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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중사 정치공작 수행설은 억측”/‘金勳 중위’軍수사 이모저모

    ◎김동진 전 국방·전 기무사령관도 수사키로 지난 9일 金勳 중위 사망사건 등을 재수사하기 위해 전격 발족한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단장 楊寅穆 중장)은 15일 출범한지 6일,金榮勳 중사(구속)의 신병과 수사기록을 넘겨받은지 이틀이 지났으나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월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의 귀순 당시 林載文 기무사령관과 金東鎭 국방부장관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북한군 접촉 사실을 알고도 본격적으로 수사하지 않은 것도 조사하느냐는 질문에 ‘성역 없이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고 수사하라’고 지시한 千容宅 장관의 당부에 유의해달라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林 전 기무사령관은 “변 상위가 진술한 경비병의 북한접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기무사요원의 JSA 상주가 필요하다고 판단,당시 金東鎭 장관에게 이를 건의했으며 金 장관은 유엔사령관에게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金榮勳 중사에 대한 기무사와 특조단의 재수사에서도 혐의점이 규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자 일부 군 고위 관계자들은 ‘군 헌병대와 육본 검찰부의 1·2차 수사가 그렇게 허술했을 리 없다’며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金榮勳 중사가 우리측 특수요원으로서 모종의 정치공작을 수행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金중사와 전역병 등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결과 金중사는 북한군과 만났거나 물건을 받은 뒤 소대원들에게 자랑삼아 말하는 등 자신의 모든 행위를 주변 사람들에게 과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있을 수 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 與,金 중위사건 공세 전환/경비병 북한군 접촉 등 현정권과 무관

    ◎“한나라당 주장은 자가당착일뿐” 반박 여권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경비병들의 월경 및 북한군 접촉과 金勳 중위 사망사건에 대해 공세로 전환했다. 이들 두 사건은 구 정권때 일어난 것이며 현 정부는 사태 수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千容宅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14일 “한나라당이 제기한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의 시점이나 논리에 있어 문제가 있다”면서 “판문점 경비병의 북한군 접촉은 기본적으로 전 정권에서 발생해 마무리된 사건으로 국방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밝혔다. 구 여권의 책임론을 집중 거론했다. 북한군 변용관 상좌가 귀순한 것은 2월3일이고 이 사건이 종결 처리된 시점도 구 정권 때라는 것이다. 鄭대변인은 “金東鎭 전 국방장관은 2월10일,林載文 전 기무사령관은 2월18일 경비병들의 대공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처리했다”면서 “경비병들의 월경과 대공 용의점은 현 정부와 무관하며 金중위 사망과의 연계성은 최근에 드러난 일”이라고 역설했다. 잘못이 있다면 金전장관 등 구 정부의 지휘부가 책임져야 하며 千장관과는 무관하다는 논지다. 그러나 金중위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2차에 걸친 수사에서 자살로 드러난 것이 3차 조사에서 타살로 밝혀질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3차 조사 결과 및 청문회를 지켜본 뒤 그 때 가서 千장관의 해임건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여운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구 정권 때 일어난 일로 수사상의 잘못은 있을지언정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은폐·축소 사실은 없다고 일축했다. 千장관은 이날 국민회의 의총에서 “과거 정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정정당당하게 한점의 의혹도 없이 조사해 군이 국민에게 신뢰를 받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 金 중사 혐의 완강히 부인/金勳 중위 사망 軍 수사 점검

    ◎“북한군 접촉했지만 포섭 안됐다” 주장/金 중사외 제3의 인물 관련여부 등 추적 “단순히 호기심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군사분계선 상에서 북한군과 만났다. 결코 포섭되지 않았다” 지난 4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金榮勳 중사(28)는 12일까지 9일동안 기무사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단순 접촉의 정도를 지나 북한에 포섭됐던 것은 아닌가”라는 추궁에 이처럼 일관된 대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는 지난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제3벙커에서 권총에 맞은채 숨진 金勳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金중사가 ‘金중위의 타살’에 연루돼 있다면 이를 설명할 만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金중사에게 이 대목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30차례 가량 북한군과 접촉했으면 포섭됐을 가능성이 크고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의 귀순에 따른 보복으로 북의 지령을 받고 金중위를 살해했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金중사의 완강한 부인으로 수사에는 진전을 보지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한 전역병 및 현역 병사 11명으로부터 ‘金중사 외에 여러 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적공조원들과 만나고 돌아왔다’는 진술을 확보,金중사 말고 제3의 인물이 관련됐을 가능성도 함께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기무사는 이번 주 안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혐의를 확인하고도 ‘연막전술’을 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군 수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새로 드러난 숱한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金중사의 북한군 접촉과 金중위 사망사건을 연계시킬 만한 구체적인 물증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군 고위 관계자는 “올 1월5일 경비대대에 전입,신임 소대장 교육등을 받은 후 1월20일부터 사고일인 2월24일까지 2소대장으로 근무한 金중위와 부소대장이던 金중사가 함께 근무한 기간은 1개월여에 불과하다”면서 “이토록 짧은 기간에 金중위에게 위해를 가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게 이번 사건을푸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중사의 자백에 의존한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14일 새벽 金중사의 신병을 넘겨받은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은 金중위 사망사건 발생 당시 근무했던 전·현역병 등 모든 소대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金중사와 대질 신문을 하는 등 구체적인 물증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金중위 사망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모든 의문점을 리스트로 정리해 자살 또는 타살가능성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귀순 변용관 상위 진술

    ◎北,JSA에 중화기 배치/자유의집 감시 제1초소에 기관총·기관포 등 중무장/무력시위 돌발사고 우려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안에는 소화기 외에 중화기를 배치하지 못하도록 한 정전협정을 무시하고 기관총,기관포,발사관(무반동포) 등 중화기를 배치해 놓은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남측 주요 인사들의 방문지인 자유의 집과 중립국 감독위 숙소 등을 전담 감시하는 중요 포스트인 ‘제1초소’에 이 중화기들을 집중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2월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변용관 상위가 국방부합동심문조에 진술한 조서에서 확인됐다. 변상위는 진술조서에서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 ‘제1초소’를 설치,●자유의 집 ●남측 경비병 막사 ●국군 1초소 ●양수(물 합류 지점) ●중립국감독위 숙소 등을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변상위는 “북한은 제1초소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며 이를 감안해 7.62㎜ 기관총 1정,40㎜ 기관포 1문,발사관 1문을 배치하고 있다”면서 “1초소의 경우 경무관 2명,판문점 대표부 경무부 5분대 공작조 1명 등 3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또 “북한은 경비구역 안에 있는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경무부 5분대’는 ‘판문점 대표부 정치부 적공과 공작조’의 위장 명칭”이라고 말했다. JSA내 양측 근무수칙을 명시한 ‘군사정전위원회 편람’에는 ‘JSA 지역에서는 권총 또는 보총(수동식 소총)을 소지한다’고 돼 있어 규정을 어긴 북한의 중화기 무장은 무력시위 또는 돌발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北 軍접촉 병사 다수 확인/金 중위 死因 내주중 규명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접촉사건을 수사중인 군 수사당국은 11일 현재까지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한 전역병 및 현역 병사 11명으로부터 “구속된 金榮勳 중사 외에 여러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적공조원들과 만나고 돌아왔다”는 진술을 확보,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군 수사관계자는 “전·현역병들에 대한 조사결과 당시 金중사뿐 아니라 다른 소대원들의 불법행위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金중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金勳 중위 살해 혐의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金중사 이외 다른 병사들도 북한군과 활발히 접촉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들도 金중위 사망사건과 관련돼 있는지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말까지 金중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짓고 다음주 초부터 金중위 사망사건과의 연관성을 본격 수사할 계획”이라면서 “늦어도 다음 주중이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가 지난 2월 귀순한 직후 ‘북한군 적공조원들이 JSA에서 한국군 경비병들과 빈번하게 접촉하며 포섭공작을 펴고 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전·지휘권을 가진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어떠한 대응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비대대 중대장이었던 金益賢 대위(32·육사·영어강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변 상위 귀순 전후 나를 비롯,미군 경비대대장 등 현지 지휘관들은 남북한 병사들의 접촉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이를 저지하라는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국정조사 제의 배경

    ◎여권 “의혹 조기차단” 겨냥/“변용관 상위 증언은 2월 千 국방장관과는 관련없다”/자신감 바탕 진실 접근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金勳 중위 의문사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 카드를 빼들었다. 金중위 사망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는 여권의 자신감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1일 오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金鍾泌 총리 주재로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자민련 朴泰俊 총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정협의회에서 “金중위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과 협의,국정조사를 실시키로 했다”고 鄭東泳 대변인이 전했다. 鄭대변인은 “북한군 변용관상위의 귀순은 2월3일이었으며,金東鎭 전국방장관이 합동신문조 보고를 받은 것은 2월11일이었다”고 밝혔다. 千容宅 국방장관은 3월3일 취임했기 때문에 변상위 신문과 연관성이 없다는 논지다. 千장관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수습에 나선 것은 11월이었으므로 한나라당이 “변상위의 증언에도 불구,金중위 사망사건(2월24일)과 경비병들의 대북 용의점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여권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은 李會晟씨의 구속을 金勳 중위 의혹사건을 은폐하고 물타기하려는 의도라면서 공세를 펴고 있다. 따라서 국정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보자는 ‘역공’인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여당측에서 국정조사를 공식적으로 제의해오면 적극 응할 방침”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국정조사는 큰 어려움없이 성사될 전망이다. 이미 국방위 진상조사 소위에서 자료축적이 돼 있어 원활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金중위 사망을 둘러싸고 꼬리를 물고 있는 각종 의혹사건은 국정조사 추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셈이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합동조사단 수사방향

    ◎‘판문점접촉’과 연관성 다각 추적/경비병 이적행위­유족 제기 의혹 등 우선 밝히기로/당시 수사기관 조직적 직무유기 여부도 조사 대상 金勳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10일 楊寅穆 중장을 단장으로 합조단 기무대 법무관리관 일반검찰 정보부대 등 관련부서 요원들로 구성된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이 10일 발족했다. 합동조사단의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 2월3일 귀순한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 등이 진술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원들의 이적행위에 대한 진상조사가 기본 뼈대를 이룰 전망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현안인 金勳 중위 사망사건의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金중위의 유족과 국회 진상규명소위 등이 그동안 집중적으로 제기한 각종 의문점에 대한 규명작업이 수사활동의 또다른 중심축이다. 지난 4월과 11월 군 헌병대와 육군 검찰부가 발표했던 1·2차 수사결과의 오류가 원점에서부터 검증될 전망이다. 金勳 중위 아래서 부소대장을 맡았던 金영훈 중사(구속) 등소대원들의 불법·탈법행위가 金勳 중위의 사망사건과 어떻게 연결고리를 맺고 있는가를 규명하는 것도 주요 수사대상이다. 金중위가 부하들의 북한군 접촉 사실을 알게되자 金중사가 사살한 뒤 자살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회 진상규명소위의 추정이다. 수사 관계자들은 “모든 의혹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정황증거가 아닌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군 고위관계자는 “사자(死者)는 말이 없고 많은 현장증거들은 상당부분 인멸된데다 金중사가 사망사건과의 연관성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군정보기관이 지난 2월 변용관씨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10개월간 JSA 경비병들의 이적행위를 수사하지 않고 金勳 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1·2차 수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연계시키지 않은 이유도 수사대상이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민·군 수사기관들의 조직적인 직무유기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楊寅穆 합동조사단장은 “과거 수사에 참여했던 수사관,특정 집단의 이해관계 등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면서 “기존 민·관 수사과정도 문제가 있다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楊寅穆 합조단장 문답

    “성역없이 원점서 철저조사”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고 있는 국방부 합동조사단 楊寅穆 단장(중장·육사 22기)은 10일 “국립묘지에 참배하는 심정으로,군의 명예를 걸고 한 점 의혹없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합동조사단의 구성은 기존의 군 기무사 외에 법무,정보,민간 검찰,안기부는 물론 국내외 전문가까지 포함시키겠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국회 진상규명 소위원회와 유족측 추천인사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활동 범위는. 성역없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조사한다. 경비병들의 이적행위와 金勳 중위 사망사건이 주요 수사대상이다. ●조사단의 역할 분담은 전역 병사들에 대한 조사는 안기부와 검찰이 맡고 JSA 내의 정보에 대해서는 귀순한 변용관상위의 증언을 참고하겠다. 사인 규명은 학계 전문가 등에게 맡길 생각이다. ●金榮勳 중사에 대한 조사는 북한 경비병을 접촉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金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진술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金중사의 북한초소 방문 목적은 북측경비병이 큰 보따리를 들고 초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반입이 금지된 화기를 숨겨놓았을 것으로 판단,확인하기 위해 월북했다고 진술했다. ●경비병 가운데 범법자는 더 없나 변상위가 7명을 지목했지만 4명을 제외한 3명의 이름은 가명이어서 확인할 수 없었다. 실제 인물인 4명도 대공 용의점이 없어 수사를 종결했다. ●소환 및 내사 인원은 金중사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참고인 10명을 소환했다. 이적행위 의혹이 있는 200여명도 내사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은 없었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변용관 상위 귀순 당시 조사내용 공개

    ◎3단계 포섭 방법·접촉 원칙/北 적공조 공작 상세히 진술/작년 김일성 생일에 한국군 사병이 화분 보내/93년 이전 4명 와전 포섭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한측 경비병들이 우리 장병에 대한 포섭을 시도해 온 사실을 군 수사당국이 묵살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공개됐다. 10일 공개된 기무사의 지난 2월 ‘변용관 상위(25)에 대한 신문조사 자료’에는 ‘97년 4월15일 金日成 생일에 한국군 사병이 축하 화분과 족자(자필 서예품)를 건넸다는 말을 다른 공작조원에게서 들었다’는 등 북한 대남심리전 특수요원과 우리 장병간 접촉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야간에는 감시가 소홀한 곳을 골라 1대 1로 접촉할 것 등 접촉원칙 및 ●1단계 5∼10회 만나면서 단순한 친분 상태를 유지 ●2단계 10∼30차례 만나며 대상자에 대한 번호와 가명 부여 ●3단계 대상자 신상자료 수집 후 상부 보고 등의 ‘포섭방법’도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변상위는 “4개 소대 가운데 金榮勳 중사가 소속됐던 2소대 근무자들의 접촉이 가장 쉬웠다”고 진술했다. 자신도 1년간 근무하면서 모두 3명의 카투사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또 “처음 JSA에 전입해 교육을 받을 때 ‘93년 이전까지는 공작활동이 활발해 4명이나 완전히 포섭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기무사는 당시 “변상위를 신문한 결과 북한측 ‘적공조’들이 실적 과시 또는 상부의 문책을 두려워한 나머지 과장해서 보고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JSA 장병들의 의식성향과 근무여건 등을 고려할 때 포섭됐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재발 방지 차원에서 접촉방지교육과 방첩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 JSA에 근무했던 장병 200여명에 대해 서면으로만 조사한 뒤 보고서를 기무사령관에게만 보고하고 사건을 자체 종결했다. 이처럼 변상위의 진술을 통해 북측의 대남 포섭공작이 확인됐는데도 서둘러 수사를 종결한 군 당국은 직무를 유기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나아가 간첩활동을 방조했다는 비난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 金 중위 死因 정확히 밝혀내야(사설)

    판문점 경비병사들의 북한 접촉사건과 함께 경비소대장 金勳 중위의 사망사건이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군 당국의 자살 결론에 국회 국방위 진상조사소위가 金중위의 타살가능성을 지적하자 국방부는 이 사건을 전면 재조사키로 했다. 뒤늦었지만 군의 재조사 결정은 당연하며 철저한 조사로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정확히 밝혀져야 한다. 金중위의 사망이 판문점 병사들의 북한접촉과 관련됐는지도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지금까지 나타난 여러가지 정황과 증거들로 보아 자살보다는 타살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진전되고 있다. 재조사 결과 만약 金중위가 타살됐으며, 추측대로 북한에 포섭된 부대원에 의해 살해됐다면 병사들의 북한접촉 못지않은 엄청난 일이다. 우리 군의 정신자세와 안보의식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음을 드러내며 군 기강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24일 낮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 벙커에서 머리에 권총을 맞고 숨진채 발견된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그동안 논란이 계속됐었다. 사고 후 군 당국이 金중위가 부대운영의 부담으로 자살했다고 밝히자 유가족들은 여러가지 증거와 함께 타살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했었다. 육군중장 출신인 金중위의 아버지가 이리저리 뛰며 혼자 힘으로 조사해낸 증거들은 누가 보기에도 타살가능성이 짙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金중위가 사망하기 얼마전 북한 경비병 상위의 귀순으로 북한이 보복을 공언하고 있었고 구속된 부소대장의 북한 접촉사실도 일부 알려져 있었던 상황이라면 가족들의 탄원이 없었더라도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보다 정밀하게 조사됐어야 했을 것이다. 더구나 남북이 민감하게 마주하고 있는 판문점 경비구역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결코 가볍게 처리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金중위 사망사건을 서둘러 자살로 처리한 군 수사당국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유가족들의 10개월에 걸친 재조사 요구와 과학적 증거들도 묵살했다. 경비병들의 북한접촉사실과 관련여부도 국회 조사소위의 문제제기가 있고서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이 문제를 더이상 확대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덮어버리려 했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다는 냄새가 짙게 풍긴다.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고들로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국방과 안보태세에 대한 걱정도 크다. 철저한 조사와 근본적인 대책으로 안보태세를 더욱 굳건히 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국회 국방위 중계

    ◎金榮勳 중사 북한군 접촉행위/정권교체기 정치배경 여부 추궁 국방위는 1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과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집중 추궁했다. 먼저 여당의원들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에‘정치적’배경은 없는지를 따졌다. 국민회의 張永達 의원은 “북한군과 접촉한 金영훈중사가 간첩으로 포섭돼 활동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우리쪽에서 첩보활동을 위해 보낸 것은 아닌지 알아봐야 한다”면서 접촉시기가 지난해 대선과 비슷한 점을 부각시켰다. 자민련 李東馥 의원은 “미스터리였던 95년 4·11총선 당시 판문점 북한군 무력시위 사건은 金중사의 북한군 접촉으로 단서가 나왔다”며 이번 사건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의 연관성을 물었다. 반면 한나라당의원들은 정부가 이번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을 집중 캐묻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許大梵 朴世煥 의원은 “金중위는 정황상 타살 가능성이 많다”면서 “군 수사당국이 수사과정에서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답변에 나선 千容宅 장관은 “필요할 경우 특별합동조사단에 민간 변호사와 법의학자를 참여시켜 金중사 등의 대공 용의점과 金중위 사망사건의 연계성 등 모든 의혹에 대해 원점에서 재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千장관은 4·11 총선 당시 북한군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과 관련,“내부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千장관은 또 귀순한 변용관상위가 ‘판문점 내에서 북한이 대남공작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진술한데 대해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병사들의 대공 용의점에 대해 한번도 공식보고를 받지 못했다”면서 “최근에는 ‘대공 용의점이 없어 종결지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정권교체기여서 이 문제를 소홀히 했거나 직무유기했을 가능성도 있어 이 부분을 확실히 조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千장관은 또 “카투사에 대한 지휘체계가 최선인지 한·미간 공동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우리측 정보기관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도 유엔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면서 이를미국측과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 金勳 중위 사망 1·2차 軍수사 문제점

    ◎美 초동수사 부터 한국 배제/미군 CID 김 중위 시신 입관직전 지문 채취/현장보전 않고 사건 이틀만에 벙커내부 정리/김 중위 수첩 미 판문점 경비장교가 꺼내가 폐기/재수사팀도 조사 무성의… ‘자살 입증’에 급급 지난 2월26일 오전 10시30분쯤 주한미군 범죄수사대(CID) 요원들이 한 장례식장에 들이닥쳤다.이들은 장례식을 중단시키고 이틀 전인 24일 숨진 金勳 중위의 시체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벙커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던 金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초동 수사는 이렇듯 엉망으로 시작됐다.사망 사건에서 필수적인 지문채취마저 시신 입관 직전에야 이루어진 것이다.‘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로 결론이 내려진 상태였다. 9일 군 수사당국에 따르면 CID는 金중위가 숨진 지 2시간쯤 지난 후 한국군 수사진을 불러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가게 했을 뿐 초동 수사단계에는 일절 참여시키지 않았다. 특히 당시 근무했던 사병들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당일 현장에 도착한 판문점 경비대대소속 미군 대대장과 한국군 부대대장은김 중위의 몸에서 수첩을 꺼내간 뒤 이를 폐기했다. 수첩에는 각종 상황의 시간대별 일지, 소대원들의 특이행동, ‘개인일기’ 등이 기록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金중위가 숨진 지 이틀 만인 지난 2월26일에는 귀빈 방문을 이유로 사건 현장인 벙커 내부를 페인트로 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CID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진상을 밝히겠다는 의지도 없이 ‘자살’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사인 규명에 결정적인 현장보전 등을 소홀히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와 관련,군 수사관계자는 “CID가 金중위 사망 직후 촬영한 사진에는 머리 부분이 피범벅이었는데 시체 부검 때는 깨끗해 확인해 보니 미군측이 알코올로 닦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미군 범죄수사대가 진상 규명에 무성의 했음을 내비쳤다. 이런 상태에서 군 헌병과 CID는 사건 발생 2개월20여일 뒤인 지난 4월27일 ‘소대원들 중에 소대장을 살해해야 할 급박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자살로 판명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유족측이‘유서가 없고 자살 동기도 없다’는 등 여러가지 의문점을 제시하자 상급기관인 육본 검찰부는 지난 6월1일 헌병으로 부터 사건을 송치받아 재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재수사팀 역시 주한미군측의 비협조로 사건 현장에 접근조차 못하다 3개월이 지난 9월2일에야 JSA에 들어가 2시간30여분 동안 현장검증을 실시하고 이번에 구속된 부소대장 金영훈 중사 등 병사 16명을 참조인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군 검찰은 지난 3일 국회 진상규명조사소위에서 한 전역병의 진술로 손쉽게 확인된 JSA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지난 2월3일 귀순한 변용관씨가 북한 대남심리전 특수요원들이 우리측 경비병들을 포섭하고 있다고 진술했음에도 사실 확인은 물론 金중위 사망사건과의 연관성 등을 캐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金중위의 육사 생활기록부 등을 뒤져 ‘성격적으로 너무 예민하다’는 점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자살’의 입증하는 데 급급했다.
  • ‘판문점 병사 내통’이라니(사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는 우리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사실은 국민들에게 또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미사일 오발에다 불발포탄 폭발,조명탄 사고에 이어 최전선 병사들의 ‘적과의 내통’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최근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군관련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군기(軍紀) 해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는 장병들에게는 투철한 군인정신과 보안의식이 필수적이다. 이들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하며 값비싼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는가 하면 몰래 북쪽으로 넘어가 술까지 마셨다니 우리 군의 기강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지 짐작할 만한 일이다. 더욱이 북한 경비병들은 심리전의 특수훈련을 받은 ‘적공조’요원들로 알려져 있다. 우리 병사들이 이들과 접촉하면서 어떤 중대한 정보를 얼마나 주었는지 걱정스럽다. 군 관계자들은 공동경비구역 장병들이 북한 경비병들과 접촉하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로 그리 놀라워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언제 어떤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동경비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익히고 지내는 것이 긴장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사의 엄격한 통제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결과는 반드시 지휘계통에 보고되어야 한다. 병사들이 멋대로 북쪽을 오가며 적과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지휘체계나 안보의식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군의 보안체제이다. 구속된 김모중사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북쪽을 들락거렸고 부대 안에서도 몇차례 문제가 됐었는데도 보안계통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난 2월 귀순한 북한군 상위가 우리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사실을 진술했는데도 이에 대한 조치가 없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군 당국이 알고도 방치하거나 은폐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이 사건이 판문점에 근무하던 한 소대장의 의문사와 관련됐다는 의혹도 주목된다. 군 당국이 스트레스로 인한권총자살이라고 발표한 소대장의 죽음이 유가족들의 주장대로 북한 접촉사실을 숨기기 위한 타살이라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철저한 재조사로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혀야 할 것이다. 군의 생명은 군기이다. 군의 기강이 이처럼 흐트러져서는 튼튼한 국방이나 안보는 기대할 수 없다. 특단의 대책을 거듭 촉구한다.
  • “타살 가능성” 재수사 급선회/국방위가 보는 사건 개연성

    ◎“경비병 北 왕래 金 중위사건과 연루” 제기/“타살 단정말고 차근차근 수사” 신중론도 ‘金勳 중위 사망사건’ 파문이 커지고 있다.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면 재수사로 방향을 틀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병들의 북한 왕래사건과 맞물려 안보공방으로 번질 조짐이다. 국회 국방위 ‘金勳 중위 사망사건 진상파악소위’(위원장 河璟根 의원)는 9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차 결론은 전면 재수사로 마무리됐다. 국방부측의 ‘자살단정’ 결론을 뒤엎는 데 초점을 맞췄다. 먼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을 문제삼았다. 소위는 “군이 金상호일병의 권총을 金중위 권총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육군본부의 재수사과정에서도 입증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했다. 총기 수불대장 작성과정에서의 몇가지 허점도 짚었다. 동기부여로 이어갔다.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첫째,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병의 북한 왕래사건을 문제삼았다. 金중위와 같은 부대 부소대장 등이 연루된 사건이다. 河위원장은“재수사 요구에 핵심부분”이라고 분명히 했다. 두 사건과의 연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북한 개입 가능성도 빠트리지 않았다. 북한군 상위가 귀순한 데 대한 보복차원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자민련 李東馥 의원은 “북한이 우리군 장교를 살해토록 교사했다는 개연성은 없느냐”고 의문을 표시했다. 河위원장도 “심증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군수품 유용사건에도 연관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발표문에는 빠졌지만 앞서 참고인 신문에서 불거졌다. 자민련 李의원은 “金중위가 이를 파헤치려고 했다면 대행수단으로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위위원들은 “이들 부대에서 군수품을 몰래 빼내 후방에 팔아넘기는 사례가 잦다”고 주장했다. 수사를 맡은 金영열 1군단 수사과장도 시인했다. 의원들은 관련의혹을 제기하며 참고인들과 공방을 벌였다. 미군과 우리 군의 차이점을 대비시켰다. 미군측은 최초 사건보고에서 ‘자살로 추정되나 더 조사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처음부터 ‘자살사건’으로 단정한 보고서를 냈다며 신랄히 추궁했다. 신중론도 개진했다. 국민회의 林福鎭 의원은 소위에서 “국방부의 당초 金중위 자살결론이 성급했다는 의혹이 강력히 제기되긴 하지만 국방위 소위의 성격상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말자”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은 사건이 이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임도 상기시켰다.
  • ‘북한군 접촉’ 은폐의혹 수사

    ◎국방부 “장관에 보고 안해 직무유기 혐의”/千 국방 “金勳 중위 사망사건도 전면 재수사” 국방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 사건과 관련,군 수사기관들의 조직적인 직무유기 의혹 등에 대해 전면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9일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이 지난 2월 3일 귀순,북한 대남심리전 특수요원인 ‘적공조’가 JSA내 한국군 경비병들을 대상으로 포섭공작을 하고 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일 국회 국방위 진상조사 소위원회에서 한 전역병사가 증언할 때까지 이같은 사실을 수사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 내사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일 국회에서 문제가 제기될 때까지 千容宅 국방장관에게 수사기관의 보고가 없었다”면서 “정권 교체기에 발생한 변용관 귀순 사건에 대해 수사관련자들이 사건 은폐 등 조직적으로 직무유기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양인목 중장을 단장으로 기무부대장,법무관리관,일반 검찰 등 관련부서 요원들로 국방부 특별 합동수사팀을 구성,모든 의혹을 수사할 방침이다. 군 당국은 또 金勳 중위가 숨진 JSA내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 등 군기 문란행위가 새롭게 확인됨에 따라 ‘자살’로 수사종결했던 金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千국방장관은 이날 “金중위 유족 등으로부터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한점 의혹도 없이 원점에서 다시 조사해 이른 시일내에 수사결과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金중위가 지난 1월 신임 소대장으로 부임했다가 군기문란 실상을 확인하고 제재하려다 이번에 구속된 金모 중사 등 부하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에 따라 자살과 타살 두가지 가능성을 놓고 원점에서부터 재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金중사 외에 상당수 경비병들이 북한군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JSA내 4개 소대 160여명의 경비병 전원을 차례로 소환해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前 정권때의 사건이지만 의혹없게 진상 철저조사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9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북한군 접촉 및 金勳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이들 사건이 비록 과거 정권 때 이뤄진 것이지만 정부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철저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라면서 “조사가 끝나면 모든 것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朴대변인은 또 “金중위의 사망이 공동경비구역내 군인들이 북한군과 접촉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진상을 철저히 조사,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 경비병 北 접촉 10개월 방치/나사 풀린 民·軍 수사기관

    ◎귀순자 통해 2월에 ‘40명 포섭’ 알아/“과장 진술”“구체적 혐의 없다” 무시/관련자 소환 등 조사않고 미온 대처 민·군 수사기관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경비병들이 북한 대남심리전 특수요원들과 접촉한다는 귀순자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10개월이 지나도록 본격적으로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9일 국방부에 따르면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가 지난 2월3일 귀순한 뒤 JSA내 우리측 경비병 40여명과 접촉해 포섭공작을 했다고 진술했다.하지만 안기부 국방부 경찰청 기무사 정보사 등 5개 기관은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변씨는 2월3일부터 9일까지의 5개기관 합동신문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판문점내 2초소와 북측 4초소 부근 군사분계선상에서 남한경비병들을 몰래 만나 선물을 교환하는 등 포섭활동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한국군 경비중대 4개소대 152명이 북한 공작조의 포섭대상이며 개인적으로 A일병,B일병,C일병과 직접 접촉했다.98년 2월 현재 한국군으로 북측 공작요원과 접촉하고 있다.2소대 김모상병과 친숙하게 만나 공작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러나 합동신문조는 ‘변용관이 한국군과 접촉,대화만 했음에도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 포섭된 자라고 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변씨의 진술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군 기무사도 2월12일 변씨를 독자적으로 조사,‘한국군 경비병 3명을 직접 만났으며 또다른 4명을 포섭했다는 동료 특공조원의 보고서를 봤다’는 내용과 함께 이들의 이름까지 진술받았으나 ‘아직 포섭단계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관련자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무사 관계자는 “변용관이 우리측 경비병 3명을 1∼2회 만났지만 그 이상 접촉하려 하면 피했다고만 말할 뿐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제시하지 못해 특이 사항이 없는 것으로 보고 적극 수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JSA내 우리측 경비병들의 대공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지난 2월18일 유엔사측에 기무사 요원이 상주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무사는 또 지난 6월부터 金勳 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정밀 재수사를 실시한 육군 검찰부로부터 수사협조나 협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 군 검찰의 수사가 허술하게 진행됐음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군 수사당국은 JSA에서 근무하다 전역한 병사들은 수사대상이 아닌 데다 구체적인 혐의나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에 나설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군 수사 관계자는 “이번에 구속된 당시 부소대장 金모중사는 변용관도 전혀 거론하지 않아 조사하지 않았으며 지난 6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미18의 무사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고 말해 金중위 사망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극히 미온적이었음을 시인했다. ◎김훈 중위 의문사 일지 ●2월3일=판문점 대표부 소속 북한군 변용관 상위 귀순. ●2월24일=金勳 중위(JSA 소대장) 권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 ●2월25일=金중위 부대 공동경비구역에서 후방으로 빠지는 날. ●4월∼11월=金중위 아버지 金拓 예비역 중장,군 수사당국의 자살발표에 의혹 제기,국회 국방위에 탄원서 제출 등 진상규명 활동. ●10월26일=국회 국방위,金중위 사망사건 진상파악 소위원회 구성. ●11월27일=육군본부 고등검찰부 金중위 사망사건 최종수사 결과 발표.자신의 권총으로 자살 결론. ●12월3일=국방위 소위,JSA 소속 金영훈 중사(28)가 북한군과 자주 접촉했다는 참고인 진술 확보. ●12월4일=기무사령부,金중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12월9일=국방부,金중위 사건 전면 재조사 착수.
  • 판문점 경비 국군하사관/北韓軍과 수시 접촉 적발

    ◎선물 등 받은 중사 구속… 사병 5∼6명도 곧 소환/‘金勳 중위’ 부대 부소대장… 사망사건 관련여부 조사 국방부는 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근무 중 북측 경비원들과 상습적으로 접촉하면서 선물을 받은 金모중사(28)를 국가보안법(회합·통신) 위반혐의로 지난 4일 긴급 구속,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공동경비구역은 지난 2월24일 金勳 중위(25·육사 52기)가 벙커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 곳으로 국방부는 자살이라고 발표한 반면 유족은 타살이라고 주장,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돼 왔다.군 수사당국은 金중사가 金중위 밑에서 부소대장을 지낸 점을 중시,金중위 사망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수사당국에 따르면 金중사는 JSA 부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7월부터 12월 사이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북한군 심리전 담당인 ‘적공조’ 1조장 金경호중좌와 金철호중좌,리경남 상등병 등과 군사분계선에서 30여차례에 걸쳐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 수사당국은 지난 2월3일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군 적공조 출신 상위 변용관씨(26)의 진술과 전역 병사들의 증언 등에서 JSA에 근무하는 한국군 병사들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한다는 사실을 확인,수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金중사는 북한군과 서로 이름을 알려주고 북한산 담배와 인삼주를 건네 받은데 이어 나중에는 주소까지 교환할 정도로 두터운 친분관계를 쌓은 혐의도 받고 있다. 아울러 북한산 맥주와 담배,인삼주,독일제 위장약 등을 선물받아 순찰 도중 우연히 주운 것으로 상부에 허위보고한 뒤 보관했으며 지난해 11월 초 오전 2시쯤에는 군사분계선을 약 20m까지 넘어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군 수사당국은 지난 5월 전역한 吳모병장도 북한군과 무단 접촉한 뒤 롤렉스시계를 건네받은 사실을 추가로 확인,국가기밀을 넘겨준 대가로 선물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 부분도 수사 중이다. 군 수사당국은 이와 함께 金중사를 상대로 군사기밀 유출여부를 집중 추궁하는 한편 북한군을 접촉한 혐의가 짙은 전·현역 장병 5∼6명을 조만간 소환,국가보안법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하는 등 수사대상을 확대키로 했다. 지난 3일 구성된 국회 국방위의 金勳 중위 사망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는 최근 비공개회의에서 金중위가 군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잠정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위의 한 관계자는 “金중위가 근무하던 부대의 하사관이 북한군과 자주 접촉한 점으로 미루어 金중위가 부대원의 불법행동을 인지했을 경우 ‘증거인멸’ 차원에서 희생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방위 진상 소위는 金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근거로 국방부에 재수사를 촉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으며 9일 소위활동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군기문란 실상 노출 큰 충격/한국군 판문점서 北韓軍 접촉 파문

    ◎‘不法’ 알아낸 金勳 중위 피살 가능성/재수사 통해 연계 드러나면 파장 클듯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북한군의 대남심리전 요원인 ‘적공조’와 수시로 접촉,선물을 받고 술을 나눠 마시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군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졌는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으로 지난 3일 구속된 金모중사(28)가 지난 2월24일 JSA내 벙커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채 발견된 金勳 중위(25·육사 52기) 아래서 부소대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관심의 초점이다.국방부는 金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한 반면 유족은 타살이라고 주장해 왔다.앞으로 재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과 金중위 사망사건이 연계된 것으로 드러나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金중위가 병사들의 불법행위를 알게되자 ‘증거인멸’ 차원에서 金중위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혹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군 검찰은 불과 열흘전인 지난 달 27일 5개월여간에 걸쳐 정밀 재수사 결과 ‘金중위가 군복무에 대한부담감과 무력감 등으로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소속 부대원들의 군기강 문란행위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군 수사당국에 따르면 구속된 金중사 등 JSA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 사이에 중점적으로 이뤄졌다.그러나 이들은 지난 2월 북한군 적공조원이 귀순한 이후 이같은 불법 행위를 그만둔 것으로 밝혀졌다. 군 수사당국은 지난 3일 국회 국방위 金勳 중위 사망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에 출석한 전역병사가 이같은 사실을 증언한 이후에야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난 2월 귀순한 북한 적공조원에 대한 수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감지조차 못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1군단장을 거쳐 3군 부사령관으로 예편한 金중위의 아버지인 金拓 예비역 중장(55·육사 21기)은 ●권총에 金중위의 지문이 남지 않았고 ●오른 손잡이인 金중위의 왼손에서만 화약이 발견됐고 ●발사지점보다 위쪽에서 형성되는 탄착점이 金중위의 키보다 낮은 곳에서 발견된 점 등을 들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 탈북 일가족 3명 귀순

    국가안전기획부는 24일 북한 주민 박상운(60)·한정옥씨(58) 부부와 아들 세현씨(21) 등 일가족 3명이 제3국을 경유해 귀순해옴에 따라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귀순동기 및 밀입국 경위 등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안기부에 따르면 박씨 일가는 함북 길주군 ‘절연물’ 광산 노동자 출신으로 이달 초 북한을 탈출,제3국에 은신해오다 밀입국했다고 진술했다.
  • 친일의 군상:11/여자 밀정 裵貞子(정직한 역사 되찾기)

    ◎伊藤博文의 꼭두각시로 매국·배족 선봉에/1885년 도일… 이등박문 만나 ‘스파이 교육’ 받아/러 견제·고종퇴우 막후활동… 만주지역서 독립운동가 탄압/태평양전쟁때 韓人 부녀자 100여명 위안부로 내몰아/해방후 반민특위에 체포된뒤 후회의 눈물/시골 아전의 딸로 출생 대원군 실각후 집안 몰락/어릴때부터 조정에 반감/한때 官妓여승으로 전전 1949년 2월 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姜明珪 조사관 일행이 서울 성북동 언덕길을 급히 오르고 있었다. 한 양옥집 앞에 다다른 姜조사관 일행은 백발의 한 노파를 끌어내 수갑을 채우고 남대문로 반민특위 사무실로 연행했다. 그 노파의 나이 79세. 겉으로 보기엔 여느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가 반민특위로 잡혀오자 특위 요원들이 이 노파의 얼굴을 보려고 姜조사관 주위로 모여들었다.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그 나이에 수갑에 채워져 끌려왔을까? 과연 이 노파는 누구인가? 裵貞子(1870∼1952). 흔히 이름 앞에 ‘요화(妖花)’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배정자가바로 그 노파였다. 정사(正史)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한국근대사의 이면사(裏面史)에 ‘일제의 앞잡이’로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배정자급(級)에 드는 친일파는 몇 안된다. 한말 일제의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협조하였고 ‘한일병합’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조선인 항일세력 탄압에 앞장섰었다. 친일파 가운데 우두머리급에 드는 친일파였다. 해방후 반민법 위반으로 반민특위에 잡혀온 여성피의자는 총 6명. 그들중 첫번째로 잡혀온 사람이 바로 배정자였다. 흔히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로 ‘마타 하리’를 든다. 고급창녀 출신의 마타 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1917년 프랑스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배정자를 바로 이 ‘마타 하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배정자는 1870년 경남 김해 고을에서 아전노릇을 하던 裵祉洪의 딸로 태어났다. 아명은 분남(粉男). 부친은 1873년 대원군 실각후 그 졸당(卒黨)으로 몰려 대구 감영에서 처형되었다. 모친은 이 충격으로 눈이 멀어버렸다. 그가 세살때의 일이었으니 그의 초년은 순탄치 못했다. 이후 그는 모친과 함께 유랑 생활을 하다가 밀양에서 관기(官妓)로 팔렸으나 도중에 뛰쳐나와 양산 통도사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우담(藕潭)이란 승명(僧名)으로 목탁을 두들기던 그는 2년만에 다시 절을 뛰쳐나와 배회하다가 밀양 관청에 체포됐다. 여기서 우연히 은인을 만났다. 당시 밀양 부사 鄭秉夏는 그의 부친과 알고 지내던 사이로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일본으로 가서 살도록 주선해주었다. 1885년 15세 되던 해 그는 일본인 밀정 마쓰오(松尾彦之助)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에게 뜻밖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배정자는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에 망명해 있던 개화파 인사 安경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金玉均과도 알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물굽이를 틀어준 사람은 바로 이 김옥균이었다. 김옥균은 당시 일본 정계의 실력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의 빼어난 미모에 끌린 이토는 하녀 겸 양녀로 자기 집안에들여앉히고 ‘다야마 데이코(田山貞子)’라는 일본이름을 지어주었다. 裵貞子의 ‘貞子’는 여기서 생겨났다. 이토는 재색(才色)을 겸비한 그를 장차 고급 밀정(스파이)으로 키울 요량으로 수영·승마·사격술·변장술 등을 가르쳤다. 소위 ‘밀봉교육’을 시킨 셈이다. 일본으로 간지 9년만인 1894년 배정자는 조선으로 돌아왔다. 공식적으로는 신임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하야시(林權助)의 통역이었으나 본분은 일제의 밀정. 첫 임무는 당시 조선황실 내의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공사관에 머물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엄비(嚴妃·고종의 계비)의 친인척을 통해 황실과 선을 댔다. 고종(高宗)은 미모에다 출중한 일본어 실력을 갖춘 그를 총애하였다. 당시 한 신하가 고종에게 “비기(秘記)에 가로되,갓 쓴 여자가 갓 쓴 문(門)으로 출입하면 국운이 쇠한다 하였습니다. 통촉하옵소서”라고 아뢴 바 있다. 양장에 모자(갓)를 쓴 그가 대안문(大安門·덕수궁의 정문으로 현재 명칭은 ‘大漢門’임)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러일전쟁 직전 친러파는 고종의 신변안전을 위해 ▲평양 천도 혹은 ▲고종의 블라디보스토크 천거(遷居)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비밀이 누설돼 일본측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고종으로부터 이 정보를 빼내 일본공사관에 제공한 장본인은 바로 배정자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 3월 이토가 초대 한국 통감으로 부임하자 배정자는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빠 裵國泰는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으로,동생은 경무감독관(현 경찰청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토를 등에 업은 그는 밀정이자 막후 권력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일제와 함께 고종에게 퇴위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 무렵 그는 ‘흑치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기세는 1909년 이토가 통감자리에서 물러나고(6월) 다시 4개월 뒤 하얼삔에서 安重根 의사에게 살해됨(10월26일)으로써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토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은 ‘한일병합’후 부임한 조선주둔 헌병사령관 아카시(明石元二郞)였다. 아카시는 배정자의 과거 밀정경력을 높이 평가하여 헌병대 촉탁으로 채용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일본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그는 일본군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서는 이 지역에서 수년간 군사첩자로 활동하였다. 그 후 봉천(奉天·현 瀋陽)주재 일본영사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만주지역 거주 조선인들의 동향을 정탐,귀순공작을 담당했었다. 배정자는 1920년 일제가 옛 일진회(一進會)의 잔당들을 규합,만주지역 최대의 친일단체인 ‘보민회(保民會)’를 창설할 때 배후인물로도 활동하였으며 나중에 이 단체의 고문을 맡았다. 이 단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 탄압과 체포를 위해 조직한 무장 첩보단체로,초대회장 崔晶圭는 대한제국 시절 참위(소위)출신이었다. 매국노 李容九의 한일합방 청원을 지지했던 崔는 보민회에서 활동한 공로로 나중에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한편 만주지역에서의 맹활약(?)으로 독립투사 진영에서 처단대상자로 지목하자 배정자는 1922년 신변에 위협을 느껴 조선으로 돌아왔다. 조선총독부에서는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가 그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가 경무국 촉탁으로 다시 고용하였다. 나중에 그는 총독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600여평의 토지를 받기도 했는데 은퇴한 뒤에도 총독부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지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일본군 위안부 송출업무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70 노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여성 100여명을 ‘군인위문대’라는 이름으로 남양군도까지 끌고 가서 일본군 위안부 노릇을 강요하였다. 해방후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취재차 형무소를 찾은 한 기자에게 그는 “따끈한 장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애걸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정자’의 모습은 흔적도 없고 한낱 늙은 죄수의 모습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제와서 전비(前非)를 어찌 변명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떤 벌을 내리신대도 달게 받고 가겠습니다. 다만 제 아들 무덤 앞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뒤늦게 자신의 죄과를 후회했다. 배정자의 형량과 얼마동안 징역을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의 죽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종로구청에 보관돼 있는 호적에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2월27일 서울 성북동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묘하게도 그가 죽은 날짜는 그의 출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어릴 때 조정(朝廷)에 대한 증오 때문에 조국을 배반,매국녀(賣國女)가 된 배정자는 해방후 조국에서 81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裵貞子의 남성편력/빼어난 미모에 화려한 경력 소유/결혼·동거 등 거쳐간 남자 7∼8명 裵貞子는 빼어난 미모와 화려한 경력에다 연령·민족을 불문한 ‘남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첫남자’는 田在植. 한 때 관기로 있을 때 대구 중군(中軍) 田道後의 아들 전재식을 만나 사랑에 빠졌었다. 배정자의 일본행으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가 전재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재회,결혼했다. 이 사이에서 田有和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러나 경응의숙(慶應義塾)에재학중이던 전재식이 병사하자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났다. 두번째 남편은 일본공사관의 조선어 교사였던 玄暎運. 1895년 당시 외부(外部·현 외무부) 번역관(주임관 6등)이던 현영운은 배정자의 도움으로 10년만에 육군 참장(종2품·현 준장)으로 승진,농공상부 협판(차관)직을 맡았다. 배정자는 현영운과 1년 가까이 살다가 이혼하였다. 그리고는 현영운의 후배인 朴榮喆(일본육사 15기 졸업,함북도지사·중추원 참의 역임)과 결혼하여 5년간 동거하다가 또 이혼하였다. 이후 일본인 오하시(大橋),은행원 崔모,전라도 갑부 趙모,대구 부호의 2세 鄭모 등과도 끊임없이 관계를 맺었다. 대륙전선에 투입됐을 때는 중국인 마적 두목과 동거한 적도 있다. 1924년 57세로 밀정생활을 은퇴한 후에는 25세의 일본인 순사와 동거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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