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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 증가는 북 경제난 때문”/83년귀순 이웅평 대령 인터뷰

    ◎우리국민 안보의식 낮은것 같아/귀순조종사 사회적응 도와줄터 『북한을 이탈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83년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대령(43·공군대학 안보환경학처장)은 23일 상오 역시 미그 19기 1대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 공군 소속 이철수대위의 귀순에 대해 이같이 피력하고 같은 처지에서 이대위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대령과의 일문일답. ­귀순 조종사의 동기는 무엇으로 보는가. ▲북한 조종사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체제가 현실과 맞지 않을 경우 실망한 나머지 북한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조종사의 귀순으로 미뤄 알 수 있는 북한의 실정은.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내가 귀순한 83년에는 경제사정이 곤두박질 치고 있었으며 최근엔 더욱 힘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후배 귀순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귀순조종사가 서른 한살이라고 들었는데 알맞은 시기에 넘어온 것 같다.처음엔 여러가지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내 경험을 충분히 들려주고 우리사회에 잘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앞으로 북한체제의 전망은. ▲경제사정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금방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 등 외부의 충격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달렸다. ­안보의식 강연을 하러다니며 느낀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 수준은.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무척 낮은 것 같다. ­귀순한 이후 생활은 어떠했나. ▲지난 13년의 절반 정도는 민간대학 위탁강연 등 대민활동을 해왔고 절반은 군에 들어와 안보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대전=이천렬 기자〉
  • 미 “분명한 망명기” 일 “향후사태 주시”/북 미그기 귀순 반응

    【밀워키(미 위스콘신주) 로이터 연합 특약】 데이비드 존슨 미 백악관 대변인은 23일 북한 미그기의 한국 귀순과 관련,『이것은 분명 망명 비행기이다』고 강조하고 『이 사건이 현재 한국측에 의해 잘 처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존슨 대변인은 이날 클린턴 대통령이 뉴욕에서 밀워키로 향하는 대통령전용기 기내에서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부터 북한 공군기의 망명사건에 대한 1차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일본총리는 북한 미그기가 23일 한국으로 귀순한데 대해 한국 정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면서 향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망명이 조직적인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것인지(망명이유를)알 수 없다』며 『미그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신뢰받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비행군관학교 거쳐 86년 임관”/귀순 이철수 대위 일문일답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철수 대위(30)는 10전투 비행단 부단장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소 불안한 듯 줄담배를 피우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했다.다음은 이대위와의 일문일답 내용. ­소속과 계급은. ▲공군 및 반항공사령부 1비행사단 57연대 2대대 책임비행사 대위 이철수다 ­출생지와 거주지는. ▲본적은 함경북도 어랑군 어랑읍이고,현재 살고있는 곳은 평안남도 온천군 온천읍 201이다. ­가족관계는. ▲91년 5월12일 부인 이성옥(27)과 결혼해 아들 명진(5),딸 명심(3)이 있다.어머니는 92년9월에 돌아가셨고,아버지 이춘상씨(62)는 정년퇴직을 한 뒤 함께 살고 있다.아버지는 삼지연 비행장에서 엔진기사로 일했으며,87년 제대를 한뒤 평안남도 온천군에서 식료수매사업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정년퇴직했다. ­학교와 군에 입대한 시기는. ▲73년 9월1일 삼지연인민학교에 입학했고,삼지연중학교를 졸업한 뒤 82년도 5월1일 군에 입대해 공군비행 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마친 86년 8월4일 별을 달고 임관했다. ­귀순동기는. ▲더 이상 북한 체제에서 살수 없어 탈출하게 됐다.〈조덕현 기자〉
  • 보로금 등 합쳐 3억미만 될듯/이철수 대위 보상금 얼마나 받나

    ◎정착기본금은 가족없어 최저임금의 20배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철수 대위(30)에게는 「귀순 북한동포 보호법」에 따라 보로금과 정착금이 일시금으로 지급된다.주택지원금,의료보호 및 교육보호 혜택도 준다.현역 군인으로 다시 근무할 가능성도 크다. 구체적인 금액은 「귀순동포 보호위원회」(위원장 복지부 차관)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보로금은 제공한 정보와 장비의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군함과 전투폭격기는 1만∼2만g 이하의 황금 또는 이에 상당하는 금액이다.최저 1억1천13만원에서 2억2천26만원이다. 정보의 가치에 따라 황금 5백∼2만g 이하 또는 이에 상응하는 금액을 준다.5백50만6천5백∼2억2천26만원에 이른다. 정착금은 기본금과 가산금으로 나뉜다.기본금은 동거가족이 없어 월 최저임금액(현재 28만8천1백50원)의 20배인 5백76만3천원이다.연령·건강상태 등을 고려한 가산금은 최저임금액의 10배인 2백88만1천5백원이다.모두 합쳐도 3억원을 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83년 역시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씨가 받은 것으로 알려진 13억원에 비하면 크게 적다.〈조명환 기자〉
  • 북,대남 긴장조성 강도 높일듯/「경비정 침범」 정부 당국자 분석

    ◎“영해침범” 남측도발로 조작해 내부 통제/정전협정 무력화… 대미협상 시도 포석도 북한 미그기 조종사의 귀순과 경비정의 연이은 북방한계선 침범사건은 북한의 체제위기가 그 한계에 이르렀고,체제일탈을 막기위해 고의로 전쟁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평양의 속사정」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는게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미그기를 몰고 귀순해온 이철수 대위는 남한땅을 밟는 순간 『북한체제하에서는 살 수 없어서 귀순하게 됐다』고 귀순 일성을 터뜨렸다. 정부 당국자는 『군에 대한 특별배려가 보장된 북한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조종사의 귀순은 지난해 잇따라 발생한 북한 상류층의 탈북러시처럼 「동요하는 북한특권층」의 단면과 북한체제 위기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날 상오 서해상에서 발생한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범사건은 북한 당국이 체제위기를 극복하려고 고의로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분위기 조성을 기도하고 있음을 잘 말해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이는 북한이 이날 상오 11시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을 통해 「한국 해군이 서해의 북한 영해 깊이 전투함선 집단을 침입시키는 군사도발을 감행했다」고 역선전했다는 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 비무장지대 지위 불인정선언 이후 북한군의 3차례에 걸친 판문점 무력시위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북한방송들이 이번에는 역선전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통일원 당국자는 『북한이 자신들의 침범행위를 오히려 남한의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로 조작,전쟁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볼 때 체제일탈 등 내부의 불만을 통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침범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당국자는 또 평양방송등이 『(남한측의) 해상침입이 정전협정을 파괴하고 북한을 반대하는 군사적 도발행위를 감행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한 것을 더욱 엄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점을 지적,이는 정전체제 무력화의 책임을 남한에 떠넘겨 대미평화협정 체결공세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통일원 당국자는 『북한의 도발은 정전협정 무력화 기도의 연장』이라며 『한미 양국이 북한에게 4자회담에 대한 설명회를 제의해 놓고 있는 만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방침』이라고 말했다.〈구본영 기자〉
  • 북 미그기 귀순­시간대별 상황

    ◎“자유의 땅으로”… 필사의 탈출 39분/훈련중 코스 이탈… 최대속도로 “남행” 10시30분 미그기 북 온천비행장 이륙 10시42분 항해도 상공에서 편대 아탈 10시43분 아군 레이더 포착… 비상 돌입 10시49분 미그기 우리 서해영공 통과 10시51분 수도권일원 경계경보 발령 10시53분 남·북기 강화도 상공서 만남 11시 9분 아군기의 인도로 수원 안착 11시11분 수도권 일원 경계경보 해제 북한 공군 57비행연대 2대대소속 책임비행사인 이철수 대위(30)가 평안남도의 온천기지를 이륙,미그 19기를 몰고 자유의 땅인 수원기지에 착륙하기 까지의 39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대위가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으로의 귀순을 위해 평안남도 온천비행장을 이륙한 것은 이날 상오 10시30분쯤. 그가 소속된 비행편대는 이날 이착륙 숙달훈련을 위해 함께 발진을 했다.동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온천상공을 선회비행하던 이대위는 동료들이 방심한 틈을 타 10여분 뒤인 상오10시42분쯤 돌연 편대에서 이탈,기수를 서해쪽으로 돌렸다.동료들을 따돌린뒤 김포비행장에 내릴 각오였다.대열에서 갑자기 이탈한 이대위를 본 동료들은 이대위의 이탈이 「남행」인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대위의 비행기는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대위는 미그 19기가 낼 수 있는 최대속력인 마하 1·36의 속도로 순간 최대발진했기 때문이다. 북한 공군의 움직임을 24시간 거미줄같은 정보체제로 감시하고 있는 우리 공군이 「이상조짐」을 발견한 것은 10시44분.우리 공군의 레이더는 북한 최전선 공군기지인 황해도 옹진반도 북쪽 태탄상공에서 갑자기 고속으로 남하하는 비행물체를 발견,즉각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이어 10시51분,수도권에 경계경보가 발령됐다. 초계비행중이던 F 16 2대가 지체없이 미그기 쪽으로 이동했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응태세였다.1분뒤 수원기지에서 F 4,F 5 각 2대가 추가 발진했다. 상오 10시48분,미그기가 우리 영공을 통과했고 10시50분에는 중원기지에서 추가로 2대의 F 16이 추가발진했다.10시53분 강화도 서쪽 15마일지점에서 양측 비행기가 만났다.우리측 조종사는 순간 미그기가 귀순의사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공격」에 대비,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그러나 눈앞의 미그기는 물론 어디에서도 북한공군기의 특이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대위의 미그기는 착륙장치를 내린뒤 날개를 흔들고 속도를 줄였다.귀순하겠다는 국제공통의 의사표시였다. 미그기의 귀순의사를 확인한 우리측 비행기는 곧바로 귀순기를 유도하기 위해 1대는 귀순기에 접근하고 다른 1대는 후방에서 엄호및 초계비행을 했다. 상오 11시9분 공군작전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유도된 귀순기는 수원기지에 안착했다.자유의 땅에 안긴 것이다.11시11분 수도권 일원에 발령됐던 경계경보도 해제됐다.〈황성기 기자〉
  • 북 공산정권의 역사적 소임(박화진 칼럼)

    「세계공산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역사적·시대적 소임과 역할은 끝났다」 옛소련·동구공산권 붕괴당시 소련공산당 당이론지「커뮤니스트」의 선언이다.마르크스 레닌이 지향한 공산주의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소임은 초기 천민자본주의가 보인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모순의 척결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소임은 공산주의자신의 힘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복지·평등등 사회주의이념 도입이라는 자본주의의 자기혁신을 통해 달성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본의든 아니든 그 역사적 소임을 다했으나 스스로는 자본주의의 경쟁적 성장원리 도입에 실패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낸 공산주의는 그 존재이유와 명분을 상실케되었으며 붕괴와 청산은 역사의 당연한 명령이라 할수있는 것이었다.그 결과가 옛소련·동구의 공산주의청산과 서구자본주의 도입이라든가 중국·베트남등 아시아공산권의 자본주의경제방식 도입과 자본주의시장경제 실험의 개방·개혁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공산정권만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방·개혁을 거부하며 「우리식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을 뿐아니라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시대역행적 야심마저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민족의 가슴아픈 불행이요 시련이라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북한정권이 세계공산권 가운데 특별히 훌륭하고 모범적인 통치를 해왔거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식량난,에너지난,외화난등 경제파탄의 북한공산정권 50년통치는 공산권뿐아니라 전세계 최악의 실패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국민을 먹이고 입히는 것은 통치의 원초적 기본이다.그마저 못해 백성을 헐벗고 굶주리게 하고 있는 북한공산정권이다.시베리아벌목공,한·만 국경주민,해외공관외교관등의 탈북자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23일엔 공군미그기 조종사까지 북한을 이탈,귀순하지 않았는가.종주국들마저 버리는 공산주의를 북한만 고수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김정일을 비롯한 북한정권 책임자들은 개인이나 정권·체제가 아닌 민족이익차원에서 대범하고 냉철하며 이성적인 자기반성을 해야할 역사적 시점이라 생각한다. 북한지도자·책임자들은아전인수식 오판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현재의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경제적 경쟁자본주의화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화는 그 누구도 거역할수 없는 오늘의 세계적인 역사 및 시대진행의 방향이다.북한도 예외일수 없음은 물론이다.미국과의 적당한 거래로 시간을 벌다보면 위기극복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이다. 미국이나 우리가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면서 수십억달러의 경수로·중유·식량제공등 도움도 주고 있는 것은 북한이 공산주의를 고수하도록 돕자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시간문제일뿐 북한의 민주화개방·개혁도 불가피한 역사의 필연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기초로 하는 것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미국이 잘 쓰는 「북한의 추락 아닌 연착유도」란 말의 의미는 북한공산주의체제 옹호의 연착 아닌 질서있는 민주화변혁의 그것이라는 사실을 뜻하는 것임을 북한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점진적이고 질서있는 민주화의 달성과 보편적인 세계정치·경제원리 수용외에 북한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한다. 그것은 오늘의 북한정권이 할수있고 반드시 해야하며 하지 않을수 없는 유일의 역사적·민족적 소임이요 과제라 생각한다.21세기 선진G7대열 진입을 지향하는 한국의 목표는 한국만이 아니라 2천만 북한동포까지를 포함하는 7천만 한민족공동의 역사적 비전이자 과제라 할수 있다.북한의 동참을 전제로 하는 민족에너지의 총집결이 요구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북한의 개방·개혁거부와 무의미한 공산주의 고수의 현상유지는 만주벌판과 중국 그리고 시베리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야하는 21세기 통일한국과 한민족전체의 시대적 진운을 가로막는 장애요 역사반동이라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남북공히 백년대계의 민족이익차원에 입각한 일대 발상전환의 결단을 내려야할 중대한 역사시점에 서있다고 할수 있다.4자회담의 수용과 남북대화 및 협력관계 발전은 엄청난 희생을 불가피하게할 북한의 붕괴를 막고 최소한의 비용과 희생의 점진적이고 질서있는 민주화개방·개혁 및통일로 가는 첫 관문이자 출발점임을 북한공산정권 지도자들은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심의·논설위원〉
  • 미그 19기 어떤 기종인가

    ◎55년 소련서 요격기로 개발… 현 북한군 주력기/최대 항속거리 2,160㎞… 전투행동반경 950㎞/최대속도 마하 1.36… 공대공 미사일 6발 탑재 지난 55년 최초의 초음속 전천후 요격기로 소련에서 개발된 미그­19기는 고고도 요격을 주임무로 하고 있으며 2차 임무는 대지공격용이다. 현재 러시아·중국·북한은 물론 중동국가에서도 보유하고 있을 만큼 공산권과 제3세계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북한에서는 미그 21기와 함께 주력 전투기다. 미그 19기는 비교적 구형이지만 뛰어난 기동능력을 갖고 있어 베트남전에서 월맹군이 공중전에 활용,미국의 F­4(팬텀)기에 맞서 예상밖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북한은 현재 거의 같은 기종인 미그 21기를 포함,미그 19·IL­28·SU­7/25 등의 군용기를 4백70여대 확보하고 있다. 최대 마하 1.36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이 비행기는 조종사 1명이 탑승,23∼37㎜의 기관총과 공대공미사일 6발과 최대 2천4백t의 폭탄을 탑재,공중요격과 대지공격능력을 갖고 있다. 이 비행기의 항속거리는 2천1백60㎞로 전투행동반경9백50㎞,상승고도는 약 1만5천m다. 전장 12.3m,기폭(날개포함) 8.8m,높이 3.8m다. 한편 한국에는 북한과 중국에서 귀순한 미그기를 포함,15·19·21기 등 여러가지 기종의 미그기를 10여대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황성기 기자〉
  • 귀순뒤 밀입국 기도/김형덕씨 집유 선고

    서울지법 형사 3단독 박시환 판사는 22일 중국을 통해 밀입북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을 구형받은 귀순자 김형덕 피고인(22)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잠입·탈출)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죄 등을 적용,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피고인은 지난 2월3일 미화 1만4천달러를 갖고 인천항에서 중국행 선박에 몰래 탄 뒤 북한으로 밀입북하려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었다.〈박상렬 기자〉
  • 통일원 북한자료센터 개설 7돌/북한원전·음반포함 7만6천점 소장

    ◎월 1회 극영화 상영·전문가 토론회도 남북한 화해와 교류·협력시대에 대비,국민들에게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지난 89년 설립된 통일원 북한자료센터가 22일로 개설 7주년을 맞는다. 광화문우체국청사 6층에 자리잡은 이 자료센터에는 북한 및 국내외에서 제작된 자료 7만6천5백여점이 소장돼 있다.북한원전으로는 김일성저작집,조선중앙연감,조선통사,이조실록,임꺽정(소설),각급 학교 교과서 및 노동신문,민주조선,조선,천리마,조선문학 등 정기간행물과 경제연구,역사연구 등 학술지가 대표적 자료다.이밖에 북한의 각종 극영화 비디오테이프와 조선민요곡집,아리랑 특집 등 가요음반도 구비돼 있다. 자료센터에서는 특히 매월 마지막 금요일 하오 북한 극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고 있으며,북한귀순자 및 통일문제전문가와의 북한실상 토론회도 수시로 개최하고 있다. 통일원에 따르면 자료센터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누구나 매일 이용할 수 있으며,이용시간은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30분(단 토요일은 하오 4시30분)까지다.지금까지이곳을 이용한 사람은 총 5만5천9백53명으로 하루 평균 30명 꼴로 집계되고 있다.〈구본영 기자〉
  • 긍지잃은 외교관(귀순 고영환·현성일씨가 말하는 북외교 실상:2)

    ◎주재국의 푸대접이 가장 큰 고통/각종지원 약속 펑크내자 외무관리 면담거절 일쑤/김부자 찬양 기사게재 등 청탁에 현지언론도 “신물” 아프리카지역 해외공관에 근무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너나 없이 3중고에 시달린다.그 첫째는 지난 95년 8월부터 평양으로부터 끊긴 공관 유지비의 자체 조달이고 둘째가 주재국 외교부로부터 받는 괄시,셋째가 주재국 정부와 친선협회 및 언론으로부터 북한지지 성명 내지 찬양보도를 얻어내는 일이다.지난 93년 11월부터 지난 1월 귀순 전까지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했던 현성일씨(37)도 예외없이 3중고를 겪어야 했다.3중고 가운데서도 북한 외교관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주재국으로부터 받는 푸대접이라고 한다. 일찍부터 대외정책의 기본이념으로 자주·친선·평화를 표방은 했지만 대서방외교에 한계를 느꼈던 북한은 비동맹국가 및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다.북한이 추구해온 비동맹외교의 기본목표는 ▲제3세계 비동맹국가들과의 친선유대강화 ▲반제국주의투쟁의 연대성공고 ▲북한의 통일정책에 대한 지지획득이었다.이같은 평양당국의 비동맹외교노력에 힘입어 북한은 지난 75년 비동맹회원국이 됐으며 유엔에서의 북한 지지국 확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그러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비동맹외교는 처음부터 한계점을 갖고 있었다.경제적으로 북한이나 제3세계 국가들이 다같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가 긴밀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즉 제3세계 국가들은 한결같이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했으나 북한은 이들 제3세계 국가들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할 여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게다가 북한이 이들 국가들에 대한 경제및 군사지원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제3국가들의 대북 불신은 자연 깊어졌다.설상가상으로 70년대 후반들어서부터 비동맹운동이 종전 민족주의와 이념중시에서 경제적 실리에 초점이 맞춰져 전개되면서 북한의 비동맹외교는 내리막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80년대 후반들어 경제력을 앞세운 한국외교가 아프리카공략에 나서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다렸다는 듯 친한으로 방향을 바꿔 잡았다.북한 외교관들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현성일씨는 지금도 잠비아에서 겪었던 수모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한다.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불신과 업신여김도 모른채 우리식 사회주의를 외쳐대며 섣부른 짓을 마다않고 있는 북한체제에 더없는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씨는 『아프리카에서의 북한외교는 없다』고 말한다.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들은 거의가 절대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같은 비동맹국 회원임을 앞세워,특히 「사회주의의 성공사례」를 자처하며 접근전을 펴온 북한에 대해 이들 국가들이 경제원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그러나 제 코가 석자나 빠진 북한이 도와주는 것 하나 없이 국제무대서의 대북지지만을 요구하다보니 이들 국가의 외무관리들은 북한이라고 하면 진절머리를 낸다는 것. 현성일씨가 잠비아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한국 외교관들이 장관 등 고위 잠비아 외무관리들을 쉽게만나는 것이었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 외교관들이 그들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잠비아 외무관리들은 한국 외교관들은 수시로 사저에 불러 파티를 하기도 하고 한국 외교관들의 방문은 언제고 환영하지만 북한 외교관들에겐 아예 집주소 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북한 외교관들의 사기를 꺾는 건 비단 이것 뿐이 아니다.어렵사리 면회신청이 받아들여져 외무부를 찾아갈 경우 외무부 청사에 들어서기도 전에 북한 외교관들은 기가 콱 죽는다.청사 밖에 주차된 외교관들의 승용차가 현대 아니면 대우차인 것도 그렇지만 사무실의 컴퓨터·전화기·팩스 등 사무기기가 거의 한국제품인 까닭이다. 북한 외교관의 무기는 입이 전부다.그러나 주재국 외무관리들이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훤히 꿰뚫고 있어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봤자 먹히질 않는다고 한다.『도와줄 처지도 아니면서 무슨 헛소리냐』는게 그들의 노골적인 반응이란 것. 잠비아에 주재하는 동안 주재 외교관 3명중 유일하게 영어를 할줄 알았던 현성일씨는 2·16김정일,4·15 김일성 생일 때마다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잠비아 정부나 잠비아·조선친선협회가 축하전문을 보내도록 하라는 평양의 지령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어렵기는 북한의 핵확산금지협정(NPT)탈퇴지지를 위한 연대성집회소집 등도 마찬가지였다.콜라 한병 나오지 않는 연대성집회에 사람이 모이지 않을 건 당연한 일.그래서 현성일씨는 집회는 열지도 못한채 자신이 지지문을 작성한 뒤 현지 회장을 찾아가 통사정,겨우 수표를 받아 평양에 보냈다고 한다. 주재국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관련 기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기자들이 직접 취재해서 게재하는 북한관련 기사는 거의 없고 외교관들의 로비에 의해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자국 정부와의 관계도 관계이지만 외교관들이 찾아가 애걸복걸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처음 몇번은 별 군소리 없이 기사를 실어준다고 한다.그러나 매번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내용의 김부자 찬양문과 대북지지문,북한발전 PR기사 게재청탁을 쏟아놓다 보니 신물이 난 언론들이 이젠 드러내놓고 냉대를 한다는 것.심지어 『북한관련 기사 한건에 라디오 카세트 한개씩 가져오라』는 면박을 주기도 하며 실제로 북한관련 기사와 라디오 카세트를 맞바꾸기도 한다고 한다.이렇게 어렵사리 기사를 「날리거나」 전문 또는 보고서를 「만들어」 보내면 평양에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마치 주재국에서 대규모 북한지지대회나 요란한 김일성부자생일 축하모임이 열린 것처럼 법석을 떤다는 것.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긍지는 이미 잃어버린지 오래이고 체면은 체면대로 구기고 있는게 북한 외교관들의 현주소라고 현씨는 말한다.
  • 최악의 외화난(귀순 고영환·현성일씨가 말하는 북외교 실상:1)

    ◎여비 안나와 부임 못하는 외교관 많아/돈 타내려 배경 동원… 급행료 2백∼3백불/임지부임 경비 줄이려 대부분 열차 이용 북한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하지만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나 해외공관근무 발령을 받은 외교관이 항공료가 지급되지 않아 1년을 평양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가 귀순 북한외교관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밝혀진 것이다.냉전체제가 붕괴된 후에도 여전히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를 고집하고 있는 동안 북한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음이 증명된 것.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는 지난 91년 귀순한 전콩고주재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 고영환씨(38)와 지난 1월 귀순한 전 잠비아주재 3등서기관 현성일씨(37)와의 대담을 추적한 「북한­오늘의 외교실상」을 4회에 나눠 싣는다. 북한경제는 지난 90년이래 내리 6년째 마이너스성장을 계속하고 있다.이같은 북한경제의 마이너스성장의 가장 큰 원인은냉전체제붕괴후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너나없이 시장경제체제로 돌아서면서 북한이 수출시장을 잃어버린데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냉전체제가 무너지기전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국가를 상대로 광물및 공산품을 수출,그런대로 재미를 봤으며 몇몇 중동국가에 대한 무기수출을 통해 상당액의 달러수입을 올렸었다.그러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단 자유화와 중동지역의 평화도래로 이 지역에 대한 무기수출길이 막히면서 외화벌이가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기다 스탈린식 폐쇄체제와 자력갱생이란 경제정책운영방식이 가져온 비능률과 저생산성도 북한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가는데 한 몫을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생이란 산업 전반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산된 제품의 질 역시 형편없을 것은 뻔한 일.그 결과 북한은 수출경쟁력에서 크게 밀려 외화가득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화사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로 현성일씨는 외교관들의 여비를 들었다.북한외교관들의 평균 해외공관근무임기는 3∼4년.그러나 임기는 임명장을 받은 날부터 기산되기 때문에 부임이 늦으면 늦은 만큼 평양에서 임기의 상당부분을 까먹게 된다.현씨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해외공관근무명령을 받고도 여비가 지급되지 않아 평양에 죽치고 앉아 있는 외교관이 40∼5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심지어 1년 넘게 떠나지 못하고 있는 외교관도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이다. 해외공관근무명령을 받은 외교관들에 대한 여비는 외교부 외화국에서 지급한다.외교부 외화국은 무역은행에서 달러를 수령,지급하는데 무역은행에 달러잔고가 모자라 제때에 필요한만큼 타오질 못한다는 것.그러다보니 외교부 외화국장 테이블에는 외교관들의 여비신청문건이 산더미처럼 쌓인다고 한다.그러나 외화국 역시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여서 『임명받은 순서대로 받아가라』거나 아니면 『급하면 재간껏 무역은행에 가서 돈을 타가라』고 요령을 일러줄 뿐이라는 것.그래서 눈치빠른 외교관들은 해외근무명령을 받자마자 바로 「사업」에 나선다고 한다.「사업」이란 무역은행에 줄을 대 가급적 빨리 돈을 타내기 위해 벌이는 로비를 말한다. 무역은행에서 외교관여비지급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부서는 제5국.워낙 외화가 모자라다보니 달러를 만지는 5국의 국장이나 부국장의 끗발은 보통 센게 아니다.배경이 좋은 외교관들은 위로부터 압력을 가해 5국장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전문외교관들은 자기가 받을 여비에서 2백∼3백달러를 5국 간부들에게 떼주기로 하고 여비를 받아내는게 관행으로 돼있다.그러나 이것도 운이 좋을 때 얘기고 때를 잘못 만나면 부지하세월,여비가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성일씨가 잠비아주재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발령을 받은 것은 지난 93년 9월30일.그러나 그 역시 여비를 제때 받지 못해 한달을 기다린 끝에 10월30일 평양을 떠날 수 있었다.그가 한달만에 여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현철규)가 함남도당 책임비서겸 인민위원장이라는 고위직에 앉아 있는데다가 마침 외화국장이 현지사정을 잘 아는 잠비아대사출신이어서 덕을 봤기 때문이었다. 워낙 돈이 궁하다보니 북한외교관들의 임지부임에는 여비절약의 지혜가 절대 필요하다.그래서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여비를 아끼기 위해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비행기대신 열차를 이용한다.하기는 비행기를 이용하려고 해도 임지까지 편리하게 연결되는 비행기편이 없어 대부분 포기한다.현씨 역시 잠비아부임때 먼저 평양∼모스크바행 기차를 이용했다고 한다.9일만에 모스크바에 도착,이틀을 쉬고 다시 열차편으로 이틀 걸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까지 이동,소피아에서 짐바브웨까지는 열차가 없어 만부득이 항공기를 이용했다.짐바브웨서 잠비아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육로로 갔다고 한다.그가 평양을 떠나 잠비아에 도착하기까지 자그마치 17일이 걸린 셈이었다.그러나 북한외교관들은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장거리코스를 좋아한다고 한다.새장같은 북한에 갖혀 지내다가 오랜만에 대하는 바깥세상이 너무도 반갑고 그 동안에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너무 소중해서라는 것.〈장수근 연구위원〉
  • 체제위기 오나(북녘국경지대 지금은…:6·끝)

    ◎“북 식량난만으로 체제붕괴 안될듯”/주체사상 세뇌… “우리식으로 산다” 강변/김정일 공식승계 김일성 3년상뒤 유력/“주석취임날 쌀 대량 배급한다” 소문 돌아 압록강변에서 바라본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분명했으나 이같은 곤란이 급격한 사회변동이나 김정일체제의 붕괴조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을 갖기는 어려웠다.아직까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북한주민들은 식량사정 등 경제적 어려움이 따라도 「우리 식대로 살면 된다」는 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탓에 체제붕괴로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않다는 것이다. 북경에서 만난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북한에는 체제저항 세력이 거의 없다』며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잘 조직화된 사회인 만큼 경제적 어려움만으로 체제붕괴를 점치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중국 사회안전부의 관계자도 북한의 붕괴조짐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한다.김일성의 권력승계자로 부상한 이후 계속해서 김정일이 정보및 조직(인사)관리의 일을 담당했다는 점을 그근거로 든다. 최근 함경북도 회령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42)도 북한이 식량난과 물자난으로 위기국면에 처해 있지만 그것이 체제붕괴로 이어질 조짐은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회령시만 하더라도 식량난은 물론이고 진열된 상품이 없는 텅빈 매장만 있어 북한경제의 위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그는 또 『북한 관리들도 경제난과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지 못하면 경제의 회생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전했다.그러나 체제붕괴의 징후는 전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합에서 만난 중국인 진모씨(47)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강철이념으로 받드는 북한주민들은 아무리 식량난에 시달리더라도 불평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밝힌다.『북한주민들은 한국이나 중국이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저 우리 사회주의식으로 살면 된다는 생각 외에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그는 전했다. 북한 농업전문가 출신의 귀순자 이모씨(39)도 최근 한국에서 열린 한 포럼의 증언에서 『북한은 잘못된 농업정책과 구조적 모순이 상존하는데다 지난해의 대홍수까지 겹쳐 곡물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시인했다.그러나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체제붕괴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처럼 북한의 체제붕괴 조짐은 당장은 없어보인다.하지만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왜 늦어지는지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지금까지 권력승계가 늦어지는 이유중 하나는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좋지않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연변 한국투자인협의회 한인상회 조흥연 회장은 『김정일의 목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최근들어 김정일이 북한을 방문한 외국의 주요 관리들과 공식적으로 만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주소재지 연길시에서 자동차로 10시간동안 달려 도착한 중국 길림성 림강.압록강을 건너 자강도 중강진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곳이다.북한 TV를 자주 보는 조선족 배모씨(42)는 『지난 93년 이후 김정일이 TV에서 직접 말하는 장면을 한번도 못봤다』고 전한다. 김일성과는 달리 항일투쟁 경험이 없는 김정일에게 신격화할만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점도 승계가 늦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히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독재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러나 지금까지의 김정일 행적으로 볼 때 카리스마를 얻을 만한 「업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승계가 차일피일 연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 사회안전부 관계자는 『김정일은 카리스마를 얻기 위해 식량난을 적절히 이용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밝힌다.그 내용들중에는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는 날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가구당 1백50∼2백㎏의 쌀을 한꺼번에 배급할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있다.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 동지가 인민을 위해 쌀을 하사했다」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선전,신격화시킨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상을 지낸 뒤 공식 승계하리라는 전망도 있다.이는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공감을 받는 유력한 전망중의하나로 꼽힌다.회령을 방문했다가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는 『김정일의 승계가 지연되는 것은 「인민의 정서를 존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번 들었다며 김일성에 대한 추도기간이 끝나면 승계할 것』이라고 말했다.〈림강(중국)=김규환 기자〉
  • 북한주민 2명 귀순/3국체류중 어제 서울에

    국가안전기획부는 북한을 탈출,제3국에 체류하며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주민 이정국(30)씨와 서병림(34)씨가 8일 하오 서울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귀순경위와 신원 등 자세한 사항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이정국씨는 자신의 신분을 북한군 상위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서울시 시정개발연,「통일 수도」 4개 시나리오

    ◎북 급속붕괴땐 주민 3백만∼4백만 남하/80% 서울정착… 50∼70만가구 주택 필요/점진적 통일 대비 「서울비전」 미리 설계/서울 「통일수도」 안될 경우도 준비해야 서울시는 7일 「통일 수도의 시정수요 전망과 대책」이라는 제목의 통일대비 계획안을 공개했다.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통일 수도는 서울이 된다는 전제 아래,북한 주민의 대거 이주 등에 따른 시정수요를 전망하고 그 대책을 제시했다. 서울시 산하 시정개발연구원 21세기연구센터가 맡아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교수와 송희연 아시아개발연구원장 등 전문가 6명이 작성했다.북한 주민들의 성분과 실업률,통일 독일의 선례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했다. 행정기관이 통일 이후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상정,대책을 제시하기는 처음이다.관련부처가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공개한 적은 없다.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우리들이 떠맡아야 할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통일 독일이나 베트남의 예에서 보듯 통일 국가의 수도가 감당해야 할 일도 엄청나다.주도면밀하게 대비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근 한반도 주변의 정세는 한국과 미국 두나라의 4자회담 제의 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북한 주민의 귀순도 잇따른다.통일이 예상보다 앞당겨진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보고서는 아직 서울시의 공식안이 아니다.그럼에도 예측 가능한 통일의 유형 및 시기를 상정,정책대안을 그려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의가 깊다.다른 정부기관은 물론 민간의 통일 대책 마련에 길잡이가 될 전망이다. 서울시의 계획안은 「통일은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북한 주민들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다」「통일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등 세가지 조건이 전제다. 기간은 5년내 단기적 통일과,5∼10년의 중기적 통일로 구분했다.통일의 방식은 북한사회의 붕괴에 따른 급진적 통일과 남과 북의 대화를 통한 점진적·단계적 통일로 나눴다. 이에 맞춰 통일 시나리오 모델도 ▲5년내 급진적 통일(시나리오 A) ▲5∼10년의 급진적 통일(B) ▲5년내 점진적·단계적 통일(C) ▲5∼10년의 점진적·단계적 통일(D) 등 4가지로 만들었다. 시나리오 C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제외했다.10년 이후의 통일도 시간이 충분하다는 측면에서 논외로 했다. ○시나리오 C는 비현실적… 제외 한으로 이주하는 북한 주민은 약 3백만∼4백만명으로 전망됐다.이들 가운데 80∼90%인 2백40만∼3백60만명이 수도권에 몰린다. 서울시 통일 계획안의 내용을 요약한다. ▷시나리오 A◁ 국가나 서울시로서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형태다.2백40만∼3백60만명의 북한 주민이 수도권에 유입되면 5인 가족 기준으로 50만∼70만가구의 주택이 필요하다.서울시에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경기 북부지역에 임시 수용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교통·상하수도·전력·도시가스 공급 등 도시 기반시설도 한계에 이른다.이에 대한 대책을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협의해 마련해야 한다. 서울시는 담당부서를 선정하고 모의훈련을 해야 한다.당연히 통일관련 담당공무원의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이주민들을 위한 고용대책 및 재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정해 지원하는 제도도 강구해야 한다.시민들과 유입인구간의 사회적 갈등도 심각해질 수 있다.정부와 국민 모두가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무형의 분단을 초래할 수도 있다. 수도권의 개념을 서울로부터 80㎞ 지점인 천안,또는 60㎞ 지점인 평택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서울의 도심을 단핵구조에서 다핵구조로 개편해야 한다.2011년을 내다본 도시계획에 이런 정책이 들어있는 것이 다행이다. 5년안에 갑작스럽게 통일이 이뤄지면 서울을 비롯,수도권이 겪는 혼란이 가장 크다.준비기간이 충분하지 않다.서울시로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B◁ 현실적 가능성은 시나리오 A보다 높다.차분하게 준비할 시간이 있어 충격은 다소 줄어든다. 인구 유입은 시나리오 A에 비해 많을 수도,적을 수도 있다.전자는 북한 주민들이 지금보다 북한밖의 정보를 많이 접해 남쪽의 생활수준이 높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후자는 북한의 지속적인 개혁·개방정책으로 남북간의 교류가 확대돼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경우다. 역시 주거대책 마련이가장 시급하다.인구유입에 따른 각종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정비하는,장기적인 안목에서 준비해야 한다.상·하수도 시설 및 가스공급 계획도 거시적인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 민간단체가 참여하도록 장기적 측면에서 민·관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적 갈등은 A보다 적을 것이다.북한 주민들이 개방 물결에 따라 외부 세계에 어느 정도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 등 경제적 부작용에도 시간적으로 대처할 여유가 있다.독일이 그랬듯이 서울시 차원의 동화정책이나 일체감 조성이 새로운 과제로 대두할 것이다. 중·장기적 고용정책도 필요하고 시 차원의 중·장기 재원조달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따라서 시의 건전재정 유지가 필수적이다.그래야 필요한 재원을 해외에서라도 조달할 수 있다. 시민간 화합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한다.도시공간 문제는 좀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현실적으로 서울의 공간 확대는 어렵다.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고밀도 개발이 필요하다. ▷시나리오 D◁ 남북 협상에 의한 점진적·단계적 통일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스러운 유형이다.예상되는 시정수요 및 문제점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인구유입도 다른 형태보다 상당히 적을 것이다.그렇지만 시는 통일 정부가 인구유입 억제책을 시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주거대책은 시급하다.인간다운 도시를 만든다는 서울의 비전을 미리 설계,이에 맞게 종합적이고 거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울이 통일수도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보하도록 애써야 한다.분야별 정책건의도 활성화해야 한다. 사회적 갈등도 크게 걱정할 수준까지는 미치지 않는다.남북한의 접촉빈도가 높아 상호 이해의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통일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시 차원의 예산확보책이 필요하다. 협상 과정에서 통일수도의 입지 뿐 아니라 지역간 균형적 발전,통일수도의 기능,통일수도에 들어설 정부 부처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공간구조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다른 도시가 통일 수도가 될 경우◁ 통일수도는 서울이라는 등식은 반드시 성립되지 않는다.서울은 만원이고 도시로서 갖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전역이 주차장화하는 등 교통이 제기능을 못한다.통일수도를 어디로 정하느냐는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서울 말고 대안이 없다.그러나 서울이 통일수도가 되지 않는데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서울이 통일수도가 되면 한민족의 화합의 장으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지닌다. 그렇지 못하면 수도와 서울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통일수도가 국가의 주요 정책기능을 담당한다면,서울은 통일한국의 중심지로서,국제 업무·교류·협력의 주체로서,새로운 문명을 받아 소화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패션과 유행의 선두 주자로 국민생활을 주도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이때를 서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통일은 서울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김인철·강동형·박현갑 기자〉
  • 5월이 더 괴로운 귀순 현성일씨 부부

    ◎“통일의 그날까지 살아만 주소서…”/자유와 맞바꾼 생이별의 아픔 북녘부모·자식 생각에 눈물만…/잠비아부임때 전송모습 선한데/매일 「편지」 쓰면서 그리움 달래 『날마다 북에 두고 온 부모와 자식들에게 편지를 써요.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다소나마 풀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난 1월 목숨을 걸고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을 탈출,귀순에 성공한 현성일(37·당시 3등 서기관)·최수봉(36)씨 부부는 「어버이날」이 괴롭다.지난 어린이날에도 가슴이 찢어졌다. 그토록 그리던 자유는 찾았지만 부모는 물론 두 자식과 생이별한 쓰라림을 달랠 길이 없기 때문이다.오히려 아픔은 더 깊어만 간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부모님과 자식을 위해 기도하자고 약속했어요.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통일이 될 때까지 살아 계셨으면 좋겠고,딸 영실(9)이와 아들 주혁(6)이는 다시 만날 때까지 올곧게 자랐으면 하는 것뿐이지요』 두 자녀의 부모로,철책을 사이에 두고 나이든 부모 및 자식들과 생이별한 이 부부의 눈가엔 이내 눈물이 흘러내린다.이념 때문에 갈가리찢겨진 혈육의 정이다. 현씨부부가 양가 부모를 마지막으로 뵌 것은 93년 10월30일.잠비아로 부임할 때 모스크바행 열차가 함흥과 청진에 잠깐 정차할 때였다. 평양을 떠나기 전에 미리 연락한 덕분에 함흥역에서 기다리던 아버지 현철규씨를 만나 딸 영실이를 맡기며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올렸다. 장인·장모 역시 다음날 새벽 2시 열차가 청진역에 머무를 때 만났다.『먹다 남은 쌀 40㎏을 역전에서 드렸어요.그동안 두분은 생활능력이 없어 사위와 딸에게 많이 의존했는데 막상 떠난다고 하니,겉으로는 좋아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태산 같아 보였어요』 현씨는 『지팡이를 짚고 나온 장인께서 먼 길을 떠나는 사위에게 여비를 보태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지난 5일이 장인 생신이었는데 밥 한끼도 대접하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한숨짓는다. 부모님과 딸을 북에 남겨두고 이역만리 잠비아에 도착한 부부는 아들 주혁이도 부모에게 보냈다.생활비가 빠듯한 가운데 『덩치가 큰 주혁이가 너무 많이 먹는다』는 소식을 들은함흥 본가에서 『잘 챙겨 먹이겠다』는 전갈에 그만 보내버렸다. 『장난이 유독 심해 개구장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주혁이를 생각하면 일손이 안 잡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최씨는 울먹인다. 가난과 억압을 견디지 못해 탈출한 지 5개월째.북에 두고 온 부모와 자식 때문에 못이 박힌 가슴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란다. 자유와 풍요 속에서 억압과 가난 속의 부모와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부의 얼굴에는 분단의 비극만큼이나 깊은 수심이 배어 있다.〈주병철 기자〉
  • 강석주 「노력영웅」 칭호 받아/귀순 현성일씨 본지 인터뷰서 밝혀

    ◎대미 핵협상서 경수로 2기 받아낸 공로 인정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 강석주(57)가 지난 93년 미국과의 핵협상을 북한측에 유리하게 이끈 공로로 김정일로부터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4일 서울신문사 국제전략연구소와 단독회견한 귀순 북한외교관 현성일씨의 증언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지난 93년 3월1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수용 요구를 빌미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전격선언했던 북한은 같은 해 6월 뉴욕서 미국과 제1단계 고위급 회담을 갖고 NPT탈퇴를 「일단유보」키로 결정했다.그러나 북한은 그후에도 IAEA의 특별사찰수용을 계속 거부,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괴롭혔다.우여곡절 끝에 미국과 북한은 같은 해 7월 제네바에서 제2단계 고위급회담을 재개하고 IAEA의 특별사찰과 관련,평양당국이 IAEA와 조속한 시일안에 협의를 재개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회의 벽두부터 완강한 자세로 버티던 강석주가 로버트 갈루치 미대표와 제2차 고위급회담을 극적으로 타결지은 것은 순전히 미국측에서 제시한 「당근」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이 회담을 통해 45억달러 상당의 경수로 2기를 공짜로 얻게 됐는데 김정일이 이같은 성과에 크게 만족,강석주 등에게 상훈을 내렸다는 것.〈장수근 연구위원〉
  • 공 외무 방러/4자회담 지지 유도 행로

    ◎옐친에 한반도평화 측면지원 요청/러·북관계 복원조짐 등 현안도 협의 5일부터 시작되는 공로명 외무부장관의 러시아 방문은 『균형된 4강외교의 마무리 작업』이라고 외무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설명했다. 공장관이 이번 방문중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는 4자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지난 달 16일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남북한·미·중간의 4자회담을 제안한 이후 러시아는 4자회담에 소외된데 대해 드러내놓고 섭섭함을 표시하고 있다. 공장관은 방문기간중 옐친 대통령을 예방하고 이그나텐코 부총리,프리마코프 외무장관,스트로예프 상원의장,루킨 하원 외무위원장등 러시아의 정부·의회 지도자들을 상대로 4자회담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예정이지만,러시아가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이번 공장관의 방문기간중 적어도 4자회담에 대한 러시아측의 원칙적인 지지표명을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90년 수교이후 한국을 중시하는 한반도 정책을 펴왔으나,최근 이러한 정책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북한과의 관계복원에 비중을 두고 있다. 북한은 특히 지난해 12월 실시된 러시아 총선에서 공산당이 승리한데 이어,다음달 16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가 당선되면 러시아와의 관계가 90년 이전의 수준으로 복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북한은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러시아가 「러·북한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의 폐기를 통보하고,새로운 조약을 맺자고 제의했는데도,대통령 선거결과를 기다리면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공장관은 이번 방문 기간중 『한국이 러시아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옐친 행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의사도 전달할 예정이다. 공장관은 이밖에도 이번 방러 기간중 ▲옛 러시아 공사관 부지 보상 및 대사관 부지 교환 ▲사할린 교포 영주귀국 ▲탈출 벌목공 귀순 협조 ▲경협차관 상환등 양국간의 오랜 외교적 현안을 마무리하기 위한 협의를 하게된다.〈모스크바=이도운 특파원〉
  • 탈북자 정재광씨 귀순허용 서울에/외무부 밝혀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은거하던 탈북자 정재광씨가 30일 서울에 도착했다고 외무부가 밝혔다.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정씨의 귀순을 허용했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 “남북한 춤사위 큰차이 없어요”/귀순 북무용배우 신영희씨 인터뷰

    ◎북선 정확한 동작 우선… 1년 넘게 연습/친했던 가구 김용씨 만났을때 많이 울어 『남북한의 춤사위에 큰 차이는 없지만,한 동작 한 동작을 ㎝ 단위로 재가며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낯설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남편 최세웅씨(35·전 북영합작 개발투자회사 사장)와 함께 귀순한 전 만수대 예술단 무용배우 신영희씨(35)는 24일 기자와 만나 북한에서의 생활과,귀순한 뒤 4개월여 동안 느낀 점들을 소상하게 밝혔다. 첫 화제는 역시 춤.신씨는 지난 달 KBS무용단과 뮤지컬 「시집가는 날」을 공연한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춤은 그루터기(기초)라도 있지만 너죽(코믹한 연기)이 어려웠습니다』 터무니없이 짧게 느껴진 연습기간도 신씨를 갸웃거리게 했다. 북한에서는 장면별로 시간을 배정해 한치도 틀리지 않을 때까지 오랫동안 연습한다.고위층에게 보여주는 공연이기 때문이다.동작이 허술하다고 지적받으면 「생활총화」 시간에 비판을 받는다.그래서 한 작품을 1년 넘게 연습할 때도 있다. 연습을 적게 해 관객들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신씨는 『한심하지는 않더라』는 남편 최씨의 말에 겨우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자로 잰 듯한 동작은 아니더라도 감정만 전달하면 훌륭한 연기가 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고 한다. 북한 예술인들의 생활로 화제가 옮아가자 만수대 예술단에 있던 82년 가을,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인민배우 우인희가 총살당하는 장면을 직접 봤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던 어느 날,행사가 있으니 공민증을 지참하고 모이라는 지시에 따라 예술단원 전원이 평양 부근의 훈련소로 갔다.잠시후 도착한 짚차에서 연한 살색 양장을 입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우인희가 손이 묶인채 끌려나왔다. 「당의 배신자」 우인희를 총살하는 자리였다.외부적으로는 재일교포 2세와 불순한 애정 행각을 한 「혐의」였으나 북한의 예술인들은 우가 김정일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애정 행각이라면 강제노동 수준의 처벌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신씨가 속했던 만수대 예술단은 대외 선전용으로 당에서 특별 관리하는 조직.그래서 단원들의 합숙소 생활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윤택하다.또 이 사실은 절대 비밀이다. 신씨도 『못 먹어본 것이 없을만큼 대우가 좋아 북한에서 말하는 「공산사회」에 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와 격리된 생활과 강도 높은 연습 때문에 결코 편안한 생활만은 아니었다고 회상한다.그나마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예술활동에 대한 김정일의 관심이 줄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 날 인터뷰에는 북한에서 신씨와 절친하던 귀순자 김용씨(36)도 자리를 함께 했다.신씨는 『북한에서 김씨의 귀순소식을 듣고 믿어지지 않았다』며 『귀순해서 처음 만났을 때도 눈물이 나 아무 말도 못했다』고 했다. 김씨가 지난 해 문을 열어 직접 경영하는 경기도 일산의 유치원에 가 보고 또 한번 놀랐다.북한에서 가장 좋다는 평양의 창광유치원보다 시설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아들 창혁군(9)과 딸 송희양(6)을 공짜로 받아주겠다는 김씨의 말에 신씨는 「행복한 어머니」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박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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