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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순가족이 밝힌 북한사회 실상

    ◎의약품 없어 집마다 아편 재배해 사용/황장엽 당비서 망명소식에 주민들 뒤숭숭/학생들 농번기엔 수업전폐,협동농장 동원 22일 기자회견을 가진 김원형씨(57)와 안선국씨(47) 등 귀순 가족들은 갈수록 악화되는 북한의 경제사정과 황장엽비서 망명에 대한 당국의 대응 등 최근의 북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경제난◁ 북한주민들은 의약품이 부족해 아편가루를 불면증·설사·구토 등의 구급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많은 주민들이 집 주위에 양귀비를 심어 진액을 채취,약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줄기는 말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달여먹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기름 값을 갚지 못하게 되자 94년부터 극심한 국내 전력난에도 불구하고 수풍발전소 생산전력 가운데 북한에 배당되는 전력량의 60%를 중국측에 제공하고 있다. 또 지난 해부터 김일성·김정일 사망 이후 우상화 작업 등 각종 사업 자금을 마련키위해 금수산 의사당 산하에 「영생관 외화벌이회사」를 설립,외화벌이에 열중하고 있다. ▷황장엽 망명에 대한 대국민선전◁ 북한은 황장엽 노동당비서의 망명사실을 지난달 8∼10일 전국 당원 교양교육을 통해 공식적으로 시인,공표했다.그 이전에 황비서 신병과 관련해서는 일체 비밀에 부쳐졌으나 중국 등지의 방송을 통해 소문이 전해지면서 상당수의 주민들이 이미 이를 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국은 김일성의 「붉은기 혁명 정신으로 살아나가자」는 교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황비서는 붉은기 정신과 수령을 배신했다고 선전하고 있다.이같은 배신행위에 아랑곳하지 말고 식량난과 수해를 겪은뒤 전국적으로 벌여온 「고난의 행군」 운동을 더욱 가열차게 전개하자고 독려하고 있다.그러나 주민들 사이에는 직위 높은 황비서가 망명할 정도라면 국가 체제에 큰 혼란이 있고 결국 망하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학교교육◁ 농번기에 고등중학생들을 「농촌지원 전투」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전폐한채 인근의 협동농장에 동원하고 있다.4∼6학년의 경우,지난해에는 40일간의 봄전투(5∼6월),30일간의 추수전토(10∼11월)에 동원됐으나 97년에는 3∼6학년을 대상으로봄 전투기간을 70일(5∼7월)로 연장하는 학생들의 농촌지원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또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청소년들에 대한 영어교육이 크게 강화됐다.95년 이전까지는 고등중학생에게 영어와 러시아어를 6대 4 혹은 8대2의 비율로 배정해 주당 3∼4시간씩 수업했으나 95년이후에는 러시아어과정을 폐지하고 영어만을 교육하고 수업시간도 주당 4∼5시간으로 늘렸다.
  • 식량·병원 부족…미숙아 출산 많아/귀순 김원형·안선국씨 가족문답

    ◎“김정일 물러나야지…” 체제불만 팽배/국경경비 2배 강화… 초병도 감시대상 지난 12일 서해를 통해 귀순한 김원형(57),안선국씨(47) 가족 14명은 2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귀순동기와 북한실상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약이다.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했음에도 귀순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원형씨=해외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로부터 돈을 받아 그럭저럭 살만하긴 했지만 북한체제의 불합리성과 월남자 가족이라는 신분상의 제약,과거 부모가 잘 살았다는 전력 때문에 북한에서는 항상 그늘진 곳에서 지내야 했다. ­탈출때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김씨=기상이 좋지 않아 배에 물이 새 걸레로 틀어막고 온 가족들이 물을 퍼낼 때였다.게다가 소형 라디오를 통해 인천 남부지역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소식까지 접했다.하지만 배가 침몰해 죽거나 북한 경비함에 잡혀 죽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계속 배를 남쪽으로 몰았다. ­왜 바닷길을 통해 북한에서 직접 귀순했나. ▲안선국씨=바다를 통해 귀순한다는 것은 천번에 한번 성공할까 말까할 정도로 무모한 행동이었다.그러나 군에 있을때부터 모험을 즐겨왔고 7∼8년동안 서해를 항해하면서 북한 경계망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공해상에서는 북한의 단속이 미칠수 없는 것으로 안다. ­쌍둥이 동생의 생존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김씨=90년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북한에 들어온 이모가 형을 만나 어머니와 동생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북한에 형도 있는데 왜 같이 안왔나. ▲김씨=형은 사위가 군에 복무하고 있는데다 나와는 생각이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탈북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탈북계획을 잘못 알렸다가는 우리 가족이 모두 죽음에 처할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지원 식량이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데. ▲김희성씨(김씨 3남)=일반 주민들은 한국·미국에서 지원해준 식량이 군용으로 돌아가는데 왜 자꾸 식량을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한다.아예 안 보내는 것이 나을 거라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주민들은 김정일과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북한의 불만을 잠재워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혹은 수해난에 따른 순수한 지원 등을 외부의 식량 지원 이유로 생각한다. ­북한 주민은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김희근씨(김씨 장남)=식량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기 시작한 80년대 이후부터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최근에는 식량난이 더욱 악화돼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전에는 이런 불평을 늘어놓다가 붙잡혀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최근에는 공공연히 「김정일이 자리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쌀을 주든지 해야 될것 아니냐」고 말한다. ­체제불만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하는가. ▲김희근씨=행동으로 옮기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마음 속으로만 불만이 쌓여 있는 것이다. ­「7월 이후 전쟁설」에 대한 근거는. ▲김씨=김정일이 김일성 3년상을 끝낸뒤 무력행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3년상만 끝나면 김정일은 자기 맘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군부에서도 전쟁준비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주민들이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최근 국경·해안 지역 경계상황은 어떤가. ▲김씨=평안북도 북부 해안과 국경경비를 담당하던 보위부 5국(경비총국) 11여단의 임무가 94년 말 해안경계 업무로 한정되는 대신 국경지역 경계를 담당하는 7개 대대 규모의 31여단이 신설됐다.지난 해 초부터는 국경·해안초소에 초소장(중위) 외에 정치부초소장(소위)과 보위부초소장(소위)을 추가 배치하는 등 초소 근무자에 대한 감시 및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직접 겪은 식량난은 어땠나. ▲김화옥씨(안씨 부인)=우리집 식구 중에서도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있을 정도다. ­외국 출판물에 대한 통제는 심한가. ▲김희영씨(김씨 차남)=미국에 있는 삼촌한테 영어 카세트테이프와 교재,영어사전 등을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테이프는 당국에 뺏기고 영영사전과 한영사전 2권만 받았다.그런데 한영사전의 남한에 관한 항목은 모두 지워져 있었다.북한에서는 외국출판물이 들어오는 것을 「흑색바람」이라고 하는데 이를 막기위해 사상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식량난으로 산모들이 사산이나 조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김순희씨(김씨 장녀)=상급병원·하급병원 할 것 없이 약품과 시설 등이 부족해 대부분의 산모들이 집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한다.사산보다는 미숙아가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안일천군(안씨 장남)=과일이 제일 먹고 싶다.공부도 계속하고 싶다.북한에서는 밥을 먹지 못해 집을 팔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남한에는 거지들이 많고 사람들을 잡아 죽인다는 들었으나 여기에 온후 거지라곤 한 명도 보지 못했고 사람들을 때려 가두고 일도 없는 것 같았다. ◎탈출경로/9일 신의주에서 철산으로 출발/10일 만조시간 출항해 낙도은신/북한추격 우려 공해상으로 남하/12일 백령도인근서 해군에 구조 김원형·안선국씨 두 가족 14명의 북한 탈출은 9일 상오 11시쯤 안씨가 신의주를 출발한 것으로 시작됐다. 안씨는 먼저 경비가 삼엄한 평북 신의주 국경분소에서 김씨의 아들 2명을 선원자격으로 태우고 출발했다.나머지 가족들은 평북 철산군 동천리의 부두에서 따로 접선하기로 했다.조업선에 가족단위는 물론 부부도 동승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9일 신의주 해군 부두를 출발한 안씨 등은 10일 해안 경비의 마지막 초소인 철산군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척 기다리다 하오 9시쯤 순조롭게 철산군 동천 수산부업선 부두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가족들을 만나 배안에 숨겼다. 이들은 10일 상오 11시쯤 만조시간을 이용해 바다로 나와 서해쪽 마지막 섬인 낙도 부근에서 4∼5시간 정박하다 어둠을 틈타 중국을 향해 시속 7∼8노트로 10여시간을 달린뒤 공해상으로 나갔다. 공해상에 들어섰다는 감을 잡은 안씨는 다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6∼7시간을 항해한 뒤 인천항 쪽으로 방향을 돌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이때가 12일 상오. 3시간 가량 항해했을 무렵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파도가 3∼4m로 높아졌다.갑자기 목조선에 20㎝ 정도 틈새가 벌어지면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일행 중 일부는 걸레로 틈새를 막고 나머지는 정신없이 배 바닥에 괴는 물을 퍼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미리 준비해둔 휴대용 라디오를 통해 인천 남부지역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사실을 확인했다.순간 죽기아니면 살기라는 절박감이 뱃전을 감쌌다.무작정 인천 방향인 동남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12일 하오 2시25분쯤.해안선 한끝에 배가 보였다.나침반과 해상지도를 숨겼다.북한경비정에 들키면 길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할 작정이었다. 그때 누군가 『태극기가 보인다』고 소리쳤다.남한 경비정이었다.배위에 꽂혀있던 중국 국기와 북한의 인공기를 내리고 구조의 손길을 보냈다.이때가 12일 하오 4시28분. 김씨와 안씨 가족 14명의 나흘에 걸친 필사의 탈출은 이렇게 끝났다.
  • 귀순 김원형씨,어머니­동생 감격의 상봉

    ◎어머니”… “죽어서나 볼줄 알았는데…”/목멘아들 8순노모 부여안고 눈물…/“형님 수고했습니다” 형제도 포옹/며느리·손자 손녀 차례로 큰절 올려 『어머니,저 원형입니다』 『정말 원형이로구나.죽어서나 다시 만날줄 알았는데…』 8순 노모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주름진 얼굴을 매만졌다.목이 멘 아들은 어머니의 뺨에 얼굴을 부빌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2일 상오 9시25분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 지난 12일 서해상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귀순한 김원형씨(57)가 기자회견을 갖기에 앞서 미국 뉴욕에서 이날 새벽에 도착한 어머니 차순덕씨(82),쌍둥이 동생 인형씨와 감격스런 상봉을 했다. 이들 가족이 생이별을 한 것은 46년 전인 지난 51년 1·4후퇴 때였다. 그후 어머니 차씨와 동생 인형씨가 40여년 동안의 수소문 끝에 재미교포의 신분으로 지난 91년 신의주의 김씨 집을 방문해 상봉했으나 그것도 잠시.다시 만날 기약없는 이별속에 6년을 기다려야 했다. 『어머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던 원형씨는 어머니 거씨가 기자클럽에 모습을 나타내자 한걸음에 달려가 큰 절을 올리며 껴안았다.거씨는 휠체어 없이는 거동조차 못하지만 『병약한 모습을 보여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는 없다』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 들어왔다. 『지난 3월달에 인형이한테서 원형이네가 이웃집 식구들과 같이 남으로 탈출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하루도 제대로 잠든 날이 없었지.이리저리 뒤척이다가 혼자서 울기도 많이 하고…,그럴 때면 일어나서 기도 드리고.가슴이 너무 떨려서 탈출하는 것 보지도 못하고 죽는게 아닌가 싶더라구』 차씨는 며느리 김의준씨(53)와 부쩍 커 버린 손자·손녀로부터 차례로 큰 절을 받고 마냥 행복해했다. 이들의 탈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형씨도 『형님,수고하셨습니다』라며 감격스런 포옹을 했다. 차씨와 인형씨는 원형씨의 무사 귀순 소식을 듣고 만날 날을 애타게 기다리다 밤 비행기를 타고 이날 아침 6시15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함께 귀순했던 안선국씨(47)는 옆자리에서 이들의 상봉을 부러운듯 지켜보다가 북녘에 두고 온 친지들이 생각났는지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 귀순 북 보트피플 오늘 기자회견

    국가안전기획부는 지난 12일 서해상으로 귀순한 김원영(57)·안선국씨(47)의 가족 14명이 2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21일 밝혔다.
  •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서울신문 특별인터뷰)

    ◎“4자회담­북 식량지원 연계 바람직”/김정일 강온파 장악 대외정책 총지휘/클린턴 2기정책 한반도문제 큰 비중/중 움직임 주시하면 북 붕괴 진단 가능 □대담=이기동 국제부 차장 다음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그레그 전 대사는 현재 미 「코리아 소사이어티」의장으로서 북한사태를 면밀히 분석,클린턴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입안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인도적인 차원에서 대규모 식량지원을 해주어야할지 아니면 식량지원을 북한의 4자회담 참가등과 연계하는 전략을 고수하는게 좋을지 한국정부로서는 적지않은 딜레머에 빠져있는데. ▲북한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정확한 실상파악이 우선돼야 한다.외부원조에 손을 내미는 김정일 정권의 모습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다도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아직은 식량원조를 얻어내는 외에 남북대화나 4자회담에는 관심이 없는 것같다.4자회담 성사 전에 대규모 식량지원을 유보한다는 한국정부의 정책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북 식량위기 악용 우려 ­세계식량기구(WFP) 등 유엔기구와 여러 인도적인 단체들이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보고 와서 보고서를 내고 있다.대규모 지원을 늦추었다가 자칫 그곳 동포들이 대거 굶어죽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들도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이 보고온 것은 북한당국이 허용한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다.1920년초와 50년대초 소련과 중국에서는 기근을 국내외에 선전용으로 이용한 적이 있었다.식량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정권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김정일은 여전히 식량위기를 한미와의 관계에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서기가 최근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를 이미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 다음 그의 발언의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나는 황씨가 핵무기 관련 정보를 안다고 생각지 않는다.어떤 정부에서든 핵무기 관련 정보는 최일급 비밀에 속한다.예를들어 내가 주한대사로 근무중일때 주한미군이 가진 핵무기들을 본국으로 철수시킨 일이있다.나는 당시 청와대측과 이 문제를 다루었는데 청와대에서 이 문제를 아는 사람은 최고위층 2명뿐이었다. ­미정보기관이 황씨를 만난 적이 있는가. ▲아직은 만나지 못했다.하지만 조만간 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안다.우리는 무엇보다도 황씨가 들려줄 북한군부의 성향이나 군사력의 정확한 실상,그리고 김정일의 성격등에 관한 정보에 큰 기대를 걸고있다. ­지난해 일어난 잠수함 침투사건과 황장엽씨 망명뒤 많은 사람이 남북관계의 급속한 악화를 우려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두 사건이 남북관계를 특별히 더 악화시킨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일이 정권을 확고히 장악했기 때문이다.북한이 잠수함사건에 대해 사과성명을 내고 황씨의 망명을 인정한 것은 김정일이 국내 강온파의 두 목소리를 하나로 통합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따라서 이 두 사건에 대한 북한당국의 후속반응은 김정일의 책임하에 취해진 대남,대미관계의 한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북한의 사과 성명을 이끌어내는데 한미 공조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당시 미국정부는 한국이 북한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것을 매우 우려했다.반면 한국내 여론은 미국이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계속할 가능성에 매우 민감했다.이런때 미국이 북한의 사과를 얻어내는 협상에 앞장섰고 마침내 불가능하게 보이던 북한의 사과성명이 나왔던 것이다.한미 공조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해낸 좋은 선례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미공조에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94년 제네바 북미 핵합의가 이루어졌을 때만해도 한미공조에 이상기류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한미공조를 진전시킨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KEDO 남북관계 도움 ▲김일성 사망뒤 미국정부에서 낸 애도 성명에 대해 한국민들 다수가 불만을 가졌던게 사실이다.한국민들에게 김일성은 여전히 용서하기 힘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북미핵합의에 대해서도 한미간 이견이 있었다.미국은 당시 남북한과 동시에 협상하기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북한과 협상에 보다 큰 비중을 두어 이 핵합의를 성사시켰다.그러나 최근 6개월간 한미공조에는 괄목할만한 진전이 이루어졌다.전환점이 된 것은 지난해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한미정상의 만남이었다.이 회담이 있은뒤 북한의 잠수함 사과성명이 이루어졌다.그 다음 메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방한이 있었다.이는 클린턴 2기 행정부가 아시아,특히 한반도 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있음을 알리는 신호였고 한미공조를 굳건히 복원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통한 남북·북미·북일간의 대화도 큰 도움이 됐다. ­KEDO의 성과에 대해서도 상반되는 평가들이 있는데. ▲어쨌든 지금 KEDO가 제 기능을 하고 있지 않은가.94년 당시 북한의 핵위협은 심각한 상황이었다.그런데 지금 북한의 핵위기는 제거됐다. ○미 비상사태 완벽 대비 ­북한상황이 극도로 어려워지고 있어 미국정부가 그동안 추구해온 연착륙(soft landing)정책 대신 북한의 붕괴에 대비하는 쪽으로 정책전환을 모색한다는 보도들이 있는데. ▲김정일은 지금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타고있는 형국이다.자신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변화를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중요한 것은 김정일로 하여금 남이 흡수통일 의사가 없으며 통일뒤 그를 처벌하지 않을 것임을 믿게 해주는 일이다.북한사태는 미 행정부의 긴급과제중 최상위에 올라있다.비상사태에 대비한 특별반이 편성됐는지는 모르지만 국무부의 존 메릴,로버트 칼린 수석분석관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존 틸럴리 한미연합군사령관은 가능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태세도 완벽하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주민의 귀순사태가 빈발해지고 있다.이를 체제붕괴로 이어질 보트피플의 시작으로 보는 분석도 있는데. ▲북한의 체제붕괴는 이미 수년전부터 시작된 것이다.식량난도 사실은 체제문제이다.대량난민의 발생징후에 대해서는 앞으로 중국의 정보를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대량난민이 발생할 경우 일차적인 피해국가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중국과의 협조는 매우 긴요하다.유종하 외무장관이 이번 중국방문에서 중국의 협조약속을 얻어낸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 귀순 보트피플 김원형씨 등 두가족 감격의 첫나들이

    ◎“서울거리 보석상자 같아요”/남산타워·롯데백화점 등 돌아봐/“남북 격차 이정도라니…” 놀라움/쇼핑 시민들 박수갈채에 손흔들며 답례 『서울 시내가 마치 보석상자 같습니다』 지난 12일 첫 「보트피플」로 귀순한 김원형씨 등 두가족은 18일 첫 서울 나들이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와 안선국씨 두가족 14명은 휴일인 이날 남산타워,롯데백화점,남대문시장 등을 둘러보며 『진작 내려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며 북한에서 궁핍하게 지낸 생활을 되새겼다. 이들은 버스로 남산타워에 도착하기 까지 계속 창밖을 내다보며 『신의주는 산에서 조차 나무를 구경하기 어려운데 서울은 시내에도 숲(가로수)이 많아 산에 갈 필요가 없겠다』며 감탄하기도 했다.남산타워에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던 아이들 4명은 선물을 고르라고 하자 일제히 장난감들을 다투듯 움켜쥐고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다. 이들은 남대문시장과 롯데백화점에서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남과 북이 이 정도로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질린 표정을 지었고 안씨의 어머니김몽선씨(67)는 『죽기전에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당국의 관계자들이 남대문시장에서 점퍼,바지,셔츠 등을 골라 입으라고 하자 즉시 갈아입고는 『옷이 날개라더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며 『저 옷들이 다 팔리느냐,미제가 아니냐』고 질문하기도 했다.또 휴일을 맞아 쇼핑나온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상인들이 아동용 의류들을 선물하자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이들은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등심,게,냉면등으로 점심을 하면서도 『일반사람도 이런 곳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사먹을수 있느냐.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며 달라진 생활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한편 관계당국은 이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어감에 따라 곧 기자회견을 갖게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이한영씨 주소 유출/경찰에 벌금형 선고

    서울지법 양승국 판사는 15일 지난 2월 피살된 귀순자 이한영씨의 주소를 심부름센터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서울경찰청 정보과 경사 조칠완 피고인에 대해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를 적용,벌금 2백만원을 선고했다. 조피고인을 통해 이씨의 주소를 알아내 범인들에게 알려준 D심부름센터 대표 이상윤 피고인(52) 등 2명에 대해서는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법 위반죄를 적용,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씩을 선고했다.
  • “북 군입대 출신성분 안따져”/탈북 두가족 조사

    ◎징집범위 22세로 확대/내주 합동 기자회견 서해상으로 귀순한 안선국·김원형씨 두가족은 14일 당국의 조사과정에서 『북한에서 성분불량자는 군입대 대상에서 제외해 왔으나 94년부터는 출신성분을 크게 문제삼지 않고 있다』면서 『특히 97년부터는 징집에서 제외된 자도 22세까지 군입대를 허용하는 등 징집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북한이 군병력을 늘리는 등 전쟁준비를 계속하고 있음을 밝혔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안씨 등은 또 『북한은 96년 10월부터 군복무 연한을 13년으로 연장해 제대예정자들이 30세가 되어야 제대할 수 있게 됐다고 불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들 두가족은 인천항에 도착하기까지 배멀미로 고생,피곤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식사가 제공될때마다 모든 양을 먹는 등 심리적·육체적으로 안정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또 옷,과자,음료수 등을 받자 『남한제품인지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신의주사람들은 타지역 사람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높은데도 남한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말했으며 특히 아이들은 과자,과일 등을 처음 먹어본다면서 매일 먹게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신체검사를 실시한 결과,중풍을 앓는 안씨의 어머니 김몽선씨(68)를 제외하고 모두 건강이 양호했으나 안선국·김원형,안씨의 아내 김화옥 등 3명은 북한에서 작업도중 손가락이 하나씩 절단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앞서 관계당국은 귀순자들에 대한 조사가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이번 주말쯤 이들이 서울시내 관광을 하고 다음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귀순과정과 탈출동기 등을 밝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미국돈」과 육친만 있으면(송정숙 칼럼)

    동유럽이 무너지기전부터 그쪽지식인들은 영어를 많이 하고 있었다.그런 그들에게 「소련어」에 대한 관심을 물으면 명백하게 거부하는 표정을 보이기 일쑤였다. 『소련친구들이 우리 폴란드를 「리틀아메리카」라고 부르는 것을 몰랐느냐』고 하는 폴란드 교수도 있었고 모스크바를 떠나올 때면 『우리는 아메리카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고 하는 체코의 예술인도 있었다.동서독 장벽을 무너뜨리며 동독의 젊은이들이 소리높이 외친 것은 『우리는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구호이기도 했다. 통일 베트남의 하롱베이로 가는 길에는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시간의 어린이들은 물론 취학전 어린이들까지도 뭔가를 들고 팔고 있다.그들이 고사리순같은 작은 손을 내저으며 유아음으로 부르는 값은 『온 돌라(원달러)』이게 마련이다.중국의 서안토용총앞에서 파리떼 엉겨붙듯 달려드는 장사꾼들이 절규하듯이 부르는 값도 『온 돌라』다. 「아메리카」와 「달러」는 금세기의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의 출발과 종료의 부호인 것 같다.경제적으로 소생하는 길의 단초가「달러」에 있고 생사를 건 난민의 귀착이 「아메리카」로 연결된다.지구촌 최후의 죽음의 땅이 되어가고 있는 북한도 예외가 아닌듯 하다. ○달러위력 탈출에도 작용 낡은 목선 한대에 두가족 14명의 목숨을 걸고 풍랑의 바다를 탈출해온 김원형씨의 경우에서도 「미국」과 「달러」의 위력은 드러나고있다. 「미국」에 있는 육친이 보내준 미화 2만달러의 자금을 가지고 치밀하고 완벽하게 탈출계획을 세워 빠져나온 사람들이다.그 돈이면 북한에서 그냥 살아가더라도 상류계급으로 살수 있는 돈이다.그곳에서라면 『팔자를 고칠수 있을 만한 돈』인 5천500달러를 주고 탈출용「배」를 샀으며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한해 양식으로도 호화스러울만한 양의 먹을 것을 탈출용 「소도구」로 준비했으며 탈출 과정에서 사용하기 위해 휴대용 무선전화기도 확보하고 있었다.현재의 북한 수준과 견주면 이를테면 「하이테크 탈출」인 셈이다.그러므로 이들을 「보트피플」발생의 신호탄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그들은 난민단계 이전에 뚜렷한 목적도 정하지 못한채 정처없이 해상을 떠도는 선상주민이 아니라 한국을 향해 항해해온 동포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귀순 제일성은 최근의 탈북동포가 한결 같았던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자유를 위하여!』였다.그들의 이런 「호화스런」하이테크 탈출을 가능하게 한것도 「미국돈」이다.그리고 한가지 더.「육친」이라는 요소가 있었다. 「육친」과 「미국돈」으로 탈북해온 가족은 그들보다 한걸음 앞서 또 있다.최근에 80노부모의 집념과 활약으로 북에 두고온 딸의 가족을 탈출시킨 최현실씨 부모의 경우가 그것이다.병들어 반신불수가 된 남편과 아들손자 며느리 딸과 사위와 뱃속에 든 「외손」까지 이끌고 얼음물처럼 차가운 두만강을 헤엄쳐,중국대륙을 종단하여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었던 그들의 경우와 이번의 김원형씨 가족은 닮았다.두고온 아들을 못잊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노모가 아니었다면 「쌍동이 아우」도 거기까지는 못했을지 모른다.바꿔 되어서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으로도 실현시킨 예가 없다. ○부모만이 할수 있는 일 오직 「부모된 마음」만이 해낼수 있는 일.그것은 동기간이 할수 있는 일과 한 차원 다르다.자식들이 안전한 곳에 도착하여 『마음놓고 살수 있게 된』자식을 보고서야 「이제는 눈을 감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으면 북한같은 죽음의 땅에서도 「계획적」인 탈출이 가능한 것이다. 이산가족 1세대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만 그런 가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분단」이 「통합」의 과정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기능은 절대적일 것이다.「미국」과 「미국돈」만이 아니라 「육친」의 집념이 있는 동안의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본사고문〉
  • 수산위·수산국 통제 이원화/북 어선관리 실태

    ◎탈출 막기위해 출입항 관리소에 신고/김만철 탈북뒤 강화… 보위부가 출항허가 북한주민 14명의 서해상 귀순으로 북한의 어선관리에 허점이 많은 것이 드러났다. 북한은 최근 탈출 방지차원에서 입출항 어선을 철저히 통제해 왔던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탈출은 극히 이례적이다.일반적으로 양어장 작업선 등을 제외한 일정규모 이상의 어선은 항구를 드나들 때 출입항관리소에 의무적으로 신고를 하고 있다.우리의 경우 출입항 신고가 선박의 안전운항과 불법어로 방지차원이지만 북한은 탈출방지가 더 큰 목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87년 김만철 일가 탈출이후 출항관리는 더욱 엄격해졌다.보위부가 항구에서 출항할 배의 기관장,갑판장,선원 등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한 뒤 출항허가를 해주고 있다.그러나 이번 탈북 주민이 신의주항을 떠났다가 철산군 동천리 수산기지에 들어가 남은 가족을 태우고 다시 빠져 나오는동안 한 차례도 출·입항에 제지를 받지 않은 것은 어선관리가 그만큼 허술해졌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북한의 어선은 정무원을 정점으로산하 수산위원회,협동수산지도총국,도·군 위원회,말단 수산작업반 등으로 이어지는 관리계통과 수산국,도수산관리국,국영수산사업소 등의 관리계통에 의해 이원체계로 통제되고 있다.
  • 탈북 보트피플 대비해야(사설)

    조그만 목선에 목숨을 맡긴채 폭풍우를 헤치는 70여시간의 사투끝에 북한 동포 두가족 14명이 자유를 찾아 귀순해왔다. 제3국을 거쳐 귀순한 경우와 달리 직접 북한 신의주를 떠나 탈북한 첫 「보트 피플」이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모은다.더욱이 아사자가 속출하고 6·7월이면 식량이 완전 바닥 날것이라는 북의 처참한 식량난 실상이 전해지고 있는 참이어서 북한내부사정과 관련,우리를 긴장시킨다.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해안선 통제에 헛점이 생길 정도로 북한의 주민 통제가 허술해진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정부도 바다를 통한 대규모 탈북사태에 대비,보호시설을 늘려나가기로 하는 등 대비책을 서두르고 있다. 물론 이번 안선국·김원형씨의 경우 외화벌이 요원으로 중국을 왕래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행동이 자유로운 계층에 속했고 미국 거주 친지의 도움으로 조그만 목선이나마 중국 배를 구입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어서 가족을 대동한 집단탈출이 가능했다.적잖은 예비식량도 확보할 능력도 있었기에 탈출을 감행할 수 있었다.따라서 하루하루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일반 북한 주민들이 대거 바다를 통해 자유로의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씨 등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에도 황장엽 비서의 귀순 등 한국과 외부 사정에 대해 알고있는 주민이 늘어나는 등 불만이 고조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더욱이 황비서 탈북후 국경경비가 강화되고 중국측의 철저한 탈북자 검거·송환으로 육로 탈출의 길은 거의 차단된 상태다.따라서 어민을 비롯,소형 어선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북한 주민들의 해상 탈출은 어짜피 늘어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탈북자 수용대책과 함께 북한 전반적 상황에 대한 종합대책,그리고 작게는 북이 탈북을 가장한 요원들을 대거 침투시키거나 실제 대규모 보트피플이 발생했을때의 안보차원 대책을 심도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 첫 보트피플 뒤엔 쌍동이동생 있었다/김씨와 6·25때 이별

    ◎미서 7년간 남북오가며 자유행 도움/수시방북·전화통화… 남한사회 실상 들려줘 12일 목선을 타고 귀순한 김원형·안선국씨 가족 14명의 북한탈출은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김씨의 쌍둥이 동생 인형씨(57),어머니 차순덕씨(82)와 이모 차순기씨(75) 등 가족들의 7년여에 걸친 도움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2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김씨의 생존을 확인했다.그후 동생 인형씨는 북한과 근접한 중국 단동까지 들어가 2차례 전화통화를 하고 북경에서 2차례나 더 만나 탈출 방법을 상의하면서 모두 3만5천달러를 지원하는 등 사지에 있는 형님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김씨는 90년 평북 피현군에서 이모 부부를 처음 만났고 이듬해 6·25때 헤어진 어머니와 남동생을 만나 남한사회의 실상을 듣고 탈출을 결심했다. 첫 상봉때 김씨는 미화 1만달러와 옷가지를 받았으며 이후 수시로 편지를 교환하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달러를 전달했다.서울에 사는 사촌형 일형씨(62)와도 통화,남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안씨로부터 『외화벌이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군부대 허가권을 가질수 있는 큰 배가 필요하다.미국에 사는 당신 동생의 지원이 필요하다.중국에 가서 동생을 만나면 된다』고 권유했다. 3월12일 김씨는 안씨의 12마력짜리 소형 배를 타고 함께 중국 단동으로 건너가 미국에 있는 동생 인형씨에게 전화를 걸어 『남한으로 가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이 때부터 김씨는 한동네서 10여년간 함께 살아온 안씨 가족과 동행 탈출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이어 김씨는 4월10일 안씨,희근(29) 희영(26)씨 등 두 아들과 함께 단동으로 다시 건너가 인형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4월말경 북경으로 찾아온 인형씨를 만나 탈출자금 2만달러를 받아 5월2일 단동에서 5천500달러를 주고 조선족의 소개로 32t급 목조 어선을 구입,신의주로 돌아갔다. 김씨는 외화벌이 선박을 구입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조업 허가권과 함께 기관장으로 임명됐다.당국의 감시에서도 벗어나 자유롭게 외화벌이에 나서면서 탈출기회를 엿보았다. 탈출하다 적발되면 외화벌이때 수산물과 교환하기 위해샀다고 둘러대기 위해 남은 달러로 쌀 200㎏과 옥수수 510㎏을 구입해 배에 실었으며 항해때 필요한 각종 장비도 구입했다. 중국에서 산 배의 번호판은 「요동어 3043」.북한 해군 번호판으로 바꿔달면서 탈출때 중국 어선으로 위장하기 위해 이 번호판을 버리지 않고 감춰두었다.또 김씨는 지난 4일 북한 해군에 선박을 등록하면서 두 아들과 안씨가 7일부터 30일까지 출항한다는 출항명령서와 운항증명서를 발부받았다. 그리고 지난 9일 두 가족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찾았다.
  • 남·북­미서 숨가쁜 탈북공조/김원형씨 서울4촌형 김일형씨

    ◎원형씨 지난3월 중 단동서 안부전화/북에 남은 다른 친척도 만나보고 싶어 서해로 귀순한 김원형씨(57)의 유일한 국내 혈육인 사촌형 김일형씨(62·택시기사·서울 영등포구 신길동)는 13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4년여동안 끈질긴 탈출작업을 펴오던 사촌동생을 노심초사 기다린 보람이 이제서야 결실을 맺게 됐다』면서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다른 친척들도 만나보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씨는 사촌동생 원형씨가 중국 단동에 있던 지난 3월23일 서울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부인 윤태순씨(62)에게 『이북에 있는 원형입니다.현재 중국 단동입니다』라고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원형씨의 탈북에는 미국에 사는 쌍둥이 동생 인형씨(57·주류대리점업)의 막후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는 『93년 인형이가 어머니와 함께 소문 끝에 신의주에 살던 원형이를 찾아간 뒤부터 탈출 작업이 시작됐다』며 『인형이가 북한에서 형을 상봉할 때의 감격적인 장면을 말하던 기억을 잊을수 없다』고 소개했다. 방북 당시 인형씨가 「탈출 방법을 찾아보자」며 형 원형씨에게 귀엣말을 건네자 원형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 탈북유형 달라지고 있다/94년이후 가족단위 급증

    ◎탈북 동기·연령·직업 매우 다양/80년대까진 군인·단신이 주류 최근 탈북 귀순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탈북 동기나 규모,연령층 등도 북한의 사회상을 반영하듯 크게 달라지고 있다.80년대만 해도 귀순자는 한해에 몇명 될까말까 였고 이들의 대부분이 청장년층으로 군인이 많았다.또 탈북동기도 이들이 속한 조직내에서 반체제로 꼽히거나 생존하기 힘든 상황에서의 단독 탈출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난 94년 김일성 사망후부터는 오수룡·최세웅·현성일·정순영·김경호·김영진·유송일씨 가족 등 귀순자들의 연령층이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가족단위가 부쩍 늘어났다.이들 탈북자들의 직업도 황장엽비서와 같은 최고위층부터 외교관,외환딜러,과학자,의사,노동자 등 각계각층으로 확산됐다.이들의 탈북동기도 배고픔으로부터 시작해서 체제에 대한 환멸,남한사회에 대한 동경 등 다양해지고 있다.또 외국에 있는 친지들의 도움을 받는 등 조직적인 탈북준비도 눈에 띤다.특히 12일 귀순한 안선국씨등 두가족 14명도 평소 남한 방송을 통해 황장엽씨의 망명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북한사회에서 더이상 전체주민들을 눈과 귀를 막는 통제가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 해상탈북자 전원 수용/정부방침/곧 종합대책 마련 착수

    정부는 앞으로 해상탈출을 통해 귀순을 요청하는 북한주민에 대해서는 전원 귀순을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귀순을 요청하는 경우는 전원 수용을 원칙으로 하되 이중국적자나 범법행위 여부 등을 가려 선별적으로 귀순 허용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관련기사 4면〉 이와함께 정부는 통일원 등 관련부처들이 중심이 돼 ▲북한주민들의 예상탈출로 ▲단계별 예상 탈북자 규모 ▲탈북자 수용·분산계획 및 구호활동 등 「대량탈북자 발생시 대응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검토작업에 곧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현재 수백명 규모를 상정해 추진중인 탈북자 정책이 대량탈북사태 발생시에도 적용 근거가 된다고 보고 탈북자 보호시설 건립을 앞당겨 98년까지 완공하고 탈북자들의 사회적응을 위한 프로그램개발도 서두를 방침이다.
  • 북 보트피플 귀순­대량난민 정부의 대책

    ◎엑서더스 서곡… 난민시설 “발등의 불”/동·서해안에 집단 수용시설/유사시 270개 학교 분산 수용 대규모 북한판 「보트피플」이 발생할 것인가.12일 서해상으로 직접 귀순해온 안선국·김원형씨 두가족 탈북사건은 「보트피플」이 대거 몰려올 가능성을 높여준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당국이 국경경비보다 해상경비를 강화하고 있어 베트남 「보트피플」식의 대규모 탈북사태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해왔다.정부는 또 선박을 이용한 탈북은 「최후단계」로 보고 계엄상황 등 비상조치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대량탈북사태 등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번질 경우 휴전선이나 해안을 봉쇄하는 준전시상태의 조처를 취한다는 방침이었다.따라서 정부는 제3국을 통해 귀순해오는 탈북자들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수백명 정도의 탈북자를 예상한 중간규모 정도의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북한판 「보트 피플」사건은 북한주민들이 얼마든지 대량으로 귀순해올수 있는 가능성도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어서 정부당국은 긴장하고 있다.정부는 이번사건을 계기로 장단기적인 대량탈북사태 대비책을 마련할 방침이다.정부는 앞으로 제3국을 통해 귀순을 희망하는 탈북자에 대해서는 범법행위 여부등을 감안해 선별적으로 귀순을 결정할 것이나 이번과 같은 해상탈출의 경우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전원 귀순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이와함께 적십자 차원에서는 대량탈북자 발생시 한강이북의 270개 학교시설과 천막을 이용,탈북자들을 분산 수용한 후 긴급구호활동을 벌이는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이와함께 정부는 지난 95년 검토했다가 중단한 동해안과 서해안 지역에 탈북자 임시수용소를 건립하는 문제를 재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또 현재 추진하고 있는 탈북자 보호시설 건립을 서두르기로 했다. 한편,정부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북한붕괴 이후라도 탈북자들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접경지역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관련부처와 협의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북 보트피플 귀순­서해남하 어떻게 가능했나

    ◎레이더시설 등 낙후… 해상경계 “구멍”/경제난에 외화벌이배 출항 제한 없애/유류부족 심화… 감시선 활동도 느슨 안선국,김원형씨 탈북사건은 북한주민들이 선박만 구입하면 쉽게 해상으로 탈북할 수 있는 북한 해상경계의 허점을 드러냈다. 북한은 전자장비,특히 레이더시설이 낙후돼있고 연료가 부족해 최근 감시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경제가 급격히 악화된 요즘,「외화벌이용」 어선이 출항할 경우에는 북한당국이 제한을 두지 않아 이를 이용한 탈북은 별 어려움이 없다고 귀순자들과 북한문제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89년 북한 인민군 2군단에서 근무하다 임진강을 헤엄쳐 귀순한 김남준씨(35·기아자동차 근무)는 『북한에서는 최근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기업 등과 개별접촉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외화벌이 지도원인 안선국·김원형씨가 외화로 배를 구입하는 일은 쉬웠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해안경비대는 남쪽 배의 해상침투를 막는 일에 주력하고 북한배에 대해서는 특별히 감시하지 않는다.북한의 선박은 대부분 고기잡이용이기 때문에 기업소(기업)의 소유라는 번호만 있으면 의심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94년 3월20일 가족 3명과 함께 중국,홍콩을 거쳐 귀순한 여만철씨(51·방지거병원근무)는 『지난 87년 김만철씨가 배를 타고 귀순한뒤 선박의 출항때 북한 보위부가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다.보위부에서는 기관장,갑판장,선원 등 신분이 확인된 4명이상이 배를 타지 않으면 출항을 시키지 않는다.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노모까지 있는 안씨와 김씨의 가족들이 어디서 배에 탔는지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여씨는 『하지만 해상경비는 매우 허술한 편이어서 일단 출항과정만 통과하면 탈북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 북한문제전문가는 『북한의 해상감시활동이 약화돼 최근 우리 어선이 가끔 북쪽 영역으로 들어가도 별 반응이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때문에 이번 탈출어선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또 『북한 인민무력부는 무역회사를 따로 운영하는 등 자체적으로 돈을 벌고 있다.이번 배의 뱃머리에 인민무력부가 부여한 특정번호가 있고 선미에 중국어선 이름이 따로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김씨가 중국에서 사들인 이 어선을 김씨가 속해있는 총참모부 공병부 소속으로 지정해준것 같다』고 덧붙였다.
  • 북 보트피플 신상/안선국씨­국가과학원 외화벌이 담당

    ◎김원형씨­러시아서 한때 벌목공 생활 안기부는 서해로 귀순한 안선국와 김원형씨의 일행과 가족사항을 13일 발표했다. 선장 안선국씨(47)는 50년 9월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나 신의주고등물리학교를 졸업하고 북한군 무기수리장교로 복무한 뒤 상위로 제대했다.이어 수산부업기지 외화벌이 요원,국가과학원 평북도 자재공급소 외화벌이 담당으로 일해 왔다.동반 가족은 어머니 김몽선(68),부인 김화옥(41),장녀 일심(14·고등중학생),장남 일천(12·고등중학생),차녀 일영(9·인민학교) 등 5명이다. 기관사 김원형씨(57)는 40년 5월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어나 6년간 군복무를 마친뒤 신의주 경공업대학 통신과정을 졸업했다.러시아에서 벌목공 생활을 하다가 577 군부대 외화벌이 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선박 구입자금 제공 공로를 인정받아 외화벌이용 선박의 기관장으로 일해 왔다. 동반 가족은 부인 김의준(54),장남 희근(29·고등중학교 교원),차남 희영(26·고등중학교 교원),삼남 희성(21·국방체육단 양궁선수),장녀 순희(23·진료소 조산원)등 며느리와 손자 등 8명이다. 국내의 친척으로는 사촌형 김일형씨(60)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살고 있다.어머니 차순덕(82),이모 차순기(75),쌍둥이 아우 김인형씨(상점운영)는 76년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 중서 목선 사와 북 탈출/북 보트피플 귀순

    ◎재미동생이 2만불 보내 관계당국은 지난 12일 서해상으로 귀순한 김원형씨(57)와 안선국씨(49) 등 북한 주민 두가족 14명이 타고 온 32t급 목제 어선은 김씨가 미국에 사는 쌍동이 동생 인형씨(57) 등 친·인척이 건네준 돈으로 구입했다고 13일 밝혔다. 김씨는 북한 577군부대에서,안씨는 국가과학원 평북도 자재공급소에서 각각 외화벌이 지도원으로 일했으며 북한 탈출을 위해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6·25때 가족과 함께 월남하다 혼자 떨어졌던 김씨는 90년과 91년 두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동생과 가족들을 만난뒤 탈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씨 가족과 김씨 자녀 2명은 지난 9일 상오 11시30분쯤 중국 선박으로 위장한 배를 타고 신의주를 출발했다.김씨의 나머지 가족 6명은 비슷한 시간에 안전국 소속 운전사에게 뇌물을 주고 빌려탄 트럭으로 신의주를 떠나 10일 낮 12시15분쯤 평북 철산군 동천리 부두에 도착,미리 도착해 있던 배를 타고 함께 탈출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들이 탈출과정에서 북한 해군의 감시를 따돌린 것과 관련,『연료난에다 레이다시설 등 전자장비의 낙후로 최근들어 북한군이 탈북 감시가 허술해졌기 때문에 탈출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날씨가 좋지 않아 북한군이 탈출어선을 적극적으로 추적하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탈출 선박에서 발견된 국산 「디스」담배와 라면은 예인중 이 배에 탔던 해경소속 전경들이 피우고 먹다 남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라디오·워크맨·헤드폰 등은 91년 동생이 방북때 건네준 것으로 밝혀졌다.
  • 고 총리 “흔들림없이 국정 수행을”(국무회의:13일)

    ◎강 내무 “호우 피해예방에 최선” 13일 열린 정례국무회의에서 고건 국무총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내각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무위원 전원은 이날 국무회의가 끝난뒤 건설교통부가 시험구축한 「지하매설물 전산관리시스템」의 가동상태를 점검했다. ○…고총리는 먼저 『최근 수개월동안 한보 등 정치적 이슈에 언론보도가 집중됨에 따라 각 부처의 국정수행모습이 상대적으로 주요뉴스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 때문에 「국정수행의 부재상태가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않다』고 지적했다. 고총리는 『내각이 비리수사나 정치상황에 흔들림없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면서 『각 부처는 소관행정을 좀 더 밀도있게 챙기고,특히 민생관련정책 등을 과단성있고 속도감있게 추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강운태 내무부장관은 일부지역에 호우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내려진 것과 관련,『현재 비가 많이 내리고 있으나 하천부지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동차가 일부 물에 잠긴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피해는 크지 않다』면서 『비 피해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보고했다. 송태호 문화체육부장관은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시아경기대회에 대해 『통역요원의 부족 등 사소한 말썽이 있지만 선수촌을 따로 세우지 않고 분산하는 등 긴축운영하는 국제대회의 모델 케이스로 손색이 없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진 국방부장관은 12일 귀순한 북한 「보트피플」과 관련해 『이들이 한국에서 만든 「디스」담배와 라면 등을 갖고 있는데 대해 의아심이 난다는 지적이 있지만 첫 신문결과 현주소가 신의주로 중국교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고총리는 경기도 과천시를 대상으로 시험구축한 「지하매설물 전산관리시스템」을 직접 조작해본뒤 『지난번 서울 공덕동 가스폭발사고때도 도면과 실제매설장소가 달라 사고가 난 것 아니냐』면서 『도면만 가지고 작업을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현지조사를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결안건」 △병역법 시행령(개정안) △중소기업의 구조개선 및 경영안정을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령(개) △특허청과 그 소속기관직제(개) △보건복지부와 그 소속기관직제(개) △사회단체신고에 관한 법률 시행령(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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