을 하고 이웃집으로 과자나 사탕을 얻으러 돌아다닌다. 마당에는 악령을 쫓는 의미로 조각한 호박 안에 초를 켜놓는 그런 날이다. 에버랜드에서는 이런 핼러윈을 주제로 가을 축제를 연다. 정문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높이 2.5m 크기의 대형 호박.“우∼와 아빠 정말 큰 호박이야.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도 있어.”라고 하며 아이들이 마냥 놀란다. 사진도 찍고 만져도 보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또 ‘포시즌스 가든’에는 호박 50개를 이용한 생호박 화단,23개의 핼러윈 조형물 등 넉넉한 가을을 상징하는 호박이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모양으로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파란, 주황, 노란색 등 여러 색상의 레이저빔을 이용해 바닥에 유령 캐릭터와 핼러윈 호박 문양을 비추는 ‘고보 라이트’ 주변에는 항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 신나는 핼러윈 파티 핼러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해피 핼러윈 파티’퍼레이드. 호박요정, 파이프오르간, 드라큘라 성, 공동묘지 비석 등 4개의 재미있는 모양으로 변신한 대형 플로트 카(퍼레이드 차량)와 드라큘라, 배트맨, 백설공주, 그리고 호박으로 분장한 연기자 등 총 58명의 공연단이 400m 길이의 줄을 지어 나타나는 순간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어지는 신나는 음악과 춤추는 호박 요정들.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며 즐기는 가을밤은 그야말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잡는다. 또 6대의 에어 샷 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만개의 스펀지 볼. 흡사 형형색색의 눈꽃이 뿌려지는 듯 파란 하늘을 수놓은 장면으로 신나는 파티는 막을 내린다. 이밖에 기차놀이를 하는 9인조 ‘마법사 밴드’, 아이들의 동요를 연주하는 귀여운 호박 캐릭터의 ‘핼러윈 밴드’가 축제의 분위기를 돋운다. 아울러 아이들과 직접 춤도 추고 사진도 찍는 ‘핼러윈 댄스 파티’, 드라큘라, 피에로들이 거리에서 마임공연 등을 펼쳐 놀이동산 전체가 흥겨운 파티장으로 변신한다.(031)320-5000,www.everland.com
  • [9·11테러 5주기 끝나지 않은 악몽] (1) 상처 여전한 뉴욕

    쌍둥이 빌딩 대신 휑한 하늘… 이정표 잃은 뉴욕 사람들 간혹 길을 헤맨다… 그라운드 제로 현장엔 프리덤타워가 들어선다지만… 한쪽선 아직도 유해를 찾으려는 가족들… 죽음의 냄새… 월스트리트, 그 풍요에 머물던 이들 하나 둘 떠나고 주택용 빌딩으로 소리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인가.3000여명이 불과 2∼3시간의 테러 공격으로 무참히 스러진 9·11 이후 5년이 흘렀지만 테러 종식을 명분으로 내건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답답하기만 하고 유럽과 중동에서의 테러 위협도 여전하다. 근본적으로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9·11 이후 5년을 4회에 걸쳐 살펴본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뉴욕 맨해튼의 소호 지하철 역을 빠져나온 패트리샤 켈리는 오늘도 무심코 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난 2000년 콜로라도주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의 마케팅 회사에 취직하면서 맨해튼으로 이주해온 켈리. 그녀는 처음 맨해튼에 정착할 때부터 남쪽 다운타운에 높이 솟아오른 세계무역센터(WTC)를 이정표로 삼았다. 맨해튼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WTC 위치만 확인하면 그녀가 있는 지점의 동서남북이 명확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9월11일 알 카에다가 조종한 뉴욕 테러가 발생하면서 켈리는 이정표를 잃게 됐다.5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곳 지리도 손금처럼 익숙해졌지만 켈리는 지금도 길을 걷다가 습관처럼 남쪽을 돌아본다. 그러나 WTC가 서있던 7번가 쪽에는 높다란 쌍둥이 빌딩 대신 휑한 하늘만 보인다. 그럴 때마다 팔·다리 하나가 없거나, 이가 하나 빠져버린 느낌이 든다고 켈리는 말했다. 그날의 충격과 상처는 뉴요커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이슬람 저항세력인 알 카에다의 테러에 의해 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선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속살을 드러내듯 땅이 파헤쳐진 현장 모습은 5년 전의 생채기가 여전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인들이 ‘그라운드 제로’라 부르는 이 현장에는 새로운 빌딩 ‘프리덤 타워’를 세우기 위한 기초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장 바로 옆에 위치한 지하철역 ‘패스 스테이션’으로 들어가면 공사 현장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땅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세워졌고 각종 장비를 실은 트럭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공사 현장은 활기가 없다. 아직 대부분의 공사가 20여m 지하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에서의 기반 공사 작업은 새벽 1시에 시작돼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하루 빨리 붕괴된 WTC의 상흔을 없애고 프리덤 타워를 올리기 위해 공사를 서두르는 것이다.77층으로 설계된 프리덤 타워 건설에는 20억달러(약 2조원)가 소요된다. 프리덤 타워 주변에는 9·11기념공원과 공연장, 프리덤 센터 등이 함께 들어선다. 공사 현장의 감독관인 브라이언 라이언. 건설회사 중견 간부였던 그는 9·11 당시 뉴욕의 소방관이었던 동생 마이클을 잃었다. WTC 남쪽 빌딩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던 마이클은 건물이 붕괴되면서 실종됐다. 시신마저 끝내 찾을 수 없었고 그가 쓰던 장비만이 형에게로 돌아왔다. 브라이언은 그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라운드 제로에서 동생의 유해 찾기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결국 프리덤 타워 건설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브라이언은 “동생을 묻은 이곳을 재건하기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이따금 희생자 유해 일부나 유물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센터가 자리잡았던 월스트리트는 9·11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는 금융사와 금융인들이 늘고 있다. 근처의 업무용 빌딩들은 주택으로 변신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떠나는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임대료 수입도 줄어 주거용으로 구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이들조차 이 지역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뭔가 ‘죽음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에서다. 9·11은 미국인들이 개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사진기자였던 데이비드 핸드처는 9·11때 납치된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충돌하는 장면을 가장 생생하게 사진에 담은 언론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비행기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아비규환을 현장에서 카메라에 담다가 빌딩이 붕괴될 때 매몰됐고 소방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핸드처는 그날 이후 신문사를 위해 사건 현장의 사진을 찍는 일을 접었다. 사진은 ‘먹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할 때만 촬영한다. 그것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진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핸드처는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사고 이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에 살고 있거나, 그날의 사건을 직접 경험했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침대 밑에 귀신들을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다.”면서 “이따금 그 귀신들이 침대를 뛰쳐나와 우리를 조롱하고 물어뜯는다.”고 말했다. 핸드처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귀신들과 놀아줘야 하며 이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데는 다시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운트 시나이 의학센터가 2002년 7월부터 2004년 4월까지 WTC 현장 정리작업에 참여한 근로자와 자원봉사자 9500명를 조사한 결과, 이 중 70% 정도가 9·11 이후 호홉기 질환을 갖거나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뉴욕 타임스가 6일 전했다. 더욱 무섭고 슬픈 것은 9·11 테러로 인한 상처가 어린이들에게도 깊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현장을 목격했거나 TV를 시청했던 어린이들이 미술 시간에 비행기가 건물로 돌진, 충돌하거나 오사마 빈 라덴이 WTC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모습을 그린다고 한다. 심리학자인 로빈 굿맨은 “집짓기 장난감인 레고로 높은 건물을 만든 다음에 갑자기 충격을 줘서 무너뜨리는 장난을 하는 아이도 있다.”면서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어린이는 트라우마(정신적인 외상)가 남아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현상금 239억원 걸린 빈 라덴 못잡나 안잡나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부터 그의 체포에 나섰지만 못 잡는지, 안 잡는지 의문만 쌓이고 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숨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 CNN은 파키스탄 북부 산악지대 치트랄이 유력하다고 지난달 23일 보도했다.2003년 공개된 비디오에서 그의 뒤에 비친 나무가 이 지역 고유종이라는 것이다. 어디 있는지 안다고 곧바로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형이 험준한 데다 정보도 완벽히 차단돼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철저히 인편으로만 소통한다. 미 제10 산악사단 조지 윌리엄스 하사관은 “산 속에서 마치 유령을 쫓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해체된 미 중앙정보국(CIA) 빈 라덴 체포 전담반 책임자였던 마이클 셰우어는 “그가 외부와 접촉하는 망이 있으며 원하면 갈 수 있는 장소도 있다.”고 말했다. 은신처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이슬람 영웅’을 신고할 사람도 없다. 자칫 죽음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현상금 2500만달러(약 239억원)는 그림의 떡이다. 그를 잡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목전에서 놓쳤다. 지난 1월 알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폭격으로 숨졌을 때 그도 현장에서 불과 몇㎞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2001년에도 아프간 토라보라산에서 붙잡힐 뻔했다. 동영상이 공개된 것은 2004년 10월이 마지막이었지만 녹음 테이프는 올해만 벌써 5차례나 나왔다. 물론 그가 더이상 테러를 지휘할 수 없을 만큼 고립돼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메시지만으로도 위력을 발휘하는 ‘카에디즘의 교주’는 이제 잡히더라도 후폭풍이 우려된다. 때문에 미국이 잡을 의지가 있느냐는 의문이 뒤따른다. 사담 후세인만 잡으면 끝날 것 같던 이라크 상황을 볼 때 그의 체포보다는 지역 안정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현재 아프간 미군 2만명 중 절반이 7만여㎞의 국경지대에서 탈레반 잔당을 쫓기에도 힘이 달린다. 파키스탄도 체념한 듯하다. 미 ABC 방송과 5일(현지시간) 인터뷰한 한 관리는 “그가 만약 파키스탄에 있다 해도 말썽만 일으키지 않으면 굳이 잡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키스탄군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고 북부 와지리스탄에서 철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한나라 “與 물타기”

    한나라당은 5일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해 여권의 ‘물타기’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고 적극 차단에 나섰다. 여권이 “한나라당도 로비 대상”임을 부각시키며 ‘공동책임론’으로 몰아가려고 한다는 판단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게임관련 협회의 지원으로 미국 게임박람회에 참석한 당 소속 김재홍 의원과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에 대한 윤리심사 요구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했다.한나라당도 게임 관련업체 후원을 받아 보좌관을 보낸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과, 당시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이던 같은 당 이미경 의원을 윤리특위에 제소키로 했다. 이와 관련,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물귀신작전”이라며 강력 성토했다. 최구식 의원은 “지난해 4월 임시국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면서 “그 해 6월에는 한나라당 문광위 전원을 포함한 35명이 감사 청구안을 냈지만 여당의 반대로 상정이 안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속 의원들이 사행성 게임 근절을 위해 뛴 사례들을 소개했다. 첫째 그 해 9월에는 이재오 의원이 새벽 2시에 게임장을 방문해 카메라 촬영까지 해서 공개했다는 것이다. 둘째 정종복 의원은 상품권 구멍 뚫기 등 방지책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 문광위원들의 지속적인 경고를 끝까지 무시하고 이제 와서 국회 탓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마치 간 큰 도둑이 짖는 개를 보면서 계속 도둑질을 했다고 고치는 것이 옳다.”며 ‘진상규명 청문회’를 요구했다. 정병국 의원은 김재홍·박형준 의원의 게임업체 지원 출장 논란과 관련,“정부 여당이 궁지에 몰리니까 물타기하는 작업을 파렴치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당시 이미경 위원장의 사인까지 한 협조 공문이 회람이 됐다.”면서 “위원회측에서 ‘협회측이 요구한 인원이 3명이므로, 자리가 없다. 가려면 자비로 가라.’는 요구가 있어, 저는 자비로라도 가겠다고 신청했다.”고 말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문학인생 40년을 되돌아보다

    문학인생 40년을 되돌아보다

    “명색 서양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성경 한번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점은 나를 황당하게 하였다. 독일문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서양문학은 기독교와의 싸움, 그 토착화, 그로부터의 이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막상 기독교를 몰랐으니 모든 연구는 불구의 연구였던 것이다. 자연히 나는 기독교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비로소 독일문학은 그 원죄라고 할 수 있는 낭만주의와 더불어 제 본래의 얼굴을 내게 보여 주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65) 숙명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정년퇴임을 맞아 펴낸 에세이집 ‘인간을 향하여 인간을 넘어서’(문이당)에서 평생 독문학도로, 문학평론가로 보낸 자신의 학자적 삶을 이렇게 되돌아본다. 김 교수는 독문학자이기에 앞서 한국문학 평론가로 문명을 날려 왔다.“독일문학은 옛것, 한국문학은 새것에 관한 것으로 나의 호기심이나 지식은 이원화돼 있다.”는 게 그의 말. 문학평론가로서 그는 무엇보다 사회와 문화의 구심점으로서의 문학의 역할에 주목한다.“문학은 다른 예술장르와 통합·혼합되는 퓨전의 한 종(種) 이상의 것이다.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문화의 한 분야로서의 문학이 아닌, 사회와 문화의 구심으로 작용할 문학의 능력을 믿고 존중해 나가야 할 것이다.”(‘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통합’ 중에서) 마르쿠제가 말한 이른바 도구적 이성에 눈먼 지식인들의 행태에 대한 김 교수의 비판은 사뭇 신랄한 데가 있다.“문화의 본질은 섬세와 세련”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는 “이를 가장 잘 알아야 할 정치인들이 자신의 비합리적인 파토스의 세계를 열정으로 위장하거나 샤머니즘적인 제스처로 말놀이를 일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샤머니즘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김 교수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 샤머니즘 극복을 지난 40여년 문학평론의 중요 과제로 삼아 왔다. 샤머니즘을 우리 전통문화로 잘못 알고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예로 들며 샤머니즘을 포함한 신비주의의 문화적 성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세 치 혀가 세상을 바꾼다’‘귀신을 넘어서’‘문학, 욕망의 심연에 빠지다’ 등 3장으로 이뤄진 이 책에는 모두 40여편의 글이 실렸다.9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전북 영상메카 레디~고!

    전북 영상메카 레디~고!

    요즘 전북 임실군청 직원들은 근무시간이 즐겁다. 장규성 감독의 휴먼드라마 ‘이장과 군수’ 영화촬영장이 된 군청사에서 인기 탤런트 차승원·유해진씨를 종종 볼수 있기 때문이다. 배경마을이 된 임실군 덕치면 가곡리 주민들 역시 시골에서는 실물을 보기 힘든 이들 인기배우를 쉽게 만날 수 있어 마냥 즐겁다. 배우 외에도 영화 촬영 장면은 물론 각종 장비 등 평생 보지 못한 구경거리가 많아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주민들로 붐빈다. 임실읍과 섬진강변에서는 이영아·김시후 주연 ‘귀신이야기’도 촬영 중이어서 조그만 산골지역 임실군은 올 여름 영화 이야기로 화제 만발이다. 전북지역에서는 이 같은 영화·드라마 촬영장면을 종종 볼수 있다. 전주에서는 성심여중, 전주천 등에서 김혜수·천호진 주연의 ‘좋지 아니한가’ 촬영이 한창이다. 올들어 도내에서 제작된 영화와 드라마만 43편에 이르고 현재 6편이 촬영 중이다. 지난 2001년 4편에 지나지 않았던 도내 영화·드라마 촬영건수는 2002년 23건,2003년 26건,2004년 35건,2005년 50건 등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이같이 영화·드라마 제작진이 전북을 선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림’이 될 수 있는 도시, 농촌, 바다, 산 등 배경장면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전주시가 영상위원회를 구성해 이들의 적극 유치에 나선 것도 주요인이다. 전주영상위원회는 제작진 유치를 위해 배경이 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축적해 홍보하고 안내·지원하며 자치단체의 협조를 얻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도 등 자치단체에서 이들에게 각종 지원과 편의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것도 제작진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특히 숙박비가 싸고 먹을거리가 풍부하며 음식맛이 좋아 장기간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연예인과 스태프들이 좋아한다. 도내에서 촬영된 영화·드라마 가운데 대박이 난 작품도 많다. 엄청난 관객 동원에 성공한 ‘왕의 남자’는 대부분 부안군 영상테마파크에서 제작됐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말죽거리잔혹사, 한반도, 비열한 거리, 소문난 칠공주, 스승의 은혜 등 전북의 자연을 배경으로 제작한 작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을 유치해 자치단체들이 얻는 수익도 짭짤하다. 전주영상위원회는 지난해 50편의 영화·드라마 촬영을 유치해 얻은 직·간접 효과가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제작진들이 숙식비, 장소와 장비 대여비, 인건비 등으로 직접 지출한 금액만 70억원에 이르고 지역광고 등 경제승수효과를 감안할 때 그 이익은 100억원을 넘어선다. 전주영상위원회 이세리 로케이션팀장은 “올 연말까지 6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유치할 계획”이라면서 “올해 직접소득은 100억원, 경제승수효과는 15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101세 할머니가 다녀온 저승얘기

    101세 할머니가 다녀온 저승얘기

    숨졌다고 생각된 할머니가 8시간만에 되살아났다가 자기의 예언대로 사흘뒤에 숨을 거두자 그 사이에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8시간 동안 「특급저승紀行」을 하고 왔다는 할머니는 한 동안 인기 「스타」 못지않게 관심의 대상이 됐었다. 전남 장흥(長興)군 안량면 수문리에 장수(長壽)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기록적으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장수할머니라고 불렀다. 69년 1백1살이 된 그 할머니가 12월 16일 드디어 숨을 거두었는데 그에 앞선 사흘 동안 이승에 많은 화제를 뿌려 놓고 갔다. 그것은 사흘전의 13일 새벽 4시에 일단 별세한 것으로 생각되어 자손들이 초상 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을 때 『염라대왕이 날짜를 잘 못 받았으니 도로 가라고 해서 돌아 왔다…』면서 되살아 난 까닭이었다. 『염라대왕이 어떻게 생겼읍디까?』하면서 인근의 주민들이 밀려 오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 보다도 우선 할머니가 소생하는 바람에 상가(喪家)-길가(吉家)-상가(喪家)로 전전한 후손들의 수선은 엄숙한 죽음을 희극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는 일생에 두 번 죽은 셈이다. 죽었을 동안의 이야기가 희한할 수 밖에 없겠다. 할머니가 첫 번째로 숨을 거두었을 때다. 유족들은 관례대로 슬프게 곡을 했다. 부고도 인쇄해서 돌렸다. 할머니의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수의도 입혔다. 관도 준비했다. 상복도 입었다. 모두 1백 20명에 가까운 손자 손녀들에게도 알리고 친척들도 모여 들었다. 장례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웃마을 사람들도 1세기를 살다간 할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상가(喪家)에 모여 들었다. 유족과 친지들도 살만큼 산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는 않았다. 좋은 세상 살다 갔다고 저승길의 편안과 극락행을 빌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날 낮 12시쯤 되자 병풍 뒤 할머니를 모셔놓은 자리에서 신음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가족들과 이웃 사람들이 달려갔다. 죽은지 8시간이나 지난 것으로 생각된 할머니가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몸과 손을 비틀면서 가는 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아, 나를 왜 이렇게 해 놓았느냐?』 그 자리에 뛰어 든 가족과 친지들은 할머니가 돌아 가셨기 때문에 장례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어서 다만 할머니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할머니의 소생 제2성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아이고 내가 날짜를 잘못 받았다. 오늘은 초이렛날(음력)이지. 날이 나빠서 염라대왕이 다시 돌아 갔다가 사흘 뒤에 오라고 했다. 어서 나를 풀어다오』 그 때서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할머니의 몸에 감긴 염포를 풀고 수의를 벗겼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할머니가 죽었을 때 보다 더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그것은 반가운 울음소리였다. 『1백살된 할머니가 살아왔다네』『염라대왕을 보고 왔다네』『그 할머니 몇 년을 더 살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왔다네』『먼저 죽은 영감과 만나 울고 헤어졌다네』- 말이 말을 물고 마을과 마을에 번져 나갔다. 할머니를 한번 구경하겠다는 사람, 할머니의 저승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사람이 떼지어 몰려 들었다. 그 집은 초상집 보다 더 분주해졌다. 동네의 노인들이 저승의 모습을 설명해 달라고 간청해 왔다. 심지어 귀신의 혼을 불러내어 한 노파 무당은 소(蘇)할머니와 처녀시절에 친했던 어떤 여인을 저승에서 불어내어 슬프게 사설을 풀어 내었다. 『…아이고 정심(貞心)아, 우리가 오래오래 만나지 않은 것이 너를 위해 좋으련만 어차피 다시 만날 팔자이니 네가 왔다고 해서 뛰어가서 마중할까 했는데 염라대왕 분부로 도로 갔다는 말을 듣고 너를 위해 춤을 추고 나를 위해 울었다네…』 무당이 둥둥 북소리를 치면서 길게 늘어놓자 듣고 있던 사람들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소(蘇)할머니가 스스로 사흘 후에 죽는다고 예언한 말이 퍼지자 어떤 무당은 저승의 전갈이니 갈 때는 아무개의 옷을 갖다 주라는 뻔뻔스러운 소리까지 해 오고-. 되살아 난지 사흘 동안 할머니는 고요한 날을 보내지를 못했다. 소(蘇)할머니는 이곳 태생이다. 어릴때부터 몸이 커서(1백70cm) 여장부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16세 때 같은 마을의 김모씨와 결혼, 4난매를 낳고 78세 때 남편과 사별했다. 소(蘇)할머니는 70이 넘도록 고깃배를 저어 바다로 나가기도 했고 1백살된 68년까지도 바느질을 하고 바지라기를 까서 집안 일을 도와 왔다. 할머니는 역시 남편을 일찍 잃은 맏딸 김복덕(金福德)여인(68)의 집에 의탁하고 살아왔다. 이 늙은 딸의 효도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지극해서 할머니가 도지사의 장수상(長壽賞)을 탔을 때 함께 모범효녀상을 탔다. 이 김여인의 말에 의하면 소(蘇)할머니의 장수의 비결은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되살아난 날도 밥상에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올렸으나 이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고 겨우 바다생선 몇 점과 채소류로 밥 한 그릇을 거뜬히 없앴다. 또 그 건강법은 목욕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3년 전에 먼저 보낸 남편의 정을 잊지 못해 매월 보름에는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이른 새벽에 바닷가에 나가 남편의 명복을 돋아 오는 해 앞에서 빌었다는 얘기. 소(蘇)할머니는 외손자들을 다 합하면 자손이 1백20명에 이르는데 5대손 까지 보았다. 할머니는 우연인지 자기가 예언한 음력 10일(12월16일)에 진짜로 고요히 한번 왔던 저승길로 다시 떠났다. 떠나기 직전에는 유가족들의 앞날을 걱정해서 고기잡이는 이렇게 하고 바지라기는 저렇게 까야 된다고 소상히 가르쳐 주는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숨을 거두자 자손들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멀리 읍내에 있는 의사를 모셔와서 진단을 받기도 했다. 장흥(長興)읍의 십자의원장 박예진(朴藝鎭)씨는 『소(蘇)할머니가 첫 번째는 완전히 운명했었다고 볼수는 없다. 호흡이 멎었더도 심장이 약하게 움직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심장이 되살아 나서 할머니는 소생한 것 뿐이다』라고 과학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점장이와 무당들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날이 미리 정해져 있다. 할머니는 날짜를 잘 잡아 살아 난 것이다』라고 그럴싸하게 설명하면서 『소(蘇)할머니가 염라대왕을 만나고 왔다는 것만 보아도 알 일이 아니냐』라고 때를 만난 듯 떠벌리고 있다. 장흥=박재홍(朴在烘)기자 [선데이서울 70년 신년특대호 제3권 1호 통권 제 66호]
  • “작년에 봤던 귀신놀이 또 하네”

    ‘또 폐교에서 귀신 놀이인가.’ 평소 지상파를 즐겨보는 김정희씨는 요즘 불만이 많다. 납량특집으로 방송하는 오락 프로그램들이 앞다퉈 ‘귀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KBS 2TV 오락프로그램인 ‘해피 선데이’의 간판 코너 ‘여걸 식스’는 20일 방송에서 공포영화 ‘여고괴담’을 찍었던 한 폐교에서 출연진이 귀신을 피해 먹을거리를 가져오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조혜련·이혜영·정선희·현영·이소연·최여진 등 여성 고정 출연자들이 교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처녀귀신과 저승사자를 만나 벌이는 사투는 과히 애처로웠다. 이혜영·현영 등 혼자 미션을 수행한 출연자들은 무릎을 꿇고 거의 기어가는 모습에다가 연속 소리를 지르며 우는 분위기였고, 결국 이혜영은 포기하고 돌아왔다. 한 시청자는 게시판에 “출연자들이 울면서 난리인 것을 보면서 안쓰러웠다.”고 했다. 다른 시청자는 “조명 아래서 귀신을 피해 도망치는 납량특집은 이제 식상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MBC ‘무한도전’은 5일과 12일 2주에 걸쳐 납량특집을 방송했다. 각각 폐교와 폐가에서 이뤄진 방송은 유재석과 박명수·정준하·정형돈·하하·노홍철 등 6명의 출연진 모두 귀신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유발했다. 방송 이후 “조명이나 스태프들이 없는 상황에서 공포에 떠는 출연자들이 불쌍했다.”“이제 다른 형식의 납량특집을 보고 싶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귀신이 등장하는 납량특집 외에 휴양지 등 해외 촬영을 하는 여름특집도 단골로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프로그램 형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장소만 바다나 풀장으로 옮겨 눈총을 받고 있다.SBS ‘실제상황 토요일’의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는 지난 5일부터 3주간 태국 푸껫에서 청춘남녀 연예인 16명의 만남을 다뤘지만 파인애플 따먹기 등 장소만 바뀌었을 뿐 같은 내용으로 일관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봉만대감독 공포영화 데뷔작 ‘신데렐라’

    봉만대감독 공포영화 데뷔작 ‘신데렐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 감칠맛나는 영상을 만들고, 케이블채널 OCN에서 독특한 감성의 ‘동상이몽’을 보여준 봉만대 감독. 그가 자신의 ‘전공분야’인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서 벗어나 공포영화를 내놓았다. 봉 감독이 “쓸쓸한 영화”라고 설명한 ‘신데렐라’(제작 미니필름·17일 개봉)는 맹목적이고 어긋난 모성애를 다룬 공포물. 미리 귀띔하자면, 포스터와 예고편 전면에 내세운 영화의 섬뜩한 컨셉트 ‘성형수술’은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모성애를 드러내기 위한 강렬한 소재로 차용됐을 뿐이다. 친구처럼 다정한 모녀인 성형외과 전문의 윤희(도지원)와 고등학생 딸 현수(신세경). 외모에 관심이 많은 현수의 친구들은 윤희를 찾아가 수술을 받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만, 곧 알 수 없는 환영에 시달리고 급기야 죽음으로 치닫는다. 이상한 일이 계속되자 현수는 윤희가 출입을 금지한 지하실로 찾아가고, 사진을 한 장 발견하면서 모녀 사이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특별한 반전없이 술술 전개된다. 최근 몇년간 한국 공포영화들이 보였던 ‘알고 보니 이런 거였어. 몰랐지?’식의 반전 강박증이 적어도 이 영화엔 없다. 덕분에 관객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피곤함은 덜었다. 하지만 지나친 친절은 드라마의 재미를 누리려는 관객에겐 ‘독’이다. 매사를 또박또박 설명해주려는 영화는 시종 요철없이 밋밋한 느낌으로만 일관한다. 모처럼 스크린 나들이한 도지원의 연기와 신세경의 성숙미가 돋보이지만, 그것만으로 공포영화의 재미를 보전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시청각의 지나친 자극을 부담스러워한다면 이 영화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초반 스크린에 피가 흥건하긴 하지만, 잔혹한 수준은 아니다. 소름돋는 쇳소리 음향효과, 괴상하게 몸을 꺾으며 일어서는 귀신의 모양새 등 공포영화의 유행코드에 연연해 하지 않은 대목에서 차별점을 찍는다. 그러나 봉 감독에게 기대했던 세련된 연출장면을 찾지 못해 끝내 안타깝다. 현재와 과거를 절묘하게 들락거리는 장면에서나 그의 스타일리시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엄마 잃은 쓸쓸한 아이, 죄책감에서 아이를 살리려 희생하는 모성 등의 주요설정이 일본 공포 ‘검은 물 밑에서’와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한다.15세 이상 관람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왕산家의 독립운동사] (3) 허위·허겸의 죽음

    일제 헌병에게 체포당한 왕산 허위는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돼 의병탄압 최고 지휘자이던 헌병사령관 아카시 겐지로에게 신문을 받았다. 의병을 일으킨 목적을 설명하는 왕산의 목소리는 당당했다.“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부르짖는 것은 입뿐이요, 실상은 한국을 멸할 흑심을 가졌다. 우리들이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멈추려 하듯 힘에 벅찬 의병을 일으킨 것이다.” 왕산은 또 일본 수사관이 의병활동에 앞장 선 자와 대장이 누구인지 추궁하자 “앞장선 자는 이토 히로부미고 대장은 나다.”라고 말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지목한 연유에 대해 왕산은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나라를 뒤엎지 않았더라면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즉 앞장 선 자가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고 누구인가.”라고 대답했다. 아카시는 왕산의 인품과 충성심에 감복해 왕산을 국사로 대우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왕산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청했지만, 허락이 나지 않았다. 결국 1908년 9월18일 왕산에 대해 사형이 선고됐고,10월21일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다. 서대문 형무소가 지어지고 최초의 사형 집행이었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왜승이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읽으려고 하자, 왕산은 “충의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혹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어찌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겠는가.”라며 물리쳤다. 제자 박상진이 왕산의 시신을 수습해 뒷날 고향 선산인 구미 선영아래에 모셨다. 왕산이 숨진 뒤 왕산가는 탄압하는 일제를 피해 야반도주하듯 고향인 구미를 떠나 만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했다. 왕산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형 성산 허겸은 1912년 이상룡 등이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에 조직한 자치기관인 부민단에서 10여년간 일했다. 부민단은 동포들의 자활과 교육사업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으며, 성산은 남북만주와 노령을 무대로 활동하며 국내에 잠입했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성산은 출옥해 86세에 다시 만주로 가,1940년 90세를 일기로 주하현 하동에서 서거할 때까지 광복운동에 헌신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儒林(66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14)

    儒林(66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14)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14) 말년에 지은 ‘성학십도’ 중 제1도인 ‘태극도설’에 대해 퇴계 스스로 지은 해설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오행의 생성시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가져서 ‘무극의 진(眞)과 이(二)·오(五)의 정(精:陰陽과 五行)’이 묘하게 합하여 응결되면 ‘건도(乾道)’는 남성을 이루고,‘곤도(坤道)’는 여성을 이룬다. 두 가지의 기(二氣)가 서로 감화하여 만물을 낳고, 만물이 계속 생성함으로써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것(其秀)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 형체(形)가 이미 생기자 정신(神)이 지(知)를 발하고, 오성(五性)이 감동하매 ‘선악(善惡)’이 나뉘고 ‘만사(萬事)’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에 성인이 ‘중정(中正)과 인의(仁義)로서 이것을 정하고 정(靜)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최고의 표준)’을 세웠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그 덕성이 천지와 합치하며, 그 밝음(明)이 일월(日月)과 합치하며, 그 질서가 네 계절과 합치하며, 그 길흉이 귀신과 합치한다. 군자는 이것을 닦으므로 길하게 되고, 소인은 이것을 어기게 됨으로써 흉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에 도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 한다.’고 하며, 또 이르기를 ‘원시반종(原始反終:주역에 나오는 말로 처음에 태어난 까닭을 생각해보고 종국에 죽게 되는 까닭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생사에 얽힌 근본적인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뜻)하면 생사의 설을 알게 된다.’고 한 것이니, 위대하도다 역(易)이여. 이것이야말로 그 지극한 것이로다.…(후략)…” 퇴계가 성학십도 중 제1도로 ‘태극도설’을 지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태극’은 중국의 고대사상으로 만물이 생성 전개되는 근원을 가리키는 것이며, 우주 본질의 최고 개념인 도를 설명하기 위한 철학적 수식어라고 할 수 있다. 음(陰)과 양(陽)의 두 이기가 태극의 일원(一元)에서 생성되었다는 태극 사상은 주역의 계사(繫辭)편에 나오는 내용으로, 따라서 퇴계가 해설의 결론 부근에서 ‘위대하도다 역(易)이여. 이것이야말로 그 지극한 것이로다.’라고 주역을 찬(讚)하고 이 우주 만물에 오직 인간만이 천지간에 빼어난 존재이니, 마땅히 사람의 도라 할 수 있는 인(仁)과 의(義)로 이(理)를 궁극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르게 되면 이른바 ‘신묘를 다하고 조화를 알아서 덕이 성한 사람’ 즉, 군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던 것은 이처럼 주역의 위대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태극사상이 성리학에 있어 우주 본질의 도로 자리잡게 된 것은 송나라 초기에 대표적인 유학자 주돈이(周敦)가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통해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란 학설을 주장함으로써 성리학에 있어 최고의 논쟁거리를 던진 이후부터였다. 따라서 퇴계가 제1도를 ‘태극도설’이라 명명한 것은 바로 주돈이가 주장하였던 ‘태극도설’의 강렬한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 [길섶에서] 개, 풀 뜯어먹다/송한수 출판부 차장

    “콩나물은 입에도 안 대더니.” 저녁 밥상머리에서 쏟아진 핀잔이다. 내가 언젠가부터 콩나물 무침을 엄청 먹더라며 그럴싸한 분석까지 얹어 머쓱했다.“그렇게 술을 먹어댔으니, 몸이 보호본능을 드러낸 징후….” 운운하며 흘낏대다니. 전문가들 말을 훔쳤나. 신체에 나쁜 조짐이 보이면 꼭 미리 경고가 내려진다는, 취재하며 들은 일화 한 토막이 불쑥 겹쳐 떠올랐다. “지난 겨울이었어요. 개들이 산으로 냅다 뛰더니, 눈구덩이를 파헤쳐 풀을 걸신 들린 듯 뜯어먹지 뭐예요?”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다 늘어난 주량 탓에 간이 부어 그만두고, 절간에 박혀 몇 년씩이나 요양했다는 40대의 말이다. 스님께 듣고 보니 건강에 탈이 난 견공(犬公)들에게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몸부림이었다고 픽 웃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정신 나간 사람을 꼬집는 속담은 사실 틀렸다.‘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과학을 몰랐던 옛 얘기란다. 오히려 거꾸로다. 하늘의 꾸짖음을 거슬러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면 몹쓸 일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아닐까. 송한수 출판부 차장 onekor@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